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이반의 이야기
Lev. N. Tolstoy
1
옛날옛날 그 옛날, 어느 나라의 어느 마을에 부유한 농부가 있었다. 이 부유한 농부에게는 세 아들, 즉 무관인 세묜, 배불뚝이 따라스, 바보 이반과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딸 말라니야가 있었다. 무관인 세묜은 임금님을 섬기러 전쟁에 나갔고, 배불뚝이 따라스는 문안의 장사치한테 장사 기술을 배우러 갔으며, 바보 이반은 누이와 함께 집에 남아 땀 흘려 일하고 있었다. 무관인 세묜은 높은 벼슬과 사전(私田)을 얻고 어느 귀족의 딸한테 장가들었다. 그런데 녹이 많은 데다 전답도 많았는 데도 매양 수지가 들어맞지 않았다. 남편이 긁어 들이기가 바쁘게 귀족 행세를 하는 여편네가 물 쓰듯 써버려 언제나 돈이 붙어 있을 날이 없었다. 그래서 무관인 세묜은 도조를 받으려고 농장으로 갔다. 그러나 마름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조는 드릴 수가 없습죠. 저희들에겐 가축이고 농구고 말이고 소고 쟁기고간에 하나도 없으니 말이에요. 먼저 이것들을 갖추어야 합죠. 그래야만 비로소 수익이라는 것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무관인 세묜은 아버지에게 갔다.
"아버지, 아버지는 부자이면서도 저에게는 아무것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땅을 삼분의 일만 나눠 주십쇼. 제 땅으로 이전하겠습니다."
"너는 뭐 집에다 보태준 것이 하나도 있냐. 뭣 때문에 너에게 땅을 삼분의 일이나 준단 말이냐? 그러는 날엔 이반과 네 누이가 못마땅해 할 것이다."
그러자 세묜은 말했다.
"그렇지만 그 애는 바보 아녜요. 그리고 누이란 애도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이고 말이에요. 그런 것들한테 뭐가 필요하겠어요."
이 말에 대해서 영감은
"이반이 뭐라고 말하나 어디 그 애한테 한번 물어보자“
고 말했다. 그런데 이반은
"뭘요, 드리죠"
하고 말했다. 무관인 세묜은 집에서 삼분의 일의 땅을 얻어 그 땅을 제 것으로 이전하고 나서 다시 임금님을 섬기러 떠났다.
배불뚝이 따라스도 돈을 많이 모아 장사치의 딸한테 장가 들었다. 그래도 그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찾아와
"제게도 제 몫을 나눠 주십쇼"
하고 말했지만, 영감은 따라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너는......"
하고 그는 말을 꺼냈다.
"너는 우리에게 보태준 게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집에 있는 것은 모두 이반이 번 것뿐이다. 나는 그 애하고 딸년을 섭섭하게 할 수는 없다."
"저런 녀석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저 녀석은 바보 아니에요. 저 녀석은 장가도 갈 수 없습니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습니다. 벙어리인 누이도 그렇죠, 역시 필요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죠. 그렇잖아, 이반. 나한테 곡식을 절반만 다오. 그리고 난 연장 따윈 갖지 않을 테니까 가축 중에서 저 잿빛 수말이나 한 마리 갖겠다. 저건 너에게 밭을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닐 테고."
이반은 웃음을 터뜨렸다.
"뭘요"
하더니
"가지세요. 난 또 가서 잡아 오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이렇게 해서 따라스도 제 몫을 탔다. 따라스는 곡식을 저자에 실어내고 수말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반은 예나 다름없이 늙어빠진 암말 한 마리로 농사를 지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봉양하게 됐다.
2
큰 도깨비에게는 이 형제들이 재산을 분배함에 있어, 말다툼을 하지 않고 의좋게 헤어진 것이 뇌꼴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작은 도깨비 셋을 큰소리로 불렀다.
"자, 봐."
그는 말했다.
"저 세상의 저기 세 형제가 살고 있지. 세묜이란 무관과 따라스란 배불뚝이, 그리고 이반이란 바보 녀석이 말이야. 나는 말이야, 저 녀석들에게 꼭 싸움을 붙여야겠는데, 아 저 녀석들이 의좋게 살고 있지 않겠나. 서로서로가 너 먹어라, 하고 지내고 있거든. 저 이반이란 바보 녀석이 아주 그냥 내 일을 깡그리 망가뜨려 놓았지 뭐야. 이제부터 너희 셋이서 모두 나가 저 녀석들에게 눌어붙어 서로 싸움을 하도록 의를 끊어 놓아라. 어때, 그것을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다마다요."
하고 그들은 말했다.
"너희들 어떻게 그 짓을 할 작정이냐?"
"그건 이렇게 할 작정이죠. 먼저 저 녀석들을 먹을 게 하나도 없도록 홀랑 발가벗긴 다음 세 녀석을 한곳에다 모으죠. 그러면 저 녀석들도 필시 서로 치고받고 하게 될 겁니다."
큰 도깨비가 말했다.
"너희는 제 할 일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가거라. 그리고 말이다, 저 세 녀석들의 사이를 떼놓기 전에는 나에게 돌아와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세 놈의 가죽을 몽땅 벗기고 말 테니까, 그리 알아라."
작은 도깨비들은 어느 늪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일에 착수할 것인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마다 조금이라도 더 수월한 일을 맡으려고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겨우 심지를 뽑아서 누가 누구를 맡을 것인지를 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일을 마친 자는 다른 자를 도우러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도깨비들은 제비를 뽑고 나서 언제 다시 이 늪에 모일 것인지 날짜를 정하고 그날 누구의 일이 끝나고 누구를 도우러 가야 할 것인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작은 도깨비들은 저마다 제 제비대로 행동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드디어 그 날이 닥치자 작은 도깨비들은 약속대로 늪에 모였다. 그리고 각기 자기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묜이란 무관한테서 돌아온 첫 번째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내 일은 말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잘 돼 나가고 있어. 내가 맡은 그 세묜은 내일 틀림없이 아버지한테 갈 거야."
그의 동료들이 묻기 시작했다.
"그래 너는"
하고 그들은 입을 모아,
"어떻게 했지?"
하고 물었다.
"나는 말이야."
그는 말했다.
"나는 우선 먼저 세묜에게 잔뜩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지. 그랬더니 그 녀석은 제 임금님에게 온 세계를 정복해 보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겠나. 그러자 임금님은 세묜을 대장으로 만들어서 말이야, 인디아 임금을 치러 보낸 거야. 모두들 치러 가려고 모였어. 그런데 나는 바로 그날 밤 세묜 군사들의 화약을 모조리 적셔 놓고는 또 인디아 임금에게로 가서 짚으로 군사들을 무수히 만들어 놓았지. 세묜의 군사는 자기네 쪽으로 사방팔방으로 지푸라기 군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잔뜩 오갈 든 거야. 세묜은 '쏘앗' 하고 명령을 내렸지만 대포고 총이고 간에 나가야 말이지. 세묜의 군사들은 사색이 다 되어 줄행랑을 놓을밖에. 마치 양떼처럼 말이야. 그러자 인디아의 임금은 그들을 쳐부쉈지. 세묜은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사전을 몽땅 몰수당한 데다 내일은 사형을 집행하려는 참이야. 나에게는 이제 꼭 하루 일감이 있을 따름이야. 말하자면 집으로 내빼도록 그 녀석을 옥에서 내놓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란 말이야. 내일이면 완전히 끝장이 나니까 너희 둘 중에 누가 내 도움이 필요한지 자, 말해 봐."
따라스에게서 돌아온 다른 작은 도깨비도 제 일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이야, 도움 따윈 필요 없어. 내 일도 잘 돼 나가고 있으니까. 따라스란 녀석도 이제 일주일 이상을 부지하지 못할 거야. 나는 말이야, 우선 먼저 그 녀석 배를 잔뜩 불려 욕심꾸러기가 되게 했지. 그랬더니 그 녀석은 남의 재산을 턱없이 탐내어, 보지도 못한 것까지 모두 사고 싶어졌지 뭐야. 돈을 있는 대로 탈탈 털어 무진장으로 사 버렸지. 그래도 모자라서 여전히 또 사고 있는 거야. 지금에 와선 빚까지 져 가면서 사들이고 있는 형편이야. 이제는 너무 긁어모으다 보니까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어. 일주일 뒤에는 이것저것 갚고 해야 할 기한이 닥치는데, 그 안에 나는 그 녀석의 물건들을 깡그리 거름으로 만들어 놓고 말 작정이지. 그러면 그 녀석은 필시 갚지 못하고 이내 제 애비한테 달려가게 될 거야."
그러고는 그들은 이반에게서 돌아온 셋째 도깨비에게
"네 일은 어떻게 됐지?"
