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희생
은주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은 너무 오래간만에 그의 얼굴 비치기를 놀래기나 한 듯이 울렁울렁 떨리는 것 같았었다. 눈물 어린 시선이 핑핑 내어둘리는 탓이리라.
그는 거울을 보고 또 보았다. 아모리 보아도 제 얼굴이 낯이 설었다. 아늘 아늘 터질 것 같은 빰은 탄력을 잃고 새들새들 늘어진 듯하였다. 몽실몽실 하던 턱도 까부러졌다. 양양이뼈 언저리에 도톰하게 솟았던 야들한 살은 누가 오려간 듯. 어쩌면 눈두덩이 이렇게 부어 올랐을까. 눈엔 무슨 티가 들어간 모양으로 개이고 어훙하다.
그는 화장 제구를 있는 대로 삼면 경대 위에 늘어놓았다. 있는 대로 늘어 놓는대야, 구라브 크림통, 물분병, 분청강 등 너댓 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꾸미는 여학생 같으면 은주 같은 처지에 이런 제구가 수십 종이 넘으련만, 은주에게 이런 것이나마 있는 것이 오히려 변이었다. 이 빈약한 화장 제구일망정 그는 별로 손을 대어본 적이 드물었다. 찬찬치 못하고 곰살궂지 못한 그는 제 몸치장에도 등한하였던 것이다. 몸꼴을 내기엔 키만 엄부렁하였지, 마음은 아직 어리었던 것이다.
그는 분첩으로 두 뺨의 눈물 얼루기를 지웠다. 그러나 전 것을 메워 놓으 면, 새 것이 다시금 분가루를 제치고 실개천을 그리며 구을러 떨어졌다.
그는 분첩을 놓고 그대로 쓰러져 울었다. 전 같으면 그는 엉엉 소리를 내고 발버둥질을 치며 울었을는지 모르리라. 그러나 그는 숨을 죽이고 소리 없이 운다. 종용종용하게 누가 들을까 꺼리는 것처럼.
그는 이 한달지간에 정말 노성하고 말았다. 어리광 피우던 말괄량이로부터 대번에 눈물 잦은 계집이 되고 말았다.
그는 물론 금이야 옥이야 길러났다. 응석과 귀염으로 길러났다. 바람도 모르고 치위도 모르고, 무르녹은 봄바람에 무줄래같이 자라났다. 인생의 첫 아침은 그에게 미소만 던지는 듯하였다.
청천의 벽력! 그의 몸에 꿈에도 생각지 못할 괴변이 일어났다. 따스한 오 월에 쏟아진 된서리! 그는 아모런 견딜경도 없었다. 저항력도 없었다. 온실에서 고이고이 피어난 꽃은 이 모진 서리에 그대로 이울었다.
생각하면 꿈인지 생시인지 분별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는 이것이 한바탕 악몽으로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흐트러진 머리칼과 수세미가 된 옷은 무서운 사실을 역력히 말하고 있지 않느냐.
그는 그 일 생긴 며칠 밤은 뜬눈으로 새웠다. 잠 안 오는 밤! 난생 처음으로 불면증이란 것을 알았다.
갖은 생각이 물 끓는 듯하면서도 저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멍하게 얼이 뜬 것 같으면서도 왼몸이 찢어지는 듯이 쑤시고 아팠다.
얼마 만에야 첫째로 떠오른 생각은 자기가 밖을 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사람 대하기가 가장 싫었다. 누운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사라졌으면 싶었다.
그는 햇빛도 겁이 났다. 그 밝은 광선이 한 번 제 몸에 닿기만 하면 피 묻은 상처가 그대로 환하게 드러날 것만 같았었다. 누가 밖에서 제 행동을 엿보는 듯하여 몇 번을 미닫이를 다시 닫았다. 조금만 문틈이 벌룸하여도 그는 맘을 놓지 못하였던 것이다. 나종엔 덧문까지 닫아 걸었다.
은주는 덧문까지 닫아 걸었건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이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몸으로 똘똘 감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도록 얼굴을 꽁꽁 싸매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이 이불도 그 이불이 아닌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그 무서운 밤에 덮던 그 이불이 아닌가. 그 지긋지긋한 일을 겪는 통에 밀리고 꾸기던 그 이불이 아닌가. 그 더러운 손길은 분명히 이 이불에도 닿았다. 그 무지한 발길은 분명히 이 이불을 밟았다!
은주는 제 코와 입을 뒤덮은 이불 자락에 척척하게 사내의 숨길이 서린 듯 하였다.
그는 이불을 활딱 벗어 던졌다. 가위눌린 듯한 눈으로 사면을 둘러보았다.
따스한 봄볕은 유난히 밝게 미닫이에 깃들었다.
조그마한 책상은 전대로 제 자욱에 앉았다. 책꽂이에는 나란히 교과서가 꽂히었다. 제 입던 교복은 여전히 마구리에 걸렸다. 자수판도 이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벽에 고개를 처박고 비스듬히 누웠다.
아모 것도 변한 것이 없건만 은주에겐 모든 것이 변한 듯하였다. 생전 처음 대하듯 서름서름하고 서툴렀다. 마음에 쌓이지 않고 정이 떨어졌다. 제정이 붙고 제 손때가 묻은 이 물건들은 하롯밤 사이에 남이나 된 듯하였다.
‘그게 무슨 짓이냐, 그게 무슨 짓이냐.’ 그들은 빙글빙글 비웃는 듯하다. 그놈을 가만 둔단 말이냐. 그 몹쓸 짓을 꼬박이 당한단 말이냐.
‘그래, 그놈을 못 이겼단 말이냐. 예끼, 못생긴 년, 미친년, 더러운 년!’ 그들은 대어들고 욕설을 하고 꾸짖는 듯하다.
그들은 이 일의 목도자였다, 증인이었다. 은주를 놀리고 휘박았다. 가지각색의 형틀과 같이 은주를 깎고 저미었다.
방안의 공기조차 변한 듯하다. 퀴퀴한 사내 냄새가 떠도는 것 같다. 구역이 날 듯한 비리비리한 냄새! 은주는 이 방에서 일 분 일 초를 배기기가 어려웠다. 그는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데를 가랴. 누구를 대하랴.
낮은 그래도 나았다. 미닫이의 광선이 사라지고 어슬렁어슬렁 밤의 그림자가 짙어올 제면 그의 마음은 오그라붙기 시작하였다. 그의 몸서리나는 밤이 또 닥친 것이다.
밤이 고요해 갈수록 이슥해 갈수록 그의 피는 한 방울 두 방울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찢어지게 . 긴장한 신경엔 털끝만한 소리도 인종(人鍾) 같이 울리었다. 바시락 소리만 나도 가슴은 덜컥덜컥 나려앉았다.
뒷마룻장이 가만가만히 울린다. 분명히 ‘찌극’ 소리가 났다. 그 발자최는 갈데없이 이리로 향해 가까워진다. 악마는 다시금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 들어 오는 것이다!
은주는 왼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하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몸을 도사리었다. 방 한편 구석에 붙어섰다. 미닫이만 열리면 그는 악 소리를 지르고 곧 몸을 빼쳐 달아날 작정이었다.
인제나 저제나! 아모리 기다려도 미닫이는 열리지 않았다. 그는 참다못해 적의 동정을 살피려고 제 손으로 문을 빠금히 열어 보았다. 덧문이 철통같이 닫혀 있지 않으냐.
그래도 그는 미심다웠다. 덧 문살을 뚫고 구녕을 내어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물론 인기척도 없었다.
악마는 제가 내다보는 줄로만 알고 어데로 숨었구나!
그는 대담하게 덧문을 확 열어 젖히고 내다보았다. 아모도 없다.
달빛 어린 마룻장에 산들바람이 보금자리를 치며 굴렀다.
부끄럼과 공포의 뒤에 찾아오는 것은 절망이었다.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처녀’의 구실! 여자의 한평생에 가장 귀하고 중한 이 구실을 이렇게 헛부게 무참하게 아일 줄이야. 아름답고 깨끗한 ‘처녀’는 그 순간에 죽었다. 방싯방싯 피어나려던 생명의 꽃봉오리는 그 찰나에 떨어졌다.
탄력 있는 애젊은 육체는 하롯밤 사이에 송장이 되고 말았다.
공작의 꼬리처럼 찬란하던 꿈도 깨어졌다. 봄풀처럼 싹 돋던 희망도 쓰러졌다.
그는 졸업하기가 바빴었다. 졸업식만 치르면 그 날 밤차로 동경을 향하리라 하였었다. 가기만 가면 소원대로 동경 음악학교에 입학이 되리라 하였었다.
그는 제 성대에 자신이 있었다. 깎아질르는 듯한 소프라노를 내는 데에는 아모도 그를 따를 아이가 없었었다. 옥을 바수어내는 듯한 제 목소리를 제가 들어도, 어쩌면 내 목에서 이런 목청이 나올까 하고 스스로 경탄하였던 것이다, 홀리었던 것이다.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악단의 꽃으로 피는 자기! 화려한 음악회! 황홀한 청중! 사나운 박수 소리의 물결……. 앙코르! 또 앙코르! 빗발치는 듯한 꽃다발! 그는 적막한 조선 악단에, 더구나 여류 악단에 명성으로 번쩍이리라 하였었다, 여왕으로 군림하리라 하였었다.
이 더러워진 몸으로 어떻게 학교에를 들 것이냐, 남의 앞에 설 것이냐. 그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절망! 절망! 먹장 같은 절망이 그의 가슴을 어둡게 할 뿐이다.
혼을 잃어버린 빈 껍데기, 목숨만 붙어있는 산송장! 이 몸을 어데다가 두랴. 오직 한 길밖에 남지 않은 듯하였다. 죽음!
은주는 가장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였다. 무서움과 부끄러움과 슬픔밖에 남지 않은 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외에 아모런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하였다. 그는 쥐 잡는 약을 생각하고, 단도를 생각하고, 기차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같이 목숨을 끊는 것이라 하여도 어쩐지 징글징글하고 무시무시하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강을 생각하였다. 그 푸른 물결에 풍덩실 몸을 던지는 것이 얼마쯤 시적이었다.
한번 죽음을 작정하고 나니 모든 것이 시들하였다. 사 년 동안 바라고 기다리던 졸업 날이 닥치어도 예사로 지날 수 있었다. 원하던 음악학교에를 못 가는 것도 그리 원통치 않았다. 애닯음과 안타까움도 얼마쯤 완화가 되었다. 죽으면 고만이 아닌가! 슬픔도 기쁨도 물거품과 같이 사라질 것이 아닌가.
그 후부터는 조석도 여전스럽게 먹을 수 있었다. 뒤안에 거닐 수도 있었다. 제가 가꾸어 놓은 화초의 싹이 파름파름하게 내어 솟는 것을 시름없이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몇 날이 지나갔다. 하로는 오래간만에 그는 오라비의 소리를 들었다. 이 세상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동기! 며칠이 못 되어 그의 곁을 길이 떠나겠고 나 하매 다시금 슬픔이 사무쳤다. 눈물은 진정을 하려 할수록 더욱 쏟아졌다. 우는 낯으로야 오빠를 볼 수 없었다. 그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그는 아모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고 오래간만에 제 오빠를 만나 보려 하였다.
제 마음속으로나마 작별을 하여 두려던 것이다.
문득 병일의 고래고래 소리질르는 것이 들리었다.
“그놈을! 그놈을!”
“난 곧 경찰서로 갈 터야, 경찰서로. 그놈을, 그놈을 고발, 고발할 터야.”
그놈이라 함은 어느 놈을 가리키는 것을 은주는 직각적으로 깨달았다.
“오빠가 아셨고나!”
은주는 오라버니의 분개가 당연하다 하였다.
내 핏줄이 땡길 제, 오빠의 핏줄도 땡기리라 하였다. 내 살이 떨릴 제 오빠의 살도 떨리리라 하였다 . 오빠가 아시고야 그 악마를 가만히 두랴. 경찰에 고소를 하고 징역을 살리고 시원스럽게 분풀이를 하시고야 말리라 하였다.
이 세상에 외로이 호젓하게 단 혼자 남은 듯하던 은주는 자기와 같이 분해하고 같이 슬퍼하는 동기가 있는 줄 알고 마음이 얼마쯤 든든해졌다.
나 때문에 오빠가 괴로워하시는고나 걱정을 하시는고나 하매 은주는 더욱 슬펐다.
나종에 영애의 붙잡는 소리도 듣고,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하는 것이 재미 없다는 말도 들었다.
올케의 심정도 그러려니 하였다. 떠들지 말고 쉬쉬 감추려는 그의 마음도 고마웠다. 자기가 시킨 노릇은 아니지만, 자기 때문에 그 악마가 들어오게 되고 그런 몹쓸 짓을 저질러 놓았으니 올케의 가슴인들 여북하랴 하였다.
은주는 더욱 슬펐다. 이래도 슬프고 저래도 슬픈 일이었다. 이렇게 알뜰하게 자기를 위하는 오빠 부부를 아주 떠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절로 쏟아졌다. 그들의 정이 아모리 깊고 중하다 한들 이 마지막 길이야 아니 갈 수가 있느냐. 이왕 죽는 바에야 분풀이를 하면 무엇하랴, 원수를 갚으면 무엇하랴. 고소를 하면 무엇하고, 징역을 살리면 무엇하랴. 올케 말마따나 왁자지껄하게 만 될 뿐 아닌가. 내 한 몸만 죽으면 그만이 될 것을.
은주는 제 죽은 뒤에 자기로 말미암아 청년 하나가 징역을 살고 있다는 것이 고통이었다. 이승의 지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청춘의 피를 썩히는 것이 애처로웠다.
죽음을 작정한 은주는 악마에게도 동정이 갔다. 그도 징역을 살고 나온 지가 며칠이 못 되지 않았느냐. 그 지긋지긋한 쇠사실에 다시 얽히게 되면 아모리 제 지은 죄의 탓이라 하더래도 너무 악착하지 않으냐.
은주는 그를 구해 주고 죽고 싶었다. 그는 제 오빠를 말려 보려 하였다.
병일이가 사랑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기척을 듣고, 은주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울면서, 분노에 떠는 제 오빠를 말리려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제발 고소는 말아 달라고.
‘무슨 낯으로 오빠를 대하랴.’은주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제 방을 나왔다. 안방 문까지 왔다. 선득 문을 열지 못하고 주뼛주뼛하는 사이에 그의 귀에는 꿈에도 생각 못할 말낱이 띄엄띄엄 들리었다.
‘헌 계집’이니 ‘더럽힌 몸’이니 ‘돼지에게 밟힌 진주는 돼지에게 던져 줄밖에’ 없으니, 무사타첩하자면 ‘여해와 은주를 결혼’을 시켜야 하느니.
은주는 어릴 때 몇 번 보아 석호를 잘 안다. 그 체신머리없는 얼굴과 몸피! 그 조그마한 눈에 띠우는 간드러진 웃음. 저를 무척 귀애하는 것 같았지만, 어쩐지 얄미운 생각이 들고 정이 붙지 않았었다. 제 사단으로 그런 자와 의론을 할 줄이야!
더구나 기가 막히는 것은 듣기만 하여도 더러운 그 깜찍스러운 의견에 제 오빠가 그럴싸하게 여기는 말투이었다. 그 악마가 입원한 데 가 보라고 올케를 조른다. 병비를 주라고 돈까지 주고, 어서 가 보라고 성화같이 졸른다.
“환심을 사 두란 말이야.”
하고 웃는 제 오빠의 웃음소리는 어쩐지 지옥에서 울려나오듯이 징글징글하고 흉물스러웠다.
은주는 앞으로 고꾸라질 듯하는 몸을 간신히 가누었다.
영애가 병원에를 간다고 나오는 것을 보고 은주는 기계적으로 몸을 피하여 제 방에 돌아와 쓰러졌던 것이다.
그의 앞에는 하늘이 무너졌다. 믿고 바랐던 제 오빠! 왼 세상 사람이 다 저를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고 욕지거리를 하더라도 저를 귀애하고 위해 줄줄 알았던 제 오빠! 앞뒤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제 분풀이를 해 주고, 제 원수를 갚아줄 줄 알았던 제 오빠! 저와 같이 피를 끓이고 살을 저며낼 줄 알았던 제 오빠! 제 불행을 저보담도 더 슬퍼할 줄 알았던 제 오빠! 체면이고 명예고 다 벗어 던지고 그 악마를 이승의 지옥에 집어 넣으려던 제 오빠가 아니었던가! 그것을 말리려고 떼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긴 자기가 아니었던가.
그러하였거늘! 단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오빠의 마음이 이렇게 정반대로 변할 줄이야! 그 작은 악마 석호가 속살거리는 대로 ‘헌계집’ ‘더럽힌 몸’이란 말에 솔깃하고 말았다. 듣기만 해도 얼마나 치가 떨리느냐. 그 지긋지긋한 악마에게 누이를 서슴지 않고 내어 줄 작정을 하고 말았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까운 진주가 돼지 발에 밟혔으면, 곧 뺏어내고 씻어주는 것이 인정이 아닌가. 돼지 발에 어째 잘못되어 밟힌 것도 애닯고 원통하려든 도리어 돼지에게 던져 준다는 것은 사람으로 차마 못할 소리가 아닌가.
자기의 경우는 돼지에게 진주가 밟혔다느니보담, 차라리 사나운 짐승의 아가리에 물렸다는 것이 맞을는지 모르리라. 부드러운 살은 찢어지고 붉은 피는 쏟아진다. 이것을 보고도 그대로 범연히 지낼 것인가?
사나운 이빨이 아름다운 육체와 넋을 뜯어먹는 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여해와 결혼시킨다는 것은 이보담도 더 심한 말이었다. 이 처녀는 이미 짐승에게 물렸으니, 짐승의 잇자국이 난 계집이니 ‘헌계집’이니 ‘더럽힌 몸’이라 하여 엇매어다가 그 몹쓸 짐승에게 갖다 주자! 하는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사람으로 어째 그런 생각이 날까?’은주는 며칠을 두고 생각하다가 혼자 중얼거리었다.
암만해도 모를 것은 제 오빠의 마음이었다. 언제는 징역을 다시 살린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르고, 그 말이 침도 마르기 전에 그 원수와 혼인할 작정을 하니, 수수께끼라면 이보담도 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어데 있으랴!
원수가 되고 매부가 되는 것이 종이 한 겹도 가지지 않은 듯하였다. 은주에게 이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그는 얼마 만에야 이 기적의 정체를 풀어낼 수 있었다.
풀고 보니 그 까닭은 자못 간단하였다. 그것은 명예와 체면을 위하여는 제 누이야 어찌되든 조금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은주는 누구보담도, 석호보담도, 여해보담도, 제 오빠가 원망스러웠다. 야속하였다.
은주는 한동안 울다가 다시 일어나 거울을 보고 다시금 눈물 얼룩이를 지웠다. 그는 교복을 떼어 입었다. 그는 깨끗한 학생으로 죽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오늘, 내일 하면서 이 날까지 마지막 길을 내어 디디기를 미룩 미룩 하여 온 것이 분하였다. 끊어야 할 목숨을 진작 끊지 않고 멀거니 그날 그날을 보내다가 오늘 아침에 또다시 귀에 못 담을 소리를 듣게 된 것이 분하였다. 이왕 죽을 것을, 좀 더 종용하게 좀 더 깨끗하게 좀 더 가라앉은 마음으로 죽으려고 한 것이, 도리어 갈수록 비위를 뒤집는 일만 생기게 되었다.
은주는 오늘 아침에 사랑으로 불려 나왔던 것이다.
병일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앉았다가, 은주가 그림자같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제 앞 가까이 앉으라 하였다. 퉁퉁 부은 눈과, 멀쩡하게 양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어젯밤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어데서 밤새움을 하고 아침결에 야 집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은주는 제 오빠의 얼굴을 보매 원망과 설움이 일시에 복받쳐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는 몸이 꼿꼿해지는 듯하여 앉을 수도 없었다.
병일은 얼굴빛을 펴고,
“이리 가까이 와서 앉아라.”
라고 또 한 번 재우쳤다.
은주는 마지못해 앉기는 앉았으나, 멀찌감치 앉았다.
“이리 좀 가까이 오너라.”
병일은 또 한 번 재우치다가, 은주가 움직이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고, 제가 방석을 당겨 다가앉았다. 말하기 거북한 듯이 한참 웅얼웅얼하다가,
“어 어, 너도 인제 시집을 가 봐야지. 허허.”
말은 나직이 하고 웃음소리는 크게 내었다.
은주의 귀엔 그 웃음소리가 능청스러웠다.
제 오빠의 얼굴이 다시금 쳐다보이었다.
‘필경 그 말씀을 하시려나 부다. 그 여해란 자와 결혼을 하라구.’은주는 속으로 생각하고 몸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제 오빠의 말은 뜻밖이었다.
“너 원석호 씨 알겠지?”
‘왜 석호의 말을 끄집어낼까?’은 주는 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안다는 듯을 보이었다.
“어……그 사람이 말야. 사람이 얌전도 하고 착실도 하거든. 이번에 상처를 하고 아직 속현을 못했는데……. 어, 그 사람이 사람도 재미가 있구. 해뚝해뚝한 젊은 애들보담 늙수구레한 사람이 외려 낫단 말야. 안해 사랑할 줄도 알구……. 그래 네 혼인은 그리로 정해 두었다. 응, 그래, 네 마음에는 어떠냐?”
하고 병일은 면난하도록 은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별수 있니? 혼인이란 다 그런 거니라.”
라고 혼잣말같이 뒤를 붙이었다.
병일은 어젯밤에 석호와 단둘이 밤새도록 술을 먹었었다. 명화까지 물리치고. 병일은 아모리 생각해 보아도 제 사랑하는 누이를 여해 같은 놈에게 내 어 줄 수 없다는 뜻을 말하였다.
“그럼 어떡하나?”
하고 석호는 한 걱정을 하였다.
“그런 사정을 알아서 아는 듯 모르는 듯 맡아줄 사람도 구하기 어렵고…….”
이윽고 석호는 무슨 단단한 결심이나 한 듯이 꽉 다물었던 입을 열며,
“자네 댁 불행이면 곧 내 집의 불행이 아닌가. 그런 일이란 왁자지껄하게 맨들 수도 없는 일이구…… 별수 없네. 그러면 자네 매씨의 평생은 내가 맡음세. 나이 사십에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일이 이렇게 된 다음에야 어떡하겠나 남의 부인이 되고 . 보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뜬소문도 날래야 날 수도 없고 또 난다 한들 결국 헛소문이 되고 말 테니까…….”
