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날
최서해
꼬꾀요- 꼬…….
닭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밤공기에 음파를 전하는 그 닭소리! 새날을 기다리고 잠 못 이루는 여러 사람의 마음 위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여운을 흘렸다.
얼음 조각같이 아슥한 그믐달은 어느새 천심을 지나서 파란빛을 산과 들에 흘리고 있다. 쌀쌀한 계집의 눈방울같이 말똥거리는 별들도 달과 같이 하계를 엿보았다. 푸른 달과 찬 별 아래 뿌연 서리에 싸여서 고요히 놓여 있던 집집의 창에는 차츰 번득거리는 불빛이 비취이기 시작하였다.
꼬꾀요── 꼬…….
얼마 되지 않는 동리건마는 닭소리는 요란하였다. 이제부터는 이 집 저 집으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였다.
새벽을 기다리는 그 모든 사람 가운데 끼어서 역시 잠을 못 이루는 창화도 닭소리에 몸을 일어서 밖으로 나왔다.
서백리아의 가을밤은 남국의 겨울같이 쌀쌀하여 차디찬 기운이 뼛속까지 사무치었다. 창화는 몸을 오싹하면서 하늘을 치어다보고 저편에 우뚝 한 포대(砲臺)를 바라보았다. 그는 남몰래 한숨을 쉬이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어서 새지 않나?"
"글쎄말야!"
"오늘 떠나면 이럭저럭 해도 열흘은 져야 갈 터인데."
"글쎄 길에서 별일이나 없을까?"
"우리는 잘 간다마는 죽은 사람은……."
모두 이렇게 수수하였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이 뒤숭숭한 창화는 별소리 없이 구석에 가서 앉았다.
그의 머리에는 또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집을 떠난 것은 두 달 전이었다. 그네들의 동리는 북간도 한구석이었다. 그네들은 조선서 몰려들어서 험한 간도 한구석에 부락을 이루고 감자와 강냉이 농사를 하여 근근히 연명하였다.
그러나 그네에게는 행복이 없었다. 가을이 되어 추수 때나, 여름 산삼, 녹용 때가 되면 마적의 떼가 모여들어서 그네를 괴롭게 하였다. 처음에는 늘 거기서 시달리었으나 늘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 내지로 갈 수 없고, 또 다른 데를 더 갈 수 없는 그네에게는 죽음밖에 없었다. 그러나 펄펄 뛰는 생목숨을 그렇게 무의미 무가치하게 끊기는 그네의 용기가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그네들은 모였다. 자기네의 생명을 더 연장시키려고 자기네의 생활을 더 안전히 하려고 그 계책을 강구하였다.
"별수가 없어……. 이제는 추수가 지났으니 우리가 모여서 총을 들고 나서서 그놈의 마적을 잡세……."
"우리가 어떻게 잡나? 그 사람…… 우리네가 그 많은 놈들을 어떻게 잡나?"
"그렇지 않으면 어쩌나? 중국 관청에 호소해야 그놈들이 그놈이고……. 이래도 못 살고 저래도 못 살 바에야 앉아서 망하겠나? 해 보세……."
"그래 해 보세."
이렇게 결의가 되었다. 칠십여 호에서 어린애와 늙은이를 제하고는 모두 나섰다. 사냥하던 총칼을 들고 모두 나섰다.
창화도 이렇게 나섰던 것이다. 창화와 친한 종범이도 그렇게 나서서 창화와 같이 궂은 일, 좋은 일을 의논하면서 다녔다.
이렇게 마을을 떠날 때 마을에서는 곡성이 진동하였다. 아들을 부르는 이, 남편을 부르는 이, 오빠, 아버지, 형님, 아우를 부르는 소리가 양편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소리는 마지막이라는 상징이었다.
이렇게 떠난 그네들은 마적과 싸웠다. 멀리멀리 서백리아 숲까지 쫓아가면서 마적과 싸웠다. 어떤 때는 마적에게 쫓겨서 허둥지둥 달아나고 어떤 때는 마적을 쫓아서 의기양양하게 나아갔다.
이렇게 싸우는 때에 죽은 사람도 많았다.
어떤 밤이었다. 여러 사람들은 마적을 쫓아가다가 어떤 동리에 들어서 자는데 밤중에 별안간 총소리가 요란히 났다. 마적들이 몰아 온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빗발 같은 탄환을 무릅쓰고 한곳에 모였다. 창화도 종범이와 같이 뛰어갔다.
"아이구!"
하는 소리에 창화는 뒤를 돌아보았다. 훤한 그믐달 속에서 따라오던 종범이는 창화에게 몸을 실었다. 종범이 허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종범이는 적탄에 거꾸러져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이그 창화…… 나는 죽네……. 우리 집에 가거든 부디…… 어머니께…… 응……."
마지막 가면서 괴롭게 하던 종범의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였다.
