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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못 오신다네

고도는 못 오신다네

최일남

 

토요일 저녁이겠다, 모처럼 연극 구경을 했겠다, 공원이 마침 지척이겠다,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 마음먹는다. 낮공연인데도 극장은 만원이었다. 옆 사람 목구멍에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으로 바짝 젖힌 의자에 주리 참듯 앉아 오금을 펴지 못했다. 뻐근하게 마친 허리를 곧추세우고 줄창 들이마신 인내 땀내를 들척지근한 봄꽃 냄새로 갈아넣기 위해서도 우선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아니 삼사십 년 만에 다시 본 고도…」의 새삼스런 감동이 발목을 잡았다고 해도 좋다. 왜 있잖은가. 가다 보면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이 빗장지른 가슴을 뚫고 들어와 기분을 마구 들쑤시는 수가. 그런 날은 무작정 거리를 헤매기로 한다. 여느 때는 멀쑥한 지하철 기둥이 눈에 띄자마자 낭떠러지를 구르듯 계단을 쪼르르 내려가기 바빴거늘 이런 때는 본체만체 지나친다. 그런 날일수록 자주 나타나는 단골 버스 역시 전혀 반갑지 않다. 평소의 더딘 운행이 얄미워서도 오늘은 네 신세 지지 않겠노라 무시해버린다. 고단하기는커녕 사뿐이 즈려밟는 걸음걸음에 흥분이 내려 그날 밤 잠이 달다.

그것도 젊어 한때지 나이 들면 어디 그렇던가 비웃지 말란 법 없다. 아니라고는 못한다. 촉촉히 젖었던 감정 역시 곧 말라비틀어지기 쉽다. 동행이라도 있어 보라지. 귀로에 들른 불고기집 술상 앞에서 로스구이 냄새와 함께 증발할 일회용 객기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말하자. 감동에 층하가 없기로는 그게 그거라는 것을. <고도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의 뜻을 걸으면서 새기고 앉아서 저작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영화나 연극에서 얻은 감명을 소화하는 방법에 완급의 차가 불가피하다는 건 인정하되 그 이상의 웃자란 해석은 수용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나는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바삐 눈을 굴려 앉을 자리를 찾았다. 어디엔가 몸을 부리고 사뮤엘 베케트가 방금 들춰 보인 희망과 불안 이쪽 저쪽의 세계를 차분히 곱씹을 작정이다. 스스로 연출한 정황이 그럴싸할갑세 한편으로는 쑥스럽다. 연극 구경을 하고 공원 벤치에 기대어 직전에 전수받은 감흥을 재해석한달지 중탕하려는 태도가 제법이고, 그 자체로 근사하기는 하다. 때마침 지나가던 친지라도 있어 웬일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판이다. 으음. 저기 저 극장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이하 생략의 다문 입술에 뜨악한 상대가 요령부득의 눈초리로 그래서? 하고 나의 위아래를 뜯어볼 양이면 귀찮다는 듯 다시 말할 참이다. 그냥무심히 앉아 있고 싶어서.

솔직히 잔재미는 별로 없는 연극이다. 베케트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별달리 아는 바가 없다. 이야기다운 이야기는 차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밋밋하고 단조로웠다. 등장 인물이 모두 다섯이라지만 실제로는 둘이나 진배없다. 무대장치라야 시골길 마른나무 옆의 나지막한 흙더미가 고작이다. 그 흙더미에 에스트라곤과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의 두 부랑자가 올라앉아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주절거리며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나마 후딱하면 입을 다무는 침묵의 시간이 암만이다. 고도가 하느님이나 희망을 상징한다고는 해도 그걸 명료하게 짚어주지 않는다. 막이 끝날 때마다 나타나는 수줍은 소년이 고도는 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거듭거듭 전하는데도 그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서 막 구경하고 나온 드라마의 여운에 들떠 공원을 떠나지 못하고 주춤거릴까. 삼사십 년 전에도 심심하고 덧없는 내용에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는 하물며 더했다고 보아야 한다. 뭐 이런 연극이 다 있느냐고 허망하게 돌아섰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무미건조한 장면이 새록새록 눈에 밟힌다. 줄거리가 단순하고 무대 장치가 썰렁한 만큼 재현하기 편하고 기억이 삼삼한 가운데, 만고에 끝이 없을 막막한 질문을 삶의 요소요소에서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오늘이다. 저제나 이제나 두 떠돌이가 시골길 나무 옆에 웅크린 채 고도를 기다리는 모습이 여전히 어퉁할망정 몹시 반가웠던 게다. 모르면 몰라도 그들은 십 년을 한정하고 백 년이 무망하게 고도를 기다릴 거다. 그것이 출중한 작품의 긴 생명력이라는 짐작 따위는 그 방면 지식이 깜깜해서도 내 입으로 할 소리가 못 된다. 못 되지만 내처 발걸음을 돌리기 무엇하여 머뭇거린 셈이다. 내 고도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헤아릴 길 없는 대로 쉴 궁리를 한 것이다.

빈 벤치가 어렵사리 눈에 띄었다. 그나마 온전치 않다. 차림이 허름한 두 노인 곁에 있던 남녀 한 쌍이 갑자기 자리를 떠 생긴 공간이다. 슬금슬금 다가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친다.

코딱지만한 도심의 자투리 공원은 토요일까지 겹쳐 특히 젊은이들로 붐볐다. 나까지 합쳐 세 노인이 앉은 벤치는 그러므로 좀처럼 드물었는데 덕택에 그들이 쉬 넘보지는 않을 것 같다. 두 노인과 나 사이에 일인 분의 여유가 아직 남아 있다 하더라도 설마하니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는 못할 테다. 안심하고 담배를 태우며 굳이 귀를 쫑긋거릴 것 없이 옆엣 노인들의 말을 한갓진 마음으로 들었다.

"여기 첨인가."

"?"

"."

"더러 왔어. 자네는?"

"버스 타고 지나는 봤지만 막상 발걸음을 하지는 않았네. 보잘 게 있어야 오든 말든 하지."

"왜 보잘 게 없어. 온통 구경거리 천진데."

"볼 것도 많겠다. 저런 말총머리나 옥수수 수염 같은 노랑머리 보자고 와? 얼레. 이 녀석 머리는 벌써 단풍이 들었네. 오색 단풍이 한창여. 빨갛고 파랗고저러다 서리 내릴까 무섭다."

"걱정도 팔짜."

