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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雪)

킬리만자로의 눈()

E. Hemingway

 

킬리만자로는 높이 19710피트(4800미터)나 되는 눈에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 <누가여 누가이> <()의 집>이라고 한다. 이 서쪽 봉우리 근처에 다 말라빠진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얼어붙어 있었다. 그 높은 곳에서 뭣을 찾아 헤매었던지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신기한 일이야. 고통이 없어졌으니 말이야. 그래서 죽음이 찾아올 때를 알게 되는 거지." 하고 사나이가 말하였다.

"그게 정말이에요?"

", 정말이지. 그런데 이런 냄새를 피워서 미안해서 어떡허나. 당신 꽤 성가실 텐데."

"아냐요. 제발 그런 말씀 마세요."

"저것들 좀 보요. 저것들이 이리로 모여드는 건 내 꼴을 보았기 때문일까? 혹은 냄새를 맡았기 때문일까?"

사나이는 미모사 나무의 넓은 그늘 속에 놓인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늘 건너편에 번쩍이는 벌판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커다란 새 세 마리가 음흉한 꼴을 하고 웅크리고 있었으며, 하늘에도 여남은 마리 날아다니고 있어, 땅 위에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늘을 던지는 것이었다.

"저 새들은 트럭이 고장 난 그 날부터 줄곧 저기 있었어." 하고 사나이는 말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땅 위에 내려앉은 거야. 저 새들은 언젠가는 소설의 소재가 될 듯해서 처음에는 날으는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았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우스운 일이야. 저 새는 다만 지껄이고 있을 뿐이지. 그편이 한결 편하니까. 당신을 성가시게 하려는 건 아니야."

"저한테 성가실 것 없어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도리어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에요. 비행기가 올 때까지는 되도록 안정을 해요."

"혹은 비행기가 오지 않을 때까지 안정하란 말이기도 하지?"

"저에게 뭘 해야 하는지 그거나 어서 일러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내 다리나 잘라 구구려. 그럼 아마 고통도 사라질 거구. 그렇지 않으면 날 총으로 쏘아 죽이든가……인제 당신도 명사수가 되었으니까. 내가 총 쏘는 걸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

"아예 그런 말씀 마세요. 책이라도 읽어 드릴까요?"

"무슨 책 말이야?"

"가방 속에 있는 책 중에서 읽지 않은 걸루요."

"난 듣고 있을 시간 없어. 떠벌리고 있는 게 제일 편해. 말다툼이라도 하고 있으면 시간은 빨리 지나갈 거야."

"전 말다툼 안 해요. 하고 싶지 않은 걸요. 아무리 화가 치밀더라도 인제 싸움은 그만 해요. 아마 오늘쯤 그 사람들이 다른 트럭을 몰고 돌아올 거예요. 어쩌면 비행기로 올지도 모르고요."

"난 꼼짝하기도 싫어. 당신을 좀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움직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그건 비겁해요."

"쓸데 없이 남을 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죽게 내 버려둘 수 없소? 이제 나에게 욕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당신은 들을 리가 없어요."

"어리석은 소리 작작해요. 난 지금 죽어가는 판인데. 저 빌어먹을 놈들에게 물어봐요."

그는 흉악하기 짝이 없는 큼직한 새들이 토실토실한 쭉지에 머리를 파묻고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넷째 번 새가 땅에 내려와 다른 새들이 있는 곳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저런 새들은 어떤 캠프의 주위에도 있는 거예요. 다만 당신의 눈에 뜨이지 않았을 뿐이지요. 인간이란 실망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 법이에요."

"그런 건 어느 책에서 읽었어? 바보같이……"

"남의 일을 생각해 보세요."

"천만에. 그건 내 전문분야에 속하는 거야."

그는 말없이 드러누워 한동안 햇빛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벌판 건너편 숲가를 바라보았다. 누런 벌판에 몇 마리의 흰 산양이 조그마하게 바라보이고, 멀리 저쪽에는 푸른 숲을 배경으로 한 떼의 얼룩말이 보였다. 이곳은 언덕을 등진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은 멋진 캠프장으로 물이 좋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메마른 샘터에서는 아침마다 꿩들이 날으곤 하였다.

"책이나 읽어 드려요?" 여자가 물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놓인 캔버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는군요."

"아냐, 필요 없어."

"아마 트럭이 올 거예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전 안 그래요."

"당신은 내가 무관심한 여러 가지 일에 대해 괜히 걱정한단 말야."

"해리, 그렇지도 않아요."

"술 좀 마시고 싶은데 어떨까?"

"그건 몸에 해로울 거예요. 브랙의 책에두 알콜 성분을 피하라고 쓰여 있어요. 그러니까 드시면 안 돼요."

"몰로!" 하고 그는 커다란 목소리로 불렀다.

", 주인님!"

"위스키 소다를 가져와!"

"그건 안돼요. 그게 바로 제가 말씀드린 단념의 뜻이에요. 책에도 술은 나쁘다고 쓰여 있어요. 당신에게는 해로와요."

"아니야. 나한테는 좋아!"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제 끝맺을 기회는 바로 지금일 것이다. 이처럼 마시겠다거니, 마셔서는 안 된다거니 하고 싸우다가 죽은 것이다. 오른쪽 다리에 흠집이 생긴 후로 고통이란 통증은 느끼지 않았으며, 두려움마저 사라지고, 지금은 오직 심한 피로와 이제 끝장이라는 울화통이 솟을 뿐이었다. 현재 닥쳐오는 이 죽음에 대하여 그는 거의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몇 해 동안이나 거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죽음 자체가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 피로하면 죽음까지도 대단치 않게 생각되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는 전에 충분히 소화하여 훌륭한 글을 쓸 자신이 생기기 전에는 펜을 들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자신이 생기더라도 쓰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므로 글을 써서 실패하는 경우란 전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실은 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펜을 들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지금에 와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좋을 걸 그랬어요."

여자가 말하였다. 그녀는 유리컵을 손에 들고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보았다.

"파리에 있었더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게 아녜요. 당신은 언제나 파리가 좋다고 말씀하지 않았어요? 사냥하기를 원하셨으면, 헝가리에 가서 사냥을 했을 거예요. 그랬더라면 얼마나 즐거웠겠어요."

"당신의 돈으로?"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건 정당한 말씀이 아니에요. 돈은 언제나 저의 것인 동시에 당신의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만사를 제쳐놓고 당신이 가자는 데로 어디라도 따라갔어요.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기만은 오지 않을 걸 그랬어요."

"당신은 여기가 좋다고 하지 않았어?"

"그야 당신의 몸이 성했을 때의 얘기죠. 그렇지만 지금은 싫어요. 어찌하여 당신의 다리가 이렇게 되었어요? 이런 꼴을 당하다니,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탓이에요?"

"잘못이 있다면 처음 긁어서 상처를 냈을 때, 옥도정기를 바르는 것을 잊은 일이겠지.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던 몸이라 주의를 하지 않았던 거야. 나중에 악화되었을 적에 다른 방부제(防腐劑)가 떨어졌으므로 석탄 산액(石炭酸液)을 발랐기 때문에 모세관이 마비되어 흠집이 생긴 것뿐이야."

