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明)1)
이광수
입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병감2)으로 보냄이 되었다. 병감이래야 따로 떨어진 건물이 아니고, 감방 한편 끝에 있는 방들이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일방이라는 방으로, 서쪽 맨 끝 방이었다. 나를 데리고 온 간수가 문을 잠그고 간 뒤에 얼굴 희고 눈 맑웃맑웃한 간병부가 날더러
“앉으시거나 누우시거나 자유에요. 가만가만히 말씀도 해도 괜찮아요. 말소리가 크면 간수한테 걱정 들어요.”
하고 이르고는 내 번호를 따라서 자리를 정해주고 가버렸다. 나는 간병부에게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뜻을 표하고 나보다 먼저 들어와 있는 두 사람을 향하여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였다.
이때에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옛날 조선식으로 내 팔목을 잡으며
“아이고 진상이시오. 나 윤OO이에요.”
하고 곁방에까지 들릴 만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C경찰서 유치장에서 십여 일이나 나와 함께 있다가 나보다 먼저 송국3)된 사람이다. 그는 빼빼 마르고 목소리만 크고 말끝마다 O대가리라는 말을 쓰기 때문에 같은 방 사람들에게 O대가리라는 별명을 듣고 놀림감이 되던 사람이다. 나는 이러한 기억이 날 때에 터지려는 웃음을 억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윤씨는 옛날 조선 선비들이 가지던 자세와 태도로 대단히 점잖게, 내가 입감된 것을 걱정하고 또, 곁에 있는 ‘민’이라는 껍질과 뼈만 남은 노인에게 여러 가지 칭찬하는 말로 나를 소개하고 난 뒤에 퍼렁 미결수 옷 앞자락을 벌려서 배와 다리를 온통 내놓고 손가락으로 발등과 정강이도 찔러보고 두 손으로 뱃가죽도 잡아당겨보면서,
“이거 보세요. 이렇게 전신이 부었어요. 근일에 좀 내린 것이 이 꼴이요. 일동 팔방에 있을 때에는 이보다도 더했는디.”
전라도 사투리로 제 병 증세를 기다랗게 설명하였다. 그는 마치 자기가 의사보다 더 잘 자기의 병 증세를 아는 것같이. 그리고 의사는 도저히 자기의 병을 모르므로 자기는 죽어 나갈 수밖에 없노라고, 자탄하였다. 윤씨 자신의 진단과 처방에 의하건대, 몸이 부은 것은 죽을 먹기 때문이요, 열이 나고 기침이 나고 설사가 나는 것은 원통한 죄명을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화기라고 단언하고, 이 병을 고치자면 옥에서 나가서 고기와 술을 잘 먹는 수밖에 없다고 중언부언한 뒤에 자기를 죽이는 것은 그의 공범들과 의사 때문이라고 눈을 흘기며 소리를 질렀다.
윤씨의 죄라는 것은 현 모(玄 母), 임 모(林 某) 하는 자들이 공모하고 김 모(金 某)의 토지를 김 모 모르게 어떤 대금업자에게 저당하고 삼만여 원의 돈을 얻어 쓴 것이라는데, 윤은 이 공문서, 사문서 위조에 쓰는 도장을 파준 것이라고 한다. 그는,
“현가 놈은 내가 모르고 임가 놈으로 말하면 나와 절친한 친고닝게, 우리는 친고 위해서는 사생을 가리지 않는 성품이닝게, 정말 우리는 친고 위해서는 목숨을 아니 애끼는 사람이닝게, 도장을 파주었지라오. 그래야 진상도 아시다시피 내가 돈을 한 푼이나 먹었능기오? 현가 놈 임가 놈 저의들끼리 수만 원 돈을 다 처먹고, 윤OO이 무슨 죄란 말이야?”
하고 뽐내었다.
그러나 윤의 이 말은 내게 하는 말이 아니요, 여태까지 한방에 있던 ‘민’더러 들으라는 말인 줄 나는 알았다. 왜 그런가 하면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에도 첫날은 지금 이 말과 같이 뽐내더니마는 형사실에 들어가서 두어 시간 겪을 것을 겪고 두 어깨가 축 늘어져서 나오던 날 저녁에 그는 이 일이 성사되는 날에는 육천 원 보수를 받기로 언약이 있었던 것이며, 정작 성사된 뒤에는 현가와 임가는 윤이 새긴 도장은 잘되지를 아니하여서 쓰질 못하고, 서울서 다시 도장을 새겨서 썼노라고 하며 돈 삼십 원을 주고 하룻밤 술을 먹이고 창기집에 재워주고 하였다는 말을, 이를 갈면서 고백하였다. 생각건대는 병감에 같이 있는 민씨에게는 자기가 무죄하다는 말밖에 아니 하였던 것이 불의에 내가 들어오매 그 뒷수습을 하느라고 예방선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또 한 번 웃음을 억제하였다.
껍질과 뼈만 남은 민씨는 밤낮 되풀이하던 소리라는 듯이 윤이 열심히 떠드는 말을 일부러 안 듣는 양을 보이며 해골과 같은 제 손가락을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끙 하고 일어나서 똥통으로 올라간다.
“또, 똥질이야.”
하고 윤은 소리를 꽥 지른다.
“저는 누군만 못한가?”
하고 민은 끙끙 안간힘을 쓴다.
똥통은 바로 민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데 볼 때마다 칠 아니 한 관을 연상케 하였다. 그 위에 해골이 다 된 민이 올라앉아서 끙끙대는 것이 퍽이나 비참하게 보였다. 윤은 그 가늘고 날카로운 눈으로 민의 앙상한 목덜미를 흘겨보며,
“진상요. 글쎄 저것이 타작을 한 팔십 석이나 받는다는디, 또 장남 한 자식이 있다는디, 또 열아홉 살 된 여편네가 있다나요. 그런데두 저렇게 제 애비, 제 서방이 다 죽게 되어두, 어리친4) 강아지새끼 하나 면회도 아니 온단 말씀이지라오. 옷 한 가지, 벤또 한 그릇 차임하는 일도 없고. 나는 집이나 멀지. 인제 보아. 내가 편지를 했으닝게, 그래도 내 당숙이 돈 삼십 원 하나는 보내줄게요. 내 당숙이 면장이요. 그런디 저것은 집이 시흥이라는디 그래, 계집년 자식새끼 얼씬도 안 해야 옳남? 흥, 그래도 성이 민가라고 양반 자랑은 허지. 민가문 다 양반이어? 서방도 모르고 애비도 모르는 것이 무슨 빌어먹다 죽을 양반이어?”
윤이 이런 악담을 하여도 민은 들은 체 못 들은 체. 인제는 끙끙 소리도 아니 하고 멀거니 앉아 있는 것이 마치 똥통으로 내려오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민의 대답 없는 것이 더 화가 나는 듯이 윤은 벌떡 일어나더니 똥통 곁으로 가서 손가락으로 민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글쎄 내가 무어랬어? 요대로 있다가는 죽고 만다닝게. 먹은 게 있어야 똥이 나오지. 그까진 쌀뜨물 같은 미음 한 모금씩 얻어먹는 것이 오줌이나 될 것이 있어? 어서 내 말대로 집에다 기별을 해서 돈을 갖다가 우유도 사먹고 닭알도 사먹고 그래요. 돈은 다 두었다가 무엇 하자닝게여? 애비가 죽어가도 면회도 아니 오는 자식 녀석에게 물려줄 양으로? 흥, 흥, 옳지, 열아홉 살 먹은 기집이 젊은 서방 얻어서 재미있게 살라고?”
