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Alice Munro
마살레스 선생님이 또 파티를 여는가. (음악을 아끼는 순수한 열정에서인지 워낙 잔치를 몹시 갈망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생님은 연주회라고 부르는 법이 없다.)
그럴싸한 거짓말을 둘러댈 꾀도 말주변도 없는 우리 엄마가 일껏 떠올리는 핑계는 누가 들어도 군색하기 짝이 없다.
페인트공이 오기로 했다는 둥, 오타와에서 친구들이 올 거라는 둥, 가엾게도 캐리가 편도선이 부었다는 둥, 그 끝에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후유, 설마 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골탕 먹이진 않겠죠? 지금 당장?”
그것은 곧 지금은 몇 가지 성가신 일이 겹쳤으니 선생님 좋을 대로 고르시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마살레스 선생님이 뱅크 거리에 있는 방갈로식 벽돌집에서 발라 거리로, 그러니까 지난 세 번의 파티를 치른 그 비좁은 집보다 훨씬 더 작은 -선생님의 설명이 정확하다면- 집으로 이사할 때이다. (발라 거리는 어디지?)
그런가 하면 마살레스 선생님의 언니가 뇌졸중을 일으켜 자리 보존을 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고, 마살레스 선생님이 그야말로 폭삭 늙어가는 -엄마 말마따나 그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때이기도 하다.
지금? 마살레스 선생님은 어리둥절한 척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문제에 관해 통감하는 것인지 톡 쏘듯이 말을 받는다. 그러고는 언제 어디서 열었든 자신이 마련한 6월 파티가 큰 골칫거리가 된 적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마살레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연 잔치는 6월 파티뿐이다. (우리 엄마가 알기로는 그뿐인데도 낭패스러움이나 흔들리는 기색은커녕 노련한 마살레스 선생님의 밝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들으면 집에서든 대규모 가족 연회장에서든 자잘한 다과회며 비공개 댄스파티를 숱하게 벌인 사람 같다.)
만일 못하게 되면 아이들 보다 자신이 더 낙담할 것이라고, 마살레스 선생님은 말한다. 어디 낙담뿐이겠느냐고, 엄마는 중얼거릴 뿐 큰 소리로 말하지는 못한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역겨운 오물을 보았으나 스스로 치울 엄두가 나지 않을 때처럼- 전화기에서 얼굴을 돌린다. 그건 연민을 느낄 때 엄마가 남몰래 짓는 표정이다.
그리더니 가겠노라고 약속한다. 알량하나마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계책이 남은 2주일 동안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엄마는 자신이 참석하리라는 걸 안다.
엄마가 마지 프렌치 아줌마에게 전화를 한다. 아줌마는 엄마와 함께 마살레스 선생님에게 배웠고 지금은 쌍둥이 자식도 맡기고 있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한동안 동병상련하다 마침내 함께 가자고 약속하면서 서로 힘을 북돋는다.
비가 온 날 걸어둘 데가 없는 탓에 그 비좁은 현관홀에 비옷이 잔뜩 쌓이고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이 거뭇한 바닥에 웅덩이처럼 흥건하게 고였던 지지난해를 두 사람은 지금도 기억한다. 닥지닥지 붙어 앉아야 했으므로 어린 여자애들의 드레스는 구겨질 대로 구겨졌고 거실 창문은 열리지도 않았었다. 지난해에는 한 아이가 코피를 흘리는 불상사까지 생겼다.
“물론 그거야 마살레스 선생님 잘못은 아니지.”
두 사람은 체념한 듯 웃는다.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그런 일은 없었어야지.”
말이야 바른말로 사실 모든 일이 그런 식이다. 마살레스 선생님의 파티에 관해서는 딱 꼬집어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일이 한번 벌어지면 걷잡을 수가 없고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어서다.