그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밖에 다른 까닭이 있어?"

"제가 하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긴 그 어리석은 키쿠유족 운전수 대신에 기술자를 고용했더라면 기름 상태도 살펴봤을 테구, 따라서 트럭의 베어링도 태우지 않았을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니라니까요."

"당신이 자기 가족과 또 그 육실할 올드 위스터베리니, 사라토가니, 팜 비치 패거리들과 헤어져서 날 따라오지 않았던들……."

"그건 지나친 말씀에요.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또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그런데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으세요?"

"그래,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어."

"해리!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머리가 돌았나 봐!"

"아니야. 돌 만한 머리를 갖고 있지도 않은걸."

"그걸 마시면 안 돼요. 제발 마시지 마세요. 우리가 할 도리를 다해 보아야 해요."

"당신이나 해. 난 피곤해."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지금 카라카치 역()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는 손에 짐을 들고 서 있었다. 심프른 오리엔트 철도회사 소속의 기차가 어둠을 뚫고 헤드라이트를 비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퇴각(退却)한 후로 트라키아를 막 떠나려는 참이었다. 이것은 그가 나중에 글을 쓰려고 간직해 둔 소재의 하나였다. 그날 아침 식사 때에 창밖으로 불가리아의 눈에 쌓인 산이 바라보였다. 난센의 비서가 저것은 눈이냐고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아니냐, 저건 눈이 아니야. 눈은 아직 때가 일러." 하고 대답하였다.

"이봐, 저건 눈이 아니래."

비서는 다른 여자들에게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그래요. 그전 눈이 아녜요. 우리가 잘못 봤어요." 하고 여자들은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눈이었다. 그는 주민들의 교대 입주(交代入住)를 추진하였을 때, 그들을 눈 속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해 겨울에 눈을 밟고 가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해 크리스마스에도 가우엘탈의 고지대(高地帶)에는 한 주일을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그들은 그해에 네모난 커다란 사기 난로가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무꾼의 집에 묵으면서 밤나무 잎새를 잔뜩 쑤셔 넣은 요를 깔고 잠을 잤었다. 그때 탈주병(脫走兵) 한 사람이 눈 속을 피투성이가 된 발을 끌며 나타났다. 그는 자기 뒤를 헌병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탈주병에게 털양말을 주어 도망을 시키고 헌병에게 그의 발자국이 눈에 뒤덮일 때까지 이야기를 늘어놓아 가면서 붙들어 주었다.

크리스마스 날, 슈룬츠에서 눈이 너무나 환히 반짝이므로 주막에서 내다보면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거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눈길은 가파른 언덕에 소나무가 늘어선 강기슭을 따라 썰매에 매끈거리고, 군데군데 오줌에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어깨에 무거운 스키를 메고 올라갔었다. 마드레너 산장(山莊) 위의 빙하(氷河)를 단숨에 내려 달리면, 눈은 마치 과자에 입힌 설탕같이 미끄럽고 백분처럼 가벼웠다. 스키는 스피드를 더하여 소리 없이 새처럼 날으듯이 내빼던 생각이 났다.

그때 일행은 눈보라로 한 주일을 마드레너 산장에 갇혀서 담배 연기를 자욱이 뿜으면서 초롱불을 켜 놓고 트럼프만 했었다. 렌트씨는 질수록 더 많은 돈을 걸어 몽땅 잃었다. 그리하여 스키를 가르쳐서 얻은 보수와, 시즌에서 입수한 이득과 그의 밑천까지도 다 날렸다. 코가 길다란 그가 카드를 집어 들어 보지도 않고 내던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는 언제나 노름만 하였다. 눈이 오지 않는다고 노름을 하고, 눈이 많이 온다고 노름을 하였다. 그는 이때까지 노름으로 낭비한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하여는 글을 한 줄도 쓴 적이 없었다. 평원 저쪽에는 산줄기들이 뚜렷이 바라보이던 맑게 개인 추운 크리스마스 날, 바아커의 비행기는 전선(戰線)을 넘어 휴가를 얻어 돌아가는 오스트리아 장교들이 탄 기차를 폭격하여,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그들에게 기총 소사(機銃掃射)를 가했다. 그는 이 일에 대해서도 펜을 들지 않았다. 그 후에 바아커는 직장에 들어와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의 얼굴이 생각났다. 모두들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 사람이 말하였다.

"지독한 살인귀로군!"

그 후에 해리와 함께 스키를 타던 오스트리아인들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다.

겨우내 함께 스키를 타던 한스는 카이제르 경보병대(輕步兵隊)에 속해 있었다. 제재소 위쪽 산골짜기로 함께 토끼 사냥을 갔을 때, 바스비오의 전투와 뻘티카와 아싸르네를 공격하던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도 글을 쓰지 않았다. 몬테 코오노며 씨에테 콤뮨, 그리고 알써예도에 대하여도 쓰지 않았다.

그는 몇 해 겨울을 휘랄베르크와 알에르크에서 보내었던가? 그리고 그들이 걸어서 부루덴츠에 갔을 때 여우를 팔러 온 사나이의 생각도 났다. 그때 그는 선물을 사러 갔었다. 또한 고급 키르슈주()와 살구씨의 진미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굳게 얼어붙은 땅에 쌍혀 있는 가루눈을 날리며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 !로리는 부르짖었네.>하고 노래를 부르며, 험한 골짜기를 벗어나 다시 길을 바로잡아 과수원을 세 차례나 빠져나와, 개울을 건너서 숙소 뒤의 빙판길에 나왔던 것이다. 그는 스키를 동여맨 끈을 툭툭 쳐서 늦추고 숙소 판자벽에 기대어 놓았다. 등불이 창에서 밖에까지 비추고 있었다. 방안에서는 답배 연기와 새 포도주의 향기를 맡으면서 사람들은 아코디언을 켜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어디서 묵고 있었지?" 하고 그는 이곳 아프리카 캔버스의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크리용이에요. 왜 알고 계시쟎아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우리가 언제나 머물러 있던 곳이니까요."

"아니냐. 언제나 머물러 있지는 않았어."

"그곳하고 상 젤멘가()의 헨리 4세관의 두 군데였지요. 당신은 언제나 그곳이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좋아하다니, 그건 똥무더기 같은 소리야."

하고 해리는 말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똥무더기에 올라앉아서 우는 수탉과 같은 신세가 아니겠어."

"만일 부득이하여 가셔야 할 경우에."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당신은 뒤에 남은 것들을 다 때려 부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 놓고 가야 한단 말예요? 당신의 말도 아내도 다 주여 버리고 안장도 갑옷도 불살라 버려야 한단 말에요?"

"그렇지.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당신의 그 진저리나는 돈이 바로 내 갑옷이었어. 나의 스위프토요, 또한 아아머이기도 하였어."(스위프트와 아아머는 시카고의 큰 부자)

"듣기 싫어요."

"좋아, 입을 다물지. 당신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

"그건 이미 늦었어요."

