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미티의 숨겨진 삶(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James Thurber
……“우린 돌파한다!”
기장의 목소리는 살얼음이 깨져나가듯 날카로웠다. 그는 정복을 입고 있었으며 실로 짠 테두리가 무겁게 보이는 하얀 정모를 잿빛의 차가운 한쪽 눈 위로 비스듬히 푹 눌러쓰고 있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 날씨가 악화되어 곧 폭풍우가 밀어닥칠 것 같습니다.”
“자네 생각을 묻고 있는 게 아닐세, 베르그 중위.”라고 기장은 말했다. “엔진을 점화하라! 회전속도 8,600! 우린 돌파한다!”
실린더 작동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푸걱─푸걱─푸걱─푸걱─푸걱… 기장은 조종석의 유리창에 성에가 끼기 시작하는 것을 노려보았다. 그는 걸음을 옮겨 복잡하게 늘어선 일련의 다이얼들을 돌렸다.
“8번 보조기 스위치를 올려라.” 기장이 소리쳤다.
“8번 보조기 스위치를 올린다.” 베르그 중위가 반복해서 말했다.
“3번 터릿Turret을 최대로 가동하라.” 기장이 다시 소리 질렀다. “3번 터릿을 최대로 가동한다.”
8개의 엔진을 달고 있는 해군 수상기 내에서 정위치에 위치하여 각자의 임무를 바쁘게 해내고 있던 승무원들이 서로 쳐다보면서 씩 웃고 말았다. “저 영감이 우리를 죽이는구나.” 그들은 서로 이렇게 주고받았다. “저 영감은 지옥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씀이야.”……
“그렇게 빨리 몰지 말아요. 당신은 차를 너무 빨리 몰고 있잖아요? 무엇 때문에 그리 빨리 몰고 계시는 거예요?”
그의 아내가 말했다.
“응?” 월터 미티가 말했다. 그는 자기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를 깜짝 놀란 듯 쳐다보았다.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가득 모인 군중들 틈새로 자신에게 고함을 질러대는 다른 여자 같기도 했다.
“55마일이나 되잖아요. 제가 40마일 이상은 싫어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지금 속도는 55마일이란 말이에요.”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월터 미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워터베리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해군 생활 20년 동안 가장 지독했던 폭풍우를 뚫고 굉음을 뿜으며 돌진해 나가는 SN202기가 활주로 저편 먼 곳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당신 또 긴장하고 있어요.”라고 미티의 아내가 말했다. “마침 당신 쉬는 날이니 닥터 렌쇼에게 가셔서 진찰을 좀 받으세요.”
월터 미티는 아내가 머리 손질을 하러 들르는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내가 머리를 만지는 동안 덧신 사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안내가 말했다.
미티는 “덧신을 필요치 않아.”라고 말해 주었다.
아내는 거울을 다시 핸드백에 집어넣고 차에서 내리면서 “그 문제는 벌써 끝났잖아요.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젊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미티는 엔진을 조금 가속시켰다.
“장갑은 어쩌셨어요? 장갑 잃어버렸어요?”
월터 미티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장갑을 꺼냈다. 그리고 장갑을 손에 끼었다. 그러나 아내가 뒤돌아서서 빌딩 안으로 사라져 버리자, 차를 몰아 빨간 신호등이 있는 곳까지 온 그는 장갑을 벗어 버렸다.
신호등이 바뀌자 “선생, 빨리 차를 몰아요!”라고 교통순경이 재촉했다. 미티는 서둘러 장갑을 다시 끼고 급히 차를 몰았다. 그는 잠시 동안 일정한 방향 없이 길거리를 운전하다가 주차장을 향해 차를 모는 도중 병원을 지나치게 되었다.
……“백만장자 은행가인 웰링턴 맥밀란이랍니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의 말이었다.
