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Ingeborg Bachmann
우리가 제가끔 돌의 장벽을 친 듯이 식탁에 앉거나, 또는 밤이 되어 둘 다 동시에 문 잠그려는 생각을 하기 대문에, 현관문께에서 부딪히게 되는 경우, 그럴 때 우리를 휩싸는 비애는 마치 세상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 그러니까 한나에게서 내게로 - 이어져 있는 하나의 활처럼 내게 느껴진다.
그리고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에는, 아무런 움직임 없는 하늘의 심장부를 찌르려고 화살이 겨누어져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복도를 지나 되돌아올 때면 그녀는 나보다 두 걸음 앞장서 자기의 침실로 들어간다.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인사말도 없이. 그리고 나는 도망치듯 내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내 눈앞에는 고개를 떨군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귓속에는 그녀의 침묵이 가득하다.
그녀는 누워서 애써 잠을 청하고 있을까?
아니면 깨어 있는 채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잖은가!
내가 한나와 결혼할 당시에는 그녀 자신보다는 그녀가 애기를 가졌다는 사실이 더 큰 이유로 작용했었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어떠한 다른 결판을 낼 필요도 없었다.
우리에게서 연원된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성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하여 이 세계조차도 확대되어 가는 듯이 느껴지는 사실에 나는 사뭇 감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궤도의 출발점에 서 있는 초승달과 같은 존재였다.
새로이 모습을 드러내어 은은하게 실날처럼 빛날 때, 세 번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는 초승달.
이전에는 없었던 멍청한 순간들이 내게 자주 닥쳐왔다.
심지어는 사무실에서까지도 - 더할 수 없이 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 또는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나는 문득 이런 멍청한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어린아이에게로, 이 미지의 환영 같은 존재에게로 향해 있었고, 나의 온 생각은 그 생명체가 갇혀 있는 따스하고 어두운 육체의 밀실에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어린애에 대한 기대감은 우리에게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게 되었고, 친구들도 소홀히 대하게 되었다.
좀 더 큰 집을 구했고, 보다 좋고 보다 안정된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어린애 때문에, 내게는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지만 마치 지뢰 지대를 밟을 때처럼, 문득 소스라쳐 뒷걸음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폭발력이 잠재한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위험에 대한 별다른 예감없이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나는 나를 오해했다.
유모차는 큰 바퀴 달린 것이 좋은지, 작은 바퀴 달린 것이 좋은지 그런 것을 결정짓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그녀에게는 무관심한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나는 정말 모르겠군. 전적으로 당신 마음대로 하구려. 아니, 듣고 있어.)
같이 상점에 들어가서 애기의 모자, 옷, 기저귀를 살 때면 그녀는 분홍빛과 하늘빛, 인조모와 순모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까 갈팡질팡하면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물건 고르는 일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실상 너무나 그 일에 마음을 쓰고 있는 나를 보고 말이다.
내 마음속에 흘러가버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그것은 마치 한 사람의 야만인이,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세계, 취사장과 잠자리, 일출과 일몰, 사냥과 식사시간 틈바구니의 세계 역시 수백만 년이라는 과거의 연륜을 가졌고, 앞으로도 흘러갈 바로 그 세계라는 것, 이 수많은 태양계 가운데서 하잘것없는 공간을 차지하고 무서운 속도로 자전하며, 동시에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바로 그 세계라는 사실을, 문득 새삼스럽게 터득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렇듯 갑자기, 나는 스스로를 전혀 다른 연관하에서, 나와 어린애를 묶어놓은 연관하에서 보게 된 것이었다.
일정한 시점이 오면, 아마도 11월 초순이나, 중순이 오면 한때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그리고 나 이전의 모든 인간들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생의 행렬에서 차례를 맞게 될 어린애와의 연관하에서.
그것은 정확하게 표상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이 전체의 계열! 잠들기 전에 검은 양과 흰 양을 표상해내는 일처럼(검은 양 한 마리, 흰 양 한 마리, 검은 양 한 마리, 흰 양 한 마리...) 때로는 몽롱하게 졸음을 가져다주는, 그러다가 어느새 암담할 지경으로 말똥말똥 깨어나게 만드는 상상인 것이다.
한나는 어머니에게 배운 이 방법이 어떠한 다른 수면제보다도 효력이 있다고 장담을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처방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다.
그보다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슬을 생각하는 것이 한결 효과적으로 안정을 가져올는지 모른다.
- 그리하여 셈은 아르박삿을 낳았느니라. 아르박삿은 서른다섯이 되었을 때 셀라를 낳았고, 셀라는 에벨을, 그리고 에벨은 벨렉을 낳았느니라.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벨렉은 르우를 낳았고, 르우는 스룩을, 스룩은 나홀을 낳았고, 그리고도 이어서 수많은 아들과 딸이 생기었느니라.
아들들은 끊일 줄 모르고 아들을 낳았느니라.
이를테면 나홀은 타라를, 타라는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나는 몇 번인가 이 과정을 끝까지 더듬어 생각해보려고 실험을 했었다.
앞으로 뿐 아니라 뒤로 거슬러서 아마도 우리의 조상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아담과 하와에 이르기까지.
