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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평원

불타는 평원

Juan Rulfo

 

어미 개는 죽었지만 강아지들은 남았다네 - 멕시코 민요

 

뻬뜨로닐로 플로레스 만세!!”

함성이 벼랑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치며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올라와 사그라졌다.

잠시 후,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꽤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어난 물살에 자갈밭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곧이어 그쪽에서 나는 다른 함성이 벼랑모퉁이를 꺾고 나와 암벽에 퉁기면서도 뚜렷하게 들려왔다.

뻬뜨로닐로 플로레스 장군님 만세!”

우리는 서로 쳐다보았다.

뻬르라(암캐라는 뜻. 역주)가 천천히 일어나 탄창을 칼빈총에 장전했다. 그리곤 사총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따라와, 너희들, 어떤 투우들을 갖고 놀 건지 보자구!” 베나비데스 사 형제는 몸을 낮추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뻬르라 혼자만 뻣뻣한 자세로 마른 몸을 반쯤 참호위로 내놓고 걸었다.

우린 움직이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다. 바닥에 일렬로 벌렁 누워 도마뱀들처럼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돌로 쌓은 울타리는 구릉 위를 오르내리며 몹시 구불거렸다. 그들, 뻬르라와 사총사도 발 없는 뱀처럼 구불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고개를 들어 위쪽을 향하자 그늘이 영 시원찮은 비누풀들의 낮은 줄기가 보였다.

볕에 달구어진 응달에서 비누풀이 썩은 듯한 냄새가 났다.

한낮의 졸음이 밀려왔다.

저 밑에서 나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수시로 벼랑을 타고 와 우리 몸을 잠들지 못하게 흔들어대곤 하였다. 귀를 바짝 세워 들어보려 해도 와글거리는 소용돌이뿐이었다. 마치 멀리 마차들이 좁은 자갈길을 지날 때 나는 소리 같았다.

갑자기 한 방의 총성이 울렸다. 벼랑이 무너지기나 하는 것처럼 메아리쳤다. 그것이 모든 것을 다 깨어나게 했다. 비누풀 사이에서 놀던 붉은 개똥지바퀴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낮잠을 즐기던 매미들도 깨어나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뭐야?” 아직 잠에서 덜 깬 뻬드로 사모라가 물었다.

그러자 치우일라가 일어나 칼빈을 장작처럼 질질 끌고 앞서 몇 사람이 간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가 어찌 돼서 어찌 된 건지 봐야겠어.”라고 사라지면서 말했다.

매미들이 찌르르 우는 소리가 어찌나 커졌던지 우린 귀가 멍멍해서 그들이 언제 이쪽에 나타났는지 몰랐다. 생각지도 못했을 때, 우리 코앞을 무방비상태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다른 때를 위해 차려 입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우린 몸을 돌려 참호 구멍 사이로 그들을 응시했다.

첫 열이 지나고 둘째 열, 그리고 줄줄이 이어졌다. 잠에 못 이겨 몸은 앞으로 굽은 채였다. 개울을 지날 때 물속에 처박았기나 한 것처럼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신호가 왔다. 긴 휘파람이 들리고 뻬르라가 간 저쪽에서부터 콩 볶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그 뒤를 이었다.

식은 죽 먹기였다. 몸통들이 거의 참호 구멍을 막고 서다시피 있었다. 그렇게 총부리를 들이대고 쏘아대니, 그들은 죽는다는 생각도 미처 못한 채 삶의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한 방 두 방을 먹이자 끝난 셈이었다. 금방 시야는 비었고, 일어나 보니 누가 거기다 갖다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길 가운데 반쯤 뒤틀려 누운 자들만 보였다. 목숨을 건진 자들은 사라졌다. 나중에 다시 나타났지만 당장은 거기에 없었다.

다음 사격은 기다려야 했다.

우리 중에 몇몇이 외쳤다. “뻬드로 사모라 만세!”

다른 쪽에서 거의 은밀하게 대꾸가 왔다.

살려주세요, 장군님! 살려주세요! 아또차의 아기 예수님, 살려주세요!”

새들이 지나갔다. 개똥지바퀴 떼가 우리 위를 지나 산 쪽으로 날아갔다.

세 번째 총격전은 뒤에서 시작됐다. 그들이 불을 뿜자, 우리는 반사적으로 튀어 올라 건너편 울타리를 넘어 우리가 죽인 자들 저편까지 뛰었다.

