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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뺑과 라삐노바(Lappin and Lapinova)

라뺑과 라삐노바(Lappin and Lapinova)

Virginia Woolf

 

두 사람은 결혼했다.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고 수많은 비둘기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튼 학교 교복을 입은 작은 소년들이 쌀을 던졌다. 폭스테리어 개가 어슬렁거리며 길을 건너갔다. 얼마 안 있어 어니스트 소번은 그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작은 무리를 지나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신부를 데리고 갔다. 런던 거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남의 행복이나 불행을 즐기려고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모여든다. 어니스트는 확실히 잘생겨 보였고 그녀는 수줍어 보였다. 소년들은 쌀을 더 던졌고 신혼부부를 태운 차는 떠나갔다.

이 일은 화요일에 있었던 일이고, 오늘은 토요일이다. 로잘린드는 자기가 어니스트 소번의 부인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지려고 아직도 애를 써야만 했다. 어쩌면 자기가 어니스트 모() 부인이라는 사실에 절대로 익숙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호수와 멀리 있는 산들을 굽어보는 호텔의 활 모양 내닫이 창가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올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어니스트라는 이름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녀가 좋아서 선택할 이름은 절대로 아니었다. 차라리 티모시, 앤토니. 아니면 피터가 더 나았다. 게다가 그는 어니스트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 이름에서 떠오르는 것은 앨버트 기념비, 마호가니 찬장,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앨버트 공의 판화 - 간략하게 말하자면 포체스트 테라스에 있는 그녀의 시댁 식당이다.

그러나 남편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다행히 그는 어니스트라는 남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 전혀. 그러면 무엇처럼 보이는 거지? 그녀는 곁눈질로 그를 힐끗 바라다보았다. 글쎄, 토스트를 우적우적 씹고 있을 때는 토끼처럼 보였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멋지고 늠름한 젊은이. 오뚝한 코에 푸른 눈. 입을 굳게 다문 이 젊은이에게서 작고 겁이 많은 토끼와의 유사성을 느꼈을 사람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었다. 그가 음식을 먹을 때면 코를 아주 약간 씰룩거렸다. 그녀의 애완용 토끼도 그랬다. 코를 씰룩거리는 그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가,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아차리면, 그녀는 자신이 웃는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어니스트, 당신이 토끼 같아서 그래요.” 그녀는 말했다.

산토끼 말이에요.” 그녀는 그를 쳐다보면서 덧붙였다.

먹이를 추적하는 토끼, 토끼 왕. 다른 모든 토끼를 지배하는 토끼.”

어니스트는 그런 토끼가 되는 것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코를 씰룩거린다는 사실을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다 - 이제는 일부러 더 씰룩거렸다. 그녀는 웃고 또 웃었고 그도 웃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은 귀부인들, 낚시하러 온 손님, 기름때 묻은 검은 재킷을 입고 있는 스위스 웨이터, 모두가 제대로 감을 잡았다. , 이 부부는 대단히 행복하다고. 하지만 이런 행복은 얼마나 지속되는 것일까, 하고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각자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토끼님, 양상추 드실래요?”

로잘린드는 점심때 호수 가장자리에 있는 히스 덤불 위에 앉아서, 삶은 달걀과 같이 먹으라고 내온 양상추를 집어 들고 말했다.

, 내 손에서 갖다 드세요.”

그녀는 덧붙여 말했고, 그는 손을 내밀어 받아다가 양상추를 조금씩 갉아 먹으면서 코를 씰룩거렸다.

착한 토끼, 예쁜 토끼.”

그녀는 집에서 애완용 토끼에게 하듯이 그를 어루만져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애완용 토끼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토끼(rabbit)를 프랑스말로 바꾸어 보았다. ‘라펜(Lapin)', 그녀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프랑스 토끼는 아니었다. 그는 순전히 영국산이었다 - 포체스터 테라스에서 태어나 럭비 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관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는 '버니'라고 불러 보았지만 먼저 것만 못했다. '버니'는 통통하고 부드럽고 익살맞은데, 그는 마르고 딱딱하고 심각하니 말이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코는 씰룩거렸다.

라뺑 Lappin."

그녀는 갑자기 외쳤다. 마치 찾고 있던 바로 그 단어를 찾기라도 한 것처럼 작게 소리쳤다.

라뺑, 라뺑, 라뺑 왕.”

