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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통 따개가 없는 마을

강통 따개가 없는 마을

구효서

 

<모자를 벗을 기회가 오면 벗어야 하기 때문에 모자를 쓴다.> 토마스 만을 읽다가 밑줄을 친다. <이봐, 다이너. 넌 남자와 관계할 때 음낭이 밖에 있는 건지 스틱과 함께 질 안으로 들어가는 건지 아니?> 캐리 피셔를 읽다가 밑줄을 친다.

읽던 책 여기저기에, 검거나 혹은 푸른 밑줄을 그으며 여름(1992) 을 맞았다 <맥아더가 나더러 항복하라고 요구했다던데, 우리에겐 그런 습관이 없다구> ; 김일성. <난 여느 사람처럼 모든 것을 내 무지 탓으로 얼버무렸다. 그 시절에는 무지라는 것이유 ; 권터 그라 스 등등. 무언가를 하염없이 읽었나 보다. 2백개도 넘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데 난 아직 그 부분을 다시 읽지 않았다. 다시 읽다니. 아마 그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설 쓰기란 결국,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거나 진지한 것을 하찮게 생각하기 둘 중 하나다. 소설을 위해 궁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따위가 다 그렇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여름, 포도와 참외 같은 걸 먹으며 나는 우주를 떠올렸다. 포도 씨 하나엔 포도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다. 내가 먹은 포도씨가 땅에 떨어져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싹 틔운다면, 그 나무엔 적어도 수십 송이의 포도가 열릴 것이고, 수십 송이의 포도에서는 수백 혹은 수천 개의 포도씨가 생기겠지. 그것들이 또 싹을 틔우고 틔우고 틔운다면? 황홀한 기하급수다. 포도알 하나 먹은 내 배가 갑자기 우주만 해졌다. 전업(專業) 초기에 나는 전업이라는 걸 다음과 같이 생각했었다. 전업이란, 월요일 저녁에 입은 잠옷 바지를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도 줄창 입고 있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그런데 전업 2년 차였던 지난여름, 나는 우주만 해진 배를 안고 자주 광화문과 종로엘 나다녔다. 오늘은 어떤 하찮은 얘기들이 진지하게 출판됐으며, 누구의 진지한 얘기가 하찮게 출판됐는가 보려고. 광화문 교보문고는 작가의 한숨들로 가득한 곳이다.

종로를 찾았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밥을 먹으러 갔던 것 같은 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했다. 일행이 있을 때는 그곳으로 밥 먹으러 가지 않는다. 종로 3가역에서 5가역 쪽으로 백 걸음 정도 걸어가면 세운상가가 나 온다. 상가 밑을 오른쪽으로 꺾어 돌면 조명기구 각종전선 공구 피혁 따위를 파는 벌집 같은 가게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아주 좁고 더러운 골목이 구멍처럼 뚫려 있다. 그곳이 내가 혼자일 경우 찾는 식당 골목이다. 청국장이 아닌 다른 음식도 팔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청국장을 먹으러 그곳엘 갔다.

담장 벽돌 하나하나에도 청국장 냄새가 깊숙이 배어 있는, 그런 곳이다. 장군의 아들이 <꼬붕>들을 데리고 오가던 거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 말 없이, 어깨를 꺾고, 끈적거리는 식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청국장 백반 한 그릇을 비웠다. 여덟 개의 커다란 쟁반을 머리 위에 포개 얹고 배달 나가는 아주머니는, 볼 때마다 불가사의다.

내가 밥을 사 먹고 나오는 모양은, 대낮 사창가 골목을 빠져나온 신사처럼 은밀하고 잽싸다. 큰길로 나와서는 공연히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못 봤지? 라는 식이다.

식당 안은 너무도 어수선하고 불결하다. 죽은 파리들을 다닥다닥 달고 있는 끈끈이가 무려 여섯 개. 물컵에는 세제 찌꺼기가 묻어 있기 일 쑤고, 벽에 붙어 털털거리는 선풍기엔 먼지와 기름때가 켜켜로 쌓여 있다. 문득문득, 이곳이 어떤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세워 놓은 난민 보호소 야외세트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난 그런 곳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이 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입가를 쓱쓱 문지르며 큰길가로 나와선, 두리번거리고, 아닌 보살 하는 거겠지. 그런데도 나는 혼자일 때면 그곳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가서는 늘, 허겁지겁 먹고, 빠져나와 시치미를 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청국장을 먹고 나와 종묘 주차장 쪽으로 큰길을 건너야 집까지 오는 1호선을 탈 수 있다. 자주 걷는 길인데도 걸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놀란다. 종삼약국과 롯데리아 사이에 새점 치는 노파가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있을 것이다. "새점 치세요."라고 말한 뒤, 노파는 2, 3초 후에 똑같은 말을 똑같은 억양으로 반복한다. "새점 치세요."란 말의 억양과 음색이 나를 놀라 멈추게 한다.

소름이 끼치니까 자연 모골도 송연해진다. 나는 몇 번이나 길바닥에 털퍽 주저앉고 싶었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괴상하지도 않지만, 무의 식 어딘가를 맹렬하게 강타하는 소리.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반응을 살핀 적도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노파의 억양에 흠칫 놀라는 축도 없 지 않았다. 저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려나. 노파의 음성이 들을 때마다, 조금 전에 더럽고 어두운 골목식당에서 청국장을 먹었다는 사실을 들켜버린 것 같아진다. 새점 치라는 말이 "다 알고 있어 임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청국장 맛과 냄새, 식당 분위기, 그리고 노파의 음성은 아주 오래 전에 내가 버린 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코 다시 찾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도 혼자일 경우 나는 어느 틈에 종로를 찾는다. 새점 치는 노파 앞을 지나치지 않아도 얼마든지 1호선을 탈 수 있는데, 나는 마치 깜박 잊었다는 듯 번번이 그녀 앞을 통과한다. 엉뚱하고 하찮은 상상력이 내 뱃속에서 우주만큼 자라는 날이면 말이다.