그리곤 덤불 사이로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마치 메뚜기 떼 위에 넘어진 것처럼 총알이 발뒤꿈치를 물어대는 것 같았다. 이따금, 그리고 점점 더 많이, 우리 중의 누군가가 총알에 맞았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달렸다. 벼랑 끝에 이르렀고 우리는 굴러떨어지다시피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들은 쉬지 않고 쏘아댔다. 불빛에 놀란 너구리들처럼 우리가 다른 쪽으로 기어올라가고 난 후에도 계속 쏘아댔다.

뻬뜨로닐로 플로레스 장군님 만세! 후레자식들아!”, 그들이 다시 기세를 올렸다. 그 함성은 폭풍우 속의 천둥처럼 울리면서 벼랑 아래로 흩어졌다.

우리는 크고 둥근 바위들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면서 뻬드로 사모라를 쳐다볼 뿐이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으로 물었다. 그렇지만 그도 마주보기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다. 마치 모두가 말문이 막히거나, 잉꼬처럼 혀가 둥그렇게 말려 입을 떼기조차 힘든 것 같았다.

뻬드로 사모라는 우리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눈으로 셈을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밤샘을 한 사람 마냥 충혈된 그 눈으로 말이다. 우리를 하나하나 세었다. 거기 있을 때 몇 명이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확실치 않은 듯, 우리를 훑고 또 훑었다.

몇인가 없어졌다. 뻬르라와 치우일라, 그리고 그들을 따라간 친구들을 빼고서 열하나인가 열둘인가가 없었다. 치우일라는 총에 몸을 기대고 비누풀 위에 걸터앉아 정부군이 떠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법하였다.

뻬르라의 두 아들인 호세 형제가 제일 먼저 고개를 쳐들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이쪽저쪽으로 거닐면서 뻬드로 사모라가 무언가 말해주길 기다렸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처럼 또 당하면 우린 끝장이야.”

그리곤 즉시, 왈칵 치미는 분노를 삼킨 것처럼 목이 메어 호세 형제에게 소리쳤다.

너희 아버지가 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참아, 조금 참으란 말야! 찾으러 갈 거니까!”

멀리서 쏜 총알 하나가 앞 등성이의 도요새들을 솟구쳐 올렸다. 새들은 벼랑을 타고 우리 가까이 펄떡거리며 왔다. 그러다 우리를 보곤 기겁하여 햇빛을 가르며 방향을 돌려 앞 등성이 나무들로 되돌아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호세 형제는 원래 자리로 가서 말없이 쭈그리고 앉았다.

그렇게 오후 내내 있었다. 땅거미가 깔릴 무렵 치우일라가 사총사 중의 하나와 함께 왔다. 그들은 저 아래 삐에드라 리사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지만, 정부군이 철수했는지 어쩐지는 몰랐다. 분명한 건 모든 게 잠잠해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따금 늑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자네, 삐쵼(새끼 비둘기란 뜻. 역주) - 뻬드로 사모라가 나를 불렀다. - 호세 형제하고 삐에드라 리사까지 갔다오는 임무를 맡길 테니까, 뻬르라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 죽었으면 묻어 줘.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야. 부상자는 산골주민이 볼 수 있게 어디 위에 올려놓고. 하지만 아무도 데려와선 안 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갔다.

말들을 가두어 둔 우리에 다다르니 늑대울음이 더 가까이 들렸다.

이미 말들은 없어졌고 전부터 살고있던 나귀 한 마리만 보였다. 틀림없이 정부군이 데려간 것이었다.

사총사의 나머지는 잡목 뒤에서 찾았다. 거기에는 누가 쌓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셋이 한데 포개져 있었다. 그들의 머리를 치켜들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흔들어 보았다. 소용없었다. 모두 고이 세상을 뜬 뒤였다. 우물가에는 우리 패 하나가 칼질을 당한 것처럼 늑골을 밖으로 드러낸 채 있었다. 그곳을 위아래로 돌아다녀 얼굴이 거의 새까맣게 변한 동지들을 하나는 여기, 또 하나는 저기에서 찾아냈다.

죽은걸 또 죽인 거야, 뭐 하려고 그랬는지.” 호세 형제 중의 하나가 말했다.

