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후조(候鳥)

후조(候鳥)

오영수(吳永壽)

 

더우며 오고 추우면 돌아간다.

또 추우면 오고 더우면 가기도 한다.

언제나 패를 짜서 먹이를 찾아갔다가 떼를 지어서 돌아온다.

이것은 후조의 생리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후조도 있다.

 

지난가을---포도 위에 가로수 잎이 깔릴 무렵이니까 아마 시월 중순경 인가보다.

민우(民雨)가 을지로 6가로 해서 동대문 밖 숙소로 돌아오니까 웬 구두닦이 아이놈이 불쑥 앞을 막아서면서 양복 소매를 잡아 흔든다.

그때 민우는 뭣 때문엔지 마음이 좀 우울한 데다, 갓 지어 입은 양복을 그 때묻은 손에 다 잡힌 것도 좀 불쾌해서

"안 닦는다, 임마!"

하고 빽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이놈은 조금도 탓하지 않고 연신 거머잡은 소매를 흔들면서

"아니요, 선생님 지 몰라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부산서요, 늘 선생님 신 닦잖았어요?"

민우는 비로소 기억이 또렷해진다.

"오오 인젠 알겠다. 구칠이 응 그래 너 이놈 언제 서울 왔니?"

"봄에 왔어요!"

"그래 왜 부산 재미없던?"

구칠이는 그제서야 잡았던 소매를 놓고 입이 실쭉해지면서 발끝을 내려다본다. 그와 함께 구두코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영문 모른 채 민우도 마음이 언짢다.

팔꿈치에 구멍이 나고 소매 끝이 더실 더실 풀린 도꾸리 셔어츠, 번들번들 윤이 나도록 때가 묻은 검정 즈봉---이런 몰골은 이런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제 발이 한꺼번에 둘이라도 들어갈 만큼 크고, 유독 코가 뭉퉁한 군화를 신은 것이 거추장스럽고 우습기도 하다.

민우는 담배를 꺼내면서

"그래 너 혼자만 왔냐?"

구칠이는 대답 대신 민우의 소매를 잡아 끌면서

"이리 오이소---"

민우는 끄는 대로 옆 골목 안으로 따라 걷는다.

어느 집 블록 담 밑에다 구칠이는 그 간단한 나무 의자를 놓고 민우를 앉으라고 한다.

신부터 닦자는 것이다.

민우는 연모통 위에다 한 발을 올려놓으면서

"네게 신 닦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한 일년도 넘지?"

"이 신 아직도 그때 그 신이네요?"

이놈은 고향이 충청도라면서 부산 말투를 제법 잘 흉내를 낸다.

"그래 그 신이다. 근데 왜 서울 왔니, 학교 재미없던?"

구칠이는 쇠갈퀴로 신창에 끼인 흙을 파내면서

"학교 말마이소, 혼났어요!"

"혼났다니 왜?"

"선생님 서울 가시고 얼마 안돼서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돈이 없어졌어요, 칠천 환요---"

"흠 그래?"

"그래, 그걸 내가 훔쳤다고 훈육 선생이 창고로 끌고 가서 막 때리잖아요---"

"그 최선생 말이지?"

", 그래 안 가져갔대도……"

"그래 그 돈은 어쩐 돈인데?"

"호국 단비 받은 거래요!"

"그래 어쨌니?"

"내일까지 바른 대로 안 대면 경찰에 넘긴다고……"

"그래서?"

"이쪽 발 올리세요---"

"그래서?"

"이쪽 발 올리세요---"

"그래서?"

"그 다음날은 손가락 새 연필을 끼워서 막 비틀잖아요. 정말 죽을 뻔했어요---"

"그래?"

"그래 내가 그랬다고 했지요. 그러니까 이 새끼 진작 대잖고---그러면서 돈 어쨌냐고 하잖아요---"

"그래 뭐랬니?"

"아파 못견데서 그랬지만 정말 난 모른다고 하니까, 이 새끼가 사람을 놀린다면서 걸상 다리를 가지고 막……"

", 대강대강 닦아 둬라, 그래서?"