“그래요?” 월터 미티는 천천히 장갑을 벗으며 대꾸했다. “환자는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
“닥터 렌쇼와 닥터 벤보오 그리고 두 사람의 전문의가 있는데, 뉴욕 출신의 닥터 레밍턴과 런던 출신의 닥터 프리차드-미트포드입니다. 그는 런던에서 비행기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길고 싸늘한 복도를 통하는 문이 열리면서 닥터 렌쇼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몹시 힘들어 보였으며 얼굴도 수척해 보였다. “잘 지냈나, 미티.” 그가 말을 건넸다. “지금 우리는 맥밀란이란 친구 때문에 무척 애를 먹고 있네. 백만장자 은행가이자 루스벨트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구 말일세. 신경섬유 다발이 벌써 노후해 버린 증상일세. 벌써 제3기에 접어들었어. 자네가 한번 봐주면 좋겠네만….”
“물론 봐주지.” 하고 미티가 대답했다.
수술실에 들어선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서로를 소개했다.
“닥터 레밍턴, 닥터 미티입니다. 닥터 프리차드-미트포드, 닥터 미티와 인사하시지요.”
프리차드-미트포드가 미티와 악수를 나누면서 “박사가 쓴 스트렙토드라이신에 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훌륭하게 쓰셨더군요.”라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티가 대답했다.
“미티 박사, 당신이 미국에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레밍턴도 한마디 거들었다. “제3기 환자를 눕혀 놓고 미트포드와 저를 이곳으로 불렀지만 헛수고에 지나고 말았습니다.”
“매우 겸손하시군요.” 미티가 말을 받았다.
그 순간 수많은 튜브와 전선이 부착되어있는 크고 복잡하게 생긴 기계가 철거덕⎯철거덕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신형 마취기가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습니다.”라고 한 인턴이 소리를 질렀다. “저것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은 이곳 동부엔 없습니다.”
“조용히 하시오.” 미티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꾸짖었다. 급히 기계 쪽으로 다가간 미티는 기계가 철거덕-철거덕-칙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더니 일렬로 늘어서 있는 번쩍이는 다이얼을 조심스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누구 만년필 좀 주시오.” 미티가 짤막하게 말했다. 한 사람이 그에게 만년필을 건네주자 그는 잘못 꽂혀진 피스톤을 꺼내고는 만년필을 그곳에 꽂아 두었다. “10분간은 제대로 움직일 겁니다.” 라고 미티가 말했다. “자, 수술을 시작합시다.”
그때 간호사가 급히 다가오더니 렌쇼의 귀에다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미티는 렌소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기생충이 발견되었답니다.” 렌쇼가 신경이 날카로운 듯 말했다. “미티 박사가 조금 봐주겠나?” 미티는 렌쇼를 쳐다보았다. 벤보우가 겁에 질려 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 훌륭한 전문의들조차도 침통하고 자신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네 부탁이라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이 그에게 하얀 가운을 입혀 주었다. 그는 마스크를 얼굴에 맞게 고쳐 쓴 뒤 얇은 장갑을 끼었다. 간호사들이 그의 손에 시퍼렇게 빛나는 메스를 건네주었다.……
“여보시오, 차를 빼요. 그 앞의 빅 세단을 보란 말이오.”
월터 미티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봐요, 차선을 잘못 들었소.” 주차장 종업원이 미티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소리쳤다.
“아이쿠 깜짝이야… 그렇군.” 하며 미티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출구〉라는 표시가 붙은 차선 뒤로 차를 후진시키기 시작했다.
“차를 그 자리에 세우시오. 내가 차를 제자리에 주차시킬 테니까.”라고 그 종업원이 말했다.
미티는 차에서 내렸다.
“이봐요, 키를 놓고 가야 할 것 아니오.”
“오, 그렇지.” 미티는 이렇게 말하며 그 사내에게 시동키를 건네주었다. 그 종업원은 차 속으로 뛰어들더니 마치 운전 솜씨를 자랑이나 하듯 미티의 차를 후진시켜 제자리에 주차시켰다.
