웨이크피일드(Wakefield)
Nathaniel Hawthorne
옛날 어떤 잡지엔가 신문에,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았던 한 남자- 우리는 그를 웨이크피일드라 부르기도 하자- 에 관한 이야기가 실화로 실렸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기사와 같이 단지 추상적으로 말하면 이 사건은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또 그 상황 특유의 특성을 잘 모르고서 비난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뿐더러 무의미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기록상으로 나타난 것 중, 배우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중에서 가장 심한 예는 아닐지라도 가장 이상한 예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온갖 괴벽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기행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부는 런던에 살고 있었다. 남자는 그 같은 자기 추방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행을 빙자하여 자기 집의 이웃 거리에 숙소를 정하고서, 자기 아내와 친구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이십 년이 되도록 그곳에 살았던 것이다. 그동안 그는 매일매일 자기 집을 바라보았으며, 버림받은 웨이크피일드 부인을 자주 보았다. 그의 행복한 결혼 생활에 있어서 이처럼 큰 간격이 생긴 이후- 그는 확실히 죽은 것으로 간주되어 그의 재산은 처분되고 그의 이름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그의 아내는 황혼기에 접어든 자신의 과부 생활에 벌써 오래전에 몸을 맡기고 지내고 있을 때- 어느 날 저녁, 그는 한나절의 외출에서 돌아오기나 한 것처럼 조용히 문간으로 들어와,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부부로서 살았다고 한다.
이 줄거리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부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례도 없을 뿐더러 다시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 그 순수한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해 오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 중의 누구도 그처럼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이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다. 최소한 내가 명상하는 도중에 그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놀라움으로 곧잘 나의 뇌리에 떠올랐으며, 이 사건은 분명 사실일 거라는 생각과, 그 주인공의 성격에 대한 상상도 아울러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주제가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강렬하게 감동시킬 때면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기 마련이다. 만일 독자가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자. 아니면 나와 함께 이십 년간에 걸친 웨이크피일드의 기이한 행적을 살펴보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환영의 뜻을 표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설령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하더라도 마지막 한 문장 속에 간결하게 집약될 하나의 핵심적인 정신과, 하나의 도덕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사상이란 언제나 그것의 효험을 갖고 있으며, 모든 충격적인 사건이란 그것의 교훈을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웨이크피일드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을까? 우리는 자유로이 우리 자신의 생각을 펼쳐서 그것에다 그의 이름을 붙일 수가 있다. 그는 그 당시 자기 인생의 절정기에 있었다. 아내에 대한 그의 애정은 결코 격렬하지 않았으나, 조용하고도 언제나와 같은 감정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모든 남편들 중에서도 그는 가장 변치 않는 남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나태함이란 사람의 심장을,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간데,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지적인 사람이었으나, 그리 적극적인 편은 못 되었다. 그의 마음은 목적도 없는 느리고도 게으른 명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목적을 달성해야겠다는 의지나 용기를 갖고 있지도 못했다. 그의 사상은 언어로 포착될 만큼 그렇게 강렬하지도 못했다. 상상력이란, 그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웨이크피일드의 천품 속에는 자리 잡지를 못했다. 그의 가슴은 차가웠지만 사악하다든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럽지는 않았고, 그의 마음은 선동적인 사상으로 들뜬다든가 어떤 기발한 생각으로 혼란된다든가 하는 일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친구가 이상한 짓을 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리라고 누가 미리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만일 그의 친지들에게 런던에서 내일까지 기억될 만한 일을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 가장 확실한 사람이 누구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웨이크피일드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를 보다 잘 아는 부인만은 머뭇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비록 그의 성격에 대해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그의 게으른 마음속에 녹슬어 있는 숨겨진 이기심을 부분적으로는 눈치채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서 가장 근심스러운 성질로써 일종의 독특한 허영심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폭로할 가치도 없는 작은 비밀들을 감추는 것 이외에도 적극적인 방법보다는 교묘한 술책을 쓰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착한 사람들에게서도 때때로 볼 수 있는, 그녀가 괴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었다. 