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분(1934)
김유정
들고 나갈 거라곤 인제 매함지박 키쪼각이 있을 뿐이다. 체량 그릇이랑 이낀 좀하나 깨지고 헐고하야 아무짝에도 못 쓸 것이다. 그나마도 들고 나설랴면 안해의 눈을 기워야 할턴데 맞은쪽에 빤이 앉었으니 꼼짝할 수 없다. 허지만 오늘도 밸을 좀 긁어놓으면 성이 뻐처서 제물로 부르르 나가버리리라. 아래묵의 은식이는 저녁상을 물린 뒤 두 다리를 세워 얼싸안고는 고개를 떠러친 채 묵묵하였다. 묘한 꼬투리가 선뜻 생각키지 않는 까닭이었다.
웃방에서 나려오는 냉기로하야 아랫방까지 몹씨 싸늘하다. 가을쯤 치받이를 해두었든면 좋았으련만 천정에서 흙방울이 똑똑 떨어지며 찬바람이 새여든다. 헌옷때기를 들쓰고 앉어 어린 아들은 화루전에서 킹얼거린다. 안해는 그 아이를 옆에 끼고 달래며 감자를 구어 먹인다. 다리를 모로 느리고 사지를 뒤트는 냥이 온종일 방아다리에 시달린 몸이라 매우 나른한 맧이었다. 하품만 연달아 할 뿐이였다.
한참 지난 후 남편은 고개를 들어 안해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두터운 입살을 찌그리며 데퉁스럽게
"아까 낮에 누가 왔다갔어?"
하고 한마디 내다붙었다.
"면서기밖에 누가 왔다 갔지유"
하고 안해는 심심이 받으며 들떠보도않는다.
물론 전부터 밀어오든 호포를 독촉하러 면서기가 왔든 것을 자기는 거리에서 먼저 기수 채웠다. 그 때문에 붙잡히면 혼이 뜰까 바 일부러 몸을 피한 바나 어차피 말을 꼴랴니까
"볼일이 있으면 날 불러 대든지 할 게지 왜 그놈을 방으로 불러드려서 둘이들 뭐했어 그래?"
하고 눈을 부르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안해는 이마를 홱 들드니 잡은 참 눈꼴이 돌아간다. 하 어이없는 모양이다. 샐쭉해서 턱을 족곰소치자 그대로 떨어치며 잠잣고 아이에게 감자를 먹인다. 이만하면 하고 다시 한 번 분을 솎았다.
"헐 말이 있으면 밖에서 허던지 방으로까지 끌어 드릴건 뭐야"
"남의 속 모르는 소리 작작하게유 자기 때문에 말막음하느라고 욕본 생각은 못하구……"
하고 안해는 감으잡잡한 얼굴에 핏대를 올렸으나 표정을 고르잡지 못한다. 얼마 그러더니 남편의 낯을 똑바루 쏘아보며
"그지말고 밤마닥 집신짝이라두 삶어서 호포를 갖다 내게유"
하다가 좀 사이를 두곤 들릴 듯 말듯한 혼자소리로
"계집이 좋다기로 집안 물건을 모조리 들어낸담"
하고 모지게 종알거린다.
"집안물건을 누가 들어내?"
그는 시치미를 떼며 펄석 뛰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찐하였다. 모르는 줄 알았드니 안해는 벌서 다 안 눈치다. 어젯밤 안해의 속곳과 그젯밤 맺돌짝을 훔으려 낸 것이 탈로 되었구나 생각하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벼락을 맞을라구"
한 팔로 아이를 끌어드려 젖만 먹일뿐 젊은 안해는 받아 주지 않었다. 샘과 분에 못 이겨 무슨 호된 말이 터질 듯 터질 듯 하련만 꾹꾹 참는 모양이라.
"누가 그따위 소리를 해 그려?"
"철쇠 어머니지 누군 누구야"
"뭐라구?"
