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의 단짝(Tennessee’s Partner)
Francis Bret Harte
우리 중에 그의 실제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우리에게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1854년경 샌디바에 모였던 남자들은 다들 새로운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입고 있던 옷의 특징을 따러 〈던가리 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또는 매일 먹던 빵에 넣는 샐러레이터스의 이름을 따서 〈샐러레이터스 빌〉이라는 이름을 얻은 친구도 있었다. 또 어떤 친구는 본래 양순하고 악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언 파이리츠 Iron Fyrites〉를 〈아이언 파이어럿 Iron Pirate〉이라고 발음을 잘못하는 바람에 〈더 아이언 파이어럿 The Iron Pirate(철혈 해적)〉이라는 고약한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렇게 해서 엉터리 문장학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별명이 붙여진 까닭이 스스로 자신의 실제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니 누구도 어떤 사람의 실명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네 이름은 클리포드지?”
새로 온 사람에게 보스턴은 아주 경멸하는 투로 그렇게 말했다.
“제길, 어딜 가나 클리포드뿐이지.”
그리고 우연하게도 실제 이름이 클리포드였던 그를 보스턴은 〈제이─버드 Jay-Bird(어치새) 차알리〉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름은 그 후 줄곧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순간적인 영감답지 않은 영감에 의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어쨌든 그 테네시의 단짝은 이러한 그의 상대적인 지위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밖에는 우리에게 기억되지 않았다. 그의 독특하고 남다른 모습을 우리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는 아마 1853년에 아내를 구하러 포커 플랫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길을 나섰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발길은 스톡튼에서 더 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 그는 식사하러 들렀던 호텔에서 식사 시중을 드는 젊은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그녀는 싫지 않다는 표정을 미소에 띠며, 위로 젖혀진 덤덤하고도 단순한 그의 얼굴에 요염한 태도로 토스트 접시를 덮어씌워 깨뜨리고는 주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녀의 뒤를 쫓아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더 많은 토스트와 승리의 미소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다음 주 같은 날, 두 사람은 한 치안판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고 포커 플랫으로 돌아갔다. 이 에피소드에는 무엇인가 또 다른 얘깃거리가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샌디바에서는 떠도는 얘기만을 전할 참이다. 이곳은 모든 이야기가 강한 유머에 의해서 다시 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즐거웠던 것 같으나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밖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 단짝과 같이 살고 있던 테네시가 어느 날 기회를 틈타 자신의 일로 신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더니, 그녀가 그의 말에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번에는 매리스빌까지 테네시가 따라오게 만들어 치안판사의 도움도 없이 따로 살림을 차려 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테네시의 단짝은 다른 일에도 늘 그러하듯 아내를 잃어버린 것을 단순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놀란 것은 어느 날 테네시의 단짝의 아내가 다른 녀석에게 웃음을 팔고 함께 사라져 버린 뒤 테네시가 홀로 매리스빌에서 되돌아오자 가장 먼저 악수를 청하고 반겼던 사람이 바로 테네시의 단짝이었다는 사실이다. 볼 만한 사냥 구경을 하기 위해 협곡에 모였던 다른 사나이들은 자연히 분개하기 시작했다. 만일 테네시의 단짝의 눈에 보였던 표정이 유머 감각과는 별로 무관했던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분개는 빈정거리는 일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유쾌하지도 않은 사소한 문제까지 꾸준한 관심을 보이는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는 동안 바에서는 테네시에 대해 사람들이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노름꾼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사기꾼 도둑으로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서 테네시의 단짝도 마찬가지로 의심을 받고 있었다. 앞에 말한 사건 이후에도 테네시와 계속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범죄의 공모라는 가정하에서만 설명될 수 있었다.
마침내 테네시의 죄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레드독으로 가는 한 나그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후에 그 나그네는 테네시가 재미있는 이야기와 추억담으로 시간을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다음과 같이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헌데, 젊은이, 안됐지만 그대의 칼과 피스톨 그리고 돈을 실례해야겠소. 아시다시피 그대의 무기는 레드독에서 그대를 난처하게 할 것이고 돈은 마음씨 고약한 친구들을 유혹하게 될 테니까.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 꼭 젊은이를 찾아가리다.”
