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둥둥 내 사랑
김은숙
아침부터 손님에게 시달렸던 나는 실내의 인테리어처럼 우거지상이었다. 찌푸린 얼굴로 가게를 훑어본 다음 틈을 내어 페인트라도 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망우리에 사는 친구였다. 친구는 나더러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는다며 손님 다 떨어지겠다는 말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내 기분 전환을 시킬 수 있으면 통화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라는 말을 했다.
“그럼 내가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나는 친구가 내 앞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산기슭에 오두막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작은 집이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발치에 돋아난 조막만 한 버섯 같았습니다. 그곳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잘 다듬어진 몸매에 준수한 얼굴이었습니다. 스물이 채 되지 않는 새댁은 얼굴이 희고 목이 길어서 마치 달빛 아래에 있는 노루 같았습니다.
새댁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으로 빨래를 하러 다녔습니다. 빨래를 마친 새댁은 겉옷을 탈탈 털어 새하얀 속옷을 감추듯 덮은 다음 세수를 합니다. 새댁이 갸름한 발을 씻을 때면 옆에 서 있는 떡갈나무가 슬며시 내려다보다 얼굴을 붉힙니다. 떡잎처럼 생긴 열 개의 예쁜 발가락 때문입니다.
일을 나갔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남편의 눈에 어른거리는 것도 아내의 예쁜 발입니다. 남편은 밥상을 들고 들어오는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습니다. 눈이 왕방울처럼 커진 아내는 밥상을 얼른 내려놓습니다. 금방 아내의 얼굴은 솟아오르는 해처럼 붉어집니다. 남편은 고개를 숙인 아내의 저고리 끈을 살며시 당깁니다. 남편이 아내의 발가락을 살짝살짝 깨무는 동안 국에서는 연신 김이 오릅니다. 모락모락 오르는 수증기처럼 두 사람도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국이 차가워질 때쯤이면 두 사람의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옵니다.
남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높다란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꼭대기에 깃대를 꽂고 싶은 열망입니다. 그 산봉우리는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습니다. 순결한 그곳에 언젠가는 깃대를 꽂으리라. 남편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는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이틀이나 사흘이면 다녀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떡가루 같은 눈 위에 맑은 햇살이 쏟아지던 날 남편은 산행을 위해 털가죽 모자, 두툼한 장갑, 생으로도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챙깁니다. 배낭을 짊어지는데 아내가 애처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까만 눈동자에 어린 눈물을 보지만 원대한 꿈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남편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아내의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아내의 발등에 떨어지는 눈물 소리가 폭포수와 같습니다. 만일 뒤를 돌아보았다면 남편은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남편은 입술에서 배어 나오던 빨간 피를 뱉어내고는 잠깐 멈추었던 걸음을 재촉합니다.
생각처럼 모든 일이 순조로울 리가 없습니다. 남편은 몇 번씩이나 폭풍을 만나서 길을 잃기도 하고 눈구덩이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모든 걸 극복하고 결국 정상에 다다라 깃대를 꽂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남편은 산 아래쪽의 세상을 바라보려고 얼굴을 번쩍 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내의 예쁜 얼굴뿐입니다. 남편은 하산이 더 어렵다는 규칙을 망각한 채 허겁지겁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손톱만 한 오두막집을 보자 남편은 아내를 소리쳐 부릅니다.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온 산을 흔들고 여기저기 쌓인 눈이 무너져 내립니다. 집채만큼 커다란 눈 덩어리가 순식간에 남편을 덮쳐 버립니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설산은 고요해집니다.
세월은 정말 쏜살같이 흐르는 모양입니다. 오두막의 문을 밀치고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사람은 노파입니다. 완연한 봄기운에 주변이 아른거립니다. 노파는 허리를 펴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에 서선을 보냅니다. 눈 더미가 쏟아지느라 굉음을 내었겠지만 별로 달라져 보이진 않습니다. 봄이 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허리가 구부러진 노파는 옆구리에 세숫대야를 낍니다. 계곡에 도착한 노파는 빨래가 담긴 세숫대야를 내려놓고 세수를 하기 위해 구부러진 허리를 더 구부립니다. 노파는 깜짝 놀랍니다. 물속의 얼굴은 사십 년 전의 새댁 그대로입니다.
