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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Aziz Nesin

 

사랑하는 V. D에게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만 적혀 있는 전보를 받고 무척 당황했으리라 믿네. 이건 또 뭐야, 튤슈는 또 누구지, 라며 투덜댔을 자네의 모습이 떠오르네.

 

사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 할 짓은 아니지. 그러나 자네가 이해해 주게. 전보를 칠 당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네. 그날은 뭐랄까, 마치 몽유병 환자 같았으니 말이야. 나도 모르는 사이 자네에게 전보를 쳤던 걸세.

그 전날 밤, 이 지구상에서 줄곧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안고 살아왔던 나는 세계에서 복잡하기로 이름난 어느 도시에서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네. 자네, 아나? 낯선 도시에서는 외로움이 더욱더 사무친다는 사실을? 외로움에 내 주위를 반고체 상태로 딱딱하게 얼어붙은 듯했고 나는 그 안에서 간신히 나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네. 경험상 이런 정신 상태에서는 술로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 하지만 내가 묵고 있던 호텔 주변의 값비싼 레스토랑이나 나이트클럽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네. 풀 먹인 탁자보 앞의 풀 먹인 사람들의 풀 먹인 대화가 아니라, 구겨진 탁자보 앞의 구겨진 사람들의 구겨진 대화 속에서 오로지 나 자신과 홀로 마주하고 싶었네.

나는 호텔 옆으로 나 있는 조그만 골목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 거대한 도시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네. 나는 종종 복잡하고 낯선 대도시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곤 한다네. , 두려울 게 있겠나. 택시만 타면 언제든지 호텔로 돌아갈 수 있는데.

골목을 헤매던 중 마음에 드는 카페 하나를 찾았네. 들어가기 전에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지. 담배 연기가 자욱한 카페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더군. 안 되겠다 싶어 돌아서려는 순간 다행히도 빈 테이블이 하나 눈에 띄더군. 계산대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앉지 않았던 모양일세. 난 그 자리가 마음에 들었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에서조차 알코올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더군. 그 어디에서도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느낄 수 없더군. 웨이트리스가 셋 있었는데 지중해 햇살에 그을린 듯 황금색 피부를 한 여자가 다가와서 무엇을 주문하겠느냐고 묻더군. 나는 여러 종류의 치즈가 곁들여진 샐러드와 백포도주를 주문했지. 잠시 후 그녀는 주문한 음식과 함께 작은 유리 화병에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를 꽂아 왔네. 뜻하지 않은 기쁨에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지. 화병에 꽂힌 카네이션은 관상용 카네이션처럼 꽃송이가 크진 않았다네. 하지만 아담한 꽃송이에서 자극적인 향기가 진하게 풍겼지. 나는 향기를 모조리 빨아들일 듯 꽃송이 깊숙이 코를 묻고 들이마셨네.

술을 들자 천천히 정신이 들더군. 그때 나는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문이 열리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네. 그런데 어느 순간 문 입구에 멀뚱히 서 있는 남자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데 그도 좀 전의 나처럼 앉을 자리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네. 남자는 잠시 카페 안을 휘 돌아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옆으로 다가와 이렇게 물었네.

실례지만 합석할 수 있을까요?”

물론 달갑지 않았지만 어쩌겠나?

물론이죠, …….”

사실 그 순간 나는 나의 외로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네, 더구나 그런 사람하고는……. 기분이 몹시 언짢더군. 그는 내 기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맞은편에 앉았네. 그는 내가 주문을 했던 여자에게 나와 똑같이 다양한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와 백포도주를 주문하더군. 그러고는 좀 전의 나처럼 카네이션 향기를 깊이 들이켠 다음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꽃송이가 크고 화려한 카네이션보다 이 꽃처럼 아담하고 향기가 진한 카네이션을 좋아합니다. 꽃송이가 큰 것은 자만심만 가득 찬 데다 향기가 없죠. 그렇지만 이것들은, 모든 겸손한 것들이 그렇듯 허세 부리거나 아부하지 않죠. 그리고 향기는 또 얼마나 감미로운지…….”

