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혼

이혼

魯迅(Lu Hsun)

 

", 무수!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여어, 빠싼! 복 많이 받으시오."

"네에네, 복많이 받으세요. 아이꾸도 함께로군..."

"아아, 무꾸꿍!"

짱무싼과 그의 딸 아이꾸가 목련교두에서 연락선에 오르자 배 안에서 한꺼번에 인사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 몇 사람은 손을 잡고 공손히 인사하기도 하였다. 곧 뱃전의 의자에 네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워졌다. 짱무싼은 인사를 나누면서 자리에 앉아 긴 담뱃대를 뱃전에 기대어 놓았다. 아이꾸는 그 왼쪽에 앉아서 갈고리같이 전족한 두 발을 빠싼의 정면에 여덟 팔 자 모양으로 쭉 뻗었다.

"무꿍꿍은 성내에 가시는 길인가요?"

게딱지 같은 얼굴을 한 사나이가 물었다.

"아아니."

무꿍꿍은 약간 기운이 없는 듯했지만, 원래 보랏빛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옆에서 보아서는 변화를 잘 모른다.

"잠깐 방장까지."

배 안에 말소리가 딱 그치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럼, 역시 아이꾸의 일로?"

잠시 후에 빠싼이 물었다.

", 그 일 때문에... 나도 이젠 진절머리가 나. 만 삼 년 동안이나 싸웠는데도 결말이 나지 않으니."

"이번에도 역시 웨이 나리 댁으로 가나요?"

", 그래. 그분께서도 우리들 일을 한두 번 말씀해 주신 게 아냐. 내가 승낙을 안 할 뿐이지. 아아, 그건 그렇고, 이번 정월엔 친척들의 모임이 있어서 성내의 치따런도 오신다고 하더군..."

"치따런이?"

빠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양반도 관여를 하시나요? , 그게... 사실 이쪽도 저쪽의 세간을 모두 때려 부수었으니,... 말하자면 한바탕 화풀이는 했다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아이꾸가 그쪽으로 돌아가면 그리

좋을 성싶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전 그곳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빠싼!"

아이꾸는 화가 나서 머리를 들고 말했다.

"전 기분이 나빠서 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그 짐승 같은 자식이 젊은 과부와 그런 관계를 가지고 나서, 저를 내쫓으려고 했으니 말예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짐승 같은 애비도 자식놈의 편을 들어서 저보고 나가라는 거예요. 지독하잖아요? 치따런이 어쨌다는 거예요? 설혹 지사님 하고 의형제라 하더라도, 인정을 저버릴 수는 없잖아요? 웨이 나리처럼 두 마디 째에 벌써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지 않겠지요. 전 이 몇 년 동안의 고생을 얘기하고, 어느 쪽이 잘못했는가를 치따런에게 물을 작정이에요."

빠싼은 설복되어서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철썩철썩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소리만 들릴 뿐, 배 안은 너무도 조용했다. 짱무싼은 손을 뻗어 담뱃대에 담배를 담았다.

건너편에 빠싼과 같이 앉아 있던 한 뚱뚱한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부시를 꺼내더니 부싯깃에 불을 붙여 대통으로 옮겨 주었다.

"고맙소."

무산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처음 만나뵙니다마는, 무수란 존함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뚱뚱한 사나이가 정중하게 말했다.

"이 바닷가의 삼륙은 십팔 개의 마을에서는 누구인들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스씨네 아들이 과부와 어울렸다는 이야기도 벌써부터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무수가 여섯 아들을 데리고 몰려가서 세간을 부숴 버렸을 때도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고 소문이 났었답니다. 당신께선 어떤 대관집에라도 거침없이 들어가실 수 있는 분이신데, 그런 놈들쯤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머나! 어쩌면 이렇게 사리가 밝으실까."

아이꾸는 기쁜 듯이 말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왕더꾸이라고 합니다."

그 뚱뚱한 사나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나를 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거예요. 치따런이든 빠따런이든 무섭지 않아요. 아무튼 그 자식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도록 해줄 테니까. 웨이 나리는 네 번씩이나 절 달래려고 했어요. 아버지만 하더라도 위자료를 보더니, 눈이 뒤집혀서 머리가 멍해지셨단 말씀이야..."