앳된 얼굴을 바라보던 노파가 눈물을 떨어뜨리자 둥글게 물살이 퍼지면서 또 하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입니다. 노파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봅니다. 하지만 노파의 등 뒤에는 파란 하늘이 있을 뿐입니다. 노파는 흐린 눈을 비비며 허깨비를 보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세수를 마친 노파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싯누런 돌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하얀 이불 홑청을 얹어 놓고 두들깁니다. 간밤에 꾼 꿈이 그녀의 머리를 어지럽혀서 노파는 홑청에 구멍을 낼 것처럼 방망이질을 해댑니다. 첫날밤인데 어쩌자고 남편은 아내의 옷을 벗길 생각은 않고 웃기만 하는지.
노파는 빨래를 하다 말고 앉아서 옥수수 알처럼 남편의 고른 이를 떠올립니다. 노파는 방망이를 팽개쳐 버리고 허리춤에 담아 두었던 잘게 부순 담배를 꺼냅니다.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아 불을 붙입니다. 한 모금 빨고 질척한 눈가를 문지르던 노파의 눈에 무엇인가가 보입니다. 계곡의 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온 물체였습니다. 노파는 동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람 같기도 한 그 물체를 보려고 몸을 숙였습니다.
하얀 저고리와 회색바지 그리고 새까만 머리털. 젊은 남자의 시체였습니다. 노파는 팔을 걷어붙이고 후닥닥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남자의 오른쪽 손등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콧등의 까만 점. 하루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그리운 얼굴이었습니다. 사십 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파는 젊은 남자를 끌어안으며 울부짖습니다.
“어화둥둥 내 사랑!”
노랫가락처럼 노파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바람이 되어 흩어집니다. 꽃잎이 되어 물살을 따라 흐릅니다. 그 계곡에서는 지금도 가끔 붉은 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밤에만 살짝 흐르기 때문에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전설입니다.
친구가 담담한 목소리로 글을 읽는 동안 투다닥거리던 시계 바늘 소리도 멎어 버린 듯싶었다. 숨소리까지 죽이고 있을 만큼 몰입되어 있던 나는 친구가 이야기를 끝냈는데도 멍하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여보세요?”
친구는 내가 수화기를 놓아 버린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으응... 갑자기 내가 세상을 잘못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이니?”
“......”
나는 아무 반응이 없는 친구에게 요즘 근황을 물어보려다 아차 했다. 고교 때 백일장에 나가기도 했던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신문사 편집부에 있기는 했지만 글을 쓴다는 말은 없었다.
“너, 이제 시작했구나.”
“그래...”
“나는 네가 언젠가는 글을 쓰리라는 짐작을 했어.”
“고마워.”
그렇게 대답하는 친구에게 좋은 글을 쓰라는 말을 하려는데 한 노파가 가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나는 ‘소 손님이 왔어.’하고 더듬거리며 덜커덕 수화기를 놓았다.
칠십 정도 되어 보이는 노파였다. 우묵하게 들어간 눈 주변이 거무스름하고 혈색이 좋지 않은 얼굴이었다. 노파를 바라보자 왠지 마음이 착잡해지는 느낌이었다. 노파는 시계 약을 넣어 달라고 하면서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쪽을 진 머리칼에 검게 변색된 은비녀를 꽂고 있었다. 비녀를 고집할 만큼 숱이 많은 머리가 아니었기에 뒷모습이 좀 스산해 보였다.
“진주 반지가 갖고 싶어.”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 노파는 그렇게 말했다. 여덟 평 남짓한 가게에 메아리처럼 울리던 그 소리에 나는 시계 나사를 떨어뜨렸다. 2밀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나사를 집어 들고 있다 떨어뜨렸기 때문에 낭패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에서 땀방울이 솟았다. 나는 나사를 찾으려다 문득 노파의 표정이 이상했던 것 같아서 얼굴을 들었다. 노파는 마치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뜬 채 입술을 오므리고 있었다.
“저거 좀 봐... 은은하기도 해라.”