잠시 후 그는 잔에 포도주를 가득 채운 뒤 내 쪽으로 향하며 건배!”라고 외치더군. 하는 수 없이 나는 내 잔을 그의 잔에 부딪히면서 건배!”라고 외쳤다네.

카네이션과 건배를 계기로 그와 나 사이에 말문이 틔었다네. 그는 이 도시의 이방인이며, 이곳에 머문 지 일주일이 되었다고 하더군. 나도 그에게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대꾸했네. 그리고 이번에는 예의상 내가 먼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지.

튤슈를 사랑합니다.”

나는 그가 내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다시 물었네.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만…….”

전 이미 대답을 했는데요. 제 일은 튤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황한 것을 눈치챘는지 그가 부연 설명을 하더군.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저는 튤슈만을 사랑해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그녀만을 사랑할 겁니다.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에 목을 매고 있죠.”

자네도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무슨 일을 합니까, 라고 묻는 건 직업을 알려달라는 말 아닌가? 이렇게 어처구니없을 때가. 순간 그가 내 의도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이렇게 묻더군.

일을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그러고는 내가 뭐라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더군.

하루는 이십사 시간, 터무니없이 짧죠. 잠잘 때조차 사랑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 후 우리는 거의 비슷한 시각에 각자의 포도주를 다 비웠기에 한 병씩 더 시켰지. 주문을 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지. ‘사랑하는 게 일이라. 나잇살 꽤나 먹은 남자의 애인이야 어떨지 안 봐도 뻔하지, .’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물었네.

나이를 여쭤봐도 될까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 나이 먹은 남자가 사랑하는 일을 유일한 업으로 삼고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군요. 일흔 살입니다.”

저와 같은 연배군요.”

그럼, 이젠 튤슈가 궁금하시겠죠? 하나같이 모두 궁금해들 하더군요. 일흔 살 먹은 남자의 애인은 과연 어떤 여자인지.”

솔직히 궁금하긴 하군요. 한 남자가 일생을 바친 여자가 대체 어떤 사람일지.”

튤슈를 처음 만난 건 현실과 꿈 사이 어디쯤에서였죠. , 죄송합니다.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렸겠군요. , 사실 튤슈를 처음 만난 날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들려줘서 나중에서야 알았죠. 네댓 살쯤 먹었을 때일 겁니다. 저녁 무렵이었죠. 저는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분이 하시는 구멍가게 앞에 앉아있었죠. 구멍가게는 목이 좋지 않은 언덕에 자리해,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벌이도 신통치 않았죠. 그날 저녁 그 앞으로 여자애 하나가 지나갔죠. 아니, 지나갔었나 봅니다. 머리를 곱게 기른 열네댓 살짜리 여자애가……. 순간 제가 구멍가게 안으로 갑자기 뛰어 들어와 흥분해서는 아버지, 저 애와 결혼할래요!’라며 떼를 썼다는군요. 아버지가 어찌나 이 일을 두고두고 반복해서 말했던지 나중에는 그 장면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르더군요. 그때부터 그 여자애는 제가 구체적인 존재로 다가왔죠. 기억하지 못했던 사건을 떠올린 셈인데 마치 경험하지 않았던 사건을 경험한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튤슈는 그때 보았던 여자애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여든 살이 넘었겠군요?”

? 무슨 소리죠?”

당신이 네댓 살이었을 때 그녀가 열네댓 살인 걸로 봐서…….”

아닙니다, 튤슈는 늙지 않…….”

나중에 그녀를 만났습니까?”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녀를 찾아다녔죠. 그렇지 않다면 뭣 하러 일흔 살이나 먹은 늙은이가 낯선 도시를 이렇게 헤매고 있겠소? 제가 모르는 곳의 모르는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제가 모르는 여자가 튤슈입니다. 저는 그녀를 찾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믿음 하나로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죠.”

그럼,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까?”

