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추락

추락

J. M. Coetzee

 

그는 이혼까지 한 쉰둘의 남자치고는 자신이 섹스 문제를 잘 해결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목요일 오후 차를 몰고 그린포인트로 간다. 두 시 정각에 원저 맨션 입구에 있는 부저를 누른 뒤 자기 이름을 밝히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113호실 문 앞에서 소라야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향긋한 냄새와 은은한 조명이 적절하게 뒤섞인 침실로 곧장 들어서서 옷을 벗는다. 소라야는 욕실에서 나와 옷을 벗고 그의 옆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묻는다.

"저 보고 싶었어요?"

"난 당신이 늘 보고 싶었소."

이렇게 대답하며 햇볕에 타지 않은 갈색 꿀 같은 그녀의 몸을 쓰다듬는다. 그는 그녀의 젖가슴에 입을 맞춘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소라야는 키가 크고 늘씬하며 길고 검은 머리와 축축한 까만 눈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나이다. 하기야 더 따지고 보면 남자는 열두 살에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그가 그녀의 손님이 된 지는 1년이 넘는다. 그는 그녀에게 아주 만족하고 있다. 사막 같은 한주에서 목요일은 "화려한 관능의 오아시스"이다.

소라야는 해변에서 침대에서 철철 넘치는 타입이 아니다. 사실 그녀는 기질적으로 다소 조용하고 유순한 편이다. 그녀의 생각은 놀랄 만큼 도덕적이다. 그녀는 해변에서 젖가슴 - 그녀는 "젖통이"라는 말을 쓴다. - 을 드러낸 관광객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녀는 거지들을 잡아다가 도로 청소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녀가 생각과 실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며 사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그녀에게서 쾌락을 얻고 그 쾌락은 어김이 없다. 어떤 점에서는 이것이 주고받는 애정이라고 믿는다. 애정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의 사촌쯤은 된다. 전망이 없이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운이 좋은 셈이다. 그는 그녀를 만나게 되여 그녀는 그를 만나게 되여 그렇다

그런 생각에 자기만족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생각에 매달린다.

그는 90분에 400랜드(6백 원 정도)를 지불하는데 그 돈의 반은 디스크리트 에스코트의 것이다. 디스크리트 에스코트가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간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113호실과 원저 맨션의 다른 아파트들을 소유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들은 이런 일을 하는 소라야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편리한 시간에 만나면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는 저녁 시간을, 아니 밤새도록 그녀와 같이 지내고 싶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 아침까지 그녀를 데리고 있기에는 자신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 아침이 되면 자신이 냉랭하고 무뚝뚝해지며 혼자 있고 싶어 안달할 게 뻔하다.

그것은 그의 기질이다. 그의 기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의 기질은 고정되고 고착되어 있다. 기질과 두개골은 몸에서 가장 딱딱한 두 부분이다.

기질을 따르라.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그것은 베네딕트회의 법칙처럼 하나의 법칙이다.

그의 몸은 건강하고 정신은 맑다. 직업상 그는 학자다. 혹은 그래왔다. 가끔씩은 그의 중심부는 학문적인 일에 관련돼있다. 그는 그의 수입과 기질과 감정적인 수단의 반경 내에서 살아간다. 그는 행복한가? 대부분의 척도로 보자면 그렇다. 그는 그렇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가 "오이디푸스와"의 마지막 후렴구를 잊은 건 아니다. 죽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말라.

섹스에 관한 한 그의 기질은 강력하긴 하지만 결코 정열적이진 않다. 만약 그가 상징물을 택한다면 그것은 뱀이 될 것이다. 그는 소라야와 나누는 섹스가 뱀들의 교접과 다소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길고 열중해있지만 가장 뜨거울 때조차 추상적이고 다소 메마른 섹스.

소라야의 상징물도 뱀일까? 틀림없이 그녀는 다른 남자들과 잘 때는 다른 여자가 될 것이다. 유동적인 여자, 하지만 그녀가 기질적으로 그와 비슷하다는 것은 도저히 숨길 수 없다.

그녀는 직업상 헤픈 여자이긴 하지만 그는 나름의 한계 내에서 그녀를 믿는다. 그는 그녀와 섹스를 하면서 거리낌 없이 얘기를 한다. 때로는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녀는 그의 삶에 관한 몇 가지 일을 알고 있다. 두 번에 걸친 그녀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알고 있고 기복이 심한 그의 딸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많이 알고 있다.

소라야는 원저 맨션 밖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소라야가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녀에게는 아이 혹은 아이들을 낳은 흔적이 있다. 어쩌면 그녀는 프로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오후에 일을 하고 나머지는 라이린드나 애스론에서 점잖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슬람교도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요즘 세상에는 어떤 거나 가능하다.

그는 그녀를 지루하게 하지 않으려고 자신이 하는 일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전에는 케이프타운 유니버시티 칼리지였다가 지금은 케이프타운 전문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학교에서 근무한다. 한때는 현대문학과 교수였지만 학사개혁과정에 고전문학과와 현대 문학과가 없어진 이래 커뮤니케이션과의 부교수로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등록한 학생 수에 관계 없이 1년에 전공 분야 한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학생들의 분위기조성에 좋다는 이유에서 그렇다. 올해는 낭만주의 시인들에 관한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커뮤니케이션 101과목인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201과목인 "고급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강의한다.

그는 새로 맡은 과목의 강의 준비에 하루에 몇 시간씩 할애하지만 커뮤니케이션 101안내서에 적힌 것을 보고 그 과목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사회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도를 서로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밖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말은 노래에서 생겼으며 노래는 지나치게 크고 다소 텅 빈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을 필요성에서 연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25년에 걸쳐 강의를 하면서 세권의 책을 펴냈는데 그중 어느 것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거나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 처음 것은 오페라에 관계된 <보이토와 파우스트 전설 : 메피스토펠레스의 기원>이였고 세 번째 것은 워즈워드와 역사에 관한 <워즈워드와 과거의 짐>이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바이런에 관한 책을 집필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또 다른 비평서를 쓰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자꾸 싫증이 났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는 비평과 재단만 하는 산문에 질려있다. 그가 쓰고 싶은 것은 음악이다. 그것은 실내 오페라 형식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명상곡 <이탈리아에서의 바이런>이 될 터였다.

커뮤니케이션을 수강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동안 쓰지 못한 오페라의 구절과 가락과 단편적인 노래가 그의 마음속에 스친다. 그는 정열적인 교수였던 적이 거의 없다. 더욱이 이렇게 체제가 바뀌고 대학이 거세를 당한 상황에서는 설 자리가 더 없다. 하기야 그것은 지금 하는 일에 맞지 않는 옛날식 교육을 받은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교수란 종교적인 시대가 지난 후에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이 강의하는 내용을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면 멍한 눈을 하고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들의 무관심을 대하면 몹시 화가 난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그들의 부모와 국가에 대한 의무를 수행한다. 매달, 과제를 내고 걷고 읽고 논평을 하고 구두점이나 철자나 어법이 어긋난 것을 고치고 논리가 약한 부분을 지적하고 간략하고도 신중한 평을 적어 그들에게 돌려준다.

그는 계속 가르친다. 그렇게 하면 기운이 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주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실감케 해주기 때문이다. 배우러 온 학생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데 가르치러 온 교수는 가르치면서 가장 예리한 교훈들을 얻는다. 그가 그 아이러니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소라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상황에 비춰 봐도 거기엔 아이러니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린포인트에 있은 아파트 부엌에는 주전자와 플라스틱 컵과 인스턴트커피 한 병과 설탕통이 있다. 냉장고에는 생수가 한 병 들어있다. 욕실에는 비누와 수건이 있고 벽장에는 깨끗한 침구가 있다. 소라야는 작은 여행용 가방에 화장품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 이곳은 기능적이고 깨끗하게 잘 정돈된 더 도 덜도 아닌 만남의 공간이다.

