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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마녀

4월의 마녀

Katherine Mansfield

 

세시는 날아갔다. 하늘 높이, 계곡을 넘어, 별빛 아래로, 강과 연못과 도로를 가로질러. 갓 태어난 봄바람처럼 투명하고, 해 질 녘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토끼풀 향기처럼 상쾌하게. 흰담비 털옷만큼이나 새하얀 비둘기를 타고 날아오르고, 나무에 머물고 꽃봉오리 속에서 숨 쉬다가,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그대로 꽃잎에 실려 흩날렸다. 연녹색의 청개구리 안에 깃들인 채 박하처럼 상큼하고 반짝이는 연못가에 웅크리고 앉기도 했다. 덩치 큰 개 속에 들어가 돌아다니다, 멀리 외양간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짖어 대기도 했다. 그녀는 새로 자라난 4월의 풀밭 속에, 봄 내음으로 가득한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투명하고 달콤한 액체 안에서 생명을 누렸다.

이제 봄이로구나, 세시는 생각했다. 오늘 밤에는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안에 깃들여야지.

이제 그녀는 타르 웅덩이 옆 길가에 앉은 귀여운 귀뚜라미 속에 있었다. 이제는 철문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 있었다. 재빠르고 모든 것에 적응할 수 있는 그녀의 마음은, 이제 열일곱 살이 된 첫날 밤을 맞아 일리노이의 바람을 타고 보이지 않게 떠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미 했던 말이었다. 그러자 부모님은 눈을 크게 뜨고 앉은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참고 기다리거라."

부모님이 충고했다.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 가족 전체가 기묘하고 뛰어나지.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과 섞이거나 결혼할 수 없단다. 그랬다가는 마법의 힘을 전부 잃어버리게 돼. 마법으로 여행하는 능력을 잃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조심해야 한단다. 조심해야 해!"

그러나 높다란 곳에 위치한 자신의 침실로 돌아온 세시는 목깃에 향수를 뿌리고 커튼 달린 침대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창밖에는 우윳빛 달이 일리노이의 시골 풍경 위로 떠올라 강을 크림으로, 길을 백금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래."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기묘한 일족의 일원이야.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검은 연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지. 원하기만 한다면 두더지 속에 들어가 겨울 내내 따뜻한 땅속에서 잠을 잘 수도 있어. 나는 어떤 것에도 깃들일 수 있지. 조약돌, 사프란, 아니면 사마귀에도. 평범하고 비쩍 마른 몸을 떠나서 정신만으로 멀리 모험을 떠날 수 있어. 이렇게!"

바람이 그녀를 휘감아 올려 평원과 들판 위로 날려 보냈다.

그녀는 황혼의 마지막 햇빛과 뒤섞여 빛나는, 작은 집과 농장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봄날의 불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평범한 모습에 괴상한 아이라서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거라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랑에 빠지겠어.

봄날 저넉의 농가 안뜰에, 많아 봤자 열아홉 살 정도의 검은 머리 소녀 하나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세시는 녹색 이파리에 숨어 우물로 떨어졌다. 그녀는 우물 안쪽 부드러운 이끼 안에 도사린 채로 어둑하고 서늘한 우물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움찔대는 아메바 속으로 옮겨 갔다. 이제 물방울 안에 있었다. 마침내, 차가운 컵에 담겨, 그녀는 소녀의 따뜻한 입가로 움직여 갔다. 부드러운 밤처럼 물 마시는 소리가 울렸다.

세시는 소녀의 눈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소녀의 검은 머리 안으로 들어가서, 빛나는 눈을 통해 거친 밧줄을 당기는 손을 바라보았다. 조가비 같은 귀로 소녀가 존재하는 세계의 소리를 들었다. 오뚝 솟은 코로 들어오는 우주의 냄새를 맡았고, 소녀의 특별한 심장이 뛰고 또 뛰는 소리를 들었다. 소녀의 혀가 묘하게 움직이며 노랫소리를 엮어내는 것을 느꼈다.