"나중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눈을 떠보니까 소사 영감이 낯에 물을 자꾸 끼얹잖아요---"

"흐음, 그래?"

"그래 소사 영감이 집으로 보내 주었어요, 집에 가서 내 앓았어요."

"대강대강 해 두라니까---"

"때를 좀 빼야겠어요---그래 앓아 누웠으니까 우리 동무가 와서 최선생이 오란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누나가 날 데리고 갔어요. 쩔뚝쩔뚝 절고 갔어요."

"그래 뭐라던?"

"돈 훔친 놈을 알았다면서---미안했다고 돈 이백 환 주면서 개장국 사 먹으래요."

"그래 훔친 놈은 누군데?"

"급사새끼래요!"

"그래 그 돈 가지고 개장 먹었냐?"

"막 눈물이 나서요. 자꾸 울기만 했어요. 우리 누나도 울었어요."

"그래?"

"그래 돈 싫다고 그대로 와 버렸어요. 선생님 생각이 자꾸 나서요---"

"그래 서울로 왔냐?"

"앓아 누워서 돈벌이도 못한다고 새엄마(계모)가 마구 나가라고 하잖아요. 우리 아버지도 술먹고 막 때리고---그래서 서울 오는 우리 동무패에 끼어서 와 버렸지요."

"흐음!"

"선생님 이거 보이소---"

그러면서 내 보이는 둘째손가락과 세째손가락 새가 퍼르스름한 죽은 살이고 뼈마디가 반대로 조금 불그러졌다. 그때 비틀려서 그랬다는 것이다.

민우는 불그러진 데를 조금 눌러 보고 도로 놓으면서

"지금도 아프냐?"

"……"

"신 아직 멀었냐?"

"다 됐어요."

민우는 이 놈이 돈은 안 받을 게고 어디 데리고 가서 요기나 시킬까 하고 일어서자, 약속이나 된 것처럼 구칠이도 연모통을 거둬 메고 따라선다.

계림 극장 앞에까지 오자 구칠이는 또 민우 소매를 잡고 극장 간판을 가리키면서

"선생님 저거 구경했어요?"

민우는 고개만 가로 흔든다.

"선생님 구경 하이소. 내 구경 시켜드리께요---"

민우는 어이가 없어 한동안 발을 멈추고 구칠이를 내려다 본다.

"선생님, 저 이쪽에 한 쪽 눈 깜고 권총 들었지요. 자알 합니데이."

"그럼 내가 구경시켜 주지---"

"아니요. 나는 봤어요. 선생님 구경 하이소. 나는 돈 안 주고 구경할 수 있어요. 오이소, 갑시더---"

"그럼 이담 존 거 오면 내가 시켜 주지, 오늘은 좀 바빠서……"

구칠이는 그만 울상을 할고 더욱 소맷자락을 검잡고 당기면서

"싫에요, 구경 하이소, 오이소, 가입시더."

구경을 시키지 않고는 놓지 않을 작정이나.

난처하다. 그러나 그대로 떨쳐 버리기도 민망하다. 민우는 한동안 망설이다 말고

"그럼 가자!"

구칠이는 극장 옆에다 제 연모와 함께 민우를 세워 놓고 출입구로 달려가서 뭐라고 한동안 교섭을 한다.

이윽고 구칠이는 한 팔을 번쩍 들고 그 거추장스러운 양키 군화를 뚜벅거리면서 달려온다. 연모통부터 어깨에 메고 한 손에 의자를 들고는 한 손으로 민우를 잡고 끌면서

"됐어요, 오이소, 가입시더---"

사실 구칠이 말대로 극장은 아무런 천착 없이 들여 주긴 주었다.

극장 안에 들어서자 구칠이는 부리나케 앞으로 다가가서 자리를 잡아 민우를 앉히고는 귀에다 대고

"선생님 연속임더, 아시지요? 이거 마치면 또 첨부터 시작합니더 보고 기이소, 내 저 사람들 신 닦아놓고 올께요---"

그리고는 나가 버린다.

