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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천지간

윤대녕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구요? 믿을 수 없겠지만 걸어서 왔습니다. 물론 읍내 터미널에 내려 바로 군내(郡內)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지요. 그래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폭설이었죠. 하지만 그 여자가 터미널에서부터 줄곧 여기까지 걸어왔던 거예요. , 한 시간도 넘게 걸리더군요. 글쎄요, 제가 왜 그 여자의뒤를 따라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따라온 겁니다. 뭐라구요? 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 아니냐구요? 아녜요, 생면부지인 여자예요. 오늘 광주에서 처음 봤다니까요. 거기서부터 완도 읍내까지는 함께 직행버스를 타고 왔지요. 세 시간 반이 걸리더군요. 아무튼 저는 문상을 가는 길이었어요. 발인요? 아마 내일일 겁니다. 글쎄요, 내일 아침에라도 첫차를 타고 광주로 가야 할지 어쩔지 아직 모르겠군요.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것도 장담할 수가 없군요.

전라남도 완도군 정도리 구계등(九階嶝)이다. 저녁 여덟 시에 나는 이곳에 왔다.

 

1

어제 낮에 나는 외숙모의 부음을 들었다. 그녀는 쉰 살이라는 아직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숨졌다. 암 선고를 받은 것은 9개월 전이었다. 그때 담당 의사는 앞으로 길어야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녀가 3개월에서 무려 6개월을 더 버틴 것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큰아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합격통보를 받고 나서 불과 이틀만에 숨졌으니 그렇게 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어머니가 내려가 있기 때문에 굳이 나까지 문상을 가지 않더라도 모양새가 나쁘달 수는 없었으나 외숙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그리고 군에서 제대했을 때 외숙이 각각 쌀 한 가마니씩을 화물 열차에 실어 보내 왔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 쌀 두 가마니가 무슨 대수로운 것이랴만 외숙에게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그게 묘하게도 빚 감정으로 작용하는 것만큼은 어쨌든 사실이었다. 외숙모가 서울 백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던 날도 나는 외숙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저녁 광주로 내려가며 그는 또 무슨 정신으로 하는 소린지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어서 혼례를 올려야지. 그때 또 쌀 한 짝을 올리마."

외숙은 쌀이라는 것을 무슨 제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어머니만 해도 아직 바늘 쌈지와 쌀을 화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물포를 하고 있는 외숙은 젊어서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무슨 이유로 마흔 살까지 잡고 있던 교편과 서양화를 하루아침에 집어치웠는지는 모른다. 다만 백색(白色)에 미쳐 있다가 그만 붓을 놓게 되었다는 말을 전에 한 번 들은 기억이 있을 뿐이다. 하얀색이 아니고 백색 말이다. 단지 어감 차이밖에는 없다고 생각되는 이 하얀색과 백색을 외숙은 아직도 완전히 다른 색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전 1030분 서울발 광주행 고속 버스. 나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검은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가에 가는 사람이란 걸 알았을 것이다. 요즘은 굳이 옷차림까지 따져 문상을 가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암만해도 그런 차림을 하고 있으면 어딜 가나 남들의 퀭한 시선을 받게 되 나도 꺼려하는 편인데, 몇 년 전인가 어머니가 우격다짐으로 양복점으로 데려가 할 수 없이 맞춘 옷이었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당신이 수의를 미리 지어 놓았으니 이를테면 나도 상복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여간해서는 잘 입지 않지만 아무래도 집안 사람이 상을 당하게 되면 또 갖출 것은 갖추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두 번 꺼내 입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검은 양복을 입고 있으면 그때마다 얼굴이 뻣뻣해지는 느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여자를 본 것은 오후 세 시쯤이 되어 광주 종합 터미널에 도착해서였다. 보았다, 라는 말은 맞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내려 나는 택시 승강장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가다 툭 하고 서로 어깨가 부딪쳤던 것이다. 좀 세게 부딪쳤던 것 같기도 하다. 순간 여자의 몸이 휘청하니 흔들렸고 이어 아!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에 날아와 박혔다. 딱히 해침이라도 당한 듯한 단말마의 소리였다. 얼결에 놀라 돌아보니 노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여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으로 배를 싸 쥐고 있었다. 몰랐는데, 내 몸이 그녀의 배까지 스친 모양이었다. 곧바로 내 입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여자는 들은 척도 않고 곧바로 몸을 추슬러 매표 창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로부터 약 5분 후에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가본 사람은 알지만 광주 종합 터미널은 직행 버스 터미널과 고속 버스 터미널이 상가를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다. 그녀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직행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상가 보도의 중간께에 있는 택시 승강장을 막 지나치고 있었다. 핸드백조차 지닌 것이 없는 단출한 바바리 차림이었다. 베이지색이 아닌가 싶어 눈여겨보니 역 연한 노란빛이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인지 승강장 옆을 지나던 그녀가 히뜩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서나 흔히 있을 수 있는 타인과의 찰나간 마주침에 불과했다. 이내 눈길을 거두고 그녀는 가던 길을 서둘렀다. 조금 전에 서로 어깨를 부딪혔던 사람이 나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잠깐 멈춰 선 듯도 했지만 거기엔 별 뜻이 없어 보였다.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은 것은 노란빛의 잔상이 좀 길게 동공에 남아 있다 싶어 그녀가 사라진 곳을 눈으로 슬쩍 더듬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터미널 입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나와는 한 10여 미터쯤 떨어져 있었을까. 얼마든지 제 시선을 다른 데로 빗댈 수 있는 거리의 유동성 때문인지 그녀는 제법 대담한 얼굴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암만해도 그녀의 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저 여자가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뒤미처 내가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혹시 그 때문이라고 해도 그 바라봄의 순간은 너무 길었다.

내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제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넉넉히 1~2분 후면 나는 택시에 올라 고인의 자택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또한 30분쯤 후에는 다른 문상객들 틈에 끼여 앉아 화투를 치거나 소주를 마시고 있을 터였다.

이윽고 택시가 내 앞에 와 섰고 때를 같이하여 그녀는 터미널 안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나는 택시 뒷문을 열다 말고, 돌연 덜미를 잡힌 사람처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 다음, 직행 버스 터미널 입구를 캄캄하게 노려보고 있다가 냅다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는 9개월 전 암 산고를 받은 뒤 외숙모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차디찬 죽음의 그림자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크나큰 당혹감이 천둥처럼 지나가고 나서 그리 길지도 않은 사이에 그녀의 얼굴에 뒤덮이던 적막한 체념의 그림자. 그것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자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는 매표구 위에 붙어 있는 차 시간표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완도행 표를 끊었다. 처음부터 완도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별 망설임이 없는 모습이었다. 고속버스는 차가 없거나 있더라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 이쪽으로 온 게 분명했다. 스물 대여섯 살 정도. 아무래도 그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스트레이트 퍼머넌트를 한 머리에 목에는 자줏빛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다음 개표구 앞의 주황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세 시가 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뒷전에 누군가 와 서성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개표를 하기 직전에 그녀가 짐짓 우연한 얼굴로 뒷전에 서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알았으리라. 내가 불과 몇 분 전 까지만 해도 택시 승강장에 서 있던 사내라는 것을. 그 사내가 갑자기 길을 틀어 지금 자신의 뒤에 와 있다는 것을.

그때 그녀의 눈빛에서 내가 두려움이라던가 경계심 따위를 읽었다면 나는 도로 택시 승강장으로 돌아갔을런지도 모른다. 요컨대 내가 타자라는 사실을 그녀가 조금만 애써 일깨워 줬더라면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얼핏 당황한 것은 사실인 듯했으나 그녀는 이내 침착한 모습을 되찾았다. 적어도 방조 혹은 묵인을 뜻하는 그녀의 얼굴 뒤에서 나는 갈피를 못 잡고 못내 허둥거리고 있었다. 이어 부르릉 하고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나는 재빨리 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탔다. 반은 무의식적으로 또 반은 체념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라타며 나는 입엣말로 이렇게 마구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나는 검은 양복을 입고 서 있다가 우연찮게도 죽음을 뒤집어쓰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도 타인임을 빌미로 애써 외면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 한데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에 대한 저 한 가닥 미련의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면? 뭐 문상을 가던 길이 아니었냐고? 그래, 죽음 앞에 납작 엎드리러 가다 나는 산()죽음과 서로 어깨가 부딪친 거야.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 내 목숨을 구한 일이 있어.