"무슨 바보 같은..."

무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문에는 작년 연말에 스씨네 측에서 웨이 나리에게 술대접을 했다던데...그렇지요, 빠꿍꿍?"

하고 게딱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하고 왕더꾸이가 말했다.

"술대접으로 사람을 현혹시킬 수는 없어. 술대접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면, 외국 음식을 보내면 어떻게 되겠어? 학문을 해서 도리를 안다는 분들은 공평한 판단을 내리시는 법이야. 가령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할 때, 거기에 나타나서 공평하게 판단을 내려 주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란 말이야. 한잔 먹였다든가, 먹이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은 관계없는 일이야. 작년 말에 우리 마을의 룽나리가 북경에서 돌아오셨는데, 아무래도 중앙 무대에서 좌지우지한 양반은 우리들 같은 촌놈들과는 다르더군, 아무튼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그곳에서 최고의 인물이라면 꽝타이타이라는데, 이것이 또..."

"왕가회두의 손님들은 내리시오!"

사공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배는 벌써 멈추려 하고 있었다.

"내리지, 내리겠네."

뚱뚱한 사나이는 곧 담뱃대를 움켜쥐고 뱃머리 쪽으로 뛰어내리며, 배가 가는 방향으로 둔덕의 땅을 밟았다.

", 안녕!"

하고 그는 배 안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배는 다시 조용히 전진을 계속했다. 물소리가 또 철썩철썩 들려 왔다. 빠싼은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고, 언제부턴지 맞은편의 전족한 발을 향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뱃머리의 선실에 있는 두 노파는 작은 소리로 염불을 외고 있었다. 그들은 염주 알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이꾸를 바라보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꾸는 눈을 뜨고 배 천장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그들의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짐승 같은 애비''짐승 같은 자식'을 몰아세울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웨이 나리는 그녀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두 번 만나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땅딸보에 네모 머리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은 우리 동네에도 지천으로 많다. 하긴 그들의 얼굴이 좀 더 검긴 하지만.

짱무싼은 담배가 다 타서 불이 대통 밑바닥으로 내려가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그는 왕가회두만 지나면, 다음은 방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마을의 동구에 있는 괴성각도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방장엔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웨이 나리의 댁에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딸이 울면서 돌아왔던 일, 사돈집과 사위가 벌인 가증스러운 여러 가지 일들, 그 뒤 그들로부터 얼마나 피해를 당했는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지나간 일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돈집 일가를 괴롭혀 준 일을 생각하자 언제나처럼 빙그레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왠지 별안간 뚱뚱하게 살진 치따런이 앞을 가로막고 그의 뇌리에 그려져 있는 광경을 교란하고 있는 듯했다.

배는 계속해서 조용한 가운데 전진하고 있었다. 염불을 외는 소리만이 한층 더 켜졌을 뿐,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무수와 아이꾸와 같이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했다.

"무수, 내리세요. 방장에 다 왔습니다."

무수의 일행은 사공의 소리에 제정신이 들었다. 괴성각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는 둔덕으로 뛰어내렸다. 이이꾸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괴성각 밑을 지나서 웨이 나리의 집 쪽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서른 채의 집을 지나서 모퉁이를 한 번 도니 바로 거기였다. 문 쪽에 네 척의 검고 작은 배가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검은 칠을 한 바깥문에 들어서자 하인이 그들을 문간방으로 안내했다. 문 안쪽에는 두 개의 탁자를 중심으로 사공과 단골 인부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아이꾸는 그쪽으로 보기가 창피해서 힐끗 시선을 던졌을 뿐이었지만, '짐승 같은 애비''짐승 같은 자식'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인이 넨까오탕(떡국과 같은 음식)을 가져왔을 때, 아이꾸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점점 더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지사 나리하고 의형제인지는 몰라도 인정이 없지는 않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학문을 하고 도리를 아는 사람이니 공평한 판단을 내리겠지. 자세하게 치따런에게 말해야겠다.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시집을 와서, 아내가 되고부터...'

