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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

공지영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곳 북국을 여름이게 하는 8월의 태양이 광장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지만 에어콘이 들어오는 창 안쪽에서 바라보는 햇살을 엷고 투명해 보였다.

호텔 광장 너머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에 미사일처럼 생긴 오벨리스끄 탑의 뾰족함이 서늘한 느낌을 더하게 했고, 가끔 스며들듯이 호텔로 잠입하는 검은빛의 승용차들 모습도 기괴했다.

하지만 호텔 앞을 지나쳐 가는 금발의 여자들과 멀리 서 있는 오벨리스끄 탑의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내가 꿈꾸던 북국의 한 도시에 와 있다는 실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났건만 아직도 호텔 밖으로는 나가보지 못한 채 그저 이 광장만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과 광장과 자동차는 도시에서 자란 내게는 낯익은 것이었고 솔직히 그것은 한밤중, 우리나라의 어느 산골 산사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고, 대숲을 흘러가는 바람소리에 문득 깨어난 새벽보다 훨씬 친근했다. 바라보기만 하는 도시는 어디나 비슷한 법일 테니까 말이다.

아침에 급하게 헌팅을 나간 남편이 벗어 놓은 파자마와 널려진 수건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 나는 지갑과 방 열쇠를 챙겨 들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80년 모스끄바 올림픽을 위해 지어졌다는 이 특급 호텔의 객실 전화는, 받을 수는 있지만 외부로 걸 수는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는 어둡고 길었다. 초승달 모양을 한 호텔의 한 층에는 거의 80개가 넘는 객실이 있었다.

모두들 관광객이었던 탓일까, 아니면 각자의 방에서 나처럼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을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있는 각층의 관리인 여자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보드까나 담배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여자였다. 여자의 임무는 손님들의 키를 맡아주기도 하고 그런 소소한 물건들을 파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주 업무는 밤에 이루어지는 듯했다.

어젯밤에도 남편과 마시기 위해 보드까를 구하러 나왔을 때 복도에 가득하던 러시아의 여자들이, 관리인 여자와 수입을 나누어 가지는 인터걸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은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지나가는 남자와 흥정을 하고 빈 방을 배정받아 몸을 판다고 했다.

짧은 밤에 100, 러시아인들의 한 달 평균의 봉급과 맞먹는다는 그 액수를 남자 스텝들은 공항에서부터 긴 밤, 짧은 밤 어쩌구 하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스텝들 중 나이 든 이 하나가, 키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금발의 여자와 방을 나오다가 나와 마주치기도 했었다. 워낙 점잖은 분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지만 그와 함께 방을 나서던 금발의 여자가 하도 당당하게 이 관리인 여인에게 돈을 치르고 열쇠를 반환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먼저 고개를 숙여버렸다.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가, 시시한 수작 한마디 걸지도 못하는 남자와 여자가 한 침대에서 잠자리를 같이한다... 거기에 비하면 락 까페에서 만나 하룻밤 여관으로 간다는 우리 신세대들의 연애가 차라리 인간적으로 생각되었다. 원한다면 이름을 물어볼 수도 있고 주소를 적어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잘 가라고 인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어디까지나 원한다면, 이겠지만.

남편이 겸연쩍은 얼굴로 그 스텝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기는 남편 역시 그 스텝에게 그 자리에서 안녕하세요, 라거나 편히 주무십시오, 인사하고 쑥스러웠으리라.

"안녕하세요?"

하품을 하다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친 관리인 여자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이 호텔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어느 나라 말로 인사를 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내게 미소를 보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시내로 통하는 단 한 대의 전화가 있는 곳에 줄을 섰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짧게 빗어 넘긴 뚱뚱한 여자가 핏대를 올리며 전화 저쪽의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분명 영어는 아니었고 프랑스 말도 아니었고 러시아어도 아닌 듯했다.

저건 어느 나라 말일까, 내가 조금이라도 귀동냥을 한 적이 있는 나라들의 말을 떠올렸지만 알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언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사람이 화를 내면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을 찡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졌다.

갑자기 여자가 전화기를 탁, 하고 놓아버렸다. 전화로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낡은 가죽 핸드백을 들고 휑하니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섬주섬 전화기 앞으로 다가가 나는 버튼을 눌렀다. 모스끄바에는 도착한 이래 내가 한 일이 있다면 그건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한때는 내 대학 친구였으나 지금은 한 시사잡지사의 모스끄바 통신원으로 있는 C에게로였다.

그를 못 만난 지 10, 시사잡지사에 연락해서 그의 모스끄바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사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편이었다.

그를 통하면 뒤늦게 모스끄바에 유학 와 있는 B의 소설 취재를 위해 이곳으로 떠날 거라던 소설가 k와는 그래, 우리 모스끄바에서 모두 모여보자라고 약속까지 해둔 터였다.

우리가 함께 대학을 다녔던 신촌이나, 인사동의 길거리에서와는 다른 만남을 갖고 싶었던 것이 내 희망이었다.

감독인 남편 이하 짜여진 일정과 정해진 역할들이 분명한 스텝들과는 달리, 나는 이곳 촬영장에 따라와 거의 고통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스웨터의 앞단추처럼 쭈르르 했다.

나 혼자 실밥처럼 그 곁에 붙어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자신 있게 따라온 것은 사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CB와 그리고 K.

게다가 살아서는 아마도 밟지 못할 거라고 상상했던 땅 몰래 읽은 혁명사와 레닌 전기 속에서 살아 숨쉬던 땅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예전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스뗀까라찐, 스뗀까라찐 노래를 부르며 모스끄바의 밤거리를 걷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나는 C와 통화하지 못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지난 이틀처럼 또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딸깍, 하고 그쪽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저, 저는 서울에서 온 G라고 하는데요."

"아아," 하는 목소리가 그쪽에서 흘러나왔다.

"네 알죠. 오셨군요. 저 모르시겠어요? 부인이에요."

부인이라고 해놓고 그 단어가 조금 쑥스러웠던지 여자가 웃었다.

물론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대학 삼학년 때였던가, C가 고향 동생이라고 소개하며 우리에게 선을 보였던 그 여자. 진도에서 상경한,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던 그 아가씨.

"알죠. 잘 지내세요? 통화가 힘들었어요. C는요? "

"연구소에 있죠. 이따가 저녁에나 올 텐데요."

연구소라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가 그저 통신원 일로 모스끄바에 체류하는 걸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래요? 소설가 K?"

"어떻게 하죠. 오늘 아침에 레닌그라드로 떠났어요. 어제 그렇잖아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같이 모였으면 좋겠다구요."

C의 부인은 K가 레닌그라드로 떠난 것이 자기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깝게 말했다.

"그럼 유학 온 B의 연락처는 알 수 있을까요?"

"B씨는 서울 갔어요. 일주일 전에요. 방학이잖아요."

"그렇군요, 방학이군요."

수화기를 들고 있던 손에 맥이 탁 풀렸다.

"이따가 애기아빠 들어오시면 호텔로 연락을 하라고 할게요. 방 호수를 알려주시겠어요?"

나는 방 호수를 그녀에게 알려주고 나서 내가 꼭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이야기하려다 말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로비 라운지로 가서 앉았다.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저희들끼리 잡담을 하고 있던 웨이트리스들 중의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남자 스텝들이 우리 배우들보다 예쁘다고 한 그 웨이트리스였다.

