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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춘삼이

안개 속의 춘삼이

엄흥섭

 

1

방화범 김춘삼(金春三)은 십오 년 동안의 철창생활을 마치고 그립던 고향의 산과 내를 찾아 S고을에 내려왔다.

십오 년 전의 춘삼은 갓서른의 소 같은 장정이었다. 쇠뭉치 같은 그의 두 다리의 살도 돌덩이 같은 그의 두 팔의 살도 이제는 어디로인지 다 빠져 버리었다.

다만 썩은 생선과도 같이 그의 사지는 허벅허벅하고 얼굴에는 광대뼈가 높게 불거지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가고 양볼은 푹 꺼지고 아래턱에는 거친 수염이 사정없이 났을 뿐이다.

춘삼은 이마의 땀을 소매로 씻으면서 S고을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상삿고개想思嶺에 기어올라왔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머얼리 내려다뵈는 S고을은 놀랄 만큼 변했다.

그는 소나무 그늘에 펄썩 주저앉으면서,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등에 진 베개만한 괴나리보따리를 벗어 놓고 나서 조끼적삼 마고자에서 쌈지와 곰방대를 꺼내었다.

담배 연기는 바람을 타고 춘삼의 등뒤로만 날아간다.

허허 흥!”

춘삼은 마치 넋잃은 사람처럼 일변 한탄을 하면서 그림엽서 같은 S고을의 전모(全貌)를 흔들리는 솔가지 사이로 내려보고 있다.

십오 년 전의 S고을은 게딱지 같은 오륙백 호의 초가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인 조그만 소읍이었다.

기와집이라고는 쌀밥에 뉘 섞인 것처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두 채가 섞여 있던 퍽도 가난한 고을이었다.

그러나 십오 년 후의 오늘의 S고을은 천여 호가 넘을 것 같은 대읍이 되었다.

기와집, 이층집 들이 사방에 여기저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들어찼고 군데군데에는 벌건 벽돌집들까지 우뚝우뚝 키들을 자랑하고 섰다.

춘삼은 일어서서 소나무 가지가 드문 쪽에다 일부러 궁둥이를 붙이었다.

궁둥이는 유달리 뜨거웠다. 그는 오른손으로 이마에 내리쪼이는 햇볕을 가리면서 눈을 찡그리고 또 한번 똑똑히 시가(市街)를 내려다봤다.

그는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시선을 옮겨 훑었다.

새 집이 꽉 들어찬 이 고을 가운데에서나마 옛날의 자기의 눈에 익은 집들을 찾아 보려고. 그러나 옛날 객사였던 커다란 기와집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는 전에 없던 벽돌집이 섰다. 십오 년 전까지 이 객사였던 기와집 앞엔 S고을 군청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아마 새로 지은 벽돌집이 군청인가 보다라고 춘삼은 직각을 하면서 거기에서부터 남쪽으로 뚫린 커다란 거리를 뚫고 달아나는 두세 대의 자동차에게 멍하고 두 눈을 빼앗겼다.

십오 년 전엔 한 대의 자동차도 보기가 힘이 들던 이 S고을. 그러나 지금엔 골목을 뚫는 자동차의 수효가 춘삼의 눈에 또렷하게 오륙 대가 넘는다.

춘삼은 다시 그늘로 돌아왔다. 소나무 가지가 눈앞을 흔들거린다.

그는 땀을 씻고 더위를 식힌 뒤에 다시 보따리를 둘러멨다.

곰방대를 빨면서 울퉁불퉁한 산길에 허둥지둥 발길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발바닥 밑에서 돌멩이가 밟힐 때는 고무신은 유달리도 뜨거웠다.

그는 한참 만에 평지로 내려섰다.

산 위에서 볼 때와는 더 서투르게 집들과 골목과 길들이 이상하다.

그는 좌우편을 기웃기웃하면서 장거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그만 샛골목조차 모두 변했다. 십오 년 전의 자기 발에 익은 골목은 어디로 모조리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흘금흘금 좌우와 앞뒤를 살펴봤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거리에는 전에 없던 잡화상, 포목상, 이발소, 대서소, 병원, 양복점, 양화점 들이 좌우편으로 어깨를 겨누었고 지붕 아래에서는 커다란 확성기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춘삼은 바보처럼 멍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앞산을 쳐다봤다. 서쪽으로 비스듬히 치우쳐 이 고을의 중요한 요새를 이루고 있는 조그만 앞산도 아주 변했다.

