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Haircut)
Ring Lardner
나에게는 카터빌에 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내 이발소에 출근하여 나를 돕던 이발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다른 날은 나 혼자서도 충분히 일할 수가 있었지요. 손님도 아시다시피 여기는 뉴욕처럼 커다란 도시도 아닌데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가롭게 이곳에 들러 머리를 다듬을 틈이 없지요.
여기는 처음 오신 분이지요? 전에 손님을 본 기억이 없어서요…… 며칠 머물러 지낼 수 있도록 이곳이 마음에 드셨으면 좋을 텐데…… 말씀드렸다시피 여기는 뉴욕이나 시카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꽤 재미있게 살고 있답니다. 짐 켄달이 살아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무척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는 호드 메이어즈와 단짝이 되어 온 시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답니다. 아마 미국 내에서 이곳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곳도 없을 겁니다.
짐은 익살재간꾼이었지요. 호드도 그에 지지 않았습니다. 짐이 죽고 나서 호드는 나름대로 전과 다름없이 만들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함께 힘을 보탤 친구가 없어서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았지요.
토요일만 되면 두 사람은 웃음보따리를 아주 많이 풀어놓았습니다. 토요일, 네 시만 넘으면 이곳은 만원사례가 되었습니다. 짐과 호드는 6시경 저녁을 먹자마자 이곳에 들르곤 했습니다. 저기 파란 타구 옆에 있는 커다란 의자는 짐이 앉던 자리였습니다. 누구라도 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짐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일어서서 그에게 자리를 내주었지요.
영문을 모르는 손님들은 마치 극장에서나 볼 수 있듯 지정석인 줄로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호드는 늘 서 있거나 서성거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어떤 때에는 잠시 이 의자에 몸을 맡기고 이발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짐은 침을 타구에 뱉을 때를 빼고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화이티.”
사실 내 본명은, 즉 내 이름은 딕입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모두 나를 화이티라고 부르죠.
“자네 코가 오늘밤에는 장미꽃 봉오리 같구만, 향수병을 마신 게 틀림없지?”
그러면 나도 대꾸를 했지요.
“그렇지 않네, 짐. 하지만 자네야말로 그런 비슷한 것, 아니면 더 지독한 것을 마신 것 같은데?”
짐은 내가 대꾸한 말을 들으면 웃어야 할 텐데도 오히려 소리를 높여서 이렇게 말했지요.
“아닐세, 마실 게 있어야 마시든가 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마시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닐세. 메틸 알콜을 마시라고 해도 개의치 않을 걸세.”
그러면 호드 메이어즈가 한마디 거들곤 했지요.
“그 점에선 자네 마누라와 같군.”
그 말을 들으면 모두들 웃었지요. 왜냐하면 짐과 아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사실 그녀는 이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남편이 위자료를 지불할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고사하고 아이들을 키울 길이 막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눌러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에 대해 이해심이라고는 전혀 없었답니다.
짐은 행동은 조금 거칠지 몰라도 마음만은 순박한 친구였지요.
호드와 그 친구는 밀트 셰파드에게 온갖 장난을 다 쳤지요. 아마 손님은 밀트라는 사람을 모르실 겝니다. 헌데 밀트라는 친구의 목젖이 조금 크고 별나서 영락없이 버섯멜론을 닮았습니다. 언젠가 밀트가 면도를 하러 왔습니다. 내가 목 바로 여기를 면도하려 하자 호드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봐, 화이티, 잠깐만 멈추게. 자네 그 속을 갈라 보기 전에 우리 내기를 걸어. 씨가 몇 개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로 하지.”
그러자 짐도 한마디 거들더군요.
“밀트가 욕심이 조금만 작았더라도 멜론을 통째로 먹지 않고 반을 쪼개 먹었을 거야. 그랬더라면 저렇게 목에 걸리지는 않았겠지.”
이 말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밀트도 그 농담이 자신을 놀리는 것임을 알면서도 따라서 웃지 않을 수 없었지요. 확실히 짐은 물건이었습니다.
