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샛길
신경숙
가을이 되어 햇살이 노릇노릇해지면 그 철길에는 국화가 피어났었지요. 구름처럼 피어나던 그 노란 빛을 떠올리면 졸음이 밀려 옵니다. 너 지금 잠이 오니? 나는 누구에게나 빨리 그 졸음을 들킵니다. 내 정신은 금세 박물관이 됩니다. 나는 그 졸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느 길에 있었거나 얼른 돌아와 잠을 잡니다. 그런 잠을 자는 동안에는 설령 당신이 전화를 한다 해도 나는 받지 못합니다. 손을 뻗지만 내 손은 수화기에 닿지 못하고 방바닥에 툭 떨어집니다. 그 혼미한 오수 속에서 웅얼거리지요. 이제 내 전화번호도 모르는 당신. 너무 일찍 만나 너무 일찍 헤어진 당신.
우리는 그를 망대아저씨라 불렀지요. 그는 반듯한 정복에 금테가 쳐진 모자를 쓰고 언제나 차단기 옆에 서 있었지요.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리면 그는 가슴에 매달려 있는 호루라기를 불며 신작로와 신작로 사이에 망대를 내렸습니다. 기억하시나요? 그때만은 그가 왕이었지요.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는 아무도 그를 거역하지 못했습니다.
기차가 쏜살같이 그 아득한 철길을 지나가버리면 그는 망대를 다시 올리고는 맥이 빠졌지만, 당신은 그가 부러운 모양이었습니다. 아니 그가 쓴 모자가 부러운 모양이었습니다. 차양 밑에 걸려 있는 살 나간 밀짚모자를 눌러쓰고는, 나는 이 다음에 망대가 될 테야, 했었지요. 여덟살이나 아홉살이었던 우리가 이 다음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망스런 것인줄 어디 알았나요. 그때 우리들에게 이 다음이란 모두 희망이었지요. 힘이 센 수소가 우리를 받으려고 했을 때도 이다음에, 하며 주먹을 쥐었지요. 그때 우리는 이런 말도 했었지요. 이 다음에 우리는 각시와 신랑 되어…… 실없이 우리의 이 다음은 노릇노릇하게 사라졌습니다.
늘 철길에 서 있는 망대아저씨의 배경은 시월이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망대아저씨도 시월에는 철길 가에 피어난 국화 사이를 늘 어슬렁거렸습니다. 행여 우리들이 국화를 꺾어갈까, 뒷짐을 지고 저 먼 길까지 오고갔습니다.
저 먼길까지 나갔다가 기적소리를 듣고 급히 망대집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지요. 그래요. 당신도 기억하겠지요. 모자가 벗겨졌으나 주워들 틈도 없이 달려가는 아저씨의 모자를 내가 주워 당신께 드렸지요.
하하, 모자는 당신의 얼굴을 통째로 삼켜버렸어요. 그래도 당신은 좋은 모양이었어요. 이 다음에 나는 망대가 될 테야, 당신은 모자 속에서 또 다짐을 했었지요. 모자를 찾느라 국화 사이사이를 헤매다니는 망대아저씨를 모른 척하며 우리는 그 모자를 사흘 동안이나 비밀스럽게 간직했습니다.
하루는 두근거렸고, 다음날은 즐거웠으며, 마지막날은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사흘뿐이었지요. 당신을 좋아해서 나를 미워한 부순이의 고자질만 아니었어도 닷새는 넘게 그 모자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요.
망대아저씨는 하교길에 지켜서 있다가 험상궂게 당신을 노려봤어요. 금방 호루라기를 불 듯이 그는 사나웠지요. 그에게 손바닥으로 엉덩이을 세게, 세게 맞으면서도 당신은 내가 그 모자를 주워줬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 가을날, 누군가가 크레파스로 담장에 낙서를 했습니다. 당신과 나를 연애쟁이라 하였습니다. 당신과 내가 입맞추는 걸 봤다고 써놓았지요. 물걸레로 닦아도 그 글씨는 지워지지 않았어요. 나를 보고 당신의 색시라고도 써놓았었죠.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려버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엉덩이를 맞으면서도 나를 감싸준 당신. 당신 같은 사람의 아낙이 되는 일은 참으로 행복할 텐데, 나는 울어버렸어요. 학교를 사흘이나 가지 않았지요.
아, 그런데 당신은 어쨌나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글씨가 새겨진 그 담장 밑으로 철길에서 뽑아온 국화를 쭉 심어놨었지요. 키가 큰 걸로만 골라 심어서 우리들이 입맞추는 걸 봤다는 글씨는 꽃순에 가려졌어요.