소라야는 그를 처음 맞았을 때 주홍색 립스틱과 짙은 눈 화장을 하고 있었다. 짙은 화장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그녀에게 화장을 지우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따랐고 다시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유순한 사람.

그는 그녀에게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한다. 새해 선물로 그녀에게 에나멜 팔찌를 주었고 이슬람 대축제 때는 기념품 가게에서 그의 눈길을 끌었던 공작석 왜가리를 사주었다. 그는 그녀가 선물을 받고 전혀 꾸밈없이 좋아하는 걸 보고 흡족해한다.

그는 아내와 가정과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자신이 1주일 내에 90분 동안 여자하고 같이 지냄으로써 충분히 행복해진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의 생리적 욕구는 나비의 그것처럼 아주 가벼워져 결국 날아가 버린다. 가장 깊고 가장 헤아리기 힘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시 사람들을 잠들게 하는 차들의 윙윙 소리 혹은 시골 사람들이 접하는 밤의 침묵 같은 만족감의 저음이라고나 할까.

그는 오후에 무모한 섹스를 한 후 만족감에 눈이 풀린 채 집으로 돌아오는 엠마 보바리를 생각해본다. 그래, 이게 행복이야! 엠마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며 말한다. 그래, 이게 시인들이 말하는 행복이야! 만약 가엾고 유령 같은 엠마가 케이프타운에 온다면 그는 목요일 오후 그녀를 데리고 가서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주리라. 적당한 만족감, 적당해진 만족감.

그런데 어느 토요일 오후 모든 것이 변한다. 그는 시내에서 볼일을 본다. 성 조지가를 걸어간다. 그때, 그의 눈이 앞에서 걸어가는 날씬한 사람에게 머문다. 틀림없는 소라야다. 두 소년이 옆에서 따라간다. 쇼핑을 했는지 그들은 짐을 들고 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멀리서 뒤를 따른다. 그들은 캡틴 도레고스 생선요리점으로 사라진다. 소년들은 소라야처럼 윤기 나는 머리와 검은 눈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임이 분명하다.

그는 걸어가다가 다시 몸을 돌려 캡틴 도레고스를 두 번째로 지나친다. 세 사람은 창문 옆에 앉아있다.

그는 언제나 에로스가 활보하고 눈길이 화살처럼 번득이는 사람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도시인이었다. 순간 소라야의 눈이 유리창 너머로 그의 눈과 마주친다. 그러나 그는 소라야와 눈이 마주친 걸 즉시 후회한다.

그다음 목요일 그들은 랑데부를 할 때 서로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기억은 그들 위에 불안하게 아른거린다. 그는 소라야의 아슬아슬한 이중적 삶을 뒤엎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도 이중적, 삼중적 삶을 살긴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그녀가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당신의 비밀은 안전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일어났던 일을 한편으로 밀쳐버릴 수는 없다. 두 소년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들은 엄마와 낯선 사내가 몸을 섞는 방의 구석에 그림자처럼 조용히 있다. 소라야의 팔에 안긴 그는 그들의 아버지가 된다. 양아버지, 의붓아버지, 그림자 아버지. 그는 나중에 침대를 떠나며 은밀함과 호기심으로 깜빡이는 그들의 눈길을 느낀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생각이 다른 아버지, 아니 진짜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그는 자기 아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을까? 아니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에게는 아들이 없다. 그는 어렸을 때 여자들 속에 묻혀 살았다. 어머니와 고모들과 이모들과 누이들은 적당한 시기가 되자 정부들과 아내들과 딸로 대치되었다. 그는 여자들한테 묻혀 살다 보니 여자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들을 갖고 노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큰 키와 균형 잡힌 골격과 올리브색 피부와 부드러운 머리는 자석처럼 여자를 끌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의도를 갖고 여자에게 눈길을 주면 그 여자는 그것을 되돌려주었다. 그는 그것에 의존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몇 년 동안, 아니 몇 십 년 동안 그것은 그의 삶의 중추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게 끝났다. 경고도 없이 그의 힘이 사라졌다. 한때는 되돌아오던 눈길이 이제는 그저 지나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유령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여자가 필요하면 따라다니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종종 이런저런 식으로 여자를 사야 했다.

그는 난잡하고 혼란스럽게 살았다. 그는 동료들의 아내들과 정사를 했다. 그는 워터프런트나 클럽 이탈리아에 있는 술집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잠을 잤다. 그는 창녀들과 잠을 잤다.

그는 창문에 블라인드가 쳐지고 구석에 화분이 있고 공중에는 퀴퀴한 연기가 떠다니는 디스크리트 에스코트의 현관사무실과는 조금 떨어진 작고 어둠침침한 거실에서 소라야를 소개받았다. 그들의 장부에는 그녀가 <이국적인 여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들은 머리에 붉은 꽃을 꽂고 눈가에 희미한 주름이 있는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오후만 가능하다>고 했다. 셔터가 내려진 방과 서늘한 시트와 은밀한 시간들, 이것이 그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만족스러웠다. 바로 그가 원하던 것이었다. 과녁의 중심, 1년이 지나자 그는 소개소에 다시 갈 필요가 없게 되였다.

그런데 성 조지가에서 그 일이 생기면서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다. 소라야는 아직도 약속을 지키긴 하지만 그는 그녀가 또 다른 여자로 변신을 하고 자신이 또 다른 고객으로 변신할 때 두 사람 사이에 차가움이 스미는 걸 느낀다.

그는 창녀들이 자기들끼리 그들에게 찾아오는 남자들 특히 나이 많은 남자들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들은 얘기를 하며 웃는다. 하지만 그들은 한밤중에 세면대에 바퀴벌레가 있는 걸 보고 그러듯이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곧 그도 그들의 대화 속에 씹혀지면서 한편으로 치워질 것이다. 그것은 그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네 번째 목요일 그가 아파트를 나서려는데 소라야는 드디어 그가 예상했던 선언을 했다.

"어머니가 아프세요. 제가 쉬면서 돌봐드려야겠어요. 다음 주에는 여기에 없을 거예요."

"그다음 주에는 만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어머니 상태가 어떠냐에 달렸어요. 먼저 전화를 해보시는 게 좋아요."

"나는 전화번호를 모르잖아."

"소개소에 전화하세요. 그들은 알고 있어요."

그는 며칠을 기다리다가 소개소에 전화를 건다. 소라야? 소라야는 그만뒀습니다. 남자가 말한다. 안 됩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녀와 접촉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 규칙에 어긋납니다. 다른 여자를 소개해드릴까요? 이국적인 여자는 많습니다. 말레이시아 여자, 태국 여자, 중국 여자, 어느 여자든 말씀하세요.

그는 롱가에서 또 다른 소라야와 함께 저녁을 보낸다. 소라야라는 이름은 인기 있는 상호가 된 것 같다. 이 여자는 열여덟을 넘지 않은 것 같다. 서툴고 조야하다.

"무슨 일을 하세요?"

그녀가 옷을 벗으며 말한다.

"수출입."

"정말?"