이 마지막 기질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막연한 것으로써 사실 존재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웨이크피일드가 자기 아내와 헤어지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로 하자. 시월의 어느 저녁, 황혼 무렵이었다. 그의 차림새는 우중충한 담갈색의 큰 코트와 기름 먹인 천을 바른 모자, 장화, 그리고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엔 작은 여행 가방을 든 채였다. 그는 아내에게 밤 마차를 타고 시골에 간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며칠이나 여행을 할 것인지,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며, 언제쯤 돌아올 것인지를 당연히 물어보고 싶지만, 비밀에 대한 그의 해롭지 않은 사랑을 내버려두기 위해 단지 눈짓으로만 물어본다. 그는 아내에게 돌아오는 마차 편으로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는 말고 사나흘 정도 체류하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금요일 저녁 식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오리라고 말한다. 웨이크피일드 자신도 무엇이 자기 앞에 놓여 있을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가 아내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자 아내 역시 자기 손을 내밀어 십 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습관이 된 자세로 그의 작별 키스를 받는다. 그리고 중년의 웨이크피일드 씨는 한 주일쯤 몽땅 집을 비워 자기의 선량한 아내를 한 번 놀라게 해 주려고 결심한 듯이 걸어나간다. 그의 등 뒤에서 그녀는 문을 약간 밀고 그 틈으로 자기를 향해 미소짓는 남편의 얼굴이 곧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순간적으로 이 작은 사건 같은 건 별 의문의 여지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아내로서 산 세월보다 과부로서 산 세월이 더 많아졌을 때, 그날의 미소는 다시 흘러와서 웨이크피일드의 그 표정에 대한 그녀의 기억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무수한 명상 속에서, 그녀는 그 원천적인 미소를 무수한 환상으로 에워싸고, 그 미소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대단한 것으로 만들고 만다. 가령 예를 들자면, 그가 관 속에 있다고 상상을 하면 작별하던 때의 남편의 미소가 그의 창백한 얼굴 위에 얼어붙어 있는 듯이 생각되고, 그가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그녀가 꿈꿀 때면 축복받는 그의 영혼은 그 조용하고도 교묘한 미소를 조용히 띠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미소 때문에, 남들이 다 그를 죽은 자로 간주해 버린 이후에도 그녀는 때때로 자신이 과부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용건은 남편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빨리 그의 뒤를 따라 거리를 내려가서 그가 런던의 삶이라는 거대한 집단 속으로 녹아 흘러들어 자기 개성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를 보아야 한다. 집단적인 삶이 이미 그의 존재를 삼켜 버린 뒤에 그를 찾아낸다는 것은 헛된 질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뒤를 바싹 쫓아, 그가 불필요하게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아, 앞에서 말했던 그 작은 아파트의 난롯가에 편안하게 자리잡을 때까지 추적해 보기로 하자. 그는 자기 집의 바로 이웃 거리에 있으며, 그것이 그의 여행의 끝이 된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곳으로 갈 수 있었던 자기의 행운을 거의 믿을 수가 없다. 그는 불이 켜진 가로등 바로 앞에서 혼잡한 사람들 때문에 지체하기도 했고, 또는 자기 주변의 무수히 많은 발자국 소리들 중에서 자기 뒤를 뒤쫓는 듯한 발자국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저 멀리서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그것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했던 때를 회상하면 더욱 아슬아슬한 생각이 들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열두 명이나 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감시하다가 모든 사실을 자기 아내에게 말해 버릴 것만 같았다. 불쌍한 웨이크피일드여! 이 넓은 세상에는 자네 개인의 하찮은 일 같은 것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네. 나의 눈을 빼고는 어떤 인간의 눈도 자네를 뒤쫓지 않을 걸세. 어리석은 자여, 조용히 침대로 들어갔다가, 아침이 되어 보다 현명해지거든 선량한 웨이크 피일드 부인에게로, 자네의 집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게. 단 1주일 동안이라도 그녀의 정숙한 품속을 떠나지 말고 자리를 지켜보게. 만일 그녀가 단 한 순간이라도, 자네를 죽었다거나 잃어버렸다거나, 또는 영원히 헤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자네의 진실한 아내에게 그 이후 영원히 생길 변화를 자네는 비통하게 의식하게 될 걸세. 인간의 애정에 틈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네. 그것은 오랫동안 넓게 틈이 갈라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그 갈라진 상처는 너무나 빨리 아물어 버리기 때문에.
자기의 장난을 거의 뉘우치면서, 그것을 장난이든 혹은 무엇이라 이름 부르든 간에, 웨이크피일드는 일찍 누워서 선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 생소한 침대의 넓고도 외로운 사막으로 두 팔을 활짝 펼쳐 본다. '안 돼. ' 그는 이불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생각한다. '다시는 혼자 잠자지 않을 거야.'
