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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돌

자라는 돌

Albert Camus

 

차는 질척한 황톳길을 육중하게 돌아갔다. 헤드라이트가 길에 비치자 양편에 양철 지붕을 한 목조 바라크를 어둠 속에서 환히 드러나게 하였다. 오른편 둘째 바라크 옆에는 투박한 뗏목으로 만든 원두막이 안개 속에 나타났다. 그 원두막 지붕 꼭대기로는 쇠로 된 한줄기 케이블이 뻗어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 볼 수 없지만, 헤드라이트의 빛 속에서 그것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더욱 윤이 나며, 한길을 가로막은 낭떠러지 뒤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차는 속력을 늦추고, 바라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정거하였다.

한 사나이가 운전수 곁에 앉아 있다가 차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그가 땅에 내려서자 우람한 몸뚱이가 거인처럼 뒤뚱거렸다. 그는 차의 그늘에 피곤한 듯이 버티고 서서 엔진 소리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는 절벽 쪽으로 걸어가서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데에 이르렀다. 그는 널찍한 등을 어둠 속에 드러내고 낭떠러지 꼭대기에 멈춰서서 사방을 돌아보았다. 운전수의 거무칙칙한 얼굴이 계기판(計器板) 위에서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그는 운전수를 향해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운전수는 앤진의 스위치를 꺾어버렸다. 한길과 숲속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옆에서 물소리가 들여왔다.

사나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낮은 지대에는 어둠의 움직임과 반짝거리는 조개류에 의해서만 강물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멀리 한결 짙게 엉겨 있는 어둠은 아마 강기슭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먼 곳에서 캥케등()처럼 그 강변에는 누런빛이 조용히 비치고 있었다. 그 거인은 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운전수는 꺼 버린 헤드라이트를 다시 켜서 규칙적으로 깜박거리게 하였다. 사나이는 절벽 위에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지곤 하였는데, 다시 나타날 적마다 더욱 육중하게 보였다. 그때 강 저편에서 난데없이 누가 등불을 서너 번 흔들었다. 잠복해 있는 자의 마지막 신호를 보자 운전수는 헤드라이트를 아주 꺼버렸다. 이어서 차와 사나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헤드라이트를 껐으므로 강물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때때로 번쩍이는 긴 물줄기가 더러 보일 뿐이었다. 한길 양쪽으로 어두컴컴한 숲이 하늘에 솟아올라 무척 가까워 보였다. 한 시간 전에 길을 적셔 놓은 이슬비는 아직도 훈훈한 공기 속에 감돌아, 그 처녀림(處女林) 복판에 있는 공간의 침묵과 고요를 더욱 증대시키고 있었다. 거무칙칙한 어두운 하늘에서는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쪽 기슭에서 쇠사슬 소리와 함께 숨을 죽인 듯한 잔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던 그 사나이의 오른편에 있는 바라크 위에서 케이블이 팽팽해졌다. 희미한 마찰 소리가 케이블을 타고 들려왔으며, 강에서는 물소리가 약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그 마찰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고 물소리가 차츰 뚜렷이 들려오더니 등불이 점점 커 보였다. 그리고 인제는 등불을 완연히 식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차츰 팽팽했다가 다시 줄어들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등불은 안개를 뚫고 반짝이며 주위의 굵은 대나무로 네 귀퉁이를 떠받친 네모난 일종의 지붕 - 종려나무 잎사귀로 만든 - 을 비추기 시작하였다. 그 주위에서 희미한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그 괴상한 오두막집이 강기슭을 향하여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거의 강 복판에 다다랐을 때, 누른 등불에 세 사람의 작은 사나이가 보였다. 그들은 윗도리를 벗고, 둥근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흑인처럼 보였다. 그들은 두 다리를 약간 벌리고 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강물의 벅찬 흐름을 견디어내기 위해 육중한 뗏목 위에 몸을 굽히고 있었다. 그 뗏목은 어둠과 강물 속에서 솟아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나룻배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사나이는 오두막집 뒤에 두 흑인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도 넓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밤색 천으로 된 바지를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느린 동작으로 평행선까지 몸을 굽히고 있었다. 앞에서는 세 사람의 혼혈인종들이 말없이 가만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강기슭이 가까워 오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뗏목의 배는 갑자기 강물 속에 뻗어 있던 방파제에 부딛혔다. 그러자 등불이 충격을 받아 흔들리며 방파제를 비추었다. 키다리 흑인들은 움직이지 않고 두 손을 머리 위에 얹은 채, 간신히 박혔을까 말까 할 작대기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근육은 긴장되어, 그 무게에서 오는 듯한 경련으로 하여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뚝의 물뚝 부근에 쇠사슬을 던지고, 널판 위에 뛰어 올라가 일종의 괴상한 번전교(飜轉橋)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뗏목 전면을 경사진 평면으로 뒤덮었다.

사나이는 차에 돌아와서 올라탔다. 그동안에 운전수는 엔진을 걸었다. 차는 서서히 절벽을 따라 올라가 머리를 위로 들어 올리더니 강물 쪽을 향해 비탈을 넘어섰다. 차는 기아를 건 채 진흙 위를 미끌어져 내려가다가 한참 멈춰 서더니 다시 출발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차는 널빤지가 튀는 소리를 내면서 강둑 위에 이르렀다. 이어서 여전히 잠자코 있는 혼혈인종들이 나란히 서 있던 곳까지 가서 천천히 뗏목 쪽으로 향하였다. 뗏목은 차의 중량으로 하여 앞바퀴가 닿자마자 물속에 잠겨버렸다. 운전수는 등불이 걸린 그 사각형 지붕 앞까지 뒤켠으로 차를 굴렸다. 혼혈인종들은 곧 강둑에 걸쳐놓은 기울어진 판자들을 걷어 올리고 뗏목 위에 뛰어올라, 질퍽한 기슭에서 뗏목을 떼어 놓는 것이었다. 강물은 뗏목을 밑으로 바치면서 표면에 뜨게 하였다. 뗏목은 강물 위에서 케이블을 따라 기다란 작대기 끝에 매어서 떠나갔다. 그러나 키다리 흑인들이 힘을 늦추고 바지랑대를 도로 가져왔다. 그 사나이와 운전수는 차에서 나와 상류 쪽을 향해 뗏목 끝에 점잖게 서 있었다. 작업 중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작자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키다리 흑인의 하나가 찢어진 종이에 담배를 말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강물이 브라질의 짙은 산림 속에서 발원하여 흘러 내려오는 그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넓이가 수백 미터나 되는 그 강은 뗏목의 옆에 탁하고 부드러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어서 양편 끝에서 벗어나 뗏목에 넘쳐 흐르다가 다시 힘찬 물줄기의 파도로 변하여 어둠침침한 숲을 지나서 어둠을 향해 바다 쪽으로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해변처럼 부석부석한 하늘에서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윽고 뗏목 밑에서 잔물결 소리가 들려오고, 양쪽 기슭으로부터 두꺼비의 울음소리와 신기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거인이 운전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키가 작달막하고 몸이 깡마른 운전수는 대나무 기둥에 기대어 서서, 옛날에는 푸른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종일 불그레한 먼지로 덮인 양복 주머니에 두 손을 쳐박고 있었다.

젊은 나이인데도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짓는 운전수는 축축한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새 소리는 더욱 뚜렷해지고, 거기에 뒤섞여 까닭 모를 지저귐이 들려 왔다. 동시에 케이블의 마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흑인들은 바지랑대를 박고 장님처럼 강바닥을 더듬어 갔다. 사나이는 방금 자기네가 떠나온 강기슭을 돌아다보았다. 그 강기슭은 어느새 어둠과 물에 덮여 있었으며, 저쪽으로 수천 킬로나 뻗어 있는 숲처럼 무한히 넓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양(大洋)과 이 나무들과 어둠 사이에서 떠가는 사람들은 마치 길을 잃은 방랑객처럼 보였다. 뗏목이 새 강둑에 닿았을 때에는, 닻줄이 끊어져서 며칠 동안 무서운 표류를 한 끝에, 어둠 속에서 어떤 섬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땅에 내려서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전수는 그들에게 돈을 지불해 주었다. 그러자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자동차를 향해 그들은 명랑한 포르투갈어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이과프까지 60킬로입니다. 세 시간만 달리면 됩니다. 무척 신이 나요.

