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 돌아오다
Andre Gide
나만이 아는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의 말씀을 여기에 그려 놓았다. 마치 옛날 세 개의 연속된 화폭 속에 각기 그림을 그려 넣듯이 말이다.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강한 영감을 도외시하고서 하느님과 내 자신의 승리에 관해서는 증명하지 않으련다. 그러나 만약 독자들이 내게서 어떤 동정심 같은 것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내 그림 속에서 그것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 그림 한 귀퉁이에 적혀 있는 기증자처럼 탕자와 단짝이 되어 그와 미소를 나누면서도 한편 눈물젖은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으니 말이다.
집을 나가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야 탕자는 자기가 찾던 행복을 끝내 발견 할 수 없고, 또한 자신이 누리던 향략마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탕자는 배고픔으로 밑바닥을 헤매며, 허망한 꿈으로 지친 자신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의 모습이며, 어머니가 허리를 굽혀 바라보시던 널찍한 자기 침실이며,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정원과 언제나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어 했던 집, 그리고 분배받지 못한 몫의 재산이 아직도 자신에게로 귀속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을 조금도 정이 가지 않는 인색한 형 등을 하나하나 회상해 보는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믿고 계실 아버지는, 나를 보시게 되면 지난날의 내 허물을 개의치 않으시고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먼지투성이가 된 머리를 숙이고 초라한 몰골로 아버지 앞에 다가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아버님, 제가 하느님과 아버님께 진정으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하고 사죄를 한다면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나를 잡아 일으키시면서,
'얘야,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하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탕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자기 집 지붕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저녁때쯤 언덕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숨겨 보려는 생각으로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아버지의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저절로 무릎이 꿇렸다. 그리고 땅바닥에 쓰러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자기가 그분의 아들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아버지를 치욕스럽게 만든 것이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졌다.
그는 몹시 배가 고팠다. 그러나 낡아 빠진 외투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곤 지난날 자기가 돌봐 주던 돼지 먹이인 도토리 한 줌 밖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집에서는 분주히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현관 앞 돌층계로 어머니가 나오시는 모습이 똑똑히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 없어서 언덕을 내려가 뜰 안으로 들어섰다. 자기가 그리던 개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마구 짖어댔다.
탕자는 하인들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했지만, 의심 많은 그들은 슬슬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은 방탕한 자기 아들을 대뜸 알아 보았다. 주인은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인은 두 팔을 벌려 반갑게 아들을 맞았다. 아들은 그제서야 그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오른손은 치켜들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했다.
"아버지! 하느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아버지를 부를 수조차 없는 불초 죄인이오니 이제는 아들로 생각지 마시고 머슴으로나마 써 주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을 얼싸안았다.
"내 아들아! 네가 내게로 돌아온 오늘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날이다!"
아버지는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이마에 입 맞추고 있던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하인들에게 일렀다.
"어서 들어가 장 속에 넣어 둔 가장 좋은 옷을 가져오너라. 그리고 내 아들의 발에 신발을 신겨 주고 손가락엔 값진 반지를 끼워 주어라. 그리고 외양간에 가서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 준비를 하여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내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
아버지는 감격에 겨워 몸소 달려 나갔다. 이 기쁜 소식을 그 자신이 직접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보, 죽었다고 슬퍼하던 아들이 다시 돌아왔구려!"
기쁨에 겨운 그의 목소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다못해 하인들까지도 마치 축제와 같이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이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바로 그의 형이었다.
천성이 옹졸한 그는 아버지의 분부로 다 같이 식탁에 앉았지만,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것이다.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일이 없는 자기 자신보다 무엇 때문에 저런 죄인에게 훨씬 더 큰 영광과 환대를 베푼단 말인가?'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마지못해 만찬에 참석은 하였지만, 내일 부모님께서 동생을 꾸짖을 때 자기도 그를 엄격하게 훈계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다짐했다.
