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그림자
명화는 영애의 일절을 좀처럼 버르집어 내지 않았다. 그러나 긴사설 잔사설의 모래 가운데 그 일절이 마치 사금과 같이 이따금 번뜩이었다. 모래가 많고 금알맹이가 드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가 그리 갖지는 않았을망정 그 대신 천만 개 모래알보담 다만 한 개라도 이 금알맹이가 얼마나 더 귀하고 중한 것이냐.
“누구더러 딴전 한다더니.”
하고 여해는 고개를 외우쳤다.
“듣기가 싫으시지. 듣기가 싫으셔!”
명화는 우벼내듯이 두 손으로 여해의 뺨을 끼어서 간신히 외우친 고개를 돌려놓았다.
“선생님 애인을 누가 어떡해요! 왜 고개는 돌려요. 그 애인은 뭐 눈덩인가 입김만 쏘여도 녹아나리나 왜.”
명화의 숨길은 새근새근한다. 그 뺨은 영롱하게도 붉다.
“끔찍이도 위하시우, 알뜰살뜰도 한저이고! 아이 무서워라.”
명화는 돌돌 말았던 혀를 끌끌 찼다. 떠들린 입술 속으로 하이얀 덧니가 배시시 내다본다.
여해는 눈으론 제 앞에 어리인 찬란한 신기루를 홀린 듯이 쳐다보며 두 손으로는 귀를 막았다.
명화의 가냘픈 손가락은 마치 오징어 발 모양으로, 여해의 손목에 달라붙었다.
“귀는 왜 막아요, 귀는 왜 막아요?”
명화는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입모습에 흘리면서 덤볐다.
“선생님, 귀가 무슨 죄예요? 듣기가 싫으신 말을 하는 내 입이 죄가 있다면 있지! 바루 내 입을 막는다면 몰라도. 선생님, 귀가 무슨 죄예요?”
하고 귀 막은 여해의 손을 떼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애를 부둥부둥 켠다.
“자, 떼어요. 아이, 떼셔요. 자, 내 입을 틀어막으세요.”
여해는 못 이기는 듯이 손을 슬며시 떼었다. 명화는 맥 놓은 여해의 손을 치켜들더니 제 입에 갖다 막으며,
“인젠 난 벙어리 됐어요.”
하고 입을 꽃봉오리처럼 오무리고 뺨에 숨을 불어 넣어 풍선처럼 볼록하게 맨들었다.
여해는 그의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명화는 킥킥하며 여해의 손가락 사이로 웃음을 돌려내었다.
“그저 막고 계시네, 이래도 안 뗄 테야요?”
명화는 제가 여해의 손목을 잔뜩 움켜잡아 제 입에 대놓고 여해의 탓만 하였다. 여해는 그 말이 괘씸하다는 듯이 손바닥에 힘을 주어 정말 틀어막았다.
“아이, 남 숨 막혀 죽겠네. 어서 좀 떼어 주어요. 어서 좀 떼요.”
여해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명화의 입을 검쳐 막았다. 명화는 인제 말을 이루지 못하고 웅얼웅얼 하며 눈을 부릅떠 보인다.
명화의 노니는 꼴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던 여해의 눈은 갑자기 변하였다.
홱 명화의 손을 뿌리치고 제 손을 움추리고 헛것을 본 사람 모양으로 변한 그 눈은 흰자위가 많아졌다. 그는 별안간 떤다. 덜덜 왼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떤다.
힘 드는 작난에 지친 듯이 가쁜 숨을 호호 내쉬며 생글생글 웃고 있던 명화는 놀래었다. 돌변한 환자의 용태에 그의 눈은 호동그래졌다.
“왜 이러셔요, 왜 이러셔요?”
환자는 아모 대꾸도 않고 더욱 격렬하게 떤다.
“갑자기 한기가 드셔요, 네? 이불을 더 덮어 드려요?”
환자는 턱까지 까불며 떨었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명화는 쩔쩔매었다.
여해는 얼마쯤 떨다가 이내 지식(止息)이 되었으나 그 이마에는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히었다 명화는 . 손수건을 꺼내어 땀방울을 자근자근이 누르며 닦아내었다.
“왜 그러셨어요. 네?”
아직도 놀람이 가라앉지 않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명화는 물었다. 여해는 가위눌린 사람 모양으로 눈만 멀뚱멀뚱하며 아모 대답이 없다.
“병이 더치시나. 웬일일까?”
명화는 진정으로 걱정을 하였다.
열 재일 시간이 되었다. 문을 가볍게 뚜드리고 간호부가 들어왔다. 명화는 간호부를 보고 구세주나 나타난 듯이 반색을 하며,
“이 어른이 금방 한기가 몹시 나셨어요. 웬일일까요?”
당황히 물었다.
동글납작한 흰 얼굴에 코끼리같이 왕청되게 굵은 종아리를 띠룩띠룩하는 그 간호부는 명화의 말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조심성도 없이 이불자락을 휙 제치고 훔칫훔칫 환자의 겨드랑 밑을 찾아서 체온기를 꽂아둔다.
“금방 몹시 떠셨어요. 병환이 더치신 게 아녜요?”
명화는 그 간호부의 태도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울 듯이 또 한 번 물었다.
간호부는 이마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어 올리고 환자의 팔목을 꺼내어 맥을 짚어보더니,
“글쎄요, 맥박도 도수가 좀 잦으신 듯합니다마는 큰 염려는 없어요.”
하고 심드렁하게 잡았던 환자의 팔목을 놓고 곧 발길을 돌리려 하였다. 환자의 가족이나 위문객이 있는 병실치고 자기를 보면 병이 더치었다고 호소를 않는 방이 몇이나 되는가. 그는 눈물과 한숨과 걱정을 보기에 지쳤다.
제 할 일만 하고 나면 빨리빨리 달아나려 한다.
명화는 간호부에게 매달리다시피,
“몹시 떠셨는데 괜찮을까요?”
하고 또 채치었다.
간호부는 귀찮은 듯이,
“글쎄요, 뭐 대단찮아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지다가 명화의 너무 근심스러운 빛을 대접하듯 다시 한번 환자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아모튼지 체온기를 꽂아두었으니 나종에 봐야 알아요.”
하고 몸을 돌리려다가 여해가 덮고 있는 이불을 슬쩍 치켜 들어보았다. 이것은 병원에서 주는, 담요에 흰 양달령 호청만 뒤집어씌운 명색만 이불이었다. 무겁기는 천근 같고 널조각 같이 뻣뻣하게 버성기어 몸과는 따로 돌고, 도모지 덥지를 않은 것이었다.
“이불을 이것 하나만 덮으셔요? 그러니 한기가 드시지. 두터운 이불을 좀 갖다가 덮지 못하시나요?”
명화의 몸치장을 훑어보듯 보고 비양스럽게 이런 말을 남기고 간호부가 나가 버렸다.
“괜히 건성으로 간병을 한답시고 방정만 떨지 말고 정신을 좀 차려!”
그 말속은 이렇게 명화를 꾸짖는 듯하였다.
“참! 그렇구먼!”
명화도 이불을 쳐들어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멀쩡한 겹이불일세.”
삼월이랍시고 스팀까지 떼어 놓으니 이른 봄의 병실은 겨울보담 더 음산하고 치웠다.
명화는 불현듯 집으로 돌아가서 이불을 가져올까 하였으나 꽂아둔 체온기가 몇 도나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는 조바심을 하며 간호부가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간호부는 세상 들어오지 않았다.
환자의 눈은 무슨 무서운 것을 보는 것처럼, 검은 창은 한데로 쏠리고 흰 창만 희번득희번득 돌았다.
간호부가 대단치 않다는 말에 적이 안심은 되었으되, 명화는 여해의 눈자위가 암만해도 심상치를 않았다.
명화는 여해의 병이 털썩 덧들면 이 꾸준한 방문의 목적이 어느 때 성공을 할지 모르는 것이 걱정은 걱정이었다. 밤새도록 놀음에 시달리고 아침녘은 실실이 피로한 몸에 구정물같이 걸쭉한 잠이 들락 깰락 하며 보내고, 한가한 시간이라야 오정 때쯤 조반을 먹고 나서 저녁 단장 전 오후 두어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하로동안 ─ 아니 하롯밤 하로 낮 동안에 자기를 위해 남는 오직 이 두어 시간 동안을, 이 귀중한 시간을, 이 아까운 시간을 그는 온전히 여해에게 바치었다. 친한 동무도 못 찾아보고 진고개로 물건 사러도 못 가고 퀴퀴한 약 냄새도 떠도는 병원에서 내버렸다. 이것만 해도 여간 낭비가 아니요, 여간 정성이 아니다.
그는 한없이 늦장을 부리면서도 속마음이 죄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병이 덜썩 덧들이면! 그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느냐! 그러나 하로 이틀 여해와 접촉을 하는 사이에 그는 가끔 제 목적을 잊어 버린다. 그는 까닭 없이 이 기괴한 운명에 번롱되는 환자에게 끄을리었다.
처음엔 호기심이 반 이상이나 거들었다. 차차 호기심보담 동정심이 앞을 섰다. 인제는 그 흉물스럽게도 진하고 검던 눈썹이 사내다워 보이고, 두 볼의 살이 빠져서 미어기 주둥아리처럼 넙적한 그 입이 애교가 있어 보이고, 굴속을 거쳐 나오는 듯한 그 웅얼웅얼하는 쉰 목소리에도 정이 붙었다. 그 외에는 자세히 뜯어보면, 그 툭 티인 이마라든지 우뚝한 콧마루라든지 얼굴 판국은 호남자 부러웁지 않게 생기지 않았느냐.
그렇다고 지레짐작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결코 여해와 소위 연애를 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그는 가슴속 깊이 감추어 둔 애인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는 여해가 떠는 것을 보고 참으로 놀래었다. 병이 더치지 않았나 하고 여자답게 가슴을 졸이었다. 여해를 위해 진정으로 근심하였던 것이었다.
간호부는 들어왔다. 체온기를 빼 보더니 찰랑찰랑 흔들어 제 갑에 도로 집어 넣고 다시 맥을 짚고 팔뚝 시계를 보아 맥박의 도수를 적은 다음에 아까 명화에게 한 체온기 본 뒤에 결과를 알으켜 주겠다 하던 약속은 잊어 버린 듯이 그대로 홱 나가려 하였다.
“괜찮겠어요? 몇 도에요?”
명화는 붙드는 듯이 물었다.
“삼십 칠 도 이 분! 조금 있을까 말까 한 열예요.”
하고 ─ 무어 그 열쯤을 가지고 그렇게 수선을 떠느냐 ─ 하는 듯이 턱을 한번 씻뚝하고 간호부는 무거운 다리를 재바르게 놀리며 나갔다. 체머리 흔들리는 듯하는 그 벌어진 엉덩이를 바라보며 명화도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씻뚝하였다.
명화는 근심스러운 얼굴을 또 여해의 얼굴 위에 갸웃이 디밀었다.
“괜찮으셔요?”
여해는 정신을 차리려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고 몇 번 눈을 감았다 떴다 하였다. 눈자위에는 아까보담은 생기가 나는 듯하였다.
“괜찮으셔요?”
명화는 일어섰던 몸을 도로 의자에 주저앉히어 여해의 머리를 짚으며 채쳐 물었다.
여해는 여전히 눈만 떴다 감았다 하였다. 그의 눈엔 아직도 명화가 보이지 않고 다른 무슨 헛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제게로 덤벼드는 헛것을 쫓으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한기는 가라앉은 듯하였으나 큰 지진이 지나간 뒤의 남은 진동 모양으로 간간이 그는 몸을 떨었다. 마치 간기(癎氣) 든 어린애처럼 이따금씩 깜짝깜짝 놀래기도 하였다.
여해는 왜 떨었는가 몸이 ? 극도로 쇠약해진 탓도 탓이리라. 음산한 병실이 치운 탓도 탓이리라. 그러나 이보담도 그의 눈이 헛것을 본 탓이다. 언제든지 뻥긋하면 그를 괴롭게 하는 무서운 환영을 본 까닭이다. 그가 외로울 때 호젓할 때 피로한 눈을 감을 때 더구나 밤 저녁으로 덤벼들던 이 환영의 때는 인제 백주 한낮 뜬 눈에도 보이게 되었다. 모든 고통을 잊는 가장 즐거운 시간, 장마 날처럼 우중충하고 흐리터분한 가운데 가장 명랑한 시간, 무덤 속같이 덤덤하고 괴괴한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간 ─ 명화와 수작하는 시간에도 환영은 그 무서운 얼굴을 나타내었다.
햇발같이 번쩍이는 명화의 얼굴 앞에는 그 추근추근한 환영들도 안개 녹듯 걷히었었다, 봄눈 슬듯 사라졌었다.
그 종달새 모양으로 재깔거리는 말씨는 잡것을 물리치는 진언과 같았었다.
그 만화경 모양으로 변화스러운 표정은 요귀를 몰아내는 부적과 같았었다.
그러하였거늘! 이 명화의 얼굴 자체가 환영으로 변하고 말았다. 명화의 얼굴 속에서 은주의 얼굴이 뛰어나오고 말았다.
여해는 명화의 하자는 대로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었다. 작난이 지나쳐 손에 힘까지 주고 틀어막았었다. 명화는 숨도 옳게 못 쉬고 손아귀 밑에서 웅얼웅얼하며 눈을 부릅떠 보이던 그 순간! 여해의 멀거니 뜬 눈에는 명화의 얼굴이 별안간 은주의 얼굴로 변하고 만 것이다. 부릅뜬 그 눈은 여상스럽게 질겁을 한 그때의 그 눈이다. 진저리 나는 그 눈이다. 새근새근하는 숨길, 터질 듯한 가슴에서 찢어나오는, 피비린내가 나는 듯한 그 불덩이 같은 숨길! 격류(激流)를 지질러 놓은 커단 바위 같은 제 손등을 뚫고 솟아 나오는 그 소리 없는 부르짖음! 더구나 입을 막은 손은 그 때의 그 손이 아니냐!
번개가 번쩍할 순간처럼, 그 무서운 광경이 무섭게 역력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결코 환영이 아니다. 흐릿한 환영이 아니었다. 분명한 현실이었다. 현실보담도 더 또렷한 현실이었다.
그 순간 그 무서운 광경이 번개처럼 번쩍할 그 순간! 여해의 넋엔 벼락이 떨어졌다. 무서운 경련이 왼몸을 뒤흔들며 지나간 것이다. 칩고 매운 칼날 같은 겨울날, 바람맞이에 발가벗고 선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오그라붙고 떨린 것이다.
이전이라도, 그가 환영에 쪼달리기는 하였다. 그러나 열이 높고 머리가 몽롱할 무렵에는 흐릿하게 나타나는 그 환영이 단조롭고 막막한 그에게 도리어 심심치 않았었다. 도화색 꿈을 꾸었었다. 정신이 차차 돌아나면서부터 아름답던 그 환영이 지긋지긋해지기는 하였지마는 수술한 자리의 육체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두려운 정신의 번민을 얼마쯤 완화할 수 있었었다.
상처는 하로하로 아물리어 간다. 본마음은 제 자리를 찾아 들어선다. 환영은 더욱 선명해졌다. 날이 갈수록 환영의 면사포는 한 겹 두 겹 벗겨졌다.
생생한 현실성을 띠고 대질른다. 찌르면 붉은 피가 콸콸 쏟아질 듯하다. 성욕의 제단에 흘린 처녀의 피가 그의 심장을 향해 소용돌이를 치는 듯하다.
인제 와서는 자나깨나 그 무서운 가책의 불채쪽에 아야! 소리를 치고 몸을 틀며 마음을 쥐어뜯었다.
적적한 밤, 고요한 병실, 그는 제 심장의 뛰는 소리를 들을 때 새하얀 벽 위에서 지척거리며 버르적거리며 몸부림치는 제 넋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날 밤 달 그림자를 밟으며 달아나던 제 검은 그림자를 보듯이…….
명화를 만나는 순간에만, 이 고통을 잊었었다. 무서운 가책의 불채쪽을 피하는 피난소는 오직 이 명화이었다. 그런데 이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은 피난소에도 환영의 떼는 쫓아오고야 만 것이다.
여해가 훨씬 진정이 된 뒤에야 명화는 그 눈 속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왜 그러셨어요? 괜히 내가 그런 말을 끄집어내어서…….”
몹시 후회하는 빛을 보이었다. 그는 여해가 별안간 한기가 든 것이 영애의 말을 끄집어낸 탓이어니 한다. 애인이란 말이 날 때에 환자의 눈꼴은 벌써 틀리었던 것 같았다. 귀까지 막는 것을 고만둘 것을! 너무 실없어서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실상 그는 귀 막은 손을 떼었을 뿐이 아닌가? 그 손을 갖다가 제 입에 가리웠을 뿐이 아닌가? 입을 가리웠다는 하찮은 작난이 환자의 신상에 하상 대사를 일으킬 줄이야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명화는 귀를 막고 입을 가리운 다음에도 여해를 괴롭게 구는 짓궂은 장난을 많이많이 한 듯이 생각되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노끈이 실이 되도록 되풀이한 듯이 생각되었다. 이것은 분명 명화의 착각이었다. 속으로 생각한 것을 행동에나 말에 미처 나타내지도 않고 나타내었거니 하는 데서 일어나는 착각이었다. 그만큼 그는 여해의 한기 든 것이 애처로웠다. 애가 쓰이었다.
그는 여해가 불쌍한 생각이 더럭 났다. 알뜰히 사랑하는 애인을 여의고 아까운 청춘을 철창에서 썩히고, 그 빌미로 중병까지 들어 병상에 신음하는 몸이 되었건만, 그래도 그 애인을 못 잊는 그 정상! 자기를 헌신짝같이 내 어버리고 남의 사람이 된 그 애인을 그저 그리워하며 그의 흉이라면 치를 떠는 그 정상! 그 말만 이렁성거려도 병이 더치는 그 정상!
‘정이란 더러운 것이다!’ 명화는 속으로 한탄하였다 . 핼쓱하게 싄, 그 뼈다귀만 남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명화는 눈물을 떨굴 뻔하였다.
“괜히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명화는 여해가 들으라 하는 것처럼 제 자신을 꾸짖는 듯이, 또 한 번 뇌이었다.
“무슨 말?”
여해는 겨우 바루 박인 눈을 내둘리는 듯하며 채쳐 물었다.
명화는 아뿔싸! 싶었다. 아직도 영애에게 관련되는 말이 아닌가? 간신히 환자에게 또 아까 말을 이렁성거렸다가는 또 얼마나 그에게 고통을 줄 것인가?
“아녜요, 내 혼자 한 말예요. 인제 아주 괜찮으셔요?”
환자는 뻐언히 위문객을 쳐다보다가, 싱겁다는 듯이 눈길을 돌려 천정을 본다. 그 눈은 아까 모양으로 또 홉떠지려 하였다.
명화는 황급하였다. 그는 여해의 눈두덩을 나리 쓰다듬었다. 임종하는 사람의 눈을 감기듯이 그리고 두 손 새로 얼굴을 끼어서 흔들었다.
“뭘 또 봐요? 나를 봐요.”
명화는 울 듯이 부르짖었다.
여해는 선잠을 깨는 사람 모양으로 눈을 섬벅섬벅한다.
“왜 걸핏하면 허공을 노려요? 옆에다가 사람을 두고.”
명화는 짐짓 짜증을 내며, 큰 소리로 외었다. 그리고 뺨에 대었던 손을 떼어 어깨를 잡아 제법 힘을 들여 뒤흔들었다.
“정신을 차리셔요, 좀. 정신을 차려요, 글쎄!”
“왜?”
하고 환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간호하는 이의 뜻을 안다는 웃음이었다. 자기를 위해 진국으로 걱정해 주는 간호하는 이의 맘을 누그리려고 억지로 지은 웃음이었다.
“왜라니요? 천장에 떡이 붙었나 밥이 붙었나 뭐, 왜 천장만 쳐다봐요? 나를 똑바로 좀 보시고, 자 자, 이러고 나만 좀 보고 계셔요. 제발…….”
명화는 여해의 고개를 제 앞으로 들어놓고 깔깔 웃었다.
환자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간호하는 이의 손을 움키는 듯이 잡아당기어 제 가슴 위에 올려 놓고 으스러지라고 쥐었다. 그 감은 눈시울이 실룩실룩 떠는 것은, 그 속에서 눈물이 서물거리는 탓이리라.
지난 일
명화는 부리는 계집애에게 이불을 해 들리고 그 날은 저녁에도 왔다.
“오늘은 특근예요.”
문을 열기가 바쁘게 명화는 외치었다. 그 목소리는 곡경에 든 동무에게 너를 구해낼 내가 여기 왔으니 염려 말라고 선통을 해줄 때 부르짖는 듯한 소리였다. 그 말 속에는 내 없는 동안에 어찌나 되었나 조바심을 하고 종종걸음을 쳐서 목적지에 득달한 사람과 같이 한숨을 내어 쉬는 듯한 안심과 기쁨도 흘렀다.
육중한 담요이불은 벗겨내었다. 옥양목 호청을 새로 시친 모본단 솜이불은 가지고 온 주인의 마음과 같이 가볍고 부드럽고 따스하였다.
여해는 가슴에 지질렸던 바위덩이가 치워진 듯이 시원하였다. 시포와 같이 흉물스럽게 희고 시즙과 같이 약 방울로 얼룩이 진 병원 이불! 그것은 환자의 기분을 구름장과 같이 흐리게 하였던 것이었다. 모란꽃 송이가 둥실둥실 떠도는 듯한 불빛 같은 새 이불은 봄볕을 담쑥 안은 백화난만한 꽃동산을 고대로 떼어온 듯이 번화하고 명랑하고 향기로웠다.
여해는 훌훌 날 듯이 몸이 가뜬해지며 침울하던 마음은 가벼워졌다.
“인제 좀 따스하셔요?”
명화는 이불을 따둑따둑하며 물었다.
여해는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참, 그 고개짓만 제발 하지 마셔요. 남 갑갑하게. 왜 시원스럽게 말씀을 못해요?”
“따스합니다. 대단히 따스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여해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누가 그런 치하 듣쟤요?”
하고 명화는 골이 난 것처럼 이불을 따둑거리다가 말고 침대 앞에 와서 앉는다.
“이 이불이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가, 몸이 날 것 같은데!”
여해는 벙글벙글한다.
“듣기 싫어요, 듣기 싫대도 그러시네.”
명화는 두 귀를 손가락으로 꼭 틀어막고 고개를 짤레짤레 흔들어 보인다.
그 얼굴은 웃음에 흔들린다. 그는 환자가 농지거리를 하게 된 것을 기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하였다. 기태나 깔깔거리며 침대에 상반신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이 좋은 이불을 한 자락 덮어 드릴까? 정말 혼자 덮기는 아까운데.”
“아이 선생님도, 아이, 선생님도. 아이, 선생님도 음충스러워라!”
명화는 낄낄거리며, 머리를 쳐들었다.