얘는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까? 세시는 생각했다.

소녀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밤이 내린 들판 위를 바라보았다.

"누구 있어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바람뿐이야."

세시가 속삭였다.

"바람뿐이야."

소녀는 자신을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서도 몸을 떨었다.

훌륭한 몸이었다. 예쁜 모양의 늘씬한 상아색 뼈 위로 살점이 고르게 덮여 있었다. 뇌는 어둠 속에 핀 한 송이 분홍 장미 같았고, 입가에는 사이다 와인의 맛이 맴돌았다. 새하얀 치아 위에 입술이 단단히 덮이고, 눈썹은 세상을 향해 부드럽게 굽이져 있었다. 우윳빛 목덜미 위에서 머리카락이 부드럽고 섬세하게 흩날렸다. 모공은 작고 단단히 닫혀 있었다. 코는 달을 바라보고, 볼은 작은 불길처럼 빛났다. 소녀의 육체는 마치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는 듯 깃털처럼 가볍게 한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균형을 잡으며 옮겨 갔다. 이 몸, 이 머리 안에 들어와 있으니 마치 화덕에 몸을 데우는 것처럼 포근했다. 잠들어 있는 고양이의 가르랑거림, 밤마다 바다로 흘러드는 따뜻한 하구의 물과도 같았다.

이 안은 마음에 들 것 같아, 하고 세시는 생각했다.

"뭐라고?"

소녀가 마치 목소리를 들은 양 물었다.

"네 이름이 뭐야?"

세시가 조심스레 물었다.

"앤 리어리."

소녀는 몸을 뒤틀었다.

"내가 대체 왜 큰 소리로 이름을 대고 있는 거지"

", ."

세시가 속삭였다.

", 너는 이제 사랑에 빠질 거야."

이 말에 답하듯 길 쪽에서 굉음이 울려왔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자갈 위에서 바퀴가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키 큰 남자 하나가 커다란 팔로 고삐를 높이 잡고 마차를 몰고 달려왔다. 그의 웃음이 뜰 안에 가득 퍼졌다.

"!"

"또 너야, ?"

"그럼 누구겠어?"

남자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울타리에 말고삐를 묶었다.

"너하고는 이야기 안 할 거야!"

앤은 휙 몸을 돌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양동이에서 물이 쏟아졌다.

"안 돼!"

세시가 소리쳤다.

앤은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는 언덕과 봄을 맞이하며 떠오른 별들을 바라보았다. 톰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세시는 그녀가 양동이를 떨어트리게 만들었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봐!"

톰이 달려왔다.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게 했는지 좀 봐!"

그는 웃으며 그녀의 신발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좀 떨어져!"

그녀가 손을 걷어찼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세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두개골의 크기를,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모습을, 반짝이는 눈빛을, 듬직하게 벌어진 어깨를, 그리고 손수건을 세심하게 움직이는 손에 숨겨진 강한 힘을 알아보았다. 사랑스러운 머릿속의 비밀 다락방에서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던 세시는, 숨겨져 있는 복화술사의 조종 철사를 잡아당겨 앤의 예쁘장한 입을 활짝 벌리게 했다.

"고마워!"

", 너한테도 예절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지?"

그의 손에서 나는 가죽 냄새, 그의 옷에서 풍기는 말 냄새가 따뜻한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고, 저 멀리 꽃이 가득한 밤의 들판에 누워 있는 세시는 마치 꿈이라도 꾸는 양 몸부림을 쳤다.

"너한테 쓸 예절은 없어, 없다고!"

앤이 말했다.

", 부드럽게 말해 봐."

세시가 말했다. 그녀는 앤의 손가락을 톰의 머리 쪽으로 움직였다. 앤이 퍼뜩 놀라 손을 다시 뒤로 뺐다.

"내가 미쳤나 봐!"

"그래 보이네."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도 놀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설마 나를 만질 생각이었던 거야?"

"나도 몰라. , 저리 가!"

 

그녀의 볼이 분홍색 숯처럼 달아올랐다.

