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적인 나그네
Nathaniel Hawthorne
3월의 어느 날 밤, 한 가족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산속의 시냇물에 흘러 내려온 나뭇조각이나 마른 솔방울, 절벽 위에서 떨어진 큰 나무의 부서진 가지 같은 것을 난로에 던져 넣어 불길을 높이고 있었다. 불길이 굴뚝까지 높이 뻗쳐 그 커다란 불꽃이 방안 구석구석 밝혀 주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엔 아늑한 기쁨이 깃들어 있었고, 아이들은 명랑하게 웃고 있었는데, 열일곱 살 먹은 큰딸은 바로 행복의 이미지 그 자체인 듯하였고, 방 안의 가장 따뜻한 자리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할머니는 늙은 행복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들은 뉴잉글랜드 지방 중에서도 가장 황폐한 이곳에서 '약초'와 '마음의 안식'을 찾았던 것이다. 이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화이트힐즈의 산골짜기였다. 이곳은 1년 내내 바람이 사납게 불고, 겨울에는 무자비하게 추웠으며, 바람은 사코의 골짜기로 내려가기 전에 그 기운찬 험악함을 온통 이 오두막에다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춥고 위험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산이 바로 그들의 머리 위에 솟구쳐 있어서 돌멩이들이 집 가까이 굴러떨어져 한밤중에도 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딸의 순진한 농담에 온 가족이 즐겁게 웃고 있을 때, 산골짜기를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그들의 오두막 앞에 와서 멈춰 서는 듯했다. 그러나 바람은 문을 두드리며 비통한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다시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 바람 소리에는 평상시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한순간 가족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가족들은 너무나 황량한 질풍소리 때문에 발자국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어떤 나그네가 와서 자기 집의 빗장을 쳐드는 것을 느끼고선 다시 기쁨에 잠겼다. 그가 들어올 때 바람은 소리내어 울부짖다가 신음하면서 물러갔다.
그들은 황량한 산중의 고독 속에서 살고 있긴 했지만 매일매일 세상과 대화를 나누면서 살았다. 그 골짜기를 따라 뻗어 있는 낭만적인 길은 한쪽으로 메인과, 다른 한쪽으로는 그린 산악지대와 세인트로렌스 강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간선도로로써 생명에 필요한 피와도 같은 국내 상품의 통상이 끊이지 않고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그리하여 역마차들이 항상 이 오두막의 문간에 머물다 가곤 하였다. 지팡이 외에는 길동무 하나 없는 나그네들은 흔히 여기서 멈춰 몇 마디 말을 나누다 가곤 했는데, 산의 좁은 협곡을 지나거나 골짜기의 다음 집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고독감에 완전히 짓뭉개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포틀랜드 장터로 가는 가축 장수들도 흔히 여기서 밤을 지내다 가곤 했다. 그리고 그가 만일 총각일 경우엔 취침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더 앉아 있곤 하였으며, 헤어질 무렵 이 산골 처녀에게서 입맞춤을 훔쳐내기도 하였다. 이 집은 나그네들이 음식 값과 숙박료만 내고도 요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정적인 친절함을 맛볼 수 있는 구식 여인숙이었다. 그래서 바깥 문과 안쪽 문 사이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리면 할머니와 아이들, 그리고 온 가족들이 모두 일어나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는데, 그것은 마치 운명이 서로 뒤얽힌 혈족이라도 맞이하는 듯했다.
젊은 청년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처음엔 비바람이 몰아치는 야성적인 길을, 밤에 홀로 여행하는 나그네의 우울한, 아니 자포자기의 표정 같은 것이 떠돌았으나 친절하고 따뜻한 대접을 받게 되자 곧 밝아졌다. 그가 앉을 의자를 앞치마로 닦아 주는 할머니와 두 팔을 내밀며 달려드는 어린아이들까지, 그들 모두에게 그 나그네는 뭉클한 정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번 쳐다보고 미소짓기만 하여도 나그네는 그 집 맏딸에게 순결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아, 이 불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군요!"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특히 이토록 유쾌한 분들이 둘러앉아 계시니 기가 막히게 좋군요. 골짜기가 마치 한 쌍의 커다란 바람통의 파이프 같으니, 저는 아주 기진맥진했어요. 바틀레트에서 이곳까지 오는 도중 사나운 바람이 끔찍하게도 제 얼굴을 내내 후려치더군요."
