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를 위한 장미(A Rose for Emily)
William Faulkner
Ⅰ
에밀리 그리슨 양이 죽었을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장례식을 보러 갔다. 남자들은 무너진 기념비에 대한 일종의 경의에 찬 감정에서였고, 여자들은 대부분 그녀의 집안을 한번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에서였다. 적어도 10년 동안 정원사와 요리사 노릇을 겸한 노인을 제외하고 그 집안에 들어가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집은 크고 네모난 목조건물이었다. 한때 그 집은 원형 지붕과 뾰족탑, 그리고 1870년대의 묵직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한 소용돌이 모양의 발코니를 자랑이라도 하듯 하얀색을 단장한 채 우리 마을에서 가장 화려했던 거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차고와 조면공장이 들어서면서 이웃의 당당하던 집들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오로지 에밀리의 집만이 쇠퇴해가는 완고하고 요염한 모습을 고집하며 목화 수레와 가솔린펌프 위로 우뚝 서 있어서 눈엣가시 중의 가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에밀리는 제퍼슨 전투에서 쓰러져 간 북부군과 남부군 병사들의 이름 없는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삼목으로 가려진 묘지에 저 당당하던 이웃 사람들과 함께 눕기 위해 가버리고 말았다.
살아서 에밀리는 하나의 전통, 하나의 의무, 하나의 근심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에 대한 일종의 빚 때문이었다. 빚 이야기는 1894년 당시 시장이었던 사토리스 대령─╴그는 흑인 여자는 누구건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는 거리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포고령을 직접 쓴 사람이었다─╴이 그녀의 세금을 면제해 준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금의 면제는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날로부터 영원히 효력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에밀리가 동정을 구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에밀리의 아버지가 마을에 돈을 빌려준 적이 있으니 거래상의 문제로서 마을이 그 돈을 이런 식으로 갚는다는 내용의 소문을 꾸며냈던 것이다. 그러나 사토리스 대령과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나 여자들을 빼놓고는 그런 소문을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다음 세대가 등장하여 시장이 되고 시의회 의원이 되면서 사토리스 대령의 결정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해 첫날, 그들은 그녀에게 세금통지서를 보냈다. 그러나 2월이 되어도 응답이 없었다. 그들은 다시 편리한 시간에 보안관 사무실로 출두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식서한을 띄웠다. 일주일 후 시장은 다시 그녀를 직접 찾아가든가 아니면 자신의 차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직접 써서 보냈다. 그 후 시장은 그녀로부터 고풍스러운 형태의 종이 위에 색바랜 잉크로 가늘고 유려한 달필로 써진 메모를 받았다. 그 메모에는 이제는 그녀가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전에 보냈던 세금통지서가 그대로 동봉되어 있었다.
그들은 시의회 특별위원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대표단을 구성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가 그녀가 8년인가 10년인가 전에 도자기공예 교습을 그만둔 이후, 그 어느 방문객도 통과한 적이 없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대표단은 늙은 흑인에 의해서 어두운 현관 안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그보다 더 어두운 위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하나 있었다. 계단에는 사용한 적이 없는 듯 먼지가 쌓여 있었고, 답답하고 습기가 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흑인 하인은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하인이 한 창문의 블라인드를 올리자 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희미한 먼지가 그들의 허벅지 주위에서 슬며시 피어올라 작은 알맹이가 되어 서서히 돌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금박을 입혔으나 변색 돼버린 벽난로 앞 이젤 위에는 크레용으로 그린 에밀리의 아버지 초상화가 얹혀 있었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작고 뚱뚱한 여자였다. 그녀가 입은 검은 옷 위에는 가슴으로 내려와 허리 위 벨트 속으로 숨어버리는 가는 금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색바랜 금빛 자루가 달린 흑단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골격은 작고 볼품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단지 통통한 정도의 몸집이었겠지만 그녀라서 비만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녀의 몸은 오랫동안 괴어있는 물속에 잠겨 있었기라도 한 듯, 부풀어 있었다. 얼굴은 무척 창백해 보였다. 방문객들이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한 얼굴 한 얼굴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은 지방으로 툭 불거진 얼굴 속에 파묻힌 것이 반죽 덩어리 속으로 쑤셔 던져진 두 개의 작은 석탄 조각 같아 보였다.