저기 선반 위에 찰리 베일의 면도컵 옆에 있는 것이 짐의 면도컵이죠. 찰즈 엠 베일은 약사입니다. 그는 일주일이면 세 번씩 꼭 면도하러 여기 옵니다. 그의 면도컵 옆에 놓인 것이 짐의 면도컵이죠. 저 컵엔 <제임스 에이취 켄달>이라는 이름이 씌어져 있습니다. 이제 짐은 면도컵을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옛 추억을 생각해서 그대로 놓아 둘 작정입니다. 짐은 정말로 인상적인 친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연전에 짐은 통조림 식품장사로 카터빌로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통조림 식품은 카터빌의 유력한 상품이었지요. 짐은 통조림 식품의 세일즈를 위해 이 주의 북부 절반을 모두 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5일은 길거리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지요.
토요일만 되면 여기에 나타나 그 주일에 있었던 경험담을 털어놓곤 했습니다. 이야기 거리가 무척 많았습니다.
내 생각에 그 친구는 장사보다 농담하는 데 더 정신이 팔렸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는 직장을 잃게 되어 아주 이곳 집으로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해고되고 말았다고 태연하게 말하더군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스스로 사표를 냈다고 했겠지만요.
바로 토요일이었습니다. 이 이발소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갑자기 짐이 바로 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뉴스 하나를 전달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물어보았지요. 진심이냐구요. 그랬더니 그 친구, 진심으로 말하는 거라고 대답하더군요. 모두들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짐이 다시 이 침묵을 깼습니다.
“나는 통조림 식품을 팔던 장사꾼이었는데 이제 그만 내가 통조림 식품이 돼버리고 만 셈이죠.”
손님도 방금 들어서 아시겠지만 그가 일하던 곳은 통조림 식품공장이었습니다. 카터빌에 있는 공장이지요. 그런데 짐은 자신이 통조림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었지요.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정말 물건이었습니다.
짐은 세일즈 길에 올라서도 늘 엄청난 장난을 곧잘 저지르고 다녔지요. 그 예를 들어 볼까요? 장사길에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가 조그만 마을, 저 그러니까, 말하자면 벤튼과 같은 작은 마을에 잠시 멈춰서면 그는 창밖을 내다보고 눈에 띄는 가게의 간판을 눈여겨 보았지요.
그래서 간판이 <헨리 스미드 건어물상회>라고 씌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짐은 그 간판이름과 그 마을이름을 적어 두었다가 자기가 처음부터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다다르면 벤튼의 헨리 스미드에게 우편엽서를 보냈습니다. 물론 엽서에는 이름도 쓰지 않고 발신인의 사인도 하지 않은 채였죠. 그리고 엽서에는 이렇게 적어 넣었지요. 즉, ‘당신 아내에게 지난 주 어느날 오후 책 외판원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시오.’ 또는 ‘당신 아내에게 당신이 카터빌에 가 있는 동안 그녀를 심심하지 않게 해 준 녀석이 누구인지 물어보시오.’나 같은 짓이었지요. 그리고 사인을 해야 할 곳에 ‘한 친구로부터’라고 써 놓았지요.
물론 그 자신도 이러한 장난으로 인해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몰랐지요. 그러나 어떠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구요.
짐은 카터빌의 직장에서 쫓겨난 후로 일정한 직업을 잡지 않았습니다. 이 마을에서 잡일을 하며 조금씩 번 돈을 그는 거의 모두 술을 마시는 데 써버렸습니다. 그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가게가 없었더라면 식구 모두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짐의 아내는 남의 옷을 지어주는 것으로 생활비를 벌어 살림을 꾸려나갔지요. 하지만 이 마을에서 비싼 옷을 해 입을 만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짐의 아내는 이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자신과 아이들을 키울 방도가 달리 없어, 어쩔 수 없이 남편이 버릇을 고쳐 일주일에 가져다주는 2~3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길 바라는 수밖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그녀는 남편에게 일을 맡긴 사람을 직접 찾아가 품삯을 남편에게 주지 말고 직접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에 불과했습니다. 짐이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그는 품삯의 거의 전부를 미리 타서 써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내의 소행을 떠들고 다녔습니다. 마치 아내를 골려준 자신이 얼마나 멋진가를 과시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그 또한 괴짜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는 아내의 눈을 속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품삯을 가로채려는 아내의 소행을 무척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진 빚을 갚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리고 에반스 서커스가 마을에 공연을 온다는 소식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서커스에 데려가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서커스 공연날이 되자 그는 입장권을 살 테니 서커스장 입구 앞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 서커스를 보러 가겠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입장권을 사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진에 잔뜩 취해 가지고는 하루 종일 라이트의 당구장에서 잠을 자 버린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끝내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에게는 동전 한 닢도 없었습니다. 물론 집에 가 봐도 동전 한 푼 없기는 마찬가지였지요. 할 수 없이 그녀는 아이들에게 다 틀렸으니 돌아가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드디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좀처럼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죠.