우린 뻬르라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유명한 뻬르라를 찾아야했다.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데려간 모양이군. -우린 그렇게 생각했다-. 정부에 보이려고 데려간 게 틀림없어.” 그래도 사방을 계속 뒤졌다. 늑대들은 계속 울어댔다.

밤새 울부짖고 있었다.

그 며칠 후 아르메리아에서 강을 건너다 뻬뜨로닐로 플로레스와 다시 마주쳤다. 돌아서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마치 총살형을 당하는 것 같았다. 뻬드로 사모라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말인 갈색의 그 땅딸막한 수놈을 달려 앞장서 나갔다. 그 뒤엔 우리가 무더기로 말 목덜미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어쨌든 떼죽음이었다. 나는 어떻게 내 죽은 말과 함께 강속으로 처박혔는지 모르지만, 물살은 우리 둘을 멀찌감치 끌고 가 낮은 물웅덩이 모래밭에 내려놓았다.

그것이 우리가 뻬뜨로닐로 플로레스 군대와 붙은 마지막 판이었다. 그 뒤론 싸우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해, 한동안 검은 그림자를 피해 다니면서 싸우질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우리는 추적을 피해 산 속에 틀어박히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숫자가 아주 적은 패거리로 나뉘게 되었고 아무도 우릴 겁내지 않았다. 이젠 아무도 외치고 다니지 않았다.

저기 사모라 일당이 온다!”

대평원에 평화가 돌아왔다.

그러나 오래가진 않았다.

아르메리아 강이 바다로 떨어지기까지 몇 시간이고 여울을 이루는 또신 계곡 은신처에 숨어 있은 지 여덟 달쯤 되었다. 아무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때 세상에 돌아가려고 몇 해 얌전히 썩을 참이었다. 닭을 치기 시작했고 때때로 사슴을 찾아 산들을 타기도 했다. 다섯, 아니 거의 네 명이었다. 뒤에서 우릴 총질해댈 때 거기서 호세 형제중의 하나가 엉덩이 바로 밑을 관통당해 다리 한쪽이 썩어들어 갔기 때문이다.

거기 있으면서 우린 이제 아무짝에도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를 목매달 것임을 알지 못했더라면 귀순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알만시오 알깔라가 나타났다. 뻬드로 사모라의 전령 노릇을 하는 자였다.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가 소 한 마리를 잡고 있는 중인데 뿔피리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평원 쪽에서 난 것이었다. 잠시 후에 다시 들려왔다. 처음엔 날카롭다가, 다음엔 쉰 소리, 그리고 다시 날카로워지는 수소의 울부짖음 같았다. 그 소리는 긴 메아리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가 우르릉대는 강물에 빨려들었다.

해가 막 뜰 참에 그자, 알깔라가 소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사식 탄띠를 두 줄로 양어깨와 허리에 차고, 말 엉덩이엔 트렁크처럼 한 다발의 라이플을 비스듬히 걸쳐 가져왔다.

그가 말에서 내렸다. 우리에게 총을 나누어주곤 남은 것을 다시 꾸렸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급한 일이 없으면 산부에나 벤뚜라로 떠날 준비를 하시오. 거기 뻬드로 사모라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소. 그동안에 난 조금 더 내려가 사나떼스(까마귀의 일종. 역주) 형제를 찾아보려오. 나중에 오겠소.”

다음 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돌아왔는데 정말 그와 함께 사나떼스가 왔다. 황혼빛에 그들의 얼굴이 검붉게 보였다. 우리가 모르는 세 사람도 있었다.

말들은 가다가 구합시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갔다.

산부에나 벤뚜라에 닿기 한참 전부터 목장들이 불타는 걸 보게 되었다. 농장 곳간들은 기름 탱크가 타기라도 하듯 불길을 더욱 높게 뿜어 올렸다. 불꽃이 날아올라 밤하늘에 번쩍이는 구름 덩어리를 이루며 소용돌이쳤다.

산부에나 벤뚜라의 화광에 도취되어 우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어떤 것이 우리가 할 일은 거기서 남은 것을 끝장내라고 명령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그러나 거기 닿기 전에 말을 타고 타박타박 달려오는 무리와 만났다. 그들은 안장 머리에 굵은 밧줄을 매어 사람들을 질질 끌고 있었다. 더러는 묶인 채 간간이 손으로 기었고, 나머지는 손도 늘어진 채 머리가 매달려오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편에 뻬드로 사모라와 많은 일행이 말을 타고 왔다.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많았다. 우린 흐뭇했다.