나는 우리 남자 스텝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아가씨의 종아리를 훔쳐보았다. 명주실처럼 길고 고운 금발을 뒤로 묶어 하나로 총총히 땋아내리고 서양 영화에 나오는 귀족의 하녀들처럼 프릴이 많이 달린 앞치마를 두른 여자의 종아리는 마론 인형처럼 가늘고 곧았다.

"커피", 하고 내가 발음하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커피, 커피," 나는 잔을 들고 마시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아, 카페!"

여자는 그제서야 비로소 나를 보고 웃었다.

커피를 마시게 된 것만으로 인도를 하며 나도 웃었다. 목도 좀 말랐으므로 나는 다시 컵으로 벌컥벌컥 마시는 시늉을 해 보이며 "워터, 워터"라고 발음했다.

"그녀는 가스?" 하고 되물었다.

가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여자가 "가스, 가스" 하고 다시 말했다.

그래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여자는 잠시 나를 경멸스레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왜 갑자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어서 나도 잠시 당황했지만 아마도 가스란 물을 가리키는 러시아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나는 "오우케이," 하고 말했다.

여자가 이제야 의사소통이 되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잠시 후에 웨이트리스는 간장 종지같이 작은 잔에 담긴 커피와 물을 날라왔다.

물잔을 먼저 한 모금 마시는데 역한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졌다. 대학 4학년 땐가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한 모금도 삼키지 못했던 오색약수터의 물맛 같은 것이었다.

뚱딴지같이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가스라는 것은 영어였던 것이다.

여자는 내게 탄산수를 원하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아까 여자가 짓던 경멸의 표정은 가스라는 영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이 노란 여자에 대한 멸시였으리라.

하는 수 없이 나는 물 마시기를 포기하고 커피잔을 들었다.

서울에서는 엷은 블랙의 커피를 즐겨 마시던 나였지만 이건 참을 수 없이 썼다.

나는 다시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밀크, 밀크" 나는 간장 종지같은 커피잔에 액체 프림을 붓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여자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밀크, , " 여자는 이번에는 대꾸도 없이 그 날씬한 허리를 휘익 돌려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다는 생각에 담배를 무는데 여자가 기다란 잔에 담긴 우유를 날라왔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 눈길은 아랑곳도 않고 여자는 내 탁자에 놓인 청구서에 뭐라고 휘갈겨 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청구서에 들어보니 알 수 없는 러시아말로 세 가지 항목이 적혀 있고 토탈 1035백 루블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웨이트리스와의 신경전은 포기하기로 하고 여자가 날라 온 우유를 커피잔에 조금 부었다. 그러고는 한 모금 마시려는데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었다. 그것은 우유가 아니라 발효가 많이 된 거의 치즈 맛에 가까운 요구르트였던 것이다.

나는 웨이트리스를 부르려다 말고 간장 종지 같은 커피잔에 든 커피를, 겉모양은 우유 같으나 맛은 치즈 같은 밀크잔에 부었다. 미적지근하고 이상한 맛이 목구멍으로 쿨럭쿨럭 넘어갔다.

모두들 갈라져 헌팅을 떠나고 기재를 점검하러 나간 호텔 방에서 텅 빈 광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이상한 맛의 커피도 추억으로 남겨두지 뭐, 나는 나를 달랬다.

이런 기억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이런 오해와 이상스러운 기분도, 먼 훗날 친구와 시골방에 누워 밤을 새울 때는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10년 전쯤인가 C하고 B하고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돈 몇 푼을 들고 달랑 짐을 싸서 무조건 남쪽을 향해 떠났었다.

바다고 산으로 떠났던 피서객들이 돌아와 휴가 동안 책상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서랍을 정돈할 무렵, 아마도 더운 바람이 낮을, 차가운 바람이 밤을 점령하던, 여름이 가고 있던 자리에 바람만 가득 밀려오던 그런 무렵이었을 거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물세 살, 광주행 밤차에 몸을 싣고부터 바로 우리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그 열차는 왜 그렇게 휑뎅그렁할까. 천장에 붙은 형광등은, 작은 종이컵에 담긴 소주 속에서 한없이 떨며 깜빡이고 있었다.

떠나는 우리는 모두 셋이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B와 그리고 공식적인 수배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날마다 집으로 찾아오는 형사를 피하고 싶은 C, 그리고 유학을 갈 계획도 없고 형사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서 혼자 처박혀 있던, 스물세 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생이 길게만 느껴졌고, 이제껏 너무나 긴 23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한 겉늙어버린 나였다.

맹숭한 소주에 취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새벽 광주역에 내렸다.

C가 몇 군데 아는 곳에 전화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지인들은 단 한 명도 연락되지 않았다. 우선은 해장국집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우리는 망월동을 떠났다.

1985년 망월동의 그 초라한 묘지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버스도 없고 포장도 안 된, 표지판 하나 없는 그 길, 아직도 계절은 여름이라는 듯 뜨거운 태양은 시련처럼, 지친 우리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돈을 벌어서 인도로 가자는 의견을 낸 것은 아마도 그 지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초라한 공동묘지에 잠든 외로운 영혼들과 그 이전 우리가 보았던 광주역의 어둠과, 떨리던 밤열차의 형광등 빛과 스물 몇 살에 벌써 지쳐 버린 우리들의 삶들을 잊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뜨겁게, 뜨겁게 달구어가는 태양을 다시 머리에 이고, 먼지 풀썩이는 길을 터벅이며 돌아 나와 우리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아무 버스나 타버렸다.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리는 또 소주를 사들었고, 취하지도 않는 소주를 마시다가 그대로 잠에 떨어 져버렸다.

깨어보니 눈앞에 이미 바다가 다가와 있었다. 바다 같지 않은 바다. 섬으로 막막히 막혀버린 바다. 바람이 직선으로 불어오지 못하는 바다. 하지만 파도가 이는 푸른 색깔의, 그러므로 바다.

그때 C, 술에서 다 깨어나지 못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오줌을 갈기면서 소리쳤었다.

"우리는 이제 인도로 간다!"

그때 우리는 슬펐던가, 그때 우리는 쓸쓸했던가, 아니던가, 그때 우리는 그래도 젊었던가,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 점령당했다.

C는 신문사에, 유학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을 거듭하던 B는 대학원에, 나는 생각하지 않았던 길로 달려가고 있는 내 청춘에 대한 멀미에.

물론, 점령당한 영혼들은 인도로 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가끔씩, 그 다음에는 드문드문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쩌다가 한 번씩 서로 연락을 취하던 우리들은 같은 하늘 아래서 비슷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소식을 그저 풍문으로만 듣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눈을 들어보니 신문기자 김이었다. 김은 짙은 청록색의 선글라스를 벗으며 내 앞자리에 앉았다.

공항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김은 나와 같은 학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의 낯선 스텝들 중에 내가 유일하게 말을 붙이는 상대였다.

김의 곁에는 낡은 갈색의 양복을 입은 얼굴이 검고 키가 작은 사내가 서 있었다. 짙은 쌍꺼풀의 눈이 선량하고 맑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콜라를 시켰다. 아까 내게 커피와 탄산수와 밀크를 가져다 주던 웨이트리스는 코카콜라라는 말을 금세 알아듣고 친절한 미소를 보였다.

"이쪽은 빅또르 박씨예요. 여기 교포 3세이시고 지금은 고려일보 기자이시죠."

김이 따라온 사내를 내게 소개했다.

나는 마치 충청도에서 갓 올라온 듯한 느낌의 사내에게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이쪽은 감독님 사모님이시고 한국의 유명한 여배우세요."