아침이 되자 그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 정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는 분명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이 독특한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그러나 자기의 계획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의 게으르고 어정버정하는 사고의 형태가 나타난다. 계획의 막연함과 또한 그 계획을 위해 쏟는 발작적인 노력은 연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웨이크피일드는 자기 생각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다가 자기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진행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그의 모범적인 아내는 어떻게 1주일간의 외로운 신세를 견뎌 낼까, 그리고 자기가 중심적 존재였던 그 작은 세계의 사람들과 상황들은 자기가 집을 비움으로써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하는 것 등에 관해, 그러니까 어떤 병적인 허영심이 이 사건의 밑바닥 가장 가까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자기의 목적들을 이룰 것인가? 그것은, 그가 자기 집의 바로 이웃 거리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긴 했지만, 마치 역마차를 타고 밤새도록 빙빙 돌아다녔던 것처럼 멀게 느껴지는 이 편안한 하숙에 숨어 있는 것만으로는 분명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시 나타나 버린다면 모든 시도는 끝장나고 마는 것이다. 그의 빈약한 두뇌는 이 진퇴양난의 문제로 절망적으로 혼동되어 거리의 끝머리를 가로질러 자기가 버린 집을 한 번 바라보기만이라도 하려고 그는 드디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다. 습관이 -그는 습관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손을 잡고 완전히 무의식의 상태에서 그를 자기 집의 문 앞으로 이끌어간다. 바로 이곳, 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계단 위에 자기의 발을 문지르는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린다. 웨이크피일드여! 자네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로 그 순간 그의 운명은 선회의 축 위를 돌고 있었다. 뒤로 물러서는 자기의 첫 번째 발자국이 자기를 어떤 운명으로 이끌 것인지 전혀 꿈조차 꾸지 못한 채, 그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흥분으로 숨이 막혀 황급히 그 자리를 물러나 먼 길 모퉁이에서도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을까? 온 가족들-착실한 웨이크피일드 부인과 예쁜 하녀, 그리고 구질구질한 사동 녀석-이 런던 시내를 소리소리 지르면서, 도망쳐 버린 자기들의 지배자이자 주인님을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는 용기를 내어 멈추어 서서 집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 낯익은 건물 주변을 감도는 변화의 기미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것은 몇 달이나 혹은 몇 년을 떨어져 있은 후에 다시 옛날에 낯익었던 언덕이나 호수나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 모두가 느끼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보통의 경우, 이런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은 우리들의 불완전한 추억과 현실 사이의 비교와 대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웨이크피일드의 경우, 단 하룻밤의 마술이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그것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대단한 도덕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신에게는 숨겨져 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그는 자기 아내가 얼굴을 거리의 위쪽으로 향하고 앞쪽 창문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멀리서 잠깐 바라본다. 이 교활한 멍청이는 일천의 미분자 같은 인간들 속에서도 아내가 자기를 간파했으리라는 생각에 겁을 먹고 부리나케 달아난다. 그는 하숙집의 석탄 난롯가에 앉아서야, 머리는 다서 어지러운 듯했지만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
그 기발한 기나긴 변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첫 번째 착상 이후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그 인간의 나태한 기질을 자극시켜 놓기만 하면 모든 일은 자연스런 궤도를 타고 진척되어 가기 마련이다. 깊이 생각한 끝에 그가 붉은 머리칼의 새로운 가발을 사고, 유태인의 낡은 가방에 든 자기가 습관적으로 입던 갈색 옷과는 다른 형태의 여러 가지 옷들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추측해 볼 수 있으리라. 목적은 달성된다. 웨이크피일드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체계가 이제 확립되었으므로 과거로 돌아가려는 후퇴의 몸짓은 처음에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설 때의 일보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게다가 그는 자기 기질상 때때로 심술이 나면 매우 완강해지곤 하는데 지금쯤 웨이크피일드 부인의 마음속에 생겨났을 언짢은 기분을 상상해보자 그 심술이 발동했다. 그는 자기 아내가 놀라서 반쯤 죽을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두세 번 그의 눈앞을 스쳐 갔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뺨은 더욱 창백해지고, 이마는 더욱 근심에 잠겨 갔다. 