노파는 오른손으로 왼쪽 약지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금 노파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행색이 초라하고 몸에 금붙이 하나 매달고 있지 않았다.
“반지 하나 정도 끼는 것이 결코 사치는 아니랍니다.”
“...”
노파는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나는 노파에게서 눈을 떼고 나사를 찾으려고 자석을 집어 들었다. 책상에 붙어 있는 백열전구의 몸체인 자바라 줄을 휘어 바닥을 비추고는 엎드려서 자석으로 훑었다. 잡동사니가 붙어있는 자석을 들고 샅샅이 훑어보니 나사가 보였다.
나는 시계 나사를 끼워 돌리면서 간간이 벽에 붙은 탁상시계 진열장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 유리로 노파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히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파는 입을 다물고서 진열장 안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가끔 손님과 남편이 물건을 흥정하느라고 입씨름을 벌일 때도 그 유리를 통해 손님을 감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작고 값이 나가는 물건이라 손을 탈 수도 있었다. 정직한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나는 검버섯이 곰팡이처럼 번져 있는 노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둡고 수심에 찬 표정이었다. 하긴 밝은 곳을 등지고 있는 데다가 거무스름한 유리에 비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노파가 오른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자 진열장의 겹쳐진 유리문이 노파의 얼굴을 비대칭으로 만들어 버렸다.
“남편과 선을 보던 날 밤 꿈에 진주 반지를 받았지.”
유리에 비친 노파가 갑자기 꺼내는 말이었다. 노파의 오른쪽 입술은 아래쪽에서, 왼쪽 입술은 위쪽에서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꿈?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친정 할아버지의 꿈 이야기였다.
선을 보러 오던 색싯감이 꿈에 붉은 치마를 입고 왔드라. 하필이면 붉은 치마를 입다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당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왜요. 꿈에 붉은 색을 보면 좋다던데... 할머니가 그렇게 대꾸하자 할아버지는 머리를 휘휘 저었다. 모르는 소리 말아... 할아버지의 그 말을 가족들은 귓등으로 흘러 넘겨 버렸다. 선을 보러 왔던 작은어머니는 얌전한 용모였을 뿐 아니라 집안도 괜찮았기 때문에 누구도 결혼을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 작은어머니는 갓 서른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나는 그 꿈이 무엇인가를 예시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진주는 이별을 뜻하는 거예요.”
노파는 내 말에 흠칫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노파는 손을 툭 떨구며 뒷걸음질 쳐서 소파에 주저앉았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죠.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반지를 진주로 할 때도 있어요.”
내가 그렇게 변명을 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듣고 있지 않은 듯했다.
“결혼반지를 진주로 받았지요.”
꽉 잠긴 노파의 목소리였다.
“네...그러셨군요. 그런데... 진주 반지를 끼고 싶으세요? 나이 드신 분들은 비취반지를 좋아하시던데..."
비취는 실용적인데다 노인들이 유난히 선호하는 색깔이었다. 그런데다 진주는 강도가 약해서 함부로 낄 수도 없는 반지였다.
“진주 반지를 잃어버려서요.”
“예... 할아버지가 진주 반지 얘기를 하시던가요?”
결혼 때 해준 반지를 그 나이에 들먹거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노파에게 물었다.
“아뇨-.”
노파는 부랴부랴 동전 지갑을 열더니 접힌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계산을 했다. 내 말에 대한 대답을 부러 피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나는 바삐 나가는 노파의 뒷모습을 보며 진주 반지를 장만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파가 나가자마자 남편이 들어왔다.
“올여름에는 진주 반지가 유행할 거래.”
"진주 반지?"
부부간에는 이심전심이라더니 맞는 말 같았다. 반문을 하면서 남편을 쳐다보던 나는 방금 나간 노파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올해 진주 반지가 유행될 걸 미리 알고 있었을까? 아니 할머니가 가게에 왔던 것은 사실일까? 생각해 보니 노파의 태도가 너무 이상했다. 혹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중간에 가게를 들렀을까? 황당한 상상에 빠져있느라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데도 알지 못했다.
“당신, 꼭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여자 같다.”