"들뼝이와 배 맞었다지 뭔뭐야 맺돌하고 내 속곳은 술 사 먹는 거라지유?"
남편은 갑작스레 얼굴이 벌갯다. 안해는 살고자 고생을 무릅쓰고 바둥거리는데 남편이란 궐자는 그 속곳으로 술 사 먹다니 어느 모로 보던 곱지 못한 행실이리라. 그도 안해의 시선을 피할만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마는 그렇다고 자기의 의지가 꺾인다면 남편 된 도리도 아니었다.
"보도 못하고 애맨 소리를 해그래 눈깔들이 멀랴구"
하고 변명 삼아 목청을 돋았다. 그러나 아무 효력을 보이지 않으매 약이 올랐다. 말끝을 슬몃이 돌리어
"자기는 뭔데 대낮에 그놈을 끼고 누었드람"
하야 안해를 되순나 잡았다.
이 말에 안해는 독살이 뾰로졌다. 젖먹이든 아이를 방바닥에 쓸어 박고는 발닥 이러슨다. 공도 모르고 게정만 부리니 야속할게라. 찬방에서 혼자 좀 자란 듯이 천연스레 뒤로 치마다리를 여미드니 그대로 살랑살랑 나가버린다. 아이는 요란히 울어 대인다.
눈우를 밟는 안해의 발자취소리가 멀리 사라짐을 알자 그는 속이 놓였다. 방문을 열고 가만히 나왔다. 무슨 즛을 하던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벜으로 더듬어 들어가서 성냥을 그어대고 두리번거렸다. 생각대로 함지박은 부뚜막 우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그 속에 담긴 감자 나부렁이는 그 자리에 쏟아 버린 뒤 번적 들고 뒤란으로 나갔다. 앞으로 들고 나가단 안해에게 들키면 혼이 난다. 뒷곁 언덕우로 올라가서 울타리 밖으로 던저 넘겼다. 그담엔 예전 뒤나보러 나온 듯이 싸리문께로 와서 유유히 사면을 돌아보았다. 하얀 눈뿐이다. 울타리에 몸을 비겨대고 뒤를 돌아 함지박을 집어 들자 뺑손을 놓았다.
은식이는 인가를 피하야 산기슭으로 돌았다. 함지박을 몸에다 착 붙였으니 들킬 염여는 없었다.
매섭게 쌀쌀한 달님은 푸른 하늘에 댕그머니 눈을 떳다. 수어리골을 흘러 나리든 시내도 인젠 얼어붙어서 날카롭게 번득인다. 그리고 산이며 들, 집, 낫가리, 만물은 겹겹 눈에 잠기어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산길을 빠저 거리로 나올랼제 어데선가 징소리가 울린다. 고적한 밤공기를 은은히 흔들었다. 그는 가든다리를 멈추고 멍허니 섰다. 오늘밤이 진흥회 총회임을 깜박 잊었든 것이다. 한번 안 가는데 궐전이 오전, 뿐만아니라 괜은 부역까지 안담이 씨우는 것이 이 동리의 전레이었다. 허나 몸이 아퍼서 앓았다면 그만이겠지, 이쯤 마음을 놓았으나 그래도 끌밋하였다. 진흥회라고 없는 놈에게 땅을 배채해준다든가 다른 살 방침을 붓들어 준다든가 할진저 툭탁하면 굶는 놈을 붙잡아다 신장노 닦으라고 부역을 시키기가 난당 껀듯 하면 고달픈 놈 불러 앉치고 잔소리로 밤을 패는 것이 일수이니 가뜩이나 살림에 쪼들리는 놈이라 도시 성이 가셔서 벌서부터 동리를 떠날나구 장은 댓으나 옴치고 뛸 터전이 없었다. 하지만 진흥회가 동리 청년들을 쓸어간 것만은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 밤에는 저 혼자 들뼝이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술집 가까히 왔을 때엔 기쁠뿐더러 용기까지 솟아올랐다. 길가에 따로 떨어저 호젓이 놓인 집이다. 산모롱이 옆에 서서 눈에 쌓여 흔적이 진가민가나 달빛에 빗기어 갸름한 꼬리를 달았다. 서쪽으로 그림자에 묻기어 대문이 열렸고 고곁으로 등불이 반찍대는 지게문이 있다. 이방이 게숙이가 빌려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썩 들어스니 게집은 이러스며 반긴다.
