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개구리
Edgar Allan Poe
나는 임금처럼 농담에 민감한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마치 농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농담을 그럴싸하게 잘하는 것은 임금의 신임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따라서 그가 거느리고 있는 일곱 명의 대신들은 국내에서 손꼽힐 익살꾼들이었다. 농담이 일류일 뿐 아니라 뚱뚱하고 기름기가 번지르르하니 흐르는 것도 임금과 비슷하였다. 농담만 자주하게 되면 제바람에 뚱뚱하여지는 건지, 혹은 뚱뚱하여지면 저절로 농담을 즐기게 되는 건지 그 점에 대하여는 아직 무어라고 단정을 내릴 수 없지만, 아무튼 빼빼 마른 익살꾼이란 별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임금은 품위, 다시 말해서 임금 자신의 말을 빌자면 기지(機智)의 <정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익살에 있어서도 내용이 풍부하고 짤막한 것을 좋아하였다. 그렇다고 내용이 풍부한데 길다고 해서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미묘한 것은 싫어하였다. 그는 볼테르(18세기 프랑스 文人·사상가)의 <자이디>보다 라블레(16세기 프랑스의 극작가)의 <가르간튀아>(라블래의 작품에 나오는 거인)를 더 좋아하였으며 대체로 말로 떠드는 익사보다 실제의 어릿광대짓이 그의 취미에 맞는 것이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시대는 직업적인 어릿광대가 궁정에서 아주 없어진 때는 아니었다.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아직도 <광대>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옷에 모자를 쓰고 방울을 찬 이 광대들은 임금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위해 즉석에서 받아 삼킬 수 있는 날카로운 익살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의 임금도 물론 전용 어릿광대를 두고 있었다. 임금은 언제든지 우스꽝스러운 것을-임금 자신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대신인 일곱 사람의 현인들이 둔중한 지혜에 어울리는-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임금의 어릿광대, 즉 직업적인 익살꾼은 단순히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광대는 아니었다. 한 걸음 나아가서 그는 난쟁이와 또한 절름발이라는 점에서 임금의 눈에는 세 갑절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에 중정에서는 으레 난쟁이를 어릿광대로 채용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많은 군주들은 함께 웃어댈 수 있는 광대와 웃기는 난쟁이가 없다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궁정에서는 하루의 해가 다른 데 보다 길다) 두통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익살꾼들은 으레 비대하고 육중하고 뻔뻔스러운 위인들이다.-이런 익살꾼의 한 사람인 <절름발이 개구리>(이것은 광대의 이름이다)가 이 세 가지 보물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임금에게 적지 않은 만족감을 주게 되었다.
<절름발이 개구리>라는 이름은 이 난쟁이가 세례 때 대부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고 그가 남들처럼 걷지 못하기 때문에 일곱 사람의 대신들이 모여서 각의(閣議)를 연 끝에 그에게 준 이름이었다. 사실 뛰는지 뒹구는지 알 수 없는 이 절름발이 개구리의 꼬락서니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는 머뭇머뭇하면서 한 발짝씩 앞으로 떼어놓는 그런 걸음을 하면서 겨우 몸뚱이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처럼 몸뚱이를 움직이는 꼴이 여간 흥취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임금에게 적지 않는 위안을 안겨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임금은 조정의 모든 신하들로부터 배가 볼록하고 머리통이 툭 튕겨져 나왔어도 풍채가 훌륭하다고 해서 칭찬이 자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절름발이 개구리는 설사 한길이나 마룻바닥을 걸어갈 때 무한히 애를 쓰며 간신히 아기작 아기작 말을 떼어 놓기는 하였지만, 자연은 그의 아랫다리의 이러한 결함 대신에, 비상한 완력을 주어 나무에 오르거나 줄타기를 하거나 그밖에 아무튼 기어오르는 재주에 있어서는 실로 놀라운 바가 있었다. 그는 이런 운동을 할 때에는 다람쥐나 원숭이와 같았다.