그런데 상황이 약간 달라졌던 모양입니다. 애들이 울고 있을 때 마침 의사인 스테어 씨가 그곳을 지나가던 참이어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짐의 아내는 한사코 대답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실을 스테어에게 말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애들과 애들 어머니를 서커스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짐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로 인해 의사 스테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지요.
의사 스테어가 이 마을로 이사 온지는 약 1년 반쯤 되었습니다. 그는 꽤 젊고 잘생긴 남자였는데 입은 옷은 모두 맞춰 입은 것처럼 멋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일 년에 두서너 번 디트로이트에 다녀오곤 했는데, 아마 그곳에 머물 때마다 양복점을 찾아가 옷을 맞춘 것 같았습니다. 비록 값은 두 배나 비쌌지만 기성복 가게에서 산 것보다는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옷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젊은 스테어가 무슨 이유로, 하필이면 이처럼 작은 마을로 내려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늘 나이가 많은 의사들인 갬블이나 푸트를 찾곤 했지요. 이 사람들은 이곳에 수년 동안 살아오면서, 모든 환자들을 이 두 사람이 다 돌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 뒤, 스테어는 애인에게서 버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인은 북부 페닌슐라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스테어가 이곳에 내려온 이유는 실연의 상처가 커서 이곳에 내려와 옛일을 잊으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달랐습니다. 훌륭한 만능의사가 되려면 이 마을 같은 곳에서 일반의원을 차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것이 그의 이유였습니다.
어쨌든 그가 생활의 기반을 잡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얘기로는 외상진찰비도 독촉하지 않더라는 데 말이에요. 여기 사람들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습니다. 외상을 좋아하는 버릇 말이지요. 내가 하는 이발소 영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외상 면도한 돈만 거두어 들여도 카터빌로 휴양하러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서 한 일주일 정도 머서 호텔에 머물며 매일 밤 프로를 바꿔가며 실컷 영화구경도 할 수 있구요. 외상장이 중에 한 사람, 조지 퍼디 노인이라고 있는데…… 남의 얘기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그만두지요.
그런데, 작년에 이곳 검시관이 감기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죠. 켄 비티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업은 검시관이었지요. 그래서 그 사람 대신 이 마을을 위해 일할 검시관을 찾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스테어 씨를 지목했지요. 처음에 그는 그저 웃더니 검시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검시관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지요. 일 년 내내 보수라고 받아봐야 정원에 뿌릴 씨나 살 수 있는 정도가 고작이니까요. 하지만 스테어 씨는 오래 물고 늘어지기만 하면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요.
여기서 이 마을에 살던 가난했던 아이에 대해 얘기해 드리지요. 이름은 폴 딕슨이었습니다. 열 살 때인가, 그 아이는 나무를 타다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머리를 땅에 부딪치고 말았는데 그게 잘못되었던지 정상적인 아이로 크지 못했답니다. 악한 마음이란 없는 아이였는데 하는 짓이 꼭 바보였습니다. 짐 켄델은 그 아이를 뻐꾸기라고 놀리곤 했지요. 짐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은 모두 뻐꾸기라고 불렀지요. 사람들 머리를 콩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사람들 머리를 콩에 비유하고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을 뻐꾸기라고 불렀던 것도 그 친구의 장난기 때문이었습니다. 불쌍한 폴은 단지 바보였을 뿐이지 미친 아이는 아니었답니다.
