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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자(背敎者) 또는 혼란된 정신

배교자(背敎者) 또는 혼란된 정신

Albert Camus

 

 

무척 혼란스럽군!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디! 머리를 정리해야겠다. 놈들이 내 혀를 잘라 버린 후로, 웬일인지 또 하나의 혀가 내 구대로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뭔가가 지껄이고 있다. 누가 별안간 입을 다물더니 모든 것이 다시 시작이다. , 나는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말들이 너무나 많이 들려온다. 정말 혼란스럽다. 내가 입을 열어 뭐라고 말을 해도 그건 자갈들이 서로 부딪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다.

<질서를, 어던 질서를 세워야지!>

하고 혀는 말한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말도 한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질서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나는 내 대신 올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쫓겨나, 타가사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이곳까지,무너진 바윗돌 더미 속에 숨어서 낡은 소총을 깔고 앉아 있는 것이다.

사막에 해가 떠오른다. 아직 무척 추운 날씨다. 얼마 안 가서 꽤 더워질 테지. 이 땅에서는 미칠 지경이다.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아니지, 좀 더 참아보자! 선교사는 오늘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는 올테지. 나는 그가 안내인과 같이 온다는 말을 듣고 있다. 둘이서 한 마리의 낙타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 기다려 봐야지. 그런데 나는 추위 때문에 떨고 있다. 좀 더 참아야지. 치사스러운 노예나 다를게 뭐람!

내가 참아 온 지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중앙 고지의 높은 언덕에 자리잡힌 내 집에서 살 때는, 천박한 아버지, 사나운 어머니, 포도주, 특히 시고 싸늘한 포도주, 날마다 등장하는 돼지비계로 만든 수프, 그리고 긴 한겨울의 찬바람, 눈더미, 지겨운 고사리 , 나는 떠나야겠다. 이런 것들과 당장 작별하고 햇빛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싶다.

나는 사제를 믿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날마다 나를 살펴 주었다. 신부는, 신교도가 대다수를 차지한 이 지역에서는 한가하였다. 그는 마을을 지나갈 때 벽에 바짝 붙어서 숨어다녀야만 했다. 그는 나에게 밝은 앞날과 태양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가톨릭을 태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책을 읽게 하고, 나의 무딘 머리에 라틴어까지 가르쳐 주었다.

<영리한 앤데, 당나귀 같군>

하고 사제는 늘 말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내 머리는 너무나 아둔하여, 한평생 그렇게 많은 실패를 해오면서도 피를 흘려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돼지 같은 아버지는 나더러 짓궂은 놈이라고 늘 말해 왔다. 그들은 신학교에서 아주 으스대었다. 신교도 나라의 신입생은 무척 대견스러웠다. 그들은 내가 도착하는 것을 마치 오스테르리츠의 태양이나 되는 것처럼 간주하였다. 그리고 그 태양은 창백했는데, 그것은 알코올 때문이었다. 그들은 신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에 자식들은 충치였다. 아비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 신 술이 결국 위장에 구멍을 뚫어놓아, 사실상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포교단에 들어갔다고 해서 조금도 위험할 것은 없다. 따라서 이제는 선교사를 죽이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는 선교사와 그의 스승들과 그리고 나를 기만한 나의 스승들 및 유럽에 대하여 결판을 내야겠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기만했던 것이다. 선교회에 있는 놈들은 입만 벌리면 전도에 대하여 지껄여댄다. 그들은 미개인에게 가서 떠드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주님이 계십니다. 그를 분명히 보십시오. 그는 사람을 때리지 않고 죽이지도 않으며, 언제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시를 합니다. 그는 나를 얼마나 훌륭히 만들었는가를 보십시오. 나를 모욕하면 그대들은 그 보상을 받게 될 겁니다.

그렇다, 나는 신을 믿고 제법 훌륭해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살도 찌고 미남처럼 되었으며, 차라리 모욕당하기를 원하였다. 우리는 여름철에 그로노블의 태양 아래서 검은 밀집대형을 짓고 걸었는데, 경쾌한 옷차람을 한 계집애들의 곁을 지나가면서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들을 멸시하고, 그들이 나를 모욕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웃었다. 그러자 나는 생각하였다.

<저들이 나를 때려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에 가래침을 뱉어 주었으면 얼마나 기쁠까!>

그러나 그들의 웃음소리에는 내 마음을 찢는 듯한 이빨과 송곳이 돋아나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욕과 그에 따르는 괴로움은 얼마나 통쾌한 것이었던가!

교장은 내 악담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니지, 자네한테는 다소 취할 점이 있어.

취할 점이라! 하긴 내게는 신 포도주가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그건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 인간이 고약하지 않고서야 어찌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이 나에게 베푼 가르침에서 그것을 잘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밖에는, 그 한 가지 이념밖에는 깨달은 것이 없다. 영리한 당나귀였던 나는, 끝장을 보려고 했다. 나는 짓지도 않은 죄를 회개하고, 평법한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꼈다. 나도 결국 남의 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를 훌륭하게 만들어 준 자를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통하여 내 신에게 경의를 표하라.

