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정전
魯迅(Lu Hsun)
서(序)
내가 아큐(阿Q)의 전기를 써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줄곧 망설였던 것은, 나 자신이 후세에 길이 전해 줄 만한 글을 쓸 위인이 못 되는 까닭도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가 문장의 제목이다. 열전(列傳), 자전(自傳), 별전(別傳), 가전(家傳), 본전(本傳) 등 전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 적합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큐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위인은 아니었으니 열전이라 할 수는 없다. 또 내가 아큐 자신이 아니니 자전이랄 수도 없다. 또 내가 아큐하고 종씨인지 아닌지도 모를뿐더러 그의 자손에게서 부탁받은 일도 없으니 가전도 아니었다. 결국 이 문장은 '본전'으로밖에는 분류할 수 없겠지만, 내 문장을 생각해 보면 ‘손수레꾼이나 장돌뱅이 따위’가 쓰는 비천한 말씨여서 감히 ‘본전입네’ 하고 내세울 수도 없다. 그렇다면 소설가들이 흔히 쓰는‘잡담은 그만두고 정전(正傳)으로 돌아가서(본론으로 들어가서)’라는 말에서‘정전’두 자를 빌려다가 제목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둘째는 전기를 쓰자면 대체로 첫머리에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지방 사람이다.’라고 써야 하는데, 나는 아큐의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로, 나는 아큐의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른다.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그를 아큐라고 불렀지만, 죽은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자오 영감의 아들인 수재(秀才, 원래는 과거 시험 과목 중의 하나인 과학의 명칭이지만, 여기서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일컬음) 선생에게 여쭈어본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박학다식한 사람조차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큐의 이름을 쓰기 위해 ‘서양 글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유행하는 철자법을 따라 아Quei라 하고, 쓸 때는 줄여서 아Q로 하려는 것이다.
넷째로, 아큐의 본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웨이좡에서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따금 다른 곳에서도 살았으니 반드시 웨이좡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1장 승리의 기록
아큐는 이름이나 본적만 모호한 게 아니라, 웨이좡에 오기 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일손이 필요할 때나 곯려 줄 때만 아큐를 생각할 뿐 다른 때는 관심도 없었다. 아큐는 집도 없이 마을에 있는 투구츠〔土谷祠, 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골의 사당〕 안에서 살았다. 게다가 고정된 일거리도 없이,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면 아큐를 생각하지만, 한가해지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아큐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웨이좡 사람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웨이좡에 딱 두 사람밖에 없는 문동(文童, 과거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직 수재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에게까지도 웃어 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형편이었다. 아큐의 말대로 하면, 옛날에 그는 ‘잘 살았고 학식도 높았으며 못 하는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그에게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흠이 있었다. 그의 머리 몇 군데가 부스럼 자국으로 꽤 크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벗겨지다’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빛나다’라는 말도, ‘밝다’라는 말도 싫어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등불’이나 ‘촛불’ 같은 말까지도 금기(꺼리어서 싫어하거나 금함)로 했다. 그리하여 그 금기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아큐는 그 부스럼 자국이 시뻘개지도록 화를 냈다. 상대에게 욕을 퍼부으며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아큐는 혼을 내주려고 덤벼들었다가 되레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아큐는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동네 건달들은 아큐를 볼 때마다 “야아, 반짝반짝해졌는걸! 이제 보니 등잔이 여기 있었군.” 하고, 그의 머리를 쿵쿵 쥐어박곤 했다. 그들은 아큐가 단단히 혼쭐이 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큐는 십 초도 안 되어서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해졌다. 자신을 짐짓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건달들은 결국 벌레를 곯려 준 꼴이 되는 것이니까.
‘네놈 따위가 뭐야. 나는 버러지야, 버러지라구.’
아큐는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자신을 경멸한다는 말을 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첫 번째’는 좋은 것이었다. 이렇게 묘한 방법으로 승리를 하고 나면 아큐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제2장 우승(優勝)의 기록(記錄)
아큐(阿Q)는 성명과 본적이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적(行跡)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 하면 미장 사람들의 아큐에 대한 관심은 다만 그에게 일을 부탁할 때나, 그를 두고 농담할 때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그의 '행적'엔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큐 자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과 말다툼할 때 이따금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도 그전에는……네까짓 놈보다는 훨씬 더 잘 살았어! 네 따위가 무어야!"
