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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妻子)

처자(妻子)

채만식

 

오후, 강변으로 장작이든 무얼 좀 살까 하고 나갔다가 허행을 하였다.

강에는 많은 뗏목이 내려와 밀렸고, 일변 뜯어 올려다 쌓고 하였다. 강언덕은 온통 뗏목 뜯어 쌓은 걸로 묻히다시피 하였다.

장작도 마침 큰 배로 두 배나 들어와서 한편으로 푸면서, 한편으로 달구지에다 바리바리 실으면서 하고 있었다.

뱃장작을 도거리로 산 당자인 듯, 자가사리수염에 마고자짜리가 이럭저럭 분주히 납뛰고 있어

"장작 좀 살 수 있을까요?"

하였더니, 선뜻

", 몇 차나 쓰시렵쇼?"

하면서 굽실한다.

시재라야 이십 원밖에 없었다. 그중 십 원은 가용을 써야 하고, 십 원으로 장작이면 한 오십 관, 솔가지 같으면 한 삼십 단 살 요량이었는데, 더럭 몇 냔 소리에 그만 오갈이 들어, 오십 관 말은 차마 못 내고

", 백관만……"

하기를, 그나마도 무서무서히 하였다.

"배액 관입쇼?"

자가사리수염은 아니나다를까, 잔뜩 그렇게 시뻐하면서, 이 근친스런 나그네를 위아래로 한 번 씻어보더니

"그런 장거린 드릴 수 없음다……"

하는, 말보다 먼저 저리로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다. 공으로 나무를 얻으러 왔다가 거절이나 당한 것처럼, 얼굴이 화틋 달고 무렴하였다.

뗏목은, 뜯어쌓은 지가 오랜 걸로, 잘 말라서, 켜가지고 빠개기만 하면 곧 땜즉한 것도 무더기 무더기 많이 쌓여있었으나, 장작을 백 관 따위는 잔거리라서 팔지 않는다는데, 황차 뗏목이리요. 물어보기조차 부질없는 노릇, 이내 발길을 돌이키고 말았다. - 그러고서 돌아와 하릴없이, 헌 궤짝을 쭈그리고 않아 부서뜨리고 있자니, 심사 자못 울적치 아니치 못하였다.

이사할 때 잔 세간을 넣어가지고 온 희연 궤짝 두개다. 두 개를 죄다 부서뜨렸자 하루 뗄 나무가 될까말까 한 것이 소리만 동네가 떠나가게 요란타.

아내가, 하도 을씨년스런지,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부엌 문지방에 지여 섰다가 푸뜩 걱정이

 

"오늘은 그거래두 땐다구…… 낼은 또 어떡헌다우?"

한다.

나는 반 일그러진 노루발, 휘어붙인 못 한 개를 뽑기에 있는 힘을 다 들이면서 천천히 물었다.

"내일두 불을 때야 하나?"

"그럼, 안 때요?"

"반드시?"

"밥이야 온, 숱이 조금 있으니 풍로에래두 익혀 먹는대지만, 젤 어린애 때문에 군불을 안 때구 어떡허우?"

"내일일랑 그럼, 양복장쯤 부시기루 하나?"

"이왕이거들랑 당신 책상 먼점 부셔 땝시다?"

"책상은, 하여커나 수입의 도구니깐, 맨 마주막으루 일어야 아니허우?"

남의 앞에 나가서는, 심지어 강변의 장작장수한테까지도, 걸핏만 하여도 주눅이 들어, 억지는 고사요, 필요 혹은 떳떳한 의사의 표시나, 자아(自我)와 사리(事理)의 주장을 변변히 하지 못하곤 하는, 천하의 소심 옹졸한 주변이었으나, 다만 집에서 아내에게만은 썩 조리 있고 침착하고 능청스럽고 한 달변가(사실은 궤변가)일 수가 있었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사람, 억지와 궤변을 받아주는 사람, 이를테면 만만한 사람이라곤 오직 그 사람밖에 없었다.

"옛날 남산골 어떤 선비양반 하난 그랬드라우……"

아내가 하는 말이었다.