절름발이 개구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임금의 궁정에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 어느 먼 벽촌에서 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 절름발이 개구리와 그에 못지않게 키가 작은 젊은 처녀(비록 생김새가 아름답고 춤도 잘 추었지만)를 임금 밑에 있는 어느 상승장군(常勝將軍)이, 이웃 나라에 있는 그들의 고향으로부터 각각 강제로 끌고 와서 임금에게 선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두 난쟁이 사이에 친밀한 애정이 움텄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조금도 없다. 실상 그들은 곧 장래를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절름발이 개구리는 여러 가지 재주를 부렸지만 결코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트리페타는 비록 난쟁이기는 했지만 우아하고 아기자기하게 예뻤던 관계로 뭇사람들의 융숭한 대접과 귀여움을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세도는 대단하게 되었지만 기회 있을 적마다 절름발이 개구리를 위해 그 세도를 이용할 것을 잊지 않았다.
어느 큰 잔치-무슨 잔치인지는 잊었지만-때의 일이다. 임금은 그 기회에 가장무도회를 열 계획이었다. 궁정에서 가장무도회나 또 이런 종류의 잔치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절름발이 개구리와 트리페타가 불리워 들어갔다. 특히 절름발이 개구리는 야외극을 꾸며 재미있는 역(役)을 안출하거나, 가장무도회의 옷을 마련하는데 솜씨가 뛰어났으므로 그의 도움을 빌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드디어 잔칫날 밤이 되었다. 화려한 대청마루는 트리페타의 지휘 아래 가장무도회를 빛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구색의 의장(意匠)으로 장식이 되었다. 궁정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온통 이 가장무도회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의상과 배역에 대하여 각자가 벌써부터 멋대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달 전부터 자기네가 무슨 역으로 가장을 할 것인가를 정하고들 있었던 것이다. 그밖에, 임금과 일곱 대신을 제외하고는 무엇이고 간에 결정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들만이 어처럼 꾸물거리고 있는지 이것 역시 익살로 그런다고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너무 뚱뚱해서 어떤 가장을 해야 할지 몰라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트리페타와 절름발이 개구리를 불러들였다.
이 두 꼬마 친구들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가 보았더니, 임금은 일곱 사람의 대신들과 함께 주연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임금은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았다. 임금은 절름발이 개구리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술이 절름발이 개구리를 거의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꼴이 되는 것은 절름발이 개구리 자신에게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임금은 심술궂은 장난을 좋아하여 그에게 억지로 술을 먹였다. 임금의 말에 의하면 그를 <쾌활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이리 가까이 오렴, 절름발이 개구리야!"
하고 임금은 두 난쟁이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 말하였다.
"자, 고향에 있는 네 친구의 건강을 위해 이 술잔을 들어라. <이 말을 듣고 절름발이 개구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가 네 독창력의 덕 좀 보게 해다오. 우리도 배역(配役)이 필요해.-좀 신기한 걸로-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좀 다른 것으로 말이다. 그런 것엔 싫증이 났다. 자 들어라, 한 잔 들면 좋은 생각이 나올 테지."
절름발이 개구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임금의 말을 익살로 받아넘기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힘이 무척 들었다. 그날은 우연히도 바로 이 불쌍한 난쟁이의 생일날이다. 고향 친구들에게 축배를 들라는 임금의 분부는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을 흐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이 폭군의 손에서 공손히 술잔을 받아들었을 때, 그 잔 속으로 쓰라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 하, 하, 하!"
임금은 난쟁이가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껄걸 웃어대었다.
"술이란 참 기막힌 것이란 말이야. 자 보란 말이야. 네 눈이 벌써 번쩍이는구나!"