아큐는 집도 없이 미장(未莊)의 사당(祠堂) 안에 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다만 날품팔이를 하면서, 보리를 베라면 보리를 베고, 쌀을 찧으라면 쌀을 찧고, 배를 저으라면 배를 젓기도 했다. 일이 좀 오래 걸릴 때는 임시로 주인집에서 묵기도 했으나 끝나면 곧 돌아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바쁠 때에는 아큐를 생각해 내나, 그것도 시킬 일이 있을 때뿐이지 그의 '행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가해지면 아큐라는 존재조차도 잊어버리는 판국이니 '행적'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꼭 한 번 어느 노인이, "아큐는 정말 일꾼이야!"하며 칭찬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아큐는 온통 옷을 벗은 채로 멋 적은 듯이 말라빠진 풍채로 그 노인 앞에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이 진심인지 빈정거림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아큐는 대단히 기뻐했다.
아큐는 또한 자존심이 강했다. 미장 주민들은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았고 심지어 두 분의 '글방도련님'에 대해서까지도 일소(一笑)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무릇 '글방도련님'이란 장래 수재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趙) 나으리와 전(錢) 나으리가 주민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도, 돈이 많다는 것 이외에 두 사람 모두 '글방도련님'의 아버지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독 아큐는 마음속으로 특별히 존경한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었다면 더 훌륭했을 거야!'하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몇 번 성 안으로 들락거렸던 일은 자연 그의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성 안 사람들까지도 퍽 경멸하였다. 예컨대, 길이 석 자, 폭 세 치의 널빤지로 만든 걸상을 미장에서는 '장등(長 )'이라고 부르며, 그도 '장등'이라고 불렀는데 성 안의 사람들은 '조등(條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틀린 것이며 가소로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도미를 튀길 때 미장에서는 모두 반 치 길이의 파를 얹는데 성 안에서는 잘게 썬 파를 얹는다. 이것도 틀린 것이며 가소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장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가소로운 시골뜨기들로 그들은 성 안의 생선 튀김은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아큐가 '옛날에는 잘 살았고', 견식도 높고, 게다가 '정말 일꾼'이니 본래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만하지만, 가련하게도 그에겐 약간의 체질상의 결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놀림을 받는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큐의 생각에도 비록 그의 몸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곧 '부스럼'이라는 말뿐 아니라, '부스럼 자국'과 비슷한 발음의 말조차 꺼려했으며, 그것이 점점 더 확대되어 '빛나다[光]'라는 말도, '밝다[亮]'라는 말도 금기로 삼았고 더 나아가서 '등불'이라던가 '촛불'이라는 말까지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그 금기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고의든 아니든 아큐는 부스럼 자국까지 벌겋게 하며 화를 내었다. 상대를 어림쳐 봐서 말솜씨가 좋지 않은 놈이면 매도(罵倒)하고, 기운이 약한 놈이면 두들겨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대체로 아큐가 당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아큐가 '노려보기주의(主義)'를 채택한 뒤로 미장의 건달들은 더욱더 그를 놀려대는 것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짐짓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구, 밝아졌다!"
아큐는 틀림없이 성을 내고 노려본다.
"여기 원래 보안등이 있었군 그래."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큐는 할 수 없이, 따로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네깐 놈들과는 상대도 안 돼……."
이 때 그는 마치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 자국이지, 평범한 부스럼 자국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큐는 견식이 높은 사람이므로 '금기(禁忌)'에 조금 저촉된다는 걸 알고서 그만 말을 잇지 않는 것이었다.
건달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계속 놀려대어 마침내 치고받는 싸움이 된다. 그러나 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한다. 놈들에게 노란 변발을 나꿔채이고, 벽에 퍽퍽 너댓 번 머리를 처박힌다. 건달들은 그러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간다. 아큐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내가 자식 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어…….'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해 가버린다.
아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말해 버린다. 그래서 아큐를 곯려 주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일종의 정신적 승리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놈들이 그의 노란 변발을 나꿔챌 때는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큐! 이것은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큐는 양손으로 변발한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꼬며 말하는 것이었다.
"벌레를 치는 거야! 됐어? 나는 벌레야. ― 이래도 놓지 않겠어?"
벌레라고 했건만 건달들은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가까운 데를 골라 퍽퍽 대여섯 번 머리를 처박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아큐도 혼이 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큐도 역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제1인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경멸할 수 있다.'는 말을 생략하면 남는 것은 '제1인자'라는 말이다. 장원(壯元)이라면 '제1인자'가 아닌가?
"네 까짓 것들이 다 뭐냐?"
아큐는 이러한 갖가지 묘수로 원수들을 굴복시킨 다음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서 술을 몇 잔 마시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한바탕 놀림을 당하거나, 입씨름을 하다가, 또 이기고 나서,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가면 머리를 쑤셔박고 자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돈이 있으면 그는 도박을 하러 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큐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가운데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기를 거는 소리 중에서도 가장 컸다.
"청룡(靑龍)에 사백!"
"자…… 엽니다. ……엇차!"
물주가 상자 뚜껑을 연다. 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읊어대는 것이었다.