 

2

여자는 중간께의 창문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앉아 있는 곳을 기우뚱하니 지나쳐 맨 뒷자리에 가 앉았다. 겨우 1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버스는 곧 출발했다. 버스가 광주를 빠져 나갈 때까지 나는 줄 곧 눈을 감고 있었다. 어째서 느닷없이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중에 어머니에게는 뭐라고 둘러댄단 말인가. 어쩌면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보고 사랑이 사랑을 알아보듯 죽음 또한 죽음과 만나면 별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하여 길을 가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로 행로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물론 나 자신 마저도.

버스가 나주를 지날 때 나는 혼곤한 피로에 싸여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죽음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홉 살 땐가 열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비가 온 다음날 친구들과 함께 조개를 잡으러 가서였다. 친구들과 나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철길을 따라 반나절이나 걸어 큰 강에 도착했다. 민물과 바닷물이 겹치는 그 곳엔 손바닥만한 대합이 참 많았다. 나는 손끝이 수면에 걸릴 정도의 깊이까지만 잠수해 들어가 바닥에 있는 조개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옆구리께로 떠내려가는 물살의 힘은 엄청나게 셌다. 한 순간 몸이 거꾸로 떠서 비틀리며 나는 이내 거센 물살에 휘감기고 말았다. 아무리 허우적대도 중심을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뼈마디의 힘이 다 빠져나갔을 때 나는 물 속에서 번쩍 눈을 뜨고 마지막 생사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삶과 죽음이 벌거벗은 남녀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마침내 날숨이 코까지 올라왔고 이어 실크 커튼처럼 부드러운 빛이 내 손과 발을 조여 묶기 시작했다. 짙은 푸른빛이었던 실크 커튼은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보랏빛이 흰빛으로 바뀔 즈음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깨어 보니 나는 들꽃이 무리 지어 있는 강둑에 누워 있었다. 처음엔 그 곳이 어느 세상인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좀더 지나 나는 그때까지도 조개를 쥐고 있는 손에서 매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내 옆에는 거적때기를 쓴 친구 하나가 더 누워 있었다.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강에 뛰어 들었다가 대신 변을 당한 것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죽은 친구를 보기 위해 거적때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아까 물 속에서 보았던 예의 푸른빛과 보랏빛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한데 그 흰빛의 광경은 그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마지막 흰색을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서였다. 군에 있을 때였다. 다행이 뇌관만 터져 불구도 면하고 목숨도 구했지만 제대하기 얼마 전에 나는 수색을 나갔다 지뢰를 밟은 적이 있었다. 발바닥 밑에서 뻥하는 소리와 함께 뇌관이 폭발하는 순간 나는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없이 투명한 흰색과 다시 만나고 있었다. 차라리 아람답다고 해도 좋을 은은한 하얀빛. 훗날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조선 백자를 보게 되었을 때 다시금 나는 그 황홀한 흰색에 사로잡혀 있었다. 외숙을 미치게 했던 백색의 정체도 어쩌면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까.

월출산의 한 자락을 보고 있었으니 영암이었을 터였다. 거기서부터 나는 어이없게도 깜빡 잠이 들어 있었다. 싸락눈이 내리는 걸 본 것은 나주를 지나 영암으로 가고 있는 도중이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버스는 어느덧 해남을 통과하고 있었다. 눈은 그새 함박눈으로 변해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버스 안은 저녁 처럼 어둑했다. 승객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는지 행여 소곤거리는 소리조차 한 점 들려 오지 않았다. 턱을 들고 살펴보니 그녀는 고개를 모로 틀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혹시 뒤로 돌아보지는 않았을까. 청해진을 지나는 해안 도로를 끼고 돌아 버스는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완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매표구에서 광주행 차시간부터 물었다. 마음이 바뀌어 이제라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느낌이 틀려졌을 경우를 생각해 미리 알아 놓으려는 것뿐이었다. 막차는 일곱 시 반에 있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막차를 타게 되면 열 한 시까지는 광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상을 가는 시간으로는 그리 늦은 편도 아니었다.

여자는 아까부터 터미널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완도까지 오긴 했으되 어디 갈 데가 없는 사람처럼 택시 운전사가 다가와 뭐라 뭐라 해도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렇다고 누굴 기다리는 모습이랄 수도 없었다. 그녀를 사이사이 훔쳐보며 나는 일종의 도박을 하고 있었다. 만약 5분내에 저 여자가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때는 어쨌거나 광주행 버스를 타리라고.

여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잠시 후에 앞길로 지나가는 버스를 눈으로 좇는 척하며 그녀가 먼지가 잔뜩 낀 유리문을 통해 안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았다.

이끌리듯 내가 밖으로 나가자 여자는 냉큼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따라오게는 하되 절대로 거리를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여자와 나는 읍내를 벗어나 약 50미터의 간격을 두고 함께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외길이었고 왼편에서 간간이 파도 소리가 들려 오는 걸로 미루어 먼데 바다가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부두로 빠지는 길을 버리고 인가 하나 보이지 않는 산 아랫길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갔다. 나는 상여를 따라가듯 우연히 여자의 뒤를 좇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문득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느낌마저 사라져 버리고 어쩌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실뿐이었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뒤가 너무 멀었고 날은 급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여자의 희미한 뒷모습을 붙잡고 따라가는 일 말고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자가 왜 차를 타지 않고 그 먼 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무려 한 시간 반을 걸어 정도리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눈도 그치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만에 서른 두 해를 몽땅 다시 산 기분이었다. 입춘이 지난 지는 벌써 오래고 양력 삼월을 보름 정도 남겨 놓고 내린 눈치고는 참으로 대단했다. 다음날에야 나는 남도(南道)가 겨우내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소리를 횟집 주인에게서 들었다. 서설이었던 것이다.

 

3

횟집을 겸한 여관이다. 베란다 쪽으로 난 커다란 유리창 안에 바다가 비스듬히 떠 있다. 눈이 그치고 나서 홀연 날이 개이고 보름을 턱까지 쫓아온 달이 음력 12월 중순의 바다를 흔들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여자는 곧장 2층 여관으로 올라가서는 지금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감성돔 회를 시켜 놓고 혼자 청하를 마시고 있자 횟집 주인인 40대의 사내가 슬슬 다가와 앞자리에 앉아 있다. 벌써 머리가희끗희끗하고 언제 깎았는지 턱수염이 쑥 길어 있다.

상에 놓인 감성돔은 사내가 바다에 나가 직접 낚아 올린 것이다. 횟집이라 김치, 된장찌개 따위는 팔지 않는 데다 매운탕을 끓인다고 해도 어차피 고기는 잡아야 하니 그럴러면 아예 회부터 먹으라는 얘기다. 문상을 가던 사람이 엉뚱한 곳에 와 앉아 그것도 생식(生食)을 하다니. 쟁반이 나오자마자 나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양복 윗도리와 넥타이를 벗어 놓는다.

"요즘은 고기가 잡히지 않을 때죠. 가자미 광어는 좀 남아 있지만

감성돔은 드물어요. 늦가을에 추자도 쪽으로 옮겨갔다가 산란기인 봄에 돌아오거든요. 지금 잡히는 것은 붙박이 감성돔이라고 해서 사시사철 한곳에만 붙어사는 것들이죠. 맛은 있을 겁니다. 봄에 올라오는 것은 껍질 빼고는 당최 먹을 게 없거든요. 꾼들이나 미식가들이 감성돔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색깔 때문이어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껍질을 얇게 드러내면 빨간 얼룩무늬가 보입니다. 자고로 여기 붙어 있는 살을 최고로 칩니다. 시각적으로나 미각적으로나 말입니다. 보세요, 아주 미묘한 색깔이죠?"

