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김유정
눈뜨곤 없더니 이불을 쓰면 가끔씩 잘두 횡재한다.
공동변소에서 일을 마치고 엉거주춤히 나오다 나는 벽께로 와서 눈이 휘둥그랬다. 아 이게 무에냐. 누리끼한 놈이 바로 눈이 부시게 번쩍번쩍 손가락을 펴 들고 가만히 꼬옥 찔러보니 마치 갓 굳은 엿 조각처럼 쭌득쭌득이다. 얘 이놈 참으로 수상하구나. 설마 뒤깐 기둥을 엿으로 빚어놨을 리는 없을 텐데. 주머니칼을 꺼내들고 한 번 시험조로 쭈욱 내리어 깎아보았다. 누런 덩어리 한쪽이 어렵지 않게 뚝 떨어진다. 그놈을 한데 뭉쳐 가지고 그 앞 댓돌에다 쓱 문대보니까 아아 이게 황금이 아닌가. 엉뚱한 누명으로 끌려가 욕을 보던 이 황금, 어리다는 이유로 연흥이에게 고랑 땡을 먹던 이 황금, 누님에게 그 구박을 다 받아가며 그래도 얻어먹고 있는 이 황금 -.
다시 한번 댓돌 위에 쓱 그어보고는 그대로 들고 거리로 튀어나온다. 물론 양쪽 주머니에는 묵직한 황금으로 하나 뿌듯하였다. 황금! 황금! 아, 황금이다. 피언한 거리에는 커다랗게 살찐 돼지를 타고서 장군들이 오르내린다. 때는 좋아 봄이라고 향명한 아침이었다. 길 양쪽 버드나무에는 그 가지가지에 주먹 같은 붉은 꽃이 달리었다. 알쭝달쭝한 꽃이팔을 날리며 엷 은 바람이 부웅 하더니 허공으로 내 몸이 둥실, 얘 이놈 좋구나. 허나 황금이 날아가선 큰일이다. 두 손으로 양쪽 주머니를 잔뜩 웅켜 잡고 있자노라리 별안간 꿍하고 떨어진다. 이놈이 어따 이건 함부로 내던졌느냐. 정신이 아찔하여 똑똑히 살펴보니 이것이 바로 우리집 대문 앞이 아니냐.
대문짝을 박차고 나는 허둥지둥 안으로 뛰어들었다. 돈이라면 한 푼에 목이 말라하는 누님이었다. 이 누런 금덩어리를 내보이면 필연코 그는 헉, 하고 놀라겠지.
"누님! 수가 터졌수!"
나는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으나 그는 아무 대답도 없다. 매우 마뜩지 않게 알로만 눈을 깔아 붙이고는 팥죽만 풍풍 퍼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입을 연다는 것이,
"오늘은 어떻게 취직자리 좀 얻어봤니?"
대문 밖에 좀 나갔다 들어만 오면 변치 않고 노냥 물어보는 그 소리. 인제는 짜장 귓등이 가볍다. 마는 아무래도 좋다. 오늘부터는 그까짓 밥 얻어먹지 않아도 좋으니까 -.
"그까짓 취직."하고 콧등으로 웃어버리고는,
"자 이게 금덩어리유. 똑똑히 보우."
나는 두 손을 다 그 코밑에다 들이댔다. 이래두 침이 아니 넘어갈 터인가. 그는 가늘게 실눈을 떠가지고 그걸 이윽히 들여다보다 종내는 나의 얼굴마저 치어다보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금덩어리와 나의 얼굴을 이렇게 번차례로 몇 번 훑어가더니,
"이거 너 어디서 났니 ?" 하고 두 눈에서 눈물이 확 쏟아지질 않느냐. 그리고 나의 짐작대로 날랜 두 손이 들어와 덥썩 훔켜 잡고,
"아이구 황금이야!" 평소에도 툭하면 잘 짜는 누님. 이건 황금을 보고도 여전히 눈물이냐. 이걸 가만히 바라보니 나는 이만 만해도 황금 얻은 보람이 큼을 느낄 수 있다. 뻔둥뻔둥 놀고 자빠져서 먹는다 하여 일상 들볶던 이 누님, 이왕이면 나도 이판에 잔뜩 갚아야 한다. 누님이 붙잡고 우는 황금을 나는 앞으로 탁 채어가며,
"이거 왜 이래? 닳으라고." 하고 네 보란 듯이 소리를 냅다 질렀다. 내가 황금을 얻어 좋은 건 참으로 누님의 이 꼴 보기 위하여서다. 이런 황금을 막 허불리 만져 보이느냐, 어림없다, 호기 있게 그 황금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
"오늘부터 난 따로 나가겠수. 누님 밥은 맛이 없어서."