학과사무실에는 새 비서가 와있다. 그는 그녀를 캠퍼스에서 상당히 떨어진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사주며 그녀가 새우 샐러드를 먹으며 자기 아들들이 다니는 학교에 대해 불평하는 걸 들어준다. 마약 장사들이 운동장 주변에서 얼씬거리는데도 경찰은 수수방관만 한다니까요. 지난 3년 동안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이민을 가려고 뉴질랜드 영사관에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당신네 사람들은 그것을 더 쉽게 처리했는데 당신들은 상황이 잘됐건 잘못됐건 적어도 제 자리를 알고 있었죠."

"당신네 사람들이라니?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거지?"

"당신들 세대 말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저희 멋대로 지키고 싶은 법만 지킨다니까요. 무정부상태가 됐어요. 이런 무정부상태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어요?"

그녀의 이름은 도운이다. 두 번째로 그녀를 데리고 나갈 때 그는 그의 집에 들려 그녀와 섹스를 한다. 실패작이다. 그녀는 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손톱으로 그를 할퀴며 절정에 이르지만 그는 그것이 혐오스럽다. 그는 그녀에게 빗을 빌려주고 그녀를 캠퍼스에 데려다준다

그 후 그는 학과사무실을 피하며 그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는 그에게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나중에는 그를 무시해버린다.

그는 이 게임을 그만둬야 한다. 오리겐은 몇 살에 거세를 했더라? 가장 품위 있는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도 품위가 없긴 마찬가지다. 갑판을 치우고 늙은이답게 죽을 준비를 하는 게 상책이다.

의사한테 가서 해달라고 할까? 틀림없이 간단한 수술일 것이다. 그들은 날마다 동물들에게 그 수술을 한다. 서글픔의 앙금을 무시한다면 동물들은 그 후에도 충분히 잘 살아간다. 자르고 묶고 국부마취를 하고 손을 침착하게 놀리고 냉정만 유지하면 자기 스스로도 책을 참조해가며 그 수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의자에 앉아 자기한테 가위를 대는 남자는 추해보이겠지만 어떤 점에서 보면 그 남자가 여자의 육체에 몸을 부리는 것보다 더 추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소라야가 있다. 그는 그 장을 덮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사설탐정에게 그녀를 추적해달라고 의뢰한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입수한다. 그는 남편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갔을 만한 아침 아홉 시에 전화를 한다.

"소라야? 데이비드야, 어떻게 지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지?"

그녀가 말을 하기 전 오랜 침묵이 흐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지금 내 집에 있는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다시는 여기로 전화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그녀의 요구한다는 말은 명령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말투가 그를 놀라게 한다. 전에는 그런 적이 없다. 하지만 새끼가 자라는 암 여우 우리에 육식동물이 들어갔는데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만난 적이 없는 남편에 대한 질투의 그림자가 그 위로 지나간다.

목요일의 막간이 없다면 한주는 사막처럼 특색이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날들도 있다.

그는 더 많은 시간을 대학도서관에서 보내며 바이런이 알고 지낸 사람들에 대해서 더 광범위하게 자료조사를 하고 이미 작성된 두툼한 두개의 파일에 그것을 첨가한다. 그는 늦은 오후에 독서실에 깃들이는 침묵을 즐기고 나중에 집으로 걸어가면서 맞는 쾌적한 겨울 공기와 축축하고 반짝이는 거리의 경관을 즐긴다.

어느 토요일 저녁, 오래된 대학 정원으로 통하는 먼 길을 택해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의 강의를 받는 학생이 앞에 가는 걸 본다. 그녀는 낭만주의 시를 수강하는 멜라니 아이삭스 양이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아주 못하는 학생도 아니다. 영리하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타입이랄까.

그녀가 꾸물거린다. 곧 그녀를 따라잡는다.

그가 말한다.

"안녕."

그녀가 머리를 끄덕이며 수줍다기보다는 교활한 미소를 그에게 보낸다. 그녀는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하며 머리는 짧다. 광대뼈는 중국인처럼 옆으로 벌어지고 눈은 크고 검다. 그녀의 옷은 늘 인상적이다. 오늘은 겨자색 세타와 적갈색 미니스커트에 검정색 스타킹을 신고 있다. 그녀의 벨트에 달린 금방울과 귀고리의 금방울이 잘 어울린다.

그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기야 학생들 중 하나한테 빠지지 않고 학기가 지나가는 때는 거의 없으니까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케이프타운, 미녀가 많은 도시.

그녀는 그의 눈길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아는가? 아마도 여자들은 눈길에 담긴 욕망의 무게에 민감하다.

비가 내리고 있다. 길옆 수로에는 물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에다 내가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네. 이 근처에 살아?"

"저쪽에 살아요. 아파트를 나눠 쓰고 있어요."

"케이프타운이 고향인가?"

"아뇨, 조지에서 자랐어요."

"난 바로 이 근처에 살아. 들어가서 마실 것 한 잔 줄까?"

신중한 머뭇거림.

"좋아요. 하지만 일곱 시 반까지는 돌아가야 해요."

그들은 그가 처음에는 로잘린과 함께, 그리고 이혼한 후에는 혼자서, 지난 12년 동안 살아온 조용한 집으로 들어간다.

그는 문을 따고 그녀를 안내한다. 불을 켜고 그녀의 가방을 받는다. 그녀의 머리에 빗방울이 묻어있다. 그는 그 모습을 황홀한 듯 응시한다. 그녀는 전과 똑같이, 분명치 않고 요염하기도 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아래로 깐다.

그는 부엌에 가서 미어러스트병을 따고 비스케트와 치즈를 꺼낸다. 그가 돌아오자 그녀는 책장 앞에 서서 고개를 비스듬하게 하고 제목을 읽고 있다. 그는 음악을 튼다. 모짜르트의 클라넷 5중주.

포도주와 음악. 남녀가 치르는 하나의 의식. 의식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것은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집에 데려온 여자는 30년 연하일 뿐만 아니라 학생, 그것도 그의 감독 하에 있는 학생이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건 그들은 선생과 학생으로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는 그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

"수업은 재미있는가?"

"블레이크는 좋았어요. 원더혼인가도 좋았고요."

"분더혼이라고 발음해야 해."

"전 워즈워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워즈워드는 내 스승 중 한 사람이니까."

그것은 사실이다. 워즈워드의 "서곡"에 배여 있는 조화로움은 오랫동안 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아마 학기말쯤 되면 그를 더 음미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아마 그 사람한테 끌릴지도 몰라요."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면, 시란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안 돼. 계시의 섬광과 반응의 섬광인 것이지 번개처럼,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아직도 사랑에 빠지는 걸가? 아니면 그런 과정이 지금쯤은 증기기관처럼 불필요하고 이상하고 쓸데없는 것이 돼있는 걸까? 그는 그런 것으로부터 멀고 구식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유행에 뒤진 것일 수도 있지만 대여섯 번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시를 직접 쓰는가?"

"학교 다닐 때는 그랬지만 별로 잘하진 못했어요. 지금은 시간이 없고요."

"열정은? 어떤 문학적 열정이 있는가?"

그녀는 이상한 단어를 듣고 얼굴을 찡그린다.

"2학년 때는 애드리언 리치와 토니 보리슨과 앨리스 워커를 읽었어요. 상당히 몰두했었죠."

그렇다면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그녀는 가장 우회적인 방식으로 그에게 경고를 하는 것일까?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먹을까? 아주 간단한 거야."

그녀는 결정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

"좋아요. 하지만 먼저 전화를 해야겠어요."

전화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나직하게 얘기하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온다. 침묵.

그는 나중에 묻는다.

"장래 계획이 뭐야?"

"연출과 디자인이죠. 지금 연극 학위를 이수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낭만주의 시를 수강하는 이유가 뭐지?"

그녀는 코를 찡그리며 생각에 잠긴다.