"이게 웬 함지박이지유?"
그 태도며 얕은 우슴을 짓는 냥이 사흘 전 처음 인사할 제와 조곰도 변치 않었다. 어젯밤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알톨같은 진정이리라. 하여튼 정분이란 히얀한 물건.
"왜 우서 어젯밤 술값으로 가저 왔지"
하였으나 좀 제면적었다. 계집이 받아들고서 좋아하는 걸 얼마쯤 보다가
"그게 그래봬두 두 장은 넘을걸"
맞우 싱그레 우서 주었다. 게숙이의 흥겨운 낯은 그의 행복 전부이었다.
계집은 함지를 들고 안쪽 문으로 나가드니 술상을 바처 들고 들어온다. 미안하야 달라도 않는 술이나 술값은 어찌되었든 우선 한잔하란 맧이었다. 막걸리를 화로에 거냉만하야 딿아부며
"어서 마시게유 그래야 몸이 풀류"
하드니 입에다 부어까지 준다. 한숨에 쭉 들어켰다. 한잔 두잔 석잔
계집은 탐탁히 옆에 붙어 앉드니 은식의 얼은 손을 젖가슴에 품어준다. 가여운 모양이다. 고개를 접으며
"나는 낼 떠나유"
하고 떨어지기 섭한 내색을 보인다. 좀 더 있을랴 했으나 진흥회 회장이 왔다. 동리를 위하야 들뼝이는 안 받으니 냉큼 떠나라하였다. 그러나 이 밤에야 어델 가랴 낼 아츰 밝는 대로 떠나겠노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은식이는 낭판이 떨어저서 멍멍하였다. 언제던 갈 줄은 알았든게나 급작이 서들 줄은 꿈밖이었다. 따로 떨어지면 자기는 어찌 살려는가. 게숙이에겐 번이 남편이 있었다. 곧 아랫묵에 누어있는 아이의 아버지. 술만 처먹고 노름질에다 훅닥하면 안해를 뚜들겨 패고 벌은 돈푼을 뺏어가고 함으로 해서 견딜 수 없어 석달 전에 갈렸다는 것이었다. 그럼 자기와 들어내고 살아도 무방할 게다. 허나 그런 말은 참아하기 어색하였다.
"난 그래 어떻게 살아 나두 딿아갈가?"
"그럼 그럽시다유"
하고 그 말을 바랐단 듯이 선듯 받아가
"집에 있는 안해는 어떻게 하지유?"
"그건 염여 없어"
은식이는 기운이 뻗혀서 게집을 얼싸 안었다. 안해 쯤은 치우기 손 수웠다. 제대로 내버려두면 어데로 가던 마던 할 터이니까 다만 게숙이를 딿아 다니며 벌어먹겠구나 하는 새로운 생활만이 기쁠 뿐이다.
"낼 밝기 전에 가야 들키지 않을걸!"
야심하여도 술군은 없었다. 단념하고 문고리를 걸은 뒤 불을 껏다. 계집은 누어있는 은식이 팔에 몸을 던지며 한숨을 후지운다.
"살림을 하려면 그릇 쪼각이라두 있어야 할텐데 -"
"내 집에 가서 가저 오지"
그는 아무 꺼림없었다. 안해가 잠에 고라지거던 들어가서 이거저거 후무려오면 그뿐이다. 내일부터는 굶주리지 않어도 맘 편히 살려니 생각하니 잠도 안 올만치 가슴이 들렁거린다.