차를 몰고 파티에 참석하려고 가는 순간까지도 과연 누가 오기는 올까? 하는 의문이 솟는다. 지난 두세 번은 파티 분위기가 여간 뒤숭숭한 게 아니었다. 꾸준히 참석하던 사람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새로운 제자라야 옛 제자들의 자식들 밖에 없어 보이는 게 큰 이유였다. 매해 6월은 그만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는 때이기도 하다. 메리 램버트 아줌마의 딸이 그만두었고 존 크림블 아줌마의 딸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엄마와 아줌마는 헤아려본다. 그렇지 않아도 괜히 시외로 이사해서 뒤처지는 건 아닌지 문득문득 겁이 나기도 하고 천성에 따라 바르게 살겠다는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예전만큼 피아노 교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건 누구나 다 안다. 춤이 어린이의 전인 발달에 훨씬 더 좋다고 믿는 세상이고, 어린이들, 적어도 여자애들은 피아노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걸 마살레스 선생님에게 어떻게 설명하랴.
“모든 어린이에게는 음악이 필요하지. 가슴속으로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으니까.”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선생님인걸.
마살레스 선생님은 당신이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고 거기에서 착한 마음씨와 선한 것이면 무엇이든 다 좋아하는 천성을 간직한 보물고를 찾아낼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다. 독신 여성의 감상성과 아이들은 선하다고 믿는 본래의 아동관이 접목된 그 미혹은 어마어마한 전설 같다. 이렇듯 외곬으로 아이들의 심성이 거룩한 무엇처럼 말하는 선생님이다 보니, 부모된 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오래 전 우리 언니 위니프레드가 피아노를 배우던 때 마살레스 선생님의 집은 로즈데일에 있었다. 그전부터 내내 거기 있었다. 자줏빛 라즈베리에 검댕이 잔뜩 낀 것처럼 거무죽죽한 벽돌로 지은 좁다란 그 집은 2층 창문마다 둥그스름히 도드라진 작고 우중충한 장식 발코니를 내달았다. 어디에도 탑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성루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음험하고, 허풍스럽고, 시적으로 보려 해도 추한, 그런 가정집이었다.
그 집에서 해마다 열린 파티가 아주 형편없지는 않았다. 부엌일 하는 아줌마가 파티에 익숙하지도 않고 행동이 조금 굼떠서 늘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멋쩍긴 했지만, 막상 차려낸 샌드위치는 언제나 아주 맛났다. 닭고기와 아스파라거스를 넣고 둥그렇게 말아 영양도 좋고 보기에도 좋아, 어린이들 음식으로는 그만이었다.
피아노 연주는 대개 음정이 불안하고 박자를 놓치는가 하면 소리는 둔탁하고 맥없이 울렸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주위를 환기하기라도 할 듯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생기발랄하게 터져 나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마살레스 선생님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아이들을 대했기 때문이고, 고지식한 이상주의자의 인자함은 선생 노릇을 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없이 자상하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는 투로 지적하는 것 말고는 꾸중이라는 걸 할 줄 몰랐고 칭찬할 때는 허무맹랑하리만큼 치켜세우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보기 드물게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조차도 훌륭하다 할 만한 실력을 익히지 못했다.