"하두우 살기가 구차해, 집 기둥을 다 깎아 군불을 땠대든가, 온 밥을 해 먹었대든가. 우리두 아마 그 짝이 날려나 보우?"

"우리야 그 보담은 아직 좀 나은 편이지!"

"낫긴 무어가 나우?"

"남구 살 돈이, 십 원 내지 이십 원은 당장 있으니깐…… 정 다급하면 십 원째리 지전으루 불을 때드래두……"

"그 양반은 기둥이나마 깎아 땔 집이나 있었다우! 우린 남의 셋집 아녜요? 남의 집을 기둥을 막 깎아 때요?"

"무릇 존재한 것의 가치의 변화란 이대지 무상한 법야!……"

나는 궤짝 가를 선 두른 생철띠를 잡아떼느라고 지지리 승강을 하고 있었다.

", 방울집게가 있으면 꼬옥 좋겠다만서두!……"

", 누구네 집에 보니깐 방울집게가 있습디다만……"

"이 생철띠가, 이게, 궤짝이 본래의 궤짝일 시절엔, 궤짝을 튼튼하게 하는 소임을 하느라구 어엿이 존재할 이유와 가칠 지녔든 것인데…… 궤짝이 하루아침 땔나무거리루 전락을 한즉슨, 든든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구서, 되려 방해스럽기만 하니?…… 으응 생철띠가 없었드라면 조옴 부셔 때기가 편해?"

"애야 그러니깐, 궤짝을 부셔, 땔나무허기가 불찰 아니우?"

"운명인저!"

"방울집게 좀 빌려다 드리우?"

"대저, 재능이나 혹은 기술의, 사람과의 관계 역시 절실히 이와 방사한 바 있음인저!"

그러면서 이를 악물고, 암만해도 잡아떼어지지 않는 생철띠에의 울분을 참지 못해 꽝꽝 노루발을 휘둘러 궤짝을 짓이겨대었다. 손 가까이 절굿공이라도 없는 것이 한이었다. 이미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잃어버린 재능이나 기술의 질곡(桎梏)이란 참으로 화가 나는 것이었었다.

소리는 더욱 요란하여, 가까스로 재워 뉜 어린 놈 선잠만 깨워놓았다. 한번이나 잠이라고 들려면 으례 삼사십 분씩 한 시간씩 삐대는 아이였다. 아직 생후 팔 개월이라 매일 너댓 차례씩은 잠을 자야 하면서도, 그 한 번인들 젖꼭지를 문 채, 또는 다독거리는 대로, 순히 잠이 드는 적을 본 일이 없었다. 그런 아이를 가뜩이 선잠은 깨어놓았으니, 아내의 칭원이 졸연할리 없었다.

들어가면서 한바탕 사설이 있었음은 물론 칭으리는 놈을 안고 마루로 나와 서성거리면서는, 잠들고 깨고 하는 것까지 너의 아버지만 닮을 건 무엇 있느냐고, 신경이 벌써부터 이렇게 예민하다간 자라서 직업도 너의 아버지를 딸치 않겠느냐고, 부디 그러지 말라고, 우리 양()이는 소설 쓰면 엄마 착한 아들 아니니라고, 늘 하는 소리를 자장노래삼아 또 뇌고 있다.

이유는 서로 다르나, 자식으로 하여금 문학을 시키지 말고 싶은 생각은 나 역시 아내와 일반이었다.

이즈음 더우기, 소설을 쓰기란 마치 모래바탕을 걷기같이 타박타박 헷심만 쓰이고, 흥이라곤 꼬투리도 나지를 않았다. 그러는 것을, 쓴 약 먹듯이 찡그리고 앉아 며칠씩 승강을 하여가며 가까스로 한 편 겨우 마쳐 가지고 읽어 보느라면, 흡사 그 걷던 모래바탕의 모래를 한 줌 쥐어 넣고 씹기같이, 맛도 향기도 운치도 다 없고, 입맛만 고약스런 것이곤 하였다. 그러하건만, 당장 미염(米鹽)의 거리를 위하여, 억지로 아직껏 쓰고 있기는 하던 것이나, 요새 같아서는 참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 큰 형벌을 치르기였다. 자연 자식을 이끌어 그런 고생길로 들게 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돌려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부모로서 자식의 전문(직업), 절대로는 결정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또 새로운 제너레이션도 나처럼 고생스런 문학을 하란 법은 없는 것이었다.