하고 석호는 바루 순진한 청년과 같이 그 조그마한 얼굴을 게딱지처럼 붉히었던 것이다. 석호는 처음엔 슬슬 눈치만 보이어 병일로 하여금 저에게 청혼을 하도록 맨들어보려 하였지마는, 둔한 병일이가 게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고, 초조증을 견디다가 못하여 필경 바른 대로 쏘아본 것이었다. 자식이 늘은 듯하고 사십이 넘은 자가 제 어린 누이에게 청혼을 하리라고는, 병일도 과연 상상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왕 여해와 결혼을 못 시키는 바에야 석호에게 보내는 것이 든든하고,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자네가 맡아 준다면 그런 고마울 데가 없겠네.”
하고 대번에 승낙을 해 버렸다. 승낙을 한 다음에야 질질 끄을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불이야불이야 서둘러서 일주일 이내에라도 곧 성례를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집에 돌아오는 길로 곧 은주를 불러내어 그 의향을 물어본 다느니보담 미리 통고를 해 버린 것이다.
‘그 애도 지금 어쩔 줄을 모르렷다. 제 혼처가 작정된 줄을 알아야 안심이 되렷다.’ 병일은 이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은주는 저와 석호와 정혼하였다는 말을 듣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좋은 자리가 따루 있느냐. 집안 사람 같구, 믿음성 있구, 든든하고 그만 하면 네 일평생을 맡겨도 내 생각엔 괜찮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런 저런 속사정도 알구…….”
병일은 은주가 불만해 한다느니보담 차라리 놀래는 듯한 기색을 알아보고, 변명 비슷하게 연송 석호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속사정도 알구’한 끝엣말에 힘을 주고 뒤끝은 얼버무렸다.
“그야 나이도 많구, 걸맞다구야 못할 게지마는, 그러나 어떡하니. 여자란 한 번 몸을 그르치면 다시 어찌할 도리가 없단 말이야. 네 운명에 돌리는 게지 어쩔 수 있느냐. 응?”
병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은주의 눈을 보고 제법 우애 깊은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오빠 너무 심하십니다. 너무 심하십니다.’은 주는 속으로 부르짖고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차마 더 듣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망꾼 모양으로 사랑을 빠져 나와 제 방으로 뛰어 들어왔었다.
그는 참으로 귀를 씻고 싶었다. 저만한 아들 딸이 있는 석호, 체신머리없이 얄미운 석호, 북어 대강이 같은 얼굴에 깜찍스러운 작은 눈이 깜빡거리는 석호! 그와 저와 정혼을 하였다는 것은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소리였다. 입에 못 담을 소리였다.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는 석호가 눈앞에 선연히 나타났다. 배암과 같이 나 근나근하게 제 몸에 휘감기는 듯하여 은주는 몸서리를 쳤다. 여해는 사나운 범이라면, 석호는 징글징글한 독사에 틀림이 없었다. 범의 아가리에 물렸던 자기를 그 범에게 도루 던져 주자 하더니, 이번에는 독사에게 내버리려 한다.
‘어쩌면 오빠의 마음이 그럴까? 언제는 그놈을 징역을 살린다고 떠들다가 또다시 혼인을 하려 들고, 인제 와서는 석호와 정혼을 하였다니.’은 주는 생각할수록 오빠가 야속하였다. 하늘같이 믿었던 제 오빠가 이렇게 변덕스럽고 주책이 없고 인정머리가 없을 줄이야. 같은 뼈와 살을 나누었거늘 애연한 생각도 없는가, 가엾은 생각도 없는가.
제 오빠의 사랑까지 빈 것인 줄이야!
은주는 너무 쓸쓸하였다, 너무 호젓하였다. 그는 아모 것도 없이 텅 비인 듯한 제 가슴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죽으면 고만이었다. 한시바삐 어머니 아버지 계신 곳으로 찾아갈 것을, 구차히 하로 이틀의 목숨이나마 이어두었다가 이런 더러운 소리까지 듣게 된 것이다.
은주는 제 죽음이 늦은 것을 한하였다.
그는 속옷도 새 것을 갈아입었다. 양말도 새 것을 갈아 신었다. 교복의 몬지를 몇 번이나 털었다. 그 잔잔한 구김살까지 만적거리며 폈다.
그는 입을 것을 다 입고 참따랗게 책상머리에 앉았다. 제 손때가 묻은 교과서, 잡기장, 참고서 등속을 이것저것을 빼어보고 또 보았다. 아까운 이별을 아끼는 듯이.
마지막으로 그는 편지지를 폈다. 그는 아모래도 제 오빠에게 유서 한 장을 아니 남기고 갈 수는 없었다.
철필 끝은 떨었다. 지렁이 같은 글자가 꾸물꾸물하며 춤을 추었다. 채 마르지도 않은 잉크 위에 눈물방울이 떨어져서 글자가 피어나고 흐려졌다.
그는 몇 장을 버리고 몇 장을 다시 썼다. 그리고 빼죽이 내다보이도록 책 틈에 꽂아두었다.
거울을 몇 번을 다시 보고 눈물 얼루기를 지웠다.
그는 밤 들기를 기다렸다.
어찌하면 ‘ 아모 눈에도 들키지 않구 집을 빠져 나 갈구?’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오직 이 걱정뿐이었다.
성욕의 제단의 어여쁜 희생은 마지막 길 떠날 준비를 다 차리고 만 것이다.
급보
그 날 밤에도 병일과 석호와 명화는 명월관 별실에서 놀았다.
병일의 짝으로 명화를 불렀으면, 석호의 짝으로 초월이가 으레 대어 설 것이언만, 석호는 웬일인지 굳이 사양을 하였다. 명화가 기생 하나는 심심하니 기어이 초월을 부르자고 부득부득 졸랐으되 석호는 끝까지 거절하였다.
“언제는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그새 마음이 변하셨나요? 변덕스러우시긴.”
“내가 초월에게 실없이는 굴었지만, 언제 좋아야 했나?”
석호는 진국이다. 그리고 그 고양이 상판 같은 얼굴을 살짝 붉힌다.
“암 그러시지, 어쩌면 저렇게 시침을 따실구. 가을 하늘과 사내의 마음!”
“정말일세, 참말일세. 내가 초월을 건드렸다면 맹서라도 하겠네.”
석호는 뿌옇게 변명을 한다.
“왜 이러셔요? 맙시사. 이런 데 여럿이 모여서 엄벙덤벙 노는 것보담 단 두 분이 그림자처럼 붙어 앉아 노는 게 재미는 더 있을 게지. 그도 그래, 마음이 도저해지면, 제 애인을 남 보이기도 싫어지렷다. 그러지 마시고 고만 떼어들이시는 게 어때요?”
“이 애가 왜 이러는 게야? 생사람을 잡으니. 난 난 초월의 집에 발그림자를 한 일도 없단다.”
“발 그림자는 않으셔도 몸 그림자는 하셨지. 그럼 벌써 떼어들여 앉히신 게로군. 초월이가 안방마님 노릇하는 꼴을 좀 보았으면……호호…….”
“괜히 요릿집에서 자주 불렀더니만 헛소문이 났어. 그래 내가 기생 따위를 사랑할 것 같으냐.”
석호는 얼굴이 뻘개지며 노발대발한다.
그 서슬에 명화는 무참해졌다. 그러나 기생 따위란 말이 비위에 거슬리어 뉘엿뉘엿 올라올 듯한다.
“그러시구 말구. 기생 따위를 사랑이야 하셨겠소? 데불고 작난이나 하신 게지. 작난이 지나쳐서 그 애 배가 퉁퉁 부은 게로군요. 그래, 산삭이 어느 달예요?”
명화는 초월의 애 뱄다는 얘기는 않으려 하였으나 석호의 꼴이 얄미워서 필경 그 말을 끄집어낸 것이었다.
“뭐, 초월이가 애를 뱄나?”
병일이가 귀가 번쩍 뜨이는 듯이 묻는다.
“애를 뱄으면 한두 달이야요? 아마 여섯 달은 되었을걸.”
석호는 한 번 병일을 힐끗 보고 얼굴빛이 노오래졌다.
“그년이야 뉘 애를 뱄던지, 내가 무슨 상관이람?”
하고 어색하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 반들반들하는 눈은 명화를 당장에라도 뜯어먹을 것 같다.
명화는 심상치 않은 석호의 기색을 얼른 살피었다.
‘요 깜찍스러운 놈팽이가 또 무슨 궁리를 하길래 초월의 말이라면 질겁을 할까? 초월의 애 뱄다는 게 아마 제일 듣기가 싫은가 부다. 실컷 골을 좀 올려줄까?’ 명화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래, 그 애가 선생님 애가 아니란 말예요?”
“내 애? 원 말도 되지도 않는 소리를…….”
“정말이야요? 분명 그 애가 선생님 애가 아니란 말예요? 시침을 따도 작작 떼요. 초월이 말에는 선생님 만난 지 석 달만에 그 애가 들었다는데, 그리고 아들만 낳으면 곧 떼어들여 부인을 삼으시겠다구 떠먹듯이 약속을 하셨다는데, 초월이가 좋아라구 한턱 내는 걸 얻어먹기까지 했는데, 그래도 아니예요?”
“미친년이지, 내가 저를 상관이나 해야 애를 배든지 뭘 배든지 하지.”
석호는 또 힐끗 병일을 본다.
“다 아는 그것을 그렇게 시침을 딴다구 누가 속을 줄 아셔요? 그러시지 말구, 언제 국수를 먹이실 테요? 네 선생님?”
명화는 석호에게로 바싹 대어들었다.
“응 못되게도 구는군. 국수? 왜?”
석호는 잇새로 소리를 내었다.
“초월이와 혼인하는 국수 말예요.”
“초월이의 혼인 국수를 왜 날보고 달라는 게야?”
“선생하구 혼인을 할 테니 말이죠.”
“왜 내가 미쳤던가? 원 그 애는…….”
“그럼 남의 계집애를 배만 인왕산 더미만큼 맨들어 놓으시고 박차실 작정 이야요?”
“어떤 놈의 애를 가지구 왜 내게 뒤집어씌우는 게야. 난 꿈에도 모르는 일이래두…….”
“정 그렇게 잡아떼실 테요? 그럼 초월이를 불러 봅시다. 당자의 핵변(覈 辨)을 들으면 제일 좋을 것 아녜요. 네 선생님, 초월이를 불러 봐요? 네?
그러면 선생님의 의심도 풀릴 게구. 네, 박 선생님, 그렇지 않아요?”
명화는 말부리를 병일이에게로 돌리었다.
“불러도 좋지.”
병일은 쉽사리 승낙을 한다.
“그래, 박 선생님도 승낙을 하셨으니, 자, 원 선생님, 고집 그만하시구 우리 초월이를 부릅시다. 네?”
명화는 잔상히 졸랐다. 명화가 기를 쓰고 초월을 부르려는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 그에게는 김상열이가 온다고 전보가 왔다. 그리고 그리던 애인은 온다. 꿈 아닌 생시에 그이와 만날 시간은 한 시 두 시 다가온다. 놀음에 오기는 왔지만, 그의 마음은 공중에 떴다. 전보가 다 저녁 때에 왔기 때문에 멀리 마중은 못 나갔을망정, 세상없어도 정거장에는 나가 봐야 될 것 아니냐. 무슨 탈을 어떻게 하더래도 몸을 빼어나가야 될 것 아니냐.
그런데 기생이 단 하나로는 탈하기가 매우 거북하다. 다른 손님 아니고 병 일이니 덮어놓고 뿌리치고 갈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요새는 병일이가 저에게 휘어들어 일이 그럴듯하게 되어가는 판이니, 이런 무렵에는 그의 의심을 사게 되면 그야말로 다 된 죽에 코가 빠지는 격이다.
어떻게 하든지 초월을 불러야 한다. 초월이만 오면 무슨 수단을 어떻게 쓰더래도 감쪽같이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 듯싶었던 것이다.
일이 공교스럽게 되노라고 으레 부를 초월을 석호의 반대로 못 부르게 되었다. 아모리 구슬러 보아도 석호는 천 길 만 길 뛴다. 배랑뱅이 석호가 초월이와 무슨 일로 어떻게 틀렸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로되, 제 일에는 정말 큰 낭패다. 홧김에 초월의 애 밴 것까지 들추어내고 만 것이다.
“네 선생님, 초월이를 불러 물어 봐요. 그러면 선생님 애 아닌 걸 곧 알 것 아녜요? 네, 자 불러요.”
하고 명화는 뽀이를 부르려고 손뼉을 쳤다.
“안 돼! 안 돼!”
잠자코 있던 석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왜, 저러실까? 무슨 살이 붙었남? 선생님, 원 선생님, 한 번만 불러 봐요. 살풀이도 하실 겸.”
“압다, 한 번만 부르라게그려.”
병일이가 거들어주었다.
“그래요. 박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아모리 척이 지셨더래두 알던 사람이니 한 번만 더 불릅시다요.”
석호는 명화의 말엔 대꾸도 않고 병일을 향해 진국으로,
“인젠 술도 아주 끊겠네. 기생도 끊겠네. 나도 갱생을 해 볼 작정일세.
나이 사십에 그렇게 엄벙덤벙 지나 쓰겠나? 난 깊이깊이 결심을 하였네.”
병일은 그럴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호가 초월을 부르지 않는 까닭은, 물론 은주와 혼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야멸치게도 병일에게 얌전히 보이려고 염량이 환하게 보이도록 애를 쓴다. 귀하신 아가씨를 맡을 몸이 전에 알던 계집을 보는 것만 해도 불경한 일이라고 생각한 듯하였다.
명화는 손뼉을 쳤다. 뽀이는 들어왔다.
“배초월이 불러요!”
명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석호는 소리를 벽력같이 질렀다.
“구만둬라, 구만둬!”
“불러요, 불러!”
명화도 지지 않고 부르짖었다.
뽀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하이칼라 머리를 긁고 섰다가 병일을 향해,
“어떻게 하랍쇼?”
하고 묻는다. 병일은 묻는 뽀이는 보지 않고 석호를 보며,
“이 사람, 그렇게 고집 세울 것 없네. 불러보세그려, 응.”
“안 되네, 안 돼.”
“안 되기는 왜 안 된단 말이야? 원, 그 사람은 허허.”
“아까도 말했거니와, 난 기생을 끊은 사람일세.”
“기생이 술 담밴 줄 아세요? 끊기는. 아스세요. 오늘 밤 한 번만 더 보아요.”
“한 번 아니라 반 번이라두 싫다니까.”
“어떡하랍쇼?”
뽀이는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병일에게 또 한 번 묻는다.
“있나 알아 봐라.”
병일은 시비를 갈르는 듯이 판단을 나리었다.
뽀이는 몸을 굽실하고 나갔다. 조금 있다가 뽀이는 다시 와서 문만 열고 묻는다.
“배초월이 있답니다. 부르랍쇼?”
“그래 불러요.”
명화가 가루채어서 얼른 대답을 해 버렸다. 석호가 미처 반대를 하기 전에, 뽀이는 ‘네에.’ 긴 대답을 남기고 사라졌다.
석호는 깡충 뛰는 듯이 일어났다. 그는 모자를 떼어 썼다.
“이 사람이 왜 이래?”
병일은 말리는 눈치로 석호를 보았다.
“나는 가야겠네. 생각을 해 보니 볼일이 좀 있네그려.”
석호는 아주 새모록하게 대꾸를 한다. 그의 눈썹에는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분기가 떠돌았다.
“그만 일에 가실 거야 뭐 있어요? 앉으세요, 안 부르면 구만 아녜요.”
명화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뽀이를 불러 초월이 불르는 것을 구만두라 하였다.
석호는 다시 주저앉기는 앉았으되 여전히 뽀르퉁하게 성을 내었다.
요리상은 들어왔다.
석호는 앞에 놓인 술잔을 엎어놓았다.
술을 치려던 명화는 무참해 하며,
“왜 술을 안 잡수셔요?”
“술도 끊었네.”
석호는 팍 무는 소리를 내었다.
병일은 한 잔을 훌쩍 먼저 들이키다가, 석호와 명화와 승강하는 것을 보고,
“왜 그러나? 술까지 안 먹을 거야 있는가?”
하고 얼굴을 찡기었다.
“아닐세, 술도 끊겠네.”
“그러면 나 혼자만 먹으란 말인가?”
병일도 화를 버럭 낸다. 석호는 난처한 듯이 고개를 빠뜨리고 앉았다가 마지못해 하는 듯이,
“그러면 오늘밤에만 먹겠네. 인제는 아주 술하구 하직일세.”
하고 씩 웃고 간신히 술잔을 받는다.
좌석이 턱 어우러지지를 못하고 어째 까실까실하게 되어 명화가 재조를 부리랴 부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 사이에도 시간은 나래가 돋친 듯이 훨훨 날아간다. 십분, 이십 분! 명화의 정거정에 나갈 시각은 가까워온다. 명화는 속으로 기름을 끓이고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시간은 열 시를 넘었다 . 열 한 시 이십 분 차면, 여유는 한 시간밖에 남지를 않았다. 명화는 탈할 궁리를 아모리 해 보아도 그럴듯한 것이 나서지 않았다.
마침 뽀이가 왔다.
“박 선생님 댁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 집에서 전화가 와?”
병일은 얼근한 얼굴을 들었다.
“누가 걸었단 말이냐?”
하고 불쾌한 듯이 물었다.
“부인께서 거신 듯합니다.”
“내 여기 없다구 하렴.”
“대단히 급하신 일이라구 하시는뎁쇼.”
병일은 여해와 영애가 병원에서 옥신각신이 있고 명화의 위조 전갈을 들은 뒤로 아직까지 한 번도 영애를 대하지 않았었다. 며칠만큼 집에 돌아가는 것이나마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사랑에만 휘 둘러나오고 말았었다. 영애도 남편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하여, 여러 날 들어가지 않아도 은행에나 회사로 전화 한 번 거는 법도 없었다.
병일은 제 안해가 어떻게 괘씸한지 몰랐다.
‘남편이 닷새씩 열흘씩 들어가지 않아야 한 번 찾을 생각도 않구…….’ 병일은 노여웠다, 분하였다. 그러나 한 옆으로 쓸쓸하였다. 안해에게 대한 제 사랑도 식어 가거니와 제 안해가 이다지 끊고 빈 듯이 냉정해질 줄이야.
‘그깟 년 내버리면 구만이지, 인제는 남이지, 아주 남이다. 남!…….’ 속으로 부르짖고, 성날 대로 할 것 같으면 당장에라도 요절을 내고 싶었다.
‘하로바삐 이혼을 해 버려야…….’ 그는 여러 번 막다른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이 결심을 실행하기엔 여러 가지 난처한 일이 있었다. 첫째는 왁자지껄한 것이었다.
여해를 고소를 하려다가 구만두고, 은주를 여해와 결혼을 시키려다가 말고, 석호와 정혼한 것과 마찬가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이혼을 할 도리가 없었다. 까닭 붙은 자기네 부부가 갈린다면 왁자지껄해질 것은 환한 노릇이었다. 신문에 오르나리고, 남의 입길에 오르나리는 것이 그는 제일 무서웠다.
둘째는 영애를 제 안해로 맨드는 데, 그는 너무나 많은 물질과 정신을 희생하였다. 값진 것이 아까웠다.
셋째는 아직도 남은 듯한 애정의 찌꺼기와 질투다. 저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 년이니, 내쫓아서 비렁뱅이가 되어 고생하는 꼴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애연할 것이 없으되, 다른 사내의 품속에 안긴 꼴은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었다. 더구나 제가 내버리면 제 사랑의 원수 여해에게로 갈 것 아니냐. 그 놈과 참따랗게 살 것 아니냐.
부부 사이가 이쯤 되었으니, 병일은 영애가 전화 걸었던 말을 듣고 화를 버럭 낸 것이었다.
“급하신 일이라시는뎁쇼.”
하는 뽀이의 말에도 병일은,
“급한 일? 급한 일은 다 뭐냐? 그양 끊어라. 끊어 버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급한 일이라는데 받아 보셔야지.”
명화가 옆에서 권하였다.
“무슨 얼어 죽을 급한 일이야, 구만둬.”
병일은 여전히 역정을 낸다.
“그럼 제가 받아볼까요? 그렇게 받기 싫으시면.”
명화는 바시시 일어났다.
“누구세요?”
명화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물었다.
“누구예요?”
저편에서도 묻는다.
“아씨님이세요? 전 명화예요.”
전화 받는 이가 뜻밖이란 듯이 저편의 말이 뚝 끊긴다. 저편의 마음의 파동을 전하는 것처럼 전화선은 쇄 하고 떨었다.
“전 명화예요. 무슨 말씀예요?”
망설이는 저편을 재촉하는 듯이 명화는 채쳤다.
“박 선생님 안 계셔?”
분명히 볼멘 소리가 들려온다. 왜 네가 가루맡아서 전화를 받느냐고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한다.
“박 선생님 찾으시는 줄 누가 몰라요? 계시기는 계시지만 전화는 안 받으신답니다. 그양 끊어버리라 하시는 걸 급하신 일이라시기에 제가 받아 드리는 거예요. 그럼 전화를 끊을까요?”
명화는 골딱지를 내었다.
“선생님을 못 대 주겠어? 큰일 났는데…….”
저 편에서는 매우 안타까워하는 모양이다.
“뭐 제가 들어서 대구 떼구 하는 줄 아세요. 안 받으신다니 그렇지. 그럼 전화를 끊을 테예요.”
명화는 더욱 골을 내었다.
“급하시다기에 제가 대신이라도 전화를 받아 드린 게지. 저에게 말하시기 어려운 일이면 전화를 끊어 버릴 테예요.”
하고 명화는 홧김에 정말 전화를 끊으려 하였다.
병일이가 덮어놓고 끊으라는 것을, 그래도 그렇지 않아서, 받아주었으면 고마워해야 옳겠거늘, 도리어 볼멘 소리를 하고, 제가 병일을 전화도 못 받도록 뀌어차고나 앉은 듯이 퉁명을 부리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명화의 내던지는 듯한 이 말은 분명히 저편을 위협한 듯하였다.
“아 아 아니…….”
당황해 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수화기 속에서 떤다.
“왜 그러셔요? 그럼 말씀을 하셔요. 속시원하게…….”
“저 저…….”
섭적 말하기를 저편에서는 그래도 꺼려 하는 눈치였다.
“무슨 말씀이셔요? 어서 말씀을 해요. 제가 전해 드리기는 할 테니.”
“저 저, 은주 아가씨가 집을 나갔다고 여쭈어 주우.”
“은주 아가씨가 집을 나가요? 어델 갔어요?”