"그냥 도망가는 게 어때? 막을 생각은 없는데."

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혹시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어? 오늘 밤에 나하고 춤추러 가지 않을래? 특별한 날이거든. 이유는 나중에 말해 줄게."

"싫어."

앤이 말했다.

"갈래!"

세시가 소리쳤다.

"나는 춤춰 본 적이 없어. 춤추고 싶다고. 땅에 닿도록 길게 휘날리는 드레스를 입어 본 적도 없어. 입어 보고 싶다고. 밤새 춤추고 싶어. 춤추는 여자가 어떤 기분인지 알지도 못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허락해 주시지를 않으니까.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 , 고양이, 메뚜기, 나뭇잎, 모든 것들을 알고 있지만, 봄날의 여인이 되어 본 적은 없어. 이런 날 밤의 여인이 되어 본 적은 없다고. , 제발, 우리는 꼭 춤추러 가야 해!"

그녀는 새로 산 장갑 안으로 손가락을 들이밀 듯 자신의 생각을 퍼트렸다.

"갈게."

앤 리어리가 말했다.

"가겠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밤 너랑 같이 춤추러 가야겠어, ."

"얼른 집으로 들어가!"

세시가 소리쳤다.

"세수도 하고, 가족들에게 말하고, 드레스를 준비하고, 다리미를 꺼내고, 방으로 가야지!"

"어머니, 저 생각을 바꿨어요!"

앤이 말했다.

마차는 산등성이를 타고 달려 내려갔고, 농가에는 활기가 돌았다. 목욕물을 끓이는 동안 석탄 난로 위에서는 드레스를 다릴 다리미가 달구어졌다. 어머니는 입에 머리핀을 잔뜩 물고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쏘아댔다.

"어떻게 된 거니, ? 너 톰을 싫어하지 않니!"

"그건 그래요."

앤은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문득 멈추어 섰다.

하지만 봄이잖아! 세시가 생각했다.

"봄이잖아요."

앤이 말했다.

그리고 춤을 추러 가기에 딱 좋은 밤이고. 세시가 생각했다.

"춤을 추러 가기에도……"

앤 리어리가 웅얼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욕조에 들어가서, 하얀 바다표범 가죽 같은 어깨에 비누를 바르고, 팔 아래쪽에 작은 비누거품 뭉치를 만들고, 따뜻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세시는 입을 움직여 미소를 짓게 하면서 이 모든 움직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잠시도 멈추거나 주저해서는 안 되었다. 그랬다가는 이 인형극이 전부 망가져 버릴 테니까! 앤 리어리는 계속 움직이고, 행동하고, 연기하고, 여기를 닦고, 저기에 비누칠하고, 이제 나가야 한다! 수건으로 몸을 닦아! 이제 향수를 뿌리고 분칠을 해!

 

"!"

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이 모습을 보았다. 백합과 카네이션처럼 온통 흰색과 분홍색이었다.

"오늘 밤 너는 대체 누구야?"

"나는 열일곱 소녀인데."

세시는 보랏빛 눈 속에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볼 수 없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앤 리어리는 고개를 저었다.

"4월의 마녀가 내 몸을 빼앗아 간 모양이야."

"비슷해, 아주 비슷해!"

세시가 소리 내어 웃었다.

", 그럼 이제 옷을 입어야지."

풍만한 몸에 좋은 옷을 걸치는 이 호사스러운 기분이라니! 그리고 밖에서 말을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 톰이 왔어!"

"기다리라고 해 주세요!"

앤이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 춤추러 가지 않을 거라고 전해 주세요."

"뭐라고?"

문가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세시는 서둘러 다시 주의를 기울였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주 잠시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앤의 몸을 내버려 둔 것이다. 멀리서 달빛에 젖은 봄의 전원을 가로질러 말발굽과 마차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주 잠시, 그녀는 톰을 찾아가서 그 머릿속에 들어가, 스물두 살짜리 남자가 이런 밤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서둘러 히스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다 말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처럼 재빨리 돌아와 앤 리어리의 머릿속에 들어앉아 홰를 쳤다.

