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는 계절
전성태
돌쩌귀 한 축이 삭아 빠진 WC 양철 문짝을 손으로 들어서 겨우 아귀를 맞춰 놓고 앉긴 했는데 거적때가 둘러친 것만 못해 앞산이 훤히 내다보인다. 멀리 갈뫼 쪽으로 자빠진 해를 멍든 구름 한 장이 들쳐업었다. 그 해를 빼앗겠다고 산마루에 포진한 먹구름장의 기세도 심상치 않다. 고추를 두 물 세 물째 따서 넌 때라 가을 장마 시샘이 없을 까마는 초장부터 큰바람으로 본때를 보이겠다니 까짓것 나도 날을 만났다.
'윳시 그 새 해냈네 그 새 해냈어그려.'
난데없는 곤말 영감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숭숭 털려 나간 뒷간 토석담으로 파고든다. 보나마나 그 풋배 타령일 게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나는 울 밖으로 늘어진 가지에서 하나를 따냈다가 썩은 밤 내뱉듯 콩밭에 던져 버린 터이다.
'아엥 싸그리 훑어 낼 일이지 어쩌끄롬 따박따박 하나썩 해대냔 말여 천불나게.'
작년에 첫물을 본 데다가 올해는 해거리를 앓아 손가락셈도 안 되는 것에 어떤 까마귀 새끼 주둥이가 탄다고 무장 목청이 높던 영감님이고 보면 며칠 전부터 누군가 몰래 해내는 모양인데 나는 이제 조막만하게 오른 그것이 도대체 얼마나 맛이 들었기에 자꾸 잡숴 대나 하고 무심히 건드려 본 것이었다. 역시나 아직 가칠가칠하고 텁텁한 풋것이었다. 그런 것을 영감님의 성질머리를 건드려 가며 벌써 네댓 알 바수어 낸 푼수로 보면 맛보다는 은근히 주인 곯려 먹는 재미로 그러는 짓임에 분명했다. 도대체 어떤 작자의 수작인지 나도 부쩍 궁금해진 터라 귀를 쫑긋 세운다.
'누군 중 빤히 알고는 있었다만 쾨 앞에서 그 짓거리를 해야.'
해대시는 게 어라 심상치 않다. 헛총질은 아닐 테고 아무래도 나 들으라고 이웃이라고는 우리 집밖에 없으니 하는 소리 같다. 오늘은 마당귀에 앉아서 내 짓을 사그리 훔쳐 낸 모양인가.
'지미 반정부 족쇡들.'
과연 뭔가를 집어 던진 모양인데 땅따그르 뒷간 바람벽에 부딪쳐 풀새밭에 처박히는 것은 개밥그릇이다. 집 안까지 싸잡는 독살풀이에 나는 끙 엉덩이를 들썩였다. 사발허통이나 다름없는 뒷간 꼴도 그렇지만 영감님이 저렇게 해대고 보면 나는 없던 변비 기미마저 돌아 진작에 일 보기도 틀린 듯싶다.
그래도 좀 지나치다. 설령 내가 그 짓을 했다손 아니 더한 것을 먹었대도 이웃 간에 집안 내력까지 들츨 필요는 없잖은가. 우리 집이 오늘까지 초가로 남아 있는 내력을 온 동네가 다 아는 터 집구석 꼴이 안 됐다고 어른 주제로 타박하는 것쯤이야 이해해야겠다. 그런데 저렇게 우리 모자까지 싸잡아 건드리면 곤란하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몰아칠 때도 동네에서 유일하게 초가 신세를 못 면한 집이 우리 집이다. 어머니가 업구렁이를 품은 지붕이라고 한사코 개량을 마다했기 때문이다. 그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압구렁이에는 사족을 못 쓰는 당골이다. 반장이네 이장이네 하는 동네 유권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꿈쩍 않자 면에서 직접 공무원이 나왔는데 그이는 그 면상에 대놓고 국록을 묵재도 댁네 대에서 막장 볼 상이로고 시방 우리 업신님이 그러시네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도 용하다는 소문은 들었던지 그 공무원은 시월 무화과 낯빛이 되어 이 골엔 순 반정부인사가 처박혔구만하고 돌아갔다. 그때 얻어먹은 별명이 대를 잇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별명을 좀 억울하게 얻었는지 몰라도 나로 치자면 사실 옳게 받은 셈이다. 지난해 한탕 해먹은 국가 기물이 있으니 혓바닥이 세 발이래도 할 말은 없다.