하고 민의 비위를 박박 긁는다.
민도 더 참을 수 없던지,
“글쎄, 웬 걱정이야? 나는 자네 악담과 그 독살스러운 눈깔 딱지만 안 보게 되었으면 좀 살겠네. 말을 해도 헐 말이 다 있지. 남의 아내를 왜 거들어? 그러니까 시굴 상것이란 헐 수 없단 말이지.”
이런 말을 하면서도 민은 그렇게 성낸 모양조차 보이지 아니한다. 그 옴팍눈이 독기를 띠면서도 또한 침착한 천품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날마다 몇 차례씩 윤은 민에게 같은 소리로 그를 박박 긁었다. 민은 그 소리가 듣기 싫으면 눈을 감고 자는 체를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여름 하늘의 구름이 나는 것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민이 침착하면 침착할수록 윤은 더욱 기를 내어서 악담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반드시 열아홉 살 된 민의 아내를 거들었다. 이것이 윤이 민의 기를 올리려 하는 최후 수단이었으니 민은 아내의 말만 나면 양미간을 찡기며 한두 마디 불쾌한 소리를 던졌다.
윤이 아무리 민을 긁어도 민이 못 들은 체하고 도무지 반항이 없으면 윤은 나를 향하여 민의 험구를 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도무지 민이 의사가 이르는 말을 아니 듣는다는 말, 먹으라는 약도 아니 먹는다는 둥, 천하에 깍쟁이라는 둥, 민의 코끝이 빨간 것이 죽을 때가 가까워서 회가 동하는 것이라는 둥, 민의 아내에게는 벌써 어떤 젊은 놈팡이가 붙었으리라는 둥, 한량없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러다가 제가 졸리거나 밥이 들어오거나 해야 말을 끊었다. 마치 윤은 먹고, 민을 못 견디게 굴고, 똥질하고, 자고, 이 네 가지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병 타령과 공범에 대한 원망이었다. 어찌했으나 윤의 입은 잠시도 다물고 있을 새는 없었고, 쨍쨍하는 그 목소리는 가끔 간수의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간수가 돌아선 뒤에는 곧, 그 쨍쨍거리는 목소리로 간수에게 또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윤 때문에 도무지 맘이 편안하기가 어려웠다. 윤의 말은 마디마디 이상하게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였다. 민에게 하는 악담이라든지, 밥을 대할 때에 나오는 형무소에 대한 악담, 의사, 간병부, 간수, 자기 공범, 무릇 그의 입에 오르는 사람은 모조리 악담을 받는데 말들이 칼끝같이 바늘끝같이 나의 약한 신경을 찔렀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마음에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것인데, 윤은 내게 이러한 기회를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가 재재거리는 말이 끝이 나서 ‘인제 살아났다’하고 눈을 좀 감으면 윤은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그는 두 다리를 벌리고 배를 내놓고 베개를 목에다 걸고 눈을 반쯤 뜨고 그러고는 코로 골고, 입으로 불고, 이따금 꺾꺾 숨이 막히는 소리를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백일해 기침과 같은 기침을 하고 차라리 그 잔소리를 듣는 것이 나은 것 같았다. 그럴 때면 흔히 민이,
“어떻게 생긴 자식인지 깨어서도 사람을 못 견디게 굴고 잠이 들어서도 사람을 못 견디게 굴어.”
하고 중얼거릴 때에는 나도 픽 웃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저 배 가려, 십오 호, 저 배 가려. 사타구니 가리고. 웬 낮잠을 저렇게 자? 낮잠을 저렇게 자니까 밤에는 똥통만 타고 앉아서 다른 사람을 못 견디게 굴지.”
하고 순회하는 간수가 소리를 지르면 윤은,
“자기는 누가 자거디오?”
하고 배와 사타구니를 쓸며,
“이렇게 화기가 떠서, 열기가 떠서, 더워서 그래오!”
그러고는 옷자락을 잠깐 여미었다가 간수가 가버리면 윤은 간수 섰던 자리를 그 독한 눈으로 흘겨보며,
“왜 나를 그렇게 못 먹어 해?”
하고는 다시 옷자락을 열어젖힌다.
민이 의분심에 못 이기는 듯이,
“왜, 간수 말이 옳지. 배때기를 내놓고 자빠져 자니까 밤, 낮 똥질을 하지. 자네 비위에는 옳은 말도 다 악담으로 들리나 봐. 또 그게 무에야, 밤, 낮 사타구니를 내놓고 자빠졌으니?”
그래도 윤은 내게 대해서는 끔찍이 친절하였다. 내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인 것을 안다고 하여서, 그는 내가 할 일을 많이 대신 해주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말씀하시란게요. 왜 일어나시능기오?”
하고, 내가 움직일 때에는 번번이 나를 아끼는 말을 하여주었다. 내가 사식 차입이 들어오기 전 윤은 제가 먹는 죽과 내 밥을 바꾸어 머기를 주장하였다. 그는
“글쎄 이 좁쌀 절반 콩 절반, 이것을 진상이 잡수신다는 것이 말이 되능기오?”
하고 굳이 내 밥을 빼앗고, 제 죽을 내 앞에 밀어놓았다. 나는 그 뜻이 고마웠으나 첫째로는 법을 어기는 것이 내 뜻에 맞지 아니하고 둘째로는 의사가 죽을 먹으라고 명령한 환자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죄스러워서 끝내 사양하였다. 윤과 내가 이렇게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민은 미음 양재기를 앞에 놓고, 입맛이 없어서 입에 댈 생각도 아니 하면서,
“글쎄 이 사람아, 그 쥐똥 냄새 나는 멀건 죽 국물이 무엇이 그리 좋은 게라고 진상에게 권하나? 진상, 어서 그 진지를 잡수시오. 그래도 콩밥 한 덩이가 죽보다는 낫지요.”
하면 윤은 민을 흘겨보며,
“어서 저 먹을 거나 처먹어. 그래도 먹어야 사는 게여.”
하고 억지로 내 조밥을 빼앗아 먹기를 시작한다.
나는 양심에 법을 어긴다는 가책을 받으면서도 윤의 정성을 물리치는 것이 미안해서 죽 국물을 한 모금만 마시고는 속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자리에 와 누워버린다.
윤은 내 밥과 제 죽을 다 먹어버리는 모양이다. 민도 미음을 두어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 돌아와 눕건마는 윤은 밥덩이를 들고 창 밑에 서서 연해 간수가 오는가 아니 오는가를 바라보면서 입소리 요란하게 밥과 국을 먹고 있다.
민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그저 좋은 배갈에 육회를 한 그릇 먹었으면 살 것 같은데.”
하고 잠깐 쉬었다가, 또, 한 번,
“좋은 배갈을 한잔 먹었으면 요 속에 맺힌 것이 홱 풀려버릴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린다.