춘삼은 아까 상삿고개에서 내려다뵈던 이 앞산이 평지에서는 더 한층 아주 다르게 보이는 데에 놀랐다.

앓고 난 영감의 대머리 같은 십오 년 전의 앞산의 숲이 퍽도 자랐다. 산기슭엔 언제 누가 심었는지 포플러가 뾰족뾰족 참나무와 섞여서 하늘을 찌를 것같이 시원스럽게도 키가 자랐다.

그는 공연히 거리에 내려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는 어렴풋이 옛날의 눈어림을 되풀이하면서 어름어름 아랫장터로 내려왔다. 아랫장터에는 장날이면 떡장사와 국밥장사를 하던 그의 삼촌 내외가 살고 있었다.

그는 S고을에서도 또다시 삼십 리나 더 가야 있는 자기 마을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삼촌을 만나서 그 뒤의 모든 소식을 들어 보려 했다.

그러나 삼촌이 살고 있던 집터는 이미 지은 지 오륙 년이 넘었을 것 같은 거름창고 바닥으로 휩쓸려들어가 버리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말뚝같이 한참 동안이나 섰다가,

!”

하고 발길을 돌려 버리었다.

그의 발길은 나무전 거리로 나왔다.

장날이 아니었음인지 장터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가 모를 사람뿐이다.

십오 년 전의 이 나무전 거리에는 아름드리 팽나무 한 쌍이 여름이면 수백 명 장군들에게 푸른 그늘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팽나무는 한 개밖에 없다.

그나마도 잔가지는 모두 죽고 굵다란 몸뚱아리만 남은 고목이 되고 말았다.

고목이 된 팽나무 아래엔 촌사람 하나가 장작짐을 받쳐 놓고 담배 연기를 피우고 있다.

춘삼은 십오 년 전의 자기로 돌아왔다. 자기도 이 팽나무 밑에다가 나뭇짐을 받쳐 놓고 쉬던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였다. 팽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봤으나 그 사람은 옛날에 보지 못하던 자기보다도 십여 년이나 아래일 것 같은 젊은 사람이었다.

춘삼은 또다시 기가 막혔다.

그는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팽나무 뿌리 위에 함부로 걸터앉았다. 그러나 뼈만 남은 그의 궁둥짝은 나무 뿌리에 우리어 저리며 아팠다.

그는 보따리를 벗어 궁둥이 밑으로 깔았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가 춘삼의 등을 여지없이 삶는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맷자락으로 씻으면서,

여보 젊은 친구!”

하고 점잖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유?”

젊은 친구는 곰방대를 털면서 고개를 흘끔 돌린다.

장작 팔러 오셨수?”

!”

어디 사시유 친구!”

여기서두 산길루 가면 이십 리구 그냥 신작로루 가면 삼십 리나 되는 데 사는데유 나무가 안 팔리어 큰일이유 젠장…….”

-니 산길루두 이십 리? 대체 어딘데유?”

숭엇말이유! 숭엇말! 산길루 가드래두 고개를 셋이나 넘어야 하는 데유…….”

젊은 사나이가 숭엇말 산다는 소리를 듣자 춘삼은 몸이 오슬해진다.

숭엇말!”

그것은 십오 년 전에 자기가 살던 마을 이름이다.

자기가 찾아 내려오는 마을도 이 숭엇말이다.

숭엇말 사람이면 아무리 십오 년이 지났다기로 어디엔가 알아볼 점이 보일 터이언만 젊은 사나이는 춘삼의 눈에는 아주 첫 얼굴이었다.

숭엇말을 간다면 나구 동행합시다 우리.”

춘삼은 이십 리 길의 길동무를 얻은 것이 기뻤다.

그것보다도 차차 이 젊은 사나이에게 물어서 알 그 뒤의 숭엇말 소식과 자기 집 소식이 일각이 여삼추로 궁금해 왔다.

