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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귀향

현경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패배를 당하고…… 인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아무것도 없다. 다만 썩어빠진 송장밖에는…… 그렇다. 남은 것은 송장뿐이다.’

김변호사가 다녀간 후 인호는 쓸쓸한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맞은편 벽에 비친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기의 신세를-너무나 무참하게도 되어 버린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여 보았다.

웬일인지 저로서도 알 수 없는 조소에 가까운 허구푼 웃음만이 자꾸 흘러나왔다.

어머니가 여비까지 보내시구 기다린다구?’

그는 방바닥에 아직도 그냥 김변호사가 두고 간 대로 놓여 있는 십 원짜리 석 장을 어슴푸레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당기며 늦추며 갖은 수단으로 타이르던 김변호사의 말을 고요히 되풀어 생각하며 피곤한 듯이 벽에 가 비스듬히 기대고 눈을 스르르 감으니, 안개 속에서 걸어오듯 어머니의 그림자는 선명치 못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선명치 못한 그것은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누이 인순의 그림자로도 되어 보이고 어떤 기생으로도(그도 나이먹은 퇴물이므로) 되어 보이고 마지막에는 어두운 골목에서 뭇사나이들의 팔목을 끌어들이는 매춘부로도(콧잔등에 매독이 우글우글 지향을 풍기는) 되어 보였다.

그는 어지러운 환영을 뇌리에서 쓸어 버리려는 듯이 머리를 한번 좌우로 흔들어 놓고는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전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나간 날을 다시 뒤져 보기 시작하였다.

몇 해 전이었던지 잘 따져 볼 수는 없지마는 확실히 그것은 자기가 중학교 삼학년 때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서였던지 고향에 가서 한여름 동안을 놀다가 오라고 여비를 주었다. 고향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어서 몇 번이나 방학을 맞아도 남다른 특수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다만 꿈길에만 더듬어 보던 고향의 면모를 실지로 찾아보게 되었을 때, 인호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버지의 손목에 매달려 느끼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 밤차로 서울을 떠날 때 그 전해에 한 번 고향에 다녀온 일이 있는 인순이는 정거장까지 나와서 열 번도 더 당부하였다.

인호야! 너 이번에 갔다가 어머니를 만나면 안 된다.”

어머니라니……? 어머니 어디 있느냐?”

인호는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 반문하였다.

글쎄, 어디서든지 만나면 안 된다. 아무리 누가 와서 꼬이더래두 곧이듣지 말어라. 만약 네게 어머니를 만난다면 아버지에게 큰일난다.”

하며 인순이는 동생의 손목을 틀어잡고 애원하듯 말하였다.

인호는 가슴속이 그득하여서 그 이상 더 캐어묻지 못하고 힘없이 머리를 끄떡거렸다.

이윽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인호는 차창으로 내다보매 인순의 눈에서는 무엇인지 전등빛에 번쩍 하는 것 같았다.

밤새껏 쉬지 않고 닫는 차 속에서 아홉 살 때의 고향의 그림자만 머릿속에 그려 보며 시달려 가노라니 어느덧 날이 훤히 밝고 해가 뜨기 시작하였다. 피곤한 머리를 들고 차창으로 멀리 내다보니 아침 햇빛에 금빛으로 어른거리는 바다, ! 저것이 동해바다로구나…… 인호는 부지중에 저 혼자 벌씬 웃고는 넋 없이 내다보았다. 그리고는 초조한 마음으로 고향에 도착될 시간을 속으로 따져 보았다.

이윽고 고향 정거장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너무나 끓어 넘치는 감격에 한참 동안은 플랫폼에 실신한 사람같이 어쩔 줄을 모르고 서 있었다.

고향은 예기와 같이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며칠 동안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척들 집으로 돌아다니며 꿈같이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바닷가에 나갔다가 한 사십 되어 보이는 낯모를 부인을 만났다. 그 부인은 얼마간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인호의 앞에 와서 부드럽게 웃으며,

자네가 인호라는 서울서 온 학생인가?”

하고 은근히 물었다.

, 왜 그러십니까?”

하고 인호는 무뚝뚝하게 반문하였다.

부인은 얼마간 당황한 빛으로 얼굴을 붉히고 부자연하게 웃다가,

좀 전할 말이 있어서 그러네.”

한 다음 인호의 기색을 엿보았다.

무슨 말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말을 내면 안 될 일인데.”

하고 그는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양을 하다가 사방을 살펴본 후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날 밤 인호는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어지러운 생각에 들볶이었다.

어머니가 만나 보구 싶다구? 눈물을 흘리며 기다린다구? ! 어떻게 할까?’

그는 인순의 당부하던 말을 생각하여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정경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만날까? 어쩔까?’

만난다면 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것 같고 안 만난다면 눈물로 기다린다는 어머니가 가엾고…….