영화는 어느 서부극이었다. 화면을 바라보고는 있으나 민우의 머릿속은 딴 생각에 잠겨 버린다.

민우가 수복 전까지 부산 W중학교에 교편을 잡고 있을 때다.

학교라지만 임시 변통의 울도 담도 없는 천막 교사였다.

딴 장사아치들도 그랬지만 유독 구두닦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때는 칠팔 명씩도 몰려 왔다.

좁은 사무실에 사십여 명 직원들이 서로 등을 맞대고 비비적거리는 판에, 구두까지 닦이느라고 북새를 이루었다.

민우는 환경 정리를 맡고 있는 책임상 이놈들을 몰아내는 데 골치를 앓았다.

쫓고 몰아내도 돌아서면 또 모이고, 이건 마치 썩은 고기에 파리떼 엉기듯 했다.

때로는 사무실 옆에 이놈들이 제법 진을 치고, 구슬따기 아니면 제기차기까지도 했다.

어느 날 민우는 아침부터 모여드는 아이들을 일단 몰아내고 변소를 다녀오는데 언제 따라왔는지 구두닦이 한 놈이

"선생님 신닦으이소---" 하고 의자를 내려 민다.

민우는---금새 내쫓았는데---하고 반 짜증 반 웃음겸 주먹을 쳐들었다. 그러나 이놈은 즈봉 포킷에서 약통을 꺼내 보이면서

"선생님 이거 미제 젤 존게요, --아시지요, 어제 샀심더, 마수거리 하이소."

민우는 마침 첫시간도 없고 해서 그만 발을 내맡겼다.

이놈은 신바람을 내고 침을 뱉아가면서 한 짝을 닦고 나서

"선생님."

"?"

"구두 닦는 애들이 너무 많지요?"

"골치거리다 이놈아!"

"그런데 선생님예, 내가 말에요, 선생님들 신 이십 환씩에 닦아 드릴 테니까요, 젤 존약으로요, 그래 저만 와서 닦도록 좀 해주이소 예---"

"이놈 욕심도 많구나."

"좀 그래 주이소, 선생님"

그것도 그럴 상하다. 한 놈만 지정을 해 두면 딴 놈은 안 올게고, 또 삼십 환을 이십 환에 한다면 선생들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한 번 의논해 보지."

"꼭 좀 그래 주이소."

그래서 그날 오후 종례 때 민우는 제의를 했다.

교장 교감 이하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표식은 팔에다 완장을 끼도록 하기로 했다.

다음날 민우는 노랑 천에다 W자를 쓴 완장을 만들어 구두닦이 아이놈들을 모아 선언을 했다.

---이 완장을 낀 이 아이에게만 신을 닦일 테니 그밖에는 와도 소용없다. 그러니까 딴 데로 가라---. 그러나 이놈들은 모두 불평들이었고 어떤 놈들은 제법 따지고 들었다.

---다 같이 피난살이가 아니냐고, 너무 불공평하다고, 하루걸러 교대로 하자느니, 일주일씩 하자느니---.

민우는---네들 말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결정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이렇게 간신히 타일러 보내기는 하면서도 다 같은 피난살이라는 데는 코허리가 씨잉해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민우 역시 이북에 고향을 둔 피난 교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완장을 받은 놈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선생들에게 일일이 꾸버꾸벅 절을 하고 교장이 출근하면 부리나케 슬리퍼를 들고 가서 대신 구두를 가져다 닦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시간이 빈틈을 타서 민우가 신을 닦으면서

"하루 평균 몇이나 닦나?"

"학생들까지 스물쯤 돼요!"

"이이는 사, 사백환으로 수지가 맞냐?"

"괜찮아요!"

"전보다 나아?"

"낫고 말고요, 전에는 하루 이 백환 벌레도 힘들었어요!"

"근데 네 이름이 뭐지?"

"이 구철(九喆)이요!"

이때 마침 체육 선생이 지나다구철이그 틀렸다. 구두 칠한다고구칠이로 해라, 해서 구철이는 끝내 구칠이로 통해 버렸다.