하고 운전수는 말하였다.

사나이는 점잖게 웃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따뜻한 웃음이었다.

소크라트, 나도 신이 나네. 길이 좀 나쁘군 그래.

다라스트씨가 너무 무거워요.

하고 운전수도 웃으며 말하였다.

차는 스피드를 내었다. 나무들이 빽빽이 엉켜 구수하고 싱싱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가운데 차는 달리고 있었다. 반딧불이들이 마구 날라와 숲속의 어둠을 누비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눈이 빨간 새들이 날아와서, 눈 깜빡할 사이에 앞창에 부딪히곤 하였다. 때때로 깊은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운전수는 눈을 크게 뜨고 옆에 앉은 사나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꾸불꾸불한 길을 지나 덜커덕거리는 나무다리로 작은 시냇물을 건너가는 것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안개가 짙어지고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헤드라이트의 빛을 흐리게 하였다. 다라스트는 차에 흔들리면서 졸고 있었다. 차는 이내 습기에 찬 숲속을 벗어나 다시 싸오 파울로에 이르는 세에라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길에서는 붉은 먼지가 끊임없이 일어나 입안이 텁텁하였다. 그리고 그 먼지는 양쪽에 산재해 있는 황무지의 나무들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태양은 쨍쨍 내리쪼이고 있었으며 산들이 분명히 드러나 보이고 굶주린 제뷰(瘤牛)들이 한길에 드문드문 보였으나, 사막의 오랜 여행에 유일한 등반자로서 지쳐 빠진 유류뷰쓰(매의 일종)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주춤하였다. 자동차가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日本)에 와 있었던 것이다. 길 양편은 엉성한 장식을 한 짐들이 보이고, 그 집 안에는 기모노(일본 옷)를 입은 사람들이 들여다보였다. 운전수가 어떤 일본 사람에게 말을 하였다. 그 일본 사람은 더러운 양복을 걸치고 브라질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마 후에 차가 발동을 걸었다.

40킬로밖에 남지 않았다는군요.

여기가 어디야? 동경이야?

아네요. 레쥐스토로죠. 우리 고장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모두 이로로 온답니다.

무엇때문에?

모르지요. 그들은 황색인종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라스트씨?

숲은 약간 밝아지고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길은 점점 평탄해졌다. 차는 모래 위를 미끄러지며 달렸다. 자동차 문을 통하여 축축하고 훈훈한 미풍이 스며들어 왔다.

냄새가 나죠?하고 운전수가 말하였다.

바다입니다. 곧 이과프에 이르게 됩니다.

가솔린이 충분할까?다라스트가 말하였다.

그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타라스트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침대 속에서 놀라운 눈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넓은 벽돌은 중간쯤까지 석회를 새로 발랐다. 더 높은 곳은 희 칠을 하고, 천장이 누르스름한 파편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두 줄로 놓인 여섯 개의 침대가 마주 바라보였다. 다라스트의 눈에는 맨 끝에 있는 침대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침대는 비어 있었다. 왼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문께로 몸을 돌려 보았더니, 두 손에 물병을 든 쏘크라트가 웃으며 서 있었다.

기쁜 추억이라우!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다라스트는 기운을 내었다. 지난밤에 촌장이 그들을 재워 준 병원 이름이 <기쁜 추억>이었다.

추억이 분명해야지

쏘크라트가 말을 계속하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병원을 먼저 세우고 나서 수도를 가설한다더군요. 저 따듯한 물에 세수나 하시오.

그는 웃는 얼굴로 노래를 하며 사라졌다. 그는 간밤에 줄곧 다라스트의 잠을 방해하던 재체기로 하여 피로한 빛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다라스트는 이윽고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철망을 친 창 너머로 비에 젖은 조그마한 진흙 마당이 보였다. 땅바닥은 갈대 수풀 위에 조용히 내리고 있는 비에 젖어 있었다. 한 여인이 노란 명주 목도리를 걸치고 지나갔다. 다라스트는 다시 누웠다가 곧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는 몸 무게로 삐걱거렸다. 그때 쏘크라트가 들어왔다.

다라스트씨, 밖에서 촌장이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다라스트의 모습을 보고 덧붙여 말하였다.

별로 서두를 것은 없어요. 그는 바쁜 사람이 아니니까요.

다라스트는 면도를 하고 현관으로 나갔다. 몸집이 작달막하고 금테 안경을 걸친 족제비 얼굴을 한 상냥스러운 촌장은 비를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라스트를 보자 빙그레 웃었다. 그는 몸을 펴고 바삐 걸어와 두 팔로 <기사님>을 껴안으려고 하였다. 그때 차가 한 대 브레이크를 걸고 나지막한 벽 쪽에서 마당의 진창 속을 미끄러져 정거하였다.

판사님이시여!하고 촌장이 말하였다.

판사는 촌장과 마찬가지로 곤색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한결 젊어 보였다. 그것은 맵시 있는 큼직한 몸집과 청년 같은 싱싱한 얼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을 향해 점잖은 태도로 물구덩이를 피하면서 뜰 안을 건너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라스트에게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두 팔을 벌리고 환영의 뜻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기사님을 맞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기사님의 일은 이 가난한 마을의 명예이고 낮은 지대의 정기적인 물의 범람을 방지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요, 반드시 이파프의 빈민들은 기사님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며, 기도할 적마다 여러 해를 두고 그 이름을 부를 것……이라는 것이었다. 다라스트는 그의 애교와 웅변에 압도되어 고맙다고 말할 뿐 그가 제방 공사에 무슨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촌장의 말에 의하면 낮은 지대를 돌아보러 가기 전에 이 지방 유지들이 기사님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는 구락부에 가야 한다고 하였다. 유지들이란 누구일까?

예컨대

하고 촌장이 말하였다.

촌장인 저 자신과 여기 계신 항무소장(港務所長)인 카르발로씨, 그 밖에도 고위층은 아니지만 몇 사람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말을 못 하니까요.

다라스트는 쏘크라트를 불러서 오전에 만나자고 일렀다.

그렇게 합시다. 나는 샘터로 가 있겠어요.

하고 쏘크라트는 대답하였다.

샘터로?

,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곳이니까 걱정 마세요. 다라스트씨.

다라스트는 나오면서 숲의 언저리에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지붕을 거의 덮고 있었다. 나무에는 비가 뿌려, 무성한 숲은 거대한 스폰지처럼 물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낡은 기와를 씌운 집이 백 호쯤 되는 그 마을은 숲과 강 사이에 펴져 있었으며, 멀리 강의 정기가 병원까지 풍겨오고 있었다. 차는 처음에 물에 잠긴 길에 들어섰다가 곧 길다란 광장으로 나왔다. 물탕에 타이어 자국과 마차 바퀴와 말발굽 자국들이 남아 있고, 그 주위에 여러 가지 색깔로 칠을 한 얕은 집들이 광장을 가로막고 있었으며, 광장 뒤에는 식민지 스타일을 한 흰 교회의 둥근 탑들이 보였다. 그 빈약한 야경의 강가로부터 소금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광장 복판에는 비에 젖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란히 서 있는 집을 따라 고오쇼(알젠티나의 목동), 일본 사람, 혼혈 인디언, 그 밖의 유지들이 법석대고 있었으며 그 침침한 양복들이 이곳에서는 이국적으로 보였다. 그들은 차를 통과시키기 위해 침착하게 옆으로 비켜섰다가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차가 광장의 어느 집 앞에 머물었을 때, 비에 젖은 고오쇼들이 말없이 차를 에워쌌다.