! 어쩔까?’

몇 번을 주저하고 생각한 다음 그의 마음은 결국 어머니 편으로 기울어졌다.

그리하여 이튿날, 그는 친척들이 그렇게 말리는 것도 불구하고 서울로 온다고 핑계한 후 약속과 같이 점심차로 함흥(咸興)역에 와서 내렸던 것이다. 플랫폼에는 전날 약속한 그 부인이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호는 가슴속이 덜컥 내려앉으며 마치 못 할 일을 하는 듯 후회가 났지마는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여자의 뒤를 따랐다. 역전에서 버스를 타고 얼마간 가다가 내린 후 여자는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연신 미안한 듯 뒤만 돌아다보았다.

인호는 여전히 말없이 따라 들어갔다. 그리하여 어떤 큼직한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가슴속이 이상하게도 두근거리고 얼굴이 후끈하였다.

대문 밖에서 나는 신발 소리에 방문이 열리더니 안에서는 한 삼십 되어 보이는 말쑥한 부인이 길다란 치마를 칠칠 끌며 넋없이 달려나왔다.

인제 오우?”

인호는 대문 밖에 우뚝 멎어 서서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 인호.”

하는 단마디 소리를 지른 후 부인은 신발도 꼬일 사이 없이 뛰어나와서 인호 팔에 매달렸다.

인호야!”

그는 목메어 느끼며 인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인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방 안에 들어가서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동정만 곁눈질하였다. 나이를 따진다면 사십은 되었을 터인데 아무리 보아야 삼십에서 더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말쑥하게 차리고 새하얗게 분단장을 한 그의 얼굴은 마치 남의 집 젊은 부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나며 어머니의 기분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하긴 네 살 때에 갈라진 이후로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자기로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지만 그보다도 그의 맘을 끌게 못 한 것은 이마에까지 기름이 반지르르한 어머니의 천비(賤卑)한 그 모양이었다.

그는 경험은 없지만 웬일인지 어머니의 태도에는 음탕한 여자에게서 흐르는 그 무엇이 떠도는 것 같고, 그리고 그 어느 때던가 활동사진에서 본 타락녀의 모양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머니도 아들의 그 눈치를 알아채었던지 갑자기 말을 끊고 창문 쪽을 서먹하게 내다보며 그 무슨 생각에 잠겨진 듯하였다.

며칠을 지나는 동안 모자간의 장벽은 적이 풀려서 서로 말도 묻게 되고 서글픈 웃음이나마 주고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호는 항상 어머니의 눈치만 엿보며 집안 동정만 살폈다. 어디서 나오는 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생활은 너무나 호화로웠다.

그리고 동네 여자들이 자기의 어머니를 부를 때마다 영자 어머니하는 그것은 무슨 까닭인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야 알 길이 없었다.

집안에는 하인들밖에는 아무도 없는데…….’

인호의 의혹은 극도로 깊어졌다.

만은 그렇다고 어머니가 말하지 않는 것을 자기의 입으로써 물을 수도 없고…… 다만 어머니의 생활이 그다지 정당한 데서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는 어머니의 집에 온 것이 비길 데 없이 후회되며 자책의 염에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더구나 아버지가 아는 것 같아 심중은 항상 불안스러웠다.

그래서 늘 떠날 기회만 엿보았지만 영리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 아침 인호는 아직 고단한 자리에서 꿈을 채 깨지 못하고 있노라니 마당에서 삐걱삐걱하는 물지게 소리가 들려 왔다.

어슴푸렷이 깨어난 인호는 아버지의 물지게 소리를 들으며 꿈길을 더듬노라니 갑자기 부엌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째는 듯이 들려 왔다.

왜 어저께 두 지게만 더 가져오랬는데 한 지게두 안 가져왔어요?”

하고 팩 쏘는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퍽 늙은 듯한 물장수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무 몸이 아퍼서 그만…….”

뭐요? 그럼 싹이래두 내야지 그대루 있으면 어떡헌단 말이우?”

어머니의 말소리는 가시를 품은 듯하였다.

그 소리에 인호는 반발된 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우두머니 앉아서 아버지의 일을 생각하여 보았다. 인호는 그날로 어머니가 한사코 말리는 것도 불구하고 서울로 떠나 올라왔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는 조용한 틈을 타서 인순이와 자세한 내막을 물었던 것이다.

인순이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였다.

인호는 마디마디 뼛속에 사무쳐 드는 누이의 말에서 비로소 모든 것을 알았다.

가난에 쪼들리며 온갖 고생을 다하는 남편과 철없는 어린 자식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 한몸의 안일과 허영을 위하여 남의 첩으로 갔다는 어머니의 이가 갈리는 그 행사를…….