"상황이 그렇게 됐어요. 다시 셰익스피어 과목을 수강하고 싶지 않아서요. 지난해에 셰익스피어를 들었거든요."

저녁이라고 차린 것은 정말 간단하다. 버섯 소스를 바른 앤초비 파스타. 그는 그녀에게 버섯을 자르게 한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그가 요리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들은 두 번째 포도주병을 따고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녀는 거침없이 먹는다. 그렇게 작은 체구의 사람치고는 왕성한 식욕.

그녀가 묻는다.

"언제나 혼자 요리를 하세요?"

"나는 혼자 살아. 내가 요리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

"나는 요리하는 게 싫어요. 배워야겠지요."

"? 그게 정말로 싫으면 요리를 잘하는 남자와 결혼하면 되지."

그들은 같이 그 광경을 상상해본다. 대담한 옷을 입고 번쩍이는 보석을 걸고 활보하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젊은 아내, 그리고 앞치마를 두르고 김이 나는 부엌에서 냄비를 젓고 있는 특징 없는 남편. 그것을 뒤바꾸면 부르조아 코미디감이다.

그는 그릇이 비자 결국 이렇게 말한다.

"이게 전부야. 사과나 요구르트 외에는 디저트도 없어. 미안해. 손님이 올 줄 몰랐거든."

그녀는 잔을 비우고 일어선다.

"맛있었어요. 고맙습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소파로 끈다.

"아직 가지 마. 보여줄게 있어. 댄스를 좋아해? 직접 하는 것 말고 바라보는 것 말이야."

그는 카세트를 비디오에 넣는다.

"노먼 맥라렌이라는 사람이 만든 영화야. 아주 오래된 거지. 도서관에서 찾아냈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라구."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 비디오를 본다. 텅 빈 무대 위에서 스텝을 맞추는 두 명의 댄서. 스트로보 카메라로 녹화된 것이라서 그들의 이미지와 그들의 동작의 그림자가 날개 짓처럼 그들 뒤로 펼쳐진다. 그것은 그가 25년 전에 처음 보았고 아직도 매혹되어있는 영화이다. 덧없는 현재의 순간과 그 순간의 과거성이 똑같은 공간에 포착된 영화.

그는 여자도 자기처럼 매혹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낀다.

영화가 끝나자 그녀는 일어서서 방안을 서성인다. 그녀는 피아노의 뚜껑을 열고 가운데 도를 치며 말한다.

"피아노 치세요?"

"조금."

"클래식 혹은 재즈?"

"재즈는 아니지."

"저한테 들려주실래요?"

"지금은 안 돼. 친지가 오래됐거든. 다음번에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면."

그녀는 그의 서재 쪽을 본다.

그녀가 말한다.

"봐도 돼요?"

"불을 켜."

그는 음악을 튼다. 스카를라티의 "키보드우의 고양이" 쏘나타.

그가 서재에서 나오며 말한다.

"바이런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거든. 그가 이탈리아에서 살던 시절에 관해서."

"젊어서 죽지 않았던가요?"

"서른여섯.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고갈되거나 미쳐서 감금당했지. 하지만 바이런이 죽은 곳은 이탈리아가 아니야. 그는 그리스에서 죽었어. 그는 스캔들을 피하려고 이탈리아로 가서 정착했지. 정착을 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연애를 했지. 이탈리아인들이 아직도 인간의 본성에 가까이 살고 있다고 믿었지. 전통에 덜 규제되고 더 정열적으로 말이야."

그녀는 다시 한 번 방안을 돈다.

"이분이 부인이세요?"

그녀가 커피테이블위에 놓인 액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묻는다.

"내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이야."

"결혼하셨어요?"

"했지. 두 번.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 나는 발길에 걸리는 대로 적당히 해결하지. 이렇게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창녀들하고 적당히 해결하지. 이렇게도 말하지 않는다.

"리큐어 한잔 줄까?"

그녀는 리큐어를 원하지 않지만 커피에 위스키를 한 방울 타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가 홀짝거리며 커피를 마실 때 그는 몸을 옆으로 기대고 그녀의 볼을 만진다.

그가 말한다.

"굉장히 아름다워. 나는 네게 무모한 일을 제의하려고 해."

그는 다시 그녀를 만진다.

"여기 있어. 오늘밤 나하고 같이 지내."

그녀는 커피 잔 위로 그를 찬찬히 바라본다.

"왜요?"

"그래야 하기 때문에."

"왜 제가 그래야 하죠?"

"왜냐고? 여자의 아름다움은 여자에게만 속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그것은 여자가 세상에 가지고 오는 박애심의 일부야. 여자는 그것을 나눠가질 의무가 있지."

그의 손은 아직도 그녀의 볼에 닿아있다. 그녀는 물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항복하지도 않는다.

"제가 이미 그걸 나눠 가졌다면 어떻게 되죠?"

그녀의 목소리는 헐떡이는듯하다. 구애를 받는 것은 언제나 짜릿하다. 짜릿하고, 감미롭고.

"그렇다면 더 광범위하게 나눠 가져야지."

유혹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부드러운 말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그것들을 믿는다. 그녀는 자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아름다움은 자체를 소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번식을 원하지. 미의 장미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지."

말이 잘 나간 건 아니다. 그녀의 미소에서 장난스럽고 유동적인 특성이 사라진다. 한때는 사탄의 말을 그렇게도 매끄럽게 만들었던 약강오음보격이 이제는 서로를 떼어놓을 뿐이다. 그는 다시 선생으로 돌아간다. 책과 함께 살며 문화를 수호하는 자.

그녀는 컵을 내려놓는다.

"가야겠어요. 기다리거든요."

구름이 걷혀있다. 별들이 빛나고 있다.

그는 정원 문을 열며 말한다.

"아름다운 밤이군."

그녀는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

"집에 데려다줄까?"

"아니요."

"좋아. 그럼 안녕."

그는 그녀를 잡고 포옹한다. 그는 잠시, 그녀의 작은 가슴이 그의 몸에 닿는 걸 느낀다. 그런 다음 그녀는 몸을 빼내간다.

거기서 그것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 그는 차를 몰고 텅 빈 캠퍼스로 가서 학과사무실에 들어간다. 그는 서류함에서 멜라니 아이삭스의 등록카드를 꺼내 집 주소, 캐이프타운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적인 사항을 적는다.

그는 전화번호를 돌린다. 여자목소리가 대답한다.

"멜라니?"

"불러올게요. 누구시죠?"

"테이비드 룰리라고 얘기해주세요."

멜라니와 멜로디. 저속한 운(), 그녀에게는 좋은 이름이 아니다. 멜라니의 둘째음절에 강세를 붙여 불러보니 어둡다.

"여보세요?"

그 한마디에 어정쩡한 그녀의 마음이 실려 있다. 너무 어리다. 그녀는 그를 어떻게 대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녀를 내버려 둬야 한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의 손아귀에 잡혀있다. 미의 장미. 시구가 화살처럼 곧장 날아온다. 그녀는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도 그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가 말한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 좋아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열두 시에 데리러 갈게."

아직도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빠져나갈 시간은 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 순간이 그냥 지나간다.

그가 도착하자 그녀는 아파트 건물 밖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검은 스타킹을 신고 검은 세터를 입고 있다. 그녀의 엉덩이는 열두 살 아이처럼 가냘프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훗베이항 쪽으로 데리고 간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는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는 그녀가 수강하는 다른 과목들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연극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학위를 따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의무과정이다. 연습이 그녀의 많은 시간을 축내고 있다.