구락부에는 2층에 대나무로 된 카운터와 양철로 만든 둥근 탁자가 놓여 있는 일종의 바가 있어, 유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촌장이 술잔을 들고 다라스트를 위해, 그의 도착과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축원한 다음에, 모두들 감자술을 마셨다. 다라스트가 창문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승마용 바지를 입고 각반을 한 키가 후리후리하고 좀 싱겁게 생긴 친구가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와서 분명치 않은 말을 재빨리 늘어놓았다. 기사는 그의 말에서 <패스포트>라는 말밖에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다라스트는 주저하다가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더니, 그는 그 서류를 후딱 빼앗는 것이었다. 그 싱거운 사나이는 패스포트를 들썩거린 후에 분명히 불쾌한 얼굴을 하였다. 그는 기사의 콧등 앞에서 여권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기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화난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판사가 웃는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서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주정꾼은 자기 말을 중단시킨 그 약해빠진 인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더욱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이번에는 새로 나타난 말 상대의 눈앞에 그 여권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다라스트는 침착하게 둥근 탁자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이야기는 매우 격해졌다. 그러자 판사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는 도저히 그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떠나갈 듯이 들렸다. 그러자 그 싱거운 사나이는 벌을 받은 열등생처럼 게걸음으로 문 앞을 가더니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판사는 곧 다라스트에게 돌아와서 부드럽게, 저 버릇없는 자는 경찰서장으로, 여권이 위법이라고 주장하였다는 말을 전하고 그처럼 예의에 벗어난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카트발로씨는 유지들에게로 갔다. 판사는 자기를 에워싼 유지들에게 무슨 질문을 하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의논을 한 연후에 판사는 다라스트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이과프읍() 전체가 기사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단지 술 때문이니 양해하여 줄 것을 간청하고, 이어서 가엾은 인간들에게 주어 마땅한 처벌을 기사님 자신이 결정해 달라고 말하였다

다라스트는 자기가 처벌을 원치 않으며, 그것은 조그마한 문제이므로, 빨리 강에 가 보아야겠다고 말하였다. 그때 촌장은 상냥스러운 말씨로 처벌은 꼭 필요하며, 범인들은 잡힐 것이라고 말하고 그들은 귀한 손님께서 자기들의 운명을 결정해 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비웃음 섞인 엄격한 태도는 어떤 반론도 굽힐 수가 없었다. 다라스트는 다시 생각해 보겠노라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강은 미끄러지기 쉬운 낮은 기슭에 누런 흙물을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과프의 한끝에 있는 집들을 지나 강과 높고 험한 비탈 사이에 서 있었다. 그리고 비탈에는 진흙과 나뭇가지로 지은 오두막들이 매달려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뚝 끝에서 삼림은 맞은편 기슭과 마찬가지로 단조롭게 뻗어 있었다. 감물은 노랗다기보다 잿빛을 띠고 나무들 사이를 잘 보이지 않는 데까지 널리 퍼져 흘러내렸다.

다라스트는 묵묵히 물이 범람하였을 때의 서로 다른 수표선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절벽 옆으로 걸어갔다. 질퍽한 지름길이 오두막 쪽으로 나 있었다. 그 앞에는 흑인들이 낯선 손님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몇 쌍의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있었으며, 흙더미 끝으로 배가 불룩하고 다리가 가느다란 흑인 아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한 줄로 늘어서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오두막 앞에 이르자 몸짓을 하여 두부의 책임자를 불렀다. 그는 흰 제복을 걸치고 언제나 웃음을 얼굴에 담고 있는 몸집이 큰 흑인이었다. 다라스트는 오두막에 들어가도 좋으냐고 스페인 말로 물었다. 책임자는 물론 좋다고 대답하고, 좋은 생각이라고 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기사님은 매우 흥미있는 일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흑인들에게 가서 다라스트와 강을 가리키면서 길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가 말을 마쳤을 때,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조급하게 설명을 하고, 어떤 남자에게 의향을 물었으나, 그 사나이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다. 책임자는 명령조로 몇 마디 던졌다. 사나이는 다라스트의 앞에 와서 몸짓으로 길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의 눈초리는 적의(敵意)를 품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머리는 반백이고 얼굴은 메말라 있었으나 육신은 아직 팔팔하여 거칠고 튼튼한 두 어깨와 근육이 아래 바지와 찢어진 속옷을 통하여 드러나 보였다.

그들은 책임자와 흑인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더욱 험한 다른 절벽 위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양철과 갈대로 만든 오두막들이 땅 위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 밑은 커다란 돌로 고여야만 하였다. 그들은 맨발로 지름길을 때때로 미끄러지면서 머리에 함석 물통을 이고 오는 한 여인을 만났다. 이윽고 세 채의 오두막에 둘러싸인 공터에 이르렀다.

사나이는 그중에서 한 집 대나무 문을 밀었다. 그 문의 받침틀은 칡넝쿨로 되어 있었다. 그는 말없이 냉정한 눈초리로 기사를 노려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라스트는 오두막 안에서 처음에는 방의 흙바닥 위에 다 꺼져가는 반딧불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그는 방구석에 밑이 빠지고 스프링이 빠진 구리 침대 하나와 다른 구석에 질그릇을 올려놓은 책상과 그 사이에 성() 죠르쥬의 색판화(色版畵)가 의젓이 장식된 무대 같은 것이 보였다. 그 밖에 출입구 오른편에 누더기가 쌓여 있고 천장에 불로 말리는 여러 가지 파아뉴(土人)의 허리를 두른 치마)가 몇 개 걸려 있었다.

다라스트는 잠자코 연기와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숨 막힐 듯한 가난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책임자가 뒤에서 손뼉을 쳤다. 기사가 돌아보았다. 양지를 등지고 문턱에 아름다운 흑인 처녀가 그에게 뭔가 내미는 것이 보였다. 그는 컵을 들어서 그 속에 든 독한 감자술을 마셨다. 처녀는 쟁반을 내밀어 빈 잔을 받아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다라스트는 그 태도가 하도 부드럽고 신선해 보여 별안간 붙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처녀의 뒤를 따라 밖에 나갔을 때, 오두막 주변에 둘러서 있던 흑인들과 유지들 틈에서 그 처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늙은 사나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감독이 뒤에서 다시 설명을 늘어놓고 나서, 리오에 있는 프랑스 토건 회사가 언제 공사에 착수할 수 있으며, 장마가 지기 전에 뚝을 쌓을 수 있겠는가를 물어보았다. 다라스트는 이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여기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가랑비를 맞으며 강 쪽으로 걸어갔다. 그 막막한 소음이 줄곧 들려왔다. 이 소리는 그가 이곳에 도착한 후로 언제나 들려왔는데, 그것이 물소리인지, 또는 나뭇잎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강가에 이르러 멀리 바다에 어렴풋한 선, 수천 킬로에 이르는 적막한 물결, 그리고 아프리카와 멀리 그가 떠나온 유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십장님, 우리가 지금 막 만나고 온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서 살아갑니까?

노동을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일을 하지요. 무척 가난합니다.

하고 십장은 대답하였다.

그들이 제일 가난한 편인가요?

그렇지요.

그때 뾰족한 구두를 신고 어름을 지치듯이 다가온 판사가, 그들은 일거리를 줄 기사님을 전부터 존경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날마다 춤과 노래로 세월을 보낸답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잠시 후에 다라스트에게 처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느냐고 불쑥 물었다.

처벌이라뇨?

아니, 우리 경찰서장의……」

그대로 두시오.

판사는 그래서는 안 되며, 꼭 처벌을 해야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벌써 이과프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랑비가 내려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작은 샘터에서 꽃들이 바나나 나무와 팡다누스(榮蘭科의 식물) 사이의 칡넝쿨에 연이어 늘어져 있었다. 축축한 돌더미들이 지름길의 교차점을 이루고,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잡종과 혼혈종들, 그리고 서너 명의 고오쇼들이 거기서 떠들고 있었다. 그 밖에 사람 한 떼가 천천히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나무밭 길을 잡목으로 가로막힌 곳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숲이 시작되어 있었다.

다라스트가 사람들 속에서 쏘크라트를 찾고 있을 때, 뒤에서 그가 오는 기색을 느꼈다.

잔칫날답군요.하고 쏘크라트는 웃으면서 말하고, 그 자리에서 껑충 뛰어 보기 위해 다라스트의 어깨를 짚었다.

잔치라니?

아니 여태 모르세요? 예수님의 명절 말예요. 해마다 모두들 망치를 갖고 동굴로 가지요.

하고 쏘크라트는 다라스트에게 말하였다.

쏘크라트가 가리킨 것은 동굴이 아니라, 공원 한쪽에서 뭔가 기다리는 듯이 보이는 한 떼의 사람들이었다.