우풍이 시었다. 주인이 나뻐서 방에 불도 안핀 모양 까칠한 공석자리에 들어 누어서 떨리는 몸을 노기고자 서로 꼭 품었다. 한구석에 쓸어박혔든 아이가 잠이 깨었다. 킹얼거리며 사이를 파고들려는 걸 어미가 야단을 치니 도로 제자리로 가서 끽소리 없이 누었다. 매우 훈련받은 젖먹이었다.
은식이는 그놈이 몹시 싫였다. 우리들이 죽도록 모아노면 저놈이 써버리겠지 제애비번으로 노름질도하고 어미를 두들겨 패서 돈도 빼앗고 하리라. 그러면 나는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격으로 헛공만 드리는 게 아닐가 하고 생각하니 곧 얼어 죽어도 아깝진 않었다. 그러나 어미의 환심을 살려닌까에 그놈 착하기도하지 하고 두어 번 그 궁뎅이를 안 뚜덕일 수 없으리라.
달이 기우러 지개문을 밝힌다. 있다금식 마구간에 뚜벅어리는 쇠굽소리 평화로운 잠자리에 때 아닌 마가 들었다. 뭉태가 와서 낮은 소리로 계집을 부르며 지게문을 열라고 찔걱어리는 것이다. 게숙이에게 돈 좀 쓰든 단골이라 세도가 맹랑하다. 은식이는 골피를 찌프렸다. 마는 계집이 귀속말로
"내 잠간 말해 보낼게 밖에 나가 기다리유"
함에는 속이 든든하였다. 그 말은 남편을 신뢰하야 하는 속셈이리라. 그는 바람같이 안문으로 나와서 방벽게로 몸을 착 붙여 세웠다.
은식이는 귀를 기우려 방의 말을 였드렀다. 뭉태가 들어오며
“오늘도 그놈 왔었나"
하드니 계집이 아무도 안 왔다닌까 그자식 웨 요새 바람이 나서 지랄이야 하며 된통 비웃는다. 그놈이란 자기다. 이말 저말 한참을 주언부언 지꺼드리니 자기가 동리의 평판이 나쁘다는 둥 안해까지 돌아다니며 미워 남편을 숭본다는 둥 혹은 게숙이를 집안 망할 도적년이라고 갖은 방자를 다 하드라는 둥 자기에 대한 흠집은 모조리 들추어낸다. 그럴 적마다 계집은 는실난실 여신이 받으며 가치 웃는다. 그리곤 남 못드를 만치 병아리 소리로들 속은 거리는 것이었다.
은식이는 분이 올라 숨도 거츠렀다. 마는 어쩨볼 도리가 없다. 게숙이 좇아 핀잔도 안주고 한통이 되는 듯 야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노기와 추움으로 말미아마 팔장을 끼고는 덜덜 떨었다. 농창이 난 버선이라 눈을 밟고 섰으니 쑤시도록 저렸다. 안해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집으로만 가면 따스한 품이 기다리련만 왜 이 고생을 하누, 하지만 안해는 싫였다. 아리랑타령하나 못하는 병신, 돈 한 푼 못 버는 천지, 하긴 초작에야 물불을 모르도록 정이 두터웠으나 인제는 다 삭었다. 뭇사람의 품으로 옮아 안기며 에쓱어리는 들뼝이가 천하다 할망정 힘 안 드리고 먹으니 얼마나 부러운가, 침들을 게제 흘리고 덤벼드는 뭇놈을 이 손 저 손으로 후둘르니 그 영예 바히 고귀하다 할지라. 그는 설한에 이까지 딱딱 어린다. 그러면서도 불러 드리길만 고대하야 턱살을 바처대고 눈이 빠질 지경이다.
계집이 한문으로
"잘 가게유 낭종 맞납시다"
"응 내 추후로 한번 가지"
뭉태를 내뱉자 또 한문으로
"가만히 들어 오게유"
은식이를 집어드린다. 그는 닝큼 들어스며 얼은 손을 썩썩 문탯다.