밥과 죽을 다 먹고 나서 물을 벌꺽벌꺽 들이켜던 윤은,
“흥 게다가 또, 육회여? 멀건 미음두 안 내리는 배때기에 육회를 먹어? 금방 뒤어지게. 그렇지 않아도 코끝이 빨간데. 벌써 회가 동했어. 그렇게 되구 안 죽는 법이 있나?”
하며 밥그릇을 부시고 있다. 콧물이 흐르면 윤은 손등으로도 씻지 아니하고 세 손가락을 모아서 마치 버러지나 떼어버리는 것같이 콧물을 집어서 아무 데나 홱 뿌리고는 그 손으로 밥그릇을 부신다. 그러다가 기침이 나기 시작하면 고개를 돌리려 하지도 아니하고 개수통에, 밥그릇에, 더 가까이 고개를 숙여가며 기침을 한다. 그래도 우리 세 사람 중에는 자기가 그중 몸이 성하다고 해서 밥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밥그릇을 부시는 것이나 밥 먹은 자리에 걸레질을 하는 것이나 다 제가 맡아서 하였고, 또 자기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 썩 잘하는 줄로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아침이 끝나고 ‘벵끼 준비’하는 구령이 나서 똥통을 들어낼 때면 사실상 우리 셋 중에는 윤밖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끙끙거리고 똥통을 들어낼 때마다 민을 원망하였다. 민이 밤낮 똥질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똥통이 무겁다는 불평이었다. 그러면 민은,
“글쎄 이 사람아 내가, 하루에 미음 한 공기도 다 못 먹는 사람이 오줌똥을 누기로 얼마나 누겠나? 자네야말로 죽두 두 그릇 국두 두 그릇 냉수두 두 주전자씩이나 처먹고는 밤새두룩 똥통을 타고 앉아서, 남 잠두 못 자게 하지.”
하는 민의 말은 내가 보기에도 옳았다. 더구나 내게 사식 차입이 들어온 뒤로부터는 윤은 번번이 내가 먹다가 남긴 밥과 반찬을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그의 소화불량은 더욱 심하게 되었다. 과식을 하기 때문에 조갈증이 나서 수없이 물을 퍼먹고 그러고는 하루에 많은 날은 스무 차례나 똥질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자기 말은,
“똥이 나와주어야지. 꼬창이루 파내기나 하면 나올까? 허기야 먹는 것이 있어야 똥이 나오지.”
이렇게 하루에도 몇 차례씩 혹은 민을 보고 혹은 나를 보고 자탄하였다.
윤의 병은 점점 악화하였다. 그것은 확실히 과식하는 것이 한 원인이 되는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내가 사식 차입을 먹기 때문에 윤의 병이 더해가는 것을 퍽 괴롭게 생각하여서 이제부터는 내가 먹고 남은 것을 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하고 나 먹을 것을 다 먹고 나서는 윤의 손이 오기 전에 벤또 그릇을 창틀 위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나는 부드러운 말로 윤을 향하여,
“그렇게 잡수시다가는 큰일 나십니다. 내가 어저께는 세어보니까 스물네 번이나 설사를 하십디다. 또 그 위에 열이 오르는 것도 너무 잡수시기 때문인가 하는데요.”
하고 간절히 말하였으나 그는 듣지 아니하고 창틀에 놓은 벤또를 집어다가 먹었다.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사식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녁 한때만 사식을 먹고 아침과 점심은 관식을 먹기로 하였다. 나는 아무쪼록 영양분을 섭취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병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적지 아니한 고통이었으나 나로 해서 곁에 사람이 법을 범하고, 병이 더치게 하는 것은 차마 못 할 일이었다. 민도 내가 사식을 끊은 까닭을 알고 두어 번 윤의 주책없음을 책망하였으나 윤은 오히려 내가 사식을 끊은 것이 저를 미워하여서나 하는 것같이 나를 원망하였다. 더구나 윤의 아들에게서 현금 삼원 차입이 와서 우유며 사식을 사먹게 되고 지리가미5)도 사서 쓰게 된 뒤로부터는 내게 대한 태도가 심히 냉랭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충고하는 말이면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하고 순순히 듣던 것이 이제는 나를 향해서도 눈을 흘기게 되었다.
윤은 아들이 보낸 삼원 중에서 수건과 비누와 지리가미를 샀다.
“붓빙 고오뀨(물건 사라).”
하는 날은 한 주일에 한 번밖에 없었고 물건을 주문한 후에 그 물건이 올 때까지는 한 주일 내지 십여 일이 걸렸다. 윤은 자기가 주문한 물건이 오는 것이 늦다고 날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형무소 당국의 태만함을 책망하였다. 그러다가 물건이 들어온 날 윤은 수건과 비누와 지리가미를 받아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면서,
“글쎄 이걸 수건이라고 가져와? 망할 자식들 같으니. 걸레감도 못 되는걸. 비누는 또 이게 무엇여, 워디 향내 하나 나나?”
하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하였다.
민이, 아니꼬워 못 견디는 듯이 입맛을 몇 번 다시더니,
“글쎄, 이 사람아. 자네네 집에서 언제 그런 수건과 비누를 써보았던 말인가? 그 돈 삼원 가지고 밥술이나 사먹을 게지, 비누 수건은 왜 사? 자네나 내가 그 상판대기에 비누는 발라서 무엇 하자는 게구, 또 여기서 주는 수건이면 고만이지 타올수건은 해서 무어 하자는 게야? 자네가 고따위로 소견머리 없이 살림을 하니깐 평생에 가난 껍질을 못 벗어놓지.”
이렇게 책망하였다.
윤은 그날부터 세수할 때에만은 제 비누를 썼다. 그러나 수건을 빨 때라든지 발을 씻을 EO에는 웬일인지 여전히 내 비누를 쓰고 있었다.
윤은 수건 거는 줄에 제 타올수건이 걸리고 비누와 잇솔과 치마분6)이 있고 이불 밑에 지리가미가 있고 조석으로 차입 밥과 우유가 들어오는 동안 심히 호기가 있었다. 그는 부채도 하나 샀다. 그 부채가 내 부채 모양으로 합죽선이 아닌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원망하였으나 그는 허리를 쭉 뻗고 고개를 젖히고 부채를 딱딱거리며 도사리고 앉아서 그가 좋아하는 양반 상놈 타령이며 공범 원망이며 형무소 공격이며 민에 대한 책망이며, 이런 것을 가장 점잖게 하였다.
윤은 이 삼원어치 차입 때문에 자기의 지위가 대단히 높아지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간수를 보고도 이제는 겁낼 필요가 없이, ‘나도 차입을 먹노라’고 호기를 부렸다.