거친 태양이 떠오른다. 사막의 모습이 달라져, 이제는 산에서 피는 시클라멘의 빛깔을 하고 있지 않다. , 나의 산, 나의 눈() -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눈. 아니지, 그건 잿빛에 가까운 황색이다. 황홀하기 이전의 시간. 지평선까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내 눈앞에는, 언덕의 부드러운 한길이 모래 언덕까지 기어 올라가고 있다. 그 모래 언덕은 타가사 - 그 억센 이름, 몇해 전부터 나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 를 가리고 있다. 그것에 대하여 처음으로 나에게 말해 준 사람은, 수도원에서 숨어 살던, 거의 소경이 되다시피 한 늙은 신부였다.

그런데 그가 어찌하여 맨 처음 말해 준 사람인가. 그 사람 하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신부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타는 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집들의 흰 벽이나 소금에 절은 그 마을이 아니고, 미개한 주민들의 잔인성이었다. 그리고 외국인에게 폐쇄된 고장으로, 거기 들어가려고 애쓴 사람 중에서 그만이 자기가 목격한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를 채찍으로 때리고, 상처와 입에 소금을 처넣은 다음에 사막으로 쫓아버렸다.

그는 다행히 유목민들을 만나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이야기에서, 불타오르는 소금과 하늘을 생각하고, 그 우상(偶像)이 있는 집의 노예들을 생각하였다. 그보다 더 야만적이고 매력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주님을 보여 주러 가야만 하였다. 그것이 바로 나의 사명이었다.

신학교에서는 모두들 내 용기를 꺾으려고 나에게 설득을 하였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그곳은 전도할 데가 못 된다. 나는 아직 생각이 깊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실력을 알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시련을 더욱 많이 겪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생각해 보아야지.

그러나 언제까지나 기다리기는 싫었다. , 아니다. 그렇지, 필요하다면 준비도 좋고 시련도 좋다. 그 시련들을 알제이에서 받게 되면, 그 고장과 친밀해지게 될 테니까.

그러나 나는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어,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가장 미개한 사람들과 만나, 생활을 함께하면서 - 그러니까 그들의 집 안에서, 그 귀신이 들린 집에까지 가서, 내 주의 진리가 가장 옳다는 것을 보여 주겠노라고 거듭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분명히 모욕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모욕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진리로 집중하기 위해 필요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욕을 참음으로써, 나는 강력한 태양처럼 그 미개인들을 정복할 것이다.

강력한 태양 -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끊임없이 혓바닥 위에 굴리고 있던 말이다. 나는 절대적인 힘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땅바닥에 끓어 앉히는 힘이요, 그것을 굴복시켜, 그로 하여금 개종(改宗)하게 만드는 힘이다. 적이 맹목적이고, 잔인하게, 자신을 갖고 신념에 넘쳐 있을수록, 그의 고백은 그를 패배시킨 자의 강한 힘을 입증하는 것이다.

잠시 길을 잃은 선량한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은 신부들의 변변치 못한 이상이었다. 나는 그들이 그런 능력으로 그처럼 작은 일에 종사하는 것을 멸시했다. 그들은 신념이 없었으나, 나는 그것이 있었다. 나는 사형 집행인에게까지도 인정을 받아, 그들이 무릎을 꿇고 <주여, 당신이 이겼나이다>하고 말하겠끔 만들고 싶었다. 사악한 자들을 한 마디로 지배하고 싶었던 것이다.

, 나는 그런 일에 자신을 갖고 있었다. 다른 일에 대해서는 자신을 가져 보지 못했지만, 일단 어떤 생각을 갖게되면, 나는 그 생각을 버리는 법이 없다. 그것은 나의 힘이다. 그렇다. 그들이 다 가엾게 여긴 나의 힘인 것이다.

태양은 한결 높이 솟아올랐다. 이마가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내 주위의 돌들이 툭툭 튀는 소리를 낸다. 소총 총신(銃身)만이 목장처럼, 저녁 비처럼 싸늘하다. 옛날 수프가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때때로 나한테 빙긋이 웃어 보이던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다 과거의 일이다. 서둘러 말끔히 청소한 한길에서 열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오너라, 선교사야,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금 전하는 말에 대답한 내용을 알고 있다. 나의 새로운 스승들은 그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옳다고 본다.

이제 사랑에도 결판을 내야겠다. 내가 알제이 신학교에서 도망쳤을 때, 나는 그 미개인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내 몽상은 한 가지만 정당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악한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경리과의 금고를 털고 법의(法衣)를 벗어던지고는,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을 지나갔다. 사하라 횡단 자동차회사의 운전수도 농담 삼아 <그리로 가지 말게……>하였다. 대체 모두들 웬일일까? 수백 킬로나 되는 모래사장이 바람에 밀렸다가 밀려오곤 하였다. 이어서 거무스름하고 들쑥날쑥한, 쇠붙이처럼 날카로운 산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 산을 넘으면 열기(熱氣)가 한층 기승을 부리고, 불꽃 같은 수천 개의 거울같이 불타는 갈색, 끝없는 자갈의 바다를 넘어, 도시가 솟아 있는 흑인의 땅과 백인의 나라가 경계선을 이룬 곳까지 가야 했는데, 여기에는 안내자가 필요하였다. 안내자는 내 돈을 훔쳤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마구 구타하고 이 한길 가에 날 팽개쳐 두었다.