또는 어쩌면 우리의 조상일 수도 있는 호미니덴까지.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든 이 사슬의 끝은 모호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에 집착하든, 다른 한 쌍의 표본에 집착하든 그런 것은 이미 하등의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 계열에 집착하려 들지 않고, 차라리 왜 누구나가 한 번은 이 계열의 차례에 서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우리는 쉽사리 이 사슬에 개입하든 이탈하든 전혀 개의치 않게 되며, 모든 생성에 대해, 최초의 생명과 최후의 생명에 관해 전혀 초연하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모든 인간은 일단 한 번은 기존의 유희를 위해 차례에 서게 되며, 그것을 이해하도록 강요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 번식과 교육, 경제와 정치라는 이름의 유희를 위해. 그리고 돈과 감정에, 일과 창의에, 또한 사고라고 부르는 유희의 규칙을 정당화시키는 일에 종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아무런 거침이 없이 번식해가도록 되어 있는 존재인 까닭에 각기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유희는 그 유희를 즐기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아니면 즐기는 사람의 편에서 유희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나는 그야말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한 어린애를 세상에 태어나게끔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기만 해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을 어린애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나의 두 손은 언젠가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안아줄 것으로, 제7구, 칸들 거리 4층에 자리잡은 우리의 집, 프라터 공원에 이르기까지 시내를 종횡으로 누비고 있는 거리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돈되어 있는 모든 세계들도 장차 내가 어린애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들로. 나를 통하여 어린애는 모든 것의 명칭을 듣게 될 것이었다.
- 책상과 침대, 코와 발. 또한 정신과 신, 영혼 같은 단어들도. 내 소신으로는 그런 것들은 불필요한 말들이지만, 아마도 마음속에 담고 그냥 배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지난 후에는 공명, 투명양화, 천년기설, 우주여행 같은 복잡스런 언어까지도. 모든 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모든 것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를, 문의 손잡이와, 자전거, 양칫물과 서식 용지 따위를, 나는 내 어린애에게 알려주리라.
내 머리 속은 어지럽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린애가 세상에 태어나자, 물론 나는 준비해놓은 거창한 백과사전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어린애는 노랗게 흐물거리는 뭉텅이로 가련하기 짝이 없이 거기 누워 있었다.
그런데 나는 미처 한 가지 준비를 해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어린애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는 일을. 그래서 서둘러 한나와 의견을 모아서 세 개의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나의 아버지의 이름과 한나의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하지만 세 이름 중의 어느 것도 실제 불려지지는 않았다.
7일이 되어갈 때 우리는 어린애를 핍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지금 기억할 수가 없다.
아마도 거기에 대한 책임은 내게도 있었을 것이다.
지치지도 않고 무의미한 철자를 만들어 연결하는 데 열심을 부리던 한나를 따라 나도 어린애를 애칭으로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원래의 이름이, 그렇듯 앙증스런 발가숭이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여워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생겨난 이름이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나는 그 이름에 대해 격분을 느꼈다.
이따금 나는 그것을 어린애가 미리 방어할 수 있기나 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닌 듯이 이름의 원인을 어린애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핍스! 나는 앞으로도 그 이름을 계속 부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평생, 그 이름을 웃음거리로, 또한 우리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것이다.
핍스가 깨었다, 잠들었다 하며 연한 하늘빛 아기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어린애의 입가에 묻은 몇 방울의 침과 시큼한 우유를 닦아주거나 소리쳐 울기라도 하면 달래줄 양으로 안아 올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럴 때 나는 그 어린 존재도 내게 무엇인지 의도하고 있다는 것, 그렇지만 나로 하여금 그 의도를 간파할 시간의 여유를 허용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마치 누구에게든 현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눈초리를 보내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영혼처럼, 반드시 시간의 여유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잘 어린애의 침대 곁에 앉아서 거의 움직이는 것 같지 않는 어린 얼굴을, 초점 없이 바라보는 눈을 내려다보며 판독해낼 근거가 없는 고래의 문자를 주시하듯이 어린 모습을 관찰했다.
한나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닥치는 일에 매달려서, 책의 처방대로 어린 것에게 마실 것을 주고, 재우고, 깨우며, 침대를 바꿔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을 보는 것은 내게 기쁜 일이었다.
그녀는 조그만 탈지면 조각으로 애기의 코를 닦아주었고, 통통한 허벅지 사이에 분가루를 뿌렸다.
그렇게 어린애와 그녀는 혼연일체가 된 듯싶었다.
두세 주일이 지나자 그녀는 어린애에게서 최초의 웃음을 유도해 내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과연 놀랍게도 어린애가 웃음을 지어 보였을 때, 그 찡그린 얼굴이 내게는 수수께끼로, 전혀 무관한 존재로 여겨졌다.
심지어 어린애의 눈은 갈수록 자주 정확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팔을 뻗쳐 오는데도, 내게는 그것이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는, 다만 훗날 언젠가 어린애가 습득하게 될 근거를 우리가 섣불리 찾고 있다는 의혹이 솟아올랐다.
한나도, 아마 어느 누구라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이미 이즈음부터 나의 불안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두려워하면서도, 이미 그때부터 한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나의 참된 사고의 영역에서 그녀를 제외하며 멀리 두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안에서 하나의 약점과 - 어린애로 인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패배에 접근하는 감정을 발견해냈다. 내 나이는 한나와 마찬가지로 서른 살이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젊고 우아한 모습의 한나.
하지만 어린애가 내게는 아무런 새로운 젊음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어린애가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그만큼 나는 내 것을 뒤로 물리지 않을 수 없었고, 어린애가 웃음을 띠고 환성을 지르고 고함을 칠 때마다 나는 벽으로 물러났다.
그 미소, 그 울부짖음, 그 고함의 싹을 아예 질식시킬 힘은 내게 없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점이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세월은 빨리도 흘러갔다.