“선생님? 내가 내가 무슨 선생이오? 선생님, 선생님 하게.”
여해는 티를 뜯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주 영감이라고 떠받쳐 드릴까?”
명화는 또 자지러지게 웃었다.
“천만에! 영감은 더구나 가장 부당.”
“그럼 뭐라고 말해요? 시쳇말짝으로 ‘김 상’ 할 수도 없고, ‘여해 씨’ 하자니 애숭이 여학생의 애인 부르는 것 같고, ‘선생님’이 그저 수수하잖아요?”
“내게 선생님이란 얼토당토않은 말.”
“그예 영감이라고 불러 달라시는 말씀이구먼. 요마적엔 모두들 선생님예요. 손님이면 다 선생님이랍니다. 장사치도 선생님이고, 노름꾼도 선생님이 고, 부랑자도 선생님이고! 선생 아닌 건 기생뿐예요. 그것도 무슨 시변이야. 인제 영감이란 말은 어째 케케 낡아빠진 듯해요.”
“그 흔한 선생님 중에 나도 한몫 끼라는 말이나, 나는 그런 자격이 없소.”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린담?”
“내게는 제일 좋은 이름이 붙어 있지요, 알으켜 드릴까?”
“뭐예요? 뭐예요?”
명화는 채쳐 물었다.
“전과자!”
“아이, 흉해라.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오늘은 놀음에 안 가오?”
여해는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는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눈을 커다랗게 떠서 명화를 보았다. 그는 명화에게 여러 번 들어서, 기생 속을 대강은 짐작한다. 놀음이란 그들의 생명인 줄 안다. 놀음채도 놀음채려니와, 기생의 치수가 나가고 못 나가는 것도 이 놀음이 잦고 뜬 데 달린 것까지 안다. 놀음에 안 나간다는 것이 여간 큰마음이 아닌 줄 잘 안다.
과연, 놀음에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여해의 생각 이상으로 더 중대한지 모르리라. 무엇보담도 그것은 그들의 분홍빛 생활에 꿈결 같은 행운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고래등같은 개와집과 기름 흐르는 논과 밭과 혼란한 옷감과, 번쩍이는 패물들! 그들의 원하는 모든 것이 놀음 가는 인력거 채 앞에서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며 둥실둥실 떠도는 것이었다. 손님 한 번만 잘 만나면 쉽사리 일생을 꽃으로 꾸밀 수 있지 않으냐. 한 번 놀음에 안 간다는 것은 이 안타까운 희망을 한 번 단념하는 것이다. 이 아까운 한 차례의 행운을 내버리는 것이다.
명화는 여해의 묻는 말에 고개만 짤레짤레 흔들어 보이었다.
“왜 오늘은 안 가오?”
여해는 채쳐 물었다.
명화는 간단하게,
“안 가요.”
“왜?”
“온 다심도 하시네. 왜는, 그저 안 가지.”
“그저 안 가다니?”
“안 가면 어때요 뭐!”
“왜 안 간단 말이오? 이불 가져온다고 못 갔구려. 괜히 나 때문에.”
“왜, 선생님 때문에…….”
“내 때문이 아니고 뭐요? 정말 미안…….”
“에이 쓸데없는 말씀 작작해요. 내가 가기 싫으니 안 갔지, 왜 선생님 탓예요?”
“그러면 내 탓이 아니고…….”
“하로쯤 안 가면 어때요? 뭐.”
“왜 하로라도 안 간단 말이오?”
“하로 안 가면 굶어죽을 줄 아세요, 걱정도 팔자시지.”
명화는 떠다 박지르는 듯이 여해의 말을 막아 버렸다. 여해는 휘 한숨을 내어쉬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왜 눈을 감으세요, 왜 또 눈을 감으세요?”
명화는 질색을 하며 환자의 머리를 짚고 가볍게 흔들었다. 아까 한기로 더 홀쭉해진 듯한 얼굴과 관자놀이에 뛰는 맥을 근심하면서, 여해는 다시 눈을 떠서 물끄러미 명화를 바라보았다. 명화는 그 사나운 듯하던 눈길이 어쩌면 저렇게 부드러운가, 하고 내심으로 놀래었다. 그 눈길은 한없이 부드러운 가운데 뜨거운 김이 서리는 듯하였다. 명화는 애욕에 불타는 눈동자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이런 눈길은 처음 보았다. 그것은 홑으로 사랑에 타오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감사의 뜻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슬픔에만 젖은 것도 아니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그 눈길!
그것도 마치 녹아 나리는 쇠끝과 같이 제 마음을 지지며 스며드는 듯하였다.
여해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 한 방울이 구을러 떨어졌다.
명화는 재바르게 손수건을 꺼내어 여해의 눈물을 씻어 주었다.
“상심 마셔요, 네?”
명화는 우는 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위로하였다.
웬일인지 제 목도 메이는 것을 느끼었다.
여해는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와 하고 눈시울로 몰려드는 듯하였다.
“왜 이러셔요? 우지 마셔요. 같잖은 세상에 이루 상심을 하면 무엇해요?”
명화는 제 인생관을 한마디 일러 듣기었다. 그는 여해가 이렇게 우리라고는 정말 생각지 못하였다. 그 사나운 눈썹과 쭉 다문 입에서 이렇게 단순하고 천진스러운 울음이 나올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좔좔 순탄하게 흐르는 눈물과 삐쭉거리는 입은 여불없이 어린애와 같았다.
“그러지 말래도 그러시네. 상심을 하면 몸에 해로우세요. 글쎄. 사내 대장부가 울 일이 무에요? 나도 설운 일이 하도 많지만, 이렇게 안 울고 견딘답니다.”
명화는 이 다 큰 아기를 달래었다. 여해는 더욱 느낀다.
“선생님도, 선생님도 딱도 하시네. 몸에 해로우실 텐데, 제발 고만 끈 치셔요. 네, 선생님.”
명화는 여해의 목을 껴안는 듯이 하고 흔들었다. 솟아오르는 눈물을 가라앉히려는 것처럼.
여해는 꿀꺽꿀꺽 울음을 멈추려고 애를 쓴다.
“세상에, 세상에.”
하고 여해는 울음을 들여 마신다.
“지극히 사랑하던 사람은 남이 되어버리고, 생면부지한 이에게 이런 지극한 간호를 받을 줄이야 뉘 알았겠소?”
“지극히 사랑하는 이와 짝이 될 말로야, 세상에 슬픈 일이 왜 있겠어요? 흥.”
명화도 우는 이의 얼굴을 휩쌌던 팔을 슬며시 풀며, 수건으로 제 눈을 꼭꼭 찍었다. 여린 그의 눈은 눈물이 고인 지 벌써 오래였다. 그는 젖은 눈을 섬벅섬벅하며 멍하니 유리창을 내다본다. 그도 사랑하는 이가 짝이 못 되고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설워함인가. 이윽고 명화는 말그스럼해진 콧잔등을 찡긋찡긋하며 물었다.
“지극히 사랑하시던 이가 누구예요?”
“누구는, 홍영애지.”
“입원하신 후 한 번도 안 왔어요?”
“올 리가 있소?”
“어쩌면! 매정도스럽군. 참, 첫날밤에 칼부림을 하셨다니 어찌 오기를 바라요?”
“흥, 첫날밤의 칼부림! 그것도 제 얼굴을 보기 때문에 쑥스럽기만 되었소.”
“그의 얼굴을 보실 테면, 무슨 짝에 첫날밤에 칼을 들고 가셨어요?”
여해는 상반신을 벌떡 일으킨다. 피가 벌컥 거꾸로 흐르는 듯이, 눈물 젖은 얼굴에 확 불이 이는 것 같았다.
“그러기에 말이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도 없는 일이오. 차라리 그 때 한칼로 박병일을 죽여 버리고, 그 칼로 나도 죽어 버렸다면 좋을 것을!”
“그분들은 어데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 안 있자도 별수도 없었소. 내 왼손에 박병일의 멱살은 잡히었소.
그자는 사내답지도 않게 멱살을 잡힌 채 벌벌 떨고만 있었소. 내 오른손에 번쩍 칼을 들었으니, 그 목숨은 내 손 한 번 움직이는 데 달렸소…….”
명화는 전번 명월관에서 병일에게 들은 것과는 사실이 엄청나게 틀리는데 놀래었다. 같은 사실도 두 입을 거쳐 나오면, 이렇게 정반대로 변해 버리는가. 두 말 중에 어느 것을 믿어야 옳을까? 한다하는 신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전과자의 말을 믿을 것인가?
“그래, 어떡하셨어요?”
명화는 침을 삼키며 채쳤다. 여해의 흥분된 목소리는 떨리었다.
“막 칼을 나리치려 할 때요. 그야말로 위기일발이었소. 그 순간에 나는, 나는 아니 볼 것을 보았소…….”
명화는 손에 땀을 쥐었다. 공든 탑은 과연 무너지지 않는다. 그의 공들인 보람은 필경 나타나고야 만 것이다. 이야기는 그가 알아내려고 애쓰던 비밀의 구렁텅이로 깊이 구을러 들어갔다.
“그 순간에 나는 신부를 보았소.”
여해는 말끝을 이었다.
“눈빛 같은 흰 너울을 두른 신부를 보았소. 눈 속에 피어난 한 송이 장미화 같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신부를 보았소. 전날 내 사랑을 보았단 말이오.
생기를 잃고 새파랗게 질린 그 얼굴, 꾸짖는 듯한 원망하는 듯한 그 눈을 보았소. 그 눈을 보는 순간 내가 방금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려 하는구나, 세상에도 악착한 일을 범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소.
내 가슴은 곧 터질 것 같았소. 칼 든 내 손은 부들부들 떨리었소. 손아귀 힘이 탁 풀리었소 . 칼은 쟁그렁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말았소.”
여해는 숨길을 돌린다.
“무척 반했구만, 그야말로 외기러기 짝사랑, 흥.”
명화는 코웃음을 쳤다.
“아니오, 아니오. 그렇게 말할 게 아니오.”
명화의 말을 막는 여해의 목소리는 엄숙하다.
“칼을 떨어뜨리는 그 순간, 내 마음은 무에라 형용할 수가 없었소. 내 생명보담 더한 무엇을 잃어버린 듯도 하였소. 그 대신 세상에도 거룩한 것, 세상에도 깨끗한 무엇을 얻은 듯도 하였소. 한옆으로 섭섭하고 안타깝고 슬프기는 하였지만, 한옆으로는 아츰 결에 해 떠오르는 것을 볼 때처럼 속이 환해지는 듯하였소.”
“그래, 곧 달아나셨습니까?”
“달아나기는 왜요? 그 때가 새벽 두 시나 가차이 되었으니, 호텔 안도 괴괴하거니와, 한길에 사람의 발자최도 드물었소. 나를 본 사람은 아모도 없었소. 나는 미친 사람 모양으로 비틀걸음을 쳤소. 아모 의미 없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소. 한동안 길거리를 헤매다가, 날이 밝은 연에야 내 하숙으로 돌아왔소.”
“어쩌면 피신도 않으시고.”
“그때 내 나이 갓 스물이었소. 무엇을 아오? 정말 천둥 벌거숭이였소. 내한 짓이 죄가 되리라고는 몰랐구려. 법에는 걸리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구려. 도리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해내었다. ─ 속마음으로 기뻐하였소.
용서 못할 것을 용서한 내 자신이 돋보이고 비장하였소. 마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이 내 자신이 비참하면서 거룩하게 보이었소. 「장한몽」에 나오는 이수일이보담 내가 더 높은 사람 같고, 더구나 베르테르의 번민보담 내 번민이 더 큰 것 같았소. 칼을 가지고 간 것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소.
그자를 혼떨음을 낸 것이 유쾌해서 그 떨던 꼴을 생각하고 이따금 혼자 웃었소.”
“그럼 그 날로 잡히신 건 아니구먼.”
“그런데 그 이튿날 신문을 보고 나는 놀래었소. 그 어마어마하게 큰 활자를 보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소. 그게 하상 대사라고 이렇게 떠들어놓았을까. 나는 그 전까지 신문에 오르는 사람이면 놀라운 인물이고, 거기 나는 기사는 정말 굉장한 사실인 줄만 알았소. 내 한 일이 이렇게 날 줄은 참으로 뜻밖이었소. 게다가 그게 모두 거짓말이구려. 칼을 슬쩍 병일에게 대다가 말았는데, 입원을 했느니 선혈이 임리했느니, 나는 하숙에 가만히 있어도 잡으러 오지도 않는데 무슨 경찰에서 대활동을 하느니,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놓았구려. 나는 처음엔 코웃음을 치고 그 신문을 동댕이를 쳤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키어서 내버린 신문을 주워다가 다시 보고 또 보고 하는 동안에 번연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어쩐지 그 신문이 믿어지는구려. 내가 한 노릇이건만, 그 기사가 정작 참말 같아지는구려. 병일이가 과연 중상을 당해서 죽지나 않았나 염려스럽고 영애가 좀 슬퍼하랴 하는 생각이 드는구려. 나는 한걸음에 병일이를 뛰어가 보고 싶었소. 나는 정말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소. 그러나 웬일인지 마음에 선뜩해서 가 보지는 못하였소. 꼼짝을 않고 하숙에 틀어박혀 있었소.”
“그럼 순사 오기를 기다린 폭이구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내 하숙에는 순사의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소. 신문만 갈수록 흥캄을 떠는구려. 무슨 혐의자가 셋이 잡혔네, 넷이 잡혔네, 나종에는 진범인이 잡혔다고까지 났구려. 나는 날마다 신문을 보고 마음을 죄었소. 나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이 고생들을 하는구나 하매 안절부절을 못 하였소. 그래, 견디다 못해 내 발로 경찰서에 걸어갔소. 기가 막혀…….”
하고 여해는 지난날의 제 행동을 어이없다는 듯이 쓸쓸하게 웃었다.
“저런! 그러면 경찰에 자현을 하셨구려, 그것은 왜……?”
명화는 눈썹을 모으며 딱해 한다.
“아까도 말했거니와 그 때 내 나이 갓스물이었소. 제 발 뺄 생각은 꿈에도 없었구려. 그 날 밤에 조선호텔에 들어간 사람은 내로라 하면 경찰이 벌컥 뒤집힐 극적 광경을 생각하고, 까닭 없이 흥분하였소. 제가 지은 죄도 없는데 죄 많은 무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도 있는데, 내 지은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고 안연히 있으랴! 이런 빙충맞은 생각이 들었소. 하롯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나는 아츰 일찌감치 경찰서엘 갔소.”
“에그머니나! 뒷생각은 조금도 않으셨구료.”
“앞뒤 생각이 있을 리 있소? 더구나 우스운 것은 내 한 일이 그리 큰 죄가 될 줄 모른 것이오. 경찰에 가서 쫙 말만 하면 애꿎은 잡힌 사람들도 다 나오려니와 나도 무사할 줄 어렴풋이 짐작을 했구려.”
“무슨 말을 어떻게 하시려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우습지요. 어떻게, 어떻게 말을 할 것은 생각지 않고 덮어놓고 그저 조선호텔에 들어가서 박병일을 찔르려다가 만 경과를 사실대로 말하면 고만인 줄 알았소. 왜 찔르게 되었느냐, 왜 찔르려다가 말았느냐, 이것은 경찰에서 물으려니 생각도 하지 않았소. 참 어처구니도 없지.”
“물으면 대수예요? 바른 대로 말만 하면 고만 아녜요?”
“그런데 당하고 보니 바른대로 말하랴 할 수가 없게 되었구려. 첫째, 영애와의 사이를 말을 해야 될 것 아니오?”
“참 그렇구만, 첫째, 애인이 치이시겠군요.”
“이게 죽어도 말을 하기 싫구려.”
“애인 낯이 깍이실 테니까.”
“낯 깎이는 문제가 아니요, 내게는 정말 생명에 관한 문제이었소. 이 목숨이 끊어질지언정 그의 말을 어찌 입밖에라도 내랴! 턱없는 대결심을 하였소. 내 청춘의 감격과 슬픔과 행복을 고이고이 담아둔 이 거룩한 비밀을 누구에게 발설을 하랴! 안 될 말이었소. 하늘이 무너져도 안 될 말이었소.”
“그래, 어떡하셨어요?”
“그야말로 혀를 깨물고 말을 하지 않았소.”
“말을 안 하신다고 경찰에서 그 눈치를 모를까요?”
“왜 모르기는. 대번에 묻는 말이 그 말이었소. 신부와 사랑을 하였느냐, 관계를 하였느냐, 미주알고주알 캐고 물었소.”
“아모리 하긴들 경찰에서 그걸 몰라요?”
“알다 뿐이오? 뻔히 아는 것을 숨기랴 하니 더욱 우습지요. 허.”
여해는 제 말을 남의 말하듯 하고는 쓴웃음을 뱉았다.
“그래, 어떻게 되셨어요?”
“어떻게 되기는 살인 미수, 강도 미수, 제령 위반으로 오 년 징역을 살게 되었지요.”
“에그 저런.”
“그게 내 운명이라 할는지…….”
하고 여해는 교묘하게 얽힌 지난 일의 실마리를 풀려는 것처럼 눈을 멍하게 뜬다.
“뻐언히 아는 노릇인데 어째 딴 죄목이 튕겨져 나왔어요?”
명화는 잼처 물었다.
“그것도 철부지한 내 탓이지요. 아모튼지 영애와의 관계를 끝까지 잡아뗐으니까요.”
“아모리 잡아뗐다기로서니……”
“그래 경찰에서도 처음에는 나를 정신병자로 알고 내어보내기까지 하려 하였소. 그러나 호텔에 떨어진 칼이 분명 내 칼이고, 그 칼을 산 상점까지 판명이 되었으니 범인은 적실히 진범인데 범행 동기만 좀 미분명한 점이 있었을 뿐이오. 그래 증거 수집에 형사대가 떠서게 된 모양이오. 그래 내가 기미년에 붙들려갔다가 기소 유예된 사실이 드러나고, ○○신문 배달하던 것까지 다 들추어 나오고, 영애의 결혼하던 전 해 겨울에 봉천에 갔던 것도 비어져 나오고, 내게 관한 나도 모르는 모든 사실이 나타났소. 그래 치정 관계라고 보던 내 사건은 시국 관계의 중대성을 띠이게 되었소. 필경엔 영애하고 대면까지 시키게 되었소.”
“홍영애하고요? 그래, 그이는 무에라고 했어요? 첫날밤에 들어온 사람이 분명하다고 했겠구려, 흥.”
명화는 쌀쌀하게 비웃었다.
“아니오, 내가 그 범인이 아니라고 잡아떼었소.”
“그러면 그렇겠지. 그러면 놓이시게 되셨구려.”
“말이 되오? 진범인으로는 벌써 점을 찍어둔 지가 오래이었던 모양이오.”
“그러면 왜 새삼스럽게 영애 씨를 대면을 시켜요?”
“그 때에는 나 역시 웬 속셈인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진범인 인지 아닌지 영애에게 감정을 시켰다는 것보담 두 사람의 기색을 살펴보려고 한 짓 같소. 영애가 영절스럽게 부인을 하니까, 경찰도 좀 당황해 하는 눈치였소.”
“왜요? 그래도 기연가미연가해서 그런 게지요?”
“아니지요. 치정 관계인가, 시국범인가, 두 가지를 의심하게 된 모양인데, 영애가 딱 부인을 하니까, 둘의 관계는 분명히 깊었던 줄 노린 것이오. 그렇게만 단정을 한다면 시국 관계가 또 미궁으로 들어가게 되어 갈팡질팡한 것 같소.”
“그러면 숨기려던 두 분의 관계를 광고한 것이나 진배없게 되었구먼요. 아이 딱해라.”
“그래도 치정 관계는 쑥 빠지게 되었으니 이상치 않소?”
“그건 또 웬일예요?”
“일이 공교롭게 되자면, 귀신도 생각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법이오. 박병일을 여러 번 임상 심문인가 하고 나종에는 경찰에도 여러 차례 불러다가 물어 본 모양인데 거기서 사건을 결정하는 중대한 증거가 나타났소.”
“무슨 증거?”
명화는 놀랜 듯이 눈을 호동그랗게 떴다.
“병일이에게는 큰 부자구 하니까 해외 단체로부터 협박장이 여러 장 왔던 모양이오. 이걸 경찰에 숨기고 있다가 이번 통에 자기가 내놓았는지 또는 경찰에서 뒤져내었는지 모조리 드러난 것 같소. 그 중에 한 장이 내 필적과 꼭 같구려 나는 멋모르고 . 쓰이는 대로 글씨를 여러 번 써 보였는데 내 필적과, 그 군자 모집의 협박장 필적이 영락없이 꼭 같구려.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있소?”
“아!”
명화는 가볍게 외마디 소리를 쳤다.
잠차지게 이야기가 오고 가는 바람에 시간은 날개가 돋친 듯 날아갔다. 문병 온 사람을 내어쫓는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었다. 명화는 종소리를 듣고도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어떤 연애
“가야 되겠구려.”
종소리를 듣고 여해는 하던 이야기를 끊어 버렸다.
“안 간다고 설마 예까지 와서 끌어 낼라고요.”
명화는 이야기에 잠차져서 모든 것을 잊은 듯하였다.
“늦으면 통행문을 잠궈 버린다는데…….”
“잠궈 버리면 대수예요? 나 여기 자고 갈걸요.”
하고 명화는 빈 침대 위에 눈을 주었다. 누울 자리를 보자 그는 갑자기 피로를 느끼었다.
“어째 등살이 꼿꼿하군. 나도 저 침대에 누울 테니 얘기를 더 들려 주셔요.”
명화는 상반신을 한 번 틀고 어깨 죽지를 몇 번 툭툭 치고 몸을 일으켜 빈 침대에 가서 누웠다.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고 나서 곧 여해쪽을 향해 옆으로 누우며 손으로 고개를 받쳐들었다.
“얘기가 어데서 중두머리가 됐더라? 오 옳지, 협박장이 어쩌고 어쩌고 하다가 말았지?”
“그 잘난 얘기는 왜 또 끄집어내시오. 인제 다른 얘기나 합시다.”
여해는 쓰라린 제 내력을 늘어놓기에 지친 듯하였다. 그는 화제를 돌려 버리려 하였다.
“그래, 그 협박장인가를 보셨습니까?”
“글쎄, 그 얘기는 고만둬요.”
“그래, 끝끝내 영애 씨 말씀을 않으시고 배기셨어요?”
“그야 물론이지요.”
“참 갸륵한 사랑이시군! 시쳇말짝으로 신성한 연애라 할까?”
명화는 어데까지 여해의 말을 끄집어내려고 애를 썼다.
“신성한 연애! 흥.”
여해는 코웃음을 쳤다.
“왜 웃으셔요? 그러면 두 분의 사이가 신성치 않았단 말씀예요?”
