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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뚫고 다니는 사나이

벽을 뚫고 다니는 사나이

Maecel Amy

 

몽마르뜨 도르상 거리 75번지 2호에 뒤띠엘이란 이름의 사내가 살고 있었다. 등기부의 삼등 공무원인 그는 늘 코안경을 끼고 조그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에겐 벽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아주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마흔세 살에 접어들었을 때 뒤띠엘은 우연한 기회에 자기에게 그러한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갑자기 불이 나갔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잠시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불이 다시 들어왔을 때 그는 아파트 방 밖 4층에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뒤띠엘은 어찌된 영문인가 한동안 생각했다. 방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으므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생각하면서도 그는 벽을 통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의 몸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쉽게 벽을 뚫고 지나갔다.

전혀 바라지도 않았던 이 괴상한 능력은 그때까지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뒤띠엘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이튿날 뒤띠엘은 동네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뒤띠엘에게 힘든 육체노동을 할 것과 쌀가루와 반인반마(반은 인간, 반은 말)의 호르몬을 섞어 만든 알약을 지어 주면서 1년에 두 개 꼴로 먹으라고 지시했다.

첫 번 째 알약을 복용한 뒤 뒤띠엘은 나머지 알약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는 곧 잊어버렸다. 그의 공무원 생활은 힘든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멀어 그의 괴상한 능력은 1년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만일 그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을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들 뒤띠엘은 자기의 괴상한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유혹을 받지 않고 평범히 늙어 갔으리라.

사건이란 그가 근무하는 등기부의 과장이 레뀌에라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첫 날부터 새 과장은 뒤띠엘의 코안경과 검은 턱수염을 매우 아니꼽게 보고는 그를 아주 지저분한 고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골치 아픈 일은 새 과장이 사무실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작정한 때문이었다.

그는 아침이면 그 일로 걱정을 하면서 직장에 나갔고 밤이면 이불 속에서 새 과장의 개혁에 대해 꼬박 15분 동안씩 고민을 하였다.

하루는 새 과장이 자기의 개혁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뒤띠엘을 어두컴컴한 골방으로 쫓아 내었다. 그 방문에는 '시원하게 처리함'이라고 써 있었다.

뒤띠엘은 그러한 모욕을 말없이 받아들였지만 집에서 신문을 볼 때마다 레뀌에 과장이 피비린내 나는 사건의 희생자였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또 하루는 과장이 뒤띠엘이 쓴 편지를 휘두르면서 방으로 뛰어들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걸레 같은 걸 서류라고! 다시 써 와! 우리 과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이 말할 수 없는 걸레 같은 것을 다시 쓰란 말이야!"

뒤띠엘은 말대꾸 해보려고 했으나 과장은 우뢰 같은 목소리로 그를 낡은 진드기로 취급하고는 편지를 구겨서 그의 얼굴에 내던졌다. 뒤띠엘은 참을 수밖에 없었으나 속으로는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자기 방에 혼자 남은 뒤띠엘은 열이 오르면서 별안간 새 과장을 골려 줄 방법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옳지'하고 그는 자기의 방과 과장의 방을 가로막은 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만 과장의 방 벽에 솟아나도록 조심했다.

과장은 책상에 앉아 일에 몰두하다가 갑자기 자기 사무실에서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들자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함께, 사냥에서 잡은 짐승의 박제 모양으로 벽에 붙어 있는 뒤띠엘의 머리를 발견했다.

그뿐이랴! 그 머리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가는 쇠사슬이 달린 코안경 너머로 뒤띠엘의 머리는 그에게 증오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말도 하는 것이 아닌가!

"여보 레띠욀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야비한 망나니요."

무서움에 입을 딱 벌린 과장은 이 유령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복도로 뛰어나가 뒤띠엘의 골방까지 달려갔다.

뒤띠엘은 벽을 통해 자기 방으로 되돌아와 조용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일하는 체하였다. 과장은 한참 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몇 마디 중얼거린 다음 제 방으로 돌아갔다. 겨우 자리에 앉자마자 뒤띠엘의 머리가 또다시 벽에 나타났다.

이 봐요. 당신은 깡패요, 불한당에다 정말 야비한 망나니란 말이오."

