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Cristina Peri Rossi
남자는 지하철 환승 통로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려가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가야 할지 아니면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할 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니면 뒤로 돌아가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의 주위에는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빽빽이 줄을 지어 그를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줄을 이탈하면서 혼비백산하여 흩어졌기 때문이다. 당황한 사람들은 서로 뒤엉켜 부딪치면서 넘어졌고, 날씬한 아가씨들은 비명소리를 질렀으며, 어린 학생들은 밑에 깔렸고, 어느 늙은 대머리 아저씨는 가발이 벗겨졌으며, 멋쟁이 할머니는 틀니가 빠져버렸다. 또한 어느 행상꾼이 지하철 안에서 팔려고 가져온 가짜 금목걸이 가방이 떨어져 사방이 금으로 치장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이런 소란을 틈타 가판대에서 주간지를 하나 슬쩍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강간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어떤 시계는 손목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으로 치솟았고, 몇몇 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방을 바꿔 들기도 했다.
이 소동이 진정된 후 남자는 체포되어 공공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남자도 자신이 저지른 경거망동의 희생양이었다. 그 역시도 이런 소란 속에서 앞니가 부러졌던 것이다. 사건 당시에 남자는 밤낮으로 환하게 불이 켜진 25미터 환승 통로에서 잠시 머뭇거렸으며, 당시 열다섯 번째 줄의 세 번째에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위치는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특정 순간에 특정 위치에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지정된 곳이었다.
심문이 시작된 때는 11월의 차갑고 습습한 어느 날 오후였다. 남자는 도대체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순간적인 머뭇거림으로 이런 사고가 유발되어 구속된 이후,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도 불확실한 시기를 거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주 우습고 경멸스럽다는 듯이 심문관이 대답했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지요.”
“당신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남자는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이지 제 의문에 답을 주셔서 어떻게 감사드릴지 모르겠네요.”
남자는 심문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심문관은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자, 겨울은 겨울이고, 그런데 왜 당신이 이런 불미스런 사건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남자는 푸른 벽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건물에 들어올 때에는 분명히 회색으로 보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라도 푸른색이 실제로 회색으로 변할 수 있는 마술이 존재하지 않는 한, 수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건물은 겉모양만 회색이었던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 그 누가 우리에게 닥칠 미래의 순간을 점칠 수 있을까?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물 컵은 없었다. 그는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 눈치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아무것도 달라고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심지어 이해를 구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벌거벗은 벽에는 창문도 없었다. 방은 직사각형이었지만 매우 좁아 보였다.
심문관은 약간 화난 듯이 보였다.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하기야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심문관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직업상 그렇게 변해버린 것이든지, 아니면 그런 일을 하려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나쁜 습성인 것 같기도 했다.
남자가 말했다.
“갑자기 계속 길을 가야 할지, 아니면 멈추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저도 이것이 이상한 행동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아니,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계단에 있었소?”
관리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노련한 말투로 물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남자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자기가 말을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변명을 하려고 했다.
“누군가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항상 계단을 세는 사람이 있거든요. 올라가던지, 내려가던지 말입니다”
“당신은 내려가고 있었소? 아니면 올라가고 있었소?”
“머뭇거렸을 뿐입니다. 정말 잠시 머뭇거린 것뿐입니다”
갑자기 그는 다시 눈을 푸른 벽면으로 돌렸고, 그곳에서 조그만 틈새를 발견했다. 거의 별 볼 일 없는 틈새였다. 그게 전부터 있었는지, 그러니까 벽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바로 그 순간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벽이 회색이건 푸른색이건, 틀림없이 그에게 아무런 틈새 없이 완벽하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가 이 조그만 틈이 언제 생겼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그것이 이전에 생긴 것인지 아니면 지금 생긴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는 그런 사실을 알아내려고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시 묻겠소”
관리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인내심을 잃지 않은 채 아이를 다루듯이 수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바로 경험 많은 수사관들이 이렇게 가르친 것이었다. 이것은 옛날 방식이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반복이란 파괴를 통해 성공을 이루는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반복한다는 것은 파괴하는 것이다.
“어느 계단에 있었소?”
이제 틈새가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커진 것인지, 착시 현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어느 순간에 커진 거야. 그러니 주의 깊게 살펴봐야 돼. 아니,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남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방에 착시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장치가 있나요?”
관리는 이런 뜻밖의 질문에도 전혀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심문관들은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으며, 또한 바로 이런 것이 그들의 임무의 일부분이다.
“아니오, 없소”
그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대답했다.
“당신은 올라오고 있었소? 아니면 내려가고 있었소?”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남자는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틈이 바로 그 순간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벽은 암세포가 번지듯이 푸른 벽의 어두운 부분 속에서 아무 소리 없이 커져가고 있을 수도 있었다.
“왜 당신은 모른다는 거요?”
다시 관리가 질문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남자는 큰 소리로 대답했지만, 분명히 관리를 향해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이제 벽에 생긴 틈은 아무런 악의도 품지 않은 듯이 보였지만, 틀림없이 그건 위장전술이었다.