아시겠어요? 어느날 예수의 인자한 조상(彫像)이 바닥에서 강을 거슬러 흘러 왔지요. 어부들이 발견했어요. 무척 아름다운 조상이었어요. 어부들은 조상을 저 동굴에서 씻었지요. 그런데 그 동굴에서 돌 하나가 자라났어요. 그래 해마다 망치로 그것을 부수고, 축복된 행복을 위해 가루가 되게 하는 것이 행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돌은 여전히 커지고 그들은 언제나 그들은 언제나 부수고……그야말로 그건 기적입니다.

그들은 동굴에 도달하였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입구가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촛불이 켜진 어둠 속에 웅크린 그림자가 망치로 돌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길다란 콧수염을 기른 마른 고오쇼였는데, 도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축축한 편박석(片剝石) 부스러기를 쥐고 나와 사람들에게 펴 보이고 나서, 손바닥을 오무리고 사라졌다. 그러자 다른 사나이가 몸을 꾸부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다라스트는 뒤로 돌아섰다. 순례자들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위에 서서, 나무에서 아름다운 망사처럼 떨어지는 빗방울을 태연히 맞고 있었다. 다라스트도 동굴 앞에서 뿌연 빗방울 맞아가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영문을 잘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 나라에 도착한 후로 한 달 동안이나 줄창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는 축축한 날씨의 밤하늘에 깜빡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뚝을 쌓고 길을 닦는 그의 직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상상도 못하던 어떤 놀라움 - 이 세상의 끝에서 끈기 있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고 생각되는 - 이나 또는 어떤 상봉(相逢)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몸을 돌이켜 사람들을 멀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강가에 가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 어귀에서 소크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작달막하고 몸집이 뚱뚱하며, 허리가 굵고, 피부 생각이 검다기보다는 차라리 노란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이마의 윤곽은 박박 깎은 머리 때문에 더욱 넓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윤나는 넓은 얼굴은 모나게 붙어 있는 검은 턱수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선수입니다.

하고 쏘크라트가 말하였다.

내일 이 사람이 행진을 한답니다.

그는 싸지로 만든 육중한 수부(水夫)의 옷을 걸치고 해군 작업복 밑에는 푸르고 흰 줄을 친 샤쓰를 입고 있었으며, 침착한 검은 눈으로 다라스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샤쓰를 입고 있었으며, 침착한 검은 눈으로 다라스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두터운 입술을 벌려 반짝이는 흰 이빨을 드러내놓고 껄껄 웃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스페인 말을 해요.

하고 쏘크라트는 그 미지의 사나이를 향해 말하였다.

다라스트, 함께 이야기를 하시죠.

하고 그는 덧붙였다. 이어서 쏘크라트는 춤을 추며 다른 그룹 쪽으로 가 버렸다. 사나이는 웃음을 멍추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다라스트를 바라보았다.

대장님, 재미 어떠십니까?

난 대장이 아니야.

하고 다라스트가 말하였다.

아니면 어떻습니까. 쏘크라트가 그러는데 당신은 귀족이시라지요?

내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귀족이었지. 고조할아버지도 귀족이고 또 그 아버지들도 모두 귀족이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귀족이 없어졌어.

알겠어요. 그러니까 모두가 귀족이란 말씀이죠?

하고 흑인이 말하였다.

그게 아니라 귀족과 평민의 구별이 없다는 거야.

그 사나이는 잠자코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이해가 간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곳에는 일하는 사람도 없고 고통을 받는 사람도 없나요?

구백만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또 고통을 당하고 있지.

그럼 그들은 평민이군요.

그렇지, 그러나 그들의 상전들은 경찰이나 상업에 종사하고 있네.

그의 부드러운 얼굴은 다시 긴장하더니 드디어 끙끙거리는 것이었다.

! 사구 팔구, 더럽기 짝이 없군! 그리고 경찰과 어울려 개놈들이 큰소리를 떵떵 치겠군.

그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쳤다.

당신은 팔고 사고하지 않아요?

그런 짓은 않해. 나는 다리를 놓고 길을 닦는 사람이야.

그거 참 좋은 일입니다. 나는 요리사요. 댁에서 원하신다면 검정콩 요리를 만들어 드리지요.

암 원하고 말고.

요리사는 다라스트의 팔을 잡았다.

댁의 이야기가 구수하구려. 나하고 이야기나 합시다. 당신도 내가 마음에 들 거요.

그는 다라스트를 출입구 부근에 부근의 대나무 숲 아래 놓인 축축한 나무 밑으로 끌고 갔다.

나는 이과프 바다에서 해변의 항구들에 기름을 공급하다가 뒤집힌 작은 급유선(給油船)을 타고 있었어요. 배에 불이 났던 거예요. 그건 내 잘못은 아니었어요. 난 내 직책을 잘 잘 알고 있어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운수가 나빴어요. 우리는 보트를 바닷물에 띄워 놓을 수가 있었어요. 파도가 심한 밤에 보트는 뒤집혀지고, 나는 무에 빠졌어요. 내가 물에서 다시 떠 올랐을 때, 내 머리가 보트에 부딪쳤어요. 나는 그만 바닷속에 표류했어요. 나는 어두운 밤에 물결이 센 데다가 헤엄은 서툴렀어요. 무서운 일이었죠. 그런데 멀리서 갑자기 불빛이 보이지 않겠어요. 아는 이과프의 예수회의 돔(둥근 지중)을 보았어요. 나는 예수님에게 저를 살려만 주시면 50킬로의 무게가 있는 돌을 머리에 이고 행렬을 따라가겠다고 말했어요. 당신은 내 말을 믿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러나 파도는 잔잔해지고, 내 마음은 가라앉아 갔어요. 나는 천천히 헤엄을 치면서 무척 기뻐했어요. 나는 드디어 바닷가에 이르렀어요. 나는 내일 이 약속을 지켜야 할 참입니다.

그는 문득 의아한 눈초리로 다라스트를 바라보았다.

웃으실 줄 알았는데 잠자코 계시는군요.

웃을 수 있나. 약속을 지켜야지.

흑인은 그의 어깨를 쳤다.

, 강가에 있는 내 형 집으로 갑시다. 콩을 볶아 드리지요.

아니야, 난 볼일이 있어. 저녁으로 미루지.

좋아요.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오두막에서 춤을 추고 기도를 드립니다. () 죠르쥬의 명절이니까요.

다라스트는 그도 춤을 추느냐고 물어보았다. 요리사의 얼굴은 갑자기 긴장되더니 두 눈을 내리깔았다.

아닙니다. 저는 안 춥니다. 내일 돌을 날라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찌감치 떠나야 해요.

오래 걸리나?

밤새도록, 그러니까 새벽까지 걸려요.

그는 약간 수줍어하면서 다라스트를 쳐다보았다.

춤추러 오시죠. 그리고 나중에 날 데려다주세요. 그렇잖으면 난 남아서 춤을 추게 될 테니까요. 추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 같아요.

춤을 그렇게 좋아하나?

그의 눈에는 정욕이 서려 있었다.

그럼요, 좋아하다 뿐인가요. 게다가 여송연도 있고, 성자와 도 여자도 있거든요. 사람들은 한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무한테도 복종할 필용가 없어요.

여자들도 있나? 마음에 들 만한 여자들도?

마음에, 아니 오두막 여자들이지요.

요리사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오시죠. 대장님에게 복종할랍니다. 오셔서 내일의 약속을 지키도록 도와주세요.

다라스트는 어쩐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 어리석은 약속이 다 뭐란 말인가? 그러나 다라스트는 그 큰 얼굴이 신뢰감으로 가득차 있고, 그 검은 피부가 전강과 생기에 번들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 가지. 그럼 지금 자넬 따라가려네.

그는 웬일인지 자기에게 환영의 공물(供物)을 바친 흑인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들은 공원에서 나와, 질퍽한 거리를 지나 움푹 내려앉은 광장 앞에 이르렀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집들이 낮아서 광장은 한결 넓어 보였다. 비가 더 오지는 않았는데 벽의 칠 위에는 습기가 차 있었다. 해면 같은 하늘의 공간을 통하여 강과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그들에게까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들은 보조를 맞추어 나란히 걸어갔다.