"막상 기집애들 머리는 삼단같이 긴데 어쩌자고 사내놈들이 저리 염색을 했을까."

"몰라서 묻나. 짐승을 보라고. 꿩도 닭도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잘 생기고 멋있지. 그래야 암컷의 환심을 사지."

"별소리 다 듣네. 인간이 동물과 같은가."

"다를 건 또 뭐람."

역정을 낸 노인은 뚱뚱하고 인간을 동물에 비유한 노인은 빼빼 말랐다. 나이 요량이 그래서 좀 헷갈리는데 소불하 칠십은 넘었을 듯하다. 주고받는 말투로 미루어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일 성부른 짐작 또한 가능하다. 둘 다 잠바를 입었다. 하나는 군청색이고 하나는 회색이다.

"한데 이 사람이 왜 이리 안 와."

"때가 되면 오겠지."

"때가 되면 오다니 지금이 몇 신데."

<> 노인이 팔뚝시계를 쳐들고 말한다.

""

<> 노인이 잠자코 입만 다시자 <> 노인이 재차 다그친다.

"틀림없이 약조했으렷다."

"내가 미쳤다고 헛소리를 혀? 우연히 만난 김에 강형과 가끔 어울려 이러고 저러고 한다고 했더니 지가 먼저 반색을 하더니만. 아 그 데부짱 이발쟁이? 하면서 자기도 꼭 끼워달라고 신신 당부하드라니까 그러네."

"뭐라? 이발쟁이? 데부짱?"

"화 내기는깐에 반가워 그랬겠지. 오랜만에 고향 사람 소식을 듣고 불쑥 입에 담은 옛버릇이겠거니 여기면 그만일걸. 본인 없는 데서는 나더러도 안 그럴라."

"자전거포 갈비뼈라고?"

<> 노인이 선수를 쳐 웃는다.

"그 정도면 괜찮게. 빵꾸쟁이니 성냥개비니"

"하고 보면 우리 몸집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고만."

"누가 아니래."

알겠다. 한 사람은 이발소를 차리고 한 사람은 자전거포를 했던 눈치다. 더불어 산 고향이 어디인지 미처 겨냥이 감감한 대로 한 고장에서 인연을 트고 살았음에 틀림없다. 눈썰미 손재주로 익힌 소소한 기술 하나 믿고, 햇볕 환한 날이 있는가 하면 낙숫물 듣는 날도 있는 세상을 이웃지간에서 겪은 게 분명하다.

그건 그렇다 치자. 나로서는 매우 희한한 장면이었다. 둘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어쨌다기보다는 너무 비슷한 앞뒤 사정에 이것 봐라? 끌렸다. 두 연기자가 <고도>의 출현을 갈망하는 것을 보고 나오자 이번에는 두 노인네가 제 삼의 인물을 고대하고 있다니. 여염의 내력으로 흔히 있음직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면 그만이다. 더구나 전자는 해석의 여지를 한껏 넓힌 가상의 상징 조직인데 비해 후자는 시정인들의 약속 따위와 관련된 자질구레한 일상의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할 건더기가 못된다는 지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밖에 없다.

하지만 공교롭기는 공교롭다. 똑 떨어진 그림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자꾸 가공의 세계와 눈앞의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나대는 것은 좀 전의 연극 분위기에 계속 휘둘린 탓이다. 따라서 암전을 거듭하던 지하극장에서 지상으로 기어올라온 순간부터 길을 오가는 저녁나절 행인들이 모두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자기 최면에 언뜻 빠졌다. 그렇게 넘겨짚던 참에 <이 사람이 왜 안 와> 소리마저 직접 귀동냥했으니 어쩌겠는가. 아전인수의 적중 사례에 혹해 옳거니! 쾌재를 불렀다.

아닌들 대수랴. 상관없거늘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그러구러 목격한 상황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다. 그쯤 되면 말 다했다.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 일부러 꾸미거나 시킨 짓이 정녕코 아니다. 아다시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으며 귀신 아닌 노인들은 더구나다. 무엇이 아쉬워 난생 처음 대하는 남의 속을 그토록 정확하게 짚어 연기를 하겠는가. 가당찮다. 이처럼 기가 막힐 때는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다. 주절주절 이어지는 두 노인의 물 흐르듯 자연스런 말마디에 편승하노라면 그와 같은 억측이 어언간 풀리리라 믿는 게 수다.

"오늘 온다던 송가 별호는 땅딸보였지."

"그래도 완력은 셌어."

"대장간의 풀무질 쇠망치질로 단련된 몸 아니드라고."

"화덕에서 끄낸 시뻘건 쇠를 모두에 올려놓고 쳐 늘일 때의 근육질 알통이 겁났지."

"덕택에 밑뿌리도 여간 아니었잖은가."

"보았나."

"보여줘야 보지."

"소문에는 혹이 달렸다고도 하고."

"일부러 만들었다고도 하고."

"어떻게 붙였을까."

"설마 태어날 쩍부터 달고 나오지는 않았겠지."

"고 말랑말랑한 대가리에 쇠를 씌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죽하면 마누라를 셋씩이나 갈았을라고."

"갈래서 갈았나. 견디다 못한 상대편에서 먼저 보따리들을 쌌지."

"도망가는 마누라가 있으면 쫓아오는 여자도 있고결과적으로 여복이 많았지 뭔가. 남들은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형편에."

"돈을 몽땅 벌어 임시 변통으로 거느린 화류계 여자들까지 합치면 셋이 뭐여. 반 다스를 실히 넘을걸."

"맞어. 난 놈은 난 놈여. 한데 돈은 어떻게 모았대."

"코쟁이 덕이지."

"옳아. 깡통을 줘모았다고 했지."

"깡통뿐인가. 처음엔 깡통을 펴서 산동네 지붕을 이는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드람통을 종잇장처럼 자르고 우그려 합승택시인가 뭐신가 만드는 공장에 납품혔댜."

"아무리. 아무리 어수룩한 세상이기로 그게 그렇게 간단한 작업일라고."

"아무튼지 쇠붙이로 일어섰어. 급기야 서울로 진출해서 변두리에 고물상을 차리고, 땅값이 오르는 바람에 앉아서 돈을 긁어모으고."

"지금은 사장?"

"어디가. 몇 군데 사업장을 아들 형제에게 맡기고 자기는 회장으로 물러앉었대. 소일 삼아 뒷전에서 훈수나 하나봐."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 행세를 한다고 했으니 험한 입도 많이 점잖아졌겄네."