그러나 대체로 그 시절에는 모임을 하면 모두 하나로 뭉쳤고, 전통이 있었으며, 누가 알아 주지도 않는 구식일망정 그 나름의 양식이 있었다. 무엇 하나 예상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바닥에는 타일이 깔리고 교회의 어둑한 제의실에서 나는 듯한 냄새를 풍기는 현관홀에 마살레스 선생님이 루주를 바르고 행사가 있는 날에만 하는 고풍스러운 머리 모양에 실내장식용 낡은 옷감으로 지었음 직한 알록달록하고 바닥에 끌리는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어린아이들이나 흠칫할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그림자처럼 마살레스 선생님의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마살레스 할머니, 더 늙고 더 크고 더 험악할 뿐 아니라 6월 파티 때를 빼고는 1년 내내 존재조차 모르는, 그 마살레스 선생님의 언니를 보고도 당혹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 것은 이 세상에서는 한 얼굴이 아닌 두 얼굴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 길쭉한 자갈빛 얼굴이 인자해 보이는 동시에 코는 터무니없이 큰 반면 작은 데다 붉고 근시까지 있는 눈으로 눈웃음을 치고 있으니 괴기스럽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런저런 갖가지 방법으로 불가능하다고 낙인찍어 둔 삶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무기로 삼을 수 있는 그 흉측한 모습을 지닌 것이 두 자매에게는 한 가닥 행운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무엇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들처럼 두 자매가 천하태평이었던 것이다. 그와 아울러 마살레스 할머니 자매는 혼돈의 시대와 동떨어진 로즈데일의 보금자리에서 서식하고 있는 생식 기능을 잃은 채 기이하지만 길들여진, 온순한 야생 동물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곧 「집시의 노래」,「흥겨운 대장장이」,「터키 행진곡」들을 연주할 거실에 더러는 딱딱한 긴 의자에 더러는 접의자에 엄마들이 앉아 있었다. 그 거실에는 벨벳 드레스를 입고 실크 베일을 쓴 메리 스코틀랜드 여왕이 홀리루드 성(城)앞에 서 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고, 역사적 전투를 그린 누리끼리한 그림들과 하버드 고전문학 선집과 장작 받침쇠와 페가수스 조각상도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엄마도 없었지만 아예 재떨이도 없었다. 거기 모인 엄마들이 예전에 피아노 연주를 했던 곳도 이 거실과 똑같았다.
인간계 너머의 아련한 세상처럼 꾸민 그 방(작약과 조팝나무의 꽃잎이 떨어져 쌓인 듯한 효과를 내려고 마살레스 선생님이 손수 피아노 위를 풀솜으로 장식했으나 솜씨가 좋진 않았다.)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그 엄마들 -개발이 안 된 로즈데일의 옛날 길을 속력을 늦춰 느릿느릿 차를 모느라 조바심쳤고 1주일 뒤에 낭비하게 될 시간과 아이들의 연주복 때문에 치르게 될 난리굿과 특히나 견디기 어려운 그 지루함에 관해 잔뜩 푸념을 늘어놓고서도,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신의를 앞세워 모인 바쁘고 젊은 여자들- 이 여기서 해마다 발견한 것은 마살레스 선생님에 관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치른 의식들과, 그 당시에조차 현실과 한참 동떨어졌던 대단히 엄격한 생활 방식이 아직까지도 마살레스 선생님의 거실에 남아 있는 그 설명할 길 없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치마통이 종만큼이나 딱딱한 드레스를 입은 어린 여자애들은 어떻게 의식을 치러야 할지 알고 태어난 것처럼 책들이 쌓여 있는 벽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달갑지는 않아도 묵인하는 듯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들의 얼굴에는 제아무리 길고 지루한 가정의례라도 견디게 해줄, 어딘지 어색하고 조금은 가식적인 향수가 어려 있었다. 그들은 아주 품위 있게 미소를 주고받았지만, 피아노 연주곡과 샌드위치의 소조차도 예전과 똑같다는 사실에 친근하면서도 익살스럽고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만큼 그들은 마살레스 선생님과 그 언니도 두 자매의 삶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현실과 완벽하게 동떨어진 채 끈덕지게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피아노 연주를 마친 뒤에는 늘 약간 당혹스러움을 자아내는 조촐한 축하연이 열렸다. 유아스러운 분홍과 파란색의 크레이프페이퍼로 덮인 기다란 식탁에 부엌일하는 아줌마가 샌드위치를 담은 접시들, 아이스크림, 엷은 색깔로 곱게 물들인 밍밍한 셔벗 따위를 차려놓은 정원 -도심의 여느 정원처럼 좁디좁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원이라 울타리와 차양도 있고 가장자리에는 노란 나리를 줄줄이 심어놓았다- 으로 나가기 전에 아이들은 마살레스 선생님에게 포장을 하고 리본을 묶은 연말 선물을 차례차례 받아야 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새로 온 제자들 말고는 기대감에 들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물이래야 책일 게 뻔했기 때문인데, 자못 궁금한 것은 도대체 그런 책들을 어디서 구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 책들은 주일학교의 케케묵은 열람실 아니면 헌 책방의 다락이나 지하실을 뒤지고 뒤져 찾아냈을 법한 고서들이었는데도 하나같이 책 표지가 빳빳하고 한 번도 읽지 않은 새것이었다.