윤이 차입을 먹게 되매 나도 십여 일 끊었던 사식 차입을 받게 되었다. 윤과 나와 두 사람만은 노긋노긋한 흰 밥에 생선이며 고기를 먹으면서 민 혼자만이 멀건 미음 국물을 마시고 앉아 있는 것이 차마 볼 수 없었다. 민은 미음 국물을 옆에 받아놓고는 연해 나와 내 밥그릇을 바라보는 것 같고 또 춤을 껄덕껄덕 삼키는 모양이 보였다. 노긋노긋한 흰 밥. 이것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고마운 것인 줄은 감옥에 들어와 본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밥의 하얀빛 그 향기. 젓갈로 집고 입에 넣어 씹을 때에 그 촉각. 그 맛. 이것은 천지간에 있는 모든 물건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라고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쌀밥, 이러한 말까지도 신기한 거룩한 음향을 가진 것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밥의 고마움을 느낄 때에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밥의 즐거움을 골고루 받게 하소서.’
하고 빌지 아니할 사람이 있을까? 이때에 나는 형무소의 법도 잊어버리고 민의 병도 잊어버리고 지리가미에 한 숟갈쯤 되는 밥 덩어리를 덜어서,
“꼭꼭 씹어 잡수세요.”
하고 민에게 주었다. 민은 그것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그의 몸에는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것 같음은 내 마음 탓일까?
민은 종이에 붙은 밥 알갱이를 하나 안 남기고 다 뜯어서 먹고.
“참 꿀같이 달게 먹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맛이 있을까? 지금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더 먹고 싶어 하는 모양 같으나 나는 더 주지 아니하고 그릇에 밥을 좀 편겨서 내놓았다. 윤은 제 것을 다 먹고 나서 내가 편긴 것까지 마저 휘몰아 넣었다.
윤의 삼원어치 차입은 일주일이 못 돼서 끊어지고 말았다. 윤의 당숙 되는 면장에게서 오리라고 윤이 장담하던 삼십 원은 오지 아니하였다. 윤이 노해 말하기를, 자기가 옥에서 죽으면 자기 당숙이 아니 올 수 없고, 오며 자기의 장례를 아니 지낼 수 없으니, 그러면 적어도 삼십 원은 들 것이라, 죽은 뒤에 삼십 원을 쓰는 것보다 살아서 삼십 원을 보내어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자기가 죽지 아니할 터이니 당숙이 면장의 신분으로 형무소까지 올 필요도 없고, 또 설사 자기가 옥에서 죽더라도 이왕 장례비 삼십 원을 받아먹었으니 친족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고 형무소에서 화장을 할 터인즉 지금 삼십 원을 청구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 아니라고, 이렇게 면장 당숙에게 편지를 하였으므로 반드시 삼십 원은 오리라는 것이었다.
나도 윤의 당숙 되는 면장이 윤의 이론을 믿어서 돈 삼십 원을 보내어주기를 진실로 바랐다. 더구나 윤의 사식 차입이 끊어짐으로부터 내가 먹다가 남긴 밥을 윤과 민이 다투게 되매 그러하였다. 내가 민에게 밥 한 숟갈 준 것이 빌미가 됨인지 민은 끼니때마다 밥 한 숟가락을 내게 청하였고, 그럴 때마다 윤은 민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하면 밥그릇을 둘러 엎었다. 한번은 윤과 민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나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서로 주고받고 하였다. 그때에 마침 간수가 지나가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윤을 나무랐다. 간수가 간 뒤에 윤은 자기가 간수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이 민 때문이라고 하여 더욱 민을 못 견디게 굴었다. 그 방법은 여전히 며칠 안 있으면 민이 죽으리라는 둥, 열아홉 살 된 민의 아내가 벌써 어떤 젊은 놈하고 붙었으리라는 둥, 민의 아들들은 개 도야지7) 만도 못한 놈들이라는 둥, 이런 악담이었다.
나는 다시 사식을 중지하여달라고 간수에게 청하였다. 그러나 내가 사식을 중지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감정을 완화할 수는 없었다. 별로 말이 없던 민도 내가 사식을 중지한 뒤로부터는 윤에게 지지 않게 악담을 하였다.
“요놈, 요 좀도적 좀. 그래 백주에 남의 땅을 빼앗아 먹겠다고 재판소 도장을 위조를 해? 고 도장 파든 손목장이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을 줄 알구?”
이렇게 민이 윤을 공격하면 윤은,
“남에 집에 불 논 놈은 어떻고? 그 사람이 밉거든 차라리 칼을 가지고 가서 그 사람만 찔러 죽일 게지. 그래 그 집 식구는 다 태워 죽이고 저는 죄를 면하잔 말이지? 너 같은 놈은 자식새끼까지 다 잡아먹어야 해! 네 자식 녀석들이 살아남으면 또 남의 집에 불을 놓겠거든.”
이렇게 대꾸를 하였다.
하루는 간수가 우리 방 문을 열어젖히고,
“구십구 호!”
하고 불렀다.
구십구 호를 심오 호로 잘못 들었는지, 윤이 벌떡 일어나며,
“네. 내게 편지 왔는기오?”
하였다. 윤은 당숙 면장의 편지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구십구 호를 십오 호로 잘못 들은 모양이다.
“네가 구십구 호냐?”
하고 간수는 소리를 질렀다.
정작 구십구 호인 민은 나를 부를 자가 천지에 어디 있으랴 하는 듯이 그 옴팍눈으로 팔월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구십구 호 귀먹었나?”
하는 소리와,
“이건 눈 뜨고 꿈을 꾸고 있는 셈인가? 단또상이 부르시는 소리도 못 들어?”
하고 윤이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민은 비로소 누운 대로 고개를 젖혀서 문을 열고 선 간수를 바라보았다.
“구십구 호 네 물건 다 가지고 이리 나와!”
그제야 민은 정신이 드는 듯이 일어나 앉으며,
“우리 집으로 내어 보내주세요?”
하고, 그 해골 같은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쁜 빛이 드러난다.
“어서 나오라면 나와. 나와보면 알지.”
“우리 집에서 면회하러 왔어요?”
하고 민의 얼굴에 나타났던 기쁨은 반 이상이나 스러져버린다.
간수 뒤에 있던 키 큰 간병부가,
“전방이에요, 전방. 어서 그 약병이랑 다 들고 나와요.”
하는 말에 민은 약병과 수건과 제가 베고 있던 베개를 들고 지척거리고 문을 향하고 나간다. 민은 전방이라는 뜻을 알아들었는지 분명치 아니하였다. 간병부가,
“베개는 두고 나와요. 요 웃방으로 가는 게야요.”
하는 말에 비로소 민은 자기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어서 힘없이 베개를 내던지고 잠깐 기쁨으로 빛나던 얼굴이 다시 해골같이 되어서 나가버리고 말았다. 다음 방인 이방에 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또 문이 닫히고 쌀깍하고 쇠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민이 처음 보는 사람들 틈에 어리둥절하여 누울 자리를 찾는 모양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에익, 고 자식 잘 나간다. 제인장 더러워서 견딜 수가 있나? 목욕이란 한 번도 안 했으닝게. 아침에 세수하고 양추질하는 것 보셨능기오? 어떻게 생긴 자식인지 새 옷을 갈아입으래도 싫다고만.”
하고 일변 민이 내버리고 간 베개를 자기 베개 밑에 넣으며 떠나간 민의 험구를 계속한다.
