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장부

장부

沈從文(Shen Ts'ungwen)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도 이레나 되어 강물이 꽤 불어났다. 강에 물이 불으니 보통 때 같으면 강여울에 정박해 있을 증기선, 기생선들이 둑 가까이로 옮겨져 조각루 아래의 버팀목에 묶여 있었다.

이 누각 위의 사해춘다관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은 강 쪽 창문으로 몸을 굽혀서, 강 맞은편 보탑 주변의 '안개비와 붉은 복사꽃'의 멋진 경치뿐만 아닐, 배에 탄 아낙네가 손님을 접대하느라 장작을 지피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처럼 가까웠기에 위 아래에 머문 사람 모두에게 편리하였다. 어느 편에서 낯익은 사람을 부르면 그 상대편에서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심지어는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거친 말투로 서로를 꾸짖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후에 때가 되면 누각 위에 있던 사람들은 찻값을 한데 모아 지불한 뒤, 습하고 악취 풍기는 자갈길을 따라 그 배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배에 올라 약간의 돈을 내면 마음껏 담배 피우며 잠을 자고, 아낙네와도 거리낌 없이 즐길 수가 있었다. 배 위에서 생활하는 아낙네들은 엉덩이가 크고 몸이 비대한 젊은 시골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부인으로서의 매력을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남자 시중을 들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장사한다'라고 했다. 아낙네들은 모두가 이처럼 장사하러 온 것이었다. 명분상으로나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도덕과 상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씨앗 뿌리고 땅을 파는 시골에서 왔다. 농촌을 버리고, 맷돌과 송아지를 버리고, 저 젊고도 건장한 장부를 버린 채 같은 마을의 잘 아는 사람을 따라 배 위로 와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사를 하는 사이에 서서히 도시 사람으로 변해갔고, 농촌과 멀어져 갔으며, 도시에서나 필요한 악덕을 배워 나갔다. 이렇게 하여 아낙네는 타락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타락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 낌새를 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야 어떠하든 여전히 시골의 순박한 기질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아낙네도 있었다. 그러므로 도회지 작은 강물 위의 기생배에 탄 이 젊은 아낙네의 내력이 없을 수 없었다.

사연은 매우 간단하였다. 아이를 키우고 기르는 데에 급급하지 않던 라오치라는 이 아낙네는 도회지로 와서 매달 이틀 밤만 뒤면 시골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생활해 나가는 남편에게 충분히 송금할 수 있었고, 자신은 그런 방면에서 넉넉하게 지내며 명분도 잃지 않고 이익까지 남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 장부들은 장가를 들면 자기 아내를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은 집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으며 편안히 지내는 것이 극히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이 라오치라는 아낙네의 남편은 이따금 배 위에서 장사를 하는 젊은 아내가 그리울 때면, 깨끗이 빨아 두었던 의복을 손수 갈아입고, 허리띠에는 일할 때면 늘상 입에 물던 담배 쌈지를 차고, 등에는 고구마, 찹쌀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를 짊어진 채 곧장 시내로 들어가곤 하였다. 시내에 도착하면 먼 친척을 찾아다니는 양 부둣가의 제1호선부터 물어물어 자기 아내가 머문 배를 찾으러 다녔다. 이렇게 하여 아내의 소재가 밝혀지면 배에 올라 조심스럽게 신발을 선실 밖의 갑판 위에 벗어 놓고, 가지고 온 물건을 아내에게 건네면서 놀란 눈으로 아내의 전신을 살피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장부의 눈에 비친 아내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크고도 기름이 번지르르한 쪽머리며, 작은 핀셋으로 치켜 올린 눈썹, 얼굴에 바른 하얀 분과 빨간 연지, 그리고 도시인처럼 으쓱해 하는 모습과 도시인의 옷차림 등은 시골에서 온 장부를 수족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놀라게 하였다. 라오치는 놀라서 입을 못 다무는 장부의 모습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라오치는 잠시 후에 입을 열어 지난번에 보낸 5원을 잘 받았는지, 그리고 집의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지 등 이것저것 집안 일을 물었다. 말투도 자연 달라져 있었다. 마치 도시 부인들과 같이 대담하고도 자유분방하게 변하여, 시골 부인들처럼 수줍어하고 위축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라오치가 고향의 집안일을 묻자, 이 장부는 남편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이 이 배에서 버림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이곳의 아내가 이직까지 고향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용기가 생겨서 천천히 담뱃대와 라이터를 꺼냈다. 두 번째로 놀란 사실은 입에 문 담뱃대를 아내가 갑자기 빼앗더니 곧장 자신의 거칠고 두툼한 손바닥 속에 한 개비의 '하떠먼' 담배를 쥐어 준 것이었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뿐, 이 장부는 한편으로는 담배를 피우고 또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하였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에는 그는 신선한 향기가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때 선주인지 상인인지 모를 어떤 객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소가죽으로 만든 긴 장화를 신고 있었고, 한쪽으로 볼록 튀어나와 빛을 내는 은제품을 나고 있었는데, 술을 잔뜩 마셔 비틀거리며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는 배에 오르자마자 고함을 치고 키스를 하며 잠자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우렁차면서도 분명치 않은 목소리와 기세는 이 장부로 하여금 촌장과 고을 양반과 같은 큰 인물의 위풍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장부는 누구의 안내도 받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뒷편 선실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런 후 선실에 누워 나직하게 숨을 할딱거리다가 입에 궐련을 문 채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강 가운데의 저녁 경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밤은 강 위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강 언덕 위며 강 위는 어느새 등불 일색이었다. 이때 장부는 고향집의 닭과 새끼돼지가 마치 자신의 벗이요, 가까운 사람인 양 그리워졌다. 지금은 아내와 가까이 있긴 하지만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적막이 엄습해 올 때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정말 돌아갈까? 아니야. 30리 거리마다 승냥이며 들고양이, 그리고 야간 보초병 등 귀찮은 것들이 널려 있어서 쉽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내와 같은 배에 있는 따냥이 그를 만류하며 삼원궁에 가서 야간 연극을 보고 사해춘에 가서 시원한 차를 마시자고 하였다. 시내로 가면 커다란 가로등과 도시인들을 더더욱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그냥 머물기로 하고 뒤편 선실로 가서 강의 경치를 바라보고 즐기며 따냥이 한가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뒤에 그는 강 언덕에 오르려고 배 옆의 소양교에서 돛대를 잡고 뱃머리 쪽으로 갔다. 그리고 강 언덕에서 배 위로 돌아올 때는 선실 안 침상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손님의 비위에 거스리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시내에서 야경 소리가 들려 오고 서량산에서 경을 알리는 북 소리가 둥둥 울려 왔다. 장부는 살금살금 칸막이 사이로 선실 안을 살펴보았다. 그때 장부에게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선실의 새 솜이불 속에 어떤 사람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밤에 한편으로는 잠자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틈을 내서 뒤편 선실로 와 사탕을 좀 들지 않겠냐고 물었다. 본래 입안에 사탕 물기를 좋아했었는데, 아내는 이런 사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이 없다고 하였는데도 아내는 작은 사탕 하나를 나의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아내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장부는 입 안에 사탕을 물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앞 선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아내의 행위를 이해하고 편안히 잠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같은 장부가 황장엔 많이 있었다. 지방은 실제로 너무나 가난하였다. 가을에 수확을 해도 쥐꼬리만 하였고, 그것마저 태반은 윗사람들이 거두어 갔다. 그리하여 아무리 절약하고 열심히 일한다 하여도 1년 중에 석 달 동안은 고구마 잎사귀에 쌀겨로 반죽하여 배를 채워도 끼니를 이어가기 벅찬 실정이었다. 지방은 산중에 있고 큰 강의 부두에서 20리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관습적으로 아내는 고향을 떠나 돈벌이를 하고, 남편은 이렇게 해야 생활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아 아내의 일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아내는 명분상으로 여전히 남편에게 귀속된 채 '장사'를 하였고, 남편은 아이들을 맡아서 기르며 아내가 번 돈을 받았다.

