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몸을 눕히고
E. Hemingway
우리는 그날 밤 마루에 누워서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누에들이 시렁에서 뽕잎을 갉아 먹고 오디를 먹는 소리며 뽕잎 사이로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 왔다. 나는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전신에서 내 영혼이 빠져 나가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밤이면 포탄이 터져 전신에서 영혼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던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밤마다 잠을 자려고 하면 그런 기분이 들어,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비로소 그런 생각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제는 혼이 도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상당히 자신을 가지면서도, 그해 여름에는 아직 그런 실험을 하기는 싫었다.
눈을 뜨고 드러누워 이일 저일 심심풀이로 더듬어볼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다. 나는 소년 시절에 송어가 득실거리는 시내로 낚시질을 하러 간 생각이 떠오르면, 애틋하게도 시내에서 혼자 낚시질을 해 보기도 하였다. 통나무 아래 도랑 모퉁이와 깊은 웅덩이, 그리고 맑은 얕은 여울에 낚시를 던져, 때때로 송어를 낚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였다. 점심때가 되면 낚시를 물에 담가 둔 채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때로는 냇물 위에 솟아 있는 통나무에 앉아서 먹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 아래 높은 언덕에서 먹기도 하였다. 나는 점심을 천천히 먹으면서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곤 하였다. 집에서 올 때 담배통에 불과 여남은 마리밖에 되지 않는 지렁이를 갖고 왔기 때문에 간혹 미끼가 떨어지는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갖고 간 지렁이를 다 쓰고 나면 다시 구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오리나무들이 햇빛을 가로막아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축축한 두렁길을 골라 파헤치기는 매우 힘드는 일이었으며, 또 파 보아야 지렁이는커녕 벌레 새끼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거나 미끼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만 했다. 한번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잡은 송어의 껍질을 벗겨 미끼로 사용한 일도 있었다. 또 때로는 질퍽질퍽한 풀밭이나 잔디, 혹은 고사리 뿌리 밑에서 곤충을 잡아 미끼로 쓰기도 하였다. 거기에는 딱정벌레도 있고, 풀잎사귀의 줄거리 같은 다리를 한 곤충도 있었다.
그리고 오래 썩은 통나무 속에는 굼벵이도 있었다. 흰 굼벵이의 가느다란 갈색 대가리는 참 물속에 넣으면 낚싯바늘에 걸려 있지도 못하고 녹아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지렁이가 나타나는 통나무 밑에는 진드기가 나무통을 들어 올리면 곧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한번은 썩은 통나무 아래서 나온 도마뱀을 미끼로 쓴 적도 있다. 그 도마뱀은 몸집이 작고 말쑥하고 날쌔며, 색깔이 아름다웠다. 미끼로 달면 가냘픈 다리로 낚싯바늘을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후로는 절대로 도마뱀을 미끼로 쓰지 않았다. 귀뚜라미도 낚싯바늘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측은하여 쓰지 않기로 하였다.
시냇물이 가끔 넓은 목장의 풀밭을 가로질러 흐르기도 하였다. 나는 메마른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아 미끼로 쓰기도 하고, 또는 그 메뚜기를 시냇물에 띄워 헤엄쳐 떠내려가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냇물에 휘감기며 물위에 원을 그리는 것도 재미있게 들여다보았다. 송어가 뛰어 올라와, 이 메뚜기를 잡아채기도 하였다.
나는 밤이면 가끔 네댓 군데나 자리를 바꾸어 가며 낚시질을 하였다.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근처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상쾌하였다. 낚시질을 너무 빨리해서 시간이 남으면 다시 낚싯줄을 드리우곤 했다. 나는 시내가 호수로 바뀌는 데서 시작하여 시냇물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놓친 송어를 모조리 잡으려고 하였다.