“민가가 왜 불을 놓았는지 진상 아시능기오? 성이 민가기 때문에 그랬든지. 서울 민OO 대감네 마름 노릇을 수십 년 했지라오. 진상도 보시는 바와 같이 자식이 저렇게 독종으로, 깍쟁이로 생겼으닝게, 그 밑에 작인들이 배겨나게요? 팔십 석이나 타작을 한다는 것도 작인들의 등을 처먹은 게지 무엇잉게오? 그래 작인들이 원망이 생겨서 지주집에 등장을 갔더라나요. 그래서 작년에 마름을 떼웠단 말이오. 그리고 김 무엇인가 한 사람이 마름이 났는데요, 민가 녀석은 제 마름을 뗀 것이 새로 마름이 된 김가 때문이라고 해서 금년 음력 설날에 어디서 만났드라나. 만나서 욕지거리를 하고 한바탕 싸우고, 그리고는 요 뱅충맞은 것이 분해서 그날 밤중에 김가 집에 불을 놨단 말야. 마침 설날 밤이라, 밤이 깊도록 동네 사람들이 놀러 댕기다가 불이야! 소리를 쳐서 얼른 잡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김가네 집 식구가 죄다 타 죽을 뻔하지 않았능기오?”
하고 방화죄가 어떻게 흉악한 죄인 것을 한바탕 연설을 할 즈음에 간병부가 오는 것을 보고 말을 뚝 끊는다. 그것은 간병부도 방화범인 까닭이었다.
간병부가 다녀간 뒤에 윤은 계속하여 그 간병부들의 방화한 죄상을 또 한바탕 설명하고 나서,
“모두 흉악한 놈들이지요. 남의 집에 불을 놓다니! 그런 놈들은 씨알머리도 없이 없애버려야 하는기라오.”
하고 심히 세상을 개탄하는 듯이 길게 한숨을 쉰다.
일방에 윤과 나와 단둘이 있게 되어서부터는 큰소리가 날 필요가 없었다. 밤이면 우리 방에 들어와 자는 간병부가 윤을 윤서방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윤이 대단히 불평하였으나 간병부의 감정을 상하는 것이 이롭지 못한 줄을 잘 아는 윤은 간병부와 정면충돌을 하는 일은 별로 없고 다만 낮에 나하고만 있을 때에
“서울말로는 무슨 서방이라고 부르는 말이 높은 말잉기오? 우리 전라도서는 나이 많은 사람보고 무슨 서방이라고 하면 머슴이나 하인이나 부르는 소리랑기오.”
하고 곁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가 묻는 뜻을 알았으므로 대답하기가 심히 거북스러워서 잠깐 주저하다가,
“글쎄 서방님이라고 하는 것만 못하겠지요.”
하고 웃었다. 윤은 그제야 자신을 얻은 듯이,
“그야 우리 전라도에서도 서방님이라고 하면서 대접하는 말이지오. 글쎄 진상도 보시다시피 저 간병부 놈이 언필칭 날더러 윤서방 윤서방, 하니 그래 그놈의 자식은 제 애비나 아재비더러도 무슨 서방 할 텐가? 나이로 따져도 내가 제 애비뻘은 되렷다. 어 고약한 놈 같으니.”
하고 그 앞에 책망받을 사람이 섰기나 한 것처럼 뽐낸다.
윤은 윤서방이라는 말이 대단히 분한 모양이어서 어떤 날 저녁엔 간병부가 들어올 때에도 눈만 흘겨보고 잘 다녀왔냐 하는, 늘 하던 인사도 아니 하는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하루 저녁에는 또 ‘윤서방’이라고 간병부가 부른 것을 기회로 마침내 정면충돌이 이어나고 말았다. 윤이,
“댁은 나를 무어로 보고 윤서방이라고 부르오?”
하는 정식 항의에 간병부가 뜻밖인 듯이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이나 윤을 바라보고 앉았더니, 허허하고 경멸하는 웃음을 웃으면서,
“그럼 댁더러 무어라고 부르라는 말이오? 댁의 직업이 도장장이니 도장장이라고 무르라는 말이오? 죄명이 사기니 사기장이라고 부르라는 말이오? 밤낮 똥질만 하니 윤똥질이라고 부르라는 말이오? 옳지, 윤선생이라고 불러줄까? 왜 되지못하게 이 모양이야? 윤서방이라고 불러주면 고마운 줄으나 알지. 낫살을 먹었으면 몇 살이나 더 먹었길래. 괜시리 그러다가는 윤가 놈이라고 부를 걸.”
하고 주먹으로 삿대질을 한다.
윤은 처음에 있던 호기도 다 없어지고 그만 사그라지고 말았다. 간병부는 민영감 모양으로 만만치 않은 것도 있거니와 간병부하고 싸운대도 결국은 약 한 봉지 얻어먹기도 어려운 줄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진찰도 다 끝나고 난 뒤에 우리 방에 있는 키 큰 간병부는 다음 방에 있는 간병부를 데리고 와서,
“흥 저 양반이, 내가 윤서방이라고 부른다고 아주 대노하셨다나!”
하며 턱으로 윤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키 작은 간병부가
“여보! 윤서방. 어디 고개 좀 이리 돌리오. 그럼 무어라고 부르리까? 윤동지라고 부를까? 윤선달이 어떨꼬? 막 싸구려 판이니 어디 그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골르시유.”
하고 놀려먹는다.
윤은 눈을 깜박깜박하고 도무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본래 간병부에게 호감을 못 주던 윤은 윤서방 사건이 있은 뒤부터 더욱 미움을 받았다. 심심하면 두 간병부가 와서 여러 가지 별명을 부르면서 윤을 놀려 먹었고, 간병부들이 간 뒤에는, 윤은 나를 향하여
“두 놈이 옥 속에서 썩어져라.”
고 악담을 퍼부었다.
이렇게 윤이 불쾌한 그날그날을 보낼 때에 더욱 불쾌한 일 하나가 생겼다. 그것은 정이라는, 역시 사기범으로 일동 팔방에서 윤하고 같이 있던 사람이, 설사병으로 우리 감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윤에게서 정씨의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설사를 하면서도 우유니 닭알이니 하고 막 처먹는다는 둥, 한다는 소리가 모두 거짓말뿐이라는 둥, 자기가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는, 꼭 막힌 놈이라는 둥, 이러한 비평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하루는 윤하고 나하고 운동을 나갔다가 들어와 보니 웬 키가 커다랗고 얼굴이 허연 사람이 똥통을 타고 앉아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윤은 대단히 못마땅한 듯이 나는 돌아보고 입을 삐죽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서 부채를 딱딱거리면서,
“데어상 이때까지 설사가 안 막혔능기오? 사람이란 친구가 충고하는 옳은 말은 들어야 하는 법이어. 일동 팔방에 있을 때에 내가 그만큼이나 음식을 삼가라고 말 안 했거디? 그런데 내가 병감에 온 지가 벌써 석 달이나 되는디 아직도 설사여?”
하고 똥통에 올라앉은 사람을 흘겨본다. 윤이 이 말에 나는 그가, 윤이 늘 말하던 정씨인 줄을 알았다.
똥통에서 내려온 정씨는 윤의 말을 탓하지 않는, 지어서 하는 듯한 태도로,
“인상, 우리 이거 얼마 만이오? 그래 안즉도 예심 중이시오?”