짐이 폴에게 온갖 장난을 다 하곤 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하실 수 있겠죠. 짐은 폴에게 화이트 프런트 자동차정비소에 가서 왼손잡이 몽키렌치를 빌려 오라고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왼손잡이 몽키레치가 있을 리가 없지요.
어젠가 이 마을에 전시회가 열렸는데 그때 뚱뚱한 사람들 한 팀, 그리고 홀쭉한 사람들 한 팀으로 나누어 야구시합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시합이 열리기 전, 짐은 폴을 불러 슈레더 씨 철물점에 가서 투수석 문을 열 수 있을 만한 열쇠를 구해오라고 시켰습니다.
짐은 장난기가 재능이었든지, 마음만 먹으면 온갖 기발한 생각을 해내곤 했지요.
불쌍한 폴은 언제나 사람들을 의심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마 짐이 늘 골탕을 먹였던 탓에 그런 버릇이 몸에 배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폴은 사람들을 대하기 싫어했었는데, 제 엄마와 의사 스테어 씨, 그리고 줄리 그레그라는 여자는 예외였습니다. 줄리라는 여자는 어린애가 아니라 서른이나 아니면 서른이 조금 넘은 여자였습니다.
스테어 씨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폴은 진짜 친구를 만났구나 하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스테어 씨의 진찰실 주위에서 늘 살다시피 했습니다. 스테어 씨 곁에 없을 때란 집에 가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 그리고 줄리 그레그가 쇼핑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뿐이었으니까요.
스테어 씨 진찰실에서 창문을 내려다보다가 그녀를 보기만 하면 폴은 얼른 아래층까지 뛰어 내려가 그녀 곁에 꼭 붙어서 이 가게 저 가게를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폴은 줄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줄리도 늘 폴에게는 상냥하게 대해 주었고, 싫은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줄리는 동정심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테어 씨는 폴에게 제 정신을 찾아주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언젠가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진짜 폴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구요. 때때로 폴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총명하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줄리 그레그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지요. 줄리의 아버지 그레그 씨는 목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술에 한번 빠져든 뒤로 가산을 거의 탕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딸 줄리에게 물려준 것이라곤 집 한 채와 근근히 살림이나 꾸려갈 수 있을 정도의 보험금이 전부였습니다.
줄리의 어머니는 반병신이었고, 집을 나서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줄리는 아버지가 죽고 나자,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했지요.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니 이곳에서 죽고 싶다고 말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마을 젊은이들도 줄리를 귀찮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줄리는 그들에게는 과분한 여자엿습니다. 그녀는 외지에서 교육도 받았고, 시카고나 뉴욕뿐만 아니라 다른 곳을 여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주제를 내놓아도 줄리는 대화에 낄 수 있는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손님께서 글로리아 스완슨이나 토미 메간에 관한 이야기 말고 다른 화제를 꺼낸다면 이곳 젊은이들은 아마 선생님을 무식하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려 들 것입니다. 혹시 선생님께선 <덕의 보답>에 나오는 글로리아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보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어느 날 스테어 씨가 우리 가게에 면도하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이곳으로 이사 온지 일주일도 채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나는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그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죠.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해서 그에게 몇 마디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한 2년간 시름시름 앓고 계셨는데, 닥터 갬블이나 닥터 푸트도 그녀의 병을 어떻게 해주지 못했었습니다. 스테어 씨는 한번 다시 찾아와 어머니의 병세를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직접 밖으로 나다닐 수만 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그의 사무실까지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면 보다 완전한 진찰이 가능하리라고 말하면서요.
그래서 어느 날 어머니를 모시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진찰을 받는 동안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줄리가 들어서더군요. 손님이 사무실로 진찰 받으러 올 때에는 우선 그의 방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조그마한 종을 먼저 울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진찰받으러 온 손님이 있음을 스테어 씨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저의 어머니를 방안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밖으로 나와 줄리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으로서는 첫 대면이었습니다마는 내 생각에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똑같은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젊은 의사는 그녀가 여태까지 마을에서 보아온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준수하게 생긴 사람이었던 이유로, 줄리 쪽에서 훨씬 더 강한 사랑을 느꼈던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줄리는 스테어 씨에게 있어 단지 진찰받으러 온 사람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죠.