『북부의 호수와 강』, 『새의 이해』, 『그레이 아울이 들려주는 더 많은 이야기』,『꼬마 선교단』 따위들, 또한 「깨어있는 큐피드와 잠든 큐피드」, 「목욕한 후에」,「어린 자경단원들」같은 그림들도 주었는데, 고상을 떠는 우리들의 내숭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역겨운지를 일깨워 주는 게 중요한 목적이기라도 한 듯 살결이 보들보들한 어린아이들의 누드화가 대부분이었다. 우리에게 준 보드게임조차도 놀이를 할 의욕이 들지 않을 만큼 -모두를 이기기에는 규칙이 복잡하기 그지없어서- 김빠지게 하는 것들이었다.
이때쯤 엄마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선물 자체가 아니라 마살레스 선생님이 선물비용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습비를 10년 동안 딱 한 번 올렸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올렸다손 쳐도 그만둔 사람이 두엇은 있었다.) 끝내는 필시 다른 방책이 있을 거라고 입을 모으곤 했다.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집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게다가 선생님의 언니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퇴직을 했더라도 프랑스어와 독일어 과외를 하는 거라고들 믿었다. 그 정도 벌이면 두 사람이 살기에 너끈할 터였다. 마살레스 선생님처럼 검소하게 산다면 생활비가 그다지 많이 들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로즈데일에서 뱅크 거리로 이사한 뒤부터, 마살레스 선생님의 계산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수군대는 뒷말은 없어졌다. 어렵사리 살아가는 마살레스 선생님의 경제 형편을 입에 담는다는 건 무례하고 잔인한 일이니까.
“파티가 열리는 날, 비가 오면 내가 지레 죽고 말 거야. 우울병으로.”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파티 당일은 비가 오지 않고 아주 무덥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시내로 차를 몰아 발라 거리를 찾다가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맨다. 마침내 찾아든 그 거리는 뜻밖에 인상이 좋다. 여태껏 철둑길을 따라 지나온 거리들은 그늘 한 자락 없고 너저분했는데 이곳은 가로수가 줄줄이 서 있다.
이곳의 집들은 정면 베란다 가운데에 경사진 나무 칸막이를 설치해 둘로 나눈 구조이다, 그리고 2단짜리 나무 계단과 흙 마당이 있다. 보나마나 마살레스 선생님도 그런 반쪽짜리 집에 사는 게 분명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집들은 현관문과 창문 테두리와 베란다를 크림색과 회색과 반들반들한 초록과 노랑으로 칠했다. 말끔하게 잘 관리해온 모습이다.
마살레스 선생님이 사는 집 옆집의 앞쪽은 작은 가게로 개조했다. 거기에 ‘식료품과 과자’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다.
현관문은 열린 채로 괴어 있다. 쐐기를 박아놓은 듯 마살레스 선생님이 문과 옷걸이와 계단 사이에 서 있다. 거실로 들어가려면 선생님 옆을 가까스로 스쳐 지나가야 할 만큼 빈틈이 거의 없고 그건 위층 거실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살레스 선생님은 루주를 바르고 머리를 치장하고 브로케이드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데, 그 드레스 자락을 밟지 않고 지나가기가 난감하다. 어느 모로 보나 청교도라면 상상만으로도 불쾌할 만큼 요란스러운 차림에 열에 달뜬 창부로 분장하고 가장무도회에 참석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열에 달떠 보이는 건 루주뿐이다. 바투 다가가 마살레스 선생님의 눈을 들여다보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자위는 붉고 아무런 근심 없이 마냥 즐거운 눈빛이다.