아니 만났었죠. 서른 살 되던 해 저는 그녀를 찾기 위해 대도시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전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튤슈를 발견했죠. 짧게 자른 갈색 머리에 갓 스무 살이나 됐을까? 드디어, 드디어 만났어!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많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그녀와 저만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죠. 그녀가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튤슈, 하고 소리쳤죠.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입술이 떨어지질 않더군요. 제가 탄 에스컬레이터는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서 멀어져갔고. 황급히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가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그럼, 그때가 마지막이었나요?”

아니, 몇 번 더 마주쳤죠. 도나우 강변에 있는 그 도시에 처음 갔을 때였죠. 그때 저는 마흔 살이었습니다. 기차에서 막 내렸는데 역은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죠. 허겁지겁 기차에 오르려는 사람과 황급히 뛰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객차 입구에서 누군가와 부딪혀 고개를 들어보니, 밝은 노란 머리에 커다란 푸른 눈의, 스물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더군요. 튤슈……. 한동안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죠. 그녀는 저와 부딪혔을 때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봉지를 주워 건네주었죠. 그녀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말한 후 옆에 있던 남자의 팔짱을 끼고 기차에 올라타더군요. 그 후 오륙 년쯤 지났나? 아시아의 어느 나라 버스 안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쳤죠. 네 정거장을 함께 갔죠.”

그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까?”

애석하게도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죠. 저는 그녀의 모국어를 몰랐고, 그녀 또한 자신의 모국어밖에 모르는 듯했으니……. 맞다, 한번은 남쪽의 작은 나라 수도에서 열렸던 국제회의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동석을 했죠. 그녀 옆에 있던 흑인이 남편인 것 같더군요.”

남편이 흑인이었습니까?”

, 튤슈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흑인이었죠.”

이번에도 역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까?”

글쎄요, 이런 걸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회의가 시작되기 전 그녀가 저기, 회보 중 제삼호 여분 있으세요?’라고 물었는데 제게도 여분이 없어서 제 것을 건네주었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으로 상황 종료였죠. 어쨌든 그 후로는 저는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여전히 튤슈를 찾고 있습니다.”

아니, 그녀를 찾지 않았습니까?”

찾았다고요? 찾았다, 찾았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순간이었죠. 마치 번개가 친 것처럼 순간 반짝이다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매번 그녀를 찾자마자 곧 잃어버렸죠. 그런 것도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찾기 위해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발칸반도 어느 나라의 수도에 있는 궁에서 튤슈를 만났죠. 서른 살도 안 되어 보이더군요. 그때 저는 예순 살이 넘었죠. 그녀는 대리석 난간에 기댄 채 두 남자 사이에 앉아 있었죠. 새빨간 술이 담겨 잇는 큰 잔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웃을 때마다 빨간 술이 흔들렸죠. 그때 그녀의 머리는 붉은색이었고 눈은 짙은 검은색이었죠. 오 년 전에는 전혀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튤슈를 보았죠. 항상 생각지 않았던 장소에서 만나긴 했지만……. 어느 군 소재지에 있는 은행에 볼일이 있어 들어갔는데 그녀가 제 앞에서 은행원과 상담을 하고 있었죠. 초록색 눈동자에 머리는 위로 올려 묶은 채. 그녀는 잠시 후 상담을 끝내고 은행에서 나가자마자 자동차를 타고 사라졌죠.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건 작년이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어느 도시에 있는 모텔에서였죠. 그때 저는 로비의 덩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누군가 미안하지만 몇 시쯤 됐어요?’라고 묻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튤슈였습니다. 스무 살쯤 되어 보였고 아주 말랐더군요. 어떤 젊은이와 함께 있었는데 이제 막 해수욕을 끝내고 왔는지 팔이며 다리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죠. 시간을 일러주자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저는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로비를 서성였지만 다시는 그녀와 마주치지 못했죠.”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둘 다 포도주를 다 비웠더군. 내가 한 병만 더 시키자고 하자 그도 흔쾌히 찬성하더군. 지중해 햇살에 그을린 듯 황금빛 피부를 한 여자가 포도주 한 병을 가지고 왔지.