"그럼 당신은 버몬트로 가는 길이군요?" 하고 이 집의 주인이 젊은이의 어깨에서 가벼운 배낭을 내려 주면서 말했다.
"네, 버링톤까지 갑니다. 아니 그보다 더 멀리 간답니다." 그가 대답했다. "저는 오늘 밤에 에단크로포트까지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길이 이 모양이니 아무리 길을 잘 걷는 사람이라 해도 늦어질 수밖에 없겠어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불과 여러분들의 친절한 얼굴을 보니 마치 온 가족이 저를 맞이하기 위해 불을 피워 놓고 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제 여러분들 사이에 앉아 집에 온 것처럼 쉬어야겠습니다."
솔직한 성품을 지닌 이 나그네가 자기 의자를 끌고 불 가까이 갔을 때 밖에서 육중한 발자국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그 발자국소리는 길고도 재빠른 걸음걸이로 이 오두막집을 훌쩍 뛰어넘어 건너편 절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이 소리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숨을 죽였고 그들의 손님은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저 늙은 산이 우리에게 자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돌을 던지는 거랍니다." 하고 주인이 말했다. "산은 때때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아래로 내려오겠다고 협박을 한답니다. 그러나 우린 오랜 이웃간이니까 서로의 마음속을 훤히 알고 있지요. 게다가 우리는 산이 정말로 무너져 내리더라도 바로 옆에 몸을 숨길 피난처를 마련해 두었으니까요."
그 나그네가 저녁 식사로 곰고기 요리를 들고 나서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온 가족과 한데 어울려 마치 그가 이 산 식구와 한 가족이나 되는 듯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자, 그는 자만심이 강했으나 온화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유하고 거만한 사람들 속에서는 건방지고 오만한 게 말이 없었으나, 이토록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오두막 같은 곳에서는 자기의 머리를 숙였고, 가난한 사람의 난롯가에서는 마치 형제나 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 산골짜기의 가족들에게서 그는 감정의 따스함과 소박함, 그리고 뉴잉글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지성과 자연히 샘 솟는 시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런 것은 이 가족이 산봉우리와 바위틈, 그리고 그들의 낭만적이고도 위험스런 거처의 바로 그 문간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는 홀로 먼 길을 여행해 왔다. 어쩌면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고독한 여정이었다. 그는 성미가 고고하고 까다로워서 그 성미만 아니라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이 가족들 역시 친절하고 호의적이긴 하지만 자기들만의 유대 의식을 갖고있으며, 세상 사람들과는 되도록 떨어져서 낯선 사람이 자기들을 침범할 수 없는 그런 성스러운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하긴 어떤 가정도 대부분 그런 폐쇄적인 유대감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늘 밤엔 어떤 예언적인 감응력이 젊은이로 하여금 이 단순한 산사람들에게 자기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이고, 이 가족들 또한 자유로운 신뢰감을 가지고 그 청년에게 화답하도록 시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태생이 같다는 것보다도 같은 운명을 지녔다는 것이 훨씬 더 가까운 친족간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는 남모르는 높고도 추상적인 야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긴 했지만 죽어서는 이름을 남길 사람이었다. 타오르는 욕망은 희망이 되었고, 가슴에 오래 품어 온 그 희망은 이제 거의 확신이 되었다. 그는 지금은 비록 어두운 길을 방황하고 있지만, 언젠가 하나의 영광이 나타나 자기가 더듬어 온 모든 길에 빛을 비추어 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현재에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후손들이 과거의 어둠 속을 뒤돌아보면서 빛나는 그의 발자국의 자취를 더듬을 것이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한 천재가 평생토록 인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히 살다 갔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하고 나그네가 말했다. 그의 뺨은 붉게 타오르고 눈동자는 열정으로 불꽃이 이글거렸다.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만일 제가 내일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당신들 만큼이라도 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름 없는 청년 하나가 황혼 녘에 사코의 골짜기에 올라와, 저녁엔 당신들과 가슴을 열어 이야기하고, 그리고 다음 날 해가 뜨자 골짜기를 건너갔는데,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보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지요. 어떤 사람도 '그는 누구였는가?' 아니면 '그 방랑자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묻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저의 운명을 달성할 때까지는 죽을 수가 없답니다. 제 운명이 완성되는 그때에 비로소 죽음을 오게 할 것입니다. 저는 저의 기념비를 세울 거예요!"