“신성치 않기는. 너무나 신성하여요. 그게 지금 생각하면 우습구려. 신성한 연애! 좀 싱거운 수작이오? 그러나 그때 소설 나부랭이나 읽고 하던 나는 이 신성한 연애란 말에 무한 매력을 느끼었소. 이 신성한 연애만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하였소.”
“맙시사! 그래 영애 씨와 신성한 연애를 하셨으니 징역도 꿀맛이란 말씀예요?”
“그 때 나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려고 애를 썼소. 소설에 나타나는 연애는 모두 달이나 별과 같이 허공에 달린 것이고, 결코 손아귀에 쥐어지는 건 아니었소. 그리고 처음엔 마음이 오마조마하게 얼려 들어가다가는 끝판에 언제든지 슬프게 되는구려. 나는 「베르테르의 번민」을 읽고 「춘희」를 읽고 「장한몽」을 읽고 울었소. 그런데 우리의 연애는 허공에 매달리지 않았구려. 내 품에 참따랗게 안기었구려. 이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왼 세계에 오직 나 하나뿐인 듯하였소. 이 너무나 큰 행복! 그렇소, 그것은 너무 엄청난 행복이었소. 나는 이 행복에 눌리어 질식을 할 것 같았소. 암만해도 이 행복을 끝끝내 누리기는 너무 복에 과한 듯하였소. 곧 불행이 뒷덜미를 짚을 듯한 예감에 나는 까닭도 없이 마음을 졸이었소. 흉한에게 잡혀가는 그를 구해내다가 왼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넘어지는 꿈을 여러 번 꾸었소. 그를 위해 불길 속에 뛰어드는 광경도 눈앞에 여러 번 그려 보았소. 그를 멀리멀리 그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내 자신을 환상하고, 여러 번 울어도 보았소. 과연 불길한 예감대로 불행은 닥치었소…….”
하고 물밀 듯 밀려나오던 여해의 말은 잠깐 끊이었다.
“무슨 불행예요?”
명화는 그 동안은 궁금하다는 듯이 채쳤다.
“영애는 시집을 가게 되었소.”
여해의 이 말에 명화는 귀를 쫑긋하였다.
“그야말로 이만 저만한 불행이 아니시군. 왜 별안간에 애인님께서 변심을 하셨나요?”
“변심을 했다느니보담 영애의 집안 사정이 어쩔 수 없게 되었소.”
“두 분의 사랑에 집안 사정이 무슨 계관예요? 우리 기생년들같이 팔려 다니는 몸이 아닌 담에야.”
“영애도 말하자면 불행한 여자였소.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오라비가 둘인데 작은 오라비는 찰난봉이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집안을 맡은 큰 오라비란 자가 여간 허욕꾸러기가 아니구려. 미두를 해서 여러 백석하던 살림을 일조에 깝살리고 말았소. 집행이 나오느니 경매를 당하느니 난 가가 되었소. 큰 오라비 미두 빚도 빚이지만, 작은 오라비의 난봉 빚도 터져 나온 것이오. 그 때 내 하숙이 바루 그 집 옆집이었는데 대문간에 고물상들이 모여 서고 안에서 울음판이 벌어진 것을 여러 번 보았소. 이 때 구세주같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박병일이었소. 영애의 큰 오라비하고 병일은 은행 거래 관계로 잘 아는 터수이고 마츰 병일이가 상처를 한 무렵이었는데, 그 자는 영애를 한 번 보고 고만 넋을 잃었던 모양이오. 그는 천 원이나 하는 보석 반지를 영애에게다 사다 주었소.”
“그러니 영애 씨가 지금 끼고 있는 반지가 바루 그 때 그 반지로구먼. 그래 반지 한 개에 고만 마음이 돌아앉았나요? 천연 심순애 같구먼.”
“아니오, 그렇지 않았소. 그 반지를 내 앞에서 동댕이를 치며 울기까지 하였소.”
“동댕이를 치고 울기까지 할 것이면, 왜 받기를 받아요? 참 아다가도 모를 일이군요.”
“제가 받은 게 아니라오. 제 큰 오라비가 받아 가지고 왔더라요. 처음에는 그렇게 값진 것인 줄도 몰랐고, 제 오라비가 사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모양이오. 한동안은 좋아라고 끼고 다녔소. 나한테 자랑까지 하고. 나종에야 제 오라비가 뚱겨 주었소.”
“그래, 그 반지 하나로 혼인이 곧 된 모양입니다그려.”
“그 반지보담 더 중대한 문제는 은행에 진 빚 삼만 원 문제요. 영애의 집 전 재산은 가위 전부가 병일의 은행에 들어가 있었소.”
“혼인을 하면 그 빚을 탕감을 해 주게 되었나요?”
“병일이가 직접 그런 말은 안 했겠지만 세 든 사람이 그런 소리까지 비친 모양이오. 그야 혼인만 된다면야 탕감은 몰라도 빠득빠득 졸르기야 하겠소?
아모튼지 영애의 집 운명은 이 혼인이 되고 안 되는 데 달렸구려.”
“삼만 원! 돈은 꽤 많군요, 그래 삼 만원에 꾸벅꾸벅 팔려 갔나요?”
하고 명화는 입을 비쭉하였다.
“영애는 죽어도 시집은 가기 싫다 하였소. 정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였소. 둘이 멀리 달아날까, 정사를 할까, 처음에는 이 두 길이 번차례로 머리에 떠올랐소. 그러다가 나는 돌려 생각해 보았소. 나 때문에 그를 불행하게 맨들 수는 없었소. 희생시킬 수는 절대로 없었소. 더구나 그의 집안을 망칠 수는 없었소 나 하나만 . 불행하면 고만이 아닌가. 쓰디쓴 실연에 울면 고만이 아닌가. 이렇게 결심을 하였소. 이 결심은 물론 슬펐소. 그러나 사랑을 잃고 운다는 것이 어쩐지 감격하였소. 나는 무슨 시인이나 된 듯이 고개를 빠뜨리고 앉아서 인생을 생각하고 운명을 생각하고 우주를 생각하였소. 나는 사랑의 행복을 맛본 만큼 실연의 비애를 질근질근 씹어 보려 하였소. 나는 졸랐소, 시집을 가라고.”
“맙시사. 그래 영애 씨는 애인의 영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집을 가셨나요?”
하고 명화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모리 시집을 가라고 졸라도 영애는 듣지 않는구려. 고만 죽어 버리자고 몇 번을 내 무릎에 울고 쓰러졌소.”
여해는 잠깐 말을 끊었다.
“왜 아니 그렇겠어요? 시집을 가자니 사랑을 버려야겠고, 아니 가자니 집안이 망할 테고.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렵고. 그 때 영애 씨의 처지는 참으로 난처했겠구먼!”
“졸르다가 못해 나는 훌쩍 봉천으로 달아나 버렸소.”
“혼자서요?”
“물론 혼자요. 암만해도 내가 가까이 있고는 영애의 마음이 돌아앉지를 않을 것 같아서 비상 수단을 취한 것이오. 유언 비슷한 만지장서를 남기고 나는 몰래 경성을 떠났소.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내 마음은 슬펐소. 기차가 고동을 틀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 어른어른 뒷걸음을 치며 물러가는 플랫폼과 수많은 전송꾼을 보고 나는 울었소. 모든 것이 하직이다 싶어서 눈물이 비 오듯 하는구려. 애인을 두고 나는 간다, 애인을 위해서 애인을 버리고 나는 간다…….”
여해는 그 때 일이 선연하게 눈앞에 나타나는 모양으로 눈을 섬벅섬벅하며 목소리가 메어진다.
“아이 가엾어라. 참말 정거장 이별이란 못할 게예요.”
하고 명화도 울멍울멍한다.
“어디 정거장 이별이오? 정거장에 누구 하나도 없는데, 괜히 차창에 고개를 내어 밀고 사람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구려.”
“그러니 더 슬프지 않아요? 봉천 가신 새, 혼인은 되었구먼요?”
“나는 봉천에 몇 달 있지도 못하였소. 처음에는 큰맘을 먹고 떠나갔지만, 암만해도 견딜 수가 없구려. 애인을 멀리 그리며 눈물만 흘린다는 것은 소설로 볼 때엔 그럴듯도 하였지만 정말 겪어보니 못 견딜 노릇이었소. 나는 되돌아오고 말았소.”
“한시바삐 영애 씨를 만나시려고.”
“만나자는 생각은 없었소. 결심한 바도 있고, 또 떠날 때 편지도 남겼거니와 봉천 있는 동안에도 시집가란 권고 편지를 여러 번 한 체면도 있으니 그를 만날 생각을 하랴 할 수가 없게 되었소.”
“그러면 왜 돌아오셨나요?”
“만나지는 않더래도 한 걸음이라도 그가 있는 곳과 가까운 데 있으면 한결 나을 것 같았소. 서울과 봉천의 사이는 너무 멀었소. 그가 사는 한 나라 한 고을에나마 같이 있고 싶었소. 그가 밟는 같은 땅이라도 밟아 보고 싶었소. 그가 마시는 같은 공기라도 마시고 싶었소.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그 때는 그렇게 생각이 든 것을 어떡하오?”
“가까이 있으면 안 만나고 더 배기시기 어려운 줄 모르시고…….”
명화는 탄식하였다.
“과연 배기기는 더 어려웠소. 그러나 나는 참았소, 이를 악물고 참았소.”
“참자니 오죽하셨을까!”
“그래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보담은 참을 수 있었소. 지금 당장이라도 만나려면 만날 수가 있다, 이 생각이 정말로 당장 안 만나고 참을 수 있게 하였소. 지금 당장이라도! 하는 사이에 날은 가고 밤은 새었소.”
“참 그렇기도 하시겠군! 손에 잡힐 물건을 일부러 두고 보는 격으로…….
그렇게도 사랑이 도저하셨는데 왜 첫날밤에 칼을 들고 들어가셨나요? 그건 정말 모를 일 아녜요?”
하고 명화는 침대에서 일어 앉았다.
여해는 무엇을 노리는 것처럼 이윽히 천정을 쳐다보다가,
“누가 아니라오? 예수교인 같으면 마귀가 붙었다고나 할까? 혼인날을 딱 당하고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만나려면 만날 수 있다는 마지막 기회까지 놓치고 말았구려. 여태껏 만나려면 만나려니 하고 미룩미룩 참아 나려오다가 최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 날이 닥치고 말았구려. 그 날이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쉽사리 닥칠 줄은 참으로 몰랐구려. 인제는 마지막이다, 인제는 고만이다, 인제는 만나려도 만날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은 어떠하였겠소? 왜 만나지 않았던고. 시시로 만나고 싶던 그 허구많은 시간 가운데 왜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지 않았던고! 아주 남의 사람이 되기 전에 얼굴이나마 한 번 가까이 보아둘 것 아닌가. 나는, 나는 정말 미쳐날 것 같았소. 하숙을 뛰어나왔소. 지향없는 발길이 진고개를 올라갔소. 철물전 앞에서 번쩍번쩍하는 단도가 눈에 띄었소. 나는 덮어놓고 그것을 하나 샀구려. 처음에는 그 칼을 갖고 어쩌자는 생각도 없었소. 교복 저고리 안주머니에 꽂고 나왔는데 내 발길은 저절로 혼인식장으로 향해지는구려.”
“그렇게 사랑하던 여자를 남에게 내어주다니 말이 돼요? 치미는 불덩이를 그야 누르랴 누르랴 눌러낼 장사가 없겠지요. 그래, 오 년 징역을 사시면서도 늘 영애 씨를 그리워하셨겠군요. 남의 사내의 품에 참따랗게 안긴 애인을…….”
“아닌 게 아니라 첨에는 그리워도 하였소. 감방 쇠창살에 그의 흰 얼굴이 어른어른하는 듯하였소. 물론 그를 조금치라도 원망치 않았소. 나 때문에 내가 저지른 죄 때문에 되려 그에게 누가 안 될까 걱정하였소. 나는 그의 행복을 마음으로 빌었던 것이요. 내가 그를 위해 이 고생을 한다 하니 감격한 생각이 들었소. 내 몸의 고통이 곧 그의 행복이로구나 하매, 고생을 해도 고생을 하는 보람이 있는 듯하였소.”
“맙시사! 사랑도 분수가 없으시군.”
“그런데 이태 삼 년 지나갈수록 이런 감격이 줄어지는구려. 여러 죄수들과 접촉을 하는 사이에 어린 나는 차차 정말 인생의 꼴을 보았소. 내가 생각하던 바와 아주 다른 인생의 꼴을 보았소. 악착스럽고 참혹한 인생의 현실이 아름답던 내 꿈을 사정 없이 깨치고 만 것이오. 여기는 소위 신성한 연애도 없었소. 사랑을 위하는 희생도 없었소. 듣기만 해도 불쾌한 그저 치정 관계란 한 마디로 돌려버리는구려. 그렇게 거룩하고 훌륭한 노릇을 한 듯하던 내 행동이 부질없는 짓만 같구려. 젖내 나는 어린애 작난만 같구려. 작난으로 징역을 살 노릇이오? 이 생각이 한번 들자 나는 살이 떨리었소. 나는 이 고생을 하는데 연놈은 재미가 쏟아지렷다, 잘도 흥청거리렷다, 하매 이가 갈리었소. 연놈을! 연놈을 하고 내 가슴을 쳤소. 내 머리를 쥐어뜯었소. 연놈이 앞에만 있으면 한 주먹으로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소.”
여해는 그 이야기만 해도 몹시 흥분해진다. 얼굴이 더욱 상기가 되고 숨소리까지 시근벌떡거린다.
“에그머니나! 변하기는 잘도 하시는군요, 그 끔찍하던 사랑이 어쩌면 일조에 변해요?”
“안 겪어 보고는 그 속을 모를 거요. 그야 일조 일석에 변한 건 아니오.
여러 달을 두고, 여러 해를 두고 조금씩 조금씩 변한 게 나종에는 정반대가 되고 만 것이오. 마음이 변하고 보니 징역살이가 더욱 고통이구려. 울화가 치받쳐서 그대로 펄펄 뛰다가 죽고 싶었소.”
“그야말로 사랑이 원수로 변하셨습니다그려.”
“그렇소 원수요 원수구 말구. 아까운 청춘을 철창 앞에서 썩히게 한 연놈이 원수가 아니고 무에요?”
“그러면 왜 출옥하던 길로 영애 씨의 뒤를 줄줄 따라 박병일 씨 댁으로 가셨나요? 원수의 집엘 뭐 하러 가요?”
“왜 영애를 따라갔느냐?”
하고 여해는 명화의 얼굴이 부신 것처럼 눈을 외우쳤다.
“글쎄, 이상하지 않아요? 원수라고 그렇게 치를 떨다가 출옥하던 맡에 그 집엘 꾸벅꾸벅 따라가신 것은 암만해도 모를 일인데요.”
“그럴 법도 하오.”
“그럴 법도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요? 설마 대뜸 원수를 갚으러 가신 건 아니겠고.”
“원수를 갚으려니 갚을 차비가 있소? 또 남 우세만 하고 말 것 아니오?”
“그러니 말예요. 왜 따라가셨나요? 무슨 깊은 곡절이 있었을 듯한데.”
“그 까닭은 말하자면 좀 창피하오. 서울에 친척도 없는 놈이 감옥에서 나서서 어딜 가겠소? 원수라도 같이 가자는 사람을 그양 따라갈 수밖에 더 있겠소?”
“그도 그러하시겠지만 분명 딴 까닭이 있는 것 같은데요.”
“딴 까닭도 있기는 있었소.”
“그 까닭이 무어예요? 좀 들읍시다그려.”
“그건 말하기가 더 거북하오.”
“기껏 얘기하시다가 그 까닭을 말 못하실 게 뭐예요? 남 궁금해 죽겠는데.”
“그게 그렇게 궁금할 게 뭐요? 옛 애인을 따라간 걸로만 생각해 두구려.”
“딴 까닭이 있다면서 왜 남을 감질만 내놓아요?”
“명화 씨도 여자니까.”
여해는 의미 있는 듯이 이런 말을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명화 씨! ‘씨’자는 뭐구 ‘여자’는 뭐예요? 놀아먹는 년이 무슨 여자 값에 나 가요? 사내 친구끼리 입에 못 담을 말이라도 기생에게 하는 건 괜찮답니다.”
“글쎄, 그래도…….”
여해는 말하기를 몹시 꺼리는 눈치였다.
“글쎄 그래도가 다 뭐예요? 괜찮아요, 괜찮대도 그러시네.”
명화는 오복조림을 하다시피 하였다.
“이건 사내끼리도 할 얘기가 못 되오. 젊은 죄수들 끼리나 할 얘기요. 징역을 못 살아본 사람은 무슨 소린지를 모를 거요.”
“온 걱정은! 몰라도 좋아요. 들어만 둡시다그려.”
“영애를 따라간 것은 영애가 여자인 때문이오.”
말하기 매우 거북해 하다가 필경 여해는 무슨 선고를 나리듯이 이렇게 말을 끊어 버렸다.
“그럼, 영애 씨가 여자지 누가 사내래요? 따라가신 이유가 단지 그것뿐예요?”
명화는 끔찍스러운 까닭을 들으려다가 이 신통치 못한 대답에 적이 실망을 한 듯하였다.
“그렇소. 영애는 분명 사내가 아니요, 여자인 탓이었소. 여자의 환영이란 젊은 죄수에겐 마치 독사와 같은 것이오. 몸에 칭칭 휘감기고 사뭇 가슴을 물어뜯는 것이오, 옥문 밖에 나서자 나는 여자를 보았소. 내 눈에는 영애가 보이지 않소. 옛날 애인도 오늘날의 원수도 보이지 않았소.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격으로 내 눈에는 계집만이 보이는구려. 환영으로 그리고 그리던 여자가 정작으로 참으로 내 코앞에 있구려. 손만 벌리면 잡힐 자리에 섰구려. 그 물씬한 살내에 나는 금세로 숨이 막힐 것 같았소. 나는 꿈속같이 황홀하고 말았소. 사랑이구 원수이구 다 잊어 버렸소. 이 여자를 버리고 어딜 가겠소? 보송보송 사내들끼리만 있는 지옥을 뛰어나와 이 사바세계에서 처음 만난 여자를 안 따르고 누구를 따라가겠소? 생각을 해 봐요.”
“생각을 해 봐도 과연 잘 모르겠군요. 그럴 상도 싶고 안 그럴 상도 싶고!” 하고 명화는 생글생글 웃어버렸다.
해결책
병일은 십년일득으로 저녁때 집에 일찍이 돌아왔다. 진을 치고 그를 에워싼 듯하던 연회가 오늘만은 비었다. 사무와 술과 기생에게 실실이 피로한 몸을 오늘만은 종용하게 늘어지게 쉬고 싶었던 것이다. 한 옆으로 안해에게 미안스러운 생각도 있었다. 그는 본정신으로 안해를 본 지도 여러 날이 되었다. 여러 날보담 여러 달이 되었는지 모르리라. 그렇게 사랑하던 안해, 그렇게 아름답던 안해, 많은 물질을 희생하고 얻은 안해, 하마하드면 제 생명까지 잃을 뻔하고 얻은 안해! 이렇듯이 고귀하고 중난한 안해를 어쩌면 그렇게 오래도록 아니 보고 견디었던가. 그는 중값을 주고 산 귀중품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가 별안간 생각난 것처럼 안해가 그립고 아쉬웠다. 그는 회사에서 자동차를 불러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자동차의 속력이 느린 듯 하였다.
영애는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남편과 겸상으로 저녁을 먹었다. 영애는 웬일인지 밥이 목에 메이고 잘 넘어가지를 않았다. 숟가락 쥔 손이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고 허전거리며 눈물이 쏟아질 듯하여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남편이 방탕함을 원망함인가, 그런 것도 아니다. 연회의 술타령은 지금 새삼스럽게 시작된 노릇이 아니다. 여간 풋돈을 쓴들 끄떡도 않을 줄을 잘 안다. 그러면 명화 년에게 미쳐서 점점 부부의 사랑이 식어감을 슬퍼함인가. 이것은 적이 염려가 안 되는 것도 아니로되, 그는 제 남편이 천 계집만 계집을 본다 하더라도 그 때뿐이지, 결코 끝끝내 빠질 사람이 아닌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면 이 살을 에어내는 듯한 슬픔은 어디서 온 것인가. 영애는 웬일인지 자기네 부부생활의 끝장이 보이는 듯하였다. 암만해도 길게 이 생활을 누릴 것 같지 않다. 모래로 쌓은 궁전같이 언제 바람이 불어 쓰러질지 모를 것 같다. 며칠이나 좋은 낯으로 남편을 대하게 될 것인가. 몇 번이나 겸상을 하고 밥을 먹게 될 것인가. 며칠이 아니고 몇 번이 아니다.
당장 이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세찬 폭풍우가 불어닥치어 이 평화로운 밥상을 뒤집을는지도 모른다. 이러고 겸상을 하고 밥을 먹기도 이것이 마지막이나 되지 않을지 누가 보증하랴. 왜? 그 까닭은 꼭 집어내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얼기설기 얽힌 듯도 하나 다시 생각하면 아모 이유가 없는 듯도 하다. 영애는 머리로 이론적으로 자기의 불안의 원인을 캐어내지는 못할망정 왼 몸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새파랗게 개인 하늘 볕은 쨍쨍 쪼이건마는 어데선지 구름장이 일 것 같다. 눈 한번 깜짝일 새에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그 구름장은 왼 하늘에 퍼지고 밝은 일광이 금시금시 먹장을 갈아 부은 듯한 구름 속으로 삼켜질 것 같다. 별안간 난데없는 폭풍우가 몰아오고 벼락이 떨어질 것 같다.
영애는 마른 날에 장차 일 폭풍우를 상상하고 몸을 떨었다. 장마 끝이 아니요 마른 날이기 때문에 그의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컸다.
이것은 결코 남편의 사랑이 식어 가는 데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남편의 지나친 사랑에서 피어오르는 구름덩이다. 그는 남편의 사랑을 지나치게 믿고 ─ 믿는다느니보담 차라리 지나치게 받아서 지나치게 일을 저질러 놓고 만 것이다.
지나친 사랑에서 생긴 지나친 과실! 그것은 행복의 옥좌에서 비애의 가시 덩굴 속으로 거꾸로 떨어지고야 말 것 같았다.
아모 것도 모르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하였다 도리어 자기에게 . 미안해하는 듯한 그 웃음과 표정을 볼 때 그는 더욱 슬펐다.
비감스러운 한 옆으로, 영애는 또 초조하였다. 그는 이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한시바삐 귀정을 내려고 더욱 조바심을 하였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지 않느냐. 그러나 쉽사리 입이 떨어질 노릇이 아니다. 마른 날에 폭풍우를 제 입으로 불러와야 될 줄이야!
‘어떻게 그 말을 하랴. 어떻게 은주의 얘기를 끄집어내랴.’ 이런 생각을 하매, 영애는 남편의 얼굴이 불덩이 같아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병일은 밥을 다 먹고 숭늉으로 웅얼웅얼 양치를 치고 나서 안해를 보며 무 두무미하게,
“가 봤수?”
