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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옷을 입은 여자들(The Girls in Their Summer Dresses)

여름 옷을 입은 여자들(The Girls in Their Summer Dresses)

Irwin Shaw

 

그들이 브레부우트를 떠났을 때 5번가는 햇빛이 비춰 빛나고 있었다. 아직 2월이었지만 햇살은 따스했고 주위의 모든 것이 일요일 아침의 모습 그대로였다. 버스며 짝지어 천천히 거니는 성장한 사람들이며 창문을 닫은 조용한 건물 등.

햇빛 속을 워싱턴 스퀘어 쪽으로 걸어가면서 마이클은 프란시스의 팔을 꽉 잡았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경쾌했으며 웃음을 얼굴에 담고 있었다. 잠을 푹 잔데다 흡족한 아침식사를 들었고 또한 그날이 일요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코트의 단추를 풀어 코트 깃이 부드러운 바람에 펄럭이도록 내버려 두었다.

조심해요.” 8번가를 건너며 프란시스가 말했다. “당신 목이 부러지겠어요.” 마이클이 웃었다. 프란시스도 따라 웃었다. “그 여자 별로 예쁘지도 않군요.” 라고 프란시스가 말했다. “아무튼 당신 목이 꺾어질 정도로 이쁘진 않은데요.”

마이클이 다시 웃었다. “당신, 어떻게 내가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지?”

프란시스는 머리를 한쪽으로 치켜올리고 모자의 테 밑으로 남편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이봐요, 마이크.”하고 프란시스는 말했다.

알았어, 미안해.” 그의 말이었다.

프란시스는 남편의 팔을 가볍게 친 뒤 워싱턴 스퀘어 쪽으로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하기 시작했다. “우리 오늘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말아요.”라고 프란시스가 말했다. “우리 둘이서만 다녀요. 당신하고 나하고 단둘이서만. 우린 언제나 사람들 틈 속에서 남의 일, 우리 일로 눈코 뜰 새가 없잖아요. 서로 잠자리에서만 만나구요. 나는 하루 종일 내 남편하고 둘이서만 외출하고 싶다구요. 내 남편이 오직 나만 쳐다보고 내게만 말하고 내 얘기만 들어주길 바래요.”

그렇게 못할 게 뭐 있소?” 마이클이 물었다.

스티븐슨 씨네가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우리더러 한 시경에 들러서 시골로 드라이브가재요.”

영악한 스티븐슨 일가 말이군.” 마이크가 말을 받았다. “생각할 것 없어,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이니까. 시골에는 자기네들끼리라도 드라이브 갈 수 있을 테지.”

그럼 오늘 당신과 데이트해도 되는 거지요?”

물론이지.”

프란시스는 남편의 몸에 기대어 귓바퀴에 입을 맞추었다.

여보, 여긴 5번가야.” 마이클이 말했다.

오늘 계획을 짜 볼게요.” 프란시스가 입을 열었다. “주머니에 쓸 만한 돈을 가진 젊은 커플이 뉴욕에서 일요일을 보낼 계획을 말이에요.”

서두를 건 없어.”

우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부터 가기로 해요.” 프란시스는 주중에 남편이 이곳에 한번 가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이렇게 제안했다. “거기 가 본 지 벌써 3년이나 됐어요. 그리고 다시 보고 싶은 그림도 적어도 열점이나 되구요. 그 다음엔 버스를 타고 래디오 시티에 가서 스케이트를 타기로 해요. 그러고 난 뒤 케버너프 식당에 가서 포도주 한 병하고 대장장이 앞치마만큼이나 큰 스테이크를 먹구요. 그러고 나서는 필마르트에서 상영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러 가요. 모든 사람들 얘기가여보, 내 말 듣고 있어요?”

그럼, 듣고 있어.” 마이크는 자기 옆을 지나가는, 헬멧처럼 댄서 스타일로 커트한 검은 머리의 여자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오늘 계획은 그래요.” 프란시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면 당신 혼자 이곳 5번가를 오르락내리락 걸어 다니든지요.”

아니야. 그럴 생각은 없어.” 마이클이 대답했다.

당신은 언제나 다른 여자들만 쳐다보고 다니실 거예요? 어딜 가나 당신과 함께 다닐 때에는 늘 다른 여자만 쳐다보잖아요?”

그렇지 않아, 여보.” 마이클이 말을 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쳐다보고 있는 거야. 신이 나에게 눈을 주었으니 지하철을 타는 남녀를 보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들에 핀 꽃도 보는 것이지. 나는 자연을 둘러보는 거란 말이오.”

당신이 5번가에서 이따금 자연을 본다지만 그때 당신 눈에 비친 표정이 어떤 줄이나 아세요?” 프란시스가 물었다.