이 후레자식아, 저것이 길이다. 약속한 그대로이다. 가거라, 저리로 가. 버릇을 고쳐 줄 테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네 버릇을 고쳐 주었다. 그들은 마치, 한낮이면 끊임없이 쨍쨍 내리쬐는 태양과 흡사하였다. 태양은 창끝으로 나를 찌른다. , 숨어 버려야지. 그렇다, 모든 것이 흐리멍덩해지기 전에 바위틈에 숨어 버려야 해.

여기는 그늘이 좋다. 이 소금 마을의 이글거리는 열은 이 분지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할 수 있게 하겠는가! 곡괭이로 깎아내리고, 아무렇게나 대패질을 한 듯한 낭떠러지마다 곡괭이 자국이 바늘처럼 반짝거리고, 여기저기 널린 금모래가 그것을 누르스럼하게 물들이고 있다.

 

바람이 깎아지른 절벽과 테라스에 휘몰아칠 때에는, 하늘 역시 그 파란 껍질까지도 깨끗이 쓸려서, 그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희게 반짝인다.

나는 흰 테라스의 표면에서 몇 시간이고 큰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를 내는 그런 날이면 눈이 멀어 있었다. 흰 테라스의 표면에서 몇 시간이고 큰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를 내는 그런 날이면 눈이 멀어 있었다. 흰 테라스는 모두가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보였다. 마치 옛날 그들이 떼를 지어 소금의 산을 습격하고 그곳을 평정하여 그 돌더미 위에 길을 내고, 집들의 내부를 파서 창문을 내기라도 한 듯이 보였다. 아니면 그것은 마치, 그렇지,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네가 그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뜨거운 물의 취관(吹管)으로 그들의 지옥을 깎아내리기라도 한 듯이 보였다. 생애의 한 달로 살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의 우묵한 바다에서는 대낮의 열기가 생물과 생물 사이의 모든 접촉을 금하고, 그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과 수정(水晶)으로 된 촛대가 놓여 있다. 여기서는 밤의 냉기가 대뜸 그 주민들을 하나하나 응결시키고, 검은 에스키모들은 갑자기 얼음집 안에서 몸을 떤다. 그들은 길고 검은 옷을 걸치고 있다. 소금기가 손톱까지 스며들고, 사람들은 밤마다 싸늘한 잠자리에서 그것을 씁쓸하게 핥는다. 그리고 곡괭이로 판 구덩이에 있는 유일한 샘물에, 사람들이 마시는 소금기는 그들의 검은 옷에 때때로, 마치 비온 뒤에 달팽이가 기어간 듯싶은 자국을 남겨 놓는다.

, 주여, 그대의 하늘에서 오직 한 번만이라도 오래 내리퍼붓는 억수 같은 비를 내려 주소서! 그렇게 되면, 마침내 이 무서운 도시는 차차 녹아 버려, 어쩔 수 없이 서서히 내려앉을 것이며, 끈끈한 격류 속에 아주 녹아 버려 그 포악한 주민들을 사막 쪽으로 몰고 갈 테니. 주여, 비를 한번만 내려 주소서. 그런데 말이다. 그건 어떤 신이냐? 이곳에서는 그들의 신들이란다! 그들은 자기의 집들과 광산에서 떼죽음을 하는 노예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남쪽 나라들에서는 채취한 소금 판() 한 장이 사람 하나의 값이다. 그들은 말없이 검은 상복에 몸을 휘감고, 거리의 흰 바위 사이를 지나간다. 그리고 밤이 되어 마을 전체가 젖빛 유령처럼 보일 무렵에 소금의 벽이 어렴풋이 반짝이는 집들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가벼운 잠을 잔다. 그리고 그들은 눈을 뜨자마자 명령하고 구타하며, 자기네만이 유일한 종족이요, 자기네의 신만이 참되므로, 이에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의 신들이다. 그들은 동정심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신들처럼 혼자 있기를 바라고 혼자 지배하려고 한다. 그들은 혼자서도 소금과 모래 속에 불타오르는 냉혹한 도시를 건설할 만큼 대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위가 심해지면 머리가 혼돈된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지만, 놈들은 땀을 흘리는 일이 없다. 이제는 그늘에도 더위가 몰려온다. 내 머리 위의 바위에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햇살이 후려갈긴다. 돌들을 하나하나 망치로 후려갈긴다. 그것들은 일종의 음악이다. 옛날과 다름없는 수백 킬로에 걸친 공기와 돌의 진동으로 된 대낮의 장엄한 음악이다. 적막이 깃들어 온다. 그렇다, 그것은 벌써 몇해 전의 일이지만, 나를 맞아준 것은 이와 같은 적막이었다. 감시인들은 그때,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광장의 한복판에 있는 그들 앞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 광장의 한복판에서, 점차 동심원(同心圓)을 이루고 있는 테라스들이, 대야의 가장자리에 놓인 푸른 하늘이라는 뚜껑을 향해 솟아 있었다. 나는 그 흰 방패의 구덩이 속에서 무릎을 끓고 있었다. 벽마다 튀어나오는 소금과 불의 칼날에 눈이 상하고, 피로하여 창백해졌다. 그리고 안내자에게 귀를 얻어맞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몸집이 크고 살갗이 거무스름한 그들은, 잠자코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는 하늘에 떠 있었다. 하늘은 무쇠 같은 태양에게 매를 맞으며 하얀 철판처럼 진동하였다. 그것은 동일한 적막이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 점점 심하게 허덕이다가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기 묵묵히 돌아서더니 같은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검은 샌들을 신은, 소금 때문에 윤기가 흐르는 그들의 발이, 검은 옷자락을 차올리고 있는 것과 발끝을 약간 올리고 발꿈치가 땅을 가볍게 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장이 비었을 때, 나는 그 우상(偶像)이 있는 집으로 끌려갔다.