지금도 궁금해요. 철길을 지키고 있는 망대아저씨의 감시를 어떻게 피했나요? 낮에 점찍어뒀다가 밤에 가서 캐왔나요? 글씨 밑에 꽃에 심어뒀어도 소문은 퍼졌지요.
학교에 풍금이 딱 한 대뿐이었다는 걸 기억하는지요. 그래서 선생님들은 음악시간을 서로 맞춰야 하거나, 풍금 없이 노래를 가르쳐야 했지요. 반 아이들 여럿이 풍금을 가지러 간 곳이 공교롭게도 당신 교실이었어요. 내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며 웃음을 터뜨렸어요. 나는 당황해서 풍금을 놓고는 그만 넘어져버렸지요. 남색치마가 훌렁 펄럭였어요. 무릎이 찢어져 피가 철철 났지요. 그때 생긴 흉터가 지금도 있답니다.
우리가 조금 자라 열살이나 열한살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당신은 내가 일곱살에 학교 들어간 걸 알았습니다. 당신은 여덟살에 입학을 했으니 나보다 한 살이 많은 것이지요.
그걸 안 당신은 갑자기 말합니다.
"나는 네 오빠야, 나를 오빠라고 불러."
나는 위로 오빠가 셋이나 되어서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서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분고분하게 당신을 오빠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매우 흐뭇해했습니다. 정말 오빠가 되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업어도 줍니다. 그리고 이런 다짐도 합니다.
"나는 오래오래 네 오빠야, 네 숙제도 다 해줄 테야."
하지만 그 다짐은 엉터리가 되었지요. 당신은 오래오래 내 오빠도 되지 못했고, 숙제는 오히려 내가 봐줘야 했습니다.
당신 어머니에겐 내가 평강공주였지요. 가운뎃집 통통이가 당신의 짝인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당신 집 마당에서 놀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당신 어머니는 텃밭에서 애호박을 따와서 채 썰어 곤롯불에 호박전을 붙여주셨고, 숙제하다가 해 저물면 우리들 머리맡에 남포등을 켜주셨습니다. 정다운 저녁밥상을 차려 내 수저 위에 계란찜도 얹어주셨습니다.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당신네 밥상 앞에는 왜 당신과 당신 어머니뿐인지를, 오빠들과 동생들, 그리고 늘 사촌이 한둘은 끼어 있어, 늘 복작복작한 우리집 밥상 앞에 비하면 참으로 한가했어요. 그 단촐함이 쓸쓸함이었다는 걸 지금이야 알지요. 하지만 그때는 밥상을 물리고 텅 빈 마당을 내다보며 당신 어머니가 피워물던 봉초담배 맛을 내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문득 잠들어버린 나를 업고 당신 어머니는 내 집으로 갑니다. 고샅을 돌고돌아 대문으로 들어섭니다. 당신 어머니는 나를 마루에 눕혀놓습니다. 그런데 당신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온 길을 다시 돌아갑니다.
당신 어머니가 한 고샅을 돌기도 전에, 나는 내 어머니께 등을 얻어맞았어요.
"야, 야! 일어나봐라!"
나는 선잠을 깨 뭔가 뒤틀려 있는 어머니를 흐릿하게 바라봅니다.
"부순이도 있고 윤숙이도 있는데 너는 왜 그애하고만 논다니?"
나는 졸려 다시 눈을 감으려고 했지요. 어머니는 다시 내 등을 때립니다.
"야, 야! 너 다시 그애하고 어울리지 말그라, 집에 가지도 말고, 엉!"
잠결이었는데도 당신하고 놀지 말가는 어머니 맡에 정신이 반짝 들었죠.
"왜?"
나는 의아하게 어머니를 바라보았어요. 어머니는,
"하여튼!"
하고는 방문을 소리나게 닫습니다.
그때야 나는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당신은 우리집에 오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 않습니다. 무슨 일일까? 어른들의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이제 어린 나는, 어린 당신을 만나는데 어머니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이 더 좋아졌어요. 어머니 눈치 때문에 갑자기 조숙해진 나는 사방을 휘 둘러보았죠. 그러고 보니 당신은 외톨이였어요. 당신은 민남이, 대식이하고 잘 지내지 않았어요. 나 아니면 언제나 혼자였죠. 당신은 당신 집 담장 밑에 앉아 내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자전가 페달을 지루하도록 밟으며 오래오래 기다립니다.