궤짝 부수는 소리에 지나다간지 재술할머니라는 동넷집 노인이 끼웃하면서

"이 집은 세간살이 고만 하나보다?"

하고 들어선다.

"어서 옵쇼!...... 세상 귀치않아, 죄외 뚜드려부시구 말랩니다!"

"그래 쓰우? 몸으루 돌봐, 좀 참으슈!"

", 을 살수가 있어예죠? 돈을 가지구두……"

푸달지게 가진 돈 소리는 끄은히 하면서, 아내가 말을 거드는 것이다.

"강변에 장작이 두 배나 둘와서, 모두 실어나르구 허믄서두 글쎄, 몇 찬 팔아두, 백 관만 팔래니까는 적다구 아니 판대는군요!"

"그래, 을 못 사, 아깐 궤짝을 부시구랴?"

"불은 때야 허구, 어떡헙니까?"

"온 그렇거들랑 아순 대루 우선 톱질깐으 가, 죽데기래두 사다 때겠지! 때긴 좀 헤퍼두……"

톱질간이란 제재소요, 죽더끼는 제재하고 난 지스러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낯 보아 판다고 들었는데, 노인은 아쉰 대로 우선…… 이라면서, 쉬운 양으로 말을 하였다. 아무나 가도 파느냐고 물었더니 팔다뿐이냐고 한다.

그렇다면 허실삼아 가보는 것이라고, 마침 한 개를 다 부수고 난 길에, 쉬기도 할 겸, 마룻전으로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뭇 저 땀이 나구!…… 원판 약헌 몸이 돼 힘이 부쳐 그러구려!……"

노인은 그러다가 또 손가락 처맨 것을 보고 더욱

"손을 다 다치구!"

"서투른 솜씰수룩 일은 더 저즈른다구 아니헙니까?"

"그리게!…… 다아 참 선비라니 조용히 앉어 글이나 허두룩 마련인걸 가지구 저렇게 해보지 않는 노릇을 허자니……"

"옛말이죠!"

"그럼, 옛날이야 선비가, 어딜!......"

"그런, 조용히 글이나 허구 앉었기루 마련한 옛날 세상에 나들랑 않구서, 다아 늦게 선비 만년(晩年)에야 생겨났다. 선비 구실두 선비 구실답게 못허구, 머슴 구실두 머슴 구실답게 못허구, 애맨 이 봉변입니다 그려!"

촌 노파를 데리고, 어디 당한 소릴까마는 무심중(자탄같이)나와진 말이었었다.

제재소 주인은 서른댓이나 된 젊은이로, 전화도 몇 번 빌리러 갔었고, 시내 내왕의 기동차칸에서 종종 만나고 하는 사람이었다. 눈이 크고 검고, 눈썹이 짙고, 그리고 언제 보아도 입에서 담배가 떠난 적이 없고 하여, 인상이 특별히 깊었었다.

여전히 담배는 입에 물고, 나무를 조금 얻으러 왔노라 하였더니

"댁에서 때실 겁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고는 내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묻는지 몰라 하는 것을

"혹 타동으루 보내실 소용이면 드릴게 없습니다. 박절한 것 같지만, 동네서 조금씩 노놔 때게두 모자라는데, 번연히 타동으루 내보내 되겠습니까?"

하고 설명이 자상하다. 강변의 그 자가사리수염에 비하여 이런 상등지인이 이 고장에도 있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이따가든 내일이든 삯군을 얻어가지고 와 달아 가기로 하고, 백 관 값 십사 원을 치르었다.

돌아와, 중문간에서 아내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섰는데, 윤동이가 누구네 것인 것 타작한 볏가마니를 지고 지나갔다.

"윤동이, 내일 일 마춘 데 없소?"

"아뇨."

"내일 우리 일 하루 해줄료?"

"글쎄요……무언뎁쇼?"

"죽데길 한 백 관 샀는데……"

"걸 져나르겝쇼?"

"져나르구, 굵은 건 대강 좀 빠개구 해야 할까 봐?"