그녀가 스테어 씨를 만나러 온 것도 나의 용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수년씩이나 닥터 갬블과 닥터 푸트의 치료를 받아왔지만 별로 차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마을에 새 의사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한번 찾아가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스테어 씨는 그날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가 진찰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방금 손님께 말씀드렸듯이, 그녀는 첫눈에 반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그녀의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여하튼 스테어 씨를 처음 만났던 그날, 그녀의 눈치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단정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물론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정도로 재능이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그녀가 진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짐 켄달은 농담 잘하고 술 마시기를 술이 사람을 먹는 것처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대단한 난봉꾼이기도 했지요. 그가 카터빌에 직장을 가지고 세일즈 여행을 다니면서 숱한 바람을 피웠던 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이 마을에서도 두서너 번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그의 아내는 늘 이혼하고 싶어 했지만 환경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지요.
하지만 짐에게도 대부분의 남자들─╴물론 대부분의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은 됩니다만─╴과 다를 바 없는 면이 있었습니다.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원했으니까요. 그는 줄리 그레그를 탐냈습니다. 그녀를 정복하기 위해서 온갖 생각을 다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짐의 버릇과 장난이 줄리에게 통할 리 없었습니다. 더구나 짐은 아내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따라서 그에게는 기회가 자연 제한되고 말았죠. 그 점에서 그는 자신을 토끼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토끼에 비유한 사람은 바로 그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될 가망이 없으면 그는 늘 토끼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의 감정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 제 가게에서, 한두 번도 아닌 여러 번씩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곤 했습니다. 자기는 줄리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이며 누구든지 줄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만 있다면 제 아내도, 자식들도, 그리고 자기 집까지 아낌없이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짐에게 손톱만큼도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으려 했으니까요. 그래서 짐은 마침내 보통 수단을 써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으리라고 판단하고는 조금 거친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무조건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는 곧장 탱크처럼 밀고 들어가 그녀의 몸을 움켜잡았습니다. 그러나 줄리는 몸을 틀어 그의 손을 뿌리치고 그가 어찌할 틈도 주지 않고 다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근 뒤 조 반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는 이곳 보안관입니다. 짐은 곧 그녀가 누구에게 전화하는지를 깨닫고 조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와 줄리의 아버지는 가까운 친구 사이였습니다. 다음날 조는 짐을 찾아가 다시 또 그런 장난을 하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나느 어떻게 해서 마을 사람들이 이 조그마한 사건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조 반즈가 그의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자, 그녀는 이웃 사람들에게 말해 주었고, 그런 식으로 이 얘기가 마을에 퍼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이야기가 마을에 퍼지게 되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호드 메이어즈는 바로 이 가게에서 짐을 놀리곤 했습니다. 짐은 아무것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저 웃어넘기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말하기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놀려대곤 했지만 그는 언제나 태연했습니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줄리가 스테어 씨에게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녀는 젊은 의사 스테어 씨와 함께 있으면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습니다. 물론 알 수가 없었겠지요. 알았더라면 의사를 피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여러 번 구실을 만들어가지고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거나 혹은 건너편 길을 지나가면서 혹시 그가 내려다보지나 않을까 하고 그의 사무실 창문을 올려다보는 행동 따위를 우리 모두가 다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척 딱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요.
호드 메이어즈는 자꾸 짐에게 그 젊은 의사가 사랑싸움에서 그를 앞지르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를 골려주기 위한 생각에서였지요. 짐은 그런 놀림에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보였으나 속으로는 한 가지 계책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묘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바꾸는 것이었지요. 그는 듣기에 영락없이 여자가 얘기하는 것처럼 변성을 낼 수 있었고, 또한 어떤 남자의 목소리도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변성이 얼마나 감쪽같았는지, 제가 한 가지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바로 제가 당했던 경험입니다.