"아닌 것 같애."

"여전혀?"

"나허고 기십 년 만에 잠깐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이따금 상욕을 비치던데. 개좆이니 육갑 떤다니를 예사로 내뱉드라고. 하기야 모를 일이여. 내 자전거포 얘기를 들먹이다가 나온 소리니께 옛날 생각이 나서 부러 그랬는지도."

"나도 생각나누만. 그 친구의 험담. 송가가 우리 이발소에 나타났다 하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네. 이발소가 어딘가. 애 어른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드나드는 복덕방 같은 곳이잖여. 반드시 머리만 깎으러 오나. 일없이 들러 제 맘대로 거울 앞에 서서 빗질을 하지 않나, 짜배기로 면도를 하지 않나. 게다가 송가는 누가 있건 없건 쌍소리를 막 해대네. 머리 짜르러 온 단발머리 소녀 보기 민망하고, 점잖은 유지라든가 겨우 단골을 트기 시작한 새 손님 놓칠까 두려웠어."

"능히 그럴 위인이지."

"한번은 미레의 만종 그림을 보고 뭐랬는 줄 알어?"

"? ?"

"미레. 미레도 몰라. 화가 이름이라고."

"에밀레 종소리는 들었어도"

"잔말 말고 하여튼 들어봐."

"송가가 한 말"

"그려. 그 그림을 쳐다보면서, 어라. 이 남녀는 예배당에서 할 기도를 논에서 하네. 하는가 하면, 벼이삭 줏는 그림을 보고는 아따 서양 촌것들 엉덩짝 한번 푸짐해서 좋다. 이러드라니까 글쎄."

"나도 보았어 그 그림들. 별로던데. 내 눈에는 그보다도 호숫가에 뾰족뾰족 늘어선 그림 같은 집들이 맘에 들더만."

"어차피 그림인데 그림 같은 집은 무슨"

두 사람의 화제는 어느새 이발소 그림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의 평생 직업으로 말머리를 돌린 것이다. 장면을 연극 무대에 대입하면 송 아무개를 궐석재판하듯 갖고 논 지금까지의 입담은 서막으로 제격인 폭이다. 나는 그러자 엉뚱한 걱정에 사로잡혔다. 내친김에 이야기를 좔좔 풀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 컸다. 다음 순간에는 또 두 노인이 운만 떼다 말고 이제라도 벌떡 일어서면 어쩌나 조바심했다. 일방적으로 점괘를 고르는 꼴이 괴이쩍을망정 나라고 맨입으로 소망 성취를 기원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무대를 딴 곳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멍석을 깔 용의를 내심 부추겼다. 하자면 천연스럽게 둘 사이에 끼어들 기회를 노려야 한다. 진득하게 기다리면 무슨 수가 나리라는 낙관으로 흔연하게 계속 귀를 기울이었다.

"자네 이발소에는 너댓마리 돼지새끼들이 고물고물 달라붙어 어미젖을 빨아대는 그림도 있었지 아마."

"있었다마다. 그림 속에는 시도 한 수 적혀 있었는데 그게 어떻게 나간 줄 아나."

"뻔히 짐작하면서 묻기는. 내가 어찌 아누."

"행복의 근원은 화목이니라.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이고, 수복다남은 우리의 최대 소망이다."

"좋은 말만 골라서 갖다 붙였고만. 그나저나 총기가 여간 아니네."

"하도 오래 걸어두다 보니 저절로 외우게 되었지. 시인 묵객들이라는 게 원래 그럴듯한 문구 늘어놓기를 즐기는 사람들 아닌가."

"어떤 이발소에서는 고무붓 같은 걸로 찍찍 그은 무지갯빛 문자를 벽에 붙이기도 했지. 글씨도 아닌 것이 그림도 아닌 것이 묘하드라고."

"혁필화 말이고만. 가죽 혁자 혁필화."

"그게 그림인가. 나도 예전에 내 이름 석 자를 시장에서 써 받았는데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괴상하다면 괴상하고한동안 액자에 넣어 걸어 두었다가 떼냈지."

"그림과 글씨를 반반씩 섞었는데 보매와는 달리 공력이 많이 드는 일이여. 양가죽이나 나무 뿌리를 썩혀 만든 붓에 갖가지 물감을 찍어 글자에 알맞는 그림을 그려넣어야 하거든."

"옳여. ()자에는 학을 그려 넣고 쇠금()에는 엽전을 곁들이대."

"그런 건 문제가 아녀.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쯤 되어봐. 얼마나 어렵겠나. 글자 뜻에 어울리는 그림을 즉석에서 척척 찍고 삐치기가."

"알고 보면 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요새는 통 볼 수가 없어. 통나무에 인두로 지진 그림들은 관광지에 쌨던데."

"미군부대 근방에 가보면 있을걸. 아참. 혹시 평화극장 간판을 그리던 촉새 생각나?"

"나고 말고."

"한참 전에 그 친구를 만났어. 뭐 하냐고 했더니 기지촌에서 화방을 한다던가. 반갑다고 술 한잔 나누는 자리에서 미군들의 그림 주문 얘기가 의당 나왔지. 그 중에 혁필화도 있다고 해서 좀 놀랐네. 임자가 따로 있었어. 우리는 버린 셈인데."

"그 친구가 선전부장까지 겸한 덕에 극장 구경은 원 없이 했네.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었어. 똘마니를 시켜 시내에 극장 포스다 붙이러 댕기는 자전거를 내가 도맡아 고쳤거든. 돈 대신 표로 주는 걸 어떡해. 마달 수도 없어 꼬박꼬박 받았지만 손익 계산을 하기로 들면 내 손해가 더 컸을걸. 걸핏하면 빵꾸였으니까."

"빵꾸 정도 때우는 거야 간단한데 뭐."

"이러지 마. 다이아 속 야들야들한 쥬브를 벗겨내는 것도 고역이여. 그걸 대야 물에 돌려가며 담궜다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공기로 구멍을 찾고, 뻬빠로 문지른 후 한참만에 고무풀을 붙이는 품이 얼만데. 아무나 하는 노릇이여 그게?"

"고무풀 냄새 좋았지."

"딴전 부리기는. 괜찮았지. 여하튼 땜질을 어찌나 자주 했던지 쥬브가 너덜너덜 미어질 지경이었어. 호크가 휘고 핸들이 틀어지고 스프링이 튀어나올 만큼 안장이 엉망인데도 구두쇠 강 사장인가 하는 극장 쥔은 새 걸로 개비할 염을 안 냈어."