명화는 의외의 말에 깜짝 놀래었다.
“유서를 보면 한강으로 나간 듯하우.”
“네! 유서? 한강?”
명화는 엉겁결에 수화기를 탁 놓고 근두박질을 하다시피 제 놀던 방으로 뛰어왔다.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명화는 힘에 버거운 장짓문을 메다붙이는 듯하고 외우쳤다.
술이 얼쩍지근하게 된 병일은 개개풀리는 눈을 치뜨며,
“웬 방정이야? 무슨 큰일?”
하고 유사태평이다.
“댁에 큰일 났어요, 큰일. 은주 아가씨가 댁을 나갔대요.”
“은주가?”
그제야 병일의 눈은 뚱그래졌다. 석호도 톡 튀는 듯이 몸이 솟구치며, 그 조그마한 눈을 찢어지도록 호동그랗게 뜬다.
“유서를 보면 한강에를 나간 듯하대요.”
“응?”
두 손님은 일시에 기함하는 소리를 내고 벌떡 일어선다. 일어섰으되,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다가, 눈은 다시금 명화의 입술로 물리었다.
“자동차를 부를까요? 얼른 댁에를 가 보셔야지.”
명화는 그들의 취할 행동을 지시하였다.
“그래, 그래. 자동차를 불러!”
병일은 허둥지둥하며 모자를 떼어 쓰고 스프링 코트의 소매를 뀌는 둥 마는 둥 하고 방 밖엘 나섰다.
“응, 응.”
석호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모자와 외투를 되는 대로 걸치고 나섰다.
명화는 뽀이를 부르러 제비같이 날아갔다.
명화는 자동차 두 대를 불렀다. 손님만큼 그도 급하였다. 집에 들러 옷이나 바꿔 입고 정거장엘 나가자면 그도 시간이 바빴던 것이다.
무슨 탈을 하고 빠져 나갈까, 궁리 궁리하던 명화에겐, 이 뜻밖의 사건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자동차는 곧 왔다. 병일과 석호는 한 자동차를 타고 갔다.
명화도 뒤미처 자동차를 탔다. 그는 아모리 급하더라도 이 은주의 사단을 여해에게 알리리라 하였다.
여해는 얼마 전에 퇴원을 해 가지고 있을 데가 만만치 않아서 우선 명화의 집에 묵고 있다.
명화는 집에 들어 닥치는 길로 여해의 방문을 펄쩍 열었다.
여해는 혼곤히 잠이 들었다. 아직도 병기가 가시어지지 않은 핼쓱한 얼굴엔 눈썹만 유난히 검다. 움쑥 들어간 관자놀이엔 식은땀이 촉촉하게 맺히었는데 이불을 차 던지고 방바닥에 구을며 잔다.
명화는 곤히 든 잠을 깨우기가 애처로워서 방문을 도루 닫고 나오려 하였다. 문 닫는 서슬에 여해는 돌아누우며 눈을 번쩍 떴다.
“명화 씨! 명화 씨!”
돌아서는 명화의 등뒤에서 잠깬 이는 부르짖었다.
명화는 다시 몸을 돌쳐설 겨를도 없었다. 어느 틈에 일어난 여해의 쇠깍지 같은 팔뚝은 등과 앞가슴을 으스러지라고 껴안는다. 불 같은 사내의 숨결은 계집의 귀밑에 서리었다.
“명화 씨! 명화 씨! 왜 들어왔다가 도루 나간단 말이오? 잠이 들었으면 왜 깨우지를 못하구 도루 나간단 말이오? 난 지금도 명화 씨의 꿈을 꾸었소. 꿈도 하두 뒤숭숭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마는 맨 마지막엔 내가 개천에 떨어졌는데 명화 씨가 위에서 나려다보고만 있구려. 그래, 나는 몸부림을 치며 우는 무렵이었소. 내 곁에 명화 씨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헛애만 썼구려. 명화 씨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몰랐소. 정말 몰랐소.
나는 병원에 있을 적보다 여기 와서 되려 명화 씨가 그리웠소. 나는 어제도 생각해 보고 오늘도 생각해 보았소. 나는 알았소. 명화 씨를 잃고는 살 수 없는 것을. 그러나 그게 될 말이오? 여러 해 그리고 그리던 애인이 온다는데 그게 될 말이오? 나는 이를 악물고 단념을 해 버렸소. 그런데 명화 씨가 내 방에 올 줄은 정말로 몰랐소.”
사내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떤다. 솟아나는 감사와 정열을 주체를 못하는 것처럼 그의 몸은 부들부들 떤다.
‘에그머니나.’ 싶었다. 은주의 사단을 알리려고 들어온 것을 무슨 다른 뜻이 있어 들어온 것으로 오해를 하였구나 하였다. 하도 어림없는 오해에 기가 막히었다.
명화는 포옹의 중압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첫째로 몸을 빼려고 버둥거려 보았다. 그럴수록 쇠깍지는 더욱 조아들었다.
“사람을 좀 놓으셔요. 왜 이리 하셔요? 좀 놓구는 말씀을 못하셔요?”
명화는 여해의 행동이 너무 뱅충맞고 불쾌하고 또 한옆으로 우습기도 하였다.
“아니오. 놓을 수 없소. 명화 씨의 마음을 안 다음에야…….”
“아녜요. 놓으시고 내 말을 들어 보셔요. 이 팔을 풀어요. 네? 사람 갑갑해 죽겠네.”
명화는 한증막 속에 든 것처럼 땀방울을 떨구며 부르짖었다.
쇠깍지는 한순간 더욱 좁혀 들었다. 정열의 불덩이가 명화의 왼몸을 태우는 듯하였다. 그러자 문득 두 팔은 풀어졌다.
명화는 휘 하고 가쁜 숨길을 내쉬었다. 옷매무새를 잠깐 고치고 바루 막질러 말하기 어려운 듯이 잠깐 망설이다가,
“그건 선생님이 순전히 오해십니다. 내가 무슨 딴 생각이 있어서 이 방엘 들어온 건 정말 아녜요. 아예 그런 생각은 마셔요 그건 단념해 주셔요. 박병일 씨 댁에 괴상한 일이 생겨서 그걸 알려 드리려고 잠깐 들어온 거예요.”
여해는 빙그레 웃고만 섰다. 그것은 제가 오해한 것을 무안해하는 것이 아니요, 명화가 무안해서 거짓말을 꾸며대는 줄로 또다시 오해한 모양이었다.
“아녜요, 그건 오해예요, 선생님 오해예요. 난 지금 정거장엘 나갈 길예요. 왜 그이가 오지를 않아요? 선생님도 아시지?”
명화는 또 한 번 다지고 은주가 유서를 써 놓고 나갔단 말을 알리었다.
삶과 죽음
은주는 거진 열 시나 되어서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여상스럽게 저녁을 먹었다. 평일보담도 오히려 더 먹어 보려 하였다.
마지막 저녁밥! 이걸로 길이 하직하는 이 세상의 음식이어니 하고 억지로라도 많이 먹어 보려 하였건만 국 맛은 소태였다. 밥 날은 모래알 같았다.
늦은 저녁이 끝나고 서름질이 끝나고 아랫두리 사람들이 제각기 제 방을 찾아들기를 인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었다.
미닫이 틈을 여러 번 벌리고 밖을 내다보고 또 내다보았다. 밤은 짙어온다. 뒤뜰에 한 겹 검은 그림자가 진해 갈수록 안마당에 발자최 소리도 드물었다.
봄밤은 짧건마는 은주에겐 길었다. 왼 집안이 괴괴해지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은 뒷걸음질을 치는 듯하였다.
집안이 죽은 듯이 고요해지자 은주는 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미닫이를 닫히려 다 말고, 문설주를 짚고 서서, 제 숨길과 체온과 가지가지 지난 일의 생활 조각이 서리고 엉킨 제 방안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제 팔꿈치의 자욱이 난 책상과 제 손때 묻은 책꽂이와 제 얼굴을 비춰 주던 경대들은, ‘어데를 가요? 어데를 가요? 우리를 버리고 어데를 가요?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다시 들어와요!’ 손짓을 하며 부르는 듯하다.
은주의 눈엔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뒤안을 빠져 나왔다. 휘 넓은 마당에 발소리를 죽이느라고, 그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뛰고 굴리고 놀던 이 마당을 이렇게 쭈뼛쭈뼛하며 지나갈 줄이야.
그의 눈엔 새로운 눈물 방울이 번쩍였다.
솟을대문을 지나 골목을 나와 한길로 꾸부러질 때, 그는 언뜻 한 번 돌아 보았다.
드높은 안채의 기왓장과 으리으리한 사랑의 양관이 침침한 어둠 속에 옛 얘기의 궁궐과 같이 꿈결같이 떠 보이었다.
“잘 있거라!”
은주는 들릴 듯 말 듯 혼자 속살거리었다.
그는 분명히 구두를 신었건만 또박또박 하는 소리가 나지를 않았다. 슬리퍼를 낀 듯 펄석펄석 하고 질질 끌리었다. 무거우나 힘없는 걸음! 비슬비슬 누가 손가락 끝만 대어도 곧 쓰러질 듯하였다.
길 한복판을 의연히 걷지를 못하고 가가의 추녀 끝에 몸을 감추는 듯하며, S동을 지나 K동 입새를 돌아 네거리로 꺾이려 할 임물이었다.
“아가씨, 어델 가셔요?”
누가 코앞에서 부르짖었다. 은주는 깜틀하며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핑핑 내어 둘리는 시선에 싱글벙글 웃는 어멈의 얼굴이 보이었다.
“제 자식이 앓는다 해서 지금 갔다 오는 길예요.”
어멈은 제가 밤늦게 돌아다니는 변명부터 먼저 한다.
“아가씨는 어델 가셔요? 이 밤중에.”
은주는 이런 길에 집안 식구와 마주친 것이 아찔이었다.
“저 저.”
머뭇머뭇하고 무에라 해야 좋을지 몰랐다.
“벌써 열 시는 넘었을걸입슈.”
하고 어멈은 수상하다는 드키 은주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동무를 잠깐 찾아보려구…….”
은주는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렸다.
“그럼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아니, 아니.”
은주는 당황히 거절하였다.
“전차를 타고 갔다가 곧 올 테니.”
하고, 은주는 왜 내가 거짓말을 않을 수 없는가 하매, 다시금 슬픈 생각이 복받쳐 올랐다.
“그럼 다녀옵슈.”
하고 어멈은 돌아서 가기는 가면서도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고 또 보았다.
암만해도 수상쩍다는 듯이.
은주는 어멈과 마주친 뒤로는 거의 달음박질을 하다시피 재바르게 걸었다.
급한 마음 같아서는 자동차라도 불러 타고 싶었지만 자동차부에 들어가기가 싫거니와, 혼자 타는 것이 도리어 수상쩍을 듯도 하였다.
그는 만만한 전차에 올랐다.
전차 한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쩔쩔 끓는 뺨을 유리창에 대었다. 전차는 그리 붐비지 않았으되 동승객들의 시선을 피하여 얼굴을 숨기는 듯하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출렁출렁 물결 치는 듯한 수없는 전등빛에 눈익은 건물들이 어른어른하며 지나친다. 밤눈에도 퍼렇게 물오른 길나무(街路樹)들이 푸수수하게 가지를 풀어 헤치고 뾰족족 잎사귀를 내밀었다.
‘이 집들과 이 나무들도 다시는 못 보겠고나.’ 은주는 여러 번 속으로 뇌이고 이별을 아끼었다.
전차는 귀에 익은 땡땡 소리를 연송 내며 종로 네거리를 지나고 조선은행 앞을 지나고 경성역을 지났다.
마지막으로 화신상회에도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진고개도 한 바퀴 휘 돌아보고 싶었다. 작년 가을 수학여행 가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나며 정거장에도 마지막으로 둘러 나왔으면 싶었다.
삼각정을 지나고 용산역을 지나자 차 안의 승객들은 하나씩 둘씩 사라졌다. 차 안의 사람의 그림자가 드물어지매, 창 밖의 전등불도 차츰차츰 줄어 들었다.
어웅하고 컴컴한 밤빛이 심술 사나운 제 운명 모양으로 은주의 눈물 어린 눈에 대질렀다.
은주는 창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차 속은 어느 결엔지 텅 비었다. 승객이라고는 저 하나밖에 남지를 않았다.
은주는 문득 호젓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쨍쨍한 전등불도 어쩐지 흉물스러웠다. 찌렁찌렁 쇠를 끊는 듯한 전차의 커브 도는 소리와 잉잉하는 바퀴의 울음이 유난히 또렷또렷하게 들리었다.
은주는 치운 듯이 몸을 한 번 흠칫하였다.
유리창엔 바람이 부딪는다. 전차는 바람에 날릴듯 비틀거렸다.
봄밤은 싸늘하게 식었다. 축축한 냉기와 바람이 어우러져서 은주의 무릎 속으로 기어든다.
은주는 한기가 드는 듯 위아랫니가 마주치었다.
‘내가 지금 어데로 가누……?’은 주는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한강으로 가는 길이다. 죽을 곳을 찾아 한강으로 가는 길이다.’ 속으로 스스로 타일러 보았다.
‘왜 죽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 치운 밤에, 이 바람 부는 밤에.’ 이 의문엔 선뜩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설움만 괴어 올랐다. 코끝이 맹맹해지며 눈물은 비 오듯 흘렀다.
은주는 전차가 선 줄도 몰랐다.
“다 왔소. 나리우!”
차장은 흔들흔들 피로한 몸을 흔들며 차 안으로 들어와 부르짖었다.
은주는 아뜩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늙은 버드나무 가지가 흐트러진 머리칼같이 늘어진 가운데 전차는 딱 서 있었다.
와 하고 모래와 몬지를! 끼얹으며 세찬 강바람은 은주의 잠바 자락을 날리었다. 양말 하나만 치켜 신은 정강이와 종아리가 선뜩선뜩하게 쓰리었다.
은주는 날리는 잠바 자락을 얼음 같은 손으로 여미며, 조그마한 새처럼 올올 떨었다.
은주는 바람과 싸우며 뒤로 불려가려는 몸을 억지로 버티고 한 걸음 두 걸음 내어디디었다. 바람은 온통 눈 속으로만 들어오는 듯하여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었다.
철교는 곧 나타났다. 밤눈에 거무스름한 난간이 이승과 저승을 막은 한 겹벽과 같이 흉물스러웠다.
은주는 비실비실 곱드러지려는 몸을 기대는 듯이 난간에 붙이고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는 어찔어찔하는 눈으로 다리 아래를 나려다보았다. 밑에는 아직 물이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난간을 쓸며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옮기었다.
치운 봄밤엔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었다. 송판 위에 또닥또닥 떨어지는 유난히 분명한 제 발자최 소리와 이따금 우 하고 간 속까지 불어 들어가는 듯한 바람 소리뿐이었다.
얼마를 걸어가니 손에 잡았던 난간이 끝이 났다.
‘철교를 지내왔다.’ 하고 은주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제 앞에는 홍살문 같은 붉은 쇠둘레가 활개를 벌렸다. 그제야 지금 제가 지나온 것은 정작 인도교가 아니요 소한강교 인 줄 알았다.
‘인제 내 죽을 자리에 들어서는고나.’은 주는 정말 인도교로 옮아서며 생각하였다 힘과 혼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듯하였다. 또 아까 모양으로 한 손으로 난간을 짚고, 눈은 거의 감고 비칠비칠 걸었다.
출렁출렁하는 물결 소리에 제 디딘 것이 단단한 널조각이 아니요, 굽이치는 물결을 그대로 밟고 나선 것처럼 어지러웠다.
은주는 주춤 발길을 멈추고, 눈을 들었다. 사면은 괴괴하다.
하늘은 별로 슬쩍 가리운 듯이 어슴푸레하나마 구름 한 점도 없었다. 별이 총총 났다. 그들은 장차 일어나려는 인생의 비극을 구경하려는 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강 건너 언덕 위엔 포플러 숲이 한 덩이 구름같이 피어난 가지를 떠 보이었다 쓸쓸한 불빛이 한 점 두 점 새어 흐르는 곳은 손님 없는 음식점들이리라.
은주의 눈은 강 위로 떨어졌다.
강물은 멀어갈수록 좁아들었다. 저 멀리 일렁일렁 흰 돛이 조는 듯한 낚싯배를 지나매, 물결은 곧 하늘 자락 속으로 움추러들었다.
‘내 시체가 제까지나 흘러갈까?’ 문득 은주는 이런 생각을 하고 제 발 아래를 나려다보았다. 이 때까지 그는 먼 눈만 살피고, 차마 던질 자리를 나려다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울긋불긋하게 휘장을 두른 놀잇배들은 빈 상여와 같았다. 물 가장자리에 늘어놓인 뽀트들은 해골을 엎어놓은 듯하다.
검푸른 물결은 소용돌이를 친다. 그 엎치락덮치락 하는 물결은 마치 사나운 짐승의 뼈가 어마어마한 혓바닥을 널름거리며, 제 희생을 기다리는 듯하다.
은주는 처음 죽음을 작정할 때 독약도 생각해 보았다. 목 매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독약은 너무 끔찍스럽고 목 매는 것도 남볼상 사나왔다. 더구나 철도 자살은 지긋지긋하였다.
푸른 물결에 풍덩실 몸을 던지는 것은 다같이 죽는 일이로되, 로맨틱한 공상까지 자아내었던 것이다. 바그르 괴어 오르는 꽃잎 같은 거품, 수멸수멸구슬 같은 잔무늬를 그리는 물속에 고요고요히 잦아지고 싶었던 것이다. 번뜩이는 달그림자를 안고 끝없이 흘러 가리라 하였었다. 맑고 시원한 물에 더럽힌 몸이 씻기고 밀리며 은하수 끝까지라도 흘러가리라 하였다.
현실은 언제든지 아름다운 꿈을 깨뜨린다. 은은한 달빛도 없다. 맑고 고요하고 벽옥 같은 줄 알았던 물결이 이렇게 우중충하고 감때사나웁고, 무시무시할 줄이야!
죽으려는 은주의 오직 하나 슬픈 공상조차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강바람은 우르르 무엇을 무너뜨리는 듯한 우렁찬 음향을 내며 불어닥치었다. 휑뎅그렁하게 비인 철교 위를 거칠 것 없이 호통을 치며 재조를 넘으며, 쇠둘레를 쩌렁쩌렁 울리었다.
조그마한 소녀의 애처로운 운명쯤은 버들잎보담도 더 가볍게 하잘것없이 날려버릴 듯하다.
물결은 길길이 뛰었다. 바람의 거센 발길과 손길에 채이고 쥐어 질리는 듯이 펄펄 몸을 솟구치다가 좌르르 쏴르르 게거품을 흘리고 부서진다.
용솟음을 하며 어둠 속에 허옇게 춤추는 물꽃은 마치 어마어마하게 큰 이빨과 같았다 그 흰 이빨은 . 제 희생이 떨어지는 대로 한 입에 집어 삼키려고 넘실거리는 듯하다. 이 날까지 애닯게 잦아진 무수한 영혼들은 근두박질을 하며 비명을 질르며 새로운 제 동무를 향해 사나운 손짓을 할 듯하다.
은주는 아찔하였다. 쇠난간을 짚은 가냘픈 팔이 휘청하고 넘어갔다. 와 하고 왼통 은주에게 몰려든 바람은 그 불쌍한 희생의 갈 길을 재촉하는 듯이 떠다넘길 듯하다.
삶과 죽음의 일순간!
은주는 아뜩 정신을 차렸을 때, 제 몸은 아직도 난간 이쪽에 곱드러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한 발자욱을 떼었다. 암만해도 저 섰던 그 자리는 제 죽을 곳이 못된다는 듯이.
그는 또 아까 모양으로 난간을 부여잡고 한 걸음 걷고 쉬고, 두 걸음 걷고 쉬었다. 쉬는 곳마다 밑을 나려다보았건만 제 몸 떨굴 만한 자리를 찾지 못 하였다.
손 밑에서 싸늘한 쇠난간이 끝났다. 그는 인도교를 건너온 것이다. 은주는 깜짝 놀라는 듯이 몸을 돌쳐서서 다시금 쇠난간을 쓸며 급한 듯이 오던 길을 도루 걸었다.
새로운 결심과 용기가 그를 채쪽질하는 듯하였다.
저 멀리 문안이 꿈결같이 떠올랐다. 푸른 남산 등성이엔 길다란 전등불 줄이 서리를 친 듯하다.
‘저 속에는 우리 학교도 있고나, 우리 집도 있고나.’은주는 안개 자욱한 속을 시름없이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번들번들한 자기 집 벽돌담과 새 쭉지같이 구부정하게 활개를 벌린 학교 지붕이 선하게 보이는 듯.
왼몸의 맥이 일시에 풀리었다.
‘집에도 다시 못 가 보고, 학교도 다시 못 보고.’ 눈물에 흐린 눈 아래 굽이치는 물결도 구름장과 같이 멍울멍울하다.
구실 같은 눈물은 밑도 없고 끝도 없는 어훙한 낭떠러지로 연거푸 구을러 떨어졌다.
제가 써 두고 나온 유서가 마음에 키이었다.
─ 오빠!
혼인은 아모 데도 정하지 말아요, 여해는 징글징글하고, 석호는 얄미워요 하필 . 원수에게로 시집 가라시는 오빠가 야속합니다.
저는 죽어요.
지금 한강으로 나가는 길이야요.
부디 안녕히 계셔요. ─ 말은 비록 간단하나마 제 마음에 품긴 원한과 슬픔과 분노를 고대로 쏟아 놓은 것이었다.
‘유언까지 써 놓고 안 죽으면!’은 주는 다시 생각하였다. 그것은 죽음보담 더한 치욕이었다, 고통이었다.
눈을 꽉 감았다. 두 손으로 잔뜩 난간을 부여잡고 몸을 넘기려는 순간 멀지 않은 앞길에서 뿡뿡 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었다.
‘나를 잡으러 오는구나.’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꿈속 같은 머리속에 번쩍하자 은주의 몸은 팔랑개비 모양으로 난간을 휘어 넘었다. 그 서슬에 난간을 잡았던 두 손도 떨어졌다.
은주가 몸을 던지는 찰나, 저를 잡으러 오는 줄 알았던 자동차는 과연 병일과 석호를 태운 자동차였다.
그들은 명화의 지시대로, 한 자동차를 타고 스피드를 낼 수 있는 대로 내 어 순식간에 병일의 집에 들어닥치었다.