다라스트는 다리가 무거워 오고 요리사는 다리가 땡겼다. 요리사는 때때로 고개를 쳐들고 동료들에게 웃어 보였다. 그들은 집 너머로 바라보이는 교회 쪽을 향해 걸었다. 이윽고 광장을 지나 음식 냄새가 마구 풍겨오는 질척한 한길에 이르렀다. 가끔 한 여인이 접시나 취사도구를 들고, 호기심에 찬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금세 사라지곤 하였다. 그들은 교회 앞을 지나 낮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구시가를 거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강물 소리가 들리는 곳에 이르렀다. 다라스트는 그곳 오두막을 확인하였다.

알겠네. 저녁에 보세.하고 그는 말하였다.

, 그럼 교회 앞에서 뵙겠습니다.

그러나 요리사는 다라스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내었다.

당신은 여태까지 신의 구원을 간청하며 맹세한 적이 없어요?

있어. 아마 한 번 있었네.

파선 당했을 땐가요?

그렇네.

다라스트는 그의 손을 갑자기 뿌리쳤다. 그러나 발꿈치를 돌리다가 요리사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망설이다가 웃어 보였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당신에게 말씀 드리죠. 내 잘못으로 어떤 사람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요. 내가 기도를 한 것 같아요.

맹세도 했나?

아뇨. 다만 맹세하고 싶었지요.

오래전의 일인가?

이곳에 오기 조금 전의 일이죠.

요리사는 두 손으로 가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대장님이시군요.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내 집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맹세를 지키도록 도와주실 텐데, 그건 당신이 몸소 하시는 거나 다를 바 없어요.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라스트는 빙긋이 웃었다.

설마!

당신은 당당하시군요. 대장님!

전엔 당당했지, 그러나 지금은 고독하네. 한데 예수님은 언제나 자네에게 응답을 해 주셨나?

언제나요? 천만에

그럼?

요리사는 순진한 웃음을 띄었다.

그건 주님의 자유 아니겠어요?하고 그는 말하였다.

다라스트는 구락부에서 지방 유지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촌장은 그가 이과프에 왔다는 큰 표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서명첩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판사는 내빈으로서 그가 지닌 미덕과 재능 및 내빈이 국민된 영광을 가진 그 위대한 나라를 대표함에 있어서 취한 담담한 태도를 찬양하는 치사를 하였다. 다라스트는 단지 자기가 그 영광을 가졌으며, 생각건대 그것은 분명히 영광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 장기간에 걸친 공사의 낙찰(落札)을 얻게 된 것은 자기 나라 회사의 이익이기도 하다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판사는 그의 그러한 겸손한 태도에 항의하였다.

그런데하고 판사는 말을 이었다.

서장에 대하여 우리가 취할 바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 두셨나요?

다라스트는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정했어요.

다라스트는 이과프의 아름다운 동리롸 선량한 주민들을 알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는데, 자기의 체류가 혐조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자기 이름으로 그 경솔한 사나이를 용서해 준다면, 자기로서는 이것을 은혜와 호의로 생각하겠다고 말하였다.

판사는 그의 말을 자세히 듣고 있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법률 전문가답게 틀에 박힌 태도로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다라스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프랑스 국민의 관용의 전통을 찬양하자고 제의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오늘 저녁에는 서장과 함께 식사라도 나눕시다.

그러나 다라스트는 동굴에서 무도회에 초대를 받았다고 말하였다.

아 그래요!하고 판사는 말하였다.

당신께서 그리로 가시는 건 참 반가운 일입니다. 곧 보시게 되겠지만, 우리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날 밤에 다라스트, 요리사 그리고 그 형은, 기사가 이미 아침에 찾아간 토막집 한복판에 꺼진 불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현은 그를 보고 별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스페인말을 별로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요리사는 사원(寺院) 쪽에 마음이 쏠리고 있더니, 검정콩 수우프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았다.

이윽고 해가 저물어갔다. 다라스트는 아직도 요리사와 그 형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오두막 안쪽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와 다시 그에게 술을 갔다 준 그 처녀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분간할 수가 있었다.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리사가 일어나 말하였다.

시간이 됐어요.

모두들 자리에 일어났다. 그러나 여자들은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리하여 남자들만 밖으로 나왔다. 다라스트는 망설이다가 그들을 따라나섰다. 밤에는 비가 그쳤다. 검푸른 하늘은 아직도 축축해 보였다. 수평선 아래 컴컴한 강물 속에 별들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별들은 곧 꺼져 마치 하늘이 마지막 빛을 흘리듯이 하나하나 강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거운 공기는 물과 연기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거창하면서도 조용하던 숲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이어서 별안간 북과 노랫소리가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더니 차츰 분명해졌다. 그리하여 그 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멎어 버렸다. 이윽고 육중하나 짧막한 흰 명주옷을 걸친 흑인 아가씨들의 긴 행렬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룩덜룩한 목걸이를 늘어뜨리고 붉은 투구를 쓴 키다리 흑인 하나가 그 처녀들의 뒤를 따르고, 그 뒤에는 흰 파자마를 입은 남자들과 트라이앵글(三角鐵) 및 크고 작은 북을 멘 악사들이 뒤를 따랐다. 요리사는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수백 미터에 걸쳐 죽 늘어선 오두막집들을 지나 그들이 도착한 집은 크고 텅 비어 있었으며 안벽에 칠을 하여 아늑해 보였다. 바닥은 딴딴한 흙으로 되어 있고, 집과 갈대로 이은 지붕은 가운데 기둥에 의해 떠받쳐 있었으며,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안쪽의 종려나무 잎사귀를 새겨 놓은 계단 위에는 방의 절반이나 비칠까 말까 한 촛불이 켜있고, 판화가 걸려 있었는데 그 판화에는 성 죠르쥬가 굵직한 수염이 달린 한 마리의 용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 제단 아래로 코코식(루이 15세 당시의 공예 양식의 일종) 벽종이를 바른 벽장 속에 있는 촛불 하나와 물 한 컵 사이에 뿔이 돋힌 신을 상징하는 붉은 색깔을 칠한 진흙 조상(彫像)이 놓여 있었다. 그 신은 사나운 얼굴을 하고 은종이로 만든 칼을 휘젓고 있었다.

요리사는 다라스트를 방 한구석에 안내하였다. 그들은 문 어귀의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곧 출발할 수 있어요.

하고 요리사가 말하였다. 집안에서는 남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꽤 더워졌다. 악사들은 작은 제단 양쪽에 자리를 잡았다. 남녀들이 두 개의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면서 춤을 추다가, 남자들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가운데는 붉은 투구를 쓴 흑인 두목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팔짱을 끼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섰다.

그러나 두목은 춤추는 사람들의 원을 헤체고 나와서 엄숙한 태도로 요리사에게 몇 마디 뭐라고 말하였다.

대장, 팔짱을 펴시오. 팔짱을 끼고 있으면 성인의 영혼이 내려오는 것을 가로막는답니다.

하고 요리사가 통역을 하였다. 다라스트는 순순히 팔을 내렸다. 그러나 등은 여전히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그 길고 커다란 사지(四肢)와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은, 마치 그 자신이 믿음직스러운 짐승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흑인은 그를 바라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곧 쨍쨍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북의 반주에 맞추어 그 노랫소리를 받아서 합창을 하였다. 한편 원을 그리며 춤을 추던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장하였다. 그들은 힘이 무척 드는 장중한 춤을 추고 있었다. 발을 구르며 허리들을 이중으로 움직이는 춤이었다.

더위가 심해졌다. 그러나 춤은 멈추는 시간의 간격이 멀어지고 템포가 빨라졌다. 그 키다리 흑인은 딴 사람들의 리듬이 늦춰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춤을 추면서 제단으로 가기 위해 다시 원을 헤쳐나갔다. 그는 물 한 컵과 불을 켠 초를 한 대 들고 와서 땅바닥 가운데 세워놓고, 촛불 주위에 동심원을 그려 물을 쏟고는, 다시 일어나 미친 듯이 지붕을 쳐다보았다. 그는 긴장된 마음으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성 죠르쥬가 오신다.