아직도 무채 위에 누워 있는 감성돔의 아가미가 벌죽거리고 있다. 새삼스럽게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살풍경한 모양이다. 산채로 재재 칼질을 당해 아랫도리를 홀랑 벗고 누워 있다. 살았달 수도 없고 죽었달 수도 없이 그렇게. 나는 젓가락으로 사내가 말한 얼룩무늬 부위의 살점을 슬쩍 뒤집어 본다. 미묘한 흰색. 기이한 일이다. 그 놈의 흰색을 여기 와서 이내 또 만나게 되다니. 몸서리가 쳐진다. 나는 짐짓 수를 쓰듯이 그것이 하얀색인지 백색인지를 사내에게 물어본다.

"그것까지야 제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나요. 하지만 머리까지 다 죽고 나면 색깔이 탁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감성돔은 회를 뜨고 나서 바로 드시는 게 아무래도 좋죠."

"시각적으로 또 미각적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 드셔 보시죠. 아니, 상추 마늘에 싸서 드시지 마세요. 손님들이 찾아 고추 된장까지 올려놓긴 하지만 맛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먹질 않죠. 회가 아니더라도 음식에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제 맛이 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제가 해드리죠. 이렇게 와사비에 그냥 무즙만 풀어서 찍어 먹는 겁니다. 무즙은 생식을 할 때 제독 작용을 해주고 맛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혀끝을 시원하게 해주죠."

유별난 사람이다. 내가 건네 준 잔은 내둥 사양하면서 벌써 한 시간을 이렇게 버티고 앉아 있다. 오랜만에 손님이 든 모양이다.

"겨울철엔 통 손님이 없어요. 주말에 어쩌다 사람들이 들기도 하지만 기껏해야 하루 정도 묵고 떠나죠. 오늘도 아까 그 여자 분하고 손님 둘 뿐예요."

"그럼 여관은 여기 하나뿐인가요?"

"반대쪽 해안 끝에 구계 가든이라고 장급 여관이 하나 더 있죠. 나머진 민박인데 사정은 다들 마찬가지예요. 그저 여름 한철 벌어먹고 사는 거죠."

"완도는 저도 초행입니다."

"아까는 두 분이 일행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여자 분이 먼저 도착하긴 했지만 설마 혼자려니 싶었던 겁니다."

"......따지고 보면 일행이 아니랄 수도 없겠군요."

"참으로 이상한 인연이군요. 문상을 가는 길에 만나다니요."

"인연요?"

"그게 아니라면 뭐겠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걸 함부로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제가 괜히 저 자신에게 홀려 불쑥 딴 세상을 관광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야 두고 보면 알겠지요. 여자 혼자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흔찮은 일인데 문상을 가던 사람이 뒤쫓아왔으니 예삿일이랄 수 없잖아요?"

"......."

"딱히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친 다음에야 사람이 만나지는 건 아닙디다. 인연이란 게 뭐 따로 있나요."

아까부터 말하는 투가 이쪽 사람이 아니다. 전에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인지 갑자기 호기심이 인다.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스물 두어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여종업원이 주방에 하나 있을 뿐이다. 회는 사내가 직접 친다.

"저요? 태생이야 전라도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죠. 젊어서 어지간히 떠돌았지요. 그러다 어찌어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그럼 여기다 터를 닦은 무슨 이유라도......."

"무슨 특별한 이유야 있겠어요. 그저 어딜 가나 타향이란 걸 깨달은 거지요. 여기서 오가는 사람들 상대로 주막이나 하는 게 제 팔잔가 싶습니다. 있어 보면 아시겠지만 구계등은 천자문(千字文)을 복습하기엔 괜찮은 곳이죠."

"천자문요?"

"배운 게 짧아 놔서 천자문 하나도 다 익히지 못했단 뜻예요. 별별일을 다 하며 떠돌아다니다 5년 전에 혈혈단신으로 이곳에 들어왔죠. 천지간 사람이 하나 들고나는 데 무슨 자취가 있을까만요."

배운 게 짧은 지는 몰라도 말솜씨는 여간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 예기라면 나는 아직 구계등의 뜻조차 모르고 있다.

"정도리 바닷가엔 모래가 한 점도 없어요. 청환석(靑丸石)이라고 해서 푸른 돌들이 해안을 따라 죽 깔려 있죠. 해안선이라고 해봐야 기껏 700미터밖에 언 되지만 돌밭이 바닷속으로 아홉 고랑을 이뤄 내려가 있다고 하니 장관은 장관인 셈이죠. 그래서 구계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푸른 돌밭이 아홉 고랑을 타고 바닷속까지 내려가 있다.

"여기 사람들 말을 들으면 돌들이 천년 동안 바닷물에 씻겨 마침내 푸른색을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 없이 들고 나가다간 봉변을 당하게 되죠.:

"청환석 말입니까?"

"그래요."

가지고 나가 보면 푸른빛이 곧 죽어 버릴런지도 모른다. 뭐든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게 좋다. 접시 안에서 백색이 연둣빛에 물들고 있다.

"길바닥에 눈이 쌓여 택시를 불러도 소용이 없겠네요. 광주로 가기엔 벌써 늦었으니 그만 올라가 주무셔야겠군요. 여관이라곤 하지만 2층엔 방이 열 개뿐이에요. 210호에 불을 넣어 놨습니다."

열 시. 이제는 문을 닫을 시간인 모양이다.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일어나며 사내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여자 분은 아예 저녁도 거를 모양이네요."

"......."

"얼굴이 꽤나 어두워 보이더군요. 언제 가실지 모르지만 잘 좀 지켜봐야겠어요."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사내가 주방으로 들어간 다음이다. 방으로 올라가다 말고 나는 바람을 쏘일까 싶어 밖으로 나간다.

눈이 그치고 난 뒤의 해변은 파도 소리마저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안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해안으로 내려갔다. 수박만한 청환석들은 아래로 내려갈 수록 참외만하게, 주먹만하게 작아지더니 물밑녁에 이르자 겨우 달걀만해졌다. 무릎 아래로 달빛에 부서진 파도가 은빛 거품을 물고 달겨들고 있었다. 언뜻 뒷전에서 바람이 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방풍림이 달빛 아래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얼마 만에 쳐다본 밤하늘인지도 모르지만, 사금 광주리를 엎어 놓은 듯이 그야말로 무진장한 별들이 머리 위에 가득 내려와 있었다.

그리하여 700미터의 푸른 돌밭은 왕의 요대(腰帶)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발을 뻗어 요대 위를 걸어가 보았다. 아랫도리에서부터 푸른 금빛의 무리가 휘황하게 번져 올라왔다. 나는 그 빛에 취해 한동안 바닷속에서 밀려나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다.

해안선의 3분의 1쯤을 걷다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에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수만의 조개들이 물가로 몰려나와 자그락거리는 듯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켜로 콩을 까부르는 소리? 아니었다. 알고 보니 청환석들이 파도에 휩쓸리며 토해내는 소리였다. 나는 거기다 오래 귀를 열어 두고 있다가 잊었던 듯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천자문을 베끼는 투로 옛날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읊조리고 있었다.

하늘은 커다란 천막인데 북두칠성을 못 삼아 걸려 있네.

별은 독수리, 사슴, 곰의 모양을 하고 하늘 여행을 하네.

구계 가든 아래까지 와서 나는 내가 걸어 나온 횟집을 돌아보았다. 2층 여관 방 하나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오늘밤은 더 이상 아무도 들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저녁도 거른 채 지금 무얼하고 있는 걸까.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횟집 주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돌아가 여자 옆에 있어야 하리라.

바다에서 돌아와 아까 주인 사내에게서 받은 열쇠를 꺼내 보니 여자가 들어 있는 바로 옆방이었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나는 소리를 죽여 210호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귀를 대보 았지만 옆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을 켜둔 채 잠이 든 것인가.

