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최인호
작은 아이의 머리가 술집 안으로 들이밀려졌다.
"안녕하세요"
그 작은 아이는 문가에 앉아있는 술꾼들에게 아는 체했다. 대부분의 술꾼들이 그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그중의 한 사내가 용케도 그를 보았다.
"보게. 이 보게들 저 녀석을 보게그려."
발견한 사내는 마침 떨어져 가는 안주 접시 위에 풍요한 화제를 제공했다.
이미 막소주에 취한 술꾼들은 지글지글 타오르는 연탄불에 정신마저 아리숭 달아올라서 열린 문틈으로 찬 겨울 한기와 더불어 나타난 꼬마가 뭘 하는 녀석인가 알아보기엔 약간 힘이 들었다.
"저 녀석이 뭐란 말인가."
너댓 사람의 취한 눈길은 남루한 그 아이에게서 멎었다. 그 아이는 모두의 눈길이 자기에게 멎어주자 당황해져서 쓰레기통을 뒤지다 들킨 아이처럼 비실비실 별스러운 몸짓으로 물러나려 했다. 그 녀석은 지독히나 못생긴 녀석이었다.
머리는 기계충의 상흔으로 벽보판처럼 지저분했고, 중국식 소매에서 삐져나온 작은 손은 때에 절어 잘 닦은 탄피처럼 번들거렸다.
"얘야. 우리 한잔하지 않으련?"
처음 그 아이를 발견했던 사내가 술병을 들고 아이를 유혹했다.
갑자기 아이는 울어버릴 듯이 강하게 부르짖었다.
"난 아바질 다리러 왔시요"
여전히 그 사내가 말을 받았다.
"난 네가 아버질, 모시러 온 줄 알고 있단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단다. 헛허허. 우리같이 큰 어른들은 환히 다 알고 있거든. 여보게들 그렇지 않나?"
사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 기묘한 아이에게 차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친구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도화역자의 얼치기 사기꾼 같은 웃음을 껄껄거리며 맞장구쳤다.
"그래 우리 나이쯤 되며는 모르는 게 없단다. 얘야. 너 이 지구가 왜 도는지 아니?"
"몰라요."
"술 먹으라고 돌아간단다. 얘야. 잘 기억해둬라. 이 지구는 술 먹으라고 돌아간단다. 얘 알아듣겠냐?"
"예"
"또 하나 내 가르쳐줄까. 우리 똘똘아"
처음의 그 사내가 비틀거리며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너 개가 왜 한 다리 들고 오줌싸는 줄 아니?"
"건 알아요."
아이는 비굴하게 웃었다.
"두 다리 다 들면 넘어디디요."
"맞았다. 역시 넌 똘똘이야. 한번 가르쳐준 건 잊어먹지 않는 쫄망포시란 말이다."
"너희 아버진 뭣하는 어른이냐?"
다른 낯선 사내가 젓가락으로 빈대떡을 잘라내며 꼬마에게 물었다.
"국승현이야요. 국승현."
갑자기 꼬마의 얼굴이 대백과사전 한 페이지처럼 충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전진하는 인형 병정 같은 몸짓이었다.
"왜 아실꺼야요. 눈 우엔 커다란 사마귀가 있시오. 몸에선 언제나 양파냄새가 나구, 뒷주머니엔 항상 마늘을 넣구 다녔시오. 그리고, 술만 먹으믄 항상 울곤 했댔시요 "
"너희 아버진 왜 찾냐?"
말없이 술잔을 비우던 염색한 미군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아이의 말을 막았다.
"아, 아"
아이는 순간 극적인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오마니가 죽어가구 있시요."
그 아이는 어느새 훈기가 도는 술집 안으로 기어들어 와있었다. 지독하게 못생긴 아이의 얼굴 위로 삼십 촉짜리 전등 불빛이 그럴싸한 조명 역활을 했고, 연탄불 위로 타오르는 생선의 비릿한 연기는 술집 안을 연막탄 뿌린 것처럼 부옇게 탈색했다.