하고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실은 그, 내 일은 어쩐지 잘 돼 나가질 않아. 우선 먼저 배탈을 나게 할 양으로 말이야, 그 녀석의 끄바스를 담는 병 속에다 침을 잔뜩 뱉어 놓고는 그 녀석 밭으로 가서 땅바닥을 돌처럼 굳혀 놓았지. 그 녀석이 꼼짝 못하게 말이야. 그리고는 이쯤 되면 녀석도 절대 갈진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딜, 아 그 바보 녀석은 말없이 쟁기를 가지고 와서는 갈아 젖히지 않겠나. 배가 아파 끙끙 앓으면서도 계속해서 갈아대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의 쟁기를 부숴 놓았지. 그랬더니 그 녀석은 집으로 돌아가 딴 보습으로 갈아 끼우고는 새 성에를 몇 갠가 대고 또다시 갈기 시작하지 뭐야. 그래서 나는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보습을 붙들어 보려고 했는데, 어딜, 도무지 붙잡아져야 말이지. 그 녀석이 쟁기를 누르는 데다 보습은 날카롭고 해서 내 손은 마구 베이고 말았어. 그래 그 녀석은 거의 다 갈아버리고 이제는 겨우 한 두둑밖에 남지 않았어. 그러니까 여보게들, 와서 좀 도와주게나. 우리가 그 녀석 하나를 때려잡지 못하는 날엔 우리들의 일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말 테니 말이야. 만약 그 바보가 남아 농사를 짓게 되면 그들은 별로 곤란을 받지 않게 될 거거든. 그 녀석이 두 형을 부양하게 될 테니 말이야."
무관인 세묜을 맡고 있는 작은 도깨비가 내일 도우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작은 도깨비들은 그것으로 일단 헤어졌다.
3
이반은 묵혀 두었던 밭을 다 갈고, 이제는 그 전 한 두둑만 남겨놓았을 뿐이었다. 그는 마저 다 갈아 버리려고 말을 타고 왔다.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었으나 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고삐의 줄을 톡 치며 쟁기를 돌려 갈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되짚어 오려고 하는데, 마치 나무뿌리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쩐 일인지 쟁기가 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도깨비가 두 발로 쟁깃술에 매달려 꽉 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이반은 생각했다. '아까만 해도 나무뿌리 같은 건 없었는데. 그래도 역시 나무뿌린지 모른다.' 이반은 두둑 속에다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무엇인가 부드러운 것이 뭉클 손에 닿았다. 그는 그것을 움켜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나무뿌리 같은 새까만 것이었는데 그 위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린다. 자세히 보니까 살아 있는 작은 도깨비가 아닌가.
"아니, 이게! 뭐 이 따위 빌어먹을 게 다 있어!“
이반은 작은 도깨비를 번쩍 치켜들고 한마루에다 내리쳐 박살을 내버리려고 했다. 그러자 작은 도깨비가 소리를 지르면서
"제발 죽이지 말아 주십쇼. 그 대신 무엇이건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거냐?"
"그저 무얼 원하시는지 말씀만 해주십쇼."
이반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나는 배가 아픈데 말이야, 낫게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고말고요" 하고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어디, 그럼 낫게 해 보렴."
작은 도깨비는 두둑 위에 몸을 구부리고 여기저기 손톱으로 뒤져 가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이윽고 가지가 셋인 조그만 뿌리를 쑥 뽑아 그것을 이반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이 뿌리를 한 뿌리만 삼키시면 천하에 없는 아픔도 이내 가셔집니다."
이반은 뿌리를 받아 찢어서는 한 가지 삼켰다. 그러자 금방 복통이 가셨다.작은 도깨비는 다시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놓아 주십쇼. 나는 땅 속으로 기어들어가 이제 다시는 나오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반이 말했다.
"자, 그럼 잘 가거라!"
그런데 이반이 말을 시작하기가 바쁘게 작은 도깨비는 물속에 던진 돌처럼 땅 속으로 금방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엔 구멍만이 하나 남았을 뿐이었다.
이반은 나머지 두 가지의 뿌리를 모자 속에다 쑤셔 넣고 그대로 마저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랑을 다 갈고 나자, 쟁기를 뒤집어엎고 집으로 돌아왔다. 말을 풀어 놓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자 맏형인 무관 세묜이 아내와 함께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는 전답을 몰수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옥에서 도망쳐 나와 아버지한테서 살 양으로 여기에 달려온 것이었다. 세묜은 이반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난 너한테서 살려고 왔다. 나하고 집사람을 먹여 다오, 새 일자리가 나설 때까지."
"아, 그럭하시죠. 염려 말고 여기서 사세요."
이반은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이반이 막 걸상에 걸터앉았는데 이반에게서 나는 흙냄새가 귀부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난 정말 못 견디겠어요. 고약한 냄새가 나는 흙투성이와 밥상을 함께 하는 게 말이에요."
그러자 무관인 세묜은 말했다.
"마나님이 너에게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말씀하시니까 너는 문간에서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 그럭하죠."
하고 이반은 말했다.
"그렇잖아도 난 바로 밤 순찰을 나갈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말에게도 먹이를 줘야 하고."
이반은 빵과 윗옷을 집어 들고 밤 순찰을 하러 나갔다.
4
무관인 세묜을 맡은 작은 도깨비는 그날 밤 안에 일을 마치고 약속대로 바보를 곯려 주려고 이반을 맡은 작은 도깨비를 찾아왔다. 밭으로 와서 여기저기 한참 동료를 찾아 헤맸으나 어디에도 없고, 그저 구멍이 하나 쾡하니 뚫려 있는 것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동료 신상에 무슨 불행한 일이라도 일어난 모양이다. 그 녀석을 대신할밖에 없지. 밭은 이제 다 갈아 놨으니까 이번에는 풀밭에서 어디 한번 그 바보를 곯려 줘야지.'
작은 도깨비는 목장으로 가 이반네 풀밭에 큰물이 들게 했다. 풀밭은 온통 진흙바닥이 되었다. 이반은 샐녘에 가축의 밤 순찰에서 돌아와 큰 낫을 들고 풀밭으로 풀을 베러 나갔다. 이반은 도착하자 이내 베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번이나 두 번 내두르기만 했는데도 낫의 날이 무뎌져 들지 않게 되어 갈아야 했다. 이반은 여러 가지로 해보았다. 그는 혼잣말을 했다.
"안 되겠다. 집에 가서 숫돌을 가져와야겠다. 그 김에 빵도 가져와야지. 비록 일주일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 베기 전에는 여기에서 떠나지 않겠다."
작은 도깨비는 이 소리를 듣고 좀 생각을 하더니,
"제기랄, 이 녀석은 바보로군. 이 녀석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무슨 딴 수를 쓰든지 해야지" 하고 말했다. 이반은 돌아와서 낫을 갈더니 베기 시작했다. 작은 도깨비는 풀 속에 몰래 기어들어가 낫공치를 붙잡고 그 날을 흙 속에다 처박기 시작했다. 이반은 힘이 들었으나 가까스로 일을 끝냈다. 이제 늪의 한 다랑이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작은 도깨비는 늪 속으로 기어들어가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비록 손가락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베지 못하게 해주어야지.'
이반은 늪으로 왔다. 보기에는 풀이 그렇게 칙칙하지도 않은데 어쩐지 낫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반은 바짝 약이 올라 힘껏 낫을 내두르기 시작했다. 작은 도깨비는 배겨 내지 못하게 됐다. 뒤로 뛰어서 물러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일이 틀린 것으로 보고 작은 도깨비는 덤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반은 큰 낫을 마구 휘둘러 덤불을 치면서 작은 도깨비의 꼬리를 절반 잘라 버렸다. 이반은 풀을 다 베고 나서 누이에게 그것을 긁어모으라고 일러 놓고 이번에는 호밀을 베러 갔다.
갈고랑 낫을 가지고 갔을 때는 꼬리가 잘린 작은 도깨비가 어느 틈에 그곳에 와서 호밀을 마구 흩어 놓았기 때문에, 갈고랑 낫으로는 베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반은 집으로 되돌아가 다시 보통 낫을 가지고 와 베기 시작하여 곧 다 베어 버렸다.
"자, 이번에는 귀리를 베어야지."
꼬리를 잘린 작은 도깨비는 이 말을 듣자, 이번에야말로 저 녀석을 곯려 주어야지, 어디 내일 아침까지만 두고 봐라 하고 생각했다.
그 이튿날 아침, 작은 도깨비가 귀리 밭에 달려가 보았더니 귀리는 벌써 다 베어져 있었다. 밤사이에 귀리의 낱알이 보다 적게 떨어지게 할 양으로 이반이 그것을 말끔히 베어 놓았던 것이다. 작은 도깨비는 약이 바짝 올라 중얼거렸다.