그 긴 행렬이 한창 때처럼 다시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걸 보니 흐뭇했다. 바람을 타고 날리는 무르익은 우이사뽈 꽃처럼 땅에서 들고일어나 평원 전체를 공포로 가득 채우던 그 처음시절 같았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다시 돌아오나 싶었다.

우린 산뻬드로로 향했다. 거길 불 지르고 뻬따깔 쪽으로 갔다. 옥수수를 수확할 철이었다. 옥수수밭은 평원 위로 불어대는 강한 바람에 휘어진 채 바싹 말라있었다. 그리하여 불길이 번지는 광경은 아주 그럴싸했다. 평원 전체가 거의 다 불바다로 변했다. 위로 뭉실뭉실 솟는 연기는 갈대와 꿀 냄새를 풍겼다. 불이 갈대밭까지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얼굴에 숯검정을 뒤집어쓰며 연기 속을 허수아비처럼 지나다녔다. 여기저기서 소 떼를 몰아 일정한 곳에 모아놓곤 가죽을 벗겼다. 그땐 소가죽이 우리의 사업이었다.

뻬드로 사모라가 우리한테 말했던 것이다.

이 혁명은 부자들 돈 갖고 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벌이는 이 혁명에 필요한 무기와 자금을 대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무슨 깃발을 내걸고 싸울 일이 없지만, 빨리 돈을 긁어모아서 정부군이 오면 우리가 막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말했다.

마침내 정부군이 왔고, 전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마구 쏴 죽였다. 그래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은 우리를 겁낸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우리도 겁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매복해 있다가 그들의 말발굽에 채인 돌멩이 소리나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우리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꼴은 가관이었다. 그들이 지나갈 때 우리를 곁눈질로 쳐다보는 걸 거의 느낄 수 있었다.

너희들 냄새는 다 맡고있어. 다만 모르는 체하는 것뿐이지.”,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갑자기 땅에 엎드려 말을 방패삼아 우리와 대치를 하곤 했다. 그 동안에 다른 부대가 야금야금 울안에 갇힌 닭들을 움켜잡으려는 듯 우리를 조여 들어왔다. 우리 수효가 많긴 하였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건 그때 벌써 알아차렸다.

그리고 상대는 공연히 질러대는 고함 소리에 놀라거나 모자를 벗어 흔들면 기겁을 하던 우르바노 장군의 졸개들이 이미 아니었다. 우리와 싸우라고 농장에서 억지로 끌고온 그자들은 우리 그림자만 봐도 꽁무니를 빼곤 하였다. 그자들은 예전에 끝장났다. 다음엔 다른 자들이 왔다. 그런데 이번이 제일 고약했다. 지금은 올라체아라던가 하는 자가 끈질기고 거만한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떼오깔띠체 고지대에서 데려온 떼뻬우안 인디언이 섞였다. 이 신중한 인디언들은 몇날 며칠을 굶고 버티기를 예사로 하는가 하면서,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몇 시간이고 노려보다가 누군가 고개를 내밀면 즉각 날려버리는 자들이었다. 그 긴 ‘30-30’ 총알 한 방으로 썩은 나뭇가지 부러뜨리듯 척추를 바숴버리곤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부군에 대항해 매복하는 대신에 목장이나 습격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그래서 우리는 흩어졌다. 한 패는 여기, 다른 패는 저기에서 엄청난 해를 입히고 다녔다. 뿔난 망아지가 발로 차고 뛰며 설쳐대듯.

그렇게 하여, 화산 자락에 있는 하스민 마을의 목장들이 불타는 동안 다른 패거리인 우리는 지서들을 습격하곤 했다. 사람들이 우리 수효가 많다고 믿게끔, 싸리나무 가지를 끌고 다니면서 그 먼지 속에 숨어 고함을 질러대었다.