"좀 전에 피 토하는 걸 보구 막 뛔나왔시요. 아바지는 날보구 오마니가 죽게 되믄 이 술집에서 술이나 퍼먹구 있갔으니, 이리로 오라구 했시요."
"너희 아버진…"
처음에 그 아이를 발견한 사내가 담배꽁초에 불을 그어대며 공허하게 웃었다.
"갔다. 아암, 갔다니까."
"갔다구요? 그러면 어디로 간다구 했나요?"
"네가 오면 저쪽 평양집으로 보내 달라구 했던가."
아이의 몸 구조는 스위스제 시계부속처럼 생생하고 앙징스러웠다. 엉뚱하게도 U.S ARMY의 표지가 아이의 가슴팍에서 계급장처럼 반짝이고, 녀석의 얼굴은 빌로오드 색깔로 번들거렸다. 옷은 되는대로 껴입어서 마치 갑각류 곤충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나 폐양집으로 가갔시요."
그 아이는 주춤거렸다. 마지막 잔을 비우고 술집을 떠나는 술꾼들에게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우울한 고독 같은 것이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번득이었다. 그러자 처음에 그를 불렀던 사내가 빈 잔에 소주를 따르며 그 아이에게로 내어밀었다.
"한 잔만 하구 가렴. 우리 똘똘이"
"먹디 안갔시요. 난 아버질 찾아야 해요."
"네 아버진 그 술집에서 또 딴 술집으로 갔을지 모르잖니?"
"기래두 찾을 수 있시요. 밤새도록 찾아볼테야요. "
"그동안 늬 엄마가 죽어버려두?"
"아바지만 찾으믄 만사. 오케야요. 울 아바진 아즈반들 하구는 달라요, 아바진 술꾼이긴 하디만, 하려구만 하믄 못하는 게 없시요. 아, 구릴 가디구두 금을 만들었댔으니까요. 금말이야요."
어느새 아이의 손은 허물벗는 애벌레처럼 그 중국식 소매 속에서 슬그머니 솟아나와 시장판 소매치기꾼들이 슬쩍해가듯 술잔을 들어 잽싸게 잔을 비웠다. 그것은 가득 채워져 있던 잔이었는데 아이는 요술부리는 사람처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그것을 삼켰다. 작은 한입에 그득히 채워진 충족함 때문인지 소년은 만족한 표정으로 깍두기를 집어들었다.
"담배두 필테냐?"
"놀리디 마시라우요."
아이는 잠시 옷깃을 여미고 허리를 웅크리었다. 그는 마치 배면을 섬유질 같은 탄력성있는 물질로 꽉 조였다가 일순에 튀어 나가려는 노련한 단거리 선수처럼 매우 기민하고 민첩해 보였다.
"잊지 마세요. 우리 아바지 이름 말이야요. 국, 승 현, 나중에 혹 술집에서 만나더라두 내가 술먹더란 말하디 마세요. 정말이야요."
압도당한 술꾼들은 멍하니 눈길로만 그를 전송했다.
새벽 잔영 같은 쓸쓸한 냉기가 그 아이의 얼굴을 순간 스치고 갔다. 술꾼들은 이제 너무 취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집을 저주하고, 마누랄 저주하고, 맏아들을, 둘째 아들을 저주하고, 생활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원수 놈의 월급을, 도대체가 살아가는 그 자체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시장 골목으로 찬 겨울바람이 신문지를 날리면서 불어오고 있었다. 사막 위를 구르는 사진(沙塵)처럼 겨울바람은 얼굴 가득히 깔깔했다.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걷고 있있다. 벌써 해질녘부터 다섯 집을 들렀고, 그는 덕분에 최소한 일곱 잔은 넘어 들이킨 셈이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종류의 술을 들이켰었다. 막소주도 들이켰고, 부우연 막걸리도, 그리고 약주도 들이킨 것이었다. 그만하면 목구멍으로 헛헛한 온기가 올라오고, 삶이 머리에서부터 어딘가로 移轉(이전)해 버리기엔 충분히 마신 셈이었으나 아이는 아직도 공복 상태처럼 부족했다. 아버지를 찾을 때까지 아직도 대여섯 잔은 더 마실 수 있을 것이었다.