"그건 그렇고, 촉새 때문에 나 또한 욕도 보고 덕도 보았어. 그 작자 멋 부리는 것 유명했잖여. 표 몇 장 가지고 와서 비싼 포마드를 아낌없이 처바르지 않나, 구리무를 제것인 양 듬뿍 찍어 얼굴에 문질러대지 않나. 이발이 끝나면 또 정성들여 해준 보람도 없이 꼭꼭 까탈을 부리네. 가리마는 73, 73의 비율로 타는 게 보통인데 이 친구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46형을 고집혀. 뿐인가. 앞머리 카트 모양이 대중없이 기니 짧으니, 귀밑머리 면도선이 너무 올라갔느니 처졌느니 불평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성미였다고. 차라리 올빽으로 넘기면 간단할 걸 가지고. 속이 있는 대로 상했지만 참았지. 나나 집사람이 구경을 원체 좋아한 까닭이 커. 그 돈이 그 돈이라는 자격지심에다 현찰을 내지 않고도 만판 자유롭게 극장 문을 드나드는 맛에 홀려 암말 않고 견뎠지."

"외상도 많고 공짜도 많고어디서나 잘난 얼굴 들이대고 웬만하면 다음 장에 보자던 시절이었어."

"말이 나왔으니 하는 소린데 자네도 내 덕에 공이발 더러 했지."

"누가 할 소리. 자네 아들 세발 자전거는 누가 마련해 주었는데."

"다 된 고물을 그럭저럭 뜯어 맞춘 것 아닌가."

"제대로 굴러가기만 하면 됐지 헌 것 새 것이 어딨어."

"그건 그려."

"허허."

"허허."

"허고 보면 우리는 깜냥껏 배운 기술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상호간에 빌리고 팔아먹으며 산 격이여."

"아무렴. 품앗이나 다름없었지."

"사진관 이 기사 생각나?"

"그럼. 푸라시를 잘못 펑 터뜨렸다가 하마트면 나한테 화상 입힐 뻔한 놈을 왜 몰라."

"그 녀석도 독사진 한번 찍어준 유세로 출장촬영용 자전거를 번번이 고쳐갔는데, 하루는 뜻밖에 덩치 큰 상용차를 끌고 왔지 뭔가."

"상용차라면."

"있잖여. 쌀장사나 술통 배달꾼들이 주로 타고 다니던, 짐받이가 보통 자전거 두 배도 넘게 실팍하고 넓적한 거. 아무튼 첫눈에 알겠더만. 칠성 양조장 것이었어. 구두방을 하는 이는 행인들의 신발만 눈여겨보고, 송방 쥔은 여자들의 옷치레에만 정신을 팔 듯, 나도 자전거를 두고 그짝 났었지. 더구나 좁은 바닥인걸. 뒷바퀴 덮개에 붙어 있어야 할 감찰 번호까지 뗀 것 하며 매우 수상쩍드라 이 말인데"

"그랬어. 그때는 자전거에도 번호판이 붙어 있었어."

"허나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잖은가. 생사람 잡는다고 펄쩍 뛰면 됩데 곤란할 것 같아 늘어진 체인인가, 뻑뻑 말을 안 듣는 기어인가를 손봐주고 말았지."

"녀석이 그날 밤으로 줄행랑을 놓았겠다?"

"아느만."

"이발소가 벌로 있나. 동네방네 소문이 다 들어오고 나가는 곳인데."

"저 혼자 밤봇짐을 쌌으면 얘깃거리도 안 되지. 짐받이에 결혼 날짜 잡아 놓은 처녀를 버젓이 태우고 삼십육계를 쳐 시끄럽지 않았나."

"극장 촉새도 그렇고, 가시네들은 실속없이 덤벙대는 하이칼라 기술자들에게 사족을 못 썼거든."

"사진사는 특히. 카메라 들고 한번씩 박아주면 아저씨 아저씨 했으니께."

"그렇다고 밉상이 곱상되는 것도 아닌데."

"두말하면 잔소리. 바람기 탓으로 돌려야지. 한데 그 처자가 어떤 처잔지 모르지?"

"………"

"청초하기 이를 데 없는 규수였다네. 그래서 더욱 떠들썩했지."

"어쩐지 자기도 마음에 두었었다는 말투여."

"에끼 순."

"말끝에 한숨을 쉬니까 그렇지."

"내가?"

"아니라고?"

"별 애먼 소리 다 듣네."

"어뗘. 기왕에 흘러간 염산데."

"시끄러…… 수를 아주 잘 놓았다네."

"수라니. 자수?"

"."

"그만 때 처녀 치고 누구는 수틀 안 끼고 살았을까."

"솜씨 나름이지. 유별났대."

"보았나."

"아니."

"그런데 본 것처럼. 아무래도 수상하고만."

"수상하다니 뭐가."

"암만해도 미련이 남는 눈치다 이거지. 아무 일 없었으면 자꾸 왜 싸고 돌아."

"나라고 귀가 없을까. 오늘사 말고 내 말에 어깃장 놓는 자네가 오히려 이상하네. 안 오는 송가 때문에 비위가 상했나."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그 건은 이미 염두에 없으니 꺼낸 이야기나 마자 끝내더라고."

"이실직고하건대 처자 얼굴도 조금은 눈에 익어. 집이 내 점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까닭에 지나다니는 모습을 이따금 보았거든."

"이뻤겠지. 그래야 말이 되니까."

"아무렴. 그냥 예쁘다기보다는 박꽃처럼 하얗고 깨끗했어."

"팥비누로 열심히 세수를 했던 모양이네. 여린 박속을 달챙이 숟가락으로 파서 참기름 한 방울 치고 깨소금에 버무려 먹으면 별미지."

"사람 허고는……"

"수 잘 놓기로는 죽은 내 여동생도 남에게 빠지지 않았어."

"자네 매씨도 그만하면 고왔지. 출가 이태 만이던가. 폐병으로 졸지에 세상을 뜬 게."

"햇수는 따져 무얼 하나. 타고난 복이 그뿐인걸."