가엽게도 그의 커다란 두 눈은 번쩍인다느니보다는 오히려 게슴츠레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술은 그의 흥분하기 쉬운 머리를 크게 자극하고 신속하게 효과를 발휘하였던 것이다. 그는 술잔을 신경질적으로 식탁에 내려놓고 반 미친 듯한 눈초리로 좌중을 휘둘러 보았다. 그들은 저마다 임금의 짓궂은 장난이 성공한 것을 보고 매우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제 요건을 말씀하실까요?"
몸집이 매우 뚱뚱한 총리대신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세."
임금이 대답하였다.
"절름발이 개구리야, 나 좀 봐. 네 힘을 좀 빌리자꾸나. 무슨 배역을 맡아야 좋겠느냐. 얘야! 우리도 배역을 맡아야 하겠어! 우리가 모두……핫 핫 하!"
이것은 임금의 익살로 하는 말이므로 일곱 대신들도 임금의 뒤를 따라 낄낄대며 웃었다.
절름발이 개구리도 연약하고 어딘가 좀 힘이 빠지기는 했으나, 따라서 웃었다.
"자 어서 말해봐."
임금은 갑갑하다는 듯이 재촉을 하였다.
"생각나지 않는단 말이냐?"
"지금 한참 신기한 것을 생각해내려고 궁리하는 중이올시다."
술에 취해 얼떨떨한 난쟁이는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허, 궁리 중이다!"
폭군은 버럭 호령을 하였다.
"거 대체 무슨 소리냐? 오라 인제 알겠다. 네가 투정을 부리는구나. 후레자식 같으니, 술이 모자란단 말이지. 자 그럼 한 잔 더 마셔라. 엿다 받아라!"
임금은 또 한 잔 기득히 따라서 절름발이 개구리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다만 숨을 헐떡이며 술잔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시라니깐 그래!"
하고 임금은 꽥 소리를 질렀다.
"너 안 마실 테냐. 이놈 그저……"
난쟁이는 사뭇 머뭇거릴 뿐이었다. 임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대신들은 능글능글 웃기만 하였다. 트리페타는 죽은 사람처럼 새파랗게 질려서 보좌 앞으로 나아가더니 무릎을 꿇고 자기 친구를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폭군은 그녀의 당돌한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동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임금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어떻게 해서 자기의 격분을 정당히 표현할 수 있을는지-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임금은 말없이 그녀를 밀어젖히더니 술을 가득히 부은 잔을 그녀의 얼굴에 끼얹었다.
이 가련한 처녀는 경우 자리에서 일어나 감히 한숨도 내쉬지 못하고 식탁의 말석에 있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한동안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가랑잎 하나, 깃 하나 떨어지더라도 들릴 것 같은 그런 침묵이었다. 이 고요한 침묵은 방에서 들려오는 듯싶은 야트막하니 그러나 거칠게 이를 가는 소리로 하여 깨어지고 말았다.
"뭐야……뭐……뭣하러 짐(朕)에게 그런 소릴 내는 거야?"
임금은 무섭게 난쟁이 쪽을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난쟁이는 술에서 어지간히 깨어났던가 보아, 폭군의 얼굴을 잠자코 쳐다보면서 한 마디 던졌다.
"소신이…… 소신이 어찌 감히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소리는 밖에서 들려 오는 것 같습니다."
하고 대신 한 사람이 아뢰었다.
"아마도 창밖에 있는 앵무새가 주둥이를 새장 살에 문지르는 소린가 봅니다."
"그럼 그렇지……"
임금은 이 말에 마음이 풀린 듯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 고얀 녀석이 이를 가는 소리로만 알았지."
이 말에 난쟁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임금은 다른 사람을 웃지 못하게 할 만큼 도량이 비좁은 익살꾼은 아니었다.) 이어서 그는 커다랗고 억센 뻐드러진 이틀을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술을 얼마든지 마시겠다고 하였다.
임금의 분노는 깨끗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이렇다 할 언짢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름발이 개구리는 가득 부은 술잔을 또 하나 비우고 나서, 곧 가벼운 마음으로 가장무도회의 계획에 들어갔다.