"천문(天門)이로다……. 각(角)은 비기고, 인(人)과 천당(穿堂)은 졌다. ……아큐의 돈은 내가 먹었어……."
"천당에 백……백 오십!"
아큐의 돈은 이런 노랫가락을 타고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사람의 허리춤으로 점점 흘러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사람들에게서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뒷전에 서서 남들의 승부에 마음을 졸이며 끝까지 노름판을 지켜본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아쉬운 듯 사당으로 돌아간다. 다음날은 눈이 퉁퉁 부어 일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 만사(人間萬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아큐는 불행히도 딱 한 번 이기고는, 계속해서 실패했던 것이다.
그 날은 미장에서 마을 축제를 지내던 날 밤이었다. 이 날만은 관례대로 무대를 차리고, 무대 주위엔 으레 많은 도박판이 벌어졌다. 연극 무대의 꽹과리 소리와 북 소리도 아큐의 귀에는 십 리 밖 먼 데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레겐 물주의 노랫가락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따고 또 땄다. 동전이 은전이 되고 작은 은전이 큰 은전이 되었다. 큰 은전이 쌓이고 쌓였다. 그는 매우 신바람이 났다.
"천문(天門)에 두 냥!"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욕하는 소리 때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이 한바탕 벌어졌다. 그가 간신히 기어 나왔을 땐 노름판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몸의 몇 군데가 아픈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얻어맞기도 하고 발길질을 당한 것 같기도 했다. 몇 사람이 그를 이상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사당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그의 은화 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날에 벌어지는 노름판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그것을 찾겠는가?
새하얗게 번쩍번쩍 빛나는 은화 더미! 더구나 그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다. 자식 놈이 가져간 셈 쳐 보아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도 이번만은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이…… 비록 아직도 얼얼하지만…… 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
제3장 속(續) 승리의 기록
어느 해 봄날, 아큐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길을 가고 있었다. 이 때 담장 밑에서 왕털보가 벌거벗은 채 이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털보는 부스럼 자국으로 머리가 벗겨진 데다 털북숭이여서 모두 왕대머리 털보라고 불렀다. 왕털보는 이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계속 잡아서 입에다 넣고 툭툭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
아큐는 왕털보가 이 잡는 것을 보자, 갑자기 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다 떨어진 겹저고리를 벗어들고 들춰보았다. 새로 빤 옷이라 그런지, 아니면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서너 마리 잡을 수 있었다. 아큐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었다. 자기가 깔보는 왕털보는 저렇게 많이 잡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적게 잡다니, 이것은 얼마나 체통을 잃는 일인가. 아큐는 잡은 이를 입에 넣어 용을 쓰며 깨물었다. 그러자 픽 하고 소리가 났다. 깨무는 소리조차 왕털보 소리에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큐의 부스럼 자국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옷을 땅바닥에 냅다 팽개치면서 침을 바닥에다 탁 뱉었다.
“이 털버러지 같은 놈.”
“문둥이 개 같은 놈, 누구한테 욕이야!”
왕털보가 눈을 치뜨고 말했다. 이런 털북숭이가 감히 함부로 지껄여? 아큐는 상대가 항상 얻어맞는 건달패들이라면 겁을 집어먹었겠지만, 왕털보쯤이야 못 당할까 싶어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네놈한테지.”
“너, 몸뚱이가 근질거리나 보구나?”
왕털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으면서 말했다. 아큐는 그가 꽁무니를 빼려는 줄 알고 잽싸게 달려들어 한 대 치려했다. 그런데 아큐의 주먹이 미처 왕털보에게 닿기도 전에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다. 아큐는 곧 왕털보에게 변발(만주인의 풍습으로, 남자가 12∼13세가 되면 머리 뒷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을 깎아 뒤로 길게 땋아 늘인 머리)을 낚아채인 채 담장 앞으로 끌려가 머리를 처박히고 말았다.
아큐의 기억으론 아마도 이것이 평생에 있어 가장 큰 굴욕 같았다. 왕털보는 털북숭이라 자신이 늘 비웃어 주었는데, 도리어 그에게 손찌검을 당했으니 말이다. 아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아큐가 제일 미워하는 첸 영감의 큰아들이 걸어왔다. 그는 도시에 있는 서양 학교에 들어갔다가 반 년 뒤에 돌아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걸음걸이도 변하고 변발도 없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열 번도 더 통곡을 했고, 여편네는 세 차례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를 볼 때마다 아큐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변발이 없으니 사람 노릇할 자격도 없으며, 그의 여편네도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았으니 정숙한 여자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중대가리, 나귀…….”
아큐는 그 동안 속으로만 이렇게 욕을 했지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가 끓어 누구라도 붙들고 앙갚음을 해야 하던 참이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자 이 중대가리가 노랗게 칠한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아큐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큐는 딱 하는 소리가 자기 머리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애한테 말했는데!”