"!"

"가라고 하세요!"

"!"

세시는 다시 자리를 잡고 자신의 생각을 퍼트렸다. 그러나 이제 앤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싫어, 싫어, 난 그가 싫단 말이야!"

떠나면 안 됐는데, 아주 잠시라도. 세시는 자신의 정신을 소녀의 손으로, 심장으로, 머릿속으로, 부드럽게, 부드럽게 퍼트렸다. 일어나. 그녀는 생각했다.

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입어!

앤은 외투를 입었다.

, 이제 밖으로 나가!

싫어! 앤 리어리는 생각했다.

나가!

"."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더 이상 톰을 기다리게 하지 말거라. 허튼소리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나가렴. 대체 너 어떻게 된 거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 다녀올게요. 늦게 돌아올 것 같아요."

앤과 세시는 함께 봄의 밤하늘 아래로 달려 나갔다.

 

길게 늘어진 깃털을 한껏 부풀린 채 부드럽게 춤추는 비둘기들, 공작들, 무지개같이 빛나는 눈빛과 불빛으로 가득한 방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앤 리어리는 계속 돌고, 돌고, 돌면서 춤을 추었다.

", 정말 멋진 밤이야."

세시가 생각했다.

", 정말 멋진 밤이야."

앤이 말했다.

"너 좀 이상해."

톰이 말했다.

음악과 노래가 강물같이 그들을 아련히 감싸고 돌았다. 그들은 그 위를 떠다니다, 수면 아래로 들어가,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숨을 쉬러 올라오고, 숨을 몰아쉬며, 익사하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다시 휘돌았다. 속삭이고 한숨 쉬며, 아름다운 오하이오의 곡조에 맞추어.

세시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앤의 입술이 벌어지며 음악이 새어 나왔다.

"그래, 난 이상해."

세시가 말했다.

"평소하고 다른데."

톰이 말했다.

"그래, 오늘 밤은 그렇지."

"너는 내가 알던 앤 리어리가 아니야."

"그래, 아니야, 전혀 아니지."

세시가 멀리멀리 떨어진 곳에서 중얼거렸다.

"그래, 전혀 아니야."

입술이 움직이며 이렇게 말했다.

"꽤나 묘한 기분이 드는데."

톰이 말했다.

"뭐가 말이야?"

"너에 대해서."

그는 그녀를 몸에서 떨어트리고 계속 춤추며 무엇을 찾으려는 듯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눈을 읽을 수가 없어."

그가 말했다.

"내가 보이는 거야?"

세시가 물었다.

", 네 일부는 여기에 있지만, 다른 일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톰은 걱정 섞인 얼굴로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돌리며 말했다.

"맞아."

"왜 나하고 여기에 온 거야?"

"난 오고 싶지 않았어."

앤이 말했다.

"그럼 왜 온 건데?"

"뭔가가 날 여기에 오게 만들었어."

"뭐가?"

"나도 모르겠어."

앤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두려움이 엉겨 붙어있었다.

", , , ."

세시가 속삭였다.

"조용히. 그거야. 돌아, 돌아."

그들은 어두운 방 안에서 속삭이고 뒤척이고 솟아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음악에 이끌려 움직이고 돌면서.

"하지만 결국 춤추러 왔잖아."

톰이 말했다.

"내가 그런 거야."

세시가 말했다.

"이리 와."

그리고 그는 가볍게 그녀를 이끌고 춤추며 열린 문을 통해 홀에서, 사람들과 음악에서 떨어진 곳으로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들은 마차에 올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

그가 그녀의 떨리는 손을 붙들었다.

"."

그러나 마치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녀의 이름이 아닌 듯한 말투였다. 그는 계속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다시 뜨였다.

"나는 너를 죽 사랑했어. 너도 알지?"

그가 말했다.

"알아."

"하지만 너는 언제나 변덕스럽게 굴었고,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지."

"그래서 안 될 건 없잖아. 우리니 둘 다 너무 젊다고."