여기서 보듯 테네시는 그의 사업 중에도 억제키 힘든 유머를 이용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 한탕이 그의 사업의 마지막이었다. 레드독과 샌디바는 노상강도에 관해서 공동이해를 갖고 있었다. 테네시는 그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회색곰처럼 추격을 받게 되었다. 올가미가 점차 좁혀오자 그는 아케이드 주점 앞에 모여있던 사람들을 향해 리볼버 권총의 실탄이 떨어질 때까지 총질을 해대며 마을을 가로질러 필사의 도주를 강행했다. 그리고 그리즐리 협곡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테네시는 그곳에서 회색 말을 탄 작은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응시했다. 두 사람 모두 대담하고 침착하며 자존심이 강한 인상을 서로에게 주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라면 그들의 모습이 영웅적인 것으로 보였을는지 모르나 19세기에는 그저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손에 잡은 것은? 먼저 펼치시오.”
테네시가 먼저 조용히 물어보았다.
“으뜸패 둘, 그리고 에이스 하나.”
낯선 사나이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조용히 리볼버 두 자루와 한 자루의 사냥용 칼을 내보였다.
“내가 졌군.”
테네시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노름꾼 특유의 말투를 지껄이면서 그는 쓸모없게 된 피스톨을 던져버리고 낯선 사나이와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그날은 후텁지근한 밤이었다. 대개 일몰과 함께 숲이 우거진 산 너머로부터 불어오던 시원한 미풍이 그날 저녁 따라 샌디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계곡은 송진 냄새로 숨이 막힐 듯했고 길바닥에는 버려진 나무토막들이 썩는 듯 고약하고 메스꺼운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한낮의 흥분과 뜨거운 열기는 아직도 마을에 가득 차 있었다. 강둑을 따라 불빛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황갈색 물줄기 위에는 아무런 불빛도 반사되어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잠긴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통운회사 사무실의 창문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커튼도 없는 창문을 통해 구경꾼들은 안에서 테네시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의 저 먼 곳에는 시에라 산맥이 힘없이 우뚝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 위로는 맥없이 빛나는 별들의 모습이 보였다.
테네시의 재판은 예전의 자신들이 임의로 체포하고 기소했던 사건들의 전례에 대해서 다소 정당화시킬 책임을 느끼고 있던 판사와 배심원들에게 걸맞게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샌디바의 법률은 추호도 용서의 여지를 갖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보복적인 성격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범인을 쫓던 흥분과 개인적인 감정도 가라앉은 뒤였다. 테네시를 체포하여 수중에 보호하고 있는 터라 그들은 어떠한 변론도 침착하게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미 들은 변론은 재판을 진행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는 아무런 의혹의 여지도 없기 때문에 죄수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은전은 모두 인정해 줄 셈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테네시가 교수형에 처해 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들은 그의 무모한 행동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변론을 허용해 주었다. 죄수보다 오히려 판사가 더 설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죄수는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잔인한 책임의식을 즐기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이러한 게임에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
테네시는 판사가 묻는 말에 변함없이 이렇게 익살스러운 대꾸로 일관했다. 테네시를 직접 체포한 판사는 잠시 그날 아침 테네시를 만난 순간 현장에서 사살하지 않은 점을 후회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법관으로서 가질 수 없는 태도라 생각하고 곧 그러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테네시의 단짝이 그를 위해 변호하고자 문밖에 와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는 즉시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마 재판절차가 귀찮을 정도로 까다롭고 복잡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느낀 젊은 배심원들은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로 그를 환영한 것 같았다.
분명히 테네시의 단짝은 특별난 구석이 없는 인물이었다. 키는 작고 몸은 뚱뚱한 편이며 얼굴은 네모 꼴인데다 신비스러울 만큼 붉은 빛깔로 햇빛에 그을려 있었다. 헐렁한 오리털 잠바에 붉은 흙탕물이 튀어, 지저분한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어떤 경우에나 이상해 보였겠지만 이날 따라 더욱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들고 있던 무거운 융단 가방을 제 발치에 내려놓으려고 허리를 구부리자, 그의 바지에다 천 조각을 덧붙여 기운 것은 본래 덜 화려하게 옷을 입기 위한 의도였음이, 일부 알려진 소문과 추측 그대로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엄숙한 태도로 발걸음을 옮기며 방안의 모든 사람과 억지로 꾸민 듯 어색하기만 한 친근한 표정으로 악수한 뒤 그의 안색보다 약간 밝은 정도의 붉고 커다란 비단 손수건을 꺼내 심각하고 당혹스러운 빛이 역력한 얼굴을 닦고는 억센 손으로 테이블을 짚어 몸을 가누면서 판사를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이곳을 지나가던 참이었습니다.”
그는 변명하듯 서두를 꺼냈다.