이제 싸움이 끝나서 돌아가게 되니 종범이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종범이와 함께 나온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다.
"이 사람 언제나 편한 잠을 자나?"
하던 종범의 소리를 어제 들은 듯한데 그의 그림자는 이 세상에서 떠났다. 죽은 그는 죽은 그려니와 이제 돌아가서 그의 어머니가 물을 때에 무어라 할까.
창화의 간장은 녹았다.
꽝…… 꽝…… 꽝…….
모이라는 군호의 총소리는 고요하던 산천에 반향을 처량하게 일으켰다.
이집 저집으로 총 메인 사람들은 몰려나와서 우뚝한 포대 앞 넓은 뜰로 모였다.
비를 세운 듯이 잎 없는 나무들이 엉성하게 선 서쪽 산머리에 기운 새벽달은 으스스한 꼴로 모여드는 여러 사람의 그림자와, 포대 그림자를 동편으로 차디찬 땅에 떨어뜨렸다.
"자 - 어서 모이오!"
하고 영솔장은 소리를 쳤다. 여기는 대장이니 하사니 없었다. 영솔장이라고 모든 사람을 영솔하는 이인데 이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이가 뽑혀서 된 것이다. 그렇게 이름이 영솔장뿐이오 서로 부를 때에는 동리에서 부르던 때와 같이 형님 아즈버니 하고 있다.
"다 모였소?"
"네, 다 모였소!"
"그러면 떠납시다. 그런데 가는 길에 두고 가는 형제의 무덤을 찾아보고 갑시다."
영솔장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걸음을 걸었다.
쌀쌀한 달 아래 소리 없이 열을 지어 나아가는 그 그림자는 바야흐로 떠오르는 태양이나 맞으러 가는 듯이 씩씩하고도 알 수 없는 근심에 주저거리는 것 같았다.
거칠은 서리 숲을 지나서 그늘진 산비탈로 올라간 사람들은 한 곳에 이르러서 모여 섰다. 거기는 무덤 일곱이 가지런히 놓였다. 모든 사람들의 수수거리던 소리는 물 뿌린 듯이 고요하였다.
모두 육십오 명이 떠나서 오십 칠 명이 돌아가게 되었다. 나머지 팔 명은 적탄에 죽었다. 그중 한 명의 시체는 찾지 못하였다. 일곱 명만 찾아서 이곳에 묻은 것이다.
"여러 아우님!"
하고 영솔장은 무덤을 향하였다.
"우리는 가오! 우리는 살아가오!"
하고는 목이 메서 다시 무슨 소리를 못 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네를 두고……."
하면서 목메인 소리를 쳤다. 이 가운데 끼인 창화는 종범의 무덤 앞에 가서 섰다.
"종범아!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더니 너는 죽었는데 나는 살았구나!"
말을 마치지 못하여 그는 눈물을 씻었다.
"이놈의 삶이 원수로구나! 이 몸두…… 이 몸두 어느 때 어떻게 어디서 죽을 것을 누가 보증하겠니?"
"그러나 나는 살아서 가는구나! 나는 무슨 팔자로 네가 피를 뿌리고 죽어 넘어진 뒤에 앉어서 잘 산단 말이야……. 응……."
그는 드디어 울기 시작하였다.
"응……."
"흑…… 흑."
"오오……."
하고 느끼는 소리가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서천에 기울었던 달은 어느덧 숨었다. 불그레하던 동천에는 차츰 햇발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갈 길을 잊은 듯이 서고 앉아서 얼굴을 가리고 여전히 울었다. 스르르 지나가는 아침 바람은 잎 없는 가지를 흔들었다. 새가 한 마리 두 마리씩 날았다.
"너의 어머니…… 어머니께서 네 소식을 물을 때 나는 무어라 대답하겠니? 나는 형제나 너는 독신……. 늙은 어머니의 독자…… 흑…… 흑…… 흑……."
그의 울음은 점점 커졌다. 이것을 물끄러미 보던 영솔장은 초연히 서서,
"여러분 모두 나의 허물이구려……. 남의 귀한 자식을 데리고 나와서 이 차디찬 땅에 묻어 놓고 이 늙은 놈은 살아가……. 아아 이제 마적을 물리쳤던들. 무슨 면목으로 내가 돌아가나? 응 흑……."
"여러분…… 여러분…… 여러 아우님……. 이 늙은 놈의 목을 버혀다가 저 죽은 이들 유족에게 사죄를 하셔요. 응으응!"
그는 땅에 자빠지면서 통곡하였다. 그 바람에 모든 사람들은 모여들어서 그를 일으키면서 갈 길을 재촉하였다.
창화도 일어섰다. 그러나 그의 발은 무거웠다.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돋아 오른 햇빛은 산봉우리를 물들이고 무덤에 흘러서 여러 사람을 비취었다. 이제 돌아가는 날의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