엄마와 나는 마살레스 선생님과 입맞춤을 하고 -언제나처럼 나를 다섯 살배기쯤으로 맞아준다- 스쳐 지나왔다. 내가 보기에 마살레스 선생님은 우리와 입맞춤을 하면서도 우리 뒤쪽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거리를 살피는 사람처럼.
거실과 식당 사이에 있는 오크나무 문이 뒤로 밀어 젖혀있다. 거실도 식당도 좁다. 엄청나게 큰 메리 스코틀랜드 여왕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벽난로가 없어서인지 장작 받침쇠는 보이지 않고, 피아노와 어느 정원에서 꺾었는지 모를 작약과 조팝나무 꽃다발이 있다. 거실이 워낙 꼬딱지만해서 혼잡해 보이는 것이지, 사실 그곳에 있는 사람이라야 아이들까지 합쳐서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
엄마가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엄마가 내게 말한다.
“마지 프렌치 아줌마가 아직 안 왔는데 우리처럼 길을 헤매고 있을까?”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낯이 설다. 중년 부인으로 인조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단 아롱다롱한 태피터 드레스를 입었는데 세탁소 냄새가 난다. 그 아줌마는 자신은 클레그 부인이고, 미스 마살레스가 사는 집의 다른 반쪽짜리에 사는 이웃이라고 소개한다.
미스 마살레스가 아이들 연주를 듣고 싶은지 물었는데, 자신은 그걸 대단히 기쁘게 받아 들였다고 한다. 음악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면서.엄마는 자못 즐거워하면서도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마살레스 선생님의 언니에 관해서 묻는다. 위에 계시느냐고.
“그럼요 위층에 계세요. 안타깝게도 몸이 안 좋으세요.”
정말 안 된 일이에요. 라고 엄마가 맞장구친다.
“그러게요. 얼마나 딱한지. 오후에 푹 주무시게 제가 뭘 좀 드렸어요. 아시겠지만 말씀을 못 하세요. 제어 능력을 거의 다 잃으신 거죠.”
은밀한 일들까지 주워섬기며 시시콜콜 떠벌릴지 모르는 다분히 호사가 같은 나직한 목소리를 경계하듯. 엄마는 또다시 얼른 정말 안 된 일이라고 말한다.
“미스 마살레스가 수업을 하러 외출할 때면 제가 와서 돌봐드린답니다.”
“참 좋은 일 하시네요. 그분도 틀림없이 고마워하실 거예요.”
“그게 뭐랄까요. 할머니 두 분만 사시니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두 분은 꼭 아기 같아요. 쌍둥이 아기.”
엄마는 나직이 뭐라 뭐라 대답은 하면서도 눈은 클래그 부인의 혈색 좋은 붉은 벽돌빛 얼굴이나 틈새가 놀랍도록 크게 벌어진 -내가 보기엔- 이빨을 보고 있지 않다. 용케 당황스러운 내색을 잘 다스리며 클래그 부인 너머를 응시하고 있다. 엄마가 보고 있는 건 파티 음식들이 아까부터 차려져 있는 식탁이다. 빠짐없이 갖추어 놓은 그 식탁. 접시에 담긴 샌드위치는 내놓은 지 좋이 두어 시간은 된 듯, 맨 위에 있는 샌드위치 빵 가장자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기 시작한다.
파리들이 식탁을 윙윙 날아다니다 샌드위치에 내려앉거나 제과점에서 사온 당의를 입힌 작은 케이크 접시들을 느긋이 기어 다닌다. 여느 때처럼 식탁 한가운데 놓인 컷글라스 볼에는 자줏빛 펀치가 가득 들어있는데, 얼음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밍밍할 게 분명하다.