남편이 불쑥 말을 뱉어냈다.
“뭐?”
벌떡 일어나면서 내가 언성을 높이자 남편이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방어 태세였다.
"왜 그래? 농담 좀 한 걸 가지고... 납량 특집극도 더위를 잊으라고 하는 거잖아."
나는 눈을 흘기면서 진열장 앞쪽으로 돌아 나갔다.
“진주 세트를 좀 꾸며놔야 할 것 같아.”
남편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파가 진주 반지를 분명히 맞추러 올 거라는 예감이었다.
남편이 도매상에서 구입해온 것은 반달 진주 두 개와 원형 진주 너덧 개 그리고 자그마한 흑진주 대여섯 개였다. 자잘한 것은 기성 본 그대로 만들었고 큰 알과 반달 진주는 수공 기술자에게 맡겼다. 반지도 숙련된 기술자의 손을 거쳐야 세련되고 품위가 있었다. 진주로 반지를 꾸며서 진열장 중간쯤에 해바라기 꽃잎 모양으로 둥글게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경기 탓과 일찍 찾아 온 더위 때문인지 손님은 뜸했고 진주 반지를 찾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장사가 되지 않자 남편은 재미가 없는지 밖으로 돌았다. 바둑이다 모임이다 해서 가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긴 나는 돈밖에 모르는 여자였고 곧잘 애교를 떨던 딸은 지방으로 대학을 가버렸으니 낙이 있을 턱이 없었다. 오늘도 남편은 아침에 문만 열어주고는 당구장으로 슬그머니 가 버렸다.
옥상에서 뻗어 내려온 장미 넝쿨이 통유리의 글씨를 가려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진열장을 돌아 나오는데 통유리 앞에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낯이 익은 듯싶어서 쳐다보았다.
움푹 들어간 눈과 입술의 오글거리는 주름. 그 노파였다. 노파는 무성한 파란 잎 새로 갓 피어난 핏빛 장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노파는 가게 쪽으로는 일별도 던지지 않고 장미 덩굴만 들여다보다가 길을 가로질러 시장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노파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장미덩굴을 걷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다시 진열장 앞으로 돌아서 왔다. 진주 반지를 갖고 싶다는 노파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떨어뜨려 진열장을 들여다보았다.
통념상 진주라 하면 흰색을 말하는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맞는 말이 아니다. 진주 알 하나하나는 고유의 빛깔을 띠고 있다. 갓 잡아 올린 갈치 빛깔 그리고 은색, 분홍색, 베이지색, 노르스름한 색깔 등등... 그리고 색깔이 전혀 다른 흑진주가 있다. 나는 보석 잡지에서 보았던 진주에 관한 기사를 생각하며 반지를 훑어보았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우아한 반지는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양이었다. 노파가 진주 반지를 하러 올 거라는 걸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나는 이것저것 빼서 보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진주가 이별을 상징하는 것 맞지?”
문을 닫기 위해서 물건을 정리하던 남편을 향해서 물었다. 결혼할 때 간혹 진주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알면서도 묻는 말이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말이야. 진주가 눈물방울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인 말이래. 원래 지닌 뜻은 건강 장수 부귀인데 처녀의 상징이라는 말도 있어. 내가 보기에는 그 말이 더 의미심장한 것 같더군.”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하던 남편의 입 가장자리에 웃음이 묻어 있었지만 미소가 아니었다. 그 뜻을 알아채자 기분이 나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약혼자와 파혼을 하고 남편과 결혼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때 약혼자와 나는 긴 약혼 기간으로 시들해 있었고 오빠 친구였던 남편은 일요일이면 자취집에 들리곤 했다. 나와 성관계 후 남편은 술자리에서 물간 처녀라는 말을 했다가 내게 수모를 당했었다.
“지금, 날 두고 하는 말이야?”