하고 싱글싱글 웃는다.
“어델요?”
“병원에 말야.”
“병원에?”
“왜 여해 군 입원한 데 말야.”
그 말은 영애의 가슴에 칼을 꽂는 듯하였다. 화살을 맞은 꿩이 푸드득거리듯 영애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였다. 만일 남편이 그 일을 알았으면!
자기의 누이가 여해의 발길에 짓밟힌 줄 알았으면!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처녀의 구실을 빼앗긴 줄 알았으면! 남매간이라도 유만부동이라, 그는 제 누이동생을 유달리 사랑한다. 일찍이 부모를 여윈 어린 누이, 동기라고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누이가 아니냐. 그는 제 딸보담도 이 누이를 더 귀애하지 않느냐. 이 어린 누이의 신상에 그런 괴변이 생긴 줄 알았으면! 꿈에도 생각 못한 불행이 일어난 줄 알았으면!
영애는 무에라고 대척을 할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알리려던 그 말까지 목구녕에 얼어붙고 말았다. 영애가 잠자코 있는 것을 보고 병일은 제 안해가 자기를 꺼리는 줄로만 알았다. 저에게 까닭 붙은 남자가 출옥하던 맡에 병이 나서 입원을 하느니 어쩌느니 수선까지 피운 것을 퍽도 미안쩍게 여기는 줄만 알았다.
“그 사람도 불행야. 그 몹쓸 옥고를 겪고, 또 중병을 치르게 됐으니. 어, 안되었거든. 병원에 혼자 누웠으면 매우 사람이 그리울 건데. 내가 더러 가 보아도 좋겠지만 그야말짝으로 죽을 시간이나 있어야지. 허허, 왜 가끔 둘러 보잖구 그러우.”
영애는 남편의 말이 너그러우면 너그러울수록 마음이 더욱 욱조이었다.
여해에게 동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가슴이 더욱 나려앉았다. 폭우를 부르는 하늘이 버언하게 밝은 것을 쳐다볼 때처럼.
병일은 영애의 심중을 알 까닭이 없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띠우고 재우쳤다.
“그래 한 번도 안 가 봤단 말요?”
“아녜요.”
영애는 입안말로 속살거리었다.
“어 그래 쓰나? 아마 한 열흘이나 되었지. 열흘도 더 되겠군. 서울에서 일가도 없고 친척도 없다니 누가 들여다나 볼거요? 그래도 옛날 애인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를 건데, 허허.”
남편은 껄껄 웃다가 말고 바싹 영애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면구스럽게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왜 안 가보는 거요? 응. 사람이 그렇게 매정해서는 못 쓰는 법이래도.”
영애는 고개를 탁 숙여 버렸다.
‘이런 행복도 몇 분이 남지 않았고나.’ 그런 제 콧잔등에 서리는 남편의 더운 숨결을 느끼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눈물이 곧 앞을 가릴 것 같아서 저고리 고름을 만지작거려 진정을 시키노라고 무진 애를 썼다.
병일은 제 안해가 마치 어린 처녀 모양으로 수줍어하는 꼴이 재미있었다.
그 핼쓱한 뺨엔 발그스름한 흥분까지 떠오른다고 보았다.
“무에 그렇게 부끄럽단 말요? 거두어 주자던 사람을 못 가 볼 게 뭐요? 인제 새삼스럽게 내외를 하려 드는 거요? 응.”
남편은 거의 뺨을 한데 부빌 듯하며 자상하게 물었다. 병일은 오늘 따라 안해가 어여삐 보이기는 근래에 드물었다. 이런 안해를 두고, 밤새움을 하며 술타령을 하고 명화를 데불고 다닌 것이 불현듯 후회가 났다. 일찍이 집에 돌아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짓궂게 안해를 놀려먹었다.
“그래, 안 가 볼 테요?”
“글쎄요.”
영애는 견디다 못해 모기 같은 소리를 짜내었다.
“글쎄가 뭐야? 지금 당장이라도 좀 가 보구려. 혼자 가기 싫으면 나하고 같이 가 보려우? 응.”
“…….”
“왜 대답을 않소? 어데 갑갑증이 나서 사람 살겠나. 자 생각난 김에 가 봅시다. 자 옷을 입우 응.”
병일은 서둔다. 영애의 입술은 실룩실룩 떤다. ‘은주의 사단을 말할까 말 까…….’ 동부인하고 여해의 문병을 가자고 서둘러 보았지만 안해의 어떡하는 꼴을 보자는 것뿐이요, 정말 가 볼 생각은 물론 없었다. 모처럼 맛보는 부부의 재미를 퀴퀴한 약 냄새로 흐려 버릴 수는 없었다. 이런 좋은 기분을 여해와의 대면으로 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안해를 괴롭게 한다는 것은 실없는 작난의 정도를 넘어, 악취미가 아닌가.
병일은 안해를 시달리다가 말고 그대로 아랫목에 쓰러졌다. 그는 밥만 먹고 나면 식곤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푸만한 배를 주체를 못하는 듯이 깔고 엎드려서 씨근씨근하였다.
은주의 말을 할까 말까? 영애는 혼자 애를 부등부등 켰다. 벼락이 떨어진다 하여도 이 말을 해야 된다. 집안에 일어난 이런 중대한 변고를 제가 몰랐으면 이어니와, 알고 남편에게 알리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십여 일이 지난 오늘날까지 알리지 않은 것만 해도 잘못이 아닌가, 무서운 일이 아닌가. 영애는 몸을 도사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밥상 물려간 것을 군호로 명희가 또 뛰어 들어왔다. 모처럼 아버지가 집에서 진지를 잡숫는 데 부접을 떤다고 멀리하였던 것이다. 명희는 들어오는 길로 쏜살같이 엎드린 아버지의 등허리에 올라앉는다. 그 안상이 같은 두 다리를 벌려 간신히 걸터 타고 펄떡궁질을 한다. 병일은 얼굴이 새빨개 가지고 ‘어규,어규!’하며 낑낑거리었다. 기태나 그는 일어나 앉고야 말았다. 그는 명희를 제 무릎 위에 올려 앉히고 아버지다운 자애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보며,
“너 바바 어데서 먹었니?”
물었다.
“응, 바바 응.”
하고 명희는 그 총명한 눈을 말똥말똥한다.
“그래, 바바 말이야. 어데서 먹었니? 아주머니하고 먹었니? 응.”
하고 아버지는 제 뺨을 딸의 뺨에 대고 문질렀다. 그는 늦게야 둔 이 외동딸을 구실같이 귀애하였던 것이다.
“응, 아주머니. 응.”
애는 어른의 말을 재우친다.
어머니는 딸의 노는 양도 무심히 볼 수가 없었다.
‘저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지 모른다.’ 영애는 눈시울이 서물서물해지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참, 은주가 오늘은 왜 얼씬을 않으우?”
병일은 안해를 보고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요새 졸업 시험을 치르노라고 바빠서 그러나?”
이 말을 어떻게 대답해야 옳을 것인가 사 년 동안이나 공들여 다니다가 영광의 졸업 날을 내일 모레로 앞두고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알았으면! 그 쾌활하던 머리를 싸매고 누워서 제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 것을 알았으면!
“그래, 졸업을 하고는 기예 동경으로 간다나.”
병일은 잼처 물었다. 은주는 졸업만 하고 나면 곧 동경으로 건너가서 음악 학교에 들겠다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병일은 동경에 가느니보담 차라리 조선에서 이화 전문학교 같은 데나 드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늘 타일러오던 터이었다. 그는 어린 누이를 단 혼자 먼 곳에 보내기를 꺼렸던 것이다. 아모리 제 마음이 단단하다 하더라도 흔들리기 쉬운 애들의 마음이 아닌가.
못된 놈의 손에 걸리거나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닌가. 더구나 요사이 동경 학생들의 풍기가 자못 문란하다고 하지 않는가.
“기태나 동경까지 갈 게 없다는데 그 애는 기예 가겠다니 걱정이야. 이화 전문학교 음악과 같으면 아주 훌륭하다는데. 여자는 그럭저럭 하다가 좋은데 시집이나 가면 고만이지,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를 하면 무엇 하노? 쭉 해야 학교 선생 노릇이나 할 것밖에.”
영애가 대답 없는 것을 보고 병일은 아주 완고한 노인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영애는 대결심을 하고, 남편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거의 남편의 귀에 대다시피 하고 은주의 사단을 얘기하고 말았다.
“모두 제 잘못예요.”
하고 말끝도 맺기 전에 영애는 울며 쓰러졌다.
“헉!”
병일은 물에 빠진 사람 같은 소리를 내었다.
병일은 눈만 커다랗게 떠서 멀거니 영애를 바라보며 얼빠진 듯이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래, 그게 참말이어?”
하고 허전허전하는 소리를 떨었다. 그 얼굴은 금시금시 흙빛이 되었다.
영애는 그 날에 생긴 일을 울음 반 말 반으로 저저히 속살거렸다.
벼락은 떨어졌다! 어느 모를 어떻게 바수고 깨두드릴 것인가. 영애는 몸을 옹송그릴 대로 옹송그리고, 벌역의 불채쪽이 후려갈기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 병일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놈을, 그놈을!” 하고 부들부들 떨다가 영애를 잡아먹을 듯이 흘겨본다.
“괜히 그런 놈을 집 안에 끌어들여 가지고. 그놈을, 그놈을!”
제가 동의도 한 일이요 승낙도 한 일이건만, 전수히 안해의 탓만 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였다. 영애는 이미 각오한 노릇이로되 그래도 설마! 하는 희망이 없지 않았다. 그는 제 남편의 인금을 너무 높게 평가하였던 것이다.
제 남편의 태도가 제가 생각한 바와 조금도 틀리지 않는 것이 도리어 제 기대와는 틀리었다. 세상의 어느 남편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영애는 마음 어데인지 야속한 생각도 들며 더욱 설웠다. 그는 흑흑 느끼며 울었다.
“그놈을! 그놈을!”
병일은 또 한 번 뇌이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방문을 박차고 나가려 하였다.
영애는 본능적으로 남편의 행동에 공포를 느끼었다. 그는 쏜살같이 몸을 일으켜 남편의 마고자 뒷자락을 부여잡았다. 불길 속에 뛰어드는 사람을 잡듯이,
“어델 가셔요?”
“어델?”
병일은 씨근벌떡거리며 되려 채쳤다. 실상 그는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진정을 하셔요, 진정을! 나가시면 어델 가셔요?”
“놓아요, 놓아. 그래, 그놈을 그대로 둔단 말야, 그대로 둔단 말야?”
이 말에 병일은 제가 가야 될 곳을 불현듯 깨달았다.
“난 곧 경찰서로 갈 테야, 경찰서요. 그놈을 그놈을 고발, 고발할 테야.”
병일은 흥분에 겨워 집안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영애는 황급하게 돼지 목 따는 소리를 내는 병일의 입을 손으로 가리우는 시늉을 하였다.
“아랫것들이 듣지 않아요?”
나지막하나마 힘있게 타이르듯 하였다. 그 말엔 병일도 풀이 죽고 말았다.
방안에 다시 들어와 펄쩍 주저앉았다.
“이 일을 어떡하여야 좋아요?”
영애는 고민하는 남편을 두려운 듯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병일은 무슨 생각을 돌리는 듯이 머리를 북북 긁었다.
“모두가 제 잘못예요. 집에만 안 데리고 와도 좋을걸. 모두 제 잘못예요.”
한참 만에야 병일은 다시 일어섰다.
“어떻게 하실 테요?”
“글쎄, 석호 군이나 불러서 의론을 좀 해 봐야…….”
“아모리 친하신 어른이래도 남에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해요?”
“고발을 하면 다 알걸. 그렇게 쉬쉬하면 무슨 소용야.”
“정말 고발을 하실 테예요? 왁자지껄하잖겠어요.”
“그렇다면 그대로 둔단 말야. 안 될 말이어, 안 될 말이어! 아모리 너한테 까닭 붙은 사내래도 안 될 말이어!”
영애는 입을 닫쳐 버렸다. ‘너’라까지 할 때엔 남편의 역정이 머리끝까지 치밀린 모양이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무슨 일을 버르집어낼지 모른다.
막연하던 불안은 인제 뚜렷한 윤곽을 나타내었다.
‘죽어야! 죽어야!’ 영애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전화로 석호는 불려 왔다. 들어닥드미로 병일은 허둥지둥 은주의 사단을 말하였다.
“저런 죽일 놈이! 저런 죽일 놈이!”
석호는 그 조그마한 눈을 찢어지라고 부릅뜨고 펄펄 뛰었다.
“그래, 그놈을 어떡할까?”
병일도 입에 게거품을 풍겼다.
“저런 죽일 놈이! 저런 죽일 놈이! 글쎄, 내가 뭐라던가? 그런 놈을 왜 집 안에 발그림자를 시킨단 말인가? 용서도 유만부동이고 동정도 분수가 있어야지. 에잇”
석호는 병일의 묻는 말엔 대답도 않고, 제 선견지명을 자랑하듯 하며 혀를 수없이 찼다.
“원 세상에 짐승만도 못한 놈도 다 많거든. 은혜를 원수로. 허허, 저런 죽일 놈 같으니. 이런 변이 어데 있더람? 허 그것.”
“그놈을 그놈을 어떡할까?”
병일은 재우쳤다. 석호는 병일의 흥분된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깜박한다. 분개할 것은 이만 정도로 끈치고 곧 문제의 해결에 착수하려는 듯하였다. 병일은 침을 삼키며 얼마동안 석호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이윽고,
“그래, 그놈을 어떡할까? 지금 당장이라도 고발을 해야 될 것 아닌가?”
병일은 또 재우쳤다.
“고발? 글쎄, 나는 그놈의 처치보담 자네 매씨의 장래가 걱정일세.”
석호는 칼로 비어내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글쎄!”
하고 병일은 대번에 풀이 죽었다.
“그래, 자네 매씨가 금년에 몇 살인가?”
석호는 물을 치는 듯이 종용히 물었다.
“열여덟일세.”
“열여덟!”
석호는 무엇을 헤는지 손가락을 꼽아본다. 주판질 대신으로 주먹구구를 대는 듯,
“열여덟! 꽃 같은 나일세. 한창 피어오를 인생의 꽃 봉오리에 된서리를 맞은 셈일세그려. 저런 죽일 놈 같으니.”
그는 몸을 한 번 비꼬며 갑자기 시인이나 된 듯이 영탄하였다.
“그래, 어떡할까?”
“저런 죽일 놈이, 그 아름답고 쾌활하던 규수를. 저런 죽일 놈이. 그래, 금년에 몇 학년인가?”
“올 봄이 졸업일세.”
“금년이 바루 졸업이야. 세월은 빠르군. 열 여덟, 금년이 졸업! 허, 그것. 자네에게 동기라고는 그 매씨 한 분뿐이지.”
“그러이.”
“허, 그것 참 불행이로군. 좀 분하겠나!”
“어떡할까?”
“그래, 그놈은 여전히 팔자 좋게 병원에 자빠졌겠네그려. 별일이어. 아모튼 지 별일이어. 그런 못된 짓을 하고도 시침을 뚝 따고 자네 돈으로 무슨 입원야.”
“그놈을! 그놈을!”
병일의 분길은 바람을 얻은 불꽃처럼 또 활활 타올랐다.
“그래, 매씨의 성적은 어땠누?”
“우등이야. 언제든지 첫째 둘째야.”
“허 아까운 일이로군. 기막힐 일이로군. 몸을 버렸으니 허, 옥에라도 티가 있다더니. 진주가 돼지 발에 밟혔네그려, 허.”
석호는 딴전만 한다. 그는 문제의 해결보담 마치 매파와 같이 아름다운 이의 불행을 노래한다. 병일은 갑갑증이 났다.
“그야 두말 할 것 있나? 이 일을 대관절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석호는 눈을 딱 감았다. 뺨을 손바닥으로 괴이고 고개를 배슷이 뉘었다.
이런 문제는 참으로 중대해서 여간 생각해 가지고는 풀어낼 수가 없다는 듯하다. 한참 만에야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글쎄, 어떡하면 좋을까? 아모리 생각해도 별수가 없네. 길은 두 길밖에 없는 듯하이.”
“두 길이라니?”
병일은 석호의 말을 움켜쥘 듯이 채쳐 물었다.
“한 길은 자네 말마따나 곧 고발을 하는 걸세. 강간죄로 얽어 넣어 또 징역을 살리는 걸세.”
이 점은 석호도 병일의 생각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 그놈을 징역을 살려야.”
“그러나 그건 좀 생각해 볼 문젤세. 징역을 살리면 분풀이는 될까 모르지마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방도는 아닐세. 도리어 문제를 번폐스럽게만 맨들 뿐일세. 첫째 자네 몸에 창피만 돌아올 걸세.”
“창피라니?”
“생각해 보게. 그놈을 고발을 한다고 하세. 그러면 경찰에서 그놈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잡아다가 쉰길로 감옥에나 보내주면 좋겠지만, 어데 그런가.
피해자로 물론 자네 매씨를 호출할 게고 증인으로 사실 목격자 자네 부인을 부른다, 자네를 부른다, 왁자지껄하게 해 놓으면 신문에는 좀 좋은 자료인가. 아모 은행 두취, 아모 회사 사장 박 아모개 집에 이러이러한 일이 생겼다고 좀 떠들어 댈 건가. 전번 첫날밤 사단도 그렇게 굉장하게 났었는데 이번에는 몇 갑절 더할 것이 아닌가. 첫날밤에 신랑을 난자한 범인이 출옥하게 되자 그 부인이 옛정을 못 잊고 ─ 사실이야 물론 그렇지 않지만 ─ 그 사내를 집으로 끌어들이고 그자는 불 같은 성욕을 참지 못해서 그 누이동생을 행실을 내었다고 ─ 허 기가 막혀! 자 이렇게 되고 보면 자네 모양은 뭐 이 된단 말인가. 이런 창피가 또 어데 있겠느냐 말야…….”
병일의 부글부글 피어오른 듯이 살찐 얼굴이 금시 할쓱해지는 듯하였다.
“그러니 말야.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를 떠벌리는 거란 말야. 안 그런가? 알아듣겠다?”
“그럼……그럼…….”
병일은 말도 옳게 못하고 더듬거리며 가위나 눌린 듯이 눈을 멀뚱멀뚱 한다.
“말하자면, 자네 매씨의 불행을 세상에 광고하는 거나 진배없단 말야. 그러면…….”
석호는 숨이 막힌다는 듯이 말을 끊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떡한단 말인가?”
병일은 얼마 만에야 가슴을 쥐어 짜내듯 한 마디 하고 휘 한숨을 내어 쉰다.
“허 그놈 그놈이, 자네 집하고 무슨 악인연이란 말인구. 그놈을 그저, 그놈을 그저.”
석호는 이를 갈며 그 조그마한 얼굴에 있는 힘줄을 모두 일으켜 세워 보이었다.
“그놈을 그저. 그야말짝으로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아는 듯 모르는 듯 쏘아 죽이거나 했으면!”
“죽여 버려야, 죽여 버려야!”
병일도 두 주먹을 쥐고 치를 떤다.
석호는 제 말의 효과가 여실하게 나타난 것을 보고서야, 다시 말을 끄집어 내었다.
“길은 또 한 길 있네마는.”
“그 길은?”
“그 길은 자네를 위하든지, 자네 매씨를 위하든지 그야말로 관무사 민무사할 걸세마는.”
“무슨 길인가?”
“무사주의에는 그 길이 제일일세마는 말하기가 좀 거북하네.”
“말하기 거북할 게 무엔가?”
병일은 간원하다시피 채쳤다.
“병일은 암만해도 자네가 감정상으로 용서를 할 것 같지 않네.”
“감정상으로?”
“그래 얼른 감정을 돌리기는 어려울 걸세. 자네, 돼지에게 진주 던진다는 얘기 알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다니?”
“어, 가련한 일이거든! 악착한 일이거든! 그러나 돼지 발에 밟힌 진주니 돼지에게 던져 주는 수밖에 더 있는가?”
“그게 무슨 말인가?”
“무사주의의 해결의 길은 자네 매씨와 그 여해란 자와 결혼을 시키는 걸세. 이게 제일 상책일세.”
석호는 차마 못할 말을 한다는 드키 병일의 시선을 피하였다.
“응? 여해와 결혼?”
병일은 제 귀를 의심하는 듯하다.
“그러이. 여해와 매씨와 결혼을 시킨단 말일세. 무사타첩하자면, 그 수가 제일 좋은 수일세.”
석호는 냉랭하게 말을 한 마디씩 꼭꼭 끊어가며 떠먹듯이 일렀다.
“그게, 그게 말이 되나?”
물론 병일은 펄쩍 뛰었다.
“그러리, 그야 될 말인가? 감정상으로야 도저히 용서 못할 겐 줄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닐세만은, 그렇다고 그놈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놈이 죽지 않는 담에는 자네 매씨의 해자를 덮어낼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런 일이란 아모리 쉬쉬하더라도 괴상하게 소문이 잘 나는 법이거든. 말이 떡 벌어지고 보면, 자네 꼴만 더 깎일 것 아닌가? 그러게 진작 결혼을 시켜 버리거든. 그러면 그자야 물론 쩍말없을 게고. 자네 매씨인들 어쩌나? 이왕 버린 몸이니 팔자 한탄이나 할 밖에.”
“그놈하고 내 누이하고 될 말인가, 될 말인가?”
병일은 혼잣말같이 뇌인다.
“혼인이란 별수 없느니 끼리끼리 짝을 맞추는 수밖에 더 있는가?”
석호는 ‘끼리끼리’란 말에 이상한 힘을 주며 타일르듯 하였다.
“끼리끼리란 말이 웬 말인가?”
어이없어하던 병일도 벌컥 성을 내었다.
“글쎄, 뭐라고 하면 적당할까? 끼리끼리란 말은 좀 어폐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 그 ─ 그 여해란 자와 자네 매씨와 경우가 비슷하다고 할까. 그 자도 전과자로 사회상 폐인이 되었고, 자네 매씨도 뭐라고 할까 ─ 버린 여자라고 할밖에 없거든…….”
“그래, 내 누이하고 그놈하고 같단 말인가? 그놈은 죄를 짓고 전과자가 되었지마는 내 누이야…….”
“알아들었네. 물론 그자하고 경우가 다르기는 하네마는, 어데 세상이란 그런가. 그 잘못으로 제 팔을 제가 비여서 병신이 되는 것이나, 도적놈을 만나 칼을 얻어맞아 병신이 되는 것이나 병신은 일반이거든. 세상 사람이 그 원인을 따져 보고 그 결과를 평하지는 않는단 말야. 그 결과만 가지고 절름발이면 절름발이 곰배팔이면 곰배팔이라지, 어데 저 사람은 어떡해서 절름발이가 되고 이 사람은 어떡해서 곰배팔이 되었다고 구별을 해 주던가.
