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August William Derleth
그는 내 머리를 포석 가장자리에 내동댕이쳐서 간단하게 숨을 끊어 놓았다.
아! 신이여. 나는 어떻게 된 것인가?
최초의 일격을 받은 순간 그토록 강한 증오심이 싹 사라졌다.
여자와 함께 있는 현장에 발을 들여 놓고 그토록 야단스럽게 소란을 피우다니 바보였다. 이렇게 된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
그 순간 모든 것이 암흑으로 되었다.
나의 젊고 부드러운 혼은 달빛에 비추어져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얼어붙은 듯이 시체로부터 눈을 들어 하늘을 말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어떤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유령이 되어 복수를 하자고.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유령 같은 것이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 자신이 유령이다. 이것으로 조금은 지금까지의 벌충이 될 것이다. 반대로 그는 그렇지 않았다. 유령 같은 것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 봐라. 이제 곧 알려줄 테니까. 바로 정면을 물끄러미 응시한 채 존은 천천히 일어났다. 나에게는 존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이윽고 서서히 그 증오가 되살아났다. 그의 코끝에 얼굴을 쑥 내밀어 본다. 그러나 그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눈을 뜨고 전방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 존이 한 발자국 내딛었다. 나의 몸을 빠져나가기라도 할 모양이다. 공포가 꿰뚫고 지나간다. 바보 같으니. 유령인 내가 - 살아있는 존을 무서워하다니. 어쩔 수 없다. 공포라는 것은 이쪽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쑥 몸을 당겨 옆으로 가서는 존을 통과했다. 돌아보니 그의 모습은 거리의 희미한 어둠에 거의 잠기려 하고 있었다. 당황하여 나는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존은 나를 따돌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어도 아직 그에게는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자석에게 끌려가듯이 나는 그의 뒤를 쫓아 하이 스트리트를 지나 작은 길로 꺾어졌다.
그 길은 완전히 밤의 어둠이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낮과 같이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조금씩 용기가 솟아났다. 걸음을 빨리하여 그의 앞으로 돌아가 한 바퀴 돌아서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유령의 짓을 흉내 내어 손뼉을 쳐서 소리를 내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번져갔다. 그러나 변함없이 나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유령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완고하게 머리에 박힌 나머지 정말로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일 것이다.
“휘잇.”
나는 꽉 다문 이빨 사이로 숨을 토해내었다.
“휘잇! 살인자! 살인자!”
머리 위에서 홱 하고 창문이 열렸다.
“거기 누구요?”
여자가 소리쳤다.
“뭐가 있어요?”
작은 소리였지만 살아있는 인간에게도 들리는가 보다. 그러나 그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도망쳐 버리면 곤란하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는 줄곧 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구나. 나는 가만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방금 살인을 저질러 놓고도 저렇게 기분 좋은 얼굴이라니.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어디고 할 것 없이 얼음과 같은 차가움이 느껴졌다.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네. 이렇게 갑자기 유령이 되었는데, 10분 전까지만 해도 생기발랄한 여자였던 나. 이 내가 이렇게 양어깨 사이를 휭하니 습기 찬 바람이 빠져나가는 대로 둥둥 공중을 걷고 있다니. 하앗! 나는 새된 비명도 웃음소리도 아닌 금속적인 소리를 내었다. 모든 것이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존에게도 이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순간 그는 재빠르게 폴 스트리트로 꺾어 들어가 버렸다.
풀 스트리트의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잎이 완전히 다 떨어져 있었다.
순간, 나는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마치 바람의 소행인 것처럼 낙엽을 날려 보였다. 떨어진 잎은 폴 스트리트를 어디까지고 그의 뒤를 쫓아갔다. 바싹 마른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거리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울려가면서 그래도 존은 불어오는 낙엽을 발로 밟아 헤치듯이 하며 모르겠다는 얼굴로 계속 걸어갔다.