새벽 두 시쯤, 여자의 잔기침 소리를 듣고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

 

4

잠에서 깨어난 것은 멀리서 누가 통곡하는 소리를 들은 때문이었다. 부스스 눈을 뜨니 새벽 여섯 시였다. 옆방은 조용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아직도 어둑한 밖을 두리번거렸다. 금새 쏴아 하는 파도 소리와 함께 웬 여자가 통곡하는 소리도 한결 가까이 들려 왔다. 달빛은 희미하게 식어 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돌밭은 철조망 속의 지뢰밭처럼 음산해 보였다. 한동안 문을 열어 둔 채 누워 있다가 나는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혹시나 싶어 209호실의 문에 조심스럽게 귀를 갖다 댔으나 기척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층 계단을 다 내려와서야 나는 그게 통곡하는 소리가 아니라, 웬 소리꾼 하나가 새벽에 나와 목을 다듬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어제 횟집 주인한테서 소리꾼이 내려와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흘끗 209호실의 창문을 올려다보니 그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소리가 들려 오고 있는 곳은 돌밭 위에서 가로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방풍림 안이었다. 나는 돌밭 모서리를 타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기우뚱기우뚱 발걸음을 옮겼다. 허나 막상 숲으로 돌아오니 오리무중인 격이었다. 어디로 가나 이쪽이 저쪽이고 저쪽이 이쪽 같아 미로 속을 헤매기나 마찬 가지였다. 그런 데다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지고 마른 가지들이 때없이 얼굴을 스치고 찌르는 바람에 여기저기로 신경이 뜯겨 나가는 듯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무조건 일직선으로 숲을 벗어난 다음 다시 소리가 나는 곳을 더듬어 들어가기로 했다.

수수께끼라도 풀듯이 하며 나는 한참 후에야 숲 뒤편으로 간신히 빠져 나왔다. 새벽 들판이 안개를 말아 올리며 눈앞에 희끄무레하게 자빠져 있는 게 보였다. 먼 마을의 불빛들이 들판 끝에서 반딧불처럼 몇 개 깜박이고 있었다. 이쪽에서 보니 여기저기에 숲으로 질러 들어 가는 길이 나 있었다. 길만 놓치지 않는다면 소리꾼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성싶었다. 나는 다시 숲을 질러 들어갔다.

소리가 가까워진 곳에서 나는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얼마간 여자의 목쉰 가락에 취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 잠시 판소리에 귀를 판 적이 있으나 이제나저제나 판소리 다섯 마당조차 다 꿰지 못해 뜻까지야 알 리 없었고 통성인지 수리성인지 하는 그 소리를 훔쳐 듣고 있자니 나까지 마음이 애절하게 뒤틀렸다. 뒤미처 상스런 호기심마저 일어 딱히 얼굴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리만을 염두에 두고 도둑고양이처럼 나무들 사이를 살금살금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약 30여 미터쯤 앞까지 다가갔을까. 갑자기 소리가 뚝 끊어져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누가 숲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소리꾼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한참을 붙박여 있자 이윽고 소리가 다시 구슬프게 이어졌다. 나는 매복한 적에게 다가가는 심정으로 신중하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발 밑에서 툭 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졌는데 내가 들어도 소리가 제법 컸다. 상대가 모를 리 없었다. 판소리 가락은 이내 달아나 버렸고 그로부터 아예 들려 오지 않았다.

숲을 빠져 나오니 수평선 끝에서 가물가물 빛이 틔어 오고 있었다. 역시 그랬던가. 옆방 여자가 파도가 밀려들고 있는 돌밭에 등을 돌린 채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간밤에 내가 걸었던 요대 부분을 밟고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꺼칠한 턱을 쓰다듬으면서 방으로 돌아가면 거울부터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벽바람을 맞아선지 몸이 으스스 떨려 왔다.

여자가 1층 창가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얼굴을 씻고 나와 하릴없이 돌밭을 거닐고 있었다. 얼굴로 내려오는 머리칼을 간간이 귓바퀴로 걷어올리며 여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식사를 했다. 베란다에선 횟집 종업원인 여자가 붉은 스웨터를 입고 나와 정성껏 유리를 닦고 있었다. 닦인 유리 안으로 낚싯배 한 척이 바다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광주로 전화를 넣을 까 하다가 나는 머리를 내두르며 횟집 마당으로 올라갔다. 지금 출발한다 해도 발인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었다.

내가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주인 사내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낚싯대를 들고 돌밭을 올라왔다. 유리를 닦던 여자가 어제 내가 먹다 남긴 감성돔 매운탕을 내왔다. 그러나 입안이 깔깔해 공기밥으론 영 숟가락이 내밀어지지 않았다. 주인 사내가 휘 문을 밀치고 들어오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부터 했다.

"두 분 모두 새벽잠이 없으시군요."

새벽잠이 없다니. 제기랄. 사내가 고봉밥을 내오며 자기도 끼니 전이라며 이물 없이 식탁에 마주앉았다.

"입질은 좀 있었습니까?"

할말이 없어 나는 물고기 소식이나 물었다.

"영 시원찮아요. 내일은 갯바위에 붙어 있어야겠어요."

"......."

"그래, 광주로 올라가실 생각인가요?"

나는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사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나는 에둘러서 싱겁게 대꾸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생각해 볼 참입니다."

매운탕은 그런 대로 입에 붙기는 했다. 하지만 공기밥은 반도 못 비운 채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물컵을 입으로 가져가며 나는 사내에게 부러 심상한 투로 물었다.

"혹시 소리하는 여자가 아닐까요?"

"누구요, 어제 함께 온 여자 분말입니까?"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사내가 젓가락 든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녜요, 소리꾼들은 따로 있어요. 고수(鼓手)까지 합쳐 한 대여섯 명 되는가 봅디다. 지난 겨울에 내려와서 구계 가든에 든 지 벌써 3개월 째예요. 100일 동안 머물겠단 소리를 들었으니 이제 떠날 때가된 것 같군요. 동백꽃이 피는 걸 보고 가겠다는 말이었으니까요.

동백꽃이 필 때......어쨌든 소리하는 여자는 아니라는 예기다. 쓸데없이 새벽부터 숲을 헤매고 다녔다.

"여자 분이 방에서 내려온 건 손님이 밖으로 나가고 난 다음이에요. 30분 뒤였죠 아마?"

"어떻게 그걸 알고 있죠?"

사내는 바다에서 낚시를 하다 여자와 내가 여관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왠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까 궁리 아닌 궁리를 하며 풀린 눈을 바다에 던져두고 있는 사이 사내가 넌지시 말을 던져 왔다.

"실은 저 여자 분을 언젠가 한번 본 듯합니다."

나는 바다에서 눈을 거두고 사내를 마주보았다.

"암만해도 여기 구계등에 왔던 사람 같아요."

"그렇다면 한번 물어 보시지 그랬어요? 어디서 온 사람인지두요."

"손님한테 그런 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면서 사내는 갑자기 손윗사람인 얼굴을 하고 내게 이런 말을 들이댔다.

"지금 광주로 가실 생각이 아니라면 조금만 더 있어 보시지 그래요. 실은 저 여자 분을 두고 하는 말인데, 제 느낌으론 그래 봐야 하루 이틀 같으니까요. 오늘내일이라고 해봐야 토요일 일요일 아닙니까."

"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사내는 멋쩍게 웃으며 일껏 말투를 바꿨다.

"괜한 참견을 한다고 꾸중은 마십시오. 다만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내가 오락가락하는 얼굴을 하고 있자 사내가 다시 툭 밀고 들어왔다.

"밤새 제대로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올라가 푹 쉬세요. 대낮에 무슨 일을 저지르기야 하겠어요."

"......역시 그렇게 보신 건가요?"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나도 구해진 목숨이다. 더욱이 새빨간 목숨으로 구해진 목숨이다.

