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薦度齎)
최인호
법운(法雲)이 그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부엌으로 들어가 마른 장작을 한 움큼 집어들고 나올 때였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장마철이었으므로 벌써 열흘 이상 내리내린 비로 숲과 계곡은 물안개가 드리우리만치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물기에 젖은 방바닥은 눅눅하고, 방에 이부자리를 펴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까지 날 정도였다. 어젯밤인가, 한밤중에 잠을 자다 무슨 소리에 깜박 눈을 뜨고 창문을 보았더니 창호지가 발라진 격자창(?子窓) 위로 뭔가 기어가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왔다. 경내에 밝힌 불빛이 희미하게 내비쳐진 창호문 위로 지네 한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지네는 유난히 습기를 싫어하는 동물로, 절 주위에 밤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밤나무 숲에는 지네가 수많이 살고 있었다. 한창 밤나무꽃이 피어날 무렵이라 한밤중에도 온 숲이 달집에 걸어 놓은 흰 소지(燒紙)처럼 희게 빛나고 있고, 정액 냄새와 같은 밤꽃 향기가 온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두 번 부목(負木)을 쫓아 밤나무 숲으로 나가 지네를 잡으러 따라가 본 적도 있었다. 부목은 6.25 전쟁 통에 손 하나를 잃고 있고, 허벅지에는 총탄을 맞아 관통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이군인이었는데, 그는 닭뼈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밤나무 숲속에 내려 쌓여 있는 낙엽더미 속에 아가리를 연 채 파묻어 두었다가 다음 날 나가서 유리병 속에 가득 들어 있는 지네를 채집하곤 하였다. 그는 그것을 대나무 등에 머리와 꼬리를 매달아 햇볕에 건조시킨 후 더러는 자기가 먹기도 하고 더러는 한약방에 내다 팔아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지네들이 밤나무 숲을 벗어나 승당 안으로까지 침입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면 장마의 습기가 온 산을 적시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법운은 잠결에 이렇게 결심했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리라. 그래서 방 안의 습기도 없애고, 빨아 두었는데도 며칠 동안 햇볕이 나지 않아 냄새나는 젓은 빨래도 뜨거운 장판 위에 올려놓아 말리리라.
점심 공양을 끝내고 법운은 가만히 툇마루로 내려와 경내 앞마당을 발돋움하고 내려다보았다. 경내 앞마당에 늘 세워져 있던 6인승 작은 승합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부목 김씨가 차를 몰고 산길을 내려가 절에서 먹을 찬거리를 사거나, 각종 공과금을 내는 등 시내로 볼일을 보러 간 것이 분명하였다. 부목은 원래 절에서 나무 땔감을 하는 사람을 말함인데 김씨는 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비록 전쟁 통에 팔 하나를 잃은 상이군인이긴 하였지만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한 작은 산길을 능숙하게 오르내리는 운저사이기도 하였으며, 절의 각종 허드렛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곤 하였다. 머리만 깎지 않았을 뿐 깎았다면 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원주(院主) 스님이라고 해서 법운은 가끔 농삼아 부목 김씨를 원주 스님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부목 김씨가 법운이 부엌에서 장작더미를 한 아름 안고 나오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법운이 손에서 이를 빼앗아 들고 자신이 불을 지핀다고 자진해서 나설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법운은 앞마당에서 승합차가 보이지 않자 우선 마음이 놓였다.
법운이 부엌에 들어갔을 때 공양주(供養主)는 찬밥에 물을 말아 부뚜막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소금에 절인 오이지를 씻어서 먹고 있었다. 키가 아주 작아서 법당에 놓인 초에 불을 밝히지도 못하였다. 원래 키가 작기도 하였지만 나이에 비해서 등이 많이 굽어 있었으므로 마치 반 토막의 새우와도 같아 보였다. 그녀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절 안팎을 쓸어내는 작은 일을 해주는 것으로 절에 몸을 기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만든 먹물들인 승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는 귀까지 먹어 웬만큼 소리 지르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항상 웃고 다니고 있었으므로 마치 영원히 웃고 있는 탈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덧뵈기 탈놀이를 하고 있는 남사당패 같아 보였다.