나는 어느 날 밤엔 많은 시내를 헤매기도 하였다. 그렇게 되면 그 시내는 참으로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눈을 뜨는지, 잠을 자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어수선하기도 하였다. 나는 아직도 그런 시내를 기억하고 있으며, 거기서 내가 낚시질한 것을 상기하여,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시내와 혼동하는 수도 있다. 나는 머릿속에 생각해 낸 그 모든 시내에 명칭을 붙이고, 기차를 타고 그곳에 가기도 하고 때로는 그곳에 이르기 위해 몇 리씩 걷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날 밤엔 나는 낚시질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깨어나 기도를 했으며, 내가 오늘날까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복을 빌려고 애섰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상당히 걸린다. 당신이 바꿔서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상기하기 위해 당신의 기억력을 멀리 더듬어 올라가야 할 것이다. 가장 먼 추억으로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태어난 다락방으로, 거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축하 케이크를 양철통에 넣어 서까래 아래 달아매 놓았으며, 또한 아버지가 이 무렵에 채집하여 알코올에 넣어 둔 뱀과 그 밖의 여러 가지 표본이 들어 있는 유리병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빛이 하얗게 바랜 채 놓여 있었다.
이와같이 먼 옛날로 더듬어 올라가면 숱한 사람들을 기억 속에 불러낼 수 있다. 당신들이 만일 그런 사람들을 위해 <천사 축사>와 <주기도문>을 외려고 한다면, 결국은 그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낮에 잠을 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밤이면, 싸움터에 나갔던 바로 직전의 일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꼬리를 물고 더듬어 올라가,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회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 댁의 다락방까지밖에는 회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서 시작하여 다시 생각을 더듬어 내려오면서 싸움터에서 일어난 사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 집을 떠나, 어머니가 다시 설계해서 지은 새집으로 이사했다. 이때, 필요 없는 물건들은 뒤뜰에서 태워 버렸다. 다락에서 나온 병들을 불더미 속에 집어 던졌더니, 뜨거운 열을 받아 병이 팡팡 터지고, 알코올이 쏟아져 불길이 환히 피어오르던 모습은 지금까지 기억에 새롭다. 그리고 뒤뜰에서 가끔 뱀들이 꿈틀꿈틀 기어 나오던 것도 생각난다. 그러나 이와같은 기억 속에는 사람보다도 물건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을 누가 태웠는지 알 수 없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가다가 사람의 생각이 나면 으레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이사한 새집에서의 기억―― 어머니가 늘 여러 가지 물건들을 깨끗이 닦고 손질하시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냥 여행을 떠나면 지하실을 구석구석 깨끗이 치우고 불필요한 것을 다 태워 버렸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마차에서 내려 말을 맬 때까지도 집 옆의 길가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마중하러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엽총을 넘겨주고 불을 바라보면서 웬 불이냐? 하고 물어보았다.
"지하실을 청소했어요." 어머니가 현관에서 대답하였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나와 웃으며 아버지를 맞이하였다. 아버지는 불을 보시더니 발길로 무언가 걷어찼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잿더미 속에서 무엇을 끄집어내었다.
"닉, 갈퀴를 가져온." 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하실에 가서 갈퀴를 하나 가져왔다. 아버지는 그 갈퀴로 잿더미 속을 조심스럽게 헤쳐 보았다. 그리하여 돌도끼며, 짐승 가죽을 베끼는 칼들과 화살촉을 만드는 기구, 오지그릇, 많은 화살촉 등을 갈퀴로 끌어냈다. 그것들은 다 불에 시꺼멓게 그슬리고 이지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침착하게 끄집어내어서 길가 풀섶에 펼쳐 놓았다. 가죽집에 든 엽총과 배낭은 아버지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풀밭에 내던진 채였다.
"닉, 총과 배낭을 방에 갖다 두고 종이를 한 장 가져와라."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어머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엽총을 집어 들었다. 들고 가기가 어쩐지 무섭고 자꾸만 두 다리에 부딪히는 것이었다. 나는 두 개의 배낭을 들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하나씩 들고 가거라. 무거운 것을 한꺼번에 들고 가려고 하지 말고."하고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엽총만 들고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는 서류꽂이에서 신문지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아버지는 그 신문지 위에 검게 그슬린 깨어진 도구를 주워 싸 놓았다.