김이 사내에게 나를 소개하며 익살을 부렸다.

낯선 나라의 낯선 호텔에선 누구나 쉽게 친근해지는 법일까. 나는 김의 익살이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다.

빅또르 박이라는 사내는, 배우든 뭐든 별로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회색빛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콜라를 마시고 나서 김은 취재 수첩을 꺼냈다.

"우린 누가 뭐래도 사회주의자다. 지금 러시아 불만 많다. 우리 할아버지 사회주의 우리 아버지 사회주의 나, 사회주의 교육받았고 우리 애들 국민학교까지 사회주의 공부했다. 아무리 체제 바뀌어도 할 수 없다. 옐찐 우리, 옐찐 불만 많다. 강도가 생기고 도둑도 생기고 물가는 오르고 살기가 점점 힘이 든다. 우리 고려인들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 삼풍 무너졌을 때 우리 너무 창피했다. 내 친구들 만날 때마다 무너지는 이야기했다. 창피한 거 말도 마. 나는 한국이 잘되고 한국 사람들 많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하고 많이 많이 왔다 갔다."

빅또르 박은 짧은 한국말로, 마치 내가 아까 말이 안 통하던 러시아 웨이트리스에게 그러했듯이 손짓을 많이 섞어가며 말했다. 말을 하면서 점점 더 흥분이 되는지 그는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아니 잠깐," 김이 수첩에 그의 말을 받아 적다 말고 빅또르 박의 말을 끊었다.

"아니, 옐찐은 당신들이 투표해서 뽑은 대통령이잖아요?"

"그래도 나는 싫다 당신들 노태우, 또 김영삼 투표해서 뽑아놓고 맨날 데모하고 그러지? 우리도 그렇게 옐찐 싫다."

김과 나는 빅또르 박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빅또르 박은 점점 더 큰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북 단천에서 태어난 할아버지의 연해주 이주 그리고 지금 모스끄바의 고려신문사에서 일하는 빅또르 박, 그리고 그의 고려인 아이들.

"그런데 이거 신문에 언제 나는 거지?"

얼굴이 벌그레해져서 설명을 하다 말고 빅또르 박이 물었다.

"지면이 나는 대로 곧이죠. 신문에 나면 보내드릴게요."

김은 빅또르 박에게 수첩을 내밀어 그의 모스끄바 주소를 적게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이야기가 끝난 듯해서 우리는 자리에게 일어섰다.

내가 아까 마신 세 가지의 음료수와 두 잔의 코카콜라 값까지 해서 이십만 루블의 돈을 내는 동안 빅또르 박이 김에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깨 너머로 들려왔다.

"진짜, 저 한국 여배우 너무 못생겼다."

"러시아 여자들 정말 예쁜데."

"김 선상님도 러시아 여자 잡수시고 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오늘 밤에."

빅또르 박이 김의 농담을 정말로 받아들인 듯 심각하게 말하자 김이, 등을 돌리고 있는 나를 의식한 듯 뭐라고 만류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우, 김 선상님 목사 같은 사람. 어젯밤에도 한사코 싫다 해서 난 그냥 인사인 줄만 알았는데."

빅또르 박은 다른 한국 사람과는 달리 김이 러시아 여자를 "잡수실" 의향이 없는 것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저렇게 눈 맑은 빅또르 박이라는 사람이 "뭉쳐야만 하는" 동족을 만나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나는 딱해 보였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저런 인식을 심어놓고 갔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빅또르 박의 등을 떠밀듯이 보내 놓고 김은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김 기자 목사 같은 사람?"

내가 빅또르 박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김이 들켰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목사 같잖아요. 나는 한국의 야바위꾼 목사, 빅또르 박은 서양말 흉내내는 얼치기 목사. 그거 말 되네요."

김은 손에 들고 있던 선글라스를 감색 남방 윗도리에 집어넣으며 웃었다.

"그런데 영화 담당 기자가 빅또르 박 인터뷰는 왜 해요?"

김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

"더구나 김 기자가 일하는 그 삼류 스포츠지에 아직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고려인 3세가 가당키나 해요? 지면이 정말 나기는 나는 건가요?"

"가당하지 않죠. 지면이 날 때가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김은 뜻밖에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해 누군가가 돈을 댈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빵잽이 딱지 없는 내가 돈 많이 주는 데로 취직을 했었는데 이제 뭐 이게 평생 직업이 되어버렸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은 긴 복도를 걸으며 뜻밖에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은 왜 묻지도 않은 말을 할까, 나는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인데.

우리 둘의 발소리가 낡은 카펫 위에서 사각사각 울렸다.

나로 말하면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다.

기자들은 내게 충고했다. "이제 좀 다른 이야기들을 쓰시지요."

"한 평론가는 진지한 얼굴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옳다 해도 낡은 것은 버리고 옳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택하시지요," 말했다.

"그러지요, 옳더라도 낡은 것을 버리고 옳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 아니오,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는 말을 수정했다.

"맘에 든다구요? 이게 맘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였던가요?"

하지만 나는 이제는 소리 지르지 않고 소근소근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그래서 장편 하나를 끝낸 뒤 1년 반 동안 나는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위에 쌓인 먼지를 닦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찾아야 한다고, 옳든 아니든, 맘에 들든 들지 않든, 새로운.

그런데 모스끄바까지 와서 나는 김의 말투를 이해하고 있었다.

침묵이, 긴말 없이 농담을 하듯 건들건들하는 대화의, 멈칫멈칫하는 어떤 사이가 너무 많은 의미들로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서 김과 헤어지고 싶었다. 방문 앞에서 내가 멈추어 섰다.

따라서 멈추어 서는 김의 얼굴 위로 C의 얼굴이 겹쳐졌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인도로 가자고 말하던 스물 몇 살의 그의 얼굴.

"혼자 방에 들어가 있으려면 심심하겠어요?"

서둘러 그와 헤어지려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김이 다시 농담투의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총각 방에 혼자 놀러 갈 수도 없잖아요?"

"총각?"

김이 되물었다.

"집 나오면 다 총각이잖아요. 남자들."

나는 손을 흔들고 그와 헤어졌다. 방으로 들어서자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렸다.

혹시 C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들고 있던 열쇠를 침대에 팽개치고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언어의 목소리로 어떤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뭐라구요? ? 여보세요?"

당황하다가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갑자기 가슴이 불안스러운 리듬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커튼을 젖히고 한 손으로 지그시 내 왼쪽 심장께를 누른 채 서 있었다.

9시가 넘어야 지는 모스끄바의 태양이 오벨리스끄 탑 위쪽에서 아직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 심장도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벨이 울렸다. 나는 이번에는 벨이 세 번을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그 언어를 어떻게 형용해야 옳을까, 영어도 러시아어도 불어도 독어도 아닌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모음과 자음들. 남자의 목소리는 그러나 장난 같지는 않았고 내가 아까처럼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몹시 겁이 난다는 듯 빠르고 다급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내가 물었다.

"뿌베 부 빠흘르 프랑쎄?"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그랬다. 이번엔 프랑스어였다. 이번엔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건 프랑스 말이구나. 하지만 그것이 프랑스 말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과 내가 그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당신은 프랑스 말을 할 수 있냐는 그의 질문을 대충 알아들었지만, 고등학교 3년간 그리고 대학에서 2년간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지만 나는 겨우, 아주 서툴게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혀를 돌돌 꼬부리는 프랑스어는 프랑스어 수업 시간 이외에는 발음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 켄트 스피크 프렌치. 데어 이스 노 퍼슨 유아 서칭 포."