아버지는 아내에게 배반을 당한 후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갖은 고생를 다하였다. 그러나 생활의 고통은 점점 심하여 가고 더구나 한편으로는 자식들이 커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건만 글자 한 자도 배워 못 주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다 못하여 비장한 결심을 한 다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던 것이다.

인호야! 이 말을 너한테는 절대로 하지 않으려 했지만…….”

하고 인순이는 행주치마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인호는 주먹으로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으며,

누나! 내가 잘못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철없이 만나 봤다.”

하고 엉엉 느껴 울었다.

그러기에 인호야! 너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 드려야 한다. 지금 아버지가 서울 와서 물지게를 지면서도…… 북청물장수란 이름을 띠면서도 조금도 꺼리지 않으시고 애쓰시는 것은 누구 때문이겠느냐? 다 너와 나 때문이다. 우리 두 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만들겠다는 그것이 아버지의 모든 희망이다. 인호야! 알아들었니?”

하고 인순이는 동생의 어깨에다가 다정스럽게 손을 얹었다.

! 나는…….”

인호는 말을 맺지 못하고 인순의 무릎에 쓰러졌다.

여기까지 생각한 인호는 아랫입술을 악물고 힘있게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다. 죽어도 어머니한테는 안 간다. 무엇 하게 간단 말이냐?’

그는 방바닥에 놓인 지폐를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마치 어머니의 환영을 노려보듯이…… 잠시의 추억에서 흥분된 탓인지 가슴속은 다시금 붓기 시작하고 호흡의 도수는 높아 갔다. 그는 베개에 기대어서 한참 동안 진정시키기에 애를 썼다.

밤새껏 고민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옅은 잠에 들었건만 어지러운 꿈은 다시금 그를 괴로운 현실로 끌어다 주었다. 전신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그는 부지중에 후우하고 한숨 쉰 후 으스레하게 터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꿈을 생각하여 보았다.

-창경원 독수리의 우리 앞에 가서 멍하니 창공을 쳐다보는 독수리의 그 눈을 우두커니 들여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그 모양.

그것은 자기가 아직 옥중에서 예심에 있을 때 자기의 전향(轉向)을 권고하며 말하여 주던 김변호사의 마디마디 뼛속에 잦아드는 이야기에서 들은 것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밤마다 밤마다 꿈속에서 못 견디게 구는 어지러운 환영이었다.

그는 어느덧 저도 모르게 다시금 지나간 날의 아버지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반을 당한 후 몇 해를 남의 조소와 비방에 원한의 피눈물로 악착한 현실에서 울다가 마침내 결심한 다음 아홉 살 된 아들을 업고 열두 살 된 딸을 이끌고 빈주먹으로 서울 와서 잔인한 마도(魔都)의 화염(火焰) 속에서 갖은 박해와 용감하게 싸운 아버지의 눈물나는 그 일!

그것은 인호 머릿속에서 영구히 뽑아 버릴 수 없는 피로 새겨 준 기록이었다.

밝기 전부터 물지게를 지고 삐걱거리며 해가 질 때까지 집집을 돌아서 얻은 돈으로 두 자식을 공부시키는 그것은 북청(北靑) 사람이 아니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 애비에 그 자식들로서 북청 사람의 그 자식들이 아니고는 도저히 그 애비의 마음을 알아줄 수가 없었다.

인호와 인순이는 보통학교 시대로부터 최우등이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북청 물장수의 아들이니 북도놈의 자식이니 하고 욕하며 놀려 주었지만 두 남매에게는 다만 공부밖에는 없었다. 공부로써 모든 것을 정복하고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 드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둘은 중학에 가서도 꾸준히 최우등으로 지냈다.

아버지는 뼈가 부서지고 고기가 찢어지는 줄을 몰랐다. 그에게는 다만 날마다 성공의 피안(彼岸)에 가까워 가는 자식 둘밖에는 없었다.

자초에 자식들을 위하여 바치려고 결심하고 나선 몸이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식들이 커가면 커갈수록 그의 의지는 더욱더 앞날의 승리에 대하여 불탔던 것이다.

만은 운명의 악희란 언제든지 참혹한 것으로서 전생명을 걸고 피워 나가는 그의 꽃봉오리에 어느 틈엔지 벌레가 들고 피땀으로 쌓여 나가는 희망의 탑에 좀이 먹기 시작하였으나…… 생각하면 인간을 속절없다고 할는지 세상을 야속하다고 할는지?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인순이가 당시 전조선을 망라하여 일어난 선풍에 휩쓸려 들어가다니…… 아버지에게는 너무나 지나친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며칠 동안은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리고 침식을 잊었다. 곁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는 인호는 아버지가 불쌍하기 짝이 없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는 인순이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도리어 누이가 한 일에 대하여 애매하나마 일종의 그 어떤 시인(是認)까지 하게 되는 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딸자식에게 배반을 당한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력을 다하였다. 아들도 애비의 그 마음을 성의껏 헤아려 주었다. 그리하여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는 여전히 우등으로 졸업한 후 아버지의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고 상급학교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성의와 사랑을 일신에 혼자서 받는 인호는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스러웠고 그리고 만족스러웠다.

