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파산
염상섭
“어머니, 교장 또 오는군요.”
학교가 파한 뒤다. 갑자기 조용해진 상점 앞 길을, 열어 놓은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고 등상에 앉았던 정례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본다. 그렇지 않아도 돈 걱정에 팔려서 테이블 앞에 멀거니 앉았던 정례 모친도 저절로 양미간이 짜붓하여졌다. 점방 안에는 학교를 파해 가는 길에, 공짜 만화를 보느라고 아이들이 저편 구석 진열대에 옹기종기 몰려섰다가, 교장이라는 말에 귀가 반짝하였는지 조그만 얼굴들을 쳐든다. 그러나 모시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하며 우둥퉁한 중늙은이가 단장을 짚고 쑥 들어서는 것을 보고, 학생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눈짓을 하고 킥킥 웃어 버린다. 저희 학교 교장이 온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째 이렇게 쓸쓸하우?”
영감은 언제나 오면 하는 버릇으로 상점 안을 휘휘 둘러보며 말을 건넨다.
“어서 옵쇼. 아침 한때와 점심 한나절이 한참 붐비죠. 지금쯤야 다 파해가지 않았에요.”
안주인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무관히 대꾸를 하였다. 교장은 정례가 앉았던 등상을 내어주니까 대신 걸터 앉으며,
“딴은, 그렇겠군요. 그래도 팔리는 거야 여전하겠죠?”
하고 눈이 저절로 테이블 위의 손금고로 갔다. 이 역시 올 때마다 늘 캐어묻는 말이지마는, 또 무슨 딴 까닭이 있어서 붙이는 수작 같아서 정례 어머니는,
“그야 다소 들쭉날쭉이야 있죠마는, 온 요새 같아서는…….”
하고 시들히 대답을 하여 준다.
“어쨌든 좌처가 좋으니까……. 하루에 두어 번쯤 바쁘고, 편히 앉아서 네다섯 식구가 뜯어먹고 살면야. 아낙네 소일루 그만 장사가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 그리구두 빚에 쫄리다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군.”
왜 그런지 이 영감이 싫고 멸시하는 정례는,
‘누가 해달라는 걱정인감!’
하는 생각에 입이 삐죽하여졌다.
“날마다 쓸쓸히 나가기야 하지만 원체 물건이 자(細)니까 남는 게 변변해야죠.”
여주인은 마지못해 늘 하는 수작을 뇌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영감이 더 유난히 물건 쌓인 것이며 진열장에 늘어놓인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다. 정례 모녀는 그 뜻을 짐작하겠느니 만큼 더욱 불쾌하였다.
여기는 여자 중학교와 국민학교가 길 긴너로 마주 붙은 네거리에서 조금 외진 골목 안이기는 하나, 두 학교를 상대로 하고 벌인 학용품 상점으로는 그야말로 좌처가 좋은 셈이다. 원래는 선술집이었다든가 하는 방 한 간 달린 이 점방을 작년 봄에 팔천 원 월세로 얻어 가지고 이것을 벌이고 앉을 제, 국민학교 앞에는 벌써 매점(賣店)이 있어서 어떨까도 하였으나, 여학교만은 시작하기 전부터 아는 선생을 새에 넣고 선전도 하고 특약하다시피 하였던 관계인지, 이때껏 재미를 보는 편이지, 이 장사 속으로만은 꿀리는 셈속은 아니다.
“이번에, 두 달 셈을 한꺼번에 드리쟀더니 또 역시 꿀립니다그려. 우선 밀린 거 한 달치만 받아 가시죠.”
정례 어머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손금고를 땡그렁 열고서 백원 짜리를 척척 센다.
“이번에는 본전까지 될 줄 알았는데 이자나마 또 밀리니……. 장사는 깔축없이 잘 되는데, 그 원 어째 그렇단 말씀유?”
하며 영감은 혀를 찬다.
저편에서 만화를 보며 소곤거리던 아이들은 교장이라던 이 늙은이가 본전이니 변리니 하는 소리에 눈들이 휘둥그레서 건너다본다.
“칠천오백 원입니다. 세 보십쇼. 그러니 댁 한 군델 세야 말이죠. 제일 무거운 짐이 아시다시피 김옥임이네 십만 원의 일할 오부, 일반 오천 원이죠, 은행 조건 삼십만 원의 이자가 또 있죠……. 기껏 벌어서 남 좋은 일 하는 거예요. 당신에게 이자 벌어드리고 앉았는 셈이죠.”