그녀는 되풀이해서 불러보았다. 그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는 어니스트가 아니라 라뺑 왕이었던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그 이유를 대지 못할 것이다.

길고도 외로운 산책길에 화제가 궁해지면, 그리고 비가 올 거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경고한 대로 정말 비가 내리면, 아니면 저녁나절 추워서 벽난로 불을 쬘 때 결혼하지 않은 귀부인들과 낚시하러 온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불러야만 오는 웨이터만 남아있을 때면, 그녀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라뺑 족속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내었다.

그녀는 손에 바느질감을 들고 있었고 그는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꾸며낸 상상의 세계에서 라뺑 족속은 발랄하고 흥미진진한, 실제로 존재하는 부족이 되었다. 어니스트는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그녀를 도왔다. 이 상상의 이야기에는 검은 토끼들과 빨간 토끼들이 등장했다. 적군도 있고 아군도 있었다. 그들이 사는 숲이 있었고 주위에는 초원과 늪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라뺑 왕이 있었는데 그는 코를 씰룩거리는 재주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가면 갈수록 진짜 위대한 동물이 되어갔다.

로잘린드는 끊임없이 그에게서 새로운 자질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는 위대한 사냥꾼이었다.

그런데 오늘 왕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로잘린드는 신혼여행 마지막 날에 물었다.

사실 그날 그들은 온종일 등산을 해서 그녀의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길 정도였지만, 그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오늘 산토끼를 따라다녔어.”

어니스트는 시가의 끝 부분을 물어 떼내면서 코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는 말을 멈추고는 성냥에 불을 붙이고 또 씰룩거렸다.

여자 산토끼를.” 그는 덧붙였다.

하얀 암토끼를.”

로잘린드는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이 외쳤다.

좀 작은 산토끼, 은회색 털의 크고 빛나는 눈을 한?”

맞아.”

어니스트는 그녀가 그를 바라볼 때의 표정과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그마한 놈, 눈은 앞으로 튀어나오고 두 개의 작은 앞발은 대롱거리고.”

이 모습은 바로 그녀가 손에 바느질감을 대롱거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큼지막하고 빛나는 그녀의 두 눈은 확실히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아아, 라삐노바.” 로잘린드는 속삭였다.

그게 그녀의 이름인가?” 어니스트가 물었다.

진짜 로잘린드의 이름?”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기가 그녀를 대단히 사랑한다고 느꼈다.

그래요, 그게 그녀의 이름이에요.” 로잘린드가 말했다.

라삐노바.”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든 것이 정해졌다. 그는 라뺑 왕, 그녀는 라삐노바 여왕으로.

그들은 서로 너무 달랐다. 그는 용감하고 의지가 굳었고, 그녀는 신중하고 유약했다. 그는 분주다사한 토끼 세계를 지배했고 그녀는 주로 달빛을 받으며 황량하고 신비한 세계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영토는 인접해 있었다. 둘은 왕과 여왕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갖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하얀 산토끼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온통 집토끼들만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래서 더 재미가 있었다.

이 사실이 다른 젊은 부부들보다 그들이 더, 나머지 세계를 상대로 굳은 동맹관계게 있다고 느끼게 했다. 이따금 사람들이 토끼, , 올가미, 사격 등과 같은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장난기 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곤 했다. 아니면 메리 아주머니가 산토끼 요리가 나오면 도무지 어쩔 줄 모르겠노라고, 꼭 갓난아기 같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식탁을 가로질러 은밀하게 윙크하기도 했다.

또 사냥을 좋아하는 어니스트의 형제, 존이 그해 가을 월트셔에서 토끼 값이 가죽, 내장 등 모두를 포함해서 얼마나 나갔느냐고 물을 때도. 이따금 그들의 상상 세계에 사냥터 관리인, 밀렵자, 또는 영주가 필요할 때면 그들은 친지들에게 그 역할을 분담시키면서 즐거워했다.

예를 들어 어니스트의 어머니인 레지널드 소번 부인은 대지주의 역할에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비밀이었다 - 바로 그게 핵심이었다. 그들 외에는 아무도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런 세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래 겨울을 살아낼 수 있었겠는가? 로잘린드는 생각했다.

이를테면 집안에 금혼 파티가 있었다. 소번 가 사람들이 모두 포테스터 테라스에 모여 이 결혼의 오십 주년을 축하했다. 이 결혼은 대단히 축복받은 결혼이어서 어니스트 소번도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가? 또한 자손이 번성해서 어니스트 말고도 아홉 명의 자녀가 탄생했고 이 가운데 많은 자손이 또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지 않았던가?