바람 한 점 일이 않는 밤에 횃불은 활활 타올라 하늘 높이 치솟았다. 성대한 만찬을 마치고 온 집안 식구들은 환희에 지쳐서 차례차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탕자의 방 옆방에 있는 그의 어린 동생은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책망
주님!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당신 앞에 무릎을 꿇었나이다. 제가 당신의 비유를 회상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여기 다시 옮겨 놓는 것은, 당신의 탕자를 통해 저는 제 자신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비탄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당신의 말씀을 부르짖게 하는 당신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에서는 많은 일꾼들에게도 풍성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다니! 탕자는 아버지의 힘찬 포옹을 상상해 보았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 그의 마음을 적셔 주었다. 그는 집에서 지내던 지난날의 갖가지 일, 슬프고, 기뻤던 수많은 일들을 상상해 보았다. 어느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도 옳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언덕을 넘어서서 자신이 떠나왔던 푸른 지붕을 보았을 때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곧 집으로 달려 들어가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는가? 집에서는 모두 기다릴 텐데, 살찐 송아지가 눈에 띄었다. 그걸 잡아서 음식을 장만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잠깐만 기다려라 탕자! 나는 너를 염려하고 있다. 너는 먼저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난 다음 아버지께서 너에게 하신 말씀을 나에게 전해다오.
'아버지! 비록 큰아들이 자기의 의견을 아버지께 강요할지라도 형의 입을 통해서라도 종종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해 주소서!'
"얘야, 너는 왜 내 곁을 떠났니?"
"저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어디에나 계신 줄 압니다. 저는 아버지를 외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괜한 말은 그만두기로 하자. 나는 너에게 주려고 집 한채를 마련해 두었다. 그 집은 물론 너를 위해 지은 집이었어. 너의 영혼이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그리고 네 영혼이 분수에 맞도록 아늑하고 편리하게 말이다. 그리고 네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세대가 일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상속자인 너는 무슨 까닭에 그 집에서 도망쳤느냐?"
"그 집은 저를 가둬 놓았기 때문이었어요. 그 집은 아버지의 집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집은 너를 위해 내가 지은 것이야. 지은 사람은 바로 네 애비다."
"아버지께선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형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땅이나 집, 그 밖의 모든 것을 손수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비록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겐 자기의 머리를 쉬게 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한 거야. 너는 너무 교만하구나! 너는 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에서 잠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꼭 그렇게 생각하실 것만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들판에서 자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야 다르지. 그렇지만 너는 가난한 게 아니었잖니? 이 세상엔 부귀를 내동댕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너를 누구보다도 부유하게 해 주지 않았니?"
"아버지, 저는 집을 나설 때 제가 지니고 갈 수 있는 재물을 모조리 갖고 갔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아요? 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는 재산이 제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는 네가 지니고 간 재물을 모조리 낭비해 버렸지!"
"저는 아버지의 황금을 쾌락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교훈을 환상으로 바꾸었으며, 저의 순수성을 운율로, 또한 저의 적극성을 욕망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소박한 네 애비가 네 속에 넣어 준 수많은 덕성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새로운 정열이 제 마음에 불을 붙였으므로 저는 더욱 아름답게 불태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성스러운 벌판에 모세가 발견한 순수한 불꽃은 광채를 발했지만, 무엇 하나 태워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회고해 보려무나."
"저는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는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나는 너에게 갈증난 목을 축여 주는 사랑을 가르쳐 주련다. 나의 아들아! 집을 나간 너는 그 동안에 무엇을 얻었단 말이냐?"
"쾌락의 기억뿐입니다."
"빈곤은 쾌락의 뒤를 좇게 마련이란다."
"아버지, 저는 그 빈곤 속에서 비로소 아버지가 곁에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빈곤이 네 발걸음을 이 애비에게로 돌리게 했단 말이냐?"
"모르겠습니다.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저는 메마른 황야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너의 빈곤이 너로 하여금 부귀의 가치를 깨닫게 했나 보구나."
"아닙니다. 아버지 제 말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저의 마음은 갖가지 시련으로 텅 비게 되자 사랑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재물을 낭비하여 열정을 사들였습니다."
"그래, 내 곁을 떠나 있으니 행복하더냐?"
"저는 아버지 곁을 떠나 와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네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게 한 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게으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으름이라고? 대체 너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니? 사랑으로 말미암아 돌아 온 게 아니란 말이냐?"