그녀는 별로 먹지도 않고 우울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무슨 일 있어?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그녀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우리 둘이 걱정돼?"

그녀가 말한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처리할게.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할게."

너무 깊이. 이런 일에 있어서는 어떤 게 깊은 거고, 어떤 게 너무 깊은 것일까? 그녀의 너무 깊이는 그의 너무 깊이와 똑같은 것일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텅 빈 만()을 가로질러 흔들리는 물의 시트. 그가 말한다.

"갈까?"

그녀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간다. 그는 거실 바닥에서,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맞춰, 그녀와 사랑을 한다. 그녀의 몸은 깨끗하고 단순하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그녀는 내내 수동적이지만 그는 그 행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너무 만족한 나머지 절정에 이르자 캄캄한 망각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정신이 들자 비가 그쳐 있다. 여자는 그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손을 머리맡에 두고 얼굴을 약간 찡그리고 있다. 그의 손은 까실까실한 세터 밑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다. 그녀의 스타킹과 팬티가 바닥에 엉켜있다. 그의 바지는 그의 발목 부근에 있다. 폭풍우가 지난 후 그는 조지 그로쉬의 말을 생각해본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옷을 집어 들고 방을 나선다. 그녀는 몇 분 후 옷을 입고 돌아온다.

속삭인다.

"가야 돼요."

그는 그녀를 붙잡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심오한 행복감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그 느낌은 없어지지 않는다. 멜라니는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사무실에서 화원에 전화를 한다. 장미? 장미는 안 될지도 모르지. 그는 카네이션을 주문한다.

"붉은색으로 할까요, 하얀색으로 할까요?"

여자가 묻는다.

붉은색으로 할까? 하얀색으로 할까?

"핑크색으로 열두 송이 보내주세요."

"열두 송이가 되지 않는데 섞어서 보낼까요?"

"그럼 섞어서 보내세요."

화요일은 하루 종일 서쪽에서부터 시내로 날아온 짙은 구름 때문에 비가 내린다. 그는 일과가 끝날 무렵, 커뮤니케이션학과 건물 로비를 건너다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학생들 속에서 그녀를 본다. 그는 그녀 뒤로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는다.

"여기서 기다려. 집에 데려다줄게."

그는 우산을 갖고 돌아온다. 광장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며 그녀가 비에 맞지 않도록 더 바짝 다가서서 걷는다. 갑작스러운 돌풍이 우산을 뒤집어버린다. 그들은 차가 있는 곳을 어색하게 뛰어간다.

그녀는 매끄러운 노란색 레인코트를 입고 있다. 그녀는 차 안에서 레인코트의 모자를 벗는다. 얼굴은 홍조를 띠고 있다. 그는 그녀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본다. 그녀는 윗입술에 묻은 빗방울 하나를 핥는다. 그는 생각한다. 아이! 아이에 불과한데!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의 가슴을 욕망으로 흔들린다.

그들은 교통량이 많은 늦은 오후의 거리를 달린다.

그가 말한다.

"어제는 보고 싶었어. 괜찮은 거야?"

그녀는 와이퍼 블레이드를 응시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빨간 신호등에 걸리자 그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는다.

"멜라니!"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그러나 그는 구애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연인이 아니라 아이를 구스르는 부모의 목소리다.

그는 그녀의 아파트 건물 앞에 차를 댄다.

"고마워요."

그녀는 차 문을 열며 말한다.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을 거야?"

"같이 사는 친구가 집에 있을 거예요."

"오늘 저녁은 어때?"

"오늘 저녁에는 연극연습이 있어요."

"그러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고마워요."

그녀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빠져나간다.

수요일, 그녀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은 아직도 워즈워드를 공부하고 있다. "서곡"6, 알프스산속의 시인.

그는 큰소리로 읽는다.

또한 우리는 벌거벗은 능선에서

몽블랑 정상의 베일이 열리는 걸 처음 보았네.

그리고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살아있는 생각을 침해하는 영혼 없는 이미지가

눈에 깃들이는 걸 서글퍼했네.

"그래서 장엄한 백색의 몽블랑은 실망스러운 것으로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특이한 동사 형태인 침해하다(usurp upon)부터 생각해봅시다. 누구 사전 찾아본 사람 없나요?"

침묵.

"만약 그랬다면, 여러분은 침해하다는 동사는 끼어들다(intrude) 혹은 침입하다(encr oach upon)는 의미라는 걸 알았을 것입니다. 찬탈하다(usurp)는 말은 침해다가(usurp uoon)의 완료형입니다. 찬탈하는 것은 침해하는 행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워즈워드의 말을 풀어볼 것 같으면 구름이 걷히고 봉우리가 드러났고 그것을 보고 슬퍼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알프스로 여행을 간 사람으로 이상한 반응입니다. 왜 슬퍼할까요? 영혼 없는 이미지, 망막위의 단순한 이미지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생각이었던 것을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생각이란 무엇이었습니까?"

다시 이어지는 침묵. 분위기가 시트처럼 늘쩍지근하다. 산을 바라보는 남자, 그게 뭣이 그렇게 복잡해야 되나? 그들은 이렇게 불평을 하는 것일까? 그는 그들에게 어떤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가? 첫날 저녁, 멜라니에게 무슨 말을 했었지? 계시의 섬광이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고 그랬다. 그런데 이 강의실 어디에 계시의 섬광이 있지?

그는 재빠르게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책에 빠져있거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

"찬탈하다는 똑같은 단어가 몇 행 건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찬탈이라는 주제는 알프스 연작 중 가장 심오한 주제중 하나입니다. 마음속의 위대한 원형들과 순수한 생각들이 단순한 감각적 이미지에 찬탈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각적 경험에서 유리된 채 순수한 관념의 영역 속에서 일상적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리얼리티의 무차별적인 살육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상상력을 순수하게 유지하느냐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둘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599행을 보세요. 워즈워드는 감각적지각의 한계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에 다뤘던 주제입니다. 감각기관은 한계에 이르면 빛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소멸하는 순간 그 빛은 촛불의 불꽃처럼 마지막으로 타오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얼핏 보여줍니다. 그 대목은 어렵습니다. 어쩌면 몽블랑을 보고 느꼈던 감정과 상치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즈워드는 균형 잡힌 길을 찾아낸 것 같아 보입니다. 그것은 구름에 감싸인 순수한 관념도 아니고 망막위에서 불타는 명명백백한 사실로 우리를 압도하고 실망시키는 시각적 의미지도 아니고 기억의 토양에 더 깊이 묻혀있는 관념을 움직이거나 작동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어떻게든 달아나려고 애쓰는 시각적 이미지인 것입니다."

그는 말을 멈춘다. 멍한 표정들. 그가 너무 빨리, 너무 멀리 가버렸나 보다. 그들을 어떻게 데려오지? 어떻게 그녀를 데려오지?

"그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눈먼 장님이라면 여러분은 처음 만나서 사랑에 빠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냉정하고 분명하게 시각적인 견지에서 보고자 할까요? 그 시선 위에 베일을 드리우고 그녀가 원형적이고 여신 같은 형태 속에서 살아있도록 하는 게 여러분에게 더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가 워즈워드의 시에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말이 그들을 깨운다. 원형? 여신? 무슨 말을 하고 있지? 이 늙은이가 사랑에 대해 뭘 알지? 그들은 서로에게 이런 말을 할지 모른다.

기억이 물밀듯 밀려온다. 그가 마루위에서 그녀의 세타를 걷어 올리고 아담하고 완벽한 작은 젖가슴을 드러나게 했던 그 순간 처음으로 그녀가 눈을 든다. 그녀의 눈이 그의 눈과 마주친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모든 걸 알아챈다. 그녀는 당황하여 눈을 내리깐다.

