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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폐허

원형의 폐허

J. L. Borges

 

그리고 만일 그가 너를 꿈꾸기를 멈추어버렸다면 - <거울을 통해>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그 캄캄한 밤>, 그가 상륙하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고, 대나무 카누가 후미진 늪 속에 가라앉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음험한 사람이 남쪽에서 왔다는 것, 그의 집이 상류 쪽 깊은 계곡의 많은 마을 중 한 마을 - 그곳의 젠드어는 아직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또 문둥병도 별로 없는 곳이다. - 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 창백한 남자가 진흙에 입을 맞추고, 살을 째는 날카로운 잎사귀를 밀쳐낼 생각조차 않고(아마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채 구역질하며 그 원형 유적까지 기어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그곳에 있던 사원은 오래전에 불타버렸으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이제는 누구도 그 사원의 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레에는 호랑이나 말처럼 생긴 석상이 있는데, 그것들은 한때 붉은색이었으나 이제는 잿빛으로 퇴색했다. 그 사람은 기둥 아래 누워 잠이 들었 다. 그는 머리 위로 비치는 햇살 때문에 깨어났다. 그는 그의 상처가 아문 것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몸이 피로해서가 아니라 의지의 결정으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는 이 사원이 그가 집요하게 추구했던 장소임을 알았다.

한때 신들의 것이었으나 이제 불타고 쓰러져 버린, 나무가 이처럼 뒤덮여 있지 않은 또 하나의 신성한 사원이 하류 쪽에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해야만 할 일은 꿈꾸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한밤이 되어서 시끄러운 새소리에 잠을 깼다. 그는 맨발자 국, 무화과 열매, 그리고 물항아리 등을 통하여 그 지역 사람들이 그가 잠든 것을 경외의 눈으로 훔쳐보았고 그의 주술을 두려워하며 그의 보호 를 받고자 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는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고, 허물어진 벽의 움푹 들어간 곳을 찾아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초인적인 것이긴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을 꿈꾸고자 했다.

그는 완전한 모습의 사람을 꿈꾸어 그를 현실로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주술적 계획은 그의 정신을 깡그리 소진시켜, 누가 그의 이름이나 그의 전력을 묻더라도 그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있는 무인지경의 폐허인 이곳 든 그 일을 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갖다주었던 것도 잘된 일이다. 그들이 가져다준 쌀과 과일은 그의 육체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했고, 그는 잠자고 꿈꾸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처음에 꾼 꿈들은 혼돈스러웠다.

얼마 후 그는 꿈속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유적과 비슷한 원형극장의 한가운데 있는 꿈을 꾸었다. 말 없는 학생들의 무리가 줄지은 좌석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맨 뒷줄에 있는 얼굴들은 수천 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고 별만큼이나 높이 있었는데도 그 모습이 또렷했다.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해부학, 우주론, 그리고 주술을 강의했다. 학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이해하였다는 듯이 대답하려 했다. 그들은 그들 중 한 명으로 하여금 공허한 환영의 상태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그 시험의 중요성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자나 깨나 환영들의 대답에 대하여 숙고하였으며, 마귀에 홀리지 않도록 애썼으며,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우주에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영혼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한 열흘쯤 지나, 그는 자신의 강의를 수동적으로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통한 심정으로 깨달았다. 그보다는 때때로 반박하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기대할 만한 것이 있음을 알았다. 수동적인 학생들은 비록 온화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개체의 수준(the level of individuals)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도전적인 학생들은 조금 나았다.