아모튼지 애석한 일일세. 여자란 그게 안되었거든. 아모리 귀한 몸이라도 한 번 버리면 고만이란 말야.”
“그야! 그야…….”
병일은 석호의 말을 여지없이 반박을 하려고 둘러보았으나, 입술만 뻥긋 뻥긋 할 뿐이고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야 원인 결과가 모두 다르고 말고.”
석호가 병일의 할말을 대신 해 주듯 넙적 말을 받았다.
“충분히 동정할 여지도 있고, 동정만이 아니라 듣는 사람마다 분개도 할 노릇이지만, 그게 아모 실속 없는 동정이란 말일세. 신도덕이 어떠니 구도덕이 어떠니 날뛰는 놈들이라도 그놈들더러 헌 계집을 제 평생 정당한 안해로 사랑하겠는가 물어 보게. 다 체머리를 흔들 걸세. 그야 신부의 처지를 잘 알고 특별한 의협심으로 아는 듯 모르는 듯 받아주는 사내가 있다면야 그는 또 모르지. 제 안해의 불의의 불행을 가엾게 생각하고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는지는 모르지만, 어데 그런 사람을 구할 수가 있느냐 말야. 섣불리 구하다가는 괜히 말만 퍼뜨리고 모양만 흉하고 죽도 밥도 안 될 거란 말야.
그러니 말일세. 감정으로는 아모리 용서를 못한다손 치더래도 그자와 결혼하는 게 제일 상책이란 말일세.”
병일의 고개는 천근 무게의 돌에 나려 눌리듯이 밑으로 밑으로 숙여졌다.
그는 인제 석호의 말을 반박할 용기조차 없는 듯하였다.
석호의 그 조그마한 눈에는 야릇한 웃음의 그림자가 반짝하다가 지워졌다.
그는 다시 탄식조로,
“딱해, 딱해, 참 딱한 일야. 여자란 그게 큰일야. 백락천의 시가 아니라도 일생 고락이 다른 사람에게 달렸거든. 허 기막힐 일야.”
라고 의미 깊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듯이 시계를 꺼내 보고,
“벌써 여덟 시가 지났네, 늦었군. 오늘 저녁에 일곱 시부터 무슨 과장 회의가 또 있다나. 나는 가 봐야겠네. 아모튼지 잘 생각해서 신중히 처사를 하게. 워낙 일이 괴상망칙해 놔서. 회의가 일찍 끝나면 밤이라도 또 옴세.
자네 어데 나가지는 않겠지?”
병일은 맥없이 고개만 끄떡였다.
병일의 집을 나오는 석호의 입술에는 쉴 새 없이 미소가 흘렀다. 까닭 없이 입이 뻥긋뻥긋 벌어지는 것을 걷잡으랴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은주를 잘 안다. 어릴 적 코 흘릴 때부터 늘 보아 잘 안다. 그 탐스러운 얼굴과 총명한 눈과 옥같은 손을 잘 안다. 그보담도 은주가 누거만 재산가의 외동딸로 외누이로 얼마나 사랑을 받고 귀염을 받고 자라난 것을 더 잘 안다. 이것은 석호의 은주에 대한 지식 가운데 가장 중대하고 긴요한 점이다. 그 미모와 재주는 이 점에 대면 부속품이요 허접쓰레기다.
그는 홀아비가 된 뒤, 미래의 안해를 꿈꿀 때 미상불 은주 생각이 아니 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어처구니없는 공상을 물리쳤다. 은주는 높게높게 하늘에 매어 달린 별이었다. 구름 위에 피인 꽃이었다. 그것은 가망 밖이다.
아모리 바라보고 치어다본들 제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냐. 자기가 아모리 병일과 친하고 병일의 경영하는 모든 은행 회사에 아모리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하더래도 자기는 병일의 한낱 사용인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 말이면 청지기에 틀리지 않았다. 주인댁 아가씨에게 장가들기는 언감생심이 아니냐. 세상이 변하였다 한들 지체와 근지에 대한 애착심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생활과 아모런 상관이 없는 듯하면서도, 기실 실생활의 등 뒤에서 은근히 실생활을 지배하는 유령이었다. 더구나 혼인에 들어서는 석호 제 말마따나 끼리끼리다. 양반은 양반을 찾고, 부자는 부자를 찾는다.
낡아빠진 옛 양반은 유령의 말을 들을 근력조차 없이 되었지만, 부자란 새 양반은 뜻대로 마음대로 가릴 것을 가리지 않느냐.
고양이같이 약은 석호는 결코 안 될 일에 머리를 썩히지 않는다. 제 품에 기어 들어올 파랑새가 아닌 줄 안 다음에 헛침을 삼킬 석호가 아니다. 그는 물론 그런 사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구름 위의 별은 땅 위에 떨어졌다. 달 속에 핀 월계화는 뜻밖의 광풍에 휘날리어 구렁에 떨어졌다. 인제는 자기도 손만 내밀면 부여잡을 수 있게 되었다. 꺾으려면 꺾을 수 있게 되었다. 옥황상제의 후원에서 나 지저귀는 듯하던 파랑새는 부러진 쭉지를 떨면서 어느 사람의 아모 품에라도 안기기를 애원하게 되었다.
이 꽃을 꺾어 주랴. 꺾는대도 전부터 잔뜩 욕심이나 낸 것처럼 허겁지겁 꺾어서는 꺾는 이의 인품이 깎일 염려가 있다. 본래 원하던 바도 아니요, 싫기는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어 꺾는다는 듯이 꺾어야만 쓴다. 한껏 생색을 낼 대로 내어야 한다. 그러하자면 그 꽃을 무여지하게 하잘것없이 보잘 나 위 없이 더럽게 더럽게 떨어뜨리는 것이 더욱 좋다. 언짢으나마 꺼림칙 하나마 친구를 위하여 주가의 명예를 위하여 그 꽃을 맡는 듯이 되어야 찬연한 생색이 나는 것이다.
그는 물건 값을 깎는 비결을 여기 이용한 것이다. 제발 팔아지이다, 맡아 지이다, 하고 비두발괄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자기는 사기 싫으니 다른 사람에게 팔라고 내밀어야 한다. 적은 흠절이라도 크게 크게 배집어 내어야 한다.
이왕지사 버린 사람이 되었으니 헌계집이 되었으니, 여해 같은 자하고나 끼리끼리 혼인을 하라고, 가정적으로 원수요 사회상으로 폐인이 된 전과자 하고 나 짝을 맞추라고, 그가 기를 쓰고 주장한 이유가 실상 여기 있있던 것이다 제가 사려는 물건 . 값 떨구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이런 엉뚱한 수작을 붙여놓으면 쉽사리 제 내심을 들여다볼 수도 없거니와 물건 값은 저절로 더 할 나위 없이 떨어질 것 아니냐. 이야말로 일거양득의 기상천외의 좋은 생각이 아니냐.
은주를 여해에게 시집 보내라 한 것은 이 사건을 해결하는 제일 좋은 상책이 아니라 기실 자기의 야망을 채우는 데 가장 첩경이요 상책이었던 것이다.
‘내가 말을 너무 박절하게 하였지?’ 석호는 인력거 위에서 생각하였다.
‘내 말이 너무 심했을까? 헌 계집, 흥 사실이 그런 걸 어떻게 하노! 그야 갈 데 없는 헌계집이 별수가 있나? 몸을 버린 계집애니 헌계집이래지, 새 계집이라고는 할 수 없거든. 사람의 운명이라고는 참 알 수 없는 게야. 그 계집애가 그렇게 될 줄이야, 귀신인들 알았겠느냐 말야, 흥.’ ‘대관절 여해란 놈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구. 출옥하던 길로 ─ 하롯밤 새에 ─ 허 그놈 ─ 몸기운도 좋거든. 허 고얀 놈! 그 옥 같은 살을 ─ 아모도 손 못 대인 그…….’ 석호는 예까지 생각하고 제절치는 듯이 몸을 비꼬았다.
“죽일 놈! 죽일 놈!” 그는 수없이 중얼거렸다. 질투의 불덩이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오는 듯하였다.
“죽일 놈! 죽일 놈! 죽일 놈!”
하고 석호는 마른 침을 연거푸 튀튀 배앝았다.
‘그런데 가만 있거라. 그 고지식한 병일이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으면 어떡할까? 정말 그 여해란 자에게 시집을 보내면 큰일이 아닌가? 설마!
설마!’ 석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사람 놈인 다음에야 그러지야 않겠지. 제 원수에게 제 누이를 내맡기지야 않겠지. 도적놈, 살인 미수범, 전과자, 강간범! 그놈에게 제 누이를, 설마 사람의 가죽을 쓰고야! 될 말인가 될 말인가. 슬슬 기회를 보아 내게로나 보내랄까.’ 석호는 웃입술에 하릴없이 붙여놓은 듯한 솔잎 수염을 한번 쓰다듬어 보았다.
‘나이 사십이니 벌써 중늙은이는 된 셈이것다. 그런 아름다운 아가씨의 신랑감이 될까. 아가씨, 흥! 급살을 맞아 뒤어질 아가씨, 흥! 인제야 정조를 잃은 천둥이가 됐지, 흥 그걸 얻어 주어?’ 그의 커다란 입은 또 옴질옴질하여 벌어지려 한다.
얻어 준다면야 감지덕지 ‘ 하렷다. 헌 계집이 되어서 미상불 꺼림칙하기는 한걸. 꺼림칙해도 눌러 보아 줄까. 뭐 죽 떠 먹은 자리지 뭐. 그 대신 벼 천이나 붙어 보렷다. 가만 있자, 병일의 재산이 얼마나 될꼬? 추수는 한 삼만 석 착실하고, 현금도 돈 백 만원은 되렷다. 부자는 더러운 부자여. 동기라곤 그 누이 하나뿐이니 설마 재산의 십분의 일이야 안 줄라구. 그러면 여러 천 석이 되게. 너무 과한데. 천 석? 이천 석? 얼마나 떼어 주려누?’ 석호는 속으로 주판질을 하고 또 해 보았다. 아모리 줄잡고 줄잡아도 천석 하나는 무난히 떼어낼 자신이 생겼다. 천 석! 소 부르주아 생활에 감질이 나는 그는 천 석만 생각해도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 잘난 거마비로 한 이백 원 받는 것 정말 기름을 짤 노릇이다. 뜯기는 데는 왜 그리 많은지.
시골집으로 궁한 일가와 친구로. 돈은 마치 손으로 움켜쥔 물 모양으로 용하게 새어나가지 않으냐. 그런데 천 석만 덜썩! 한꺼번에 생기면!
‘첫째 초월이를 좀 푼푼히 주어야 해. 빠듯빠듯한 월급에서 저고리 한 감만 끊어 줘도 돈 아귀가 빈단 말야. 그래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보이는 건 제법 야, 참 제법야. 이 판에 집 칸이나 장만해 줄까? 아니지, 아니야. 은주를 얻거든 초월은 버려야 해. 부마가 되시고 함부로 계집 주전부리를 해서 쓰나. 아주 착실하게 얌전하게 보여야만 쓰거든. 그래야 벼천이나 줄지 누가 아나. 그래, 초월이 년은 고만두고 신혼여행이나 한번 굉장하게 해 볼까? 대판으로 동경으로. 이왕 내어 디디는 걸음에 아주 양행(洋行)을 해 버릴까? 이러쿵저러쿵 말 나기 전에 서양을 한 바퀴 둘러온다면 병일 군도 좋아할 거라 꽃의 파리나 보고, 이탈리아에서 곤돌라나 타 보고, 남빛 지중해 나 보고, 북구 미인이나 구경하고.’ 석호는 학생 시대에 꿈꾸던 찬란한 공상까지 새삼스럽게 되풀이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말을 끄집어낼까. 병일이란 위인은 영리할 때엔 무척 영리하지만, 또 둔할 때는 아주 숙맥같이 둔하니 걱정야. 저편에서 나에게 맡으라면 좋겠지만 얼굴이 바시어서 내 편에서 말하기는 어렵고. 그러면 비위를 너무 긁어 주었게. 너무 나리깎아 놓아서 내게 맡으란 말이 얼른 떨어지지를 않으렷다.’ 그러나 석호는 자기에게로 굴러들 이 행복을 어데까지 믿었다.
“뭐, 인제 한 번만 더 술술 말을 돌려 버리면 고만 될 거야. 그러면 오늘 밤에라도 이 눈치를 보일까? 아니 아니, 그렇게 조급하게 서둘 건 아니야.
청처지막하게 일을 꾸며야 해. 좀 뜸을 들여야.”
그는 자신 있게 중얼거렸다. 그 손바닥만한 얼굴엔 악마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파랑새 오던 날
병일은 그 날 밤 이슥해서 집을 나가더니, 그 이튿날도 그 사흗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영애는 혼자 애를 켜다가 못하여 넌지시 회사와 은행으로 알아보았다. 남편은 평일과 다름없이 일을 보는 줄 알고 적이 안심은 되었으나마 암만해도 남편의 행동이 위태위태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암만해도 무슨 일을 낼 것만 같았다. 새벽 늦게라도 꼭 집을 찾아들고 명화 년 때문에 근래에 와서는 이따금 왼 밤을 새우는 수도 혹 있었지마는 그 이튿날 아침을 절대로 넘기는 법은 없었다. 동녘이 환해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일부러 술이 더 취한 척을 하고 너스레를 치며 미안쩍어 하지 않았던가. 그러하였거늘 왼 밤은커녕 연일을 거퍼서 들어오지 않을 뿐인가. 사흘 만에 들어온다는 것도 오정 때나 겨워 고주망태가 되어 가지고 안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사랑에 그대로 쓰러졌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왼 종일 누워 있다가 밤늦게 또 집을 나가 버렸다. 이틀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큰 변으로 알았더니 이번에는 사흘이 되어도 나흘이 되어도 들어오지를 않았다. 인제 와서는 나흘 닷새 예사로 집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의 행동은 분명히 상궤를 벗어났다. 마치 돛대 잃은 배 모양으로 비틀거렸다.
영애는 남편의 번민을 짐작하였다. 짐작하면 할수록 그의 고통은 컸다. 회사나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보아 분명히 남편이 거기 있는 줄을 알았다. 있는 줄 알면서도 전화를 대어 달라는 말이 선뜩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남편의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 목소리만 들어도 조바심을 하는 마음을 얼마쯤 놓을 것을! 그러나 안타깝게 전화를 끊는 수밖에 없었다. 떳떳한 부부간이 아니요, 마치 뒷전에서 은근히 사내의 안부를 걱정하는 둘째나 셋째 계집처럼. 영애는 이것이 끝없이 슬펐다.
모처럼 돌아오는 남편이라도 그는 반색을 하며 맞을 수도 없었다. 혹시 남편이 돌아왔나 하고 그는 열 번 스무 번 사랑에 부리는 계집애를 내어 보내 보았다. 깊은 밤과 새벽녘에는 제가 몸소 몇 차례씩 사랑까지 나와 보았다.
얼마 전까지도 사랑을 기웃거리는 것은 점잖은 부인이 못할 짓인 줄 여겼었다. 인제 그런 체모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조차 남지 않았는가.
이렇게 기다리는 남편이건만 정작 남편의 들어오는 기척만 나면 기겁을 하고 몸을 피하는 영애였다 . 째기 발을 디디고, 남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도 와락 들어가 보지 못하는 영애였다. 내켜지지 않는 발길을 종용히 옮겨 안으로 들어올 제, 샐 무렵의 봄바람은 유난히 목덜미에 쓰리었다.
무슨 낯으로 남편을 대할 것인가. 무슨 말로 남편을 위로할 것인가. 제 얼굴만 보여도 남편의 역정을 더 돋울 것만 같았다. 남편을 위로하기는커녕 남편을 보기만 하면 제가 먼저 울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로는 애저녁에 병일이가 황황히 돌아왔다. 허둥지둥하며 쉰길로 안방에 들어온다. 그 걸음걸이로 보아 오랫동안 두고 고민하던 것을 귀정을 내려고 서두는 듯하였다.
영애는 기름기가 쭉 빠진 듯한 남편의 얼굴이 무서웠다.
“여보, 여보!”
병일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황급하게 불렀다.
“네?”
“여보, 여보! 여해 군 가 봤수?”
“아녜요.”
“아니라니?”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가 보란 제가 언젠데 입때 가 보지를 않았단 말이오? 왜 말을 듣지 않는 게야.”
“…….”
생트집이다. 영애는 어이없이 도적질하듯 남편의 기색만 살피었다.
‘무슨 일을 내려는고?’ 영애는 속으로 생각하며 몸을 오그라 붙이었다.
“왜 가보라니까 안 가는 거야.”
병일은 눈까지 부라린다.
영애는 웬 영문인지 곡절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몹쓸 짓을 저지른 여해를 병문 않았다고 이대도록 역정을 낼 리야 있을 것인가. 아모리 예수와 같은 거룩한 마음을 가진 이라 한들 그 짓까지야 용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남편의 뜻은 분명 딴 데 있는 것이다. 나를 골리려고 일부러 말 허두로 꺼낸 것이다.
영애는 정말 벼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우레 소리를 흘려들었다.
“지금이라도 가우.”
남편은 내던지듯 또 한 마디 뇌까린다.
“어딜 가요?”
“여해 군 병원 말야. 입때 한 말은 뭘루 들었누?”
“지금 가란 말씀예요?”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다녀와!”
“참 말씀예요?”
“그럼, 내가 거짓말할까. 얼핏 가요, 가.”
“지금 어떻게…….”
“지금 어떻게라니 아직 아홉 시도 못 되었는데 가면 어떻단 말요?”
“왜 별안간에…….”
“왜 별안간은? 내가 가 보라고 한 제가 그래 시방이 처음이란 말요?”
“가 보면 뭘 해요?”
“어 가보라도 또 그러는군. 글쎄 좀 가 봐요.”
남편의 화증은 조금 수그러지는 듯하였다.
“무슨 전할 말씀이나 계셔요?”
“전할 말이 무슨 전할 말이람? 그저 가 보는 게지. 입원한 지도 하두 오래고 하니, 인정간에 가 봐야 될 것 아니오?”
“그저 다녀만 와요?”
“그래, 그저 다녀만 오란밖에.”
암만해도 남편의 참뜻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영애는 있는 용기를 다 내어 남편의 말을 거절하기로 결심하였다.
“난 싫어요. 가기 싫어요.”
영애는 재바르게 말을 끊고 남편의 호통을 기다렸다.
“어, 가 보라도 그러는군. 좀 가 보아요.”
병일의 성은 웬일인지 짚불처럼 사그라졌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더니 나직나직하게 마치 사정을 하는 듯하다. 남편의 태도는 갈수록 수수께끼였다.
“왜 그러셔요? 가 봐야 될 일이 뭐예요?”
영애도 도지게 먹었던 마음을 풀고 은근히 물어보았다.
“그 까닭은 차차 말할 테니, 위선 가 봐요. 가서…….”
“가서?”
“가서 눈치나 좀 보고 오구려.”
“무슨 눈치를 봐요?”
“어, 그 눈치가 아니라…….”
병일은 더듬거린다.
“어, 그…… 그 어떻게 하고 있는 꼴이나 보고. 어, 그 입원비도 오래 치르지 못했을 테니, 이걸 갖다 주고…….”
“뒷집 큰애기 단봇짐 쌀 때구려, 흥.”
“큰애기 아니라도 가슴이 술렁술렁해지는걸!”
여해는 빙그레 웃었다.
“참, 봄이 되면 왜 가슴이 술렁거릴까요?”
“그걸 누가 아오? 술렁거리는 가슴에게 물어 보구려.”
“선생님, 가슴은 왜 술렁거려요?”
“내 가슴 술렁거리는 건 내가 알아 할 테니, 명화 씨 가슴이나 물어 보구려.”
“내 가슴 술렁거리는 까닭이야 나도 안답니다.”
“옳거니, 그 까닭을 좀 들읍시다.”
“그 까닭이야 뭐, 그 까닭이야 뭐…….”
명화는 말을 얼버무린다. 그는 전에 없이 얼굴을 붉히었다.
“에이, 그 얼버무리는 것, 왜 똑똑히 말을 못해요?”
여해는 전날 명화의 말씨를 고대로 흉내내었다.
“남의 말 책이야 잘 잡으시지. 남의 말 되풀이하기도 고만이구.”
“말 배우는 사람이 말 잘하는 사람의 말본이나 떠야 될 것 아니오?”
“에그머니나 선생 뺨치겠네.”
“황송합니다. 선생님께옵서 너무 제자를 꾸중만 하시니 어데 견디어나겠소? 가슴 술렁거리는 까닭이나 일러 주소서.”
“잘한다, 잘한다. 왜 오늘밤에는 까짜만 올리셔?”
명화는 성을 내며 딱새같이 소리를 질렀다.
“까짜는 누가 올려요? 그 까닭이나 좀 들읍시다그려.”
“까닭이 무슨 까닭예요? 온 참.”
“압다, 그러지 말고. 왜 기껏 얘기를 하다가 그 까닭만 말 못할 게 뭐란 말이오?”
여해는 명화가 자기를 졸르던 그대로 성화를 바치었다.
“참 사람 죽겠네.”
“그만 일에 죽을건 천부당만부당한 일, 그 까닭만 좀 들읍시다그려. 요새 병일이와 밤마다 밤새움을 한다더니 그 까닭이 그 까닭이오?”
“병일 씨하고, 흥.”
하고 명화는 입을 비쭉하였다.
“그런데, 참 그 어른이 요새 웬일이예요? 밤마다 고주망태가 돼 가지고 사람을 못살게 구니.”
“봄바람에 놀아나는 게지.”
“놀아나는 것도 아녜요. 오만상이나, 찌푸리고, 그저 술 술, 술타령만 하겠지. 요릿집에서 밤을 뻐언히 밝히고.”
“아름다운 마누라에 아름다운 기생에 왜 술맛이 안 날거요? 더구나 봄이 것다,”
“그런 것도 아닌가 보던데. 아마 무슨 걱정이 있던가 보던데요.”
“팔자 좋은 사람이 걱정이 무슨 걱정이오? 그야말로 걱정도 재미겠지.”
빈정거리고 여해는 한숨을 내어쉬었다.
“아녜요. 걱정도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닌 것 같아요. 까닭 없이 골딱지를 내고, 성미를 부르고, 술 주정을 마구 하고. 전에 없이 사람을 잡으면 놓지 않고.”
“명사것다, 부자것다, 잡히면 좀 좋겠소? 그래서 가슴이 술렁거리는 게로군!”
“아이 선생님도 자그마치 비꼬아요. 돈에만 눈 어두운 명화 년은 아니랍니다. 가슴 술렁거리는 까닭은 따로 있답니다.”
“정말 가슴 술렁거리는 까닭이 있구려.”
“있기만 있어요.”
명화는 자랑스럽게 되받았다.
바람은 더욱 몹시 불어제친다. 우지끈 뚱땅 들부수는 듯한 가운데 껄껄거리는 호탕한 봄의 웃음소리가 높게 들리는 듯하였다. 유리창은 물결처럼 구비를 치며 울렁거리었다.