 

강가엔 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곳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배가 몇 척이나 될까 하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여 세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곳에는 배의 숫자며 질서, 그리고 배와 배를 저어 가는 사람의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가 바로 우구의 '쉬빠오'라는 노인이었다.

쉬빠오는 애꾸눈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가 젊었을 적에 수상 강도와 격투를 벌이다 살인하게 되자 마침 옆에 있던 사람이 그의 눈을 쑤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쪽 눈이 모두 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쪽 눈은 쓸 수 있었다. 이곳 강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가 도맡아 관리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소형선박에 미치는 그의 권력은 중국 황제나 총통이 지상에서 휘두르는 권력과 같이 일사불란하고 집중되어 있었다.

강물이 불자 쉬빠오는 평상시보다 훨씬 바빠진 것 같았다. 그는 부모들이 강 언덕에 올라간 사이에 어린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지는 않은지, 배에 사람이 없어 멀쩡한 배가 떠내려갈 위험은 없는지 등을 분주하게 살폈고, 배 위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분쟁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늘도 이 노인은 강가에서 수면에 이르기까지의 사정을 조사하러 각지로 갔다. 강언덕에선 요 며칠 사이에 작은 약탈 사건이 세 차례나 발생하였다. 공안 당국자의 말에 의하면 지상의 작은 실마리며 틈조차 샅샅이 뒤져 찾아냈다고 한다. 실상 지상의 작은 실마리며 작은 틈은 모두가 체면을 손상당한 공무원들이 찾아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를 해명할 책임이 쉬빠오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쉬빠오는 한 통의 통지서를 받았다. 이 통지서는 거짓말로 둘러대기 좋아하는 공안국 사무처에서 보낸 것으로, 시빠오는 더러 한밤중에 수상의 무장 경찰들과 함께 승선하여 '악인'을 수색하라는 내용이었다.

쉬빠오가 이 통지서를 받은 것은 오전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따라 온종일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쉬빠오 우선 평일에 사람들이 좋은 술 좋은 고기를 마련하여 환대하면 가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둑을 따라 제1호선부터 배마다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빠오는 각 배에 오르면 그 배 안에 단정치 못한 외래객이 머물러 있는지를 조사해야 했다.

쉬빠오야말로 수상의 패자였다. 수상에 속하는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수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법률가나 장관과 같은 위치에 있었고, 관례대로 관리에 의해 임용되어 이곳 수상의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한결같이 나이를 먹고 세상은 크게 바뀌게 마련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는 돈을 벌어 가정을 이루고, 술도 좀 마실 수 있게 되고, 자녀까지 낳아 기르는 등 안정된 생활을 하며 서서히 화평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직무상으로는 관청을 돕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뱃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홍 속에서 그는 하나의 도덕적인 모범을 세웠다. 그는 관리 못지않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결코 사람을 두렵게 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배 위에 머물고 있는 많은 기생들의 양부 노릇을 하였다. 이런 관계로 말미암아 그의 행위나 일 처리는 그들의 곁에서 떠날 수 없었다.