그래저래 꼼짝없이 덤터기를 쓸 것 같아.
'암마 도둑 잡어 줄라믄 물겐 진가를 제대로 알어야 어째 볼 것 아니요이. 그래 내...'
하고 발뺌을 하다가 나는 외려 화가 더 돋쳐서 담배까지 내뱉었다. 번연히 뒷간으로 기어드는 걸 보고 개밥그릇을 내던진건 생각할수록 심하다. 눈앞에 있었다면 그것이 오롯이 내 면상으로 날아들었을 게 아닌가. 기왕 이렇게 두드리자고 나오는 마당.
'이녁 땅에 뿌리박었다고 거 넝쿨은 아무디로나 나대도 암시랑토 않다요.'
나도 한껏 역정풀이를 했다. 콩밭 둑에서 굴뚝을 타고 넘어와 우리 지붕에 둥지를 튼 영감님 저희네 호박에 대한 트집이 아무려나 제일 약발이 듣는 대거리겠거니 해서였다.
그래 놓고 얼마나 해대는지 보자고 바짝 도스렸더니 아무 기척이 없다. 제대로 과녁에 들어백인 모냥이군 하고 바람벽틈으로 눈길을 쑤시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가로막고 든다. 차는 뒷간 뒤를 멈칫멈칫 감아 돌더니 자갈더미 밟는 소리를 내며 이내 멈추는 것이다.
'힝 굼벵이가 이제사 낯바닥을 내미는군.'
이 자식 똥을 한 볼때기 처먹여야지 나는 화장지를 둘둘 말아 쥐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목소리 대신
'와 동화책에 나오는 집이다.'
하고 웬 낯선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 흥부와 놀부에서 봤지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저런 집을 짓고 살았단다.'
이번에는 나긋나긋한 여자의 목소리다. 낯선 목소리는 바람멱 틈에 대놓고 속살거리는 듯 가깝다.
'근데 근데 엄마. 허수아비가 왜 지붕에서 살아요.'
'어머머 정말이네 박 대신 호박을 지붕에 올린 것도 재밌지만 호박을 지키느라고 허수아비를 올린 건 더 재밌네. 여보 사람이 사나 봐요 마당에 텐트도 말려 둔게.'
'민속촌에서도 퇴짜 맞을 흉가 같은데 뭘.'
어쭈... 나는 허리춤을 그러쥐고 양철 문짝을 퉁 차며 마당으로 나섰다. 승용차 창문에 매달린 채 사철나무 울타리 너머로 집을 들여다보는 비둘기 가족은 낯선 외지인들이다. 나는 덤빌 듯 한 발을 내딛으며.
'아예 마당 밟고 볼텨 내 관람료는 안 받지.'
하고 내쏜다. 난데없는 나의 출현도 그렇겠지만 사뭇 비뚜름한 기세에 외지인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무안해서 까딱 머리를 숙인 여자가 채 얼굴을 들기도 전 차는 이미 고샅길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나는 맵찬 눈길로 차 뒤꽁무니를 좇다가 닭 쫓던 개 뭣 한다고 새삼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삭은 이엉 고랑마다 버섯과 개망초까지 뛰어올라 자라고 있고 호박줄기는 이제 지붕갓머리를 다 휘덮었다. 누가 날 찾으면 곤말 영감이 저그 문패 안 봬하며 지석다리 없이 집적거리기 일쑤인 그 쇠불알 같은 호박 한 덩이는 이엉을 해작이고 앉아 놀면하다. 지붕 한 귀에 삼아 올렸던 허수아비놈은 밀짚모자을 어디로 내버리고 민둥머리로 기우듬히 지쳐 있는지...
'참말로 유제 못 허겄네. 머 겁나서 장 못 담겄다고...'
잘코사니 입이 벙그러졌을 줄 짐작했던 영감님은 배나무 가지를 울 안으로 휘어잡고 고리눈이다. 보아 하니 함지박까지 내놓고 배를 털어 내는 주이었나 보다.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천상 익은 과실은 못 자실 좀생이라고 코방귀를 질렀다. 그래도 그는 손끝에 갈씬거리는 배 세 알은 끝내 못 해냈던지 까치밥 마냥 그대로 달아 둔 채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세운다.
'이렇금 해라 저렇금 해라 내 간십할 처지는 아니다만.'
그렇게 끼어들더니.