내가 천천히 힘주어 대답했지만 그는 이번에는 더 빠른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 켄트 스피크, 아이 켄트 스피크"

나는 내가 더듬거리며라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외국어인 영어를 앵무새처럼 되뇌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로부터 약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상한 나라의 말과 프랑스 말을 섞어 쓰는 그 남자 때문에 나는 어젯밤 마시다가 만 보드까를 한 잔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보드까는 목줄기를 타고 식도로 넘어가 서늘하게 내 위에 고였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있는 참이었다.

전화를 받자 이번에는 뜻밖에도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왈칵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사실은 순전히 내 뜻이었지만 갑자기 남편이 나를 이 모스끄바 한복판에 버리고 가버린 듯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여기 아리랑 식당이야, 저녁 먹어야지. 스텝들 다 여기서 식사하거든, 듣고 있는 거야."

"."

"이리로 와야지"

"모스끄바엔 택시가 없잖아."

"택시? 그러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길거리에 나가서 손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차가 선다. 대개는 자가용들이지만 때로는 경찰차일 때도 있고 때로는 앰뷸런스를 얻어 타기도 한다고 우리를 안내하는 유학생 안이 말해주었었다. 아무튼 그 차를 세워 가는 곳을 말하고 값을 흥정한 후 차를 타면 되는 것이 모스끄바였다.

하지만 나는 언어를 알지 못한다. 값이야 손가락으로 대충 이야기를 한다 해도 행선지를 말할 언어가 내게는 없는 것이다.

"걱정 마, 나 혼자 호텔에서 대충 해결할게."

나는 갑자기 차분해져서 남편에게 말했다.

"모스끄바에 있다는 친구들은 못 만났어?"

"없어 아무도 없어."

"웬일이지?"

남편은 딱하다는 듯 혀를 한번 차다가 겨우 그렇게 말했다.

 

연살구빛, 소매가 없는 수수한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대리석 조각이 장식된 테라스 난간에 서 있다. 뒷모습으로 선 여자의 시선 너머로는 북국의 흰 자작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시선이 닿는 먼 끝도 숲이었다. 숲의 끝은 수평선처럼 넓고 곧았다. 우리나라의 작은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어떤 위엄이 넓은 어깨를 쭈욱 펴고 펼쳐져 있는 듯했다.

태양이 자작나무처럼 희고 길쭉한 그 여자의 팔 위로 쏟아져 내렸다.

여자는 지금 1989년의 모스끄바에 서 있다.

그때까지는 쏘비에뜨 연방이었던 그 나라의 수도, 뻬레스뜨로이까와 글라스노스찌의 물결이 아직 파도치던 그곳, 넓은 이마에 지도처럼 긴 반점이 박힌 대통령이 있던 나라에서 여자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유학생이었다.

무엇인가 기척을 느낀 듯 여자의 어깨가 조금 굳어지는 것이 보이고 이윽고 망설이는 듯한 여자의 머리가 이쪽을 향해 돌아선다. 목덜미가 파진 여자의 드레스 앞쪽에 달린 자줏빛 코사지도 여자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이윽고 여자의 입술이 마치 고통을 참는 듯이 얇게 뒤틀린다. 하지만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그 여자의 커다란 눈쪽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한 귀족의 별장으로 지어졌고, 이제는 고급 장교들의 휴양지로 쓰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오렌지색 웨딩케익 모양의 건물 테라스에서 운명처럼 다가서는 남자를 환희의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시나리오에 의하면 이 여자는 이제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귀국해서는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장면은 그 여자의 고난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는 한 길목이 되는 셈이다.

여자는 지금 행복을 향해서 천천히,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사람이 갑작스런 행복에 마주 설 때처럼 정말일까 하는 마음에 겁먹어서, 그토록 열망했으나 평생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체념했던 그 행복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여자가 얇게 입술을 뒤틀며 이 환희를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커엇," 여자의 연기에 몰두해서였을까, 남편은 여자의 감정을 다치지 않으려는 듯 낮은 소리로 컷을 불렀고, 조용히 돌아가고 있던 아리플렉스 4 카메라도 소리를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여자와 카메라의 뒤쪽에 초승달처럼 진을 치고 있던 스텝들의 입술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오우케이, 좋아요.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입니다."

남편의 입술이 둥글게 모아지자 이번에는 둘러선 스텝들 사이에서 더 큰 환성이 퍼져 나왔다.

"자아 이제 한국 식당으로 갑시다. 이번에는 한국관이에요. 빨리빨리들 정리합시다."

"오늘 메뉴는 일 인분에 만이천 원이나 하는 비싼 김치찌개라구요."

제작부의 말이 떨어지자 촬영부와 조명부 그리고 연출부를 포함한 스텝들의 얼굴에는 벌써 김치찌개의 시원하고 매콤한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여배우는 피곤하다는 듯 들고 있던 백을 테라스에 놓인 탁자에 휘익 내던졌다. 미용과 의상 담당이 여배우에게로 달려가 그녀가 휘익 던져버린 백을 집어 들고는 그녀의 머리와 의상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테라스 한쪽 모서리 끝에서 모자도 없이, 19958월의 땡볕을 받고 서 있던 나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촬영감독과 말을 나누고 난 후, 여배우에게 다가가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리라.

그리고 곧 남편의 등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스텝들 사이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짐을 나르는 스텝들에게 이리저리 몸을 피해 주다가 아까 여배우가 서 있던 테라스 난간 곁으로 다가갔다.

한밤중이 되어야만 질 생각을 하는 태양 때문에 따뜻해진 대리석의 온기가 가만히 내 벗은 팔뚝으로 전해져 왔다.

나는 아까 그 여배우처럼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자작나무숲은 끝이 없었다.

대평원이었다. 이 나라가 사실은 아주 큰 대륙의 일부라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천천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포 면세점에서 산 디스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온 이래 나는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후 삼일 동안 거리에서고 촬영장에서고간에 내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삼일 만에 담배 한 보루를 없앨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 담배 하나 피워볼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내 곁으로 다가섰다.

우리의 통역을 맡아주고 있는 안이었다. 이곳에서 러시아문학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 도착한 이래 나의 소설에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수줍은 얼굴로 내게 고백한 그에게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배 가운데 하나를 내밀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버릇처럼 한 번 올리고 나서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흰 연기가 그와 내 입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서서 출렁거리는 모스끄바의 흰 자작나무 숲, 바다 같은 숲을 바라보았다.

 

C의 전화는 이른 아침에 걸려왔다.

어젯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저녁도 거른 빈속에 보드까를 마셔댄 탓인지 나는 밤새 토했고 아침에는 거의 탈진상태로 누워있어야 했다.

"여기까지 우겨서 쫓아오더니 참 꼴 좋군."

남편이 아침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나를 깨우다 말고 티셔츠를 갈아입으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줄 수 없어?"

나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청색 티셔츠에 팔을 끼우다 말고 남편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놀란 빛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나도 어색해져 버렸다.

나는 침대 시트를 벌컥 들쳐버리고 일어나 앉았다. 굳어진 그의 얼굴 때문에 갑자기 아니야, 소리를 버럭 지른 건 전혀 내 의도가 아니었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든지, 빅또르 박한테 부탁해서 따로 관광이나 쇼핑을 하든지 그도 아니면 촬영장에 따라가자."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남편은 천천히 말했다.