"매제 박 서방 역시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남의 불에 게 잡는 푼수로 노인들의 쓸쓸한 회상이 내 가슴에도 부걱부걱 괴어올랐다. 일찍 간 누님을 덩달아 떠올린 탓이다. 가는귀를 먹은 누님 또한 사시사철 베갯모니 수저첩이니 상보 따위 수를 놓는 일로 불어터진 시간들을 꺼 나갔다. 빌려온 수본(繡本)을 정성스레 베끼고 그걸 다시 헝겊에 옮겼다. 그런 평화가 나는 때때로 어지빠르고 권태로워 마음에 없는 훼방을 놓기 쉬웠다. 널려 있는 푼사 꼰사류 색실을 집어던지든가 꼼꼼히 복사한 얇디 얇은 미농지를 구기는 등 헤살을 부렸다. 누님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무섭게 화를 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만큼 동작이 뜨고, 움직임이 굼뜬 만큼 모호한 웃음기부터 머금던 표정이 일시에 험악해지기 마련이었다. <썩을 놈> 욕을 했거늘, 자기 입에서 그처럼 험한 욕이 나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금세울상을 짓는 낯빛이 차라리 감당하기 힘들었다. 냉큼 달라들어 귀싸대기를 올려붙인달지 허벅지를 비틀어 꼬집었다면 분노와는 담을 싼 반편이의 감정 폭발로 내 속이 외려 후련하고 죄책감을 탕감받을 수도 있으련만 아니었다. 제 방귀에 놀란 것 마냥 거꾸로 스스럼을 타는 눈빛이 애잔하고 싫었다.

어린 내 눈어림에도 수를 잘 놓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수뿐인가. 누님은 하필 손끝 여문 바느질로 알아주는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불운마저 겹쳐 노상 구박에 시달렸다. 옷고름 하나 제대로 매지 못한다고 퉁 먹었다. 저고리 섶이나 소맷부리를 미리 시침질해서 몇 번씩 일러 주건만 항상 어긋났다. 네 쪽 천을 꿰매 맞추다가 솜을 두어 한 쪽씩 뒤집는 버선은 하물며였다. 내 속에서 나온 년이 이렇게도 바보 천치일 줄이야. 땅을 치는 어머니의 장탄식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던 누님을 어찌어찌 치운 건 다행이었으나 결혼 후 한 해를 못 넘기고 시시한 장질부사를 앓다가 죽었다. 베갯모 양켠을 그들먹하게 메웠던 목숨 수() 복 복()자의 어느 한쪽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아니 반의 반도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글자 놓기를 거의 끝낸 다음 금사 은사로 마지막 선을 두르며 흡족하게 웃던, 요즘 말로 형용하면 <천사표>가 따로 없는 웃음을 어찌 잊으랴. 제 명에 못 사는 청춘이 그리도 많던 시절의, 아 그 미소.

시집가기 전에 완성한 무궁화 수 생각을 하면 한층 안타깝다. 해방의 종소리가 울려퍼진 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누님은 어느 날 무궁화로 조선지도를 한 땀 한 땀 떠나갔다. 화조 산수에 십장생 일색이던 그 동안의 내력과 사뭇 다른 구도였다. 느닷없는 착상이 그녀의 머리에서 나왔을 리 만무다. 깜냥대로 오면 가며 알고 지낸 동네 처녀들에게 배운 것을 본떴음에 틀림없다. 사정이 그럴지언정 새로운 맛이 있었다. 흐벅지게 핀 여덟 송이 무궁화는 조선 팔도를 상징하려니와, 삼천리 금수강산에 만발한 무궁화꽃의 이미지가 퍽이나 시의적절하여 유년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내 또래 아이들이 밤낮으로 작당하여 "조선의 노래"라는 창가를 합창하고 다닐 무렵이다.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 반만 년. 대대로 예 사는 우리 이천만. 빛나도다 그 이름 조선이로세.>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노래는 1931년 동아일보에서 모집한 신춘문예 창가부 응모 작품의 변형이었다. 당선작으로 마땅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고선(考選)위원인 이은상으로 하여금 여러 후보작품 가운데 좋은 구절을 뽑아 재구성케 해서 "익명생"으로 발표했다. 일 년 후 현제명에게 작곡을 위촉 국민가처럼 불렀다. 전쟁 말기에는 물론 금지당했으며 가사는 모두 3절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와 부른 노래로 박태원 작사 김성태 작곡의 "독립행진곡"을 또 들 수 있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튼다. 동무야 자리 차고 일어나거라. 산 넘어 바다 건너 태평양 넘어.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린다.>

해방의 기쁨이 그토록 요란하게 방방곡곡에 메아리 칠 때였으므로 누님이 놓는 수에 무궁화가 활짝 피었대서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대번에 눈에 띄는 허연 공백지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비워둔 부분이 지도의 복판을 차지한 서울 인천 지방에 걸쳐 있어 더더욱 궁금했다. 팔도강산에 하나씩 배치한 것보다 훨씬 큰 무궁화를 수도 서울 몫으로 앉혀도 시원찮은데 희디흰 공간으로 처리하다니? 여기는 왜 백판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님은 얼른 대답을 못했다. 얼굴을 붉히며 여기에는, 여기에는…… 소리를 되뇌다가 <사진> 한마디를 가까스로 흘리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암시랍시고 떨구고 간 <사진>만으로는 좀체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래 신경 쓸 일도 아니어서 곧 잊었는데, 엉겁결에 떠안은 수수께끼는 며칠 후 친구네 집 마루에서 의외로 쉽게 풀렸다. 대청 벽에 걸린 그 댁 새 며느리, 그러니까 친구의 앳된 형수씨가 가져온 무궁화 지도 중앙에 신랑 신부 사진이 떡 박혀 있었던 거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하 깨달았다. 혼기에 접어든 처녀들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번진 하나의 유행임을 어림짐작하자 비웃음에 앞선 연민으로 마음이 짠했다. 필경 상처한 중년의 후처로 들어가 이내 죽을라면서 조선 팔도 중심에 더불어 들앉을 누군가를 꿈꾼 셈이다. 그나마 막판엔 쫓겨나다시피 보따리를 싸들고 돌아온 집에서 망가진 몸을 기신기신 추슬렀다. 뒤안 쪽마루에 앉아 빈 하늘과 자신의 서답빨래로 가득찬 연두빛 사기요강을 번갈아 쳐다보는 멍한 시선이 불쌍하고, 요강 밖으로 몇 번, 소년의 일상을 줴흔들었다.