병일을 선두로 석호는 서슴지 않고 안에 들어섰다. 제 꿈과 행복과 기쁨을 한 몸에 짊어진, 제 장래 안해가 죽고 사는 한 고비가 아니냐. 어느 겨를에 체면과 예절을 돌아보랴.
그들은 대뜸 은주의 방으로 뛰어갔다. 주인 잃은 방은 말짱하게 치워져서 티끌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영애가 마주 내달으며 제 남편에게 떨리는 손으로 종이 쪽지를 하나 전하였다. 그것은 은주의 유서였다.
황황히 보는 병일의 어깨 너머로 석호도 동그란 눈을 나리쏘았다.
─ 여해는 징글징글하고, 석호는 얄미워요. ― 석호는 무참하여 눈을 떼었다.
“응으, 응으.”
솔잎 수염을 뜯으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발끈해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허둥허둥하는 병일을 따라 다시 자동차를 몰아 한강으로 달리었던 것이다.
소한강교를 다다랐을 때 , 병일은 그래도 동기의 정이라 엉거주춤하고 반쯤 일어서서 뚫어지라고 앞을 내다보았다.
어둑한 인도교 위에 어릿거리는 은주인 듯한 흰 점을 알아보았다.
“저기 있군, 저기 있군, 어서 어서!”
운전수를 재촉하였다. 운전수도 급한 듯이 연해 찢어질 듯한 사이렌 소리를 외쳤다.
난간에 붙어선 은주와 자동차의 거리가 세 간 통도 남지 않았을 일순간 은주의 몸은 나비처럼 날아 난간을 넘으며 바람에 불리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어둠 속에 번뜩하자 사라졌다.
“앗!”
병일의 외마디 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자동차는 은주의 섰던 자리에 닿았다.
“풍!”
물 밑에서 울려 올라오는 흉칙한 음향!
오빠와 정혼 남편은 자동차 문을 박차고 나려섰다.
그들은 부산하게 떨어진 이가 기대었던 난간으로 몰렸다. 잠바의 뒤폭이나 잡으려는 듯이.
그들은 넋을 잃은 듯이 이윽히 침침한 물결만 나려다보다가 서로 돌아다보았다.
하나는 강 이편을 향해, 하나는 강 저편을 향해 달음박질을 쳤다.
“여보! 여보!”
그들은 허공과 어둠을 향해 부르짖었다.
쏴 하고 불어대는 강바람이, 그들의 얼빠진 소리를 지워버린 듯하였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달음박질을 쳐서 가던 길을 도루 오며,
“여보! 여보!”
돼지 목 따는 소리를 외쳤다.
그들은 마주쳤다. 쩔쩔매었다. 허둥지둥하였다.
병일의 발부리에 무엇이 툭하고 채이었다.
“윽!”
하고 그는 곱드러질 듯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는 제 몸이 강속으로 떨어지기나 한 듯이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은주의 벗어 놓은 구두이었다.
“구두는 여기 있는데…….”
석호를 향해 바루 눈물 어린 소리를 떨며, 무슨 보물이나 얻은 것처럼, 구두를 움켜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응! 신이 거기 있어?”
석호도 제 친구가 움켜쥐고 있는 구두를 진기한 물건이나 되는 듯이 들여다보며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러고 지체를 하는 사이에 구할 사람을 구해내지 못하였다고 책망하는 이가 있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으리라.
“어떡하오, 무가내하 아니오?”
싸늘한 봄바람은 스프링 코트를 벗기에도 치웠다. 입을 옷을 다 입고 있어도 덜덜 떨리었다. 발을 빼고 물에 뛰어들기는 생각도 못할 노릇이었다. 옷 입은 채 물펑덩이를 하는 것도 무모한 짓이었다.
동생이 죽는다니, 친구의 누이가 죽는다니, 자동차로 예까지 달려왔으면 의무를 다한 것이었다. 인사치레를 마친 것이었다.
뒤미처 난데없는 자동차 소리가 철교를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 자동차는 사나운 경적을 울리며 번개같이 달려온다.
그 자동차는 인도교를 올라서며 곧 걸음을 멈추었다.
그 안으로부터 동저고리 바람의 청년이 까치집 같은 머리를 날리며 떨어지 듯 나려선다.
그는 김여해이었다.
명화로부터 은주가 자살의 길을 찾아 한강으로 나간 듯하다는 말을 듣고, 그는 자리옷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선 것이었다.
금방 명화에게 쏟으려던 뜨거운 정열도 간 곳이 없었다.
금세로 눈길이 뒤집혔다. 두루막도 잊었다. 양말도 잊었다. 맨발로 뛰어 나섰다.
“어데를 가셔요?”
명화는 돌변한 여해의 태도에 놀래었다.
“한강에!”
여해는 벌써 중문을 빼개고 나서며 대답하였다.
“그렇게 급하셔요? 옷이나 입으셔야지.”
명화는 뒤따라 나오며 부르짖었다.
“아니오, 아니오.”
여해는 허둥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어느덧 대문을 열고 나섰다.
“그럼 제가 타고 온 자동차를 그대로 타고 가셔요.”
“네? 자동차!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으나마, 자동차란 말이 번쩍 뜨이는 듯하였다.
“웬일일까?”
명화는 의아한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여해는 자동차에 올르며, 숨찬 소리로 연송 부르짖었다.
“한강에, 한강에!”
그에게는 자동차의 속력이 너무도 느리었다, 지지하였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펄펄 뛰었던 것이었다.
여해는 바람결같이 뛰어서 병일의 털썩 주저앉은 앞으로 왔다.
그는 병일을 보았다. 석호를 보았다. 병일의 손에 움켜 쥐인 은주의 구두를 보았다.
여해는 억센 손으로 병일의 멱살을 추켜잡듯 하고 뒤흔들었다.
“어찌 되었소?”
병일은 웬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눈을 멀뚱멀뚱하다가,
“지금 막 떠 떨어져서…….”
라고 더듬거렸다.
“응!”
여해는 맹수의 휘파람 같은 신음성을 발하였다.
잡았던 병일의 멱살을 놓고 일순간 팔짱을 끼었다가 여해는 눈을 부릅떴다.
그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나는 새와 같이 난간 위에 올라설 겨를도 없이 두 팔을 꼿꼿이 세우며 그대로 푸른 물속을 향해 거꾸로 떨어졌다.
“아!”
병일과 석호는 일시에 부르짖고, 그제야 새로운 정신과 용기가 난 것처럼 달음박질로 강을 건너 배 매어 놓은 데로 뛰어나려왔다. 그들은 고래고래 뜻도 모를 소리를 외쳤다.
술집에서 사공들도 뛰어나왔다. 곤드레만드레 곤죽이 다 된 술꾼들도 몰려 들었다.
어둑어둑하고 쓸쓸하던 강가는 시끌시끌해졌다.
찌극 삐극 출렁, 배 세 개는 닻줄을 풀었다.
어둡고 물결치는 강 위에서 배들은 길을 잃은 듯이 비틀거리고 헤매었다.
제 희생을 도루 뺏아 가려는 데 심술을 낸 것처럼 물결은 더욱 높이 뛰며 와그르 버그르 뱃전에 발버둥을 친다.
여해는 물속 깊이깊이 떨어졌다.
그 찰나 삶과 죽음의 관념이 무서운 속력으로 주마등과 같이 얼른하다가 사라졌다.
그에게는 삶도 없었다 , 죽음도 없었다. 삶보담 죽음보담 다 강렬한 의식이 그를 지배하였던 것이다.
‘은주를 구하자!’ 육체적 정신적 찢어질 듯한 긴장이 왼통 이 한 가지 생각에 몰리고 뭉치었다.
은주가 유서를 써 놓고 한강에 나갔다는 말을 들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알았다. 이론적으로 이 갈피 저 갈피를 따져서 안 노릇이 아니요, 상상으로 이렁저렁 경우를 추측해서 짐작한 것도 아니다.
그는 왼몸과 마음으로 은주의 행동의 원인을 느끼었다, 깨달았다.
누가 이 어린 여학생으로 하여금 죽음의 길에 나아가게 하였는가. 누가 방싯 웃으려는 인생의 꽃봉오리에 끝없는 슬픔을 안고, 푸른 물결에 몸을 던지게 하였는가. 그 쾌활하고 명랑하고 어여쁜 처녀로 하여금 번민과 오뇌와 원한에 조그마한 염통을 갈기갈기 찢게 하였는가. 기쁨과 행복의 절정에서 종달새같이 뛰노는 철없는 아가씨로 하여금 제 목숨을 끊으려는 막다른 곳에 뛰어들게 하였는가. 이 악착한 비극의 절대 책임자는 갈데없는 자기였다. 짐승과 같은 제 정열 때문이었다. 악마와 같은 제 성욕 때문이었다.
이 너무도 어여쁘고 너무도 참혹한 제 희생을 구해내지 않고는, 살려내지 않고는, 여해는 살랴 살 수 없었다. 죽으랴 죽을 수 없었다. 여해는 물속 깊이깊이 떨어졌다.
미끈하고도 부실부실한 물 밑바닥이 슬쩍 얼굴에 닿을 둥 말 등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제 몸을 한번 번뒤치는 바람에 일렁 하고 고개가 앞으로 내어 밀려지며 몸은 풍선보담 더 가볍게 술렁술렁 떠올랐다.
그는 중학생 시절 한강에서 뽀트를 타고, 헤엄질 치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수영 선수의 차례에는 들지 못하였다. 개헤엄에서 발거리로 한두 간통을 왕복하는 데 지나지 않았었다. 철창 생활오년 동안에 그는 물론 물 구경도 못하였거니와, 더구나 그렇게 높은 데서 떨어져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죽음의 위험에 그는 제 몸을 내던진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한껏 긴장한 정신과 육체는 이따금 기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곱다랗게 물위에 떠오를 수 있었다.
푸우! 숨과 물을 한꺼번에 뿜으며 칼등 같은 물결 위에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자질하듯 한 팔로 물을 헤치며 발로 물고비를 돌리며 위로 위로 몸을 밀었다.
땀과 물방울에 무겁게 감기었던 눈시울을 찢어지라고 뜨고, 불 같은 동자를 물 위로 굴리었다.
어둠침침한 물결은 경련을 일으킨 듯이 수멀수멀 떨다가, 발작적으로 길길이 뛰엄질을 하며, 두 자 높이나 대강이를 쳐든 용솟음이 와그르 하고 여해의 얼굴 위에서 부서졌다. 여해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물등성이를 넘고 또 넘었다.
은주의 모양은 찾으랴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고나!’ 여해는 아뜩 정신을 차리었다. 그는 물결을 따라 나려가지 않고 죽을 힘을 다 써 가며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무의식한 가운데 어쩐지 은주가 상류로 흘러간 듯이 착각을 한 것이었다.
물결에 반항하는 잠재의식이 여해로 하여금 위로 위로 치거슬러 올라가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결단하고 물에 던진 은주가 헤엄을 치며 치거슬러 올라갈 까닭은 절대로 없었다. 물결 밀리는 대로 밑으로 밑으로 흘러 나려갔음에 틀림이 없었다.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여해는 입때껏 헛노력을 한 것이었다.
방향을 바꾸려고 돌릴 겨를도 없이 세찬 물결은 그의 등을 밀어 미끄러질 듯이 몸은 흘러 나려갔다.
순식간에 인도교 밑을 지나고 어느덧 기차 지나가는 철교 가까이 나려왔다.
물결은 더욱 사나워졌다. 와그르 버그르 하는 우렁찬 울림이 소리소리 지르며 물에 젖은 고막을 따리었다. 넘실거리는 검푸른 바윗덩이가 일어섰다.
주저앉았다 하며 여해의 몸을 바람개비보담 더 가볍게 흔들고 놀리었다.
철교 밑에는 물결이 돈다. 헤엄 치는 이나 뽀트 타는 이에게 가장 위험한 관문! 여해는 약간 피로해지려는 몸에 새로운 힘을 주며 이 난관을 얼른 돌파하려 하였다. 그러나 몸은 조리를 돌리는 것처럼 빙그르 돌았다. 물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이 몸이 잦아지는 한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며 돌다리 가까이 휘몰아 박힌 몸이 간신히 떠올랐다.
회호리바람 속에 든 듯한 의식 가운데 제 발길에 무엇이 걸리는 것 같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재바르게 발을 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버르둥거리는 제 손길에 무엇이 물씬하고 만치었다.
‘송장이다.’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번쩍하자 왼몸에 소름이 쭉 끼치었다.
그 다음 순간!
‘은주다!’ 하는 생각이 돌았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늦었다. 엉겁결에 그의 손에 잡히었던 은주의 팔인 듯한 무엇을 놓은 뒤였다.
그는 놓친 것을 다시 부여잡으려고 팔을 내저었다. 손끝에 닿일 듯하던 그 무엇은 뱅뱅 돌며 멀어지려 한다.
여해는 몸을 솟구치며 뛰엄을 뛰다시피 그 무엇을 향해 돌진하였다. 그 서슬에 제 의사와는 정반대로 몸은 사나웁게 까불리는 듯하더니, 그 소용돌이의 테 밖을 벗어나 한간 통이나 밀려 나려왔다.
여해는 물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제 이맛전을 갈기며 역류하는 물결과 같이 왼몸의 피도 거꾸로 흐른 듯하였다.
물방울에 감겨지려는 눈을 찢어지라고 부릅뜨고 으적! 하며 입술을 깨물며 또 한 번 몸을 솟구쳐서 그 소용돌이로 뛰어들었다.
버르적거리는 여해의 손가락 끝에 기적적으로 은주의 머리칼이 잡히었다.
은주는 지푸라기보담 더 가볍게 물얼굴에 딸려 올라왔다.
그러자 문득 은주는 마지막으로 용을 쓰는지 몸을 번드치는 바람에, 여해의 손에서 머리칼이 빠져나갔다.
“앗!”
여해는 외마디 소리를 치고, 은주의 몸을 다시 잡으려고 놀랄 만치 기민하게 오른팔을 내어 밀었을 제, 허공을 향해 버둥거리는 듯한 은주의 손이 어깨에 와서 닿았다.
은주의 두 팔과 몸은 여해의 팔뚝 위에 무겁게 무겁게 매어 달리었다.
여해는 놓친 은주를 다시 부여잡은 기쁨도 한 순간이었다.
은주의 몸은 쇳덩이보담 더 무겁게 그의 팔을 밑으로 나꾸치는 듯하였다.
여해는 몸을 움직일 자유를 잃고 말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법이다.
은주에게는 물론 의식은 없었다. 생명의 최후 본능이 그로 하여금 여해의 팔뚝에 매어달리게 한 것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여해는 은주의 무게에 끄들리어, 몸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중병을 치른 끝이라, 아모리 몸과 마음이 건장하였다 하더라도, 몇 십 분 동안 물결과의 싸움은, 자칫하면 여해의 팔과 다리의 힘을 송두리째 뽑아 버릴 것 같았었다 제 홑몸이라도 . 헤어나기가 어려웠으리라. 게다가 은주의 몸이 천 근 무게로 매어 달리었으니 용신을 하랴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헛부게 죽는가. 내 팔에 매어 달린 은주를 이렇게 죽이는가.’ 여해는 애닯았다, 원통하였다. 제 죽는 것은 그리 섧을 것도 없지마는 은주를 찾기까지 해 가지고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절통하였다.
그는 마지막 용기를 떨치어 푹 솟구쳐 올랐다. 그 찰나 무겁던 오른팔이 거뜬해졌다. 앞으로 닥치는 물결을 잡아당기는 듯이 헤치매 몸은 쉽사리 수면에 떠올랐다. 휘 숨을 내어 쉴 겨를도 없이, ‘앗! 은주를 놓쳤고나!’ 자기가 용을 쓰는 서슬에 은주를 뿌리쳐 떨군 것을 깨달았다.
두 팔로 물 속을 휘저어 보았건만 파레같이 제 팔뚝에 걸리었던 은주의 손은, 다시 잡을 수 없었다.
여해의 창자는 찢어지는 듯하였다. 물속에 발버둥을 치며 엉엉 소리를 내 어 울고 싶었다.
송장 다 된 그의 얼굴은, 비통한 결심에 실룩실룩 떨리었다. 죽을 애를 써서 떠오른 제 몸을 다시 물속 깊이 떨어뜨렸다.
물속에 얼마 나려가지 않아 그의 팔은 다시 은주의 허리 어름을 부둥켜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는 물밑이었다. 더구나 한 팔로 은주를 안은 터이었다. 다시 몸을 번디칠 힘도 자유도 그에게는 없었다.
코로 입으로, 물은 거칠 게 없는 듯이 들어왔다.
그는 제 운명을 제 죄책을 제 벌역을 달게 받는 듯이 입을 벌리었다.
그의 의식은 물속과 같이 거물거물해졌다.
캄캄해 오는 의식(意識)의 밤 가운데 오직 한 개의 등불이 반짝하였다.
‘나는 은주에게 죽음으로써 용서를 빈다.’ 마지막 의식도 사라졌다. 다만 은주를 부여잡은 그의 손아귀만 있는 힘이 모조리 몰리었다. 인제는 다시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병일과 석호가 지휘하는 배 세 척이 등불과 횃불을 잡히고 나려왔다.
난데없는 불빛에 사람을 둘씩 삼킨 물결은 놀랜 듯이 제 희생을 뒤덮는 모양으로 쫘 하고 물 한 두께를 퍼뜨렸다.
배는 쉽사리 여해가 자므러진 자리에 와서 비척비척하며 돌았다.
조금 전에 여해가 버르적거리는 것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알아본 까닭이었다.
익숙한 사공의 손에 두 남녀는 어렵지 않게 건져내이었다.
배가 닿자, 송장이 될지 환자가 될지 모르는, 여해와 은주는 곧 자동차로 용산 ˟˟병원에 실리어 갔다.
돌아온 애인
명화는 여해를 보내고, 자동차 한 대를 다시 불러 경성역으로 달리었다.
정거장 이맛전에 붙은 둥그런 시계는 벌써 열한 시 십 분을 가리킨다.
기차 닿을 시간은 십 분도 남지 않았다.
구을르는 듯이 자동차를 뛰어나린 명화는 허둥지둥 입장권을 사 가지고 개찰구로 달음박질을 하였다.
마중 나온 사람들을 벌써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명화의 마음은 까닭 없이 급하였다. 앞엣사람을 거의 떠다박지르는 듯이 하고 개찰구를 뛰어나왔다. 구름다리를 지날 때에도 괜히 종종걸음을 쳤다.
층층대를 나려가는데 몸이 앞으로 앞으로 쏠리어 하마하더면 곱드러질 뻔하였다.
플랫폼에서 차를 기다리는 단 오 분의 시간도 명화에게는 일 세기나 되는 듯이 지리하였다.
어둠을 뚫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명화의 시선 가운데 불배암 같은 기차가 검은 몸뚱아리를 나타내었다.
명화에겐 숨이 답답해지는 듯한, 가슴이 뻑적지근해지는 듯한 한 순간이 지났다.
어느덧 기차는 뛰이 소리를 높이 지르고 눈 한번 깜짝일 사이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며, 명화를 위협하는 듯이 압도하는 듯이 들이닥치었다.
이리 닫고, 저리 닫는 총총한 발자욱에 플랫폼은 와글와글해졌다. 사람의 그림자는 불개아미떼 모양으로 기차를 향해 몰려들었다.
바쁘고 시끄럽고 요란하고, 허둥지둥하는 순간, 명화는 어깨 틈을 비집고 헤엄치듯 종종걸음을 쳤다. 다리가 뛰는 대로 심장도 뛰었다.
밖에서 아모리 차 안을 눈여겨보았지만 어수선하게 일어선 사람의 그늘로 말미암아 분명히 훑어볼 재조가 없었다. 이 찻간에서 저 찻간으로 건둥건둥 더듬어보며, 바람 맞은 꽃잎처럼 명화는 재바르게 떠나갔다.
그리운 그이의 모양은 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맨 끝의 찻간까지 쏜살같이 뛰어갔다가 다시 돌쳐서서 다시금 앞의 찻간에 눈을 팔리고 허전거리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안 왔을 리가 없는데.’ 명화는 가벼운 실망을 느끼었다. 몇 번 차안으로 뛰어 들어가 보고 싶었지마는 붐비는 그 안에 , 한 번 들어서면 찾을 이를 더욱 찾기 어려울 듯하였다.
‘영등포까지라도 마중을 나갈걸.’ 명화는 중도에 마중을 못 나간 것을 여러 번 뉘우쳤다. 발을 동동 굴렀다.
내릴 승객은 거지반 다 나린 듯 플랫폼이 빡빡하도록 거뜩 들어찬 사람의 물결은 출구를 향해 흘렀다.
명화는 짜증이 나서 구만 울고 싶었다.
그 때였다. 누가 등뒤에서 명화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명화는 힐끈 돌아다보았다.
거기는 외투깃을 턱까지 치켜올리고 중절모를 눌러 쓴 청년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청년이야말로 자기가 찾는 그이인 줄 명화는 직각적으로 깨달았다. 그렇다. 그것은 직각에 틀림이 없었다. 직각으로 몰라보았으면 얼굴을 마주보았다 할지라도 낯 서투른 사람으로 지나쳤을는지도 모르리라.
그대도록 그이의 얼굴은 변하였다. 얼굴뿐이 아니요, 체격조차 변하였다.
그래도 상열은 명화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제 앞을 지나가는 명화를 보고, 뒤를 좇아와서 알은 체를 한 모양이었다.
김상열은 본래 작은 키는 아니었다.
그러나 위아래 구격이 꽉 찼을 때에는 훤출한 중키밖에 더 되지 않았었다.
목고개도 달라붙지 않을 정도로 보기 좋게 펴인데 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거리없이 왜가리 모양으로 기름해졌을 줄이야. 더구나 그 건드렁 건드렁 하는 목은 바람만 불어도 떨어질 듯하다.
전에도 해사한 얼굴이었지마는 연연한 흰빛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둥그스름하던 뺨이 훌쩍 빨아들고, 드러난 광대뼈 언저리엔 발그스름한 도화색이 떠돈다.
서글서글하고 든든하고 다부진 옛 모양은 찾으랴 찾을 수가 없다. 빳빳하고 건들건들하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꼬장꼬장은 하건마는 손만 대면 뚝 하고 뿌러질 것 같다. 조금 날카롭게 변하기는 하였으되, 그래도 다정하고 영채 도는 눈만이 옛날 상열을 방불하게 할 뿐이었다.