요리사는 이렇게 속삭였다. 그의 두 눈은 툭 튀어져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춤을 추는 몇몇 사람들은 바야흐로 성령의 감촉이라도 받을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손을 허리에 올려놓은 채 발을 꼿꼿이 뻗고 눈은 한점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춤꾼들은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들의 리듬에 속도를 가하여 영문모를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 고함소리는 차츰 높아지더니 하나의 울부짖음으로 변하였다. 그러자 여전히 눈을 치켜들고 있던 두목도 숨을 몰아쉬며 크게 호통을 쳤다. 그것은 똑같은 단어의 반복이었다.

자기는 신의 싸움터라는 것입니다.

하고 요리사가 속삭였다. 다라스트는 그의 목소리가 변한 것이 이상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요리사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주먹을 쥔채 눈을 부릅뜨고, 다른 사람들의 리드미컬한 발버둥 소리에 발을 맞추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자기도 얼마 전부터 발을 움직이진 않지만 전신의 무게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갑자기 북이 미친 듯이 울리면서 그 키다리 흑인이 정신없이 날뛰었다. 눈에서는 불을 뿜을 듯하였으며, 사지(四肢)를 비비 꼬며 마치 해체될 듯이 리름에 박차를 가하면서 두 다리를 한쪽씩 굽혀 무릎을 꿇더니, 덥석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북소리가 소란하게 들리는 가운데 거만하고 사나운 태도로 동작을 멈추더니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춤꾼 하나가 컴컴한 구석에서 나타나 무릎을 꿇고 그 마귀에게 홀린 자에게 짤막한 칼을 내밀었다. 키다리 흑인은 줄곧 주위를 바라보면서 칼을 받더니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빙빙 돌렸다. 그때 다라스트의 눈에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춤을 추고 있는 요리사를 발견하였다. 기사는 그가 어느새 춤추러 나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불그스름하고 희미한 불빛 속에서 숨 막힐 듯이 먼지가 뿌옇게 땅에서 올라와 공기가 흐려있어 몸이 더 끈적거렸다. 다라스트는 좀 피로함을 느꼈다. 숨이 차츰 가빠졌다. 그는 사람들이 춤을 계속하면서 어떻게 여송연을 피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냄새는 집안에 충만하여 다라스트를 약간 도취케 하였다. 그는 여전히 춤을 추면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요리사밖에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요리사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피지 말게.

하고 다라스트가 말하였다. 요리사는 발을 구르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목덜미에는 핏대가 돋아나 종소리를 들은 권투선수 모양 중앙의 기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뚱뚱한 흑인 여자 하나가 관능적인 울굴을 흔들면서 중창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젊은 흑인 여자들은 실신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녀들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그것은 어깨에 올라갈수록 더욱 심하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머리는 마치 몸에서 분리된 것처럼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고 억양도 없이, 마치 그때까지 침묵을 지켜온 어떤 존재에게 각자 한마디씩 하고자 있는 힘을 다하여 내지르는 외마디 소리 속으로, 육신도 신경도 완전히 융합되어있는 것같이 보였다. 이윽고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하나하나 스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흑인 두목은 쓰러진 여자마다 그 기다랗고 시꺼먼 손으로 재빨리 관자놀이를 조르는 것이었다. 그러면 여자들은 다시 일어나 몸을 휘청거리면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힘없이 그러나 차츰 크고 빠른 속도로 고함을 지르다가 다시 쓰러지는 것이었다.

다라스트는 오랫동안 춤을 추어 기운이 빠졌다. 그리하여 벙어리처럼 숨이 막히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더위와 먼지, 담배 냄새, 사람 냄새 등으로 질식할 지경이었다. 그는 요리사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벽을 따라 기어 나오다가 구역질을 참으면서 주저앉아 버렸다.

이윽고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공기는 여전히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나 아우성은 멎어 있었다. 다만 북소리만 나지막하게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북소리에 맞춰서 흰 보자기를 쓴 무리들이 방구석에서 리듬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물그릇과 촛불을 치워 버린 방 한복판에서 흑인 처녀들이 떼를 지어 정신없이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은 눈은 감고 있었으나 똑바로 서서 거의 같은 자리에서 발끝을 세워 몸을 조금씩 앞뒤로 흔드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둥뚱한 두 여자는 라피아 종려의 포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키가 크고 깡마르고 라피아를 슨 젊은 여자 하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그녀가 그 집 주인의 딸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초록색 옷을 걸치고 푸른 면사로 된 총사(銃士)의 새털을 단 여자 사냥꾼의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파랗고 노란 색으로 된 활을 들고 화살집을 어깨에 맨체 그 끝에는 알록달록한 새 한 마리를 꼬챙이에 꿰차고 있었다. 그녀의 가냘픈 몸뚱이 위에 뒤로 약간 젖혀진 아름다운 머리가 흔들리며, 무표정한 얼굴에는 창백한 우울이 감돌고 음악이 멈출 적마다 꿈꾸듯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북의 강한 리듬만이 그녀에게 힘을 주고 있었으며, 주위에서 천천히 아라베스크를 그리며 돌아가다가 드디어 음악과 함께 다시 멈추어 서서 휘청거리며 째지는 듯하면서도 음률에 맞는 이상한 새소리를 내었다.

다라스트는 그 느릿느릿한 춤에 매혹되어 검은 디안느(달의 여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요리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번들번들하고 일그러져 있었으며, 선의가 사라진 눈에는 탐욕만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낯선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늦었어요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들은 밤을 새워 춤을 출 작정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신이 여기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라스트는 머리가 무거워 요리사를 따라 벽을 끼고 문 어귀에 이르렀다. 요리사는 문지방 위에서 대 싸리문을 붙잡고 옆으로 몸을 비켰다. 다라스트는 밖에 나와 요리사를 뒤돌아보았다. 그는 잠자코 있었다.

가세, 돌을 날라야 하지 않나

나는 그냥 있겠어요.

요리사는 쌀쌀하게 말하였다.

그럼 자네는 약속을 안 지킬 테야?

요리사는 다라스트가 한 손으로 붙잡고 있던 문을 잠자코 조금씩 밀었다. 이윽고 다라스트는 어깨를 치켜올리며 물러나 그곳을 떠났다.

밖은 상쾌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무숲 위에는 드문드문 나타난 남쪽 하늘의 별들이 안개에 가리워 가늘게 번쩍이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미끄러운 비탈길을 다시 오라가 부근에 올망졸망한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구덩이가 뚫린 한길에서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실거리고, 숲은 가까이서 수런거리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커지고 어둠 속에서 은 대륙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다라스트는 구토를 느꼈다. 그는 마치 이 나라 전체를 그 늙은 지역의 슬픔이며, 그 나무숲들의 검푸른 빛과 그 거칠은 커다란 강들의 밤 물결소리를 토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지역은 너무나 광대하고, 계절과 피땀이 뒤섞여 시간은 용해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은 흙과 함께 영위되어, 여러 해를 질퍽하지 않으면 건조한 땅 위에 누워 자야만 하였다. 저 유럽에서는 이러한 생활은 치욕과 분노밖에 볼 수 없었다. 이곳 말라빠져 떨며 쓰러지기까지 춤추는 그 미치광이 속에는 유적(流謫)이 아니면 고독이 있었다. 그러나 다라스트의 귀에는 축축한 나무들의 냄새로 가득 찬 밤기운을 타고 잠든 아름다운 처녀의 야릇한 새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였다.

다라스트가 심한 두통으로 악몽에 시달리던 끝에 깨어났을 때, 마음과 숲속을 무더운 열이 억누르고 있었다. 손목시계는 멈춰 버렸다. 그는 몇 시인지도 모르고 이 마을에 솟아오른 밝은 햇살에 놀랐다. 그는 병원 현판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하늘은 지붕들을 덮고 있었으며, 누런 매들이 병원과 맞은편 지붕에서 더위에 겨워 잠들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마리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더니 주둥이를 벌리고 날아가려고 양지쪽을 향해 먼지가 뿌연 두 날개를 두어 번 퍼덕이고, 지붕 위에서 서너 센티미터가량 위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주저앉아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라스트는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넓은 광장은 그가 방금 지나온 길처럼 고요하였다. 멀리 강의 두 기슭에서 안개가 숲 위를 나지막하게 떠돌고 있었다. 더위는 직각으로 다라스트를 내리눌렀다. 그가 더위를 피할 그늘을 찾고 있노라니, 어떤 집 처마 밑에서 자기를 향해 손짓하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서야 비로소 쏘크라트임을 알아차렸다.