그녀는 방문객들에게 앉으라고 권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더듬거리며 말을 하다가 그칠 때까지 문가에 서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사람들이 말을 그치자 금줄 끝에서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녀의 음성은 메마르고 차가웠다.
“제퍼슨 시절부터 세금을 내지 않았어요. 사토리스 대령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해 주었지요. 아마 시청문서를 뒤져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도 이미 뒤져봤습니다. 우리가 바로 시 당국자들이니까요. 미스 에밀리, 보안관이 직접 사인한 통지서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종이를 한 장 받기는 했지요.”
에밀리 양이 대답했습니다.
“아마 그는 자신이 보안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요. 여하튼 나는 제퍼슨 시절부터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만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사토리스 대령을 만나보시란 말이에요(사토리스 대령은 거의 10년 전에 죽고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 토우브!”
흑인 하인이 나타났다.
“이 어른들을 밖으로 모셔요.”
Ⅱ
그렇게 그녀는 30년 전 악취에 관한 문제로 그들의 아버지를 물리쳤던 것처럼 그들을 물리쳐 버렸다. 그 사건은 그녀의 아버지가 죽고 난 2년 뒤의 일이었으며, 그녀의 애인─╴우리는 그가 그녀와 결혼하리라고 믿었다─╴이 달아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은 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이 모습을 감추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몇몇 여자가 애써 찾아가 보았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유일한 흔적이라고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락거리는 흑인 하인─╴그때는 젊은 남자였다─╴뿐이었다.
“꼭 남자라야 부엌일을 할 잘할 수 있다는 얘기 같군.”
여자들은 이렇게 쑤군거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집에서 악취가 풍겨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 악취는 야비하고 시끌벅적한 속세와 매우 도도하고 오만한 그리슨 가를 이어주는 또 다른 교량이었다.
이웃에 살던 한 여자가 시장(市長)이던 80세의 스티븐스 판사에게 정식으로 호소해 왔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라는 얘기입니까, 부인?”
“그야, 그 여인에게 냄새를 풍기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는 거지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법이 있잖아요?”
“제 생각에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스티븐스 판사가 말했다.
“그 냄새는 아마 그녀의 흑인 하인이 뜰에서 잡은 뱀이나 쥐가 썩는 냄새일 겁니다. 내가 그 여자의 하인에게 얘기해 두지요.”
다음 날, 시장인 스티븐스 판사는 또다시 두 건의 호소를 받았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듣고 찾아온 한 남자의 호소였다.
“우린 정말 어떤 조처를 내려야 합니다. 판사님, 저는 미스 에밀리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이제 어떤 수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밤 시의회 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수염이 희끗희끗한 세 명의 노인과 새로운 세대의 일원인 젊은 사람 한 명이 위원회의 구성인원이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젊은 위원이 입을 열었다.
“그 여자에게 집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지시를 내립시다. 그 여자가 알아서 그렇게 하도록 어느 정도 시간을 주고, 그래도 하지 않으면…….”
“집어치우게, 이 사람아.”
스티븐스 판사가 소리를 질렀다.
“자네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면전에다 대고 어느 여자에게 욕을 할 셈인가?”
다음 날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각에 네 명의 사나이가 강도처럼 에밀리의 집 잔디밭을 살금살금 걸으며, 벽돌벽 기둥 근처와 지하실 창문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가 어디서 나오나 찾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나이는 어깨에 둘러멘 자루에서 연신 무엇인가를 꺼내 씨를 뿌리는 듯한 동작을 반복했다. 사나이들은 지하실 문을 부수고, 거기에다 석회를 뿌렸다. 지하실뿐 아니라 모든 헛간에도 석회를 뿌렸다. 사나이들이 다시 잔디밭을 나오려 할 때, 어둡던 창문 하나에 불이 켜졌다. 에밀리가 불빛을 등 뒤로 둔 채 우상처럼 몸을 곧게 세우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나이들은 살금살금 기어서 잔디밭을 벗어나, 거리에 줄지어 선 아카시아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한두 주일쯤이 지나자 냄새는 사라져 버렸다.