고향은 충청도고 제 아버지는 부두에서 짐을 진다고 했다.

구칠이는 점심 시간이 제일 바쁘다. 점심을 먹으면서 신을 닦이는 선생도 있다.

좁은 사무실에서 때로는 궁둥이를 채이기도 하고 출석부로 머리를 얻어 맞기도 했다.

그러나 급하면 선생들 점심도 시켜 오고 급사놈 대신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했다.

교장이 바뀌자 민우도 학교를 그만 두고 환도를 했다. 그와 함께 구칠이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 버렸다.

최선생의 구칠이에 대한 오해나 매질은 어쩌면 최선생의 민우에 대한 감정이 겹쳐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구칠이가 민우에게는 굳이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최선생으로서는 못마땅했을 게다.

이런 일도 있다.

구칠이는 열 번을 닦았다고 하는데 최선생은 여섯 번인가 일곱 번밖에 닦지 않았다고 우겼다. 송내는 인격 운운까지 하면서 호되게 구칠이의 뺨을 후려갈긴 일---.

또 언젠가는 단골 식당에 점심을 시켰는데 민우 것만 먼저 가지고 온 데서 최선생은 노골적으로 민우와 구칠이를 못마땅해했다.

하마터면 민우와 충돌을 할 뻔도 했다.

직원회 같은 것이 있어 술잔이나 먹게 되면 민우는 오징어 대강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모아 두었다가 구칠이를 주는 것도 최선생으로서는 못마땅했을 게고, 구호 물자를 나눠 받아 필요 없는 것들을 구칠이게게 줘 버린 것도 못마땅했을 게다. 자기가 미워하는 놈을 민우가 두둔하기 때문에 민우가 못마땅한지, 민우가 못마땅해서 구칠이를 더 미워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민우 역시 최선생을 못마땅해 한 것도 사실이었다.

최선생은 좀 잔인한 데가 있었다.

이를테면 공부 시간에 뭣을 어쨌다는 아이 두 놈을 데려다 맞세워 놓고 한 놈을 시켜 상대놈의 뺨을 갈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놈들은 서로 눈치를 보아 가면서 겸연쩍게 웃기만 한다. 그러나 옆에서 매를 들고 위협을 하니까 할 수 없이 상대놈의 뺨을 살짝 때린다. 그러면 맞은 놈을 시켜 도로 때려 갚으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맞은 정도로 때린다. 그러나 맞은 놈은 제가 때린 것보다 좀 세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아깟번보다 좀더 세게 때린다. 맞은 놈은 또 제보다 훨씬 세다고 생각하고 제법 세차게 갈긴다. 이렇게 되면 때려라 마라 여부가 없다. 서로 기를 쓰고 마구 갈겨댄다.

나중에 귀와 볼이 홍당무가 되고 부어오르게까지 된다.

이것을 옆에서는 재미난다는 듯이 웃고들 있다.

이런 최선생을 눈 앞에 그리면서 아무래도 구칠이는 민우로 해서 더 무진 매를 맞은 것이리라---하는데

"선생님, 지금 말에서 떨어졌지요, 저거 거짓말임더, 안 죽심더, 인자 보이소, 저 말 뺏어 타고 달아납니더, 자알 합니데이."

구칠이는 언제 들어왔는지 이렇게 옆에 앉아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구칠이는 매양 길목에서 민우를 기다린다.

으례 신을 닦자고 한다. 출근 시간이 바쁘다고 하면 솔질이라도 하고야 만다.

때로 구칠이가 신 닦기에 여념이 없을 때는 민우는 그만 알은 체를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다음날 만나면 어제는 왜 출근을 안했으며 어디를 갔더냐고 묻고는 어둡도록 기다렸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는 민우가 좀 늦게 돌아오는데 구칠이가 양손을랑 즈봉 주머니에 찌르고 발로는 박자를 맞춰 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고향이 그리워도---어쩌고 하는 그런 유행곡이었다.