이 추상적인 환상에는 자연스레 분출되는 그의 신념과 열정이 계속적으로 흐르고 있어, 가족들은 비록 자기네들의 세계에는 상당히 낯선 것이지만, 그 청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내밀한 생각을 누설한 것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굴을 붉혔다.
"당신은 날 비웃겠지요?" 하고 그는 맏딸의 손을 잡고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말했다. "당신은 나의 야심이 오직 주위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기 위해 워싱턴 산 위에서 스스로 얼어 죽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그러나, 이건 진실로 한 남자의 동상을 위한 주춧대 같은 것입니다!"
"여기 불 옆에 앉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그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무도 우리에 대해 생각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살아야지요."
"내가 보기에도." 하고 잠시 생각한 끝에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이 청년이 말한 것에는 뭔가 진실에 가까운 것이 있어. 만일 나도 그런 것에 마음을 쏟았다고 했다면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야. 참 이상하군, 여보, 저 청년의 말을 들어 보니 내가 결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들로 머리가 소용돌이치는구려."
"남자들이란 늘 그렇죠." 그의 아내가 한마디 했다. "홀아비가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생각하는 게 남자 아니에요?"
"아냐, 아냐!" 상냥하게 나무라는 듯이 그가 외쳤다. "당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에스터, 난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생각한다오. 그러나 난 언제나 우리가 바틀레트나 베들레헴이나 리틀톤이나 아니면 화이트마운틴 근처의 어떤 곳에다 좋은 농장을 하나 갖기를 바랐었지. 산이 우리 머리 위로 곧 덮쳐 오려는 이런 곳이 아니고 말이야. 이웃 사람들과 당당히 겨루면서 나리님이라는 칭호도 듣고, 또한 국회에도 한두 임기 정도는 나가보고 싶었지. 국회에서는 정직하고 소박한 사람이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일을 할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오래 살아 노인이 되고, 당신도 노파가 되면, 그리하여 기력이 떨어져 살 수가 없게 되면, 나는 침대에 누워 행복하게 죽어 갈 거요. 나를 둘러싸고 울고 있는 식구들을 남기고 말이오. 대리석 비석과 같이 석판암으로 만든 비석도 나에겐 어울릴 거요. 단지 내 이름과 나이와 찬송가의 한 구절, 그리고 내가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과 기독교인으로서 죽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면 족해."
"그것 보세요!" 하고 그 나그네가 외쳤다. "석판암으로 만든 것이든 대리석으로든 또는 화강암 기둥이든 간에 인류의 가슴에 빛나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인 겁니다."
"오늘 밤은 우리 모두 이상한 것 같군요." 하고 눈에 가득 눈물을 담고 부인이 말했다. "사람들의 정신이 이렇게 오락가락할 때는 뭔가를 나타내는 징조라고들 하더군요. 근데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을 좀 들어 보세요!: 그들은 모두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아이들은 다른 방에서 이미 침대에 들어 있었으나 그 사잇문이 열려져 있어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얘깃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난롯가에 앉아 있는 어른들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서로서로 광적인 희망을 겨루면서 장차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어린애다운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가장 어린 아들 차례가 되었을 때 누나나 형들에게 말하지 않고 어머니를 소리쳐 불렀다.
"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엄마." 꼬마가 외쳤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우리 식구 모두, 그리고 여기 손님 아저씨랑, 지금 곧 플륨 강으로 가서 그 물을 마시고 싶어요!"