지금까지 튤슈를 향한 나의 사랑과 열정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저를 비웃고 심지어 튤슈가 있는 곳을 안다고 하면서 저를 그곳으로 보내려는 사람도 있었죠. 그들은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하면서 무시했죠. 튤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저를 놀리지 않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오.”

그가 왠지 측은하게 보여 나는 이렇게 물었다네.

튤슈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요? 이유는 아주 많죠. 우선 그녀를 찾고 있지만 찾을 수 없고, 찾는다 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열정은 갈수록 강렬해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열정은 점점 거세지고 어느 순간 저 자신을 불태워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합니다. 제 가슴은 불씨들로 가득 차 있죠. 그녀에게 닿을 수 없어 제 몸 안의 불길로 재가 되어 사그라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튤슈가 얼마나 좋은 여잔지……. 왜 좋은 여자냐고요? 제가 사귀었던, 자신들이 튤슈라고 우겼던 여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저와 다투지 않았고, 다툴 만한 상황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와의 관계에서 이익을 따지지도 않았으며 제게서 뭔가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 자신과 저를 속이지 않았고, 위선적이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고, 음흉한 일도 벌이지 않았죠. 왜냐하면 이런 것들로 다툴 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튤슈와의 사랑은 제게 찰나의 삶으로 남을 겁니다. 단지 번개가 치는 듯한 그 순간만큼만 그녀를 느낄 수 있죠. 이 때문에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사랑할 겁니다. 튤슈를 사랑하는 것 이외에 제가 할 일은 없습니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혹시 생계를 어떻게 이어나가시는지……. 수입은 있습니까?”

없고.”

그렇다면 어떻게……?”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찾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일들만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제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제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제가 살아갈 의미가 없죠. 저는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네. 그가 좀더 명확하게 설명해주기를 바랐지. 그래서 물었네.

그러니까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을 단지 자신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의 존재 이유는 커지죠. 사람들마다 존재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그리고 저의 존재 이유는 튤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튤슈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튤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리십니까?”

일일이 설명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오늘 밤 저는 당신에게 튤슈를 사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제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당신에게 살아 숨 쉬는 구체적인 존재로 인정을 받은 셈이죠. 이런 식으로 모두에게 제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옛날에는 산과 들과 숲에 나가 목청껏 외쳤죠. ‘너를 사랑해 튤슈하지만 항상 같은 식으로 소리를 지르다 보니 재미도 없고 효과도 별로인 것 같아서 언제부턴가 단어의 순서와 목소리 톤을 바꿔가며 소리치기 시작했죠.”

그는 마치 숲에서 소리를 지를 때처럼 등을 꼿꼿이 세우고 목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자세를 잡더군. 하지만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네.

너를 사랑해 튤슈

사랑해 튤슈 너를

튤슈 너를 사랑해

사랑해 너를 튤슈

너를 튤슈 사랑해

튤슈 사랑해 너를

그는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느릿느릿 이야기를 하더군.

제 외침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져 제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다면, 그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매 순간 숨을 쉬며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유로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인파 속에서 마치 노래를 흥얼거리듯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를 사랑해 튤슈.”

목소리는 괜찮은 편입니까?”

아니오, 아주 형편없죠. 발상도 나쁘고. 고르지 못하니까 매번 외칠 때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소리치는 듯한 착각마저 들죠. 그리고 또 하나, 어딜 가든 우체국에 꼭 들러 너를 사랑해 튤슈라는 전보를 칩니다. 여유가 있으면 하루에 대여섯 번 보내기도 하죠.”

, 그럼 튤슈의 주소를 아시는군요?”

무슨 소립니까? 제가 튤슈의 주소를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그냥 대강 아무 주소나 적어서 보내는 거지.”

수신인이 정확하지 않으면 전보가 당신에게 되돌아올 텐데요.”