"그 좋은 화살촉들이 다 망가졌군."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는 종이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두 개의 배낭을 든 채 풀밭에 버티고 서 있다가 얼마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이런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어느 날 밤에는 웬일인지 기도문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만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같이 땅에서도>라고만 중얼거렸을 뿐, 그 이상 더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되풀이하였다. 이렇게 되면 나는 그만 기억력을 상실한 채, 그 한밤에는 단지 무슨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보려고 하였다. 어느 날 밤엔 이 세상에 사는 동물 이름을 모조리 외어 보고, 다음에는 새 이름, 그리고 물고기 이름, 그다음에는 국가와 도시들, 또한 음식물의 이름뿐만 아니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카고의 여러 거리의 이름까지도 기억해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더 이상 기억해 낼 수가 없게 되면 나는 다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은 어떠한 잡음도 전혀 들리지 않는 밤이라고는 없었다. 등불만 있으면 나는 잠들지 않아,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영혼은 어두울 때 비로소 내 몸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등불이 켜진 곳에서 밤을 보내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늘 피곤해진 날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모르고 잠이 든 일은 많았지만, 그것을 알고 자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날 밤에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릴 듣고 있었다. 밤엔 이런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다. 나는 두 눈을 뜬채 귀를 기울이고 누워있었다.
방에는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 사람도 깨어 있었다. 나는 그가 오랫동안 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그는 나처럼 깨어 있는 버릇에 익숙지 못한 모양으로, 조용하게 누워있지를 못하고 자꾸만 뒤채고 있었다. 우리는 짚 위에 깔아 놓은 담요에 누워있었으므로, 그가 몸을 움직이면 늘 소리가 버석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에들은 우리가 내는 어떤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여전히 뽕닢을 먹고 있었다. 일선에서 7킬로 떨어진 후방의 밤의 소란스러움은, 어둠에 싸인 방안에서 나는 사소한 시끄러움과는 판이하였다. 나도 움찔하였다. 그래서 그는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는 시카고에서 10년 동안이나 살아 온 사람이다. 그는 가족을 찾아 고향에 돌아온 1914년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는 영어를 알기 때문에 내 연락병이 된 것이다. 그가 깨어난 것을 알고 나는 담요 속에서 몸을 움쩍거렸다.
"테넨트님, 잠이 안오십니까?" 하고 그는 물었다.
"그래, 잠이 안 오는군."
"나도 안 오는데요."
"웬일인가?"
"왜 그런지 잠이 안 와요."
"어디 불편한 데가 없나?"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만 잠이 안 오는군요."
"그럼 잠깐 이야기나 할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곳에서 어디 이야기나 나오겠어요?"
"원, 여기가 어때서?" 하고 나는 말하였다.
"하진 좋은 곳이지요." 하고 그가 말하였다.
"시카고에서 살던 이야기나 들려주게." 내가 말하였다.
"그 말씀은 벌써 들려 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래, 그럼 결혼 이야기나 들려주게."
"그것도 말씀드렸어요."
"월요일에 받은 편지가 그 여자한테서 온 건가?"
"네, 언제나 편지를 보내와요. 돈벌이가 잘 되나 봐요."
"제대하면 훌륭한 가게 하나가 생기겠군."
"물론이지요. 잘해나가고 있어요. 돈도 꽤 벌고요."
"우리가 이야기를 해서 저것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저것들은 듣지 못해요. 돼지처럼 자거든요. 나는 그렇지가 못해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신경과민이거든요."
"조용히 말하게." 하고 나는 주의를 시켰다.
"담배 피울래?"
우리는 어둠 속에서 교묘히 담배를 피웠다.
"테텐트님, 담배 많이 안 피우세요?"
"그래, 근래 끊어 버릴 참이네."
"그래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담배는 이로울 것이 없지요. 그러니까 끊어 버려도 섭섭할 게 없고요. 장님은 연기를 볼 수 없으니까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곧잘 견딘다는 말을 들어보셨어요?"
"설마 그럴까……"
"나도 그 말은 믿어지지 않아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아마 엉터리겠지요."
우리는 말 없이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놈들이 먹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요?" 하고 그는 물었다.
"싹싹 갉아 먹는 소리 말에요."
"재미있군."
"테넨트님,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 무슨 까닭이라도 있으세요? 제가 모시면서부터는 주무시는 것을 통 보지 못했어요."
"글세 말이야, 존."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작년 이른 봄에 몹시 놀란 일이 있는데, 그게 나한테는 밤마다 성화야."
"저와 같으시군요. 전쟁에 참가하지 말아야 했을 텐테. 너무 신경과민이 되어 버렸어요."
"아마 차츰 나아질 테지."
"테넨트님은 무엇 때문에 군에 입대하셨어요?"
"글쎄, 그저 입대하고 싶어서 들어왔지."
"입대하고 싶어서요?" 그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거참 괴상한 소리군요."