나는 뭐라고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요즘 와서 이상하게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을 하거나 화를 벌컥 내거나 그도 아니면 가끔 말을 더듬었다.

"촬영장에 따라가겠어. 모스끄바에 와서 영어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 호텔에만 있다가 갈 수는 없잖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 해도 사실 내가 얼마나 영어로 말을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언젠가는 한 여자 스텝이 복도에서 지나가는 나를 붙들고 자기 방 화장대 위에 놓아둔 루불이 없어졌는데 그걸 어디 가서 알아보면 좋겠는지 청소부 여자에게 물어봐 달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이 여자의 방 화장대 위에 놓아둔 루불화가 없어졌는데 그걸 어디 가서 알아보면 되느냐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 청소부 앞에서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데, 여자 스텝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졌다.

"영문과 나오셨잖아요?"

그녀가 물었다.

"영문과 나왔죠. 영문도 모르고"

여자 스텝은 내 말이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다가 대답했다.

"하기는 영문과 나온 사람도 모르는 영어를 이 여잔들 알겠어요? 제 실수죠 뭐. 그런데 인터걸들 영어 잘해요. 어젯밤에 내가 남자 스텝 방에 놀러 갔을 때 전화가 걸려왔는데 영어를 그렇게 잘하더래요. 섹스 앤드 마사지 베리 웰 오케이? 아이 엠 베리 프리티 걸."

영어를 못하는 우리는 인터걸의 기발한 영어를 들으며 바보처럼 웃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는 것처럼 남편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 건 그때였다. 대번에 나는 그것이 C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C?"

이상한 일이었다. 목소리는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조금씩 나이에 침식당해 있었다. 여자들은 눈가를 남자들은 머리와 배를.

하지만 그게 누구든 전화를 걸어오는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너 꽤 섭섭했었나 보더라. 우리 마누라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니가 울까 봐 겁이 났다고 하더라."

그랬다. 예전의 C였다.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큰소리도 잘 치고 때로는 악의 없는 거짓말로 우리를 골탕 먹이던 그.

나는 스물 몇 살의 명랑한 처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죽을 언제나 맞추어준 것은 나였으니까. 우리는 말하자면 손발이 잘 맞는 부질없는 말장난 콤비였다.

"그래 하루종일 네 전화 기다리느라고 호텔에서 통곡했어. 모스끄바가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예전처럼 그가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 먹지 않은 예전의 그 웃음소리였다.

"저녁에 술 한잔해야지. 내 말 잘 들어봐. 우선 누구한테 부탁해서 차를 잡아달라고 해. 거기 현지 스텝 있지?"

"."

"화이떼베찌바 호텔로 가자면 모르는 운전사가 없을 거야. 거기 커피숍에서 일곱 시에 보자."

 

"어서 타세요. 다음 장소로 이동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우리의 뒤쪽에서 스텝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대절해 놓은 벤츠 버스를 향해 걸었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남편은 촬영감독과 나란히 앉아서 콘티를 펴놓고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자 다른 자리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안과 나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았다. 러시아 운전사가 틀어 놓은 알 수 없는 러시아 노래가 차 안에서 나직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머뭇머뭇 안이 무슨 말인가 꺼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나는 창밖으로만 던지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더니 겸연쩍게 씨익 웃었다.

나는 사실 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략 알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였든가 우리 스텝들 중의 하나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그는 러시아에 유학 온 지 5, 아이가 하나 있는 연상의 러시아 여자를 알게 되고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들의 유학 생활을 살펴보러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는 아들의 이상한 동거를 알게 된다. 짐을 풀지도 못하고 넋이 나간 채로 앉은 부모에게 안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으리라.

아마도 그는 다만 정직하게, 언어 없이 이 모든 상황을 대면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순수한 백러시아 혈통을 가진 9살 난 제 딸을 데려와 인사시키는 금발의 이혼녀 앞에서 부모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고 했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 유 스피크, 잉글리쉬?"

삼십 분간의 침묵이 계속되고 나서 그들의 부모는 모든 관광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갔다고 했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이것이 그의 부모가 러시아에 와서 며느리와 한 대화의 전부였다.

"저 저기요"

안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방금 촬영을 끝낸 곳의 지명이 뭔지 알아요?"

예상과는 달리 뜻밖의 질문이었다.

"글쎄요."

"아르한겔스끄예요. 천사의 땅이라는 뜻이죠. 참 어울리는 이름이지요? "

내 눈앞으로 아까 테라스에서 바라본 자작나무의 흰 숲이 스쳐 지나갔다. 흰 자작나무숲과 천사의 날개.

"그런데 이 천사의 땅엔 새가 없네요."

그는 입에 가득 물었던 담배의 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새가 없어요. 그걸 발견하셨군요. "

"처음에 이곳에 와서 모스끄바 숲을 바라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거였어요. 너무 추워서 그런가요?"

"글쎄요, 그거야 새들한테 물어봐야죠. 그런데 왜 이즈음엔 소설 안 쓰세요?"

두 번째 촬영지인 모스끄바 대학 앞에서 촬영이 준비될 즈음 시간은 여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배우는 이제 6년의 시간을 뛰어넘는다. 한국에 돌아간 후 남편이 죽고 그녀는 남편과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오는 것이다.

분장팀들은 해사한 그녀의 눈가에 진한 갈색 아이섀도를 칠하고 분홍빛 입술을 칙칙한 자줏빛으로 누르고 있었다.

저렇게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마치 영화를 찍듯이 스무 살도 되었다가 서른 살로 되었다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나이로 가고 싶을까.

분장팀의 붓이 움직일 때마다 시간을 뛰어 넘어가고 있는 배우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디로 나는 가고 싶을까?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사진첩들을 열심히 펼쳐보았다.

유년 시절, 얇은 스타킹 때문에 늘 발이 시려웠던 여학생 시절. 그리고 대학, 결혼과 출산들, 그러나 대답은 없다, 였다.

내 살아온 서른세 해 동안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시절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사람에게 어떤 나쁜 기억의 섬광이 잠깐 비췄던 것처럼 나는 순간적으로 아찔해졌다.

", 가봐야겠어."

"가긴 어딜?"

콘티를 들여다보고 있던 남편이 촬영장에서 예의 그랬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전화하는 거 들었잖아, 일곱 시에 화이떼베찌바 호텔로 간다구? "

"화이 뭐?"

"아이 왜 그래? C를 만나기로 했다구. 아침에 전화하고 약속하는 거 당신도 들어 놓고선."

남편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발치에 버리고 화가 난 것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택시가 없잖아."

그는 그것이 짜증이 나는 이유의 전부라는 듯 잘라 말했다.

아침에 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을 때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천천히 말했다.

"지금은 안이 차를 잡아줄 거구, 그 다음엔 C가 차를 잡아줄 거라구."

"마피아가 데리구 가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 여긴 전화도 없구 촬영하는데 여기까지 쫓아와서 계속 날 신경 쓰게 만들어야 되겠어?"

남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주위에서 촬영을 준비하던 스텝들이 쭈르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간다는 거야. 당신 신경 안 쓰이게 나는 실밥 같은 기분이었단 말이야, 알아?"

남편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다보았다.

"아무튼 나는 갈 거야. 예쁜 러시아 여자들 두고 나 같은 아줌마 데려다 양파 까게 할, 눈 나쁜 마피아가 어딨어?"

나는 백을 고쳐 메고 의기양양하게 걸었다.

감독과 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안이 천천히 나를 따라왔다.

"미안해요."