"어찌하여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고 그는 태연스럽게 술이라고는 평생 한 방울도 입에 넣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하였다.
"바로 폐하께서 저 여자를 떠미시고 그 얼굴에 술을 끼얹으신 직후에-폐하께서 그렇게 하신 직후에 창밖에서 앵무새가 그 이상한 소리를 낼 때에 별안간 저의 머리에 굉장한 계획이 하나 떠올랐습니다.-그것은 소인이 고향에서 하던 유희올시다.-우리 고향에서는 가장무도회 때 흔히들 하는 거지만, 이 고장에서는 매우 신기할 겁니다. 그런데 이 놀이에는 사람의 수가 여덟 명이 팔요합니다. 그것이 좀 뭣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됐어, 우리가 있잖아!"
임금은 재빨리 그 인원수를 알아낸 것을 기뻐하면서 떠들었다.
"여덟 사람이 한 패라면……나와 대신 일곱하고 꼭 아귀가 맞는단 말이야. 그래 대체 어떤 거냐?" "소신들은 그것을 <줄에 묶인 여덟 마리의 원숭이>라고 부릅지요. 잘만 하면 참 멋진 유희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거 한 번 놀아 보지 그래."
임금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가늘게 내리깔았다.
"놀이의 장점은?"
하고 절름발이 개구리는 말을 이었다.
"부인네들을 혼이 달아나도록 놀려 주는 데 있습니다."
"거 근사하군!"
임금과 대신들은 일제히 말하였다.
"폐하와 각하들을 원숭이로 가장해 드리려고 하옵니다."
난쟁이는 말하였다.
"모든 걸 소신에게 맡기시기 바랍니다. 가장무도회에 오신 손님들은 폐하와 각하들을 진짜 원숭이가 온 줄 알게끔 깜쪽 같이 가장해 드립지요. 아마도 손님들은 깜짝 놀라서 질겁을 할 겁니다."
"야, 이거 참 기막힌 거로군!"
임금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여봐, 절름발이 개구리! 나는 이제부터 너를 어엿한 사람으로 대접하련다!"
"그런데 쇠사슬로 붙잡아 매는 것은 그 쩔렁거리는 소리로 장내의 혼란을 한층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폐하와 각하들께서는 한결같이 방금 우리 속에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뵈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쇠사슬에 묶인 원숭이 떼가 일으킨 소동은 얼른 상상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모든 손님들에게 진짜 원숭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원숭이들이 사나운 고함을 치면서, 나들이옷을 입고 온 남녀 손님들 틈바구니로 줄달음질 칩니다. 이러한 광경에 비할 만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겠군!"
임금은 매우 흡족해하였다.
그리하여 회의는 곧 집어치우고(밤도 꽤 깊었으므로) 절름발이 개구리의 계획을 실천에 옮길 마련을 하였다. 일동을 원숭이로 분장시키는 것은 간단하였으나, 그가 노리는 목적을 위해서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문제의 동물은 내 이야기에 나오는 시대에는 어느 문명구에서나 거의 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난쟁이가 만든 가장은, 그들을 진짜 원숭이처럼 보이게 하는 데 충분했으며, 그 모양은 매우 사납게 보였으므로, 이것으로 가장은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되었다.
임금과 대신들은 무선 몸에 꼭 끼는 메리야스와 바지를 입었다. 다음에 그들은 타아르를 까많게 발랐다. 이때 어느 대신이 깃털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였으나 난쟁이는 곧 물리쳐 버렸다. 그는 원숭이의 털을 모방하는 데는 깃털보다 삼(麻)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줌으로써 여덟 사람을 납득시켰다. 그리하여 타아르를 전신에 바른 다음에 삼을 두툼하게 붙였다. 다음으로 쇠사슬을 구해다가 먼저 임금의 허리에 감고 잡아매였다. 그리고 남은 일본 대신도 똑같이 잡아매었다. 이것이 끝나고 일동은 될 수 있는 대로 거리를 두고 늘어섰다. 그러자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절름발이 개구리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그 원의 내부에 나머지 쇠사슬을 十자 형으로 둘러쳤다. 이것은 현재 보르네오에서 침팬지-그밖에 큰 원숭이를 잡을 때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흉내 낸 것이다.
