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보라다 알만사의 행복한 죽음
Leonardo Padura
알보라다 알만사는 그 날 무언가 특별한 것이 일어나리라는 확실한 느낌을 가지고 기분 좋게, 하지만 단호하게 잠을 깼다. 간신히 눈을 떴지만, 꿈속의 예언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뜨거운 총천연색의 악몽으로 점철된 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가 기쁨을 느끼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침대에서 그녀 스스로 만든 달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 날은 그녀가 사랑하던 대천사 라파엘의 축일이었지만, 그리 특별한 날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생일도 아니었고, 그녀가 알고 있던 그 누구의 생일도 아니었으며, 그토록 고대하면서 주문한 것들이 창고에서 발송되는 날은 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절염으로 인해 굳어진 자신의 손발을 애먹이지 않기 위해, 늙은 알보라다 알만사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다 헤진 실내화를 신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모두 모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단 한번의 시도로 완벽하게 똑바로 설 수 있었다. 그러자 아름답게 잠을 깬 것이 배고픔과 더위와 늙음으로 야기된 악몽의 또 다른 더러운 플레이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기분도 좋고 몸도 가벼웠다. 밤을 새며 일한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꿈은 즐겨야 돼,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이 자기 생일도 아니었고, 물건을 사러 가는 날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마음을 정하고 부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커피를 보관하고 있던 상자를 찾았다.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계시의 꿈이 바로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기쁘게 그녀는 커피 병 안이 검고 향기로운 커피 가루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커피가 없는 날이면 그녀는 몹시 고통을 받곤 했다. 보름마다 배급받는 500그램의 커피는 사흘 치 아침만 간신히 마실 수 있는 분량이었고, 나머지 12일은 아니스와 오렌지 잎 혹은 번여지속 싹으로 달인 국물로 아침마다 야단치는 자기의 주린 배를 달래야만 했다. 그녀는 항상 설탕을 듬뿍 넣어 이런 국물을 만들곤 했는데, 그것은 다른 날도 살 수 있도록 약간의 기운을 핏속에서 느끼기 위해서였다.
커피 물을 데우는 동안, 알보라다는 찬장에서 흙 맛이 나서 떫기조차 한 시리얼 가루 통을 찾았다. 그것은 그녀가 가끔씩 아침에 먹던 것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나 있었다. 바로 그곳에 손도 대지 않은 연유 한 통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놓여 있는 것이었다. 상표에 두 마리의 암소가 그려져 있고, 익히 잘 알고 있던 러시아 글씨가 쓰여진 연유였다. 10년 전부터 그 연유는 쿠바의 시장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 연유를 발견한다는 것, 그것도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연유를 발견한다는 것은 최고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끓고 있던 물 옆의 가스렌지에서 알보라다는 연유보다 더 좋아하는 과바(카리브 해에서 나는 열대과일 중의 하나 - 옮긴이) 파이 두 조각을 발견했다. 그것은 1933년부터 1967년까지 그녀의 죽은 남편 토비아스가 살아있었을 때, '혁명 공세'(1968년 쿠바 정부가 모든 개인 소유 점포의 국유화를 단행한 계획 - 옮긴이)에 의해 그 동네의 빵집이 문을 닫을 때까지, 매일 그녀에게 선사해주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사각사각하는 과바 파이와 벨기에산 몬테 크리스토 초콜릿과 코코넛 도넛과 모론 케이크는 영원히 사라졌던 것이다.
커피를 거르고, 죽은 사람도 깨울 수 있다는 싱싱한 커피 향내를 선물로 받으면서, 그런 꿈은 꿀 가치가 있어, 라고 알보라다는 생각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날 잠에서 깨우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자, 노인은 깜짝 놀란 나머지 과거의 잃어버린 습관을 반대 순서로 했다. 그녀는 아침으로 파이 두 개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그 다음에 연유를 마셨고, 마지막으로 방금 만든 커피를 천천히 음미했다. 그러나 파이와 단 연유를 먼저 먹은 까닭에 커피 맛은 씁쓸했다. 무척 두려운 마음으로 알바라다는 커피를 천천히 마셨고, 뼈가 아스러질 것 같은 통증과 창자의 꾸르럭 거리는 소리를 참으며 지겨운 꿈에서 깨어나길 기다렸다. 심지어는 눈을 감고 평소의 자연스런 상태로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자기 입에 씁쓸한 커피 맛이 가시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그 이상하고 황당한 꿈에서 깨어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자기 피부의 명령대로, 알보라다는 부엌에서 옷을 벗었다. 그녀는 이미 레이스가 모두 떨어지고 색깔도 바랜 잠옷을 의자 위에 떨어뜨렸다. 그런 다음 엉덩이에 걸친 속옷을 지탱하던 끈을 풀었으며, 이것도 그냥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비록 평생 꾼 꿈 중에서 최고였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과 흡사했기 때문에, 알보라다는 세월로 황폐해지고 최근의 기근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자기의 몸을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고개를 거만하게 쳐들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파몰리브 비누로 샤워를 하고, 그라비 치약으로 틀니를 닦고, 그녀의 48번째 생일인 1962년경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봉 로션으로 향기를 내기로 했다.