정부군은 차라리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었다. 우리가 이동을 하다 보면 그들이 앞서있기도 하였고 또 겁먹은 듯 뒤쳐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화전을 일구는 것처럼 거대한 화염이 산맥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목장과 마구간들이 밤낮으로 불타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뚜사밀빠나 사뽀띠뜰란처럼 큰 마을은 밤새도록 탔다. 그러면 올라체아 부대는 그쪽으로 강행군을 해가곤 했으나, 그들이 도착할 때쯤엔, 그들 훨씬 뒤인 이쪽 가까이 있는 또똘리미스빠가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건 멋진 광경이었다. 군인들이 한판 붙을 참으로 뒤돌아서면, 우리는 재빨리 무성한 덤불 숲속에서 나와, 텅 빈 평원을 가로질러 가는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 앞의 적은 바닥이 없는 깊은 물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큰 말편자 같은 대평원의 산간 계곡 속에 숨는 것이었다.

우린 꽈스떼꼬마떼를 불지른 후 거기서 투우 놀이를 했다. 투우는 뻬드로 사모라가 아주 좋아하는 놀이였다.

정부군은 아우뜰란 쪽으로 떠난 뒤였다. 우린 이미 빠져나왔지만 거기 우리 소굴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꽈스떼꼬마떼에 홀로 남겨두고 갔던 것이다.

거기 투우 놀잇거리가 있었다. 낙오된 병사 여덟에다 농장 지배인과 감독이 남아 있었다. 이틀 치 투우감이었다.

우린 광장 대용으로 산양우리 같은 둥그런 마당을 준비했다. 우리는 투우사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울타리를 타고 앉았다. 그들은 뻬드로 사모라가 투우 노릇을 하듯 뿔 삼아 휘두르는 꼬챙이 칼을 보자마자 정신없이 도망 다녔다.

여덟 병사는 한나절 심심풀이였다. 나머지 둘은 다음 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가장 힘이 든 건 죽창처럼 길쭉하니 마른 감독이었다. 그는 몸을 살짝살짝 비키면서 잘도 빠져 다녔다. 반대로 지배인은 곧장 죽어버렸다. 땅딸막하고 둔한 그는 꼬챙이 칼 앞에 몸을 비키는 아무런 재간도 피우지 않았다. 마치 그 자신이 받쳐 죽길 바랬던 것처럼 아주 조용히,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죽었다. 그러나 감독은 정말 애먹였다.

뻬드로 사모라는 그들에게 모포 한 장씩을 주었기 때문에, 적어도 감독은 그 무겁고 두꺼운 담요로 꼬챙이칼질을 멋지게 피했다.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를 깨닫자마자 담요를 열심히 흔들어댔다. 투우가 지칠 때까지 그렇게 가빠를 놀렸다. 뻬드로 사모라는 몇 군데 담요를 구멍낸 것 외에는 소득 없이 감독을 쫓아다니느라 피로한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자 참을성을 잃었다. 그쯤 해놓곤, 곧장 덤비는 대신에 갑자기 다른 손을 놀려 담요를 한쪽으로 쏠리게 하곤 꼬챙이 칼로 그자의 옆구리를 찾았다. 감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눈치채지 못한 듯, 아직도 한참을 벌떼 쫓는 시늉으로 모포를 아래위로 흔들어대며 돌고 있었다. 허리를 틀다가 자기 몸의 피를 보고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놀라서 옆구리에 뚫린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으려 했다. 한줄기로 뿜어져 나오는 그 붉은 것이 그를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다. 금방 마당 가운데 쓰러져 우리 모두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있는 것을 우리가 목매달았다. 안 그러면 죽기까지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때부터 뻬드로 사모라는 할 수만 있으면 더 자주 투우 놀이를 했다.

그때 우리는 뻬드로 사모라를 비롯해 대부분이 아랫마을 출신이었다. 나중에 다른 지방 사람들이 합류했다. 긴 다리에 우유덩이 같은 얼굴을 한 사꼬알꼬의 금발 인디언들도 왔고, 하루 종일 진눈깨비라도 내리는지 언제나 판쵸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마사미뜰라라는 추운 지방 출신들도 있었다. 이들은 날씨가 더워지자 배고픈 것도 잊었다. 그래서 뻬드로 사모라는 그들에게 순전히 모래와 바람에 씻긴 바위뿐이 없는 저 아래 화산 골짜기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금발 인디언들은 금새 뻬드로 사모라와 죽이 맞아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언제나 찰싹 붙어 다니면서 그의 편을 들고 또 하라는 대로 다 따랐다. 가끔은 마을에 있는 반반한 처녀들을 훔쳐와 그에게 바치기도 했다.