“상차림을 미리 하지 못하게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건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샌드위치를 만들데요. 맛이야 어떻든 준비를 해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에요. 제 시간에 못 맞출까 걱정이 앞서서.”
클래그 부인은 고집쟁이 아이의 변덕이나 실수담을 이야기할 때처럼 우스워 죽겠다는 듯 속살거린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음식을 미리 내놓으면 안 될 텐데.”
엄마가 말한다.
“설마하니 한 번 먹었다고 죽기야 하려고요? 난 그저 샌드위치가 꾸덕꾸덕 마르면 어쩌나 그 생각만 했어요. 게다가 정오에 펀치에다 진저에일을 섞는 걸 보니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다 버리게 생겼어요.”
엄마는 갑자기 자세를 바꾸고 보일 스커트를 매만진다. 이런 식으로 파티를 베푸는 주인의. 그것도 그 집 거실에서. 상차림을 흉보는 것이 도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가증스러운 짓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은 모양이다.
“마지 프렌치 아줌마가 왜 아직도 안 온다니. 분명 오는 중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딱딱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여기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
내가 짜증스럽게 말한다.
“쉬. 그러니 네가 마지막을 장식할 수도 있잖아. 올해는 연주 일정도 그다지 길지 않을 테고. 안 그러니?”
클래그 부인이 우리 쪽으로 몸을 기우리는 순간 가슴골에서 구리터분한 냄새가 흠씬 풍긴다.
“아이스크림을 넣어둔 냉동실 온도를 높게 조절해 놓았는지 아무래도 내가 살펴보아야겠네요.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리면 미스 마살레스가 무척 난감해할 테니.”
엄마는 거실을 가로질러 가 아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 들으나마나 “마지 프렌치가 오는 중이라고 했거든요.”라고 말할 게 뻔하다. 아까부터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던 여자들의 얼굴이 더워서 벌겋게 달아오르고 꽤나 불쾌한 기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시작하려나. 여자들은 서로 묻는다. 이제 곧 시작하긴 할 것이다. 적어도 15분 사이에 새로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어쩜 그리 야박한지.”라고 그들은 오지 않은 사람들을 싸잡아 흉본다. 그러나 그 무더위를. 더군다나 그 도시에서도 가장 더운 곳일 게 분명한 지역의 그 끔찍한 날씨를 고려한다면, 그 말을 한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거실 안을 휘둘러보니 나와 연갑내기는 없어 보인다.
나이가 작은 아이들이 연주를 시작한다. 마살레스 선생님과 클래그 부인이 열심히 박수를 친다. 엄마들은 때마다 두어 번씩 손뼉을 치면서 한시름 놓는다. 엄마는 아무리 애를 써도, 식당의 식탁과 득의양양하게 노략질을 벌이는 파리 떼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마침내 엄마는 펀치 볼 너머 어딘가에 눈길을 모은 채 꿈꾸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좋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바꿔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마살레스 선생님도 연주하는 아이들에게 진득이 집중하지 못하고 눈길을 자꾸 현관문 쪽으로 돌린다. 아무런 말도 없이 참석하지 않은 누군가가 나타나 주기를 아직도 기대하고 있는 걸까. 하얀 종이로 싸고 은빛 리본 -진짜 리본이 아니라 자투리 천으로 만든 값싼- 으로 묶은, 영락없는 선물 상자 대여섯 개가 피아노 옆에 놓여 있다.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아 「베레니케」 중 미뉴에트를 연주하고 있을 때다. 바로 그때 마살레스 선생님 말고는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마지막 사람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뭔가 착오가 생겼지 생각한다. 곁눈질로 보니 열 명이 될까 말까한 아이들이 머리가 붉고 제복 비슷한 옷을 입은 여자를 따라 줄줄이 열을 지어 현관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어느 사설 학교의 학생들이 무슨 단체 여행 (똑같은 황갈색 옷을 입었다.)