핍스는 유모차에서 똑바로 고개를 가누고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첫 이가 나왔고, 곧잘 우렁차게 울어 제쳤다.
때로는 몸을 쭉 뻗치기도 하고 비틀거리며 섬마를 하더니 눈에 띄게 점차 똑바로 서게 되었고, 또 온 방을 두루 헤매며 기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첫말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중지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수록 알 수가 없어졌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전에 나는 어린애에게 세계를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린애와의 침묵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 이래로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되었고, 다른 깨우침을 받게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얼마든지 사물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수 있고, 그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어린애는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와 더불어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그로 인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적나라한 모습의 세계, 아무런 의미를 붙이지 않은 세계를 그에게 그대로 맡겨서는 안 된단 말인가?
실상, 나는 어린애를 의도와 목적, 선과 악으로 그리고 실제의 것과 가상의 것으로 끌어들이지 않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를 내 세계로 유인해 들여와서, 배우고 믿게 하며 기뻐하고 슬퍼하게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곳, 우리가 서 있는 이 세계야말로 모든 세계 중에서 가장 나쁜 세계이며, 따라서 오늘날까지 어느 누구도 이 세계를 이해한 자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린애가 서 있는 이곳에서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지금껏 아무것도. 앞으로 그것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지?
그러다가 문득 나는 깨닫게 되었다. -- 모든 것은 언어의 문제라는 것을.
비단 독일어뿐이 아닌, 그것과 함께 세상을 혼란케 하기 위해 바벨에서 만들어진 다른 모든 언어의 문제라는 것을.
그 언어 가운데서 하나의 언어가 서서히 구체화되어 몸짓과 시선에, 사고의 전개와 감정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미 우리의 불행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하나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즉 어린애 자신이 새로운 언어를 구축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언어에 닿지 않게끔 그를 어떻게 보호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종종 나는 핍스만 데리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한나가 어린애에게 베푼 행위,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행한 애무며, 교태, 장난기를 어린애에게서 다시금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나 놀라웠다. 그는 우리를 좇아 빠져들고 있었다.
한나와 나뿐이 아닌, 대체로 모든 인간을 좇아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자율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열심히 그를 관찰하고는 했다.
어린애에게는 모든 길이 동일한 것이었다. 모든 존재도 동일한 것이었다.
분명코 한나와 나는 항시 그 애의 곁에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 애와 좀더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그애에게는 동일한 것이었다.
앞으로 그것이 얼마나 더 갈 것인지?
어린애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눈사태나 파렴치함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붙어 달랑거리는 한 낱의 잎새를 무서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마리의 나비를 무서워했다. 파리를 보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놀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 만일 저 나무가 온통 바람에 휘어버릴 때, 내가 그냥 아무런 해명을 해주지 않는다면,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린애는 이웃의 꼬마랑 계단에서 부딪혔다.
그때 그는 꼬마의 얼굴을 정통으로 아무렇게나 쥐었다가는 물러서버렸다.
아마 앞에 있는 것이 어린애였다는 의식조차도 없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 애는 이전에는 기분이 언짢을 때나 울어 제쳤는데, 이제는 아우성을 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개 잠들기 전의 시간에 식탁으로 데려가려 안아 올리거나 장난감을 뺏거나 하기만 해도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 어린애에게는 굉장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었다.
방바닥에 벌렁 엎드려 양탄자를 꽉 부여잡고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거품을 입에 담을 지경으로 아우성을 칠 수 있었고, 잠을 자면서도 마치 흡혈귀가 가슴팍에 달라붙은 듯이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있었다.
이 고함을 보고서, 나는 어린애에게는 고함을 칠 용기가 주어져 있으며, 그 아우성이 효과가 있다는 내 견해를 한층 굳혔던 것이다.
아,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달래듯이 어린애를 나무라며 버릇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를 껴안고 입을 맞추는가 하면, 엄하게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며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못 쓴다고 타이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감탄할 만한 유혹의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름 모를 강물을 꼼짝 않고 굽어보고 서서, 물줄기가 자기 쪽으로 흐르도록 유인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강변을 서성대면서, 초콜릿, 오렌지, 팽이, 장난감 곰을 가지고 흐름을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무가 그늘을 던질 때면 나는 무슨 소리인가를 들은 듯싶었다.
어린애에게 나무의 언어를 가르치라!는 마음속의 음성을. 이 세계는 하나의 시도이다.
그런데 이 시도는 지금껏 똑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하여 똑같은 결과를 초래해온 것이다.
그것으로써 이젠 지겹도록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니 다른 시도를 하라!
그를 그늘로 가게 하라! 지금까지의 결과란 죄와 사랑, 절망 속에서의 인생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유의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와 같은 죄와 사랑, 그리고 낱낱의 불행을 면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아이에게는 전혀 다른 생각을 위한 자유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일요일이면 나는 아이를 데리고 비엔나의 숲속을 거닐었다.
그리고 우리가 물가에 다다랐을 때, 내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게 물의 언어를 가르치라! 우리는 돌을 건너뛰고 나무 뿌리를 지났다.
그에게 돌의 언어를 가르치라! 그로 하여금 새로운 뿌리를 박게 하라! 나뭇잎이 떨어졌다.
어느덧 가을이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나뭇잎의 언어를 가르치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언어의 한마디도 알 수가 없었고 찾아낼 수도 없었다.