한 해에 단편을(그럴 수는 없겠지만 하여튼) 한 열 편 정도 쓴다고 하자. 문예지에 연재도 한다고 하자. 이만하면 작가로선 대성공이다. 아내는 그러나 용납하지 않는다. 원고료로 따져보자. 가장 많이 주는 계간지 원고료로 계산해도 다 합해 8백만 원이다. 일 년 열두 달을 8백 만 원 가지고 살 수 있어? 나는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내는 애 둘 데리고 살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살 수 있다고 한다. 청국장처럼. 그러면 아내는 말한다. 당신 일 년에 단편 몇 편 발표해? 지금까지 연재라는 걸 한 번이나 해 봤어? 나는 자꾸 헛배가 불러서 종로 3가를 찾다가, 이 도시를 떠나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 육신이, 거대해진 복부 한켠에 붙어 있는 작은 부속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아주 떠나는 게 아니라 한 보름 정도. 난 아주 떠나게 생겨 먹질 않았다. 길면 한 스무날 정도. 청국장집 같은 데서 삼시 세끼 밥을 먹고, 새점 치는 노파 목소리에 몇 날 며칠 갇혀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면 배가 좀 꺼지려나. "잘 팔리는 소설 한번 구상해 보려고. 잘 팔리는 소설 말야." 아내에겐 거짓말을 치고 짐을 쌌다. 현관을 나서는데 아내가 말했다.

"생리가 없어요."

잠시 멈추었다가 나는 말없이 돌아서 도망쳤다. 라훌라. 그렇게 해서 그 마을에 도착했다. 언젠가, 문예중앙 봄호였던가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내가 다다른 곳은 반야심경이 무언지도 모르는 칠십 노파가 주지로 있는 작은 암자였다. 대전시 판암동을 지나 세천고개를 넘어 옥천 쪽으로 생쌩 달리다 보면 대청호반이 눈 밑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그곳에서 호박잎에 밭밥을 싸 먹으며 하루에 귀신 두서넛을 저승으로 쫓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고 일어나 대청호 수면 위의 물안개를 굽어보다 아침을 먹었고, 입을 벌린 채 수면을 바라보다 점심을 먹었고, 놀을 반사하는 수면을 또 바라보다 저녁을 먹고 잤다. 감나무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원래는 산꼭대기에서 마을 저 아래로 굽어보던 암자였다. 그러던 암 자가 지금은 마을 한가운데 있다. 암자가 마을로 내려온 게 아니라, 마을이 암자 곁으로 온 것이다. 대청댐이 생기면서 마을은 수몰됐고, 사람들만 빠져나와 암자 곁에다 새마을을 건설했다. 2십여 호의, 작 은. 마음 한가운데로 2차선 아스팔트가 놓여 있다. 2십 분에 한 대 꼴로 자동차가 전속력을 내서 지나가고, 그러고 나면 금방 적막에 쌓여 자동차가 지나갔는지 말았는지 개들도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나는 똑같은 메뉴의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다. 피마자 이 파리를 쌈아 된장에 무친 것, 썬 오이를 삶아 된장에 무친 것, 된장에 무친 도라지, 된장국, 된장에 무친 시금치, 된장에 꽂아두었던 깻잎과 고추 등등을 먹었다. 몇 날이 지날 때까지 나는 그것들이 왜 한결같이 된장에 버무려져 있었던 걸까를 알지 못했다.

"왜 그렇죠?"

부엌에서 일하는 잔귀 먹은 늙은 보살에게 물었다.

몇 번을 거푸 소리쳐 묻다가 공연히 물었다고 후회했다.

"? 맛이 없어?"

맛이 없긴. 맛은 아주 좋았다. 그냥 물어보는 거라고 했다. 외치다가 지친 나의 말을 반을 제스처로 했다.

"주지 스님이 좋아하셔."

나는 그 암자를 떠나올 때까지 엄청난 양의 된장을 먹은 셈이다.

할 일이 없었다. 할 일이 있어 간 게 아니니까 할일이 없었던 건 당연했다. 툇마루에 나앉아 반쯤 익은 석류를 바라보는 일. 빗물 고인 돌절구를 들여다보며 장구벌레 수를 헤아리는 일. 그놈은 어떤 때는 두 마리도 됐다가 열세 마리도 되곤 했다.