"그래? 좋아. 그럼 좀 더 괴롭혀 줄까? 그편이 더 재미있으니까 말이야. 당신과 제일 재미있는 그 한 가지 일도 이제는 못 하게 생겼으니……."

"아녜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여러 가지 일을 하기를 좋아하셨고, 또 저는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왔어요."

"제발 자기 자랑은 하지 말아요."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이봐."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당신은 내가 장난삼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줄 알아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당신을 살리려다가 오히려 죽이는 결과가 될지도 몰라. 이야기를 시작할 적에는 나도 정신상태가 아무렇지도 않았어. 이렇지는 않았어.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돌아 버렸어. 그리고 당신을 되도록 괴롭히려고 해. 이봐 내 말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말아. 난 정말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나는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처럼 사랑한 사람이 없었어!"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버릇이 되어 버린 거짓말을 하였다. 지금까지 그런 거짓말로 빵과 버터를 벌어왔던 것이다.

"당신은 저한테는 무척 정답게 해 주셨어요."

", 암캐야!" 하고 그는 말하였다.

"돈 많은 암캐야. 이것은 그대로 시().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시가 가득 차 있어. 헛소리 같은 시 말이야."

"그만 해요. 해리, 왜 당신은 지금 악마와 같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난 무엇이고 남겨놓고 가기는 싫어." 하고 그는 말했다.

"무엇이든지 남기고 가기는 싫단 말이야."

어느새 날이 저물어 사나이는 잠시 잠이 들었다. 언덕 너머 해가 저물고 벌판은 그늘로 덮여 있었다. 캠프 근처에서 작은 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머리를 수그리고 꼬리를 휘저으면서, 숲속에서 꽤 먼 이곳까지 와 있는 것이다. 새들은 모두 나무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그 수효가 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심부름을 하는 소년이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님은 사냥을 가셨어요." 하고 소년은 말하였다.

"주인님! 무엇을 드릴까요?"

"아무것도 먹기 싫다."

그녀는 찬거리를 좀 잡으려고 나간 것이다. 남자가 사냥 구경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바라볼 수 있는 이 숲속 일대에서만은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고 먼 곳에 갔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생각이 깊은 여자로구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자기가 알고 있거나 읽고 들은 것에 대하여 사려가 깊은 여자였다.

그는 그녀에게 접근하였을 때 이미 폐인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결코 그녀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 줄을 어떻게 그녀가 알 수 있겠는가? 그는 단지 입버릇으로, 또는 심심풀이로 지껄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들에게는 이 사나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일 때에는 진실을 말할 때보다 오히려 더 효과가 있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할 만한 진실이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인생을 마음껏 즐겨 왔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그것도 끝장이 나서, 딴 여자와 돈을 물 쓰듯 하면서 같은 고장에서 최 갑부에 속하는 인물들을 비롯하여, 새로운 얼굴들을 상대로 하여 새 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매우 신통한 일이기도 하였다. 완전히 자기 실속을 차리고 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이 산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게 되었으니 할 수 없다는 그런 태도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언젠가는 이 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보리라. 자기는 그들의 동료가 아니라 그들 사회의 스파이이다. 자기는 밖에서 그 사회에 대한 글을 써보리라. 작가란 반드시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글이 쓰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일만을 추구하며,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의 재능을 둔하게 만들고, 일에 대한 의욕까지 무디게 하였으므로, 결굴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가 사귀고 있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 때에 즐겁게 사귈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아프리카는 가장 행복하게 지낸 고장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인생을 새 출발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그들은 이 사냥에서 안락을 취하였다. 거기에는 고생도 호화스러운 사치도 없었다. 이렇게 하여 즐거운 생활을 훈련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마치 권투선수가 자기의 육체에서 지방질을 없애기 위해, 산에서 노동 일을 하여 자기자신을 단련하듯이, 그는 자기의 정신의 지방(脂肪)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여자도 그런 생활을 즐겼다. 그녀는 드러내놓고 이 사실을 말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극적이고 변화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하였다. 거기서 새 사람을 만나게 되고 모든 일이 재미있게 전개되었다.

그는 일을 하려는 의욕을 느낄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런 모양으로 인생을 마치더라도, - 그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 마치 자기의 등뼈가 부러졌다고 해서, 자기 몸뚱이를 물어뜯는 뱀처럼 자기 자신에게 대항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만일 거짓말로 살아왔다면 거짓말로서 국어야 할 것이다. 언덕 저쪽에서 총소리가 한방 들려 왔다.

그녀는 훌륭한 사격수였다. 그녀는 착하고 돈 많은 암캐요, 상냥한 간호인이오, 또한 그의 재능의 파괴자이기도 하였다. 아니 그것은 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의 재능은 자기 자신이 파괴한 것이다. 너를 그토록 보살펴 준 그녀를 나무랄 수 있느냐?

그가 자기 재능을 망친 것은 그 재능을 전혀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신조를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각의 칼날을 무디게 할 정도로 술을 너무 마셨기 때문이다. 또한 태만과 타성과 속물근성 때문이며, 자부심과 편견과 그밖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이건 뭐야? 헌 책 목록이냐? 대체 그의 재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재능이기는 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이용하는 대신에 한 밑천으로 삼아 팔아 먹었던 것이다. 그의 재능은 실제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면 할 수 있다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생활수단으로 택한 것은 펜이나 연필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그가 딴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 으레 먼저 상대보다 돈이 많은 여자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가 지금 이 여자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거짓말만 하고 있을 때, 누구보다 돈이 많고 현재의 생활을 도맡아 하고 있는 이 여자는 전에 남편과 자식이 있었고, 애인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의 이 사나이를 한 작자로서, 남성으로서, 친구로서, 또는 자랑거리로서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금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거짓말만 하면서도 그가 진실한 사랑을 하던 때보다 그녀의 돈의 혜택을 더 많이 입을 수 있다니 알고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 일에 저마다 적응하도록 되어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어떤 형식에 의해 자기 정령을 팔아왔던 것이다. 사랑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아야 돈에 대해 더욱 많은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아내었지만 지금 그것을 글로 쓸 수는 없었다. 설사 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하더라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공지(空地)를 가로질러 캠프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승마용 바지를 입고 라이플총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녀의 뒤를 두 소년이 숫양 한 마리를 어깨에 거꾸로 메고 따라왔다. 아직은 꽤 예쁜 여자로군,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육체미를 갖고 있었다. 잠자리에 대하여도 훌륭한 기교와 검상력이 있었다.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얼굴을 그는 좋아하였다. 그녀는 굉장한 독서가인 데다가 말타기와 사냥을 좋아하였으며 술을 무척 즐겼다.

그녀가 아직 젊었을 때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동안 자라나는 두 아이들에게만 종성을 쏟았다. 그러나 이윽고 아이들은 어머니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뿐더러, 어머니가 옆에 있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결국 승마와 독서와 그리고 술독에 빠져 버린 것이다. 오후에 저녁을 먹 전까지는 독서를 즐겼으며, 책을 읽으면서 스카치 소오다를 곧잘 마셨다. 그리하여 식사 때까지는 상당히 얼근하게 된 데다가, 식사때 포도주를 한 병 더 마시고 나면 만취가 되어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애인이 생기기 전의 일이었다. 애인이 생긴 다음부터는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 않았다. 술에 취하여 잠들 필용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애인들은 그녀를 곧 권태에 빠지게 하였다. 전 남편은 그녀를 좀처럼 권태에 빠지게 하지 않았으나 이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때 자식 하나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그 후로 애인을 갖고 싶지 않았다. 술도 마취제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다른 생활을 해나가야만 되었다. 그녀는 자기의 고독을 느끼고 무척 놀랐다. 그녀에게는 존경할 만한 남자가 필요하였다.