"너 여태 안 가고 뭐 하니?"

"선생님 기달렸어요……"

그리고는 얼른 연모통을 메고 따라 걷는다.

"왜 뭣하게?"

"그저요!"

동대문 기동차 정류장 앞까지 오면 구칠이는 꾸벅 절을 하고

"선생님 가입시더!"

그뿐이다.

구칠이는 기동차 정거장을 빠져나가 냇가 언덕 위로 일자로 놓인 맨 끝에서 둘째번 천막에 있다.

한번은 번번이 정거장 안으로 들어가는 구칠이가 수상해서 숙소가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그때 구칠이는 민우 소매를 잡아끌고 출찰구에서 바라다 보이는 천막을 가리켜 주었다.

콩나물을 길러 파는 할머니와 같이 있다고 했다.

 

민우는 되도록이면 빨리 돌아오기로 한다.

구칠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새 민우의 마음 한구석에는 구칠이가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남의 집 개도 꼬리를 치면 미워 못하는 민우의 약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북에서 지금은 뭣을 하고 있는지 알길조차 없는 그의 끝이 조카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칠이만 보면 무척 그를 따르던 그의 조카 놈이 눈시울에 떠오르곤 한다.

"너 언제까지나 신만 닦을 텐?"

"왜요?"

"신 닦기는 아이들이나 하는 거니까 말야---"

"……"

"너 인제 몇 살이지?"

"설쇠면 열 다섯 돼요!"

"장차는 목수나 철공소 직공 같은 그런 것 싫냐?"

민우는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그럴 생각이었고 또 그렇게 해서 야간 학교에라도 보낼 작정이었다.

"……"

", 뭐가 하고 싶냐?"

"나는 돈벌어서요, 구둣방을 하나 낼래요."

", 구둣방을……?"

"우리 집 들어가는 그 앞에다가요."

"왜 하필 네집 앞에다……?"

"그 새끼 좀 보라고요."

"그 새끼라니 누구?"

"새엄마가 데리고 온 그 새끼요."

"그래도 너하곤 형제 아냐?"

"! 그 새끼 미워 죽겠어요, 그 새끼 때문에 얼마나 맞았다고요, 우리 누나도 그 새끼 때문에 늘 맞아요, 우리 누나 참 불쌍해요. 내가 구둣방 내면 우리 누나하고 같이 살끼요."

"구둣방을 내자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 너 돈 좀 모았냐?"

구칠이는 민우를 쳐다보고 씩 한 번 웃고는 광내기 헝겊에 더 힘을 주고 문지르면서

"서울 와서 육천환 모았어요, 또 콩나물 할머니 밑천 구백환 대 주고요."

"그 할머니는 아는 할머니?"

"콩나물 통을 좀 여달래는데 말씨가 충청도라서 그래서 알았지요."

"할머니는 혼자?"

"할아버지는 작년에 죽었대요, 아들도 전쟁에 나가 죽고요."

 

크리스머스 전전날이었다.

그동안 이틀거리로 사흘 거리로 닦은 신도 신이지만 구칠이가 하도 추워 봬서

"엣다, 샤쯔 하나 사 입어라. 그 옷으로 어디 겨울 나겠냐---"

그리고는 돈 이천 환을 쥐켜 주었다.

구칠이는 얼떨떨한 눈으로 돈을 보고 민우를 쳐다보고 하다가 슬그머니 돈을 도루 민우 포킷 속에 넣어 주면서

"싫에요, 돈 싫에요."

민우는 돈을 도로 꺼내서 구칠이 코밑에다 대고

"아냐 받아라---"

"싫에요!"

"받아 빨리---"

"……"

"임마, 내가 너 덕을 봐서야 되겐?"

"……"

민우는 구칠이 앞에다 돈을 내던지고 돌아섰다. 그러나 구칠이는 그 육중한 구두를 터덜대면서 민우 앞을 가로막아서고

"돈 싫에요, 싫에요, 이잉---"

이렇게 또 돈을 돌 내밀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문지르고 문지르고 한다.