영감은 옆에서 주인댁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골똘히 돈을 세더니, 커다란 검정 헝겊 주머니를 허리춤에서 꺼내서 넣는다. 옆에 섰는 정례는 그 돈이 아깝고 영감의 푸둥푸둥한 넓적한 손까지 밉기도 하여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그래 이달 치는 또 언제쯤 들르리까? 급히 내가 쓸 데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본전까지 해 주어야 하겠는데…….”
하고, 아까와는 딴판으로 퉁명스럽게 볼멘 소리를 하였다. 만화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또 한 번 이편을 건너다본다.
부옇고 점잖게 생긴 신수가 딴은 교장선생 같고, 저기다가 양복이나 입고 운동장의 교단에 올라서면 저희들도 꿈질하려니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잣돈을 받아 넣고 나서도 또 조르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니, 설마 저런 교장이 어디 있으랴 싶어서 저희들끼리 또 눈짓을 하였다.
“되는대로 갖다 드리죠. 허지만 본전은 조금만 더 참아 주십쇼. 선생님 같으신 어른이 돈 오만 원쯤에 무얼 그렇게 시급히 구십니까.”
정례 어머니는 본전을 해내라는 데에 얼레발을 치며 설설 기는 수작을 한다.
“아니, 이자 안 물구 어서 갚는 게 수가 아니겠나요?”
“선생님두 속 시원하신 말씀두 하십니다.”
정례 어머니는 기가 막혀 웃어 보인다.
“참, 그런데 김옥임 여사가 무어라지 않습디까?”
그만 일어설 줄 알았던 교장은 담배를 붙이어 새 판으로 말을 꺼낸다.
“왜, 무어라구 해요?”
정례 모녀는 무슨 말이 나오려는지 벌써 알아채고 입이 삐쭉들 하여졌다.
“글쎄, 그 이십만 원 조건을 대지루구 날더러 예서 받아 가라니 그래 어떻게들 이야기가 귀정이 났나요?”
영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례는 잔뜩 벼르고 있었던 듯 모친의 앞장을 서서 가로 탄한다.
“교장 선생님! 그 따위 경위 없는 말이 어디 있어요? 그건 요나마 우리 가게를 판들어 먹게 하구 말겠단 말이지 뭐예요!”
하고 얼굴이 발끈해지며 눈을 세로 뜬다.
“응? 교장이라니? 교장은 별안간 무슨 교장? ……허허허…….”
영감은 허청 나오는 웃음을 터뜨리며 저편 아이들을 잠깐 거들떠보고 나서,
“글쎄, 그러니 빤히 사정을 아는 터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하며 말끝을 어물어물해 버린다.
이 영감이 해방 전까지 어느 시골선지 오랫동안 보통학교 교장 노릇을 하였다는 말을 옥임에게서 들었기에, 이 집에서는 이름은 자세 모르고 하여 교장 교장 하고 불러 왔던 것이 입버릇으로 급히 튀어 나온 말이나, 고리대금업의 패를 차고 나선 지금에는 그것을 내세우기도 싫고, 더구나 저런 소학교 아이들 앞에서는 창피한 생각도 드는 눈치였다.
“교장선생님이 이럴 수도 없구 저럴 수도 없으실 게 뭐예요. 그 아주머니한테 받으실 건 그 아주머니한테 받으십쇼그려.”
정례는 또 모친이 입을 벌릴 새도 없이 풍풍 쏘아 준다.
“얜 왜 이러니.”
모친은 딸을 나무라 놓고,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벌써 끝낸 말인데 또 왜 그럴꾸.”
하며, 말을 잘라 버린다.
“아, 그런데 김씨 편에서는 댁에서 승낙한 듯이 말하던데요?”
영감의 말눈치는 김옥임의 편을 들어서 이십만 원 조건인가를 여기서 받아내려는 생각인 모양이다.
“딴 소리! 내가 아무리 어수룩하기루 제 사폐만 봐주구 제 춤에만 놀까요?”
정례 어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김옥임의 이십만 원 조건이라는 것이, 요사이 이 두 모녀의 자나깨나 큰 걱정거리요, 그것을 생각하면 밥맛이 다 없을 지경이지마는, 자초(自初)는 정례 모녀가 이 상점을 벌이고 나자, 장사가 잘 될성 부르니까 김옥임이가 저도 한몫 끼우고자 자청을 하여 십만 원을 들여놓고 들여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지고 들어온 동사 밑천 십만 원이 두 곱을 빼가고도 또 새끼를 쳐서 오늘에 와서는 이십 이만 원까지 달라는 것이다.
2
정례 모친은 남편을 졸라서 집문서를 은행에 넣고 천신만고하여 삼십만 원을 얻어가지고, 부비 쓰고 당장 급한 것 가리고 한 나머지 이십 이삼만 원을 들고 이 가게를 벌였던 것이었다.