망대아저씨가 아팠는지, 기적소리가 나면 그의 아내가 대신 차단기를 내리려고 뛰어나오던 날들을 기억하시나요? 뒷산의 떡갈나무 갈참나무 잎새들이 우수수 우수수 늦가을 바람에 날려 신작로까지 날아오던 때였어요. 국화꽃잎들도 며칠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요. 국화 감시자가 없는 그 틈을 우리는 놓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나에게 솥에 물을 붓고 군불을 지피라, 하고는 솎아 온 배추를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도랑으로 씻으러 갔어요. 나는 갈퀴나무를 아궁이에 밀어넣으며 눈물을 흘러야 했어요. 나무가 잘 마르지 않아 연기가 솟았거든요. 나는 눈물을 멎게 하려고 부지깽이로 솥단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어요. 왜, 그때 한참 우리 동무들 사이에 퍼졌던 노래 있잖아요.
엄마엄마
나 죽으면
뒷동산에 묻지 마
앞동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 쪽에 묻어줘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줘
내 친구가 찾아오면
서울 갔다 일러줘
그때 우리는 이 노래를 비눗방울 날리듯이 부르고 다녔죠. 어머니는 채소바구니를 살강에 내려놓자마자 부지깽이를 뺏어 들었어요.
"지 에미가 죽어도 이리 청승은 안 떨 것이여."
나는 부지깽이의 숯검정이 묻어날 정도로 종아리를 맞았어요. 서러워 징징 울며 신작로로 나왔지요. 당신은 담장 밑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를 데리고 망대집에서 가장 먼 꽃밭 속으로 뛰어가며 속삭였어요.
"망대아저씨 아팠어, 꽃이 다 우리 것이야."
우리는 바람처럼 달리면서 국화를 꼭 쥐었다가 편 손바닥을 서로의 코에 갖다 댔어요. 아아, 정말 그 순한 냄새. 성년이 되어 이렇게 무망으로 살아도, 가끔씩 그 냄새를 맡을 수만 있다면 이 청춘이 윤이 날 거예요.
우리는 철로변 둑길에 누웠지요. 발을 공중에 올려 장난질을 팡팡 쳤습니다.
엄마엄마
나 죽으면
뒷동산에 묻지 마
…… 노래도 실컷 불렀죠. 그러다가 당신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일어났어요. 당신은 앞자락에 꽃을 실컷 따왔어요. 걸쳐 입은 웃옷을 펴놓고 꽃을 둘둘 말아 베개를 만들어 내 머리 밑에 넣어줬습니다. 생생한 꽃냄새가 너무 좋았습니다. 나도 일어나 내 스웨터 앞자락에 꽃을 실컷 따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벗어낼 웃옷이 없었습니다. 그저 손바닥으로 한움큼씩 집어 바람에 휙휙, 날립니다.
육학년이 될 무렵부터 우리는 갑자기 서먹해졌습니다. 당신은 얼굴이 중학생보다 더 커졌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우리는 모르는 척했습니다. 통학길에 자전거를 타고 당고갯재를 올라가면 저 아래 언덕을 내려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들의 마을에서 시로 떠나기 위해 양품점에서 치마를 사입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미웠던 게지요. 읍내 고등학생이 된 당신에게는 여자친구가 많았습니다. 나는 봄 햇살이 드는 마루에서 찔레꽃을 읽다가 휙 던져놓고 기차를 탔습니다. 불행히도 기차는 상행선이어서 기차 안에선 망대아저씨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늘 담장 밑에 앉아 있던 당신처럼, 외톨이가 되어 몇 통이고 몇 통이고 편지를 썼지요. 오빠라고 써보기도 하고 그냥 이름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 중의 한 통에 우표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자전거페달을 밟으며 나를 기다리던 것처럼 오래 기다렸어요. 어느 날, 당신의 답장이 우편함에서 떨어졌어요.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에 이불도 개질 않고, 먼지에 뿌옇게 흐려진 조그만 창문을 열고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서, 그냥 빗소리를 듣고만 있었어. 감나무에 하얗게 달린 감꽃들의 향기가 은은한 습기에 젖어 내 조그만 창문으로 들어오네, 엊저녁에 밤새도록 앞집 형네 집에서 공부하다가 새벽에 집에 돌아왔어, 웬일인지 쉬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아 책상 앞에 앉아 이렇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희부연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들리잖니. 네가 시로 간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어. 놀라겠지만 떠나는 날짜도 알고 있었지. 그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마을 어귀를 나오는데 왜 그렇게 발걸음이 망설여지던지, 자꾸 네 집 쪽을 돌아다봤어. 내 눈이 흐려져서 아주 안 보이게 될 때까지 말야……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편지를 잘 썼는지요. 하지만 우리는 옛날 작은 왕국의 우리들이 아니었지요. 더이상 망대아저씨가, 우리들의 관심이 될 수 없었어요. 우리들은 소년이 되었고 이제 그리움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품에 안겨 어린애마냥 마구 울어버리고 싶어.'