시장 끝에서부터 끝까지 바람은 매서웠다. 겨울은 도처에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하늘로는 가등(街燈)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어디선가 고양이가 울었다. 철수한 시장가엔 낡은 차일막이 바람에 펄럭이며 아이의 얼굴을 유령처럼 스치곤 했다. 고맙게도 술기가 인화(引火)되어서 아이의 작은 몸은 스위치가 잘 듣는 전기 곤로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 아, 이 망할 놈의 머리통.)
순간 아이는 제 머리통이 제 몸에 비해서 엄청나게 무거운 듯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로서는 주체할 수 없는 머리통을 노상 이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억울했다.
시장 끝에 평양집이 있었다. 빈 시장길로 평양집에서 내비친 달디 단 불빛이 투영되고 있었다. 아이는 숨을 죽이고 유리창 너머 낯익을 얼굴이 있는가, 없는가를 들여다보았다. 낯익은 얼굴이 없다면 술도 더 마실 수 없을 테고 아버지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다행히도 낯익은 얼굴 두 명이 술잔을 기울이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돋음했던 발을 꺾고 바람 부는 한데에서 잠시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망할 놈의 술이다.)
익숙하고 노련한 술꾼들이 누구나 그러하듯 이번 기회로 한 번쯤 술을 절제하리라 작정했다. 때 갑자기 어정쩡해지고 늙어 뵈는 것처럼 순간적인 절망, 슬픔, 비애가 아이의 작은 얼굴을 우울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술집 창문 너머 탁자 위 투명한 유리컵이 빛나고, 껄껄거리는 술꾼들의 떠들썩한 농지꺼리가 들여오자, 아이의 못생긴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하였다.
참회를 하는 죄수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그는 천천히 술집 문을 잡았다. 그의 손에 익은 문고리였다.
"안녕허세요."
아이는 고개만을 들이밀고, 엿보는 식의 인사를 햇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술집작부만이 그를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얘. 늬 아버진 갔어."
"……"
"과붓집으로 갔단다."
"증말이란다. 얘."
그제야 안쪽에 앉았던 술꾼들이 그 아이를 발견했다. 구레나룻 기른 사내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제 여편네가 피난통에 총알 맞아 배에 공기구멍이 휑하니 나서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웃었고, 자기는 이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웃었다. 나이 오십 되기 전에 자살하겠다면서도 웃었다. 도대체가 그 사내는 웃는 것밖에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역에 숨어들어가 연탄을 훔쳐 빼돌려 얼굴 형태가 바뀌어지도록 맞았는데도 연신 헛허허 웃으며 입이 부엇으면 코로 술을 먹지, 하면서 술을 마시던 좀 모자란 사람 같기도 하고, 품이 넉넉하게 남아 돌아가게 보이기도 하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아이의 얼굴을 분별 못 하도록 취하기 전에 자기를 발견해주었다는 것은 아이에겐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여보게, 난 조만한 애새끼를 보면 캴캴캴, 우리 죽은 애새끼 생각이 나서 말이야. 캴캴캴, 꼭 조만한 새끼였는데 말야, 캴캴캴, 날 닮아서 잘 생기구 영리한 영악쟁이였는데 말이야 크면 한자리할 만한 새끼였는데 말이야. 캴캴캴."