만은 웬일인지 그는 누이들의 일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자칫하면 그쪽으로 기울어질 듯 기울어질 듯한 자기의 마음을 바로잡기에 힘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야 그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근 일년이나 되었을 때 누이들은 몇 사람만 남겨 놓고 무사히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번 배반한 딸자식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순이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굳이 애써서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 찾아오기는 하나 그것은 인호가 혼자 있는 때였고 아버지만 있는 눈치면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인호는 간혹 길가에서 누이를 만나 보면 누이는 웬일인지 항상 주위를 살피며 남의 눈을 꺼리는 것 같고 그리고 노 분주한 기색을 보였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인호는 어떤 편지 한 장을 받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정한 시간에 지정한 장소로 가보니 거기에는 천만의외에도 어떤 귀부인 차림을 차린 인순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호는 반가우면서도 심중은 불안에 떨었다.

얼마 후에 누이와 갈라져서 집에 돌아온 인호는 말없이 쳐다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가슴속이 선뜻하였다.

그는 밤새껏 자지 않고 이불 속에서 고민하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곁에서 곤하게 천하만사를 다 잊은 듯이 잠든 아버지가 가담가담 그 무슨 앞날의 희망을 꿈꾸는 듯 입술을 가느다랗게 파동시키는 것을 보고는 차마 그의 희망을 꺾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 나는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고백하고 일후부터는 인순이와의 인연은 영영 단절하여 버리자. 그리고 공부에만 전력을 다하자.’

그리하여 이튿날 아침이 돌아오기를 고대하였다마는 정작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를 대하고 보니 지난밤의 그 결심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조차 없이 사라지고 인순의 말만 뇌리에 새로이 떠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는 너무나 한심한 듯한 제 마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변명은 잊지 않았다.

뭐 아버지에게 고백하지 않더라도 인순이와 다시 만나지만 않으면 그만이 아닌가? 그렇다. 다시 만나지만 않으면 된다.’

하고 그는 마음을 돌리려고 저 혼자 속으로 맹서하였다.

만은 어찌하랴?

다음날 저녁에는 벌써 누이와 만날 약속의 시간이 되자, 아버지를 속이고 총총히 문 밖에 나서게 되는 저로서도 알 수 없는 제 마음-

그 후부터 인호는 정기적으로 인순이를 만났다. 뿐만 아니라 그는 차츰 인순이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긴장된 생활이 날마다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물지게 소리는 여전히 새벽 꿈을 깨워 주었다. 그 모양을 볼 때마다 인호는 세상에 못 할 일을 하는 듯하여 가슴속이 저리었다.

만은 그것은 잠시적 감상에서 지나지 못하였고 문 밖에만 나서면 다시금 온몸을 불사르는 알 수 없는 정열에 그는 세상 모든 잡념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반년이 지났다. 일년이 지났다. 피가 뛰면서도 숨막히는 것 같은 긴장의 일년이…….

그의 몸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정열에 불탈 대로 불탔다.

……(원문 탈락)……

암운은 지척을 사이에 두고 오락가락하였다. 그러다가 지금 생각하여도 몸서리가 치는 선풍이 왔다.

일년이나 그들은 어두운 속에서 세상일을 꿈꾸다가 비로소 법의 재단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공판정에서 ……(원문 5행 탈락)……

인호는 여기까지 생각한 다음 무연한 한숨을 쉬고는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한…… 무너지기 시작한 자기 자신을 고요히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어두운 감방에서 뜻하지 아니한 각기(脚氣)로 신음하며 자칫하면 감상적으로 흘러가려는 제 마음을 북돋우기에 애가 탔던 일. 그리고 굳세다고 믿었던 신념이 차츰 무너져 가고 그 대신 아버지의 침통한 그 얼굴이 밀쳐도 밀쳐도 가슴을 파고들며 못 견디게 굴던 일.

거기에 더구나 뜻하지 아니한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으니 가뜩이나 동요되던 그의 마음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담임 변호사로서 고향 사람이요 어머니의 본가 편으로 친척인 김변호사가 아버지의 소식을…… 사망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을 때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 공판이 열렸을 때 그는 뼈가 저리고 심경의 고백으로 여러 공범들의 갖은 조소와 모멸을 샀던 것이다. 더구나 심장을 얼려 주는 듯한 인순의 쌀쌀하던 그 눈길은 일생을 가도…… 아니 죽어도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자기는 폐인이 될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이 년간의 징역이 오 년간의 집행유예로…….

!’

그는 괴로운 듯이 몸부림치며 돌아누워 버렸다.