넨까오탕을 다 먹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얼마 안가서 하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하인의 뒤를 따라서, 대청을 거쳐 또 한 번 꺾은 후에 드디어 객실의 문지방을 넘어섰다. 객실에는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많은 손님들이 있었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빨갛고 검은 두꺼운 비단의 마고자만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처음 눈에 띈 사나이, 그가 치따런이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역시 두루뭉실하게 생겼지만, 웨이 나리보다는 훨씬 당당한 풍채였다. 커다랗고 둥근 얼굴에 가느다란 눈과 새까맣고 가는 수염을 가진 그는 머리 꼭대기가 벗겨진 대머리였으나, 그 머리와 얼굴은 혈색이 좋아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아이꾸에게는 몹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곧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건 틀림없이 돼지기름을 바른 것이라고.

"이건 피싸이란 물건이라네. 옛사람들이 염을 할 때 항문에 꽂았던 거야."

치따런은 부싯돌 비슷한 것을 손에 들고서 설명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코끝에다 두어 번 비비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깝게도 새로 나온 거야. 못 살 것도 없지. 이건 적어도 한나라 때 것일 거야. 자아, 이 반점이 수은침(금과 옥의 부식을 막기 위해 수장품에 입혔던 수은의 흔적)이야. 썩지 않게 하느라고..."

수은침의 주위에 몇 사람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한 사람은 물론 웨이 나리였고, 그 밖에 젊은이들도 몇 사람 있었다. 단지 위세에 눌려 배고픈 빈대처럼 납작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아이꾸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야기의 뒷부분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던지라 그사이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뒤, 입구 쪽 벽에 '짐승 같은 애비''짐승 같은 아들'이 바짝 붙어 서 있는 게 보였다. 흘끗 보았지만 반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때보다는 둘 다 확실히 늙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사람들은 수은침의 주위에서 물러났다. 웨이 나리는 피싸이를 받아 쥐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짱무싼 쪽으로 얼굴을 돌려서 말을 걸었다.

"자네들 둘뿐인가?"

"네에."

"자네 아들들은 하나도 안 왔나?"

"짬이 없어서요."

"실은 말이야, 정월부터 자네들에게 오라고 해서 좀 안됐지만 그 얘기 때문에 말이야... 어떤가? 자네들도 이쯤에서 결말을 짓는 거이. 벌써 두 해나 지나지 않았나? 원한은 풀어야지 맺을 것이 아니야. 아이꾸는 남편과 맞지도 않고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마음에도 안 든다니까 전에도 말했듯이 아무래도 헤어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아무래도 둘을 잘 아니까 결단을 내리기가 좀 힘들지만, 치따런은 자네들도 알다시피 공평한 판단을 내리시는 분이지 않은가? 그 치따런이 현재 나와 의견이 같아. 다만 치따런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에에, 양쪽 모두 재난이라고 생각하고 스씨네에서 10원을 더 내서 90원으로 하라고 말이야."

"..."

"90원이야 90! 자네들이 설령 고소를 해서 황제님에게까지 소송이 올라간다 해도 이렇게 근사하게는 처리가 안 될 거야. 치따런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거란 말이다."

치따런이 실눈을 뜨고 짱무싼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꾸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끼고 불안해졌다. 평소에 바닷가 주민들로부터는 인정을 받고도 남는 자신의 아버지가 여기에서는 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지 이상할 따름이었다. 그런 겸손은 필요치 않은 게 아닌가? 그녀는 치따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말뜻은 잘 몰랐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고, 사실은 너그럽고 좋은 분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이유 없이 들었다.

"치따런께서는 도리를 분별할 줄 아시는 분이기에..."

그녀는 말이 술술 나왔다.

"저희들 촌사람들과는 달라서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원한이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으니, 아무쪼록 치따런께 충분한 말씀을 사뢰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시집온 뒤로 자나 깨나 머리를 계속 숙이고 있었고, 예의를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랬음에도 저들은 저의 모든 것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왔습니다. 언젠가 족제비가 제일 큰 수탉을 물어 죽었을 때만 해도 제가 문단속을 잊어버렸다고들 했는데,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저주받을 삽살개가 술 찌꺼기가 든 먹이를 훔쳐먹으러 와서 닭장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 '짐승 같은 자식'은 흑백을 가려 보지도 않고 느닷없이 제 뺨을 때렸습니다."