그 사람과 비교하면 또 한 사내는 아주 달랐다. 그는 술만 취하면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다. 걷어 올린 팔뚝엔 문신이 거뭇거뭇한 사내로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다 나이프를 던지곤 했다. 아이는 그 사내의 웃음을 꼭 한번 본 일이 있었다. 언젠가 이 평양집의 문을 열고 안녕허세요. 하며 인사를 했던 순간 부웅 하고 무엇이 날랜 생선 비늘처럼 공기를 가르며 자기 얼굴을 지나, 자기 머리하고는 한뼘도 떨어지지 않은 문설주에 꽂힌 것을 아이는 보았다. 그것은 그의 나이프였다. 전쟁에 잃은 그의 오른손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봐라. 이 꼬마야"
그때 사내는 앉은자리에서 외쳤었다.
"내 오른 손을 봐라. 얼마나 날카롭고 날랜지를…… "
그리고 그는 거품을 흘리는 희한한 웃음을 웃었다.
그것이 바로 그 웃음이었다.
그의 직업은 나무 인형을 깎는 일이었다. 아이는 그 사내가 왼손으로만 병정 인형 깎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움막 밖으로 따거운 햇살이 이글거리던 성하의 지난여름 한낮, 벌거벗고 인형을 깎던 그는 갑자기 나이프를 들어 먼 나무벽을 향해 던지곤 했다. 지금도 아이는 유치하게 그려진 남자의 성기 위로, 혹은 심장 위로 번득이며 달리던 나이프의 금속성 소리, 그것이 허공을 가르며 나무판자벽을 뚫었을 때의 견고하고 건조한 음향, 열린 문틈으로 내다뵈는 한낮의 중유처럼 뜨거운 땅볕, 미칠듯한 땀 냄새들로 하여 무언가 숨이 막히고 막연한 적의가 끓어오르던 그 여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허지만 그 사내가 그때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친근하게 꼬마야 저 칼 좀 떼어온, 했다고 해도 아이는 그 사내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사내의 눈에선 노골적인 경멸이 번득이었다. 얼마 전 아이가 길을 지나가고 있을 때 사내가 그의 일터에서 고개를 내밀었고, 작은 목소리로 아이를 유인했다. 그의 손엔 술병이 들려있었고 그는 벌써 흠뻑 취해있었다.
"얘 우리 한잔하지 않으련. 해장술 말이다."
아이가 해죽 웃으며 방심한 채 그 움집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사내의 한 팔만 남은 왼손이 아이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사내의 왼손이 무서운 기세로 계속 목을 졸라오자, 아이는 혼신을 다해서 사내의 왼손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리고 사내의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큰길로 뛰쳐나갔는데 그때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바보처럼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잠시 그들은 술집에서 마주치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일이 있은 이후 처음 상면한 것이었다.
"난 울 아바지 찾으러 왔시요. "
아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외팔이 쪽은 보지 않고 구레나룻을 건네보며 말했다.
"봤어. 캴캴캴. 조금 전에 내가 봤어. 그것 뿐인줄 아니? 같이 술도 마셨는걸. 캴캴캴."
"오마니가, 오마니가."
아이는 목이 멘 소리로 손짓을 했다.
"죽어가고 있시요. 피 토하는 걸 보구 막 뛔 나왔시요."
아이는 주춤주춤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작고 긴 눈은 확확 달아오르는 술기운에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눈꼽이 끼기 시작했다. 탁자 위엔 투명한 막소주가 놓여있었다. 새로 마개를 딴 꼭지까지 차 있는 술병이었다.
아이는 그 소주의 맛을 알고 있었다. 이제 한잔 더 마신 후에 자기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막소주 한잔이 항상 미만(未滿)의 입안을 윤택하게 적실 때, 그는 자기의 생명이 어떻게 밀도를 더해 나가는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긴 걸상 끄트머리에 앉았다. 구레나룻은 긴 하품을 입에 가득히 매어물며 기지개를 켰다.
"너희 아버진 오늘밤 찾을 수 없을 게다."
"찾을 수 있시요."
그는 단호하게 단정을 내렸다.
"찾아내구야 말갔시요."
"캴캴캴, 그래 오늘 못 찾으면 내일 찾아도 되지 않으냐?"