어느 날 나는, 그 집에서, 바위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 위에 내려앉은 두터운 돌에 구멍을 뚫는 일에 며칠을 보내었다. 그 집의 특색은 다른 집들보다 약간 높고, 소금 울타리로 둘러싸이고, 창문이 있으며, 반짝이는 밤의 장막에 쌓여 있었다. 나는 며칠 후에 짭짤한 물 한 그릇과 곡식 낟알을 받았다. 그것을 암탉에게 모이를 뿌려 주듯이 내게 뿌려 주는 것이었다.

나는 것을 주웠다. 낮에는 문이 단혀 있었으나, 마치 강력한 태양이 소금더미를 뚫고 스며드는 것처럼 어둠이 어느 정도 가시기 시작하였다. 등불은 없었으나 벽을 따라 더듬더듬 걸어가다가 나는 꽃장식 - 벽을 장식하고 있는 마른 종려나무 잎사귀로 만든 - 을 만지고, 안쪽에서는 아무렇게나 짠 작은 문짝을 만져 봤는데, 손끝으로, 그 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후에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날짜도 시간도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곡식은 여남은 번 한 줌씩 던져졌다. 구멍을 파고 대변을 파묻곤 하였으나, 헛수고였다. 언제나 짐승의 굴에서 나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문 두 개가 열리자, 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의 하나가,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내 앞에 다가왔다. 나는 두 볼에 소금이 타는 것을 느끼고, 먼지를 뒤집어쓴 종려나무 냄새를 맡았다. 나는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 앞에서 일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신호를 하였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말처럼 밤색 얼굴을 하고, 금속같이 무표정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다가 손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내 아랫입술을 붙잡고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천천히 비틀더니, 손의 힘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나를 한 바퀴 삥 돌이고 방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내 입술을 마구 잡아당겼다. 나는 정신을 잃고 거기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입술은 피투성이였다. 이윽고 그는 돌아서서, 몸을 벽에 기대고 서 있는 다른 놈들에게로 돌아갔다. 놈들이 활짝 열어 제친 문으로 들이비치는 햇살의 견딜 수 없는 더위 속에서, 쑥대가리처럼 머리가 흩어진 한 마술사가 나타났다. 상체에는 구슬로 된 갑옷을 걸치고, 짤막한 밀집 치마 밑으로 맨발이 드러나 보였다. 얼굴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사각형 구멍이 뚫린 가면 - 갈대와 철사로 된 - 을 쓰고 있었다.

마술사는 악사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온몸을 휘감고 방 아랫목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율동 같은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괴상망측한 춤이었다. 그들은 다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마술사는 드디어 그 우상(偶像)을 바라보았다. 토끼 같은 두 개의 머리에, 뱀처럼 꼬인, 쇠붙이로 된 코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우상 앞에 놓인 대석(臺石) 아래로 끌려갔다. 그들은 나에게 쓴 구정물을 강제로 먹였다. 그러자 내 머리가 금방 불타오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껄껄 웃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욕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모욕을 당한 것이다. 놈들은 내 옷을 벗기고 머리털과 심지어 몸뚱이의 털까지도 깎고 나서 기름으로 닦아내더니, 물과 소금에 담가 둔 밧줄로 내 얼굴을 마구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꼬았다. 여자 두 사람이 내 귀를 잡고, 마술사가 내 얼굴을 후려치는 쪽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마술사의 네모난 눈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들이 손을 멈췄을 때, 말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혼란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나를 일으키더니, 억지로 우상 쪽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웃음을 그쳤다. 나는 이제 그 우상을 섬겨 경배하도록 바쳐진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난 더는 웃지 않았다. 공포와 괴로움이 내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그 흰집 안에서 기장된 얼굴을 하고 몽롱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 우상에게 기도를 하려고 애썼다. 거기에는 그 우상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나운 얼굴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무섭지 않았다. 그들은 밧줄로 내 두 발목을 꽉 붙잡아 매었다. 그러나 걸어 다니는 데는 지장이 없을 만큼 밧줄을 느슨하게 매어 놓았다. 그들은 또 우상 앞에서 춤을 추었다. 남자들은 하나씩 둘씩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문이 닫히자, 다시 음악소리가 들려 왔다. 마술사는 나무껍질에 불을 그어대고 그 주위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의 춤추는 기다란 그림자가, 흰 벽 구석에서 일그러지고, 평평한 표면에서는 파닥거리면서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그는 한구석에서 장방형(長方形) 그림자를 그려 놓았으며, 여자들이 그곳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여자들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들은 내 곁에 물 한 그릇과 곡식 한 줌을 놓고, 나에게 그 우상을 가리켰다. 나는 그 우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였다.