이 하루 낮 동안에만도 그 무서운 머리는 벽 위에 스물세 번이나 나타났다. 재미를 붙인 뒤띠엘은 과장에게 욕을 퍼붓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은근히 협박을 지껄였고, 무덤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에 악마와 같은 웃음을 섞어서 소리쳤다.

"가루가루! 늑대귀신 늑대귀신! 늑대의 털! 끼르르 낄! 올빼미 뿔! 끼르르 낄!"

불쌍한 과장은 날이 갈수록 얼굴이 창백해졌다. 머리카락은 곤두섰으며 식은땀을 주르르 흘렸다. 첫 날만 0.5Kg의 몸무게가 빠졌다. 다음 주에는 포크로 수프를 먹고 순경을 보고는 거수경례까지 하는 버릇이 생기기까지 했다. 2주째 초에는 결국 구급차가 그를 정신병원으로 실어갔다.

레뀌예 과장의 손에서 벗어난 뒤띠엘은 단순히 벽을 드나드는 것만으로 만족 못 하고 새로운 모험에의 욕망이 일어났다.

뒤띠엘이 손을 댄 첫 번째 강도 사건은 파리시의 세느강 오른쪽에 있는 큰 은행에서 일어났다. 여러 개의 벽과 담을 통해서 그는 금고 속을 뚫고 들어가 주머니에 돈을 가득 채워 넣었다. 그는 나오기 전에 가루가루'라고 빨간 분필로 표시를 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모든 신문마다 은행 강도 사건과 함께 가루가루'라고 쓴 글씨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일주일이 채 못 되어 가루가루'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올려졌다. 사람들은 그토록 귀신 같이 경찰을 우롱하는 이 천재 강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가루가루'는 밤마다 은행과 보석상을 휩쓸면서 그의 신출귀몰한 솜씨를 알렸다. 유명한 뷰르디갈라의 다이아몬드 사건과 파리 은행 강도 사건이 있은 뒤로 사람들의 열광은 광란 상태까지 이르렀다. 내무부 장관은 사임해야 했고 등기부 장관도 자리를 물러났다.

이제는 파리시의 최대의 부자가 된 뒤띠엘은 여전히 사무실에서는 착실히 일을 했다. 그는 아침마다 동료들이 자기가 전날 밤새운 공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남몰래 즐거워했다.

"그 가루가루 말이야! 참 멋있는 친구야. 천재에다 초능력까지 지녔단 말이야!"

뒤띠엘은 그 이상 비밀을 간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은행 강도 사건을 보도한 신문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고는 그는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들. 가루가루가 바로 나일세"

뒤띠엘의 뚱딴지같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동료들은 놀림감으로 그에게 가루가루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런 며칠 후 가루가루'는 평화 거리에 있는 한 보석상에서 순찰경관에게 붙잡혔다. 벽으로 들어가서 순찰경관을 피하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으나 뒤띠엘은 일부러 체포되기를 바랐다. 그것은 자신이 바로 가루가루라는 것을 동료들에게 확인시켜 줄 욕심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그 이튿날 신문에 가루가루인 뒤띠엘의 사진을 보았을 때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천재적인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음을 크게 후회하며 뒤띠엘처럼 조그만 턱수염을 길러 그에게 존경을 표시하였다.

체포된 뒤띠엘은 쌍떼 교도소에 갇혔다. 그는 운명이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서의 벽돌은 그에게 있어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멋진 도구일 뿐이었다. 그가 투옥된 바로 다음 날 교도관들은 뒤띠엘이 감방 벽에 못을 하나 박고, 거기에다 교도소장의 금시계를 걸어 놓은 것을 보고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교도소장의 금시계가 어떻게 감방까지 왔는지 교도관들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교도관들은 금시계를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지만, 이튿날 교도소장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삼총사의 제1권과 함께 다시 가루가루의 머리맡에서 발견되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쌍떼 교도소의 직원들은 기진맥진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교도관들은 어디에서 날아드는지 알 수 없는 발길질을 곳곳에서 받는다고 투덜대었다. 마치 벽에 발이 달린 것 같다고 말들을 했다.