"아니야요. 오늘 안으로 찾아내야 해요. 오마니가 죽어가고 있시요. 방금 피 토하는 보구 막 뛔나왔시오. 입으로 뻘건 피를 토하구, 누워서 가노다란 목소리루 날더러 아버지를 날래 찾아오라구 했시오. 아바지만 찾으믄 오마니는 나올 수 있시요."
아이는 가장 알맞은 기회를 잡아 제멋대로 탁자 위의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날렵하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바진 술꾼이긴 하디만 아즈반하구는 달라요. 아, 구리가디구두 금을 만들었으니까요. 금 달이야요."
그 한 잔의 술이 그를 자유롭게 했다. 헤어질 때 들이키는 마지막 술처럼 그 한잔의 새로운 술은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젓갈을 들고 탁자를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옛날옛날 옛적에 예븐 딸 가진 사람이 살고있었도다. 동리방천 언덕에 광고를 냈도다. 술 잘먹고 노래잘하는 사윗감이면 이리로 와서 시험해보아라."
구레나룻은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수염 속에서 종이 먹는 양처럼 소리 없이 웃었다. 다른 사내는 어안(魚眼) 같은 눈으로 술집 안 천장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는 며칠이고 그렇게 앉아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기회를 보아 손을 뻗쳐 술병을 집어 다시 술을 따랐다.
"울 아바진 술만 먹으믄 항상 울었댔시요."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구레나룻마저 이젠 웃지 않았다. 어디선가 밤고양이가 울었고 피로와 슬픔이 천장에서부터 무겁게 내리 앉았다. 아이는 자기가 따른 술잔을 들어 눈치를 보아가며 조금씩 혀끝으로 핥았다. 술집 작부는 담배를 태우며 가끔 이쪽을 쳐다보았고, 기묘한 구성을 이루고 있는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이제 아이는 홍당무처럼 상기하고 딸꾹질을 시작했다.
"내 재미있는 문제 하나 낼라요. 왜 개가 오줌 눌 때 한 다리를 들고 누는 줄 알아요?"
"모른다."
"두 다리 다 들면 넘어디잖아요. 피꺽."
술은 이제 그의 온몸을 취하게 하고 아이는 지극히 만족한 상태로 술의 유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으로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젓갈을 들어 탁자를 치며 되지 못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달밤에 대머리까진 총각이 찾아왔도다. 깡깡 깡깡이 너의 깡깽이 소리는 듣기는 좋으나 너의 인물 못나서 나는 싫도다."
파장이 다가온 술집 한구석에서 탁자를 두드리며 술을 마시는 꼬마의 체구는 비록 작긴 했지만 그의 몸짓 하나하나는 노련했고, 또한 자기 몫을 다 해나가겠다는 듯한 기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이는 노래 부르기를 끝마치고 조용히 혀를 길게 내벌려 담뱃불을 끄기 시작했다. 따거운 담뱃불은 그의 혓바닥에서 예민한 소리를 내가며 꺼졌고 그는 마치 요술부리는 곡마단의 소년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내가 잠에서 깨어난 듯 훔칫하며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나이프가 아이의 목을 겨누었다. 아이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내의 눈이 병적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말리운 입술 아래로는 흰 웃음이 무기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요 술주정뱅이 꼬마 자식아."
사내는 짖었다.
"내 널 편하게 죽여주마."
아이는 무어라고 항거하려 했으나 혀를 놀리는 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알았다.
"꼼짝마라. 이 꼬마야."
그의 왼손 안에서 번쩍이는 나이프는 그 아이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아이는 목 근처 가벼운 통증이 오는 것을 느끼었고 그는 안이한 생명의 탄식소리를 들었다.
(망할 놈의 목이다.)