이때 그는 승가판에서 새로이 기름칠한 '호선' 뱃머리로 뛰어올랐다. 이 배는 비교적 고요히 연꽃이 떠 있는 조각루 아래에 있었는데, 쉬빠오는 이 배를 누구한테 맡겨 관리토록 갈까를 생각하고는 배에 오르자마자 사람을 불렀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연로한 쉬빠오는 낌새를 챘다. 혹시 대낮에 젊은 남자가 찾아와서 배에 올라 멍청한 짓을 벌이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뱃머리에 우두커니 서서 잠시 기다렸다.

한참 후에 다시 두 차례 불렀다. 따냥과 라오치, 그리고 우둬도 불렀다.

우둬는 스무 살 먹은 아가씨로, 야윌 대로 야윈 몸매였지만, 목소리만큼은 카랑카랑하였다. 평소에 지체 높은 사람이 강 언덕에 올라 배를 지키고 있으면 이것저것 사다가 밥을 지어 주곤 해서 고맙다는 표시로 등을 두드려 주면 곧잘 울었는데, 그러다가도 잠시 후면 다시 짧은 속요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리 우둬를 불러 봐도 대답이 없었다. 선실 안에서 누군가 화를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는 것으로 보아, 모두들 강 언덕으로 올라갔거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쉬빠오는 몸을 굽혀 선실 창문을 엿보며 어두운 곳을 향해 물었다.

"누가 안에 있소?"

그래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쉬빠오는 화가 약간 치민 듯 큰 소리로 물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요?"

그러자 안에서 매우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가 겁에 질린 듯이 새어 나왔다.

"나요."

그리고 곧이어 말하였다.

"모두들 강 언덕으로 올라갔슈."

"모두가 강 언덕으로 올라갔다고?"

"올라갔슈. 그녀들은..."

그는 짤막하나마 이런 대답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들키지나 않았을까 하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이때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낀 이 장부는 어두운 선실 안에서 선창 구멍 쪽으로 기어 나와 살금살금 배 시렁을 잡아당기며 찾아온 사람을 쥐 죽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울룩불룩하고 감나무 기름을 바른 듯한 돼지가죽 신발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붉고 부드러운 고라니 가죽으로 만든 돈주머니가 있었고, 다시 위로는 털이 난 손이 눈에 띄었다. 그 손은 푸른 힘줄과 누런 털투성이였는데, 거기에는 무척 큰 황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수없이 많은 귤 껍질을 모아 만든 듯한 정방형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 남자는 찾아온 사람이 지위깨나 있는 단골인 줄 알고 도시인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하였다.

"영감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들은 곧 돌아올 겁니다."

쉬빠오는 말할 때의 목소리며 깨끗이 빤 옷맵시를 얼핏 보고, 이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온 농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본래 이 장부는 자기 아내가 없으면 이곳을 떠나려 하였는데,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그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꾀어내는 바람에 여기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이다.

"당신은 어느 지방에서 왔소?"

쉬빠오는 이렇게 묻고는 그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아버지와 같이 온화한 모습으로 그 장부를 바라보았다.

"난 당신을 잘 모르겠는데."

그 장부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래도 손님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저는 어제 왔습니다."

"시골 보리는 이삭을 피웠소?"

"보리요? 물레방아 앞에 있는 우리 집 보리 말인가요? 하하, 우리 집 그 돼지 말인가요? 하하, 우리 집 그..."

장부는 돌연히 손님의 질문에 대한 적당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말을 멈췄다. 이런 지체 높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라느니, '우리 집 물레방아', '돼지'를 들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단어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미소를 짓고 있는 쉬빠오를 겁먹은 듯이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을 시켜 쉬빠오를 이해시키고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자신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며, 의도적으로 동문서답을 한 것은 아니라고.

쉬빠오는 그의 이런 뜻을 알아차렸다. 또한 이런 대화를 통하여 이 사람이 선상인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라오치는 어디로 갔소?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때 장부의 대답 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어제 왔슈."

그는 다시 쉬빠오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에 왔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라오치가 자기더러 배를 지키라고 하고는 따냥, 우둬와 함께 강 언덕으로 향불을 피우러 갔다고 말했다. 배를 지킬 때는 반드시 그 신분을 밝혀야 했기 때문에 그 장부는 추가로 쉬빠오에게 자신은 라오치의 '남자'라고 알려 주었다.

라오치는 평상시에 쉬빠오를 부를 때마다 '양부'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양부는 그 장부를 사위로 생각하여 거리낌없이 다시 몇 마디를 나눈 뒤에 곧장 선실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선실 안에는 조그마한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빨간 꽃무늬가 박힌 비단이불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찾아온 손님은 규정상 침상 가에 앉아 있어야 했다. 햇빛이 선창구멍으로 들어와, 밖에서 보기엔 선실 안이 매우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밝았다.

장부는 쉬빠오에게 주려고 담배와 라이터를 찾다가 그만 침착성을 잃어 옆에 있던 밤단지를 건드려 엎었다. 토실토실하고 검붉은 알밤이 어스름한 선실 안 곳곳으로 굴러갔다. 장부는 밤을 주워 단지에 넣느라 정신이 없어서 쉬빠오에게 먹어 보라고 권하지도 못했다. 쉬빠오는 이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선실 바닥에서 알밤을 주워 깨물어 먹으면서 밤맛이 참 좋다고 하였다.

"이건 훌륭한데! 당신 기분 좋겠소."

쉬빠오는 주인을 보았기 때문인지 밤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었다.

"기분 좋지요! 이 밤은 저의 집 밤나무에서 난 겁니다. 작년에는 꽤 많이 생산되었지요. 밤송이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올 때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그는 웃으면서 밤단지를 자기 아이 끌어안듯이 가까이하며 즐거이 이런 말을 하였다.