"낼 일 못헐까 본뎁쇼?"

"어째?"

"발을 다쳤죠!"

"그럼, 삯군을 하나 사주든지?"

"글쎄요…… 알아봅죠!"

"당장, 땔 게 없어 그러니, 내일 부디 하나 좀 사주구려?"

"요새, 마당질에 바빠서, ……"

"삯 받긴 일반 아니요?"

"건 그렇습죠만……"

이튿날 새벽이었다. 아직 자리에 누웠는데, 마당에서 아내와 윤동의 아낙과의 사이에 다음과 같은 회화가 들렸다.

"삯군 못 샀으니, 달리 구해보시라구요!"

"웬만허거들랑, 애아버지래두 좀……"

"벌써 일 간걸요!"

"발 다쳤다믄서?"

"발 좀 다친 핑계허구섬, 일벌이 아니해 어떡허자구요?"

나는 차라리, 어떤 핍절한 것이 가슴에 엉키고, 쓴웃음도 나와지지 않았다.

아내가 문소리를 약간 거칠게 내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세상, 이런 인심이 어딨수?"

"예사지!"

"아무리, 무지막지허구 인정머리 없는 것들이기루니……"

"그게 되려 인지상정이겠지!"

"도적의 인심이지 상정예요? 이웃간에 그래, 당장 나무가 없어 불을 못 땐닷 소릴 듣구두, 발 다쳐 일 못헙네 허드니, 기껏 딴덴 일을 가믄서……그래야 옳아요?"

"물은 낮은 데루 흐루고, 정은 가차운 데루 기울게 마렸이어든! 오늘 일간 그 집이 우리허구보담 아마 가찹든 모양이지!"

"다 같은 삯 받구, 일 하루 해주게 멀구 가찹굴 어째 가리우? 경오루 해두 우리가 먼점 말을 했으니깐 우릴 먼점 해주어예죠!"

"소위 정실이란 거 아뇨? 내가 윤동이한테야 무어요? 단지 한 동네 한 이웃에서나 살 뿐이지, 내가 그 사람네 모 한 포길 꽂아주었소? 김 한 포길 매주었소? 아무, 유관할 것두 대단스럴 것두 없는 사람 아뇨?……"

", 그럴래서야……"

"나는 명색이 소설가. 그 사람은 시체 노무자. 나는 그 사람 덕을 많이 보았지! 여름내 그 사람네 가서 채솔 사다 먹은 것만 해두 어디요? 나야 그렇지만 소설을 써가지구 무얼 그 사람을 질겁게 해준 것이 있소? 그 사람이 소설 읽우? 읽은들 재밀 아우? 애당초에 소설가니 문학이니 따윈 그 사람네한텐 아무런 생각두 없는 존재어든! 오히려 명색 없는 존재라구 해야 적절할는지 몰라!"

"도야지에 진주라구나 허시우!"

"나쁘게 말하면 그렇겠지!"

"사실이지 무어요?"

"하여튼, 그런 명색두 생각두 없는 소설가보담은, 자기네 노동하는 사람끼리가 서루 유관허구 가차울 밖에 더 있소?"

"그러니깐 되놈의 인심이죠!"

"허어! 명색없는 존재가 부질없이 존잴 주장허니, 주장이 돼지우?"

"억담 고만저만 해두슈!.....누가 자기더러 공으루 일 해달랬습디까? 버젓한 삯 주맸지!"

"그 삯 줄 돈이 어떻게 해 생긴 돈이길래?"

"당신 골 받두룩 앉아, 소설 쓴 원고료지 무어요?"

"누굴 위해 쓴 소설인데? 그 고객(顧客)이 누군데?"

"아무가 됐든, 힘들여 소설 써다 주구, 정당허게 받은 돈이면 고만이지, 지전 귀탱이다, 이건 노동해 품삯 받은 돈, 이건 소설 원고료 받은 돈, 그렇게 갈라서 적어 놨댑디까?"

"적혔으나 다름없지! 그렇길래, 다 같은 하루 품삯 삼 원이면 삼 원을 준대는 데두 내 돈은마다허구, 딴데루 일을 가는 거 아뇨?"