"스님 뭐 하셔유?"
법운이 장작을 한 아름 들고 일어서자 할머니가 이빨 없는, 구멍과 같은 입으로 물에 만 밥을 먹고 있다가 물어 말하였다.
"방에 군불을 지피려구요."
법운은 할머니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소리를 높이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왜냐하면 소리를 지른다 해도 어차피 반쯤은 알아듣지 못하여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누룽지 드릴까유?"
법운이 이 절에 왔을 때부터 공양주 할머니는 유난히 법운을 좋아하였다. 법운이 겨우 스무 살 안팎의 풋중인 것을 알자 할머니는 법운을 손자처럼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밥을 지을 때면 일부러 누룽지가 많이 나오도록 밥을 태우고 나서 그 누룽지를 긁어 화끈하게 달아오른 화덕에다 올려놓아 바싹바싹 과자처럼 말려 두었다가 그 위에 꿀을 바르고 설탕 가루까지 슬슬 뿌린 후 법운의 잠자리에 넣어 주곤 하였다.
"주세요."
법운은 누룽지를 맛있게 먹는 것이 할머니를 즐겁게 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부러 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화덕 위에 말려 두었던 누룽지를 한 웅큼 집어내어 법운의 승복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워 주었다.
법운이 장작더미를 들고나왔을 때 그는 경내의 삼층 석탑 앞 약수터에서 한 여인이 플라스틱 물바가지로 약숫물을 받아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녀의 행동이 유별나거나 특별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비록 법운이 머물고 있는 청화사(淸華寺)가 말사(末寺)의 작은 암자였지만 서울 근교의 산중에 있는 사찰이었으므로 휴일이면 신도들이 제법 성시를 이루어 있었다. 게다가 절 뒤로 산을 타고 넘는 등산로가 있었으므로 휴일이면 베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등산객들이 쉴새 없이 산을 오르내리면서 경내에 들러 사진을 찍거나 약수를 마시면서 땀을 식히곤 하였으므로 경내에서 여인의 모습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휴일이 아닌 평일이었고 게다가 장마철이라,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폭우가 쏟아질 만큼 잔뜩 찌푸린 이 우중에 여인이 산사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 우선 색다르게 느껴져서 법운은 문득 발을 멈추고 여인을 보았다.
연인과 함께 이 산사까지 나왔다면 또 모르겠거니와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여인은 혼자뿐이었다. 물론, 여인 혼자서 등산을 할 수도 있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등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인은 산행에는 어울리지 않는 평상복의 나들이옷 차림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시내로 극장 구경을 가거나, 물건을 사기 위해서 백화점으로 쇼핑을 나가거나 하면 어울릴 그런 정장 차림으로 나왔다가 전혀 엉뚱하게 이 산속의 절까지 찾아온 듯 보인다.
그러나 비록 서울 근교의 사찰이라고 하더라도 여기부터 절 입구에 이르는 국도까지는
7킬로미터에 가까운 먼 길이다. 이 절까지를 목적지로 하지 않고는 저런 옷차림으로 길을 잘못 들어 계곡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올라 이 절까지 우연히 찾아왔을 리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절이 목적이라면 아예 택시를 불러 타고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돌아가는 왕복 차비에다가 약간은 웃돈을 더 주어야만 택시는 이 절까지 여인을 태워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먼 산길을 걸어오느라고 여인은 피로한 기색이었고 온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배어 있었다. 그녀가 절에 이르는 7킬로미터의 산길을 걸어온 것이 분명한 이유로는 머리카락이 땀으로 온통 젖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손에는 비가 올세라 미리 준비한 접는 우산이 들려 있었고, 신발은 굽이 높은 하이힐 차림이었다.