"그 바보 녀석은 내 꼬리를 잘라 놓은 데다 또 나를 괴롭히고 있다. 전쟁에서도 이처럼 경을 치는 일은 없다. 그 빌어먹을 놈은 밤에도 잠을 자지 않으니, 도무지 당해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밀가리 속으로 들어가 모조리 썩혀 버리고 말겠다."
작은 도깨비는 호밀가리가 있는 데로 가자 그 다발 사이로 기어들어가 썩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밀단을 띄우고 있는 사이에 저도 따뜻해져 그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한편 이반은 암말에게 수레를 끌게 하고 누이와 함께 호밀단을 나르러 왔다. 호밀가리 옆으로 다가와 호밀단을 짐수레에 싣기 시작하였다. 두어 단 가량 던져 올려놓는데 똑바로 작은 도깨비의 등짝을 밀어대게 되었다. 그래 치켜 들어 보았더니 갈큇발 끝에 꼬리가 짧은 작은 도깨비가 걸려 버둥거리고 움츠리고 하면서 한창 도망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말했다.
"아니, 요놈 보게, 뭐가 이렇게 못 된 게 있어! 너 또 나온 게로구나?"
그러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아니에요, 내가 아닙니다요. 앞서 것은 내 형제였어요. 나는 당신의 형님이신 세묜한테 있었던 놈입니다."
"네가 어떤 놈이든지 똑같이 혼을 내야겠다."
이반은 말했다. 이반이 밭두둑에다 내리쳐 박살을 내려고 하는데 작은 도깨비가 이렇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한번만 놓아 주세요. 이제 다시는 나오지 않겠습니다. 놓아주시기만 하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뭣을 할 수 있다는 거냐?"
하고 이반이 묻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나는 원하신다면 무엇으로라도 군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 있지?"
"어디에나 쓰입죠. 그들은 내 생각대로 무슨 짓이건 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단 말이지?"
"그렇고말고요."
"어디 한번 만들어 보렴."
이반은 말했다.
"이 호밀단을 한 단 들어 땅바닥에다 반듯이 세우고 흔들면서 그저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 종이 이르는 말이노라, 다발이 아니라 보리 짚 수만큼의 군사라 되어라!'"
이반은 호밀단을 들고 그것을 땅바닥에다 세우고 흔들면서 작은 도깨비가 일러준 대로 했다. 그러자 호밀단이 산산이 흩어져 많은 군사가 되고, 고수와 나팔수가 선두에서 둥당거리는 것이었다. 이반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참. 네놈은 여간한 솜씨가 아니구나! 이걸 계집애들이 보면 정말 기뻐하겠는 걸."
"그럼 이제 놓아주세요."
"아니야."
하고 이반은 말했다.
"낱알도 떨지 않은 호밀단으로 군사를 만들면 낱알을 버리게 되잖아. 그러니 어떻게 해야 다시 호밀단으로 되돌려 놓는지를 가르쳐 주어야지. 그 낱알을 떨어야 할 게 아니야."
그러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이렇게 말하시면 됩니다. '군사의 수만큼 보릿짚이 되어라, 또 다발이 되어라, 내 종이 이르는 말이노라.'"
이반이 그대로 말하자 다시 다발이 되었다. 작은 도깨비는 또다시 사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놓아 주세요."
"그래, 그러마."
이반은 작은 도깨비를 밭두둑에다 걸쳐놓고 한쪽 손으로 누르면서 그를 갈퀴에서 빼주었다.
"잘 가거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그가 말을 시작하기가 바쁘게 작은 도깨비는 물속에 던진 돌처럼 금방 땅 속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그저 쾡하니 구멍이 하나 남을 뿐이었다.
이반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둘째 형인 따라스가 아내와 함께 와서 한창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배불뚝이 따라스는 돈을 치르지 못하고 빚 때문에 도망쳐 온 것이었다.그는 이반을 보자 "얘, 이반" 하고 말했다.
"내가 다시 장사를 할 때까지 집사람과 나를 좀 먹여 살려 주어야겠다."
"아, 그럭하세요. 계세요"
하고 이반은 말했다. 이반은 윗옷을 벗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러자 장사치의 아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바보 따위와 같이 밥 먹을 수 없어요! 땀 냄새가 고약하게 나서 말이에요."
그러자 따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반, 너에게서 나는 냄새가 좋지 않다. 저기 저 문간에 가서 먹어라."
"그럼 그럭하죠" 하고 이반은 말했다. 그리고 제 몫의 빵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밤 순찰을 나갈 시간이에요. 말에게도 먹이를 주어야 하고 하니까."
5
세 번째의 작은 도깨비는 그날 밤 일이 끝나자 약속대로 동료를 거들러, 그러니까 바보 이반을 곯려주려고 따라스한테서 왔다. 밭으로 와서 여기저기 동료들을 찾아 헤맸으나 아무도 없고 그저 구멍만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풀밭으로 가 보았더니 그곳의 늪에서 잘린 꼬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호밀을 베어낸 밭에서도 또 하나의 구멍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이거 동료들의 신상에 무엇인가 화가 미친 모양이다.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그 바보 녀석을 혼 구멍을 내줘야겠구나.'
그는 생각하였다. 작은 도깨비는 이반을 찾으러 타작마당으로 갔다. 그랬더니 이반은 벌써 들일을 마치고 숲속에서 나무를 치고 있었다.
두 형들은 모두 같이 사는 것이 옹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기네가 살 집을 지을 나무를 베어 새 집을 지어달라고 바보인 이반에게 이른 것이었다. 작은 도깨비는 숲으로 달려가자 나뭇가지로 기어 올라가, 이반이 나무를 베어 눕히는 것을 훼방하기 시작했다. 이반은 쓰러뜨리기 좋게 나무 밑둥을 쳐놓고 방해를 받지 않을 데로 나무를 쓰러뜨리려고 했으나, 나무는 이상하게 굽으면서 쓰러져서는 안 될 데로 쓰러져 거기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버렸다. 이반은 지렛대를 하나 만들어 여기저기로 그 방향을 틀어가면서 겨우 나무를 쓰러뜨렸다. 이반은 다른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이반은 갖은 애를 쓴 나머지 가까스로 쓰러뜨렸다. 세 번째 나무에 달려들었다. 그것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반은 쉰 그루를 베어 눕힐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열 그루도 채 베어 눕히기 전에 벌써 해가 뉘엿뉘엿했다. 그리고 이반은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그의 몸뚱이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 마치 안개처럼 숲속에 끼었는데도 그는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또 한 그루 베어 눕혔다. 그랬더니 등짝이 지끈지끈 쑤시기 시작하여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래서 도끼를 나무에다 처박아 놓고 조금 쉴 양으로 앉았다. 작은 도깨비는 이반이 잠잠해진 것을 알고 기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녹초가 되어 내동댕이친 거로군. 어디 그럼 나도 좀 쉬어볼까.'
작은 도깨비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타고 앉아 속으로 고소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반은 다시 벌떡 일어나 도끼를 쳐들고 그것을 반대쪽에서 냅다 내리쳤으므로 나무는 별안간 뿌지직 빠개지면서 쓰러졌다. 작은 도깨비는 워낙 갑작스런 일을 당하여 미처 발을 비킬 겨를도 없이 우지끈하고 가지가 꺾이는 바람에 그 사이에 손이 끼고 말았다. 이반은 깜짝 놀랐다.
"아니, 요 망할 게 너 이놈! 또 나왔구나?"
그러자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내가 아닙니다. 당신의 형님이신 따라스한테 있었던 놈이에요."
"아니, 네가 어떤 놈이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이반은 도끼를 번쩍 치켜들어 도끼 등으로 내리쳐 죽이려고 했다. 작은 도깨비는 정신없이 싹싹 빌어대며 말했다.
"제발 치지만 마십쇼.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거나 해드릴 테니."
"그래 도대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길래?"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만큼의 돈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고 이반은 말했다.
"어디 한번 만들어 보렴."
작은 도깨비는 이반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이 떡갈나무 잎을 들고 두 손으로 비비세요. 그러면 금화가 땅바닥에 떨어질 테니."
이반은 나뭇잎을 들고 비벼 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런 금화가 우수수 쏟아졌다.
"거 좋겠는걸, 어린애들이 가지고 놀기엔."
"자, 그럼 놔 주세요!"
작은 도깨비는 말했다.
"그래, 그럭하지!"
이반은 지렛대를 들고 작은 도깨비를 빼내 주었다. 그리고 "잘 가거라" 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말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작은 도깨비는 물속에 돌을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금방 땅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리고, 그저 구멍만이 하나 쾡하니 남을 뿐이었다.
6
형제들은 집을 지어 따로따로 살기 시작했다. 이반은 들일을 마치고는 맥주를 담가 두 형들을 잔치에 초대했다. 그러나 형들은 이반에게 손님 노릇을 하려 들지 않았다.