그러겠죠. 그렇지만 제게는 안 와요. 제 주소도 대강 쓰거든요. 여러 번 머물렀던 도시의 우체국에서는 저를 알아보기 때문에 변두리 우체국에서 전보를 칩니다. 그리고 놀라면 좀 어떻습니까? 그들도 이제 제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흡족합니다. 제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 존재 이유도 그만큼 커지는 거니까.”

언제부턴가 카페의 테이블이 하나둘씩 비어갔고 우리는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섰지. 머릿속이 빙빙 돌고 비틀거리긴 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취하진 않았다네.

나흘째, 오후에 한두 시간 문화 광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혹시 내일 거기로 오시면…….”

거기서 뭘 하는데요?”

목소리가 잠길 때까지 너를 사랑해 튤슈, 라고 소리칩니다. 좀 전에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셨죠? 언제부턴가 이게 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들려 드리죠.

그날 튤슈에게 마지막 전보를 치고 나니 주머니에 한 푼도 없더군요. 하릴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문화 광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벌써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재미있는 곳이죠. 광장에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장기나 묘기를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개 서너 마리로 곡예를 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 악기 네댓 개를 연주하며 콘서트를 합니다.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한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는 듀엣도 있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녀 둘이 팬터마임도 하고, 어떤 남자는 칼을 삼켰다가 다시 끄집어내는 묘기도 보여주죠. 유리 조각 위에 누워서 자신의 배 위로 건강한 남자 다섯 명을 올라오게 하는 사람도 있고, 수염을 길게 기른 어떤 남자는 색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립니다. 특히 원숭이 다섯 마리로 곡예를 하는 사람은 매번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더군요. 작은 상자로 만든 조그만 무대에서 인형극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얼마나 볼거리라 많고 사람들은 또 어찌나 바글바글하던지. 어쨌든 흥미로운 공연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더군요. 장기나 곡예가 끝나면 구경을 하던 사람들 중에 몇몇은 앞에 놓인 상자에 돈을 던지더군요. 어떤 사람 앞에는 돈이 수복이 쌓이기도 하고.

문화 광장은 아주 환상적인 곳입니다. 제게는 특히 더더욱. 튤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큰소리로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죠. 어느 날 저도 큰맘 먹고 광장 한구석에서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튤슈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제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야유를 보내거나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 이야기를 끝까지 말없이 듣는 사람도 꽤 있더군요. 저는 목이 쉬어 더 이상 한마디도 할 수 없을 때까지 소리쳤죠. 입을 다물자 사방에서 동전이 날아들었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죠. 저는 그 길로 즉시 우체국으로 달려가 튤슈에게 전보를 쳤습니다. 그날 이후로 매일 오후에 광장에 간답니다. 궁금하시면 내일 한번 들르시죠.”

택시에 올라타서 운전사에게 호텔 이름까지 말한 건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취했던 모양이야.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너무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전날 밤 일이 꿈결처럼 느껴지더군.

하지만 어쨌든 그날 오후에 문화 광장을 찾아갔다네. 정말 남자가 얘기한 대로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더군. 입으로 불을 내뿜는 사람, 뱀으로 곡예를 하는 사람, 큰 세상 속에 있는 비둘기로 공중제비 곡예를 보여주는 사람, 오 분 만에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 한동안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며 그 사이를 돌아다니다 마침내 그를 발견했지. 전날 말한 대로 광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더군. “너를 사랑해 튤슈라는 고함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쉽게 찾지 못했을 거야. 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더군. 나는 어깨를 들이밀며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네. 그가 나를 알아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네. 간신히 자리를 잡고 그를 바라봤을 때 그는 눈을 감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네. 그의 목소리는 정말 형편없더군. 누군가 지금 당장 가슴을 후비기라도 하듯 고통에 가득 찬 고함을 지르며 중간 중간 신음도 내더군. 주위를 둘러보니 여자, 남자, 노인, 젊은 사람 가릴 것 없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더군. 어떤 사람은 녹음기로 그의 고함소리를 녹음까지 하더군. 전날 그가 말했던 것처럼 비웃거나 야유를 보내는 사람을 비롯해서 심지어 돌을 던지는 사람까지 있었네.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저지하기는 했지만.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었네.