그때 마술사가 여자들을 한 사람씩 볼 가까이 불러들여, 몇 명에게 매질을 했다. 매 맞는 그녀들은 신음하면서 나의 신()인 그 우상 앞에 엎드렸다. 마술사는 여전히 춤을 추면서 여자 한 사람만 남겨 놓고 모두들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는 무척 젊은 여자로, 악사(樂士)들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직 마술사에게 얻어맞지 않았다. 마술사는 그녀의 머리채를 주먹으로 휘어잡고, 한층 더 강하게 비틀었다. 그녀는 눈이 쑥 튀어나오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마술사는 그녀를 놓아주면서 외쳤다. 악사들은 벽을 향해 돌아섰다.

그동안에 사각형의 눈구멍이 뚫린 가면 뒤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는 일종의 발작을 일으켜 땅바닥에서 뒹굴다가, 드디어 손발로 땅을 짚고 엎드려서 두 팔을 모아 머리를 감사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녀는 이와 같이 줄곧 외치면서 우상을 바라보고, 마술사는 그녀의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그녀를 재빨리 껴안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얼굴은 육중한 옷자락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나도 너무나 고독하여 착란에 빠져서 함께 외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마치 오늘 내가 죽여버려야 할 놈을 기다리며 혀가 잘린 입술로 바윗돌을 핥고 있기나 한 듯이 발길에 채어 벽에 부딪혀서 소금을 핥기까지, 무서워 우상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태양은 중천을 조금 넘어섰다. 태양이 열띤 금속에 뚫어놓은 구멍이 바위틈으로 내다보였다. 내 입처럼 수다스러운 그 입에서, 끊임없이 사막의 불길의 강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 앞에 급히 만들어진 도로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놈들은 등뒤에서 나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다. 놈들은 저녁때가 가까울 무렵에야 문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우상을 모신 집을 깨끗이 청소한 뒤에, 제물을 갈아놓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저녁에 의식(儀式)이 시작되었다. 나는 때때로 얻어맞기도 하였지만 언제나 우상을 정성껏 섬겼다. 그 우상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분명히 남아 있으며, 지금은 내 소망이 돼 있다. 어떤 신도 그토록 나를 사로잡고 복종케 한 일은 없었다. 나의 생활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그에게 바쳤다. 곧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다 그에게 바치기로 하였다. 심지어 정욕까지도 그에게 바쳤다. 날마다 내가 듣기만 하고 보지 못한 일반적인 고약한 행위에 참여하다 보니, 정욕이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나는 얻어맞지 않으려면 벽을 마주보고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소금에 바짝 대고, 벽 위를 움직이던 그림자에 짓눌린 채, 그 기다란 고함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목이 말랐다. 정체 모를 불타는 정욕이 내 관자놀이와 배를 졸랐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날짜를 거의 분간하지 못하였다. 마치 하루가 무서운 더위와 소금 벽돌의 음흉한 방사 속에서 서로 녹아 붙어 버린 것 같았다. 마치 하루가 무서운 더위와 소금 벽돌의 음흉한 방사 속에서 서로 녹아 붙어 버린 것 같았다. 이제 나에게는 시간이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찾아드는 고통, 또는 마귀가 들린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출렁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내 이 바위의 집을 지배하는 사나운 태양처럼, 우상이 지배하는, 시간도 없는 기나긴 나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지금 그때처럼 불행과 정욕으로 말미암아 울부짖고 있다. 악독한 소망이 내 몸뚱이를 불태우고 있다. 나는 배반하고 싶다. 나는 혓바닥으로 나의 총신(銃身)을 핥고 있다. 아니, 총 속에 깃들어 있는 넋을 핥고 있다. 그렇다, 총에게만 넋이 있다. 사실 그렇다. 놈들이 놈들이 내 혓바닥을 잘라 버린 날, 멸하지 않는 증오의 넋을 나는 찬양하게 되었다.

머리가 혼돈되어 있다. 화가 난다. 더위와 분노에 사로잡힌 채 누가 내 총 위에 엎드려 허덕이고 있는가? 헤어날 수 없는 이 더위를 나는 더 참을 수 없다. 나는 그를 죽여야 한다. 새도 풀잎도 없다. , 끝없는 영욕, 침묵, 그들의 구름 소리, 끊임없이 지껄여대는 내 마음의 혓바닥, 그리고 놈들이 나의 혓바닥을 자른 후로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지루하고 쓸쓸한 방에 갇혀 꿈꾸고 있었다.