‘무척 여위었고나. 앓는다더니 무슨 몹쓸 병인구?’ 명화는 상열이 툭 불거진 울대뼈와, 앙상하게 치떨어진 어깻죽지 근처를 치어다보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두 애인은 서로 멀거나 바라만 볼 뿐이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명화는 널뛰는 듯한 가슴이 간신히 진정이 되자 반가운 생각보담도 어쩐지 슬픔이 앞을 가리었다.
방정맞은 눈물이 기예 한 방울 구을러 떨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되겠다 싶으면서도 말만 꺼내면 이 사람이 오락가락하는 번잡한 곳에서 울고 쓰러질 것 같았다.
목은 까닭 없이 메이었다.
상열도 감개무량한 듯이 물끄러미 명화의 얼굴을 들여다볼 뿐이요, 입을 벌리지는 않았다.
이윽고 핏기 없는 상열의 손은 명화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긋나긋한 명화의 손은 나무껍질 같은 상열의 손아귀에서 바스러지는 듯 하였다.
명화는 부드럽고 따뜻하던 상열의 손이 해골과 같이 싸늘해진 것이 더욱 슬펐다.
상열이가 쥐고 있던 제 손을 빼자, 이번에는 명화가 상열의 손등을 얼싸 잡았다.
“가셔요.”
명화는 상열을 끄는 듯하며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이 데면데면하고도 안타까운 무언극을 오래 계속하는 것이 남볼상 사나웠던 것이다.
층층대를 올라가는데 상열의 다리는 떨리는 듯하였다.
명화가 반은 부축한 셈이었지만, 상열은 층층대를 반도 올라오지 않아서 숨길이 헐떡거렸다.
“왜 거북하셔요?”
명화는 숨소리를 듣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인 주셔요, 그 가방을. 제가 들게.”
하고 명화는 상열의 든 가방을 뺏으려 하였다.
“아니 괜찮아. 그양 두어.”
상열은 말로는 사양하면서도 가방을 놓기는 놓았다. 그의 숨길은 더욱 가쁜 듯하였다.
층층대를 거진 다 올라와서 상열은 별안간 딱 선다.
억지로 참고 참았던 기침이 필경에는 나왔다. 처음에는 쿨룩쿨룩하다가 나종에는 왼몸을 사나웁게 뒤흔들며 기침은 가슴을 찢어내는 듯하다.
“왜 이러셔요, 왜 이러셔요?”
명화는 놀라 부르짖었다.
무서운 기침은 한동안 끈칠 줄 몰랐다.
덜덜 떠는 턱 피멍이 , 든 듯이 자주빛이 되는 얼굴, 사나웁게 물결치는 안 가슴! 명화는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칵 소리가 나고 고개가 앞으로 폭 꼬꾸라지며 무엇이 올라오는 듯한 기척을 알아차리자 명화는 재바르게 제 손수건을 갖다대었다.
새하얀 수건에 새빨간 핏덩이가 울컥 쏟아졌다.
명화는 하도 끔찍스러워서 오싹 하고 몸을 떨었다.
얼마 만에야 상열은 거르렁거르렁하고 담 끓는 소리를 겨우 진정을 하고 걷기 시작하였는데, 다리를 아까보담도 더 가누지를 못하여 비실비실 쓰러질 듯하였다.
명화도 바싹 달라붙어서 뒤로 거의 얼싸안는 시늉을 하고 걸으면서 등어리를 문질렀다.
겹겹이 입은 옷 속으로도 앙상하게 뼈만 만치었다.
‘해외 풍상이란 이렇게 지독한가?’ 명화는 헙수룩한 상열의 목덜미를 데밀어보며 혼자 생각하였다.
즐거웁던 환상은 부서졌다. 칠팔 년을 그리고 그리다가 막상 만나 보니, 애인의 몸은 벌써 여지없이 파괴된 뒤일 줄이야, 몹쓸 병이 든 뒤일 줄이야.
명화는 피를 배앝는 것을 보고 상열의 병이 무엇인지 물론 짐작하였다.
끔찍한 폐병! 환자의 목숨을 세상없어도 빼앗고야 만다는 무서운 폐병!
명화는 상열만 나오면 기생 생활을 집어치우려 하였었다. 화려하나마 신산한 생활! 웃음과 아양의 그늘에 숨은 눈물과 한숨의 생활. 꾸밈과 거짓에 몸과 마음이 실실이 풀리는 생활. 이런 생활도 인제 며칠만 지나면 떴다 봐라다.
알뜰살뜰한 애인의 품속에 깊이깊이 안기리라. 참된 정과 솟아나는 사랑에 뒤덮이고 파묻히리라. 오붓하고 안온한 사랑의 보금자리에 피로한 몸과 마음을 늘어지게 쉴 날도 멀리 않았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새 생활의 준비에 바빴었다. 요사이는 새로운 용기와 가라앉은 배짱으로 손님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병일을 구스리는 데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제 정실 부인이 되어지라고 오복조림을 하며 명화의 청구라면 헙헙하게 들어주었다. 감아 올릴 대로 감아 올렸다.
인제는 만단의 준비가 완성이 됐다 해도 좋았다. 은행에 남 몰래 맡겨 놓은 돈도 만 원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집도 제 집이었다. 틈틈이 사 모은 땅도 양식거리는 되었다. 세간도 그리울 것 없이 장만해 두었다.
패물 나부랭이도 값을 친다면 몇 천원은 되었다.
그러하였거늘 돌아온 애인은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폐병 환자가 아니냐.
제 마음의 태양등을 정작 꺼내 놓고 보니 타고 남은 재일 줄이야. 오늘날까지 모으고 모은 건사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듯하였다. 째기발을 디디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행복의 장미화는 잡고 보니 슬픔의 가시였다.
명화는 비척비척하는 상열을 부축해 나오며, 제 눈이 휘황한 전등불 가운데도 캄캄해지는 듯하였다.
명화와 상열은 자동차를 탔다.
“바루 병원에를 갈까요?”
명화는 근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어. 들어닥치는 길로 병원은 불길한걸. 허허.”
상열은 쾌활한 듯이 웃었다. 기침할 때보담은 훨씬 원기가 난 모양이다.
얼굴은 아까보담도 더 핼쓱해진 듯하였다.
“그렇기는 허지만서두…….”
명화도 하염없는 웃음을 띠웠다.
“오시노라구 병환이 더치신 듯헌데…….”
“왜 기침하는 걸 보고 그러나? 그 기침한 지는 벌써 삼 년이 넘는데 아직 이렇게 까딱이 없다네.”
“벌써 삼 년이나 됐어요? 에구머니나!”
“삼 년은커녕 백 년을 가면 어떨라구, 허허.”
상열은 침통하게 웃었다.
“어데로 가십쇼?”
운전수는 돌아보지도 않고 묻는다.
“글쎄, 어데로 갈까? 병원은 싫다시구. 아모튼 종로통으로 흘러갑시다그려.”
명화는 익숙한 솜씨로 운전수의 말을 선뜩 받아주고 다시 상열을 향해,
“그럼 어데로 가실까, 제 집으로 가실까?”
“글쎄…….”
상열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요새도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겠지.”
하고 의미 있게 웃었다. 기생집에 가기는 꺼리는 눈치였다.
“그래요, 종용치는 못해요. 그럼 어데로 갈까……? 좀 편하게 누우시기라두 하셔야 될 텐데……. 아주 여관으로 갈까요?”
상열은 고개를 흔들었다.
“여관은 더 번잡할 텐데, 어데 후미진 염집이 없을까?”
사람 많이 뀌이는 데는 어데든지 싫은 모양이었다.
명화는 이윽히 생각하다가,
“그럼 좋은 데가 있어요. 우리 취월이란 요릿집으로 갈까요?”
“요릿집이 종용할까? 부랑자 취체에나 걸리면 재미가 없는데…….”
하고 상열은 눈을 깊숙하게 뜬다. 그 눈에는 공포의 빛이 역력히 움직였다.
오랫동안 해외에 있던 사람이 경찰을 꺼리는 것을 명화도 잘 안다. 설령 아모 일이 없다손 치더라도 귀찮음에 틀림이 없었다.
“막상 취월이란 요릿집이 좋아요. 일본 요릿집이구, 손님도 그리 많지 않구, 누울 방도 곧잘 빌려 주구, 취체 같은 것은 절대로 없어요.”
명화는 상열을 안심시키는 듯이 죽 설명을 해 들리었다.
“단둘이 가는 것이 수상쩍게 보이지 않을까?”
상열은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거기는 그런 짝패 손님들만 오는 데랍니다. 더구나 난 주인을 잘 아니까요.”
“잘 아는 게 병통이 되지 않을까? 아모개란 기생이 어떤 사내를 데리구 왔더라구.”
상열의 생각은 물 부어 샐 틈 없이 주밀하였다.
자동차는 어느덧 종로통에 들어섰다.
“어디로 가십쇼?”
운전수는 자동차를 멈칫거리면서, 또 한 번 이 수상쩍은 남녀의 갈 곳을 물었다.
“남산으로 가요. 취월이란 요릿집으로요.”
명화는 망설이는 운전수에게 명하였다. 아모리 생각해 보아도 집에 가자니 수없이 올 인력거를 일일이 따기도 성가시고 더구나 병일이나 찾아오는 날이면 더욱 귀찮을 듯하였다.
그렇다고 여관에 들기도 꺼리는 터이면 취월밖에 만만한 곳은 없었다. 주리를 하도록 능갈스러운 주인 노파에게 돈이나 두둑이 쥐어 주면 아모리 끔찍한 죄를 저지른 범인이라도 감쪽같이 감춰줄 것이었다. 한 달 두 달은 마치 모르겠으되, 며칠쯤은 그리고 그리던 사랑을 쥐도 새도 모르게 속살거리기엔 가장 좋은 처소라 할 수 있었다.
상열은 사정도 들어보고 밝은 날 서서히 다른 곳으로 옮겨도 늦지 않으리라 하였다. 더구나 밤중이니 이런 데밖에는 갈곳이 없지 않으냐.
자동차는 오던 길을 되짚어서 남산으로 향하였다.
“괜찮을까?”
상열은 명화를 보고 다심스럽게 묻는다.
전일에도 자상은 스러웠지만 뇌뢰낙락하던 상열이어늘 어떻게 이렇게 다심스러우랴. 중병이 들면 성격까지 변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서운 비밀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괜찮아요. 조선 요릿집과 달라서 첫째 조선 손님이 적고, 방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손님끼리 마주칠 기회도 없어요. 손님 좌석엔 세상 없는 일이 있더래두 경관은 절대로 들이지 않아요.”
명화는 염려를 놓아라는 듯이 또 한 번 설명을 해 들리었다. 상열은 고개만 끄덕였다.
자동차는 남산 잔등의 누그러운 구배를 기어올라 숲 사일 질팡갈팡하다 약수터로 더듬어 휘어들어 취월 안문까지 쑥 들어섰다.
자동차 소리를 듣고 하녀들이 우 하고 뛰어나왔다.
익숙한 명화가 앞장을 서서 종용한 방을 찾았다. 상열은 스프링 코트 옷자락을 더욱 치켜올리고 모자를 나리누르며 뒤따라 들어갔다.
현관에 올라서자 주인 노파도 내달았다. 그 뚱뚱한 배를 치술러가며 웃으며 명화를 보고 꼬박이 절을 하였다.
병일이와 여러 번 온 탓으로 주인 노파는 끔찍이 명화를 대접하였다.
명화는 제 뒤에 선 상열을 눈으로 가리키며 눈을 껌쩍하였다.
노파는 상열을 보고 익히 알던 손님처럼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서 벌써 만사를 알아차린 모양으로 제가 앞장을 서서 후미진 방 중에도 후미진 방을 골라 인도를 해 주었다.
상열이가 방에 들어선 뒤에, 명화는 주인 노파를 데리고 나왔다. 사양하는 노파의 손아귀에 십 원짜리 두 장을 꽁치꽁치해서 쥐어 주었다. 노파는 흐뭇하게 웃으며 절을 열 번이나 더 하였다.
명화는 첫째 병일이에게 제가 다른 손님을 끌고 왔더란 말을 말라고 부탁하였다. 둘째 누가 저를 찾더라도 여기 있단 말을 말라고 하였다.
“그렇다 뿐예요, 그렇다 뿐예요.”
하고 노파는 수없이 고개를 꼬박꼬박하였다. 마지막으로 명화는 눈짓을 하고 웃었다.
“만사를 제게만 맡겨 주셔요.”
노파도 알아차리고 웃었다.
“음식은 간단히 해 주셔요.”
명화는 끝으로 한 마디 남기고 방으로 들어와 웃목에 우뚝하게 서 있는 상열의 모자와 외투를 벗기었다.
고국의 흙
봄밤은 선선하게 따뜻하였다.
명화는 뜰로 향한 장지를 열고 상열이와 나란히 앉았다.
정원에는 은은한 전등불이 운모 조각처럼 번뜩였지만, 나무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이요, 사람의 자최는 없었다.
상열은 나무 진과 풀 향기를 실은 눅눅한 공기를 살 것같이 들여마시며, 적이 안심을 하는 모양이다.
“어때요, 한적하지 않아요?”
명화는 난쟁이 황양목으로 곱게 선을 두른 화단에 옹기종기 놓인 일찍 피는 꽃들이 밤눈에도 방싯방싯 웃으려는 것을 내다보다가, 상열에게 말을 건네었다.
“그렇군. 바루 절간에나 들어온 것 같은데.”
상열은 맞장구를 치고 멀리 서울의 불바다를 그리운 듯이 바라다보았다.
두 애인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산같이 쌓이고 쌓이었던 회포가 마주보는 순간에 봄눈 슬듯 사라지고 만 것 같았다.
명화는 문득, 처음 만날 때부터 상열이가 너무 점잔을 빼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때에도 제 마음에 쏟는 정을 열에 하나도 드러내지를 못하였었다.
숫색시같이 남의 눈을 꺼리고 부끄럼을 타고 가슴을 울렁거리고 까닭 없이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이었다.
상열을 그리는 여러 해 동안 이따금 어린 자기의 안타까웁던 사랑을 돌아보고 우습게 생각하였다. 왜 그 때는 의엿이 할말도 못하였던고. 부여잡고 싶은 두루막 뒷자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던고. 상해를 건너갈 때만 해도 왜 말리지 못하였던고. 내가 잡으면 설마 뿌리쳤을까. 죽음으로 매어 달렸으면 그런 슬픈 이별을 안 하고도 말았을 것 아닌가. 이렇게 그릴 것을, 이렇게 안타까울 것을. 어쩌면 그렇게도 병신스러웠던가. 벙어리 놀음을 하였던가.
이번에 만나고만 보면 세상없어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살면 같이 살고 죽으면 같이 죽을 작정이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이 있더래도 둘이 얼싸안고 쓰러졌으면 쓰러지리라 하였었다. 두 손목을 마주잡고 한 자리에 거꾸러졌으면 거꾸러지리라 하였었다.
두 사이에 체면이 있을 리 있느냐, 부끄러워할 까닭이 있느냐. 마음에 있는 대로, 가슴이 원하는 대로 불덩이 같은 사랑의 포옹에 왼몸의 피를 태우리라고, 참고 참았던 정열의 회호리바람에 그를 휘술레를 돌리리라, 높고 높게 막았던 방축이 터져 나오는 물과 같이 그를 둥둥 띄우리라 하였었다.
그러하였거늘, 그 용맹은 어데로 갔는가, 그 결심은 어데로 사라졌는가.
한적한 이 자리! 엿보는 것은 나무 그늘밖에 없건마는 단둘이 무릎을 마조 대고 앉았건만, 왜 가슴이 설레기만 하는가. 왜 목이 메이기만 하는가. 왜 쪽진 머리가 그닐그닐하고, 얼굴에 분때가 꾀죄죄하게 흘러나리는 것 같은가. 무슨 까닭으로 고개를 바루 쳐들 수가 없는가. 무슨 까닭으로 데면데면하게 수인사만 하고 있는가.
명화는 제가 여러 번 비웃던 제 어릴 때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애인의 얼굴은 그를 칠팔 년이나 다시 어리게 맨들어 놓은 것이었다. 난잡하고 능란한 기생의 탈을 벗겨 버리고, 숫색시의 순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 것이었다.
지나친 다정이 무정과 흡사하다 함은 이를 두고 이름이리라.
안타까웁게 오락가락만 하는 눈길. 올올 떨리는 가슴. 손가락 하나 꼼짝달싹 할 수 없이 왼몸이 자지러지는 듯한 순간. 뼈끝까지 녹신녹신 저리는 듯. 숨쉬는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이따금 생각난 듯이 후 하고 내쉬는 한숨…….
가까이 보면 볼수록 애인의 모양은 가엾게 변하였다. 첫째로 얼굴색이 변하였다. 윤기가 흐르는 그 흰빛이 보송보송하게 시어졌다. 번듯하고 팽팽하던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여러 줄 글리었다. 정거장에서와 같이 사나운 기침은 하지 않았지만, 쿨룩쿨룩 예사 기침을 할 때에도 왼 얼굴이 땅기고 켕기는 것 같고, 새파란 힘줄이 군데군데 일어섰다. 떡 벌어졌던 어깨판이 착 까부러지고, 그 통통하던 손등엔 뼈가 울근불근 드러났다.
명화는 애인의 변한 점을 한 점 두 점 눈으로 더듬으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었다.
─ 내 몸은 해외 풍상을 겪기에 너무 지치고 약해진 것이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리운 고토로 돌아갈 길뿐이오. 그리운 애인의 품속으로 뛰어들길뿐이오. 그 부드러운 살이 나를 받아주게 못 된다면 그 맑은 공기 가운데서 나 사라진들 어떠하겠소. ─ 수수께끼 같은 편지의 한 구절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골백번이나 그 사연을 읽고 또 읽어 보았지만 암만해도 무슨 뜻인지를 또렷이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편지를 한 . 그이가 마주앉은 이 자리에도 그 뜻을 완전히 짐작은 못할망정 반쯤은 풀린 듯싶었다.
저 몸으로 과연 해외 풍상을 겪어내지를 못하리라. 그러니 불야불야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으리라. 그렇다면 애인의 부드러운 살이 받아주지를 않으면 맑은 공기 가운데 사라진다는 말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애인’이란 말이 저를 가리켰을진대 ‘맑은 공기’란 웬 말인가?
명화는 별안간 가슴이 덜컥 나려앉았다.
‘조선에 나와서 제 품에 안겨 죽겠다는 뜻이 아닌가?’ ‘사라진다’는 말은 분명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병이 저렇게 깊었으니 아모리 든든한 장부의 마음이라도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였으리라. 만리 타국 외로운 객창에서 중병을 앓는다는 것은 얼마나 호젓한 일이랴, 쓸쓸한 일이랴. 내 땅에 나와 내 품에 안겨 최후를 맞으려 한 것이리라.
명화는 너무도 애연하였다. 너무도 억색하였다.
바라고 바라던 애인이 저를 찾아올 때엔 벌써 죽음의 그림자를 띠었을 줄 이야. 죽음을 선물로 마지막 방문을 올 줄이야.
명화는 다시 상열을 곤쳐 쳐다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만일 편지의 그 뜻대로 된다면 너무 악착한 일이었다. 참혹한 일이었다.
자기 말마따나 부드러운 내 살에서 다시 살아나리라. 힘과 정성을 다한 내 구원에서 제 아모리 지독한 병이라도 낫고야 말리라 하였다.
명화는 슬픈 자신에 스스로 뽐내었다. 그러나 그 사연의 ‘애인’이란 말이 단순히 자기를 가리킨 것이 아니요, ‘사라진다’는 것이 오직 병 때문만이 아닌 것을 명화는 몰랐다.
“늙었구려.”
상열도 요모조모를 뜯는 듯이 물끄러미 명화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어깨를 어루만지며 한 마디를 꺼내었다.
“왜요? 벌써 늙어요.”
명화는 고개를 뒤로 기우뚱하며 하염없이 웃었다.
“세월이 얼마나 갔는데 벌써라니?”
“그까짓 세월이야 암만 가면 무엇해요? 속살 없는 세월이야…….”
“속살 없다구 가는 세월이 멈칫멈칫할라구, 제 갈 길을 가고야 말지.”
“저는 싫어요, 속살 없이 가는 세월이. 세월이 제가 제멋대로 간 게지. 제게 무슨 상관이야요?”
“그러면 어릴 때 그대로 남아있는 줄 아는군.”
“그러먼요, 저는 선생님을 뵈오니 그 때 시절이 그대로 안 가고 있는 것 같애요.”
“그래, 지금도 열일곱이람?”
“그럼, 열일곱이지요. 누가 쓸데없이 나이를 먹어요?”
“눈 가장자리에 잔금이 갔는데.”
“애규 맙시사. 벌써 주름살이 잡혔단 말씀예요?”
“그럼 그 숱한 눈썹도 준 것 같구…….”
“어느 새 눈썹이 빠져요.”
“빠지지는 안 해도 너무 뽑아버린 게지.”
“왜 눈썹을 뽑아 버려요?”
“모양을 내노라구.”
“애규 망측해라.”
“그래야 고운 님이 많이 생길 것 아니야?”
“그 잘난 고운 님이 생기면 무엇해요? 괴롭기만 하지.”
“괴로워도 생앤 걸 어떡하누.”
“정말 그 생애는 인젠 진저리 넌더리가 나요.”
명랑하던 명화의 말씨는 대번에 흐려졌다.
“벌써 그 생애가 진저리가 나?”
“그럼 늙어 죽도록 기생 노릇만 하란 말씀예요?”
명화는 조심스럽게 눈을 살짝 흘겼다.
“벌써 늙어 죽기는.”
“언제는 늙었다 하시더니.”
“어릴 적보담 늙었단 말이지, 어데 죽도록 늙었단 말인가, 허허…….”
상열은 웃었다. 그리고 명화의 어깨를 힘있게 흔들었다. 명화도 반쯤 상열에게 쓰러지며 웃음을 풍겼다.
“죽도록 늙는 법도 있어요? 늙으면 죽는 게지. 아이 우스워라.”
“그래, 죽게 늙었단 말이구려.”
“저는 늙기 싫어요. 죽기도 싫구. 인제는 아주 안 죽을 작정이야요.”
“누구는 죽을 작정하구 죽는가, 뭐.”
“그래도 저는 죽지 않을 테야요. 늙지도 않구요. 선생님을 뵈웠으니.”
“내가 뭐 불로초인가 생명수인가?”
“그럼 제게는 생명수 아니구.”
명화는 날씬한 두 팔을 늘여 상열의 목덜미에 깍지를 끼고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두 애인은 이윽히 마주보았다.
“인젤랑은 아모 데도 가시지 말아요. 꼭 제 곁에 계셔 주셔요 네?”