저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7킬로미터의 산길을 줄곧 걸어온 것이라면 아마도 두 시간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법운은 장작더미를 든 채 약수터 앞을 지나 자신이 묵고 있는 요사 앞으로 다가가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굽 높은 신발에 저런 옷차림으로 이처럼 비 오는 우중 장마철에 이 산사까지 찾아올 생각을 하였을까, 저 여인은. 등산객도 아니고 행락객도 아니라면 그러면 무슨 목적으로 여인은 저런 차림으로 이 산사까지 온 것일까. 그렇다고 독실한 불교 신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인은 약수를 마시다 말고 얼핏 장작더미를 들고 지나가는 법운과 눈이 마주쳤었다. 짧게 마주친 시선이었지만 만약 여인이 불교 신자라면 승복을 입은 법운의 모습을 당장에 알아보고 합장하여 배례라도 하였을 것이다. 비록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더라도 흰 고무신에 승복을 입은 것을 보았으면 대번에 그 여인은 법운이 승려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약수를 마시다가 문득 법운과 짧게 시선이 마주치자 마치 몰래 숨어서 남의 눈을 피해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핏 시선을 피하면서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법운도 장작더미를 들고 자신이 묵고 있는 요사체로 걸어왔다. 요사체는 주로 떠도는 객승들이나, 한적한 곳으로 찾아와 장기 투숙을 하면서 고시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방을 빌려주는 하숙업을 겸하고 있었는데 방 두 개는 텅 비어 있었고, 맨 끝방이 법운이 머물고 있는 승방이었다. 장마철이 지나면 방학이 오는데 그때는 두 개의 방이 모두 찬다고 하였으므로 좀 있으면 하숙생들이 찾아올 모양이었다. 법운은 아궁이의 뚜껑을 열고 우선 그 안에 고여 있는 물을 깡통으로 퍼 담아 버리기 시작하였다. 요사이 줄곧 장마비가 내렸으므로 절 주위로 배수가 잘 안 되는 모양인지 아궁이에 물이 고이곤 하였다.
아궁이에 고인 물을 퍼 담아 버려도 어디선가 자꾸 물이 스며들어 다시 고이곤 하였다. 그래서 아궁이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간신히 물을 다 퍼내고 법운은 장작을 얼기설기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쌓아 올린 후,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습기가 밴 장작은 눅눅히 젖어 있고, 아궁이 역시 물기에 젖어 있었으므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신문지를 대여섯 장 불을 붙여 쏘시개로 해보았는데도 나뭇단에도 불이 옮겨붙지 않고 이내 꺼졌으며 조금 붙었는가 싶다가도 이내 꺼지고 매운 연기만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밀짚모자를 벗어 그것으로 부채 역할을 하여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고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입김을 불어 넣기도 하자 겨우 솔가지에서부터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젖은 장작이라 불을 붙이기가 힘들었지 한 번 불이 붙으면 밤새도록 타오를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서 법운은 툇마루에 앉아서 누룽지를 먹었다. 무엇이든 삼시 세 때의 공양 빼놓고는 군것질이나 주전부리를 좋아하지 않는 법운이었지만 할머니가 준 누룽지는 별미였다.