팔천 원 월세의 보증금 만 원은 말고라도, 점방 꾸미고 탁자 들이고 진열대 세 채 들여놓고 하기만도 육칠만 원 들었으니, 갖다 놓은 물건이라야 십만 원어치도 못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 아이들이 차츰 꾀게 될수록 찾는 것은 많아가고 점심 때에 찾는 빵이며 과자라도 벌여 놓고 싶고, 수(繡)실이니 수틀이니 여학교의 수예(手藝) 재료들도 갖추갖추 가다 놓고는 싶은데, 쫄끔쫄끔 들어오는 그 돈 중에서 조금씩 뜯어서 당장 그날그날 살아 가야는 하겠으니, 자연 쫄리는 판에 김옥임이가 한 다리 걸치자고 덤비니, 동사란 애초에 재미없는 일이거니와, 당장에 아쉬우니 오만 원씩 두 번에 질러서 십만 원 밑천을 받아 들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동사지 이할(二割) 넘어의 고리(高利)로 십만 원 빚을 쓴 거나 다름없었다. 빚 놀이에 눈이 벌개 다니는 옥임이는 제 벌이가 바빠서도 그렇겠지마는, 하루 한 번이고 이틀에 한 번 저녁 때 슬쩍 들러서 물건 판 치부장이나 떠들어 보고 가는 것 밖에는 별로 거드는 일이 없었다. 실상은 그것이 쌩이질이나 하고 부라퀴같이 덤비는 것보다는 정례 모녀에게는 편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여튼 그러면서도 월말이 되면 이익의 삼분지 일 가량은 되는 이만 원 돈을 또박또박 따가곤 하였다.
담보물이 있으면 일할, 신용대부로 일할 오부 변(邊)인데, 동사란 말만 걸고 이할-이할이 안될 때도 있었지마는 셈속 좋은 때면 이할 이상의 배당도 차례로 오니, 옥임이 생각에는 실사고로는 이익이 좀 더 되려니 하는 의심도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별로 힘드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가만히 앉아서 이할이면, 허구한 날 삘삘거리고 싸지르면서 긁어들이는 변리돈 보다는 나은 셈이라고 생각하였던 거이었다. 하여간 올 들어서 밑천을 빼어 가겠다고 하기까지 아홉 달 동안에 이십만 원 가까운 돈을 벌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정례 부친이 만날 요 구멍가게에서 용돈을 얻어다 쓰는 것도 못할 일이라고, 작년 겨울에 들어서 마지막 남은 땅뙈기를, 그야 예전과 달라서 삼칠제(三七制)인 데다가 세금이니 비료니 하고 부담에 얽매이니까 그렇겠지마는……. 하여간 아버지 전장으로 물려받은 것의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팔아 가지고 전래에 없는 눈(降雪)이라고 하여, 서울 시내에서 전차가 사흘을 못 통할 동안에, 택시를 부리면 땅 짚고 기기라 하여, 하이어를 한 대 사들여 놓고 택시를 부려 보았던 것이라서 이것이 사흘 들이로 말썽을 부려 고장이요, 수선이요 하고, 나중에는 이 상점의 돈까지 하루만 돌려라, 이틀만 참아라 하고, 만 원 이만 원 빼내고는 시치미를 떼기 시작하니 점방의 타격은 의외로 큰 것이었다. 이 꼴을 본 옥임이는 에그머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올 들어서면서부터 제 밑천은 빼내 가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잘못하다가는 자동차가, 이 저자 터까지 들어먹을 판인데, 별안간 옥임이가 빠져 나간다니 한편으로는 시원하나 십만 원을 모개로 빼내 주는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거덜거덜할 바에야 집어치우지.”
겨울방학 때라, 더구나 팔리는 것은 없고 쓸쓸하기도 하였지마는, 옥임이는 날마다 십만 원 재촉을 하러 와서는 이런 소리도 하는 것이었다.
남은 집문서를 잡혀서 이거나마 시작해 놓고, 다섯 식구의 입을 매달고 있는 터인데 제 발만 쏙 빼놓았다고 이런 야멸찬 소리를 할 제, 정례 모녀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곤 하였다.
“세전 보증금이나 빼내구 뉘께 넘겨 버리지? 설비한 것 하구 물건 남은 것 얼려서 한 십만 원은 받을까? 그렇다면 내 누구 하나 지시해 줄까?”
이렇게 권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뉘께 넘기게 해서라도 자기가 십만 원만 어서 뽑아 가려는 말이겠지마는, 어떻게 보면 십만 원에 이 점방을 자기가 맡아 잡겠다는 말눈치인 듯도 싶었다.