그때는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정말로 안됐다고 느끼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녀의 대고모 와이야트 노부인이 끝내 어떻게 미쳐버리고 말았는지 생생하게 기억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리어슨가 사람들이 실제 자기네 형편에 비해 조금 지나칠 정도로 콧대를 세우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마을의 젊은이들 중에 에밀리에게 맞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우리는 에밀리 부녀를 하나의 그림 속에 집어넣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가냘픈 에밀리는 뒤에 서 있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 앞에서 말채찍을 움켜쥐고 다리를 벌린 채 서 있는 모습의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활짝 열린 현관의 문틀로 테를 두른 그림 속의 모습을 우리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나이 서른이 되었어도 아직 미혼이었을 때, 우리는 정확하게 말해서 기뻐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옹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록 그녀의 가족 중에 미친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가족이 현실적인 태도를 취했다면, 그녀가 모든 기회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집이 전부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마침내 에밀리에게 동정심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홀로 빈털터리가 된 그녀는 차츰 인간적인 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도 역시 한 푼의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생기게 되는 흔해 빠진 절망과 전율을 만만치 않게 알게 될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다음 날, 마을의 여자들은 관습대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 위로도 해주고, 일도 거들어 줬다. 에밀리는 동네 여자들을 현관에서 맞이했다. 그러나 그녀의 복장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얼굴에는 슬픈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문한 목사와 그녀에게 시신을 내놓으라고 설득하는 의사들에게 그녀는 사흘 동안 이 말만 되풀이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법과 완력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려 하자 그녀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재빨리 그녀의 아버지를 매장했다.
그때 우리는 그녀가 미쳤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우리는 그녀의 아버지가 내쫓아버린 모든 젊은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그녀가 그녀의 중요한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린 존재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그녀와 같은 처지였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Ⅲ
그녀는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앓았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의 머리는 짧게 커트되어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교회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천사처럼, 약간은 비애에 젖은 소녀 같았다.
시에서는 인도를 포장하는 도급계약을 끝내 놓은 상태였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뒤 처음 돌아온 여름, 사람들은 포장일을 시작했다. 건설회사의 흑인 노무자들, 노새 그리고 장비가 마을로 들어왔다. 그 일행 속에는 호머 배런이라는 이름의 십장(什長)1)이 끼어 있었다. 북부 양키였다. 그는 크고 검은 몸집을 지닌 행동이 민첩한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상당히 컸고, 눈은 그의 얼굴보다 더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가 흑인 노무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소리를 듣고, 흑인 노무자들이 곡괭이를 쳐들었다가 내리치면서 박자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알게 되었다. 작업장 주위의 어느 곳에서든지 사람들이 모여 떠들며 웃는 소리가 들릴 때면 호머 배런은 항상 그 사람들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마차 대여소에서 나온 한 쌍의 적갈색 말이 끄는 노란 바퀴의 사륜마차에 탄 호머 배런과 에밀리의 모습을 일요일 오후마다 보게 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에밀리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일이 있다는 것을 보고 내심 기뻐했다.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틀림없이 그리어슨 가의 여자가 날품팔이 북부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 중에 달리 말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리 슬픈 일이 있더라도, 숙녀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2)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그들이 직접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했다.
“불쌍한 에밀리, 그녀의 친척들이 자주 찾아와 봐야 하는 건데…….”
그녀는 앨라배마에 친척을 두고 있었지만 수년 전 그녀의 아버지가 머리가 돌아버린 와이야트 노부인의 토지를 놓고 그들과 다투는 바람에 두 집안의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장례식에도 사람을 보내지 않아다.