어느 날 오후(그는 이제 오후에도 잠을 잤다. 하루종일 새벽녁에 두세 시간만 깨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수많은 환영 학생들을 내 아 버리고 단 한 명만을 남겼다. 그 학생은 말수가 적고 깐깐하며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 날카로운 인상은 그 자신과도 흡사했다. 그 학생은 학우들이 갑작스레 없어져 버린 것에 대하여 오래 신경쓰지 않았다. 몇 차례의 개인 교습 만에, 그는 선생도 놀라게 할 만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그는 마치 뻘과 같은 잠으로부터 벗어나, 순간적으로 새벽인 줄로 착각하고서, 하릴없이 오후 나절의 햇살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꿈을 꾸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밤새도록, 이튿날 하루 내내, 그는 투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체력을 소진시키려고 숲속을 헤매고 다녔으며, 독미나리밭에서 몇 차례의 선잠에 빠졌으나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힘겹게 그 학생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그에게 몇 마디도 하지 못해서 그 학생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계속되는 불면 속에서, 분노의 눈물은 그의 늙은 눈시울을 붉게 적셨다. 그는 비록 그가 상위질서와 하위질서의 모든 비밀을 모두 다 알수 있다 하더라도, 산만하게 떠도는 꿈속의 물질로 무엇을 만든다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모래로 천을 짜고 바람으로 동전을 만든다는 것보다 오히려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는 새로운 작업 방법으로 찾으려 했다. 새로운 방법을 실행하기 전, 그는 약 한 달 동안 쇠약해진 체력을 회복하였다. 그는 꿈꾸기에 관한 이전의 생각들을 모두 포기해 버렸고, 그러자마자 매일매일 충분한 시간 동안 잠들 수 있었다.

그동안 그는 몇 차례 꿈을 꾸었으나, 그 꿈들을 무시했다. 그는 보름달이 될 때까지 그의 작업을 미루어두었다. 보름이 되어, 그날 오후, 강물에 가서 몸을 깨끗이 하고 하늘의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고 주문을 외운 뒤, 잠이 들었다. 그는 즉시 꿈을 꾸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따뜻하고 은밀하고 주먹 크기만 한, 아직은 얼굴도 성도 없는 진홍빛 육체의 반영(半影)이 꿈속에 나타났다. 달 밝은 14일간의 밤 동안, 그는 세심한 정성으로 그 꿈을 꾸었다. 매일 밤 그 꿈은 더 선명해져 갔다. 그는 그것을 만지지 않았다. 오로지 바라보고, 살피고, 그리고 때때로 쳐다보는 것만으로 수정하였다. 그는 그것의 모든 면을 보살피고 느꼈다.

14일째 밤,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폐동맥을 가볍게 건드려 보고는 이어서 심장의 안과 밖 전체를 만졌다. 그는 이 시험에 만족하고, 다음 하룻밤 동안은 꿈을 꾸지 않았다. 그 대신 다시 심장을 만졌으며, 어떤 별의 이름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다른 장기들도 모양을 갖추게 하였다. 일 년이 채 못 되어 골격과 눈꺼풀까지 갖추게 만들었는데, 수많은 머리카락을 만드는 일이 그중 가장 어려웠다. 그는 완전한 형체를 갖춘 젊은 사람을 꿈꾸어 만들었으나 그 사람은 일어나 앉거나 말하지도 않고 그의 눈은 뜰 줄도 몰랐다.

밤이면 그는 그 젊은 사람이 잠자는 모습만을 꿈꾸었다. 그 노신의 천지창조설에 의하면, 하급 신인 조물주가 일어서지 못하는 한 사람의 붉은 아담을 빚었다고 한다. 그가 꿈속에서 만든 아담도 이와 비슷하여, 어색하고 서투르고 미숙한 것이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그의 창조물을 부숴버릴 뻔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참았다(부숴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지상의 신들에게 기원하고 또 기원했지만 소용이 없자, 그는 호랑이인지 망아지인지 모를 석상 아래 엎 드려 미지의 도움을 막연하게 간청했다.