난 결혼해서 행복한 남자라구.” 라고 말하면서 마이클은 아내의 팔꿈치를 가볍게 눌렀다. “20세기의 가장 행복한 부부⎯⎯마이크 루미스 부부라구. 여보, 어디 가서 한잔합시다.” 마이클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우린 방금 아침 식사를 했어요.”

내 말 들어봐. 여보.” 마이크는 조심스럽게 어휘를 골라가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우리 모두 기분 좋게 느끼고 있잖소. 우리 기분을 망칠 이유가 아무것도 없고 하나, 우리 일요일을 멋지게 보냅시다.”

좋아요. 제가 왜 이런 얘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군요. 이제 다툼은 그만두고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해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유모차와 외출복을 차려 입은 이탈리아 노인들, 그리고 스코틀랜드 복장을 한 젊은 여자들 사이로 아무 말 없이 워싱턴 스퀘어 광장을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프란시스가 아침식사 때, 그리고 산책을 나오기 시작했을 때 기분 좋았던 목소리를 되살려 누구든지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러야 해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요일에 그곳에 들른다면 더욱 멋지죠. 그림들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고, 따라서 당신은 뉴욕시에서 예술이 결코 쇠퇴해 가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거예요.”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소.” 마이클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난 다른 여자를 건드린 적이 없었소. 한 번도 말이요. 지난 5년 동안

알아요.” 프란시스가 말했다.

당신 내 말을 믿지?”

그럼요.”

두 사람은 시립공원의 키 작은 나무들 아래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벤치 사이를 걷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하려고 노력해요.” 프란시스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어떤 여자가 우리 곁을 지나갈 때 당신이 그녀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당신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 보내준 그 눈초리와 똑같은 것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하고 불쾌한 마음마저 갖게 되요. 앨리스 맥스웰의 집 거실의 라디오 옆에 서서 녹색 모자를 쓰고 사람들 너머로 저를 처음 바라보던 눈빛이 이제는 다른 여자들에게 보내지고 있으니 속이 상한단 말이에요.”

나도 그 모자를 기억하고 있어.” 마이클이 말했다.

바로 그 눈빛 때문에 내가 속이 상해요. 저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요.”

쉬이, 제발. 여보, 쉬이이.”

지금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프란시스가 말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8번가의 한 술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아내가 연석(緣石)을 넘는 것을 자연스레 도와주고 자동차들 사이로 그녀를 안내하였다. 둘은 술집에 들어서서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햇살이 안으로 비춰들었고 벽난로에는 작은 불꽃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키가 작은 일본계 웨이터가 다가와 비스켓을 조금 내려놓고 두 사람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침식사 후인데, 당신 뭘로 들겠소?” 마이클이 아내에게 물었다.

브랜디가 좋겠어요.” 프란시스의 답이었다.

마이클은 웨이터를 돌아보며 꾸르바지에 둘!” 하고 주문했다.

웨이터가 술잔을 가져오자 두 사람은 햇빛을 받으며 브랜디를 마시기 시작했다. 브랜디를 반쯤 마신 마이클은 물을 조금 마셨다.

그래, 나는 여자들을 쳐다보지. 당신 말이 맞아. 그러나 그것이 옳거나 나쁘다거나라고 말하지는 않겠어. 내가 지나가는 여자들을 바라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길거리에서 여자들을 지나치면서 그들을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을 속이는 일이면서, 나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기도 해.”

하지만 당신이 여자들을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당신이 여자들을 원하는 것처럼 보여요.” 프란시스는 브랜디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받았다. “쳐다보는 여자들 모두를 원하는 눈빛이라구요.”

마이클은 아내를 쳐다보지 못하고, 그러나 목소리는 부드럽게 하면서 말을 이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사실이야. 여자에게 손을 대는 일은 없지만 말이지.”

저도 알아요,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제 속이 상하는 거라구요.”

브랜디 더 들도록 하지.” 마이클은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 브랜디 둘 더.”

마이클은 한숨을 내쉬고, 두 눈을 감고는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나는 여자들의 모습을 좋아하는 거야. 내가 뉴욕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여자가 많다는 점이야. 내가 오하이오에서 뉴욕으로 처음 왔을 때 우선 발견한 것이 뉴욕 시에는 멋진 여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었어. 나는 가슴이 잔뜩 부풀어 기대감이 늘 목에 찬 채 돌아다니기도 했지.”

어린애 같으니라구.” 프란시스가 말을 가로챘다. “그것은 철없는 애들이나 갖는 감정이라구요.”

다시 생각해 봐.” 마이클이 계속 말을 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라구. 내 나이 중년에 접어들고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지만, 난 아직도 세 시쯤에 50번과 57번 도로 사이에 있는 5번가의 오른쪽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있어. 이 시간쯤이면 여자들이 모피옷을 입고 요란한 모자를 쓴 채 거리에 쏟아져 나와 쇼핑을 한단 말이야. 전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것은 바로 이 5번가와 7개 블럭에 다 모여 있지. 가장 좋다는 모피, 가장 비싸다는 옷, 돈 쓰러 나와 쇼핑을 즐기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까지 모두 다 있지.”