"우리들은 농부들투성이의 잔치란 건 본 일이 없어."
하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었다.
이반은 농부며 아낙네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또 저도 마셨다. 그리고 취기가 올라오자 춤 놀이가 벌어진 한길로 걸어 나갔다. 이반은 춤 놀이판으로 다가가 아낙네들에게 자기를 칭찬해 달라고 일렀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아직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것을 줄 테니까."
이 말을 들은 아낙네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그를 칭찬해댔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주어요."
"금방 가져올게."
하고 이반은 말하고 나서 씨앗상자를 안고 숲속으로 뛰어갔다. 아낙네들은 "어머, 저 바보 좀 보게!" 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그냥 그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보니까 이반이 되돌아 달려오는데, 무엇인가를 가득 채워 넣은 씨앗 상자를 들고 있었다.
"어때 나누어 줄까?"
"어디 나누어 봐요."
이반은 금화를 한 주먹 쥐어 아낙네들에게 싹 던졌다. 그러자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아낙네들은 그것을 주우려고 냅다 몰려들었다. 농부들도 달려왔다. 서로 금화를 잡아챘다. 어떤 한 노파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이반은 껄껄 웃어댔다.
"그렇지만 서로들 밀치지는 말아요."
하고 그는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더 줄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흩뿌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잇따라 떼지어 왔다. 이반은 상자에 있는 대로 전부 뿌려 버렸다. 그런데도 군중은 더 달라고 졸라댔다. 그래서 이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젠 다 털어 버렸어. 이 다음번에 또 주지. 자, 이젠 춤을 추어 볼까, 좋은 노래를 불러봐."
아낙네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재미없는데, 당신네 노래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럼 어떤 노래가 좋지?"
아낙네들이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금방 당신에게 보여 주지."
그리고는 헛간으로 가 보릿단을 한 움큼 뽑아내어 낱알을 떨어내고는 그것을 반듯이 세워 놓더니 툭 치며 말했다.
"자, 내 종이 이르는 말이노라. 다발로 있을 게 아니라 보릿짚의 수만큼 군사가 되어라."
그러자 보릿단은 산산이 흩어져 군사가 되더니 북과 나팔을 쿵작거리기 시작했다. 이반은 군사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이르고 그들과 함께 한길로 나갔다. 군중은 깜짝 놀랐다. 군사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윽고 이반은 아무도 뒤따라와서는 안 된다고 일러놓고 그들을 도로 헛간으로 데리고 가, 다시 본시대로 다발을 지어 밑자리가 되어 있는 마른 풀더미 위에 내던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마굿간에 들어가서 자 버렸다.
7
이튿날 아침 맏형인 무관 세묜이 이 일을 알고 이반한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너 나한테 죄다 말하렴. 도대체 너는 그 군사를 어디서 데려왔다 어디로 데려갔지?"
"그걸 물어 뭘 하시려구요?"
"뭘 하려느냐구? 군사만 있으면 뭐나 다 할 수 있단 말이야. 나라를 얻을 수도 있어."
이반은 깜짝 놀랐다.
"그럼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죠?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마침 누이와 둘이 보릿단을 잔뜩 장만해 놨으니까."
이반은 형을 헛간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군사를 만들어 드릴 테니 말씀이에요. 그대신 꼭 데리고 가셔야 해요. 그렇지 않고 만일 먹여 살려야 하는 날엔 그야말로 하루에 온 동네를 몽땅 털어 먹게 될 테니까요."
무관인 세묜이 군사를 데리고 가겠노라고 약속하여 이반은 군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보릿단으로 타작마당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1개 중대의 군사가 되었다. 또 한 번 내리치면 또 1개 중대의 군사가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온 들판을 가득 메울 만큼의 무수한 군사를 만들어냈다.
"어떻습니까, 이제 그만 됐어요?"
"이제 그만 됐어, 고맙다, 이반."
세묜은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뭘요, 만일 더 필요하시거든 언제든지 오세요. 얼마든지 만들어 드릴 테니. 요새는 보릿짚이 잔뜩 있으니까요."
무관인 세묜은 곧 군대를 지휘하여 바르게 대오를 갖추게 하고 싸움을 하러 나갔다.무관인 세묜이 떠나자, 이번에는 배불뚝이 따라스가 끄덕끄덕 찾아왔다. 그도 또한 어제의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우에게 이렇게 간청하기 시작했다.
"숨기지 말고 말해 보렴. 그래 너는 어디서 금화를 얻었지? 만일 나한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돈이 있다면 나는 그 돈으로 온 세계의 돈을 긁어모아 볼 텐데 말이야."
이반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래요! 아, 그렇다면 그렇다고 진작 말씀하실 일이지. 형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드리죠."
형은 크게 기뻐했다.
"나는 씨앗장사로 세 상자만 있으면 된다."
"그럼 그럭하세요. 숲속으로 갑시다. 한데 말을 챙겨가지고 가셔야죠, 날라 오기가 힘들 테니까."
둘이서 숲속으로 말을 타고 갔다. 그리하여 이반은 떡갈나무에서 잎을 훑어 비비기 시작했다. 금화가 쏟아져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때요, 이만하면?"
따라스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당장은 이만큼 있으면 충분하다. 고맙다, 이반."
"뭘요, 더 필요하시거든 언제든지 오세요. 더 만들어 드릴 테니까. 얼마든지 만들어 드리겠어요. 잎사귀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에요."
배불뚝이 따라스는 달구지에다 금화를 가득 싣고 장사를 하러 떠났다. 이리하여 두 형들은 제각기 떠났다. 세묜은 전쟁을 시작하고 따라스는 장사를 시작했다. 무관인 세묜은 두 나라를 정복하고 배불뚝이 따라스는 큰돈을 벌었다.
어느 날 세묜과 따라스는 한자리에서 만나 서로 숨김없는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세묜은 군대를 얻은 경위에 대해서 그리고 따라스는 돈을 모으게 된 경위에 대해서였다. 무관인 세묜은 아우에게
"나는 말이야. 나라를 정복해 잘 지내고 있기는 한데 그저 돈만 넉넉지 못할 뿐이야. 군대를 먹여 살려야 할 돈이 말이야"
하고 말했다. 그러자 따라스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말이에요, 돈을 어지간히 모았는데 그저 한 가지 그것을 지키게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게 골칫거리에요."
그때 무관인 세묜이 말했다.
"이반에게 찾아가 보자꾸나. 나는 그 녀석에게 군대를 더 만들게 하여 네 돈을 지키게 할 테니까, 너는 그 군대를 먹여 살릴 만큼의 돈을 만들어 주도록 그 녀석에게 말하란 말이야."
이리하여 둘은 이반한테도 찾아왔다. 이반의 집에 오자 세묜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봐, 이반. 내겐 아무래도 군사가 좀 모자라. 그러니까 군사를 좀 더 만들어다오. 비록 한 두어 짚가리만이라도 좋으니 말이야."
이반은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안 돼요."
하고 그는 말했다.
"형님에게는 이제 더 이상 군사를 만들어 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니, 이반, 왜 그러지. 그전에 너는 약속했었잖아?"
"그야 약속하기는 했었죠. 그러나 이제 더는 만들지 않겠습니다."
"아니, 어째서 만들지 않겠다는 거야, 이 바보 녀석아!"
"왜냐하면 형님의 군사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에요. 이즈막의 일인데 말이에요. 내가 길가의 밭을 갈고 있다가 본 것인데, 한 아낙네가 그 길로 널을 지고 가면서 엉엉 통곡하고 있잖겠어요. 그래서 나는 물어봤죠. '누가 돌아가셨어요' 하고. 그러자 그 아낙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묜의 군사가 전쟁에서 내 남편을 죽였다오' 하고 말이에요. 군대란 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람을 죽였다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더는 군사를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이렇게 우겨대고 이반은 이제 더는 군사를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배불뚝이 따라스도 이반에게 금화를 더 만들어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이반은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안 돼요. 이제 더는 금화를 만들지 않겠습니다."
"한데 어째서 그러지? 너는 그럭하겠다고 약속했었잖아?"
"그야 약속은 했었죠. 하지만 이제 더는 만들지 않겠어요."
"어째서 만들지 않겠다는 거냐, 이 바보 녀석아!"
"어째서야 아니라 형님의 금화가 미하일로브나에게서 암소를 빼앗아 갔기 때문입죠."
"어째서 빼앗겼다든?"