내가 지닌 것은 오로지 나의 언어뿐,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묵묵히 어린애를 데리고 오르막길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 집에서 어린애의 문장을 조립하는 것을 배웠고 그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느 틈엔가 아이는 원하는 바를 표현하게 되었고, 부탁의 말을 발음해내었고, 명령을 하거나, 또는 오직 말을 하기 위한 말을 했다.
훗날의 일요일 산보 길에서 아이는 풀줄기를 잡아 뜯었고 벌레를 집어드는가 하면 풍뎅이를 움켜잡았다.
이제 그것들은 이미 아이에게 동일하게 무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이는 그 동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내가 미리 앞질러 손에서 빼앗지 않을 경우에는 죽여 버렸다.
집에서는 아이는 책과 상자 갑, 그리고 장난감 인형을 갈기갈기 토막내어버렸다.
모든 것을 잡아당겨 물어뜯었고, 모든 것을 직접 건드려보고, 집어던지고, 허겁지겁 껴안았다.
아, 어느 날.
어느 날엔가 아이는 정통하게 되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거리낌 없이 속을 터놓던 한나는 이따금 핍스가 한 말에 대해 나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녀는 아이의 순진한 시선과 순진한 어투, 행동에 홀딱 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말을 모르던 처음 몇 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나로서는 도대체 아이에게서 천진성을 발견해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아이는 천진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표현할 능력이 없었을 따름인지 모른다.
리넨에 뚤뚤 말린 연약한 살덩어리.
그것에 속한 가느다란 호흡과 거대하고 어렴풋한 머리통.
아마도 그 머리는 피뢰침처럼 세상의 소식을 흡수하여 흩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핍스가 좀 자라자, 그 아이는 곧잘 집 옆 막다른 골목에서 다른 아이들이랑 어울려 놀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은, 정오가 될 무렵 집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나는 핍스가 다른 세 꼬마랑 함께 돌담을 따라 흐르는 물을 깡통에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일이 끝나자 아이들은 빙 둘러서서 무슨 말인가 주고받았다.
그것은 흡사 무슨 상의를 하는 듯이 보였다.
(마치 기사들이 어디에서 구멍을 뚫기 시작하며, 어디를 파기 시작해야 할까를 의논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포장도로 위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세 개의 포석을 더 갔다.
그때 핍스는 막 들고 있던 깡통을 쏟아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 장소도 그들의 계획에는 마땅치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 얼마나 남자다운 긴장감이냐! 무슨 일이든 터지고야 말 긴박감!
그러자 1미터 더 떨어진 곳에서 장소가 찾아진 모양이었다.
그들은 다시 웅크리고 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핍스는 깡통을 기울였다.
더러운 물이 포석 위로 흘렀다.
그들은 말없이 엄숙하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일은 벌어졌고 끝장이 났다.
아마도 목적이 성취된 모양이었다.
성취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는 그 발전에 기여한 이들 세 꼬마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들은 세계의 발전에 기여하리라.
그 점을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위층 침실로 올라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세계는 발전을 거듭해왔고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거점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동일한 방향이었다. 나는 나의 아이가 그 방향을 찾지 못하기를 바랐었다.
언젠가 훨씬 이전에, 나는 아이가 바른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할까 두려워한 적이 있었다.
바보스럽게도 나는 아이가 이 방향을 찾지 못할세라 염려했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몇 차례 차가운 수돗물을 양손 가득 받아 얼굴에 끼얹었다.
아이를 더 이상 원치 않는 마음이었다. 아이가 미웠다.
그 아이는 너무나 이해가 빨랐고, 이미 모든 방면의 발자국을 뒤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빈둥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인간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에 대해 나의 증오심을 연장시켰다.
- 전차 선로, 집 주소, 제목, 시간의 구분, 질서라고 이름 하는 인간의 머리를 짜서 만든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 반출, 강의 시간표, 호적 사무소,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거역하지도 않는 이 온갖 보잘것없는 시설들, 이 제단, 비록 나는 그것들의 희생물이 되었을망정, 내 아들만은 희생되기를 원치 않았던 이 모든 것을 나는 증오했다.
어떻게 해서 내 아이가 그것의 희생물이 되었던가?
그가 이 세계를 정비한 것도, 세계에 혼쉐를 야기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엇 때문에 그 아이가 세계 안에서 적응해야만 했던가!
나는 동희와 학교 병영을 향해 소리 높이 외쳤다.
그에게 기회를 주라!
내 아들이 못 쓰게 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라!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꼈다.
나라는 존재야말로 내 아들을 억지로 세계 속으로 밀어 넣었고, 그의 해방을 위해서는 속수무책이 아니었던가.
내게는 그를 해방시킬 책임이 있었다.
나는 행동으로 옮겨 그를 데리고 떠났어야만 했다.
어느 외딴 섬으로 퇴거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 새로운 인간의 새로운 세계를 건립할 수 있는 그런 섬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애초부터, 아이와 함께 낡은 세계에 참여하도록 꼼짝없이 갇혀 저주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어린애가 몰락하게 방치해두고 있었다.
나의 사랑에서 이탈하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이 어린애는 그야말로 모든 것에 능력이 있었다.
다만,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리고 나올 능력만은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핍스는 학교에 갈 때까지 몇 해를 노는 일로 보냈다.
문자 그대로 노는 일로 보냈다.
나는 핍스에게 기꺼이 놀도록 허용을 했지만 훗날 겪을 일을 미리부터 환기시키는 놀이, 이를테면 숨바꼭질, 뺄셈과 가위질, 도둑놀이와 헌병놀이 같은 것은 못 하게 했다.