 

서늘한 별들과 샘물이 있는 밤이라야 나를 구해 줄 수 있고, 고약한 신으로부터 나를 건져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갇혀 있었으므로, 그 밤을 볼 수가 없었다. 만일 그자가 더욱 더디 온다면, 적어도 나는 밤이 사막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뒤덮는 것을 볼 수 있겠지. 마치 어두운 하늘의 제일 높은 곳에 매달린 황금의 싸늘한 포도밭 같은 밤에서 나는 천천히 마실 수도 있고, 또 피가 통하는 어떤 부드러운 살도 이제는 시원하게 할 수 없게 된, 거무스럼하게 시들어 버린 그 구멍을 추겨 줄 수도 있을 것이며, 광증이 내 혓바닥을 앗아간 그 날을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척 더웠다. 소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공기는 내 눈을 침식하고 있었다. 마술사가 가면을 벗고 들어섰다. 허리에 엷은 잿빛 누더기를 걸쳤을 뿐 거의 벗다시피 한 낯선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우상의 얼굴을 본 딴 문신(文身)이 가득하였으며, 인형처럼 얼빠진 듯한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말라빠진 몸뚱이만이 살아 있었다.

그 마술사가 구석방 문을 열었을 때, 그 몸뚱이는 우상 앞에 주저앉았다. 마술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더위가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상은 그 움직이지 않는 몸 너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여자의 살결은 움직이고 있었으며, 내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도 인형 같은 그 얼굴은 변치 않았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 발이 그녀의 발에 닿았다. 더위는, 견디다 못해 아우성을 칠 정도로 극심하였다.

그 인형은 말없이 둥근 눈으로 여전히 나를 바라보면서 자빠지더니 두 다리를 천천히 끌어당겨 무릎을 살며시 벌리면서 두 다리를 쳐들었다. 그러나 모두들 들어와서 나를 여자에게서 떼어낸 다음, 죄를 지은 내 국부를 사납게 후려갈겼다. 마술사는 날 지켜보고 있었다. 죄라니? 무슨 죄란 말이냐? 나는 씩 웃었다. 어디 죄가 있고 어디 덕()이 있다는 건가. 그들은 나를 벽에 바짝 붙어서게 하였다. 강철 같은 손이 내 턱주가리를 붙잡고, 다른 손 하나가 내 입을 벌리고, 피가 나도록 혓바닥을 잡아당겼다.

짐승 같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 것은 바로 나였던가? 날카롭고 사늘한 애무가 내 혓바닥 위를 스쳐 갔다. 내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나는 어둠 속에 몸을 벽에 밀착시키고 혼자 굳어 버린 채 피에 젖어 있었다. 내 입은, 야릇한 냄새가 풍기는 마른 잎사귀로 된 마개가 틀어막고 있었다. 입에서 흐르던 피는 멎어 버렸지만, 그 텅 빈 입속에는 쓰라린 고통만이 살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나는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드디어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절망적인 기쁨이었다. 죽는 것도 역시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그늘에는 신이 숨어 있지 않았다.

나는 죽지 않았다. 어느 날 새로운 증오심이 솟아나더니, 자리에서 벌덕 일어나 바로 안쪽 문을 열고 등 뒤로 닫아 버렸다. 나는 등 쪽을 증오하였다. 우상이 거기 있었다. 내가 갇혀 있던 그 굴속에서 나는 기도보다도 더 훌륭한 일을 하였다. 나는 우상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까지 믿어오던 모든 것을 다 부인해 버렸다. 그렇다, 우상은 나의 힘이요, 또한 권력이었다. 이간은 그것을 부숴 버릴 수는 있지만, 개종(改宗)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공허한 눈으로 내 머리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우상은 내 상전이고, 유일한 신이었다. 그 신의 속성은 더 논할 여지도 없이 악()이었다.

무릇 선한 상전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하도 모욕을 당하여, 이 한 가지 고통으로 말미암아 소리를 지르고 온 몸을 그에게 내맡겼다. 그리고 악의에 찬 그의 질서를 긍정하였다. 나는 이 세상의 악의 원칙을 숭배하였던 것이다. 소금산을 깍아서 만든 거친 도시, - 자연으로부터 멀리 떠나 순간적인 개화기(開化期)도 허용되지 않는 사막의 도시 - 우연이나 부드러움이 제시 도시 - 태양이나, 모래까지도 알고 있는 친숙한 구름이나, 세차게 퍼부으며 지나가는 폭우 같은 것도 없는 도시 - 네모난 방들, 완고한 자들로 이루어진 질서의 도시인 그 왕국의 죄수이던 나는 자유롭게, 증오심이 가득 찬 학대받는 시민이 되었다.

나는 내가 배운 역사를 부인하였다. 사람들은 나를 기만하였다. 오직 악의의 지배만이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진리는 네모나고 육중하고 농도가 짙은 것이다. 진리는 뉘앙스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란 일종의 몽상이며, 아무리 애써 추구해도 언제나 연기되는 계획으로, 인간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한계이다. 신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악마만이 그 한계에 다다를 수 있으며, 절대적인 지배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숭상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악이다.

그다음에 사람들은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다음이란 무슨 뜻인가?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악뿐이다. 유럽을 타도하자. 이성(理性)과 명예와 십자가를 타도하자. 그렇다, 나는 상전들의 종교로 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노예였다. 그러나 나도 악하다면, 나는 노예일 수 없다. 설사 발에 칼이 채워지고, 내 입이 벙어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노예가 아니다.