“내려가든 올라가든 그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에 계단이 있었고, 뒤에도 계단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계단 모서리에 발을 딛지 않고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막연한 마음으로 저는 군중의 일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매일 자동적으로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올라가고 있었소? 아니면 내려가고 있었소?”
심문관은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 물었지만, 그런 인내심은 틀에 박힌 것이었다. 남자는 이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친절이며, 단순히 심문관의 의무임을 깨달았다. 그런 인내심은 누군가에게 특별히 관심을 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직업적인 습관일 뿐이었다. 아주 훌륭한 습관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그건 동시에 오르고 내리는 계단이었어요. 그것은 사전에 선택한 결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요. 층계는 모두 똑같아요. 시멘트로 되어 있으며, 모두 회색이고, 모두 동일한 크기지요. 저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곳 계단 한가운데에서 말입니다. 앞뒤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요. 하지만 난 내가 올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내려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조그만 의심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건 일종의 마음의 동요였습니다. 내가 올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내려가고 있는지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머뭇거린 것입니다. 좌우간 그 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 내 오른쪽 발은 잠시 허공에 떠 있었지요. 그때 나는 그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지 못하고는 그 발을 계단에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구심을 해결해야 했던 것입니다.”
벽에 있는 틈새는 이제 조그만 동전 크기만 해져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전에는 바늘구멍만 했었다. 혹시 전에는 그 틈의 진짜 크기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것일까? 현실을 감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시간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일 시간이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순간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현실도 없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과 다름없다. 바로 순간의 문제였다. 바로 그가 올라가야 할지, 아니면 내려가야 할 지 모르던 그것은 순간의 문제였으며, 발을 어느 계단에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던 그것도 순간의 문제였다. 이제는 틈새 위로 구불대는 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래서 보면 아주 가느다란 선이 위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었고, 위에서 보면 내려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번 경우는 눈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 위, 아래의 방향이 결정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관리가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사건이 있기 바로 전에, 당신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지, 아니면 내려가고 있었는 지 기억이 납니까?”
“참으로 이상한 것은 똑 같은 것이 올라가는 데도 사용되고 내려가는 데도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두 행동은 완전히 정반대의 것인데 말이에요.”
남자는 큰 소리로 이렇게 생각하며 말하고 있었다.
“계단 한가운데는 몹시 닳아 있어요. 바로 우리가 발을 놓는 곳 말이에요. 올라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려가는 사람도 그곳에 발을 놓지요. 나는 내가 그곳에 발을 놓으면, 그 홈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는 잠시 쉬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내가 머뭇거리기 바로 전의 상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기억이 왔다 갔다 하더니, 사라지고 말았어요. 기억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지하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있었던 거예요”
그러자 관리는 힘있게 말했다.
“당신의 전력(前歷)을 보면, 전혀 기억상실증에 걸린 적이 없소. 그런 틈을 가졌다니 그건 뜻밖이오”
가느다란 선은 이제 벽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의 늪에 빠질 때면, 단지 추상 작용을 통해 흐르는 개울물이 우리를 수원(水源)으로 데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강물이 모이는 곳으로 데려가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시작하는 곳으로 데려 가는 것인지, 아니면 끝나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인지와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추상 작용을 통해 가능할 뿐이다.
관리는 다시 처음에 했던 질문을 던졌다.
“사고가 나기 전에 당신은 올라가고 있었소? 아니면 내려가고 있었소?”
“그건 순간적인 머뭇거림이었습니다. 올라갔느냐고요? 내려갔느냐고요? 계단을 밟으려는 순간 발은 허공에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이런 행동 속에 극적인 순간 따위는 없었습니다. 단지 마음의 동요만 있었을 뿐입니다. 계단을 디딘다는 것은 결정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죠. 나는 몇 분간 발을 허공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불편한 자세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머뭇거림이었소?”
관리는 이제 화가 난 듯이 물었다. 그는 피곤해 있었다. 아니 전술을 바꾼 것인지도 몰랐다. 틈은 점점 번져나가고 있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런 번짐이 어느 장소로 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순간적인 의심이 들어서 행동하지 못했던 겁니다”
남자는 드디어 고백했다.
“저는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리가 전혀 당혹해하지 않고 본래의 행동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 말입니다. 다리가 제게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어떤 종류의 머뭇거림이었소?”
관리는 다시 화가 나 물었다.
“파생성 머뭇거림입니다. G등급이죠. 위험한 종류로 분류됩니다. 그러니 목록을 참조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남자는 드디어 항복하고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파생성 머뭇거림이었습니다. 생물 분류를 할 때 목(目)에서 과(科)가 나오고 과에서 속(屬)으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파생성은 계단을 올라가든지 내려가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계단을 내려가건 올라가건 간에 항상 앞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머뭇거리면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서로 부딪히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으며, 모두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벽이 진동하면서 틈이 생기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아가씨들은 옷단추와 우산을 잃어버리고, 수사관들이 모이며, 심문관들이 어떤 부당한 행위가 있었는지 수사합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흠이 파생되어 물고기처럼 크게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담배 한 대만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