한참 만에 명화는 눈물 소리를 떨었다. 상열은 아모 대꾸가 없다.
“왜 대답을 않으셔요? 또 어데를 가실 작정이어요? 인제는 안 돼요. 인제는 세상없어도 제가 놓지를 않을 테예요. 그 때만 해도 제가 철이 없어서 가시게 하였지, 지금부터는 무가내하예요. 인젠 아모 데도 못 가셔요. 참말 못 가셔요. 안 가시지요. 네? 그렇다구 해 주셔요. 고개라두 끄덕여 주셔요.”
명화는 벼르고 벼르던 말을 기태나 하고야 말았다.
말없이 명화의 얼굴을 데미다보는 상열의 얼굴엔 처참한 표정이 움직였다.
이윽고 눈을 스르르 감는데 눈시울엔 서리가 번뜩였다.
명화는 상열의 목덜미에 감았던 제 팔을 풀어 다시 허리 어름을 잡으며 찜부러기하는 어린애 모양으로 제 얼굴을 애인의 가슴에 비비적거리었다.
“왜 아모 대답을 않으셔요? 그러면 또 가신단 말씀예요? 저를 버리구 또 가실 작정이야? 칠팔 년을 두고 그리웠으면 무던하지 않아요? 인제 또 이별이란 정말 싫어요. 죽어도 싫어요. 네? 선생님 안 가시겠지요. 영영 우리는 다시 떨어지지 않겠지요. 네? 선생님!”
명화의 등은 그대로 자지러질 것같이 구비를 쳤다. 그는 애인의 침묵이 슬펐다. 불길한 예감이 비수와 같이 그의 창자를 에어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이 자리어늘 벌써 쓰라린 이별이 자기네의 뒷덜미를 짚은 것을 느끼었던 것이다.
상열은 물결치는 명화의 등을 어린애를 달래는 것처럼 따둑따둑 어루만지었다. 이윽고 명화는 눈물 젖은 얼굴을 쳐들었다.
“그래, 또 가시렵니까? 시원스럽게 말씀이나 하셔요.”
상열은 야속해하는 듯한 애원하는 듯한 명화의 눈물 어린 눈시울을 애연하다는 듯이 손으로 씻어 주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은 더욱 핼쓱해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왔는데 가기는 어데를 간단 말이어?”
하고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그 웃음은 물을 것 없이 명화 자기를 위로하려는 웃음이리라. 그러나 세상에 저렇게 쓸쓸하고 슬픈 웃음이 또 있을까. 그것은 울음보담도 몇 곱절 더 처량한 웃음이었다.
명화는 간신히 가라앉히려던 방정맞은 눈물이 또다시 눈시울로 몰려 떨어졌다.
“그게 참 말씀이야요? 참 정말 아모 데도 안 가신단 말씀이야요?”
명화는 상열의 웃음을 보고, 그 말까지 믿기 어려워한다.
“그럼 참말이지. 가기야 어데를 가?”
상열은 쾌활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뒤끝은 굴리지 못하고 힘없이 사라졌다.
“가기야 어데를 가다니요? 그럼 가시지는 않더라두 또 다른 무슨 일이 있단 말씀예요?”
명화의 가슴에는 무엇이 선뜩하고 지내가는 듯하였다. 독립문 앞을 지나치며 보던 감옥의 번들번들한 벽돌담이 눈앞에 얼른하였다.
상열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이 순정의 애인을 거짓말로 속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참 사정을 알리기엔 너무 애처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지요. 어데 가시는 일 말구, 여기 서울에 계셔두 무슨 딴 일이 있단 말씀이지요? 무슨 일이야요 네? 좀 알으켜 주셔요 네? 선생님.”
“그건 명화 씨가 알아선 무얼하우?”
상열은 무거운 입을 떼어 달래는 듯이 말하였다.
“제가 알아서 안 될 일이 뭐예요? 만나던 맡에 우리를 또 갈리게 하는 그 일이 무슨 일예요? 알고나 있게 말씀을 좀 해 주셔요. 네?”
상열은 명화를 끌어안아 어릴 때 하듯 제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야학교 선생 시절처럼 타일르듯 말하였다.
“그건 명화 씨가 알아서 쓸데도 없는 일이오. 또 알아서는 안 될 일이오.
다만 이것 하나만 생각하오. 사람이란 제 한 몸의 행복만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구.”
상열의 어조는 장중하고도 침통하였다.
명화는 상열의 무릎에서 털썩 나려앉았다.
“사람이란 내 한 몸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구요? 전 그런 말은 듣기 싫어요. 전 이날 이때까지 제 한 몸을 위해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작난감이 되고, 남의 노리개가 되고 남을 위해 웃음을 웃고, 남을 위해 속을 끓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 성나는 대로 해 보았을까, 언제 한 번 내 울 일에 울어 보았을까,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답니다. 아모리 울화가 치받쳐도, 내색도 못 내었답니다. 아모리 분한 일이 있어도 애꿎이 제 입술만 깨물었답니다. 저야말로 남을 위해 살았어요. 인제 싫어요, 딱 싫어요.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명화는 설움이 일시에 복받치는 듯하였다.
“인제 저도 저를 위해서 좀 살아볼 작정이야요. 거짓의 탈을 훨훨 벗어 버리고 알몸뚱이의 본정대로 살아볼 작정이야요. 슬프면 슬퍼하구 기쁘면 기뻐하구. 선생님을 모시고 새 생활로 돌아갈 터이야요. 암만 선생님이 마다 셔두 인제는 안 돼요. 세상없어도 안 돼요. 네? 선생님! 저를 버리지 않으실 테지…….”
상열은 눈물 속에서 정열에 타는 명화의 시선을 차마 바루 쳐다볼 수 없다는 듯이 시선을 떨어트리었다.
“명화의 말이 일면의 진리가 없는 것두 아니네. 그러나 사람이란 어느 때는 남을 위해 살고, 어느 때는 내 몸을 위해 살겠다고 작정을 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 그렇지 않아. 사람의 한 평생에 선을 그어놓고 이짝 저짝에서 남 위하는 것과 내 위하는 것과 구별을 지을 수야 없는 게 아니야, 응. 더구나 명화는 남이니 나이니 또렷이 구별을 하지마는 크게 생각하면 내 남이 없는 것이어든.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거란 말야. 명화의 경우는 물론 좀 다르지마는…….”
역시 지난날의 선생의 티를 잃지 않고, 순순히 가르치는 듯한 부드러운 말씨였다.
“그러면 한평생을 남을 위해 산단 말씀이야요? 제 사랑도 버리구, 제 행복도 버리구…….”
“사랑? 행복? 허”
상열은 쓴웃음을 배앝았다.
“왜 웃으세요? 그럼 사랑도 버리란 말씀예요? 10년 가까이 건사를 모은 사랑을…….”
“10년! 나도 10년 동안 고생살이에 얻은 것은 병뿐이구려…….”
하다가, 제 말이 너무 센티멘탈에 흐르는 것을 고치는 듯이,
“해외에 나가 보면 10년이란 세월은 눈 한번 깜짝일 새에 달아나는 거야.
10년이 아니라 백년이라도 할 노릇은 해야 될 것 아니야? 응.”
“10년 동안 째기발을 딛고 기다리던 행복도 버려야 된단 말씀에요? 아스세요, 아스세요. 그것은 너무 심하지 않아요, 너무 참혹하지 않아요? 네, 선생님!”
“아모리 참혹하더래두…….”
“그런 말씀이 어데 있어요? 아모리 참혹하더래두, 저를 버리시겠단 말씀예요?”
“왜 버리기야…….”
“그럼, 어떡하신단 말씀예요? 저를 어떡하신단 말씀예요?…….”
“이렇게 만난 것두 행복이 아닌가? 만나는 동안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왜 짧아요, 왜 짧아요? 평생을 같이 모실 텐데…….”
담박하고 간드러진 요릿상이 들어왔다. 껍질 채 구운 소라. 센 머리칼 같은 무채에 연분홍 생선회 갓, 어느새 골패짝 같은 오이나물, 눈깔만한 잔.
대륙적으로 텁텁하고 질번질번한 청요리만 보던 상열의 눈엔 진기하고도 서툴렀다. 간나위 같고 가려웠다.
여러 해포를 못 먹어보던 음식이라 눈에도 서툴거니와 입에도 서툴렀다.
닝닝하고 야릇한 냄새가 비위를 뒤집었다.
얼마 먹는 체하다가 상열은 젓가락을 던졌다.
“왜 비위에 받지를 않으셔요? 딴 걸 좀 시켜 올까?”
명화는 소라구이를 뜯어먹다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뭘, 괜찮아, 술이나 한두 잔 먹지.”
“밤이 늦었으니 시장도 하실 텐데.”
“아니, 찻간에서 저녁을 든든히 먹었어.”
“뭘요. 그까짓 변또가 무슨 배가 불러요?”
“그래도 해외 있을 적보담은 갑절이나 먹은 셈인걸, 허!”
“그러면 거기 계실 때엔 노상 굶으신 게지요.”
“그야 굶다가 먹다가 했지만…….”
“아이.”
하고 명화는 목이 메어 말 뒤끝을 잇지 못하였다. 튼튼하던 몸이 이렇게 볼상없이 말르고 중병까지 든 것이 온전히 고생살이 까닭이어니 하매 새삼스럽게 안타까웠다. 해외에 나가면 웬만한 고생이야 짐작 못한 바도 아니지만 끼니를 궐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 조석도 제때에 못 잡수셨단 말씀예요?”
하고 명화는 술을 부었다.
“조석이 제때라니? 그러면 누가 해외 풍상이 고되다 할꺼요?”
상열은 눈깔만한 잔을 훌쩍 마셨다.
“그런 고생을 하고, 왜 거기 계셔요? 글쎄 얼른 나오실 게지.”
“허!”
상열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끼니를 에우니 어떻게 병환이 안 나요?”
“그까짓 밥 좀 굶는 거야 상관이 없지만, 마음의 고통이 몇백 곱을 더하니까…….”
하고 후 한숨을 내어 쉬고 눈을 멍하게 뜬다. 지긋지긋한 지난날의 고생을 눈앞에 그려보는 듯.
두 잔밖에 안 먹은 술이 벌써 올랐다. 그 핼쓱하던 얼굴은 피를 발라 놓은 듯이 붉었다.
“술도 그렇게 못하셔요?”
“본대 잘 먹지도 못하겠지만, 병 때문에 몇 해를 끊어서…….”
“아규, 그럼 왜 술을 잡수셔요?”
“인제는 먹어도 괜찮아.”
“병환이 나으신 것 같지도 않은데…….”
“병이야 안 나았지만 인제 올 데를 왔으니.”
“올 데를 오시다니?”
“그리던 고장에를 돌아오고, 또 이렇게 그리던 명화를 만나지 안 했나? 허허.”
“그럴수록 몸을 더 조섭을 하셔야지.”
하고 명화는 상열이가 또 들려는 술잔을 뺏으려 하였다.
“뭘, 몇 잔 먹은들 어떨라구?”
“병환이 더치시지.”
“더치면 대수요? 얼마 남지 않은…….”
하다가 상열은 말을 잘라 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게 뭐예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 아닌가?”
하고 필경 그 잔을 말려 버렸다. 얼굴은 더욱 연연하게 붉어지고 숨길까지 씨근씨근해 가빠졌다.
“왜 인생이 얼마를 남지 안 해요?”
명화는 다시금 항의하였다.
“명화도 벌써 짐작했을는지 모르지만, 내 병이 이렇게 중하지 않나? 구태여 산다 한들 며칠이나 살 거요? 그러니…….”
명화의 항의에 상열은 목소리를 떨어트렸다.
“뭘요? 무슨 병환이 그렇게 중하시단 말씀예요? 소복만 잘하시면 곧 나을 것 아녜요?”
상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나을 병이 아니야.”
“세상에 아니 낫는 병이 어디 있단 말예요? 해외에서 너무 고생을 하셔셔 난 병환 아녜요? 끼니를 굶으시구 그렇게 난 병이야 조섭을 웬만만하면 쉽사리 나을 거예요. 아예 비관을랑 마셔요. 네? 선생님.”
요리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았던 명화는 상열의 곁으로 맹그적맹그적 무릎으로 걸어서 다가앉았다.
“네, 선생님.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요. 그까짓 병이야 걱정을 할 게 뭐예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이렇게 있는 담에야…….”
명화의 뺨은 상열의 뺨에 쓰러졌다.
“네, 선생님, 우리도 좀 살아봅시다. 하늘이 두 쪽이 나더래도 우리 둘이 살아봅시다. 네 선생님 딴 말씀 마시구, 불길한 말씀 마시구, 남 위하는 생각 마시구, 네, 선생님. 병만 곤치기로 힘을 씁시다. 산수 좋은 데로 전지(轉地)라두 하시구. 네? 선생님. 세상없어도 병을 곤치기로 해요, 네? 선생님!”
명화는 왼몸이 정열의 덩어리로 화한 듯 입에서 불길이 홀홀 나왔다.
“아, 아.”
상열은 짤막하게 탄식을 배앝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울림이다.
“나을 병도 아니구, 곤칠 필요도 없는 병이오.”
“또 저러시네. 또 저런 말씀을 하시네.”
명화는 질색을 하고,
“네, 선생님. 그러지 마시구. 제발 그러지 마시구. 세상없어도 우리 살아 보아요. 네? 선생님.”
슬픔과 애원에 삐뚤어진 명화의 입술에 상열은 제 입술을 찍었다.
꼬창이 같은 팔뚝이 똑 부러질 듯이 명화를 쓸어안았다.
몸과 마음이 바스러지는 듯한 포옹의 한 순간! 상열의 팔은 맥없이 풀리었다.
명화는 제 애인의 뼈만 남은 딱딱한 안간힘과 아귀힘이 약한 것이 슬펐다.
가엾었다. 객쩍은 짓을 하였다는 듯이 상열은 가볍게 명화를 밀어내고 자기도 물러앉았다. 명화는 밀려나온 것보담 더 다가들어갔다.
“선생님, 왜 밀어내셔요? 암만 밀어내셔도 밀려나갈 제가 아녜요. 네 선생님, 아모 다른 생각 마시구 제 말만 들으셔요. 왜 한눈을 파셔요? 왜 다른 데를 보셔요? 또 무슨 딴 생각을 하시는 게로구만. 제 얼굴을 보셔요. 네? 선생님, 제 얼굴을 좀 보아요. 글쎄.”
명화는 만 가지 생각에 잦아진 듯한 상열의 얼굴을 두 손바닥에 끼어서 제 앞으로 돌려놓았다.
상열은 앞으로 푹 고꾸라지는 듯이 고개를 숙이자 오른손으로 이마와 머리를 얼싸 잡아서 떠받쳤다. 무거운 머리를 고이기 어렵다는 듯이 가느다란 팔목이 휜 것 같았다.
한참 한참 만에야 상열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얼굴엔 비창하나마 굳은 결심이 움직였다.
그는 조끼 단추를 끌르고 조끼 주머니에서 하얀 수건에 싼 무엇을 끄집어 내었다 오랫동안 그리고 . 그리던 애인을 위하여 깊이 감추어둔 선물을 내놓기나 하는 듯이.
“명화 씨, 이걸 좀 보시오!”
얼굴빛도 엄숙하거니와 말씨조차 정중하였다.
“이게 뭐예요?”
하고 물었다.
“끌러만 보오!”
명화는 위에 싼 수건을 끌렀다. 그 속에서는 두꺼운 조선 장지의 봉투가 나왔다. 보실보실한 무엇이 맞히었다.
명화는 진기한 듯이 겉봉을 떼었다. 가볍게 봉투를 기울이매 명화의 손바닥엔 흙 같은 것이 솔솔 부어졌다.
“이게 뭐예요? 흙 아녜요?”
“그렇소. 흙이오. 내 고향의 흙이오. 조선의 흙이오.”
명화는 기대에 어그러진 듯한 고이쩍은 듯한 눈으로 어이없이 상열을 쳐다보았다.
“흙을 왜 이렇게 심심봉지를 하였을까?”
명화는 흙을 한 줌이나 되도록 더 쏟아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명화 씨가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용혹무괴한 일이오. 세상에 흙을 싸 두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내게는 그에 더한 보물이 없었소. 나의 최후의 동반자가 될 것은 그 흙뿐이었소…….”
명화는 무슨 뜻인지를 잘 몰랐지만 어쩐지 슬펐다. 잠자코 설명을 더 기다렸다.
“명화 씨는 상상도 못하리라. 해외 객창에서 병을 얻은 몸이 얼마나 쓸쓸한가. 병이라두 유만부동이오?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는 폐병이 든 것을 알 때 그 마음이 어떠할까. 십년 풍상에 아모 것도 이뤄진 것이 없고 하로하로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이 어떠한가. 고국을 떠나 있으면 고국이 얼마나 더 그리운가. 남들이 비웃는 붉은 산이 얼마나 보고 싶은가. 맑은 하늘과 맑은 물이 얼마나 눈앞에 어른거리는가……. 더구나 인제는 죽는다. 반생에 애쓴 것이 속절없는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인제는 다시 고향의 공기를 마셔 보지도 못하겠구나, 인제는 다시 고향의 흙을 밟아 보지도 못하겠 구나 하며 내 마음은 , 어린애와 같이 센티멘탈해진 것이오. 그래, 이 흙을 구한 것이오. 내 고향의 흙을. 어릴 때 발로 짓밟고 손가락으로 휘젓던 흙을……. 병이 불시에 더치어 조선에 나간다는 조그마한 소원조차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나는 이 한줌 흙을 품고 고요히 죽을 작정이었소.”
명화는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두 가슴이 억색해져서 위로할 말조차 나오지 안 했다.
“인제 내 목적은 반은 달해진 셈이오. 아모튼 죽기 전에 조선의 흙을 밟았고 조선의 공기를 마시게 되었으니…… 그리고 또 내 청춘의 감정을 사루 잡았던 명화 씨를 이러구 만났으니 인제는 세상에 원될 것도 없고 한될 것도 없게 되었소. 마음놓고 내 갈 길을 가면 구만이오…….”
명화는 소리를 내어 울다가,
“갈 길이 또 어데란 말씀예요?”
울음 반 말 반으로 물었다.
상열은 대답이 없었다.
정열의 회호리
용산 S의원에 실려간 은주와 여해는 인공호흡과 응급수단으로 목숨들은 다 건지게 되었다.
그 이튿날 아침까지도, 은주는 열이 오르나리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여해만은 완전히 정신을 수습하였다.
환하게 병실 유리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햇발을 얼굴에 느끼자 여해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팔다리가 욱신욱신하고 쑤시기는 하였지마는 머리는 거뿐하였다.
붉은 햇살이 가슴속까지 쏘아 들어오는 것 같다. 웬일인지 근래에 없이 심기가 좋았다.
검누른 흙탕물이 입으로 코로 벌떡벌떡 들어갈 제 속이 능글능글하기는 하였으되 은주를 부여잡은 때의 기쁨이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아슬아슬하고 유쾌하였다.
그는 물에 젖었던 후줄근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병실을 나섰다.
그는 은주에게 가 볼 작정이었다.
조그마한 그 병원은 병실이라고 몇 개가 없었다. 복도에서 은주를 맡아 보는 간호부를 만나 물으니 은주의 병실은 바루 제 병실의 다음 다음 방이었다.
곧 들어가 보려다가 여해는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은주가 나를 보면 놀라지나 ‘ 않을까. 죽음을 결단하게 한 장본인을 눈앞에 본다면 어린 신경에 또 얼마나 흥분이 될 것인구. 그녀에게는 악마인 내가 아닌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며 가뜬하던 기분이 다시금 흐려지고 마음은 또다시 천근 같이 무거워졌다. 발길을 돌리려다가 다시 생각하니 은주가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것 같지 안 했다. 나를 알아 볼까. 아직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지나 않을까.
여해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깨어난 다음에야 일시인들 진절머리 나는 병원에 있기가 싫었던 것이다.
병원을 나가기 전에 그는 은주의 얼굴을 한 번만 보고 싶었다. 이번 한 번만 보고 나면 이 앞으로야 다시 만날 기회도 없고 필요도 없을 것 아니냐.
제 지은 죄는 삭치려 삭칠 수 없는 노릇이니 이번 한 번으로 이 괴상한 인연을 청산하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 은주 몰래라도 은주의 용태나 보살펴 보고야 발길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필경 여해는 은주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은주의 병상 곁에는 아모도 없었다. 여해는 물론 병일과 석호가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은주가 피어나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아까 여해 가 복도에서 만난 간호부에게 맡겨 놓고, 그들은 제 갈 데로 가 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은주의 유서를 읽고 은주 곁에 있기가 면구하였던 탓도 탓이리라.
은주는 여해의 추측과 같이 과연 잠이 들었다.
은행 껍질 같은 눈시울이 지그시 감기고 이글이글 타는 듯하는 눈은 핼쓱하게 여위었다.
어젯밤까지 죽음의 고통과 싸우던 흔적은 그 얼굴 어데에도 없었다. 평화하고 종용한 빛이 그린 듯이 깃들인 듯하였다. 그 하붓이 열린 입으로 하하하는 단 숨길이 흐르지 않고 가슴 언저리에 멎은 흰 이불 자락이 달싹거리지 않았던들 누구라도 고요히 운명한 줄로 알았으리라.
여해는 이윽히 들여다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 서슬에 은주는 눈을 큼직하게 떴다.
천만무량의 감회를 남기고, 발길을 돌린 여해가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말고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순간! 은주의 시선과 마주쳤다.
여해는 아뿔싸 싶었다. 환자의 신상에 일어날 무거운 변화를 기다리며, 일 찰나 움직이지 않았다.
뚱그런 눈동자가 두리번두리번할 뿐이요, 아모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은주는 여해를 몰라보았음인지 삶과 죽음의 실낱 같은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그의 정신은 아직도 꿈과 생시를 구별하지 못하였음인가.
이랬거나 저랬거나 여해에게는 어떻게 다행한지 몰랐다. 최후로 제 희생의 얼굴을 한 번만 보아두겠다는 안타까운 희망이 이렇다 할 지장 없이 이루어진 것도 다행하거니와, 마지막 길에 제 눈으로 은주가 깨어난 것을 본 것이 더군다나 안심이 되었다.
여해는 마음 놓고 문을 열고 나오려 하였다. 그 때였다. 등뒤에서 동강 동강 끊어진 말이 들리기는,
“누 누구세요?”
긴장한 여해의 신경은 깜짝하고 놀래었다.
‘인제 정말 깨었나 부다.’ 하고 당황히 나와 버렸다. 본정신이 완전히 돌아오는 다음에 자기를 본다면! 큰일이 아닌가.