“내가 바쁘지만 않으면 도틀어 맡아 가지고 훨씬 화장을 해 놓으면 이 꼴은 안되겠지만, 어디 내가 틈이 있는 몸이야지…….”
이렇게 운자를 떼는 것을 들으면 한 발 들여놓고 한 발 내놓는 수작 같기도 하였다. 자동차 동티로 밑천을 홀짝 집어먹힐까 보아서 발을 뺀다는 수작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참 꿀리고, 학교들은 방학을 하여 흥정이 없는 이 판에, 번히 나올 구멍이 없는 십만 원을 해내라고 못 살게 굴면, 성이 가시니 상점을 맡아 가라는 말이 나오고 말리라는 배짱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모녀는 그것이 더 분하였다.
“저의 자수로는 엄두도 안 나구 남이 해 놓으니까 괜 듯 싶어서, 솔개미가 까치집 채어들 듯이 이거나마 뺏어 가지고 저의 판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지만 첫째 이런 좋은 좌처를 왜 내놓을라구.”
누구보다도 정례가 바르르 떨었다.
“매사가 그렇게 될성 부르니까 뺏어 차구 앉았지. 거덜거덜하면 누가 눈이나 떠 본다든!”
정례 모친은 코웃음을 치기만 하였다.
하여간 이렇게 쫄리기를 반 달쯤이나 하다가, 급기야 팔만 원 보증금의 영수증을 옥임에게 담보로 내주고, 출자금 십만 원은 일할 오부 변의 빚으로 돌라매고 말았다. 옥임으로서는 매삭 이할 배당의 맛도 잊을 수 없었으나, 기위 상점을 제 손으로 못 휘두를 바에는 이편이 든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도 정례 모친은 옥임이와 가끔 함께 들러서 알게 된 교장선생님의 돈 오만 원을 얻어 가지고, 개학 초부터 찌부러져 가던 상점의 만회책(挽回策)을 다시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땅뙈기는 자동차 바람에 날려보내고, 자동차는 수선비로 녹여 버리고 나니, 상점에서 흘려 내가 칠팔만 원이라는 돈은 고스란히 떼버렸고 그 보충으로 짊어진 것이 교장의 빚 오만 원이었다.
점점 더 심해 가는 물가에, 뜯어먹고 살아야는 하겠고, 내남직없이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라도 덜 사겠지 더 팔리지는 않으니, 매삭 두 자국 세 자국의 변리만 꺼가기도 극난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연 좋지 못한 감정으로 헤어진 옥임이한테 보낼 변리가 한 달, 두 달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팔만 원 증서가 집문서만큼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기어이 일할 오분으로 떼를 써서 제멋대로 매놓은 것이 얄미워서, 어디 네가 그 이자를 긁어다가 먹나, 내가 안 내고 배기나 해 보자는 뱃심도 정례 모친에게는 없지 않았다.
옥임이 역시 제가 좀 과하게 하였다고 뉘우쳤던지, 또 혹은 팔만 원 증서를 가졌느니만큼 마음이 놓여서 그런지, 별로 들르지도 않으려니와, 들러서도 변리 재촉을 그리 아니하였다. 도리어 정례 어머니 편에서 변리가 밀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고 그 끝에,
“이 여름 방학이나 지내고 개학 초에 한몫 보면 모개 내리다마는 원체 일할 오분야 과한 것이오. 그때 형편에는 한 달 후면 자동차를 팔아서라도 곧 갚겠거니 해서 아무려나 해 둔 것이지만 벌써 이월서부터 여덟 달이나 됐으니 무슨 수로 그걸 다 내오. 일할씩만 해두 팔만 원이구료. 어이구……. 한 반만 깍읍시다.”
하고 슬쩍 비쳐 보면 옥임이도 그럴싸한 듯이,
“아무려나 좋도록 합시다그려.”
하고 웃어 버리곤 하였다. 그러던 것이 개학이 되자, 이달 들어서 부쩍 잦히면서 일할 오분 여덟 달치 변리 십 이만 원 어울려서 이십만 원을 이 교장 영감에게 치뤄 달라는 것이다. 급한 사정으로 이 영감에게 이십만 원을 돌려썼는데, 한 달 변리 일할 이만 원을 얹으면 이십이만 원 부리가 맞으니, 셈치기도 좋고, 마침 잘 되었다고 생글생글 웃어 가며 조르는 옥임이의 늙어가는 얼굴이, 더 모질어 보이고 얄밉상스러워 보였다.
마치 이십이만 원 부리를 채우느라고 그 동안 여덟 달을 모른 체하고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정례 어머니는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왔다. 옥임이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아서 분하였다. 그러나 분한 것은 고사하고 이러다가 이 구멍가게나마 들어먹고 집 한 채 남은 것마저 까불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곰곰하면 가슴이 더럭 내려앉는 것이었다.