치따런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끗 그녀를 보았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까닭을요. 그거야 치따런께서도 거울 보듯 다 알고 계실 겁니다. 학문을 하시고 도리를 아시는 분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무엇이든 알고 계시니까요. 그 화냥년한테 속아서 저를 내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육례를 갖추어 정식으로 시집왔습니다. 꽃가마를 타고요.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저 사람들 눈앞에서 꼭 앙갚음을 하고야 말겠습니다. 관가에 진정서라도 올리겠습니다. 현청에서 안 된다면 부청도 있지요."

"그런 것은 치따런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

웨이 나리가 얼굴을 들고 말했다.

"아이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득 될 것이 없어. 자네는 언제나 그렇단 말이야. 아버지를 보고 좀 말해 봐.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구. 너와 네 형제만 모르고 있는 거야. 관가에 진정서를 내고 부청으로 가 봐라. 관가에선 치따런에게 상담하게끔 되어 있어. 그것이 바로 재판이지. 그러면 자네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면 목숨을 걸고 해보겠습니다. 누구든 모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목숨을 걸 것까지는 없다."

이때 치따런이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젊은 몸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웃으면서 살아야지. 웃는 집에 만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더냐? 그렇지? 나는 한 번에 껑충 10원을 올려 줬다. 이것만 해도 일찍이 없었던 파격이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시아버지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뭐. 부청은 물론이고, 상해, 북경, 그리고 외국이라 할지라도 다 그렇다. 정 의심이 나거든 저기 북경의 서양 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엊그제 온 사람이 있으니 물어봐라."

그러고는 턱이 뾰족한 청년에게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어떤가?"

"말씀하시는 바가 지당합니다."

턱이 뾰족한 청년은 서둘러 몸가짐을 바르게 잡으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이꾸는 자신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버지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형제들은 와 주지도 않았다. 웨이 나리는 원래가 상대편이다. 치따런도 믿을 것이 못 된다. 턱이 뾰족한 청년까지 굶은 빈대처럼 납작 붙어서 장단을 치고 있으니. 그러나 그녀는 머릿속이 멍한 가운데에서도 또다시 최후의 분투를 시도해 보리라 결심한 듯싶었다.

"어찌해서 치따런께서도..."

그녀의 눈에는 회의와 실망의 빛이 용솟음쳤다.

", 그렇지요... 알고 있어요. 우리들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버지만 해도 세상의 의리도 인정도 모르고 계시니, 이런 아버지 역시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짐승 같은 애비''짐승 같은 자식'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군요. 저것들은 마치 무슨 장례식을 알리러 갈 때처럼 남모르게 뒷문으로 기어들어서 입으로는 말만 번지르르하니..."

"치따런, 보십시오!"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짐승 같은 자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치따런의 앞에서까지 이 모양입니다. 이러니 집에 있을 때는 닭이나 돼지까지도 기를 못 펴고 지내는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가리켜 '짐승 같은 애비', 저를 가리켜서는 '짐승 같은 자식'이라든가 '후레자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여자가 화냥년 같으니까 너를 사생아라고 부르는 게 아냐?"

아이꾸는 얼굴을 휙 돌려서 큰 소리로 치따런을 향하여 외쳐댔다.

"여러분들이 있는 앞에서 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 작자가 어째서 그럴듯한 말을 해대는지 모르겠네요. 입만 열면 '천박한 종자', '네 에미'니 하던 사람이! 저 작자는 그 화냥년과 붙으면서 저의 조상까지 들먹이며 악담을 했습니다. 치따런, 아무쪼록 제 말씀을 들어 주세요. 제가 이런..."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별안간 치따런이 눈을 치뜨고 둥근 얼굴을 뒤로 젖혔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가늘고 긴 수염으로 둘러싸인 입에서 엄청나게 크고 길게 끄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리 오너라앗!"

그녀는 순간 심장이 정지한 것이 아닌가 했다. 뒤이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대세는 벌써 기울었고 사태는 이미 바뀐 것 같았다. 발을 헛디뎌 물 속으로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은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곧 남색 솜옷에 검은 조끼를 입은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는 치따런 앞에 손을 늘어뜨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나무토막처럼 우뚝 섰다.