"원고료 받은 돈은 아마 사주전(私鑄錢)이든감?"

"그 이하지!"

"내 참, 기가 맥혀……"

아내는 그만 웃어버리고, 도로 밖으로 나간다.

아내는 웃던 것이나(근들 유쾌해 웃었을 바야 없지만) 나는 조금도 웃음엣소리가 아니었다. 변설의 희롱도 아니었다. 살이 아프도록 진정의 말이었다.

턱을 괴고 엎드려, 담배를 붙여 물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역시 하루바삐 변통을 내어야 옳으니라고.

무어나, 힘들지 않는 일로, 직업을 얻고자 두루 생각하는지 오래였다. 편안한 걸 취해서의, 힘들지 않는 일이 아니었다. 몸이 약하고 근력이 부치니, 그러한 체력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야 되겠으므로였다.

가장, 회사 방면의 사무원이 좋기는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글씨가 형편없이 악필이 되어서, 어떤 의미로는, 제일 적당치 못한 것이 나에게는 사무원이랄 수도 있었다. 또 기질로 하더라도 심히 불규칙성이요 루즈하여, 매일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장소에 나아가 똑 같은 문서처리 등속의 일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사무보기에 제법 견딜 만한 재목도 막상 아니었다.

신문이나 잡지 방면이라면 일찍이 종사한 일도 누차 있고 하여, 과히 손속은 서툴지 않겠지만, 되도록이면 이 계제에 문필세계로부터 완전히 손을 씻고 싶었을뿐더러, 지금 새삼스럽게 사십객의 먼지 낀 퇴직 저널리스트를 무엇에 쓰자고 털어내세울 궁벽스런 신문잡지도 있을 며리가 없었다.

장사는 화중지병이었다.

노동은 근력이 부치고, 또 배운 적이 없어 할 줄도 몰랐다.

공장노동이라면 모르되, 꿍꿍 땅 파고 지게질하고 하기야 배우지 않더라도 아무나 하면 될 것같이 생각들을 하지만, 노상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태생이 농촌이라 잘 알고 있거니와 어려서부터 노동으로 잔뼈가 굵고 살이 굳어진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다. 가령 노동에 감내할 만한 체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잠시 한때 노동자의 하는 일을 흉내는 낼 수는 있을지언정, 직업적으로 오래도록 계속하여 하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렇거늘, 황차 실 체중이 십삼 관이 될까말까하고, 뿔괭이 한 개를 둘러메면 연장 무게만으로 힘이 다 차지는 판판 약질이리요.

지나간 여름인데, 이런 일도 있었다. 소위 애국반에서 강제로 마초(馬草)를 하게 되어, 나도 낫 한 가락을 빌려가지고, 여럿을 따라 뒷멧갓으로 올라갔다. 반장은 웃으면서, 차라리 삯군을 하나 사서 대라고 하였으나 살 삯군도 만만치 않거니와, 풀 한 너 관쯤이야 못 벨까 보냐고 선뜻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가서, 하자고 든즉은 마음과는 딴판이었다. 남들은 담배까지 붙여물고, 한담, 잡담 하여가면서, 힘 하나 안들이고 슬쩍슬쩍 하는 낫질이건만 순식간에 큰 한 동씩 필요한 분량을 해서, 묶어서, 척척 둘러메고 나서는데, 그럴 동안 나는 남이 한 열에 한 깐이나 하였을까. 그러고도 낫에 한 곳. 억새에 두 곳, 도합 세 곳이나 손가락을 베어, 철철 피가 흐르고…… 진실로 나에게는 너 관의 마초를 장만하기란, 너 관짜리 소설을 한편(웬만한 소설이 두 관 무게가 나간다고 하고) 쓰기보다도 더 역량불급(力量不及)이로다고 홀로 한숨지어 마치 아니하였었다. 게다가 우황, 토지라고는 송곳 꽂을 자리도 없는 사람이, 농사라니 애당초에 생각조차 부질없는 말이었다.