"아버지, 아까도 제가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저는 메마른 황야에서 아버지를 가장 사랑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기에 기진맥진했습니다. 적어도 집에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래, 그건 사실이야. 집에서는 하인들이 무엇이나 필요한 것은 마련해 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너를 집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기근이었구나!"
"뿐만 아니라 공포와 질병에 시달리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음식으로 말미암아 건강을 해쳤습니다. 저는 나무 열매와 들판의 메뚜기와 벌꿀로 연명을 해 나갔어요. 고생을 해보려는 의욕이 저의 열정을 불붙여 주었지만, 차츰 그것도 저의 체력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추운 밤이면 제 침대 위에 포근한 이불로 덮힌 따뜻한 침실이 생각났습니다. 먹을 것을 못 얻어 끼니를 거를 때면, 집에서는 남아돌 정도로 풍성한 음식들이 저의 공복을 채워 주던 일을 회상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빈곤과 기근과 싸울 만한 힘과 용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어제의 살찐 송아지는 네 구미를 돋구었겠구나."
탕자는 몸을 내던져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아버지! 아직도 저의 입속에는 제 양식으로 삼고 있던 달콤한 도토리의 향긋한 맛이 남아 있습니다. 어떠한 음식도 도토리의 그 맛을 능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못난 자식!"
아버지는 아들을 잡아 일으키며 말을 계속했다.
"내 말이 너무 심했던 모양이구나. 네 형이 그러기를 바라더구나. 지금 여기서는 네 형이 모든 것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더러 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한 것도 바로 네 형이란다. 이 집 밖에서는 절대로 너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하더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 그렇지만 너를 낳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네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너를 길거리로 몰아냈는가를 말이야. 나는 네가 지쳐 돌아오기를 몹시 기다렸다. 만일 내가 와주기를 바랐다면.... 나는 곳 네게로 달려갔을 것이다."
"아버지! 그렇다면 저는 돌아오지 않고도 아버지를 뵐 수 있을 뻔했군요?"
"그러나 네 몸이 쇠약해졌으니 너는 집에 돌아오기를 참 잘했다. 이제 그만 물러가거라. 네 방으로 돌아가거라. 오늘은 그만 가서 푹 쉬어라. 그리고 내일은 형의 이야기를 들어 봐라!"
형의 책망
탕자는 불손한 태도로 형을 대하려고 했다.
"형님!"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형님 비슷한 곳이라곤 거의 없거든요."
형이 대답했다.
"그건 네 잘못이다!"
"그것이 어째 제 잘못입니까?"
"나는 언제나 규범 속에서 살아왔다.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은 반드시 오만의 열매를 맺거나 오만의 꼬투리가 되게 마련이다."
"그러면 저에게는 허물을 빼놓으면 아무것도 없단 말씀인가요?"
"너는 규범 속에 꼭 맞는 것만이 미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밖의 모든 관습은 억제해야 한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억지로 몰아내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형님의 주장은 역시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것이죠."
"너더러 억지로 몰아내라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의 뜻은 되도록 줄이면 좋다는 것이다."
"형님 말뜻을 잘 알겠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제 미덕을 줄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너의 미덕을 값지게 본 거야. 너는 너의 미덕을 과시해야 해. 내 말을 명심해라.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너 자신을 위축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양한 소질을 갖고 있는 너는 정신과 육체의 반항적 요소가 마치 교향악과 같이 조화를 이루게 되고, 너의 단점은 너의 장점을 길러줄 뿐 아니라, 너의 선량한 기질을 순종의 미덕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제가 찾아 헤맨 것도, 그리고 황야에서 발견한 것도 역시 제 자신의 발전이었습니다. 아마 형님이 하시는 말씀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내가 너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별로 심한 말씀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너에게 하신 말씀을 나도 대충 짐작은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언제나 현실성이 희박하고 막연하거든. 게다가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시지.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아버지의 입을 빌리곤 하지.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인들 곁에서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나 뿐이란 말이다. 또한 아버지를 이해하려면 마땅히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나는 형이 없을 때도 아버지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로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너는 아버지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거나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듣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 아래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아버지의 집 안에서 말씀이군요?"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불러들인 거야. 너는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게 아니냐? 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더라도 말이다. 어서 말해 보아라. 너로 하여금 집을 나서게 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더냐?"