"그 자식 남자는데 왜아 쌩이질이야……"
"그러개 말이유 그건 눈치코치도 없어"
계집은 빌틈 없이 여일하였다. 등잔에 불을 대리며 건아하야 생글생글 웃는다.
"자식이 왜 그뻔세야 거짓말만 슬슬하구"
하며 아까의 흉잡혓든 대갚음을 하였다. 뭉태란 놈은 돈도 신용도 아무것도 없는 건달이란둥 오입질하다 들키어 되게 경을 쳤다는 둥 남의 집 버리를 훔처내다 붙잡혀서 구메밥을 먹었다는 헛풍까지 찌며 계집을 얼렁거리다가 깜짝 놀랜다. 안 말에서 첫홰를 울리는 게명성이 요란하였다. 시간이 촉박하다. 계집의 뺨을 문질러보곤 벌덕 이러섰다.
"내 밖에 좀 갔다 올게 꼭 기달려 응"
은식이는 즈집 싸리문을 살몃이 들어 밀었다. 달은 아주 넘어갔다. 뜰에 깔린 눈의 반영으로 할만 하였다. 우선 봉당으로 올라스며 방문에 귀를 기우렸다. 깊은 숨소리, 안해는 고라젔다. 그제선 맘을 놓고 벜으로 들어갔다. 더듬거리며 부뚜막에 다리를 얹자 솥을 뽑았다. 사년 전 안해를 얻어드릴제 행복을 게약하든 솥이었다. 마는 달가운 꿈은 몇 달이었고 지지리 고생만하였다. 인젠 마땅히 다른데로 옮겨야 할 것이다. 벜벽에 걸린 바구니에는 수까락이 세 가락 있다. 덕이(아들) 먹을 한 개만 남기고는 모집어 궤춤에 꽂았다. 좁쌀이 서너 되 방에 있다마는 그걸 꺼내다간 일이 빗나리라. 미진하나마 그대로 그림자같이 나와 버렸다.
수아릿골 꼬리에 달린 막바지다. 양쪽산에 끼어 시냇가에 집은 얹엿고 쓸쓸하였다. 마을 복판에 일이라도 있어 돌이 깔린 시냇길을 오르나리자면 적쟌히 애를 씨웠다. 그러나 그것도 하직을 하자니 귀엽고도 일변 안탁까운 생각이 안 남는다. 그는 살든 집을 두어 번 돌아다보며 술집으로 힝하게 달려갔다.
"어서 들어 오우 춥지유?"
게숙이는 어리삥삥한 우슴을 띠이며 반색한다. 아마 그동안 눕지도 않은듯 떠날 준비에 서성서성하였다. 계집의 의견대로 짐을 뎅그먼이 묶어놓았다. 먼동트는 대로 질머만 메면 된다. 만약 아츰에 주저 거리단 술집 주인에게 발각이 될게고 수동리에 소문이 퍼진다. 그뿐더러 안해가 쫓아온다면 모양만 창피하리라.
떠날 차보를 다하고 나서 그는 게집과 자리에 맞우 누었다. 추위를 덜고자 몸을 맞붙였으나 그대로 마찬가지 덜덜 떨었다. 얼른 날이 밝아야 할 텐데 -- 그러다 잠이 까빡 들었다.