“아냐. 그, 그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
내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남편은 얼버무렸다. 실제 남편이 가까이 없었다면 싫든 좋든 나는 약혼자와 결혼을 했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더 결사적이었다는 것을 금방 잊어버린 듯했다. 결혼 당시 조그맣게 금은방을 차리고 있던 남편이 내게 처음 선물해 준 반지도 진주였다. 나는 음력 오월 생이었고 따라서 양력으로는 유월에 태어난 셈이었다. 유월을 상징하는 보석이 진주였기 때문에 진주 반지를 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남편과 팔짱도 끼지 않고 뚝 떨어져 걸었다. 가끔 나를 바라보면서 남편은 ‘아이구 무서워라. 조선 시대가 그립네.’ 하면서 여자들 세상이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수박을 잘라 거실에 있는 유리 탁자에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에서는 남편이 외도를 하자 아내가 딴 남자를 만나는 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조금보다 흥이 나지 않아서 텔레비전을 끄고 거실의 불도 껐다. 베란다 쪽으로 다가서니 열린 창을 통해서 바람이 들어왔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바람에 대추나무의 잔가지들이 하늘을 할퀴듯 오른쪽으로 쓸렸다가 원위치로 돌아오곤 했다. 부드럽게 휘청대는 대추나무의 가지는 동숭동을 지나다가 보았던 살풀이춤을 연상시켰다. 죽은 자의 넋을 달래기 위한 춤사위에 몇몇 사람들은 눈가를 손수건으로 찍어 누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흔들리는 대추나무를 보고 있자니 문득 장미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단의 아치형 기둥이 온통 붉은 장미꽃으로 덮여 있었다. 달빛과 어둠 때문에 장미꽃은 검은색에 가까웠다. 유월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몇 해 동안 장미꽃은 며칠씩 앞당겨 피더니 올해는 예년보다 보름 정도 빨리 피는 듯싶었다. 사람들은 기상 이변으로 봄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는 말을 하곤 했다.
가게 옥상에 장미를 심은 건 건물이 허름해서라는 이유였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워낙 장미를 좋아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꽃이 필 때면 딸아이는 건물이 궁전 같아 보인다면서 사진을 한두 장씩 찍었다. 문득 통유리 앞의 장미꽃을 들여다보던 노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미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던 노파는 진주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와 흡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주는 조개의 체내에 모래알과 같은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그것을 감싸려고 분비한 체액이 쌓여 이룬 고통의 덩어리이다. 1,000겹의 체액이 이루어낸 하나의 진주는 진주조개라는 자궁을 빌어 탄생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주가 탄생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은 전문가 외에는 드물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파의 결혼반지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오늘 기분이 찜찜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장미덩굴을 들여다보던 노파 때문이었다. 노파는 진주와 장미에 강한 집착을 나타내었고 남편에 대해 뭔가 물으려 하자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궁금증이 생기면 잠도 잘 못 자는 성격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가게 의자에 앉아 노파가 지나가나 살피는 게 일과가 되어버렸다.
유월 중순이 넘어서면서 한여름처럼 무더웠다. 대구 지방 수은주는 33도를 넘어섰고 서울도 연일 30도 언저리를 맴도는 날씨였다. 날씨가 정상이라면 거의 하순까지 자태를 뽐낼 장미꽃은 거의 다 떨어지고 시들거나 바짝 말라버린 몇 송이만 눈에 띌 따름이었다. 하순께로 접어들면서 그것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아침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비행기 소리가 유난해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다. 비라도 후련하게 좀 쏟아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노파가 불쑥 들어섰다. 나는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방 비가 쏟아지겠는데......”
중얼거리듯 말하며 노파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몸을 소파에 내던지듯 앉았다. 이내 우두둑거리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끈적거리는 게 소나기가 한 자락 할 것 같더라니까요.”
에어컨을 끄고 문을 열면서 그렇게 말했다. 노파는 내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진열장을 훑어보았다.
“진주 반지를 많이 해 놓았네. 예쁘기도 해라.”
“할머니가 맞추러 오실 것 같아서요.”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래요? 고맙기도 하구먼.”
웃음을 머금은 노파의 얼굴은 그때 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다.
“그 동안 몸이 편찮으셨어요?”
“아, 아니... ”
“장미꽃이 다 져 버렸어.”
고개를 흔들더니 노파는 연이어 말을 했다. 건물 위쪽을 덮고 있던 장미 넝쿨을 본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장미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나 봐요.”