명화는 품안에 손을 넣어 훔척훔척한다. 품속 깊이 든 무엇을 찾아내는 모양이다. 이윽고 찾기는 찾았으나 이것을 꺼내 보일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며, 지그시 가슴을 누르고 얼른 손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뭘 가지고 그러우?”
여해는 조급한 듯이 채쳤다.
그제야 명화는 말없이 손을 빼내는데 그 손에는 네모난 양 봉투 한 장이 쥐어 있었다. 제 품속을 떠나 바람을 쏘이는 것이 차갑기나 하다는 듯이 다시 제 뺨에 대고 비비다가 여해를 준다.
그 편지는 땀기에 젖고 살의 온기에 녹아서 녹신녹신하였다.
겉봉에는 ‘조선 경성 무교정 ○○번지 이명화 씨 앞(朝鮮京城武橋町○○番地 李明花氏 앞)’ 또박또박하게 여무진 먹 글씨로 썼고, 뒷장엔 편지 부친 이의 주소 성명은 적지 않고, 편지 봉한 어름에 정(情)자 한 자만 큼직하게 쓴 것이었다.
여해는 ‘이명화 씨 앞’이란 앞 자를 한글로 쓴 것이 눈에 조금 서툰 듯 하면서도 어쩐지 정다웠다.
여해는 곧 편지 알맹이를 뽑았다. 편지는 해사하나 능란한 철필 글씨다.
명화는 이 사연을 열 번 스무 번 읽고 또 읽어 보았으련마는, 여해의 보는 것을 또 한 번 더 보겠다는 듯이 여해의 턱밑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그러나 그 편지에는 명화가 그렇게 심심장지할 만한 특별한 사연은 없었다.
허두에는 오랫동안 청조(靑鳥)가 끊어졌으니, 필적도 잘 몰라보리라는 걱정을 하였다. 그것은 자기가 무정한 탓만이 아니요, 해외 생활이란 자연 바쁘고 총총해서 편지 한 장 부치기에도 여간 힘이 안 드는 것이라고 순순히 가르치듯 하였고, 수이 귀국을 하게 되어 만날 날이 멀지 않다는 사연이었다. 연애편지답게 아기자기한 잔사설도 없고 흐무러진 정열의 형용사도 찾을 수 없었다. 화류계의 정찰에 흔히 쓰는 멋질린 근경도 없었다. 그러나 담담한 가운데에도 아끼고 생각하는 정은 번뜩였다.
─ 몸이나 건강하오? 고달픈 생애에 남달리 부대끼는 양, 눈앞에 보는 듯 하오. 너무 눈살을 찌푸려 그 숱한 눈썹이 줄지나 않았는지 ─.
하는 것이라든지, 자기가 온다고 너무 조바심을 하고 기다릴까 보아, ─ 이 파랑새가 그대의 손에 잡힐 무렵에는 내가 벌써 이 곳을 떠났을는 지도 모를 것이오. 그렇다고 조급하게 기다리지는 마오. 한 달 두 달 지체될는지도 모르니―.
아주 마음을 턱 눅혀준 것이라든지, 유야랑과 기생 사이에 오고가는 예사 사연뿐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러한 두 사이로 여러 해포 만에 만나게 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는 듯한 구절이 없는 것이었다. 도리어 처량하고 절망적이요, 비장한 울림이 떠올랐다.
우리의 만날 날이 멀지 ─ 않았소 나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우리에겐 기쁜 일이라 할지. 나는 이 곳을 떠나려 하오. 육칠 년을 제 이의 고향으로 정들인 이 곳을 나는 길이 작별하려 하오. 내 몸은 해외 풍상을 겪기에 너무 지치고 약해진 것이오. 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리운 고토로 돌아갈 길뿐이오. 그리운 애인의 품속으로 뛰어들 길뿐이오. 그 부드러운 살이 나를 받아 주게 못 된다면은 그 맑은 공기 가운데서나 사라진들 어떠하겠소. ─ 여해는 편지 사연을 여러 번 훑어보고 나서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에 넣고 유심히 일부인을 보았다.
그것은 중국 상해 우편국 일부인이 찍힌 것이었다.
명화는 여해가 다 보고 난 그 편지를 받아서 도루 가슴속 깊이 감추었다.
기껏 보이고 나서 누구에게 들킬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편지한 이가 누구요?”
한동안 묵묵히 말이 없다가 여해는 힘없이 물었다.
“누구라면 아실 테요?”
명화의 대답은 비양스럽다. 저절로 떨어지는 입귀에는 웃음이 방싯방싯 터져 나왔다.
수이 그이와 만난다는 행복에, 그는 거의 압도가 되었던 것이다. 혼자 속에 접어 넣어두기엔 너무 크나큰 기쁨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이런 애인이 있는 것을 자랑이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아름답고 거룩한 비밀! 이날 이때까지 아모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 비밀은 인제 더 그의 좁은 가슴속에 갇혀 있기 싫다고 발버둥질을 하는 듯하였다. 사바세계와 인연이 끊어진 여해 같은 사람이야말로 제 속의 비밀을 흘리기에 가장 적당한 대수가 아닌가.
편지한 그이는 바루 김상열 그 사람이었다. 제 팔뚝에 뚜렷이 백년 랑군이라 새겼던 그 사람이었다.
그이는 야학교 선생이었다. 명화는 얼마나 여학생이 되기를 원하였던가.
그러나 가난한 그의 부모는 그의 소원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빨랫줄 같은 희망을 걸고 하나 딸을 기생에 집어넣었다. 딸의 살점을 파는 뉘도 오래 못 보고 일찍 죽을 것을.
명화는 양금을 치고 승무를 배우면서도, 생각은 학교로 달리었다. 그는 틈만 있으면 제 집에서 멀지 않은 보통학교 문에 붙어 섰다. 운동장에 헤어져 뛰노는 제 동무들! 그는 그 조그마한 목마와, 일렁일렁 움직이는 방아 같은 ‘부랑꼬’ 를 꿈에도 보았다.
“기생, 기생, 콩까리, 방구 돼지 네 돼지.”
그는 애들에겐 이런 놀림을 받고 몇 번이나 울었던가.
가정부인과 학교에 못 가는 애들을 위해 그 야학교가 설립되자 그는 부모도 몰래 입학을 해 버렸다. 그 때는 그의 나이 벌써 머리 얹기가 늦었지만, 어릴 때의 꿈이 그때도 그리웠던 것이다. 부모도 기를 쓰고 말리지는 않았다. 별로 큰 돈 드는 노릇도 아니요, 기생이란 식자가 있어야 장래에도 잘 불린다는 바람에.
명화는 저녁마다 얼굴의 분때를 지우고 야학에를 갔다. 그는 다 아는 본문과 아라비아 숫자를 다시 배우는 것이 그리 신통치는 않았으되, 나도 학교에 왔다! 하는 기쁨에 가슴은 울렁거렸다. 더구나 교단에 나타나는 젊은 선생들이 딴 세상 사람같이 보이었다. 자기를 보고 놀리고 시달리지 않는 남자도 있고나 하고 그는 스스로 놀래었다. 그 중에도 얌전스럽고 자랑스러운 김상열의 일거일동은 까닭 없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이런 행복도 명화에게는 길지 않았다. 그가 쭈뼛쭈뼛하던 본색은 그예 탄로가 나고 말았다. 기생년이 다니는 학교에 귀한 딸과 며느리를 보낼 수 없다고 부형들이 떠들고 일어났다.
학교는 명화를 퇴학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 불려 가서 이 말을 들을 때 어떻게 무안하고 설웠던가. 땅바닥이나 진배없는 몬지투성이 마룻장에 그대로 울고 쓰러졌다.
그의 손길을 잡아 일으켜 준 사람은 상열이었다. 선생의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우는 그를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도 상열이었다. 상열은 입에 침이 없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이 자기가 틈나는 대로 와서 가르쳐 주겠다고까지 약속하였다.
상열은 날마다 왔다. 아침 일찌감치도 오고 야학 파한 밤늦게도 왔다.
그의 행동은 어디까지 점잖았다.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나면 그는 언제든지 선선히 일어났다. 그 때 상열의 나이도 어렸다. 서울서 중학교를 갓 마치고 시골에 나려와 있던 터로, 명화와 네 살밖에 틀리지 않았다. 그는 명화를 가르치는 데 청춘의 정열과 감격을 쏟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상열의 태도가 어디까지 의젓하고 다정하게만 보였지만, 차차 날이 갈수록 너무 점잔만 빼는 듯하였다. 물같이 싱거운 듯하였다. 명화에게 이것이 미협하였다. 미협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마음은 더 쓰이었다. 올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애가 마르는 듯하였다. 명화는 상열에게 홑으로 선생만 되지 말고, 다른 무엇도 되어 주기를 은근히 바라게 된 탓이리라.
그러자 명화와 상열의 두 사이에 정분 났다는 소문이 높아졌다. 이 소문은 마치 될 듯 말 듯한 그들의 사랑의 꽃에 봄바람과 같았다. 명화는 자기가 그에게 누가 된다고 울었다. 상열은 무어 상관이 있느냐고 웃었다.
이러하여 그들의 인연은 맺어졌다.
그 뒤로 상열은 몹쓸 놈이 되고 명화는 싹수 없는 기생이 되었다. 세상의 조소와 박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단둘의 세상은 더욱 훗훗하고 오붓하였다.
그러나 상열은 아녀자의 사랑에만 매여 있을 녹록한 장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안타까운 이별의 날은 왔다. 상열은 표연히 상해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그때 상열은 열 아홉, 명화는 열 다섯. 애송이 남녀는 풋사랑에 쓰라린 작별에 울고 또 울었다. 명화는 그리 변하지 않을 이 사랑을 맹서하고 싶었다. 그는 푸른 점쯤 뜨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대규모로 백년 랑군이란 말과 김 상열이란 성명 삼 자를 제 팔뚝에 먹실을 넣기로 결심하였다. 어린 그는 옛날 열녀의 본을 받아 이 살이 썩을지언정 이 정절은 지키리라 결심하였다.
상열도 그 결심을 말리지 않았다. 그도 제 사랑의 자최가 명화의 살 속에 뚜렷이 남는 것을 깊이 감동하였다.
명화는 아픈 것을 기쁘게 참았다. 바늘 끝에 비치는 피를 보며 눈물 걸씬 걸씬한 눈에 웃음의 그림자를 띠었다.
‘백년랑군 김’까지 새기고는 상열은 애처로워서 바늘을 뽑아 버렸다.
그들은 으스러지도록 서로 안으며 또 한 번 울었다.
처음 떠난 뒤 얼마 동안은 편지가 거의 날마다 오다시피 하였다. 그들은 이 편지를 두 사이에 넘나드는 ‘파랑새’라고 불렀다. 사람 없는 어둑한 들판에 외로이 남은 듯한 명화에게는 이 파랑새가 얼마나 그립고 아쉬웠던가. 하로 한 번을 와도 도수가 뜬 듯하였다. 그러나 한두 달 지나는 사이에 이 파랑새의 나래는 점점 쉬었다. 날마다가 이틀 사흘을 건너게 되고 일주일이 되고 잊은 듯이 달을 넘기는 수도 있었다. 명화는 그의 무정을 원망하였다. 그럴수록 세월은 흘러가고 편지의 동안은 더욱 떴다. 명화는 야속하였다. 슬퍼하였다. 못 믿을 것은 사내라고.
그러나 명화 자신도 그에게 대한 정절을 일 년 나마를 지키지 못하였다.
부모가 욱대겨서, 촌부자 상투배기에게 첫 남편을 하고는, 죽고만 싶었다.
그는 정말 목숨 끊을 자리를 찾아 방천둑까지 나갔다. 푸르게 넘실거리는 물결에 눈물을 떨구고 있노라니 찾아 나선 부모에게 들키어 개 패듯 맞고 집으로 끌려왔다.
첫 번을 치르고 나서는 그는 수 없는 사내에게 쉽사리 몸을 내맡기었다.
그럴 적마다 팔뚝에 넣은 먹실은 그를 비웃는 듯하였다.
육체의 정절은 지키랴 지킬 수 없다. 차라리 마음의 정절이나 지키리라.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마음의 정절조차 이따금 흔들리었다. 부자도 겪고 건달도 겪고 호화자제며 해뚝해뚝한 학생이며 우락부락한 부랑자와 달착지근한 시인을 겪는 사이에 하마하더면 마음의 정조도 잃을 뻔하였다. 다행하게도 이런 유혹은 오래지 않았다. 자주 만나는 화류계의 사랑은 파탄이 쉬웠다.
그리울수록 떨어져 있을수록 첫사랑은 더욱 깊어가고, 깨끗해지는 듯하였다. 하늘이 높을수록 공기가 맑아지는 모양으로 처음 동안이 떠가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주 끊어질 듯하던 상열의 서신은 여러 해를 지나도 그저 그만치 계속되었다. 해가 바뀐다든지 주소가 변경이 된다든지 할 때면 꼭 파랑새를 날리었다. 무상심심장류수! 옛말 그른 데는 없었다.
명화 저도 슬픈 경우와 설은 사정을 당할 적마다 만지장서를 늘어놓았지만, 인제 와서는 저도 제 집이나 옮길 때가 아니고는 별로 편지질을 하지 않았다. 편지질보담 마음속에 넣어두고 종용히 생각하는 것이 더욱 깊숙한 맛이 날 것 같아서였다. 두 속은 피차에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여 잔사설을 늘어놓는 것이 도리어 군더더기 같아서였다.
기생으로 환갑을 지낸 오늘날, 한 해 두 해 지내갈수록 그는 기생 노릇을 서둘렀다.
돈냥이나 걷어쥐면! 그는 상해로 멀리 뛸 작정이었다. 그래 가지고 상열과 사랑의 둥우리를 엮는 것이 그의 최고 이상이었다. 세상은 반드러워졌다.
기생에게 그렇게 어수룩하게 돈을 쓰는 사내가 어디 그리 쉬운가.
이 목적을 달해 볼까 하고, 그는 요새 갖은 재조와 수단을 있는 대로 다 부려 병일을 얼르는 판이었다.
그런데 그이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 조선 땅에는 아주 나오지 못할 줄 알았던 그이가 이편에서 가기 전에 저편에서 먼저 온다고 하지 않는가.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다 한들 이에서 더 반가우랴, 이에서 더 기쁘랴.
명화는 생시가 아니고 꿈이나 아닌가 하였다. 편지 사연이 누가 곁에서 보아도 좋을 만큼 잔재미가 없고 어떤지 비창한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걸리었다. 거기서 부접지를 못할 무슨 탈이 생겼는가. 몹쓸 병이나 생기지 않았는가. 그러나 몸이 약해졌으면 대수인가. 병이 들었으면 대수인가 도리어 자기의 있는 정성과 마음을 다할 좋을 기회가 아닌가. 만나기나 하면! 마주 앉기만 하면! 쌓이고 쌓인 회포, 그리고 그리던 정이 봄바람 쏘인 얼음처럼 풀어질 것이 아닌가.
명화는 뺄 것을 빼고 추릴 것을 추리면서도 제법 자세하게 제 경력을 늘어 놓았다.
“그러면 팔뚝에 새겼다는 것이 아직도 남았겠구려.”
여해는 재미있다느니보담 차라리 처참한 표정으로 명화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물었다.
“사내들은 다 저러겠다. 팔뚝에 새긴 것 새긴 것하고 사죽들을 못 쓰니, 온 별일야.”
명화는 대번에 골을 낸다.
“아모라도 그게 궁금할 게 아니오?”
“그 궁금하다는 심사가 밉쌀맞단 말예요. 남의 팔뚝에야 뭘 새겼거나 왜들 상관이야?”
명화는 더욱 성을 낸다.
“대관절 있단 말이요, 없단 말이오?”
“그게 입때 남아 있어요? 사내들의 짓궂은 심사가 그걸 입때 남겨둘 줄 아슈?”
명화는 별안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남의 정표를, 그렇게 아픈 것을 참고 떠둔 남의 정표를 갖다가 …… 그이가 나오면 뭘 보이누…….”
명화는 넋두리를 넣어가며 흐득여 울었다.
“살에 넣어둔 게 없어졌단 말이오?”
“사내들 등쌀에 오려내고 말았다우.”
“오려내다께?”
여해는 놀라며 일어 앉았다.
“칼로……칼로……도려 내었다우……. 내손으로…….”
명화는 울며 여해의 무릎에 쓰러졌다.
“그걸 두자니 놀림감만 되고, 세상 사내들이 마음을 턱 주지 않는구려.
그이를 위한 정표가 도리어 우리 일에 방해만 되는 그걸 두면 뭘 해요?”
“그러면 도려낸 것도 그이를 위한 탓이구려.”
“그야 그렇다 뿐예요? 그렇지만…….”
“어디 좀 봅시다.”
명화는 저고리 고름을 끌르고 팔쭉지를 걷어내었다. 보얀 살 위에 한 뼘만치나 찌그러붙은 자욱이 천연 굵은 지렁이가 기는 듯하다.
“이럴 수가!”
여해는 끔찍스러워하였다.
“이걸 보면 그이의 마음이 어떠하겠어요? 제가 남기고 간 사랑의 자최가 이 꼴이 된 걸 보면 그이가 용서를 해 줄까요? 내 마음을 믿어 줄까요? 내 마음이 변해서 이런 끔찍스러운 짓을 한 걸로 오해나 않을까요?”
명화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물끄러미 여해를 바라보며 근심스럽게 물었다.
바람은 여전히 분다. 와글와글 유리창에 발버둥질을 치는 듯하였다.
여해의 가슴속에는 분화산이 탁 터지는 듯하였다. 뜨거운 김이 전신에 확 끼쳤다. 그는 명화를 으스러지라고 안았다.
명화는 몸을 빼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해의 쇠깍지 같은 팔 속에서 조그마한 새 모양으로 할딱거리며 입술을 쳐들어 여전히 근심스럽게 물었다.
“그이가 용서를 해 줄까요? 마음을 알아 줄까요?”
여해의 눈 밑에는 눈물을 들이마신 명화의 입술이 이슬 머금은 꽃잎같이 떨리었다. 여해의 팔깍지는 더 좁아들었다. 그의 입술은 명화의 입술을 쥐어뜯을 듯이 달라붙었다…….
바람 소리는 지동을 일으키는 듯하다. 병원 부속 건물의 양철 지붕을 벗기는 지 야단스러운 음향을 내었다.
그들은 자기들 병실 문을 뚜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문이 열리는 것도 몰랐다. 영애가 들어선 것도 얼른 알아보지를 못하였다.
밟히는 지폐
영애는 내켜지지 않는 걸음으로 병원에를 왔다.
그는 기뻐해야 옳을 일이 아닌가. 여해의 장래를 아름답게 훌륭하게 꾸며 주려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은주보담 더 좋은 신부감을 구해낼 수 있었을까. 한다하는 명사, 한다하는 재산가의 외누이요 미인이고 재원인 당자! 왼 조선을 뒤져도 이런 색시를 찾아내기 어려웠으리라. 여해의 앞길은 양양한 봄 바다와 같이 열릴 것이 아니냐, 옛 애인을 위하던 자기의 공상이 쩍 말없이 찬란하게 실현될 것이 아니냐, 이 걸음이야말로 어깨춤이 절로 날 걸음이 아니냐.
이래도 그는 부족하였던가, 미협하였던가?
영애의 가슴속엔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 얽히어 영애 자신도 웬 셈인지를 몰랐다.
‘여해 씨와 아가씨와 결혼?’ 아모리 뇌어 보아도 머리에 선뜻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럴 수가…….’ 하고 영애는 웬일인지 제 가슴이 텅 비어지는 듯한 무엇을 에이는 듯한 이상한 감정을 느끼었다 . 이 야릇한 감정은 여해가 은주 방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볼 때에도 그의 사시나무 떨듯 하는 몸을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은주는 여해의 안해 되기에 너무 귀하였다, 너무 어여뻤다.
그는 여해의 출옥 임물에, 여해를 위해 갖은 공상으로 밤새움을 할 때 볼꽃처럼 돋았다가 스러지고 스러졌다가 돋는 생각 가운데는 미상불 여해의 장래 안해도 아니었다. 어떤 인물이라고 구체적 상상은 해 본 것이 아니나, 그러나! 은주와 같이 귀하고 미인은 아니었다. 자기와 대등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그 일이 생긴 뒤로 은주 보기가 면구스럽기도 하였지마는 보기도 싫었다. 어쩌다가 마주뜨리면 까닭 없이 얼굴이 화끈하고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여해에 대한 감정은 이를 악물고 물리쳤다. 어떻다고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한바탕 악몽으로 돌려버리려 하였다.
그가 여해와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러나 누구의 영이라고 그일 수 있는가. 그가 제 마음을 제가 두려워하였다. 밉광스럽고 무섭고 징그러운 생각이 솟아오르는 것을!
그는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였다.
그는 내켜지지 않는 손으로 병실 문을 뚜드렸다. 여러 번 뚜드렸다. 아모 기척이 없다. 그는 서먹서먹하면서도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순간 제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란! 그는 하도 무참해서 문을 탁 닫고 도루 나와 버렸다.
여해와 명화는 방문 앞에 사람 얼굴이 얼씬하다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여해는 감았던 팔을 풀었다. 명화는 눈이 호동그래지며,
“누구일까……?”
하고 고개를 제싯하였다.
“글쎄…….”
하고 여해도 무엇을 엿들으려는 것처럼 귀를 쭝긋 하였다. 명화는 몸을 털고 일어나 슬리퍼를 짤짤 끌며 종종걸음을 쳐서 문 밖까지 쫓아왔다.
거기는 뜻밖에 영애가 서 있지 않는가. 명화는 일 찰나 어리둥절하다가 짐짓 아모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글방글 웃었다.
“난 누구시라구.”
잠깐 말을 끊었다가,
“아이구 아씨님, 오셔겝쇼.”
하고 나붓이 절이라도 할 듯하다.
영애는 살이 떨리도록 얄밉다 분한 생각이 났다. 도끼눈을 뜬 눈엔 실낱 같은 불길이 이는 듯하였다.
“여기에 왜 이러고 계셔요? 어서 들어가셔요.”
명화는 깍듯이 손목이라도 잡아 끄을 듯하다.
이 천도깨비 같은 년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영애는 대꾸도 않고 새근새근 어깨로 숨을 쉬었다.
영애는 일껏 왔다가 그양 돌아설 수도 없었다. 쇠꼬챙이같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명화를 따라 들어왔다.
“T동 아씨님 오셨어요.”
명화는 병실에 들어서며 전갈 사령 모양으로 부르짖었다.
여해는 그대로 앉았기도 무얼하였던지 어느 결에 누워 있었다. 영애는 병상 가까이 왔다.
“좀 어떠세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떼었다. 그는 환자의 얼굴을 마주보기가 바시다는 듯이 눈을 떨어뜨리었다.