일은 매우 간단히 시작되었다. 그녀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의 생활을 언제나 부러워하였다. 그녀는 그가 이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녀가 그를 손에 넣고 사랑에 빠지게 된 경위로 말하면, 그녀로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새로운 생활을 이룩하고, 그로서는 자기의 낡은 생활의 찌꺼기를 팔아넘긴 순조로운 과정의 한 부분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는 생활의 안정과 위로를 위해 그것을 팔아 버렸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밖에 또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 주었을 것이다. 그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무척 멋있는 여자였다. 그는 어느 여자보다도 그녀하고 동침하고 싶었다. 왜야하면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돈이 많고, 명랑하며 감상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결코 남자를 들볶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재건한 이 생활은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옥도정기를 쓰지 않는 데서 비롯되었다.

두 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는 한 떼의 영양(羚羊)이 고개를 추켜들고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두 귀를 쭉 뻗고, 설핏하면 숲속으로 도망치려는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앞으로 다가가다가 무릎이 가시에 긁혔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양들은 사진을 찍기도 전에 도망쳐 버렸다.

여자는 그만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침대 위에서 머리를 들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보!" 하고 그는 불렀다.

"숫양 한 마리를 잡았어요." 여자는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에게 좋은 국거리가 될 거예요. 크림과 감자를 넣어서 다지겠어요. 그런데 기분은 좀 어떠세요."

"썩 좋아."

"아이, 좋아라! 저도 생각에 어쩐지 당신이 좋아질 것만 같았어요. 제가 사냥을 갈 때 당신은 주무시고 계셨거든요."

"한잠 푹 잤지. 멀리 갔었소?"

"아녜요. 저 언덕 너머로 갔었어요. 한방으로 양을 멋지게 쏘아 맞췄지요."

"솜씨가 굉장하군 그래."

"저는 사냥을 무척 좋아해요. 그리고 이곳 아프리카도 좋아해요. 정말 당신이 몸만 성하다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과 함께 사냥을 가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전 이 고장이 마음에 들어요."

"나두 마음에 들어."

"당신의 기분이 좋아진 것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아까와 같은 그런 기분으로 계시면 저는 정말 견딜 수 없어요. 당신 다시는 그런 말씀 안 하시죠? 약속하시겠어요?"

"안돼. 내가 아까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잊어버린걸."

"제 신세를 망치지 마세요. 저도 인제는 중년 부인이에요.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이 원하시는 뭐든지 해 드리고 싶어요. 저는 벌써 당신에게 몇 번이나 짓밟혔어요. 다시는 제 신세를 망치려고 하지 마세요, ?"

"당신을 잠자리에서 두서너 번 늘어지게 더 해주 싶은데……"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세요. 그건 좋아요. 우린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걸요. 내일은 비행기가 올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

"반드시 와요. 오기로 되어 있어요. 아이들은 벌써 나무를 베고 연기를 피워올릴 풀을 준비해 두었어요. 오늘도 내려다보고 왔어요. 착륙할 대지도 충분하고요. 양쪽 끝에는 연기를 올릴 마련도 되어 있어요."

"왜 내일 온다는 거요?"

"반드시 올 거예요. 벌써 예정날짜가 지났어요. 비행기가 오면 마을에 가서 당신의 다리를 치료하고 나서 둘이서 멋지게 하기로 해요. 당신이 말씀하신 그런 무서운 얘기는 말구요."

"해도 이제 저물었으니 함께 술이나 한잔 하지?"

"한 잔 꺽 하셔야 되겠어요?"

"벌써 한 잔 했는걸."

"그럼 한 잔씩 해요. 몰로, 위스키 소다를 두 병만 가져와." 하고 그녀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모기가 물지 않는 장화를 신는 것이 좋을 거야." 하고 사나이가 말하였다.

"목욕을 하고 나서 신겠어요!"

그들은 어둠이 점점 짙어가는 가운데서 술을 마셨다. 벌써 사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언덕을 나와 들판을 지나갔다.

"저놈은 밤마다 저곳을 지나간단 말야." 사나이가 말하였다.

"두 주일 동안 하룻밤도 빼놓지 않거든."

"밤에 고함을 친 게 저놈이군요. 전 상관하지 않지만 징그러운 짐승이군요."

사나이는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자리에 누워있는 것이 불쾌할 뿐,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소년들이 불을 피우자 텐트 위에서 불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그는 이 즐거운 굴종(屈從)의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는 정말로 친절하게 대해 준다. 그런데 자기는 잔인하고 냉정하다. 그녀는 훌륭한 여자이다. 정말 훌륭한 여자이다. 그때 그는 별안간 자기는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실로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결이 흘러내리거나 바람이 불어닥치는 것처럼 그렇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난데없이 고약한 냄새가 하늘에 풍겨오는 것처럼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하이에나가 공지를 따라 미끄러지듯 가볍게 스쳐 갔다.

"해래, 왜 그러세요?" 그녀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당신은 이쪽으로 오는 것이 좋겠군. 바람머리 쪽으로……"

"몰로가 붕대를 갈아 주었어요?"

"그래. 지금은 붕산(硼酸)만 쓰고 있오."

"기분이 좀 어때요."

"좀 어지러운데."

"전 목욕을 하고 오겠어요. 곧 올게요.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침대를 안으로 들여놓도록 해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사나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말다툼을 그만두기를 잘했어.’

사실 그는 이 여자와 별로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사랑한 다른 여자들과는 곧잘 싸움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싸움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함께 지니고 있던 것까지 파괴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여자를 너무 많이 사랑했고 또 너무 많이 탐내어 그 모든 것이 달아 문드러지게 하였다.

그는 파리를 떠나기 전에 여자와 싸움을 하고 혼자서 콘스탄티노플로 간 그때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그동안 줄곧 오입을 계속해 왔었다. 그러다가 거기에도 지쳐 버리자 마음의 고독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심해갔다.

그는 자기를 버리고 달아난 첫째 번 여자에게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었다. 즉 언젠가 한 번 레쟌스 교회에서 당신을 본 것처럼 생각되어 머리가 아찔해서 기절할 것만 같았으며, 가슴이 잿더미가 될 것 같았다느니, 불바알가에서 당신과 비슷한 여자를 만나 뒤를 따라가 보려고 하였으나, 혹시 당신이 아니면 어쩌나 하고 처음 기분을 잡칠까 봐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느니, 어떤 여자를 데리고 가더라도 그것은 당신을 더욱 그립게 할 뿐이라느니,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도저히 식어지지 않는다느니, 당신의 과거의 처사는 조금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느니 하는 등등의 내용을 적은 편지였다.