월터 미티는 큰 거리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요즘 놈들은 더럽게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놈들은 마치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행세했다. 언젠가 그는 뉴 밀포드 외곽에서 바퀴에 감긴 체인을 풀어내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체인이 그만 차축에 감겨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정비 구조차에 타고 있던 한 사람이 내려와서 체인을 풀어 주었는데, 어리게 보이는 이 정비공 녀석은 기분 나쁘게 씩 웃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미티의 아내는 항상 그로 하여금 정비소로 차를 몰고 가 체인을 풀도록 시켰다. 그는 다음부터는 오른팔에 삼각붕대를 감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놈들이 비웃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오른팔에 삼각붕대를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놈들은 내가 직접 체인을 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겠지. 그는 보도 위에 널려 있는 질퍽한 흙더미를 발로 걷어찼다.
“덧신…” 하고 혼자 지껄인 미티는 주위에 신발가게가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덧신을 상자에 담아 팔에 끼고 다시 길거리로 나온 월터 미티는 아내가 부탁한 다른 물건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워터베리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에 두 번씩이나 그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는 매주 한 번씩 시내로 나오는 이 주중 행사를 일면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늘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클리넥스? 폭죽? 면도날? 그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치약? 칫솔? 중탄산소다? 카버런덤? 발안권과 국민투표? 이번에도 아니었다. 그는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애는 기억을 할 것이다.
“부탁한 물건 어디 있어요? 설마 물건 사는 것을 잊었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그녀는 이렇게 채근하리라… 그때 한 신문팔이 소년이 워터베리 공판에 관한 무슨 뉴스거리를 외치며 지나쳤다.
……“이 물건을 보면 아마 당신의 기억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지방 검사가 증언대에 말없이 서 있는 사람에게 불쑥 무거운 자동권총을 내밀었다. “전에 이 물건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월터 미티는 그 권총을 받아들고 자세히 조사해 본 후 조용히 말했다. “이것은 내 웨블리-빅커스 50.80구경 권총입니다.”
갑자기 흥분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법정 구석구석에서 일어났다. 판사는 톡톡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떤 총이고 잘 다루는 명사수란 말을 들었는데요?”라고 지방 검사는 심증을 굳히듯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미티의 변호사가 “이의 있습니다.”라고 소리 질렀다. “우린 이미 피고가 총을 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습니다. 우리는 7월 14일 밤 피고가 오른팔에 삼각붕대를 감고 있었다는 사실도 입증해 보였습니다.”
월터 미티가 그의 손을 잠시 들어 보이자 검사와 변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종류의 총이든지 나는 그레고리 피처스트를 300피트 거리에 두고도 내 왼손으로 총을 쏘아 그를 죽일 수 있었을 겁니다.”
법정 안은 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방청석의 혼란 속에서 한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치솟더니 갑자기 검은 머리의 귀엽게 생긴 한 여자가 미티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지방 검사가 그녀를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미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의자에 앉아 그 지방 검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망할 놈의 똥개 자식!”……
“강아지 비스켓.” 하고 월터 미티는 중얼거렸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법정은 가물가물 사라져 가고 대신 워터베리의 빌딩이 선명하게 눈앞에 들어와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지나치던 여자가 웃었다. “저 사람 〈강아지 비스켓〉이라고 말했지.”라고 그 여자는 같이 가던 사람에게 말했다. “혼잣말로 〈강아지 비스켓〉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월터 미티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번째 에이 앤 피 슈퍼마켓을 지나 길 위에 있는 보다 작은 에이 앤 피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몸집이 작고 아직 어린 강아지에게 줄 비스킷을 사러 왔습니다.” 그는 점원에게 살 물건을 말했다.
“어떤 회사의 비스킷을 원하십니까?”
세계 최고의 명사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곧 “포장에 〈강아지가 배고프다고 짖어요〉라는 문구기 있는 것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미티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내가 머리를 말리는 데 별 말썽만 일어나지 않으면 15분 내에 미장원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그녀의 머리는 말리는 데 시간이 들곤 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자신이 먼저 호텔에 가서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언제나처럼 남편이 호텔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것을 원했다. 미티는 호텔 로비에서 창문을 마주보고 있는 커다란 가죽소파를 찾아내고는 그 옆 마룻바닥에 덧신과 강아지 비스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낡은 『리버티』 잡지 한 권을 집어든 뒤 소파 속에 몸을 묻었다. 〈독일의 공군력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가?〉 라는 표제와 폭격기, 그리고 폐허가 된 거리의 사진이 월터 미티의 눈에 들어왔다.