따뜻한 침대를 떠나 이 화기애애한 난롯가를 버리고 플륨 강으로 가자는 꼬마의 희망에 모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플륨 강이란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개울이었다. 이때 길을 덜거덕거리며 오다가 이 오두막 앞에 잠깐 멈추어 섰다. 마차 속에는 두세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왁자지껄 소란스런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 합창 소리는, 음정이 엉망인 채로, 절벽 사이로 메아리쳤다. 그들은 여행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이곳에서 오늘 밤을 묵어야 될지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아버지." 하고 소녀가 불렀다. "저 사람들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 마음 좋은 주인은 그들이 정말 자기를 불렀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 밖으로 나가 손님을 이끌어 오려고 노심초사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그는 서둘러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잠시 후 채찍 휘두르는 소리가 나고 여행자들은 곧 골짜기로 떠났다. 그들은 여전히 웃으며 노래를 불렀고, 그들의 노랫소리와 떠들썩한 고함 소리가 산의 심장부에서부터 황량하게 되돌아왔다.
"봐, 엄마!" 꼬마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들이 우릴 플륨 강까지 태워다 줄지도 모르잖아!"
한밤중의 산책에 대한 꼬마의 집요한 희망에 모두들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큰딸의 마음엔 가벼운 구름이 스쳐 갔다. 그녀는 우울하게 난로 속의 불꽃을 들여다보면서 한숨 같은 숨소리를 냈다. 그것을 억누르려고 애썼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토하고야 만 것이다.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가슴속을 들여다보기나 한 것처럼 놀라 얼굴을 붉히면서 난롯가의 사람들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나그네가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우울하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저 쓸쓸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오, 난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은총을 받았답니다." 그가 다소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의 비밀을 내가 말해 볼까요? 젊은 처녀가 따뜻한 불 곁에 앉아 몸을 떨고, 어머니 옆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에 대해 불평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알기 때문이죠. 그것을 말로 표현해 볼까요?"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처녀의 감정이 아닐 거예요." 웃으면서, 그러나 그 젊은이의 눈을 피하면서 이 산의 요정은 대답했다.
이런 얘기들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은밀히 주고받은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의 가슴속에는 어느새 사랑의 싹이 움터 오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너무나 순결하여 이 땅 위에선 자라날 수 없고 천국에서만 꽃피워질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이 청년 같은 온화한 권위를 가진 남성을 숭배할 것이며, 또한 오만하고 명상적이며 그러나 친절한 이 청년의 영혼은 이 처녀와 같은 순박성에 사로잡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처녀의 성품 속에 깃든 행복과 슬픔과 우미한 그늘과 수줍은 그리움을 발견하였다. 그때 골짜기를 뚫고 온 바람이 더욱 음산하고 황량한 소리를 냈다. 그 바람소리는, 이 환상적인 나그네가 이야기하는 동안 마치 옛날 인디언 시대에 이 산속에 살면서 그들의 산과 골짜기를 성스러운 지역으로 수호하려고 했던 폭풍의 정령들의 합창처럼 들려 왔다. 길 위에서는, 마치 장례식의 행렬이라도 지나가는 듯이 구슬픈 소리가 들려 왔다. 마른 잎사귀들이 바삭거리며 불꽃이 크게 일어나자 가족들은 다시 평화와 소박한 행복의 광경을 눈앞에 보았다. 불빛이 그들 주위를 아늑하게 감싸 주었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애무해 주었다. 저쪽에는 자기들의 침대에서 어른들을 엿보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작은 얼굴이 있었고, 그리고 이곳 난롯가에는 힘차고 믿음직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소곳하면서 조심스러운 모습과 도도하고 오만한 청년, 꽃봉오리 같은 처녀, 그리고 난롯가 가장 가까이에 앉아 아직도 뜨개질을 하고 있는 늙은 할머니가 있었다. 그 늙은 여인이 일감으로부터 눈을 들고, 그러나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면서 말했다.
"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늙은이들에게도 생각이 있지. 너희들이 희망을 갖고 계획을 세우느라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동안 내 마음도 역시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는구나.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두 발자국이나 움직일까 말까 한 늙은 여인이 원하는 것은 뭘까? 얘들아, 내가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나를 밤이건 낮이건 따라다니며 괴롭힐 거야."
"그게 뭔데요, 어머니?" 부부가 동시에 물었다.