당신의 편지는 내게 왔지만 내가 쓴 편지는 당신께 가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내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을 안 어머니가 우체국 아저씨에게 부탁해 당신이 받을 편지를 어머니가 받았지요. 나는 오랜 후에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쩌다 마을에 가도 어머니는 나를 감시하였습니다.
어느덧 당신의 편지도 끊겼지요.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청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림을 그린다 하였습니다. 가끔씩 당신을 생각하다 잊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흙을 만지고 있었지요. 흙, 그것은 당신과 어울렸습니다. 당신도 그 냄새가 그 촉각이 다시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어요.
우리들 앞으로 안개가 내렸습니다. 안개를 퍼내듯 당신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빨간 우편함을 그저 정답게만 지나치며 다시 안개 속으로 몸을 밀어넣었습니다. 당신이 한번 자유라는 말을 발음했습니다. 자유라고? 나는 무릎을 조금 오므리고서 서글프게 그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도 나를 가끔씩 생각하다 잊었나요? 다시 만났을 때 당신은 내게 백야의 땅에서 날아온 한 시인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가 말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억지로 집어넣지 말고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라. 영혼이라는 말을 발음하는 당신을 바라보던 내 눈은 슬몃 젖었고 내 손은 당신의 말을 오려 내 가슴에 묻었습니다.
혼자서 되뇌었지요.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 나의 시간 맞은편 저울추에 영혼이라는 말이 앉고부터 나는 나를 어찌지를 못하겠었습니다.
수많은 여름날들 중의 어느 여름날 오후에 나는 문득 기차를 타고 당신이 계신 곳으로 갔지요. 천막으로 폭양을 가리고 먼지 속에 들어앉아 당신은 돌을 깨고 있었어요. 내가 본 당신의 모습 중에 가장 적막하고 아름다운 거였습니다. 내가 문득 갔으므로 당신은 나를 한참 못 봤습니다…… 오랜 후에 무심히 위를 보던 당신의 눈이 내게 멎었을 때, 너무 무거워서 미뤄왔던 무슨 약속인가를 하고 싶었어요. 중학생들의 맹세처럼 그렇게 굳은 약속을. 하지만 곧 당신은 돌을 깨는 일을 멈추었고 나에게 도시를 떠나올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젠 내가 집보다는 자유를 말했습니다. 그땐 당신이 내 앞에서 무릎을 오므렸지요.
누군가의 결혼식장에서 우리는 양복을 입고 만났습니다. 당신은 막 웃습니다. 이런 데만 다니지 말고 너도 결혼해야지……라고, 당신이 내게 말해서 나도 막 웃습니다.
어느 가을날 마을에 돌아가보니 망대집이 사라졌습니다. 고가도로가 차단기 역할을 대신해줍니다. 망대아저씨가 지키지 않은 철로변 국화밭에서 어머니는 꽃잎을 꾹꾹 눌려 한 광주리 따옵니다. 담장 위로 노란 꽃을 하염없이 널어놓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베갯속에서 쌀겨를 털어내고 말린 꽃잎으로 속을 채워드립니다. 나는 그만 쓸쓸해져 노래를 부릅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 생각하니
눈물만 흐르네
도시를 떠나지 못한 나는 도시에서 국화를 만나면 자꾸만 샛길로 접어드는 기분이 되지요. 길을 걷다가 빌딩 가에 놓여 있는 국화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국화를 꼭 쥐었다가 놓습니다. 손바닥을 코에 대어보면 손금 사이사이로 국화향이 배어 있다가 새어나옵니다. 이따금 국화를 몇 잎 따서 팔소매에 놓고 소매를 접어놓기도 합니다. 오랜 후에 자동응답기에서 당신의 목소릴 듣습니다. 나야, 나 결혼했어.
늦봄, 혹은 초여름. 긴 골목의 장미꽃이 만발한 담벼락에 귀신처럼 몸을 붙이고 나는 피곤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이젠 나도 내 집으로 가고 싶어. 오랜 후에 자동응답기에서 당신의 목소릴 다시 듣습니다. 나야, 나 딸 낳았어.
더이상 당신의 목소린 들려오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딸을 데리고 살고 있겠지요. 잠결에 뒤척이다 이마에 손을 얹게 되면 접힌 소매 속에서 향기가 납니다.
꽃은 여전히 순한데 우리는 이제 익명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