, 더워서 미칠 것만 같다. 사막은 견딜 수 없는 햇볕 밑에서 울부짖고 있다. 그런데 자, 그 자비로운 주()라는 자 - 이름난 들어도 상이 찌푸려지는 - 를 부인한다. 이제 그의 정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으며, 나 자신을 속이려고 하였다. 그의 혀는 잘려졌다. 다시는 세상 사람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의 머리까지 못을 박은 것이다. 마치 지금 이 내 머리 같은 가엾은 그의 머리까지 말이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나는 피곤하다. 그러나 땅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람들이 죽인 것은 의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믿기를 거부한다. 의인이란 있을 수 없다. 무자비한 진리로 지배하는 악의 상전들만이 의롭다. 그렇다, 우상만이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신이다. 증오는 그의 율법이고, 모든 사람의 원천이다. 그것은 입 안을 식혀주고 밥통을 더웁게 해 주는 박하처럼 시원한 물이다. 그때 나는 변하였다. 그들도 이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들을 만날 적마다 그들의 손에 키스하였다. 끝까지 그들을 찬양하고 그들의 편이 되었다. 그들이 내 혓바닥을 잘라 버린 것처럼, 나는 그들이 내 동포의 혓바닥을 잘라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선교사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날 -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온 눈부신 그날이었다. 오후 늦게 감시원 한 사람이 분지의 높은 꼭대기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몇 분 후에 우상의 방으로 끌려갔다. 그들 중에 하나가 어둠 속에서, 십자가처럼 생긴 칼로 나를 위협하였다. 땅바닥에 꿇어 앉혔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드디어 영문 모를 고함소리가 조용한 마을을 진동시켰다. 나는 그 소리를 얼마 후에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내 나라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칼끝이 내 눈 위로 내려왔다. 감시원은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두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 왔다. 그 목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한목소리가 물었다.

중위님, 어찌하여 이 집에는 문지기가 서 있나요? 누가 문을 때려 부수나요?

아니지.

다른 목소리가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도시는 협정이 체결되어 20명의 군대를 성밖에 주둔시키고, 이 고장의 풍속을 존중한다는 조건하에 받아들였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였다.

병사는 웃으면서 그들이 항복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장교가 모르는 일이었다. 병사는, 다만 군대가 여기 주둔해 있지 않다면, 놈들은 신부에게 어떤 행패를 부릴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 일은 없을 테지. 베포오르 신부가 주둔군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할 거야. 아마도 이틀 후에는 여기 올 테지.

하고 장교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 이상 듣지 못하였다. 나는 칼날 아래 땅바닥에 꼼짝 못 하고 엎드려 있었다. 나는 무척 괴로웠다. 내 마음속에서 바늘과 칼의 쳇바퀴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미쳐 버렸다. 이 도시의 절대권력에 - 진정한 신에게 손을 대게 방치해두다니, 앞으로 올 사람은 혀를 자르지 않을 것이다. 모욕도 당하지 않고,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거만한 선량함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악의 지배는 지연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금 불가능한 선을 꿈꿀 것이다. 그들은 가능한 하나의 왕국의 건설을 서두르지 않고, 실속 없는 노력을 기울이며, 시간을 낭비하려고 한다. 나는 나를 위협하고 있는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 힘이여!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힘이여! 도시의 시끄러움이 조금씩 가라앉더니 드디어 문이 열렸다. 나는 혼자 흥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우상과 함께 남아 있었다. 나의 새로운 신앙 - 나의 진실한 상전들 -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나는 나의 포악한 신을 구하고 다른 모든 것을 배격하리라고 우상에게 맹세하였다.

더위가 약간 수그러졌다. 돌은 더는 진동하지 않았다. 이제 이 구멍 밖으로 나가서, 누런빛과 황토색으로 변하고, 이어서 붉은 보라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난밤에 그들이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문의 자물쇠를 비틀어 놓고, 여느 때와 같은 밧줄로 축정되는 걸음걸이로 밖에 나갔다. 나는 거리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낡은 총을 어디서 손에 넣을 수 있고, 어느 출입구에 문지기가 없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밤이 한주먹밖에 되지 않는 별들의 주위에서 퇴색하기 시작하고, 사막의 빛깔이 다소 짙어질 무렵에 여기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이와같이 바위 속에 웅크린 채 며칠을 보낸 것 같다.

, 그가 좀 빨리 와 주었으면! 얼마 있으면 그들이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방으로 길을 쏜살같이 뛰어올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를 위해 - 더욱 자기들을 잘 섬기기 위해 떠나왔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내 다리는 굶주림과 증오로 말미암아 기운이 빠져 버렸다. , 저 길 한끝에서 낙타 두 마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어느새 짧은 그림자가 이중으로 보였다. 낙타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명령하고 꿈꾸는 듯한 걸음걸이로 달려오고 있다. 드디어 왔구나!