……그럼…… 숭엇말 가시유 영감님두?”

젊은 사나이는 누구를 찾아서 숭엇말 가느냐고 묻는 듯이 눈을 이상하게 뜨고 춘삼을 흘겨본다.

……아니유. 숭엇말이 아니라 나는 분토고개까지밖에 안 가우!”

춘삼은 슬쩍 음흉을 피워 자기를 먼저 그 사나이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다.

…… 영감님두! 라구.’

젊은 사나이가 자기를 영감이라고까지 부를 만큼 늙었나 싶으매 이제 자기의 오십이 아직도 다섯이나 모자라는 이 장년시대가 너무도 값없고 가엾게 생각되었다.

! 누구 때문에? ? 내가 이렇게 늙어 버렸담!’

춘삼은 이제는 자기의 앞엔 죽음만이 가까워 온 것 같아 갑자기 쓸쓸해졌다.

……분토고개 사시유?”

젊은 사나이는 심심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다시 이었다.

알 만한 사람이 있어 가끔 가우 그저!”

춘삼은 일부러 능청을 떨었다.

분토고개는 S고을에서 숭엇말을 가자면 고개를 셋을 넘어가서야 있는 삼십여 호의 마을이다. 이 동리는 분가루 같은 백토(白土)가 많이 나기 때문에 분토고개라고 이름을 지었다.

……, 오십 전 주고 한 짐 사가지구 왔는데 칠십 전이나 받었으면 좋겠구먼…….”

사나이는 군소리를 하고 동정을 청하는 것 같은 표정을 보이었다.

……나두 젊어서 나무장사를 했소만 천하에 못할 놈의 것은 나무장순 줄 알우, 하루 종일 이제나 팔리나 저제나 팔리나 왼종일 기다리구 앉었기에 속이 썩는 거요 썩어…… 그나마도 아침에 지구 가서 저녁때 팔리면 그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지만 웬걸 밤중까지두 못 팔구 밤을 새게 되면 배아지는 고프고…… 그저 오장이 푹푹 썩고 말지유…….”

춘삼은 옛날의 자기의 나무장수 시절의 체험담을 벌여 놓았다.

젊은 사나이는 갑자기 실감을 느꼈다는 듯이 바짝 뒤를 잇는다.

……참말이지 속상해 못 해유 이놈의 나무장사. 그나마 이익이나 있으면 이익이나 바래서 하지만 오십 전이나 사십 전 주고 한 짐 사서 하루 종일 고생하구 육십 전이나 오십 전밖에 못 받으니 짐 품삯은 고사하구 신 떨어지는 값두 안 돼유! 참말이지 속이 썩어유 글쎄…….”

해는 서쪽 하늘을 차차 벌겋게 물들이었다. 어디서인지 매미 우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 오고 지붕 위에로는 연기들이 퍼져 오른다.

푸르르 하고 새떼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2

어둑어둑해서 장작이 팔리자 사나이는 돈을 받기가 무섭게 가게로 갔다. 뒤에는 춘삼도 어슬렁 따라갔다.

신작로를 끊고 건너며 논길과 밭둑 사이로 그들은 네 다리를 빨리 놓았다.

산골짝 논배미엔 고개를 조금 숙인 나락들이 저녁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반이나 누르스름한 콩밭에는 살이 쪄 통통한 콩알맹이가 주렁주렁 매달리었다.

그는 젊은이의 뒤에 서서 따라갔다. 젊은이의 지겟발에는 신문지 쪽으로 대가리가 내다보이게 싸서 매단 절인 고등어 냄새가 은근히 코를 찌른다.

그는 옛날의 자기도 나무를 팔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이 젊은이처럼 고등어를 사서 지겟발에 달고 오던 기억이 머리에 떠오른다.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내와 어린 그 딸과 함께 고등어를 구워서 꽁보리밥을 먹던 생각이 새삼스럽게 그림같이 나타난다.

그러나 십오 년이 지난 지금엔 늙은 어머니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그의 아내가 그 동안에 굶어서 죽었는지 또는 어떤 사나이를 얻어서 다른 데로 팔자를 고쳐 갔는지도 모른다.