'기앙지사 도깨이 짜리럴 들었으믄 씰어넹기든지 폴아치등지 양당간에 먼 수를 내야 쓸 거 아잉감. 여름 내 모구 퍼리 끓어 쌓더니만 요샌 밤마동 뷩이가 한 마리 앉거서 구신 소리를 해대는 것이 영 못 살겄구만.'
하며 기어이 볼장까지 보고 만다.
'마침 호박이 몬자 이사 왔응께 아예 그 질로 따라 들어 살믄 쓰겄네요.'
나는 샐샐 웃으며 가시를 박아 놓고 뒤란 언덕빼기를 올라 콩밭 둑으로 내뺀다. 콩밭 위로는 박씨 문중 선산 종암이 녀석은 바둑판을 차려 놓고 눈이 빠졌을 것이다. 중반전에 들어섰던 판을 놓고 내가 뒤를 누르며 일어서자 녀석은 몹시 아니꼬운 눈초리였다.
그늘이 내린 안골 뜸은 그대로 구름 빛이다. 한데 얼린 응원단 손짓처럼 콩잎은 노대바람에 희뜩희뜩 뒤집힌다. 콩밭을 휘두르며 놀던 바람이 뺨까지 훑고 간다.
'작것은 얼마나 모지락시럽게 쎄레불라고 예행 연습도 읎다냐.'
기다린 정성이 닿았던지 오신다는 태풍은 참 굵은 놈인가 보다. 으레 괴괴하고 후끈하고 찌무룩한 기운이 감도는 중낮이어야 하거늘. 이것은 소나기 그어 댈 상으로 갈피를 못 잡게 한다.
상석 한 귀를 차고 앉은 종암은 바둑알부터 한 웅큼 그러쥔다. 엉덩이짝을 대기 무섭게 딱 바둑돌을 꽂는 게 그 사이 대단한 수를 엮어 둔 기세다. 나는 뜨끔하여 고의춤에 꽂았던 손을 뽑아 낸다. 이윽히 수를 읽던 끝에.
'고자 좆이구마.'
하며 뻣뻣하게 당겼던 허리를 누그러뜨리자 녀석은 찌른 흑돌을 도로 집어 낸다. 딴에는 도수 높은 안경까지 손가락으로 걷어 받치고 상석에다가 색연필로 친 바둑판을 짯짯이 훑는데 내 셈으로는 거긴 찌를 구멍이 아니다. 물릴 수를 귀띔해 준것도 삼세판의 끝판도 얼추 내 쪽으로 판세가 돌았기 때문이다.
'호 자충수라...'
녀석은 턱을 훑고 돌을 바각바각 주무른다. 대학물 먹은 대가리치고는 더디다. 입문서에 줄을 쳐가며 열을 올리는 모양이지만 넉 점 접고 보름 가량 둔 바둑이 줄바둑을 못 면했다. 내가 녀석에게 해볼 만한 것은 나잇살이나 공짜로 더 먹은 것하고 이 바둑뿐이다. 나는 고등 학교도 다니다 말아서 가방끈부터가 대보지 못하게 짧다. 처음 두 번 서울로 내뺐을 때는 학교에서 도로 받아 주었지만 세 번째에는 어머니가 손을 끌고 가 굿판 비난수로 내리 사흘을 사정했는데도 에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인물 쪽으로 돌아가면 난 참 할 말이 없어진다. 종암이는 눈이 안 좋아서 그렇지 깎은 밤톨마냥 허여멀쑥한 게 논두렁 볕을 쬐고 자란 여기 물색은 아닌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무쇠솥 밑창 같은 얼굴에 그 빛깔만큼이나 깊은 여드름 구멍도 숭숭 많다. 봉자년의 말에 따르면 너무 서둘러 배운 담배 탓이란다.
하긴 나도 잘하는 게 요것 말고도 또 있긴 하다. 용접봉도 댈 줄 알고 담벼락쯤은 우습게 미장을 하고 삼동네에 묻어낸 보일러는 여태 뒷말이 없다. 그것뿐이냐. 근래에는 석재 공장에서 돌도 자르고 갈았다. 허나 그게 무슨 대순가. 서른 살을 눈앞에 차려 놓고 이 촌구석에서 썩고 있는데.
나는 담배를 빼물고.
'제대가 을매 안 남읐제.'
매양 묻던 그 소리를 또 한다. 빈말이래도 녀석이 듣기 즐겨하는 소린 줄 번연히 아는 터라.
'공휴일 제하고 반공일 포개면 슥 달.'
하고 한 마디 더 밀어 놓아 본다.