그가 모습을 감춘 지 삼 주일이 되는 때에 약재사 같아 보이는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는 나쁜 징조를 탐지해낸다. 다음날은 현관 문짝에 달린 네커(문 두드리는 고리쇠)가 소리가 약하게 나도록 감싸여져 있었다. 해 질 무렵 의사의 마차가 오더니, 큰 가발을 쓴 근엄한 풍채가 웨이크피일드 집의 문 앞에 내렸는데, 그로부터 십오 분쯤 지나자 그가 마치 장례식의 전령자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그녀는 죽을 것인가? 이때 웨이크피일드는 무언가 솟구치는 힘찬 느낌으로 흥분되어 있었지만, 이런 위기에 그녀의 마음에 충격을 입혀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자기 양심을 변호하면서 아내의 침대 곁에서 멀리 떨어져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만일 무언가 다른 것이 그를 제지한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몇 주일이 지나는 동안 그녀는 차차 회복된다. 위기는 넘긴 것이다. 그녀의 가슴은 슬프지만 아마도 평온하리라. 남편이 조만간 돌아온다 하더라도 다시는 그 때문에 제정신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웨이크피일드의 마음을 뚫고 희미하게 반짝여서 지금 세든 아파트와 자기의 옛집 사이를 어떤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떼어 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단지 옆 거리일 뿐인데!' 하고 그는 때때로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다른 세계에 있느니라. 지금까지 그는 자기의 귀가를 어떤 특정한 날로부터 다른 날로 자꾸 연기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후부터는 이제 어떤 날을 정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내일은 아니고 아마 다음 주, 아니 아주 곧, 가엾은 사람이여! 죽은 자가 땅 위에 있는 자기들의 옛집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추방한 웨이크피일드 역시 마찬가지다.
열두 페이지 정도 되는 기사가 아니라 나는 이 이야기를 이절판의 큰 책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어떤 힘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 위에 어떻게 그 강한 손을 움직여 나가며, 그리하여 어떤 강철 같은 필연성의 조직 속으로 그 결과들을 짜 넣을 것인지를 예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웨이크피일드는 마술에 걸려 버렸다. 우리는 그가 이십여 년 동안이나 자기 가족들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집 근처를 유령처럼 헤매다니고 아내의 가슴속에서 서서히 자신이 사라지고 있는 동안 자기 가슴속의 온갖 열정을 다하여 아내에게 충실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오래전에 그는 자기의 행동이 괴상하다는 감각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은 특기해 둘 만하다.
여기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런던 거리의 군중 가운데서 우리는 점차 늙어 가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는 관찰력이 부족한 사람의 눈을 끌 만한 특징은 없지만, 그러나 예리한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그의 전체적인 풍모에서 무언가 독특한 운명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야위었고, 야트막하고 좁은 이마에는 깊게 주름살이 잡혀 있다. 작고 광채가 없는 그의 눈동자는 때때로 자기 주변을 근심스럽게 두리번거리지만, 그보다는 더욱 자주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세상에다 자기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 놓기를 꺼리는 것처럼 구부정한 모습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지금 묘사한 특징들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그를 관찰해보면 환경이 -그것은 때때로 대자연의 평범한 수공품을 가지고 놀라운 인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사람에게도 작용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길 쪽으로 가만가만 들어서는 그를 내버려 두고 우리의 시선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뚱뚱한 부인이 손에 성경을 들고 건너편의 교회로 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녀는 과부 생활에 안정된 평온한 안색을 하고 있다. 그녀의 비통한 마음은 사라져 버렸거나 또는 그녀의 가슴속에서 너무도 필요한 것이 되어 어떤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돼 버렸다. 그 마른 남자와 풍채 좋은 여자가 서로 지나가려고 할 때, 작은 사고가 생겨서,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 그들이 손이 서로 닿고, 군중의 물결은 그녀의 가슴이 그의 어깨에 닿도록 밀어붙인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서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이십 년 동안이나 헤어져 살다가 웨이크피일드는 그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물결은 두 사람을 다시금 떼어 놓고 굽이치며 나아간다. 얌전한 과부는 다시 교회를 향해 걸어가다가 현관에서 걸음을 멈추고 거리 쪽으로 혼란한 시선을 던진다. 그러다가, 그녀는 기도서를 펼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 남자는! 바쁘고 이기적인 런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정도로 난폭한 얼굴을 하고 급히 하숙집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몇 년 동안이나 숨어 있던 감정들이 폭발한 것이다. 그의 유약한 마음은 그 감정들의 힘에서 활력을 얻는다. 자기 삶에 일어났던 비참하도록 이상한 일들
이 한눈에 보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웨이크피일드! 웨이크피일드! 넌 미쳤어!"