앤이 말했다.

"아냐, 나는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세시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톰은 그녀의 손을 놓고는 얼어붙었다.

따뜻한 밤이었고, 땅의 내음이 그들이 앉아 있는 곳 사방에 일렁였다. 그리고 새로 생명을 얻은 나무들이 잎 하나하나를 통해 숨 쉬며 몸을 떨고 일렁였다.

"나도 모르겠어."

앤이 말했다.

", 하지만 나는 알아."

세시가 말했다.

"너는 키도 크고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야. 오늘은 아주 멋진 밤이고. 너와 함께 있었던 이 밤은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 거야."

그녀는 낯설고 차가운 손을 뻗어, 머뭇거리는 그의 손을 다시 잡아 자기 쪽으로 이끌고는, 꼭 붙들고 온기를 나누려 했다.

톰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 밤, 너는 이랬다저랬다 하고 있어. 한번은 이렇게 굴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잖아. 나는 옛 시절을 추억하는 마음에서 너에게 춤추러 가자고 청했던 거야. 처음 네게 청했을 때는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오늘 우물가에 서 있자니, 무언가 변한 것이, 네가 정말로 변한 것이 느껴졌어. 너는 다른 사람이었어. 무언가 새롭고 부드러운, 다른 무언가……"

그는 알맞은 단어를 찾으려 말을 더듬었다.

"모르겠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네 모습이 그렇게 보였어. 네 목소리에서도 느껴졌어. 하지만 다시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은 분명해."

"아니야."

세시가 말했다.

"나야, 나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리고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두려워."

그가 말했다.

"너는 또다시 나를 상처 입힐 테니까."

"그렇게 되겠지."

앤이 말했다.

아냐, 아냐,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 세시는 생각했다. , 저 사람에게 말해 줘, 나를 위해 말해 줘.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 줘.

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톰은 제법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서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나는 떠날 거야. 여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일자리가 생겼어. 내가 그리울 것 같아?"

"."

앤과 세시가 대답했다.

"그럼 작별 키스를 해도 될까?"

"."

세시는 다른 사람이 말하기도 전에 얼른 대답했다.

그는 낯선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는 낯선 입술에 키스했고, 몸을 떨었다.

앤은 하얀 석상처럼 있었다.

"!"

세시가 말했다.

"팔을 움직여. 저 사람을 안아!"

그녀는 달빛 속에서 나무를 깎아 마는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세시가 속삭였다.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이 그녀의 눈에서 본 사람은 바로 나야. 나라고. 그리고 그녀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는 마치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 같은 모습으로 천천히 몸을 뺐다. 그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어. 아주 잠시, 여기에……"

"?"

세시가 물었다.

"잠깐이지만, 느낌이……"

그가 손으로 자신의 눈을 덮었다.

"신경쓰지 마. 그럼 이제 집으로 데려다줄까?"

"제발 그래 줘."

앤 리어리가 말했다.

그는 지친 손길로 고삐를 흔들며 말에게 혀를 찼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 겨우 11시밖에 되지 않은 봄밤의 달빛 속에서, 그들은 마차의 움직임에 맞춰 덜걱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빛이 일렁이는 풀밭과 상큼한 토끼풀 내음이 양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세시는 들판과 초원을 보며 생각했다. 그럴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오늘 밤 이후로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럴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문득 부모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다시 들려왔다.

"조심하거라. 하잘것없는 필멸자와 결혼해서 네 마법의 힘을 전부 잃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조심하거라.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 아니냐."

그래요, 그래요. 세시는 생각했다. 만약 그가 나를 원한다면 나는 여기에서 즉시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요. 그러면 봄밤마다 떠돌아다닐 필요도, 새와 개와 고양이와 여우 속에 깃들일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와 함께할 수 있으면 충분할 거예요. 오직 그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길이 삐걱이며 마차 아래에서 속삭였다.

"."