비단 누님의 경우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행복찾기 소망을 벽에 건 그림에 붙박이로 표시하고 있었다. 아깟번에 등장한 이발소 그림이 더 좀 대표적이다. 동네 손님 하나가 밀레의 액자 속 풍경들을 보고 헐거운 객담을 내깔겼다 하더라도 그의 진심은 아니었을 터이다. 웃자고 한 짓일 뿐, 막연히 평안을 상상하기는 했을 터이다. 어차피 남의 것을 모사한 싸구려 그림일망정 갈매기가 한가로이 나는 항구며 눈 덮인 초가마을 풍경이 주는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복된 평화 지키기 표현물이 각양각색으로 많았다. 그 이전에 활달했던 민화는 어떤가. 호랑이를 그리되 용맹을 비틀어 온화하고 익살스럽게 변형시켰다. 그 밖의 날짐승 길짐승에도 일일이 표정을 담아 친화감에 넘치는 모양새로 꾸몄다. 함께 사는 동물의 의인화가 그때 이미 허물없이 가능했다.

두 노인은 지금 그 속에서 보낸 날들의 행?불행을 액자 밖으로 끌어내어 이약 이약 하고 있다. 자기들이 배기고 살아낸 이발소와 자전거포 중심의 삶도 필시 어떤 틀 안에 구획 지워진 체험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식할까 보냐.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저냥 주워섬길 따름이겠지만, 하늘 아래 다른 곳에도 이와 같은 형식의 담합(談合)이 또 속절없이 있으리라는 가정이 일단 푸근하다.

싸잡아 그들로 뭉뚱그렸을 때의 그이들이, 하지만 생기는 것 없이 괜히 한 시절의 오만 가지 문물을 입초에 올린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그런 위안이 없다. 잔상(殘像)을 확대 재생산하여 짝사랑 수준의 러브레터를 낱낱으로 띄우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여럿이 연서해서 띄우면 그 이상 남는 장사도 드물다. 추억의 범위가 대부분 코흘리개 시대 안팎에 한정되어 편지 문면은 늘, 그리고 한결같이 새콤달콤하다. 아무도 첨삭을 음모하지 않는다. 피차간에 쪼아 먹은 한 살이 기간을 따로 떼어 말의 방아를 찧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자치동갑은 물론 다섯 살 터울로 허교할 즈음이면, 사는 것이 번듯하여 넘고 처지는 사람이나 노다지 궁상이 닥지닥지 끼어 생활 전반에 마른 버짐이 퍼진 사람을 막론하고 한통속으로 기쁘다. 더더구나 스틸 화면으로 정지시킨 동안이 동안 아닌가. 소년은 알차게 여문 불알에, 소녀는 봉곳한 가슴 가득 희망을 키우던 역동의 계절이다. 성공한 자는 둘째치고, 없는 자는 그때 품었던 당찬 꿈의 일부라도 빌어 오늘을 버티기로 늦은 작심을 굳힐 수 있다. 희망은 앞에만 있는 게 아니라 뒤에도 있다는 역설의 현장이 따라서 도처에 어찌 없을라구.

"며칠 전 신문에 난 뉴스 보았나. 기도 안 차드만."

"덮어놓고 보았냐면 단가. 싱겁기는."

"앞으로는 체인이 없는 자전거가 나온다네."

"그래서."

"말도 말어. 자전거 수리의 반은 체인 고장이었다네. 걸핏하면 풀리고 어긋나고…… 그 때문에 시꺼먼 기름이 손에서 지워질 날 없었어. 한데 뒷바퀴에 유압기어를 설치하면 그만이라지 뭔가. 오르막을 손쉽게 오르기 위해 변속기어를 단 것도 신통하다 했더니 이번에는 체인을 없앤대."

"간편해서 좀 좋아. 장차는 자전거 타고 고속도로도 달리겠다."

"누가 나쁘댔나. 그 정도로 세상 살기가 편해졌다. 이 말이지."

"그러는 자네는 실지로 살기가 편해? 편하냐고."

"이 사람이 갈수록. 못 먹을 것 먹고 왔나 왜 자꾸 시비조여."

"…… 미안허이 …… 어저께, 바로 어저께 은행에 안 갔더라고."

"은행 출입을 할 정도만 되어도 괜찮지. 신세가 많이 폈네 그랴."

"모르는 소리 작작 혀. 늦동이 만수놈 등록금 융잔가 하는 것 신청하러 갔다면 속이 시원한가."

"갸 아직도 졸업 못했나."

"군대다 휴학이다, 갸도 중도 신산이 많았어. 겨우 졸업반에 턱걸이를 했는데 이번 등록이 마지막이래."

"보러 간 일은 성사를 허고."

"."

"잘 했네."

"연때가 맞았어."

"어떤 연때."

"상수리골 묘지기 알지."

"베란간 상수리골은 또. 예전의 우리 계로 이야기가 다시 내려가는 폭인가."

"올라가면 어떻고 내려가면 어뗘…… 주제에 읍내 출입 때는 꼭 흰 두루마기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이 아무개."

"갓까지 썼던 이달궁, 너무 잘 알지. 황차 내 단골이었는데. 내 말 안 듣다 황천행을 했지."

"그랬나."

"몰라?"

"몰라. 자전거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이야. 나도 들어 알지만 자네와의 사이에 있었던 자초지종은 듣느니 처음여."

"장날이었어. 풀린 체인을 고쳐달라고 자전거를 끌고 왔더만. 술잔깨나 걸치고 어디선가 이미 일차 사고를 낸 자전거는 체인 말고도 손볼 데가 둬 군데 있더라고. 대충 고치고 나서 허리에 동여맨 두루마기 자락을 여며 주면서 말렸지. 서산에 곧 해도 지려니와 술기운에 자전거를 몰면 위험하다고 타일렀는데도 안 듣네. 동네까지 십리허가 될랑말랑한 길이니 자전거는 내게 맡겨두고 초승달을 벗삼아 만고강산이나 읊으면서 돌아가라고 일렀는데도 막무가내. 하루 이틀 탄 자전거냐면서 큰소리 탕탕 치다가……."

"장을 보러 나왔으면 짐도 있었겠는데."

"물론.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꾸덕꾸덕 마른 가오리에 고무신에 공책 등속의 잡다한 물건들이 짐받이에 묶여 있었어. 맞다. 밀가루 봉지 생각이 나. 그게 터져 뒷바퀴가 허앴거든."

"북북 우기다가 변을 당했고만."