할머니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띠며 말하려고 하자 가족들은 불 가까이 바싹 모여들었다. 그녀는 자기가 벌써 몇 년 전에 자신의 수의를 - 좋은 아마 천 수의와 모슬린 주름 칼라가 달린 모자, 그리고 결혼식 이후로 자기가 입었던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고급품인 여러 가지를 마련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이상하게도 어떤 옛날 미신 하나가 할머니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는, 만일 시체가 뭔가 잘못된 점이 있으면, 가령 주름 칼라가 매끄럽지 못하다거나 혹은 모자가 똑바로 씌워져 있지 않거나 하면, 흙덩이 밑에 관 속의 시체가 그 차가운 손가락을 들어 그것을 고쳐 입으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생각이 할머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말 마세요, 할머니!" 처녀가 몸을 떨면서 말했다.
"그래서," 라고 할머니는 이상한 열성을 가지고 미소를 띠면서 말을 이었다. "부탁이다, 애들아, 네 어미가 수의를 입고 관속에 들어갈 때 얼굴 위에다 거울을 하나 매달아다오. 내가 그걸 바라보면서 모든 것이 올바른지 어쩐지 살펴보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
"늙거나 젊거나 우리 인간들은 모두 무덤과 기념비에 대해 생각하지요." 하고 그 이상한 젊은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배가 침몰되어 갈 때,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고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 보지도 못한 선원들이 그 커다랗고 이름도 없는 바다의 무덤 속으로 다 함께 묻혀 버릴 때, 무엇을 느끼는지 전 항상 궁금해요."
잠시 동안, 모두들 그 늙은 여인의 무시무시한 환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 질풍의 함성과도 같이 바깥에서 솟구쳐 오르는 소리를 그들은 듣지 못했다. 그 소리는 저주받은 운명에 갇힌 그들이 의식하기도 전에 드넓고 세찬 무시무시한 소리로 변하였다. 집이 흔들리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끔찍한 소리가 마치 최후의 심판 날의 나팔소리나 되는 것처럼 땅의 지축이 흔들렸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모두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넋이 빠져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못하고 움직일 힘도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똑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산사태다! 산사태야!"
지극히 단순명료한 그 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파멸에 대한 공포를 묘사한다기보다는 바로 그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조난자들은 재빨리 오두막에서 뛰어나와 더 안전한 곳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던 피신처로 달려갔다. 그들은 이런 긴급 사태를 생각하고 울타리 같은 것을 쳐 두었던 것이다. 아!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안전을 버리고 바로 파멸 한복판으로 도망쳐 간 것이었다. 산의 옆구리 전체가 파멸의 폭포수를 이루고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산사태의 홍수가 오두막에 이르기 바로 직전에 그 산사태의 흐름은 두 줄기로 나뉘어 - 그 집에 있는 것은 창문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나 집 부근에 있던 것들은 완전히 휩쓸어 버렸고, 도로는 차단되고, 또한 그 무시무시한 궤도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완전히 짓뭉개 버리고 말았다. 그 산사태의 벼락 치는 소리는 산골짜기로 으르렁거리며 퍼져 나갔는데 그 소리가 채 그치기도 전에 죽음의 고통은 끝났고, 그 조난자들은 평화의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의 시체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산기슭에 있는 오두막집의 굴뚝에서는 가벼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집 안에, 난롯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의자들도 여전히 난롯가에 둥그렇게 모여 있어, 마치 집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산사태의 참상을 알아보려고 잠깐 나갔다가 곧 돌아올 것이며, 기적적인 구출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징표를 남겼으니, 이 가족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들의 이름을 듣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이야기는 멀리 드넓게 퍼져, 영원히 이 산골짜기의 전설이 될 것이다. 시인들은 그들의 운명을 노래해 왔다.
그 무시무시한 밤에 한 이방인이 그 오두막에 찾아들어 그 가족들과 함께 파국을 같이 한 것으로 짐작되는 몇 가지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런 추측을 확산시킬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부정하였다. 땅 위의 불멸을 꿈꾸던, 고귀한 영혼을 지녔던 그 젊은이를 애도하라! 그의 이름과 신원은 결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죽음과 그의 삶은 똑같이 하나의 의혹이 되었다! 그 죽음의 순간의 고통은,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고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