방으로 올라오다 나는 여자와 2층 복도에서 맞닥뜨렸다. 여자는 밖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로부터 오후 두 시까지 나는 잠의 깊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

 

5

여자는 종일 밀물녘의 돌밭에 앉아 있었다. 창문을 여니 대번에 중모리 북 장단에 맞춘 소리꾼들의 영창(詠唱)이 여기저기서 날아들었다. 바다에 내리고 있는 빛은 쨍쨍하게 난반사되어 수면 가득히 고기떼가 뛰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충혈된 눈으로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험하게 구겨진 와이셔츠 앞자락에 매운탕 국물까지 몇 방울 튀어 있었다.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 나는 더운물을 틀어 놓고 욕조에 들어가 누웠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여자는 무척 놀라고 있었다. 깨끗하게 머리를 빗어 내리고 입술에 루즈까지 칠하고 있었지만 가는 눈썹 밑으로 우묵하게 패인 눈자위엔 몇 올 선연한 핏줄기가 실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가. 저리 캄캄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여자는 내가 횟집에 앉아 있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가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났는지 어쨌는지 궁금해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단을 다 올라와서 나는 복도를 막 걸어 나오고 있는 여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불현듯 천둥이 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여자의 입술이 약간 벌어졌다. 나도 계단 끝에 어색한 자세로 버티고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여자가 나더러 먼저 지나가라는 뜻으로 고개를 떨구고 벽 쪽으로 붙어 섰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여자가 서 있는 곳을 뻣뻣하게 지나쳤다. 여자의 앞자락이 갸웃이 열려 있었다. 바바리 코트 안으로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스커트 자락이 내비쳤다. 여자는 내가 자신을 곁눈질로 훔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였다. 내가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을 때 여자가 참았던 날숨을 나직이 뱉어냈다. 뒤이어 여자가 나를 향해 뭐라 중얼거린 것 같았다. 나는 귀 끝을 바싹 곧추세웠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 방문 앞까지 와서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여자는 아직도 벽에 몸을 붙인 채 그대로 서있었다. 그러나 어둑한 복도 끝에서부터 역광이 뿌옇게 타들어 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여자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손으로 이마의 빛을 가리려는 시늉을 하자 여자는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창문을 통해 여자가 바다로 걸어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요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고인은 지금 장의 차에 실려 장지인 장성으로 가고 있을 터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웬일로 주인 사내가 대낮부터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한 술인지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도다리인지 광어인지 손바닥만한 고기 두어 마리를 앉은 자리에서 회를 떠놓고 벌써 두 병째 술을 비우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돌밭을 슥 내려다본 다음 사내 앞에 가 앉았다. 소리꾼들의 영창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안 떠나셨군요."

"장지에 갔던 사람들이 벌써 돌아오고 있는 중일 겁니다."

나는 사내가 건네주는 소주잔을 받으며 문득 생각이 나서 동백이 있는 곳을 물어 보았다.

"새벽에 못 보셨군요. 숲에 가면 여기저기 지천인데요."

그랬구나 하지만 그때 내 눈에 동백이 보였을 리 없다.

하루 더 묵을 작정이면 눈이 녹기 전에 들어가 봐요. 눈 속에 피어 있는 것이 진짜지요."

"벌써 피었을까요?"

"핀 놈도 있고 안 핀 놈도 있을 겁니다. 저 소리꾼들처럼 말예요."

"그건 무슨 말이죠?"

"다들 소리를 얻고 돌아갈 작정으로 내려오지만 누구나 동백이 피는 걸 보고 올라가는 건 아니란 얘기죠."

사내는 소주를 가볍게 입에 털어 넣고는 밖에서 들려 오는 계면조의 단가 하나를 잡고 제멋대로 운을 잡아 흥얼거렸다. 어쩐지 귀에 익은 듯하여 가만히 듣다 보니 새벽녘에 숲을 헤맬 때 듣던 가락이었다.

"몽유가(夢遊歌)의 한 대목이죠 아마."

몽유가. 나는 묵묵히 그 소리에 귀를 던져두고 있었다.

"지금 소리하는 저 여자는 동백이 핀 걸 보았을까요?"

"저야 모르죠. 서당개처럼 여기 앉아 몇 해 듣다 보니 겨우 귀가 좀 열렸을 뿐인 걸요."

사내는 세 병째의 소주병을 이빨로 물어 따며 돌밭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아침부터 내내 바다만 마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모양으로 머리칼이 풀풀 흩날리고 있었다.

"오늘밤을 잘 두고 봐야겠어요. 저렇게 앉아 있다 실성한 사람처럼 곧장 바다로 걸어들어 갈지도 모르니까요. 아홉 고랑 끝까지 말예요."

"......."

이제는 여자가 앉아 있는 데까지 밀물이 차들어 오고 있었다.

"3년 전인가 내 집에 들었던 노파 하나가 숲에서 목을 매 죽은 일이 있었죠. 뭐 어쩔 수도 없었지만 그걸 막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습니다.. 그땐 저 여자 분처럼 뒤를 따라온 사람도 없었죠."

뒤를 따라온 사람.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노파는 혼자 택시를 대절해 여기까지 와서는 나흘째 묶고 있었다.

"아침에 낚시에서 돌아오다 숲에 걸려 있는 노파의 흰옷을 보았죠. 정월 보름날이었는데 새벽에 지팡이를 짚고 나가 일을 저지른 거지요. 나중에 들으니 동백 숲으로 봉황을 보러 왔다가 그렇게 됐다고 합디다."

"봉황이요? 그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새 아닙니까?"

"그 노파는 장님이었어요."

"!......."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내일이 보름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어제, 오늘 나를 여기에 붙잡아 둔 것이 이 횟집 사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넙죽넙죽 소주를 받아 마시며 사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득 밖을 보니 그새 어디로 갔는지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엉덩이를 들고 돌밭 언저리를 기웃기웃 더듬어 보았으나 여자는 온데 간데가 없었다. 나는 마시던 소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횟집 사내도 따라 일어났으나 그닥 당황한 눈빛은 아니었다. 근처 어디에 있겠죠, 라며 그는 방 청소를 해야겠다며 비틀비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돌밭을 타고 아까 여자가 앉아 있던 곳으로 내려갔다. 바다는 은빛이었다가 바야흐로 연둣빛으로 서서히 변해 가고 있었다. 수평선 끝에 한 일()자 모양의 시커먼 구름이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오후가 되면서부터 슬슬 몰려들기 시작한 외지인들의 모습이 어느덧 열댓으로 늘어나 있었다. 고등 학생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도 한 쌍 끼여 있었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가며 실눈을 뜨고 숲 언저리를 찬찬히 더듬었다. 대낮에 마신 술 때문인지 숲과 돌밭과의 경계가 마구 쭈글거렸다. 바람 한 줄기가 휘이 머리끝을 채고 지나간 다음 한 떼의 물새가 숲에서 날아올라 수평선 쪽으로 편대를 이뤄 날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숲의 끝머리,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언제 거기로 옮겨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써레질이라도 하듯 파도 끝에서 돌밭이 헤쳐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동안 여자를 아득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돌밭 위에서 쟁쟁거리던 빛이 서서히 잦아들며 바위턱에 올라서 있는 소리꾼의 목소리가 컬컬한 수리성의 진양조에서 중모리로 막 넘어가고 있었다. 여자가 내게로 고개를 비트는 것 같아 나는 푹 숨을 내쉬며 대각선 방향으로 그녀를 비껴 동백을 찾아볼 양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동백은 무수한 꽃봉오리를 매단 채 한참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중이었다. 양달쪽으로 가지를 뻗은 것들은 아닌게아니라 하루, 이틀 사이에 봉오리 끝이 빨갛게 터질 것 같았다. 중부 지방으로 치자면 보름에서 한 달 정도가 빠른 개화였다. 소리꾼들이 떠나고 나면 구계등은 수만의 동백꽃이 뿜어내는 빛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얼굴마저 불어질 터이었다. 숲 한가운데에서 소리꾼 하나가 어렵게 목을 쥐어짜고 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멀찍이 숲을 싸안고 돌아 다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빠져 나왔다.