나이 든 여자들이 ‘불쌍한 에밀리’라고 부르자 여자들은 서로 수근 거렸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들은 서로 이렇게 물었다.
“물론이지, 그 밖에 무슨…….”
이것은 그들이 손을 쓸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쌍의 말이 다가닥─다가닥─다가닥 하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가볍게 걸어 지나갈 때, 일요일 오후의 태양을 가리고 있는 베니션블라인드 뒤에서 앞으로 숙여진 비단과 공단자락들이 와스락거리고 있었다. ‘불쌍한 에밀리’
그녀는 머리를 꽤나 높이 쳐들고 다녔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녀가 풀이 죽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부터 그녀가 그리어슨 가의 마지막 여자로서 위엄을 갖추고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녀의 무감각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한 세속적인 인정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쥐약인 비소를 살 때에도 그랬다. 그때는 사람들이 ‘불쌍한 에밀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후 1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두 명의 사촌 자매가 그녀를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극약을 좀 주세요.”
그녀는 약사에게 말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서른이 넘었고, 평소보다 야위기는 했지만 우리가 상상으로 볼 수 있는 등대지기의 얼굴처럼, 관자놀이를 지나는 부분과 눈구멍 주위의 살이 꽉 죄는 얼굴에, 차갑고 거만한 검은 눈동자를 가진 에밀리는 여전히 볼품없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극약을 사러 왔어요.”
“네, 미스 에밀리, 어떤 종류의 극약을 드릴까요? 쥐 잡은 약 같은 것 말인가요?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제일 독한 걸로 주세요. 종류는 상관하지 말구요.”
약사는 몇 가지 종류의 극약 이름을 말해 주었다.
“이런 것들이면 코끼리까지도 죽일 수 있지요. 하지만 어떤 걸 원하시는지…….”
“비소.”
에밀리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게 약효는 좋지요?”
“비소 말인가요? 그럼, 아가씨. 하지만 아가씨가…….”
“비소를 주세요.”
약사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펼쳐든 깃발처럼 올리며 약사를 똑바로 되쏘아보았다.
“예, 그야 물론…….”
약사는 이어 말했다.
“그것이 아가씨가 원하는 거라면야…… 하지만 법률상 그것을 어디다 쓰실 건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에밀리는 다만 그를 응시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약사와 눈싸움이라도 하듯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약사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그 자리를 물러선 후 비소를 꺼내 포장을 했다. 그러나 그 비소 포장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그 약사가 아니라 심부름꾼인 흑인 소년이었다. 약사는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집에 돌아와 포장을 뜯자, 상자 위에는 해골과 뼈가 그려진 표지 밑에 <구서용(驅鼠3)用)>이라고 적혀 있었다.
Ⅳ
다음날 우리는 모두 ‘그 여자 자살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일 거라고 말했었다. 그녀가 호머 배런과 데이트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우리는 그녀가 그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는 그녀가 그를 설득하고 있을 거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호머 배런은 남자들, 특히 젊은 남자들과 어울려 엘크의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자신은 결혼 같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 후 우리는 에밀리를 보고 ‘불쌍한 에밀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 우리가 머리를 높이 쳐든 그녀가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입에 시가를 문 채 노란 장갑을 낀 손에 고삐와 채찍을 들고 화려한 마차를 모는 호머 배런과 함께 모습을 보일 때면 그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몇 여자들이 그녀의 행동이 마을의 수치이며 아이들 교육상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주장을 못 들은 척했지만, 끝내 여자들은 침례교회 목사에게 그녀를 찾아가 보라고 강요했다. 그녀의 가족은 감리교 신자였다. 목사는 에밀리를 만난 결과에 대해서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고 또다시 그녀를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다음 일요일 오후, 두 사람은 또 거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자 다음날 목사 부인은 앨러배마의 에밀리 친척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친척과 함께한 지붕 밑에서 지내게 되었고, 우리는 한걸음 물러서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사람이 곧 결혼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우리는 곧 에밀리가 보석상을 찾아가 물건마다 H.B. 