하고 얼굴 전체가 다 웃음이 되는 듯이 싱글벙글하며 윤의 손을 잡는다. 그러고 나서는 내게 앉은절을 하며,
“제 성명은 정흥태올시다. 얼마나 고생이 되십니까?”
하고 대단히 구변이 좋았다. 나는 그의 말의 발음으로 보아 그가 평안도 사람으로서 서울말을 배운 사람인 줄을 알았다. 그러나 저녁에 인천 사는 간병부와 인사할 때에는 자기도 고향이 인천이라 하였고, 다음에 강원도 철원 사는 간병부와 인사를 할 때에는 자기 고향이 철원이라 하였고, 또 그다음에 평양 사람 죄수가 들어와서 인사하게 된 때에는 자기 고향은 평양이라고 하였다. 그때에 곁에 있던 윤이 정을 흘겨보며,
“왜 또 해주도 고향이라고 아니 했소? 대체 고향이 몇이나 되능기오?”
이렇게 오금을 박은 일이 있었다. 정은 한두 달 살아본 데면, 그 지방 사람을 만날 때 다 고향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정은 우리 방에 오늘 길로,
“이거 방이 더러워 쓰겠느냐?”
고 벗어부치고 마룻바닥이며, 식기며 걸레질을 하고 또 자리 밑을 떠들어 보고는,
“이거 대체 소제라고는 안 하고 사셨군? 이거 더러워 쓸 수가 있나?”
하고 방을 소제하기를 주장하였다.
“그 너머 혼자 깨끗한 체하지 마시오. 어디 그 수선에 정신 차리겠능기오?”
하고 윤은 돗자리 털어내는 것을 반대하였다. 여기서부터 윤과 정의 의견 충돌이 시작되었다.
저녁밥 먹을 때가 되어 정이 일어나 물을 받는 것까지는 참았으나, 밥과 국을 받으려고 할 때에는 윤이 벌떡 일어나 정을 떼밀치고 기어이 제가 받고야 말았다. 창 옆에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방 안에서는 큰 권리로 여기는 것이었다.
정은 윤에게 떼밀치어 머쓱해 물러서면서,
“그렇게 사람을 떼밀 거야 무엇이오? 그러니깐으루 간 데마다 인심을 잃지. 나 같은 사람과는 아무렇게 해도 관계치 않소마는 다른 사람보고는 그리 마시오? 뺨 맞지요, 뺨 맞아요.”
하고 나를 돌아보며 싱그레 웃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는 그만한 일에 성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 함인 것 같았으나 그의 눈에는 속일 수 없이 분한 빛이 나타났다.
밥을 먹는 동안 폭풍우 전의 침묵이 계속되었으나 밥이 끝나고 먹은 그릇을 설거지할 때에 또 충돌이 일어났다. 윤이 사타구니를 내놓고 있다는 것과 제 그릇을 먼저 씨고 나서 내 그릇과 정의 그릇을 씻는다는 것과 개수통에 입을 대고 기침을 한다는 이유로 정은 윤을 책망하고 윤이 씻어놓은 제 밥그릇을 주전자의 물로 다시 씻어서 윤의 밥그릇에 닿지 않도록 따로 포개놓았다. 윤은 정더러,
“여보 당신은 당신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 생각은 못 하오? 그 주전자 물을 다 써버리면 밤에는 무엇을 먹고 아침에 네 식구가 세수는 무엇으로 한단 말이오? 사람이란 다른 사람 생각을 해야 쓰는 것여.”
하고 공격하였으나 정은 못 들은 체하고 주전자 물을 거의 다 써서 제 밥그릇과 국그릇과 젓가락을 한껏 정하게 씻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양으로 윤과 정과의 충돌은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러나 정은 간병부와 내게 대해서는 아첨에 가까우리만치 공손하였다. 더구나 그가 농업이나 광업이나 한방 의술이나 신의술이나 심지어 법률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었고 또 구변이 좋아서, 이야기를 썩 잘하기 때문에 간병부들은 그를 크게 환영하였다.
이렇게 잠깐 동안에 간병부들의 환심을 샀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 그릇씩 받아야 할 죽이나 국을, 두 그릇씩도 받고 또 소화약이나 고약이나 이러한 약도 가외로 더 얻을 수가 있었다. 정이 싱글싱글 웃으며 졸라대면, 간병부들은 여간한 것은 거절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밥을 한 덩이씩 가외로 얻어서 맛날 듯한 것을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골라 먹고 그리고 남은 찌꺼기를 행주에다가 싸고 소금을 치고, 그러고는 그것을 떡 반죽하듯이 이겨서 떡을 만들어서 싸두었다가 밤에 자러 들어온 간병부에게 주고는 크게 생색을 내었다. 한번은 정이 조밥으로 떡을 만들며 나를 돌아보고,
“간병부 녀석들은 이렇게 좀 먹어야 합니다. 이따금 닭알도 사주고 우유도 사주면 좋아하지요. 젊은 녀석들이 밤낮 굶주리고 있거든요. 이렇게 녹여놓아야 말을 잘 듣는단 말이야요. 간병부와 틀렸다가는 해가 많습니다. 그 녀석들이 제가 미워하는 사람의 일은 좋지 못하게 간수들한테 일러바치거든요.”
하면서 이겨진 떡을 요모조모 떼어 먹는다.
“여보 그게 무에요? 더 이상은 간병부를 대할 때 십 년 만에 만나는 아저씨나 대하듯이, 살이라도 베어 먹일 듯이 아첨을 하다가, 간병부가 나가기만 하면 언필칭 이 녀석 저 녀석 하니 사람이 그렇게 표리가 부동해서는 못쓰는 게여. 우리는 그런 사람 아니여든. 대해 앉아서도 할 말은 하고 안 할 말은 안하지. 사내대장부가 그렇게 간사를 부려서는 못쓰는 게여. 또 여보, 당신이 떡을 해주겠거든 숫밥으로 해주는 게지, 당신 입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밥 알갱이마다 당신의 더러운 침을 발라가지고, 그리고 먹다가 먹기가 싫으닝게 남을 주고 생색을 낸다? 그런 일을 해선 못쓰는 게여. 남 주고도 죄 받는 일이여든. 당신 하는 일이 모두 그렇단 말여. 정말 간병부를 주고 싶거든 당신 돈으로 닭알 한 개라도 사서 주어. 흥. 공으로 밥 얻어서 실컷 처먹고 먹기가 싫으닝게 남을 주고 생색을 낸다─╴ 웃기는 왜 웃소, 싱글벙글? 그래 내가 그른 말 해? 옳은 말은 들어두어요, 사람 되려거든. 나, 그, 당신 싱글싱글 웃는 거 보면 느글느글해서 배창수가 다 나오려 든다닝게. 웃긴 왜 웃어? 무엇이 좋다고 웃는 게여?”
이렇게 윤은 정을 몰아세웠다.
정은 어이없는 듯이 듣고만 앉았더니,
“내가 할 소리를 당신이 하는구려? 그 배때기나 가리고 앉아요.”