"저는 아버지의 품 안이 세상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은 형님이 바라는 그러한 인간은 못 됩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땅, 다른 경작지와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는 아직 인간의 흔적이 미치지 않은 거리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또 다른 제 자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뛰쳐나간 것입니다."
"만약 내가 너처럼 이 집을 버리고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한번 상상해 봐라. 아마도 하인들과 도둑들이 우리 재산을 모조리 약탈해 갔을 것이다."
"저는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그와는 전혀 다른 재물을 동경하고 있었으니까요." "
"너의 태도는 너무도 무례하구나. 얘야! 무질서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단다. 너는 아직도 인간이 어떠한 혼란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구나. 그렇다면 너는 먼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혼란 속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단다. 성령이 인간을 끌어 올리지 않으면 인간은 성령에 눌리어 다시 혼란 속으로 빠지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나서 성령을 깨닫게 되어서는 안 된다. 너를 구성하고 있는 갖가지 요소들이 혼란한 상태로 돌아가려면 너는 이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궁지에 빠져봐야 해. 그러나 인간을 이 상태에 동화시키려면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는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너는 주어진 여건을 붙잡고 매달려야 해. 네가 지닌 것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한다고 성령은 경고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도 너의 왕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네가 지니고 있는 것은 너의 왕관이며, 그것은 동시에 다른 사람이나 너 자신에게 미치는 왕권이라고 할 수 있지.
찬탈자는 너의 왕관을 노리고 있다.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네 주위와 네 마음속을 배회하고 있단다. 얘야! 힘껏 움켜잡아 절대로 놓치지 말아라!"
"저는 이미 오래전에 손에 쥐고 있던 닻줄을 놓아 버렸습니다. 이젠 나의 재산은 없으니까요."
"아니다. 할 수 있다. 내가 힘이 되어 줄 테니까. 네가 집을 떠난 사이 나는 네 재산을 지켜왔단다."
"저도 성서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그 구절을 모조리 인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그것은 계속되었지. 승리한 자를 나는 내 성전의 기둥으로 삼을 것이며, 그는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라는 구절은 저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탕자가 계속 말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너는 그곳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구나. 아직도 그곳을 동경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것은 이미 제가 돌아 온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너는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데 어디 간들 만족할 수 있겠니? 너의 재물이 있는 곳은 오직 여기뿐이잖겠니?"
"형님이 재산을 지켜준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네가 낭비하지 않은 재산, 즉 우리 공동의 소유인 토지 말이다."
"그럼 제 개인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너에게 주실지도 모르는 특별한 몫이 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주제넘은 녀석! 네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우리 형제 중에 가장 운 좋은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너에게 미리 밝혀두지만 그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각기 분배받은 재산은 이미 너를 파멸로 몰아넣었으니 말이야. 너는 그 재산을 얼마 못 가 탕진해 버렸잖니."
"그 밖의 것은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너는 그것을 찾게 된 것 아니냐? 오늘을 이쯤해 두자. 어서 안에 들어가 푹 쉬어라."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몹시 지쳤으니까요."
"너의 피곤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럼 어서 쉬어라. 내일은 아마 어머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다."
어머니와의 대화
"얘야! 네 형의 말을 들으면 너는 아직도 반항적이라는데, 우리 좀 더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겠니? 어미의 발밑에 엎드려 어미 무릎에 이마를 파묻고, 반항하는 너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어미의 손길을 느끼고 너는 어떠한 심정이 되었느냐? 너는 어쩌자고 그와 같이 오랫동안 이 어미를 버려두었니? 그리고 눈물로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구나. 무엇 때문에 이제야 눈물을 흘리니. 얘야! 이 어미에게로 돌아온 지금에 와서는 너를 기다리느라고 나의 눈물을 흐르다 못해 메말라 버렸다."
"어머님께서는 저 같은 자식을 기다리고 계셨군요!"
"네게 돌아오기를 잠신들 고대하지 않은 때가 있었겠니? 밤마다 잠들기 전이면 나는 생각했었다. 오늘 밤에 그 애가 돌아오면 문이나 열 줄 아는지? 그런저런 생각으로 좀체로 잠들지 못했다. 또한 아침에 눈을 뜨면 날마다 그 애가 오늘은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기도를 드렸지. 나는 이처럼 날마다 기도를 올렸으니 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겠니!"