어느덧 벌써 동창은 불그스레하게 되어 오고 있었다. 인호는 극도로 피곤된 머리를 베개 위에서 두어 번 흔들어 보고는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오후에 김변호사는 또 찾아왔다. 그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다가, 어저께 자기가 놓고 간 지폐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과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채 누운 자리에서 멀거니 내다보는 인호의 모양을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은근하게 근심스러운 어조로 물으며 들어왔다.

어째 더 괴로운가?”

그제야 인호는 부시시 일어나며,

아니오.”

하고 힘없이 대답하였다.

그런데 어째 그리 기색이 좋지 못한가? 의사를 불러 오라는가?”

아녜요, 괜찮어요.”

하고 인호는 맥없이 웃어 보였다.

김변호사는 적이 마음이 놓이는 듯 벌씬 웃다 앉았다.

그런데 이 사람아! 어쩔 텐가? 어머니께서는 매일 고대한다구 하시며 오늘두 전보루 독촉하셨데그려…… 어서 하루바삐 가서 늙으신 어머니두 안심을 시키구 그러구 몸을 회복시켜야 하지 않는가?”

인호는 묵묵히 앉아서 한숨만 쉬었다.

글쎄 이 사람아! 그렇게 고집을 세울 게 뭣이란 말인가? 어머니 있는 데 가서 몸을 좀 튼튼히 해가지구 고향에두 가봐야지…… 그래 아버지의 산소에나 댕겨서 다시 서울로 오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아무리 타이르며 물어 보아야 인호의 입은 무거운 쇠를 잠근 듯 열릴 줄을 몰랐다. 김변호사는 하는 수 없이 다음을 약속하고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그가 돌아간 다음 인호는 갑자기 고적을 느꼈다. 그는 김변호사의 말을 고요히 생각하여 보며 어머니를 눈앞에 다시금 그려 보았다.

세상 사람이 다 배척하는 참패자의 자기를 여전히 변치 않고 안아주려는 어머니를? 뿌리친다면-

아무 가치도 없는 떨어져 버린 낙오자의 몸으로서 더구나 병든 몸으로서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생명까지 내걸고 신봉하여 오던 주의까지 변절하여 버린 지금에 와서 옛날의 사소한 개인적 감정에서 얽혀진 그까짓 맹세가 다 무에냐? 모두가 쓸데없는 감정이다. 고집이다…….

인호는 일종의 흥분에까지 싸이며 자포적 조소로써 저 자신을 비웃었다.

그날 저녁 인호는 갑자기 김변호사를 찾아갔다. 김변호사는 그를 보자 두 눈이 뚱그렇게 되어,

아니 이 사람! 그 다리를 가지구 어떻게 왔는가?”

하며 인호의 얼굴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저 오늘 밤차루 떠나겠어요.”

? 떠나다니……? 함흥인가?”

.”

하고 인호는 맥없이 마루에 주저앉았다.

김변호사는 너무나 돌변적인 그의 말에 얼른 말을 못 하다가 제 귀를 의심하듯,

그게 정말인가?”

하고 기어드는 소리로 물었다.

인호는 딴 데를 보며 머리만 끄떡하였다.

김변호사의 얼굴에는 비로소 웃음이 떠올랐다.

잘 생각했네. 그래야 하네. 그런데 차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며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 보다가,

, 시간이 얼마 안 남었네.”

하고 하인을 시켜서 자동차부에 전화를 걸게 하였다.

이윽고 문 앞에 와서 닿은 차를 타고 둘은 정거장으로 향하였다.

기차에 오르니 인호는 의외에도 속히 잠들 수가 있었다. 하긴 김변호사의 호의로서 침대차에 오른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녘이 되었을 때 그는 또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창경원 독수리의 우리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버지의 그 환영에 들볶이는 꿈에서…….

그는 가슴이 붓고 질식할 것 같아 창문을 열었다.

멀리 으스름하게 터오는 동쪽 하늘! 차는 삼방령(三防領)을 쏜살같이 내리닫고 있었다.

얼마 후에 원산역에 닿았을 때 동해바다의 수평선 너머로부터는 시뻘건 불덩이 같은 해가 솟고 있었다.

인호는 지나간 중학 삼학년 때 여름방학 일을 생각하면서 시가지를 내다보았다. 모든 것은 몰라보게끔 변하여졌다. 공장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사이렌 소리는 하늘을 찢는 듯이 우렁차게 들려 왔다. 마치 무참히도 패배하여 버린 자기를 비웃는 듯이…….

그는 차창에 비쳐 오는 해도 자기를 비웃는 듯하여 눈을 뜨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원산을 지나자 그의 가슴은 더한층 메슥거려서 금시에 토할 것 같고 호흡은 극도로 높아졌다. 이윽고 함흥평야가 눈앞에 전개되었을 때 불원이면 함흥역에 도착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머릿속은 산란하여졌다.