"이렇게 큰 밤은 수확하기 힘들 텐데."

"제가 일일이 골라 온 것예요."

"당신이 골랐다고?"

"그럼요, 라오치가 이런 밤을 좋아해서 제가 남겨 두었다가 가지고 온거예요."

"집에 원숭이 밤도 있소?"

"원숭이 밤이라뇨?"

쉬빠오는 원숭이 밤에 얽힌 이야기를 이 시골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원숭이는 큰 산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면 큰 밤을 따서 사람들에게 던진다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밤을 얻고 싶으면 일부러 산에 가서 욕설을 퍼붓고는 밤을 줍지."

말이 통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장부는 밤 때문에 그를 동정해 주는 사람을 얻게 된 셈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시골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리아오'라는 곳의 소식이며, 밤나무로 만든 쟁기자루가 어떻게 결합되어 쓰이는지까지 이야기하였다. 이 사람은 자기 집안 이야기를 몹시 하고 싶어하였다.

어제 저녁에 손님들이 밤새도록 술 마시며 담배 피우고 있을 때, 장부는 작은 배 뒤편에 틀어박혀서 우둬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우둬는 죽어 가는 돼지처럼 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시골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하였지만, 아내는 강 언덕에 올라 치리치아오를 지나며 향불을 피우고 싶다면서 그에게 혼자 배를 지키라고 하고는 나가 버린 것이다. 반나절을 기다려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엔 몸을 조금 움직여 강 위의 경치를 바라보았는데 모든 것이 신기하고 이색적으로 보였지만 이 장부에겐 번민이 북받칠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선실에 드러누워 이 강을 가득 채운 큰 물이 고향으로 출렁출렁 흘러간다면 어량엔 틀림없이 많은 잉어와 물고기가 걸려들 것이고, 이렇게 하여 잡은 물고기를 버들가지에 꿰어 햇빛에 말리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어떤 손님이 배 위로 올라왔다. 그리하여 머릿속에 있던 물고기들이 죄다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찾아온 손님의 태도로 보아서 이런 이야기를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장부는 자기 아내와 이부자리에서 나눌 갖가지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싶어 그 손님, 즉 쉬빠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는 쉬빠오에게 새끼돼지의 난폭한 성미며, 이 돼지 이름이 '꾸아이꾸아이'라는 등 많은 시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 석공이 말끔히 다듬어 준 맷돌이며, 그의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작은 낫, 쉬빠오로서는 꿈속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작은 낫을 꺼내며 이야기하였다.

"보세요, 괴상하지요? 제가 사방을 샅샅이 뒤져 찾아냈지요. 침상밑, 문지방 위, 창고 모퉁이까지 뒤졌는데 안 나오고 배기겠어요 꼿꼿이 누워 있더라고요. 고양이처럼 누워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저는 이 일로 라오치를 혼냈답니다. 라오치는 울면서 찾아보았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았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그토록 보이지 않던 것이 들보 위 밥소쿠리에 누워 있잖아요. 반년 동안 밥소쿠리에 누워 있었던 거예요. 밥을 처먹으면서! 온몸에 종기가 난 듯 녹슬도록. 이놈이야말로 참 못되고 교활하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이해 못하겠습니까? 어찌 밥소쿠리에 반년 동안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도 모양새는 있어 창문 위에 걸어 두었지요. 원래 이 낫은 제가 쐐기를 깎으려고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그만 손을 베어 홧김에 그렇게 버려 둔 거지요. ...물로 반나절을 가니 그래도 고기가 썰어질 정도로 쓸만 하대요. 당신도 방심하면 그냥 손을 벨 거예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라오치에겐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녀가 그 일 때문에 울면서 속상해 하던 일은 잊지 않고 있답니다. 찾아냈지요. 하하. 정말로 찾아냈어요."

"찾아냈으니 좋겠구려."

쉬빠오는 내키는 대로 한 마디를 했다.

"그래요. 그걸 찾았으니 기분이 좋지요. 저는 이걸 라오치가 시냇가에 버리지 않았나 하고 의심까지 했기 때문에 말하기가 꺼림칙해요. 저는 아내가 절 속이지 않았다는 걸 알아요. 저는 깨달았지요. 제가 아내에게 '낫을 찾아내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어!'하고 꾸짖었을 때, 아내가 얼마나 억울했을지를. 그래도 손찌검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화를 내니 무서웠는지, 아내는 한밤중이 되도록 울었지요!"

"그건 풀 베는 데 쓰지 않소?"

"흐응, 천만에요. 용도야 많지요. 그런데 그렇게 정교한 낫을 두고 풀 베는 데 쓰지 않느냐뇨? 그 낫은 고구마 껍질을 깎거나, 퉁소를 깎는 등의 용도로 쓰이지요. 작지만 300문은 나갈 거예요. 우리는 이런 걸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쉬빠오가 말하였다.

"그래요. 모두가 지니고 다녀야지요. 당신 말을 알아들었어소."

장부는 쉬빠오가 자기 말을 진짜로 이해한 줄 알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이야기하였다. 심지어는 내년에 예쁜 아기를 갖고 싶다는, 아내와 이부자리를 같이 하며 나눠야 할 이야기까지 꺼냈다. 장부는 아무 거리낌없이 거칠고 상스런 말을 곁들이며 반나절 동안이나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쉬빠오가 몸을 일으켜 나가려 하자, 그때서야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의 성을 물었다.

"영감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에 명함 한 장 놓고 가시면 라오치에게 잘 말해 둘게요."