"당했지. 싸리재를 오를 때는 타다 끌다 했겠지. 고개를 넘자 안심하고 기분 좋게 내려가다 낙동강 오리알처럼 골짝에 처박혔대."

"산중 고갯마루에서 낙동강은 왜 나와."

"가령 그렇다는 말도 못하나."

"간 사람은 간 사람이지만 복이 없기로는 자네도 마찬가지여."

"어째서."

"생명의 은인이 될 기회를 놓쳤으니께."

"쓸데없는 소리."

"싸리재가 별로 높지는 않아도 주변 경치가 아름다웠어."

"고개 너머 방죽으로 원족을 가지 않았는가."

"싸리재 옆으로 솟은 방장산으로는 겨울철에 토끼몰이를 가고."

"번번이 허탕치다가 오학년 땐가 겨우 한 마리 잡았지."

"어떻게 처분했더라."

"몰라?"

"몰라."

"교감이랑 몇이서 그날 저녁으로 당장 볶아먹었다고 않던가. 선생님들이 자주 드나들던 목로집 화춘옥에서."

". 어린것들이 눈바람 속에서 애써 잡은 것을 어찌 자기네만 먹었을꼬."

"그걸 누구 입에 붙이겠나."

"그것도 맞는 말여."

"훗날에 가서야 알았는데 싸리재가 우리 고장에만 있는 건 아니대. 여기저기 쌔부러."

"쌨다 마다."

"옛날에는 산적이 무서워 대낮에도 떼를 지어 다녔다지."

"그런 전설까지 고장마다 비슷혀."

"세월아 네월아 흥뚱항뚱 가는 길에는 사연도 많고."

"사람의 길이니께."

"마누라를 맨 처음 만나 수작부린 게 싸리재 밑 방죽이었다는 말 내가 했던가."

"아니."

"제법 연애 비스름하게 나갔지."

"거기까지 꿰차고 간 재주가 메주네."

"자전거의 축지법이 뭔데."

"그러고도 사진관 조수를 나무래다니."

"참말로 남의 말 함부로 할 것 아니대. 하다가 나 역시 큰일 날 뻔했으니께."

"한두 번 끌고 나간 게 아닌갑네."

"큰물 진 뒤라 길이 여간 울퉁불퉁하지 않았는데 남자 체면에 물러설 수는 없잖여. 앞에 타고 뒤에 싣고 둘이서 호기 있게 싸리재를 거진 다 내려오다가 꽈당 돌뿌리를 들이받고 옆댕이 비탈로 나가떨어졌지 뭔가. 가속이 붙어 충격이 더 컸던 건 말할 나위 없으나 다행히."

"싸리재가 여러 사람 잡았고만. 비 온 뒤에 땅 굳는다고 그런 사건을 겪은 다음엔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을 테고."

"아네, 알어."

"사정은 완전히 다르되 까딱했으면 나도 콩밥 먹을 뻔한 얘기 했던가."

"아니."

"사람의 털이라는 게 무척 각각이여. 거죽으로 드러난 털은 사실상 죽은 것인데 나는 방향은 일정해. 면도질도 같은 방향으로 해야지 거꾸로 밀면 피부가 상하기 쉽다네."

"그것 하나는 여자가 좋겠어. 깎을 수염이 없으니께. 어렸을 적에 본 우리 어머니는 밀기름 먹인 실을 이마에 대고 솜털을 싹싹 문질러 버리드만. 발본색원이 따로 없었어."

"문자 쓰지 말고 들어."

"그래. 계속혀. 접었다 폈다 하는 면도날만 보면 지금도 무시무시하더라."

"해서 한 번 쓰고 버리는 질레트가 생겼겠지."

"궁금한 게 있네."

"남의 말 중간에 막는 데는 뭐 있고만."

"미운 놈이 사지를 죽 늘어트리고 이발의자에 누워 있으면 가죽띠에 싹싹 문지른 면도칼로 목을 쓰윽!"

"이 사람 사람 잡을 소리 하네."

"이 사람아. 사람이 뭣이여. 감정의 동물 아닌가…… 구미호가 나그네를 재워 놓고 숫돌에 식칼을 가는 장면이 생각나. 그런 때는."

"내 참. 쓰윽 그어버리고 싶다고 할까. 아니라고 할까.너무 섬짓해서도 대답을 못하겠고, 내가 막 할려던 얘기도 아닌게 아니라 면도와 관련된 실수라는 것만 말해둠세."

"뚱뚱할수록 신경이 무르다드만 자네는 반대여. 너무 화를 잘 내."

"상대는 아이였네. 계집애였어. 의자에 판대기를 걸치고 단발머리를 대강 자른 후 동그랗게 판 목덜미를 면도로 다듬는 판인데 애가 앞으로 푹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겠다. 면도날이 살에 쑥 박힐 밖에."

"저런.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보리밥은 먹었겠네."

"보리밥이라니."

"형무소 전중이는 콩밥 먹고 그만 못한 유치장 죄수는 깡보리밥 먹던 때 아닌가."

"깐죽깐죽 입주정도 싸다여하튼 비명을 질러대고 피가 흐르고 그런 난리가 없었어. 애답지 않게 어린 것이 그 사이 까빡 졸았나봐."

"치료비를 물어주었겠고."

"치료비가 문젠가. 흉이 져서 완피스도 못입고 혼사길 막히면 어쩌나 싶은 걱정부터 앞서드라고. 상처가 그다지 깊지 않아 언뜻 보면 분간 못할 정도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부모는 그래도 길길이 뛸걸."

"말해 무엇해. 갸 아버지가 누군고 하니 지물포 박씨였어."

"상인 치고는 용해빠진 친구."

"그 덕도 보았다면 보았지. 어떻든 갸가 시집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네."

"그 동안에 의술이 발달하여 흉터도 가뭇없이 지웠겠지 뭐."

"헌데 가만 있자. 내가 애초에 꺼낸 은행 얘기가 그야말로 가뭇없이 사라진 것 같혀."

"그러네. 묘지기 이달궁이 등장하다 말았지."

"난데없이 자네가 싸리재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빗나갔어."

"미안 미안."

"폐일언하고 그날 찾아간 은행 대리가 바로 이달궁의 아들이었다네."

"일이 되느라고. 전부터 알았나."

"알기는. 그쪽에서 먼저 이짜 달짜 궁짜 아들이라고 인사를 닦길래 그러냐고 반색을 했지."

"거창하게 나왔고만. 어쨌거나 운이 좋았네."