금방 고개를 빼낸 호반가의 은빛 갈대꽃을 멀리 바라보다가, 화장실 문 앞까지 놓여진 검은 편마암의 개수를 셌다. 시골에서도 모두 보일러를 설치하니까 구들장으로 쓰던 편마암도 이젠 다 소용없구나. 이런 사소한 깨달음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묵고 있는 방 앞에는 대가리가 솜사탕만 한 맨드라미와, 싸리나무, 과꽃, 채송화, 고염나무, 대추나무, 돈부, 나팔꽃, 분과, 호박덩 굴, 벽오동, 배롱나무, 감나무, 토란, 들깨, 열무들이 있었다. 8월 땡볕에 타고 있는 그놈들을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눈이 멀어버릴 정도였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 후배가 찾아와서 체질론을 늘어놓고 돌아갔다. 필요에 의해 소설의 색깔을 자유자재로 선택해 쓸 순 없는 것이다, 결국 제 체질대로 쓰는 수밖에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 대학 3학년인 주제에 지나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나는 아무 말 없이 대청호 수면을 바라보았다. 장난감 같은 낚시 감시선이 시동을 끈 채 물 위에 떠 있었다. 어떤 날은 소설가 윤형이 다녀갔다. 여동생 결혼 때문에 내려왔다며 그는 맥주 여덟 병과 오징어, , 해바라기 씨를 사왔다. 물가에 앉아, 뜨거운 햇빛 소나기에 머리통이 후끈거릴 때마다 우리는 한 잔씩 마셨다. 전업을 꿈꾸고 있는 (그게 꿈일 수 있을까) 그는 나만 보면 마음 이 약해진다고 했다.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물빛에 넋을 놓는 일이 전부였다. 등과 가슴이 코스모스 꽃술처럼 샛노란 노랑저고리벌이 서까래에 파놓은 자기 집을 쫓는 걸 두 시간 넘게 바라보았다. 신방돌이나 그 옆 콘크리트 동발에 떨어졌겠지. 다리를 꼬고 누워 생각하다가 나는 아침마다 대빗자루로 그곳을 깨끗이 쓸던 늙은 보살을 떠올리곤 미안해졌다. 어디 안 보이는 곳에다 버려야겠다 싶어 일어나 창밖으로 내다보았는데, 죽은 그리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 샅샅이 뒤졌으나 (어차피 할 일이 없었으므로) 그리마는 간데없었다. 그리마의 행방을 안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개미가 가져간 게 틀림없었다.

또 몇 날이 지난 뒤에야 나는 부엌의 늙은 보살 말고 두 사람의 암자 일꾼을 알았다. 한 사람은 총무주임이라 불리는 서른두셋 먹은 청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운전도 하고 집도 고치는 마흔 가까이 된 불목하니였다.

청년은 뫄한머루라는 격투기 수련을 통해 도에 이른다는 독특한 종교를 갖고 있었는데 밤마다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동방불패] [용문객잔] 주인공들처럼 공중을 휙휙 날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했고, 고시 준비를 하러 암자에 들렀다가 아주 눌러 앉아버렸다고 했다. 불목하니 사내는 기회만 있으면 나에게 접근해 무슨 얘긴가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노파 주지가 틈을 주지 않았다. 작은 암자였으니 그가 해야 할 일은 많은 것 같았다.

방에 누웠거나 툇마루에 나앉아 있기만 하는 내가 딱해 보였던지, 불목하니 사내는 어느 날 내게 산책로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방에 누웠거나 툇마루에 걸터앉는 일이 결코 심심하지도 무료하지도 않았으므로, 산책로를 알고 난 뒤로도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2십 분에 겨우 한 대씩 지나가는 텅빈 도로를 맘껏 지그재그로 걸었던 것도 심심하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차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를, 이쪽 가장자리에서 저쪽 가장자리로 천천히 S자를 그으며 왔다 갔다 하는 게 썩 재미있었다. 산꽃들이 피어 있는 곳을 따라 처음으로 들어갔던 산길도 불목하니 사내가 가르쳐준 산책로는 아니었다. 그가 일러준 산책로를 비로소 찾게 된건 그 마을의 뒷산에 상상외로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였다. 그런 야산에는 으레 많은 야생화가 피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러려니 생각만 하는 것하고, 실제로 그렇게 많이 피어 있는 꽃들을 별 준비 없이 목격하는 것 사이엔 판이한 느낌의 차이가 있다. 나는 자주 꽃을 찾아 암자를 나섰다. 산을 헤집고 다녔다. 불목하니 사내가 가르쳐준 산책길은 그중에서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코스였다. 하루는 그 꽃들을 꺾어다 삭막한 방에 꽂아놓고 싶어졌다. 내가 쓰던 방엔 요와 이불이 각 한 채씩 있었고, 전에 사용하던 사람이 걸어놨을 법한 달력이 4월까지 넘겨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앉은뱅이책상과 그 위에 놓인 내 숄더백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방안에서 나는 향기라곤 내가 가져온 존슨즈 베이비 로숀 냄새뿐이었다. 산이나 들에 가서 사과나 오이 따위를 무심코 깨물다 그 향기에 깜짝 놀라듯, 나는 존슨즈 베이비 로숀의 그 돌올한 냄새에 흥분마저 됐었다. 꽃을 꽂아 보겠다는 생각도 아마 그런 데서 나왔을 것이다. 꽃을 꽂아둘 기명 같은 게 얼핏 떠오르지 않아 그만둘까 하다가, 마을 앞 길가에 널려 있던 음료수 깡통들을 떠올리고 그거면 되겠다 싶어 슈 퍼 같은 데서 주는 비닐봉지를 주워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7십 개의 깡통을 모으는 데 하루를 할애했다. 그까짓 것 7십 분 정도면 충분했지만, 하루를 할애했다. 물이나 흙에 반 이상 잠겨 있거나, 조금이라도 우그러져 있거나, 오래돼서 프린팅 상태가 바랬거나, 안에서 오물이나 개미 따위가 나오거나 하면 줍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다 줍는다면 4십 분도 안 돼서 일이 끝날 것 같았으므로. 한 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한 손에 기다란 막대를 쥐 수풀이나 고랑을 천천히 뒤지며 어슬렁어슬렁 하루를 보낸 날, 내 배는 많이 꺼져 있었다.

이튿날 수돗가에서 깡통을 씻다가 나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요즈음 깡통은 모두 손가락을 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에는 일 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만 나 있다는 것. 그대로는 꽃을 꽂을 수가 없었다. 깡통따개로 도려내지 않으면 깡통 하나에 기껏해야 한두 송이 꽂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깡통따개 찾기 순례가 시작됐다. 그것은 순례일 수밖에 없었다.

"깡통따개 있어요?"