사내의 손이 출발을 알리는 체육 교사의 그것처럼 잔뜩 추켜졌다. 그의 손아귀에서 칼날은 작은 새처럼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 칼은 순간 허공을 그어 내렸다. 아이는 공기와 마찰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부싯돌을 긋는 것 같은 찰라적인 섬광이 그의 손에서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손이 제 가슴을 찌르고 탁자 앞으로 꼬꾸라지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총알처럼 술집에서 튕겨져 나왔다.
(바보 같은 자식이다.)
거리는 어두웠다. 구석구석에서 바람이 불고 하늘은 남색으로 투명했다. 그 추위는 아이에겐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는 이 추위를 이겨내야 했었다.
시장 거리는 이미 텅 비어있었다. 그의 코 밑으로 수증기처럼 하얀 콧김이 새어나와 어둠으로 녹아 사라지곤 했다. 딸꾹질은 아직 멎지 않았고, 그는 다행히도 그렇다고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차거운 벽 앞에 붙어 단추를 끌렀다. 되는대로 껴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보온기(保溫器)를 찾기엔 힘이 들었다. 그는 오줌을, 누며 기어드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달밤에 대머리까진 총각이 찾아왔도다. 깡, 깡, 깡깡이, 너의 깡깡이 소리는 듣기는 좋으나 너의 인물 못나서 나는 싫도다."
그는 자기가 갈 곳이 어딘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취해도 그는 자기의 노정(路程)을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오마니가 죽어가고 있는데 아바지는 뭘 하고 있을가)
그는 검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를 찾을 희망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는 마지막 보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비틀대며 걷기 시작했다. 시장거리 끝에서 술취한 주정뱅이 하나가 길바닥에 몸을 뉘인 채 자고 있었다. 아이는 천천히 그리로 다가가 주정뱅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완전히 잠들어있었다. 아이는 그 사내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 사내가 날이 밝기 전에 동사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리낌 없이 그 작업을 계속했다. 주머니는 비어있었다 꽁초 몇 개와 먹다남긴 북어가 왼쪽 주머니에서 나왔고, 오른쪽 주머니에서는 전차표 두 장이 나왔을 뿐이었다.
아이는 이번엔 속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폐의 감촉이 손끝에 느껴지자 아이는 거친 호흡을 해가며 두장의 지폐를 끄집어내었다. 그는 그것을 손에 든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은 술을 더 마실 수 있으리라 하는 기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 두 장의 지폐로 막소주 두 잔쯤은 더 마실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비굴하지 않게 떳떳이 홀로 마시는 막소주 두 잔이 자기를 어떻게 만드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아픔도 없이 날갯죽지가 양 옆구리에서부터 돋아나와 자기를 새처럼 가볍게 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이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을 알고 있었다. 허지만 아무리 늦게까지 문을 연다고 해도 지금은 거의 닫을 시간이므로 그는 뛰기 시작했다. 아이의 발자국 소리는 언 땅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가 기대했던 술집은 이미 문이 닫겨져있었다.
그는 불 꺼진 술집 문 앞에서 고양이처럼 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술내를 맡았다.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날리고 그는 허리를 웅크리었다. 그는 잠시 자기가 취할 행동을 생각하다가 이윽고 결심했다는 듯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유리창은 얼음짱 깨지는 소리를 냈다. 유리창엔 하얀 성에가 꽃무늬처럼 피어 있었다. 아이는 얼마만큼 두드리다가는 귀를 기울이고, 얼마만큼 두드리다가는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가 귀를 기울일 때마다 아득히 먼 곳 차거운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후에 안에서 인기척이 나고 드디어는 사람 하나가 창 앞으로 다가왔다. 안쪽의 사람은 성에를 긁기 시작했다. 종후엔 동전닢만 한 구멍이 뚫려졌고 그 구멍으로 시선 하나가 다가왔다.
"안녕허세요."
아이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러자 봉창문이 열리고 머리를 풀어 헤친 작부가 나타났다.
"없대두. 너희 애빈 안 왔다니까."
"알구 있시요."
아이는 추워하면서 두 손을 마주 비볐다.