매캐한 생나무 타는 연기는 아직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제서야 겨우 굴뚝으로 통하는 겨 우내 막혔던 환기통이 뚫려 바람을 빨아들이는 듯, 거친 기세로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송진인 많이 박힌 소나무라, 소나무 진이 엉긴 관솔 부분이 맹렬한 기세로 타오를 때마다 나무가 뻐개지고, 불똥이 튀는 소리가 타악타악악 들려왔다. 요사체 앞은 그대로 산이었다. 뻗어 내린 산맥의 능선이 끝 간 데 없이 굽 돌아나가고 있었고 마침 한 여름의 성하였으므로 산은 울창한 나무들로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험준하게 뻗어 내린 산세로 그만큼 깊은 계곡으로는 며칠 해서 계속 내린 빗물이 폭포를 이루면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밤에는 지축을 흔들듯이 머리맡 가까이서 들려 올 정도였다. 산 아래는 아직도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므로 마치 구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법운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처마 밑을 우러러보았다. 처마 밑에는 제비 둥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밀짚으로 만든 제비집이었는데 그 집 안에는 어미 새 한 마리가 꼼짝없이 알을 품고 앉아 있었다. 법운이 이 절에 왔을 때부터 어미 제비는 벌써 둥지 속에 들어가 알을 포란(抱卵)하고 있었다. 둥지 밑에 어미 새가 누는 똥을 받아내는 널빤지를 깔아 주면서 이 절의 주지인 무이(無二) 스님이 법운에게 말해 주었다.
자신이 이 절에 주지로 올 때부터 저 제비집은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새끼제비들이 어미 새가 되어 돌아오는데 돌아올 때마다 둥지를 보수해서 같은 집에서 새살림을 차린다는 것이었다. 법운이 이 절에 올 무렵에는 이미 어미 새는 다섯 개 정도의 알을 낳아 이를 품고 있었는데 법운이 이 절에 온 것이 벌써 보름가량 되었으니 어미 새는 벌써 반 달가량이나 알을 푸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거의 새끼들이 알의 거의 알을 깨고 부화되어 태어날 때가 가까워온 것이었다.
주지 스님이 여행을 떠난 뒤로 매일같이 제비집 앞에 새가 눈 똥을 받아 낼 널빤지를 깔아 놓는 것이 법운의 차지가 되었다. 널빤지를 깔아 놓지 않으면 그대로 툇마루에 똥을 누어 버리곤 하여서 볼품 사납고 또한 불결하였기 때문이었다.
법운이 이 절에 머물게 된 것은 주지 스님의 간청 때문이었다. 무이 스님은 본사의 스님들과 스리랑카에서 열리는 승려 대회에 참가하였다가 이왕에 외국에 나간 김에 인도의 불교 성지를 보고 오겠다고, 한여름의 하안거(夏安居) 기간을 순례 여행으로 정진하겠다고 결심을 하였던 모양이었다.
워낙 말사라서 주지 스님이라고는 하지만 덜렁 혼자서 주승(主僧)이자 행려로 있는 판에 따로 자신의 순례 여행 동안만 절을 지켜줄 승려를 구할 수도 없었던 무이 스님은 마침 서울에 볼일을 보러 왔던 참에 하룻밤 객승으로 묵고 가게 된 법운에게 한여름 동안만 자신이 출타 중인 절을 지켜 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었다.
법운은 객승이지만 하룻밤 신세 지고 공밥을 먹고 그냥 가는 것이 미안해서 새벽에 일어나 도량송(道揚頌)을 독송하고 새벽 예불을 올려 주었는데 법운의 청아한 독경 소리를 들은 무이 스님이 법운을 청하여 자신의 방으로 들인 후 차를 따라 주면서 말하였다.
기왕에 따로 머무르는 절도 없고 그냥 운수(雲水) 행각에 나설 생각이라면 한여름 결제 기간동안 절에 지켜 달라는 게 그의 부탁이었다. 나머지 일들은 절에 있는 부목이나 공양주 할멈이 다 알아서 할 것이고, 법운이 할 일이란 새벽에 일어나 에불 올리고 저녁에 때맞춰 예불 올리고 이따금 신도들이 찾아와서 재를 올려 달라고 부탁을 하면 재를 올려 주면 그뿐, 따로 할 일이 없으니 마음 놓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빈 절에서 홀로 정진하는 편이 어떻겠냐는 것이 무이 스님이 권유였었다.
스님의 청을 마다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법운이 이 절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서울이 가까워 책을 구하기 쉽다는 점이요, 그러면서도 외진 느낌으로 적요(寂寥)하다는 점이었다.