가장무도회가 열리는 커다란 살롱은 둥근 방으로, 천장이 매우 높고, 햇빛은 꼭대기에 하나밖에 없는 창을 통하여 비칠 뿐이었다. 밤이면(이 방은 그 밤을 위하여 특별히 설계되어있었다.)커다란 샨데리아에 불이 켜졌다. 이 들물은 천장에 붙은 창 한복판에서 사슬이 늘어뜨러져서 언제나 평형추를 이용하여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장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기 흉하지 않도록 이 평형추는 지붕 밖에서 청장 위를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장내의 준비는 트리페타가 맡아서 감독하였다. 그러나 몇 가지 점은 자기 친구 절름발이 개구리의 냉철한 판단에 따르는 것 같았다. 샨데리아를 치워 버린 것은 그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초가 뚝뚝 녹아떨어져(날씨가 더우면 이것을 막아낼 수 없었다) 손님들의 값진 옷을 더럽히기 때문이었다. 살롱이 사람들로 붐빌 때, 싸롱 한가운데로-즉 그 등잔 아래로-밀려가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촛대가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벽을 등지고 서 있는 여상주(女像柱)-모두 560개나 되었다-의 바른 손에는 향내가 풍기는 횃불을 놓아두었다.
여덟 마리의 원숭이들은 절름발이 개구리의 충고에 따라 자정까지(그때 가서야 실내가 무도객들로 꽉 차게 되었다.)나타나지 못하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계가 열두 시를 치자 그들은 한데 몰려 우루루 밀려 들어갔다. 아니 굴러 들어갔다. 그들을 붙잡아 맨 사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혹은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무도객들은 크게 놀라 어리둥절하였다. 임금은 속으로 매우 흐뭇하였다. 미리 예측한 대로 손님들 가운데는 이 사나운 짐승들을 성성이라고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아니하더라도 어떤 진짜 짐승으로 본 사람은 적지 않았다. 많은 부인들이 놀라서 기절을 했다.
만일 임금께서 미리 무도장에 무기를 가진 사람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주의시키지 않았더라면, 임금의 일행은 그들의 장난을 피로 물들였을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모두들 와하고 문께로 몰려갔다. 임금은 자기가 입장한 후에 문들을 닫아걸라고 미리 일러 주었다. 열쇠는 절름발이 개구리의 제의에 의해 그에게 맡기로 하였던 것이다.
홀 안의 혼란은 극도에 이르고, 가장 무도객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안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정신을 잃은 군중들에게 떠밀려 나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때 평상시에는 샨데리아가 달려 있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말려 있는 그 쇠사슬이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드디어 갈고랑이 모양의 그 사슬 끝이 마룻바닥에서 3피트 위까지 내려왔다.
그러자 곧 홀 안을 사방으로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던 임금과 그 일곱 명의 대신들이 드디어 한복판에 오게 되어 그 사슬에 직접 닿게 되었다. 그동안에 지금까지 그들의 꽁무니를 말없이 따라다니던 소동을 계속하라고 선동하던 절름발이 개구리는 원으로 된 사슬 속에 열십자로 마주친 데를 손으로 잡고 재빨리 샨데리아가 언제나 날려 있던 갈고랑이에 그것을 끼웠다. 그러자 금세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샨데리아 사슬의 갈고랑이가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위로 쑥 끌려 올라갔다.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원숭이들은 한 무더기가 되어 얼굴을 마주 보게 하였다.