"워즈워드는 알프스에 관해 쓰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알스프 산은 없지만 드라켄스버그 산이나 더 작은 테블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들을 본떠 우리가 들었던 워즈워드적인 계시의 순간을 희망하며 산에 오릅니다."

그는 이제 어떤 것을 감추려고 그냥 얘기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우리 안에 가지고 다니는 상상력의 거대한 원형들을 향해 눈을 돌리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하면 충분해!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지겨워진다. 또한 이렇게 은밀한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그녀가 안 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강의를 끝내고 그녀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며 머뭇거린다. 그러나 그녀는 학생들 속에 섞여 빠져나간다.

1주 전만해도 그녀는 강의실에 있던 예쁜 학생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그의 삶에 실재, 숨을 쉬는 실재가 되어있다.

학생회관의 강당은 어둡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한다. 그는 뒷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수위 제복을 입은 대머리 남자를 제외하면 그가 유일한 관객이다.

그들이 연습하는 연극의 이름은 "글로브 살롱의 석양"이다. 요하네스버그의 힐브로우에 있는 미장원을 무대로 한 신생 남아프리카의 코미디다. 무대 위에서는 미용사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두 사람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세 사람이 서로 농담하고 모욕하고 재잘거린다. 카타르시스가 기본원리인 것 같다. 모든 조야한 편견이 밖으로 드러나고 웃음의 강풍에 씻겨가는 카타르시스.

넷째 인물이 등장한다. 고수머리를 하고 굽 놓은 구두를 신은 여자.

미용사가 말한다.

"앉아요. 곧 해줄게요."

그녀가 대답한다.

"일자리 때문에 왔어요. 광고를 내셨죠."

그녀는 눈에 띄게 케이프타운 말씨를 쓴다. 멜라니다.

미용사가 말한다.

"아으, 빗자루 들고 일 좀 해봐요."

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세트 주변에서 비틀거리다가 그것을 밀친다. 빗자루가 전깃줄에 엉킨다. 그다음엔 불꽃이 튀고 비명이 들리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뭔가 서로 맞지 않는다. 감독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검은 가죽 잠바를 입은 남자가 그녀의 뒤에서 콘센트를 만진다.

감독이 말한다.

"더 빨리 해야 돼. 막스 브라더스 분위기를 더 살려서 말이야."

그녀는 멜라니를 향한다.

"오케이?"

멜라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앞에 있던 수위가 일어서서 무거운 한숨을 쉬며 강당을 나선다. 그도 가야 한다. 어둠 속에 앉아 여자를 은밀하게 바라보는 꼴사나운 일. (호색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의 대열에 끼게 될 늙은 사람들과 때 묻은 레인코트를 걸치고 금이 간 의치를 하고 귀구멍에 털이 많은 부랑자들과 떠돌이들도 한때는 수족이 번듯하고 눈이 초롱초롱한 하나님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달콤한 감각의 향연에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걸 비난할 수 있는가?

무대 위에서는 연극이 재연된다. 멜라니는 빗자루를 밀친다. ! 반짝! 놀란 비명 소리.

멜라니가 불평한다.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에요. 세상에 왜 모든 것이 늘 내 탓이란 말이죠?"

그는 수위처럼 조용히 일어서서 어두운 밖으로 나간다.

다음날 오후 네 시, 그는 그녀의 아파트로 간다. 그녀는 구겨진 티셔츠와 자전거를 탈 때 입는 반바지를 입고 문을 연다. 그녀는 우습고 품위 없어 보이는 만화에 나오는 들쥐 모양의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는 예고도 없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자기 몸을 떠미는 침입자에게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가 그녀를 팔에 안자 그녀의 수족은 꼭두각시처럼 늘어진다. 그녀의 고운 귀에 쿵-하고 울리는 곤봉처럼 무거운 말들.

그녀가 몸부림을 치며 말한다.

"아니, 지금은 안 돼요! 사촌이 돌아올 거예요!"

그러나 아무것도 그를 멈출 수 없다. 그는 그녀를 침실로 들고 가서 그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놀라며 우스꽝스러운 슬리퍼를 벗겨내고 그녀의 발에 키스를 한다. 무대 위의 환영과 관련된 어떤 것들-깃발, 흔들리는 엉덩이, 음담, 이상한 사랑! 그러나 그것은 거품이 이는 파도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화살 통에서 나온 것이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는다. 입술을 피하고 눈을 피하는 게 전부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침대위에 눕히고 옷을 벗기게 내버려 둔다. 그녀는 자신의 팔과 엉덩이를 들며 그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차가운 전율이 그녀의 몸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는 알몸이 되자 굴속에 들어가는 두더지처럼 누비이불 밑으로 들어가 그에게 등을 돌린다.

강간이라고까지 할 수 없지만 철저히 원하지 않는 것. 여우의 이빨이 목을 물어뜯으려고 할 때의 토끼와 같이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축 늘어져 죽어있기로 결심한 것처럼, 그래서 그녀에게 행해지는 모든 것이 멀리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그것이 끝나자 그녀가 말한다.

"폴린이 금방 올 거예요. 제발요, 가셔야 돼요."

그는 복종한다. 그러나 차에 도착하자 너무 낙담해 둔감해진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고 움직일 줄 모른다.

실수, 엄청나게 큰 실수. 이 순간 그녀는, 멜라니는, 그것을, 그를, 씻어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녀가 물을 틀고 그 속으로 들어가 몽유병자처럼 눈을 감고 있을 광경이 떠오른다. 그는 자기 목욕탕으로 들어가고 싶다.

다리가 굵고 노 난센스라는 상표의 옷을 입은 여자가 아파트 건물로 들어간다. 이 사람이 멜라니가 핀잔을 들을까 봐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사촌 폴린 일까? 그는 몸을 세우고 차를 몬다.

다음날 그녀는 강의실에 없다.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석이다. 그는 나중에 출석부를 점검하면서 그녀가 참석했다고 고치고 70점을 준다. 그리고 아래에 연필로 "잠정적"이라고 써놓는다. 70,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판단이 잘 안 서는 점수.

그녀는 다음 주 내내 강의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거듭 전화를 건다. 대답이 없다. 그런데 일요일 밤, 현관 벨이 울린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고 자그마한 검은 모직 모자를 쓴 멜라니다. 그녀의 얼굴은 긴장되어있다. 그는 그녀가 화를 내고 한바탕 소동을 벌일 거라고 각오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당황한 쪽은 그녀다.

그녀는 그의 눈을 피하며 속삭인다.

"오늘 밤 여기서 자도 돼요?"

"물론, 물론이지."

그의 가슴이 안도감으로 가득 찬다. 그는 팔을 뻗어 그녀를, 몸이 굳어있고 차가운 그녀를 꼭 끌어안는다.

"들어와. 차를 끓여줄게."

"아네요. 차 필요 없어요. 아무것도. 전 지금 녹초가 되어있어요. 그냥 묵기만하면 돼요."

그는 그의 딸이 쓰던 방에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녀에게 잘 자라는 키스를 하고 그녀를 혼자 남겨둔다. 반시간 후 들어가 보니 그녀는 옷을 다 입은 채로 잠에 푹 빠져있다. 그는 그녀의 구두를 벗기고 그녀를 덮어준다.

아침 일곱 시, 첫 새가 지저귀기 시작할 무렵, 그녀의 문을 두드린다. 그녀는 턱까지 시트를 끌어올리고 초췌한 얼굴로 누워있다.