라는 글자를 넣은 남자용 은제 화장도구 세트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우리는 그녀가 잠옷까지 포함한 남자용 의상 일체를 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 사람이 결국 결혼하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우리가 기뻐했던 것은 그녀의 두 사촌 자매가 에밀리보다 훨씬 더 그리어슨 가의 가풍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호머 배런이 자취를 감췄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도로포장 공사는 벌써 끝나 있었다. 우리는 모든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실망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에밀리를 부를 자리를 마련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녀가 사촌 자매들을 쫓아낼 기회를 주기 위해 잠시 마을을 떠난 것으로 생각했다(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놓은 것처럼, 모두 그녀 사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일에 열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주일이 지나자 그녀의 사촌 자매들은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 기대하고 있었던 것처럼 사흘도 안 되어 호머 배런의 모습이 다시 시내에 나타났다.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무렵 흑인 하인이 부엌에서 그를 맞이하는 것을 한 이웃 사람이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호머 배런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에밀리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흑인 하인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락날락하는 모습은 눈에 띄었어도 현관문은 언제나 잠겨 있었다. 이따금 우리는 네 명의 사나이가 그녀의 집 주위에 석회를 뿌리던 날 밤 본 것처럼 잠깐씩 창가에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6개월 동안 그녀는 거리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때 우리는 이것도 역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여자로서 그녀 인생의 길을 여러 번 가로막았던 그녀 아버지의 성격이 너무도 독하고 강해서 아직 그 집안에 남아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 후 우리가 에밀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녀의 몸집이 뚱뚱해지고, 머리카락은 흰빛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계속 희게 변하더니 마침내 철회색의 머리카락이 되고 말았다. 74세의 나이로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 머리카락은 활동적인 사나이의 머리카락처럼 여전히 생기에 넘치는 철회색 빛이었다.
그 후로 그녀의 집 현관문은 굳게 잠겨 열릴 줄 몰랐다. 단지 그녀가 40세 정도 되었을 무렵 6~7년간 도자기공예 강습소를 차렸을 때는 예외였다. 그녀는 아래층에 있는 방 하나에 화실을 차렸다. 사토리스 대령과 그의 같은 세대 인물들의 딸, 손녀딸들이 그녀의 강습을 받으러 다녔다. 그 학생들은 모금함에 집어넣기 위해 25센트짜리 동전을 받아들고 일요일마다 집을 나서는 기분으로 그녀의 강습소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녀에게는 세금면제의 혜택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다 새로운 세대가 시의 중추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에밀리의 강습소에 다니던 어린 여자애들도 성장해서 흩어진 후 자신들의 자녀에게 그림물감 통이나 너저분한 붓, 여성잡지에서 오려 낸 그림을 쥐어주며 그녀의 강습소로 보내는 일을 중지해 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집 현관은 굳게 닫혀 졌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마을에 우편 배달부가 자유로이 집 안으로 들어가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는 제도를 채택했을 때 유독 에밀리만은 현관문에 금속번지판을 붙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대신 우편함을 달아 놓았다. 도무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날이 바뀌고 달이 지나고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우리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락날락 거리는 흑인 하인의 머리가 더욱 희어지고 허리가 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매년 12월이면 그녀에게 세금 통지서를 보냈지만 1주일 후에 수취인 불명으로 우체국으로부터 환송되곤 했다. 이따금 우리는 아래층 창문을 통해서 그녀의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그녀는 집 위층을 봉쇄해 버린 것이 분명했다─╴그녀가 우리를 쳐다보는지, 아니면 쳐다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귀엽고, 달아날 길 없고, 무감각하고, 평온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세대와 세대를 거쳐 갔다.