'딱 사십팔 일이오.'
'그람 돌아오는 학기에는 복학하겄구나 나도 한총련이냐.'
하고 좀 아는 체를 해볼 양인데 녀석은 어물어물 웃고 만다.
'애당초 거기 안 들었다믄 잘했다. 요새 보믄 모다 각서 씨고 도로 기나오지덜 않대 아다리 단수 받고 근디 거그 애기덜이 외통수에 걸려 영 시세 읎게 생겼드래도 끝까장 뻗댔으먼 좋겄드라. 우리 나라같이 시세가 오락가락허는 나라도 읎잖애.'
'행님 거 다리 좀 안 털믄 바둑이 안 되우 정신 사나와서 수를 못 읽겄네이.'
'자식 밀리면 그 찜부럭이드라.'
나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누른다. 갑자기 바둑판에 적막감이 흐른다. 억새 덤불에 소시락소시락 일던 바람 잦아들면 어김없이 풀새밭에 귀뚜라미 소리 인다. 찌릿찌릿 흘레 붙자는 그 소리에 더 부푸는 건 적막감. 이럴 때면 나는 천상 수놈인가 보다. 봉자년의 야리야리한 살맛이 그리웁다.
'야 놀고 먹는 노식아.'
그년이 작년 여름 잉기미 거리에서 날 부른 소리다. 미장이 장씨 일행에 묻어 공사판으로 나돌다가 거의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썩을년이 내 짧은 학창 시절 별호를 부르나 하고 돌아보았더니 목욕탕에서 막 나온 축축한 차림새로 봉자년이 서있었다. 서방과 갈라서고 석재 공장을 하는 제 아버지 곁으로 내려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얼굴을 맞닥뜨린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야 서울 구경 제일 먼저 한 니가 고향을 지키는구나. 반갑다야.'
봉자년은 내 팔을 끌어 붙들고 설레발 치는 거였다.
그 날부터 우리는 한데 얼려서 다방에서 커피도 홀짝였고 노래방도 갔고 항구에서 회도 먹었다. 년이 떼어 놓고 온 두 살배기 딸애가 자꾸 눈앞에 밟힌다며 흐느끼는 바람에 나는 소맷자락에 분가루깨나 묻혔다. 어느 한 군데 석 달을 착실히 못 버티는 내 주제에 장씨 일행에 붙어서 두 철을 공사판에서 난 것도 다 봉자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전력이 있는 여자면 어떠랴 싶었다. 봉자년의 말대로 노친네에게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주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년의 배꼽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아예 살림 날 결단을 했으니 일쑤년의 짜증이 옳은 것도 아니다.
년의 배꼽은 꽈리를 박아 놓은 것처럼 봉긋했다. 더러 애들 배꼽이 그런 것은 보았지만 다 자란 어른 것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은 처음이라.
'으마 배꼬마리가 붓어 부렀냐.'
하고 윗몸을 벌떡 세웠는데 년은 단작스레 까르르 웃어젖혔다.
'피잉 사내라는 것들 손에는 그것밖에 안 잡히니.'
'암만 봐도 희한하게 생겨 부렀네.'
'우리 아부지가 누구네 산소일 하는데 엄마가 샛거리 내갔다가 거기서 날 싸질렀어야. 아부지가 이빨로 탯줄을 끊는데 너무 질겼다나 대중없이 물어뜯어 놓은 게 이 꼴이란다. 이래봬도 지금이야 봐줄 만큼 들어갔어야. 너 학교 다닐 때 내 별명 못 들었니 뽁지라고 복어 말이야. 다 지긋지긋하게 못살 때 이야기구 내 최대의 핸디캡이지만서두...'
봉자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 눕던 거였다.
'다덜 부족한 거이 한 가지썩은 있잖겄냐.'
나는 그 꽈리 같은 것을 조몰락거리며 말했다.
'히히 하긴 니도 신앙심 없으믄 보기가 영 괴로워야. 인물로 보나 비전으로 보나... 그러고 보니 나나 나나 쌤쌤이다. 그치.'
우리 사이를 걸고 넘어진 이는 정작 노친네가 아니라 봉자 아버지였다. 봉자 아버지는 대를 이은 석수장이인데 몇 년 새에 일대에 들어선 석재 공장들과는 달리 비석과 망부석이나 쪼을 뿐 돈 된다는 건축 자재는 엄두도 못 내는 공장을 근근이 꾸려 가고 있었다. 더구나 올 봄에는 정화 시설을 안 갖췄다고 환경법 위반으로 석 달 영업정지까지 당해 전기마저 끊겼다. 그런 비실거리는 공장에 정화 시설을 같추라면 아예 문을 닫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봉자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었다.