아큐는 곁에 있던 한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아큐의 생애에 있어 두 번째로 큰 굴욕이었다. 아큐는 천천히 걸었다. 선술집 문턱에 당도하니 망각이라는 보물이 효력을 발휘하여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앞쪽에서 정수암에 있는 젊은 여승이 걸어왔다. 평소에도 아큐는 여승을 보면 욕을 해댔는데, 하물며 굴욕을 당한 지금이야! 그는 굴욕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마음속에서 적개심이 일었다.
‘오늘은 왜 이리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너를 보려고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큐는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가 나게 침을 뱉었다. 젊은 여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걷기만 했다. 아큐는 여승 옆으로 다가가서 새로 깎은 여승의 머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헤벌쭉 웃었다.
“아이고머니나, 이런 무례가…….”
여승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종종걸음을 쳤다. 선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와 하고 웃어 댔다. 아큐는 더욱더 신이 났다. 그래서 그 구경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힘을 주어 꼬집어 버렸다. 이 한 판의 승리로 아큐는 왕털보 일도, 가짜 양놈 일도 깨끗이 잊어버렸다. 오늘 생겼던 재수 없는 일이 모두 앙갚음된 것 같았다.
“이 씨도 못 받을 아큐 놈아!”
멀리서 젊은 여승이 울먹이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4장 사랑의 비극
아큐는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투구츠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날 밤, 밤새도록 눈도 붙이지 못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보통 때보다 매끄러운 것 같았다. 젊은 여승의 얼굴의 매끄러움이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는지도 몰랐다.
“씨도 못 받을 아큐 놈!”
하던 젊은 여승의 목소리가 아큐의 귓속에서 다시 울렸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여자가 있어야 한다. 자식이 없으면 밥 한 그릇도 공양 받지 못할 테니까.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의 가장 큰 비애다. 여자, 여자, 여자!’
그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적잖이 달떴다. 누가 알았으랴! 바야흐로 이립(30세)의 나이에 젊은 여승 때문에 마음이 달떠 버릴 줄이야. 그는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 즉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승은 자기를 보고 웃지도 않았고, 수상한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큐는 여승에게 유혹당하고 말았다. 아, 이것은 여자가 나쁘다는 증거 중 하나가 분명했다.
다음날 아큐는 자오 영감 댁에서 하루 종일 방아를 찧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 때, 설거지를 끝낸 자오 댁의 하녀 우 씨 아줌마가 아큐에게 말을 걸었다.
“마님이 이틀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 영감님이 첩을 사 오신 뒤로…….”
‘여자……, 우 씨 아줌마……, 청상과부……, 여자…….’
아큐는 담뱃대를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자!”
하고 아큐는 별안간 우씨 아줌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우씨 아줌마는 ‘어머나!’ 하고 질겁을 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아큐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꿇어앉아 있었다. 바로 그 때, 딱 소리가 나더니 머리가 어찔해져 왔다. 뒤를 돌아보니, 수재가 굵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못된 놈! 감히…….”
수재는 굵은 대막대기로 아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문 밖으로 달아났다.
“염치없는 놈!”
하고, 수재가 뒤에서 욕을 했다. 아큐는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몹시 욱신거렸다. ‘염치없는 놈’이라고 하던 수재의 말이 귀에 쟁쟁했다. 아큐는 마음이 꺼림칙했지만 곧 쌀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 소리는 안뜰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 곳에는 자오 씨 댁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틀 동안 식사도 안 했다는 마님까지 끼어 있었다. 게다가 이웃의 쩌우치 댁과 자오바이옌, 자오쓰천도 있었다. 마침 작은 마님이 우 씨 아줌마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밖으로 나와. 네가 정숙하다는 걸 누가 몰라. 절대로 소견 좁은 짓을 하면 안 돼.”
우씨 아줌마는 손을 잡힌 채 끌려 나와서는 울기만 했다.
‘흥, 재미있는걸. 이 청상과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아큐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재가 아까처럼 대막대기를 든 채 그에게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자기와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휙 돌려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뒷문으로 빠져 나와 단숨에 투구츠로 돌아왔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온 몸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다. 봄이라 해도 밤에는 아직 꽤 쌀쌀했다. 그제서야 저고리를 자오 씨 댁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가지러 가자니 수재의 대막대기가 너무 무서웠다.
“아큐, 개 같은 자식! 자오 씨 댁 하녀까지 희롱하다니! 나까지 잠도 못 자게 됐잖아.”
하며, 그 때 자오씨 댁 하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인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으나 아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밤에 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하인에게 술값을 물어야 했다. 아큐에게는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모자를 전당포에 잡혔다. 그러고도 다섯 가지 조항에 서약까지 했다.