"그 얘기를 자세히 할까요? 미하일로브나한테 암소가 한 마리 있어서 어린애들이 우유를 마시고 있었대요. 그런데 이즈막에 그 어린애들이 나한테 찾아와서 우유를 달라고 졸라대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 어린애들한테 물어봤죠. '너희 집 암소는 어디 있지?' 하고. 그랬더니 끌려가 버렸다는 거예요. '어떤 놈이 끌고 갔는데?' 했더니 '배불뚝이 따라스네 마름이 찾아와 엄마에게 금화를 세 닢 주니까 엄마가 그 사람에게 암소를 주어 버렸어요. 우리들은 이제 마실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하고 말하더군요. 나는 형님이 금화를 노리개를 삼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린애들한테서 암소를 빼앗아 가버렸어요. 나는 이제 형님에게는 금화 따윈 만들어 드리지 않겠습니다."
바보 이반은 고집을 세워 더 이상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형제들은 허탕을 친 채 떠났다. 두 형들은 귀로에 올랐다. 그리고 그 도중에 어떠한 수단으로 그 곤경을 서로 도와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상의하였다. 세묜이 말했다.
"그럼 이럭하자꾸나. 그러니가 네가 나에게 군대를 기를 돈을 주고 내가 너에게 군대를 절반 준다. 네 돈을 지키도록 말이지."
따라스는 동의했다. 두 형제는 가지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어 갖고 둘이 다 임금이 되었으며 둘이 다 부자가 되었다.
8
그러나 이반은 내내 집에서 살고 있었고 부모를 봉양하면서 벙어리인 누이와 함께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반네 집의 늙은 개가 병이 나고, 옴이 생겨 죽게 됐다. 이반은 그것을 가엾게 여기고 벙어리인 누이에게서 빵을 얻어 모자 속에 넣어 개에게로 가지고 가서 던져 주었다. 그런데 모자에 구멍이 뚫려 있어 빵과 함께 작은 도깨비가 준 조그만 뿌리가 한 가지 굴러 떨어졌다. 늙은 개는 빵과 함께 그것을 주워 먹었다. 그런데 뿌리를 먹자마자 개는 갑자기 생기가 올라 뛰어오르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짖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기도 하게 됐다. 병이 말끔히 나은 것이었다. 부모들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는 뭣으로 개를 낫게 했지?"
그러자 이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병이든 낫는 풀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를 이 개가 먹은 거예요."
마침 이 무렵 임금의 딸이 병을 앓고 있었다. 임금은 방방곡곡의 도시와 촌락에 방을 써붙이게 하여, 누구라도 좋으니 공주의 병을 낫게 해준 자에게는 크게 포상을 할 것이며, 만일 그가 독신이라면 공주를 아내로 맞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반네 마을에도 물론 이 방문(枋文)이 나붙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반을 불러 놓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임금님의 방문이 어떤 것이라는 걸 들었겠지. 너는 만병통치의 풀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얘긴데, 한번 가서 공주님의 병을 낫게 해 보렴. 그러면 너는 한평생 행복을 누리게 될 게 아니냐."
"그럼 그렇게 하죠"
하고 이반은 말했다. 그리고 곧 떠날 채비를 했다. 부모님이 나들이옷으로 차려 입혀 주었다. 이반은 문간으로 나가다가 손이 굽은 여자 거지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듣자니까 당신은 무슨 병이든 다 낫게 한다면서요? 어디 내 손도 좀 낫게 해 주시구료. 이대로는 내 손으로 신발도 신을 수 없다오."
그 여자 거지가 말했다.
"그렇게 해 주지."
하고 이반은 말했다. 그리고 풀뿌리를 꺼내어 여자 거지에게 주고 그는 그것을 삼키라고 일렀다. 여자 거지는 그것을 삼켰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 거지의 병이 나아 그 자리에서 손을 내두르게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반을 임금에게 데리고 가려고 나왔다가 이반이 한 가닥밖에 남지 않은 풀뿌리를 여자 거지에게 주어 버려, 공주를 낫게 할 방도가 없게 되었음을 알고 입을 모아 욕하기 시작했다.
"그래, 거지 따윈 가엾게 여기면서도 공주는 가엾지 않다, 그 말이렷다, 네 놈은!"
그러자 이반은 곧 공주도 가엾어졌다. 그는 말에게 수레를 끌게 하고는 부랴부랴 짚을 쌓고 그 위에 앉아 떠나려고 했다.
"그래 도대체 너는 어디로 가려는 거냐, 이 바보 녀석아?"
"공주님을 낫게 해 드리려고 가는 겁니다."
"하지만 네겐 낫게 해 드릴 게 아무것도 없잖아."
"뭐, 일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말을 몰았다. 이반이 궁궐에 닿아 막 궐문에 내려서자마자 어느 틈에 공주의 병은 씻은 듯 나아버렸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여 신하에게 이반을 자기에게로 불러들이라고 이르고 그에게 훌륭한 옷을 차려 입혔다. 그리고 이반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그대는 짐의 부마로다."
"황공합니다."
하고 이반은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공주와 결혼했다. 임금은 오래지 않아 죽었다. 그래서 이반은 임금이 되었다. 이리하여 세 형제가 모두 임금이 되었다.
9
세 형제는 건재하여 저마다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맏형인 무관 세묜은 참으로 잘 살고 있었다. 그는 짚으로 만든 군사를 바탕삼아 진짜 군사를 모집했다. 그는 온 나라에다 열 호마다 한 명씩 군사를 두되, 그 군사는 키가 크고 살갗이 희며 얼굴이 깨끗해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런 군사를 잔뜩 모집하여 모두 훈련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이내 군사를 풀어 그의 뜻대로 어떠한 짓도 감행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의 생활은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 그의 눈에 띄는 것은 그 당장 모두 그의 것이 되었다. 군대만 풀어 놓으면 그 군대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건 빼앗아 날라오기도 하고 데려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배불뚝이 따라스의 생활도 호화로웠다. 그는 이반에게서 얻은 돈을 낭비하지 않고 그것을 밑천삼아 거액의 돈을 모았다. 그도 제 나라에서 그럴싸한 제도를 펴놓았다. 그는 제 돈은 제 돈궤 속에 딱 집어넣어 두고 백성에게서 돈을 우려냈다. 그는 인두세, 통행세, 거마세, 짚신세, 감발세, 옷끈세로 돈을 짜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 없었다. 누구나가 돈이 달렸기 때문에 모두들 돈이 아쉬워 무엇이나 그에게 날라 왔고, 일을 하려고 몰려들었다.
바보 이반의 생활도 또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장인의 장례를 치르기가 바쁘게 그는 임금의 의대를 다 벗어던지고 그것을 왕비의 옷장에 집어넣게 했다. 그리고 자기는 다시 삼베 속옷에 잠방이를 걸친 데다 짚신을 신고 일에 매달렸다.
"나는 도무지 답답해 못 견디겠어. 배만 자꾸 커지는 데다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으니 말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부모와 벙어리인 누이를 불러와 또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임금님이 아니십니까?"
"아니, 일 없어. 임금도 먹어야 하니까."
그는 대답했다. 대신이 들어와
"녹봉을 치를 국고금이 없사옵니다."
하고 진언했다.
"뭐, 일없어. 없거든 치르지 않으면 되지."
"그럼 그들은 근무를 하지 않게 될 것이옵니다."
"그럼 그럭하라지. 내버려 둬, 근무하지 않아도 좋아. 오히려 자유롭게 일들을 하게 될 테니까. 모두들 거름이나 내게 해. 그들은 거름을 많이 만들어 놓았을 테니까."
사람들이 이반에게로 재판을 받으려고 왔다. 한 사람이
"저 자가 소인의 돈을 훔쳤사옵니다"
하고 말하자 이반은
"아, 좋아, 좋아! 그러니까 저 자는 돈이 필요했다 그 말이지!"
하고 말했다. 이에 모든 사람은 이반이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비가 그에게 말했다.
"모두들 임금님을 바보라 말하고 있다 하옵니다."
"아, 일 없어."
하고 그는 말했다. 이반의 아내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도 또한 바보였다.
"제가 어찌 감히 남편을 거스를 수 있겠나이까? 실은 바늘 가는 데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어늘."
이렇게 말하고 그녀도 왕비의 옷을 벗어 옷장 속에 집어넣고 벙어리 처녀에게로 농사일을 배우러 갔다. 그리하여 일을 익히고 나서 남편을 거들기 시작했다. 똑똑한 사람은 모두 이반의 나라를 떠나 버리고 남은 것은 그저 바보뿐이었다. 돈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모두 일을 하여 자기 스스로 살아감과 동시에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나갔다.
10
큰 도깨비는 작은 도깨비들이 세 형제를 어떻게 파멸시켰는가 하는 것에 대한 소식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래서 사정을 살펴볼 양으로 자기가 직접 나서서 여기저기 찾아 돌아다녔지만 찾아낸 것이라곤 그저 세 구멍뿐이었다.
'아무래도 진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내가 직접 손을 쓸 수밖에 도리가 없지.'