길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자식이, 울긴 왜 울어."

"그래 싫에요. ."

난처하다.

"그럼 연장들 가지고 내 따라와---"

구칠이는 기어코 돈을 민우 오바 포킷 속에다 도로 넣어 버리고는 의자랑 연모통을 메고 왔다.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만두국을 둘 시켰다.

"너 뭐 때문에 매일 날 기다리냐?"

구칠이는 눈을 깔고 고개를 숙여 버린다.

"뭣 땜에 그렇게 기다리니, 어 말해 봐?"

"선생님 좋아서요."

"좋다니 뭐가?"

"그저요."

"그저? 허 자식도 참……"

만두국이 나왔다.

"근데 이봐 구칠이……"

민우는 다시 돈을 꺼내서

"너가 내 신 닦아주는 거나 내가 너 샤쯔 한 벌 사주는 거냐 마찬가지야, 어 알겠어, 또 크리스머스에는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것 가지고 샤쯔 하나 사서 내일부터 입고 나와. 어 알았지?"

"그래도 돈은 싫에요."

"자식이 꽤 고집이 세군---내 말 안 들으면 말야 응, 난 인제부터 이리로도 안 다니고, 네게 신도 안 닦는다. 어 좋냐?"

"이잉……"

"국에 콧물 떨어진다 임마---"

구칠이는 눈물 섞인 콧물을 혹 들이키고 나서 원망 서린 눈으로 민우를 한 번 흘기고는 그제서야 슬그머니 돈을 받아 넣는다.

음식점을 나와 나란히 걸어오면서 민우가

"구칠이 구경 보여 줄까?"

"아니요, 빨리 가야 해요!"

"?"

"할머니 오새 밤 되면 눈이 잘 안 뵈요!"

"그럼 어떡허니?"

"물도 긷고 콩도 가려 줘야 해요!"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다음 크리스머스 날 아침에 구칠이는 민우를 보자 싱글벙글 하면서, 헌옷 가게에서 사 입었다는 잠바를 팔을 번쩍 들어 보이고 그리고 또 남은 돈으로 약 한 통을 샀다면서 꺼내 보였다. 민우도 뭔지 마음이 흐뭇해서

"잘 됐다, 근데 그, 머리도 좀 깎잖고……"

 

구두닦기 세월은 역시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겨울 동안 움츠렸다가 날이 풀리자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래서 또 몸맵시도 내게 되는 때문이라고 한다.

구칠이에게도 제법 손들이 달았고 하루 수입이 겨울날 이틀 치는 된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구칠이는 민우 구두를 닦으면서

"선생님 구두 인제 다 됐어요---"

"그렇다, 한 켤레 살 참이다!"

"가만 기시요, 내 아는 아이에게 미제 근사한 거 하나 사 드리께요---"

그리고는 노끈으로 치수를 재 넣는다.

그로부터 며칠 뒤 구칠이는

"선생님 구두 부탁했어요, 근사한 것 가지고 온대요, 중고라도 좋지요?"

"값은?"

"건마 우리한테는 비싸게 안 받아요, 한 사천환이나 오천환쯤……"

"그레 헐해?"

"시장에서는 미제 존거먼 중고라도 만환 넘어요."

그 뒤 구칠이는 민우 신을 닦을 때마다 걱정을 했다.

---새끼가 어제도 만났는데 곧 가지고 온다면서……하고 혼자 투덜거렸다.

 

오월 초순 어느 토요일, 이날 민우는 여느 때보다 일찍 돌아왔다.

의자랑 연모통은 그대로 버려 둔 채 구칠이는 보이지 않았다.

변소에라도 갔나 하고 민우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옆 뒤 골목 안이 왁자하다.

각다귀들의 싸움이거니 하고 민우는 담배를 피우면서 한동안 기다렸으나 구칠이는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

싸움 구경이라도 하나보다 하고 민우는 골목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선다.

구두닦이 아이 놈이랑 너댓 둘러선 가운데 뒤꼴로 봐서도 말쑥하게 차린 청년 하나이 누군지를 마구 쥐어박고 있다.