다라스트씨, 당신은 명절놀이를 꽤 좋아하시는군요.

다라스트는 집안이 너무 무더워, 하늘과 어두움 속이 좋아서 나와 버렸다고 말하였다.

그럴테지요

하고 쏘크라트가 말하였다.

당신의 나라에서는 미사만 올리고 아무도 춤은 안 추니까요.

그는 손을 부비며 한쪽 발로 뛰면서 제자리를 빙빙 돌며 숨이 막힐 정도로 웃고 있었다.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애꿎은 사람들이에요.

그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다라스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당신도 미사에 나가십니까?

아니야.

그럼 어디 가세요?

아무 데도 안 가.

쏘크라트는 또 웃었다.

그럴 수가 있나요. 교회도 아무것도 없는 귀족이라니 -

다라스트도 따라서 웃었다.

그렇네. 나는 내가 거처할 마땅한 자리가 없어 떠난 거야.

다라스트씨, 우리하고 함께 살아요.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소크라트, 그러고도 싶지만 나는 춤을 전혀 못 추는걸.

그들은 함께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고요한 마음을 찡찡 울렸다.

아아,

하고쏘크라트가 말하였다.

촌장이 꽤 부자더군요, 그는 구락부에서 점심을 드신다나요.

소크라트는 인사도 없이 병원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를 가는 거야?

다라스트가 큰 소리로 물었다. 쏘크라트는 코를 고는 것 같은 태도로 대답하였다.

잠자러요, 곧 행진이 있으니까요.

그는 반쯤 되는 걸음걸이로 사라지면서 다시 코 고는 소리를 내었다.

촌장은 다라스트에게 행진을 구경할 수 있는 귀빈석 하나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는 기사에게 고기 한 접시와 중풍증을 고치는 데 좋다는 쌀밥을 함께 나누자고 권하면서, 우선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판사댁 발코니 위에서, 교회와 마주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읍사무소에 가서, 교회와 광장으로 통하는, 고해자(告解者)가 돌아올 한길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판사와 경찰서장이 다라스트와 함께 갈 것이며, 촌장은 식에 참석한다고 하였다. 서장은 구락부의 홀에서 입 언저리에 미소를 띠고 다라스트의 주위를 바라보면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친절한 말을 거는 것이었다. 다라스트가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 그는 문을 밀어 길을 내주려고 하였다.

두 사나이는 텅 빈 마을에서 무거운 햇살을 받으며 판사댁으로 걸어갔다.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그때 가까운 한길에서 갑자기 화약통이 터졌다. 그러자 모든 지붕 위에서 목의 털이 빠진 매들이 당황히 떼를 지어 날아갔다. 이어서 여남은 개의 화약통이 사방에서 터졌다. 사람들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 길목을 메웠다.

판사는 다라스트에게 자기의 누추한 집에 찾아온 것을 영광으로 한다고 말하고, 흰 회칠을 한 바라크식 아름다운 층층대를 오르게 하였다. 다라스트가 지나갈 때 층계참 위에서 문들이 열리고 아이들의 밤색 머리가 나타났다가는 웃음을 참으면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아한 귀빈석에는 등나무로 된 즙기(汁器)와 새장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앉은 발코니는 교회 앞의 작은 광장의 맞은편이었다.

이윽고 그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방은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였다. 하늘에서 햇살이 내리쪼이는 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들만 뛰어다니다가 멈춰 서서 화약통에 불을 댕기면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발코니에서 보이는 우툴두툴한 벽과 푸른 성회칠을 한 여남은 개의 계단과 두 개의 금빛 탑이 있는 교회는 한결 작게 보였다.

교회에서 갑자기 오르간 소리가 들려왔다. 광장 주변에서 현관을 향해 군중들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남자들은 모자를 벗고, 여자들은 무릎을 꿇었다. 오르간은 저무도록 행진곡을 보내왔다. 이윽고 숲속에서 이상한 날갯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투명한 날개와 가냘픈 기체를 가진 조그마한 비행기 한 대가 나무 위로 솟았다가 광장 쪽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머리 위를 붕붕거리며 지나서 강어귀로 사라졌다.

그러나 교회의 한 구석에서 야단법석이 일어나 다시 사람들은 그리로 이목을 돌렸다. 현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소란하여 오르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검은 옷을 뒤집어쓴 고해자들은 교회에서 한 사람씩 나와 앞마당에 모였다가 층층내를 내려오기 시작하였으며, 희고 붉은 깃발을 든 흰옷을 걸친 고해자들이 그 뒤를 따르고, 찬사의 옷을 입은 꼬마들, 검고 심각한 얼구을 한 성모 마리아의 유년반이 따르고, 끝으로 짙은 색깔의 양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유지들이 울긋불긋한 성골함(聖骨函) 위에 예수님의 성상을 들고 나타났다. 그 성상은 손에 갈대를 들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며 교회 앞마당의 계단에 모여든 군중들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성골함이 층계 아래 내려오자 한동안 조용하였다. 그 사이에 고해자들은 대열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때 다라스트는 요리사를 찾아내었다. 그는 윗도리를 벗고 교회 마당 위쪽으로 막 나서려는 참이었다. 수염이 덮인 그의 얼굴 위에는 네모꼴로 된 커다란 동덩어리를 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코르크 판대기 위에, 두골에 대어 놓여 있었다. 그는 교회의 층계를 씩씩하게 걸어 내려왔다. 돌은, 살이 드러나 활 모양으로 보이는 그의 짧은 두 팔을 완전히 균형이 잡히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성골함 뒤로 오자 행렬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악사들이 짙은 색깔의 저고리를 입고 리본을 단 관악기를 숨 가쁘게 불어대면서 현관 쪽으로부터 나타났다. 고해자들은 보조를 북돋아 주는 그 곡조에 맞추어 재빨리 광장에 면한 길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성골함이 자취를 감추었을 때에는 요리사와 맨 뒤의 악사 밖에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뒤에서는 화약통 소리가 들리고 군중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비행기는 엔진을 요란하게 울리며 맨 끝의 군중에게로 돌아왔다. 다라스트는 거리로 사라져 버리려는 요리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갑자기 구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리가 꽤 멀어져 잘 보이지 않았다.