그새 바람에 힘이 실려 수평선 위에 떠 있던 먹구름이 눈에 뜨일 만큼 풀려 있었다. 구름의 그림자인지, 바다는 군데군데 짙푸른 얼룩을 끌어안고 소리를 키워 가고 있었다.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건가. 여자는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로 벤치를 떠나 다시 돌밭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둥글둥글한 돌을 밟으며 손을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가. 발을 옮겨 디딜 때마다 여자의 어깨가 좌우로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저러단 곧 넘어지고 말지, 라고 마른 소리로 되뇌이며 나는 눈썹께까지 몰려와 있는 먹구름을 노려보았다. 찰나 여자의 상체가 앞으로 푹 꺾이는 듯하더니 날카로운 단발음이 이쪽까지 날아왔다. 몇몇씩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녀에게로 쏠렸다. 무슨 생각을 했던가. 나는 얼른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로 달려 내려갔다.

나를 일행으로 안 구경꾼들의 시선이 제자리를 찾고 나서도 여자는 쓰러진 채 옴짝도 못하고 있었다. 왼쪽 무릎뼈를 돌에 찧은 모양이었다. 딴에는 충격을 받은 듯 손을 가슴에 대고 가쁜 숨만 색색몰아 쉬고 있었다. 다가가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주뼛 거리고 있다가 나는 괜찮습니까? 라고 물으며 여자 옆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았다. 여자가 반짝 눈을 치켜 뜨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여자에게 이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까 횟집에 앉아 사내와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 이 여자가 나를 밖으로 불러낸 것은 아니었을까. 벤치에서 돌밭으로 자리를 옮기다 이렇게 넘어진 것도 다 내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게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 짓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내가 제 둘레를 떠나지 못하게 느슨해진 줄을 슬쩍 끌어당겨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서먹할 리밖에 없는 우연 혹은 인연의 끈을 여자는 왜 이토록 질기게 틀어쥐고 있는 것일까.

부축해 주겠다고, 기껏해야 가재 같은 동작으로 팔을 잡으려 하자 여자는 이내 손사래를 치며 억지로 혼자 일어나려고 다리를 버둥거렸다. 나는 대뜸 겨드랑이를 잡고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안 그래도 내일 아침엔 떠날 참입니다."

어째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다시 반짝 하고 여자가 퀭하니 꺼진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낯빛이 홧홧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자는 곧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손수건을 꺼내 무릎에 몇 방울 올라와 있는 피를 훔쳐 닦았다. 스타킹이 찢어진 자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꽤나 아플 텐데 싶어 괜찮냐고 내가 다시 묻자 여자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거들지를 못하고 나는 여자에게서 떨어져 우중충하게 변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엔 눈이나 비가 올 것 같군요."

대꾸를 바라고 한 말은 물론 아니었다. 여자가 들고 있는 흰 손수건 위에 동백꽃 몇 송이가 빨갛게 묻어 나 있었다.

"서울입니까?"

그저 짐작만으로 나는 그렇게 물었다. 짐짓 난처한 표정을 하고서 여자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었다. 그러나 나는 어디냐고 되묻지 않았다. 상대가 꺼려하는 곳까지는 나도 애써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손수건을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그 근처예요, 라고 희미한 소리로 말했다. 그 근처가 어딘가. 나는 걸음을 옮겨 파도가 밀려오는 곳으로 내려갔다. 여자가 기웃기웃하며 내 옆을 따라 내려왔다.

"여긴 초행인가요?"

이번에도 여자는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횟집 주인의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언제 또 여기에 다녀간 것일까?

"아무리 바닷가지만 정말 날씨가 요지경이군요."

"......."

"저는 검은 옷을 입고 새벽에 보름달을 보나 했습니다."

슬며시 여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지 않았다. 여자와 내가 잡고 있는 긴장의 끈이 사뭇 팽팽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얼결에 끈을 놓아 버리는 순간이 곧오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쪽이 먼저 이곳을 떠나게 되리라. 허나 아직은 누가 먼저 그 끈을 놓아 버릴런지는 알 수 없다. 여자와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횟집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 속에서 축축한 습기가 묻어 나며 물비린내도 차츰 진해졌다. 수평선 쪽으로 날아간 물새 떼는 오늘 중으론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오후 다섯 시, 소리꾼들의 외침이 하나 둘씩 뒤에서 끊어지고 있을 그때에 불현듯 여자의 목소리가 귓전에 와 닿았다.

"왜 오늘 아침에 안 떠나신 거죠?"

잘못 들은 소린가 싶어 나는 후딱 옆을 돌아보았다. 여자는 시침을 떼고 바다에 떠 있는 낚싯배들을 보고 있었다. 제딴에는 용기를 내서 던져 본 말이리라. 나는 떨림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가다듬었다.

"문상을 가던 참에 길을 바꾸고 거기다 생식까지 했으니 곧장 돌아가기가 내심 두려웠던 탓일 겁니다."

내가 한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했다. 나는 슬쩍덧붙였다.

"실은 다른 이유가 있을 테지만 아직은 그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

여자는 광주에서 왜 자신을 따라왔냐는 말은 끝내 묻지 않았다.

그렇게는 차마 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에겐 흔히 상대적인 진실이란 게 있어서 서로가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끝내 밝혀지지 않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요컨대 이쪽 마음을 숨기고 있는 마당에는 저쪽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제 마음의 정체까지 모르고 있다면 정녕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 또한 여자에게 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가, 라는 식으로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먼저 방으로 올라와 나는 바다에 내려앉고 있는 먹빛 어둠을 바라보면서 저녁때까지 무심히 창가에 서 있었다. 여자는 일곱 시가 돼서야 바다에서 올라왔고 횟집 앞에 있는 공중 전화 부스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어디론가 긴긴 통화를 했다. 이미 달이 떴을 테지만 날이 흐려 벌써 어디가 어딘지 조차 분간하기도 힘들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파도 소리만 점점 요란해져 갔다. 나는 어제 여자를 따라 눈을 맞고 구계등으로 오던 밤을 떠올리고 있었다. 만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그때가 마치 먼 세월의 저편처럼 아득했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니 저녁을 먹으러 내려오라는 주인 사내의 전언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여자가 먼저 와서 등을 돌리고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마침내 베란다 유리에 툭툭 빗방울이 듣고 있었다. 썰렁한 식당 한구석에 앉아 가자미 매운탕을 먹으며 나는 이따금씩 여자의 굽은 등을 훔쳐보고 있었다. 내일이 보름이라. 하지만 아침 일찍 나는 길을 떠날 작정이야.

내가 숟가락을 놓기 전에 여자는 코트를 집어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주인 사내가 부엌에서 나와 여자가 남긴 밥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무슨 뜻인지 고개를 슬슬 가로 저었다. 그새 술이 다 깼는지 멀쩡한 얼굴이었다.

"무슨 밥상이 귀신이 먹고 간 것 같네요."

"......."

"아까 두 분이 함께 있던데, 그래 무슨 얘기라도 있었습니까?"

"얘기는 무슨 얘기요. 어차피 모르는 사람인걸요."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내일 일찍 올라갈 생각예요. 저야 동백이 피는 걸 볼일도 없구요."

사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래야겠죠."

"작정 없이 와서 이틀씩 묵으면 그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무 것도 모르고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도 할 일은 아니 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손님께 주제넘은 소리를 한 모양입니다."

"아뇨, 까닭은 몰라도 저도 올 만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겠지요.

하지만 굳이 그 까닭을 알아야 할 필요까지 있겠어요."

"듣고 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뭘 알아서 하는 소리는 아녜요. 다만 언제까지 여기 머물 수는 없다는 거죠."

숙박을 할 요량인지 승용차를 몰고 온 20대의 남녀 한 쌍이 유리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번호판을 보니 서울이었다.