그는 차가 그대로 멎지 말고 무한정으로 달려갔으면 싶었다. 불연이면 그대로 질주하던 차가 탈선 전복되어 자기의 운명도 다 같이 종결시켜 버리던지…….

만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내려서 질식할 것 같은 괴로움에서 면하고 싶었다.

그는 간혹 머릿속이 핑 돌아가는 것 같은 때는 심장마비나 아닌가 하여 겁이 덜컥 나고는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차는 예정의 코스에 맞춰서 함흥역에 도착하였다. 플랫폼에는 서울서 친 김변호사의 전보를 받고 벌써 어머니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운신하여 기다리다시피 한 아들을 부여잡고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호는 감각을 잃은 듯이 우두커니 서서 물결치는 어머니의 어깨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호야! 너를 다시 만났다니…….”

하며 어머니는 곁에 사람들이 보는 줄도 모르고 느꼈다.

인호는 무엇인지 눈구석에서 뜨거운 것이 스르르 감도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얼마 동안 정신없이 느끼다가,

얘야, 너 참 몸이 아픈데 어서 들어가자…… 그런데 이애가 어디 갔을까? 얘 영자야!”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인호는 그제야 어머니의 뒤를 보니 열칠팔 세 되어 보이는 처녀가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뒤에서 옷고름만 만지고 있다가,

영자야! 서울 오빠다.”

하는 어머니의 말에 비로소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인사하였다.

인호는 황망하게 모자도 벗을 사이 없이 머리를 꿈벅하였다.

역전에서 셋은 자동차를 불러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집은 여전히 그전 그 집이었다.

인호는 종일해를 가슴이 뿟쳐서 드러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갖은 성의를 다 보이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의 나이란 참혹한 것으로서 그렇게 아름답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벌써 주름이 잡혀 있었다.

만은 아직도 윤택을 잃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동안의 생활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인호는 어머니의 뒤에서 잔심부름을 하여 주며 자기의 얼굴을 흘낏흘낏 곁눈질하여 보는 영자를 바라보았다. 어디라고 지명할 수는 없는 아담하고도 정다워 보이는 듯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인순이가 어머니를 닮았다면 영자는 누구를 닮았을까.

그의 아버지……?

순간! 인호는 불쾌한 생각이 치밀어서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며칠 동안을 보양한 결과 인호의 병은 차츰 나아져 갔다. 음식맛도 나게 되고 호흡도 순조로워 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보를 얼마간 하게 된 것이 인호 자신보다도 곁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그러나 날이 감을 따라 인호에 항상 걸리는 것은 어머니의 남편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하기야 그를 만났댔자 별일이 있을 것은 아니었고 그리고 조금도 이로울 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웬일인지 인호는 한번 영자의 아버지를 만났으면 싶었던 것이다.

영자는 비록 애비는 다르다지만 한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난 탓이었던지 곧 인호와 친하게 되었고 그리고 몹시 따랐다. 인호는 여러 가지로 심중이 괴롭고 불쾌하였지만 영자의 정에 이끌리어 얼마간 마음을 위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어머니의 사랑에는 부자연하게 꾸미는 데가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자기의 존재가 어머니의 집에 있어서 공연한 장해물 같아 도무지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그는 밤중에 변소에 갔다 오느라고 아랫방 앞을 지나노라니 방 안에서 이야기 소리가 쫑쫑 들려 나왔다.

처음에는 어머니와 영자가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그대로 지나치려다가 귓곁에 들리는 소리가 사나이의 목소리 같아 그는 무의식중에 우뚝 멎어 섰다.

그리하여 기둥에 붙어 서서 귀를 기울이노라니 그것은 확실히 사나이의 목소리였다.

내일은 좀 만나 보구려.”

하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리자,

글쎄 만나 봤으면 좋겠지만 그 애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굵다란 목소리가 들려 나왔다.

인호는 비로소 영자의 아버지가 밤이면 자기의 잠든 틈을 타서 들어왔다가 아침이면 해뜨기 전에 나가는 줄을 알았다. 그는 자기를 피하는 그 행동이 몹시 마음에 불쾌하였다.

만은 한편으로는 자기의 심중을 생각하여 주는 듯한 그 태도가 고맙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로 하여 영자의 가정 안이 이전보다 변하여진 듯한 것을 생각하면 하루를 더 있기가 송구스러웠다.