강 속에서야 초죽음이 된 뒤이니 의식이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저를 건져낸 사람이 누구인 것을 모르리라. 설령 여해인 줄 안다 하더라도 자기를 죽음의 길로 이끌어 넣고 죽으려는 슬픈 소원까지 방해한 그를 더욱 미워는 할지언정 고마워할 까닭은 없으리라. 여해는 문 앞에서 제 방에서 나올 때 만났던 그 간호부와 마주쳤다.
왼 얼굴에 주근깨를 뒤집어 쓴 갈걍갈걍한 그 간호부는 여해를 보고,
“환자가 어때요, 깨어났어요?”
하고 물었다.
여해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 어슬렁어슬렁 복도를 걸어 나려왔다.
현관까지 나와서 생각하니 제 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급한 김에 고무신을 걸치고 한강으로 뛰어나온 것은 생각이 나지마는 신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었는지 또는 그대로 뛰어들었는지 기억이 흐리마리하다. 설령 벗어놓고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 신을 어떻게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동저고릿 바람은 그래도 괜찮다 하겠지마는 아모리 한들 맨발을 벗고야 병원을 나갈 수 없었다.
이럴까 저럴까 하고 현관에서 망설이고 있는 즈음에 간호부가 종종걸음을 쳐서 달려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가쁘게 부른다.
“왜 그러십니까?”
여해는 의아한 듯이 물었다.
“저, 환자가 찾으셔요.”
“누구를요?”
“아마 손님 말씀인가 봐요.”
“나를 찾아요?”
“지금 이 방에 들어왔던 이를 불러 달라구 그러더군요.”
여해는 어리둥절하였다.
“정말 나를 찾아요?”
여해는 간호부의 말을 못 미더워하는 듯이 재우쳤다.
“지금 막 병실에 들어갔다 나오셨죠?”
간호부는 되짚어 묻는다.
“그렇소.”
“그럼 분명히 당신을 찾습니다. 내가 들어갔더니 막 나간 이가 누구냐고 묻지 않아요. 어쩌면 자기를 물속에서 구해낸 은인의 얼굴도 몰라 볼까. 그래 내가 그 말을 했죠. 그이가 바루 당신을 구해낸 이라구…….”
간호부는 어젯밤의 비극을 잘 안다. 여학생이 빠지고 청년 하나가 그를 구하려고 뛰어들고, 배를 풀고 한 사단은 이 근방에 짜하고 퍼졌었다. 그는 여해가 은주와 아모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지나치는 길에 은주가 빠지는 것을 보고 뛰어 들었다가 하마하더면 제 목숨조차 잃어버릴 뻔한 줄로 안다.
그의 눈에 여해가 세상에도 용감한 청년으로 보이었던 것이었다.
‘객쩍은 것을 알렸고나.’ 하면서 여해는,
“그래서?”
하고 잼쳤다.
“그랬더니만, 정신을 모으는지 눈만 말뚱말뚱하고 있겠죠…….”
간호부는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몰라보는 은주를 비난하는 어조다.
“그래, 내가 들은 대로 얘기를 해 들렸죠. 그이가 철교 난간 위에서 ─ 그 높은 데서 거꾸로 떨어져서 당신을 건져내다가 자칫하더면 죽을 뻔했다구…….”
“그런 말은 왜 해요?”
여해는 민망한 듯이 간호부를 나무랬다.
“왜요? 제가 어째 살아난 줄이야 알아야죠.”
간호부는 잘한 듯이 항의를 하였다.
“그제야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예요. 몹시 감동이 된 눈칩니다. 그래 불러! 불러! 라구 애처럼 동강 말을 쓰겠죠.”
“나를 누군지도 모르는데 괜한 말씀을 하셨구려. 난 지금 병원을 나가 봐야겠는데…….”
사람의 목숨을 구해 주고도 제 생색도 내지 않고 그대로 가 버리려는 이 헙수룩한 청년의 행동에 간호부는 더욱 감탄하였다.
“왜 그대로 나가신단 말예요? 그 오빤가 되는 이를 보지도 않고.”
“그런데, 내 신이 어데 있소?”
여해는 간호부의 말을 귀에 담아듣지도 않고 제 물을 것을 물었다.
“그 그 고무신 말이죠? 그건 저 신 상자 속에 들었지만, 하여간 환자가 보자구 하는데 잠깐만 들어와 주셔요, 네.”
여해가 그대로 가 버리려는데, 간호부는 간원하다시피 말리었다.
여해는 일초 바삐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이 병원을 나가는 것이 곧 지긋지긋한 은주에 대한 추억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지글지글 지옥의 가마솥 같은 고통에서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가는 즉시로, 그는 명화의 일이 까닭없이 궁금하였다.
온다던 애인은 정말 왔는가. 오래 그리던 두 애인은 어데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병원을 나가는 길로 위선 명화의 집에를 뛰어가 볼 작정이었다.
지금 또다시 은주를 대하기는 정말 괴로웠다. 혼곤히 잠든 틈을 타서 잠깐 보고만 간다는 것이 간호부의 수다로 말미암아 이렇게 발목을 잡히게 될 줄 이야.
그러나 이왕 자기를 불러 달라는 바에 떼치고 가는 것이 애연도 하였다.
여해는 간호부의 뒤를 따라갔다.
여해는 은주의 침대 앞에 와서 섰다. 은주는 파리한 얼굴로 말미암아 더욱 큼직해진 눈을 들어 물끄러미 여해를 바라볼 뿐이요 아모 말이 없다.
“나를 찾으셨소?”
여해는 은주가 분명히 자기인 줄 알아본 뒤에도 예기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적이 안심하며 물었다.
은주는 가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커다란 눈과 앳된 입모습 언저리에 그윽하나마 호의와 감사의 기색이 움직이는 듯하였다.
“왜 나를 찾으셨소? 이 못된…….”
하다가 여해는 옆에 있는 간호부를 힐끗 보고 입을 닫치었다.
은주의 조금 짧은 듯한 윗입술이 달삭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할 듯하면서 가슴이 억색해져서 나오려던 말이 주저앉고 앉고 하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여해는 설레는 가슴을 억제하랴 억제할 수 없었다. 그 가느다랗게 부러지게 된 목과 배꽃같이 핼쓱해진 얼굴 어디에, 그 쾌활하고 영롱하던 은주의 티가 남았는가. 무서운 오뇌와 번민의 흔적이 암담한 그늘 모양으로 그의 심신을 휩싸놓았다.
여해는 참다 못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얼핏 들려주시오. 나는 가 봐야겠습니다. 이 자리를 떠나야 되겠습니다. 이러구 은주 씨를 보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말 못할 고통입니다. 무슨 말이든지 얼핏 들려 주시오.”
“저……저……왜 저를 구 구해…….”
은주의 목에서는 모기 같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러자 멍하게 뜬 눈시울에서는 굵은 눈물 방울이 흰 누에같이 기었다.
복도가 쿵쿵 하고 울리고, 어지러운 발자최 소리가 났다. 병실 문이 사나웁게 열어제쳐지며 병일과 석호가 달겨들었다. 그들은 요릿집에서 밤새움을 하고 그대로 오는 길이리라. 병일은 넥타이도 매지 않았고, 석호는 그의 눈도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쓰고 비척거리며 들어왔다.
병일은 여해를 보든 맡에 고함을 질렀다.
“너 이놈, 또 여기를 왔구나. 우리 없는 새, 또 무슨 짓을 저질를라구…….”
하고 눈을 부라린다.
여해의 얼굴에 피가 벌컥 솟았다. 불끈 쥔 두 주먹은 벌벌 떨리었다. 그는 맹호와 같이 병일에게 일격을 주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간호부의 올올 떠는 몸과 석호의 비실비실하는 몸이 두 사이를 재바르게 막아섰다.
“이놈아, 덤벼라 덤벼! 이 개만도 못한 놈 같으니…….”
병일은 눈을 홉뜨고 팔을 부르걷고 뽐내며 허장성세를 하다가 술기운에 밀리어 비실비실 뒷걸음질을 친다.
간호부는 얼른 뒤로 돌아 쓰러지려는 병일의 몸을 떠받치듯 가누며,
“구만 참으셔요, 구만 참으셔요.”
하고 달래었다.
“그래, 그래, 네 말도 옳다. 고만 참을까. 헌데, 저런 죽일 놈이 어데 있단 말이냐. 이놈, 뉘 앞이라고 언감생심인들 손짓을 하려고. 저런 놈은 붉은 옷을 입혀 두는 수밖에는 별수가 없단 말야. 이놈, 이놈. 그래, 덤빌 터야. 이놈 이놈.”
하고 병일은 황소처럼 머리로 떠받는 시늉을 하며 발을 쾅 하고 굴렀다.
여해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껄껄 웃어 버렸다.
“오냐, 내가 이 방에 들어온 것은 잘못이다. 나는 간다.”
여해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하였다.
이 때에 은주가 침대에서 별안간 일어앉았다.
“선생님, 선생님, 가시지 말아 주셔요.”
아까와는 딴판으로 제법 또렷또렷한 소리를 낸다.
여해는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가지 말아 달라? 그깟 놈을 잡고 시비를 캐면 뭣하니?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구.”
병일은, 여해를 부르는 제 누이의 말을 되받으며 중얼거렸다.
은주는 더욱 분명한 음성으로,
“그러구 오빠는 가셔요.”
한다.
“뭐 뭣이 어째? 나더러 가거라? 이 애 봐라.”
하고 병일은 눈을 커닿게 떠서 은주를 바라본다.
“그래요. 오빠는 가셔도 괜찮아요.”
“이 애가 미쳤나? 너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냐?”
병일은 제 누이에게로 한 걸음 들어선다.
“그래 여해는 있구, 나더러는 가란 말이냐.”
왼 방안의 시선은 은주에게로 몰리었다.
은주는 그 석고 같은 얼굴에 잠깐 붉은 빛이 피어올랐으나,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병일은 새벽녘에 취한 술이 주렁주렁 매어 달린 듯한 눈을 한 번 쓰담았다.
“저 원수 놈은, 저 악마는 가지 말구, 나더러 가거라. 허, 얘가 정말 미쳤고나! 허 여기 이러구 있을 일이 아니다. 피어난 담에야 어서 집으로 가자. 어서 집에 가서 어찌하든지.”
하고 석호를 보며,
“자동차는 기다리라 하였지?”
석호는 모자 쓴 채 머리를 까딱하였다.
“어서 일어나거라. 집으로 가자. 오빠 망신 구만 시키구.”
“저는 가기 싫어요.”
“가기가 싫다니? 그럼 이 병원에서 살테냐, 어서 일어나.”
“저는 싫어요. 오빠의 집에 가기는.”
“이애 좀 봐 그러면 어데를 갈 테란 말이냐? 허 일껀 건져 내놓으니까…….”
“어디 오빠가 건져내셨어요? 뭐.”
“그러면 누가…….”
하다가 여해를 보고 눈을 부라리며,
“이게 모두 저놈이 주둥아리를 놀린 탓이구나. 그 잘난 물에 좀 뛰어든 걸 하상 대사라구, 무슨 은혜나 입힌 듯이 어린애를 꼬득였구나. 놈 천착스럽기는. 우리는 철교 위에서 쩔쩔매고만 있는데 저 혼자 물에 뛰어나렸다구 흰소리를 했겠구나. 너 이놈, 너도 다 뒤어진 걸 우리 배가 아니면 어떻게 건져내었겠느냐 말야. 인생이 불쌍해서 살려 놓으니까…….”
병일은 몹시 흥분해 한다. 양심에 찔리는 것을 억지로 누르고 생판 억설을 늘어놓은 까닭인가.
여해는 그 넙적한 입을 한 번 쭉 다물었다. 두 볼의 근육이 떤다. 사나운 말씨가 우박같이 쏟아지려는 것을 꾹 참는 눈치였다.
“여러 말씀 마셔요.”
은주의 약간 떨리는 듯한 말이 물을 끼얹듯이 냉연히 떨어졌다.
“오빠의 동생은 어젯밤에 죽었어요. 저는 인제 오빠의 동생이 아녜요. 죽어도 오빠의 집에는 가기 싫어요.”
은주의 쪼글쪼글해진 입술에는 돌릴 수 없는 결심이 보이었다.
“허, 저 애가 암만해도 미쳤군. 허.”
병일은 석호를 돌아보며 혼잣말같이 뇌이었다.
석호는 졸음 오는 듯한 눈을 깜빡깜빡하며,
“응으, 응으.”
고양이 같은 소리를 내다가 살짝 은주를 한번 곁눈질해 보고,
“지금은 몹시 흥분되신 모양이니, 안정을 하시도록 하게나.”
하고 까딱까딱 걸어나간다.
“미친 애를 두고 그양 가면 어떡한단 말인가?”
병일은 허둥지둥 석호를 잡았다.
“미치기는 왜. 조금 딴 생각이 계신 게지.”
하고 석호는 눈으로 여해를 가리키고 잇새로 쌕 웃어 보이었다 은주는 독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오싹 몸을 떨었다.
병일과 석호가 웅얼거리고 있는 사이에, 여해는 서슴지 않고 성큼성큼 병상 가까이 걸어갔다.
“나는 가 봐야겠습니다. 또 오지요.”
“네에…….”
은주는 목 안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소리를 들릴 듯 말 듯 대답하고 고개를 외우 꽂았다.
여해는 휙 나와 버렸다.
은주의 수수께끼 같은 태도의 하회가 궁금은 하였지마는 불쾌한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 마치 지렁이가 움지럭거리는 수렁을 뛰쳐나온 듯이 상연하였다.
전찻길까지 나오자 전차 탈 돈 오 전까지 지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였다.
한강통에서 청진동까지는 정말 걷기에 벅찬 거리이었다.
여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음박질을 하다시피 빨리 걸었다. 다리는 허정허정 공중을 차고 나는 듯하다.
그대도록 그는 은주보담도 명화의 일이 몇 백 곱절 더 궁금하였다. 명화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일분 바삐 일초 바삐 명화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뻘뻘 땀이 흐르고 피곤한 다리가 느릿느릿 늘어질 임물이면, 명화는 갖은 포즈로 그의 눈앞에 얼렁거렸다.
그는 헐떡거리며 씨근거리며 불채쪽으로 종아리를 후려갈기는 듯이 걸었다.
그는 단숨에 명화의 집에 뛰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는 다짜고짜로 안방문을 펄쩍 열었다.
명화는 없었다. 부리는 계집애 겸, 명화의 대를 받을 동기 겸으로 있는 옥연이가 혼자 양금을 치다가 바시시 일어난다.
“안 계시니?”
“안 계셔요. 보다 모르셔요?”
옥연은 무엇에 성이 났는지 그 뾰족한 입을 더욱 뽀르틍하게 내어민다.
“어데를 가셨니?”
“누가 알아요?”
“식전에 어데를 나갔단 말이냐?”
“식전에는. 어젯밤 나가셔서 어데 들어오시기나 했어요, 뭐?”
“정거장에는 나가셨다 돌아오셨지?”
“돌아오시긴! 그대로 가물치 코야, 참 사람 속상해 죽겠어. 손님은 왜 어데 갔다가 인제 오신단 말예요? 난 무서워 죽을 뻔했는데.”
옥연은 안차고 당알진 계집애였지만, 열네 살이란 나이가 있어 휑 덩그렁하게 빈집을 혼자 지키느라고 꽤 무서웠던 터에 여해를 보고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여해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명화가 그 애인인가 하는 자를 끌고 갈데없이 제 집으로 돌아와 있는 줄로만 알았었다.
집에 안 왔다면 명화는 ! 분명 그 애인이란 자를 끌고, 제 집보담도 더 종용한 데를 찾아갔음에 틀림이 없었다. 훌쩍거리고 노닥거리고 애무로 포옹으로 흠씬 그리던 회포를 푸는 두 남녀를 상상하매, 여해는 견딜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불기둥이 떠받치고 일어서는 것 같다.
“그래 어디 있는지 권번에 전화도 안 걸어 봤단 말이냐? 망할 년 같으니.”
말씨까지 사나워졌다.
“왜, 이년 저년 해요? 전화를 안 걸어 보긴. 오늘 아침에만 해두 두 번이나 걸어 보았는데.”
“그래, 어데 있다던?”
“권번에나 알려 두셨으면 작히나 좋게. 권번에서도 모른대요. 되려 날더러 어디 좀 찾아보라겠지. 참 기가 막혀. 어디 가시면 세상없어도 권번에는 알리시는데, 어젯밤에는 권번에 안 알려서 남 잠자는데 인력거까지 와서 등쌀이야. 밤새도록 인력거꾼 소리에 몇 차례 깨었는지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옥연은 연거푸 종알거렸다.
여해는 제가 묵고 있는 아랫방으로 돌아와, 네 활개를 쭉 뻗고 누웠다. 눕고 보니 피로가 왼몸의 근육을 자근자근히 쑤시고 퍼져서 몸을 꼼짝도 못할 것 같았다.
그는 피로한 김에 잠이나 한 숨 잘까 하였다. 슬픔도 기쁨도 빠지짓빠지짓 타는 가슴도 이 망각의 세계에서는 안식을 얻으리라. 솜 같은 피로도 풀리리라 하였다.
자는 동안에 명화는 오리라. 어젯밤을 밝혔다면 오늘 낮에나 집에 아니 돌아올 리 없으리라 하였다. 그도 내 일이 궁금하리라. 집에 돌아오면 내 방에 먼저 오리라. 또 어젯밤 모양으로 자는 내 옆에 참다랗게 앉아 있을는지 모르리라 하였다.
터무니없는 달착지근한 공상에 여해는 치밀리던 불덩이가 잠깐 주저앉았다.
그는 정말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하여 보았다. 손끝 발끝이 저리도록 몸은 노곤하게 풀리며 엷은 안개 자락 같은 잠이 스르르 덮어지는 듯도 하였다.
그러나 잠은 올 듯 올 듯하면서도 좀처럼 오지는 않았다. 눈시울까지 무겁게 나려앉았다가 말고 요리 삐끗 조리 삐끗 감질만 내고는 홱 달아나고는 하였다.
여해는 이리 궁글 저리 궁글 목침을 가로 세로 모로 바로 여러 번 곤쳐 비어 보았다. 곤쳐 빌 적마다 잠은 천 리나 만리나 달아나는 듯하였다. 배포유하게 잠 올 터수가 아닌 것을!
머리는 쨍쨍하게 밝아진다.
여해는 필경 잠을 단념하고 말았다.
인제나 저제나 하여도 명화의 들어오는 기척은 나지 않았다. 칼날같이 날카로워진 신경은 가장 가느다란 음향에도 널 뛰듯 뛰었다.
눈은 감고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눈만 감으면 환영이 다시금 그를 괴롭게 하였다. 명화와 그의 애인과의 러브신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누으락 앉으락 하였다. 이유도 없고 염치도 없는 이 정열의 회호리바람에 그는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저녁 때가 되어도 명화는 오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여해는 명화의 집을 나왔다. 근처 중국 요릿집에서 전화를 빌렸다.
먼저 권번에 물어보았다. 아까 옥연이 말마따나 권번에서도 명화의 거처를 몰랐다.
생각다 못해 각 요릿집으로 물어보았다. 명월관 식도원 등 서너 군데 걸어 보는 사이에 여해에게도 자신이 없어졌다. 대답은 한결같이 안 왔다는 말뿐이었다.
조선 요릿집은 끝이 났다. 이번에는 일본 요릿집으로 대모한 데를 골라서 더러 걸어 보았다. 결과는 역시 실망이었다.
일찍이 명화에게 들은 취월이 언뜻 생각이 났다.
“옳지, 옳지. 분명히 거기를 갔을 게다.”
여해는 혼자 중얼거렸다. 애인과 단둘이 간다면 그런 후미진 요릿집을 찾았음에 틀림이 없었다.
‘왜 입때 취월을 생각지 못하였던고.’ 여해의 직각은 취월에 명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었다. 그는 전화도 구만두고 곧 취월로 뛰어가고 싶었다.
아모튼 전화를 걸어는 보았다.
“잠깐만 기다리셔요.”
일본 여자의 혀를 감아 올리는 듯한 친절한 대답이다. 여해는 몸과 맘으로 부르짖었다.
“있고나!”
사랑하는 이의 직각은 틀리지 않았다.
바루 전화통 옆에서 얘기를 하는 듯한 말낱이 동강동강 들려왔다.
“어젯밤부터 있는 그 조선 기생 말이지.”
“……전화가 오드래두 따 버리랬어…….”
여해는 전화통을 내동댕이를 치듯이 걸고 뛰어나왔다.
사랑은 준다
명화는, 상열의 숨을 집을 구하러 나간다 나간다 하면서도, 그 날 밤을 그대로 새우고 그 이튿날도 그양 보내고 밤이 또 깊었다.
어젯밤 상열의 결심과 비밀을 듣고 보니, 한시라도 이런 데 한만히 있을 경우가 아니건만, 그런 끔찍한 일이라면 이곳을 나가는 것이 도리어 위험도 하였다. 밖에 나갈 생각만 해도, 공연히 가슴이 덜컥덜컥 나려앉고 머리끝이 쭈볏쭈볏해진다. 다리가 떨리고 어깨가 천근같이 무거워진다.
더구나 마음이 아슬아슬해서 상열의 곁을 떠나랴 떠날 수가 없었다. 자기만 없고 보면 곧 상열의 신상에 무슨 변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한 번 갈리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을 상도 싶었다.
그는 상열의 말에 동의를 않으랴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가 아모리 말려도 빌어도 안 될 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10년을 쌓은 사랑의 탑은 무너졌다. 알 수 없는 커다란 힘 앞에서 너무도 하잘것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슬프고 애닯고 쓰리고 아프나마, 명화는 상열을 제 갈 길을 가게 하는 수밖에 어쩌는 수가 없는 줄 깨달았다.
상열은 제 무릎 위에 고개를 박고 우는 명화의 등을 흔들었다.
“자, 일어나요. 인제 밤도 깊었으니 좀 나가 보라구. 왜 동무들도 많을 테니 연줄 연줄로 구하면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아니냐. 그래두 기생집은 안 되거든. 꼭 염집이라야 써, 응? 내 말 알아 듣지, 응? 자, 일어나요, 응.”
상열의 목소리는 달래듯 부드러웠다.
명화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쳐들었다.
“저 나간 뒤에 무슨 일이나 생기면 어떡해요?”
“일이 무슨 일?”
“혹시 누가 찾아 오드래두 선생님 혼자만 계시면…….”