법운이 승낙을 하자 마음이 놓인 무이 스님은 그다음 다음날로 절을 떠나 버리고 법운은 홀로 남아 이 절에 혼자 남은 또 하나의 주승이 되어 버렸다. 그러기를 보름 남짓, 실제로 청화사에 머물고 보니 무이 스님이 말하였던 대로 절의 살림은 부목과 공양주 할멈이 알아서 다 하고 법운이 하는 일이란 새벽에 일어나 범종을 울리고, 법고를 두들겨 홀로 천수경을 외고, 저녁 무렵 홀로 예불을 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절이었지만 신도 수도 빈약하여 찾아오는 신도도 많지 않았으며, 기껏 절이 시끌시끌한 것은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휴일 하루만 지나면 절은 완전히 적막강산이었다.
그동안 재를 올린 덕은 한 번도 없었다. 한여름 결제 기간이라지만 환자만 있는 절에 따로 무슨 정진이 있을 것인가. 정진이고 무에고 법운은 홀로 한여름 피서를 나온 느낌이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낮에도 자고 밤에도 멱을 감았다. 숲 사이에는 암벽이 있고 그 암벽 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석간수 물이 얼음장 이상이었다. 언젠가 무더운 여름날 한낮에 숲을 헤치고 들어가 승복을 벗어 던지고 벌거벗은 채 멱을 감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숲 사이로 공양주 할멈이 하회탈 같은 얼굴로 하얗게 웃고 있었다.
부끄럽다기보다는 민망해서 법운이 손으로 그냥 가리고 훠이훠이 쫓는 시늉을 하였는데도 할멈은 무슨 신기한 구경거리나 되는 듯 한참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이구 스님, 속살이 어쩌면 그렇게 희다야. 하이구, 이쁘기도 하지."
마침내 법운이 좀 화가 나서 그 손으로 물을 받아 흩뿌리자 할멈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괜찮아유, 스님. 그냥 갈게유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그냥 목욕감으셔유-."
부목의 얘기로는 그 할멈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 딸이 비구니가 되어 전라도 내의 암자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할멈은 일 년에 한 번씩 산을 내려가 그 딸을 만나고 온다는 것이다. 이따금 할멈은 법운을 만나면 넋을 잃고 법운의 손을 잡고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하이구, 이 손 보라지. 무슨 손이 이처럼 예쁘실까 모르겠네유-."
할멈은 법운이 온 뒤로 부쩍 공양에 뜸을 들였다. 밥을 먹는 식구라야 세 식구 살림밖에
안 되었는데도 할멈은 호박전을 부치고, 법운이 좋아하는 줄 알고 자주 콩을 갈아 콩국수를 끓였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무위(無爲) 이 절 살림에서는 먹는 즐거움이 큰 낙 중의 하나였다. 할멈은 호박잎을 따다가 이를 삶아 호박쌈을 상에 올리기도 하고 법운이 밤에 먹을 간식을 위해 일부러 밥을 태워 누룽지를 만들어 과자를 만들었다가 그의 방 안에 들여놓곤 하였다.
한밤중에도 더우면 법운은 숲을 헤치고 들어가 그 폭포수 앞에서 멱을 감곤 하였다. 그 무렵 장마가 시작되었으므로 온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물이 그대로 폭포수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멱을 감고 오다가 반딧불 떼를 만난 적이 있었다. 공해로 멸종되어 버린 줄 알았던 개똥벌레들이 엄청난 양의 무리를 이루어서 돌연 숲 사이에서 한꺼번에 일어나 날아가고 있었으므로 그는 처음에는 무슨 빛이 폭포를 바라보는 느낌이었었다. 반딧불들은 습기가 많은 늪지대를 좋아하는 성질이 있었으므로 임우의 숲속에 앉아 있다가 인기척에 놀란 떼를 지어 날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심코 손을 뻗어 낚아채자 한 마리의 개똥벌레가 손바닥 안에 잡혔다. 손가락을 오므렸더니 손금이 비쳐 보일 정도로 형화(螢火)의 밝기가 강해지고 촉광이 세어지고 있었다.