일본계 웨이터가 브랜디 두 잔을 가져와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즐거운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 보였다.

재미있으십니까?”라고 웨이터가 물어보았다.

아주 재미있소.”라고 마이클이 대답했다.

단지 몇 벌의 모피코트와 45달러짜리 모자라면프란시스가 입을 열었다.

모피코트가 아니야, 모자도 아니고, 그것은 바로 이 특별한 부류의 여자들의 모습이란 말이야. 알겠소? 하지만 당신 내 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당신 얘기를 듣고 싶어요.”

난 사무직을 맡고 있는 여자들을 좋아해. 단정하고 안경을 쓴 날씬하고 명랑하며 돌아가는 일들을 척척 아는 여자들 말이오. 점심시간에 44번가에 나오는 여자들도 좋아하지. 주일 내내 아무 일도 없는 데 완전히 정장을 한 여배우들 말이오. 그리고 가게의 여자 점원들도 좋아하지. 오로지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 손님들보다 먼저 신경을 써주는 여자점원들 말이오. 난 이런 기질을 내 몸속에 쌓아 놓은 것이오. 10년 동안 그것만 생각해 왔으니까. 당신이 이 얘기를 듣고 싶어 하니 들려주는 거요.”

계속해 보세요.” 프란시스가 재촉했다.

뉴욕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마다 나는 길거리에 나오는 여자들을 생각하지. 나는 이런 생각이 내게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시내의 모든 남자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거리를 쏘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거리에 나설 때마다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아. 극장에 들어가면 머리 만지고 몸단장하는 데 6시간씩이나 소비하는 유명한 미인들 옆에 앉기를 좋아하지. 축구 경기장에 가면 두 볼에 상기된 빛을 띠우고 있는 젊은 여자들 보기를 좋아하지. 그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짧은 여름옷을 입은 여인들을 좋아한단 말이야.” 그리고 마이클은 브랜디 잔을 비웠다. “이게 내가 당신에게 들려 줄 얘기야.”

프란시스도 브랜디 잔을 비웠다. 그리고 두세 번에 걸쳐 삼켰다.

당신은 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저도 역시 예뻐요.” 프란시스가 말했다. “누구 못지않게 예쁘다구요.”

당신은 아름다워.” 하고 마이클이 말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열심히 살았어요.” 프란시스는 애원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의 좋은 아내, 훌륭한 주부, 그리고 좋은 친구였잖아요. 당신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했구요.”

나도 알아.” 마이클은 손을 내밀어 아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당신은 자유로운 몸이 되고 싶어 하시죠프란시스가 말했다.

쉬이이

솔직히 말해 보세요.” 프란시스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마이클의 손에서 빼냈다.

마이클은 손가락으로 자기 앞에 놓인 잔을 퉁겼다. “그래, 솔직히 말하지. 때때로 자유스러운 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는 점잖게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얘기만 하세요.” 라고 프란시스가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라고 말한 마이클은 자기의 의자를 아내 쪽으로 휙 돌려놓고 아내의 허벅지를 손으로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프란시스는 술집 안의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상체를 약간 앞으로 굽힌 채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나지막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면서 언젠가 당신은 내 곁을 떠나겠지요?” 라고 말했다.

마이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바텐더가 천천히 레몬 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 그래요?”

프란시스가 격한 감정으로 물어보았다.

어서 얘기해 보세요. 안 그래요?”

그럴지도 몰라.” 마이클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의자를 들어 다시 제자리로 왔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야?”

당신은 벌써 알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프란시스는 집요하게 물었다.

잠시 후 마이클이 입을 열었다.

그래, 알고 있어.”

그러자 프란시스는 울음을 멈추었다. 손수건에 두세 번 킁킁거리며 콧물을 닦은 그녀는 손수건을 치워 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세요.”

그러지.”

이 여자가 어떻게 예쁘고 저 여자가 어떻고 하는 얘기는 그만 하세요. 눈이 얼마나 멋있고, 가슴이 얼마나 아름답고, 외모가 어떻고, 목소리가 부드럽고 하는 따위의 얘기들은 그만 해 두시란 말이에요.” 프란시스는 마이클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당신 혼자만 알고 계세요. 나는 관심 없다구요.”

마이클은 웨이터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그래, 혼자만 알고 있도록 하지.”라고 말했다.

프란시스는 눈을 가볍게 깜빡거렸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브랜디 더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 마이클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 손님.” 하며 웨이터는 물러갔다.

프란시스는 차가운 눈초리로 남편을 건너다보았다.

스티븐슨 씨 댁에 전화할까요? 시골에 가면 멋있을 거예요.”

좋아, 전화해 봐.” 마이클이 대답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홀을 가로질러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마이클은 아내가 걷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멋진 여자이며 아름다운 다리를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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