깡통 따는 흉내를 커다랗게 해 보이며 늙은 보살에게 물었다. 보살은 고개를 흔들었다.

"거 왜 통조림 딸 때 쓰는 거 있잖아요?"

"예서 비린 거 먹을 일 없잖여."

부엌살림 도맡아 하는 보살이 없다는 없는 거였다. 깡통따개 하나 빌리기 위해 저 아래 가게까지 가기가 싫었다. 빌려달라면 안 빌려줄 수 없겠지만, 낯간지럽게 고걸 어떻게 빌려달라고 하나? 그냥 하나 달라고 하지. 아냐, 사겠다면 되겠다. 떳떳하잖아.

그러나 가게에도 깡통따개가 없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만 같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요샌 죄 원터치 캔이라...."

혹시 누구네 집엔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가겟집 주인은 직무유기성 발언을 했다. 있어도 병따개 겉은 디 한데 붙어있을 뀨, 어쩌구 하면서. 방안에 꽃을 들여놓겠다는 계획이 하룻만에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었다. 암자에도 없고, 마을의 유일한 잡화점에도 없는 깡통따개. 곱게 몸을 씻고 나를 기다리던 수돗가의 7십 개 깡통들이 뭔가를 포기한 듯한 내 표정을 보자 갑자기 칭얼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마을로 나가 고샅을 배회했다. 외지의 낯선 사람이 부엌 같은 데 로 느닷없이 들이닥쳐 깡통따개를 내놓으란다면 놀라 자빠지지 않을 사람 없겠지.

난 고샅을 배회하다 아낙서껀을 만나게 되면 아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말할 작정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저어, 깡통따개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열이면 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곁이 지나도록 내가 만난 아낙들이 반응을 종합해보건대, 그녀들의 고개 가로저음은 깡통따개가 없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녀들은 나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 일단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뿐이었다. 멀쩡하게 생긴 사내가 수상히 배회하다 어깨를 굽신거리며 다가와선 뜬금없이 묻는다는 게 깡통따개 있느냐는 것인즉, 나 같아도 고개부터 젓고 볼 일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순 없어서 난 오후까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한테 물었다. 어떤 아낙은 내가 정신이 황폐해져 암자에 요양 온 사람으로 알았고, 황폐해진 데엔 분명 깡통따개에 얽힌 기막힌 사연 같은 게 있을 거라고 믿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지 말고 솔직히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거 좀 빌려주슈! 라고 뻔뻔스럽게 대들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말 없어서 고개를 흔들든, 있으면서도 다른 이유 때문에 고개를 흔들든, 고개를 흔드는 한 깡통따개를 빌릴 순 없는 일이었다. 다섯 시간을 어슬렁거린 끝에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이 마을엔 깡통따개라곤 아예 씨가 말랐어. 참 별난 마을도 다 있구나. 오기 같은 게 생겨서 나는 한 개의 깡통따개를 위해 대전까지 나가기로 했다. 대전까지 가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몰라 다음날 일찌감치 아침밥을 먹고 길에 나가 섰다. 한 시간 2십 분이 넘게 기다려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승객보다 많은 농산물 꾸러미가 버스 안에 가득했다. 대전역 앞 시장에서도 깡통따개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네 번째 들른 식료품점에서 간신히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나온 김에 질레트 면도날을 샀고, 대중탕에 들러 목욕을 한 뒤, 홍명상가 옆에서 좋아하는 알감자도 몇 개 사 먹었다. 암자로 돌아왔을 때 는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었다.

깡통따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수돗가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7십 개의 깡통 중에 거의 모든 깡통이 모조리 큰 입을 벌리고 있는 것 이 아닌가. 누군가가 솜씨도 좋게 내 대신 그 일을 해 놓았던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서 수돗가에 멍청히 서 있자니 불목하니 사내가 나타났다.

"아저씨가 한 거 맞죠?"

대답은 않고 사내는 그냥 씨익 웃었다.

"어떻게 땄죠? 깡통따개도 없이."

"별것도 아닌데...."

사내는 한쪽의 녹슨 호미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곤 보란 듯이 그 호미를 집어, 남아있던 몇 개의 깡통마저 순식간에 따버렸다. 호미의 날끝을 구멍에 넣은 뒤 깡통을 한 번 두 번 세 번 돌리니까 끝, 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깡통을 땄던 건 아닐까 착각될 만큼 신기한 재주였다. 세 개를 따는데 15초 이상 걸리지 않았다.

"깡통따개론 음료수 깡통이 잘 안 따질 거예요." 사내가 말했다. 설마 그럴까 싶어 나는 대전 시내에서 얻어온 깡통따개로 따봤다. 역시 그의 말이 맞았다. 맥주 깡통, 캔커피, 콜라, 사이 다, 과일, 넥타깡통 등은 깡통따개로 따지지 않았다. 이상하지만 그랬다.

"손재주가 참 좋으시군요."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런 걸 재주랄 것까진 없죠 뭐. 재주라면 사실 따로 있긴 있는 데...."

그는 의례적인 겸손 같을 걸 떨지 않았다. 그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뢰를 갖게 했다.

"그게 뭡니까?"

거듭 감탄할 준비를 하고 내가 물었다.

"탈출이에요."

"탈출? 탈출이라...."

그를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과 발을 묶고 관에 넣은 뒤 못질을 하고 돌에 매달아 바다에 빠뜨려도 탈출해 살아나는 거...."

", 그런 거. 영화에서 본 것 같아요."

"공인중개사, 세무사, 변호사, 의사, 판사, 검사, 노무사, 평가사, 해결사, 그리고 탈출사."

"그렇군요. 탈출사."

그는 어깨를 으쓱 폈고, 나는 갑작스럽게 궁금한 게 많아졌다.