사나이는 구락부에서 냉정하고 진실한 태도로 이 편지를 써서 뉴욕에 부치고, 회답은 파리의 자기 사무소로 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그날 밤에는 그 여자가 무척 그리워 속이 상한 김에 택심의 술집 앞을 서성거리다가 지나가는 여자 하나를 붙잡아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나서 춤을 추러 갔는데, 여자의 춤이 서툴러 기분이 나지 않으므로, 열렬한 알메니아 매춘부와 함께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 어찌나 배때기를 심히 부벼대는지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영국 포병 하사관과 싸움 끝에 빼앗았던 것이다.

하사관은 그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어둠컴컴한 자갈길 위에서 한바탕 격투를 하였다. 그는 포병의 턱주가리를 호되게 갈겼다. 그러나 놈은 나가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포병은 그의 가슴을 후려갈기고 계속하여 눈두덩 위를 때리고, 그는 왼손을 스윙하여 포병에게 한 대 먹였다. 그러자 포병은 그의 위에 엎드러지며, 그의 웃저고리를 움켜쥐더니 소매를 잡아 찢었다. 그는 포병의 뒤통수를 두 번이나 갈기고 나서 그를 떠다밀면서 주먹을 마구 먹여주었다. 그러자 포병은 대가리를 땅에 부딪치면서 나가떨어졌다. 그때 헌병이 뛰어오는 소리가 났으므로 그는 여자를 데리고 도망을 쳤다.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보스훠러스 해협(海峽)을 따라 리미리 핏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을 한 바퀴 돌아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면서 거처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 여자는 외양과 같이 너무 무르익어 있었지만, 부드러운 장미 같고, 반들거리는 뱃가죽을 하고 젖통이 크며, 궁둥이에 벼개를 고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비춰와 여자의 망측한 꼴을 보고는 여자가 눈을 뜨기 전에 그 방을 나와 버렸다. 그는 검게 멍든 눈자위를 하고 페라패리스에 나타났다. 저고리는 한쪽 소매가 없어졌으므로 벗어서 손대 들었다.

그는 그날 밤으로 아나토리아를 향해 떠났다.

그는 그 여행을 마칠 무렵에 아편을 얻기 위해 말을 타고 양귀비밭을 향해 달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마침내 착각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곳은 적이 새로 도착한 콘스탄틴의 장교들과 합세하여 공격해 온 고장이었다. 이 장교들은 전투가 얼마나 치열한지 경험하지 못한 신출내기들이었다. 포병들은 그 부대에 포격을 가하고 있었으며 영국의 관전무관(觀戰武官)은 어린애처럼 커다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날 바레용() 치마 같은 것을 두르고 술이 달린 장화를 신은 전사자 처음 보았다. 토이기 군대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스카이트를 두른 병정이 도망치자 장교들은 그들을 향해 권총을 마구 쏘아대었다. 그는 관전무관과 함께 도망을 쳤다. 숨이 턱에 닿고 입속에서는 마치 구리 돈을 씹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그들은 바위 뒤에 숨어 버렸다. 토이기 병정들은 여전히 떼를 지어 찾아왔다.

그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더 처참한 꼴을 보았다. 그는 파리에 돌아왔을 때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말을 하기가 끔찍스러웠던 것이다.

그가 지나가던 카페에는 미국 시인이 앉아 있었다. 커피잔을 앞에 놓고, 감자처럼 생긴 얼굴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어떤 루마니아 사람과 다다이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루마니아인은 트리스탄짜라라고 부르며 항상 외알 안경을 쓰고 두통을 앓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아파트로 돌아갔다. 그는 아내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싸움도 깨끗이 잊어버리고, 미친 지랄 같은 행위도 버리고 나서, 이제는 안락한 가정에서 살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우편물도 사무소에서 아파트로 보내오도록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그가 편지를 써 보낸 그 여자에게서 온 답장을 쟁반에 얹어 자기에게 가져왔다. 그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그리하여 다급히 그 편지를 다른 편지 밑에 넣으려는데 아내가 보고 말하였다.

"여보, 그게 누구한테서 온 편지예요?"

이리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다가 그만두어 버렸다.

그는 여자들과 함께 지내던 즐거운 한때와 또 그녀들과 싸우던 일을 회상해 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싸움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택하였으나, 그런데 기분이 가장 좋을 때, 으레 싸움이 벌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일에 대해서도 그는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우선 남을 중상하기 싫었으며, 또 그것이 아니라도 쓸 것이 얼마든지 있을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쓸 때가 오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사실 쓸 것은 많았다.

그는 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보아 왔었다. 그것은 표면의 사건만이 아니었다. 사건도 많이 보아 왔고, 사람도 여럿을 관찰해 왔지만, 그것보다도 그는 이 묘한 사회의 변화를 유심히 보아 왔던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살아왔고 그것을, 관찰해왔으므로 여기에 대하여 쓰는 것은 그의 의무이지만, 이제는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기분이 좀 어떠세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목욕을 마치고 텐트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매우 근사해."

"그럼 식사하실까요?"

그녀의 뒤에는 몰로가 접는 식탁을 들고 있었으며, 다른 소년들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군." 그는 말하였다.

"수프라도 좀 자시고 기운을 내셔야지요."

"난 오늘 밤에 죽을 거야. 기운을 차려봐야 소용없어."

"해리, 제발 그런 신파(新派) 같은 말씀 마세요." 그녀가 말하였다.

"당신은 코를 뒀다 어디 쓸 거야. 내 넓적다리는 반이나 썩어 버렸는데, 이제사 수프 따윌 먹어서 뭐 해. 몰로, 위스키 소다 가져와."

"제발 수프를 좀 잡수세요." 하고 그녀는 상냥하게 말하였다.

"그래 먹지."

그는 수프가 뜨거웠으므로 먹기에 알맞게 식을 때까지 컵을 손에 들고 있다가 잠시 후에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다 마셔버렸다.

"당신은 훌륭한 여자야. 날 그냥 버려둬!"

그녀는 호감을 주는 널리 알려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스파아지()나 타운 앤드 칸츄리지와 같은 데 흔히 나오던 얼굴이었다. 다만 술과 잠자리 일 때문에 좀 얼굴이 수척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타운 앤드 칸츄리와 같은 데서도 그렇게 탐스러운 젖가슴과 희멀건 넓적다리와 애무에 민감한 가벼운 손 등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소문난 아름다운 미소를 쳐다보자 다시금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는 죽음이 별안간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사르르 흔들어 불꽃을 일으키는 바람처럼 불어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애들에게 모기장을 가져오게 하여 나뭇가지에 매달도록 일러 줘. 그리고 불을 피워 줘. 난 오늘 밤엔 텐트 속에 들어가지 않을래. 움직인대야 별수 없을 테니까. 오늘 밤은 맑아서 비도 오지 않을 거야."

귀에 들리지도 않는 이런 속삭임 속에서 사람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싸움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만은 약속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한가지 경험만은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깨뜨려 버릴지도 모른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깨뜨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 받아쓸 수 없을까?"

"해 본 적이 없는걸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그럼 좋아."