청년은 고무신을 끌고 한 손에 구두 한 컬레를 들었다.

맞고 있는 아이가 혹 구칠이가 아닌가 해서 다가가자니까

"선생님 가시요, 오지 마이소, 아무 일도 아임더."

코피로 해서 얼굴이 엉망이된 구칠이다.

"아니, 구칠이 이게……"

구칠이는 연신 피를 뱉고 입언저리를 문지르고 하면서 이렇게 거의 절망적인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은 가이소, 아무 일도 아니요, 가시요, 선생님---"

그러자 청년이 험상궂게 민우를 돌아보면서

"당신은 누구요?"

이 틈을 타서 구칠이는 그만 골목 막바지로 사생 결단 내달아 버렸다.

구칠이가 골목 막바지에서 옆으로 꺾일 때에야 비로소 청년은 당황하면서

"요런 썅……"

그리고는 뒤를 좇는다.

민우는 속으로---어떻게 됐건 위선은 구칠이가 잡히지나 않았으면---하고 모여선 아이들에게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이놈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니라고만 하고 비실비실 달아나 버린다.

민우는 되돌아 나오면서도 가 볼까? 어쩔까? 하고 망설이는데 한 아이가 와서 구칠이 연장들을 거둔다.

아는 아이기 때문에 맡아 뒸다가 주겠다는 것이다.

민우는 꼭 좀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일부러 신을 닦이면서

"얘 그 뭐 땜에 그러니?"

이놈은 민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요앞에 식당에서 신을 훔치다 들켰어요."

"아니 구칠이가?"

"또 한 아이하고 둘이서 그랬는데 한 아이는 달아나고 구칠이만 잡혔어요."

민우는 머리가 띵해지고 눈앞이 아슬아슬해진다.

눈을 감고 한동안 진정을 한다.

---역시 그래서 그랬구나---하니 괘씸한 생각과 측은한 마음이 한꺼번에 겹쳐 든다.

---이놈을 만나면 호되게 혼을 내 놔야지 괘씸한 놈---그러나 이놈을 만나면 아무래도 울음부터 먼저 터지고야 말 것만 같다.

", 고놈 새끼 잡기만 했으면 대강이를 알밤 까듯 해 놀 텐데……" 하고 아깟번 그 청년이 씨근거리면서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요?"

"놓쳤어요!"

민우는 위선 마음이 놓였다. 속으로 잘됐다---했다.

"아 이거 봐요, 사서 아직 일주일도 채 못 신은 신인데……"

그리고는 고무신과 바꿔 신고는 전찻길을 건너가 버린다.

 

그런 다음 날부터 구칠이는 보이지 않는다.

나흘째 되던 날 민우는 기동차 정거장 밖 콩나물 할머니 천막을 찾아갔다.

그런 할머니가 있기는 한데 시장에 나갔는지 문이 걸려 있었다.

민우는 아침저녁 출퇴근 때 구칠이가 신을 닦던 그 앞에 오면 버릇처럼 발이 멎는다.

열흘 가까이 해서 구칠이가 펴던 자리에는 딴 아이가 앉았다.

민우는 신발을 내 맡기고

"전에 여기서 신을 닦던 구칠이란 아이 모르냐?"

"알아요, 일선 지구 양키 부대로 갔어요!"

"혼자?"

"아니요, 여럿이 패를 짜서 가는데 끼어서요."

해마다 여름이 되면 구두 닦는 아이들이 패를 짜서 양키 부대를 찾아 돈벌이를 간다고 한다.

언제 오느냐니까 가을에 온다고 한다.

팔월도 지났다. 지루한 여름이었다.

구월도 저물었다. 더디 오는 가을이었다.

포도 위에 가로수 잎이 깔리기 시작하는 어느 날 민우는 문득 하늘을 쳐다본다.

어디선가 기러기 한 떼가 이런 꼴로 정연히 열을 지어 날아오고 있다.

인제는 구칠이도 오려나---하니 민우는 몹시도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