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어수선하고 무질서하다. 아니 그건 내 느낌일 뿐이다. 나는 지금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예방주사를 맞으러 가거나 여름 성경학교에 가다가 집을 잘못 찾은 걸까? 아니다. 마살레스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 들뜬 목소리로 나직이 양해를 구하고 그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내 등 뒤에서 사람들이 비집고 나아가는 소리. 접의자를 펼치는 소리.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희한하고 생뚱맞은 웃음소리들이 들린다. 그리고 이 조심스럽고도 부산한 등장을 전후로 유난히 응집된 침묵이 흐른다. 생각조차 못 했던, 불길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 거다. 그런 건 등을 돌리고 있어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나는 계속 연주를 한다. 전에 없이 껄끄러운 침묵을, 내 특유의 집요함으로 헨델의 곡을 엉성하게 해석한, 연주로 채운다. 나는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하마터면 거실 바닥에 자리 잡고 앉은 새로 온 아이들 위로 엎어질 뻔 한다. 그중 열 살 안짝으로 보이는 한 남자애가 내 뒤를 이어 연주를 하려는가 보다.
마살레스 선생님이 그 남자애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보내고 남자애는 손을 홱 뿌리친다거나 당황스러운 고갯짓을 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그 미소를 무참하게 할 행동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유별난 광경이고, 유별난 남자애다.
그 남자애가 피아노 위에 앉아 마살레스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살레스 선생님이 자신 있게 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런데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마살레스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는 그 남자애의 얼굴 표정이다. 만들다 만 둔탁한 얼굴에 턱없이 작고 한쪽으로 쏠린 눈, 눈을 돌려 거실 바닥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아도 하나같이 그 남자애와 얼굴이 똑같다. 한 남자애는 머리가 굉장히 크고 갓난아이처럼 머리를 빡빡 밀었다. 특별히 이상하달 것 없이 평범한데 어린아이처럼 유난히 천진난만하고 조용한 게 다르다면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남자애들은 하얀 셔츠에 회색 반바지를 입었고 여자애들은 붉은 단추와 허리띠로 장식한 회녹색 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저런 애들 중에 음악성이 뛰어난 경우가 더러 있어요.”
클래그 부인이 말한다.
“저 아이들이 누구죠?”
엄마가 속삭이는데 얼마나 당황했는지 가늠이 잘 안 되는 목소리다.
“미스 마살레스가 가르치는 그린힐 학교 아이들이에요. 착한 애들이고 음악성이 썩 뛰어난 아이도 몇 있지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거실 안을 휘둘러보며 함정에 빠져 바짝 경계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다른 여자들의 눈과 마주친다. 하릴없는 노릇이다. 그 아이들이 연주하러 나선다. 연주 솜씨는 우리들보다 썩 -그렇게 많이- 나쁘지는 않지만, 더디더디 연주하는 모습에 눈 둘 곳을 몰라 한다. 그런 아이들을 면밀히 뜯어보는 건 도리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피아노 연주를 하는 동안 연주자를 바라보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를 볼 것인가.
거실 분위기가. 해괴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꿈속 같다. 우리 엄마와 다른 여자들이 수런대는 말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크다.
“그럼요, 저런 아이들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건 옳지도 않고 나는 혐오감도 없지만, 지적장애아들의 연주를 들으러 오라는 말은 아무한테도 듣지 못했다고요, 도대체 이 파티가 무슨 파티래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갈수록 우렁차게 박수를 친다. 이것은 끝이겠지 하는 바람으로. 하지만 연주 일정이 끝났다는 조짐은 없다.