소학교 적부터 한 반에서 콧물을 흘리며 같이 자라났고, 도쿄 가서 여자 대학을 다닐 때도 함께 고생하던 옥임이다. 더구나 제가 내놓은 십만 원은 한푼 깔축을 안 내고 이십만 원 가까운 돈을 벌어 주었으니, 아무리 눈에 돈 동녹이 슬었기로 제가 설마 내게 일할 오분 변을 다 받으려 들기야 하랴! 한 반절 얹어서 십육만 원쯤 해 주면 되려니 하는 속셈만 치고 있던 자기가 어리보기라고 혼자 어이가 없는 실소를 하였다.
그러나 십 오륙만 원이기로 한꺼번에 빼내는 수는 없으니, 이번에 변리 육만 원만 마감을 하고서 본전을 오만 원씩 두 번을 갚자는 요량이었다. 집안 식구는 조밥에 새우젓 꽁댕이로 우겨대더라도 어떻든지 이 겨울방학이 돌아오기 전에 그 아니꼬운 옥임이 조건만이라도 끝을 내고야 말겠다고 이를 악무는 판인데, 이렇게 둘러대고 보니 살겠다고 기를 쓰고 기어 올라가는 놈의 발목을 아래에서 붙들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맥이 풀리고 사는 것이 귀찮은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평생에 빚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는데 펀펀히 노는 남편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시작한 노릇이라서 은행에 삼십만 원이 그대로 있고 옥임에게 이십 이만 원, 교장 영감에게 오만 원, 도합 오십 칠만 원 빚을 어느덧 걸머지고 앉은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아니 오고 앞이 캄캄하고 양잿물이라도 먹고 싶은 요사이의 정례 어머니다.
“하여간 제게 십만 원 썼으면 썻지, 그걸 못 받을까봐 선생님을 팔구 선생님더러 받아 오라는 것이지만, 내가 아무리 죽게 돼두 제 돈 떼먹지는 않을 거니 염려 말라구 하셔요.”
정례 어머니는 화를 바락 내었다. 해방 덕에 빚놀이 시작해 가지고 돈 백만 원이나 착실히 잡았고, 깔려 있는 것만도 백만 원 이상은 되리라는 소문인데 이 영감에게 이십만 원 빚을 쓰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못 받을까 애도 쓰이겠지마는, 십 이만 원 변리를 본전으로 돌라매어 놓고 변리의 새끼 변리, 손자 변리까지 우려먹자는 수단인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십만 원에 일할 오분이면 오천 원밖에 안 되나, 이십이만 원으로 돌라매 놓으면 일할 변만 해도 매삭 이만 이천 원이니 칠천 원이 더 붙는 것이다.
“그야. 내 돈 안 쓴 것을 썼다겠소. 깔려만 있고 회수가 안 되면 피차 돌려두 쓰는 것이지마는 나 역시 한 자국에 이십만 원씩 모개 내놓고 오래 둘수 없으니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영감은 무척 생색을 내고, 이 편 사폐를 보아서 석 달 기한하고 자기 조카의 돈 이십만 원을 돌려 주게 할 터이니⎯⎯다시 말하면 조카에게 이십만 원을 일할로 얻어 쓸 터이니, 우수리 이만 원만 현금으로 내놓고 표를 한 장 써내라는 것이다. 옥임이는 이 영감에게로 미루고 영감은 또 조카의 돈을 돌려 쓴다고 표를 받겠다는 꼴이, 저희끼리 무슨 꿍꿍이 속인지 알 수가 없으나, 요컨대 석 달 기한의 표를 받아 놓자는 것이요, 그 사품에 칠천 원 변리를 더 받겠다는 수작이다. 특별히 일할 변인 대신에 석 달 기한이라는 조건을 붙이는 것도 무슨 계교 속인지 알 수가 없다.
석 달 동안에 이십만 원을 만드는 재주도 없지마는 석 달 후면 마침 겨울 방학이 될 때니 차차 끌려 들어가는 제일 어려운 고비인 것이다. 정례 어머니는 이 연놈들이 무슨 원수를 졌다고 이렇게 짜고서들 못 살게 구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한바탕 들이대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선생님께 쓴 돈 아니니, 교장 선생은 아랑곳 마세요. 옥임이더러, 와서 조르든 이 상점을 떠메어 가든 마음대로 하라죠.”
하고 딱 잘라 말을 하여 쫓아 보냈다.
3
그 후 근 일주일은 옥임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례 모녀는 맞닥뜨리면 말수도 부족하거니와 아귀다툼하는 것이 싫어서 그날그날 소리 없이 넘어가는 것만 다행하나, 어느 때 달려들어서 무슨 조건을 내놓고 졸라댈지 불안은 한층 더하였다.