“으응... 옛날에 넝쿨 장미를 길러 봤거든. 유월 초순께부터 피어서 중순께면 담을 새빨갛게 물들이곤 했어. 근데 요즘엔 왜 그리 일찍 피고 빨리 시드는지 몰라.”
“이상 기온 때문일 거예요. 요즘은 유월인지 칠월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덥잖아요. 엘리뇨 현상이라고 텔레비전에서 말하더군요.”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마가 질 모양이네. 방울방울 맺히는 걸 보니... ”
이미 노파는 비가 쏟아지는 걸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인 빗물 위에 떨어져 맺히는 빗방울을 보고 노파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할머니, 혼자 사세요?”
노파에게는 수녀나 비구니처럼 깨끗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대부분 그런 느낌이었다. 장사를 오래 하다보니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나는 노파에게 궁금했던 질문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노파는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얘기를 곁들였다.
“저희 어머니는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재가를 하시라고 했지만 통 듣질 않으시더라구요.”
그때 어머니는 오십이 넘은 늙은이에게 흉한 소리를 한다고 하면서도 아주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약속을 했지. 진주 반지를 끼워 주면서 돌아온다고 말이우. 빨간 장미가 거무스름하게 시들어 갈 때 그런 말을 하고서는 떠났었어. 하루에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으며 기다렸는데... 뽑은 것이 다시 나고 그게 길어서 다시 뽑히고. 어지간히도 긴 세월이었지.”
중얼중얼 뱉듯이 하는 말이었다. 노파는 시선을 천장으로 옮겼다. 나는 노파의 눈 가장자리에 묻은 물기를 보았다.
“사람들은 죽었을 거라 말을 했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었어. 사망 통지서도 오지 않았거든. 하긴 의용군으로 갔는데 그 전쟁 통에 어떻게 살아남길 바라겠어.”
노파는 육이오 사변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때 살아남은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외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큰외삼촌도 죽었다는 인식표의 번호가 찍힌 사망 통지서를 받았을 뿐이었다. 가끔 망령이 든 외할머니는 이북에 가서 외삼촌을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화장품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곤 했다.
“혹시 그이가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남편은 인물이 훤했거든.”
“사랑하던 사람들이 억지로 헤어졌는데 그럴 리가 있겠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살아 있다면 돌아왔겠지?”
노파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파는 일어서서 진열장 안을 훑어보았다.
“엷은 분홍색 크림을 바를 때마다 피난을 가다 잃어버린 반지를 생각했어. 그 알은 은은한 빛깔이었지. 가끔 손바닥에 눈물을 떨어뜨리면 그런 빛깔을 띨 때가 있어.”
그 말이 아니더라도 노파는 눈에 눈물을 매달고 살았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외할머니는 건장한 청년만 보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곤 했다.
내가 사이즈를 재느라 고리를 손가락에 끼우자 노파는 얼굴을 붉혔다. 노파는 열흘 후에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우산을 펼쳤다. 노파가 사라지자 빗소리와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한참 앉아 있던 나는 일어나 주문장을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11호. 가느다랗고 뻣뻣했던 손가락으로 미뤄봐서는 험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금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둥글게 맺혀서 떠다니는 빗방울이 낮은 곳으로 이동하다 힘없이 터지곤 했다. 하수구 쪽으로 빗물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수은주는 35도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냉방 기구와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밤이면 열대야 현상까지 겹쳤다. 한낮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끊겼다. 가게에서 나는 음악을 듣거나 유선 TV 방송을 보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유선방송에서 지난주에 보았던 연속극이 재방영되고 있었다. 요즘은 남편보다 아내의 목소리가 더 당당한 시대였다. 아니 남편들이 주눅 들어 있다고 해야 옳았다. 나와 남편의 모습일 수도 있었다. 내키지 않아서 방송을 시작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고 채널을 딴 곳으로 돌렸다.