"정말로 묶이고 목박히고 바닷물에 던져지고 그랬어요?"

"해보진 않았지만 못할 것두 아니죠. 그러려면 돈 있는 사람이 계획도 멋있게 쫙 테레비에다 광고 같은 것도 팡팡 때리고 그래야하는 그게 여의치가 않아서...."

"그럼 아직 한 번도 그런 일을 직접 해보신 적은 없는 겁니까?"

"그렇진 않죠.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근 20년간 써커스에서 날리는 탈출사였소."

"그렇군요. , 탈출사."

"그냥 탈출사가 아니라 늘 날리는 탈출사였다니깐요. 인기 한번 끝내줬죠."

그는 가늘게 실눈을 떴다.

"네에, 날리는 탈출사."

"근데 선생은 뭘 하는 분이오?"

그가 내게 물었고, 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름을 물어왔다. 나는 점점 낭패스러워졌다.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이거 미안해요. 그쪽으론 워낙 몰라서" 뒤통수를 긁으며 그가 말했다.

"어차피 선생도 세상에다 멋진 것 하나 터뜨리긴 터뜨리셔야겠네. 우리 같은 사람도 척 들으면 알게시리."

", 그래야겠죠. 허허...."

내 목구멍에서 제멋대로 웃음이 기어 나왔다.

", 선생. 내가 왜 이곳에 틀어박혀 있는 줄 아시오? 여깃는 사람 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 사실은 여기 숨어서 전혀 새로운 탈출비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이것만 완성되면 난 당장에 스 타가 된다 이겁니다. 테레비에 나오는 건 아무것도 아녜요. 세계 순 회공연 같은 걸 하게 될 거예요. 저 혹시 카퍼필드라구 아세요..."

그가 무슨 은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쏟아놓으려는데 늙은 보살이 허둥지둥 달려와 그에게 손짓을 했다. 여기서 또 뭔 설레발이냐, 주지 스님이 급히 찾는다, 그런 뜻의 시늉이었다. 탈출사는 군기충천한 병사인 양 총알처럼 법당 쪽으로 튀어갔다. 그가 돌연히 사리지고 난 수돗가의 공백감을 추스리지 못해 한동안 우두 커니 서 있던 나는 깡통을 한 아름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앉은뱅이책상이 놓은 밑변을 제외한 다른 세 변에 각각 20개씩의 깡통을 다자형으로 배열했다. 나머지 열 개는 창틀에 올려놓고 물을 길어다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방안은 깡통만으로도 화려했다. 다음 날 아침을 일찌거니 먹고 숲으로 들어갔다. 깡통을 꽃으로 다

채우려면 한 번 나들이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 나는 최소한 여섯 번을 생각했다. 그 마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바쁜 하루가 될 것 같다.

꽃을 꺾으면서야 나는 비로소 가을이 와 있음을 알았다. 여러 꽃들을 그냥 눈으로 보고 말았을 때는 그것들이 그저 꽃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꽃을 꺾자니 꽃 하나하나의 인상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황색 두화의 감국을 꺾으면서, 이런 벌써 가을이잖아, 하고 중얼거렸다. 구절초며 떡쑥이며 개망초 따위는 내가 아는 이름들이었다. 개보리 뱅이, 가새풀, 벋음씀바귀도 그랬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꽃들이 훨씬 많았다. 꽃향기에 취해, 바짓가랑이가 흠뻑 젖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꽃대가리를 꺾었다. 두 손으로 움켜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방으로 돌아와 덜어놓고 다시 숲으로 달려갔다. 몇 번을 오갔는지 모른다. 작은 방이 꽃무더기로 쌓여가는 걸 보면서 신명을 냈다. 오늘 밤은 저 꽃들을 발치에 두고 잘 수 있겠구나. 동화 같잖느냔 말이다.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이 와 사위가 검게 지워지면서 내 방은 수없이 자근 꽃잎들이 뿜어내는 빛들로 푸르게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어서 그 한가운데 길게 눕고 싶었다. 방안 가득한 이 꽃향기에 난 어쩌면 질식해 죽을지도 몰라. 백합향에 취해 죽은 사람이 있었다잖아. 문을 조금만 열어놓을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죽을 맘도 없으면서도 나는 창문을 꼭꼭 닫았다. 그리고 누워서,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아침에 사내가 나를 깨웠다.

"코가 노랗게 됐어요, 선생."

열 시간 동안의, 꿈도 없는 깨끗한 잠이었다. 나는 수돗가로 나가 거울을 보았다. 두 개의 콧구멍이 망초꽃으로 막혀 있는 것처럼 샛노랬다.

"어서 아침 드시고 오세요. 보여드릴 게 있어요."

"안 먹겠어요. 무 같은 거 있으면 한 개 먹고 싶네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무가 먹고 싶었다. 내가 세수를 하는 동안 탈출사 사내는 부엌으로 가 머리통만 한 무를 가져왔다. 수돗물이 갑자기 차가워져 있었다.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커다란 무 하나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이걸로 날 묶어봐요."

다 먹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사내는 내게 흰 노끈을 내밀었다. 그리곤 자신은 의자 위에 가 앉았다.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나는 그를 묶었다. 무를 먹듯, 아 천천히 정성스럽게 그를 묶었다. 노끈의 길이는 7미터쯤 됐다. 발목과 손목을 묶고 장단지와 팔과 가슴과 어깨를 의자와 함께 묶었다. 묶으면서, 이런 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 묶을 동안 그는 꼭꼭 묶어요, 라고 세 번이나 거듭 주문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마술을 하거나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은 늘 무대 위에 있었으며, 그들을 보조하는 사람들 역시 무대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몸을 묶고 상자에 가두는 사람들도 공연히 끝나면 묘기를 부린 사람에게 던져진 동전들을 분배받는 사실. 그러니까 묶거나 못질하는 데에 속임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관객들을 실감 나게 하기 위해 관객 중 하나를 무작위로 뽑아 그 일을 대신 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작위를 가장한 작위일 뿐이다. 그와 나 사이엔 그런 밀약이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것이 내가 흥분한 까닭이었다.