그는 형제들을 찾으러 갔으나 그들은 이미 살던 곳에는 없었다. 그는 형제들을 각각 다른 나라에서 발견했다. 셋이 다 건재하고 있는 데다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그는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되고 보면 내가 손수 나서야겠다."
그는 먼저 무관인 세묜의 나라로 갔다. 그리고 제 모습을 감추고 장수로 둔갑하여 세묜 왕에게 찾아갔다.
"듣자온즉 세묜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위대한 무인이신 듯하옵니다. 그러나 신도 그 일에 있어서는 확고히 익히고 있는 바가 있사와 전하를 섬기고자 하옵니다만."
하고 그는 말했다. 세묜 왕은 그에게 여러 가지로 물어보고 나서 그가 현명한 사람임을 알고 기용하기로 했다. 새로 기용된 장수는 강력한 군대를 모으는 방법을 세묜 왕에게 진언했다.
"우선 첫째로 더 많은 군사를 모아야 할 줄로 아뢰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에는 집안일을 일삼는 백성이 너무 많아지게 되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징집하셔야 하옵니다. 둘째로 신식 소총과 대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옵니다. 신이 흡사 콩이라도 흩뿌리듯이 단번에 백 발의 총알이 나가는 소총을 만들어 올리겠사옵니다. 그리고 또 대포도 어떠한 것이든 불로 태워 버리게 할 무서운 성능의 것을 만들어 올리겠사옵니다. 이것은 사람이고 말이고 성벽이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깡그리 태워 없애버리고 말 것이옵니다."
세묜 왕은 새로 기용된 장수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모조리 군대에 징집할 것을 명령하고 또 새로운 공장을 지어 신식 소총과 대포를 만들어내자 이내 이웃 나라의 임금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리하여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세묜 왕은 자기의 군사들에게 적군에게 총포를 마구 퍼부으라고 명령하여 단숨에 쳐부수고 그 절반을 불태워 버렸다. 이웃 나라의 임금은 질겁을 하여 곧 항복하고 자기 나라를 바쳤다. 세묜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번에는 인디아 왕도 정복하고 말아야지" 하고 말했다. 그런데 인디아 왕은 세묜 왕의 소문을 듣고 그의 전략을 완전히 가로챈 데다 그것에 제 생각을 덧붙였다. 인디아 왕은 그저 젊은이들을 군대에 징집할 뿐만 아니라 독신의 여자들까지도 모조리 군사로 뽑았다. 그리하여 그의 군대는 세묜의 그것보다도 더 많아졌다. 게다가 또 그는 소총이며 대포를 만드는 법을 세묜 왕에게서 배운데다, 공중을 날아 머리 위에서 포탄을 던지는 것까지 생각해냈다.
세묜 왕은 인디아 왕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의 생각으론 지난번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일거에 칠 것 같았지만, 그러나 날카로운 낫도 언제까지나 잘 드는 것은 아니다. 인디아 왕은 세묜의 군대를 착탄거리까지 들어오게 하지 않고 여자 군사들을 공중으로 보내어 적군의 머리 위에다 포탄을 던지기로 했다. 여자 군사들은 공중에서 마치 진딧물 위에다 붕사를 뿌리듯 세묜의 군대에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세묜의 군대는 모두 혼비백산하여 여기저기로 어지럽게 달아나고 세묜 왕 혼자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인디아 왕은 세묜의 나라를 몰수하고 무관인 세묜은 발 가는 대로 정처 없이 도망쳐 다녔다.
큰 도깨비는 이 맏형을 결딴내놓고 이번에는 따라스의 왕에게로 갔다. 그는 장사꾼으로 둔갑하여 따라스의 나라에 자리를 잡자 선심을 베풀기도 하고, 돈을 마구 쏟기도 했다. 이 장사치는 온갖 물건에 많은 값의 돈을 치러주었으므로 백성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이 장사치에게 몰려들었다. 이리하여 백성의 호주머니가 아주 두둑해졌으므로 체납금은 모두 말끔히 내게 되고 어떤 세금이건 기한 안에 딱딱 바치게 되었다.
따라스 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 장사치는 참으로 고맙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자꾸자꾸 더 많은 돈이 생겼고 살기가 더욱 더 나아져 갔다. 그리하여 따라스 왕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자기의 새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재목이나 돌을 날라라, 일을 하러 나오라고 그는 백성들에게 영을 내린 뒤 모든 일에 비싼 품삯을 매겼다. 따라스 왕은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돈을 노리고 백성들이 자기에게 일을 하려고 몰려오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재목이며 돌은 모두 그 장사치에게로 실려 가고 있는 데다 일꾼도 모두 그리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스 왕은 품삯을 올렸다. 그러나 장사치는 더 많은 돈을 내던졌다. 따라스 왕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장사치는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계속 장사치는 임금의 품삯을 누르고 매겼다. 궁전은 착공된 채 좀처럼 준공되지 않고 있었다. 따라스 왕은 정원을 만들려고 계획했다. 가을이 닥쳤으므로 따라스 왕은 정원을 만들러 오라고 백성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는 사람은 없고 모두 장사치네 못을 파러 가버렸다. 겨울이 닥쳤다. 따라스는 새 털외투를 짓기 위해 검은담비의 가죽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신하를 보냈더니, 그 자가 돌아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장사치가 모조리 사들였기 때문에 검정 담비는 없사옵니다. 그 자는 한결 비싼 값을 주었고 그 가죽으로는 방석까지 만들었다 하옵니다."
따라스 왕은 종마를 사들여야 했다. 그래서 그것을 사러 내보냈더니 모두 돌아와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좋은 종마는 모두 그 장사치의 손에 들어가 장사치의 못을 채울 물을 나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임금의 일이라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서도 장사치를 위해서는 어떤 일에도 나갔고, 장사치에게서 번 돈을 그에게로 가지고 와서 조세로 내밀 뿐이었다. 이리하여 임금에게는 돈이 너무 남아돌아 그것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지만 생활은 차츰 나빠졌다. 임금도 이제는 온갖 계획을 세우기를 그만두고 어떻게든지 살아나갈 것밖에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나 이윽고 그마저도 위태로워졌다. 모든 것이 옹색해졌다. 여자도 사제들도 모두 그에게서 장사치 쪽으로 빠져가기 시작했다. 벌써 식료품까지 모자라기 시작했다. 시장으로 물건을 사러 가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장사치가 모두 몰아서 사들여 버렸기 때문이며, 그는 다만 조세로 돈을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따라스 왕은 잔뜩 화가 나 장사치를 국외로 내쫓았다. 그러나 장사치는 국경에 도사리고 앉아 역시 똑같은 짓을 했다. 여전히 장사치의 돈을 보고 모두 임금에게서 장사치에게로 몰려갔다. 임금의 사정은 완전히 악화되고 말았다. 며칠씩 꼬박 굶는 적이 있는가 하면, 장사치는 임금에게서 왕비까지도 사려 한다는 풍문까지 들려왔다. 따라서 왕은 이제 주눅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어느 날 무관인 세묜이 그에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좀 도와 줘. 나는 인디아 왕에게 패망했어."
그러나 배불뚝이 따라스 자신도 지금은 뱃가죽이 등뼈까지 붙어 있는 지경이었다.
"나 자신이 벌써 꼬박 이틀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단 말이에요."
11
큰 도깨비는 두 형제를 거덜나게 하고 이반에게 갔다. 큰 도깨비는 장수로 둔갑하고 이반에게로 찾아가 군대를 만들 것을 그에게 권했다.
"상감께서 군대가 없이 지내신다는 것은 체통이 서지 않는 일이 아닌가 하옵니다. 어명을 내리시기만 한다면 신은 상감의 백성 가운데서 군사를 모아 훌륭한 군대를 만들어 올리겠사옵니다."
이반은 그의 말을 듣고 나서
"그것도 좋은 말이오. 그럼 어디 만들어 보오. 그리고 그들이 노래를 잘 부르도록 가르치오. 나는 그것을 좋아하니까"
하고 말했다. 큰 도깨비는 이반의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지원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군사를 지원하는 자는 누구나 보드카 한 병과 빨간 모자를 얻게 될 거라고 설명했다. 바보들은 코웃음을 쳤다.
"술 따윈 우리들에겐 얼마든지 있단 말이야. 우리들은 우리들이 제 손으로 빚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모자도 아낙네들이 어떤 것이건 갖고 싶은 걸 만들어 준단 말이야. 얼룩덜룩한 것이나 술이 너슬너슬 달린 것까지도."
이래서 어느 누구 한 사람 군대를 지원하는 자라곤 없었다. 큰 도깨비는 이반에게 찾아왔다.
"상감, 나라의 바보들은 자진해서 군사가 되려고는 하지 않사옵니다. 그러하온즉 그들은 권력으로써 몰아대야 할 줄로 아뢰오."
"응, 그것도 좋겠는걸. 그럼 권력으로써 몰아대 보오."