그 후부터 인호는 집안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자기의 편협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인들까지 이상한 눈치를 보이는 듯하여 그는 송곳 방석에 앉은 듯 한시를 마음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가려 하였으나 어머니와 영자가 한사코 말리고, 또한 자기 역시 고향 고향 하지만 아무 머물 곳 없는 고향에 그렇게 마음이 쏠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긴 아무 때 가보아도 아버지의 산소 때문에 한 번은 갔다 와야 할 고향이지만 갔다가 다시 떠난다면 갈 곳이 없을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막연한 문제였다. 그는 갈 곳 없는 제 신세에 새삼스럽게 설움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지나간 날의 모든 것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 갈 곳 없는 참패자의 가련한 신세여!

그는 속으로 울고 싶었으나 울 맥이 나지 않았다.

그 후 어느 날 밤 그는 또다시 변소에 갔다 오다가 아랫방 앞에서 이야기 소리를 엿들었다.

고향에는 언제나 보낼 작정이우?”

하는 것은 사나이 목소리였다.

글쎄요, 저는 벌써 가려는 것을 그냥 말려 두었는데…… 고향에 가문 무얼 하겠수?”

하고 어머니는 한숨 쉬며 말하는 듯하였다.

그래두 선친 산소에나 댕겨와야지…….”

죽은 후에 가보면 무얼 하우?”

어머니의 말소리는 쏘는 듯하였다.

그렇지만 자식의 처지루서야 어디 그러오? 더구나 그렇게 고생하다가 보람 없이두 무참히 죽은 애빈데…….”

인호는 그 이상 더 들을 수가 없어서 정신없이 자기의 방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더없는 모욕을 받은 듯 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밤새껏 자조와 굴욕에 울다가 이튿날 아침 첫차로 떠났다. 어머니와 영자가 그렇게 말리는 것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고향에 도착되자마자 그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서 몇 달을 참았던 감정을 일시에 터쳐 버렸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같이 따라간 그의 육촌형은 너무나 정신을 잃고 우는 것이 걱정되어 부드럽게 달래며 위로하였으나 그것은 그의 설움을 더한층 북돋워 줄 뿐이었다.

, 인호! 그만 그쳐라. 너무 그렇게 울면 가뜩이나 약해진 네 몸만 상할 뿐이지 소용 있느냐? 울었다구 네 맘이 풀릴 것두 아니구, 돌아가신 아저씨가 다시 오실 것두 아닌데 무엇 하게 그렇게 운단 말이냐, 아혀 그쳐라.”

하는 육촌형도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인호는 마지막에는 육촌형의 팔에 매달려서까지 울었다. 마치 자기의 모든 설움을 울음으로써 쓸어 버리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운다기보다 저 자신의 설움이…… 무참히도 패배하여 버리고 갈 곳 없이 된 제 신세에 울었던 것이다.

이윽고 육촌형에게 이끌려 자기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운명하셨다는 그의 집으로 돌아온 인호는 그제야 비로소 자기의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손으로 자결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촌형은 눈물로 세세히 이 얘기를 하였다.

너의 둘이 그렇게 된 후 아저씨는 거의 실신한 사람같이 매일 창경원에만 가셔서 우리 속에 독수리를 보시는 것을 일과로 삼으셨단다. 그 후 너의 둘이 일심에서 불복하고 공소를 하였을 때 갑자기 정신에 이상이 생기셨던지 자살을 하시려다가 곁사람들 눈에 뜨여서 소원을 못 이루시고 경찰서의 보호를 받으신다는 소식이 오자 그만 내가 올라가서 모시고 내려왔다.”

하고 육촌형은 잠깐 숨을 돌린 후,

만은 여기 와서도 두 번이나 저 앞 송정에서 목을 매시려다가 동네 사람들의 눈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하시구 결국 마지막에는 어디서 얻으셨는지 단도를 목에 대시구 그만.”

한 다음 뒤를 잇지 못하고 목놓아 엉엉 울었다.

그러나 인호는 웬일인지 점점 마음이 가라앉아 가고 머릿속이 싸늘하여지며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는 종일해를 무겁게 입을 다문 채 지난날의 추억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가도 그 추억이 끝나는 때면 그의 눈앞에는 다시금 아버지의 눈이 인순의 눈이 그리고 모든 동무들의 쌀쌀하고도 날카로운 그 눈들이 번갈아 떠오르며 괴롭게 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사차로 찾아오는 고향 사람들의 그 눈에도 싸늘한 얼음 가루가 날리는 것 같고 정답게 위로는 하여 주지만 그들의 말에는 마디마디 가시가 품겨서 가슴을 찔러 주는 것 같아 한시를 진정할 수가 없었다.

갈 길을 잃은 패배자!

그는 참담한 자기의 몸을 다시 한번 굽어보았다.