그날 그의 고함을 녹음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쉽네. 몇몇은 그가 고함치는 말들을 열심히 적기도 하더군. 순간 나도 노트를 꺼내 정신없이 적기 시작했다네. 띄엄띄엄 적은 내용은 대강 이러하네.

이보시오. 내 말을 들어보시오. 내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듣고 알아주시오. 단 한 사람도 내 이야기를 흘려들어서는 안 되오. 귀머거리도 듣고 알아주시오. 젖먹이는 여자의 모유가 꽉 찬 가슴도 들으시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들끓는 피와 새로 태어난 아기의 혈관에 있는 피도 들으시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상대방을 만지는 그 손가락도, 처음으로 키스하는 입술들도 들으시오. 욕구 불만에 차 있는 사람들도 들으시오. 그리고 역사, 시간, 지리도 내 이야기를 듣고 알아주시오. 내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의 고함에는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 원시시대 사람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네. 수십만 년 전의 사람들도, 그리고 수십만 년 전 이후의 사람들도 가슴에 고통을 느꼈다면 그렇게 소리쳐 말했을 걸세.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네. 어떻게 보면 그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던 것은 말이 아니라 소리였을지도 모르지. 날것의 고통을, 그리움을, 열정을 듣고 있던 게지. 때로 귀를 먹먹하게 하고, 때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소리 말일세. 그는 어떤 때는 굵은 목소리로, 어떤 때는 울다가 목이 메어 쉰 목소리로, 쉬어서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는 속삭이며, 속삭일 수조차 없으면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지.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그 순간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이 원시적인 고함에 관심을 갖는지 생각해보았다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다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남자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용기가 나지 않아 저렇게 소리치는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쩌면 그는 우리 대신 튤슈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결국 그는 쓰러졌네. 널브러져 있는 그 앞에 동전을 놓고 사람들은 흩어졌네. 그는 한동안 그렇게 누워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한 것은 연극이 아니었나 생각되네. 광장에서 재주를 부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네. 순간 그가 나를 알아보았지.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집어든 후에 그가 말하더군.

, 이제 우체국에 가서 튤슈에게 전보를 칩시다.”

그와 함께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전보를 치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고함을 칠건지 물었네. 그는 하루에 한 번만 한다고 하더군.

매일 같은 말을 합니까?”

아닙니다. 전 배우가 아니니까요.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변하죠. 소리와 말도 시간에 따라 변하고.”

우체국에 도착하자 남자는 일흔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더군. 몹시 흥분해 보이더군. 그는 창구에서 전보용지를 받아와 홀을 두리번거리다가 빈 탁자를 찾아 앉았네. 옆에 앉아서 들여다보니 그가 종이에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쓰고는 아무 주소나 되는대로 적더군. 전보를 접수하는 창구 직원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에게 눈짓으로 그를 가리키면서 입술을 씰룩대더군. 그를 아는 모양이었네. 그렇지만 전보는 접수하더군. 우체국에서 나오자 그가 다소 진정된 목소리로 말하더군.

이제 다른 우체국에 들러 전보를 몇 통 더 친 후 이 도시를 떠날 겁니다.”

어디로 가실 거죠?”

튤슈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네.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가다 말고 돌아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네.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지.

그가 사라진 후 나는 우체국으로 다시 들어갔네. 창구에서 전보용지를 받아와 너를 사랑해 튤슈라고 썼네. 그나저나, 이 전보를 누구에게 보내지? 그때 갑자기 자네가 떠올랐네. 자네의 주소를 적은 후 창구 직원에게 건네주었지. 사랑하는 V. D. 내 전보를 받고 영문을 알 수 없어 무척 놀랐을 걸세. 이해해 주게,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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