나는 그를 계속 따라갔다. 앞에서 말했듯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끈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 한 번 그는 뒤를 돌아서 나의 모습을 확실하게 본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는 표정이 문득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나를 죽이고서 기뻐 참을 수 없다는 건가? 두고 봐, 이제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때였다. 나를 사로잡고 있던 집념이 일순에 사라졌다. 아, 경건한 크리스천인 내가 죽은 지 15분 만에 벌써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니. 하느님 앞으로 갈 준비도 하지 않고!
무엇일까?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났다.
“그를 내버려둬. 이제 상관하지 마. 미련 두지 마.”
미련 두지 말라고? 그만두고 싶어지면 언제라도 손을 뗄 것이다. 유령이라도 마음대로 나타나거나 사라지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그가 두려워하도록 하고 싶은데. 딱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하면 단념하고 얌전히 천국으로 갈 텐데.
나는 존에게 두 손을 내밀면서 외쳤다.
“존! 거기에 우뚝 서서 희미한 미소 짓고 있는 것도 지금 뿐이에요. 믿기지 않겠지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긴 것은 나예요. 당신은 이제 끝이에요. 두고 봐요.”
나는 말을 멈추고 코웃음을 쳤다.
머리 위에서 차례로 창문이 열렸다.
“뭐야? 무슨 소동이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
내가 한 말이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존은 아무 말 없이 획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밀리, 이제는 손을 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또 그 목소리.
그래, 그런 의미였다. 그의 죄를 폭로해도 그때는 자신이 복수의 죄를 짊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맞다. 이쯤에서 용서해 줄까. 발을 멈추고 슬슬 천국으로 가기로 하자. 나는 양팔을 치켜들고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강한 힘이 돌풍과 같이 나를 휩싸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그의 쪽으로 좋다 싫다 할 새도 없이 밀어붙였다. 그에게는 어쨌든 나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이 지금도 나의 팔을 꽉 조르고 있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의 눈에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맨 먼저 두려워해야 할 그에게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존은 어디로 가려는 거지? 인적이 끈긴 폴 스트리트를 어디까지 가려는 것일까? 존은 로프 스트리트로 꺾어졌다. 반짝이는 푸른빛이 하나 보였다. 경찰서였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신음했다.
“내 탓이야. 아, 어쩌지. 그는 자수할 모양인가 봐.”
“당신이 그를 몰아넣은 거야.”
그 소리가 말했다.
“어리석은 여자. 그에게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가? 어떻게 말할 작정이었지? 당신의 모습에 그가 비명을 지르고 공포에 나머지 말도 못하게 되는 것을 생각한 건가? 당신이 반한 존이 겁쟁이이길 바랬나. 이제 좋은가? 그를 교수대로 보낸 것은 당신이야.”
“아니야. 그럴 작정은 아니었어.”
내가 외쳤다.
“그에게 단지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고 한 것뿐인데 뜻하지 않은 것이었어.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아, 존.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요. 아직 생각을 바꿀 시간은 있어요. 부탁이에요. 아직 시간이 있어요.”
그는 경찰서 입구에 우뚝선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경관이 하나씩 뛰어나와서 그를 둘러싸듯이 섰다.
어느새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아, 존!”
나는 훌쩍거리며 호소했다.
“용서해 주세요!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난 분해서, 존, 그래서 이렇게 당신을 사랑한 나머지..”
경관들은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저 여자다.”
한 사람이 말했다.
“망치로 사람을 죽였어, 저 여자가. 남자의 정수리를 쳐서 죽인 바로 그 여자야. 그런데 저 얼굴, 죽은 사람 같잖아? 마치 유령 같군.”
“머리를 봐. 자신의 머리까지 망치로 부수려 한건가? 남자를 죽이고 나서.”
경찰간부가 앞으로 나왔다.
“이제부터 당신이 하는 말은 모두 정식증언으로 기록됩니다.”
“존!”
나는 이름을 부르면서 두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그의 얼굴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오, 무서운 일이야.”
한 사람이 십자가를 그으면서 중얼거렸다.
“저 여자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가봐.”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겠지.”
다른 사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되다니 가엾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