물론 이제는 시간이 없다. 그러나 요령껏 잘 추리면 모든 것을 압축하여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호수 위 언덕배기에 몰탈로 틈바구니를 회게 칠한 통나무 오두막집이 한 채 있었다. 문 옆에 세워 둔 장대에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매달려 있고 집 뒤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뒤는 숲이었다. 롬비리종() 포풀러가 집에서 선창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눌어서 있고, 다른 종류의 포풀러들은 곶()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숲 가를 따라 언덕으로 길이 뻗어 있었으며, 그는 이 길을 따라가면서 새까만 딸기를 따곤 하였다.

나중에 그 통나무 오두막은 다 타 버리고, 벽난로 위의 사슴 발로 만든 총걸이에 걸려 있던 총도 다 타 버렸다. 탄창(彈倉)의 탄환은 녹아 버리고, 개머리판도 타서 총신이 잿더미 위에 박혀 있었으며, 그 재는 세탁용 커다란 솥에 필요한 잿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할아버지에게 타다 남은 총신을 갖고 놀아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하였다. 타 버리기는 하였으나 자기 총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는 그 후로 다시는 총을 사지 않았으며, 또 사냥하러도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같은 장소에 널판으로 집을 다시 짓고 흰 칠을 하였다. 그 집 현관에서는 포플러와 건너편 호수가 보였다. 그러나 총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통나무 오두막집 벽 위에 사슴 발 총걸이에 걸려 있던 총신은 지금 잿더미 위에서 뒹굴고 있었으나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난 후로 우리는 부랙 포리스트에서 송어 낚시장을 낸 적이 있는데, 그리로 가려면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트리베르그에서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이며, 하얀 길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 그늘을 따라 골짜기를 돌아서 언덕으로 뻗어 있는 샛길을 올라가면, 슈발추발트풍()의 커다란 집들이 보이는 조그마한 농장을 몇 개 지나서, 드디어 낚시장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낚시질을 시작하던 곳이었다.

또 하나의 길은 숲 변두리까지 험한 언덕길을 올라가서,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을 뚫고 언적을 넘어 풀밭 끝까지 나왔다가 다시 이 풀밭을 가로질러 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강변을 따라 벗나무가 무성하고, 폭이 좁아 맑은 물이 세차게 흘러 벗나무 아래에 못을 이루고 있었다.

트리베르그의 호텔 주인에게는 경기가 좋은 때였다. 우리는 기분이 좋아 서로 화목하게 지내었다.

이듬해에 인플레가 밀려왔다. 지난해에 번 돈으로는 호텔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구입할 수가 없어, 주인은 목을 매어 죽어버렸다.

여기까지는 받아쓰게 할 수도 있지만, 콘트르 카르프 광장(廣場)에 대한 일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길목에서 꽃에 물감을 들이고 있어, 버스가 떠나는 근처의 길바닥에는 그 물감이 흐르고 있었다. 노인과 여자들은 포도주와 포도즙을 짜낸 찌꺼기로 만든 싸구려 술을 마시고 늘 늘 얼근하게 취해 있었으며, 아이들은 추위에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카페 데 사마터오르에서는 더운 땀 냄새와 궁핍과 주정뱅이 냄새가 풍겨왔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발 뮤제트 아래층에는 매춘부들이 살고 있었다. 문지기 여자는 프랑스 공화국 기병을 자기 방에서 접대하여, 말털을 꽂은 그의 헬멧이 의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낭하의 맞은편 방에 세를 들어 있는 여자의 남편은 자전거 선수로, 그날 아침에 우유 판매점에서 로트지()를 펴들고 남편이 처음으로 출전한 파리와 투루 사이의 장거리경주에서 3등을 한 기사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싱글벙글하면서 노란 색깔의 스포츠 신문을 들고 뭐라고 지껄이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발 뮤제트를 경영하고 있는 여자의 남편은 택시 운전수로, 그녀가 전에 첫 번째 비행기로 떠나던 아침에 운전수는 문을 두들겨 그녀를 깨웠던 것이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양철을 깐 주점의 카운터에서 한 잔씩 나눴다. 그때의 그녀는 주위 사람들과 곧잘 사귀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광장의 주위에는 두 종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즉 주정뱅이와 운동애호가가 그것이었다. 주정뱅이는 술에 취하여 자기의 가난한 살림살이를 잊어버렸으며, 운동애호가는 경기에 정신이 팔려 자기의 가난한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들은 다 함께 코뮨당원(18713월에서 5월까지 파리를 지배한 혁신적인 노동자 정부)의 자손들로, 정치문제에 대하여 언쟁을 벌이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자기네의 부모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을 누가 사살하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 베르사이유 군대가 쳐들어와 코뮨정부를 몰아내고 파리를 점령한 뒤에 손이 거칠거나 모자를 썼거나 그 밖에 노동자라는 표적이 있는 사람이면 닥치는 대로 잡아서 죽여 버렸던 것이다.

그는 말고기깐과 포도주 협동조합 맞은편 숙소에서 궁핍에 쌓인 채 그러한 작품의 첫머리를 썼던 것이다. 파리에서는 여기만큼 마음에 드는 곳도 없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 아래쪽은 갈색으로 칠하고 위에는 흰 회칠을 한 낡은 집들, 둥근 광장에 서 있는 초록색 길다란 합승차, 길바닥에 흐르는 자줏빛 꽃물감, 마르리날 루모 앙느가()언덕에서 세느강으로 내려 하는 경사가 심한 무후타르가()의 비좁고 혼잡한 곳을 지나가는 또 하나의 한길. 하나는 판데온 쪽으로 가는 거리이고, 또 하나는 그가 언제나 자전거로 다니던 거리였다. 그 일대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스팔트 길이며, 자전거 바퀴도 매끄럽게 굴러갔다. 그 거리에는 높고 좁은 집들이 죽 늘어서 있고, 포올 베르레는가 숨을 거둔 높다란 값싼 아파트도 있다.

베르레느는 그 아파트의 맨 위층에 있는 방 하나를 월세 60프랑으로 빌려 가지고 살면서, 그 방에서 글을 썼던 것이다. 거기서는 파리의 지붕과 굴뚝과 언덕들이 다 내다보였다. 그 아파트에는 장작과 석탄을 파는 가계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좀 질이 나쁜 포도주들도 팔고 있었다. 말고기깐 바깥에는 황금빛 말대가리가 걸려 있고, 열린 창문 안에는 누르스름하고 붉은 말고기가 걸려 있었다. 그들이 언제나 포도주를 하던 푸른 페인트을 한 협동조합도 보였다.

그 포도주는 맛도 좋고 값도 헐하였다. 그 밖에 눈에 보이는 것은 벽토를 칠한 벽과 이웃집 창들뿐이었다. 밤에는 누군가 술에 취하여 거리에 자빠져서 전형적인 프랑스인답게 신음하고 끙끙거리며 이웃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었다.

"순경은 어디 있어? 필요 없을 경우는 곧잘 나타나면서……어느 문지기년 하고 자빠져 있을 거야. 순경을 불러와!"