아마 그는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독특한 상황이 그를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갔을 것이므로, 그의 동료들과 세상사에 비추어 본다면 그가 올바른 정신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대열에는 끼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단정시키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포기해 버렸던 -추방시킨- 것이었거나 또는 우연히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은둔자의 생활도 그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는 옛날과 다름없이 번잡스런 도시 속에 살고 있었지만, 군중들은 그를 지나쳐가면서도 그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그는 언제나 자기 아내와 자기의 난롯가에 있었지만, 난롯불의 따스함이나 아내의 애정을 결코 느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직도 인간적인 관심사에 얽매어있고 인간적인 동정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 웨이크피일드의 신기한 운명이었다. 그러한 환경이 그의 가슴과 지성에 끼친 영향을 분리시켜서든지 혹은 종합적으로든지 조사해 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전혀 딴사람이 되어 버렸는데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전과 다름없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진리의 섬광들이 비쳐들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순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중얼거리고 있다. '나는 곧 돌아갈 거야!' 그는 이십 년 동안이나 자신이 그 말을 중얼거려 왔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한다.
돌이켜보자면, 이 이십 년이라는 시간은 처음에 웨이크피일드가 집을 떠나 보기로 작정했던 1주일보다 더 긴 것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상상해 본다. 그는 이 사건을 자기 인생의 주된 사업 가운데 있는 한 막간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은 것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그가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야 될 시기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와서 그가 돌아가면, 그의 아내는 중년이 된 웨이크피일드를 보고 기쁨으로 손뼉을 치리라. 불쌍하여라, 이 무슨 착각인가. 만일 시간이 우리가 좋아하는 장난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우리는 모두 다 최후의 심판 날까지 젊을 것이다.
그가 사라진 지 이십 년째가 되는 날 저녁, 웨이크피일드는 아직도 자기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주택을 향해 습관적인 산보를 하고 있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어느 가을밤이었다. 가끔씩 소나기가 길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지다가 사람들이 우산을 펴기도 전에 그쳐 버렸다. 집 근처에 멈춰 서서, 웨이크피일드는 이층의 응접실 창문을 통해서 기분 좋게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웨이크피일드 부인의 괴상한 그림자가 비쳐 있었다. 모자와 코와 턱과 굵직한 허리가 훌륭한 풍자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불꽃이 위로 펄럭였다가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하는 것에 따라, 그 그림자는 중년 과부의 그림자로서는 너무 명랑할 정도로 춤을 추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소나기가 무모한 회오리바람에 실려 내리면서 웨이크피일드의 얼굴과 가슴팍에 함빡 들이치게 되었다. 가을의 으스스한 한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자기 집 난로에는 그를 따스하게 덥혀 줄 더운 불이 피어오르고 있고, 그의 아내는 자기들의 침실 벽장 속에 소중하게 간직해 둔 회색 코트와 속옷들을 가지러 달려갈 것인데, 그는 흠씬 젖어서 추위에 떨며 여기 서 있을 것인가? 아니다! 웨이크피일드는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다. 그는 계단을 올라갔다. 무겁게. 그가 이 계단을 내려온 이후의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그의 다리를 뻣뻣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도 못했다. 멈춰라, 웨이크피일드여! 지금 자네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정으로 가려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덤 속으로 들어가게! 문이 열린다. 그가 안으로 들어설 때 이제 우리가 작별해야 할 그의 표정을 잠깐 엿보도록 하자. 그는 아내를 희생시키면서 쭉 속여왔던 그 작은 장난의 전초병이었던 그 교활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는 그 가련한 여인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희롱했던가! 자, 웨이크피일드여, 이 밤을 잘 쉬게나!
이 다행스런 사건은 -만약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떤 우연한 순간에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턱을 넘어서 그 친구를 따라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그것의 지혜를 빌어 하나의 교훈을 삼을 수도 있겠고, 하나의 표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세상의 외면적인 혼잡 가운데서도 개인들은 저마다 하나의 조직 속에 능숙하게 조정되고 있으며, 또한 조직들은 서로서로 조정되고 동시에 전체에 조정되고 있으므로, 한순간이라도 옆으로 비켜서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 자리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무시무시한 모험에 스스로를 맡기게 된다는 것이다. 웨이크피일드처럼. 말하자면, 우주의 추방자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