오직 하나 있던 딸 분순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한 가닥 산길로 발을 향하고 올라오는 그의 가슴은 퍽도 울렁거려지며 쓰라리기 시작한다.

산길은 모래알투성이다.

네 발자국 소리만이 바스스바스스 고요한 산 공기를 흔든다. 해가 넘어간 뒤의 저녁 바람은 산들산들 그의 얼굴을 식히면서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쏴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춘삼은 젊은이의 꽁무니를 바짝 다가서면서 입을 열었다.

……아 좀 천천히 갑시다그려!”

천천히유? 그러지 않어두 지금 천천히 가는 길인데유!”

……젊은 분이 돼서 기운이 좋으시군그래…….”

춘삼은 안 나오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고갯마루턱에 왔을 때엔 S읍 안의 전등불들이 반짝반짝 별처럼 깜박인다.

아직도 고개가 둘이나 남었지?”

숭엇말까지에는 아직두 셋이지유. 오복잿고개가 제일 험해유! 빨리 가셔야 해유! 요새는 오복잿고개에 낮에두 늑대란 놈이 나와유!”

담배를 한 대씩 태워 문 그들은 마루턱에서 다시 일어나 고갯길을 가기 시작했다.

춘삼은 무슨 말부터 이 사나이에게 묻는 것이 가장 자기가 수상치 않게 보일까 하고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는 결심이나 한 듯이 입을 열었다.

…… 인사가 늦었지만 숭엇말 사시면 뉘 댁이시유?”

나유? 최봉수유!”

최씨유?”

춘삼은 십오 년 전의 숭엇말 사람들의 성들을 속으로 뇌었다.

선뜻 최용학이가 머리에 떠오른다.

혹 그럼 최용학이라는 분과 어떻게 되시유?”

춘삼은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느끼었다.

최용학?’ 그는 십오 년 전 자기와의 원수였다. 분토골 여덟 마지기의 소작으로 겨우 살아가던 춘삼네의 살림살이를 깨뜨린 것은 최용학이었다.

최용학은 지주 김참봉에게 코밑 진상을 하고 아첨을 하여 춘삼의 소작권을 빼앗아갔다. 그래서 춘삼은 최용학이를 원수로 대해 내려왔다.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는 길동무가 원수 최용학의 살붙이라면 이는 너무도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춘삼은 젊은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을 미리 느끼었다.

……즈 삼춘어른이유!”

춘삼은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기분이 별안간 고약해진다.

원수 최용학의 조카 최봉수! ……흥 그것이 지금 나의 오직 하나인 길동무인가!’

춘삼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 숭엇말에 김춘삼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던 것을 아시유?”

춘삼은 자기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귀를 기울여 봉수의 대답을 기다리었다.

김춘삼유? 그 사람 살지 않어유!”

! 어디로 갔나유?”

서울 잡혀가서 징역 산다더니 죽었는지 살었는지 모르지유!”

그럼 그 사람네 부모 처자두 지금 다 없나유?”

춘삼은 뛰는 가슴 소리를 들으면서 봉수의 보고를 기다렸다.

그 사람 늙은 어머니는 죽은 제가 그럭저럭 십 년은 됐이유. 그러구 마누라허구 딸허구는 늙은이가 죽은 일 년 만엔가 살 수가 없으니까 어디로 가버리구 지금은 아무도 없이유!”

춘삼은 이렇게 될 줄 모름이 아니었다. 죽은 어머니가 불쌍하다는 것보다 젊은 아내와 어린-아니 이제는 시집갈 만큼 다 컸을-딸의 소식이 가슴이 아플 만큼 궁금하다느니보다도 자기의 앞길이 더 아득했다. 그는 무어라고 입을 열어 말할 수 없는 자기의 오늘이 너무도 참담한 데에 새삼스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대체 춘삼이란 사람이 왜 잡혀갔나유?”

춘삼은 슬며시 말머리를 돌려 놓았다.

부모와 처자의 행방이 이렇게 될 줄은 어렴풋이 짐작해 온 일이지만 봉수로부터 또렷이 소식을 듣고 난 뒤의 춘삼의 발길은 더한층 맥이 풀리었다. 누구를 보러 무엇을 하러 지금 자기가 숭엇말을 가는 것인가?