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어느 마을에서건 사람이 죽어 면도를 해야 할 때 이발사는 보통 5불 정도는 바가지를 씌우지요. 물론 죽은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아니라 면도를 부탁했던 사람에게 씌우는 것이지요. 저는 3불만 받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이 죽은 사람 면도해 주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처럼 면도할 때 움직이지 않아서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죽은 사람에겐 말하고 싶은 기분이 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심심하다는 불편은 있지만요.
2년 전 겨울, 가장 추웠던 날이었습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았더니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존 스코트 부인이라고 말하고는 남편이 죽었으니 와서 면도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존은 제 단골손님으로 꽤 오랫동안 제 이발소를 찾아왔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은 마을에서 7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면도해 주러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가야하니 면도 요금 외에 3~4불 더 받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니 그 목소리는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프랭크 아보트에게 부탁해서 그곳까지 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문을 열어준 사람이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존이었습니다. 그의 멀쩡한 모습이 글쎄 토끼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누가 내게 이런 장난을 했는지 사설탐정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마을에 그럴 만한 사람은 짐 켄달 빼고는 없었으니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능히 그럴 수 있었던 친구였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들려드리는 것은 그가 목소리를 위장하는 데 얼마나 능숙했는지를 손님께 말씀드리려 함입니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스코트 부인이 전화하는 것으로 믿었는데, 정작 전화를 건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짐은 기회를 노리면서 스테어 씨의 목소리를 완전히 익혔습니다. 그러고선 복수를 시작한 것이지요.
어느 날 저녁, 짐은 스테어 씨가 카터빌로 떠나 마을에 없는 것을 알고 줄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줄리는 물어보지도 않고 스테어의 목소리로 믿어버렸습니다. 짐은 줄리에게 그날 밤 꼭 만나서 들려 줄 얘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줄리는 기쁜 나머지 집으로 와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짐은 장거리 전화를 기다리는 중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한 번만 체면을 거두고 자신의 사무실까지 와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며, 아무도 그녀를 볼 사람도 없고 잠시 꼭 애줄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불쌍한 줄리는 그만 이 말에 현혹되고 말았습니다.
스테어 씨는 늘 사무실에다가 야간등을 켜 두었지요. 그래서 줄리는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짐 켄달은 전화를 끝내고 라이트의 당구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친구들이 다 모여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진에 취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에도 거친 친구들이었지요. 그들은 언제나 짐의 장난을 기다리는 친구들이었는지라 짐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하자 카드게임이고 당구고 다 집어치우고 그를 따라 나섰습니다.
스테어 씨의 사무실은 2층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방문 바로 앞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짐과 그의 친구들은 이 계단 밑의 어둠 속에 숨어서 앞으로 있을 일을 기다리고 이었습니다.
마침내 줄리가 나타나 스테어 씨의 문 앞에서 벨을 눌렀습니다. 물론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줄리는 다시 벨을 눌렀습니다. 계속해서 일곱 번이가 여덟 번이가 눌러대었습니다. 그런 다음 손잡이를 돌려 보곤 잠겨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짐이 조그마한 소리를 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줄리는 잠시 기다리다가 “거기 계서요, 랄프.” 하고 물었습니다. 랄프는 스테어 씨의 이름이지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줄리는 갑자기 가지가 속았다는 느낌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거의 구르다시피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짐의 패거리들이 그 뒤를 쫓았습니다. 집까지 뒤쫓아 가면서 패거리들은 줄리를 놀려댔습니다.
“거기 계시나요, 랄프?”
“오 랄피 여보, 당신이세요?” 라고 외쳐대면서 말입니다.
짐은 배꼽이 터지도록 웃음이 나와서 미처 자신은 줄리를 놀리지 못했다고 말하더군요.
줄리마 불쌍하게 되었지요. 그 뒤로 줄리는 오랫동안 이곳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짐과 그의 패거리는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이 얘기를 전했습니다. 물론 스테어 씨에게는 비밀로 했구요. 스테어 씨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폴 딕슨이 아니었다면 스테어 씨는 아마 영영 몰랐을 것입니다. 짐이 뻐꾸기라고 별명을 붙여준 이 폴은 어느 날 저녁 내 가게에 들렀다가 짐이 줄리에게 복수했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폴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만큼 스테어 씨에게 사건의 전말을 얘기해 준 것이지요.