"나직한 소리로 말하게." 나는 다시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돼지처럼 잠들어 있는데요. 그리고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정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가시면 무얼 하시렵니까?"
"신문사에 일자리를 얻어 봐야지."
"시카고에서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브리스베인이라는 작가가 쓴 글을 읽어 보신 적이 있으세요? 나의 아내가 오려서 보내와요."
"그래."
"그분 만난 적이 있어요?"
"아아니, 본 일은 있지."
"그분 만나고 싶어요. 훌륭한 작가거든요. 아내는 영어를 모르지만 내가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문을 받아서 사설과 운동경기란을 보내 줘요."
"어린 것들은 무고한가?"
"네, 잘 있어요. 계집애 하나는 지금 4학년이에요. 만일 나에게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저는 장교님의 연락병이 되지 못했을 테지요. 일선에 줄곧 머물러 있었을 거예요."
"어린 것들이 많다니 반가운 일이야."
"그럼은요. 그런데 아들이 하나 있어야겠어요. 하들은 하나도 없고 딸만 셋이거든요. 딱한 노릇이에요."
"잠을 좀 청해 보게."
"아녜요. 지금은 잘 수가 없어요. 눈이 말동말똥한데요. 그런데 장교님이 주무시지 않아서 걱정이군요."
"괜찮아."
"장교님 같은 젊은 분이 주무시지 못하다니……"
"얼마 있으면 고쳐질 테지."
"정말 나아져야지요. 잠을 자기 않고서야 어디 지탱할 수 있나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어떤 아픈 일이라도……"
"아니야. 그렇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야."
"결혼을 하셔야겠어요. 그러면 걱정이 없어질 거예요."
"글쎄, 그건 난 모르겠네."
"결혼을 하셔야 해요. 돈 많고 예쁜 이탈리아 여잘 하나 고르시는 게 좋지 않으세요? 원하시면 아무라도 차지할 수 있을 텐데요. 젊고 훈장도 탄 데다가 잘 생기셨겠다…… 그런데 부상도 여러 번 당하셨지요?"
"나는 말을 잘못하지 않나."
"말씀을 잘하시는데요. 그런데 말이 무슨 소용입니까. 결혼하는데 말이 필요있나요?"
"어디 한번 생각해 보지."
"아는 여자는 몇 있지요?"
"그래."
"아, 그럼 돈 많은 여자와 결혼 하시지요. 여기서는 딸자식 기르는 것이 좋은 아내를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어디 생각해 보지."
"생각이 무슨 생각입니까. 실천하시지요."
"그래, 그래."
"남자는 결혼을 해야 해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 누구나 결혼해야 해요."
"그래 알았어."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인제 좀 자 보세."
"네, 그렇게 해 보지요. 그런데 내 말씀 잊지 마세요."
"잊지 않겠네. 존, 자도록 하게."
하고 나는 말하였다.
"그럼 장교님, 주무세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나는 그가 짚 위에 깔아 놓은 담요 위에서 몸을 돌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곧 조용해졌다. 깊은 안식에 빠진 듯, 그의 숨 쉬는 소리가 들려 오더니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한참 듣고 있다가, 누에게 뽕잎을 먹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차근차근 먹고 있었다. 잎 사이로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 왔다. 나는 하나의 새로운 추억거리가 생겨,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드고 누워, 내가 오늘날까지 알고 있는 여자들을 상기하고, 그녀들이 앞으로 어떤 아내가 될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은 매우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이런 생각으로 하여 송어잡이도 잊어버리고,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송어를 낚을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모든 시내를 기억할 수 있고, 또 거리에는 언제나 새로운 무엇이 발견되었지만, 여자에 대해서는 몇 번씩 생각해 보고 나면 그 모습이 희미해지고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여자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특히 존을 위해서는 밤에 몇 차례나 기도를 했다.
10월 공세가 있기 전에 그와 그들 또래의 병사들은 전투 근무에서 다른 곳으로 전속되어갔다. 나는 그가 여기 없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가 여기 그냥 남아 있으면 나한테는 큰 두통거리였을 테니까. 그는, 몇 달 후에 나를 만나러 밀라노에 있는 병원에 왔을 때, 나가 아직 미혼인 것을 알고 매우 실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오늘까지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것을 알면 무척 언짢게 여길 것이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며, 결혼에 대한 신념이 어떻게 굳던지, 결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