나는 얼른 총을 잰다. , 나의 우상이여, 그대의 힘이 유지되고, 모욕이 증가되며 증오가 저주받은 세계를 무자비하게 지배하고, 악한 자가 영원히 상전이 되며, 독재자가 무자비하게 사람을 굴복시키고, 지배하게 될 소슴과 쇠붙이로 이루어진 유일한 도시, 그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하소서!

그리고 지금은 그 동정(同情)을 쏘아라. 무기력과 그 자비를 쏘아라. 악의 도래(到來)를 지연시키는 모든 것을 쏘아라. 쏘고 다시 쏘아라. 그들은 자빠지고 쓰러진다. 낙타들은 지평선 쪽으로 줄곧 도망친다. 그 지평선에서는 검은 새 떼가 간헐온천(間歇溫泉)의 물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는 웃고 또 웃었다. 그놈은 타기할 만한 옷을 걸치고 몸부림치고 있다. 놈은 고개를 약간 쳐들고 나를 바라본다. 발목에 쇠고랑이가 채워진 전능한 시인인 나를 - 무엇 때문에 나에게 빙그레 웃어 보일까. 저 미소를 짓밟아 버려야지! ()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기는 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드디어 오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사막의 구석구석에서 몇 시간 동안 재칼(산개譯註)들은 썩은 고기의 향연을 위해 끈기 있게 재빨리 걷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이겼다! 나는 하늘에 두 팔을 쳐들었다. 하늘도 나를 측은히 여겨 맞은편 끝에 그림자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 유럽의 밤들이여, 유년 시절이여, 어찌하여 나는 이 승리한 순간에도 울어야 하는가?

그가 움직인다. 아니다, 소리는 다른 곳애서 들려 온다. 그들은 반대쪽에서 온다. 그들은 마치 검은 새들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기세로 달려온다. 나의 상전들은 내게 다가와 나를 붙잡는다. , 그래, 어서 때려라. 그들은 자기들의 마을이 약탈당하여 아우성을 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내 성스러운 도시라고 부른, 복수심에 불타는 병사들을 두려워한다. 하긴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 인제 너희들은 방위하라, 때려라, 나를 먼저 때려라. 너희들은 진리를 소유하였다.

, 나의 상전들이여! 그들은 다음에 병사들을 처단할 것이다. 그들은 말씀과 사랑을 쳐부술 것이다. 그들은 사막을 횡단하고 바다를 건너 유럽의 광명을 그들의 검은 베일로 덮어 버릴 것이다. 배를 때려라. 그렇지, 눈을 때려라. 그들은 대륙에 자기 소금을 뿌릴 것이다. 모든 식물은 소멸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청춘도. 발에 족쇄가 채워진 벙어리 떼가 참된 신앙의 잔인한 태양 아래 있어 - 이 세상의 사막에서 나와 나란히 서서 걸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의롭지 않을 것이다. , 이 고통, 그들이 주는 이 고통, 그들의 분노는 훌륭도 하다. 나는 가엾게도 웃고 있었다. 그들이 지금 나의 팔다리를 갈기갈기 찢고 있는 이 전투용 안장 위에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다.

…………

사막은 참으로 고요하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나는 고독하다. 나는 목이 마르다. 그러나 더 기다려야 한다. 어느 쪽이 도시인가? 멀리서 들려오는 저 소리는 아마 사병들의 환호성이겠지. 그들은 승리를 거두었나 보다. 아 그래선 안 되지. 그들이 설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투철하게 악하지는 못하다. 그들은 지배할 줄 모를 것이다. 그들은 또다시 더욱 선량해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수백만으로 헤아리는 사람들이, 악과 선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망설이게 될 것이다.

, 우상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렸는가? 이제 모든 것은 끝장이 났다. 나는 목이 마르다. 몸이 불타오른다. 더욱 캄캄한 밤이 눈에 가득 스며든다.

나는 이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다. 아니, 나는 죽어가는 것이다. 새벽이 밝아온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초의 빛을 의미하는 먼동이지만, 나한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태양이다. 누가 말을 하고 있나? 아니다, 하늘은 열리지 않고 있다. 아니, 신은 사막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어디서 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만일 네가 증오와 힘을 위해 죽음에 동의한다면 누가 우리를 용서해 줄 것인가?

용기를 내어라, 용기를, 용기를 내어야 한다!

이렇게 되풀이하는 것은 내 마음속의 또 하나의 혓바닥일까? 혹은 내 발밑에 쓰러져 아직도 죽기 싫어하는 자의 목소리일까!

아아, 또다시 내가 착각을 일으켰나 보다. 과거의 형제처럼 생각되던 사람들, 유일한 의지여, , 나는 고독하다. 나를 버리지 말아다오! 여기 누가 있구나. 너는 대체 누구냐?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한 마술쟁이로구나. 병사들이 너를 쓰러뜨렸구나. 저기서 소금이 타오르고 있다.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주인이구나. 증오에 찬 그 얼굴을 지워 버려라. 인제는 착해져야지. 우리는 실수를 하였다. 다시 시작해야 해. 우리는 자비로운 도시를 다시 건설해야 해.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 나를 좀 도와다오. 그래 손을 좀 내밀어다오, 손을………

이렇게 지껄여대는 노예의 입술을, 소금 한 줌이 틀어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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