'지미 신작로 저짝은 그거 읎어도 되고 이짝은 그가 꼭 있이야 된다는 벱이 으디 있냐구 어차피 바다로 섭슬리는 건 맹한가진디. 아싸리 와이로럴 쑤세박으라고 허란 말이여.'
그는 뇌물을 안 먹여서 정지 처분을 당한 것으로 단단히 믿었다. 그런 성질머리와 편벽을 가진 위인이
'시상 천하에 팔자 고칠 사내가 읎어서 당골네 새끼놈이냐 으이 혼차 살아라 혼차.'
하고 봉자를 공장 돌마당으로 끌고 다니며 패댈 때는 참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봉자와 함께 아무데로나 내뺄 결심을 했다. 일해 둔 노임이나 챙겨서 뜨자고 장씨 일행을 따라 나섰다가 사흘 만에 돌아와 보니 봉자년은 이미 서울로 내빼고 없었다. 봉자 아버지 말로는 옛 서방이 싹싹 벌어 데려갔다는 것인데 나는 곧이 듣지 않았다.
'으디로 내돌렸는지 싸게 대란 말요.'
나는 돌덩이 위에 앉아 시위를 했다.
'워따매 총객 망부석 하나 나왔구마이.'
하고 봉자 아버지는 본 척 만 척 제 일만 했다. 저도 어쩌다가 한번씩은 돌을 못 뒤집어서 용을 쓸 때가 있어 그때마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 단통에 뒤집어 주고 돌아와 앉곤 했다. 봉자 아버지는 돌에 먹줄을 퉁기다가 한쪽이 샐그러진 눈으로 이리 와보라고 손을 까불린다. 그래 내가 줄레줄레 다가서면 이번에는 먹줄 끝에 눈을 박아 보라고 손가락질이다.
'뭣이 보이냐 나가 요 줄을 퉁길 때마동 왜 한쪽 눈탱이를 지그시 감는 중 아냐 이거이 죽은 사램 문패가 될 돌인디 인생이란 거는 빛과 어둠 그러니께 니 귓구녕에 맞을 말로 살고 죽는 거의 한꾸네 있다는 그거거덩. 죽음이 행여 보일끄나 하고 나가 눈을 감는 것이여. 알긌냐.'
하면서 내 두통사를 맵게 올려붙이는 것이다.
난 일이고 뭐고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장씨가 숱해 찾아와 정신 차리고 함께 일 나가자고 해도 나는 텐트를 무덤 삼아 지냈다. 오로지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봉자년을 만나서 우리 관계는 무엇이었는지 한번 속 시원하게 자초지종이나 듣고 싶어서였다. 그게 다 부질없는 짓거리라고 마음이 돌아섰을 때는 무작정 이 촌구석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 드러누워도 엎어져도 한숨뿐이었다.
'행님 웬 한숨이유.'
종암이 녀석이 대뜸 부르는 서슬에 나는 이마를 응등그린다. 담배 필터가 마른 입술을 물고 늘어진 탓이다. 녀석의 행님 소리는 영영 귀에 익지 않을 성싶다. 콧물 훌쩍이며 고드래 뽕이나 하고 놀던 애가 어느 새 면사무소 공익 근무 요원으로 자라 예닐곱 낫살 차이를 무색케 하니 말이다. 때로는 동제에 나도는 평판도 들었을 녀석이 창아리도 없이 그 행님 소리를 더끔더끔 섬길 때면 놀리자고 이러나 다시 보게 된다.
'거 주택 복구 보조금 건 말입니다.'
마치 그림자놀이 하는 손 모양으로 착점할 데를 노리는 녀석은 남의 얼굴은 안중에도 없다.
'완파냐 반파냐에 따라 다르다는디요.'
'완파믄.'
'그람 융자만 천이백이고요.'
'보조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고라. 걷히는 의연금이 얼매냐에 따라 액수가 정해진다는디 볼 게 없답디다.'
'천이백이라...'
나는 가슴이 할랑거린다. 이거 용궁에 빠진 심청이 꼴 났다. 일이 이리저리 꼬이더니만 외려 큰 것이 걸려드느라고 그랬는 갑다. 이번에는 내 편에서 바둑알을 바각이다가 종암이 깨알콩 알 캐묻고 들까 싶어 진작에 입 막음할 작정으로
'그 아재두 참 내가 뭔 힘아지구가 있다구 그런 걸 다 알아봐 달랜지...'