"됐어요, 됐어요. 배 위에서 생활하고 큰 신발을 신고 다니는, 몸집이 큰 사람이라고만 해둬요. 그리고 라오치한테 내가 저녁에 일이 있어서 올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 전해 줘요."

"영감님이 오실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요?"

"맞아요. 오늘 저녁에 틀림없이 올 거요. 그리고 다음에 당신에게 술대접을 하겠소. 우리, 친구가 되어 보도록 합시다."

"그럼요. 우린 친구가 될 거예요."

쉬빠오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장부의 어깨를 두드린 뒤 뱃머리에서 강언덕으로 뛰어올라 다른 배 쪽으로 걸어갔다.

쉬빠오가 나간 뒤 장부는 한편으로는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거한이 도대체 누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그는 이렇게 존귀한 인물과 이야기 나누기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좀체로 거한의 좋은 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 오늘 그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구가 되자고 했으며, 그의 술 초대 약속에 응했던 것이다. 장부는 그가 틀림없이 라오치의 단골손님이며, 라오치는 이 사람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부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사계 사람의 곡풍으로 산 노래 한 곡을 가볍게 불렀다.

"물이 불어 잉어가 어량에 걸렸다네. 큰 놈은 큰 짚신처럼 크고, 작은 놈은 작은 짚신처럼 작다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와야 할 라오치는 물론, 개미 새끼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 거한의 풍채와 말투를 떠올렸다. 번쩍번쩍 빛나던 그의 신발을 기억해 내고는 매우 좋은 감나무 기름을 바르지 않고서는 그렇게 멋지게 보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누르스름한 황금 반지를 기억하고는, 그것이 얼마나 비싸며 그런 보물이 왜 소중한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거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던 모습, 감독자로서의 풍모, 성장으로서의 신분 등을 떠올리며, 이런 사람이 라오치의 재물신이라는 생각에 흥분되었다. 그는 다시 노래 한 곡을 뽑았다. 양춘 사람의 장중하지 않은 곡풍으로 불렀다.

"산 웅덩이에선 한데 모여 숯을 태우고, 산 발치에선 지력 보존하려 숯을 긁어모으네. 숯 긁어 뿌려 고구마는 통통히 여물고, 숯 굽는 사람 얼굴은 검뎅이 되었다네."

정오가 되자, 다른 배에서는 사람들이 밥을 짓느라 야단이었다. 땔나무는 젖어서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곳곳으로 내뿜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연기가 수면 위에 자욱히 깔리자 마치 얇은 비단이 펼쳐진 듯하였다. 강가의 요릿집에서는 주인이 삽으로 솥 언저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고, 인근의 배에서는 솥 안에 배추를 집어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라오치는 돌아오질 않았다. 장부는 배 위에서 젖은 땔나무 태우는 요령을 배운 일이 없었던지라, 아무리 지펴도 작은 솥에서는 부글부글 밥 끊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허탕이어서 그대로 방치해두는 수밖에 없었다.

장부는 밥을 먹어야 할 때 못 먹어서 몹시 배가 고팠다. 주린 채 그는 작은 걸상에 앉아 선실 판자를 툭툭 두드리며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계획이 마음속에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지폐로 가득 채워져 묵직해진 돈주머니가 그의 눈앞에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지자 원래 있던 마음의 평화마저 사라지는 것이었다. 술 지게미와 붉은 피를 반죽하여 만든 듯한, 귤 껍질처럼 붉고 네모난 얼굴이 매우 밉살스런 모습으로 그의 인상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었다. 그리고 아까 한 말을 떠올리며, 그게 장부 앞에서 해야 할 소린가 싶었다.

"오늘 저녁엔 손님 받지 말라고 해, 내가 올 테니."

이런 몹쓸 이야기를 고구마 처먹는 큰 입에서 거침없이 뱉어내다니!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했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분노만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밥까지 굶은 터라 분노는 더해 갔다. 그리하여 야만적인 생각이 단순한 이 장부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싹텄다.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목구멍이 시기와 질투로 꽉 막혀 어떤 노래도 나오질 않았다. 장부는 자신이 농부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하였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불을 지펴 보았다. 될 리가 없었다. 장부는 화가 나서 배 위에 있던 땔나무를 모조리 강물에 던져 버렸다.

"벼락 맞을 놈의 땔나무! 어서 바다로 떠내려가거라!"

그러나 그 땔나무가 5~6미터 정도 떠내려가자,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냉큼 주워 갔다. 그들은 모든 걸 준비해 놓고 젖은 땔나무가 강물 위로 떠내려 오길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땔나무를 주워서 즉시 낡은 동아줄에 불을 붙여 태우기 시작하였다. 온 배에 연기가 가득했지만, 불이 붙기 시작하자 딱딱 소리를 내며 잘 탔다. 그걸 보고 있던 장부는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라오치를 기다릴 것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장부는 막다른 골목에서 우연히 아내와 우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담소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우둬는 참신하게 보이는 호궁 하나를 들고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보지 못한 그런 악기였다.

"당신 어딜 가세요?"

"...돌아가려고."

"당신더러 배를 지키라고 했는데 배는 안 지키고 돌아가려 한다고요? 누가 당신을 건드려서 이렇게 화난 거예요?"

"난 돌아가야겠어. 돌려보내 줘!"

"어서 배 위로 돌아가요!"

아내를 보자 장부의 태도는 말씨보다 더 딱딱해졌다. 그러나 아내가 자기를 위해 특별히 사 가지고 온 호궁을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조용히 한마디 건넸다.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그러고는 그는 아내의 뒤를 따라 다시 배 위로 돌아갔다.