……“고사포격으로 신병 랄리가 잔뜩 겁을 먹고 있습니다.”라고 상사가 말했다.
미티 대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녀석을 침대에 눕혀 두게. 다른 녀석들도 자리에 눕혀 놔. 나 혼자 미행할 테니까.”라고 피곤한 듯 내뱉었다.
“그건 안 됩니다.” 상사가 초조한 듯 말했다. “저 폭격기를 조종하는 데는 반드시 사병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위에선 고사포탄이 요란하게 터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솔리에까지 비행하자면 폰 리히트만의 곡예 기술이 필요합니다.”
“저 탄약고는 누군가가 반드시 날려버려야 하네.” 미티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날려버릴 테다. 브랜디 한잔하겠나?” 그는 브랜디 한잔을 따라 상사에게 주고, 자신을 위해 또 한잔을 따랐다. 포탄이 참호 바로 옆에서 작렬하여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나무 문이 산산이 부서지고, 그 파편이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제 가까워진 모양이군.” 미티 대위가 태연한 듯이 말했다.
“대공십자포화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사의 보고였다.
“상사, 우리는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네.” 미티는 희미하고 덧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그는 브랜디를 한잔 더 따르더니 단숨에 죽 들이켰다.
“대위님처럼 브랜디를 그렇게 마시는 사람은 처음 보겠습니다.” 상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위님.”
미티 대위가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큰 웨블리 비커스 자동권총을 허리에 찼다.
“지옥 같은 40마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대위님.” 상사가 말했다.
미티는 마지막 브랜디 잔을 비웠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 미티는 부드럽게 말했다. 포탄이 작렬하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타-타-타탕. 기관총 소리가 들려 왔다. 슈-우-욱 하는 신형 화염방사기의 소리도 들려 왔다. 월터 미티는 ‘나의 금발 미녀를 위하여(Aprés de Ma Blonde)’를 콧노래로 부르면서 참호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돌리며 상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잘 있게!” 라는 말을 남겼다.……
무엇인가 어깨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당신을 찾으려고 온 호텔 안을 다 뒤졌어요.” 미티의 아내가 말을 걸어 왔다. “왜 이 낡은 소파에 숨어 계신 거예요? 저 보고 어떻게 찾으라는 말씀이에요?”
“종말이 다가오고 있어.” 월터 미터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했다.
“뭐라고요?” 미티의 아내가 물었다. “당신 부탁한 것 다 사셨어요? 강아지 비스켓은 사셨나요? 저 상자 안에 든 게 뭐죠?”
미티는 “덧신이야.” 라고 대답했다.
“가게에서 그걸 신을 수는 없었던가요?”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어.” 라고 미티가 대답했다. “내가 때때로 무슨 생각에 골몰해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아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집에 돌아가서 당신 온도를 제어 보아야겠어요!”
두 사람은 스르르 미끄러지는 소리가 약하게 나는 회전문을 나왔다. 주차장은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길모퉁이의 약방을 지날 때 미티의 아내가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무언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 생각났어요. 일 분이면 돼요.” 그러나 그녀가 나왔을 때에는 일분이 훨씬 지난 뒤였다.
월터 미티는 담뱃불을 붙여 물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진눈깨비도 약간 섞여 있는 비였다. 그는 약국의 벽에 기대어 서서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어깨를 일으켜 세운 뒤 발뒤꿈치를 모아 똑바로 섰다. “망할 놈의 손수건 같으니!” 월터 미티는 경멸조로 말했다. 그는 마지막 담배연기를 들이마신 뒤 꽁초를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고 희미하나 얄궂은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총살 집행병들을 향해 섰다. 똑바로 서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당당하고 오만한 태도로 패배를 모르던 월터 미티는 마침내 그의 종말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