나는 아이가 전혀 다른 순수한 놀이를 하기를, 지금껏 알려진 것과는 다른 동화를 듣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는 오로지 흉내내는 일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그럴 수가 없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우리네 같은 이에게는 전혀 다른 해결책이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상과 하로, 선과 악으로, 밝음과 어둠으로, 양과 질로, 친구와 적수로 양분되는 것이다.
도한 우화 속에서 다른 형태나 동물의 양상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것들은 어느 틈엔가 인간의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어떻게, 무엇을 목표해서 아이를 형성시켜야 할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포기해버렸다.
한나는 내가 아이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언젠가 우리는 그 점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꼭 괴물처럼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내 말을 잘라버리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한나는 아이와 더불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지만 이전의 그녀에게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저는 피곤하여 잠을 자겠나이다.
사랑하는 주여. 제게 신앙심을 주소서. 그리고 이와 비슷한 기도들을. 나는 이 점에 관해서 역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들은 훨씬 더 광범한 기도의 레퍼토리를 가지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는 기도를 통해 아이를 보호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십자가며 마스코트, 주문 등의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정당하게 인정되었으리라.
근본적으로 그녀가 옳았다.
이제 곧 핍스는 이리떼 속에 묻혀 함께 울부짖게 될 터이니까.
"신께 너의 혼이 맡겨져 있기를"(안녕이라는 작별의 인사말) 이라는 말이 어쩌면 궁극의 가능성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둘 다 이렇듯 각기 자기의 방식대로 핍스를 세상에 건네주었던 것이다.
핍스가 학교에서 불량한 성적을 가지고 집으로 올 때면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해준 것도 아니었다.
한나는 속으로 부심하고 있었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일정하게 아이와 같이 앉아 숙제를 돌보아주며 알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한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그 최선의 일을 믿지 않았다.
핍스가 장차 중학교에 진학하든 못하든, 버젓한 인물이 되든 못 되든 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노동자라면 자기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의사는 자기 아들이 최소한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핍스가 우리보다 더 영리하기를, 더 출중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아이는 내게 복종할 필요도, 내 뜻에 고분고분 응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 내가 바란 것은...
그는 다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단 한 번이라도 독자적인 제스처를 보여주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제스처를 흉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주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한테서 단 한 번도 독자적인 제스처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새로이 태어났지만 그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나는 새로이 태어났다.
그리하여 최초로 한 인간으로서 내 모든 것을 걸어 서투르게 투기했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핍스를 위해 아무것도, 그야말로 철두철미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를 계속해서 관찰할 따름이었다.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그렇게 관찰해도 좋았는지는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마치 어느 탐정이 어느 '케이스'를 관찰하듯이. 나는 인간이라는 희망 없는 케이스를 관찰하고 있었다.
한나를 대하듯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 이 아이를 말이다.
어쨌든 한나에 대해서만은, 그녀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한, 그녀를 도저히 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내가 만난 처음 순간부터 이미 나와 똑같은 유형의 인간으로 성장해 있었다.
날씬한 몸매에, 경험이 있고, 조금은 특이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역시 별다른 점이 없는 일개 여인으로서 나의 아내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아들과 나를 고발했다. - 아이는 극도의 기대감을 환멸로 돌아가게 한 죄목으로, 나는 아이에게 바탕을 마련해주지 못한 죄목으로. 나는 내 아이에게 기대를 걸었다.
바로 그가 어린애라는 이유로 - 그렇다. 나는 이 어린애가 세계를 구제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들릴는지 모른다.
실상 내가 어린애를 대하던 행동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점은 결코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앞서 간 모든 사람들처럼 내가 어린애를 위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한나를 포옹할 때, 그녀의 어두운 무릎 속에 편안히 묻혀 있을 때, 나는 미처 아무런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나와 결혼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는 그녀와 더불어 행복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유독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는 그녀가 더 임신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데에만 마음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한나는 아이를 원했었다.
이제는 이미 그런 얘기를 입에 올리지도 않고 그런 기미를 보이지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근거를 나는 가지고 있다.
누구든 한나는 이제야말로 비로소 진정 어린애를 하나 원한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지금 돌의 장벽을 치고 있다.
그리고 내게서 떠나가지도 않고 접근해오지도 않는다.
그녀와 나는 다투어서는 안 될 것을 가지고 냉전을 펴고 있다.
마치 죽음이며 인생 같은 불가사의한 것에 대해 도통하지 못했다고 해서 문제 삼아 다루듯이.
일찍이 그녀는 아마 한떼거지의 아이들이라도 기꺼이 키워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녀에게는 모든 조건이 합당했지만, 내게는 하나도 합당한 것이 없었다.
언젠가 우리가 언쟁을 벌였을 때 그녀는 핍스를 위해 해주고 싶고,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늘어놓았다.
모든 것을. - 좀 더 밝은 방, 더 많은 비타민, 세일러복, 더 많은 사랑, 완전한 사랑을.
그녀는 평생을 다해도 미치지 못할 사랑의 열탕을 꾀하고 있었다.
외계를 위해서, 인간들을 위해서는... 좋은 학력, 여러 개의 외국어와 또 아이의 재능에 유념할 것을.
- 그 소리를 듣고 큰 소리로 웃었더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상심했다.
한나는 핍스가 '외게'의 인간군에 속하게 되어 그들과 똑같이 해치고, 모욕을 주고, 속임수를 쓰고 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또한 핍스 역시 저열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실상 우리가 악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 어린애 속에 고름 샘처럼 박혀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칼과 관련된 이야기를 벌써부터 염두에 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훨씬 일찍, 아이가 세 살인가 네 살 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일이다.