난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군대가 아주 가까이 우리 흔적을 쫓고 있을 때, 잠이 와 죽겠으면서도 산속을 소리 내지 않고 걷던 그 밤들이 떠오른다. 뻬드로 사모라는 검붉은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누가 뒤쳐지지 않나 살폈다.

이봐 자네, 삐따시오, 말에 박차를 가해! 그리고 레센디스, 당신은 내가 잠들지 않게 얘기를 거시오!”

그랬다. 그는 우리를 보살펴 주었다. 우리는 잠 때문에 눈까풀은 풀어지고 아무 생각도 없이 한밤중 내내 걷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를 알고 있던 그는 고개를 쳐들도록 말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알아보는 그의 잠기 없이 부리부리한 두 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돈을 세듯 우리 모두를 하나하나 세면서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의 말발굽소리가 들리면 언제나 그의 눈이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것 때문에 추위도, 쏟아지는 잠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장님처럼 그를 따라갔던 것이다.

그런데 사율라 고개에서 기차탈선이 있고부터 일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그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아직까지 뻬드로 사모라와 치노 아리아스, 치우일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을 수 있었고 혁명은 제대로 굴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뻬드로 사모라가 사율라에서 기차탈선을 일으켜 정부의 비위를 거슬려 놓았다.

시체 더미에서 치솟던 불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람들은 시체를 삽으로 한데 모으기도 하고 혹은 통나무처럼 고개 아래로 굴러 떨어뜨려 큰 더미를 만든 다음,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렀다. 고약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아주 멀리까지 풍겼다. 며칠이 지나도 새까맣게 탄 시체 냄새가 난다.

그 조금 전만 해도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진 못했다. 소뿔과 뼈 따위로 길을 기다랗게 파놓고 그곳도 모자라 기차가 굽이를 도는 지점에서 레일을 벌려놓았다. 그렇게 해놓고 기다렸다.

새벽 여명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객차 지붕에 빼곡하게 올라간 게 거의 분명히 보였다. 일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차가 우리 앞을 지날 때 아직 좀 어둡긴 하였지만 창녀들을 낀 군인들이란 걸 알았다. 기다렸다. 기차는 서지 않았다.

맘만 먹었다면 사격을 할 수도 있었다. 기차는 공연히 기적이나 울리면서 비탈길을 힘겹게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잠시 얘기라도 건넬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일은 다른 방향으로 되어갔다. 굽이를 돌 때 누가 흔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차가 뒤뚱거리자 그들은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가득 찬 무거운 객차들 때문에 기관차는 곧 뒤로 미끄러지며 탈선했다. 목쉰 구슬픈 기적을 몇 번인가 길게 뿜어댔지만 아무도 도울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긴 객차들에 딸려가다가 아래로 떨어져 갔다. 그 뒤를 이어 객차들이 차례차례 아래로 내리꽂혔다. 그리곤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마치 우리들까지 죽은 것처럼.

일이 그렇게 되었다.

생존자들이 쇳조각 사이로 기어 나오기 시작하자 우리는 겁이 나서 오금을 못 펴고 그 자리를 떴다.

여러 날을 숨어 지냈다. 그러나 정부군은 우리를 은신처에서 끄집어내러 왔다. 더 이상 가만 놔두지 않았다. 마른고기 한 조각 조용히 씹을 틈을 안 주었다. 잠잘 시간도 먹을 시간도 끝장나고 밤이나 낮이나 똑같았다. 우리는 또다시 계곡으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정부군이 먼저 와 있었다. 우리는 화산 자락을 타고 돌았다. 제일 높은 봉우리들을 넘어 하나님의 길이라고 하는 곳에 다다르니 또다시 죽으라고 쏴대는 정부군을 만났다. 쏟아져 내려오는 돌풍 같은 총알세례로 주위의 공기까지 뜨겁게 느껴졌다. 우리가 숨은 바위들도 하나하나 흙덩이처럼 바스러졌다. 우리 몸뚱아리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총이 기관총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는 수천이 넘는 군대인 줄만 알고 무조건 도망칠 생각밖에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하나님의 길’, 산복숭아 나무 뒤에 치우일라가 추워서 그러는 것처럼 담요를 목까지 감싸고 웅크린 채 멈춰있었다. 그 옆을 지나는 사람에게 죽음을 나누어주려는 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피로 물든 이빨을 드러내고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았다.