1. 내일 붉은 초 한 쌍, 향 한 봉을 가지고 자오 씨 댁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
2. 자오 씨 댁에서 무당을 불러, 목을 매어 죽게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데 그 비용은 아큐가 전담한다.
3. 이후로 아큐는 자오 씨 댁 문턱도 밟을 수 없다.
4. 이후에 우 씨 아줌마에게 다른 일이 생기면 책임을 아큐에게 묻는다.
5. 아큐는 품삯과 저고리를 찾아갈 수 없다.
제5장 생계 문제
아큐는 사죄 절차를 끝낸 뒤, 예전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이 날부터 마을 여자들은 아큐를 보기만 하면 문 안으로 숨어 버렸다. 심지어는 쉰 살에 가까운 쩌우치 댁까지도 남들을 따라서 숨어 버렸다. 게다가 열한 살밖에 안 된 계집애까지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아큐는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술집에서는 외상술을 주려 하지 않았다. 또 며칠 동안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외상 술을 주지 않는 것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없게 되면 아큐는 배를 곯아야 했다. 이것은 확실히 ‘개 같은 놈’의 일이었다.
자오 씨 댁에서는 샤오디를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 샤오디란 놈은 말라 빠져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놈이 자기 밥줄을 끊으려 한다고 생각하니, 아큐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며칠 후, 아큐는 첸 영감 댁 담장 앞에서 우연히 샤오디를 만났다. 아큐는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짐승 같은 놈!”
아큐는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렸다. 입에서 침이 튀어나왔다.
“나는 버러지야. 이러면 됐지.”
샤오디가 말했다. 아큐는 샤오디의 이러한 겸손이 도리어 비위가 상했다. 당장에 덤벼들어 샤오디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샤오디는 한 손으로는 자기 머리채 밑을 감아 쥐고, 또 한 손으로는 아큐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옛날에는 샤오디 같은 것은 어림도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요즈음 잔뜩 굶주린 아큐는 샤오디 못지않게 말라 있었다. 그래서 힘도 엇비슷해져 버렸다.
한 삼십 분쯤 흘렀을까. 그들의 머리에서 김이 올랐다.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아큐의 손이 늦추어지자 샤오디의 손도 늦추어졌다.
“두고 보자, 개새끼…….”
이 싸움은 이렇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아큐에게는 여전히 삯일을 해 달라는 사람이 없었다.
꽤 따스해진 어느 날이었다. 그렇지만 아큐에게는 산들바람까지도 써늘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배가 고픈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큐는 어쩔 도리가 없이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보기로 했다.
새로 모를 낸 연푸른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밭을 가는 농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큐는 ‘먹을 것을 구하려고’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덧 정수암까지 와 버렸다. 나지막한 담 안에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큐는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큐는 담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흙덩이가 우르르르 떨어져 내렸다. 아큐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까스로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뒤뜰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무를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둥그런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늙은 여승이었다. 아큐는 재빨리 무 네 뿌리를 뽑아 품속에 싸안았다.
“나무아미타불. 아큐, 왜 남의 채소밭에 뛰어들어 무를 훔치는 거냐?”
“내가 언제 채소밭에 뛰어들어 무를 훔쳤다는 거냐?”
아큐는 도망을 치다가 뒤를 흘낏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건 뭐지?”
“이게 당신 거야? 그럼 무더러 당신 거라고 말을 시킬 수 있어,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아큐는 곧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커다란 검정개 한 마리가 쫓아와 아큐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하였다. 이 때 다행히 옷섶에서 무 하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검정개가 놀라 멈칫하였다. 그 틈에 아큐는 담장 위로 기어 올라가 밖으로 뛰어내렸다.
제6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그 후 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큐가 웨이좡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그 해 추석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아큐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주막에 나타났다.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허리춤에서 은전과 동전을 한 움큼 꺼내어 계산대 위에 뿌렸다.
“현금이다, 술 가져와!”
입고 있는 옷은 새로 맞춘 겹옷이었다. 보아하니, 허리춤에 큰 전대(돈이나 물건을 넣고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메도록 만든, 폭이 좁고 긴 자루)를 찼는데, 묵직하게 늘어져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매고 있었다. 그러자 심부름꾼, 주인, 술손님, 행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호, 아큐! 돌아왔군! 돈을 많이 벌었나 본데!”
“응, 돌아왔어. 문 안에 들어갔다 왔지!”