"잘 묶었어요?"

그가 물었고, 그렇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 뜬 눈에선 빛이 났다. 마당 안엔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그가 가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이었다. 내가 묶었던 노끈은 뱀의 허물처럼 풀어져 그의 발치에 쌓여 있었다. 그가 씨익 웃었다. 별난 아침이다, 라고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놀랐죠?"

"정말 그래요."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건 속임수예요."

"내가 묶었는데도요."

"물론이에요. 선생은 나를 풍선에 묶은 것과 같아요. 결박에서 풀려나려면 풍선을 터뜨리면 돼죠."

"풍선이 아니 의자에 묶었어요."

말하고 나서야 나는 의자를 봤고, 다시 한번 놀랐다. 의자는 간이회의장 같은 데서 많이 쓰는, 접는 의자였던 것이다. 접혀지면 용적이 적어진다. 이런 것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가 또 씨익 웃었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숱한 탈출을 선보였죠. 오토바이에 묶여서도 탈출했고, 뒤주 안에서도 뛰쳐나왔어요. 더불백 속에 갇혔다가도 2초 만에 나오고, 그랜드 피아노를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관통하기도 했다니까요. 문을 열지 않고 자동차에서 빠져나왔고, 쌀가 떪 속에서도 탈출했어요. 수갑이 채워진 채 캐비넷에 갇혔다가 2초 만에 관중석으로 뛰어나오기도 했죠. 제 인기라는 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가는 곳마다 아가씨들이 성화가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단장이 못 만나게 했죠. 여자한테 한번 빠지면 돈벌이고 인기고 다 끝장이라는 거예요. 써커스가 호황이었을 때, , 그땐 정말 끝내줬는데...."

탈출사는 하던 말끝을 사리고 갑자기 풀이 죽었다. 저쪽에서 늙은 주지 스님이 딱하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아 개수작 말고 법왕이 밥이나 갖다줘!"

주지 스님이 말했다. 법왕이는 암자에서 기르는 비루먹은 강아지 이름이었다.

그 뒤로는 탈출사는 내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지만 번번이 보살이나 주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잘되가요? 라고 아내는 물었고, 응 그럭저럭, 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남편과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 지겨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 신기해했다. 자기들은 일요일 하루 같이 있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고. 그러나 아내는 하나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어쩌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가게 되면 아내는 나 없는 집이 적적해서 이웃으로 놀러간단다.

애 둘을 데리고. 나는 아내에게 담배를 가져오라거나 재떨이를 가져오라거나 신물을 가져오라지 않는다. 이불을 깔아달라거나 개라거나 하지 않는다. 입었던 옷과 양말 따위를 아무 곳에 벗어놓지 않는다. 동사무소에 가서 등초본을 떼오라든가 은행에 전화요금을 내라지 않는다. 옥수수 샐러드를 만들어 달라거나 커피를 끓여달라지 않는다. 그 모든 걸 내가 한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건 전화다. 내가 전화라는 걸 처음 사용한 건 중학교 3학년 땐가 그랬다. 상경하기 전까지 나는 전화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무소식에 익숙하고 편하다. 너무 빠르고 많은 정보가 주위에서 왕왕거리면 어디 적막한 곳으로 대뜸 도망치고 싶어진다.

나는 궁금한 걸 잘 참는데 아내는 그렇지 못하다. 거의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면 아내는 말한다. 잘되가요? 난 대답한다. , 그럭저럭. 어떤 건데? 아내가 다시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아침에 넥타이 매고 출근해서, 점심때 생선 초밥을 먹고, 저녁에 한 여자를 강간한 뒤, 집에 와 자살하는 얘기야." 탈출사 사내는 어느 날 기이하게 생긴 의복 하날 가져와 나에게 내밀 며 무슨 소용에 닿는 물건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가르쳐 주겠다며 그는 그걸 내게 입혔다. 이 상한 옷이었다. 팔과 소매가 없는 갑옷 같은 건데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게 바로 구속복이라는 거예요."

그는 웃었다.

", 난폭한 죄수한테 입히는 거? 근데 이런 걸 어디서 구했어요?"

"단원이었을 때 쓰던 거죠. 어때요, 그 상태에서 그걸 벗어버릴 수 있겠어요?"

"설마요. 모르긴 몰라도 이건 꽤 과학적으로 고안된 족쇄 같은데."

"과학적이란 말이 맞아요. 그걸 내게 입혀 보세요."

그는 자기 몸을 내게 맡겼다. 나는 구속복을 그의 상체에 씌우고 꼼꼼하게 끈을 당겨 맸다. 다 됐느냐고 그가 물었고, 그렇다고 내가 대답했다.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윗몸을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구속복을 벗어 팽개쳤다. 그가 탈출사라는 게 실감 났다.

"이건 속임수가 아녜요. 일종의 숙련이랄 수 있는데, 야구의 체인지 오브 베이스 같은 거죠. 고정관념의 허를 찌르는 거예요. 도저히 할 수 없다고만 생각하면 ㅈ 할 수 없는 거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나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사람의 어깨가 차지하는 절대적인 용적이 있어요. 그 용적을 줄이고 빠져나오는 거죠."

"절대적이라면서요?"

"절대적이라는 게 바로 고정관념이에요."

"그럼 어떻게요?"