생방송이라는 자막이 나오고 사람들이 의자에 줄줄이 늘어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었다. 텔레비전 안의 카드 한 장 크기만 한 귀퉁이 화면에서 젊은 여자가 울먹이고 있었다. 농사꾼인 듯싶은 그녀는 파마머리에 얼굴이 볕에 그을려 자막의 나이보다 훨씬 더 먹어 보였다. 반면 화장까지 한 칠순 노파는 자식을 버릴 만큼 신산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자극하는 프로는 싫어하는 성미라 아나운서까지 눈이 빨개져 있는 것을 보고는 스위치를 누르려고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그때 언뜻 낯익은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사람들 뒤쪽에서 무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노파. 그 노파였다. 분홍색 한복을 입고 나온 노파는 새색시처럼 화사해 보였다. 표찰을 잡고 있는 왼손에 진주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구형을 굳이 고집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텔레비전의 테두리에 잘려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 노파의 얼굴을 찬찬히 보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례가 되자 노파의 모습이 화면 가득히 채워졌다.
“남편을 찾으러 나왔습니다.”
아나운서의 물음에 노파는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 노파의 오른쪽 가슴에는 신상 명세서가 적힌 표찰이 붙어 있었다. 또렷한 글씨 옆의 낡은 흑백사진. 생김새 난에 훤칠한 미남형이라고 쓰여 있어서 쓴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왜, 이제야 찾으시는지요. 그 전부터 이런 프로는 있었는데...”
아나운서 말에 노파는 잠깐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아! 네...”
아나운서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방송을 오랫동안 끌어온 아나운서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피치 못할 사연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방방송국에 출연한 어떤 노인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 어! 하는 감탄사를 토해 냈다. 젊었을 때 꽤 잘생겼을 것 같은 용모의 노인이었다. 노파는 노인이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이것저것 물었다.
“혜화동에서 살림을 차렸고요. 맞아요. 유월이 되면 담벼락이 장미꽃으로 온통 시뻘갰어요.”
노인의 대답에 노파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화면을 통해 노인을 바라보는 노파의 볼에 분홍빛 화색이 돌고 있었다. 노파는 노인을 자세히 보려는 듯 눈을 손으로 문질렀다. 잠깐 노파는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렀다 해도 그런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할머니, 젊은 남자를 보여 드릴까요?”
앞사람이 찾던 아들이 작년에 죽었다고 하자 스튜디오 안이 울음바다가 되어 버려서 분위기가 너무 침체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여자 아나운서의 재치 있는 말에 사람들 입에서 폭소가 터졌다. 스튜디오 안이 한층 밝아졌다.
“제 아버지 함자가 김자 용자 수자고요. 시어머니는 잘 모르겠고, 시아버지는 박종철이든가 병철이든가 그랬어요. 그이가 전쟁터로 가 버리고 나서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마저 의용군으로 가버렸어요. 시동생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고요. 시아버지 시어머니와는 피란 때 헤어져 생사도 모릅니다.”
노파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이번에는 남자 아나운서가 물었다.
“피란 다니다 아이는 유산되어 버리고 친정이 이북이라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다시 혜화동으로 가서 살려고 했는데 저희가 살던 집은 전쟁 통에 없어졌더라구요. 십여 년 가까이 그 부근에서 세 들어 살다 돈을 좀 장만하자 장미를 기르고 싶어서 마당이 널찍한 변두리로 이사를 갔어요. 그렇지만 오 년 전에 재개발을 한다고 아파트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서로 못 만난 것 같군요. 나도 혜화동에 몇 번이나 갔었는데... 집은 없어지고 사람은 찾을 길이 없고...”
이번에는 노인이 눈물을 찍어냈다. 다시금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노파가 석연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떠날 때 안사람한테 무어라 하셨는가요?"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이 부부 같았지만 노파는 무엇인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고작 열흘을 살았는데 거의 오십여 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남편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있다는 것인지, 어쨌든 다음 말이 궁금해서 나는 작은 화면의 노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꼭 살아서 돌아 올 것이라고 기다려 달라고 했었지요.”
“그럼 결혼 때 안사람에게 무슨 반지를 해주셨지요?”
집요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나도 확실히 기억납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어서 금가락지 석돈과 세이코 시계를 사주었지요.”