그리하여 그녀는 죽었다. 먼지와 그림자들로 가득 찬 집안에서 비틀거리는 흑인 하인만이 곁에서 시중을 드는 가운데 병을 앓다가 죽어간 것이었다. 그녀가 병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몰랐다. 흑인 하인으로부터 집안 소식을 얻어내려는 우리의 노력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되었다. 그 흑인 하인은 아무에게도 말하는 법이 없었다. 에밀리에게조차 아무 말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아 그만 목소리가 쉬고 녹슬어 버렸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아래층에 있던 방에서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해 누렇게 변하고 곰팡내 나는 베개 위에 흰 머리를 누이고 휘장이 쳐진 묵직한 호두나무 침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Ⅴ
흑인 하인은 여자 조문객들을 현관에서 맞았다. 여자들은 서로 쉬쉬하며 조용하게 말을 하면서 호기심에 찬 눈초리를 재빨리 여기저기 던졌다. 흑인 하인은 여자들을 집안으로 안내한 뒤 사라져 버렸다. 그는 곧장 집안으로 걸어 들어가 뒤뜰로 나간 다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의 두 사촌 자매들도 곧 도착했다. 사람들은 이틀째 되던 날 장례식을 치렀다. 온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숱한 꽃송이 밑에 누운 에밀리를 바라보았다. 크레용으로 그려진 그녀 아버지의 얼굴이 관가(棺架) 위에서 깊은 묵상에 잠겨 있었고 사람들은 쉬쉬하며 떠들지 않았으나 섬뜩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그들 중 몇 사람은 먼지를 털어낸 남부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현관과 잔디밭 위에서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 같이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녀와 함께 춤을 춘 적도 있었고, 어쩌면 그녀에게 구애한 적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의 늙은 노인들이 그러하듯 세월의 흐름을 정확히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모든 과거가 멀리 작게 보이는 길이 아니라 겨울이 결코 찾아오는 적이 없는 드넓은 초원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단지 이제는 가장 최근의 10년이란 세월이 좁은 통로가 되어 그들을 그 과거와 갈라놓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우리는 계단 위층에 지난 40년 이래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강제로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방이 하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에밀리가 조용히 땅속에 묻힐 때까지 그 방문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그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자 방안의 먼지가 짙게 피어올라 선뜻 방안으로 들어설 수 없을 정도였다.
무덤을 덮을 때 쓰는 매캐한 냄새가 나는 얇은 천이 혼례를 치르기 위해 가구를 들여놓고 장식까지 해놓은 그 방의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색 바랜 장밋빛 침대막이 커튼 위에도 걸려 있었고, 장밋빛 조명기구와 경대 위, 섬세하게 배열된 수정 그릇과 변색 된 은제품들, 너무나 색이 바래 버려 글자까지 희미한 남자용 은제 화장도구 위에도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물건들 사이에는 마치 방금 벗어놓은 듯한 카라와 타이가 놓여 있었다. 그 카라와 타이를 집어 들자 먼지로 덮여 있던 바닥 위에는 희미한 초승달의 형상이 그려졌다. 의자 위에는 조심스럽게 개어 놓은 양복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두 짝의 구두와 내던진 양말이 말없이 놓여 있었다.
사나이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참 동안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살점이라고는 붙어 있지 않은 채 싱긋이 그윽한 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시체는 한때 포옹의 자세로 누워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보다도 길고 사랑의 잔인한 행위까지도 극복하고 있는 긴 잠이 자신도 모르는 사랑의 표현을 연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아있는 잠옷 밑에서 썩어버린 그의 육체의 남은 부분이 그가 누워있는 침대로부터 탈출할 기회를 잃고 있었다. 그의 시신과 바로 곁의 베개는 오랫동안 차분하게 쌓인 먼지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제2의 베개에 움푹 들어간 머리 자국이 있음을 발견했다. 희미한 채 잘 보이지 않는 먼지의 건조하고 매운 냄새로 콧구멍이 막히는 것을 무릅쓰고 한 사람이 그 베개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들어 앞으로 몸을 굽혔을 때 우리는 그것이 기다란 철회색 머리카락 한 올임을 알았다.
1) 공사 현장에서 일꾼을 직접 감독, 지시하는 우두머리의 하나.
2)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라는 뜻의 불어.
3) 쥐를 잡아 없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