"어머니의 기도가 제 마음을 돌이켜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비웃지는 말아라."
"어머니,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돌아왔습니다. 보세요. 저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어머니 곁에 와 있으니 이제야 제가 집을 나간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다시 집을 떠나지는 않겠지?"
"다시는 떠날 수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 너를 집 밖으로 몰아내더냐?"
"어머니, 그런 생각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저를.... 그저 제 자신이 뛰쳐 나갔습니다."
"그래 우리에게서 뛰쳐 나가면 행복할 것 같더냐?"
"저는 행복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찾고 있었단 말이냐?"
"저는.... 또 다른 제 자신을 찾아서...."
"너는 부모의 자식이며 형제 중의 하나가 아니더냐?"
"저는 형제를 닮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지요. 저는 지금 돌아와 있으니까요."
"그야 그렇지. 그러나 좀 더 이야기를 하자꾸나. 너는 다른 형제들과 전혀 다르다고만 생각해서는 못쓴다."
"이제부터 저는 가족들과 닮도록 애쓰겠습니다."
"너는 마침 체념하듯이 말하는구나."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여정은 저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너는 정말 몹시 늙었구나!"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요."
"딱두하지! 틀림없이 너의 잠자리나 식탁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을 거야."
"저는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때로는 익지 않은 과일이나 상한 과일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래 시장한 것밖에는 괴로운 일이 없더냐"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며, 밤중의 차가운 바람,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밭, 두 발을 피 투성이가 되게 하는 가시덤불, 이런 것들도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보다도 형님에겐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머슴 노릇도 했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것을 숨겼느냐?"
"어느 날 저를 혹사하는 질이 나쁜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저의 자존심을 극도로 자극하고, 먹을 것마저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생각했습니다. 머슴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저는 꿈속에서 집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탕자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어머니는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젠 어떻게 할 셈이냐?"
"이미 어머님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될 수 있는 대로 형제들 간에 화목하고, 우리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형님처럼 아내를 맞이하여 살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아마 누군가 점을 찍어둔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골라 주신다면 어떤 여자라도 좋습니다. 어머니께서 형님에게 하신 것처럼 어머니 의사에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나는 네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주고 싶다."
"상관없습니다. 저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저는 지난날의 자만심을 일체 버리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어머니 뜻대로 하세요. 저는 그저 어머니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장차 저의 아이들고 저와 마찬가지로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결심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너의 결심이 헛되지 않다고 나는 믿고 있단다. 그런데 얘야, 네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구나. 보살펴 주어야 할 일이."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누구를 말씀하시죠?"
"네 동생 말이다. 네가 집을 떠날 때 열 살도 채 안 된, 너는 통 관심도 두지 않았던 그 애 말이다. 그런데 그 애가...."
"어머니, 어서 말씀하세요.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아마 그 애를 보면 마치 너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그 애는 지금 네가 집을 나서기 전의 모습과 꼭 같으니라."
"저하고 같다구요?"
"집을 나서기 전의 너하고 말이야. 지금의 네가 아니라...."
"그 애도 다시 저처럼 되겠지요."
"당장 마음을 되돌리게 해야 한다. 그 애와 말해 보렴. 아마 너의 말은 귀담아들을 거다. 여행 중에 겪은 일들을 낱나이 이야기해 주려무나. 너처럼 쓸데없는 고생은 하지 않도록 말이다."
"어머니는 동생에 대해 무엇 때문에 그처럼 염려를 하고 계십니까? 단순히 외양만 보시고서!"
"아니다. 너와 그 애는 닮은 점이 많단다. 지금 그 애를 염려하는 것은, 너에게는 애초부터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일들이 그 애에겐 걱정이 되는구나. 그 애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책들만 읽는다고는 할 수 없거든."
"그럼 그뿐인가요?"
"그 앤 종종 동산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간단다. 너도 알겠지만 그 곳에서는 온 장안이 다 내려다보이지."
"저도 기억이 나는군요, 어머니 그리고 또...."