일행과 멀어지고 난 후, 내가 잠시 멈추어 선 자세로 안에게 말했다.

"뭐가요?"

안은 순하게 웃으면서 발끝을 보도블록에 톡톡 두드렸다.

"부부싸움 어느 나라 말로 해요?"

내가 묻자 안은 웃는 얼굴로 천천히 거두었다.

"부부싸움 안 해봤어요. 우리 집사람 가여워서 싸움 못 해요. 내가 방에서 큰소리로 혼자 한국 노래 부르고 있으면 우리 집사람 내가 화난 줄 알죠."

나는 갑자기, 안이 가여워하는 그의 아내처럼 안이 가여워졌다.

"화가 났는데,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내가 가여워서, 화가 났는데도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의 모습 문밖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나라 노래를 들으며 가스레인지에 러시아식 스튜를 데우는 그의 아내."

지난봄, 존경하는 노작가의 집으로 찾아갔던 생각이 났다.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누고 어둑어둑한 그의 현관을 나섰을 때, 그녀가 밥을 주어 먹인다는 들고양이들이 마악 산에서 내려오고 있던 참이었다.

낯선 방문객을 발견한 고양이들은 등을 곧추세우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쁜아 이쁜아 이리 오렴!"

노작가는 고양이들에게 소리쳤지만 고양이들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얼핏 멀리서 내 눈이 그중의 한 고양이 눈과 마주쳤다.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 적의가 없단다, 이리 와서 선생님이 주시는 저녁을 먹으렴, 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게는 그들을 부를 이름이 없었다.

"내가 설사, 이쁜아, 이리 오렴," 하고 부른다 해도 그것은 노작가가 부르는 그 이름과는 다른 것일 테니까.

신호등이 바뀌고 차들이 우리 쪽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안이 손을 들었고 낡은 일제 토요따 차가 우리 앞에 멈추어 섰다.

안이 흥정을 했고 내가 알록달록한 러시아 루블을 지불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에도 결국 C를 만나지 못했다.

운전자는 안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고 화이떼베찌바 호텔이 아닌 곳에서 밤늦도록 C를 기다리고 말았던 것이다.

 

모스끄바에는 산이 없다 하지만 하나의 언덕이 있다.

싸움은 결국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오늘 촬영할 콘티를 챙기면서 남편은 어제 한국 식당에서 회식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왔을 때 내가 울고 있더라고 말했다.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고, 우리말로 이야기할 거라고 했다고, 남편은 웃으면서, 그러나 조심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부석한 얼굴을 바라다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거짓말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신 요즘 조금 이상해진 거 알지?"

남편은 트렁크에서 양말을 꺼내 신으며 아침 먹었어,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말했다.

나는 대답 없이 머리만 빗었다. 가느다란 머리칼들이 크림색 티셔츠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신경질적이고 갈팡질팡이고 당신 글 쓰고 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지금은 어떤 정도인데?"

그렇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가 듣기에도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 속으로 뜨거운 어떤 것들이 치받쳐 올랐다.

이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하지만 아니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언덕 꼭대기에서 저 아래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운명처럼 다가오는 한 남자, 같은 이야기나 쓸까? 그 남편이 죽어서 다시 모스끄바 대학에 찾아온 여자의 사랑이 어쩌구 하는 거 쓸까?"

"웃기지 말라구, 그건 정말 웃기지 말라구야."

남편의 입술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건 그가 아주 화가 났을 때의 버릇이었다.

"내 영화에 대해 니가 그 따위로 말하는 것은 용서 못해," 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속이지 마, 사람들을 속여먹지 말라구. 안 그래도 속고 속는 사람들이야. 불쌍한 사람들한테 또 거짓 꿈 같은 건 주지 말라구! 노력하고 노력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어느덧 행복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듯한 거짓말을 그만 해! 사랑? 이젠 역겨워 구역질이 나!"

나는 정말 방금 호텔의 일 층 레스또랑에서 먹은 그 맛없고 시큼한 검은 빵과 들큰했던 러시아 스프를 다 토해낼 것처럼 말했다.

"가자. 버스를 타야 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남편은 화를 참기가 몹시 어렵다는 듯이 천천히 말했다.

"난 안 가."

나는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모스끄바에는 택시가 없다는 생각이 났다. 길거리에 나가서 손을 들고 아무 자가용이라고 불러세운 다음 통하지도 않는 러시아 말로 목적지를 말하고 값을 흥정까지 한 후 어디인가로 가야 했다.

그러면 택시는 어제처럼 나를 엉뚱한 곳에 내려놓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삶일까?

"가고 싶지 않다면 네 마음대로 해."

남편은 콘티가 복사된 종이를 손에 돌돌 말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문가로 나가기 전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지도 않고 그렇게 현실적인 소설을 왜 못 쓰는 거니? "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넌 나쁜 놈이야. 넌 아주 질 나쁜 개자식이라구. "

남편이 없는 호텔 방에서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자신 없고 공허했다. 나는 신고 있던 샌들을 벗어 던졌다.

"젠장할 무슨 호텔에 슬리퍼도 없는 거야!"

전화벨이 울릴 때까지 나는 침대 머리에 벗어 놓은 속옷처럼 엎어져 있었다.

전화를 건 것은 C였다.

"기가 막히는구나. 그놈의 운전사가 그런데에 너를 내려놓다니 너도 그렇지, 호텔 간판을 봤으면.."

"난 러시아 글씨를 몰라."

"그도 그렇구나," C가 한숨 쉬듯이 대답했다.

잠시의 침묵이 나를 다시 추스리게 만들었다.

"언제 떠나니?"

"내일"

"난 오늘은 중요한 세미나가 있어 밤늦게 끝날 거야. 그때라도 볼까?"

"아니."

C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찬물에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우선 어디론가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인지 내가 그 이름을 모르면 어떤가, 어디든, 택시가 나를 내려놓는 곳에서 천천히 모스끄바를 구경하자.

나는 작은 배낭을 챙겨 들고 방을 나섰다.

복도에 앉은 여자는 여전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굿모닝 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을 때처럼 웃었다.

나는 미네랄 워터와 지갑과 여권이 든 작은 배낭을 지고 토산품 가게를 기웃거렸다.

배가 볼록볼록한 오뚜기 같은 러시아의 민속 인형과 발라라이까와 호박 보석을 만져보았다.

값을 물어보고 다른 것을 보여달라고 말하면서 나는 사실은 내가 저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을 깨달았다.

어젯밤 화이떼베찌바 호텔이 아닌 화이떼베찌바 호텔에서 이리로 돌아올 때의 막막함이 생각났다.

나는 과장되게 손을 흔들어서 아무 차나 불러세우고 코스모스 호텔 코스모스 호텔, 하고 소리친 후, 주머니에 있던 러시아 루블을 주머니에서 닥치는 대로 꺼내 밀었다.

차를 모는 점잖은 중년 남자는 4만 루블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내게 다시 돌려주었다.

아마 그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저 동양인 여자에게 무언가 굉장히 큰일이 일어난 모양이구나.

나는 로비에서 현관으로 통하는 유리창을 두고 망설였다.

그때 먼 시야에 누군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뜻밖에도 안과 김이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들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촬영장에 안 갔어요?"

수완이 좋은 김이 취재를 하기 위해 안을 데리고 다닌 모양이었다.

커피 한 잔씩을 하고 안이 촬영장으로 먼저 떠났다.

"저어, 우리 박물관에 가보지 않을래요? 여기까지 왔는데" 목이 말라서 콜라를 한 잔씩 더 마시다가 김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택시가."