그가 묻는다.

"기분이 어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한다.

"무슨 일 있어? 말하고 싶어?"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그는 침대에 앉아 그녀를 끌어당긴다. 그녀는 그의 팔에 안겨 처량하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도 욕망이 출렁거린다.

그는 그녀를 달래려고 애쓰며 속삭인다.

", . 무슨 일인지 얘기해봐."

그는 "아빠에게 무슨 일인지 얘기해봐."하고 말할 번한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얘기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코가 콱 막혀있다. 그는 그녀에게 화장지를 건넨다.

그녀가 말한다.

"여기서 당분간 머물러도 될까요?"

"여기서 머문다고?"

그는 그녀의 말을 또박또박 반복한다. 그녀는 울음을 멈춘다. 하지만 몸이 들썩거리는 것은 여전하다.

"그게 좋은 생각일까?"

그녀는 그것이 좋은 생각인지 어떤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그에게 몸을 더 밀착시킨다. 그녀의 따뜻한 얼굴이 그의 배에 닿는다. 시트가 옆으로 미끄러진다. 그녀는 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다.

그녀는 이 순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가?

그는 학교 정원에서 그 일을 시작했을 때 쉽게 시작해서 쉽게 끝나는 간단한 연애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복잡한 상황을 안고 그의 집에 와있다. 그녀는 무슨 장난을 하고 있는 걸까? 그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조심했어야 한다.

그는 그녀 옆에 눕는다. 멜라니 아이삭스와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은 원치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도취되어 있다. 그녀는 매일 밤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매일 밤 이렇게 그녀의 침대에 누워 그녀에게 들어갈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그 일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수군거릴 것이고 스캔들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의미일까? 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감각의 불길을 사르는 것. 그는 침대보를 옆으로 밀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그는 속삭인다.

"물론이지. 여기 있어도 돼. 물론이야."

그의 침실에서 자명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그에게서 몸을 떼 어깨 위로 침대 커버를 덮는다.

그가 말한다.

"나 지금 나갈 거야. 강의가 있어. 좀 더 자려고 해봐. 점심때 올 테니까 그때 얘기해."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정부? ? 그녀는 마음속으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 걸까? 그녀는 그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는 걸까?

그가 점심때 돌아오자 그녀는 일어나서 부엌 식탁에 앉아 꿀을 바른 토스트에 차를 마시고 있다. 편안해 보인다.

그가 말한다.

"훨씬 좋아 보이네."

"가신 뒤에 잤어요."

"이제 무슨 일인지 얘기해줄 거야?"

그녀는 그의 눈을 피한다.

그녀가 말한다.

"지금은 안돼요. 저 가야 해요. 늦었어요. 다음에 설명해드릴게요."

"다음이 언제야?"

"오늘저녁 연습이 끝나고요. 괜찮아요?"

"그래."

그녀는 일어서서 컵과 접시를 들고 싱크대에 갖다놓는다(하지만 그것들을 씻지는 않는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고 말한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괜찮아."

"제가 강의를 많이 빼먹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연극 연습하는 데 시간이 다 들어가요."

"알아, 나한테 연극이 우선이라고 얘기했잖아. 더 일찍 얘기했더라면 좋았을 거야. 내일은 강의에 나올 거야?

". 약속할게요."

그녀는 약속한다. 하지만 강제로 집행할 수는 없는 약속이다. 그는 짜증이 나고 신경이 거슬린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달아나며 못되게 행동하고 있다. 그녀는 그를 이용하는 걸 배우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를 더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많은 것을 갖고 달아난다면, 그는 더 많은 것을 갖고 달아났다. 그녀가 못되게 행동한다면, 그는 더 못되게 행동했다. 그들이 같이 있게 된 상황을 따지자면, 그는 앞에서 끄는 사람이고 그녀는 따라오는 사람이다. 그걸 잊어선 안 된다.

그는 딸의 방에서 다시 한번 그녀와 사랑을 한다. 좋다. 처음처럼 좋다. 그는 그녀의 몸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몸은 재빠르고 경험을 하고 싶어 안달이다. 만약 그가 그녀에게서 충만한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그녀가 아직 젊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를 더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 다리를 그의 엉덩이에 감던 게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다. 그는 그녀의 허벅지 안쪽 힘줄이 그에게 밀착되자 쾌감과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낀다. 어렵겠지만 그들에게 미래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가 나중에 묻는다.

"이런 걸 자주 해요?"

"?"

"학생들과 자는 거요. 아만다 하고도 잤어요?"

그는 다답 하지 않는다. 아만다는 그의 수업을 받는 숱이 적은 불론드 머리의 학생이다. 아만다에겐 흥미가 없다.

그녀가 묻는다.

"왜 이혼하셨어요?"

"두 번 이혼했지. 두 번의 결혼에 두 번의 이혼."

"첫 부인은 어떻게 됐어요?"

"얘기하자면 길어. 나중에 얘기해줄게."

"사진 있어요?"

"나는 사진을 모으지 않아. 여자를 모으지도 않고."

"저를 모으는 건 아네요?"

"아니, 물론 아니지."

그녀는 일어나서 방안을 걸어 다니며 옷을 주어든다.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그는 옷을 입고 벗는 것에 자의식을 갖는 여자들에게 더 익숙해있다. 하지만 그가 익숙해있는 여자들은 젊지도 않고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지도 않다.

같은 날 오후, 누군가가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전에 본 적이 없는 젊은이가 들어온다. 그는 권하지도 않았는데 의자에 앉아서 안을 둘러보더니 책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키가 크고 강하게 생겼으며 가느다란 염소수염을 기르고 한쪽 귀에 귀고리를 하고 있다. 검은 가죽 잠바를 입은 그는 대부분의 학생들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는 문제아 같아 보인다.

그가 말한다.

"그래 당신이 그 교수군. 데이비드 교수. 멜라니가 나한테 당신에 대해 얘기해줬지."

"그래. 자네한테 무슨 얘기를 해주던가?"

"당신이 그녀한테 씹을 했다고."

긴 침묵이 흐른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닭들은 보금자리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것을 짐작했어야 한다. 그런 여자는 문젯거리를 안고 들어오지.

그가 말한다.

"자네는 누군가?"

방문객은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말을 계속한다.

"당신은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진짜 여자들>의 남자라고 생각하겠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당신 부인이 알아도 당신은 여전히 영리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만하면 충분하네. 원하는 게 뭔가?"

이젠 말이 더 빨리 나온다. 악의를 띠고.

"나한테 무엇이 충분한지 말하지 마.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가 편할 때 빠져나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란 말이야."

빛이 그의 검은 안구에서 춤을 춘다.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손을 양옆으로 젖힌다. 책상 위에 있던 서류들이 날아간다.

그는 일어선다.

"그만하면 충분해! 자네가 나갈 시간이야."

"자네가 나갈 시간이야!"

그 젊은이가 그의 말을 흉내 내며 그를 조롱한다.

"오케이."

그는 일어서서 문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굿바이, 칩스(Chips 영국 카툰에 나오는 회화적 인물) 교수! 하지만 두고 보자고!"

그런 다음 그는 사라진다.

그는 생각한다. 깡패. 그녀는 깡패한테 말려들어 있고 이제 나도 그녀의 깡패한테 말려들어 있다! 그의 속이 울렁거린다.

그는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그녀를 기다리지만 멜라니는 오지 않는다. 그 대신 거리에 세워져 있던 그의 차가 손상을 입는다. 타이어는 바람이 빠지고 열쇠 구멍에는 접착제가 붙어있고 앞유리에는 신문이 붙어있고 페인트는 긁혀있다. 열쇠를 바꾸는데 600랜드(700원가량)가 들어간다.