나의 재주가 자라는 데까지 한껏 뽐을 내었다. 이만큼 하면 그는 저쯤 알아채겠지. 인젠 누님이 화를 내 건 말건 내 받고 섰을 배 아니다. 버듬직하게 건넌방으로 들어가 내가 쓰던 잔 세간과 이부자리를 포갬포갬 싸놓았다. 이것만 들고 나서면 고만이다. 택시 하나 부를 생각조차 못하고 그걸 그대로 들고 일어서자니까 이때까지 웬 영문을 몰라 떨떠름히 서 있던 누님이,
"얘 너 왜 이러니 ?" 하고 나의 팔을 잡아들인다.
"난 오늘부터 내 밥을 먹고 살겠수."
"얘, 그러지 마라. 내 이젠 안 그럴게."
"아니, 내 뭐 누님이 공밥 먹는다고 야단을 쳤대서 그걸 가지고 노했다거나 혹은 어린애같이 삐졌대거나........." 하고 아주 좋도록 속 좀 쓰리게 해놓고 나서니까,
"얘, 내가 다 잘못했다. 인젠 네 맘대로 낮잠도 자구 그래 응?"
취직 못 한다고 야단도 안 치고 그럴께니 제발 의좋게 같이 살자고 그 파란 얼굴에 가엾은 눈물까지 보이며 손이 발이 되게 빌붙는다. 이것이 어디 놀구 먹는다고 눈물로 밤낮 찡찡대던 그 누님인가 싶으냐.
"이거 왜 이래 남 싫다는데."
누님을 메다 던지고 나는 신바람이 나게 뜰 알로 내려섰다. 다시 누님이 맨발로 뛰어내려와 나를 붙잡고 울 수 있을 만침 고만침 동안을 떼어놓고는 대문께로 나오려니까 뜰 알에서 쌀을 주워 먹고 있던 참새 한 마리가 포루룽 날아온다. 이놈이 나의 턱밑으로 넌즈시 들어오더니 이건 어디다 쓰는 버릇인지 나의 목줄띠를 콱 물어채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바들짝 바들짝 아, 아아 아이구 죽겠다. 아픈 건 둘째치고 우선 숨이 막혀 죽겠다. 보퉁이를 들었던 두 손으로 참새란 놈을 부리나케 붙잡고 떼어 보려니까 요놈이 버릇없이 요런. 젖 먹던 힘을 다 들여 내 목이 달아나냐, 네 목이 달아나냐고 홱 한 번 잡아채이니 휴우 코밑의 연기로다.
아, 나 죽는다.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참새는 거머리같이 점점 달라붙고 숨쉬기만 더욱 괴로워진다.
공교로이도 나의 코끝이 뚫어진 굽도지 구멍에 가 파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고 구멍으로 아침 짓는 매캐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 연기만도 숨이 막히기에 넉넉할 텐데 이건 뭐라고 제 손으로 제 목을 잔뜩 움켜잡고 누웠느냐.
"그게 온 무슨 잠이냐?"
언제쯤 거기 와 있었는지 누님이 미닫이를 열어제치고서는 눈이 칼날이다. 어제밤, 내일은 일찍부터 돌아다니며 만날 사람들을 좀 만나보라던 그 말을 내가 이행치 못하였으니 몹시도 미울 것이다. 야윈 목에 핏대가 불끈 내솟았다.
"취직인가 뭔가 할려면 남보다 좀 성심껏 돌아다녀야지."
바로 가시를 집어삼킨 따끔한 호령이었다. 아무리 찾아보아야 고대 같이 살자고 눈물로 빌붙던 그 누님은 그림자도 비취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는가. 나도 뚱그렇게 눈을 뜨고서 너무도 허망한 일인 양하여 얼뚤한 시선으로 한참 누님을 쳐다보았다. 암만해도 사람의 일 같지 않다. 낮에는 누님이 히짜를 뽑고 밤에는 내가 히짜를 뽑고. 이마의 땀을 씻으려고 손이 올라가다 갑자기 붉어오는 안색을 깨닫고 도로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이불 속에는 아직도 아까의 그 연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