"그게 무슨 문제예요. 다 사람이 사는 덴데요 뭐. 갑시다."

나는 러시아어를 나처럼 한마디로 못하는 김의 뒤를 따라나섰다.

호텔 앞에서 손을 들고 선 우리 앞에 밴이 한 대 와서 멎었다.

"뿌쉬낀 뮤지엄, 뿌쉬낀 뮤지엄."

뿌쉬낀은 알아듣고 뮤지엄은 알아듣지 못하는 운전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은 나에게 우선 뒷좌석에 타라는 눈짓을 하더니 운전사 옆에 앉아 수첩을 꺼내 들었다.

힐끗 살펴보니 그 수첩에 그림도 그리고 미라도 그리고 하고 있었다.

"오오, 오케이."

거짓말처럼 운전사는 우리를 뿌쉬낀 미술박물관 앞에 내려놓았다.

제정 러시아 시절 귀족의 집이었다는 곳, 귀족들이 취미로 사 모은 예술품들이 이제 이곳에 모여 박물관이 되었다.

입구에서 영어로 된 도록을 사서 읽으며 우리는 넓은 미술관을 오르내렸다.

그리스와 이태리의 조각들, 이집트의 미라, 렘브란트의 그림을 지나간 나는 고흐의 그림 앞에 섰다.

내가 사랑하는 고흐는 어느 나라 말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델란드에서 온 이방인 고흐는 빠리도 아닌 시골 아를르에서 어떤 나라의 말로 이야기했을까? 각기 다른 사람이 쓴 고흐의 전기를 두 권이나 읽었지만 고흐는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했다는 구절은 없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괴로웠다는 구절도 없었다.

고흐는 다만 괴로워했다고, 이해받을 수가 없었던 그 자신의 생각을 이해받을 수 있도록 잘 표현할 수가 없어서, 마을 사람들도 몰라주고, 화랑도 몰라주고, 끝내 동료인 고갱도 모르는 어떤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좌절감으로써 괴로워했다고.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회색빛에 가까운 카키색의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지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감옥"이라는 그림이었다.

화면 앞으로 다가온 그들 중의 몇이 그림을 그리는 고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옆에 걸린 "비가 개인 후의 오베르의 풍경"이라든가 "아를르의 붉은 포도밭" 같은 곳에 있는 프랑스 농부들은 그림을 그리는 고흐를 바라보지 않는다. 다만 묶인 죄수 몇몇, 그리고 "감옥"이라는 그림 옆에 걸린 "자화상" 속의 고흐 자신만이 물끄러미 고흐를 바라보고 있다.

그 동사 변화가 어려운 프랑스어를 고흐는 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푸른색을 주조로 한 마띠쓰의 그림 쪽으로 다가가며 생각했다. 어학원에 다니지도 않았고, 개인 레슨을 받지도 않았을 가난한 화가 더구나 아를르는 남프랑스의 시골이고 사투리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고흐는 그래서 그토록 동생 테오에게 열심히 편지를 쓴 것은 아닐까.

푸르스름하다거나 어둑어둑하다거나 얼핏, 문득, 새록새록 이런 네델란드 말이 하고 싶어서.

빵을 사러 가거나 물감을 사러 가는 거 하고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 거하고는 다른 일일 테니까.

고흐가 만일 프랑스 말을 유창하게 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다가갈 수 없는 언어가 사람을 죽게까지 할 수도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휘익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박물관을 나서 아르바뜨 거리로 갔다.

여섯 시밖에 되지 않은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싶더니 금세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산 도록을 머리에 이고 비를 피하며 일본식당으로 들어가서 우동을 먹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창밖에서 비를 맞으며 집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온 우리는 빗속에서 춤을 추는 그들을 구경했다.

비닐우산이라도 구해보려고 가게를 기웃거리는 김에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러시아 여자가 말을 거는 것이 보였다.

어떤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가가 구걸을 하는 소녀를 수제품 레이스를 팔던 할머니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쫓아내고 있었고 인터걸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성급히 뛰어 환전소로 향하고 있었다.

"없어요. 비닐우산 같은 건 없대."

하기는 물건을 사도 비닐봉지가 없으니 헛탕을 치고 돌아온 김과 나는 그대로 비를 맞으며 아르바뜨 거리를 걸었다.

비 탓인지 토요일 저녁이었지만 인적이 드물었다.

우리는 스파게티를 파는 이태리 식당에 들어가 감자 튀김을 시켜놓고 맥주를 마셨다.

비 때문이었을까 조금 일찍 취기가 오른 나를 바라보다가 김이 말했다.

"어제는 취재를 나가다가 레닌 언덕에 올랐지. 산이 없는 모스끄바의 유일한 언덕. 러시아 놈들 말이야, 그 하나밖에 없는 귀한 언덕에다 딱 두 가지를 세워 놓았더군. 모스끄바 대학과 모스필름이라고 불리는 영화사야, 멋있지? 그 귀한 장소에 대학과 영화사를 세우다니. 그런데 내가 정말 화가 나는 건 그토록 교육과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가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거야. 곳곳에 시인들의 동상이 서 있는데 왜 이들은 패배하고 말았을까. 택시도 없고, 비닐우산도 없고, 전화 걸기도 힘들고 그래서 문득 생각했어. 모스끄바의 명당이 그 레닌 언덕에 사관학교하고 정보부를 세워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 서울이 한복판의 남산에다가 안기부와 텔레비 탑을 세워 놓았듯이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야."

김하고 단둘이 남으면 우리는 왜 자꾸 이런 무거운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인지 빗방울들이 돌돌돌돌, 모스끄바에 있는 이태리 레스또랑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흘러내렸다.

사방은 어두웠고 마주 보이는 보석상의 불빛이 노랗게 거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수족관 속의 풍경처럼 고즈넉해 보였다.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멈추는 듯했고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 정말 총각이야."

나의 침묵을 의식했을까, 감자튀김을 우적우적 씹던 김이 불쑥 말했다.

"서른네 살이나 먹었으면서?"

"그래."

그는 작은 병에 담긴 러시아 맥주를 병째 마시며 입을 쓰윽 닦았다.

"옛날엔 사랑도 하고 그랬지. 자신도 있었고 정말 열심히 살았었어. 그런데 이젠 잘 안 돼 가끔 예전에 그 여자아이들에게 전화가 오지. 나 이혼하려고 하는데 만나줄 수 있겠니? 하고, 그러면 내가 대답해. 이혼을 하는데 왜 내가 너를 만나야지?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어. 이 모스끄바 한복판에서 그쪽과 내가 둘이 앉아 있다니."

김은 풀풀 웃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그쪽을 대학 때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알어?"

"대학 때부터?"

"나랑 친한 놈 중에 H라고 1학년 땐가 미팅했었다며?"

H, H,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미팅에 나간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그랬다.

"그놈이 니네 학교 신문에 네 시가 실리면 가져와서 우리한테 보여주고 그랬어. 그러다가 술만 먹으면 그쪽을 욕했지. 전형적인 부르조아 여대생이라고. 그런 너와 내가 이렇게 모스끄바에 말이야, 다른 곳도 아닌 모스끄바에서 이렇게 데이트를 하리라고는 그놈이나 나나 혹은 그쪽이나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니까 조심해. 우린 어쩜 이다음에 남극에서 만나게 될지도 몰라."

내가 빈 맥주병을 치우고 새 맥주병을 따며 말했다.

"남극?"