그때 누가 창문을 열고 물 한 들통을 퍼부으면 그 신음소리는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

"이거 뭐야? 물이군 그래. 이거 약은 수작인데."

이렇게 되면 창문이 닫힌다.

그가 데리고 있던 식모 마리는 8시간 노동제를 항의하였다.

"남편이 여섯 시까지 일을 하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한 잔 할 터이니 돈도 낭비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다섯 시에 일이 끝나면 밤마다 취하게 되어 돈이 남아날 리가 없어요. 노동 시간을 단축하여 골탕먹는 사람은 노동자의 여편네 뿐이야요."

"수프를 좀 더 드시지 않겠어요?" 하고 여자가 물었다.

"인제 그만 먹을 테야. 맛 참 좋군."

"좀 더 드세요."

"위스키 소다를 마시고 싶어."

"그건 몸에 좋지 않아요."

"물론이야. 코올 포터(미국 유행가 작곡가)가 그런 가사를 써서 작곡까지 했어. 당신이 나한테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야."

"하긴 저도 당신에게 술을 드리고 싶어요."

"그럴 거야. 내 몸이 엉망이니까 그렇단 말이지?"

이 여자가 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손에 넣으리라. 내가 필요한 것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여기 있는 것만은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아아, 너무 피곤해, 좀 자야겠어. 그는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거기에는 죽음이 없었다. 다른 거리로 돌아서 가버린 모양이다. 죽음은 조용히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파리에 대하여 한 번도 글을 쓴 일이 없다.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파리에 대하여는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다른 일에 대하여는 무엇을 썼던가?

그 목장과 은회색 들쑥이며 관개용 도랑의 빠르고 맑은 물살과 짙은 자줏빛 개나리 등은 어떠하였던가? 오솔길은 언덕을 넘어갔다. 여름철의 소들은 사슴처럼 수줍어한다. 가을이 되어 산에서 소들을 끌어 내릴 때의 울음소리, 아우성, 먼지를 일으키면서 조용히 움직이는 한때의 노루, 그리고 서산 너머 저녁 햇살에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 봉우리, 오솔길을 말을 타고 내려올 때, 건너편 골짜기까지 환하던 달빛, 어둠 속에서 잎이 버이지 않아 말의 꼬리를 잡고 숲 사이를 내려오던 일 등등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밖에 써 보고 싶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그때 목장에 남아서 아무도 건초(乾草)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지키던 바보 같은 소년과, 사료(飼料)를 좀 얻어가기 위해 온 포크가()의 심술궂은 영감 - 이 영감은 전에 소년을 부리고 있을 때, 곧잘 때리고 하였는데, 이때 소년이 영감의 행실을 말리자 또 때리고 하였다. 소년은 부엌에 가서 라이플총을 들고나와서 영감이 헛간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마구 쏘았다. 사람들이 목장에 돌아왔을 때에는, 영감은 죽은 지 벌써 한 일주일이 되어 있었다. 시체는 가축 우리 속에서 얼어붙어 있었으며, 그 일부는 개들이 뜯어 먹었다. 그러나 시체의 나머지 부분을 담요에 싸서 썰매에 싣고, 밧줄에 동여매고 나서 소년이 부축하며 끌고 갔다. 이리하여 소년과 그는 썰매를 타고 고개를 넘어 한길로 끌고 나와, 60마일이나 떨어진 마을로 내려왔다.

소년은 경찰에 인도되었다. 그는 자기가 체포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자기는 의무를 다한 것이며, 두 사람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체포되기는커녕 무슨 보상이라도 받을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감의 시체를 운반하는 시중을 든 것도, 영감이 고약하여 남의 사료를 훔치려고 한 것도 모두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경찰관이 쇠고랑을 채웠을 때, 소년은 사실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년은 울기 시작히였다.

이것은 그가 쓰려던 이야기의 하나이다. 그곳에서는 이런 이야깃거리가 적어도 스물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무슨 까닭일까?

"무슨 까닭인지 말해 봐." 하고 사나이는 말하였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이 남자를 손에 넣은 후로 술은 많이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사나이는 다행히 목숨을 건지더라도 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을 심산이었다. - 또 그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대관절 돈이 많은 사람은 우매하여, 술을 마시지 않으면 노름을 하는 권태로운 자들로, 같은 일을 언제나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쥬리안이 생각났다. 그녀는 부자들에게 낭만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부자는 당신이나 나와는 다른 족속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소설을 쓰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때 누가 쥬리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들은 무리보다 돈이 많지."

그러나 쥬리안의 귀에는 이 말이 유머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부자를 특별한 세력을 가진 족속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그는 환멸을 느끼는 인간을 경멸하였다.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기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무슨 일이나 개의치 않으면 그것은 자기를 괴롭힐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옳지! 이제는 죽음에 대하여도 걱정하지 말자. 언제나 두려운 것은 오직 고통뿐이었다. 그러나 그도 고통이 너무 오래 지속 되어 그를 지쳐 버리게 할 때까지는 그 고통을 나만치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고통이 매우 심하였다. 드디어 그것이 자기를 파괴하리라고 느끼자 그 고통은 멎어 버렸다.

그는 오래전부터 장교로 있는 윌리암슨이 철조망을 뚫고 참호속에 들어가려다가 독일 순찰병이 던진 수류탄에 맞았을 때의 일을 회상하였다. 그 장교는 비명을 지르면서 누구든지 자기를 죽여달라고 애원하였던 것이다. 그는 약간 공상적인 허풍을 치는 버릇이 있었지만 뚱뚱한 몸집에 매우 용감하고 훌륭한 장교였다. 그러나 그날 밤 철조망에 걸리는 순간 적의 탐조등에 탄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오장이 튀어나온 채 그대로 철조망에 걸려 있었다. 그리하여 장교들이 목숨이 붙어 있는 그를 끌어 잡아당길 때 그의 오장을 잘라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를 쏘아 주게, 해리! 제발 부탁이야. 나를 쏘아 줘!"

언젠가 <주님은 인간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시지는 않는다>는 문제로 여럿이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것은 적당한 시기가 오면 고통이 스스로 없어짐을 뜻한다는 이론을 내세운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의 윌리암슨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자기가 쓰려고 두었던 모르피네 약을 그에게 전부 내주어 먹게 할 때까지 고통은 그에게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모르피네는 효과가 빠르지 않았다.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더라도 더 악화 악화되지만 않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다만 보다 더 낳은 상대자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그러한 상대자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갖은 짓을 다 해온 데다가 너무나 오랫동안 끌었으며, 또 때가 너무 늦은 지금에 와서, 아직도 그런 상대자가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다 가 버렸다. 파티는 끝나 버리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너와 여자주인뿐이다.

그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귀찮게 생각되었다.

"귀찮은 일이군." 하고 그는 말하였다.

"뭐가요?"

"무엇이건 너무 오래 하면 다 그런 법이야."

그는 자기와 모닥불 사이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엇다. 불빛이 그녀의 명랑한 얼굴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졸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모닥불 가까운 곳에서 하이에나가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소설을 쓰려고 해. 그렇지만 피곤해." 하고 그는 말하였다.

"주무실 수 있겠어요?"