"그 애는 집에 있는 것 못지않게 곧잘 농장으로 나간다."
"거기서 무얼 하지요?"
"나쁜 짓이야 안 하지. 그렇지만 그 애가 찾아가는 사람은 소작인들이 아니고 우리와는 질이 다른 불량배들이 아니겠니! 더구나 이 지방 사람도 아닌데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애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양이야."
"네, 돼지 치는 사람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래, 맞았다. 너도 그 사람을 알고 있구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네 동생은 저녁마다 그를 따라 돼지우리로 나간단다. 그리고 식사 때나 되어야 간신히 돌아와서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거든. 더구나 옷에선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지. 타일러도 소용없고 야단치면 반항한단다. 하루는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그 녀석을 좇아 글세 문간까지 나가지 않겠니! 돼지 먹이를 주려고 돼지를 몰고 나가는 시간에 말이다."
"그 애도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너도 그것을 알고 있지 않았니? 그 애도 어느 때인가 달아날 거다. 나는 그걸 확신하고 있단다. 언젠가는 그 애가 뛰쳐 나갈 것이라는 것을...."
"아니예요, 제가 그 애에게 타이르지요. 어머니, 염려 마세요."
"네 말이라면 그 애도 귀담아들으리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 애가 네가 돌아온 첫날 저녁에 너를 얼마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너도 알겠지. 그리고 네가 입고 있던 그 누더기옷은 얼마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는지! 잠시 후 네 아버지는 너에게 비단옷을 입혀 주었지. 나는 그 애가 네가 입은 그 두 가지 옷을 혼동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단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 누더기옷이 아닌가 생각되는구나. 그러나 지금은 이런 생각도 우습게 여겨진단다. 얘야, 만약 네가 그와 같이 비참한 꼴이 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너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안 그러니!"
"어머니! 제가 어머니 곁을 어떻게 떠날 수 있었는지, 저 자신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모든 이야기를 그 애에게 들려주려무나."
"네, 내일 저녁엔 그 애에게 모든 이야길 들려주겠어요. 어머니 이젠 졸음이 오는군요. 제 이마에 키스해 주세요. 마치 제가 어려서 잠들어 있을 때 하시던 것처럼 말예요."
"돌아가 자려무나, 나는 너희들을 위해 기도를 드려야겠다."
동생과의 대화
탕자는 손에 램프를 들고 그의 방 곁에 있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넓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동생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누워 있었다. 그는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그 애가 잠들어 있다면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누가 못하게 합니까?" "나는 네가 잠든 줄 알았지."
"잠들어야만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꿈을 꾸고 있던 모양이군. 그래 어떤 꿈을 꾸었지?"
"형과는 상관없는 거요! 꿈을 꾸고 있는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걸 형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소?"
"그래, 꿈들이 매우 흐릿한 모양이구나. 그래도 내게 이야기해 준다면 나대로 성명해 볼 텐데!"
"형은 자기 꿈이나 가꾸세요, 내 꿈은 내버려 두고요. 그것이 더 자유롭지 뭐예요! 형은 여기 뭣하러 왔어요? 남의 잠이나 훼방놓자는 겁니까?"
"너는 지금 잠자고 있는 게 아니잖니? 나는 너와 이야기를 하러 온 거야."
"저에게 할 이야기가 있나요?"
"없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니?" "그럼 잘 가세요."
탕자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 안을 희미하게 비치는 램프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되돌아와 침대가에 앉아서, 어둠 속에 돌아누운 아우의 이마를 한참 동안 쓰다듬고 있었다.
"나도 형에게 대들긴 했지만, 너는 지난날 내가 형님에게 한 것보다 더 거칠게 대하는구나."
그는 벌떡 일어났다.
"어서 말해 봐요. 형을 제게 보낸 것은 큰형이지요?"
"아니야, 큰형이 아니고 어머니란다."
"그러면 그렇지. 형이 자진해서 올 리가 있나."
"그렇지만 나는 친구로서 온 거란다."
그는 침대 위로 몸을 일으키고는 탕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 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큰형님을 오해하고 있구나."