"그래, 지난 10년같이 이렇게 세상이 휙휙 변한다면 우리는 아마 10년 후쯤에는 남극의 빙하를 타고 표류하다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구."

김과 나는 러시아의 작은 맥주병을 잡고 낄낄 웃었다.

술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러시아에 도착해서 처음 보는 이른 시각의 어둠이었다.

비는 이제 그쳐 있었지만 아르바뜨 거리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괴어 있었고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비에 젖은 금발을 쓰윽 매만지며 물웅덩이 위를 첨벙첨벙 걸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휘익 하고 불었다. 살갗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반팔 아래로 드러난 팔을 쓰윽쓰윽 문질렀다.

"내가 그쪽 소설 싫어하는 거 알어?"

택시를 타기 위해 큰길 쪽으로 걸으며 김이 다시 말했다.

"우리들을 말야. 우리들을 그렇게 힘없이 회상해서는 안 돼. 우리들은 영원히 외로운 세대야. 왜 그랬는지, 그땐 왜 그러다가 지금 요렇게 되었는지 영원히 이해받지 못할 거라구. 그러니까 그렇게 맥없이 항복하고 들어가는 건 싫었어. 그래도 그쪽이랑 내가 보자마자 금방 친해진 것은 남들에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걸, 우리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사실은, 그래서 우리 학번들 만나기도 싫어. 그쪽도 내가 이런 이야기 꺼내는 거 싫어하잖아."

"내가?"

"우린 그런 것까지 닮아버린 거야 아닌가?"

그는 취한 듯했다.

아닌가? 하고 물었던 입을 천천히 다물고 그는 턱을 약간 들어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빙하를 타고 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은 외로워 보였다.

나는 그처럼 턱을 약간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빙하를 타고 있는 것처럼 내 얼굴도 어쩔 수 없이 굳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시선 끝에 멀리, 맥도날드의 M자가 노란빛으로 크고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과 내가 복도에서 헤어지고 난 지 한 시간이나 두 시간 후쯤, 김과 나는 다시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의 곁에는 밤색 머리칼을 가진 러시아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관리인 여인에게 다가가 돈을 내밀었고, 나는 내 손에 들린 미네랄 워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러시아 여자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김이 몇 발자국 먼저, 내가 몇 발자국 뒤에서 복도를 걸어갔다.

우리들의 발소리가 긴 복도를 사각사각 울렸던가 아니던가

다음날 빅또르 박이 아침에 우리들을 인솔해, 붉은광장으로 데리고 갔다.

성 바실리 성당과 끄레믈린 궁을 돌아보고 나서 빅또르 박은 이제 우리가 레닌의 묘를 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마치 저승으로 통하는 것처럼 깊고 어두운 침묵이 깔린 계단으로 두 사람씩 줄을 서서 내려갔다.

어두운 지하세계로 내려가자 핀 조명이 밝혀진 곳에 밀랍 인형 같은 병정이 서 있었다.

검지손가락을 들어 입술 위에다 세로로 대고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정말 인형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발밑을 분간하기 힘든 계단을 몇 바퀴 돌아 우리는 레닌 묘에 다다랐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한복을 입고 장구를 치는 예쁜이 인형처럼, 레닌은 유리 상자 속에 누워있었다.

그는 참 작았다. 키가 158cm의 단구라고 했던가.

지하의 무덤 속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얼핏 김과 나의 눈이 레닌의 유리관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모스끄바에는 새가 없대, 모스끄바에는 산도 없고, 모스끄바에는 아파트뿐, 개인 집이 단 한 채도 없지. 택시도 없었구, 영어를 알아듣는 종업원들도 없는 호텔, 창녀는 없지만 인터걸은 있고 산은 없지만 언덕이 하나 있고, 이제 여기 레닌이 있다."

나는 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빅또르 박이 천천히 대열의 앞을 인솔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우리들은 죽은 레닌을 거기 남겨둔 채 지하의 어두운 묘지를 빠져나왔다.

공항면세점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러시아의 동전을 바꿔 공중전화 코인을 샀다.

C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였다. 디리릭, 디리릭 여러 번 신호가 갔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C도 없고 C의 부인도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공중전화를 걸 수 있는 러시아 코인 하나를 기념으로 지갑 속에 넣고 국제전화카드를 스텝에게서 빌려 서울로 전화를 넣었다.

모스끄바에 도착한 이래 처음이었다.

전화를 받은 것은 시어머니였다. 간단한 안부를 묻고 시어머니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전화를 아이에게 바꾸어주었다.

"아가야 엄마야, 엄마 해봐."

내가 말했다.

"엄마, 그래봐, 엄마 빨리 오세요, 그래봐."

아이의 목소리 대신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야, 엄마 해봐."

내가 다시 말했다.

", ,"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금방 데리러 갈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대답했다.

전화를 다시 받은 시어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나의 아이의 얼굴이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멈추어 선 채로 나는 핸드백 속에 늘 가지고 다니던 아이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그 사진은 아이가 6개월 무렵이 되었을 때 찍은 것이었다.

지금 아이는 많이 변했으리라. 서울을 떠날 때 본 아이의 마지막 모습도 이것과는 달랐으니까.

하지만 기억은 사진 속에서만 선명할 뿐, 모스끄바로 오기 며칠 전 시댁에서 바이바이를 하고 온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C의 얼굴도 B의 얼굴도 함께 떠났던 마지막 여행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

 

그때 우리는 무슨 말을 했던가.

"우리는 이제 인도로 간다,"라고 막막한 바다를 향해 말했던 것이 정말 C였던가.

그 말을 한 것은 혹시 내가 아니었을까.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던 C의 모습이 지워지고 그 곁에서 언제나 음울한 표정으로 서 있던 B의 모습도 지워지고 이윽고 내 모습도 지워지고 막막한 바다만 남았다.

그 말을 했던 건 그러면 바다였던가, 바다 같지 않은 바다.

섬으로 막막히 막혀버린 바다. 바람이 직선으로 불어오지 못하는 바다. 하지만 파도가 이는 푸른 색깔의, 그러므로 바다.

아마도 서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아이를 보러 가게 되리라.

아이에게 엄마라는 말을 가르치기 위해 하루종일 씨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말과 아빠라는 말, 맘마라는 말과 산이라는 말 그리고 별과 새와 나무와 강, 자동차와 우산이라는 말.

아이가 좀 더 크면 푸르스름하다거나 어둑어둑하다거나 얼핏, 문득, 새록새록하다는 말을 가르치게 되리라.

그러면 나는 집 베란다에 작은 의자를 내다놓고 디스 담배를 피우게 되겠지.

택시를 타면 모국어로 말하게 되리라. 버스를 타면 늘 지겹게 켜 있던, 남자 코미디언과 여자 코미디언이 수다를 떠는 방송을 듣게 되리라. 수다스럽다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가끔은 운전사의 뒷자리에 앉아서 나는 그들의 우스개를 이해하고 어쩌면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나는 천천히 면세구역을 향해 걸었고 이어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승객 237명을 태운 보잉기는 안간힘을 쓰며 바람을 가르고 있다.

안전 벨트를 맨 사람들은 움직임이 없고 복도에는 스튜어디스도 없다.

비행기는 온몸을 다해 달려가다가 마침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우주를 지배하는 중력과의 싸움이었다.

새도 아니면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쇳덩어리의 몸부림. 귀와 목구멍과 가슴과 배에 이상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 비상을 시작했다.

창가로 내다보이는 모스끄바가 기우뚱하며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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