"그럼. 당신은 왜 안 자는 거야?"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자고 싶어요."

"좀 이상한 느낌이 안 들어?"

"아뇨. 약간 졸릴 뿐이에요."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드는군."

그는 다시금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오직 호기심뿐이오." 하고 그는 여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어요.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당신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에요."

"천만에, 여자란 어쩌면 그렇게도 무지할까. 그게 당신의 직관(直觀)에서 하는 말이야?"

그때 죽음이 다가와 침대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는 인제 죽음의 입김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은 커다란 낫과 두개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하고 그는 여자에게 말하였다.

"죽음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두 사람의 순경일 수도 있고, 또 날아오는 새일 수도 있는 거야. 그리고 하이에나처럼 커다란 코를 가진 짐승일 수도 있어."

죽음은 바야흐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인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리 가라고 해."

죽음은 물러가기는커녕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너 지독한 입김을 피우고 있구나." 하고 사나이는 죽음을 향해 말하였다.

"이 고약한 냄새를 피운 놈아!"

죽음은 더욱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하여 이제는 죽음에 대하여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죽음은 여전히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사나이는 말도 못 하면서 죽음을 물리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음은 그에게 덤벼들어 그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이처럼 죽음이 거기 웅크리고 있으므로 그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였다.

"아저씨가 잠드셨으니 침대를 조용히 들어서 텐트 안에 옮겨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여자에게 죽음을 쫓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죽음은 이제 더욱 무겁게 몸을 압박하였다.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러나 침대를 옮기는 동안에 사태는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가 그 죽음의 압박은 가슴에서 사라졌다.

아침이 되었다. 벌써 날이 밝은지가 오래다. 그는 비행기가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 비행기는 아주 작게 보이더니 점점 커다란 원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소년들은 밖에 뛰어나가서 등잔 기름에 불을 지르고 그 위에 마른 풀을 쌓아 올렸다. 들판 양편에서는 커다란 두 줄기의 연기가 오르고 그 연기는 아침의 산들바람에 캠프 쪽으로 몰려왔다. 비행기는 하늘에 나지막하게 떠서 두어 번 원을 그리며 내려오더니 수평을 유지하면서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에게 걸어오는 사람은 옛 친구인 컴프튼이었다. 느슨한 바지에 트위이드의 자켓을 입고 갈색 벨트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하고 컴프튼은 말하였다.

"다리를 다쳤네. 조반을 먹어야 하지 않겠나?"

"고맙네. 나는 차나 마시려네. 자네가 보다시피 포스 모스기()일세. 그래서 부인은 함께 태울 수가 없네. 좌석이 하나밖에 없으니 말이야. 트럭이 곧 올 걸세."

헤렌은 컴프튼을 옆으로 데리고 가서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컴프튼은 전보다 더욱 명랑한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우선 해리를 태우고 가야지."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리고 부인을 모시러 다시 오겠네. 그런데 연료 때문에 아르샤에 들려야 할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곧 출발하는 것이 좋을 걸세."

"차는 들었나?"

"별로 생각이 없네."

소년들은 침대를 어깨에 메고 녹색 천막을 떠나 바위를 돌아서 평자로 내려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옆을 지나갔다. 쌓아 올린 마른 풀은 거의 다 타 버리고, 모닥불은 바람에 벌겋게 타고 있었다. 그들은 소형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를 비행기에 태우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가죽 좌석에 몸을 의지하고 다리는 컴프튼의 좌석 한쪽 옆으로 쭉 펴고 있었다.

컴프튼은 발동을 걸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는 헤렌과 소년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귀에 익은 엔진 소리가 들리자 비행기는 삥 돌았다. 컴프튼은 어디 산돼지 굴이라도 없나 하고 눈을 두리번거렸다. 비행기는 소리를 내면서 두 개의 모닥불 사이의 평탄한 벌판을 달리다가 드디어 공중에 떠올랐다. 아래에 남은 사람들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언덕 옆에 마련한 캠프가 납작하게 보리고 벌판이 멀리 퍼져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과 덤불로 납작하게 보였다. 그리고 사냥길이 메마른 물구덩이까지 뻗어 있고,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개천이 보였다. 얼룩말은 잔등만 조그맣게 보이고 길다란 손가락같이 벌판을 달리는 말들도 그 머리는 마치 점()이 공중으로 기어오르려는 듯이 보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비행기의 그림자가 접근하자 사방으로 흩어져 하도 조그맣게 보이므로 별로 뛰어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벌판도 이제는 뿌연 황금빛으로 보일 뿐이었다. 눈앞에 트위이드 자켓을 입은 컴프튼의 잔등과 갈색 벨트 모자가 보였다. 그때 그들은 첫 번 언덕을 지나갔다. 말이 뛰어다녔다. 비행기는 푸른 산봉우리를 넘어 대나무가 무성한 산비탈 위를 지나갔다. 이어서 산봉우리와 골짜기로 굴곡이진 무서한 삼림을 지나자 언덕이 비스듬히 낮아지고 다시 벌판이 나타났다. 비행기 속은 열기(熱氣)로 하여 무척 덥고 벌판은 보라빛을 띤 갈색으로 보였다. 컴프튼은 비행기의 동요가 심하였으나 해리를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거무틱틱한 산맥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아르샤로 향하던 비행기는 방향을 왼쪽으로 돌렸다. 연료는 넉넉한 모양이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마치 체로 친 것 같은 핑크빛 가느다란 구름이 공중에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첫눈처럼 보였다. 그때서야 그것은 남부지방에서 날아온 메뚜기의 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는 위로 치솟으면서 동쪽을 향해 날으더니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다. 비가 마구 쏟아져서 마치 폭포 속을 뚫고 나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이윽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컴프톤은 뒤를 돌아보고 싱긋 웃으면서 손가락질을 하였다. 거기에는 세계의 지붕이나 되는 것처럼 거대하고 높다란 킬리만자로의 네모난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허옇게 보였다. 그때에서야 그는 자기가 가고 있는 곳이 바로 거기임을 알아차렸다.

그때 하이에나가 밤새 킹킹거리던 소리를 그치고, 이상하게도 인간처럼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여자는 그 소리를 듣고 무서워 몸부림을 쳤다. 그녀는 누을 감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롱 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에 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딸이 처음으로 사교계에 나가던 전날 밤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의 아버지가 거기 나타나 수선을 떨고 있었다.

그때 하이에나가 큰소리를 질렀으므로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한동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하여 회중전등을 들고 해리가 잠든 후에 들여다 놓은 도 하나의 침대를 비추어 보았다. 모기장 아래 그의 몸뚱아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리는 모기장 밖으로 내놓고 침대에서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붕대가 다 풀어져 있었으므로, 그녀는 그것을 쳐다볼 수 없었다.

"몰로!" 하고 그녀는 불러 보았다.

"몰로! 몰로!" 이어서 그녀는 불렀다.

"해리! 해리!" 그녀는 다시 목청을 높여서 불렀다.

"해리! , 해리!"

아무 대답도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텐트 밖에서는 하이에나가 여자의 잠을 깨울 때와 똑같은 괴상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그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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