그날 저녁이었다. 간병부가 하루 일이 끝이 나서 발가벗고 뛰어 들어왔다. 정은,
“아어, 오늘 얼마나 고생스러우셨어요? 그래도 하루가 지나가면 그만큼 나가실 날이 가까운 것 아니오? 그걸로나 위로를 삼으셔야지. 그까짓 한 삼사 년 잠깐 갑니다. 아 참 백 호하고 무슨 말다툼을 하시든 모양이던데.”
이 모양으로 아주 친절하게 위로하는 말을 하였다. 백 호라는 것은 다음 방에 있는 키 작은 간병부의 번호이다. 나도 ‘이놈 저놈’하며 둘이서 싸우는 소리를 아까 들었다.
간병부는 감빛 기결수 옷을 입고 제자리에 앉으면서,
“고놈의 자식을 찢어 죽이려다가 참았지요. 아니꼬운 자식 같으니. 제가 무어길래? 제나 내나 다 마찬가지 전중이고 다 마찬가지 간병부지. 흥, 제 놈이 나보다 며칠이나 먼저 왔다고 나에게 명령을 하러 들어? 쥐새끼 같은 놈 같으니. 나이로 말해도 내가 제 형뻘은 되고 세상에 있을 때에 사회적 지위로 보드래도 나는 면서기까지 지낸 사람인데. 그래 제따위 한 자요 두 자요 하던 놈과 같을 줄 알고? 요놈의 자식 내가 오늘은 참았지만은 다시 한 번만 고따위로 주둥아리를 놀려봐? 고놈의 아가리를 찢어놓고 다릿마댕이를 분질러놀걸. 우리는 목에 칼이 들어오드라도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하고야 마는 사람여든!”
하고 곁방에 있는 ‘백 호’라는 간병부에게 들리라 하는 말로 남은 분풀이를 하고 있다. 정은 간병부에게 동정하는 듯이 혀를 여러 번 차고 나서,
“쩟, 쩟. 아 참으셔요. 신상 체면을 보셔야지, 고까짓 어린애 녀석하고 무얼 말다툼을 하세요. 아이 나쁜 녀석! 고 녀석 눈깔딱지하고 주둥아리하고 독살스럽게도 생겨먹었지. 방정은 고게 또 무슨 방정이야? 고 녀석 인제 또 옥에서 나가는 날로 또 뉘 집에 불 놓고 들어올걸. 원 고 녀석, 글쎄 남의 집에 불을 놓다니?”
간병부는 정의 마지막 말에 눈이 뚱그레지며,
“그래 나도 남의 집에 불 놓았어. 그랬으니 어떻단 말이어? 당신같이 남이 돈을 속여 먹는 것은 괜찮고 남의 집에 불 놓는 것만 나쁘단 말이오? 원 별 아니꼬운 소리를 다 듣겠네. 여보, 그래 내가 불을 놓았으니 어떻게 하란 말이오? 웃기는 싱글싱글 왜 웃어? 그래 백 호나 내가 남의 집에 불을 놓았으니 어떻게 하란 말이야?”
하고 정에게 향하여 상앗대질을 하였다.
정의 얼굴은 빨개졌다. 정은 모처럼 간병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던 것이 그만 탈선이 되어서 이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떠돌면서,
“아니 내 말이 어디 그런 말이오? 신상이 오해시지.”
하고 변명하려는 것을 간병부는,
“오해? 육회가 어떠우?”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신상도 불을 놓으셨지만은 신상은 술이 취하셔서 술김에 놓으신 것이거든. 그 술김이 아니면 신상이 어디 불 놓으실 양반이오? 신상이 우락부락해서 홧김에 때려죽인다면 몰라도 천성이 대장부다우시니까 사기나 방화나 그런 죄는 안 지을 것이란 말이오! 그저 애매하게 방화죄를 지셨다는 말씀이지요. 내 말이 그 말이거든. 그런데 말이오. 저 백 호, 그 녀석이야말로 정신이 멀쩡해서 불을 논 것이 아니요? 그게 정말 방화죄거든. 내 말이 그 말씀이야, 이제 알아들으셨어요?”
하고 정은 제 말이 심이라는 간병부의 분이 풀린 것을 보고,
“자 이거나 잡수세요.”
하며 밥그릇 통속에 감추어두었던 조밥떡을 내어 팔을 기다랗게 늘여서 간병부에게 준다.
“날마다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오?”
하고 간병부는 그 떡을 받았다.
간병부가 잠깐 일어나서 간수가 오나 아니 오나를 엿보고 난 뒤에 그 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아까부터 간병부와 정과의 언쟁을 흥미 있는 눈으로 힐끗힐끗 곁눈질하던 윤이,
“아뿔사, 신상 그것 잡숫지 마시오.”
하고 말만으로도 부족하여 손까지 살래살래 내흔들었다.
간병부는 께름칙한 듯이 떡을 입에 문 채로,
“왜요?”
하며 제자리에 와 앉는다. 간병부 다음에 내가 누워 있고 그다음에 정, 그다음에 윤, 우리들의 자리 순서는 이러하였다. 윤은 점잖게 도사리고 앉아서 부채를 딱딱하며,
“내가 말라면 마슈. 내가 언제 거짓말했거디? 우리는 목에 칼이 오드라도 바른말만 하는 사람이거든.”
그러는 동안에 간병부는 입에 베어 물었던 떡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지리가미에 싸서 등 뒤에 놓으면서,
“아니. 어째 먹지 말란 말이오?”
“그런 그리 아실 건 무엇 있소? 자시면 좋지 못하겠으닝게 먹지 말랑 게지.”
“아이 말해요. 우리는 속이 겁겁해서, 그렇게 변죽만 올리는 소리를 듣고는 가슴에 불이 일어나서 못 견디어.”
이때에 정이 매우 불쾌한 얼굴로,
“신상, 그 미친 소리 듣지 마시오. 어서 잡수세요. 내가 신상께 설마 못 잡수실 것을 드릴라구?”
하였건마는 간병부는 정의 말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어서
“윤서방, 어서 말씀하시오.”
하고 약간 노기를 띤 어성으로 재우쳐 묻는다.
“그렇게 아시고 싶은 건 무엇 있어? 그저 부정한 것으로만 아시라닝게. 내가 신상께 해로운 말쌈 할 사람은 아니닝게.”
“아따, 그 아가리 좀 못 닫쳐?”
하며 정이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서 윤을 흘겨본다.