“그리고 잠깐 들어와 저기 저 동업자 테네시에 관한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한번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이 꽤 덥군요. 제 기억으로는 아마 이곳에선 제일 더운 밤 같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누구도 과거의 날씨가 어떠했는지 애써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그는 다시 호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마 동안 열심히 얼굴을 닦았다.
마침내 판사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피고를 위해 할 말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테네시의 단짝은 안도의 숨을 쉬듯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테네시의 친구입니다. 늘 눈에 띄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궂은일이나 좋은 일, 행·불행 속에서 그를 안지 벌써 4년이나 되었습니다. 저 친구가 세상사는 방법이 나의 방법과 다른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저 젊은 친구에게는 이제까지 갖고 있던 목표도, 생기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물론 모릅니다. 그런데 판사님이 저에게 남자 대 남자끼리 마치 비밀 얘기라도 하듯 물어보셨지요. 저 친구를 위해 할 말이 있느냐구요. 그래서 판사님께 말씀드리겠는데, 남자 대 남자끼리, 마치 비밀이야기 하듯 말입니다. 도대체 자기 친구의 일을 어떻게 안단 말씀입니까?”
“그것이 자네가 하고 싶었던 말인가?”
판사는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아마 일시적인 동정심이 법정을 인간적인 분위기로 바꾸지나 않을까 염려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테네시의 단짝은 계속해서 말했다.
“저 친구에게 불리한 얘기를 하는 것은 내가 할 짓이 아니지요. 그리고 그의 죄명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테네시는 돈이 궁했습니다. 조금도 아닌 무척이나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이든 친구에게 돈을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글쎄요, 테네시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는 숨어서 낯선 사람을 기다리다가 그 낯선 사내의 등을 치고, 그럼 판사님은 숨어서 그를 기다리다가 잡아옵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쉬운 일이지요. 공정한 마음을 가지신 판사님, 그리고 공정한 마음씨를 지닌 여러분, 사실이 그렇지 않은지 묻고 싶습니다.”
“피고.”
판사는 테네시 단짝의 말으 가로막으며 테네시를 불렀다.
“그대는 이 사람에게 물어볼 말이 있는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테네시의 단짝은 얼른 말을 이었다.
“저는 저 혼자서 이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사정은 이렇습니다. 테네시 저 친구는 한 낯선 사람에게 거칠고 값비싼 대가를 치를 만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지금 끌려와 있고요. 그렇다면 얼마면 그 보상이 되겠습니까? 누구는 더 많이 얘기하고 누구는 더 적게 얘기하겠지요. 여기 천 칠백 달러 값어치의 금광석과 시계가 있습니다. 제 전 재산입니다. 이것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제지하기도 전에 테네시의 단짝은 융단 가방 속의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쏟아 놓았다.
순간 그의 생명이 위태로울 뻔했다. 한두 명의 사나이가 자리에서 튀어 일어나고 몇몇 사람은 감추어 둔 무기를 손으로 더듬어 찾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던져버립시다.”
라는 소리도 터져 나왔으나 판사는 손짓으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테네시는 웃고 있었다. 주위의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테네시의 단짝은 손수건으로 다시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방안의 질서가 잡히고, 사람들이 테네시의 죄는 돈으로 용서될 수 없다는 강력한 비유와 수사로 테네시의 단짝을 설득하려 하자 그의 얼굴은 더욱 심각한 핏빛 색깔로 바뀌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그의 억센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테이블 위에 놓인 금을 천천히 융단 가방 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마치 방안을 압도하고 있는 고조된 정의감을 미처 완전히 깨닫지 못해 당혹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제시한 액수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믿으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판사 쪽으로 몸을 돌려 말했다.
“여기 지금 있었던 일은 제 친구와는 상관없이 저 혼자 한 일입니다.”
배심원들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 나가려는 그를 판사가 불러세웠다.
“자네가 테네시에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게나.”
그날 저녁 처음으로 테네시와 그의 친구의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테네시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면서 말했다.
“이겼네, 친구.”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테네시의 친구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볼 겸해서 들렀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테네시의 손을 힘없이 떨구면서
“밤이 무척 덥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다시 얼굴을 닦고는 아무 말 없이 방에서 나가 버렸다.
두 사람이 살아 만난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고집이 셌든, 마음이 약했든, 속이 좁았든지 간에 적어도 청렴결백했던 린치 판사에게 제공된 뇌물이라는 전대미문의 모욕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확고하게 만들어, 흔들릴 수 있었던 테네시의 운명이 그대로 결정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새벽녘에 테네시는 단단히 호위를 받으며 말리스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그의 운명을 맞았다.