큰 도깨비는 "백성들은 모두 군사가 돼야 하며, 만일 거역하는 자가 있으면 이반 왕께서 참형을 내릴 것이니라" 하고 포고했다.
바보들은 장수에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들이 만일 군사가 되지 않으면 임금님께서 참형을 내리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군대가 되면 어떻게 된다는 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군대에 나가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있던데."
"그렇지, 그런 일이 없는 것도 아니지."
그 말을 듣고 바보들은 옹고집이 되었다.
"그럼 우리들은 나가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집에서 죽게 해 주시는 게 더 낫지 뭡니까. 어차피 죽어야 하는 거라면."
"너희들은 바보로군. 바보들아! 군사가 됐다고 해서 꼭 죽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군사가 되지 않으면 그건 뭐 영락없이 이반 왕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바보들은 곰곰 생각하다가 임금인 바보 이반에게 물어보러 갔다.
"장수께서 나오셔서 모두 군사가 되라고 소신들에게 명령하고 계시옵니다. 군대에 나가면 죽음을 당할는지 당하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나가지 않으면 소신들에게 꼭 참형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정말이옵니까, 그건?"
이반은 껄껄 웃었다.
"그래, 어떻게 짐이 혼자서 그대들을 모두 참형할 수 있으리오? 짐이 바보가 아니었던들 그대들에게 잘 알아듣도록 설명했으련만, 짐 자신도 뭐가 뭔지 통 모르겠으니 말이오."
"그러하오시다면 소신들은 군대에 나가지 않겠사옵니다."
"거 그렇게들 하지. 나가지 않아도 좋아."
바보들은 장수에게로 가서 군사가 되기를 거절했다. 큰 도깨비는 이 일이 잘 되어 나가지 않음을 보고 따라깐 왕에게 가서 알랑알랑 비위를 맞추면서 부추겼다.
"싸움을 걸어서 한번 이반 왕의 나라를 치십시다. 그 나라에는 비록 돈은 없을지라도 곡식이며 가축이며 그밖의 온갖 것이 풍부히 있으니까요."
따라깐 왕은 싸움을 걸기로 했다. 먼저 대군을 모으고 총이며 대포를 갖추자 국경으로 나가 이반의 나라에 침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반에게로 달려와 이렇게 아뢰었다.
"따라깐 왕이 우리들에게 싸움을 걸어왔사옵니다."
"뭐 어떨라구. 싸움을 걸어오겠다면 걸어오라지."
따라깐 왕은 국경을 넘자, 척후병을 보내어 이반 군대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그는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군대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선지 나타날는지 모른다고 오래오래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군대에 대해서는 뜬소문도 들을 수 없었다. 누구와 싸울래야 싸울 상대가 없었다. 따라깐 왕은 군사들에게 마을을 점령하게 했다. 군사들이 한 마을에 들이닥쳤다. 그러자 남녀 바보들이 뛰어나와 군사들을 바라보더니, 미심쩍어 하며 놀란 눈치였다. 군사들은 바보들에게서 곡식이며 가축을 약탈했다. 바보들은 무엇이건 선선히 내주었고 어느 누구도 자기를 지키려 하기는 커녕 여기 와서 살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군사들은 딴 마을로 가 보았으나 거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사들은 그날도 그 이튿날도 여기저기 진종일 돌아다니고 또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르는 곳마다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있는 대로 다 탈탈 털다시피 하여 내주었고, 어느 한 사람 자기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이것 보세요. 당신네 나라에서 살기가 어려우시거든 모두 우리나라에 와서 사세요."
군사들은 사방팔방으로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알아보았으나 아무 데도 군대 같은 건 없었고 백성은 모두 일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한편으로는 서로 도와주고 있었는데 꼭 제 한 몸만을 지키려고 버둥대기는커녕 오히려 여기 와서 살라고 권유할 따름이었다. 군사들은 지루해졌다. 그리하여 따라깐 왕에게 돌아갔다.
"소신들은 전쟁을 할 수가 없사옵니다. 소신들을 다른 나라로 보내주시옵소서. 전쟁이 있으면 좀 좋겠지만 이건 무엇이옵니까. 흡사 유약한 사람을 참살하는 것 같아 이 나라에서는 이제 이 이상 더 싸울 수 없사옵니다."
따라깐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리하여 온 나라를 돌아다녀 마을을 어질러놓고 집과 곡식을 불사르며 가축을 죽여 버리라고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만일 어명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누구나 모두 가차 없이 처벌하리라."
군사들은 깜짝 놀라 임금의 명령대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집이며 곡식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바보들은 모두 자기를 지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울 뿐이었다.
"어쩌자고 너희들은 우리들을 괴롭히는 거냐. 너희들은 어째서 우리 재산을 결딴내 놓는 거냐. 필요하거든 차라리 가져가는 게 더 나을 것 아니냐."
군사들은 어쩐지 침울해졌다. 그래서 그 이상 돌아다니기를 그만두었다. 이윽고 군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12
이리하여 큰 도깨비는 떠나버렸다. 군대의 힘으론 이반을 곯리지 못했던 것이다. 큰 도깨비는 다시 말쑥한 신사로 둔갑하여 이반의 나라로 살러 왔다. 배불뚝이 따라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돈으로 곯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훌륭한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당신네들에게 착한 일을 해보고자 합니다. 나는 먼저 당신네 나라에서 집을 짓고 그리고 장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거 좋은 일이요. 그러시다면 여기서 사시죠."
한 벼슬아치가 신사에게 숙사를 빌려주었다. 이윽고 이 신사는 잠자리에 들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난 이튿날 아침 그는 금화가 들어 있는 커다란 자루와 종잇조각을 가지고 공청 마당으로 나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는 모두 마치 돼지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네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자 합니다. 먼저 이 도면처럼 집을 지어 주시오. 당신들은 일을 하고, 지시는 내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답례로 이 금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금화를 보였다. 바보들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그들의 관습에는 돈이라는 것이 없고, 그 대신 서로 물건과 물건을 바꾸기도 하고 품앗이를 하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금화에 놀랐다.
"거 노리갯감으로 썩 좋은데"
하고 그들은 말했다. 큰 도깨비는, 따라스의 나라에서 했듯이 싯누런 금화를 마구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금화와 물건을 바꾸기도 하고 온갖 일을 하여 금화를 품삯으로 얻으려고 그에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큰 도깨비는 속으로 고소해 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이쯤 되고 보면 일이 순조로이 돼 나가는 것이렷다. 이번에야말로 그 바보 녀석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주어야지.'
그런데 바보들은 금화를 손에 넣자마자 목걸이용으로 아낙네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처자들의 댕기에 달아주기도 했다. 이제는 어린애들까지도 한길에서 금화를 노리갯감으로 가지고 놀게 됐다.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금화가 생기게 되자, 이제는 더 얻으려고 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말쑥한 신사 쪽은 대궐 같은 집이 아직 절반도 돼 있지 않는 데다, 곡식이며 가축도 아직 한 해 치도 비축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신사는 이렇게 알렸다. "나한테로 일들을 하러 오라, 곡식이며 가축을 가지고 오라, 어떤 물건이 됐건 어떤 일이 됐건 그 값으로 많은 금화를 주겠다," 하고.
그러나 어느 누구 한 사람 일하러 가는 자도 없는가 하면, 무엇 하나 들고 가는 사람도 없었다. 이따금 사내애며 계집애가 뛰어나서 달걀과 금화를 바꾸거나 혹은 금화를 받고 물건을 날라다 주는 정도가 고작일 뿐, 달리는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말쑥한 신사에게서 차츰 먹을 것이 달리게 되었다. 시장기가 들어 뭣이나 먹을 것을 사 보려고 마을 안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그는 어느 한 집에 쑥 들어가 암탉을 사려고 금화를 내밀었다. 그랬더니 안주인이 그걸 받지 않으며
"우리 집엔 숱하게 있어요, 그런 건"
하고 말했다. 이번에는 어느 날품팔이꾼 집에 들러 비웃을 살 양으로 금화를 내밀자
"우리 집엔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어린애들이 없어서 아무도 가지고 놀 사람이 없습죠. 게다가 하도 귀물이어서 나도 세 닢 가져다 놨습죠"
하고 말했다. 큰 도깨비는 다음엔 빵을 사려고 어느 농사꾼 집에 들렀다. 그러나 이 농사꾼도 돈을 받지 않으며
"우리 집에선 필요 없어요. 적선을 하는 거라면 그건 또 몰라도. 그럼 좀 기다리시구료. 금방 여편네보고 빵을 썰어 올리라고 이를 테니까"
하고 말했다. 도깨비는 침을 뱉고 냅다 농사꾼 집에서 줄행랑을 놓았다. 적선을 위해서 받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로서는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칼보다도 더 무서웠던 것이다. 이래서 빵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금화를 충분히 손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큰 도깨비가 어디를 가나 어느 누구 한 사람 돈을 보고는 어떠한 것도 주려고 하지 않고 모두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딴 것을 가지고 오거나 일을 하러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선을 바라고 동냥을 하러 오거나 하구료."