줄행랑을 친 덕분에 많은 사람이 괜찮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한텐 나빴다. 어떤 길에서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우리 편을 보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들은 무두질하지 않은 가죽처럼 말려 올라간 모습으로 늙을 때까지 거기 남아 있었다. 까마귀들은 창자부터 순전히 해골만 남을 때가지 파먹었다. 게다가 높게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바람결에 흔들거리며 많은 날, 때론 몇 달, 때론 마치 누가 말리려고 널어놓은 것처럼 완전히 누더기가 된 바지 조각만이 바람에 잉잉거렸다. 그걸 보고 누구는 일이 정말 심각하게 되어간다고 느꼈다.

우리 몇몇은 쎄로그란데(큰 고개라는 뜻의 지명. 역주)로 방향을 잡았다. 뱀처럼 몸을 질질 끌며 며칠을 갔다. 눈길은 평원을 향해 있었다. 그 땅 아래 우리가 태어나서 살다가 지금은 사람들이 잡아 죽이려고 기다리는 그쪽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구름이 드리우는 그늘에 놀라기까지 했다.

이제 우린 싸움꾼이 아니니까 조용히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누군가한테 간절히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래저래 숱한 피해를 입힌 터라 사람들은 악심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한 유일한 일은 적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쪽 위의 인디언들도 우리를 더 이상 원치 않았다. 그들의 가축을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정부가 나눠준 무기를 들고, 우리를 보는 대로 죽이겠다고 알려왔다.

당신들 보고 싶지 않소. 하지만 보게 되면 죽일 거요”, 그렇게 알려왔다.

이렇게 되니 설 땅이 없었다. 우리가 묻힐 땅 한 뼘조차 남아 있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들마저 헤어져 각자 다른 방향을 잡기로 했다.

뻬드로 사모라와 한 오 년 같이 돌아다녔다. 좋은 날도 있었고 궂은날도 겪으면서 오 년이 흘렀다. 그 뒤론 다시 보지 못했다. 웬 여자를 따라 멕시코시티로 갔는데 거기서 살해당했다고 한다. 우리 몇몇은 그가 돌아오길, 어느 날인가 나타나 우리가 다시 무장봉기를 하게되길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쳤다.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거기서 죽었다고 한다. 나와 함께 감옥에 있던 사람이 그가 죽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삼 년 전에 출옥했다. 거기서 여러 가지 죄목으로 형을 살았다. 뻬드로 사모라와 한패였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건 그들이 모르고 있었다. 다른 것들 때문에 잡아들였는데, 그중 한 가지는 처녀 도둑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그 여자 중의 하나가 나하고 같이 산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좋고 가장 착한 여자일 것이다. 내가 언제 풀려날 줄 알고 감옥 밖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삐쵼, 당신을 기다렸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난 그때 나를 죽이려고 기다린 줄 알았다. 저 먼 꿈속에서처럼 그녀가 누구였던가를 기억해냈다. 뗄깜빠나 위에 억수로 쏟아지던 찬 빗줄기가 다시 느껴졌다. 그날 밤 우린 그 마을을 휩쓸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가 빠져나오다가 골로 보낸 그 영감이 틀림없었다. 내가 그 딸을 말안장에 끌어올리고, 일행 중의 하나는 영감의 머리에 총알을 한 방 먹였다. 나는 그녀가 앙탈 부리며 물어뜯지 말라고 머리를 몇 번 쥐어박았다. 열너댓 먹고 눈이 예쁜 소녀였지만 어찌나 애를 먹이는지 길들이는데 혼이 났다.

당신 아이가 있어요. -이어서 한 말이었다-. 저기요.”

그리곤 눈 둘 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길쭉한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얘야, 모자를 벗어야지. 아버지가 보시게.”

그러자 아이는 모자를 벗었다. 영락없는 나였다. 눈매에 심술기가 약간 있는 것까지 닮았다. 그 아비를 빼닮은 그런 것이 있었다.

저 애도 삐쵼이라고 불러요. -지금은 내 아내인 그 여인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저 애는 산적도 아니고 살인자도 아니에요. 저 애는 선량한 사람이랍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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