테네시가 어떻게 그의 운명을 맞이하였는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침착하게 받아들였는가, 아무 말도 남기려 하지 않았던 태도 및 사형집행위원회의 준비가 얼마나 완벽했던가 하는 것들은 미래의 범죄자들에게 향한 경고 및 본보기가 첨가되어 『레드독 클래리언』지의 편집장에 의해 자세히 보도되었다. 그도 사형집행장에 참석했는데 나는 항상 독자들에게 그의 힘찬 글을 읽어보라고 권하곤 했다. 그러나 그 한여름날 아침의 아름다움, 지상과 공중과 하늘의 축복, 잠을 깬 숲과 언덕의 생기, 자연의 즐거운 소생과 희망,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들 사이로 흐르던 무한한 평온은 사회가 줄 수 있는 교훈이 못 된다고 해서 신문에 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행위가 저질러지고, 나름대로의 가능성과 책임감을 가졌던 한 생명이 보기 흉한 꼴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렸다가 사라져 갈 때도 전과 다름없이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났으며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레드독 클래리언지의 처사도 옳은 것 같았다.
교수대를 둘러싸 사람들 틈에서 테네시의 단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을 때 그들은 길가에 움직이지 않고 멈추어 서 있는 당나귀 수레의 형체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곧 당나귀 제니와 두 바퀴 달린 수레가 바로 다름 아닌 테네시의 단짝의 것임을 알아보았다. 그 수레는 테네시의 단짝이 불하받은 광구에서 흙을 실어나를 때 쓰던 것이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바로 수레의 주인이 침엽수 밑에 앉아서 붉게 빛나는 얼굴의 땀을 닦아내는 모습도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물어보자 그는
“위원회의 결정이 그대로 시행되었다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실어가려고 왔다.”
고 대답했다. 그는 서두르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그날 일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버려두고 가면, 시체를 가져가려는 것이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장례식에 오실 생각이 있는 분이 계시면 오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는 내가 이미 언질을 주었듯이 이곳 샌디바 특징 중의 하나인 유머 감각에서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이상의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중 3분의 2는 즉시 그렇게 하겠다고 대꾸해 주었다.
테네시의 시체가 친구의 손에 넘겨졌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교수대를 향해 그의 수레가 끌려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그 속에 세광(洗鑛)통 조각으로 만든, 소나무 껍질과 잎이 반쯤 채워진, 볼품없는 장방형의 상자가 들어있음을 보았다. 더욱이 수레는 버드나무 가지로 장식되어 있었고, 침엽수 꽃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시체를 상자 속에 누인 뒤 테네시의 단짝은 타르를 바른 도포 자락 하나를 그 위에 덮었다. 그리고 수레 앞의 좁은 의자에 침울한 표정으로 올라타 끌채 위에 발을 얹고는 당나귀를 앞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수레는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제니의 습관대로 점잖은 보조에 맞추어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반은 호기심에서 반은 장난으로, 그러나 호의적인 태도로 수레 곁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몇 사람은 그 수수한 영구차의 앞에서 걸었고 또 몇몇 사람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길이 좁아지게 되어서였는지, 사람들은 둘씩 뒤로 처져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장례행렬을 흉내 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손가락으로 가짜 트럼본을 만들어 장송행진곡 연주 흉내를 내던 잭 폴린스비도 그 짓을 그만두었다. 아마 자신의 장난을 한껏 재미있게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익살꾼으로서는 자격이 없었던 것 같았다.
장례행렬이 그리즐리 협곡 안으로 들어섰을 때 길은 장례용 포목과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다. 발을 붉은 흙 속에 묻은 삼나무가 길 따라 일렬로 죽 늘어서서 휘어진 가지를 통해 그 밑을 지나가는 영구 위로 야릇한 축복의 손길을 던지고 있었다. 행렬이 지나가면서 깜짝 놀라 당황한 토끼 한 마리가 길 옆 양치류 속에서 발딱 몸을 세우고는 가슴만 두근거리고 있었다. 다람쥐들도 좀 더 높은 가지에서 지나가는 행렬을 자세히 내려다보려고 부산을 떨었다. 날개를 펼친 여치들은 마치 시종처럼 행렬 앞에서 퍼덕거렸다. 샌디바 어귀에 이르러 테네시의 친구의 쓸쓸한 오두막이 보일 때까지 그러한 장면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호감을 갖고 바라보려 해도 그의 오두막은 아름다운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광부의 안식처로서의 특징이랄 수 있는 멋없는 집터, 거칠고 볼품없는 윤곽, 단조로운 세부 등이 쇠퇴해 가는 모습에서 나오는 황량한 느낌과 함께 모두 그곳에 있었다. 오두막에서 몇 발 떨어진 곳에는 엉성한 울타리가 쳐진 땅이 보였다. 짧으나마 테네시의 단짝이 결혼의 단꿈을 즐길 때 정원으로 가꾸던 땅이었는데 이제는 양치류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가면서 우리는 최근에 곡식을 심으려 파 놓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무덤을 만들기 위해 파 쌓아 놓은 흙더미임을 발견하고는 모두 놀라고 말았다.