"그런 것즘은 알구 있시요."
"그럼 뭣 땜에 잠도 안 자고 이러지."
"아바진 이제 필요 없시요."
소년은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단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얼굴의 근육을 움직였으나 그것은 우는 것처럼 뒤틀리었다. 그는 석양을 향해 우는 것처럼 뒤틀리었다. 그는 석양을 향해 우는 거위처럼 목쉰 소리를 냈다.
"아주마니. 나 술, 술 마시러 왔시요."
그는 자기 말을 믿어달라는 듯 애원하는 시선을 보냈다.
"……이 애가 미쳤나?"
"딱 두 잔만 먹갔시오. 돈두 있시요."
아이는 여인 앞에 지폐 두 장을 내어 보였다.
"정말이지 취하고 싶어요. 내 주량은 내가 잘 알고 있시요. 두 잔만, 딱 두 잔만. 더 먹으믄 꿈도 없이 잘 잘 수 있갔시요. 지금 이 정도에서 그치면 안 먹은 것 보담 더 못하구, 잠두 잘 오딜 않으니끼니."
아이는 민물고기처럼 웃었다. 주방의 불빛이 쓸쓸히 한줌 그의 얼굴에 비끼고 있었다. 여인은 잠시 생각해보는 얼굴이더니 그런 여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갑작스런 몸짓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는 비실비실 술집 안으로 들어섰고 여인은 하품을 해가며 걸어가 술병을 날라왔다.
아이는 한기가 도는 탁자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술병을 들고 아이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아이는 석유 내 나는 막소주 잔을 앞에 놓고 잠시 숨을 가누었다. 어두운 불빛 속에서 술잔을 마주하고 앉은 소년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엄숙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단정하게 앉아 손을 들어 술잔을 쥘 때마다 불빛이 하얗게 불나방 비늘처럼 흩어져서 그는 마치 파종을 하는 소년처럼 보였다. 한잔이 다 비워지자 그는 가볍게 손끝으로 탁자를 두들기었고, 그녀는 술병을 들어 인심 후하게 가득 따라주었다.
"우리 아바진 술만 먹으믄 울었시요. 기리티만 난 보다시피 울딘 않아요."
방안에서 어린애 우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여인은 내버려 두었다. 어린애는 제풀에 울다 그쳐 버릴 것이다. 그는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떨리는 손으로 다시 잔을 들어 마셨다.
그것은 매우 짧은 환희였었다. 아이는 천천히 일어섰다.
"아주마니. 내가 클 때까지만 죽디 말라요. 그저 이 꽉 물구 참아보라요."
아이는 문간에서 고개를 숙였다. 여인은 문을 닫으며 큰 소리로 무어라고 소리쳤다.
"잘 가거라. 그리고 다신 오지 말아라."
아이는 이제 태엽풀린 인형처럼 걷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갈 곳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무너진 집더미가 어둠 속에 짐승처럼 서 있었다. 거기서 밤고양이가 울었다. 언제든 그 고양이는 이맘쯤이면 불도 없는 그 폐허에서 울었다.
언덕 위 바람은 한층 더 매서웠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언덕 위에 고아원이 서 있었다. 불도 꺼져있었고 이제 아이들은 작은 공처럼 될 수 있는 한 추위를 막으려고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있을 것이었다. 어떤 녀석은 이를 갈고 자고 있을 테고 다른 녀석은 밤마다 그러하듯 어둠이 무섭다고 칭얼대고 있을 것이다.
(아, 아, 이 어두운 밤 아바지는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잠시 비틀거렸다. 허나 술에 취했다고 해서 자기가 빠져나온 철조망 개구멍이 어디에 있을까 걱정을 했다. 허나 그는 술 취한 사람 특유의 자기 나름식 안이한 낙관에 자신을 맡겨버렸다.
언덕 아래에서 차거운 먼지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사냥개처럼 그 냄새를 맡으며 이를 악물고, 내일은 틀림없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