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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인형(La muñeca menor)

막내 인형(La muñeca menor)

Rosario Ferré

 

늙은 숙모는 꼭두새벽부터 사탕수수 밭이 보이는 발코니로 안락의자를 끌어냈다. 인형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는 언제나 그랬다. 숙모는 어릴 적에 강에서 자주 멱을 감았다. 그런데 비가 내려 강물이 용트림하던 어느 날, 뼛속이 시린 느낌이 들었다. 물기가 묻어 반들거리는 검은 바위 사이에서는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해변에서 폭약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근처에 바다가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무언가 종아리를 지독하게 깨물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 숙모를 물에서 끌어냈다. 들것에 실려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숙모는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숙모를 살펴본 의사는 독이 있는 차가라 새우에게1) 물린 것 같은데 별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한 달 후, 의사는 종아리 속으로 들어간 새우가 자라고 있는 게 틀림없다면서 겨자 습포를 처방했다. 열기 때문에 새우가 밖으로 나오리라는 것이다. 숙모는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겨자를 바르고 일주일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는 더욱 악화되었다. 게다가 온 다리에 부스럼딱지 같은 게 생겼는데,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숙모는 체념하고 종아리 속에 틀어박힌 새우와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숙모는 무척 예뻤다. 하지만 치마 속, 칭칭 감은 붕대 밑에 숨어 있는 새우 때문에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청혼자들을 만나보지도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혔다. 처음에는 여동생의 딸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퉁퉁 부은 발로도 집안을 능숙하게 돌아다녔다. 그때는 식구들이 낡은 식탁보 위에 떨어진 유리등 파편처럼 차례차례 주변으로 살림을 차려 나가던 시절이었다. 조카딸들은 숙모를 존경했다. 숙모는 머리를 빗겨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동화책을 읽어 줄 때면 숙모 주위에 둘러앉은 조카딸들은 고름이 흐르는 다리에서 번지는 시큼한 과나바나2) 냄새를 맡으려고 몰래 치맛자락을 들추었다.

조카딸들이 성장하자 숙모는 장난감으로 인형을 만들어주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인형이었다. 무화과나무로 속을 채우고, 떨어진 단추로 눈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은 숙모의 솜씨에 감탄하고 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형은 집안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인형을 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조카딸들이 성장해서 더 이상 필요 없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숙모는 조카딸들의 칫수를 재어 등신대(等身大) 인형을 만들었다. 모두 아홉 명이었는데, 숙모는 조카마다 1년에 하나씩 인형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방 하나를 아예 인형 방으로 사용했다. 큰 조카딸이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인형 방에는 나이별로 백 스물여섯 개의 인형이 있었다. 방문을 열면 비둘기 집이나 러시아 황궁의 인형 방이나 담뱃잎 건조장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하지만 숙모는 이런 즐거움을 맛보려고 인형 방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방문을 잠그고, 콧노래를 부르며 인형 하나씩 집어 들고 귀엽다는 듯이 흔들었다. “그래, 네가 한 살 때이지. 이건 두 살 때이고, 이건 세 살 때야.” 이처럼 조카딸들을 양팔에 앉아주던 시절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큰 조카딸의 열 번째 생일날, 사탕수수밭을 보려고 안락의자에 앉은 숙모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사탕수수만 쳐다보며 멍하니 지내다가 의사가 진찰하러 오거나 인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만 정신을 차렸다. 그럴 때 숙모는 큰소리로 자기 좀 도와달라며 온 집안사람들을 불렀다. 그런 날이면 농장의 일꾼들은 신명 난 잉카제국의 파발꾼들처럼 연신 집안을 들락거리며 밀랍, 점토, 레이스, 바늘, 색실을 사왔다. 이처럼 부산한 준비가 끝나면 숙모는 어제 저녁 꿈에 나타난 조카딸을 방으로 불러 치수를 재고, 밀랍으로 마스크를 떴다. 마스크 양면에 석고를 먹여놓은 모습은 마치 죽은 두 얼굴 사이에 산 얼굴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턱 부위에 조그만 구멍을 내면 노란 밀랍이 한없이 흘러나왔다. 도자기로 만든 팔은 항상 투명했다. 엷은 상아색 팔은 하얀 비스크 도자기 얼굴과3) 대조를 이루었다. 인형의 몸체를 만들기 위해 숙모는 무화과나무 가지 스무 개를 정원에 갖다놓으라고 일렀다. 능숙한 솜씨로 무화과 가지를 하나하나 짜개고, 발코니 벽에 일렬로 늘어놓아 햇빛과 바람에 진액을 말렸다. 며칠 후, 숟가락으로 속을 긁어내어 인형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숙모가 손수 만들지 않은 소재는 눈알이었다. 유럽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눈알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숙모는 이 눈알을 그냥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차가라 새우의 미세한 더듬이 운동을 감지할 수 있도록 며칠 동안 시냇물에 담가놓았다. 그런 연후에 암모니아수로 씻으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이렇게 준비한 눈알은 밑바닥에 두툼하게 솜을 놓은 네덜란드산 쿠키통에 보관하였다. 인형의 옷은 아이들이 성장해도 변하지 않았다. 항상 작은 인형은 레이스 달린 천을 사용했다. 큰 인형에는 자수를 사용하고, 머리에는 한결 같이 풍성한 매듭을 얹었다.