“응, 마침 잘 만났군. 그런데 그만하면 얘기는 끝났을 텐데, 웬 세도가 그리 좋아서 누구를 오너라 가거라 하구 아니꼽게 야단야…….”
정례 모친이 황토현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열 틈에 섰으려니까, 이리로 향하여 오던 옥임이가 옆에 와서 딱 서며 시비를 건다.
“바쁘기야 하겠지만 좀 못 드를 건 뭐구.”
정례 모친은 옥임이의 기색이 좋지는 않아 보이나 실없는 말이거니 하고 대꾸를 하며 열에서 빠져 나서려니까,
“그래 그 돈은 갚는다는 거야 안 갚을 작정야? 세도 좋은 젊은 서방을 믿고 그 떠세루 남의 돈을 무쪽같이 떼 먹으려 드나부다마는 김옥임이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어…….”
원체 예쁘장한 상판이기는 하면서도 쌀쌀한 편이지마는, 눈을 곤두세우고 대드는 품이 어려서부터 삼십 년 동안을 보던 옥임이는 아니다. 전부터 ‘네 영감은 어째 점점 더 젊어 가니? 거기다 대면 넌 어머니 같구나.’하고 새룽새룽 놀리기도 하고, 육십이 넘은 아버지 같은 영감 밑에 쓸쓸히 사는 옥임이는 은근히 부러워도 하는 눈치였지마는, 밑도 끝도 없이 길바닥에서 ‘젊은 서방’을 들추어 내는 것을 보고 정례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늙은 영감에 넌더리가 나거든 젊은 서방 하나 또 얻으려무나.”
하고, 정례 모친도 비꼬아 주고 싶었으나 열을 지어 섰는 사람들이 쳐다보며 픽픽 웃는 바람에,
“이거 미쳐나려나? 이건 무슨 객설야.”
하고, 달래며 나무라며 끌고 가려 하였다.
“그래 내 돈을 곱게 먹겠는가 생각을 해보렴, 매달린 식솔은 많구, 병들어 누운 늙은 영감의 약값이라도 뜯어 쓰려구, 이렇게 쩔쩔거리고 다니는 이년의 돈을 먹겠다는 너 같은 의미가 없는 년은 욕을 좀 단단히 봐야 정신이 날 거다마는, 제 사정 보아서 싼 변리에 좋은 자국을 지시해 바친 밖에! 그거두 마다니 남의 돈 생으로 먹자는 도둑년 같은 배짱 아니구 뭐야?”
오고가는 사람이 우중우중 서며 구경났다고 바라보는데, 원체 히스테리증이 있는 줄은 짐작하지마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기가 나서 대든다. 히스테리는 고사하고, 이것도 빚쟁이의 돈 받는 상투수단인가 싶었다.
“누가 안 갚는대나? 돈두 중하지만 이게 무슨 꼬락서니냔 말야.”
정례 어머니는 그래도 달래서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였다.
“난 돈밖에 몰라! 내일 모레면 거리로 나앉게 된 년이 체면은 뭐구, 우정은 다 뭐냐? 어쨌든 내 돈만 내놓으면 이러니저러니 너 같은 장래 대신 부인께 나 같은 년야 감히 말이나 붙여 보려 들겠다든!”
하고, 허청 나오는 코웃음을 친다. 구경꾼을 자꾸 꾀여 드는데, 정례모친은 생전 처음 당하는 이런 봉욕에 눈 앞이 아찔하여지고 가슴이 꼭 메어 올랐으나, 언제까지 이러고 섰다가는 예서 더 무슨 창피한 꼴을 볼까 무서워서 선뜻 몸을 빠져 옆골목으로 줄달음질을 쳐 들어갔다. 뒤에서 발소리가 없으니 옥임이는 제대로 간 모양이다.
정례 모친은 눈물이 핑 돌았다.
스물 예닐곱까지 도쿄 바닥에서 신여성 운동이네, 연애네, 어쩌네 하고 멋대로 놀다가, 지금 영감의 후실로 들어앉아서 세상 고생을 알까, 아이를 한 번 낳아 보았을까, 사십 전의 젊은 한때를 도지사 대감의 실내 마님으로 떠받들려 제멋대로 호강도 하여 본 옥임이다. 지금도 어디가 사십이 훨씬 넘은 중늙은이로 보이랴.
머리를 곱게 지지고 엷은 얼굴 단장에, 번질거리는 미국제 핸드백을 착 끼고 나선 맵시가 어느 댁 유한마담으로 알 것이지, 설마 일할, 일할 오분으로 아귀다툼을 하고, 어려운 예전 동무를 쫓아다니며 울리는 고리대금업자로야 누가 짐작이나 할까?