불가에서는 한여름에는 숲을 지날 때 우연히라도 발로 밟아 곤충 한 마리라도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예로부터 지팡이를 들고 다니면서 일부러 인기척을 내어 곤충이나 벌레들을 쫓는 습관이 있었지만, 법운은 그날 우연히 반딧불울 만난 이후로 다시 한번 그 황홀했던 반딧불들의 윤무(輪舞)를 보고 싶어서 한밤중에 일부러 숲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거닐어 보기도 하였으나 더 이상 그 반딧불의 행렬을 만나지 못하였다.
반딧불들은 번식기가 되면 교미를 하기 위한 신호로 암컷이 먼저 빛을 내어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이를 본 수컷들도 일제히 배 끝에 있는 발광체에 불을 밝히면서 정사를 나누는데, 아마도 법운이 만난 그 장대한 반딧불들의 군무(群舞)는 한란 한시에 발정기를 맞은 반딧불들이 서로 함께 교미를 하기 위해 어울리는 현장에 서 본 광란의 춤이었던 모양이었다.
법운이 제비집에 꼼짝없이 들어앉아서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어미 새가 배설해 놓은 제비 똥을 치우면서 법운은 벌써 보름 이상이나 꼼짝없이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에 대해 조금씩 흥미가 끌리기 시작하였다. 이따금 어디서 날아오는지 수새 한 마리가 부리로 거미와 같은 곤충들을 물고 오면 이를 받아먹기만 할 뿐, 그 둥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먹이를 물고 오는 수새가 그 어미 새의 남편이자 이제 곧 태어날 새끼들의 아비 새인 모양이었다. 어디선가 숨어 있는 듯 보이는 수새이지만 일정한 거리를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상 단숨에 둥지까지 날아올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고 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가까운 숲속에서 쭈르르르 하고 화답하는 수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 곧이어 수제비가 부리에 곤충을 물고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와 잠시도 쉬지 않고 산고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어미 새의 입에 먹이를 찔러 넣곤 하였다.
한밤중에 부목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전깃불을 어미 새의 눈가에다 비추어 잠시 정신을 잃게 한 다음 둥지 안을 살펴보았는데, 법운도 그를 따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본 적이 있었다. 둥지 안에는 다섯 개의 제비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부목이 그 제비알을 만져보라고 해서 둥지에 손을 넣어 만져보았더니 어미 새의 체온으로 따뜻한 온기가 묻어 있었다. 다섯 개의 제비알을 본 이후로 법운은 그 제비집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비는 여름새인 후조(候鳥)로 가을을 맞으면 저 따뜻한 강남의 남쪽 나라를 찾아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한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어른이 되어 날아오는 것이다.
어떻게 제비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짚어내 귀소(歸巢)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정확히 자기가 태어난 집에서 다시 어미가 되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면서, 또 그 새끼는 대(代)를 물림해 가면서 번식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법운은 간혹 툇마루에 나와서 제비집을 우러르면서 포란하고 앉아 있는 어미 새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였었다. 등은 초록의 광택이 있는 어두운 청색이고, 이마와 멱은 어두운 밤색을 띤 붉은 색이며, 멱과 어두운 청색으로 경계를 이룬 어미 새의 배는 눈처럼 흰빛이었다. 그 흰 배로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는 돌로 빚은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기까지의 인고와 고통을 어미 새는 한결같은 침묵으로 이겨 내고 있음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둥지에 앉아 있던 어미 새가 생각난 듯 삐찌삐찌 삐찌- 하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운무가 피어오르는 숲속에서 곧이어 찌리찌리쯔이 하는 수제비의 화답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활상(滑翔)하는 수제비의 모습이 요사체 앞에 나타났다. 제비는 반원을 그리면서 날아오르다가 다시 처마 밑으로 날개를 파닥이면서 다가왔다. 배고픈 어미 새가 부리를 벌리자 수제비는 그 입속에 방금 잡아온 곤충을 산 채로 집어넣었다. 먹이 사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아니하였다. 어미 제비가 포식할 때까지 대여섯 차례라도 만족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수제비는 어김없이 모이를 물어다가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의 입 안에 집어넣곤 하였다.