아큐에 대한 소문은 당장 온 마을에 퍼졌다. 사람들은 새옷을 입고 나타난 아큐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알고 싶어했다. 주막에서, 찻집에서, 사당 처마 밑에서 사람들은 아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어느 틈에 아큐는 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큐의 말로는 문 안 거인(擧人, 과거에 급제한 선비)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거인은 사방 일백 리를 통틀어서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 그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는 것은 당연히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큐는 거인 영감이 실제로는 ‘개 같은 놈’이기 때문에 다시는 일을 거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큐의 말을 들으며 통쾌해 하기도 하고 탄식을 하기도 했다. 아큐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거들러 가지 않는다고 하니 아깝기도 했던 것이다.
“자네들, 사람 목 자르는 본 적이 있나? 허, 볼 만해. 혁명당을 죽이는데, 굉장했다구!”
아큐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흠칫했다. 그러자 아큐는 느닷없이 왕털보의 뒷덜미를 내려치며 “싹둑!”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왕털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목을 움츠렸다.
하여간 얼마 안 가서 아큐의 명성은 안방에 있는 여자들한테까지 좍 퍼졌다.
“쩌우치 댁은 아큐에게 남색 비단 치마를 샀대.”
“자오바이옌 어머니도 애들에게 주려고 빨간 모슬린 저고리를 샀다는군. 단돈 30전에 말이야.”
여자들은 마주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아큐가 나타나길 눈 빠지게 기다렸다. 아큐에게 비단 치마를 산 쩌우치 댁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오 마님에게 들고 가 자랑을 하였다. 자오 마님은 싸고 좋은 털배자를 사고 싶다며, 쩌우치 댁에게 즉시 아큐를 찾아 데려오라고 하였다. 자오 씨 댁 식구들은 초조하게 아큐를 기다렸다. 한참만에야 아큐가 쩌우치 댁을 따라 들어왔다.
“아큐, 문 안에 가서 돈을 벌었다지? 다름 아니라 내가 좀 필요한 것이 있어 그러는데…….”
“다 팔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팔았어? 그럼, 이 다음에라도 물건이 생기면 먼저 우리 집으로 가져오게나.”
아큐는 내키지 않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자오 영감과 수재는 아큐의 불손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이 염치없는 놈을 마을에서 아예 쫓아내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편 건달패들은 아큐에게 돈을 벌게 된 내막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큐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우쭐거리며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도둑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큐가 직접 담을 넘은 것은 아니고, 자기는 단지 밖에서 물건만 받아 냈다고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큐가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로 해서 마을 사람들은 ‘역시 아큐는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하였다.
제7장 혁명
아큐가 전대를 자오바이옌에게 팔아넘긴 그 날, 커다란 배 한 척이 자오 씨 댁 나루터에 닿았다. 그것은 바로 거인 영감의 배였다. 그 배는 웨이좡에 굉장한 불안을 실어다 주었다. 정오도 못 되어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혁명당 때문에 거인 영감이 우리 마을로 피난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큐는 문 안에 갔을 때 혁명당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또 자기 눈으로 혁명 당원이 참수(목을 벰)당하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혁명당은 반역이며, 반역은 그에게 고난을 가져온다는 말을 주워 들은 적이 있어서, 그들을 막연히 증오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이 백 리 사방으로 이름을 떨치는 거인 영감까지 두렵게 하다니, 아큐로서는 신명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이란 것도 괜찮은데……. 개 같은 놈의 세상을 뒤집어엎어라. 빌어먹을……, 나도 혁명당이 돼야지. 혁명이다, 혁명! 좋았어! 내가 갖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다. 어떤 계집이든 모두!’
자오 씨 댁 두 나리와 자오바이옌도 대문간에 나와 혁명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노래를 부르며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자오 영감이 아큐를 불러 세웠다.
“아큐 군! 아큐 군, 저어…… 요새 돈 잘 벌리나?”
“돈? 물론, 갖고 싶은 건 모두…….”
“아……큐 형, 우리네처럼 가난뱅이야 괜찮겠지?”
자오바이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짐짓 혁명당의 속셈을 떠보려는 듯이.
“가난뱅이라고? 너야 나보다 부자잖아.”
아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다. 그는 마음이 들떠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혁명? 재미있는데……. 웨이좡의 촌놈들은 아마 볼 만할 거야. 무릎을 꿇고 애걸하겠지. 아큐, 목숨만 살려 줘. 누가 들어 준대? 첫 번째로 죽어야 할 놈은 자오 영감, 수재, 또 가짜 양놈……. 그러고 나서 수재 여편네의 침대를 우선 투구츠로 옮겨 놓고, 그리고 첸 가(哥)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그 다음엔 여자를 데려와야지. 쩌우치네 딸년은 아직 애송이고, 그리고 가짜 양놈 여편네는 변발도 없는 녀석과 잤으니, 흥 좋은 물건은 못 되지.”
아큐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거리로 나가 보니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배도 고팠다. 아큐는 천천히 걸어 어느덧 정수암에 이르렀다.