가루가루가 감금된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교도소장은 자기 사무실 책상 위에 다음과 같은 편지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도소장 귀하. 소생은 삼총사 제 2권의 독서를 완료한 길이오며, 오늘 밤 1125분에서 1135분 사이에 탈옥할 예정이옵니다. 가루가루>

그날 밤 물샐틈없는 감시에도 불구하고 뒤띠엘은 1130분에 탈옥하였다. 이튿날 아침 시민들에게 알려진 가루가루의 탈출 소식은 도처에서 열광을 일으켰다.

탈옥한 뒤띠엘은 새로운 강도 사건을 벌여 놓고도 버젓이 몽마르뜨 거리를 걸어 다녔다. 사흘 뒤에 그는 한 카페에서 친구들과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다시 쌍떼 교도소로 압송되어 세 겹 자물쇠로 갇힌 가루가루는 그날 밤으로 탈주하여 교도소장의 아파트의 빈방에서 하룻밤을 잤다.

모욕을 당한 교도소장은 더욱 감시를 철저히 하고 빵 한 조각으로 식사를 시키는 형벌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다. ‘가루가루는 한낮 즈음 교도소 옆에 있는 식당에 가서 커피를 마신 다음 교도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소장님이세요.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감옥을 나오면서 소장님 지갑을 집어 온다는 것을 깜박 잊었어요. 식대를 지불 못해 꼼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보내서 계산을 치러 주시겠습니까?"

교도소장은 직접 달려갔고, 갖은 욕설을 내뱉으며 노발대발했다. 자존심을 상한 뒤띠엘은 그날 밤으로 탈출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도 조심을 하여 검은 턱수염을 깎고 코안경을 조가비테 안경으로 바꾸었다.

뒤띠엘은 점차 자기의 명성에 대해 싫증나기 시작했다. 쌍떼 교도소의 벽을 뚫고부터는 벽으로 드나드는 것에 신물이 났다. 가장 두꺼운 벽도 그에게는 한낱 병풍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집트의 피라밋 한복판이나 뚫고 들어가 보았으면 하고 꿈꾸기 시작했다. 멋진 모험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집트 여행계획을 짜면서 그는 우표수집과 영화 구경 그리고 몽마르뜨를 산보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어느 날 오후 뒤띠엘은 15분 간격으로 두 번 르삑 거리에서 한 금발 미녀를 만나 그 즉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우표수집과 영화구경 그리고 이집트 여행계획을 즉시로 잊어버렸다.

뒤띠엘은 금발 미녀에게 집으로 찾아가겠노라고 말했다. 금발 미녀는 집안이 엄격해서 찾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런 것쯤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그날 밤으로 여자의 집의 벽과 담을 뚫고 들어가 금발 미녀와 만났다.

며칠 후 뒤띠엘은 매우 심한 두통으로 고통을 받았다. 서랍 속에서 아스피린 모양의 알약을 발견하고는 아침에 한 알 오후에 한 알을 먹었다.

그날 밤 뒤띠엘은 금발 미녀와 장래를 약속하고는 헤어져 나오면서 그 여자의 집과 벽을 뚫고 들어갔다. 그는 허리와 어깨에 평소와는 다른 아주 익숙치 않은 마찰감을 느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히 마찰감은 담을 뚫고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아직도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끈적끈적해 가며, 애를 쓸 때마다 더욱 몸에 부딪혀 오는 물질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온몸이 벽의 한가운데에 완전히 들어간 후 뒤띠엘의 몸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공포에 떨면서 그는 갑자기 그날 먹은 두 알의 알약을 생각해 냈다. 아스피린이라고 생각했던 그 알약은 사실 작년에 의사가 처방해준 알약이었다. 약의 효과가 극심한 피로와 겹쳐서 갑자기 나타났던 것이다.

뒤띠엘은 벽의 내부에 엉겨 붙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는 지금도 그 벽 속에 돌 화석이 되어 있는 채로 있다.

파리시의 소음이 가라앉은 뒤 조용한 시각에 사람들은 무덤 저 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은은한 목소리를 듣는데 그 소리를 사람들은 몽마르트르 언덕 네거리에서 부는 바람의 하소연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그 영광스러운 생애의 마지막을 슬퍼하는 가루가루뒤띠엘의 울음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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