해방이 되자 고리대금이 전당국 대신으로 터놓고 하는 큰 생화가 되었지마는, 옥임이는 반민자(反民者)의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도리어 간판으로 내세우고 부라퀴같이 덤빈 것이다. 증경(曾經) 도지사요, 전쟁 말기에는 무슨 군수품 회사의 취체역인가 감시역을 지냈으니, 반민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날이면, 중풍으로 삼년째나 누웠는 영감이, 어서 돌아가 주기나 하기 전에야 으레 걸리고 말 것이요, 걸리는 날이면 떠매어다 징역은 시키지 않을지 모르되, 지니고 있는 집간이며 땅섬지기나마 몰수를 당할 것이니, 비록 자식은 없을망정 자기는 자기대로 살 길을 차려야 하겠다고 나선 길이 이 길이었다.
상하 식솔을 혼자 떠맡고 영감의 약값을 제 손으로 벌어야 될 가련한 신세같이 우는 소리를 하지마는, 그래야 남의 욕을 덜 먹는 발뺌이 되는 것이다.
옥임이는 정례 모친이 혼쭐이 나서 달아나는 꼴을 그것 보라는 듯이 곁눈으로 흘겨보고 입귀를 샐룩하여 비웃으며, 버젓이 사람 틈을 헤치고 종로 편으로 내려갔다. 의기양양할 것도 없지마는, 가슴 속이 후련하니 머리 속이고 가슴 속이고 무언지 뭉치고 비비 꼬이고 하던 것이 확 풀어져 스러지고 화가 제대로 도는 것 같아서 기분이 시원하다. 그러나 그 뭉치고 비비 꼬인 것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례 어머니에게 대한 악감정은 아니었다. 옥임이가 그 오랜 동무에게 이렇다 할 감정이 있을 까닭은 없었다.
다만 아무리 요새 돈이라도 이십여만 원이라는 대금을 받아내려며는 한번 혼을 단단히 내고 제독을 주어야 하겠다고 벼르기는 하였지마는, 얼떨결에 나온다는 말이 젊은 서방을 둔 떠세냐 무어냐고 한 것은 구석 없는 말이었고, 지금 생각하니 우스웠다. 그러나 자기보다도 훨씬 늙어 보이고 살림에 찌든 정례 모친에게는 과분한 남편이라는 생각은 늘 하던 옥임이기는 하였다. 남의 남편을 보고 부럽다거나 샘이 나거나 하는 그런 몰상식한 옥임이도 아니지마는 자식도 없이 군식구들만 들썩거리는 집에 들어가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늙은 영감의 방을 들여다 보면, 공연히 짜증이 나고, 정례 어머니가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고 어려운 살림에 얽매고 고생은 하나, 자기보다 팔자가 좋다는 생각도 나는 것이었다.
내년이면 공과대학을 나오는 맏아들에, 중학교에 다니는 어미보다도 키가 큰 둘째 아들이 있고, 딸은 지금이라도 사위를 보게 다 길러 놓았고, 남편은 펀둥펀둥 놀며 마누라가 조리차를 하는 용돈이나 받아 쓰고, 자동차로 땅뙈기는 까불렸을망정 신수가 멀쩡한 호남자가 무슨 정당이라나 하는 데 조직부장이니, 훈련부장이니 하고 돌아다니니, 때를 만나면 아닌 게 아니라 장래 대신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팔구 삭 동안 동사를 하느라고 매일 들러서 보면, 젊은 영감을 등이라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듯이 지성으로 고이는 꼴이란 아닌 게 아니라 옆에서 보기에도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았지마는, 결혼들을 처음 했을 예전 시절이나, 도지사(道知事) 관사에 들어서 드날릴 때에야 어디 존재나 있을 위인들인가? 그것이 처지가 뒤바뀌어서 관 속에 한 발을 들여놓은 영감이나마 반민자로 지목이 가다니,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면 쭉쭉 뽑아 놓은 자식들과, 한참 활동적인 허위대 좋은 남편에 둘러싸여 재미있고 기운꼴 차게 사는 양이 역시 부럽고 저희만 잘 된다는 것이 시기도 나는 것이었다. 보기 좋게 이년 저년을 붙이며 한바탕 해대고 나서 속이 후련한 것도 그러한 은연 중의 시기였고, 공연한 자기 화풀이였는지도 모른다.
옥임이는 그 길로 교장 영감 집에 들러서,
“혼을 단단히 내주었으니까 인제는 딴소리 안 할 거외다. 내일 가서 표라두 받아다 주슈.”