그녀는 그 파티가 무서웠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층으로 걸어 올라갈 때 그녀는 자기에게 형제자매가 없고 게다가 고아라는 사실을 느끼며 참담해졌다. 빛나는 새틴 천으로 도배를 하고 번쩍거리는 가족 초상화들이 걸려 있는 거대한 거실에 모인 그 모든 소번 가 사람들 가운데 자기는 실로 미미한 존재임을 절감했다.

현재 살아 있는 소번 가 사람들은 초상화의 인물들을 속 빼닮았다. 단지 색칠한 입술이 아니라 실제 입술을 가졌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그들의 입술에서 교실에 관한 농담이 흘러나왔다. , 그들이 어떻게 여자 가정교사가 앉아 있는 의자를 빼냈는지에 관한 농담,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결혼하지 않은 귀부인들의 새하얀 이불 호청 사이에 개구리들을 끼워 넣었는가 하는 농담들이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다리를 충분히 뻗지 못하게 장난으로 시트를 둘로 접은 잠자리조차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준비한 선물을 들고 노란 새틴 드레스를 화려하고 차려입은 시어머니를 향해 걸어나갔다. 시아버지는 화려한 노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 위에는 온통 금빛 선물들이 쌓여 있었다. 몇 개는 탈지면 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다른 것들은 화려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 촛대, 시가 상자, 체인. 이것들 하나하나에는 순도 높은 금임을, 우량 보증품임을, 순정품임을 증명하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선물은 단지 구멍이 숭숭 뚫린 작은 구리와 아연 합금 상자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에 쓰던 모래 뿌리는 기구, 18세기의 유물로, 한때는 젖은 잉크에 모래를 뿌리기 위해서 쓰이던 것이었다. 말도 안되는 선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압지를 쓰고 있는 이 시대에 너무도 시대착오적인 선물이라고 느꼈다.

그녀가 선물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눈앞에서, 그들이 약혼했을 때 시어머니가 내 아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쓴 글, 그 뭉툭하고 검은 필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니스트를 바라보았다. 몸은 쇠꼬챙이처럼 곧고, 코는 가족 초상화들의 코와 닮아 있었다. 절대로 씰룩거리지 않는 코.

그러고 나서 그들은 식사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커다란 꽃을 달고 있는 한 무리의 국화 그늘에 반쯤 가려졌다. 동그랗게 맺힌 빨갛고 금빛이 도는 국화꽃잎 그늘에. 모든 것이 금빛이었다. 가장자리를 금색으로 장식하고 금색 이니셜을 박아넣은 카드에는, 그들 앞에 하나씩 내놓을 모든 요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맑은 금빛 액체가 담긴 접시에 스푼을 담갔다. 바깥의 습냉한 하얀 안개가 램프 불빛을 받아 금빛 망으로 변해 접시 가장자리를 흐릿하게 만들고 파인애플의 껍질을 거친 금빛으로 만들어 놓았다. 단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툭 불거진 눈으로 앞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만이 녹지 않는 고드름처럼 보였다.

그러나 만찬의 시간이 서서히 끝나가자 실내는 음식의 열기로 뿌옇게 변했다. 남자들의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자신의 고드름이 녹아서 물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녹고 있었으며, 흩어지고 있었고, ()로 용해되고 있어서, 곧 기절할 것 같았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밀려드는 격동과 귀에 들리는 소음을 통해 그녀는 한 여인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자손은 계속 번성하고 있네!”

그랬다. 소번 가는 대단히 번성했다.

그녀는 자신을 압도한 현기증 속에서 두 개로 보이는 둥글고 붉은 얼굴들, 그들에게 후광을 부여한 금빛 안개 속에 확대된 그들 모두를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대단히 번성하고 있어.”

그때 존이 고함을 쳤다.

저런 망할 것들 같으니라구! ...쏘아버려! 장화로 짓밟아버려! 그 길 밖엔 없다니까... 가증스런 토끼 새끼들!”

그 말에, 바로 그 마술같은 단어에, 그녀는 생기를 되찾았다. 그녀는 국화 사이로 어니스트가 코를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코는 조용히 계속 씰룩거렸다.