가장 무도객들도 그제서야 놀라움을 좀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갈 꾸며진 하나의 장난임을 알아차렸다. 군중들은 곤궁에 빠진 원숭이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비로소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저들을 저한테 맡기십시오!"
하고 절름발이 개구리가 소리쳤다. 그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는 이런 소란 속에서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들을 저한테 맡겨 두십시오. 저는 어쩌면 저들을 알 것도 같습니다. 제가 한 번 찬찬히 뜯어보면 누구라는 것을 말할 수 있겠지요."
이어서 절름발이 개구리는 손님들의 머리 위를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벽에까지 와서 여상주의 어느 하나에서 횃불을 빼 들더니, 다시 방 한가운데로 전과 같이 되돌아와서 원숭이처럼 날쌔게 임금의 머리 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다시 거기서 쇠사슬 위로 2, 3피트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횃불을 쳐들고 원숭이들의 얼굴을 조사하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인제 곧 저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어요."
그러자 만장의 손님들은 (원숭이들도 포함하여) 한바탕 크게 웃어댔다. 이때 난쟁이는 갑자기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순간 쇠사슬은 약 30피트 위로 올라가고 그와 동시에 당황하여 몸을 비비 꼬던 원숭이들이 함께 끌고 올라가 천장의 창과 방바닥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게 하였다. 사슬이 올라갈 때 거기에 착 달라붙어 있던 난쟁이는 여전히 여덟 사람의 가면객을 감시하면서, 그리고 아직도(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애쓰는 듯이 그들 쪽을 향해 횃불을 쓱 내밀고 있었다.
손님들은 이렇게 매달린 것을 보고 간이 서늘해졌다. 그리하여 약 1분 동안 죽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침묵을 깨뜨린 것은 지난날에 임금이 트리페타의 얼굴에 술을 끼얹었을 때 임금과 신하들이 주의를 끈 나지막하면서도 거칠게 이를 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논란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난쟁이의 송곳 같은 이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는 입거품을 내뿜으며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미친 듯이 성난 표정으로 임금과 일곱 대신들의 얼굴을 흘겨보고 있었다.
"아하! 이제야 이 사람들이 누군지 알겠군!"
격노에 불타는 난쟁이가 말하였다. 그는 이어서 임금을 더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듯이 횃불을 쳐들어 임금의 온몸을 싸고 있는 삼베옷에다 갔다 대었다. 그러자 임금의 온몸은 삽시간에 불덩어리가 되어 타올랐다. 30초도 못 되어, 아래에서 공포에 떨며 속수무책으로 쳐다만 보던 손님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여덟 마리의 원숭이들은 모두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불길이 별안간 거세어지는 바람에 난쟁이는 불길이 닿지 않는 위까지 쇠사슬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손님들은 침묵을 지켰다. 절름발이 개구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말하였다.
"이제야 분명히 알겠습니다. 이 가장객들이 누구인지 말예요. 저들은 임금과 일곱 명의 대신이 올시다. 연약한 여자를 마음대로 후려갈기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임금과 이러한 임금의 행동을 부채질하던 일명의 대신이올시다. 자 그럼 나라는 이 작자는 누군고 하니 바로 익살꾼 절름발이 개구리올시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마지막 익살이올시다."
타아르와 거기 붙어 있던 삼베는 다 함께 불붙기 쉬운 물질이기 때문에 절름발이 개구리의 이 짤막한 연설이 끝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복수도 끝났다. 여덟 개의 시체는 악취를 내며 새까맣게 타서 보기 흉하고 구별할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어 쇠사슬 끝에 매달려 있었다.
절름발이 개구리는 횃불을 그들에게 내던지고 천장으로 기어올라가 창밖으로 사라져버렸다.
트리페타가 무도장 지붕 위에서 이 화장을 거들다가, 그와 함께 그들의 고국으로 도망쳐 버렸는지 그 후로 그들의 모습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