 

6

여자는 초저녁부터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었다. 어쩐지 소리가 좀 크다 싶었지만 나는 여자가 이제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와이셔츠와 속옷 양말 나부랭이를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았다. 그런 다음 여자가 무얼 보고 있나 싶어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맞춰 보았다. 연예인들이 나와 서로 잡담이나 나누는 그렇고 그런 토크 쇼였다. 한편으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왠지 맥이 쑥 빠져 있다가 나는 자정쯤에 텔레비전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 나서 혹시나 하고 여자의 방 벽 쪽으로 베개를 옮겨 눕는데 왕왕거리는 텔레비전 소리에 섞여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엔 낮에 듣던 판소리 가락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205호실에 든 남녀가 통정하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틀림없이 옆방 여자가 울고 있는 소리였다. 볼륨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올려놓았던 것은 옆방에 있는 나를 의식한 때문인 듯했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등을 켜고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렇다고 뭘 어째 볼 수도 없는 일이었으나 더 이상 잠이 올 리도 없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여자는 아주 오래오래 울고 있었다. 방송 시간 종료를 알리는 애국가가 끝나고 나서 칙칙거리는 단파음에 섞여들려 오는 여자의 울음 소리는 사뭇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여자가 울음을 멈춘 건 새벽 두 시쯤이었다. 한데 울음소리가 그치고 나자 되레 불안한 느낌이 몰려왔다. 나는 바지를 꿰 입고 소리를 죽여 밖으로 나갔다. 여자의 방문에 귀를 대보았으나 여전히 칙칙거리는 텔레비전 소리뿐 다른 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켜둔 채 잠이 든 것인가. 노크를 해볼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도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답답한 마음에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으나 보이는건 천지에 가득 들어차 있는 어둠뿐이었다. 참으로 적막하고 괴괴한 밤이었다.

새벽 세 시쯤? 감겨 오는 눈을 억지로 비벼 뜨고 있다가 나는 여자가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는 소리를 듣고는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식은땀을 푹 흘리며 뒤숭숭한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이사이 눈앞에 동백꽃의 무리가 언뜻언뜻 저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어느 때던가. 나는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아니라고 베개 위에 놓인 머리를 뒤흔들며 필사적으로 잠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노크 소리는 한두 번 더 들려 오는가 싶더니 이윽고 낮은 발소리를 끌며 밖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고 나서 또 얼마가 지났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대앵, 대댕 하는 징 소리가 창문 밖에서 들려 오기 시작했다. 참 꿈도 사납네, 라고 혼령처럼 중얼거리며 나는 하나 두울 하는 식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한데 열을 세고 스물을 센 다음에도 징 소리는 집요하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한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고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곧바로 심상찮은 예감이 뇌리에 타닥 날아와 박혔다. 얼른 손목시계를 보니 그새 다섯 시가 다돼 있었다. 나는 어수선한 꼴 그대로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제서야 나는 아까 그 노크 소리가 꿈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여자의 방문부터 두드렸다. 아무래도 소리가 없어 나는 손잡이를 돌려 슬쩍 문을 열어 보았다. 아뿔싸! 텔레비전은 아직도 한 쪽 구석에서 지글거리고 있었고 어디 갔는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밤새 잠을 안 잔 모양으로 이불도 반듯이 개켜진 채 그대로였다. 징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식당엔 새벽부터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반쯤 열려 있는 유리문 안으로 비바람이 거침없이 흩뿌리고 있었다. 주인 사내도 눈에 뜨지 않았다. 암만해도 느낌이 불길했다.

밖으로 나오자 해안 바위벽 아래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유령처럼 둥그렇게 모여 서 있는 게 보였다. 차디찬 비를 맞으며 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돌밭은 기름을 뿌려 놓은 듯이 미끄러웠다. 허리가 뒤로 확 휘어지면서 나는 두 번이나 머리통을 돌에 부딪힐 뻔했다.

징을 치고 있는 것은 50대의 웬 사내였다. 옆에는 노파 하나가 와서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연신 중얼거리며 바다에 대고 절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둘 다 무당이란 얘기였다. 주위에 둘러서 있는 이들은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앳된 처녀들이었는데 한결같이 슬픈 얼굴로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으나 감히 누굴 잡고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옆방 여자가 와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에 횟집 사내가 바다에서 비를 맞으며 처벅처벅 걸어 나왔다. 턱수염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소매로 얼굴을 훔쳐내며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군요."

나는 사내의 팔을 잡고 덤비듯 물어 보았다.

"누구 말입니까?"

내 목소리는 바르르 떨려 나오고 있었다.

"소리꾼 중 하나랍니다. 새벽에 나가 바다에 몸을 던진 모양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어린 나이에."

사내는 쯧쯧 혀를 차며 밭은기침을 해댔다.

"시체는 조금 전에 저쪽 바위 밑에서 찾아냈습니다."

소리꾼들은 지금 바다에 빠져 죽은 이의 넋을 건지기 위한 굿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위턱엔 촛불 두어 개가 사납게 흔들리며 타고 있었으며 여자 무당은 바다에다 쉴새없이 쌀을 뿌려대고 있었다. 나는 무서운 눈으로 그들의 젖은 등만 노려보고 있었다. 이어 징을 치던 남자가 허리를 굽혀 16절지 크기의 한지 한 장을 물위에 띄웠다. 한지는 파도에 휩쓸려 곧장 시커먼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무얼 하는지 몰라 나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밀물 때 돌아오면 저기에 죽은 이의 머리카락이 묻어 있을 거란 얘기예요."

"장말 그런가요?"

"나도 아직 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이네들은 그걸 보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사내와 함께 횟집으로 올라갔다. 마당까지 올라와서 나는 그제서야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내를 붙잡고 아까부터 옆방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변명이라도 하듯 덧붙였다.

"밤새 깨어 있는 셈이었는데 깜빡 잠이 들어 버렸어요. 내려오다 문을 두드렸더니 이미 나가고 없더군요."

사내는 파랗게 된 얼굴로 왜 그 소리를 이제야 하느냐고 핀잔조로 몰아붙였다. 사내는 식당 안에서 살이 다 나간 우산과 전지를 가지고 나오더니 서둘러 앞장을 섰다.

"그게 언제였죠?"

"세 시까지는 제가 깨어 있었으니 아마 그 후일 겁니다."

"그럼 소리꾼이 바다에 빠진 그때군요."

사내의 낯빛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여자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내 방문을 두드렸다는 말은 차마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었다. 사위는 아직도 어두웠다. 네발짐승처럼 민첩하게 돌밭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는 사내의 뒤를 나는 미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사내가 정신없이 휘두르고 있는 전짓불 속에서 검자줏빛의 동백꽃 무리가 꿈속에서처럼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나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사내의 뒤를 마구잡이로 뒤쫓고 있었다. 숲의 중간께 쯤에 와서 맥없이 뒤를 따라오는 나를 돌아보며 사내가 외쳤다.

"숲은 내게 맡기고 어서 바다로 나가 봐요."

사나운 바람이 홱 불어가면서 들고 있는 우산 지붕에 빗물이 좌악 흩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구두 밑창이 흙투성이가 돼버려 돌밭을 내려가다 나는 몇 번이나 미끄러지면서 옆으로 아프게 쓰러졌다.

구계 가든 아래쪽, 부엌칼처럼 서 있는 바위틈을 죄 훑어보고 나서 나는 바닷물을 튀기며 굿을 하고 있는 곳으로 거슬러 올라왔다. 그러나 어디서도 여자의 모습은 찾을 수 가 없었다. 마디마디 끊긴 불빛이 이따금씩 숲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때는 한풀이라도 해주려는 모양인지 처녀 소리꾼 하나가 심청가의 한 대목을 중모리로 막 시작하고 있었다.

따라간다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초맛자락 거듬거듬 걷어 안고 바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에 모두가 사무친다. 엎더지며 자빠지며 천방지축 따라갈 제 건넛마을 바라보며 이 진사댁 작은아가 작년 오월 단오일에 앵두 따고 놀던 일을 니가 행여 잊었느냐. 금년 칠월 칠석야의 함께 걸교 하자더니 이제 나는 하릴없다. 상침질 수놓기를 뉘와 함께 하자느냐.

숲 속의 사내도 갔던 길을 되짚어 오고 있었다.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하였는디 환우성 지지 울고 뜻밖의 두견이는 귀촉도 귀촉도 불여귀라 가지 위에 앉아 울건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어느 때나 돌아오리.