"큰형님 이야기는 제발 입 밖에도 내지 마세요. 나는 그를 싫어할 뿐 아니라.... 울화가 치밀어 못 견디겠어요. 제가 형에게 불손하게 군 것도 바로 큰형 때문이에요."
"그건 무슨 까닭이지?"
"형은 아무것도 모를 거예요."
"그렇더래도 말해보렴."
탕자는 동생을 얼싸안고 달래었다. 그는 형에게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었다.
"형이 돌아오던 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밤새도록 곰곰이 생각했지요. 저는 또 다른 형님이 한 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우리 집 마당 앞에서 사람들의 열과 속에 걸어가는 형님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부풀고 심하게 고동쳤는지 모를 거예요."
"나는 그때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래요. 저는 형님을 보았지요. 그렇지만 형님은 영광에 들려 싸여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보았어요. 아버지는 형님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셨어요. 큰형도 갖지 못한 반지를요. 형의 문제를 저는 아무에게도 물어보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형님이 멀리서 왔다는 것만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형님의 시선은."
"너도 그 만찬에 참석했구나!"
"그러고 보니 형님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군요. 식사를 하는 동안 형님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리고 이튿날 저녁에 형님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계셨지요. 그것도 좋았어요. 그러나 그다음 날 저녁에는...."
"어서 마저 말해 보려무나."
"형은 저에게 단 한 마디라도 정다운 말을 건넬 줄 알았었는데!"
"그래,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럼,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그날 저녁에 큰형과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저는 큰형을 이처럼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도대체 형님들은 무슨 이야기를 그처럼 오래 했지요? 큰형과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형에게 관심이 많았는데요."
"나는 큰형님께 큰 과오를 범했다."
"설마 그럴리가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내가 집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너는 알겠지?"
"그럼요, 알고 있어요. 벌써 오래전 일이었지요. 그렇잖아요?"
"내가 아마 네 나이 때쯤이었지."
"형님이 과오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가리키나요?"
"그렇지. 그건 나의 과오인 동시에 죄였어."
"형님은 집을 나설 때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했나요?"
"아니야, 나는 떠나는 것을 일종의 의무로 생각했단다."
"그럼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어요? 그때 형님이 옳다고 생각하던 것이 틀렸다는 말이군요."
"나는 몹시 고생을 했단다."
"그렇다면 형님이 잘못이라고 말하게 된 것은 고생 때문이었군요."
"아니야,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나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
"그럼 전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나요?"
"안 한 것은 아니지. 그렇지만 나의 박약한 이성은 욕망을 따르게 되었지."
"그렇다면 형님은 고통에 못 이겨 돌아온 것이군요...."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이를테면 체념을 한 것이지."
"그렇다면 형님은 새사람이 되려던 것을 포기한 것이군요."
"나의 자존심이 그것을 만류했다."
소년은 잠시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형님! 저는 형님이 집을 떠날 때와 똑같은 심정일 거예요. 어서 말씀하세요. 형님은 도중에서 실망밖에 얻지 못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바깥세상은 여기와 다르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망상에 지나지 않았나요? 제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갖가지 일들을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란 말예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형님은 방황하던 길가에서 어떤 절망적인 사건에 부딪혔나요? 형님을 되돌아오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내가 찾고 있던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그리고 나는 남에게 매인 몸이 되어 남을 섬겨야 했지."
"저도 여기서 매인 몸이나 다름없어요."
"하긴 그렇지! 그렇지만 질이 나쁜 주인을 섬겨야만 한다. 여기서 네가 섬기는 사람은 부모님들 뿐이잖니?"
"살아가기 위해 남을 섬긴다는 것은, 적어도 노예 생활을 선택하는 자유나마 있잖아요."
"나도 그걸 원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몸을 내맡겼지. 마치 암당나귀를 따라가는 사도 바울과 같이 욕망의 뒤를 좇아 나섰지. 그러나 왕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내 기대는 터무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다다른 곳엔 비극만이 있었어. 그렇지만...."
"형님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었나요?" "나는 똑바로 앞만 보고 나갔다."
"그렇다면 왕이 없는 영토와 숱한 왕국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게 아녜요?"
"누가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든?"
"저는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걸 느끼기도 하죠. 저는 미치 그 영토를 지배한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건방진 녀석!"