지배인 따냥도 어디선가 서둘러 돌아오고 있었다. 따냥은 돼지 허파를 들고 있었는데, 어디서 몰래 훔쳐 오다가 사람들한테 발각되어 관아로 끌려온 듯이 두 볼이 붉어진 채 헐떡헐떡 숨을 쉬고 있었다. 따냥이 배 위에 오르자, 라오치가 선실에서 고함을 쳤다.

"따냥, 어서 와 보세요. 우리 서방님께서 가시려고 해요!"

"누가 그런 말을 해? 연극도 안 보고 가?"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화난 표정이었어요. 일찍 돌아오지 않아서 섭섭했나 봐요."

"그건 내 잘못이야. 보살님이 잘못이고. 푸주한의 잘못이지. 괜히 푸주한과 돈 몇 푼 때문에 반나절 동안 옥신각신했잖아. 푸주한은 허파 속에 그렇게 물을 많이 집어넣지 말았어야 했어."

"그건 제 잘못이에요."

장부를 데리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던 라오치는 이렇게 말하고는 곧 자리에 앉았다. 라오치는 자기 서방을 앞에 놓고 의도적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매우 선정적인 붉은 비단 브래지어를 드러내 보였다. 그 브래지어 위에는 지난달에 자신이 손수 꾸민 '원앙이 연꽃을 희롱한다(원앙희하)'는 글귀가 수놓아져 있었다.

장부는 이를 엿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 못할 무언가가 혈관 속을 파고들어 용솟음치고 있었다.

조금 후에 따냥과 우둬가 땔나무와 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나! 땔나무를 누가 훔쳐 갔네요!"

"쌀은 누가 일어 놓았지?"

"땔나무는 젖어서 불을 붙여도 잘 타지 않았을 텐데. ...형부는 시골 사람이라서 송진밖에 못 태울 텐데요."

"우리가 어제 땔나무를 한 묶음만 풀어 놓은 건 아니지?"

"모두 풀어 놓았지요."

"자 그만 하고 앞에 가서 한 묶음 가지고 와."

"형부는 쌀을 일 줄밖에 몰라요!"

우둬는 이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장부는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선실 안에 앉아서 아까 사 온 호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한 마디 건넸다.

"줄은 미리 잘 골라 놓았으니 어디 한 번 연주해 보세요."

소리를 내기 전에 장부는 호궁을 무릎 위에 얹어 놓고 호궁의 몸통에서 나는 송진 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런 다음 줄을 골라 생소한 음향이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 나오자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얼마 안 가 선실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라오치는 장부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장부는 호궁을 안고 밖으로 뛰쳐나와 뱃머리에서 줄을 타기 시작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우둬는 말했다.

"형부, 식사가 끝난 뒤에 "맹강녀가 장성에서 통곡을 하네"를 연주해 주세요. 제가 노래를 부를 테니까요."

"연주할 줄 몰라!"

"잘하신다고 그러던데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이 아니야. 박자가 빠른 "어머니는 딸을 보내고"밖에 몰라."

이때 따냥이 거들었다.

"라오치가 그러더군. 악기를 잘 다룬다고. 그래서 사당에 갔다가 이 호궁을 보고 제부 생각이 나서 사가지고 온 거라오. 정말 운이 좋은 셈이지. 그것도 값싸게. 시골에서는 이걸 1원 주고도 못 살 걸. 그렇지 않나?"

"그래요. 얼마나 가지요?"

"60. 호궁 장사가 그렇게 나간다고 했네."

그러자 우둬가 웃으며 응수하였다.

"누가 그렇게 나간다고 했어요?"

따냥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다.

"이 계집애야, 누가 그렇지 않다고 했어? 네가 뭘 알아? 주둥아리를!"

우둬는 혀를 내밀며 괜히 얘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호궁은 잘 아는 장사꾼으로부터 한 푼도 안 주고 가져온 것이었다. 따냥이 거짓말하자 우둬가 따져 물으니까 따냥이 화를 내며 우둬를 꾸짖은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라오치가 웃었다. 장부는 이를 따냥이 사리에 밝지 못한 것을 비웃는 것으로 생각하고, 한쪽에서 헛웃음치고 있었다.

장부는 밥 한 그릇을 얼른 먹어 치우고 호궁을 연주하였다. 호궁 소리는 청아하고 낭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우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밥그릇과 젓가락을 놓은 채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러나 따냥에게 젓가락으로 따끔하게 맞고는 서둘러 밥을 먹고 그릇을 거두어 설거지를 했다.

 

저녁이 되자 앞 선실이 대발로 가려졌다. 장부가 호궁을 연주하자 우둬가 노래를 불렀다. 라오치도 불렀다. 방안의 메이후등엔 붉은 종이를 잘라 만든 차광막을 덮어씌워 선실 안은 망년회나 하듯 붉디붉고 운치가 있었다. 장부의 마음은 즐거웠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잠시뿐이었다. 어떤 병사 둘이 고주망태가 된 채 강변로를 지나다가 이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비틀거리며 배 쪽으로 다가와 진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배 가장자리를 잡고서 고함을 질러댔다.

"누가 노래를 불러? 노래 신청 받아라! 잘 부르면 상금으로 500원 내지. 못 들었나? 이 어르신네가 500원을 낸다구!"

안에서는 호궁 소리가 딱 멈추고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병사들은 발로 배를 연신 차며 둔탁하고 뭉툭한 소리를 어지러이 냈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돛을 밀려고 돛의 돌쩌귀 이음새 부분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하자 다시 고함을 쳤다.