횟집 마당으로 다시 돌아 왔을 때는 중모리가 아니리에서 다시 진양조로 넘어가고 있었다. 범피중류(汎彼中流), 상기는 심청이가 공선에 몸을 싣고 바다 한가운데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여자는 어둑한 복도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밖에서 금방 돌아온 듯 몸에서 줄줄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바닷속에 들어가 푸른 돌밭을 밟고 나왔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넋이 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문득 새벽에 들은 노크 소리가 다시 생각났으나 나는 아무 것도 묻지 못한 채 여자 옆을 지나며 돌아왔군요, 란 말만 흘리고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며 나는 소리꾼이 빠져 죽은 바다를 치를 떨며 내다보았다. 바다는 갖은 소란을 집어삼킨 채 가만가만 몸을 뒤채고 있을 뿐이었다. 한풀이를 해주고 있는 소리꾼은 아직도 목젖을 빨갛게 떨고 있었으나, 심청이가 치마로 얼굴을 싸안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려는 대목에서 무당들은 우비를 쓰고 그만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할 즈음 젖은 발소리 하나가 내 방문 앞으로 다가왔다. 누구인가...... 이어 똑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엔 꿈이거니 할 여지조차 없었다. 옆방 여자? 횟집 주인? 나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꼼짝도 못한 채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문을 여니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며 서 있었다. 심청이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소리가 창 밖에서 들려 왔다.

 

7

그날 새벽 왜 여자가 내 방으로 왔는지 물어 보지 않았다. 그 같은 일은 서로 묻고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성싶다. 여자도 그런 자신을 명백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여자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고 헤어질 때도 역시 그랬다. 세상엔 참으로 여러 가지의 만남이 있는 모양이고 그걸 행여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여자와의 만남은 분명 기이한 인연에 속하는 일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 나는 여자가 들어오게 옆으로 조금 비켜섰고 그런 다음 뒤에서 문을 닫아걸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젖은 옷을 한 겹씩 한 겹씩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는 알몸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반듯하게 누웠다. 커튼을 치고 불을 끄자 남은 어둠이 그물처럼 드리워졌다.

그러나 정녕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날 새벽 남은 어둠 속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는 것을. 여자와의 관계가 끝나고 난 다음에야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내 손바닥 안에 달이 떠 있다는 것을.

앞뒤 아무 약속도 없이 만난 사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떨리고 서먹한 가운데 나는 여자 옆에 비스듬히 누워 그녀의 손부터 더듬어 잡았다. 여자는 가만히 있다가 얼마 후에야 떨면서, 가까스로, 응답해 왔다. 나는 몸을 돌려 왼팔로 여자의 목을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내 입술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댔다. 그때 여자의 숨이 잠깐 멎은 듯했고 몸이 조금 꿈틀했다. 내 손은 어느새 여자의 가슴께로 옮겨 가 있었다. 나는 밑으로 내려가 여자의 가슴에 입술을 갖다 댔다. 여자가 내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이윽고 나직한 신음을 토해 냈다. 여자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귀를 두들겨댔다. 내 입과 손의 움직임에 따라 여자의 아래께가 서서히 비틀리며 풀어졌다. 나는 가슴을 쓰다듬고 있던 손을 아래로 가져갔다. 그리고 배꼽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여자가 굉장한 힘으로 내 손을 덥석 몰아 쥐더니 제 다리 사이로 냉큼 끌어당겼다. 여자의 거웃은 벌써 푹 젖어 있었고 그때부터는 여자가 마구 서두르기 시작했다. 몸을 틀어 내 허리를 바싹 욱죄며 입술로 내 가슴을 사납게 더듬었다. 여자의 머리칼이 내 몸을 슬쩍 슬쩍 스치는 통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맥없이 들려 있는 여자의 다리 사이로 허겁지겁 쳐들어갔다.

범피중류, 나는 여자의 몸 위에서 아뜩한 현기증을 느끼며 마치 물 한가운데로 떠가는 듯하다가 뇌가 하얗게 비어 버릴 찰나 용암 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왜 느닷없이 감성돔 회 빛깔이 떠올랐던 것일까. 그 미묘한 백색이 말이다.

나는 여자의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잠꼬대라도 하듯이 뭐라 뭐라 웅얼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내 손끝을 쥐고 사이사이 한숨을 내쉬며 내 말에 대꾸하기도 했다. 나는 심청이와 인당수 밑에 누워 두런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손금에 걸린 달을 보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자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잊은 듯 홱 이불을 걷어 보니 요 위에 그녀가 흘린 머리카락이 몇 올 남아 있었다. 섬뜩한 느낌...... , 그렇다면 이제 넋이라도 건져진 것인가. 허나 못할 짓을 한 사람처럼 나는 되게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여자는 임신 4개월 째였다. 3개월 전 한 남자와 이곳 구계등에 왔다가 첫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보리 싹이 팰 때 결혼하자던 남자가 1개월 전에 여자의 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여자는 광주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던 나를 본 순간에야 자신이 죽으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한 것도 그때였다고. 내가 구계등까지 따라오게 내버려둔 것도 실은 아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누군가 아이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자신이 부러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구계등까지 걸어온 건 읍내 터미널에 내려서도 확실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탓이었다. 다른 한편으론 내게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처 따라오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작정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전생을 지우기 위해 나와의 관계를 원했고 그리하여 아이는 살리되 아이의 아비에게서는 놓여 날 수 있었다고 중얼거리며 내 팔 안에서 깊이 잠이 들었다.

 

8

여자가 개놓고 간 옷을 챙겨 입고 아래로 내려와 나는 주인 사내가 미리 챙겨 놓은 밥상을 받았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햇살이 바다 위에 내려와 너울거리고 있었다. 늦게까지 주무셨군요, 하며 주인 사내가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그새 열 시였다.

"여자 분은 먼저 내려와 아침을 먹고 떠났습니다. 소리꾼들도 오늘 다 떠난다고 하더군요."

새벽녘에 있었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무심한 얼굴로 낚싯대를 닦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묵묵부답으로 수저질만 하고 있었다. 오늘도 베란다에선 붉은 스웨터의 여자가 유리를 닦고있었다.

내가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웬 젊은 여자 하나가 유리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혼자인 듯 여자는 주저하는 몸짓으로 주인 사내에 다가가 며칠 방을 빌릴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홀린 듯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서른 살쯤 돼보이는 마른 여자였다. 여자는 돈을 내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표정을 숨기고 주인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또 온 모양이군요."

"내 집에 드는 사람을 어쩌겠어요. 그저 조용히 왔다 가기를 바랄 뿐이죠."

밥상을 물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백이 피었나 한바퀴 돌아보고 가시죠. 오늘쯤엔 봉오리가 터졌을 텐데요."

동백.

"그냥 가겠습니다. 어쩌면 본 것도 같으니 말입니다."

아리송한 얼굴로 사내가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구두를 신고 있는 내 등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

"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 여자 분이 전에 우리 집에 들었던 사람이란 걸요. 소리꾼들이 내려오고 나서 며칠인가 뒤에 웬 남자와 함께 와서 하루 묵고 갔죠."

"......."

"어쨌거나 목숨은 구하고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음 문을 들어설 때부터 느낌이 그랬거든요."

나는 대꾸 없이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가 따라 나오며 내게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저 느티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바로 큰길이 나옵니다. 거기서 군내 버스를 타면 읍내까지 족히 20분이면 닿을 겁니다."

"아뇨, 걸어서 들어왔으니 걸어서 나가야지요."

나는 사내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걸음을 옮겨 놓다 말고 나는 문득 사내를 돌아보며 이렇게 묻고 있었다.

"전에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요. 구계등에 오기 전에 말입니다."

그러자 사내가 빙긋이 웃으며 대꾸해 왔다.

"새삼스럽게 서로 그런 걸 물어 뭘 합니까. 만인이 다 혹자인 걸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회나 한 접시 드시러 오세요."

생각해 보니 나는 새벽에 함께 있던 여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물론 어디서 온 여자인지 무얼 하는 여자인지도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죠, 라며 사내가 먼저 등을 돌려 횟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장님처럼 꺼이꺼이 길을 짚어 가며 홀로 그곳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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