하고 일러 놓았다.
4
“오늘은 아퀴를 지어 주시렵니까? 언제 갚으나 갚고 말 것인데 그걸루 의상할 거야 있나요?”
이튿날 교장이 슬쩍 들러서 매우 점잖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면 교장 선생님부터가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김옥임이가 그렇게 되다니 불쌍해 못 견디겠어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원서를 끼구 다니구, 〈인형의 집〉에 신이 나 하구, 엘렌 케이의 숭배자요 하던 그런 옥임이가, 돈냥 자루 같은 돈 전대를 차구 나서면 세상이 모두 노랑 돈닢으로 보이는지? 어린애 코묻은 돈 푼이나 바라고 이런 구멍가게에 나와 앉았는 나두 불쌍한 신세이지마는, 난 옥임이가 가없어서 어제 울었습니다. 난 살림이나 파산 지경이지만 옥임이는 성격 파산인가 보더군요…….”
정례 어머니는 분하다 할지, 딱하다 할지, 속에 맺히고 서린 불쾌한 감정을 스스로 풀어 버리려는 듯이 웃으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니 나두 듣기에 좀 괴란쩍습니다마는 다 어려운 세상에 살자니까 그런 거죠. 별 수 있나요. 그래도 제 돈 내놓고 싸든 비싸든 이자(利子)라고 명토 있는 돈을 어엿이 받아 먹는 것은 아직도 양심이 있는 생활입니다. 일만 가지고 속여 먹고, 등쳐 먹고, 알로 먹고, 꿩으로 먹는 허울 좋은 불한당 아니고는 밥알이 올곧게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 세상 아닙니까……. 허허허.”
하고 교장은 자기 변명인지 옥임이 역성인지를 하는 것이었다.
이날 정례 어머니는 딸이 옆에서 한사코 말리며,
“그 따위 돈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정장을 하든 어쩌든 마음대로 하라구 내버려 두세요.”
하며 팔팔 뛰는 것을 모른 체하고, 이십만 원 표에 이만 원 현금을 얹어서 옥임이 갖다가 주라고 내놓았다.
정례 모친은 그 후 두 달 걸려서 교장 영감의 오만 원 빚을 갚았으나, 석달째 가서는 이 상점 주인이 바뀌어 들고야 말았다. 정말 교장 영감의 조카가 나섰나? 하였더니 교장의 딸 내외가 들어앉았다. 상점을 내놓고 만 바에는 자질구레한 셈속을 따진대야 죽은 아이 귀 만져 보기지 별수 없지마는, 하여튼 이십만 원의 석 달 변리 육만 원이 또 늘어서 이십 육만 원인데 정례 모녀가 사글세의 보증금 팔만 원마저 못 찾고 두 손 털고 나선 것을 보면, 그 팔만 원을 애끼고 남음 십팔만 원이 점방의 설비와 남은 물건 값으로 치운 것이었다. 물론 옥임이가 뒤에 앉아 맡은 것이나, 권리값으로 오만 원 더 얹어서 교장 영감에게 팔아 넘긴 것이었다. 옥임이는 좀 더 남겨 먹을 것이로되, 교장 영감이 그 빚 받아내는 데에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오만 원만 얹어 먹고 말았다.
또 교장은 이북에서 내려온 딸 내외에게는 똑 알맞은 장사라고 생각이 있어서 애초부터 침을 삼키고 눈독을 들이던 것이라, 이 상점을 손에 넣으려고 애도 썼지마는, 매득하였다고 좋아하였다.
정례 모녀는 일 년 반 동안이나 죽도록 벌어서 죽 쑤어 개 좋은 일 한 셈이라고 절통을 하였으나 그보다도 정례 모친은 오래간만에 몸 편해져서 그렇기도 하였겠지마는 몸살 감기에 울화가 터져서 그만 누운 것이 반 달이나 끌었다.
“마누라, 염려 말아요. 김옥임이 돈쯤 먹자만 들면 삼사십만 원쯤 금세루 녹여내지. 가만 있어요.”
정례 부친은 앓는 마누라 옆에 앉아서 이렇게 위로하였다.
“옥임이 돈을 먹자는 것두 아니지마는 무슨 재주루?”
마누라는 말리는 것도 아니요 부채질하는 것도 아닌 소리를 하였다.
“김옥임이도 요새 자동차를 놀려 보고 싶어 한다는데 마침 어수룩한 자동차 한 대가 나섰단 말이지. 조금만 참아요. 우리집 문서는 아무래두 김옥임 여사의 돈으로 찾아 놓고 말 것이니…….”
하며, 정례 부친은 앓는 아내를 위하여 뱃속 유하게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