그날 석양 무렵, 그는 그 석상에 대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것은 살아 있었고, 꿈틀거렸다. 그것은 호랑이와 망아지가 합쳐진 이상스런 잡종이 아니었다. 그것은 호랑이면서 동시에 망아지였으며 또 황소였고 장미였고 폭풍우였다. 이 여러 얼굴의 신이 다음과 같이 계시했다. 그의 지상에서의 이름은 <>이며, 한때 이 원형 사원(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원에서도 역시)에서 뭇사람들의 제물과 숭배를 받아왔다. 그는 이제 꿈속의 환영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며, <> 자신과 꿈꾸는 자를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은, 그렇게 해서 그것이 피와 살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이렇게 창조된 사람은 모든 제의에서 가르침을 받은 후, 아직 피라미드만 남은 하류 쪽 사원 유적에 보내져서 그곳에 그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도록 해야 한다. 마침내 꿈속의 환영이 꿈속에서 깨어 일어났다. 그는 <>의 계시대로 모든 것을 행했다. 그는 꿈으로 만든 자에게 상당 기간 동안(결국 2년이나 걸렸다) 우주의 신비와 불의 의식에 대하여 가르쳤다. 마법사는 그와 헤어지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그 아픔을 속으로 감추었다. 교육적 필요 때문이라는 핑계로 마법사는 매일 꿈꾸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그는 약간 결함이 있는 오른쪽 어깨를 고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때때로 이 모든 일들이 이미 벌어졌던 적이 있다는 느낌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보통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는 눈을 감고 다음과 같 이 생각하곤 했다. <이제 나는 나의 아들과 함께 지낼 것이다.> 또는 <내 가 만든 알들은 나를 기다릴 것이며,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의 현실 적응력을 조금씩 키워주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에게 건너편 산꼭대기에 깃발을 꽂도록 명령했다. 다음 날 그 꼭대기에는 깃발 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이와 유사한 실험들을 시도해보았고, 그 실험은 매번 보다 더 대담한 것이 되었다. 마침내 그의 아들이 태어날 때가 되었음을 그는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그날 밤, 그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하고, 강 하류 쪽에 희미한 유적만 남은 다른 사원으로 떠나보냈다. 떠나보내기 전에, 그는 그동안의 모든 가르침에 대한 아들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그의 아들이 자신이 환영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즉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승리와 평화는 점차 권태로 흐려졌다.

해 질 무렵이나 동틀 무렵이 면, 그는 하류 쪽의 원형사원 유적에서 그의 아들이 똑같은 의식을 할 것이라 상상하고 석상 아래에 엎드리곤 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꿈꾸지 않거나 아니면 보통 사람들과 같은 꿈을 꾸었다. 우주의 소리와 형체들에 대한 식별도 무디어 갔으며, 그의 이러한 영혼의 쇠퇴로 인하여 그의 보이지 않는 아들은 성장해 갔다. 그의 삶의 목적은 이제 충족되었으며, 그는 일종의 황홀감을 느꼈다. 어떤 이들은 몇 년이 지났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몇십 년이 지났다고도 하는데, 하여튼 세월이 제법 지난 후 두 명의 뱃사공이 한밤중에 그를 깨웠다. 그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북쪽의 어떤 사원에 사는, 불에 데지도 않고 불 위를 걸을 수 있는 훌륭한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신의 계시를 문득 떠올렸다. 그는 지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만이 그의 아들이 환영임을 알고 있음을 기억했다. 이러한 기억은, 처음에는 그를 진정시켰지만, 나중에는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는 그의 아들이 남다른 자신의 능력 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마침내 자신이 한갓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꿈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얼마나 굴욕적이고 미칠 일이겠는가! 모든 아버지들은 단지 쾌락의 혼돈 속에서 만든 그의 아들에 대해 애정을 갖는다. 그러니 마법사가 하룻밤에 걸쳐 은밀하게 그 모습 하나하나를 만들어 낸 자신의 아들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근심은 갑작스레 끝이 났는데, 어떤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째, (오랜 가뭄 뒤에) 새털처럼 가벼운 구름이 언덕 위에 피어올랐고, 남쪽 하늘에는 표범의 잇몸처럼 붉은 구름이 걸려있었다. 그러고는 짙은 연기가 피어올라 밤의 대기를 흐리게 만들었으며, 얼마 후 들짐승들이 놀라서 달아났다. 수 세기 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 다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불의 신>의 성소인 원형 유적은 다시금 불에 다 타버렸다. 새들도 우짖지 않는 어느 날 새벽, 마법사는 벽을 타올라 가는 불꽃을 보았다. 잠시 동안 그는 물속으로 몸을 피할까 생각해보았으나, 곧이어 늙은이에게 죽음은 영광이고 또 그의 고역을 면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불꽃으로 다가갔다. 불꽃은 그의 육체를 물어뜯지 않았다. 그 불꽃들은 마치 열기가 없는 듯 그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안도와 굴욕과 공포 속에서 그는 그 역시 다른 어떤 사람이 꿈꾸어 만든, 하나의 환영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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