아이가 격분해서 엉엉 울부짖으며 헤매는 장면에 나는 부딪혔다.
나무토막으로 쌓아올린 탑이 무너진 것이 원인이었다.
아이는 문득 울부짖음을 삼키더니 낮은 소리로, 그렇지만 힘주어 말했다.
"너희들 집에 불을 지를 테야. 전부 망쳐 놓을 테야. 너희들 몽땅 죽여 버릴 거야."
나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안아 올리고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탑을 다시 쌓아 올려주마고 약속했다.
아이는 조금 전에 하던 공갈을 그냥 되풀이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가온 한나는 생전 처음 자신을 잃었다.
그녀는 아이를 나무라면서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었다.
아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무도 아냐."
그리고 아이는 한집안에 사는 꼬마 계집애를 밀쳐 층계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아마 퍽이나 놀랐던 모양으로 울음보를 터뜨리더니, 다시는 그런 짓을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도 또 한 번 그런 일을 되풀이했다.
또 한동안은 틈만 나면 엄마를 때렸다. 그러더니 그 버릇도 지나가버렸다.
물론 나는 지금, 이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 말을 많이 했고,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를,
그리고 아침이면 얼마나 발그스레 상기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는가를 제시할 것을 잊고 있다.
나는 그 모든 것 역시 깨닫고 있었고, 그럴 때면 한나처럼 아이를 번쩍 안아 뽀뽀를 해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편안한 마음이 되어 기만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경계를 하고 있었다.
실상 나는 무슨 엄청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내 아이에 대해 거창한 것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다만 극히 사소한 것, 아주 약간만이라도 파격을 보여주기를 원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어떤 아이든 그 이름이 핍스라고 붙여졌다 해서... 그 이름에 합당한 경의를 표해야만 한다는 법이 있을까?
애견의 이름을 달고 오고가며 11년간을 길들이는 데만 허송했으니 말이다.
(얌전한 손짓으로 식사를 한다. 똑바로 걷는다. 주의를 한다. 입에 가득 뭘 머금고 말해서는 못 쓴다.)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된 이후부터 나는 집안에서보다 바깥에 더 많이 있었다.
다방에서 장기를 두거나 일을 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책을 읽었다.
그때 나는 마리아힐퍼 거리에서 일하는 여점원 베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타킹과 극장표, 먹을 것 따위를 갖다 주는 것으로 그녀와 친숙하게 되었다.
베티는 쌀쌀맞은 성품에 요구하는 점도 없고, 고분고분한 여자였다.
그리고 일이 없는 저녁이면 대체로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식욕만은 극도로 왕성했다.
나는 일 년 동안이나 꽤 자주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는 가구가 배치된 그녀의 방 침대 위에 드러누워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내 옆에서 화보를 읽었고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서슴없이 응해주었다.
그때는 어린애로 인해서 내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베티와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나는 자위를, 여자로부터, 그리고 성으로부터의 떳떳치 못한 해방을 추구하고 있었다.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독립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더 이상 한나와 함께 잠자리를 하려 들지를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 굴복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듯 오랫동안 저녁마다 외출하는 것을 굳이 숨기려고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한나는 조금도 의심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나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베티와 내가 퇴근 후에 종종 만나던 엘자호프 카페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틀 후에 코스모스 영화관 앞에서 나와 베티가 극장표를 사려고 열에 끼어 서 있는 장면을 본 것이다.
한나는 보통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을 보듯이 나를 보아 넘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작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리고는 마비된 듯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손 안에서 베티의 손을 느끼며, 창구 쪽으로 밀고 들어가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뒤늦게 생각하니 내 행동이 정말 믿을 수 없이 여겨진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나는 질책에 대비해서 변명을 짜내었고, 영화가 끝나자, 집으로 가려고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탔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이든 다소 보상이 되던가, 예방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나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대사를 쏟아내 놓았다.
그녀는 내가 늘어놓은 얘기가 자기와는 전혀 아랑곳없다는 듯이 침묵을 고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입을 떼어 굉장히 어렵게 어린애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핍스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말이 나왔던 것이다!
그녀가 허둥지둥 당황해 하는 모습에 나는 기가 죽어 용서를 빌었다.
무릎을 꿇고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를 했다. 정말 나는 그 후 베티를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왜 그녀에게 두 통이나 편지를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녀로서는 분명코 일고의 가치도 두고 있지 않았을 편지를. 답장은 없었다.
답장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것들이 나 자신이나 한나에게 마땅히 되돌아오기라도 할 듯이, 나는 그 사연 안에서 전에 없이 한 인간에게 나 자신을 내맡겼던 것이다.
이따금 나는 베티에게서 협박을 받을까 걱정을 했다. 왜 협박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돈을 우송했다. 도대체 왜? 한나가 그녀에 관해 안다는 이유로?
이 혼란. 이 황량함.
나는 남자로서 기능을 잃은 무능력자처럼 느껴졌다.
실상 나는 그런 상태에 머물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기대일진댄, 그 기대가 나를 위하여 이루어지기를 소원했다.
성에서 이탈하여 끝에 이르는 것, 하나의 끝, 그것에 이르기만 한다면!
하지만 발생된 모든 사태는 이를테면 나와 한나, 핍스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죄와 죽음의 문제였다.