그건 어느 때나 되었는지 모른다. 아이가 칭칭거리며 머리 우로 기어올라서 눈이 띠었다. 군찬하서 손으로 밀어 나릴랴 할 제 영문 모를 일이라 등 뒤 웃묵 쪽에서
"이리 온 아빠 여깃다"
하고 귀설은 음성이 들린다. 걸걸하고 우람한 목소리. 필연코 내버린 번남편이 결기 먹고 딿아 왔을 것이다. 은식은 꿈을 꾸는 듯싶었다. 겁이 나서 두러누은 채 꼼짝도 못한다. 안해의 정부를 현장에서 맞닥드린 남편의 분노이면 매일반이리라. 낫이라두 들어 찍으면 찍소리 못하고 죽을 밖에 별도리 없다. 등살이 꼿꼿하였다. 생각다 못하야 게숙이를 깨우면 일이 좀 피일가하야 손꼬락으로 넌즛이 그 배를 몇 번 질렀다. 마는 계집은 그의 허리를 잔뜩 끌어안고 코골음에 세상을 모른다. 부쩍부쩍 진땀만 흘렀다. 남편은 어청어청 등 뒤로 거러 온다. 언내를 번적 들어안고
"왜 성가시게 굴어 어여들 편히 자게유"
하며 웃묵으로 도로 간다. 그래도 그 말씨가 매우 유순하였고 맘세 좋아 보였으나 도리어 견딜 수 없이 살을 저몃다. 계집은 얼마 만에 이러났다. 어서 떠나야지 하고 눈을 부비드니 웃묵을 나려다 보고 경풍을 한다. 그리고 입을 봉하고는 잠잠히 있을 뿐이다.
날은 활닥 밝았다. 벜에선 솥을 가신다. 주인은 기침을 하드니 씨걱그리며 대문을 연다.
이판 새판이었다. 은식이도 딿아 이러나 옹크리고 앉으며 어찌 될 건가 처분만 기다렸다. 곁눈으로 흘깃 살피니 키가 커다랗고 감대는 사납지 않으나 암기 좀 있어 보이는 놈이 책상다리에 언내를 안고 웃묵에 앉었다.
"떠나지들 -"
마샛군은 이러나서 언내를 계집에 맡기드니 은식이를 향하야 손을 빈다.
"여보기유 이러나서 이 짐 좀 지워 주게유"
은식이는 허란대로 안 할 수 없엇다. 번시는 자기가 질 짐이었되 부축하야 지워주었다. 솥, 맺돌, 함지박, 봇다리들을 한태 묶은 것이니 조히 무거웠다. 허나 남편은 힘들기커녕 홀가분한 모양, 싱글거리며 덜렁덜렁 밖으로 나슨다. 계집도 언내를 퍼대기에 들싸업곤 딿아 나섰다. 은식이는 꿈을 보는 듯이 얼이 빠젔다. 그들의 하는 냥을 볼라고 설설 뒤묻었다.
아츰 공기는 더욱 쑤셨다. 바람은 지면의 눈을 품어다 간 얼굴에 뿜고 뿜고 하였다. 산모룽이를 꼽드러 언덕길을 나릴랼 제 남편은 은식이를 돌아보며
"왜 섯수? 가치 갑시다유"
동행하길 곤하였다.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우두머니 섯을 뿐. 그러자 산모룽이 옆길에서 은식이 안해가 달겨 들었다. 기가 넘어 입은 버렸으나 말이 안 나왔다. 헐덕어리며 얼굴이 새빨개지드니
"왜 남의 솥을 빼가는 게야?"
하고 게집에게로 달라붙는다.
동리 사람들은 전눈을 두부비며 구경을 나왔다. 멀직이 떨어저서 서로들 붙고 떨어지고 수군숙덕.
"아니야 아니야"
은식이는 안해를 뜯어말리며 볼이 확근거렸다. 그래도 발악을 마지않는다. 악담을 퍼붓는다. 그렇지마는 들뼝이 내외는 귀가 먹었는지 하나는 짐을 하나는 아이를 들러 업은 채 언덕을 늠늠히 나려가며 돌아 보도 않었다. 안해는 분에 복바치어 눈우에 털뼉 주저앉으며 울음을 놓았다. 은식이는 구경군 쪽으로 시선을 흘깃거리며 입맛만 다실 따름. 종국에는 안해를 잡아 이르키며 울상이 되었다.
"아이야 우리 솥이 아니라닌깐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