비록 미물의 새이긴 하지만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제비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법운이 바라보기에 아주 좋았다. 그래서 이제 곧이어 태어날 다섯 마리의 새끼까지 합세하면 저 다정한 제비 가족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연출해 낼지, 은근한 기대감마저 들고 있었던 것이다.
장작불이 이제 잦아들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짚어 보았더니 설설 끓고 있었다. 법운은 방 안에 들어가 줄 위에 널어놓았던 덜 마른 빨래들을 활짝 펴서 방바닥에 널어놓았다, 한여름의 더위와 눅눅한 습기로 몸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릴 만큼 무더웠지만 닫힌 방 안에 앉아 있는 기분은 의외로 상쾌하였다. 등이 방바닥에 바짝 닿도록 베개도 없이 그대로 누웠더니 뜨끈뜨끈한 열기가 등허리에 그대로 느껴지고 온몸이 노곤하게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법운은 그 자리에서 그 자세 그대로 깜박 잠이 들었다. 짧은 잠 속에서 법운은 삐찌삐찌 하고 우는 제비의 울음소리와 쑤와와와- 잠시 끊겼다 다시 퍼부어 대는 장마 빗소리를 들고 싶었는데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말소리에 눈을 떴다.
"스님, 주무셨어유-?"
공양주 할멈이었다.
벌써 밥때가 되었나. 법운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림짐작해 보았지만 아직 날이 어둡지 않은 오후 무렵인 것을 깨닫고 웬일인가 하는 눈빛으로 몸을 일으켜서 언제나 하얗게 웃고 있는 할멈을 쳐다보았다.
"손님 하나가 스님을 뵙자고 하는 데유-"
법운은 벗어 두었던 가사를 주섬주섬 입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우중에 이 절에 손님이 찾아오시다니.
법당 앞에 종무소(宗務所)기 있었다. 절의 사무를 맡아 보는 승당이었는데 살림 규모가 작아서 종무소라기보다는 신도의 명부가 적혀 있는 주소록이나, 서류 등이 비치되어있는 작은 나무 문갑에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절에 손님이 찾아오면 앉으라고 준비한 소파와 접대용 탁자가 한 세트 놓여 있을 뿐이었다. 주로 부목이 그곳에 앉아서 사무를 맡아 하고 있었는데 아직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부재중인 모양이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뛰듯이 종무소 앞으로 다가갔더니 사무실 앞에 아까 약수터에서 본 여인의 모습이 서 있었다. 비가 오는 어두운 산사에서 여인이 펼쳐 든 화려한 양산의 빛깔이 순간 비현실적으로 화려하게 돋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이 여인은 이 절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법운은 순간 그 여인을 보면서 생각하였다.
"절 보자고 하셨습니까?"
법운이 입을 열어 묻자, 여인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하였다.
"아, 네."
"그럼, 들어오시지요."
법운이 고무신을 벗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여인은 양산을 접어들고, 천천히 구두를 벗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여인은 손수건으로 콧등에 밴 땀을 찍어 닦아 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더위 탓이 아니라 긴장 때문인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물 한 잔 드릴까요?"
마침 사무실 안에는 소형 냉장고가 있어 그 안에는 간단히 마실 음료수 캔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 오렌지 쥬스가 든 깡통을 들어내, 법운은 여인 앞에 내놓았다. 깡통의 마개를 따 주었으나 여인은 음료수를 마시려 하지 않았다.
"불교 신자세요?"
입을 열려 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레 법운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여인이 당황해서 들고 있던 음료수를 약간 흘렸다.