마치 이름이 곧 축하할 명분인 양 모든 아이의 이름을 차례차례 부른 마살레스 선생님이 “돌로레스 보일!”하고 부르니, 키는 나만 하고, 다리가 길고 몸은 조금 가냘프고, 머리는 흰색에 가까운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애가 거실 바닥에서 일어선다. 이윽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몸을 이리저리 움찔거리다가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긴 다음 연주를 시작한다.
마살레스 선생님의 파티에서는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데 길들여진 우리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감상하는 아이가 하나라도 있겠지 기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귀 기울이라는 요구도 거의 없이, 심지어 우리를 그다지 놀래지도 않고 음악이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든다.
그 여자애가 연주하는 곡은 귀에 설다. 가냘프고 간드러지고 유쾌한 그 곡은 크디큰 무념무상의 행복을 누릴 자유를 퍼뜨린다. 그 여자애가 하는 것은 그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대단한- 느낄 수 있도록, 이 황당무계한 오후에 발라 거리에 있는 마살레스 선생님의 거실에서조차 느낄 수 있도록, 연주하는 것뿐이다.
그린힐 학교에서 온 아이들도 나머지 아이들도, 너나없이 모두 조용하다. 반발하는 기색이 뚜렷한 얼굴로 앉아있던 엄마들은, 마치 자신들이 잊은 줄도 모른 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열망이 우러나온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백금같이 흰 그 여자애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우아하지 못한 자세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음악은 열린 문과 창문들을 넘어 석탄재를 깔아 다진 여름날의 도로로 퍼져나간다.
마살레스 선생님은 피아노 옆에 앉아 평소처럼 모든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거의 처음이다시피 한 계시의 효과가 어떤지 보려고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는 마술사 같은 모습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생의 끄트머리에 이른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이 피아노 연주를 가르칠 수 있는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누군가를 찾아낸, 그 대단한 발견을 한 사람답게 얼굴 가득 기쁨이 넘쳐흐를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마살레스 선생님은 그 여자애가 오늘처럼 연주를 하게 될 날을 늘 기대했고, 그것은 당연해하고 흐뭇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기적을 믿는 사람은 정말로 기적이 일어날 때 법석을 떨지 않는다. 더욱이 마살레스 선생님은 그 여자애를 자신이 아끼는 그린힐 학교의 다른 아이들이나, 사랑하지 않는 나머지 우리들보다 경이로운 아이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마살레스 선생님에게는 아무러한 재능이 없다는 게 뜻밖의 일이니, 어떤 축하연도 열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운 일일 터이다. 그 여자애가 연주를 마친다. 음악은 거실에 머물다 가뭇없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당연히 어안이 벙벙해진다.
연주를 마치는 그 순간 그 여자애는 전과 다름없는, 그린힐 학교에서 온 여자애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음악이 헛것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 두 실체는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몇 분 뒤 그토록 순수한 연주를 속임수 -물론 주위를 환기하는 데는 대단히 성공한- 라고, 그래도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품위 없는 행위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그 여자애의 재능으로 말하자면 부정할 수 없으되 부질없고, 자리에도 어울리지 않고, 솔직히 누구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살레스 선생님이야 받아들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건 그만두고라도, 무엇인가를 말해야 하므로 그들은 음악 이야기만 입에 올린다. 정말 감미롭다고, 참으로 아름다운 곡이라고, 제목이 뭐냐고.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고 마살레스 선생님이 대답한다. 단 한사람이라도 모르는 이가 없도록 당스 데 옴브레 외레즈(Danse des ombres heureuses) 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붉은 벽돌집이 늘어선 무더운 거리를 빠져나오고 시내를 벗어나 마살레스 선생님과, 이제 두 번 다시 못할, 앞으로 영영 못할 게 거의 확실한 선생님의 파티를 뒤로 하고 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우리는 도대체 왜 딱한 마살레스 선생님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분명코 하고도 남을 이 상황에.
그건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우리를 방해하기 때문이고, 그 음악은 선생님이 사는 저쪽 나라에서 보낸 코뮈니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