스테어 씨가 발끈해서 짐을 혼내 주리라고 마음먹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가지요.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고 오히려 미묘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스테어 씨가 짐에게 손을 보았다는 말이 나돈다면 결국 줄리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줄리도 스테어 씨가 짐이 그녀에게 한 장난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 것 같기 때문이었지요. 스테어 씨는 짐에게 손 좀 대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짐은 다시 내 가게에 나타났습니다. 그때 뻐꾸기도 여기에 있었지요. 짐은 다음날 오리사냥을 갈 예정이어서 호드 메이어즈를 만나 함께 가자고 말할 참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침 호드 메이어즈가 카터빌로 떠나고, 그 주말까지는 마을을 비우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이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짐은 혼자 가는 것이 따분할 테니 다음날로 미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불쌍한 폴이 입을 열더니 짐이 데리고만 가 준다면 따라가겠노라고 말하더군요. 짐은 잠시 생각하더니 재미는 반밖에 안되겠지만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승낙했습니다.
나는 그때 짐이 폴을 보트에 태워다가 몇 가지 장난을 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폴을 물속에 떠밀어 넣는 것 같은 장난말입니다. 어쨌든 그는 폴에게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짐은 폴에게 전에도 오리사냥을 나가 총을 쏘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폴은 총이라곤 손에 잡아본 적도 없다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짐은 만일 폴이 보트에 올라서 자기가 총 쏘는 모습을 지켜보고 얌전하게 굴기만 하면 한두 번쯤 총을 쏘게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에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것이 내가 짐을 살아서 본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내가 가게문을 연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스테어 씨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초조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폴 딕슨을 보지 못했느냐고 나에게 물어오더군요. 나는 보지 못했노라고 대답했다가 아마 짐 켄달하고 오리사냥하러 마을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스테어 씨도 그 얘기를 들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는 폴이 스테어 씨에게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짐과 어울리지 않겠노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스테어 씨는 또 폴은 짐이 줄리에게 어떤 장난을 했는지 말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폴이 스테어 씨에게 줄리에게 그러한 장난을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살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었답니다.
나는 그것이 야비한 장난이기는 했지만 짐은 아무리 야비하더라도 장난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친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천성은 악하지 않은 사람이나 장난이 조금 지나친 친구일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스테어 씨는 몸을 돌려 나갔습니다.
정오 때쯤 되어서 스테어 씨는 존 스코트 노인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짐과 폴이 오리사냥을 나간 호수는 존이 살던 곳에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폴이 자기 집으로 뛰어 들어와 사고가 생겼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짐이 오리 몇 마리에게 총을 쏜 뒤 폴에게 총을 주면서 한번 쏴보라고 시켰답니다. 총이라곤 손에 쥐어 보지도 못했던 폴은 겁을 머고 말았습니다. 몸이 너무나도 부들부들 떨려 총을 제대로 가누질 못했던 것이지요. 얼떨결에 폴이 방아쇠를 잡아당겼지요. 그랬더니 짐이 뒤로 넘어져 죽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검시관이기도 했던 스테어 씨는 프랭크 아보트의 털털이차에 뛰어올라 단숨에 스코트의 농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폴과 존 노인은 호수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폴은 보트를 저어 호수까지 끌고 왔지만 의사가 올 때까지 시체를 보트 밖으로 끌어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테어 씨는 시체를 조사해 보고는 읍내로 실어가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시체를 그곳에 방치해 두거나 배심원을 부를 필요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오발사고였음이 분명했으니까요.
나라면 같은 배에 탄 사람이 총에 대해서 전혀 아는바 없다면 절대로 총을 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반쯤 바보인 것은 고사하고 총에 대해선 전혀 초보자인 어린애에게 자기 총을 맡길 만큼 짐은 멍청했습니다. 짐이 그 꼴을 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곳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못 잊고 있습니다. 그는 확실히 괴짜였습니다.
빗질만 할까요? 아니면 드라이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