그러나 도깨비는 돈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라곤 없었다. 일을 하기는 싫었고 그렇다고 적선을 바라고 동냥을 할 수도 없었다. 큰 도깨비는 잔뜩 화가 났다.
"어떻게 된 거야. 당신네는 금화가 더 필요할 텐데 말이야. 언제 당신네들에게 돈을 주어야 하나? 돈만 가지면 무엇이든지 사고 어떤 일꾼이든지 들여 놓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바보들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니죠, 그런 건 필요 없습죠. 여기선 지불이라든가 세금이라든가 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까짓 돈 따위는 가져도 쓸 데가 없어요."
큰 도깨비는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이 일이 바로 이반의 귀에 들어갔다. 백성들이 그에게로 찾아와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소신들은 어찌해야 하오리까? 소신들한테 말쑥한 샌님이 나타났사옵니다. 그는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술만을 좋아하고 깨끗한 옷이나 입기 좋아하면서 일은 숫제 하려고 들지도 않는가 하면 동냥을 하지도 않고 그저 금화라는 것만 내밀 뿐이니 말이옵니다. 전에 금화가 모이기 전에는 모두들 그 샌님에게 무엇이나 다 주었었는데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주는 사람이 없사옵니다. 이 샌님을 어떻게 해야 하오리까? 굶어 죽지나 않아야 할 텐데 말이옵니다."
이반은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먹여 살려야 하느니라. 목자(牧者)처럼 집집마다 돌아다니게 하라."
할 수 없이 큰 도깨비는 이 집 저 집 돌아다니게 됐다. 그렇게 하는 동안 이반의 궁궐로 차례가 돌아왔다. 큰 도깨비가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이반네서는 벙어리 여동생이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주 게으름뱅이에 속아왔다. 게으름뱅이는 일을 하지도 않는 주제에 꼭 맨 먼저 밥을 먹으러 와서는 장만해 놓은 음식을 싹싹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그 결과 벙어리 처녀는 사람의 손만 보고도 게으름뱅이를 곧잘 분간했다. 손에 못이 박힌 사람은 식탁에 앉히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고 있었다. 큰 도깨비가 식탁 머리에 앉자 벙어리 처녀는 얼른 그 손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못이 박히지 않았다. 손은 깨끗하고 매끈하며 손톱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벙어리 처녀는 무엇이라고 외쳐대더니 도깨비를 식탁에서 끌어냈다. 그러자 이반의 아내가 그에게 말했다.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 시누이는 손에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을 식탁에 앉히지 않기로 하고 있으니까요. 자, 잠깐 기다리세요. 곧 다들 자실 테니까, 그 다음에 남은 것을 잡수세요."
임금의 궁궐에서는, 나에게 돼지와 똑같은 것을 먹이려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자 큰 도깨비는 은근히 화가 났다. 이리하여 이반에게 말했다.
"임금님 나라에는 모든 사람에게 손으로 일을 하도록 하는 어리석은 법률이 있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어리석기 때문에 그런 궁리가 생긴 것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영리한 사람은 무엇으로 일을 하는지 아시나이까?"
"바보인 우리가 어찌 그런 걸 다 알겠는가. 우리들은 무엇이나 대체로 손과 등으로 하고 있지."
"그것은 말하자면 여러분들이 바보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럼, 소신이 어떻게 머리로 일을 하는 것인지 그 요령을 가르쳐 드릴까 하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알게 될 것이옵니다. 손보다 머리로 일을 하는 편이 쉽다는 것을."
이반은 놀랐다.
"음 그러고 보니 그게 바로 우리가 바보로 불리는 소위렷다!"
그러자 큰 도깨비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수월하지는 않사옵니다. 머리로 일을 한다는 것도, 소신의 손에 못이 박히지 않았다고 하여 지금만 해도 여러분들은 소신에게 먹을 것을 주시지 않사오나 그것은 말이옵니다. 그것은 말하옵자면 이런 것을 모르고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즉 머리로 일을 하는 것이 백 갑절이나 더 어렵다는 것을...... 음, 때로 머리가 빠개지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옵니다."
이반은 생각에 잠겼다.
"한데 어찌 그대는 그렇게 제 자신을 괴롭히는 거지? 머리가 빠개지는 수도 있다니 과연 수월한 일은 아니로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대로 손과 등을 써서 더 수월한 일을 하면 될 게 아닌가?"
그러자 도깨비가 말했다.
"소신이 소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바보인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옵니다. 만일 소신이 소신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영구히 바보가 되고 말 것이옵니다. 그러나 소신은 머리로 일을 해왔사온즉 이제부터 여러분들께도 가르쳐 드릴까 하옵니다."
"어디 가르쳐 주게. 손이 지쳤을 때 머리로 대신할 수 있다는 그 방법을."
도깨비는 그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반은 온 나라에 방문을 붙였다.
'훌륭한 신사가 나타나 여러분들에게 머리로 일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머리로는 손보다도 훨씬 더 많은 벌이를 할 수 있다. 모두들 배우러 나오라' 하고.
이반의 나라에는 높은 망대가 세워지고 거기에 반듯한 사닥다리가 걸쳐지고 그 위에 단이 마련되었다. 이반은 신사의 모습이 잘 보이도록 그곳으로 안내했다. 신사는 망대 위에 서서 지껄이기 시작했다. 바보 백성들은 구경을 하러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바보들은 손을 쓰지 않고 머리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신사가 실지로 보여 주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큰 도깨비는 단지 그저 말로만 어떻게 하면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바보들에게 가르칠 뿐이었다. 바보들에게는 뭐가 뭔지 통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저마다 제 일들을 하러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큰 도깨비는 진종일 망대 위에 서 있었다. 다음 날도 내내 서 있었다. 그리하여 줄곧 지껄여댔다. 그는 무엇이라도 좀 먹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바보들은, 만일 저 사람이 손보다 머리로 훨씬 더 잘 일을 할 수 있다면 머리로 제 빵쯤 실컷 만들려니 생각하고 망대 위의 그에게 빵을 가져다 주어야겠다든가 하는 생각은 숫제 하지도 않았다. 큰 도깨비는 그 이튿날도 단 위에 올라서서 줄곧 지껄여댔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 잠시 바라보고는 이내 또 이리저리 흩어져 갈 뿐이었다. 이반은 이따금 물었다.
"그래 어떤가, 그 신사는 머리로 일을 하기 시작했나?"
"아니옵니다. 아직도 여전히 지껄여대고 있기만 하올 뿐이옵니다."
큰 도깨비는 또 진종일 단 위에 서 있었고 이제는 차츰 쇠약해지기 시작하여 비틀거리게 됐다. 한 차례 비틀거리다가 그만 기둥에 머리를 부딪쳤다. 한 바보가 이것을 보고 이반의 아내에게 알리자, 이반의 아내는 들에 나가 있는 남편에게로 달려갔다.
"자, 가시죠. 구경을 하시러. 신사가 드디어 머리로 일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옵니다."
"그게 정말이오?"
이렇게 말하고 이반은 말을 돌려 망대로 갔다. 망대에 다 오자 도깨비는 굶주리다 못해 이제는 완전히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비틀거리면서 머리를 기둥에 박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반이 도착한 그 순간 도깨비는 쿡 거꾸러지더니 우당탕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 내렸다. 한 층 한 층 발판을 세기라도 하듯이. 이반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머리가 빠개지는 수도 있다고 언젠가 훌륭한 신사가 말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인 걸. 이건 정말 못이 문제가 아니다. 저렇게 일을 하다가는 머리가 부지를 못할 게 아닌가."
큰 도깨비는 사닥다리 밑으로 굴러 떨어지자 땅 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말았다. 신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를 볼 양으로 이반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데 별안간 땅바닥이 쫙 갈라지더니 큰 도깨비는 땅 사이로 떨어져 들어가고 나중에는 그저 구멍이 하나 남을 뿐이었다. 이반은 머리를 긁적긁적 긁었다.
"아, 요게 이런 빌어먹을 게 다 있나! 아니 또 그놈이었단 말인가! 그놈들의 애비가 틀림없으렷다. 별별 지독한 놈도 다 있구나!"
이반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고 온갖 인종이 그의 나라로 몰려오고 있다. 두 형들도 그에게 찾아와 그가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누군가가 찾아와서
"우리들을 좀 먹여 살려 주시구료"
하고 말하면
"그럭하지. 와서 살게나. 여기엔 없는 것 없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고 말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꼭 하나의 습관이 있다. 손에 못이 박힌 자는 식탁에 앉게 되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자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