“네 많이 나았습니다. 염려하신 덕택으로.”
여해는 소리를 버럭 지르다시피 쾌활한 목청을 내었다. 그 말 속에 거슬거슬한 뼈가 섞인 것은 장님이라도 만져볼 수 있었다.
영애는 귀청이 잉하고 울리는 듯하였다.
‘자기는 무얼 잘했다고 퉁명인구?’ 무두무미하게 이런 생각이 지나간다.
“참 많이 나으셨어요. 그 때 입원을 안 했더면 큰일 날걸. 다시 살아나신 거나 진배없지요.”
명화는 거들어 치하하듯 말하였다. 입술이 빗슥해지는 것을 참노라고 입을 오무려 붙이었다.
영애는 두 남녀의 입을 모은 총공격에 뒤로 넘겨 박힐 듯한 것을 억지로 버티었다. 그도 응전할 준비로 첫째 명화를 향해 곱지 않는 눈살을 쏘았다.
그 눈살은 이년아, 너는 입을 담치고 있어 하는 듯하였다.
“어휴, 무서워라 왜 남을 그렇게 흘겨보십쇼? 전 잘못한 일도 없는데 자 이리 앉기나 하십쇼. 두 분이 오래간만에도 만났으니.”
곱지 않은 눈살쯤으로 거꾸러질 명화가 아니었다. 그는 적을 어린애 다루듯 하였다. 동근 의자를 적의 궁덩이 밑으로 떠다박지르듯 밀어 넣으며 고분고분하게 권한다.
영애는 가뜩이나 허전허전하는 정강이가 의자에 밀려 힘없이 접치었다. 그는 무너지는 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오 옳지 그렇게 앉으시고, 두 분이 무슨 정담이라도 하십쇼. 쇤네는 물러갑니다.”
하고 명화는 슬쩍 몸을 돌려 나가려 한다, 영애는 또 한 번 명화를 노려보았다. 별안간 한기가 드는지 이가 딱딱 마주치었다.
“왜 그럽시오? 나가지 말란 말씀예요? 있으라면 있읍지요. 난 또 두 분께 방해가 될까 봐서, 호호.”
명화는 깔깔 웃었다.
‘이년이 모든 것을 아는고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비수와 같이 영애의 가슴을 에이며 떠올랐다. 야속과 미움에 타는 눈초리를 이번에는 여해에게로 돌리었다.
“귀하신 몸으로 그 바람을 쏘이시고 오시느라구 얼마나 수고를 하셨습니까?”
여해는 명화가 자기를 찾아온 첫밗에 하던 말이 불쑥 입을 뚫고 나와 버렸다.
‘내 말이 너무 심하고나.’ 여해는 진작 후회하였으나 벌써 말은 나온 뒤였다.
“그렇구 말구요. 그 귀하신 몸에 그 높으신 몸에 병환이 나면 어쩌자고 그 모진 바람을 쏘이시고……. 이번에도 자동차는 타고 오셨겠지요?”
명화는 한 술 더 뜨고 생글생글 웃었다.
여해는 명화를 향해 눈을 껌뻑하고 손을 저어 보이었다. 그런 소리를 마구 말라는 뜻이리라.
영애는 자기에게 대한 모욕의 언사보담도 이 눈껌쩍이만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그는 곧 자리를 차고 일어서려 하였으나 문득 제가 온 사명을 생각하였다.
‘환심을 못 사 둔다손 치더라도 이 돈을 전하고 가야.’ ─ 세상에 이럴 수도 있는가. 이렇게 남의 본정을 모를 수도 있는가. 어쩌면! 어쩌면! 두 사이의 비밀을 기생년 따위에게, 저 천도깨비 같은 명화 년 따위에게 까바치고 그년과 한편이 되어 가지고 눈껌쩍이를 해 가며 나를 모욕할까?
영애는 야속해 하기엔 너무 분하였다. 그의 입술은 파랗게 질리며 실룩실룩 떨리었다. 눈물 한 방울이 빠작빠작 타는 듯한 눈에서 기름같이 떨어졌다.
‘내가 왜 천착스럽게 눈물을 흘리고?’ 영애는 제 눈물을 보고 질색을 하였다.
‘수인사나 치루고 돈이나 주고 선선히 일어서면 고만이 아닌가.’ 영애는 마음을 도사리었다.
“인젠 많이 나으시대요?”
“낫지를 못해 걱정이오.”
“잡숫기는 뭘 잡수셔요? 진지를 좀 잡수셔요?”
“죽도 먹고 밥도 먹고!”
여해의 엇먹는 대꾸에 부애가 끓어오르는 것을 참노라고 영애는 무진 애를 썼다. 저편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들은 척을 말아야 한다. 기계적으로 내 물을 말이나 물으면 고만이 아닌가.
“의사가 언제쯤 퇴원을 하셔도 좋겠답디까?”
“좋을 때가 따루 있겠소? 오늘이라도 나가면 나가는 게지.”
“좀 오래 조리를 하셔야지.”
“흥! 조리? 무슨 놈의 팔자로.”
“수술한 자리는 어때요?”
“어떻기는 그저 그렇지.”
“지금도 심을 박나요?”
“심을 박는지 뭘 박는지.”
“인젠 고약이나 붙여 두잖을까요?”
“글쎄 뭘 붙이던가!”
문답은 건성으로 오고갔다.
“두 분이 무슨 신파 연극을 하셔요? 듣자니 우스워 죽겠네. 호호!”
명화가 옆에서 말을 넣었다.
영애는 급하였다. 이 바늘방석 같은 자리에서 일초 바삐 떠나고 싶었다.
그는 낌새를 볼 여유도 없었다. 핸드백을 열고 불쑥 돈을 꺼내었다.
“이거 약소하나마 병비에 보태 쓰시라고 애 아버지가 보내십디다. 백 원 이야요.”
하고 환자의 벼개 옆에 놓았다.
여해는 고개를 들어 영애의 돈 놓은 것을 얼른 보고 더러운 것을 본 듯이 곧 눈길을 돌리었다. 그 눈에는 불이 번쩍 나는 듯하였다.
“병비에 보태 쓰라고, 흥. 가련한 전과자에 대한 천만장자의 동정은 감사합니다만, 병비는 치렀으니 이 돈을 도루 집어넣으시오.”
“무슨 돈으로?”
영애는 저도 모르고 불쑥 이런 말이 나와 버렸다.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분이 이 한 마디에 뭉친 듯하였다. 무슨 입찬 소리냐, 무슨 주리를 할 청관이냐 하는 듯이,
“흥, 무슨 돈으로?”
여해는 곱새겼다.
“흥, 무슨 돈으로?”
명화도 메아리처럼 되받는다.
“흥, 무슨 돈으로! 엊그제 감옥에서 나온 놈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 그럴 일이오.”
여해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전신은 떤다.
“박 사장께 똑똑히 전해 주시오. 박 사장 살해 미수범 김여해는 감옥에서 나온 덕택에 돈이 있더라구. 쇠창살 속에서 썩으며 번 돈 사십 팔 원 오십 전이 있었더라구. 이것도 박 사장께서 징역을 살리시지 않았더면 없을 돈이니 사장님께서 주신 거나 다름이 없다구.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라구. 애인을 팔아 징역을 살고 돈벌이를 한 놈에게 입원비까지 주셨으니 그만하면 김여해 애인 사신 값은 치르고도 남은 게라구…….”
“조섭이나 잘 하셔요.”
영애는 귀를 막고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이걸 가지고 가시오.”
여해는 침대 위에 놓인 지폐장을 들어 영애의 뒤꼭지를 후려갈기듯 던지었다.
십 원짜리 지폐 열 장은 영애의 머리 위에서 쫙 헤어져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제 주인을 옹위하듯 앞뒤로 떨어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요?”
돌아서던 영애는 멈춰 섰다.
여해는 돌쳐서는 영애를 바라보고 부들부들 떨다가 픽 코웃음을 웃어 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흥 그럴 일이오. 잘못 되었구려. 황금과 결혼합신 귀부인께 돈을 던져서 대단 죄송합니다. 맞으셔도 지폐 뭉치에 맞으셨으니 과도히 노여우실 건 없으실 텐데…….”
파랗게 질리었던 영애의 얼굴은 대번에 피를 뿜는 듯이 새빨개졌다. 그는 한 걸음 다가들어 왔다.
“무슨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하셔요? 이러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렇게 저를 모욕하시다니…….”
영애는 여해에 대한 원정과 야속과 분함이 일시에 복받쳐 올랐다.
“저는 여해 씨를 위해 무슨 노릇이라도 하려 했습니다. 제 집안 사정 탓으로 사랑의 맹서를 어긴 것이 죄밑이 되어서 무슨 수로든지 그 죄의 만분지 일이라도 삭쳐 보려 했답니다. 출옥하실 무렵에는 정말 밤잠도 달게 자지 안 했답니다. 어떻게 하면 장래를 보장해 드릴까, 어떻게 하면 그 몹쓸 고역을 치르신 대신으로 즐겁게 기쁘게 해 드릴까 하고.”
“거룩하시군. 바루 전지전능의 신이구려. 병도 주고 약도 주고. 황금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니까, 재산가의 안해가 되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될 줄 알았구려, 흥.”
“황금과 결혼! 재산가의 안해! 말말이 꼬집으셔도 저는 달게 듣겠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제가 결혼을 한 게 어데 제 혼자 자의로 한 노릇입니까? 저를 버리고 달아나기까지 않으셨습니까? 집안을 위해 일신을 희생하자고, 우리의 사랑을 희생하자고, 그 깨끗하던 마음, 그 높으시던 뜻은 어데다가 내어 버렸습니까?”
“감옥에다 내어 버렸소. 오 년 동안 청춘의 피가 썩을 때 마음도 썩고 혼도 썩어 버렸소, 허.”
여해는 서글픈 웃음을 웃었다.
“아모리 하기로서니 그렇게 변하실까요? 우리의 사랑이 좀 깨끗하였습니까? 저는 우리의 사랑이야말로 불에 넣어도 타지 않을 줄 믿었습니다. 아모리 서로 갈리고 경우가 변하더래도 우리 사랑의 구실은 깨어지지 않을 줄 믿었습니다.”
영애는 흑흑 느낀다.
“그것은 꿈이오. 우리 어릴 적 꿈이오. 입으로는 그런 소리를 하지마는 정말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소? 가슴에 손을 대고 물어 보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오.”
“꿈이야 꿈이지요. 이렇게 되고 보니 꿈이라도 어림없는 꿈이지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본래부터 정신적인 우리 사랑이 아니예요? 그러니 여해 씨, 그 때 말씀마따나 하필 부부가 되잖아도 좋지 않아요, 남매의 의를 다시 맺고, 정말 친동기같이 지나면 그만 아니예요. 그런데…….”
“애인도 되었다가, 남매도 되었다가, 인생이 어데 떡가루 반죽 같은 줄 아시우?”
여해는 두꺼운 유리 곱보에 침을 튀 하고 배앝았다.
“마음대로 휘저어서 송편도 만들고 경단도 만들고. 흥 그런 말로야 무슨 걱정. 아스세요.”
잠자코 있던 명화가 말참견을 하며 입을 비쓱하였다.
영애는 힐끗 명화를 흘겨보고 다시 여해를 보며 애닯은 목소리를 떨었다.
“저는 정말 여해 씨를 믿었습니다. 저는 여해 씨가 그러실 줄은 참말 몰랐습니다. 그런 우리 사이를, 그런 우리의 비밀을 되지 않은 기생년 따위에게 다 말씀을 하시고.”
영애는 어깨를 부들부들 떤다.
명화는 남의 싸움을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난데없는 총알이 제 살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다가 나종엔 독사같이 골이 올랐다.
명화의 입술에는 찬바람이 훌훌 나는 듯하였다.
“아니, 아씨님 망녕이 나셨어요? 왜 기생은 걸고 드십니까? 기생년은 워낙 신성하여서 그런 사랑 얘기는 못 듣는단 말씀예요? 그런 염려는 놓으세요. 기생년들도 귀부인만은 못하지만 더러 그런 사랑도 겪어 본답니다. 말씀 좀 하신들 하상 대사예요? 어서 그 진저리 먼저리 나는 사랑 타령이나 늘어놓으세요. 그런 객쩍은 염려는 마시죠.”
영애는 홉뜬 눈으로 명화를 바라보며 입술이 벌벌 떨리기만 하고 말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규 아씨님, 왜 이러십쇼? 왜 도끼눈을 뜨시구 상없게. 아스세요. 어서 하실 말씀이나 하세요. 아씨님께서야 사랑을 하든 안방을 하든 내게 무슨 상관이 있다구 그러십쇼? 걸고나 들지 맙쇼.”
명화는 냉랭하게 웃었다.
영애는 명화를 쏘던 눈살을 여해에게로 돌리었다. 모든 것이 네 탓이다 하는 듯이.
“이게, 이게 무슨 모욕이에요? 어쩌면! 어쩌면! 저를 이렇게도 모욕을 주십니까? 저는 정말 제 힘껏 제 정성껏 여해 씨를 위한다고 했답니다. 저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어 애 아버지를 졸랐답니다. 그이도 선선히 승낙을 해 주었답니다. 어데까지 여해 씨의 장래를 보장해 주마고, 취직도 시켜 드리고, 장가도 들여 드리고 집도 사 드리고.”
여해는 끙 하고 황소의 울음 같은 신음성을 내었다. 침대가 쩌렁하고 울었다,
“오 년 징역을 살리고 제 할 것을 다 하고 나서 취직을 시킨다 장가를 들인다…… 천만장자란 못할 일이 없군!”
“어데 징역이야 그이가 살렸어요? 제 탓이라면 제 탓인지는 몰라도…….”
“영애 씨는 입때 그렇게만 생각하시우?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만 생각하였소. 그게 틀린 생각이었소. 그 놀라운 어른이 황금만으로 올가미를 삼아 가지고 나를 얽어 넣었소. 당신의 그 알뜰한 남편이.”
“그건, 그건 억설이시지. 그럴 리야.”
“그럴 리야 없다? 그러하겠소. 그러나 사실로 얽어 넣고 징역 살고 나온 내가 여기 이렇게 눈이 등잔같이 살아 있는 다음에야 어떡하겠소?”
“어데 그야…….”
“어데 그야, 내가 칼을 들고 들어간 탓이지, 그 어른의 탓이 아니란 말이오? 그럴 거요. 대관절 내가 무슨 증거로 군자금 모집원의 혐의를 받은 줄 알기나 하우. 댁의 벽장에서 뒤져 나온 협박장의 필적과 내 필적이 같은 까닭이었소.”
“그야 우연히 같을 수도 있을 것 아녜요?”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소. 그리고 공교로운 내 운명으로 돌려버리었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어림없는 생각이었더란 말이오. 세상일이란 공교로 우려면 무척 공교롭게 되는 수도 있지마는 어디 그렇게 공교로울 수야 있소? 여러 해 동안 의심해 나려오던 것이 인제야 바루 풀리었소.”
“그럼 그 협박장을 애 아버지가 일부러 꾸며내기나.”
“그렇소. 꾸며내었소, 꾸며낸 거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소.”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그렇게? 흥, 그 협박장을 꾸미는 데는 영애 씨도 한 몫을 착실히 본 것이오.”
“제가 그런 벼락을 맞을…….”
“벼락은 두었다가 맞고, 말이나 들어 보시오. 내 필적과 댁에 온 여러 협박장 가운데 같은 것이 있다기로, 나는 하도 이상해서 보여 달라고 졸랐소.
그러나 경찰에서는 세상 보여주지를 않았소. 나종 검사국에서야 그 협박장을 얼른 보았소.”
“그래, 그게 꾸민 협박장이란 말씀예요?”
“아니오. 그건 협박장이 아니었소. 편지 봉투이었소. 편지 봉투라도 겉장에 편지 받을 사람의 주소 성명을 쓴 것은 뜯어내었고 뒷장에 부친 사람의 주소 성명만 적은 것이었소. 그것도 연 월 일과 봉천 서탑(奉天西塔)이란 네 글자만 남은 것이었소. 그것은 갈데없는 내 글씨였소. 나는 기가 막히었소. 운명의 작난에 한탄만 하였을 뿐이오. 더구나 그 때는 영애 씨 말은 입 밖에도 아니 내고, 무슨 죄목으로든지 징역만 살 작정이었으니까. 그 수상한 편지 봉투를 따져볼 생각도 아니하였소. 더구나 누가 나를 얽어 넣으랴고 악마와 같은 수단을 부릴 줄이야 꿈에도 하지 않았었소. 그게, 그게.”
영애와 명화의 눈은 다같이 호동그래졌다.
“그게, 그게, 인제 생각하니 바루 내 글씨구려. 내 필적이니 같을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그게 웬일일까? 그럴 리가…….”
영애는 놀라면서 그래도 못 믿어한다.
“그만하면 그게 무슨 편지의 겉봉인 줄 알겠구려.”
하고 여해는 영애를 노려본다. 먹장 같은 눈썹 하나 하나가 꼿꼿이 일어섰다. 왼 몸의 뼈가 으적으적 소리를 내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영애는 간신히 모기 같은 소리를 떨었다. 그는 너무 엄청나고 무서운 사실을 믿으랴 믿을 수 없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그렇소. 그럴 리가 없어야 당연한 일이오. 제 사랑의 편지를 이용해서 제 애인을 얽어 넣을 리야 만무한 일이오. 엊그제까지 죽네 사네 하던 사내의 편지를 제 남편을 주어 가장 교묘한 방법으로, 가장 음흉한 수단으로 변작을 해 가지고 청년 하나를 감옥에 썩히다니! 사람의 가죽을 쓰고야 차마 못할 일이거든. 하물며 한다하는 명사, 한다하는 귀부인의 하실 짓이겠소? 그러나 사실인 걸 어떡하오? 엄연한 사실인 걸 어떡하오?”
“그건 오해십니다. 암만해도 그건 오해십니다. 그럼 제가 봉천에서 주신 편지를 애 아버지를 드렸단 말씀예요? 어디 그런……그런…….”
“그럼, 그 편지가 지금도 영애 씨한테 있소?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않고 고대로 남아 있소? 나는 지금도 역력히 기억하오. 어느 날 어떤 사연의 편지를 한 것까지 외우자면 외우겠소. 헤이라면 헤이겠소. 그 편지를 나를 갖다 주시겠소? 봉투를 맞추어서 나를 찾아다 주시겠소? 그렇다면 내가 오해를 풀겠소. 내 살과 내 혼을 지옥의 가마솥처럼 지글지글 끓이는 이 의심을 풀겠소”
“…….”
영애는 고개를 바루 들지도 못하였다. 그에게는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던 까닭이다. 결혼한 지 얼마 만에 제 세간을 챙기다가 그 편지 꾸러미가 튕겨 나와서 병일이가 보고 뺏아 간 것을.
“이거 정말 보물이구려. 당신의 사랑의 금자탑이구려.”
하고 제 남편은 싱글싱글 웃으며 아모리 달라고 졸라도 영영 주지 않던 것을.
“왜 대답이 없소? 응 그 편지를 어떻게 했단 말이오?”
“…….”
“아이, 선생님도 딱하십니다그려. 없어진 편지를 내 놓으시라면 어떡하신단 말씀예요? 죽은 애를 찾아오라는 게지. 부부간에 그런 편지를 보이기도 예사구, 사내란 그런 편지를 보면 어데 뺏구 주나요? 뻔한 노릇이지. 그러기에 비밀이란 지키기 어렵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기생년 따위에게 그런 말씀을 다하시지 않으셨어요. 구만두세요, 인젠 다른 정담이나 하시는 게 좋지 않아요.”
명화는 보고나 온 듯이 가루맡아서 죽 설명을 하였다.
“그러기에 사람이란 입찬소리를 못하는 게야. 선생님께 비밀을 안 지켰다고 그렇게 울며불며 하시더니만, 그 말이 침도 마르기 전에 아씨님께서 비밀을 안 지킨 것이 또 탄로가 났으니 어차피 피장파장이야. 호호!”
명화는 재미있다는 듯이 땍때글 웃었다.
영애는 어마어마한 바위덩이에 엎눌리고 짓바수인 듯하여 갱신을 못할 듯하다가 명화의 웃는 소리를 듣고 왼몸의 피가 거꾸로 흘렀다. 제 앞에 설설 기는 듯하던 기생년이 이렇게 골을 올리고 빈정거리고 조소를 할 줄이야!
그는 명화를 대매에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뜯어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체모고 무엇이고 다 벗어 던졌다.
“너 이년, 너 이년!”
영애의 입술은 금시 금시 쪼글쪼글 말라붙었다. 그만큼 그의 입김은 뜨거웠던 것이다.
“너 이년! 뉘 앞이라고 함부로 조동아리를 놀려. 아가리를 찢어 놓을 년!”
명화는 영애의 공격을 예기나 한 듯이 별로 놀라지도 않고, 여전히 생글생글 웃었다.
“어규, 아씨님, 말씀을 좀더 낮춰 하실 수 없어요? 뉘 앞은 뉘 앞이에요? 색시 적에 서방질한 귀부인 앞이지요. 그런 놀라우신 어른 앞에는 입을 꿰매어 두는 걸 어데 기생년 따위가 그런 법을 아나요? 그저 죽여만 줍쇼. 호 호…….”
하고 명화는 능글능글하게 웃다가 별안간 약오른 살무사 모양으로 회회 바람을 낸다.
“흥, 뭐 이년! 뭐 뉘 앞! 그런 소리가 만만히 나오는 건 무엇 때문인구!”
혼잣말같이 뇌이다가 너저분하게 떨어진 지폐장을 보고,
“오 옳지, 이것 때문이군!”
명화는 지폐장을 벌레나 문질러 죽이는 것처럼 지근지근 밟았다.
한참 밟다가 제기나 차듯이 지폐장을 영애를 향해 차 던지었다.
“엿소, 이거나 줏어 가우. 이 아까운 돈, 애인도 헌신짝 같은 이 돈, 귀부인으로 곤댓질을 하는 이 돈, 이년 저년 소리도 나오는 이 돈! 엿소, 어서 줏어 가우. 흥, 잘난 놈도 못난 돈, 못난 놈도 잘난 돈, 흥.”
보석 반지
병일은 명화를 데리고 고월(皐月)이란 일본 요릿집에서 애저녁부터 단둘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고월의 주인은 예기 퇴물로 육십을 바라보는 노파였다. 그 집동 같은 몸집에는, 장삼같이 너불너불한 그 옷도 좁았다. 늙은이답지 않게 피둥피둥한 살은 옷을 찢고 나오려고 몸부림이나 치는 듯하다. 그는 분때 밀린 주름을 펴고 눈을 껌적껌적하고 웃으며 언제든지 손님을 정이 뚝뚝 듣도록 맞았다.
이 눈껌적이 속에는 이루 헤일 수 없는 의미가 품겼다. 요릿집이라고 간판은 내어 걸었지만, 이 눈껌적이 속에는 이루 헤일 수 없는 의미가 품겼다.