어느 책에선가 나는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위를 향하는 것은 하늘의 태도가 아니다."
하늘의 고약한 버릇에 관해 설명해주는 이 문장을 모든 사람이 이해한다면 좋을 것 같다.
아니다. 실상 하늘이 아래를 굽어보며 밑에서 방황하는 무리에게 계시를 내려주는 태도를 보이는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적어도 이런 몽롱한 연극이 진행되는 마당에서는. 이 연극에 가공의 위인 하늘까지 공연을 하면서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 아들이라니. -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투명한 존재에 대해 설명해줄 투명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지금 내게 그런 말들이 떠오른 것이다.
그 불투명한 존재를 생각하면 이해력에 한계를 느낀다.
불투명한 존재. -- 나 자신까지 무언가 미심쩍은, 정의할 수 없는 나의 정자와, 아이에게 양분을 주어 키우고 출생을 동반했던 하나의 피. 이것들이 뭉뚱그려져서 하나의 불투명한 존재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피로써 끝마쳤다.
머리의 상처에서 콸콸 쏟아져 나온 붉게 반짝이는 피로써 종식을 고한 것이다.
그때, 아이는 협곡의 불거져 나온 바위에 누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다만 제일 먼저 달려간 친구에게 "어..." 라는 한마디를 했을 뿐.
아이는 무슨 의미를 표현하려 했는지, 매달리려 했는지 손을 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손은 이미 들려지지가 않았다.
잠시 후 선생님이 굽어 내려다보았을 때 아이는 소곤거렸다.
"집으로 가고 싶어요."
나는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한나에게로 오기를 갈망했었다고 생각하기를 삼가겠다.
모름지기 누구나 죽음을 자각할 때에는 귀소본능이 있는 법이다.
아이는 죽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아이였기 때문에 거창한 사연을 전달할 것도 없었다.
이를테면 핍스는 극히 평범한 아이였고 그의 마지막 생각에 장해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이 막대기를 구해서 들것에 핍스를 윗마을로 운반했다.
도중에, 아니 불과 몇 발자국 옮기기도 전에 핍스는 죽었다.
사라진 것일까? 잠이 든 것일까? 사망통지서에다 우리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의 독자 ... 불의의 사고로 영결."
인쇄소에서 주문을 받는 사나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우리의 독자" 라고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수화기 앞에 서 있던 한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사랑했다던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던가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며 전혀 문제가 될 것 없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이 소리를 듣고 바보스럽게도 그녀를 껴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듯 나의 감정은 그녀에 대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옆으로 밀쳐냈다.
도대체 지금까지도 그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녀는 무엇 때문에 나를 질책하고 있는 것일까?
오랫동안 혼자서 아이를 돌봐왔던 한나는 이제 존재가 없는 듯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마치 핍스로 인해, 핍스와 함께 그녀는 중심점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는데, 이제 그 조명이 거두어들여진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아무런 개성도 특성도 없는 여자처럼, 그녀에 관해서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이 되어버렸다.
이전에는 그래도 그녀는 명랑하고 생기가 있었고 조바심도 하고 상냥하면서 엄격했다.
항상 어린애를 맘껏 풀어놓아 주었다가는 바짝 끌어당기며 조종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를테면 칼부림 사건이 있은 뒤는 그녀로서는 가장 살 맛 나는 시기였다.
그녀는 관대함과 이해력을 뜨겁게 과시했다.
공공연하게 어린애의 편을 들며 아이의 과실을 옹호할 수 있었고,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떠한 법정에 맞서서도 보증을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핍스가 3학년 때였다. 핍스는 주머니칼을 빼들고 친구에게 달려들어 가슴패기를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칼은 미끄러져 팔을 찔렀다.
우리는 학교로 호출을 당했다.
나는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상처 입은 아이의 부모와 함께, 곤혹스러운 면담을 가졌다.
- 나는 핍스가 그런 일, 아니 그보다 더한 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있으면서도 내 생각을 입 밖에 낼 수 없었기 때문에 - 또한 사람들이 내게 강요하는 관점이
내겐 도대체 하등의 흥미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것이었다.
우리가 핍스에게 어떻게 해야 할는지는 누구에게도 불확실한 것이었다.
아이는 때로는 반항을 하면서, 때로는 절망하면서 훌쩍거리며 울었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저질러진 사태를 후회하고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핍스가 다친 아이에게 가서 용서를 빌도록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억지로 아이를 데리고 셋이서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정작 친구를 위협하던 그때에는 아무런 반감도 갖고 있지 않던 핍스가, 사과의 말을 강요당했던 그 순간부터 증오하기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이 든다.
핍스의 마음에 도사린 감정은 단순한 아이의 분노가 아니라, 대단한 자제력을 동원한 극히 세련되고 성숙한 증오심이었다. 아무도 투시할 수 없는 퍽 복잡하고 까다로운 감정을 핍스는 가슴속에 맺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마치 어른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모든 것을 끝장나게 했던 학교의 소풍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항상 그 칼부림 사건을 연상하게 된다.
그 두 개의 사건은, 다시금 내 아들의 존재를 내게 상기시켜준 충격으로 인해서 막연히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이 두 개의 사건을 제외하면 아이의 몇 년 동안의 학교시절이 내 기억에서는 백지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아이의 성장이나, 사고와 감정의 발달에 대해서 내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아마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사나우면서도 곰살맞고, 떠들썩하면서도 말이 없는 성품 - 그것은 아마도 한나에게만은 유일성과 특수성을 지녔던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사무실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것은 전에 없는 일이었다.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집으로 전화를 해서, 한나가 비로소 내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반시간 뒤, 나는 회사 현관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는 길 건너편 다방으로 갔다.