그러자 소번 가에 신비한 재난이 발생했다. 금빛 식탁은 가시금작화가 만발한 황야가 되고,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음은 하늘에서 울려 퍼져 내려오는 종달새 노랫소리로 변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고는 소번 가 사람들 모두가 변했다. 그녀는 수염을 염색한 교활하고 체구가 작은 시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수집광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도장, 애나멜 상자, 그 밖의 18세기 화장대에서 나온 것 같은 시시껄렁한 물건들을 부인의 눈을 피해 자기 서재 서랍 속에 감추었다.

이제야 그녀는 그의 참모습을 보았다 - 그는 밀렵꾼이었던 것이다. 꿩와 자고새들을 훔쳐가지고 코트 안에 숨겨서, 불룩해진 코트를 입고 몰래 연기 나는 작은 오두막에 들어가 다리가 셋 달린 솥에 그것들을 떨군다. 이게 그녀의 진짜 시아버지였다 - 다름아닌 밀렵꾼.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 셀리아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비밀, 그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을 탐지하고 다녔다. 그녀는 분홍빛 눈을 가진 하얀 족제비였다. 그녀의 코로 말할 것 같으면 끔찍하게 땅 밑을 들쑤시고 다녀서 흙이 엉겨붙어 있었다. 셀리아의 인생은 사냥꾼들의 어깨에 매달린 망 속에 들려 메어졌다가 어느새 구덩이 아래로 냅다 던져지는 비참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녀의 탓이 아니었다. 이런 시선으로 그녀는 셀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소번가 사람들이 대지주라는 작위를 수여한 그녀의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천박한 폭군, 이것이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파티에 온 손님들에게 일일이 답례하며 서 있을 때의 그녀는, 그러니 지금 로잘린드, , 라삐노바는 모든 것을 다르게 보았다.

시어머니 뒤로 벽의 석회가 벗겨진 퇴락한 저택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미워하는 자손에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 때문에 감사를 표하는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흐느낌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모두 술잔을 들고 서 있었다. 모두 마셨고 그리고 파티는 끝났다.

오오, 라뺑 왕!”

안개를 헤치며 집으로 돌아갈 때 그녀가 외쳤다.

당신이 바로 그 순간 코를 씰룩거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덫에 걸릴 뻔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안전하오.”

라뺑 왕은 그녀의 앞발을 지그시 누르면서 말했다.

안전하고 말고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 늪지대의, 그 안개의, 그 가시금작화 향내 어린 황야의 왕과 왕비인 그들인 하이트파크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이런 식으로 일 년, 이 년, 잘도 지나갔다. 어느 겨울밤, 우연히 금혼식 파티가 있던 날과 같은 날, - 하지만 레지널드 소번 부인은 이미 죽고 없었고, 집은 세를 놓을 참이어서 관리인만이 살고 있었다 - 어니스트는 어김없이 사무실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아담한 집을 찾고 있었는데, 그것은 지하철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사우스 켄싱턴에 있는 마구 가게 이층이었다.

대기 중에 안개가 느껴졌으며 날씨는 추웠다. 로잘린드는 바느질을 하면서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그녀는 그가 자리를 잡고 앉아 두 다리를 벽난로 불길을 향해 뻗자마자 말을 꺼냈다.

내가 시냇물을 건너가고 있었을 때...”

어느 시냇물 말이오?” 어니스트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 왜 있잖아요. 우리 숲과 검은 나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저 아래 시냇물 말이에요.” 그녀는 설명했다.

어니스트는 잠시 동안 완전히 멍청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가 물었다.

여보, 어니스트!” 그녀는 낙담해서 외쳤다.

라뺑 왕.”

그녀는 작은 두 앞발을 불빛 속에 대롱거리며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코는 씰룩거리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은 - 이제는 인간의 손으로 변했다 - 잡고 있던 것을 더 세차게 움켜쥐었고 두 눈은 얼굴에서 거의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가 어니스트 소번에서 라뺑 왕으로 변하는 데에는 자그마치 오 분이나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목 뒷덜미가 뻐근해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그 부위를 쥐어짜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마침내 그는 라뺑 왕으로 변했다. 그는 코를 씰룩거렸고, 그들은 저녁 내내 늘상 하던 대로 상상의 숲 속을 배회하며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한밤중에 깨어나 자신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몸이 굳어 있었고 추웠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불을 켜고 옆에 누워 있는 어니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코를 골고 있었다. 하지만 코를 골기는 했지만 코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씰룩거려본 적이 없는 듯 했다.