"어깨를 탈골시키는 겁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아프지 않아요?"

"물론 아프죠. 죽을 것처럼. 하지만 숙달되면 견딜 만해져요."

"아하."

그는 묻은 흙을 털어낸 뒤 손바닥만 하게 접었다.

"서커스에서 했던 일은 모두 어둔 조명에서만 가능했었어요. 그것도 보조의 도움이 필요했죠. 하지만 탈골 아이디어 같은 게 있으면 굳이 어둘 필요도 없고 보조도 필요없겠죠."

"그렇겠군요."

나는 내 어깨를 만졌다.

"내가 이곳에서 연구하는 건 바로 그런 거예요. 무대를 실제 구조물로 대체하는 겁니다. 백화점 지하실 같은 데서 탈출하거나, 경찰서 유치장, 전속력으로 달리는 화물열차에서 멋지게 빠져나오는 거죠. 사전 준비 장치 없이."

그는 혀로 자신의 입술을 자주 핥으며 말했다. 머잖아 그는 그런 일 들에 성공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자 이리 와 봐요."

그는 내 손을 잡고 자신이 기거하는 방 앞으로 데리고 갔다. 손의 촉 감에서 나는 곧 신기한 일이 또 벌어질 거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문을 활짝 열고 내부를 확인시켰다. 얇은 이불 한 채 와 낡은 책장이 하나 있었다. 벽에 걸린 몇 벌의 바지, 등산모, 붉은

색 티셔츠가 보였다. 작은 창문이 북쪽으로 나 있었다. 그는 내게 긴장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은 애가 연구한 것 중 하나를 선생께 특별히 선보이는 것이다, 아직 발표할 시기가 아니니 행여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당신만 믿겠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방문을 밖에서 꼭 잠가요. 뒷창문도 단단히 잠가요."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그가 내게 말했다. 다 잠근 뒤 다 잠갔다는 표시로 툇마루를 두번 탕탕 치라고 했다. 그런 뒤 곧장 방문을 열어보라고 했다. 자신은 연기처럼 사라져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방문 고리 채우고, 고리가 빠져나오지 않게 막대기를 질렀다. 그리고는 곧장 뒤뜰로 돌아가 창문을 잠갔다. 다시 마당으로 쏜살같이 돌아와 툇마루를 탕탕 치고, 문을 열었다. 방안엔 아무도 없었다.

신발을 벗고 나는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락이나 벽장 같은 건 없었다. 장판에도 이상 없었다. 그이 말마따나 그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나는 툇마루에 앉아 호반을 바라보았다. 창틀에 꽂아놓은 산꽃들이 어제보다 훨씬 꽃잎을 크게 틔웠다. 그를 기다리다 말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내려 8월까지 넘기고 다시 걸어놓았다. 내가 떠난 뒤 이 방에 또 누군가가 와서 이 달력을 넘겨놓겠지. 오래도록 사람이 들지 않는다면 아마 겨울까지도 8월인 채로 걸려있을지 몰라. 꽃향기가 가득한 방 한가운데 누웠다가 나는 점심 공양을 하러 법당 쪽으로 올라갔다. 탈출사 사내는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주지 스님의 긴 지청을 듣고 있었다.

"이눔아 내가 니 가랑이를 붙들고 잡든? 떠날 떼면 떠나. 제발 그래 줘. 허구헌날 시키는 일은 안 허고 잘나빠진 마수리나 부리겠다고? 예라 이놈아 정신 차려. 지난번처럼 한번 쫓겨나 볼텨? 탈출? 웃기지 마라. 네놈이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고 도심정사 아궁이 앞이지 무슨 중 뿔날 일 있다고 까불어. 내 뭐랬어. 신도들 산신기도 온다고 식전에 뒷산 석불 앞에다 정한수 떠다 놓으라고 했지? 그런데 개실 손 님 앞에서 아침부터 무슨 짓 한겨? 너 재주부리는 거 신기허게 볼 사람 하나도 없어. 지난번에 아주 쫓아 내버리는 건데 내가 정말이지 후회막급이야. 이번이 마지막 경고야. 만약 한 번 더 허라는 일 안 허고 딴수작 부렸다가는 끝장인 줄 알어. 제 입 하나 추스릴 줄도 모르는 주제에 곡기 챙겨주는 것만도 천행인 줄 알아야지. 은혜를 알아야 한단 말야 이놈아...."

여러분 반복된 나머지 이제는 가락까지 붙은 그런 나무람이었다. 꾸중만 들려온 게 아니었고, 아주 규칙적으로 가볍게 매질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소리로 듣건대 스님은 탈출사 사내의 잔등을 효자손 같은 걸로 내려치는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사내의 음성은 한마디로 흘러나 오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런 매질에 이력이 난 것 같았다.

"국으로 가만히나 있으면 밥이라도 얻어묵지. 저러다 쬐껴나믄 이뻐 해주는 사람 있을께비."

부엌의 늙은 보살이 쟁그럽다는 듯 이따금씩 킥킥거리고 웃었다. 된장 일색의 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다 나는 작은 PVC 파이프 조각을 주웠다. 뒷산 기도장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공사를 하다 도중에 그만둔 모양이었다. 암자 주위에는 그런 게 많이 흩어져 있었다. 나 는 부삽과 연탄집게와 깡통따개를 가지고 오후 내내 단소를 만들었다. 부삽 모서리에 여러 번 문질러 기장대를 자르고, 그 한끝을 연탄집게에 문질러 소리 날을 만들었다. 구멍 다섯 개를 못으로 비벼 뚫고, 거친 부분은 깡통따개날로 다듬어 마무리를 했다. 길이를 맞추기 위해 부삽에 문지르거나 소리 날을 만들거나 구멍을 뚫는 데 적어도 각각 사 오백 번의 힘든 왕복 마찰을 일으켜야 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으므로 지루함이 즐거웠다. 해가 지고 마을이 청색 이내로 뒤덮였을 때 나는 상령산 1장을 불었다. 음이 맞지 않아 다시 구멍을 뚫고, 잘못된 구멍들은 티슈를 구겨 막았다. 참으로 너절하고 볼품없는 단소였다. 나는 상령산 1장만 반복해 불었다. 거기까지밖에 가락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불고 또 불고 또 불었다. 그러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낮에 작은애가 낚시를 삼켰어요." 아내가 울먹였다. "방해될까 봐 당신한테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두 무서워서....."