그는 내게 꼭 해줘야 할 말을 처음에는 현관에서 꺼낼 듯하더니, 그 다음엔 길에서 꺼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방에 와서도 장소가 적당치 못하다고 느꼈던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린애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담임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라고 교장 선생님은 말을 꺼냈다.
나는 수긍을 했다. 옳은 얘기였다.
소풍 길의 사정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핍스만은 반에서 이탈을 했다.
건방졌든가 호기심에서였으리라. 아니면 지팡이를 구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교장 선생님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핍스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아래쪽에 놓인 바위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이다.
머리에 입은 상처 자체는 위험한 것이 아니었지만, 급사에 대한 의사의 진술은 낭종 때문임을 발견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낭종이라니? 실상 나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학교 전체가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교장은 말했다.
심사위원회에 일을 위임했으며 경찰에 신초를 했다는 얘기도...
나는 정작 핍스보다는 담임선생님을 생각했다. 가엾게 여겨졌다.
그래서 내편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을 말라고 이해를 시켰다.
아무에게도 책임은 없었다. 아무에게도.
미처 주문을 하기도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1실링짜리를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사무실로 되돌아왔다가는 곧 다시 나와 버렸다.
그리고 다시 다방으로 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차라리 꼬냑이나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꼬냑을 마실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점심 때 나는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한나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서두를 꺼냈으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현관문에서 복도를 지나는 동안 그녀가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누이고 의사를 불러야만 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의식을 잃을 때까지 비명을 질렀다. 출산을 할 때처럼 그렇게 무섭도록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나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로 인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한나가 제발 무사하기만을 소원했다.
언제나 내 머리 속을 차지한 것은 한나였다! 어린애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절차를 혼자서 처리했다.
묘지에서 - 장례식 시간을 나는 한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 교장 선생님이 연설을 했다.
화창한 날씨였다.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화환의 리본들이 축제 때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교장의 연설은 마냥 계속 되었다.
난생 처음 나는 전 학급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핍스가 거의 매일처럼 반나절을 함께 지녔던 아이들,
뚱하니 앞을 바라보고 서 있는 조그만 개구쟁이들의 무리들.
그 가운데서 핍스가 찔러 죽이려 했던 아이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 냉기는 가까운 것이든 먼 것이든 할 것 없이 똑같이 우리에게서 아득히 밀어내버리고 있었다.
무덤과 둘러선 사람과 화환이 아득히 밀려나고 있었다.
중앙 묘원 전체가 아득히 동쪽 지평선 밖으로 물러서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람들이 악수를 해올 때도 나는 다만 손 위에 얹히는 압력만을 느꼈을 뿐, 그들의 얼굴은 아득히 물러나 보였다.
아주 가까이에서 정확하게 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역시 아득히, 그야말로 먼 곳에 그들의 얼굴은 물러나 있었다.
그늘의 언어를 배워라! 너 자신이야말로.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흘러가버렸다.
아이의 방에서 몇 시간씩이고 앉아 있기를 고집하던 한나까지도 이제는 그러기를 그만두고, 아이가 그렇듯 빈번히 들락거리던 방문을 잠가버리도록 허락해주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흘러가버린 지금에야 비로소, 나는 종종,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의 언어로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나의 개구쟁이. 내 사랑.
나는 얼마든지 아이를 등에 업고 다닐 용의가 있다. 아이에게 푸른 풍선과 우표를, 유서 깊은 도나우 강에서 보트를 태워줄 것을 약속한다.
나는 아이가 부딪히면 무릎을 호호 불어주며, 구구셈을 할 때 도와준다.
비록 이렇게 해서 아이를 다시 살아나게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아이를, 나의 아들을 맞아들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아이와 함께 너무나 극단을 향해 갔기 때문에,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지나치지를 말아라. 우선은 계속해 가는 것을 배우라. 너 자신부터.
더 이상의 생각을 거두고 일어서고 싶다. 어두운 복도를 건너가 말없이 한나에게로 가고 싶다.
내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잡을 나의 두 손도, 그녀의 입에 포개어질 나의 입도.
그녀에게 접근하여 어떤 음성으로 말을 건네며, 얼마나 따스한 호의를 갖고 대하느냐 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다시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지상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 역시 그녀의 도움으로 스스로를 지상에서 버티도록 하기 위하여 가고 싶은 것이다.
부드럽고 신비스런 합일을 통하여.
이런 포옹이 있은 후에 어린애가 생긴다면 좋다.
아이를 낳으리라.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리라.
나는 크로노스(희랍 신화 제우스의 아버지.
예언 때문에 제우스를 빼놓은 모든 아들을 잡아먹음)처럼 아이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매질할 것이다.
그리고 신성시되는 이 짐승들을 악습에 물들게하여 리어 왕처럼 나를 배반하게 내버려두리라.
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서 그들을 기를 것이다.
때로는 이리처럼 잔인한 관습에 따라서, 때로는 윤리적인 이념에 따라서.
-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인생의 여정에 아무런 전별도 주지 않으리라.
나의 시대의 인간들이 그랬듯이 어떠한 재산도 어떠한 충고도 주지 않으리라.
하지만 아직 한나가 깨어 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요란한 밤의 떠들썩한 웃음 속에 참된 감정을 묻어두고 있는 육체는 강하고 신비롭다.
한나가 아직도 깨어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