판사와 경찰서장과 다라스트는 철시를 한 상점과 문이 닫힌 집들 앞을 지나 읍사무소에 이르렀다. 나팔과 화약통 소리가 멀어짐에 따라 거리에 다시 침묵이 감돌고, 몇 마리의 매는 지붕 위에 다시 돌아와 앉아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을 다시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읍사무소는 좁은 길거리에 있었다. 변두리 마을에서 교회의 광장에 통하는 긴 거리도, 텅 비어 있었다. 읍사무소의 발코니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물구덩이 투성이의 한쪽 한길뿐이었다. 요새 내린 비로 군데군데 물구덩이를 이루었던 것이다. 기세가 좀 꺾인 태양은 닫혀진 길 건너편 집들의 정면을 아직 내리쪼이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정면 벽에 반사하는 태양만 바라보기에 피로와 현기증을 느낄 것 같았다. 인기척이 없는 집들이 죽 늘어선 빈 거리는 그의 마음을 매혹하는 동시에 한편 구역질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다시 그 고장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돌을 생각하였다. 그는 그 시련이 끝나기를 원하였다. 그는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내려가 보자고 제의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교회의 종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그러자 길 저쪽 왼손 편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군중들이 미칠 듯이 날뛰었다. 고해자와 순례자도 함께 엉켜 성골함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화약통과 환호성 속에서 좁은 길을 전진하고 있었다. 그 행열은 곧 길 가장자리에까지 넘쳐, 커다란 혼란 속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러 종족이 한데 엉켜 가지각색 옷들이 뒤섞여서 다만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교회로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서 수많은 커다란 촛불을 든 한 떼가 나타나, 그 불꽃은 대낮의 뜨거운 햇빛 속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가까이 다가와 발코니 아래 이르러 하도 촘촘히 물려서 벽을 따라오는 것처럼 생각되었을 때, 다라스트는 요리사가 거기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 인사도 없이 발코니와 방에서 빠져나와 그르듯이 계단을 내려와서 종소리와 화약통이 터지는 거리로 나왔다. 거기서 그는 기뻐 날뛰는 군중들과 촛불을 든 사람들, 그리고 눈을 가린 고해자들과 마주 부딪쳤다. 그러면 그는 몸 전체를 인간의 물결에 악착같이 거슬려 길을 헤쳐나갔다. 그는 억센 동작으로 거기서 헤어나와 군중 뒤의 길 한 모퉁이에 섰을 때, 다리가 휘청거려 쓰러질뻔하였다. 그는 타는 듯한 벽에 붙어 붙어서서 숨을 들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그때 한 무더기의 남자들이 거리로 밀려 나왔다. 맨 앞에 선 사람은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다라스트는 그들이 요리사를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요리사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는 멈춰서서 기다란 돌 밑에서 몸을 굽히고 하역 인부나 쿠리(중죽 노동자)처럼 총총걸음으로, 비참하게 발바닥으로 땅을 차며 뛰고 있었다. 그 주위에서는 먼지가 뿌연 도복을 걸친 고해자들이 그가 멈춰 설 적마다 응원하고 있었으며, 그 왼쪽에 서는 그의 형이 걷다가 뛰곤 하였다. 다라스트는 그들과 자기가 떨어져 있는 간격을 따라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처럼 생각되었다. 요리사는 그와 거의 같은 높이의 지점까지 이르러 다시 멈춰서서 주위를 멍하니 둘러보았다. 그는 다라스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다라스트의 쪽을 향해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더러운 땀이 기름처럼 배이고 턱수염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입술에 갈색 거품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는 웃으려고 하였으나, 머리에 이고 있는 짐의 무게로 하여 꼼짝을 못 하고 전신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두 어깨의 근육만이 경련을 일으키며 오그라들고 있었다. 다라스트를 알아본 그의 형은 이렇게 말하였다.

벌써 쓰러진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어디서 소크라트가 나타나 그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밤을 새어 가면서 춤을 너무 추었거든요. 다라스트씨, 피로가 겹친 겁니다.

요리사는 다시 재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 모습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같지 않고 모을 움직여 그 짐의 무게를 덜어보려는 것 같았다. 다라스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오른쪽으로 다가가 두 손을 가볍게 요리사의 등에 올려놓았다. 거리의 저쪽 끝으로 성골함은 사라져 버렸다. 광장에 가득찬 군중들은 더는 전진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요리사는 몇 초 동안 형과 다라스트 사이에 끼어서 전진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모여 있던 구중들과 불과 1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멈춰 섰다. 다라스트의 손은 한결 더 무거웠다.

좀 더 가게

하고 그는 요리사에게 말하였다. 요리사는 떨고 있었다. 입에서 다시 침이 흐르기 시작하고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하였다. 그는 숨을 길게 내 쉬려고 하였으나 곧 막혀 버렸다. 그는 휘청거리며 서너 걸음 걷고 나서 얼떨떨해졌다. 그러자 돌은 갑자기 그의 어깨로 미끄러져 내려와 어깨를 살하고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요리사는 균형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그를 응원하다가 고함을 치며 펄쩍 뛰었다. 다른 사람들이 요리사에게 다시 돌을 메우려고 움켜쥐고 있는 동안에, 누가 코르크판을 들었다.

다라스트가 요리사에게 허리를 굽혀 먼지와 피로 뒤범벅이 된 그의 어깨를 닦아주고 있는 동안에, 얼굴을 땅에 처박고 있던 그 작달막한 사나이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으며, 이제는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의 입은 숨을 쉴적마다 마치 마지막 숨결이나 되는 것처럼 턱에 닿는 것이었다. 다라스트는 그의 팔을 붙잡고 어린애를 다루듯이 일으켜 세우고 꽉 붙잡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바싹 굽혀 마치 기운을 불어넣어 주려는 듯이 얼굴에 대고 소근거렸다. 이윽고 요리사는 피와 흙투성이가 된 몸을 그에게서 떼었다. 얼굴이 흉악해 보였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약간 들어 올린 동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멈춰서서 멍하니 돌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휘젓고 나서 두 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다라스트에게 돌아섰다. 그의 일그러진 일굴 위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져 흘렀다. 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겨우 몇 마디 떼어놓았을 뿐이다.

난 맹세했죠하고 그는 입을 삐쭉거렸다.

, 대장, 아 대장!

그의 목소리는 눈물이 가로막아 버렸다. 그의 형이 등뒤에 나타나서 그를 껴안았다. 그는 울면서 기진맥진하여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잠자코 있었다.

다라스트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라스트는 멀리서 다시 고함을 치는 군중을 돌아보았다. 그는 갑자기 코르크판을 빼앗아 손에 들고 돌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도록 눈짓을 하고, 그 판대기에 돌을 실었다. 그는 돌의 무게에 눌려서 어깨를 웅크리고 약간 허덕이면서 요리사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 발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힘차게 발을 내디뎌 구중과의 거리가 뜬 공간을 걸어가, 힘있게 맨 앞줄을 뚫고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그에게 길을 비켰다. 그는 총과 화약통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군중들은 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는 여전히 다급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군중들은 교회까지 가는 길을 비켜주었다. 돌의 무게가 그의 머리와 목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는 교회의 담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성골함을 보고 그리로 걸어갔다. 그는 어느새 광장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져 교회로 가는 길에서 방향을 돌려 순례자들이 자기를 마주 보게 하였다. 뒤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군중들은 그의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는 줄곧 외치는 포르투갈어를 한마디 알아들을 것 같았지만, 끝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쏘크라트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서 그의 앞에 나타나 두서없이 지껄이며 교회로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교회로 가요, 교회로

하고 쏘크라트가 군중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다라스트는 자기가 택한 길을 걸어 나갔다. 그러자 쏘크라트는 두 팔을 하늘 높이 쳐들고 물러섰다. 군중들은 차츰 조용해졌다. 다라스트는 전에 한번 요리사와 함께 지나가 본 일이 있어, 그 길이 강변의 마을로 통한다는 것을 알고 첫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등 뒤 광장에서 웅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돌은 그의 머리를 육중하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돌의 무게를 떠받들어야만 하였다. 그가 첫 골목의 미끄러운 비탈길에 이르렀을 때에 두 어깨는 이미 오므라들고 있었다. 그는 멈춰서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코르크판 위에 얹어놓은 돌을 머리 이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굳건한 걸음으로 오두막들이 빽빽이 들어선 마을로 내려갔다. 그 마을에 다다랐을 때, 그는 숨이 차기 시작하였다. 그의 팔은 돌 둘레에서 떨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여 요리사의 집 뜰 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발길로 물을 차서 열고 방 가운데 들어가 아직도 불그스레 타오르는 불길 위에 돌을 동댕이쳤다. 그는 몸을 쭉 펴고 일어나 가난과 잿더미 냄새를 마셨다. 그는 매우 통쾌하였다. 마음속에서 벅찬 기쁨이 굽이치는 것이었다.

이윽고 오두막집 식구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눈을 감고 벽에 기대선 다라스트를 바라보았다. 방 한가운데 있는 부뚜막 자리에 돌이 재와 흙이 반쯤 파묻혀 있었다. 그들은 마치 질문이나 하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다라스트를 바라보고 있을 뿐, 입은 열지 못하였다. 그때 요리사의 형이 요리사를 돌 앞으로 데려왔다. 요리사는 쓰러졌다. 그 형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다른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할머니가 들어오고 이어서 지난밤의 그 아름다운 소녀가 얼어와 앉았으나 아무도 다라스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돌을 둘러싸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강물 소리가 무거운 공기를 뚫고 그들에게 들려올 뿐이다. 다라스트는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귀만 기울이고 있었다. 그 강물 소리는 그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힘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즉 그는 한 번 더 새로 시작되는 생활에 경의를 표하였던 것이다. 때마침 가까이서 화약통의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요리사를 약간 옆으로 밀어놓고 나서 다라스트 쪽으로 몸을 돌이켜,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우리와 함께 여기 앉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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