수레가 울타리 앞에서 멈추어 서자, 테네시의 친구는 사람들이 도와주겠다는 것을 여태껏 그랬듯이 모든 것을 혼자 해치우겠다는 태도로 거절하고, 볼품없는 관을 등에 짊어지고 수레에서 내린 뒤 혼자서 얕게 파인 무덤 속에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관 뚜껑으로 준비한 판자 위에 못을 박고는 그 옆의 작은 흙더미 위에 올라서서 모자를 벗고 난 뒤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조사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제각기 흩어져 나무 그루터기나 둥근 돌 위에 걸터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테네시의 단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이 하루 종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고 하면 그가 의당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가 집에 갈 수 없게 되었다면 가장 가까운 친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야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지요. 여기 테네시는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이제 우리가 방황하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석영 한 조각을 집어 들어 생각에 잠겼다가 제 소매에 문지르고는 말을 이었다.
“방금 여러분이 보셨듯이 내가 테네시를 등에 업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때 내가 그를 여기 이 오두막집으로 데리고 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가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때 나와 제니가 저 언덕 위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수레에 싣고 집으로 끌고 온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이라니…….”
그는 또 말을 멈추고 석영 조각을 소매에 대고 문질렀다.
“여러분, 이러한 일이 친구에겐 좀 가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 여러분…….”
그는 자루가 긴 삽을 집어 들면서 갑자기 마지막 말을 이었다.
“장례식은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하신 여러분들께 저와 테네시가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도와주겠다는 제의도 뿌리치고 그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채, 무덤을 흙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잠시 주저하다가 곧 모두 그곳을 뜨고 말았다. 사람들이 샌디바의 모습을 가리고 있는 작은 산마루를 넘을 때 몇몇 사람은 뒤를 돌아다보고 테네시의 친구가 무덤을 채운 뒤 삽을 양 무릎 사이에 끼우고 붉고 큰 비단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채 무덤 위에 앉아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몇몇 사람은 거리가 멀어 그의 얼굴과 손수건을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아직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날 있었던 일의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테네시의 단짝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뒷조사를 해본 결과 그가 테네시의 범죄행위에 연루된 사실이 없음은 밝혀졌으나 그가 대체로 제 정신이었던가 하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샌디바 사람들은 그를 찾아가 여러 가지 선의의 친절을 베푸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의 건강했던 몸과 억센 힘은 눈에 띄게 쇠퇴해 갔다. 그리하여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테네시의 무덤 위 돌투성이 흙더미에서 작은 풀잎이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어느 날 밤, 오두막집 옆의 소나무들이 폭풍우에 흔들리며 그 작은 가지로 지붕 위를 쓰다듬고, 발아래에서 불어난 강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자, 테네시의 단짝은 베개에서 머리를 들며,
“테네시를 맞으러 갈 시간이군, 제니를 수레에 매야 할 텐데…….”
라고 중얼거렸다. 돌봐주던 사람이 없었다면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버둥대면서도 그는 환상을 놓지 않았다.
“자, 이제, 천천히, 제니, 천천히, 그렇지, 나의 착한 아이! 무척 어둡군, 바퀴자국을 잘 봐, 그리고 그 친구도 잘 찾아보라구, 착한 나귀야. 너도 알다시피 그 친구 인사불성이 되어 취해 있을 때 곧잘 바퀴 구덩이 속에 넘어져 있었잖아! 자, 언덕 꼭대기 위의 소나무가 있는 곳까지 곧장 올라가자! 저기다, 내가 얘기한 대로야. 그 친구 저기 있을 거라구! 이번에도 이 길로 오는군, 그것도 혼자서, 취하지도 않고 멀쩡하군. 얼굴도 환한데. 어이 테네시, 이봐, 친구!”
그리고 이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