조카딸들이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결혼식 날 숙모는 조카딸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최근에 만든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네가 부활(復活)했지”라고 말했다. 신랑에게는 신부 집 그랜드 피아노 위에 놓아둔 장식품이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숙모는 발코니 위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조카딸들을 바라보았다. 한 손으로는 수수한 체크 무늬 옷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자기를 꼭 닮은 등신대 인형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인형은 가죽 샌들과 망사 천에 수를 놓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인형의 손과 얼굴은 그렇게 투명하지 않았다. 응유(凝乳)처럼4) 끈적거리는 기운이 있었는데, 결혼식 인형은 섬유질 대신에 꿀로 속을 채웠기 때문이다.

조카딸들이 모두 결혼하고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 조카딸만이 남았을 때, 매달 왕진오던 의사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을 데려왔다. 청년은 치마를 들추고 벌겋게 부어오른 종기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푸르스름한 종기에서 냄새 나는 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청년은 청진기를 꺼내 조심스럽게 진찰했다. 숙모는 새우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청년의 손을 종아리 위에 올려놓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새우 더듬이를 느껴보라는 것이었다. 청년은 치마를 내리고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초기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의 아버지는 물론이라고 대답하면서, 이십년 동안 너를 공부시킨 새우를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후로 청년이 매달 숙모에게 왕진을 왔다. 누가 보아도 막내 조카딸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숙모는 앞일을 예견하고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청년은 항상 빳빳한 칼라와 번쩍거리는 구두와 멋들어진 동양풍 넥타이핀을 꽂고 다녔다. 숙모를 진찰한 후에는 응접실에 앉아서 타원형 틀 속에 끼워넣은 페이퍼 실루엣을5) 한쪽에 치워놓고 보라색 스타티스 꽃다발을6) 조카딸에게 주었다. 조카딸은 생강 과자를 내놓고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받았다. 마치 거꾸로 웅크린 고슴도치의 배를 만지기라도 하듯이. 조카딸은 청년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페이퍼 실루엣이 궁금했고, 또 돌고래의 뱃속은7)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식 날, 조카딸은 인형의 허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 깜짝 놀랐으나, 너무나 예쁜 모습에 정신이 팔려 이내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손과 얼굴은 고급 미카도(Mikado) 도자기로 만들었다. 조카딸은 숙모가 자기 젖니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아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서글픈 미소를 띄웠다. 다른 점도 독특했다. 숙모는 눈동자 가운데 반짝이는 진주를 박아놓은 것이다.

의사는 조카딸을 마을로 데려갔다. 시멘트 건물들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네모난 집이었다. 의사는 유력한 집안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조카딸을 하루 종일 발코니에 앉혀놓았다. 조카딸은 찜통 같은 발코니에 앉아서 남편이 페이퍼 실루엣만 가진 것이 아니라 욕심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느 날 남편은 메스 끝으로 인형의 눈알을 파냈다. 그리고 긴 줄이 달린 값비싼 회중시계와 바꾸었다. 그때부터 인형은 그랜드 피아노 끝에 앉아 있었으나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몇 달 후, 의사는 인형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조카딸에게 행방을 물었다. 신앙 단체에서 부활절 성체 행렬 때 베로니카 상(像)에 쓸려고 도자기 인형의 팔과 얼굴을 비싼 값으로 구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카딸은 의사에게 인형 속에 꿀이 든 것을 알고 개미들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먹어치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인형의 얼굴과 팔을 미카도 도자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개미들은 틀림없이 설탕인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이빨이 부러졌을 것이며, 지금쯤이면 개미굴 속에서 인형 손가락과 눈까풀을 쏠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의사는 집 주변을 뒤엎었으나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몇 해가 지나고, 의사는 부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고객으로 만들었다. 고객들은 과도한 진찰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가 끊긴 사탕수수 농장의 귀족 후손을 가까이서 보려는 욕심으로 찾아왔다. 조카딸은 여전히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옷차림에 눈을 내리뜨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목걸이와 깃털 달린 모자로 치장하고 지팡이를 든 환자들이 돈 냄새를 물씬 풍기며 조카딸 옆에 앉았을 때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과나바나에서 흐르는 진액 냄새 같았다. 모두들 손을, 마치 다리라도 되는 듯이, 북북 문지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의사는 오로지 한 가지가 불만이었다. 자신은 늙어 가는데 조카딸의 피부는 예전에 사탕수수 농장을 왕진할 때처럼 여전히 뽀얗고 탄력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의사는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조카딸의 심장이 멎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청진기를 조심스럽게 심장 위에 대어보았다. 아득한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인형 눈까풀이 올라갔다. 눈알이 빠진 빈 공간으로 분노한 차가라 새우의 더듬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1) 차가라(chágara): 민물 새우의 일종

2) 과나바나(guanábana): 열대 지방의 과일

3) 비스크 도자기 인형(bisque doll)은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인형 제작법으로, 두 번 이상 소성하고 유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진짜 피부와 같이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이미 만들어진 얼굴이라 하더라도 눈알을 직접 사서 집어 넣어야 하며, 속눈썹과 가발도 직접 붙여야 한다.

4) 응고된 우유. 순두부처럼 희고 말랑말랑하며 특유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5)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엽까지 프랑스 등 유럽에서 유행하던 실루엣 그림. 영화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다.

6) 갯질경이과의 꽃. 스페인어 꽃명은 ‘항상 살아 있다’(siemprevivas)는 뜻이다.

7) 돌고래는 구원과 부활을 상징한다. 돌고래는 그리스․로마의 신화에도 등장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기원 2세기 이후 기독교에서는 죽은 영혼이 강을 건널 때 안전하게 인도하는 구원의 상징으로 쓰였다. 부활의 상징으로서 돌고래는 요나를 삼킨 고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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