저녁상을 받았을 때 육촌형은 몇 번이나 망설이는 기색을 하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인호의 파리한 얼굴을 상 너머로 건너다보았다.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것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저씨처럼 그렇게 의지가 굳은 이는 세상에 그리 흔치두 않을 거다. 끝까지 자기의 의지를 꺾지 않는 그의 의기에는 누구든지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저씨는 항상 너의 둘을 원망하시고 세상을 원망하셨단다. 그러면서도 너의 둘을 그리워하는 그 정경이란 참으로 곁에서 볼 수가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그 모양을 나는 아저씨께서 비로소 처음 보았다.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미워하는 그 굳센 의지. 결국 꺾어는 져도 휘지는 않는다고 자기의 손으로써 약하여져 가는 자기 자신을 꺾어 버린 그의 기야말로 우리로서는 도저히 본받지 못할 일이다…….”

하고 그는 멈추었던 숟가락을 다시금 놀렸지만 방 안 전체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무 악의 없이 한 말이지만 육촌형의 그 말은 그 얼마나 자기를 비웃는 말인가?

인호는 부지중에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저녁상을 물린 후 으스레한 남폿불을 마주 앉아 둘은 괴로운 침묵에 잠겨져 있다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쳐다보고는 휘우하고 한숨 쉬었다.

인호는 육촌형의 시선을 피하여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육촌형은 몇 번을 한숨만 쉬더니,

인호!”

하고 갑자기 떨리는 소리로 부른다.

인호는 고개를 번쩍 들고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은 그 무슨 불안에 떨었다.

이것은 절대루 안 보이려구 한 것이지만.”

하며 육촌형은 윗목에 놓인 조그마한 궤짝을 엎더니 백지에 싼 것을 내놓았다.

인호는 쫄아드는 것 같은 마음으로 육촌형의 펴는 것을 보니 그것은 서울서 어느 때던가 보통학교 때에 자기와 인순이가 가지런히 서고 그 뒤에는 아버지가 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서서 박힌 사진이었다.

인호는 넋없이 사진을 집어 들고 들여다보았다. 정신이 아득하여지는 것 같았다.

사진에는 무엇인지 검은 점이 여러 군데에 찍혀져 있었다. 처음에는 먹이나 그 무슨 물감이 묻은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까 그것은 먹점도 아니었고 물감 같지도 않았다.

인호는 이상스러운 예감에 전신을 오싹 떨었다.

그런데 이 검은 점들은 무엡니까?”

하고 그는 육촌형의 얼굴을 쏘는 듯이 바라보았다.

육촌형의 낯색은 대번에 새파랗게 변하여지며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왜 대답을 못 하십니까? 네 형님! 이 검은 점들은 무엡니까?”

추급하는 인호의 표정은 극도로 긴장되었다.

육촌형은 백짓빛으로 된 얼굴을 번쩍 들었다.

…… 피다.”

……? 피라니요?”

인호의 얼굴 가죽은 닷치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숨쉬는 것도 잊은 듯이 육촌형의 입만 쳐다보았다.

아저씨 피다.”

한 다음 육촌형은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어 버렸다.

인호는 눈앞이 보얗게 흐리는 것 같고 구들과 천장이 뒤바뀌는 것 같아 벽에 기댄 후 두 눈을 고요히 감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그의 머릿속은 다시금 싸늘하게 갈앉았다. 그는 눈을 뜨고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육촌형은 칙칙 느끼는 소리로,

아저씨는 자기를 배반하고 간 너희 둘을 그렇게 원망하시면서도 그대로 밤낮 그 사진만 내놓고 보시다가 결국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두 그것을 앞에다 놓고 자결하셨단다.”

하고 땅이 꺼지는 듯한 긴 한숨을 뽑았다.

인호는 어느 때까지든지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구히 소멸되어 버린 아버지의 일생이 다시금 주마등같이 떠돌아갔다. 일생을 남에게 눌리며 밑바닥에서만 허덕이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앞날의 승리만 바라고 조금도 굴하는 양 없이 뻗대어 나가던 아버지!

꺾어는 져도 휘지는 않는다고…….

아내에게 배반을 당하고 자식들에게까지 배반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세상 모든 것에게 다 배반을 당한 후 단 혼자의 고독에 떨어져서도 오히려 자기의 의지를 꺾지 않고 가슴을 내밀고 나가던 그의 의기!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싸움에 지친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그만 배반하여 간 그 자식들을 앞에 놓고…… 아니 자기 자신이 그들의 앞에서 비장한 최후를 마치어 버린 그것을 생각하면!?

! 아직도 식지 않은 것 같은 피의 흔적!

그것은 무엇을 말하여 주고 있는가?

참패자의 심장을 찔러 주는 피!

패배를 비웃기 위하여 영구히 새겨 논 불멸의 기록!

부러는 져도 휘지는 말라고…….

! ! ! 피다.

인호는 부지중에 온몸을 오싹 떨었다.

그리고는 전신을 불사르는 그 어떤 결심에 이를 악물고 피의 흔적에서 어느 때까지든지 눈을 떼지 않았다. 출전:조선중앙일보(1935.7.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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