암자는 지난번처럼 조용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을 두드려 댔다. 검은색 대문에 흠집이 났을 때에야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늙은 여승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하러 또 왔지?”
“혁명이다. 알고 있지?”
“혁명, 혁명이라고? 혁명은 벌써 했어. 도대체 네놈들이 혁명한다고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늙은 여승은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뭐?”
“몰랐어? 그놈들이 벌써 혁명했어.”
“누가?”
“수재하고 양놈하고!”
아큐는 너무나 뜻밖이었으므로 얼떨떨해졌다. 늙은 여승은 아큐가 풀이 꺾이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문을 잠가 버렸다.
한편 자오 씨 댁의 수재는 혁명당이 밤사이에 입성했다는 것을 알자, 잽싸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었다. 그리고 여태껏 상대도 하지 않던 가짜 양놈 첸 가를 아침 일찍 방문했다. 그들은 곧 동지가 되어서 혁명에 나서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머리를 짜낸 끝에 정수암에 ‘황제 만세 만만세’라고 적힌 용패가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래서 즉시 암자로 달려가서 혁명을 한 것이다. 늙은 여승이 막아서서 잔소리를 했으나, 그들은 여승을 만주 정부와 한 패로 몰아 몽둥이세례를 주었다. 그들이 가 버린 뒤에 여승이 정신을 차려 보니, 용패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큐는 이러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잤던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괘씸한 일은 그들이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8장 혁명 금지
웨이좡의 인심은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다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은 사람이 점차 늘어 갔다. 여름이라면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거나 잡아매는 일이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겠지만, 지금은 늦가을이었다. 그렇게 뒤통수를 훵하게 비운 채로 거리를 나다니면, 사람들은 “와, 혁명당이 온다.” 하고 소리 쳤다. 아큐는 그 소리가 그지없이 부러웠다. 게다가 아큐는 수재가 머리를 그렇게 틀어 얹었다는 말을 듣자, 자신도 흉내를 내고 싶었다. 그는 대젓가락으로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기분이 나빠 아무에게나 짜증을 부렸다.
수재는 가짜 양놈에게 부탁하여 자유당에 가입하고 복숭아 은배지를 달게 되었다. 자오 영감은 이것 때문에 갑자기 더 훌륭해져서는 아들이 처음 수재가 되었을 때보다도 더 오만해졌다. 아큐를 봐도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매우 못마땅하였다. 혁명을 하려면 그저 변발만 틀어 얹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일단 혁명당과 연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가짜 양놈을 찾아가 의논을 해 보기로 했다.
가짜 양놈네 집 대문은 열려 있었다. 가짜 양놈은 뜰 한가운데 서 있었는데, 새까만 서양 옷에다 복숭아 은배지를 달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자오바이옌과 건달패 세 놈이 공손한 자세로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아큐는 슬그머니 걸어가 자오바이옌 뒤에 섰다. 가짜 양놈은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큐는 그가 잠시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에…… 저…….”
“뭐야?”
“저도…….”
“나가!”
“저도 혁명을…….”
“썩 꺼져!”
가짜 양놈은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자오바이옌과 건달패들도 덩달아 소리 쳤다.
“선생께서 나가라시잖아. 말이 안 들려!”
아큐는 할 수 없이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리로 나오자 속에서 서글픔이 끓어올랐다. 아큐는 여태까지 이렇듯 진한 쓸쓸함을 맛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욕감까지 생겼다. 앙갚음을 하기 위해 당장 변발을 풀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한밤중까지 쏘다니다가 선술집이 문을 닫을 때쯤 해서야 터벅터벅 투구츠로 돌아왔다.
딱, 펑!
그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큐는 쓸데없이 참견하기를 좋아했다. 곧 어둠 속을 내달았다. 그러자 맞은편에서도 사람 하나가 이리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아큐는 덩달아서 급히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뒤따라 도망쳤다. 그 사람이 골목을 돌면 자기도 돌고, 그 사람이 서면 자기도 섰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샤오디였다.
“자…… 자오 씨 댁이 약탈당했어!”
샤오디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아큐는 살금살금 길 모퉁이를 돌아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자세히 보니,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연달아 궤짝과 가구를 메고 나왔다. 아큐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싫증이 나도록 지켜 본 후에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몹시 불쾌했다. 웨이좡에 드디어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무수히 들어냈는데도 내 몫은 없었다. 이건 전부 그 빌어먹을 가짜 양놈 때문이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그놈이 금지시켰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내 몫이 없을 리가 없지. 아큐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막다니, 네놈만 혁명하냐? 좋아, 혁명해라. 혁명은 목이 잘리는 죄목이니까. 내가 고발해야지. 네놈이 문 안에 끌려가 목이 잘리는 꼴을 보아야겠다. 싹둑, 싹둑!”