"상금 필요 없냐, x같은 년들아! 귀머거리냐, 벙어리냐? 누가 감히 여기에서 노래를 불러? 내가 누굴 무서워할 줄 아냐? 황제도 안 무서워한다. 고참님, 제가 황제를 무서워하면 사람도 아니죠! 우리 군단장, 사단장은 모두가 뻔뻔스러운 멍텅구리들이야. 제 아무리 잘났다 해도 난 두렵지 않아!"

다른 병사도 거친 목소리로 퍼부어 댔다.

"창녀들아, 어서 나와 이 어르신네를 배 위로 모셔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의 돛에 돌을 던지며 갖은 욕을 퍼부어 대자 선실에 있던 사람들은 두려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따냥은 황급히 심지를 줄이고 밖으로 달려나가 돛을 밀었다. 장부는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호궁을 낀 채 뒤쪽 선실로 잠입하였다. 그러는 동안 취객들은 어느새 앞 선실로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상스런 욕설을 퍼부으며, 앞을 다투어 라오치, 따냥, 우둬에게 키스를 하려 하였다. 그러더니 목쉰 소리로 물었다.

"누가 여기에서 노랠 부르고 연주했지? 호궁 탄 녀석을 끌어와서 다시 어르신네를 위해 노래 한 곡 뽑아 봐."

따냥은 감히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라오치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한 병사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이년들아, x 같은 새끼 불러와. 어르신네 앞에서 연주해 주면 상금으로 천 원을 낼 테니! 세상을 뒤흔들던 영웅 조조도 이렇게 대담하지는 못했을 거다! 내가 상금으로 천 원, 고구마 천 개를 내지. 빨리 나오라고 해. 나오지 않으면 이 배를 불질러 버릴 거야! 들었어, 못 들었어? 이년들아, 빨리! 어르신네들 화나게 하지 말고. 등롱에 불 밝히면 못 찾을 줄 알아?"

그러자 따냥이 말했다.

"군인 양반, 우리들 몇 명끼리 놀아 보도록 해요. 다른 사람은 말고. ..."

"아냐! 아냐! 아냐! 늙은 창녀, 너는 안 건드려. 늙어서 피부가 쭈글쭈글하잖아! 어서 호궁 타는 녀석 불러와! 잡종 같은 녀석을! 나 혼자 호궁을 타고 혼자 노래를 부를 거야!"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뒷 선실로 가서 그를 찾아내려 하였다. 따냥은 덜컥 겁이 나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오치는 얼른 기지를 내어 그 병사의 손을 잡고 앞 선실로 안내했다. 그러자 그 병사는 그 뜻을 알아챈 듯 자리에 앉았다.

"좋아, 좋아. 어르신네께서 돈을 내지. 이 어른신네께선 오늘 밤 여기에서 잠자고 싶다! ...짐이 도화궁에서 취하도록 마셨는데, 거기 한쑤메이는 타고난 미모에..."

이 병사가 라오치의 왼편에 눕자, 다른 한 병사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오른편에 누웠다.

장부는 앞 선실이 잠시 조용해지자 벽 사이로 가만가만히 따냥을 불렀다. 일종의 모멸감에 젖어 있던 따냥은 맥없이 기어갔다. 장부는 무슨 영문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듯이 따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군발이들이 취했어, 미친 고양이처럼. 조금 있다가 간데."

"아무렴 가야지요. ! 알린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네요. 오늘 얼굴이 넓적하고 고관처럼 생긴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자기가 오늘밤에 올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 하던데요."

"발에는 큰 가죽신을 신고 있고, 목소리는 정을 치듯 우렁차던가?"

"맞아요, 맞아요. 손에는 큰 금반지를 끼고 있고요."

"그 사람이 라오치의 양부지. 그분이 오늘 아침에 다녀갔다고?"

". 오랫동안 저와 이야기하다 갔어요. 마른 밤을 들기도 하고요."

"무슨 말을 했다고?"

"오늘 밤에 꼭 올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술자리에 초대하겠다고 했어요."

따냥은 그가 무슨 일로 온다고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쉬빠오 자신이 여기에서 밤을 보내려고 그러는 걸까, 늙은이끼리 마주하여 눈독들이려고 그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를 일이었다.

일개 창녀로서 추잡한 말에는 이미 습관이 되어 제아무리 상스러운 말이라도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지만, 아까 "너같이 늙은 여자는 안 건드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상당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녀는 맥없이 앞 선실로 갔다. 그곳에서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합죽한 입을 벌려 'x같은 새끼들'이라는 외마디 욕설을 퍼붓더니 다시 뒤편 선실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나요?"

"아무 일도 없네."

"그렇다면 다들 돌아갔나요?"

"아무 일 없이 잠들 자고 있어."

"잠들었다고...?"

따냥은 이때 장부의 얼굴을 똑똑히 보진 못했지만, 그 어투로 보아 그 사람일 거라고 판단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제부, 시내 가기가 어려우면, 우리 강 언덕에 올라가서 놀아 보세. 오늘 밤 삼원궁에서 연극하는 데 고급좌석으로 모시지. 제목은 "치우후산이 머리 땋은 여자를 희롱하다"일세."

장부는 머리를 흔들 뿐 말이 없었다.

병사들이 한 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간 뒤에, 우둬, 따냥, 라오치는 함께 앞 선실의 등불 밑에 앉아 담소하며 그들이 치중에 부린 행태를 이야기하였다. 장부는 뒤편 선실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따냥이 문가에서 두 차례나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녀로선 그가 무엇 때문에 토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따냥은 고개를 돌려 병사들이 내놓은 지폐 네 장의 문양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지폐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폐는 가짜가 아니었다. 그녀는 등불 밑에서 라오치를 오라 하여 그 지폐의 기호며 문양을 보게 한 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더니 쇠기름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청진 정육점에서 거슬러 온 돈일 거라고 하였다.