열쇠장이가 묻는다.

"누가 했는지 짚이는 데가 있습니까?"

"모르겠소."

그는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이런 기습(coup de main)이 있은 후, 멜라니는 그에게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놀라지 않는다. 만약 그가 창피를 당했다면 그녀도 창피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월요일에 강의실에 나타난다. 그녀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친구가 건방진 자세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로 기대앉아 있다.

학생들은 보통 때는 얘기를 하며 소란스럽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하다. 그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그들이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그 침입자를 그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

그는 정말 어떻게 할 것인가? 그의 차를 그렇게 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분명히 올 것이 더 있다.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를 악물고 당하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그는 메모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바이런을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한 것처럼, 악명과 스캔들은 바이런의 삶뿐만 아니라 대중이 그의 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바이런을 그 자신의 시적 창조물인 해롤드, 맨프레두, 심지어 돈주앙과 뒤섞어 받아들였습니다."

스캔들, 그것이 오늘의 주제라니 애석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임시변통으로 다른 것을 채울 상황도 아니다.

그는 멜라니를 슬쩍 쳐다본다. 그녀는 여느 때는 부지런히 필기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마르고 기진맥진해 보이고 책상 위에 움츠리고만 있다. 머리와 다르게 그의 가슴은 그녀에게 간다. 그는 생각한다. 내 가슴에 안겼던 가엾은 작은 새!

그는 그들에게 "라라"를 읽어오라고 했다. 그의 메모는 "라라"와 관련된 것이다. 그 시를 피할 방법이 없다. 그는 큰소리로 읽는다.

그는 숨 쉬는 이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서 있었다.

다른 곳으로부터 내던져진 잘못된 영혼.

우연히 피할 수 있었던 위험들을 스스로 선택한

어두운 상상의 것.

"누가 이 시를 해석해보겠어요? <잘못된 영론>이란 누구입니까? 왜 그는 자신을 <(a thing)>이라고 했을까요? 그는 어떤 세계에서 온 겁니까?"

그는 학생들이 무식한데 놀라지 않은지 오래다. 후기기독교적, 후기 역사적, 후기문자적인 그들은 어제 알에서 부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천국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들에 대해서도, 바이런이 어디서 그것들을 읽었나 하는 것도 그들이 알고 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적당히 추측을 해서 운 좋게 그것이 맞아떨어져 그가 그걸 갖고 요점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허지만 그들은 오늘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들 가운데 있는 이방인 둘레에 쳐진 집요한 침묵. 그들은 이방인이 거기에 앉아서 듣고, 판단하고, 조롱하는 한 말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가 하는 대로 따라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한다.

"루시퍼, 하늘에서 내던져진 천사. 우리는 천사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산소가 필요 없다는 것을 가정할 수는 있습니다. 검은 천사 루시퍼는 집에서는 숨을 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난데없이 우리가 사는 이상한 <숨 쉬는 세계>로 내던져진 것입니다. <잘못된>이란 말의 뜻은 그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스스로 자신을 위험에 빠지게 만들며 위험스럽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조금 더 읽어봅시다."

그 젊은이는 단 한 번도 책을 보지 않는다. 대신 입술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이 깃들인 미소를 띠고 그가 하는 말을 듣는다.

그는 때때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것을 단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정 때문도 아니고 의무감 때문도 아니고,

자기 외에는 누구도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은밀한 자부심에서 생긴

이상한 왜곡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충동은 유혹의 시간이 되자

그의 영혼을 범죄로 이끌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루시퍼는 어떤 종류의 천재입니까?"

학생들은 그때쯤 그들 사이에 즉 그와 그 젊은이 사이에 흐르는 조류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 질문은 그 젊은이를 향하고 있다. 그 젊은이는 잠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대답한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죠. 그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상관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겁니다."

"맞습니다. 좋든 나쁘든, 그냥 하는 겁니다. 그는 원리가 아니라 충동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그는 그 충동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몇 행을 더 읽어봅시다. <그의 광기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친 가슴. 무엇이 미친 가슴이죠?"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묻고 있다. 그는 그 젊은이가 자신의 직관력을 더 밀고 나가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낀다. 그는 자신이 오토바이나 야한 옷 이상의 것을 알고 있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사실이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미친 가슴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이 교실의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상관 마세요. 이 시는 우리에게 미친 가슴을 가진 이 존재. 체질적으로 무엇인가가 잘못된 이 존재를 비난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이해하고 동정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가운데 살고는 있지만 우리 중의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확하게 스스로가 칭한 대로 하나의 것(a thing), 즉 괴물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이런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더 깊고 더 인간적인 의미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고독이라는 유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그가 한 말을 적는다. 바이런이든 루시퍼든 카인이든 그들에게는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시를 끝마친다. 그는 "돈주앙(Don Juan)"1편을 읽어오라고 하고 강의를 일찍 끝낸다. 그는 학생들의 머리 너머 그녀를 부른다.

"멜라니, 얘기 좀 할까?"

그녀는 고통스럽고 지친 얼굴로 그 앞에 선다. 다시 그의 가슴이 그녀를 향해 나아간다. 둘만 있다면 안아주고 기분을 북돋아 줄 텐데. 그리고 나의 작은 비둘기 하고 부를 텐데.

대신 그는 말한다.

"내 사무실로 갈까?"

그녀의 남자친구가 뒤를 따른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 그의 사무실로 간다.

"여기서 기다리게."

그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문을 닫는다.

멜라니는 머리를 숙이고 그 앞에 앉는다.

그가 말한다.

"어려운 줄은 알아. 내가 그걸 더 어렵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나는 선생으로서 얘기하는 거야. 나는 학생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어. 자네의 남자친구가 캠퍼스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그의 몫이야. 하지만 나는 그가 내 수업을 방해하게 할 수는 없어. 내가 이 말을 하더라고 그에게 전해. 그리고 자넨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겠어. 수업도 더 규칙적으로 참석하고 말이야. 그리고 치르지 않은 시험을 치러야 해."

그녀는 당황하고 충격을 받아 그를 쳐다본다. 당신이 나를 모든 사람으로부터 차단했어요. 당신이 내게 당신의 비밀을 떠맡도록 만들었어요. 나는 더 이상 학생만은 아니에요. 어쩌면 이렇게 나한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가라앉아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시험을 칠 수 없어요. 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점잖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가 이해하길 바라며 신호를 보내는 것뿐이다.

"멜라니,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시험을 치러. 준비가 돼있고 않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것을 끝내는 거야. 날짜를 잡자고. 다음 주 월요일, 점심시간 어때? 그러면 주말에 공부를 할 수 있잖아?"

그녀는 턱을 올리고 도전적으로 그의 눈을 쳐다본다. 그녀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거나 그 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반복한다.

"월요일, 여기 내 사무실에서."

그녀는 일어나서 어깨에 가방을 멘다.

"멜라니, 나한테는 책임이 있어. 적어도 내가 말한 대로 하라고. 필요이상으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

책임. 그녀는 대답을 함으로써 그 말에 위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날 저녁 그는 콘서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신호등에서 멈춘다, 오토바이가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탄 은색 듀카티 오토바이. 그들은 헬멧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알아본다. 멜라니는 무릎을 넓게 벌리고 골반을 활모양으로 하고 뒷좌석에 앉아있다. 갑작스러운 욕정의 전율이 그를 잡아당긴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거기에 들어갔었지! 그런 다음, 오토바이가 앞으로 뛰쳐나가며 그녀를 데리고 사라진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