“혼자 있으면 생길 일이 둘이 있다구 안 생길 거요? 허허…….”
“그래도 제가 있으면 무슨 말을 어떻게 꾸며 대드래두…….”
“명화만큼 나도 말을 꾸며댈 줄 안다오.”
“웬걸.”
명화는 슬프게 웃었다. 그리고 상열을 가리우는 듯이 앞으로 안았다.
“암만해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요.”
귀에 뺨을 비비대며 속살거리었다.
“둘이 있다구 든든할까?…….”
“그래도…….”
“첫째 ○○을 숨겨 놓아야 될 것 아니야? 이렇게 몸에 지니고 있다가 335페이지 누락
“웬일이셔요? 남 놀라 죽을 뻔하게스리.”
“사람을 사람이 찾아오는데 놀라 죽을 게 뭔구? 그렇게 놀랄 때면 단둘이 죽을 죄를 저질른 게지. 하핫하, 하핫하.”
여해는 부자연스럽게 소리쳐 웃었다. 어데서 먹었는지 술내가 확 끼치었다.
“어째 여기 있는 줄 알고 오셨어요?”
명화는 재우쳐 물었다.
“어 어데를 간들 내가 모를 줄 아나베. 명화는 땅속으로 들어가도 찾아낼 내란 말이어. 흥 그게 사랑이란 게거든. 그게 소위 애인의 육감이란 게거든. 알았어?”
하고 삐적삐적 명화의 앞으로 대어선다.
명화는 여해의 야릇한 태도에 불안을 느끼고 대어드는 대로 물러서며 상열에게 변명하듯,
“사랑은 무슨 경칠 사랑이구, 애인의 육감이란 또 뭐예요? 그런 말씀을랑 마시구 이리 앉으셔요.”
“너의 사랑은 경을 칠지 모르지만, 내 사랑이야 왜 경을 친단 말이냐? 압다, ○○ 가진 자를 애인으로 둔 게 그리 대단하냐?”
명화는 얼른 손으로 여해의 입을 막는 시늉을 하였다.
“왜 그런 말씀을 소리소리 질러요? 글쎄.”
“왜 겁이 나니? 겁날 짓을 누가 하라더냐?”
“겁이구 뭐구 이리 앉기나 해요. 두 분이 인사나 하시구.”
명화는 여해의 손목을 끌어 앉히려 하였다.
여해는 명화의 손을 뿌리치고 상열을 노려보았다.
“그깟 놈하고 인사를 하면 뭘 하누? 몇 분이 못 가서 발고랑을 찰 놈하구.”
“애그 이게 무슨 사나운 말뽄이오? 전에는 안 그러시더니 미치셨소?”
“그래, 미쳤다 미쳤어. 너에게 미쳤다. 무슨 놈의 팔자가 사랑을 얻는 족족 딴 놈에게 뺏긴단 말이냐. 이번에는 안 돼, 안 될 말이어. 이번에는 또 뺏기지는 않을 테란 말이어!”
“여보! 노형”
상열이가 말을 건네었다.
“노형 애인을 누가 뺐는단 말요? 자, 이리 앉기나 하오. 우리 얘기를 좀 해 봅시다그려.”
“얘기를 좀 해 보자? 그래 건방지게 네가 누굴 구슬리는 수작이냐?”
하고 여해는 상열을 후려갈기기나 할 듯이 와르르 달겨들다가, 바루 상열의 코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시오?”
상열은 침착하게 물었다.
“난 김여해다. 너는?”
“나는 김상열.”
“김상열? 옳지 인제는 성명까지 알았것다.”
“성명까지 알았다니?”
“뻔한 노릇이지. 경찰에 고발을 하려면 성명을 알아야 될 것 아니냐?”
“앗!”
명화는 까무러치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 여해 씨가 우리를 고발한단 말예요?”
하고 명화는 여해를 흘겨보았다.
“암 그렇다 뿐이냐. 그어 두말 할 거 있나? 사랑의 원수를 갚는 데는 그게 제일 첩경이거든.”
“아니, 그게 본마음으로 하는 소리요?”
“그럼 본마음이구 말구. 거짓 마음이라면 고발을 할 것도 않는다 할 것 아니냐.”
“우리하고 무슨 원수로?”
“사랑이 원수지, 흥.”
“여해 씨하고 나하고 사랑이 무슨 사랑이오? 나는 그저 여해 씨의 처지에 동정을 하였을 뿐인데…….”
“명화야 나를 동정하였거나 말았거나 나는 명화를 사랑하였으면 구만 아니야 . 그것도 오늘부터란 말이야. 오늘밤부터란 말이야.”
“무슨 사랑이 그런 천도깨비 같단 말예요?”
“천도깨비 같든, 만도깨비 같든 솟아나는 불길을 너면 어떡할 테냐?”
그리고 상열을 향하여,
“그 좋은 상해에서 뭘 얻어먹자고 조선에를 들어왔느냐 말이야. 나 같으면 만 년을 있어도 돌아오지를 않을 게다. 그래, 이 요리 접시나 얻어먹으려고 돌아왔단 말이냐?”
상열은 무슨 좋은 일이나 생긴 듯이 싱글벙글 웃었다.
“자네 말이 그럴 듯도 하네마는, 고향을 오래 그리면 생각도 나는 법이니.”
“요 알뜰한 고향이 생각이 무슨 생각이란 말이냐. 바른 말로 계집이 보고 싶어 나왔다구나 해라.”
“아모렇게나 상관이 있느냐?”
“그럴 게다. 이러나 저러나 상관이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계집의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바에야. 저 따위가 무슨 일을 한답시구 돌아다니니, 참 기가 막혀. 그래 기생년을 보고 ○○을 어쩌느니, 숨을 집을 구하느니. 참 알뜰도 한 비밀인걸.”
“자네가 벌써 와서 우리 얘기를 죄다 들은 모양일세그려.”
“듣다 뿐이냐. 그렇지 않고야 고발을 할 수 있느냐.”
명화는 별안간 상열의 무릎에 쓰러졌다.
“십 년을 그리다가 만나 보니 이 꼴이 될 줄이야. 저 때문에 경륜하시는 일도 다 틀리구. 우리 그걸로 죽어나 버립시다. 잡히기 전에 죽어 버립시다. 우리 시첼랑은 여해 씨께나 맡기고……. 여해 씨야 고발을 하든지 뜯어 자시든지…….”
명화는 울기 시작하였다.
“이왕 틀린 바에야 한 자리에서나 죽어 버립시다. 네 선생님, 제 목숨을 먼저 끊어 주셔요. 참 정말이지 저는 선생님이 끌려가는 건 죽어도 보기 싫어요. 네, 선생님. 그걸 꺼내셔요. 네, 선생님. 우리 둘이 죽어 버려요. 네 선생님.”
멀거니 명화의 얘기를 듣고 있던 여해는 별안간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명화는 울다가 말고 놀라 일어나 앉았다.
“어데를 갔을까요?”
“어데를 가긴? 고발을 하러 간 게지.”
“무슨 원수로, 설마?”
“고발을 하면 대수냐. 이왕 죽을 목숨이니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지.”
“그럼 여기 이러구 잡으려 오기를 기다린단 말예요?”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요? 모두가 제 탓이에요.”
명화는 상열을 바루 보지도 못한다.
“지금 와서 네 탓 내 탓을 찾으면 무얼 할 테요? 탓을 하자면 내 몸 탓이나 할 밖에. 만일 내 몸이 웬만만 했으면 정거장에 나리는 길로 할 일을 해 버릴 것을 어디 발길이나 바루 놓여야지. 명화의 따뜻한 손에서 단 하로라도 소복을 해 보겠다는 것이 틀린 생각이거든. 그리던 정을 백 분의 일이라도 풀어 보자던 것이 잘못이야, 잘못.”
상열은 명화의 들먹거리는 등을 어루만지었다.
“그래, 그자를 그대로 내버려 둔단 말씀예요?”
“내버려 안 두면 어떡할 거요? 지금 쫓아가서 요정을 낸다면 까닭 없는 인명만 상할 뿐이지, 일은 벌써 탄로가 되고 말 것 아니오?”
“정말 고발을 할까요? 괜히 얼러보는 것 아닐까요?”
“글세, 그건 나보담도 명화가 잘 알겠지. 그자의 평소 사상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난 어떤 위인인지 초대면이니 짐작도 할 수 없지 않아?”
“제 생각 같애서는 무슨 업원으로 그런 끔찍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마는.”
“대관절 명화하고는 어떤 관계요?”
“그 말을 하자면 길어집니다. 나는 저를 구해 주고 은혜를 입혔지, 털끝만치라도 무슨 원한 먹을 노릇을 한 기억이 없답니다.”
“사랑은 하였소?”
“사랑이 무슨 사랑이에요?”
“그러면 저편의 짝사랑인가?”
“그건 몰르지만!”
“은혜를 경계하오, 짝사랑을 경계하오. 둘이 다 위험성이 있는 거요. 은혜가 원수 된단 말은 자고로 있는 말이지만, 더구나 짝사랑이란 물불을 헤아리지 않으니까…….”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기는! 기다리는 수밖에…….”
“잡으러 오기를?”
“혹은 그자가 돌쳐올는지도 모르지. 내가 걸리는 것보담 제 애인이 걸리는 게 궁금도 할 테니.”
“제가 뒤를 밟아볼걸.”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을 거요.”
“나간 지가 오랜데…….”
“만일 그자에게 정말 사랑이 있었다면 바른 길로 뛰어가지는 않았을 거요. 저도 번민이 있을 테지.”
“그럼 가 볼까요?”
“그건 마음대로 하오마는 아모튼 일은 틀렸소.”
“뒤를 쫓아갔다가 길이 외우나서 그자를 못 만나고, 저 없는 새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명화는 차마 말 뒤끝을 맺지 못한다.
“또 그 걱정이구려.”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구만 선생님을 잃어버리게 될걸.”
“설마.”
“설마가 사람 죽인답니다. 저는 일시 반시라도 선생님 곁을 떠나기 싫어요. 서로 보는 이 짤막한 동안에 그나마 또 이별을 해요. 같이 있어 보아요. 고발이야 하든 마든 같이 있다가 같이 잡혀 가요.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 바에야 어데를 간들.”
상열은 말없이 명화의 손을 꼭 쥐었다. 오냐, 아모 데도 가지 말아라, 내 곁을 떠나지 말고 있으라는 듯이.
장지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하였다.
여해는 비틀비틀 쓰러질 듯한 걸음걸이로 또다시 들어왔다.
“그걸 나를 주시오.”
여해는 털썩 주저앉으며, 거의 성난 듯이 부르짖었다.
“그게라니?”
상열은 여해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안심의 빛을 감추지 못하며, 채쳐 물었다.
“왜 시침을 따시오? ○○말이오. 그걸 쓸 사람은 노형이 아니요, 내가 가장 적임자란 말이오. 그러니 그걸 나에게 맡기시오. 그리고 노형의 사명을 나에게 일러 주시오.”
“그게 될 말인가?”
“안 될 말은 뭬요? 제 몸도 옳게 가누지 못하는 노형이 그걸 어떻게 사용한 단 말이오? 쓰다가 옳게 써 보지도 못하고 실패할 것은 뻔한 노릇 아니오?”
“아모리 내 몸이 약해졌다 하드래도 내 맡은 일을 남에게 미룰 내가 아니오.”
“노형이 나를 못 믿는구려. 그걸 증거삼아 정말 노형을 고발이나 할 줄 아시오? 아깟 말은 이 자리에서 취소하겠소. 나는 지금 당장 죽는다 하여도 이 세상에 끼일 것이 아모 것도 없는 사람이오. 부모가 있나, 형제가 있나, 애인이 있나.…….”
여해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앞날이 창창한데 그렇게 비관할 것은 없소.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가지기 바라오.”
“몸뚱아리는 튼튼할지 모르나, 건전한 정신이 들기는 벌써 틀린 지 오래요. 이 튼튼한 육체가 걱정이오. 이 불길같이 타오르는 성욕 때문에 하마하더면 꽃다운 생명까지 하나 죽일 뻔하였소.
“참, 은주 씨가 어찌 됐어요?”
명화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건져내기는 내었소. 살리기도 살리었소.”
“정말 한강에 빠졌습디까?”
“빠지다 뿐이오.”
“그래, 어떡하셨습디까?”
“그대로 물에 뛰어들었지.”
“저런, 같이 빠지면 어쩌자구.”
“같이 빠지면 대수요. 내 죽는 거야 내 벌역을 내가 받는 것이니 아까울 것이 없는 목숨이지만, 은주야 죽을 까닭이 있소? 무슨 죄가 있다구. 말하자면 은주의 죄 없는 덕에 나도 죽지 않고 살아난 셈이오.”
“은주 씨와 그런 깊은 까닭이 있었던가요?”
“깊은 까닭이 있었다 뿐이오? 내 성욕의 제단에 어여쁜 희생이었소.”
“에그머니나!”
“그래도 다시 살아난 그 눈에는 나에게 대한 감사의 빛이 역력히 움직였소. 나는 차마 그걸 볼 수가 없었소.”
“그래, 지금 은주 씨는 어데 있어요?”
“용산 ˟˟병원이오.”
“그럼 병일 씨도 거기 있겠구려.”
“있기는 거기 있습디다마는 은주가 죽어도 제 오빠의 집에는 가기 싫답디다.”
“그건 또 웬일일까?…….”
“천진난만한 마음은 거짓과 건성으로 속이지 못하는 것이오. 그는 제 오빠의 심사를 바루 알아본 모양이오. 참, 상열 씨, 이 불쌍한 처녀의 운명도 맡아 주시오. 저의 오빠의 집에 아니 간다면 은주는 갈 곳도 없소. 해외로 데리고 나가서 그 운명을 개척해 주시오. 총명한 자질을 가졌으니 잘 가르치면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오.”
“내가 어떻게 맡을 수 있나? 나는 내 할 일이 따루 있는 사람인데…….
차라리 여해 씨가 명화의 운명을 맡아 주시오. 내가 없어진 뒤는 명화도 마음의 의지를 잃을 테니 여해가 맡아 가지고 그야말로 해외로 데리고 나가든지 해서 신생의 길을 열어 주시오.”
여해는 상열의 말에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오. 내가 해외에 나간다 한들 어디가 어디인지 알 길이 있소? 내가 형만큼 지경을 닦자면 또 십 년의 세월이 걸릴 것 아니오?
그러니 차라리 형이 가 주시오. 명화 씨를 데리고 그렇게도 깨끗한 사랑, 그렇게도 열렬한 사랑이 꽃도 피기 전에 그대로 이울어진다는 건, 차마 못할 일이오. 입술에 발린 말뿐이 아니오. 참으로, 참으로 죽음으로 맹서한 사랑, 죽음을 향하여 눈을 딱 부릅뜨고 뛰어드는 사랑, 그야말로 죽음보담 몇 백 곱절 강한 사랑을 나는 내 눈 앞에서 보았소. 내 귀로 들었소. 당신네의 사랑은 이 못된 놈의 비틀어진 심장도 뒤흔들어 놓고야 말았소. 이 못된 놈의 고개도 숙여놓고야 말았소.”
마츰내 여해는 제 말에 스스로 감격된 듯이 훌쩍훌쩍 운다.
“명화 씨가 왜 병원으로 나를 찾았는지 나는 그 본 뜻을 모르오. 영애에 대한 단순한 여성의 질투였든지 또는 병일을 농락하는 한 수단이었든지 나는 모르오. 이랬거나 저랬거나 명화 씨는 나의 마음의 태양이었소. 연소하는 내 생명의 태양이었소. 나는 죽어도 이 태양을 놓치기 싫었소. 가장 비열한 수단, 가장 천착한 방법으로라도 나는 나의 최후의 광명을 움켜쥐랴 하였소. 구축축하고 더러운 심사! 오직 죽음으로 용서를 빌 뿐이오.”
여해는 명화와 상열의 앞에 두 팔을 짚고 푹 꼬꾸라지는 듯이 고개를 숙이었다.
상열은 여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형은 충정은 잘 알았소. 무쇠라도 녹일 그 열정, 잠깐 그 방향을 그르쳤을 뿐이지, 나는 그 열정을 취하오. 그 열정을 개인의 감정에만 쓰지 말기를 바랄 뿐이오…….”
“그러니 형의 사명을 나에게 맡겨 주시오. 부족하나마 내 힘껏 정성껏 다 해서 형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 테니…….”
“내 사명은 내 사명이지, 형의 사명은 아니오. 내가 왜 형을 희생시키고…….”
“또 그런 말씀을 하는구려. 입때껏 말씀을 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구려.”
여해는 화증을 버럭 내었다.
“그러면 내야말로 형의 최후의 광명을 빼앗는 게 아니오?”
상열은 목소리를 떨어뜨린다.
“아니오, 아니오. 인제는 형의 사명을 대신 맡는 것이 나의 최후의 광명이오. 이 최후의 희망을…….”
“우리 모두 같이 달아나요.”
명화는 딱해서 못 견디는 듯이 말을 넣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상열과 여해가 일시에 부르짖었다.
“일은 작정이 되었소. 긴 말은 구만둡시다. 인제 나에게 어떻게 할 것만 일러 주시오.”
상열은 입을 다물고 무엇을 이윽히 생각한다.
“참 한 마디 부탁할 것을 잊었소.”
여해는 다시 말을 꺼내었다.
“여기 불쌍한 여성 하나가 있소. 그는 아귀 같은 성욕의 제단에 불쌍한 희생이 된 처녀요. 그는 죽음으로 뛰어들다가 모든 인생의 허위를 느끼고, 지금 쓸쓸한 병원에서 울고 있소. 그는 이 세상의 오직 하나 동기인 오라비의 정도, 올케의 정도 거짓에 싸인 것인 줄 깨닫고 지난날의 제 원수에게 도리어 눈물겨운 손을 내어 미는구려. 세상에 이런 가련한 희생이 또 어데 있을 거요? 두 분이 해외에 떠나시는 날 이 불쌍한 희생도 데려가 주시오.
좋은 공부도 시키시고, 잘 지도하시어 훌륭한 일꾼을 맨들어 주시오.”
“은주 씨 말씀이구려.”
명화가 목메이는 소리를 낸다.
“맡아 주시겠소?”
상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해는 상열의 손을 굳게 굳게 쥐었다.
세 남녀는 소리 없이 감격의 눈물을 떨구었다.
인생의 적도
사월 십삼일, 봉천행 밤차 이등실에는 신랑 신부의 일행이 탔다. 신랑은 갈걍갈걍한 키에 미목이 청수하나 삼십이 넘은 노신랑, 신부는 백설 같은 너울로 부끄러운 듯이 슬쩍 얼굴을 가리어 나이를 분명히 알 길이 없으나 그 아른아른한 뺨과 앳된 입모습으로 보아 이십 안팎밖에 되지 않았을 듯.
신부 쪽으로 처형이 되는지, 신랑 쪽으로 누이가 되는지 스물 너덧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부인 하나가 후행 겸 하님 겸 따랐을 뿐이다. 흰 숙고사 겹저고리에 다듬은 모시 치마, 그리고 흰 고무신, 수수하나마 깨끗하게 차린 그 부인은 어데를 보든지 틀에 박은 구식 가정부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객지에서 쓸쓸하게 혼례식을 지냈음이리라. 전송 나온 사람 하나 없었다.
아니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 여행을 떠나는 길인지, 또는 혼례식을 치르러 가는 길인지, 그것조차 분명치 않다. 침대에도 들지 않고 신랑 신부가 곁눈질 한번 않고 시침을 따는 것을 보면 결혼 전인지도 모르리라.
이 일행은 앉은 고 자리에서 꼬박이 밤을 세우고 안동현에 대어도 나리지 않았다. 그 이튿날 밤에 잠깐 봉천에 나렸으나 그것은 천진행 기차를 바꾸어 타기 위함이었다. 천진에 나리자 신랑은 두 여자를 데리고 정거장 근처 객잔(客棧)에 들어 하롯밤을 쉬고, 그 이튿날 정거장에 나오는 길에 신랑은 일본 돈을 따양으로 바꾸고, 여자 청복 두 벌을 사고 마침 지나치는 일 자신문 천진 신문을 한 부를 사 가지고 왔다.
그들은 다시 총총히 남경행을 바꾸어 탔다.
기차가 움직이자 그들은 완전히 마음을 놓은 모양이었다. 중국 기차 이동은 휑덩그렁하게 비었다.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꾸민 신랑과 신부 놀음을 구만두고 말짱하게 청복을 갈아입었다. 신랑만은 그대로 모닝을 입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물을 것 없이 상열과 은주, 후행은 명화였다.
새 옷을 갈아입으매 두 여자의 기분은 새로워졌다.
“밤낮으로 아모리 가도 왜 이리 지리펀펀만 해요?”
명화는 멍하게 차창을 내다보다가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그게 광막한 인생의 벌판이구려.”
하고 상열은 의미 있게 웃는다.
“그래요, 이 질펀한 광야가 끝나는 곳에 새로운 희망의 나라가 있을 것 같애요.”
은주가 맞장구를 친다. 두 여자의 눈은 새 희망에 번쩍인다. 상열은 생각난 듯이 신문을 펴들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별안간,
“앗!”
외마디 소리를 쳤다.
“왜 그러셔요?”
하고 명화와 은주도 신문 위에 고개를 디밀었다.
“이걸 봐요. 여해가 죽었구려.”
“네!”
두 여자도 놀라 부르짖었다. 상열의 떨리는 손가락은 다음과 같은 간략한 기사를 가리켰다.
제목도 이단 두 줄이었다.
취조중 선인 청년 폭탄 깨물고 즉사
「경성전보」 경성 ˟˟서에서는 지난 12일 밤 조선인 청년 한 명을 검거하여 취조 중, 그 청년은 어데 감추고 있었던지 폭탄 한 개를 깨물어 굉연한 음향과 함께 현장에서 즉사하였는데, 취조 받은 피의자가 폭탄을 깨물고 자살하기는 전무후무한 사실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그 청년은 상해 방면에서 잠입한 듯한 모라고 하나 취조가 진행되기 전에 죽어 버렸으므로 공범 관계라든지, 계통 기타는 전연 알 수 없다고.
세 사람은 침통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아모 말이 없었다. 이윽고 상열은 입을 열었다.
“열정에 지글지글 타는 인물. 한 시라도 열정의 대상이 없고는 견디지 못하는 인물. 그런 종류의 사람은 태양에 비기면, 인생의 적도선이라 할까…….”
몬지가 자욱히 앉은 차창엔 지평선 속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대륙의 새빨간 태양이 숭엄한 얼굴을 비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