춘삼은 발길을 옮긴다느니보다도 다리를 질질 끌었다.

춘삼은 봉수가 어떤 대답을 할 것까지 모르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잡혀간 건 불놓았기 때문이유.”

불을 놔유?”

!”

어디다가?”

불두 웬만한 집이면 좋게유! 해필 서슬이 시퍼런 김참봉네 별장에다가 놨이유.”

별장에유?”

왜 저 숭엇말 앞에 시내가 있지유? 시냇물을 끊어다가 김참봉이 연못을 맨들지 않었이유? 그 연못 위에 기와로 지은 별장이 있었이유! 그런데 그 별장에다 춘삼이란 사람이 불을 놓고 잡혀갔대유!”

저런, 불을 놓다니…….”

춘삼은 시치미를 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춘삼이란 사람이 성질이 고약했던 것이로군!”

아닌게아니라 성질이 고약했대유. 그때는 벌써 십오 년 전이니까 나는 어려서 잘 몰라두 지금두 가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아주 개고기 노릇을 했대유 숭엇말서!”

남의 집에 불을 놓다니 온 더구나 별장에다가…….”

춘삼은 능청을 떨며 봉수의 거침없는 감상을 들으려 했다.

본래 춘삼이란 사람은 숭엇말 사람이 아니었대유! 어디서 살다 왔는지는 몰라두 대판으로 구주로 석탄도 파러 다니구 철롯길 목도꾼 노릇두 많이 해보고 황해도 어디선가 금점에서 금도 파고 그러던 사람이래유. 그래서 그런지 동네에서 아주 까시가 세기로 유명했대유.”

……사람이란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고생두 해보구 타관 물을 마셔야만 못되어두 아주 못되고 잘되어두 아주 잘되는 거니께.”

춘삼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성질이 못되어 들어온 춘삼이었기론 공연히 불을 놓았겠소? 불까지 놀 때에는 무슨 까닭이 있었을 게 아니유?”

춘삼은 태연하게 사나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글씨유 동네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춘삼이란 사람이 그때 미쳤던가 봐유!”

미치다니유?”

춘삼은 저절로 말소리가 조금 크게 질러졌다.

경찰서서 미친 사람은 안 잡어간다는데 그때 잡혀간 걸 보면 허기야 별루 미치지두 안했던가 봐요.”

젊은 사나이는 연방 말문을 열다가,

그럴 테지…… 좌우간 어째서 춘삼이란 사람이 불을 놨나유?”

하고 요소를 묻는 춘삼의 소리에,

원래 김참봉이 별장을 질 때유 숭엇말 앞으로 흐르는 시내를 끊어서 연못까지 만들었대유. 그래서 시내 바닥이 말러비틀어져서 고기새끼 한 마리 안 올라왔대유! 그랬다구 앙심을 품구 미친 사람처럼 밤중에 불을 놓았대유!”

사나이는 다시 말을 잇는다.

불을 놨었자 별수없었지유. 그까짓 것 별장 한 개 탔자 김참봉 같은 사람이 큰 손해 날 게 없구 불논 놈만 징역치구 별장은 더 크게 지어졌는걸유 뭘…….”

별장을 더 크게 지었다구?”

춘삼은 어느 틈에 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되리라고는 자기도 이미 짐작한 것이었으나 십오 년 전의 자기의 노력이 너무도 허무한 꿈이 되고 만 것이 한없이 기막히다. 그보다도 더한층 기막힌 것은 십오 년 전의 자기의 그 행동을 다만 미친놈의 짓이라고 해석해 내려온 숭엇말 사람들의 태도였다.

갑자기 온몸이 화끈하게 흥분된 춘삼은 스스로 쓸데없는 흥분이다라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어느 틈엔지 온몸을 싸늘한 허무가 스르르 넘쳐흐른다.

 

3

춘삼은 분토고개까지 왔다.

고갯마루 저편 하늘이 훤하게 밝아진다.

나는 이 길루 가겠이유! 조심허시유!”