윤은 까딱 아니 하고 여전히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하면서,
“당신네 평안도서는 사람의 입을 아가리라고 하는지 모르겠소마는 우리네 전라도서는 점잖은 사람이 그런 소리는 아니 하오. 종교가 노릇을 이십 년이나 했다는 양반이 어 그 무슨 말버릇이란 말이오? 종교가 노릇을 이십 년이나 했길래 남 먹으라고 주는 음식에 침만 발러주었지, 십 년만 했드면 코 발라줄 뻔했소구려? 내가 아까 그러지 않아도 이르지 않았거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려거든 숫으로 덜어서 주는 법이어. 침 묻는 젓가락으로 휘저어가면서 맛날 듯한 노란 좁쌀은 죄다 골라 먹고 콩도 이거 집었다가 놓고, 저것 집었다가 놓고, 입에 댔다가 놓고, 노르스름한 놈은 죄다 골라 먹고, 그리고는 퍼렇게 뜬 좁쌀, 썩은 콩만 남겨서 제 밥그릇, 죽그릇, 젓가락 다 씻은 재수물에 행주를 축여가지고는 코 묻은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서 떡이라고 만들어가지고, 그런 뒤에도 요모조모만날 듯 싶은 데는 다 떼어 먹고 그것을 남겼다가 사람을 먹으라고 주니, 그렇고 벼락이 무섭지 않아? 그런 것은 남을 주고도 벌을 받는 법이라고 내가 그만큼 일렀단 말이어. 우리는 남의 험담은 도무지 싫어하는 사람이닝게 내가 이런 말도 안 하려고 했거든. 신상 내 어디 처음에야 말했가디? 저 진상도 증인이어. 내가 그만큼 옳은 말로 타일렀고, 또 덮어주었으면 평안도 상것이 ‘고맙습니다’ 하는 말은 못 할망정 점잖게나 있어야 할 게지. 사람이란 그렇게 뻔뻔해서는 못쓰는 게여.”
윤의 말에 정은 어쩔 줄을 모르고, 얼굴만 푸르락누르락하더니 얼른 다시 기막히고 우습다는 표정을 하며
“참 기가 막히오. 어쩌면 그렇게 빤빤스럽게도 거짓말을 꾸며대오? 내가 밥에 모래와 쥐똥, 썩은 콩, 팃검불 이런 걸 고르느라고 젓가락으로 밥을 저었지. 그래 내가 어떻게 보면 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신상더러 자시라고 할 사람 같아 보여? 앗으우, 앗으우. 고렇게 거짓말을 꾸며대면 혓바닥 잘린다고 했어. 신상 아예 그 미친 소리 듣지 마시고 잡수시오. 내 말이 거짓말이면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겠소!”
하고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자리에 눕는다. 정이 맹세하는 것을 듣고 나는 머리가 쭈뼛함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렇게 영절스럽게, 곁에다가 증인을 둘씩이나 두고도 벼락 맞을 맹세까지 할 수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이란 헤아릴 수 없이 무서운 것이라고 깊이깊이 느껴졌다. 내가 설마 나서서 증인이야 서랴? 정은 이렇게 내 성격을 판단하고서 맘 놓고 이렇게 꾸며댄 것이다. 나는 ‘윤씨 말이 옳소. 정씨 말은 거짓말이오.’ 이렇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내게 이러한 용기 없는 것을 정이 빤히 들여다본 것이다. 윤도 정의 엄청난 거짓말에 기가 막힌 듯이 아무 말도 없이 딴 데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간병부는 사건의 진상을 내게서나 알려는 듯이 가만히 누워 있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게 직접 말로 묻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내게서 아무 말이 없음을 보고 간병부는 슬그머니 떡을 집어서 정의 머리맡에 밀어놓으며,
“엇소, 데이상이나 잡수시오. 나 두 분 더 쌈 시키고 싶지 않소.”
하고는 쩍쩍 입맛을 다신다. 나는 속으로 ‘참 잘한다’ 하고 간병부의 지혜로운 판단에 탄복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의 윤에게 대한 깊은 원한을 맺히게 한 원인이었다. 윤이 기침을 하면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라는 둥, 입을 막고 하라는 둥, 캥캥하는 소리를 좀 적게 하라는 둥, 소갈머리가 고약하게 생겨먹어서 기침도 고약하게 한다는 둥, 또 윤이 낮잠이 들어 코를 골면 팔굽으로 윤의 옆구리를 찌르며 소갈머리가 고약하니깐 잘 때까지도 사람을 못 견디게 군다는 둥, 부채를 딱딱거리지 말라, 핼끔핼끔 곁눈질하는 것 보기 싫다, 이 모양으로 일일이 윤의 오금을 박았다. 윤도 지지 않고 정을 해댔으나 입심으론 도저히 정의 적수가 아닐뿐더러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매양 윤이 곯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코를 골기로 말하면 정도 윤에게 지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정은 이가 뻐드러지고 입술이 뒤둥그러져서 코를 골기에는 십상이었지만은 그래도 정은 자기는 코를 골지 않노라고 언명하였다. 워낙 잠이 많은 윤은 정이 코를 고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간병부도 목침에 머리만 붙이면 잠이 드는 사람이므로 정과 윤이 코를 고는 데에 희생이 되는 사람은 잠이 잘 듣지 못하는 나뿐이었다. 윤은 소프라노로 정은 바리톤으로 코를 골아대면 나는 언제까지든지 눈을 뜨고 창을 통하여 보이는 하늘에 별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정은 윤의 입김이 싫다 하여 꼭 내 편으로 고개를 향하고 자고, 나는 반듯이밖에는 누울 수 없는 병자이기 때문에 정은 내 왼편 귀에다가 코를 골아 넣었다. 위확장 병으로 위 속에서 음식이 썩는 정의 입김은 실로 참을 수 없으리만큼 냄새가 고약한데 이 입김을 후끈후끈 밤새도록 내 왼편 뺨에 불어 부쳤다. 나는 속으로 정이 반듯이 누워주었으며 하였으나 차마 그 말을 못 하였다. 나는 이것을 향기로운 냄새로 생각해보라, 이렇게 힘도 써보았다. 만일 그 입김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입김이라면 내가 불쾌하게 여기지 아니할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배 속엔들 똥은 없으며 썩은 음식은 없으랴? 모두 평등이 아니냐? 이러한 생각으로 코 고는 소리와 냄새 나는 입김을 잊어버릴 공부를 해보았으나 공부가 그렇게 일조일석에 될 리가 만무하였다. 정더러 좀 돌아누워달랄까, 이런 생각을 또 하였다. 뒷 절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새벽 목탁 소리가 나면 아침 세 시 반이다. 딱딱딱 하는 새벽 목탁 소리는 퍽이나 사람의 맘을 맑게 하는 힘이 있다.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고루 퍼져지이다.”
한다든지
“일체 중생이 바로 깨달음을 얻어지이다.”
하는 새벽 종소리 구절이 언제나 생각되었다. 인생이 괴로움의 바다요, 불붙는 집이라면 감옥은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데다. 게다가 옥중에서 병까지 들어서 병감에 한정 없이 갇혀 있는 것은 괴로움의 세 겹 괴로움이다. 이 괴로운 중생들이 서로서로 괴로워함을 볼 때에, 중생의 업보는 ‘헤아려 알기 어려워라’ 한 말씀을 다시금 생각지 아니할 수 없었다.
1) 無明 -12 인연(因緣)의 하나.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상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됨
2) 병감 교도소에서 병든 죄수를 따로 두는 감방.
3) 송국(送局) 송청. 수사 시관에서 피의자를 사건 서류와 함께 검찰청으로 넘겨 보내는 일.
4) 어리치다 독한 냄새나 밝은 빛 따위의 심한 자극으로 정신이 흐릿해지다.
5) 지리가미(ちりがみ) ‘휴지’의 일본말.
6) 치마분 가루로 되어 있는 치약.
7) 도야지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