객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치따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 사나이만은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 명령의 위력이 그의 뼛속까지 꿰뚫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오싹하고 일어날 것' 같은 동작으로 부르르 몸을 떨더니만 곧 대답했다.

"네엣!"

그는 두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서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아이꾸는 드디어 생각도 못 할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상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에야 비로소 치따런의 위력을 알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든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처럼 방자하고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던 것이다. 몹시 후회가 되었던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는 처음부터 치따런의 말씀대로 하려고..."

객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기 때문에 그녀의 혼잣말은 실처럼 가냘픈 것이긴 해도 웨이 나리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치따런은 공평한 분이고, 아이꾸는 이해성이 빠르니..."

그는 칭찬을 하면서 짱무싼을 향해 말을 이었다.

"라오무, 이렇게 되면 자네도 무슨 할말이 없겠지? 본인은 벌써 승낙했으니까 말야. 그런데 자네 그 결혼증명서인 홍뤼테는 틀림없이 가지고 왔겠지? 내가 그렇게 일러두었으니. 그러면, 쌍방에서 서로 내놓고..."

아이꾸는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서류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나무토막 같은 사나이가 들어와서 조그마한 거북 모양의 새까맣고 납작한 것을 치따런에게 건넸다. 아이꾸는 무슨 변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당황해서 짱무싼을 쳐다보았다. 그는 벌써 테이블 위에 푸른 꾸러미를 펼쳐 놓고 돈을 꺼내고 있었다.

치따런은 거북의 머리 부분을 빼고 그 몸통 안에서 무언가를 손바닥에 다 조금 쏟았다. 나무토막 같은 사나이가 그 납작한 것을 받아 가지고 사라졌다. 치따런은 곧 한 쪽 손의 손가락을 손바닥에 대고 그것(냄새를 맡는 담배)을 자기 콧속에 넣었다. 콧구멍과 코밑이 금방 노랗게 되었다. 그는 콧등에 주름을 잡고 재채기를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짱무싼은 돈을 세고 있었다. 웨이 나리는 아직 세지 않은 돈무더기에서 얼마 가량 덜어서 '짐승 같은 애비'에게 주었다. 그리고 두 장의 홍뤼테를 교환해서 쌍방에게 밀어 주면서 말했다.

"자아 넣어 두게나. 라오무, 잘 세란 말야. 이건 장난이 아니니까. 돈에 대한 것은..."

"엣취이!"

재채기하고 소리가 났다. 치따런이 재채기를 한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꾸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닌게아니라, 치따런은 입을 벌리고 여전히 콧등에 주름을 잡고 있었다.

한쪽 손의 두 손가락으로 어떤 물건을 쥐고 있었는데, 그것은 옛사람들이 염하고 입관할 때 항문을 막는 용도로 사용한다던 아까의 그 피싸이였다. 그는 그것을 코 언저리에 대고 문지르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짱무싼은 돈을 다 세었다. 양쪽 모두 홍뤼테를 넣었다. 모든 사람이 다 허리뼈가 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지금까지 긴장했던 표정이 누그러졌다. 객실 전체에 갑자기 온화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제야 겨우 끝났군."

웨이 나리는 그들 양쪽이 모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아, 그러면 이젠 더 볼일이 없지? 축하하네. 축하해! 이제야 문제가 풀렸군. 자네들, 벌써 가려는가? 잠깐 머물게나. 우리 집에서 새해 복주나 한 잔 하고 가게.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인데 말일세."

"저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놓아 두었다가 내년에 마시도록 하지요."

아이꾸가 말했다.

"웨이 나리,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직 볼일이 좀 있어서요..."

짱무싼과 '짐승 같은 애비', '짐승 같은 자식'이 저마다 한 마디씩하고 물러났다.

", 어째 그러나? 좀 마시고 가도 될 터인데..."

웨이 나리는 맨 나중에 나가는 아이꾸를 쳐다보면서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이만 실례합니다. 고맙습니다. 웨이 나리."

(1925116)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