젊은 사나이는 숭엇말로 가는 세 갈랫길에서 그에게 인사를 한다.

춘삼은 갑자기 외로워졌다.

원수의 조카일망정 길동무로서 험한 고개를 같이 넘겨 준 그 힘이 고마웠다.

춘삼은 젊은 사나이의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돌밭에 주저앉았다.

벌레들이 운다.

젊은 사나이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 사라진 뒤에는 더한층 벌레 우는 소리가 춘삼의 마음을 외롭게 한다.

달이 뾰조롬히 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놓는다.

자꾸 올라온다-금방 올라온다-모두 아주 올라온다.

보름을 사흘 지낸 조금 이지러진 달이다.

그러나 밝았다. 벌레 우는 소리가 더한층 요란하다.

춘삼은 달빛에 어른거리는 분토마을을 멍하고 내려봤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달밤의 분토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춘삼은 고개를 돌리고 일어섰다. 춘삼의 발길은 숭엇말 가는 외가닥길로 자기도 모르게 디디어진다.

그것이 누구를 보려고 누구를 찾으려고 가는 길인지 자기도 알 수 없다.

어디로 떠나가 버렸다는 그의 아내와 그리고 열여덟이나 먹었을 그의 딸은 누구에게 들어야 똑똑히 그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인지 춘삼은 파뿌리처럼 마음 줄기가 흩어진다.

달은 높고 둥글어 꼬불꼬불한 한 가닥 비탈길에 숲그늘을 던져 준다.

춘삼은 옛날 S고을에서 돌아오다가 이 산비탈에서 늑대를 만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의 자기의 손엔 한 뼘이나 되는 굵다란 못을 박은 실직한 작대기가 호신용으로 들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엔 땀에 젖은 단 한 벌의 옷보따리가 두 어깨의 줄을 타고 등뼈에 찰싹 달라붙었을 뿐이다.

늑대가 나와서 자기에게 덤벼도 조금도 겁이 안 날 것같이 춘삼의 마음은 구슬펐다. 자기의 목숨을 늑대에게 빼앗겨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같이 오늘의 자기는 값없는 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어느 눈먼 늑대가 자기를 물어갈 것도 같지 않다. 뜯어먹을 것도 같지 않다.

뼈만 남은 자기를-십오 년 동안에 거세어 빠진 거친 자기의 껍질을.

춘삼은 숭엇마을이 뾰조롬히 내려다뵈는 고갯마루까지 발길을 옮겨 놓았다.

춘삼의 눈은 총알같이 내리쏘였다.

이상한 소리가 왈칵 들려 온다. 춘삼은 선뜻 발을 멈추며 놀랐다.

장구 소리가 난다. 덩덩덩 덩그덩덩…… 젊은 기생들의 노래부르는 소리가 섞여서 들린다.

옛날의 연못은 그 동안에 갑절이나 더 넓어져서 이젠 아주 호수가 된 모양이다.

호수에는 배가 두 척, 노랫소리는 정녕코 호수에 뜬 배 속에서 나는 것 같다.

춘삼의 눈은 다시 옛날의 별장터로 옮기기가 바쁘게 그때보다는 더 큰 커다란 기와집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이 골짝과 저 골짝에 옛날처럼 엎어져 있다.

누구를 보고 짖는 것인지 여기저기서 개 짖는 컹컹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춘삼은 새삼스럽게 자기의 십오 년 전에 불놓고 잡혀가던 것이 후회되었다.

십오 년 전의 자기는 한 개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불을 놓았던 그 자리에는 더 큰 기와집이 지어 있지 않은가?

조그맣던 연못은 더 큰 호수가 되어 있지 않은가?

호수에는 더한층 짓부수며 술과 계집 속에서 뛰노는 김참봉의 향락이 있지 않은가? 그는 젊었을 때의 자기의 그 힘이 어리석었던 힘이었음을 더한층 깨달았다.

불끈 솟아오르는 젊었을 때의 그 힘! 그것은 일을 일답게 하지도 못하고 다만 자기의 몸을 망치고 만 어리석은 힘인 줄 비로소 깨달았다.