그 말에 노파는 안색이 변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표찰을 떨어뜨렸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표정조차 굳어 버렸다. 재혼을 해서 가족도 있지만 열흘 동안 살았던 아내를 차마 져버릴 수 없어서 나왔다는 노인의 등은 점점 구부러졌다. 반면 노파는 꼿꼿한 자세로 눈을 감았다. 스튜디오를 밝히는 천장에 붙은 자잘한 등이 노파의 눈가에 매달려 있는 눈물방울을 영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방 방송의 작은 화면은 불시에 사라졌고 노파는 카메라 렌즈에서 점점 멀어졌다.
대통령이 평양을 다녀온 후 남북대화가 재개되었다. 온 나라가 그렇게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던 팔월 십오일 우리 부부는 TV 앞에 나란히 앉았다. 솔직히 나는 노파 때문에 그날을 기다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방송 후 노파를 거의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긴 기다림의 결실이 꼭 맺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진주 반지 해갔던 할머니 기억나?”
나는 노파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넌지시 꺼내었다.
“누구 말이지?”
남편은 반지를 찾으러 왔던 날 딱 한번 노파를 봤기 때문에 잊어 버렸을 수도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에이, 당신이 이상한 느낌이 든다던 할머니 말이야.”
“아... 이제 생각나네. 뭐 남편을 오십 년인가 기다린다던... 엉? 그럼 여기 나올지도 모르겠네?”
남편은 앉았던 의자에서 내려서더니 끌어 당겨서 다시 앉았다.
“나도 지금 그 생각이 마악 떠올랐거든.”
온종일 TV곁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그런 사연을 가진 부부가 만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니 부부가 만나는 경우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식을 찾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간혹 만나는 부부는 좀 서먹한 감이 있었다. 거의 재가를 해서 살고 있었기 때문인 듯싶었다. 나는 맥이 빠져서 저녁 아홉 시 뉴스도 보지 않았다. 내 태도가 걱정이 되었는지 오히려 남편이 위로를 했다.
며칠 후 혹시나 싶어서라며 남편이 신문을 내게 불쑥 내밀지 않았다면 노파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술을 좀 마신 얼굴이었다. 비디오 가게 주인과 내기 바둑을 둬서 졌는데 저녁을 샀다는 남편의 말이었다. 밥 쟁반을 덮은 신문이었던 듯 김칫국물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그 신문이나 보라구.”
“복권에 당첨됐나 보지?”
나는 벌쭉 웃는 남편을 보면서 눈을 흘겼다. 남편은 간혹 싱거운 짓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다 며칠이 지난 신문이어서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남편이 내 표정을 보더니 다시 웃었다.
“실망하지 않을 거야. 거기 말고 뒤쪽을 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신문을 뒤집었다. 석유값 대폭으로 오를 예정. 그 오른쪽 옆에 빛깔이 바랜 흑백 결혼사진이 실려 있었다. '북에서 아내를 찾아온 사진'이라는 제목을 읽는 순간 아찔했다. 사진을 보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머리를 봉긋하게 올리고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내의 낯이 어쩐지 익어 보였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사연을 훑어 읽었다.
북의 남편이 아내를 만나기 위해 신청을 했지만 남쪽에 있는 아내가 불과 육 개월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들 부부 중 남편은 북에서, 아내는 남쪽에서 독신으로 죽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혼인신고도 못 했던 두 사람이 결혼사진만을 보며 서로를 기다렸다고 했다. 고작 열흘밖에 살지 않았던 그들이 남과 북에서 오십 년이나 되는 세월을... 거기까지 읽던 나는 눈가를 문질렀다. 노파가 이산가족 찾기에 나간 것까지 기사에는 수록되어 있었다.
낡은 사진 속의 아내는 한복을 곱게 입고 반지를 끼고 있었다. 진주 반지였다. 골목을 빠져나갈 때 꼭 한 번 돌아보았다던 남편의 가슴에는 시들어 가는 장미꽃과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는 얼굴을 감싸 쥐지도 못하던 아내의 모습이 화인되어 있다고 했다. 남편에게 기댄 채 미소를 짓는 앳된 아내. 사진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신문을 놓으면서 일어섰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와 남편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깨기라도 하듯 벽에 다닥다닥 걸려있는 시계들이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