제9장 대단원
자오 씨 댁이 약탈당하자 웨이좡 사람들은 매우 통쾌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했다. 아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흘 뒤, 아큐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붙잡혀 문 안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아큐는 목책(말뚝 같은 것을 죽 늘여 박은 울타리)이 둘러쳐진 어느 집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넓은 대청 앞에는 머리를 빡빡 민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병정들이 늘어서 있었다. 양옆에는 또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들이 십여 명 서 있었다. 그들도 늙은이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있었는데, 등에는 가짜 양놈처럼 한 자쯤 자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모두가 험악한 얼굴로 아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큐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 나가 바닥에 털썩 꿇어앉고 말았다.
“서서 말해! 꿇어앉지 마!”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소리 쳤다. 하지만 아큐는 몸이 저절로 쭈그러들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노예근성!”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경멸하듯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 봐.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바른 대로 말한다면 놓아 줄 수도 있어.”
“저는 원래…… 혁명을 하려고…….”
아큐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겨우 떠듬떠듬 말했다.
“그럼 어째서 여기에 오지 않았지?”
“가짜 양놈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해도 늦었어. 지금 너의 패거리는 어디 있지?”
“네, 뭐라고요?”
“그 날 밤, 자오 씨네 집을 턴 패거리 말이야.”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만 들고 가 버렸습니다요.”
“어디로 갔지? 말하면 놓아 주지.”
“저는 모릅니다.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달리 할 말은 없나?”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어 왔다. 아큐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없습니다.”
그러자 두루마기 입은 사람 하나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아큐 눈앞에 가져오더니 붓을 쥐어 주려고 하였다. 아큐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한 번도 붓을 쥐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큐가 어쩔 줄을 몰라 머뭇거리자, 그는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가리키며 서명하라고 하였다.
“저……,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아큐는 붓을 움켜잡은 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너 좋을 대로 동그라미나 하나 그려 넣어!”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지만 손만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큐를 위해 종이를 땅바닥에 펴 주었다. 아큐는 엎드려서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런데 빌어먹을, 붓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붓이 자꾸만 삐져나갔다. 그려 놓고 보니 수박씨 모양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그를 집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방에 가두었다.
아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끌려 나가기도 하고 끌려 나오기도 하는 것이며,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다만 동그라미가 제대로 안 그려진 것이 하나의 오점으로 마음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큐는 다시 대청 앞으로 끌려 나왔다. 늙은이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할 말 없나?”
“없습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과 짧은 웃옷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에게 까만 글씨가 씌어 있는 흰 무명 등거리(조끼처럼 등에 걸쳐 입는 홑옷)를 입혔다. 아큐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이건 상복 같은데, 상복을 입으면 재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두 손이 등뒤로 묶이어 목책 밖으로 끌려 나갔다.
아큐는 포장이 없는 수레에 올려졌다. 수레는 곧 움직였다. 앞에는 총을 멘 병정과 자위 대원이 있었고, 양 옆에는 구경꾼들이 쑤군거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큐는 깨달았다. 이거 목 잘리러 가는 게 아닌가.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목이 잘리는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왜 형장 쪽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는 죄인을 이렇게 조리돌린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조리돌리는 일도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을 테니까. 아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뜻밖에도 길 옆 구경꾼 속에 우 씨 아줌마가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큐는 자신이 배짱도 없이 노래도 한 마디 부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머릿속에서 그가 아는 노래 제목이 바람개비처럼 휘돌았다. 그래, ‘쇠채찍을 손에 잡고 네놈을 칠 테다’를 부르자. 그는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하다가, 자신의 두 손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래 부르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속에서 승냥이가 울부짖는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레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큐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구경꾼들을 바라보았다. 그 때, 그의 머릿속에 4년 전에 산기슭에서 만났던 굶주린 이리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거의 죽어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져 먹고 무사히 웨이좡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리의 눈은 잊혀지지 않았다. 불길하고도 무서웠다. 그 두 눈은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렸다. 멀리서 쫓아와 자기 살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또다시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눈알을 보았다. 그 눈은 이미 자기 살을 씹어 삼켜 버렸으며, 이제는 자기 살 외에 다른 것까지 씹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면서, 이 눈알들은 하나로 합쳐져 벌써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눈앞이 캄캄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났다. 온 몸이 먼지처럼 풀썩 흩어지는 것 같았다.
여론을 들어 보면, 웨이좡에서는 별로 이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나쁘다고 말했다. 그가 총살당한 것은 그가 나쁘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당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 안에서는 대부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총살은 목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얼마나 시시한 사형수인가. 그토록 오래 조리를 돌렸는데도 노래 한마디 듣지 못하다니! 그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