미친놈의 짓이었다고까지 말듣는 것도 결코 야속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춘삼은 그래도 고향을 찾아왔다고 옛날 친구들의 얼굴이 새삼스럽게도 얼른 보고 싶었다.

자기와 함께 대발을 세우고 시내에서 숭어를 잡을 때의 기뻐 날뛰던 어린아이들, 자기와 함께 겨울 새벽에 나무를 받아 가지고 S고을까지 팔러 가느라고 손등을 호호 불던 젊은 친구들! ‘아아 그들은 얼마나 늙었나?’ 춘삼은 갑자기 그들이 그리워진다.

춘삼은 비틀비틀 아래로 내려섰다.

숲그늘이 짙은 곳엔 개똥벌레가 두세 마리씩 짝지어 날고 벌레떼가 귀뜰귀뜰 운다.

호수엔 배가 떴다. 연방 노랫가락이 꽁지를 물고 웃음 소리 장구 소리가 한데 뒤섞여 호숫물을 출렁거린다.

춘삼은 산기슭을 내려서 호수가 코앞에 닿은 평평한 곳까지 왔다. 호수 둑에는 이십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어린아이들과 섞이어 뱃놀이를 구경하고 있다.

춘삼은 풀밭 위에 주저앉았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의 얼굴을 쳐다보고도 십오 년 전의 자기를 알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춘삼은 자기를 못 알아보고 이상한 눈초리로 마치 어떤 거지가 들어왔나! 하는 듯이 멸시하는 것도 같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춘삼은 고개를 흔들어 버리었다.

호수 둑 위엔 아이들을 업은 여편네들이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들어간다.

춘삼은 갑자기 아내와 딸이 그리워진다.

여편네들 가운데 자기의 아내가 섞여 있다면, 자기의 딸이 섞여 있다면! 얼마나 눈물을 흘리면서 뛰어 쫓아오랴!’

춘삼은 두 눈알이 뜨거워졌다. 이윽고 두 눈알을 빙그르 돌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하고 두 볼을 흐른다.

이 순간 춘삼은 이를 갈았다.

나는 십오 년 동안을 감옥 속에서 은근히 빌지 않았던가! 그대는 나를 바라지 말고 고생을 하지 말라고, 그리해서 어떤 사나이든지 따라가 살으라고.

사나이가 생겨서 어디로 갔는지 굶고 살 수가 없어서 남의 집 고용살이로 갔는지 어쨌든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는 소식은 적이 불안하면서도 시원섭섭한 안심이었다.

춘삼은 또한 시집갈 나이가 찼을 딸년의 소식이 또한 뼈아프게 그리워진다.

그러나 오히려 오늘의 자기가 그 계집애의 애비로서 그 계집애의 앞에 나타나 그 계집애의 눈에서 눈물을 짜내게 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어디로 굴러가서 오늘의 자기를 보지 않는 것이 또한 적이 불안한 안심이 됐다.

춘삼은 한 발자국을 숭엇말로 옮겨 놓았다. 깔고 앉았던 풀이 부스스 하고 소리를 냄은 대가리를 쳐들고 일어남일까!

춘삼은 자기의 몸이 도토리알처럼 의지가지없는 애달픈 신세인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아직도 뱃놀이가 끝나지 않은 호수 둑 위를 어름어름 걷기 시작했다.

열두서너 살의 어린아이들만이 호숫물에 돌팔매질을 치면서 놀고 있다.

춘삼의 발길은 차츰차츰 마을로 옮겨졌다. 개떼가 요란스럽게 짖기 시작한다.

그러나 짖는 개는 밉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 곁에 와서 누구요?’ 하고 한마디의 말조차 없는 것은 낯선 타관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춘삼은 너무도 자기의 한 짓이 억울한 희생이었던 것을 더한층 쓰리게 깨달았다.

어느 틈엔지 산골짜기로부터 부연 달밤 안개가 연기처럼 기어내려 마을을 흐르고 있다.

안개는 커다란 숲을 휩싸고 나서 초가지붕을 모조리 덮어 버리기 시작한다.

춘삼은 안개 속의 한 가닥 길을 빨리 걸었다. 옛날의 이 마을 사랑방을 찾기 위하여-

출전:신동아38(19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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