요릿집이라고 간판은 내어 걸었지만, 이 눈껌적이 한 번이면 조용한 밤에 지리멘 이불을 깔고 곧잘 잘 자리도 차려주었다. 남의 눈을 꺼리는 사랑의 짝에 오작교를 건너 주기를 그는 결코 꺼리지 않았다.
남산 약수터에서 얼마 나려오지 않은 그 위치부터 그럴 듯하였다. 남산 잠두를 엇비슷하게 짊어지고 숲 속에 들어앉아 어른어른하는 나무사이로 게딱지를 엎어 놓은 듯한 만호 장안을 굽어보는 것이 미상불 시원도 하거니와 은근도 하였다. 이런 자리에서 정결하고 후미진 방에 단둘이 붙어 앉아 사랑을 속살거리는 맛이란! 청춘 남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넉넉하리라.
그러나 정작 청춘 남녀들은 이곳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음식값도 호되고 방값도 호된 까닭이다. 재산가가 아니면 월급쟁이라도 과장급 이상이라야 이 집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이 집에서 주고받는 사랑은 마치 주인 노파의 몸집과 같이 늙고 흐무러진 것이었다. 원체 널리 알려진 집도 아니다. 단골 손님이라야 헤일 수 있었다. 더구나 조선 손님은 열 손가락이 넘지 못하였다.
병일은 자기네들의 비밀 회합에 가끔 이 집을 이용했지만 명화를 안 뒤로는 이 집에선 빼어놓지 못할 단골손님이 되고 말았다. 명월관이나 식도원에서 늦게 연회를 파할 때 흔히 명화를 끌고 이 집엘 달겨들었다. 명화 집으로 가자니 기생집에 자주 자는 것이 체모에도 안 되었고, 더구나 취체나 당할까 보아 오마조마하였다. 마음놓기로야 자기 집 사랑이 제일이로되 그도 하인 소시에 볼상이 사나웠던 것이다. 전번 사흘씩 나흘씩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에도 그는 노박이로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은행 회사에 출근까지 하였던 것이다.
작난감같이 가느다란 난간 앞에 두 남녀는 술상을 끌고 나앉았다.
어느덧 문을 닫고 들어 앉았기엔 갑갑할 만큼 봄은 겨웠다. 땅 위에 깔린 무수한 별처럼 반짝거리는 전등불도 어째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해 보인다.
밤하늘에 기름기름하게 뻗은 포플러 나무들은 그 동여 놓은 듯하던 가지들이 실실이 풀려 파름파름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다.
병일은 입에 짝짝 붙는 듯한 정종이 벌써 얼근하게 취해 오른다. 껍데기채 볶은 소라 고동과 배차 절임이 봄맛을 자아내는 듯하였다.
“봄날에 덴뿌라는?”
병일은 명화가 어우적어우적 새우 덴뿌라를 씹는 것을 보고 핀잔을 주었다.
“자, 술이나 한 잔 먹으라구.”
하고 찔끔 쏟는 듯이 병일은 명화에게 술 한 잔을 부어 주었다. 명화는 덴뿌라 기름이 번지르하게 발리어 유난히 붉은 입술을 맛난 듯이 쪽쪽 빨아당기다가,
“전 인제 그만해요. 술이 이렇게 오르는데.”
하고 두 손으로 호끈호끈 다는 제 뺨을 자근자근 누르는 듯이 만져 본다.
“이것 좀 봐요, 이렇게 호끈거리는데.”
“그까짓 걸 먹고 뭘 엄살이야!”
병일은 거의 꾸짖는 듯하고 그래도 손을 들어 명화의 뺨을 만져 본다.
“요런 거짓부리. 호끈거리기는커녕 싸늘하게 얼음장 같으이, 허허…….”
“누가 거짓부리예요? 이게 호끈거리지 않아요, 참.”
명화는 대들어 병일의 손을 집어다가 다시 제 뺨에 댄다.
“어데 더운가? 얼음 같기 네 마음 같구나.”
하고 병일은 손을 떼었다.
“왜 또 비꼬아요? 제 마음이 얼음 같으면, 선생님 마음은, 선생님 마음은 뭐라고 할까?”
“얼음보담 더 찬 게 있나, 어데 좀 찾아보게나, 허허…….”
병일은 개가를 부르듯 웃었다.
“뭐랄까 선생님 …… 마음은 ……선생님 마음은 싸늘하기 칼날 같애요.”
“칼날? 칼날이 얼음보담 다 찰까?”
“차갑기야 얼음보담 못하지만 얼음은 더운 데 대면 녹기라도 하지요. 칼이야 어데 녹아요? 참 선생님 마음이야말로 칼날이야요. 무딘 칼날이야요.”
“어째 또 무딘 칼날이람?”
“그러기에 남의 마음을 그렇게 몰라 주시지.”
“야, 이건 굉장한 비유로구나. 그래, 너는 얼음이 되어서 여해에게 녹았단 말이냐?”
“여해라께?”
명화는 얼른 못 알아듣는 척을 하고 눈을 커닿게 떠서 병일을 본다.
“대관절 여해란 이가 누구예요? 알기나 합시다.”
생판으로 시침을 딴다.
“왜 또 능청을 부리는 게야?”
“제가 능청을 부려요? 선생님이 괜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가지고 한번 넘겨 짚으시지.”
“잘도 모르겠다. 그래, 모르는 사람의 병실에 조석 대령을 해여?”
“병실에 조석 대령? 무슨 말씀일까?……”
명화는 고개를 제싯하고 무엇을 이윽고 생각하는 척을 하다가,
“오 옳거니. 마님의 옛 애인 말씀이시군. 저 의전 병원에 계시는. 그렇지요?”
“농간은 잘도 붙인다.”
“농간? 갈수록 못 하실 말씀이 없네. 그이에게 제가 왜 조석 대령을 한답디까?”
“얼음이 되어 녹은 탓이겠지.”
“그이에게 제가 왜 녹아요? 저마다 녹는 곬이가 다 다른 거예요. 어데 제가 녹는다구 남도 녹을 줄 아나베. 흥.”
명화는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이 뾰로통하게 성을 낸다.
“말을 지어내도 터무니가 있어야지. 아모리 노는년이라구 얕잡아 본들 그렇게 음해를 한단 말예요? 젊으신 부인이 망녕이 나셨나베. 알뜰한 애인이 감옥에서 나오셔서 또 중병을 치르게 되니 망녕도 나실 만하게 일이 되었지만, 흥.”
병일은 영애로부터 병원의 사단을 대강 들어 알았다. 영애는 아모리 남편의 앞이라도 제가 당한 모욕을 샅샅이 일러바칠 수는 없었다. 제일 분하기는 명화가 여해와 한 편이 되어 가지고 못할 소리가 없이 나대더란 말과, 여해가 돈을 안 받더란 말만 대두리판 따서 하고, 병일이가 봉투를 이용해 여해를 얽어 넣었다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하였다.
명화는 여자에게 특유한 무서운 통찰력으로 영애가 병일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못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였다. 자기가 병일로부터 떨어지느냐 영애를 꺼꾸러뜨리느냐, 대두리판에 들어선 것을 그는 느끼었다.
“내가 그 날 일수가 사나워서, 무슨 정성이 뻗쳐서 동무 문병은 갔던 구!”
명화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다가,
“제 동무 하나가 병이 들었어요. 시골서 올라온 지 며칠이 못 됐으니 아마 선생님은 모르시리다. 김추월이라구, 그 애가 늑막염을 앓아서 의전병원에 입원을 하지 않았겠어요. 그래 그 날 제가 문병을 갔었지요. 문병을 하고 나오는 길에 부인께서 거기 계시더군요. 그래 저를 보시고 반색을 하시며 마츰 잘 되었다, 내가 지금 누구 문병을 왔는데, 사내 어른이 되어서 혼자 들어가기가 무얼 하던 차에 자네를 만났으니 잘 되었다, 같이 들어가 보자구 하시길래 큰아씨의 영을 어데 그일 수 있어요? 그래 따라 들어가 봤더니 그 말이 이렇게 뒤집힐 줄이야 정말 꿈에나 생각했을까. 정말 그래, 여해란 이에게 녹아서 병원에를 조석 대령을 한다구 부인께서 그러십디까?”
명화는 엉뚱한 거짓말을 순식간에 지어서 늘어놓고 새매같이 쌕쌕거리며 덤벼들었다.
병일은 얼떨떨해졌다. 명화의 말이 그럴 상도 싶었던 것이다. 사내란 옆에 앉은 계집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기가 십상팔구다. 하물며 명화의 거짓말은 빈틈 없이 째였음에랴. 명화는 재바르게 병일의 기색을 살피었다. 이런 짬을 놓칠 명화가 아니다.
“뭘 얻어먹자구, 고 비렁뱅이 전과자한테 반했답디까? 감옥에서 벌어 나온 사십 원 오십 전을 얻어먹겠답디까? 맙시사.”
명화는 어이없다는 듯이 픽 웃었다.
“아모리 돈에 노랑때가 오른 기생년이라구 설마 그러지야 않을 거구. 그럼 반한 게 뭣인고? 오 옳지, 얼굴이 하도 잘났으니까. 머리란 개 파먹은 밥통 같구, 눈썹은 숯꺼멍 같구, 그 흰 죽사발같이 헐건 눈을 보구, 맙시사.”
명화는 또 한 번 웃었다. 여해의 용모를 나리깎는 것이 만족하였던지 병일도 빙그레 웃었다.
“그런 사내에게도 옛날엔 애인이 있었으니 참 세상이란 우습고도 가소롭지. 정에는 눈도 먼다더니 그래 두구 하는 말이야, 흥.”
명화는 또 한 번 웃었다.
“그런 작자에게 꽃 같은 여학생이 죽네 사네 하다가 시집을 가게 되었으 니, 어째 첫날밤에 칼을 들고 안 올거요? 오 년 징역을 살아도 그야말로 깨소금이지, 맙시사.”
명화는 또 한 번 웃는다.
“왜 남을 헐뜯는 거야? 너하구 정분이 났으면 어떠냐? 얼음이 녹으면 물 밖에 더 되겠니? 허허.”
병일은 무슨 재담이나 한 듯이 소리를 높여 웃어 버렸다. 그는 명화의 변명을 듣고 있노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지없이 그려내는 여해의 모양새 하며, 그런 위인이 그런 애인을 두었으니, 그 동티로 오 년 징역살이도 깨소금이란 말이 더욱 그의 비위에 들어맞았다. 그는 함함하고 옹글졌다.
“에구 척척해라, 콧잔등부터 녹아나리나베. 호호호…….”
명화는 콧등에 고였던 땀을 씻고 구슬을 구을리듯 웃었다. 주기와 흥분과 긴장이 일시에 홱 풀어지며 왼몸의 땀이 끈끈하게 솟았다. 그는 병일이 주는 술잔을 받아 단숨에 홀짝 소리를 내고 마셔 버렸다.
“그런데 선생님과 그 여해란 이와는 무슨 원수예요? 부인께서는 선생님 전에 그이를 사랑하셨고 전 선생님 뒤에 또 그이와 정분이 났으니 온 별일이야. 그도 무슨 전생업원인 게야, 호호.”
“글쎄 말이지. 그자허구 나허구 참 적지 않은 연분인 게야.”
“그 꼴을 해 가지고 그래도 호기가 당당하던걸. 부인을 개 꾸짖듯 하고, 선생님을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흥.”
“그놈이 되려 날 죽일 놈 살릴 놈 해, 응?”
병일은 갑자기 용수철에 튕기듯 몸을 솟구친다.
“그뿐예요? 정말 입에 못 담을 욕을 다 하던데.”
“무슨 까닭으로? 그래 내 여편네는 그 소리를 그대로 듣고 있었단 말이야.”
“그대로 듣고만 있어요. 울며불며 비두발괄을 하던데요. 사랑의 맹서를 어기고 선생님께 시집을 온 건 죽을 때라 잘못되었다고, 지금 와서는 후회 막급이라구.”
“뭐 후회막급이라구?”
병일은 무릎을 일으켜 세운다.
“그 말뿐일 줄 아셔요? 정말 괴란쩍어서 이루 옮길 수도 없어요. 정이 더럽다는 건 그래 두고 하는 말이야.”
“들은 대로 말을 좀 해 봐, 응.”
병일은 숨이 찬다.
명화는 말없이 고개만 살랑살랑 흔들어 보인다.
“말을 좀 해, 후회막급이고, 또…….”
“그런 말을 함부로 옮겼다가 괜히 큰일 나게요. 미리 방패막이를 하노라고 그이와 저와 정분났다는 말까지 지어내는데……. 사정은 과연 딱하더군.
옛정을 다시 이어 보자니 벌써 남의 안해 된 몸이고……. 흥, 그런 데 들어서는 우리네고 귀부인이고 일반인 모양이더군.”
“그래 또 뭐라던가?”
병일은 갑갑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채쳤다.
“몰라요, 왜 저 보고 오복조림을 하셔요. 부인보고 물어보시면 좀 말을 잘 해 드릴라구.”
“그러지 말구, 응? 그래 또 뭐라고 하던?”
병일은 애원하다시피 하였다.
“그까짓 상없는 소리를 옮겨 들으시면 뭘 해요? 그런 말이란 안 듣는 게 제일이야요.”
“그러지 말고, 응. 그 말만 하면 네 소원은 뭐든지 들어 주마.”
“절 어린앤 줄 아셔요? 사탕발림을 시키시게.”
“너 원하던 그 반지를 사 줄게.”
“정말?”
“그럼!”
“부인 끼신 거와 꼭 같은 거라야 해요.”
“그보담 나은 거라도 사 주지.”
“정말이예요?”
“그렇다니까.”
“오늘밤으로 사야 돼요. 쇠뿔도 단결에 빼랬다구.”
“그럼, 오늘밤도 좋아.”
“꼭이오.”
명화는 또 한 번 다지었다.
“그래, 글쎄.”
병일은 증을 내었다.
“후회막급이라고 하고, 그리고 또 뭐라든가?”
명화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때 들은 말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보석 반지를 못 끼었으면 못 끼었지, 암만해도 그 말을 못하겠군요.”
이윽고 명화는 난처해 한다.
“그 얘길랑은 구만두고, 술이나 잡수십시다요.”
명화는 술병을 들어 부으려다가,
“쓸데도 없는 얘기하는 새 술이 식었네.”
하고 손뼉을 친다.
“술은 구만두고 어서 그 얘기나 하라니까.”
“참 땀을 낼 노릇이군. 전 다 아시는 줄 알고 그 말을 했다가 생판으로 까바치라시니…… 이를 어떡하나……? 제가 어떻게 그 말을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잔뜩 미움을 받치고 있는데 저 때문에 두 분 새라도 티각태각 하신다면 제가 무슨 낯으로 부인을 또 뵈요?”
“왜 하라는 얘기는 않고 요리 뺏긋 조리 뺏긋 하는 게야?”
병일은 참을성이 터지고 말았다. 버럭 짜증을 내었다.
“아주 안 뵈올 어른 아니고, 부인께서 제가 그런 말을 한 줄 아셔 봐요. 좀 치를 떠시겠어요? 큰일 나지.”
“알기는 어떻게 안단 말이야. 여기서 단둘이 한 얘기를.”
“그래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구.”
“그러면 내가 네가 하더란 말을 할 듯하냐?”
“두 분 새를 누가 알아요? 저는 노는년이고 그 어른은 부인이신데.”
“없다 없어. 다짐장이라도 써 주마.”
“얘기를 할까 말까. 하는 엄청나서.”
“하는 엄청나다니?”
“그 여해란 이가 아주 개골이 나서 부인을 보고 ‘이년, 저년’ 하고 내 사랑의 편지를 아귀를 맞춰서 찾아오너라 말아라, 호령호령하겠지요. 그만 저만한 정분이 아니고야 첫날밤에 칼을 들고 들어섰다가 신부를 보고 물러서기도 안 했겠지만 어쩌면 옛날이야 갔던지, 오늘날 남의 부인을 보고 호년을 마구 해요?”
“제 사랑의 편지를 찾아오라구?”
“그래요. 그 사랑의 편지를 가지고, 선생님께서 협박장을 위조를 했다나 어쨌다나…….”
“응?”
병일은 외마디 소리를 쳤다. 명화는 제 화살이 제 적의 심장을 바루 뚫고 나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그래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더군요. 뭐 그 사랑의 편지를 선생님께서 알맹이를 뽑아버리고 겉봉도 앞장은 찢어 없애고, 뒷장 몇 글자 남은 것을 경찰에 바쳤다나 어쨌다나, 그래 그게 증거가 되어 가지고, 군자금 모집원의 혐의로 오 년 징역을 살게 되었다고, 아주 야단야단을 합디다. 제가 사람 죽이러 간 것은 생각도 않는지.”
병일은 단박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명화는 그 기색을 보고, ‘이놈! 멀쩡한 놈!’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래 우리 선생님을 갖다가 백 번을 죽여도 죄가 남느니 천 번을 죽여도 죄가 남느니 뭐니 괴란쩍은 소리를 하더군요.”
병일의 솟구친 두 어깨가 땅으로 기어들 듯이 축 쳐졌다.
“그 말은 부인께서도 처음 듣는 모양이십디다. 어쩌면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꼬박이 듣고만 계셔요. 옆에서 보려니깐 참 딱도 하더군. 더군다나 그만 그이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리겠지요. 내 남편이 그런 위인인 줄 몰랐소.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한 줄은 몰랐소. 그런 악마인 줄은 몰랐소. 하고 울며불며……흥.”
“짐승만도 못한 짓, 악마!”
병일은 풀기 없이 혼자 뇌였다.
“그런 인형을 쓰고 개 혼신이 덮인 자에게 내가 왜 시집을 갔던고, 굶어 죽어도 당신과 살 것을, 당신의 사랑 속에 영원히 묻힐 것을, 내가 잘못하였습니다, 죽일 년입니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 일생을 버렸습니다 하고, 엉 엉 우시겠지요. 보다가 보다가 별꼴을 다 보았지, 신파 연극도 어데 그런 신파 연극이 있겠어요?”
명화는 말과는 딴판으로, 눈에 살기를 띠우고, 제 말의 마디마디가 적에게 주는 영향을 빼지 않고 보살피었다. 완전한 승리였다. 이만큼 되면 죽이든지 살리든지 제 손아귀에 달리게 된 것이다. 명화는 승리의 미소가 저절로 떠올랐다.
“얘기를 다 들으시니 인제 시원하겠군. 자동차를 부를까요? 반지를 사러 가야지.”
그는 전리품(戰利品)을 찾기에 서슴치 않았다.
병일은 곰부임부 술을 들이켰다.
“두 발 가진 짐승이란 참 제도할 수 없고나. 은혜도 모르고 죽일 놈! 허 허…….”
병일은 취한 척을 하고 호걸스럽게 껄껄 웃었다. 어처구니도 없다는 눈치를 보이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다.
명화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게 말예요. 인간 구제하면 양분한다고…… 감옥에서 나와서 갈 곳 없는 것을 댁에까지 데려오시고, 앞으로 거둬 주시겠다니 그런 고마울 데가 어데 있겠어요? 병까지 난 것을 입원도 시켜 주시고, 또 돈을 백 원 템이나 보내 주셨으면 감지덕지할 일이지. 붉은 옷 벗은 지가 며칠이나 된다고 바루 제가 젠 체를 하고, 그 귀한 돈을 동댕이를 치고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를 하고……. 입에 못 담을 욕설을 하고.”
병일은 손뼉이라도 칠 듯이 좋아라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하면 내가 부질없는 짓을 하였지. 인생이 불쌍해서 구해 주었더니 되려 엉뚱한 소리를 하니, 기가 막혀, 허.”
“그래, 편지 봉투를 경찰에서 가져가기는 갔나요?”
명화는 슬쩍 묻고 병일의 기색을 살폈다.
“그 누가 아나? 형사들이 나와서 뒤져간걸 허. 그놈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가택수색을 다 당하고.”
“겉봉 앞장을 뜯었더라니, 그건 정말일까요?”
병일은 변하려는 제 얼굴빛을 가리우는 것처럼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그건들 누가 안다는 거야. 경찰에서 미쳤다고 그런 증거품을 보여줄 거야. 설령 그런 일이 있다손 치더래도. 환한 거짓말이지.”
“앞장은 뜯어 버리고, 뒷장만 남겼더라는데.”
명화는 연거푸 질문의 화살을 쏘았다. 병일의 기색은 좋지 않게 변하였다.
“그래, 내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속힘이 없었다. 허전허전하다.
“누가 선생님께 그런 짓을 했답니까? 하두 이상하니 말이죠.”
“그래, 너도 그 말을 믿느냐?”
“부인께서도 믿으십디다.”
“그래, 너도 따라서 믿는단 말이냐?”
“어떤 미친년이 그런 종작없는 소리를 믿어요. 인젠 그 얘기는 구만두고 술이나 잡수십시다.”
“그래라, 그래라. 네 말이 옳다. 너도 흥껏 맘껏 먹어야만 한다.”
“그래요. 선생님 화나시는데 저도 덩달아 먹어 드리지. 주정을랑은 받아 주셔요. 호호.”
두 남녀는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술에 취하고 사랑에 겨운 듯하였다. 언제든지 체통을 잃지 않는 병일이건만, 오늘밤은 아주 명화에게 미친 척을 하였다 술잔을 제쳐놓고 . , 그는 명화를 못 견디게 굴었다. 까실까실한 웃수염을 수없이 들이대고 젖가슴을 주무르고…….
‘누구를 구슬리는 셈이냐? 아서라!’ 명화는 속으로 웃으며, 사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병일은 명화의 무릎을 비고 네 활개를 쭉 뻗고 누웠다가 별안간 화닥닥 일어 앉으며,
“너 내 마누라 노릇하련?”
하고 묻는다.
“큰 마나님이 눈이 등잔 같으신데, 그런 벼락을 맞을.”
“큰 마누라고 뭐고 인젠 하직이다. 그깟 년을 누가 데리고 산담?”
“취담이라도 그런 말씀 아예 마세요.”
“너도 의엿한 남의 부인이 되면 좋을 것 아니냐?”
“무슨 복으로?”
“정말이다. 내가 왜 실없는 소리를 하겠나? 너만 좋다면 내일이라도 결혼식을 하자꼬나.”
“아스세요. 괜히 남의 간에 헷바람만 넣지 말아요.”
“너도 소박이냐? 허허.”
하고 병일은 명화를 부둥켜안았다. 명화는 팔목시계를 보더니,
“벌써 열 시일세. 자, 진고개를 가셔요. 가가 문 닫기 전에. 부인은 나종에 되더래도 반지부터 낍시다그려.”
“야, 이건 정말 현금이로구나.”
“그럼요. 노는년이 뭘 믿고 사내에게 외상을 놓아요? 호호.”
“그러면 그 반지가 제물에 엔게이지 링이 되겠고나.”
“뭐 되든 부인 끼신 거와 꼭 같은 것만 사 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