물로 몸을 깨끗이 정화하고, 파몰리브 비누로 자기의 몸을 어루만지듯이 닦는 동안, 알바라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회복되었던 모든 것처럼, 그것 역시 머나먼 시절에 느꼈던 것이었다. 22년 전에 토비아스가 죽은 후, 아무도 그녀와 함께 목욕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은 정말 좋은 거야"
그녀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망각 속에서 되찾은 조그만 기쁨들처럼 너무나 분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기의 느슨해진 근육이 날렵해지는 것 같았고, 절대로 그 꿈을 깨지 않은 채, 과바 파이와 연유와 파몰리브 비누와 무엇보다도 소름끼치는 것들을 섞지 않은 커피 그대로의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세계에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최근에 그런 것들이 없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건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저곳, 그러니까 실제 생활의 쓰라린 현실 속에서 그녀는 한 번 이상 배가 고파서 잠자리에 들었고, 갈라진 지붕 틈 사이로 별들이 총총히 박힌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하느님과 대천사에게 빨리 아무런 통증 없이 죽게 해서, 악몽과 더위와 설탕을 잔뜩 탄 아침 국물에서 해방시켜달라고 두려운 마음으로 애원했었다.
"바로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거기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자 알보라다는 급히 몸을 가리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다.
"향긋한 냄새가 매우 좋구나......"
"당신이에요?
늙은 알보라다가 물었다.
"그럼 내가 누구이겠느냐? 난 라파엘이다. 주님을 섬기며 영광스러운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갈 수 있는 일곱 대 천사중의 하나이다. 넌 내가 오기를 바랬고, 주님께서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도록 내게 허락을 내리셨으며......"
"그럼......?"
"그렇다, 알보라다. 넌 네가 원한대로 죽었고, 난 널 찾으러 왔느니라. 이제 우리가 하늘로 갈 테니 좋은 냄새를 풍기도록 하라"
"오,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방금 전에 되찾은 것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그러느냐? 왜 주저하느냐?"
알보라다는 목욕 커튼을 걷었고, 자기 앞에 키가 크고, 눈이 부실 정도로 근사한 흑인 남자가 완전히 벌거벗은 채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날개가 없었다. 하지만 양다리 사이에는 붉은 핏줄이 튀어나온 음경이 빛나고 있었고, 빨갛고 윤기 흐르는 귀두는 마치 옛날에 알보라다가 자신의 수호 성녀인 바르바라에게 봉헌을 했던 사과와 같았다.
"하지만 대천사 라파엘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방안에 걸려 있던 붉은 성화(聖畵)를 가리켰다. 그렇지만 방금 도착한 천사의 멋진 물건에서 눈을 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그림이 나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느냐?"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인간처럼 생기셨기에...... 그건 그렇고, 지금 이렇게 내가 당신을 따라 가야 한다는 게......."
"네가 애원하지 않았느냐? 오늘이 나의 축일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셨다. 이런 이유로 내가 너를 데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는 거의 성녀와 같기 때문에, 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느니라......."
"하지만 제가 죽고 싶어 했을 때는, 커피도 없었고, 파이도 없었고, 우유도 없었고....... 그런데 지금은 다시 그것들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런 하찮은 것들 때문에 여기에 그대로 있고 싶다는 말이냐? 하늘로 가지 않고, 지옥의 벌을 받겠다는 것이냐?"
알보라다는 자기의 몸이 떨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왜냐하면 살면서 온몸의 통증과 생활필수품 결핍으로 받았던 고통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끔찍한 것도 있었다. 그것은 매달 여섯 번의 아침에 다른 풀과 섞어서 함께 마셨던 커피의 슬픈 맛과 식사 때마다 음미하곤 했던 박하 향도 더 이상 맛보지 못할 것이고, 텔레비전 드라마의 착한 여주인공이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도 궁금하게 여기지 못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삶이란 끔찍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이 바로 삶이었다.
"그렇다, 알보라다. 넌 죽었고, 천국으로 간다."
"제가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그녀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제 더 이상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었고,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나눈 이상한 대화가 그녀가 평생동안 살면서 지녔던 두려움에서 해방시켰고,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느낌을 가지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죽어서야 비로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끔찍한 거야,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미안하네."
대천사가 사과를 했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용감해서 천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비겁해서 천국으로 가는 법이다. 이젠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난 네가 나와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이며......."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알보라다가 이렇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의 몸을 쳐다보았다. 그는 늙었고, 주름이 가득했으며,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그러자 세상에 살아있었을 때의 기억하기조차 싫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음흉한 증거였다. 그러자 그녀는 최선의 방책은 그녀의 평소 행동대로 그의 말을 따르는 것임을 깨달았다. 어쨌건 지옥은 이미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마도 천국에는 과바 파이와, 살아있을 때 주방의 풀죽은 찬장을 슬프게 바라보며 그토록 그리워하던 커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에는 파이가 있나요?"
"항상 갓 구운 파이가 있다. 그래서 파이가 '글로리아'(영광)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곳으로 가기 전에 다른 일을 좀 해도 될까요?"
"그게 뭔가에 따라 다르다, 알보라다"
대천사는 중얼거렸다.
"별 것 아니에요. 바다를 보고 싶어요. 그리고 내 개도 쓰다듬어주고 단손(쿠바의 춤곡 - 옮긴이) 한 곡을 듣고 싶어요"
천상의 흑인 대천사는 다시 미소를 지었고, 알보라다는 그의 뺨이 홍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마"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내가 너와 단손을 추도록 허락하라. 그 춤을 춘 지가 꽤 오래되었구나"
"그건 제게도 영광이지요."
알보라다는 이렇게 말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검둥이의 보기 드물게 커다란 물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를 두려워했던 것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지 그녀는 따뜻한 과바 파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고, 하느님은 세상의 출구 중에서 최고의 출구를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단손인 "아몬드"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