"그건 큰형이 형님한테 한 말이죠. 형님은 왜 내게 그런 말을 하시죠? 형님은 그 정도의 자존심도 간직하고 계시지 못한가요? 그렇다면 형님은 되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는 너를 알 수 없었을 게다."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그곳에서 제가 형님을 만나게 되면 형님은 제가 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집을 따나는 것은 형님을 찾으러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구요."
"네가 집을 떠난다고?"
"형님은 그걸 모르셨나요? 저에게 집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실 분은 형님이실 텐데요."
"나는 네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겠다. 그렇다고 너더러 집을 떠나라는 것은 아니다."
"안 됩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형님은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예요. 형님은 정복자의 대망을 품고 떠난거죠,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노예 생활을 더욱 뼈아프게 생각했지."
"그렇다면 형님은 무엇 때문에 굴복하셨죠? 형님은 그토록 지쳤던가요?"
"아냐. 그 정도까진 아니다. 그런데 나는 회의를 느끼게 되었단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나는 모든 것에 회의를 갖게 되었단다. 하다못해 내 자신까지도.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나 몸을 의지하고 싶었지.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안락을 약속하던 주인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다. 결국 이제서야 그것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탕자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가렸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나는 오랫동안 황무지를 방황했다."
"황야인가요?"
"반드시 황야만도 아니었다."
"도대체 형님은 거기서 무엇을 찾았어요?"
"이제는 나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침대에서 일어나세요. 그리고 제 머리맡에 있는 책상 위 찢어진 책 위에 있는 것을 보세요."
"벌어진 석류가 하나 있구나."
"돼지 치는 사람이 사흘 동안이나 보이지 않더니 어제저녁에 그것을 갖다주었어요."
"그렇지, 저건 야생 석류야."
"저도 알아요. 지독하게 쓰지요, 그렇지만 목이 마르면 마구 깨물 것도 같아요."
"너도 이제는 말이 통할 것 같구나. 황야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목마름이었다."
"달지도 않은 이 열매는 갈증을 추겨주겠지요?"
"그렇지는 않단다. 그것은 더욱 갈증 나게 만들지."
"형님의 석류를 어디서 딸 수 있는지도 아시겠군요?"
"아무도 보살피는 이가 없는 작은 과수원이지. 울타리가 없어서 황야인지 과수원인지 분간할 수도 없는 곳이란다. 시냇물이 흐르고 반쯤 익은 열매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지."
"무슨 열매들이에요?"
"우리 집 뜰에 있는 과일나무와 같은 것들이지만 모두 야생식물이지. 그날은 몹시 더웠단다."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 제가 오늘 저녁 왜 형님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세요? 저는 이 밤이 새기 전 떠나려는 거예요. 이 밤이 밝아 사방이 희끄므레하게 되면.... 저는 조용히 길을 나서려고 해요. 오늘 밤은 신도 벗지 않았어요."
"뭐라고? 나도 이루지 못한 것을 네가 이루어 보겠다는 거냐?"
"형님은 제게 길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형님을 생각하면서 이겨 나갈 거예요."
"나는 너에게 감탄했다. 그러나 너는 나를 잊어야 한다. 너는 무엇을 갖고 나서니?"
"동생인 내가 유산분배에 한 몫 낄 수 없다는 건 잘 아실 것 아녜요? 저는 맨주먹으로 떠납니다."
"그게 도리어 낫지."
"그런데 창가에서 무얼 바라보고 계세요?"
"우리의 조상들이 누워 계신 정원을...."
"형님!"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탕자의 목을 얼싸안았다. 그의 팔은 그의 목소리처럼 부드러웠다.
"저와 함께 떠나세요."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둬라! 나는 남아서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 한단다. 그리고 내가 없으므로 너는 더욱 용감해질 거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사방이 밝아오는구나. 이젠 소리를 내지 말거라. 얘, 이리 안겨다오. 나의 모든 희망을 걸머지고 가는 아우야, 용기를 갖고 우리는 잊어버려라. 나도 잊어버리련다. 부디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조용히 걸음을 옳겨라. 내가 등을 밝혀 주겠다."
"대문까지 바래다주세요."
"현관 층계를 조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