무슨 말인가. 낚시를 삼키다니. 낚시는 인간이 삼키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잖은가. 나도 경황이 없었다. 아내는 잠시 후 진정하고 말했다. 둥근 자석이 달린 플라스틱 장난감 닐 낚시(, 그런 게 베란다에 있었지)를 삼켜서 기도가 막히고, 울며불며 등을 두드리고, 아이의 얼굴은 청동색으로 죽어가고, 옆집 아주머니가 아이의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헤집어도 소용없고....나중에 아이가 기력을 다해 피와 함께 토해내긴 토해냈는데 오래도록 숨을 못 쉬고 발버둥 쳤던 나머지 탈진해 쓰러졌다고 했다.

"지금은?"

"자요."

한숨을 쉬며 아내가 대답했다.

"아직 거기 더 있어야 해요?"

"내일 갈께."

썩 가고 싶진 않았지만 내 입에선 그런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언제부터 썩 내키지 않는 일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던가.

"당신은 좀 어때요?"

"뭐가요?"

아내는 알아듣지 못했다. 생리 말야. 아내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하자 말했다.

"아직이에요."

꽃밭이 되어버린 방안에 누워 나는 오래도 청동빛으로 굳어가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되풀이 되풀이 떠올리고 나서야 겨우 조금 놓 여 날 수 있었다. 완전히 도망가려고 푸르게 빛나는 꽃잎들을 보며 [메밀꽃 필 무렵]<형설지공>을 생각했다. 정말로 반딧불과 눈뭉치에 글이 보였을까. 보였겠지. 요즘처럼 깨알만 한 글씨가 아니었을 테 니까. 적어도 100급 활자 정도는 됐을 테니까. 그러다가 아내의 아직 이에요, 란 말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라훌라. 다음 날 아침을 먹은 뒤 나는 숄더백에 이것저것 주워 넣었다. 죤슨 즈 베이비 로숀, 질레트 면도기, 양말, 소형녹음기, 칫솔, 수건 등등. 집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신만 신으면 곧장 갈 수 있다. 갈 곳이 어디든, 이렇듯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산뜻했다. 그런 경우는 앞으로도 흔치 않을 것 같았다. 산뜻함을 좀 더 오래 즐기려고 나는 툇마루에 앉아, 도합 72시간 정도는 바라봤을 대청호반을 또 바라봤다.

"가시려구요?"

탈출사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계시잖구."

그의 말이 의레적인 걸로 들리지 않았다. 난 말없이 일어나 법당으로 향했다. 가겠노라, 고 스님께 고했다. 그렇게 시주를 많이 하고 벌써 가면 어떡하느냐고 스님이 펄쩍 뛰었다. 돈 생각은 말고 언제든 내려와 쉬다 가라고 당부했다. 나는 밥값에도 못 미치는 돈을 냈을 뿐이었다.

한길로 내려온 나는 탈출사 사내와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차 시간표>가 마을 공동창고 벽에 붙어 있었으나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 이거 섭섭해서 어쩌나."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저 말이죠. 곧 훌륭한 탈출사로 이름을 얻게 될 테니까 그때 한번 만나자구요. 혹시 불펜 같은 거 있어요?"

나는 윗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이게 내 사인이에요. 사람들이 못 만나게 하면 이걸 내미세요."

그는 자신만만했다. 곧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나는 말했다.

40분가량을 그와 더 서성인 끝에 나는 버스에 올랐다. 차가 움직이자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던 그가 몇 걸음 뛰어오며 절박하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잘 가요! 라고, 절규하다시피 그는 외쳤다. 혈육의 가슴 저리는 이별 장면을 흘러간 영화에선 종종 그렇게 처리한다. 기이한 이별이군,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버스가 달리는 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개의 흰 선과 한 개의 노란 선이 끝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붉은빛 섞인 초가을 양광 아래 키 작은 코스모스들이 힘에 겨운 듯 봉오리들을 가누고 있었다. 물가의 은빛 갈대꽃이 바람에 쓸려 한 쪽 방향으로만 누웠다 일어서고 누웠다 일어섰다. 하품을 해서 맑아진 눈으로 나는 하늘을 보고 호수를 보고 길 위에 노란 중 굼 바라보았다.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나무를 스치고 개울을 건넜다. 많은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났다. 농촌 아낙과 중절모를 쓴 노인들이 바깥 풍경에 넋을 놓은 채 앉아있었다. 버스 통로에는 들깻단 묶음과 어느 농기계의 내연기관인지가 뒹굴었다. 주유소도 지나고, 몇몇 개의 초소도 지났다. 한 시간은 충분히 넘게 달렸을 것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산봉우리들을 유심히 보고, 시냇물의 흐름과 길의 높낮이도 살폈다. 손차양을 만들어 해를 보고 내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을 가늠했다. 그리고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길 위에서 십여 분을 흘려보낸 뒤 나는 저만치 서 있는 공중전화로 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집에 있었다. 나는 수화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어떡하지?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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