농사도 노동도, 장사나 사무원도, 그리하여 모두가 나에게는 능력과 자격이 부치는 것이었다. 부득이, 그 이외에 달리, 소위

힘들지 않는 일로……

라면서, 무어나 마차운 직업거리를 여새기지 아니치 못하던 것이나. ···상 다 젖혀놓고서 좀처럼 하염직한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자연, 백 번 천 번 궁리를 하였자 묘안은 나서지 않고, 결국은 배운 재주가 그뿐이니 속절없이 소설이나 써먹고 마나보다 싶으면서, 무연히 앉아 탄식할 따름이었다.

조반 후……

일할 채비를 차리고 앉았는데, 아내가 어린 놈을 안고 건너온다. 쓰다가 밀쳐둔 채, 두 번이나 그동안 기일을 어겼고, 마지막 내일 아침으로 단단히 약조한 ⭘⭘사의 원고였다. 오늘 하루 잘 매달려, 한 이십 매 더 써 보태서 끝을 마쳐가지고 내일 아침 일찌감치 들어갈까 한 것이, 또 방해가 붙는 모양이었다. 잡지사의 사정을 보아서보다도, 원고를 가져다주고 그 자리에서 고료 선하를 받아와야만, 내일 모레 그믐날 집세도 물고, 초하룻날 배급 쌀도 사고 하겠기에, 실상은 내가 더 급한 판이었다.

일을 붙잡은 것을 보고 아내는 차마 어린놈을 떠안기지 못해하다가

"이 댐번이나 가지?"

하였더니

"캘 때라야 헌대요!……"

하면서

"업구 갔다 오지요!"

한다.

아까 조반때 밥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말이, 요새 철교 건너편 광주벌에서 고구마를 한참들 캐는데, 두서너 관씩은 사가지고 건너와도 감시원이 말리지 않는다더라고, 어제도 여럿이 거서 사가지고 오고, 오늘도 누구네 어머니, 누구네 아주머니 해서 한패가 간다고 하니, 넉넉한 세시간만 어린놈을 데리고 놀아주면 따라갔다 오겠노라는 청이었었다. 섣불리 야미 혐의나 받아, 봉변이나 않겠느냐고 다지니, 공정가격에 판다더라고.

고구마가 젖이 알아보게 잘 나는 것은 그동안 몇 차례 광우리 장수한테 찐걸 사먹어 보고 징험을 하였을 뿐 아니라, 모자라기 쉬운 배급 쌀에 약간의 보탬도 될 터이요 하여, 구태여 막을 의사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이 찬 일기에 어린놈을 업고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노상, 온실의 꽃처럼 소극적으로 가꾸는 바는 아니었다. 옷 같은 것도 다른 집 아이에다 대면 엷게 입히는 편이요, 일광과 대기를 많이 쐬어주어 저항력을 기르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변으로 기온이 한꺼번에 떨어져가지고 별안간에 겨울 날씨를 하는 이 추위에 여러 시간을 강벌로 나가 돌아다니기에는 피부나 기관(氣管)이 아직 연하였다. 사십에 처음 비로소 자식이라고 생긴 것이었다. 감기쯤 앓으면 어떠냐고, 마음 한구석이라도 매양 범연커나 할 수는 없는 애물이었다.

어린놈은, 와서 안기겠다고, 팔을 벌리고 부스대면서 그 알량한 내따내따 소리를 질러 쌌는다. 그럴 적마다 새하얀 아랫니 두 개가 해끗 웃고 해끗 웃고 한다 유아의 처음으로, 뾰족이 두 개 나온 아랫니처럼 새로이 귀염스런 것도 드물 것이다.

"저 이빨, 미워 어떻게?"

일할 생각은 벌써 십리나 달아나고, 웃음이 어느덧 빙그레 괴었다. 늘 웃는다. 꼬물꼬물 노는 양을 보고 있느라면 저절로 미소가 난다. 무어나 재롱을 부리면 무심코 허허 웃는다. 집안에서 별로이 웃을 일이 없던 사람이 어린 놈 하나가 생겨나면서 웃음이 생겼었다. 웃음이 인생의 으뜸가는 낙일진댄 웃음 없던 나에게 웃음이 생겼으니, 정년 복()의 탄생이라 할 것이었다. 큰 걱정과 부담의 탄생인 것이야 더 말해 무삼 하리요-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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