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그는 차가운 눈으로 길을, 말을, 나무를, 하늘을,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네가 앞으로 몇 년 안에, 어쩌다가 일리노이의 그린타운에 들르게 되면 말이야. 여기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인데,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

"할 수 있는 일이면."

"잠시 들러서 내 친구를 만나 줄 수 있어?"

앤이 묘한 말투로 띄엄 띄엄 말했다.

"?"

"좋은 친구거든. 그 애한테 네 이야기를 했어. 주소를 줄게. 잠깐만 기다려 봐."

마차가 그녀의 농장 앞에 멈추자 달빛 아래에서 그녀는 작은 손가방에서 연필과 종이를 꺼내 무릎에 종이를 대고 끄적였다.

"여기 있어. 알아볼 수 있겠어?"

그는 종이를 보고는 당황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시 엘리엇, 윌로 가 12번지, 일리노이 주 그린타운."

그가 말했다.

"언젠가 그 아이를 찾아가 주겠어?"

앤이 물었다.

"언젠가는."

그가 말했다.

"약속해?"

"이게 우리 문제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가 거칠게 소리쳤다.

"내가 이런 이름에, 종이쪽지에 왜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는 종이를 둥글게 구겨서 외투 속으로 쑤셔 넣었다.

", 제발 약속해 줘!"

세시가 애걸했다.

"……약속을……"

앤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날 좀 놔줘!"

그가 소리쳤다.

이제 지쳤어. 세시는 생각했다.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야 해. 힘이 약해지고 있어. 밤을 타고 옮겨 다니는 일은 내 힘으로는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가 한계니까. 하지만 떠나기 전에……

"……떠나기 전에."

앤이 말했다.

그녀는 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건 내가 키스하는 거야."

세시가 말했다.

톰은 그녀를 밀어내고는, 앤 리어리를, 그녀의 마음속 깊고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다른 말은 조금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주름살은 사라졌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입은 부드러움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달빛에 빛나는 그녀의 얼굴 속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마차에서 내려 준 다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빠르게 길을 따라 마차를 달려 내려갔다.

세시는 그대로 떠났다.

감옥에서 해방된 앤 리어리는 그대로 울음을 터트리고는, 달빛 아래 오솔길을 따라 달려 집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세시는 아주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귀뚜라미의 눈으로, 그녀는 봄밤의 세상을 보았다. 개구리의 눈으로, 그녀는 웅덩이가에 홀로 잠시 앉아 있었다. 밤새의 눈으로, 그녀는 달빛에 창백하게 빛나는 커다란 느릅나무 꼭대기에 앉아 두 채의 농가의 불이 꺼지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는 이곳에서, 하나는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기이한 능력을, 그리고 자신의 일족 중에는 언덕 너머 넓은 세상의 사람들과 결혼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

점차 약해져 가는 그녀의 정신력이 밤새의 날개를 타고 나무를 떠나 야생 겨자가 가득한 풀밭을 날아갔다.

"아직 그 종이쪽지 가지고 있어, ? 언젠가, 몇 년 안에, 때가 오면, 나를 만나러 올 거야? 그러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내 얼굴을 보고, 나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를 기억할 수 있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녀는 서늘한 밤하늘에서 잠시 머물렀다. 마을과 사람들로부터 100만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농장과 대륙과 강과 언덕 하늘 위 높은 곳에서.

"?"

부드러운 목소리로.

톰은 잠들어 있었다. 밤이 깊었다. 그의 옷가지는 의자에 걸려 있거나, 침대 끄트머리에 깔끔하게 개켜져 있었다. 그리고 하얀 베개 위, 머리 위로 조심스레 뻗은 한 손안에, 글자가 적힌 작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한 번에 1센티미터씩, 그의 손가락이 종이를 감싸며 꽉 붙들었다. 그리고 그는 뒤척이지도, 알아채지도 못했다. 찌르레기 한 마리가 놀랍도록 조용히 달빛이 깃든 유리창에 대고 날갯짓을 한 다음, 그대로 조용히 날아올라 잠시 머뭇거린 후 동쪽으로, 잠든 대지 위를 날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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