"이자 받고 빌려주는 돈이기는 해도 우선 반갑고 고마웠지. 하지만……"

"하지만?"

"내 처지가 웬지 초라한 느낌이었어."

"보러 간 일만 잘 끝내놓고 무슨 딴 소리여."

"이유를 딱 짚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그 심사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노인네들의 하나같이 그만그만한 이웃 서술과 나열은 한이 없어 보였다. 이러다간 고향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산 면면을 모조리 불러 세울지 모를 지경으로 죽은 자 산 자를 가리지 않고 입설에 올려 지지고 볶을 기미였다. 둘만 아는 이름을 별명과 함께 기호처럼 띄워 노닥거리는 와중에 말꼬리 이어가기식 어투까지 섞어 하냥 즐겼다. 그것은 해방공간의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동요와 결합된 놀이의 한 형식을 연상시켰다. 여자애들이 줄넘기를 하면서 일쑤 불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로 시작하여,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을 조잘대다가 갑작스레 음색을 가다듬고 템포를 늦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를 자못 능청스럽게 불렀다.

"이 작자 오늘 안으로 오기는 글렀네. 슬슬 일어서?"

"글쎄. 한 십 분만 더 기다리지."

두 사람이 지친 엉덩이를 들썩이는 동안 나는 또 이왕 먹은 마음을 재확인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 대신 내가 저녁 대접을 청하고 나서면 어떨까 싶었던 요량 말이다. 허가 없이 정담을 엿들은 대가를 치를 겸, 나도 한마디조 발언권을 얻어 미진한 과거사를 진탕만탕 더 늘일 겸 제의하려고 했으나 참견할 계제를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거절당했을 때의 무안함 못지 않게, 뜨악한 외래인의 개입으로 초래하기 쉬운 분위기 파괴에 미리 겁을 먹었다.

바른 대로 말하면 이들의 눅진 옛날 타령이 썩 탐탁하지만은 않다. 과거의 어느 한때를 빤한 관점에서 뻔한 화법으로 재탕 삼탕 우리고 부풀려 미화하는 과정에서 변하거나 남는 건 별로 없다. 오늘을 중심으로 한 인생살이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과거에만 집착하여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수록 뒷맛이 오히려 허전하고 쓰다. <말없는 청산이요 태없는 유수로다> 읊은 자연이 온전하기는 한가. 생활의 <실제상황>과는 먼, 스쳐 지나가는 풍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곧 여름이다. 자연을 찢어 <택배>하듯 어쩌자고 아파트촌까지 침투한 매미들의 극성맞은 합창에 밤잠 설칠 싸가지 도시인들에겐 더구나, 개발의 대상이자 자본재의 습복( )에 불과하다. <가든>에서 갈비 뜯고, <러브>로 호텔을 삼는, 언제라도 이용이 가능한 초록빛 공지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 옆의 <> 노인이라든가 <> 노인은 자신들의 태를 묻은 그때 그곳과 사람들을 지지리 떠나지 못한다. 희망의 여축(餘蓄)은 고사하고 애초에 그딴 말들이 지닌 의미에 범연하고 분간하기조차 싫어했던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과거에서 사는 뜻을 챙기려 든다. 육십갑자를 꼽아 연대를 헤아리고, 부모와 삼촌과 이모와 고모, 또는 친구의 죽은 해를 십이지로 기억하는 대범함으로 여유작작하다.

흘러간 물로 물방아를 돌리는 격이라고? 그런들 상관 있나. 아주 빠지면 곤란하지만 시간여행에 재미 들이면 엔간한 딴지쯤 시쁘게 대할 수 있다. 거기서 돈이나 밥이 나오는 건 아니로되 세상을 견디는 힘과 폭폭한 삶의 디딤돌 구실을 너끈히 한다. 저립(佇立)을 용서하지 않는 질주에 기겁해서 한옆으로 밀린 이들의 쉬어가는 시간으로 불가피하다.

아니 노적가리를 풀어헤치듯 지난날들의 이야기 보따리를 조곤조곤 파먹는 자리가 무엇보다 흥겹다. 사람이 자연이고 자연이 사람인 위로의 마당으로 친다. 두고두고 울거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다른 건 모를까 나는 이 대목이 좋다. 그래서 노인네들과 얼추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아쉬워한다.

"낼 모레 여는 동창회 통지 받았지?"

"나이가 몇인데 국민학교 동창회라니. 갈까말까 혀. 지난번에 나갔더니 돈푼깨나 번 놈들은 하나도 안 보이대. 우리같이 못난 놈들만 모였드라고."

"잘난 놈들은 얼마 전부터 저희끼리 따로 모여. 소식이 깡통이고만."

"뭣여! 상원 하원으로 분리된 셈이네."

"그런 격이지. 오늘 만나기로 한 송이 그쪽 대장이라네."

"에이 더럽다. 진작에 말할 일이지. 그런 줄도 모르고 등신같이 기다렸잖여. 가세!"

<> 노인이 거칠게 일어서자 <> 노인이 마지못해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말쑥하게 차린 청년이 주춤주춤 다가와 물었다.

"죄송합니다. 혹시 어르신네들 존함이 강짜 공짜……"

"그런데요."

<> 노인이 얼른 대꾸했다.

"회장님 분부로 두 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회장님은 어디 계시고."

". 음식점에서 기다리십니다. 딴 초대 손님들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으셔서요."

"하면? 우리더러 곁불이나 쬐러 오라 이거여 시방? 거기가 상원인가."

"?"

버럭 지른 소리에 놀란 청년을 무시하고 <> 노인은 행길 쪽을 향해 큰 걸음을 뚜벅뚜벅 내딛었다. <> 노인이 도리 없다는 듯 쫓아갔다.

대충 감을 잡은 나는 가슴이 아팠다. 짐작을 못한 바 아니었으나 기껏해야 술 한잔에 기대를 걸고 <고도>를 기다린 사연이 무척 딱했다. 한편 흡족했다. 곧죽어도 곁불은 안 쬐겠다는 오기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렇다면 내가 드디어 나설 차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자청하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계획을 밀고 나가기로 재삼 마음을 다졌다. 성공과 실패는 오늘의 운수 소관이나 일진에 맡기기로 하고, 생각 탓인지 꽤나 처연해 뵈는 두 노인의 뒤를 졸졸 밟았다. 술 한잔 받아주기 위해 남의 뒤를 부지런히 쫓기도 내 평생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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