"아, 미안합니다."
자신의 치마폭에 음료수를 엎질렀는데도 그것이 상대편인 법운에게 실례라도 끼친 일인 듯, 여인은 손수건으로 성급히 닦아 내면서 말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저를 찾으셨습니까?"
"불교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은 소문도 있고 해서 찾아왔습니다만....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이 지상에서 방황하고 떠도는 원혼이 되지 않도록.... 죽은 사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 준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게 사실인가요?"
여인은 아주 어렵게, 그러나 뜻은 분명하게 물어 말하였다.
"물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천도(遷度)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의 업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하여 좋은 곳으로 왕생 극락하도록 맺어 주는 재의 일종이지요."
"죽은 사람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 제사를 올릴 수 있을까요?"
여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 제사를 올릴 수가 있을까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스님, 스님께서 제사를 올려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비로소 여인이 얼굴을 들어 법운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 일 때문에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스님."
쑤와와- 빗소리가 더욱 굵어져서 지붕을 두드리고 있었다.
경내에는 배롱 나무라고도 불리는 백일홍나무가 붉은 꽃잎을 흐드러지게 피워 올린 채 참다랗게 비를 맞고 있었다.
원숭이도 올라가다가 미끄러진다는 매끈매끈한 배롱나무의 밑둥으로 간단없이 몰아치는 폭우에 참수되어 목이 베인 백일홍 꽃잎들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떨어져 있었다.
"언제 돌아가셨는데요?"
법운이 탁상 위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집어들고 물어 말하였다. 여인이 바라는 대로 천도재를 올리려면 죽은 사람의 영가(靈駕)에 관한 신상 명세를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일 주일쯤 되었나요."
여인은 불분명하게 대답을 하면서 시선을 들어 피했다.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인은 대답 대신 들고 있는 손수건을 꼬아서 매듭을 만들고 있을 뿐이였다.
"재를 올리려면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법운이 설명하자 그제서야 그것이 생각났다는 듯 여인이 말하였다.
"이름이 없습니다. 스님.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법운은 조금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법운은 다시 물었다.
"몇 살에 돌아가셨는데요?"
그러자 여인은 얼굴을 비가 쏟아지는 문밖으로 돌려 버렸다.
순간 법운은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여인은 다시 얼굴을 돌려 법운을 보면서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이도 없습니다, 스님.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죽은 사람은 이름도 없고, 나이도 없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도 알지 못합니다. 스님, 굳이 나이를 따지자면 4개월이 되었다고나 말할 수 있을까요."
여인의 두 눈에 촉촉한 이슬이 맞히고 있었다.
창백한 여인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배어 흐르고 있었고, 푹 패인 두 눈에는 슬픔과 알 수 없는 적의의 감정 같은 것이 뒤범벅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스님, 비록 그러하지만 죽은 사람을 위해서 천도재를 올릴 수는 있겠지요? 부디 이 지상을 떠돌고 구천을 헤매는 원혼이 되지 않고 좋은 인연을 받아 다시 하늘나라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올려 줄 수는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법운이 분명하게 잘라 대답하자 여인의 두 눈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고맙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스님."
여인은 비로소 안심이 된 듯 고개를 들어 감사의 표시를 하면서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법운은 여인에게 재를 올리는 요령에 대해서 대충 알려 주고는 재를 언제쯤 올렸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단숨에 받아 대답하였다.
"내일 중이라도 올렸으면 합니다, 스님."
여인의 서두르는 기색을 보자 법운 역시 가능하면 빨리 천도재를 올리는 것이 여인을 번뇌와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법운은 다음 날 오전 열시쯤 법당에서 천도재를 거행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런 후, 법운이 재에 참가할 사람이 있으면 미리 모두에게 알려 함께 참석하도록 하라고 충고를 하였는데, 여인은 이 말에 머리를 흔들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뇨, 재에 참석할 사람은 또 없습니다. 어차피 나 혼자뿐이니까요,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