우둬가 다시 뒤편 선실로 갔다.

"형부, 형부, 그 사람들 갔어요. 아까 그 노래 마저 해요. 그리고 다시..."

라오치는 무슨 심사에서인지, 우둬를 끌어내며 말문을 막았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장부는 뒤편 선실에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으로 호궁줄를 퉁겨 조그마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우둬의 청을 듣고는 줄에서 그만 손을 떼었다.

배 위에 머문 네 사람은 강변로에서 시끄럽게 들려 오는 징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강변로의 배우들은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 손님들이 찾아와 축하를 하며 큰 소리로 경사스런 구극의 노래를 합창해 주고 있었는데, 이러한 열기는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라오치는 혼자서 살금살금 뒤편 선실에 갔다가 곧장 되돌아 왔다. 분명히 화해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교섭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냥이 물었다.

"어찌 됐냐?"

라오치는 머리를 흔들며 외마디 탄식을 하였다.

"고집불통이에요. 가라고 하세요."

미리부터 쉬빠오는 안 오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따냥, 라오치, 우둬 세 사람은 장부만을 뒤편 선실에 남겨둔 채 앞 선실에서 잠을 잤다.

선박 순찰관이 한밤중에 쉬빠오의 안내를 받으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수면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강가엔 네 명의 순경이 완전무장을 한 채 뱃머리를 지키고 있었고, 쉬빠오는 순찰관과 함께 회중전등을 들고 앞 선실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때 따냥이 심지를 돋워 불을 밝혔다. 많은 경험에 비추어 별일 아닐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오치도 일어나 옷을 걸치고 침상에 앉아 '양부'를 부르고 '순찰관 나리'를 부른 뒤, 우둬더러 차를 대접토록 하였다. 우둬는 아직 단잠에 젖어 꿈속의 고향에서 3월의 딸기를 딸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요?"

쉬빠오가 대신 대답했다.

"라오치의 남편이오. 시골에서 아내를 보려고 왔지요."

라오치가 거들었다.

"순찰관님, 이인 어제 왔어요."

순찰관은 쉬빠오의 말을 거짓말이 아닌가 하고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장부와 라오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막무가내로 앞 선실로 가서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잘 익은 알밤 단지 쪽을 응시하자, 이를 지켜보던 쉬빠오가 부리나케 큰 밤을 한 웅큼 집어 순찰관의 제복 큰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순찰관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후에 그들은 다른 배로 갔다. 그리하여 따냥이 선창을 닫으려 하는데, 한 순경이 돌아와 순찰관의 말을 전했다.

"따냥, 따냥, 라오치에게 전해 줘요. 순찰관이 다시 찾아와서 그녀를 자세히 조사해 갈 거라고."

따냥이 말했다.

"곧 올 거라고요?"

"야간 순찰이 끝나는 대로 올 거요."

"그게 정말이오?"

"이 늙은 갈보야, 내가 언제 당신 같은 사람한테 거짓말한 적이 있어?"

따냥이 기뻐하는 모습은 장부에게 이상한 생각이 들게 했다. 왜냐하면 무슨 일로 순찰관이 다시 찾아와서 라오치를 조사해 가려는지 그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라오치가 잠에서 깨어난 모습을 보고 그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녀와 화해를 하여 같은 이부자리에서 집안일도 이야기하고, 일이 있으면 상의도 하고 싶어서 침상 가로 가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따냥은 장부의 심사와 욕망을 알아차리고는 그가 사리에 밝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라오치에게만 순찰관이 곧 올 것이라는 말을 알려 주려 했던 것이다.

라오치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멍한 채로 있었다.

 

장부는 자꾸만 몸을 일으키며 귀가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묵묵히 한 마디 말도 없이 신발을 단정히 신고 담배 주머니를 챙기고 있었다. 모든 것을 꾸린 뒤에 침상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할말이 있어도 입에서 나오질 않는 것 같았다.

라오치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젯밤 양부한테 대접을 못 받았으니, 오늘 그분 댁에 가서 식사를 하시는 게 어때요?"

"..."

그는 머리를 흔들 뿐 대답이 없었다.

"특별히 당신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대요! 음식은 쟁반 네 개, 접시 네 개에다 화로가 붙은 솥으로 준비했대요. 이만하면 푸짐할 텐데 설마 뿌리치시지는 않겠지요?"

"..."

"연극도 안 보실래요?"

"..."

"만텐홍이라는 기름만두가 곧 나올 거예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만두죠!"

"..."

그가 기어이 가려고 하자 라오치는 매우 난처했다. 뱃머리로 나와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짐보따리에서 어젯밤에 병사들이 주고 간 지폐를 꺼내 세어 본 뒤 그 중 네 장을 구겨서 장부의 왼손 안에 넣어 주었다. 그래도 말이 없자 라오치는 그 뜻을 알아챈 듯, 따냥에게서 지폐 세 장을 더 얻어서 이를 다시 세어 본 뒤 남자의 오른손 안에 쥐어 주었다.

장부는 고개를 저으며 지폐를 바닥에 뿌리고 나더니 어린아이가 기기묘묘하게 울음을 터뜨리듯 크고 거친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둬와 따냥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함께 뒤편 선실로 피신했다. 우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큰 사람이 울기도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정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배 뒤쪽에 서서 선실 천장에 걸려 있는 호궁을 잠시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왜 그런지 노래를 부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쉬빠오가 멀리서 온 손님을 술자리에 초대하러 배 위로 올라왔을 때는 따냥과 우둬만이 배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라오치 부부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알았다.

(1930413)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