그가 진짜 어니스트일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어니스트일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어니스트와 결혼했는가? 시댁 식당의 환영이 그녀 앞에 떠올랐다. 거기에 늙은 그녀와 어니스트가 찬장 앞 조각품들 밑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날은 그들의 금혼식 날이다. 그녀는 견딜 수가 없었다.

라뺑, 라뺑 왕!” 그녀가 속삭였다.

그랬더니 잠시 동안 그의 코가 저절로 씰룩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일어나요, 라뺑. 일어나라니까요!”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어니스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자기 옆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

왜 그래?”

나는 내 토끼가 죽은 줄 알았어요!”

그녀가 우는 소리로 말했다. 어니스트는 화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로잘린드.” 그는 말했다.

어서 누워서 잠이나 자요.”

그는 돌아눕더니 이내 깊이 잠들어 코를 골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산토끼처럼 침대 한 귀퉁이에 몸을 구부리고 누워있었다.

불을 껐지만 거리의 가로등이 천장을 희미하게 밝혀놓았다. 바깥의 나무들이 천장 위에 레이스 그물 세공을 만들어내었다. 마치 천장 위에 어두운 숲이 있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그 숲 속을 배회하며 방향을 틀기도 하고, 들락날락하고, 빙글빙글 돌고, 쫓고 쫓기고, 사냥개 짖는 소리, 뿔피리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고, 도망치곤 했다... 하녀가 카튼을 젖히고 그들 부부의 이른 아침 차를 들고 들어올 때까지.

이튿날 그녀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뭔가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녀는 몸이 오그라든 것처럼 느껴졌다. 몸이 작아지고 검고 딱딱해졌다. 관절도 굳은 것 같았다.

아파트 주위를 배회하면서 여러 번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때마다 두 눈이 작은 롤빵 속의 건포도들처럼 얼굴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방들도 작아진 것 같았다. 거대한 몸집의 가구들이 기이한 각도로 삐져나왔고, 그녀는 가구들에 부딪혔다.

견디다 못해 그녀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와 크롬웰 거리를 따라 걸었다. 그녀가 지나가면서 들여다보는 방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처럼 보였다. 그 식당에는 어김없이 철제 조각품으로 장식되어 있고, 두꺼운 노란 레이스 커튼이 걸려 있고, 마호가니 찬장이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연사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녀는 어릴 때 이 박물관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가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은 박제된 암토끼가 인공설(人工雪) 위에 핑크빛 유리 눈으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왠지 이것은 그녀로 하여금 온몸에 오한을 느끼게 했다. 어둑어둑해지면 나아질런지도 몰랐다.

그녀는 집으로 가서 불을 켜지 않고 난롯불을 쬐며 앉아서, 자신이 혼자 황야에 나와 있다고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급류로 흐르는 냇물이 있고 그 냇물 너머로는 검은 숲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냇물에서 더 이상은 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젖은 풀 위 강둑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녀의 의자에 웅크리고 앉은 것이다. 두 손은 빈 채로 대롱거리며. 두 눈은 유리 눈처럼 벽난로 불빛 속에 멍청한 채로 있었다.

그때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마치 총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다. 그건 총소리가 아니라 어니스트가 문 열쇠를 돌리는 소리일 따름이었다.

그녀는 떨면서 기다렸다. 그는 들어와서 스위치로 불을 켰다. 훤칠하게 잘생긴 어니스트가 추워서 빨개진 두 손을 비비며 거기 서 있었다.

왜 이렇게 어둡게 하고 앉아 있어?” 그가 말했다.

오오, 어니스트, 어니스트!”

의자에서 발딱 일어나면서 그녀가 외쳤다.

그래, 그래. 그런데 도대체 왜 이래?”

그는 두 손에 불을 쬐며 활기차게 물었다.

라삐노바가......”

그녀는 놀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사납게 흘겨보며 말을 더듬었다.

어니스트, 라삐노바가 가버렸어요. 그녀를 잃어버렸어요!”

어니스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오오, 그게 문제였구만?”

그녀는 약간 엄숙하게 아내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십 초가량 말없이 그는 거기에 서 있었다. 그녀는 목 뒷덜미를 조여오는 손을 느끼며 기다렸다.

그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가엾은 라삐노바....”

그는 벽난로 위의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덫에 걸려 죽었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앉아서 신문을 읽었다.

그랬다, 이것이 이 결혼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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