하고 헛다리를 놓아 둔다.
'요새도 태풍에 넘어가는 집이 다 있나 봬.'
'왜 읎겄냐 것도 삼사십 년썩 묵은 것 칠팔십 년썩 묵은 것이 있는디... 느그 집도 애그니슨가 사란가가 스레트를 통째로 들어다가 깨밭에 옮게 논 통에 새로 성주한 걸로 안다만.'
그만 입이 쑥 들어간 녀석은 끝내기돌을 던져 넣는다. 지척에서 풀무치 한 마리가 떼그르르 허공을 가르며 옮겨 앉는다. 나는 울타리 둘렀다고 다 집이 아니다 해놓고 빈틈없이 짱짱한 녀석의 귀집에 딱 흰 돌을 꽂아 넣었다.
귀퉁이를 한 귀밖에 못 훔쳐 먹었는데도 집내기를 해보니 백이 따낸 돌에서 다섯 점 남는다. 승부는 볼 것 없이 배꼽점 어름 대마싸움에서 갈렸지 싶다. 담배 한 갑을 내미는 녀석은 역시 아니꼬운 기색이다.
'날로 는다. 아생연후하고 살타라. 다시 말해 나부텀 밍줄 잇어 놓고 그 담에 넘도 거시기 허라는 말씀인디 고것만 맹심하믄 니도 솔찮은 바둑이다.'
나는 무릎을 두드리며 일어난다. 바둑돌 그릇을 도시락 가방에 챙겨 넣은 종암이도 기지개를 켠다. 녀석은 시계를 들여다 보고
'음마 시간 좀 보소.'
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간다.
'반공일 오후인디 방우가 머가 그리 바쁘냐.'
'면에 도로 나가 봐야 해요. 비상이거든요. 태풍이 올라온다니께...'
입아귀가 샐쭉 죽은 녀석은 자전거를 내몬다.
초가 옆을 지나는 농로가 새터를 넘어 지방 도로와 잇닿고 녀석은 그 길을 타고 버스 종점인 잉기미 쪽으로 넘을 것이다. 너른 구릉밭에는 드문드문 사람이 박혔다. 비설거지를 하느라고 바쁜 일손들인가 보다. 말려 둔 깻단에 비닐을 둘러씌우고 무배추밭에는 비료를 뿌릴 것이다.
나는 콩밭 둑길을 가로질러 초가 뒤꼍으로 내려서다가 무춤 몸을 낮춘다. 내리막길을 내달리던 종암이가 곡예하듯 몸을 꼿곳이 세우고 영감님네 남은 그 풋배를 낚아 채는 것이다. 아주 잽싸고 능숙한 몸놀림이다. 녀석은 풋배를 신문 배달하는 아이처럼 콩밭으로 내던지곤 길모퉁이를 돌아 유유히 사라진다. 영감의 등쌀에 고달픈 건 누구라는 사실을 빤히 아는 놈의 수작치고는 바탕 없이 약았다.
바람 한 줄기가 시누대 울타리를 치더니 지붕에서 검불이 날린다.
빗도랑이나 겨우 돌린 뒤란은 힘받이로 걸친 여남은 개 말목이 언덕바지를 짚은 채 넘어오는 바람벽을 받치고 있고 허리까지 자란 지칭개와 개망초가 우거져 발 한 치 디밀기가 어렵다. 마당 한편에 쳐둔 텐트는 줄이 느슨해져 서리 맞은 애호박마냥 쪼물짝하다. 애초에는 관리 사무소 격으로 쳐놓은 텐트였다. 그런데 요새는 그 용도가 달라졌다. 태풍에 가옥이 파손되면 틀림없이 피해 조사를 나올 터이고 사람 사는 집이라고 우기려면 틈틈이 드나들며 잠을 자두는 수밖에 없는데 이 텐트는 그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쇠말뚝을 새로 박는다.
내가 애초부터 태풍을 기다렸던 건 아니다. 그나마 근근 들어 살던 초가도 올 해동비에 찡그둥 우는 소리를 낸 바람에 노친네가 자다가 쫓겨나왔다. 그래도 시누대를 얽어서 흙벽을 친 집이라 당장 넘어가지는 않아 며칠 더 묵새기다가 새터 쪽에 새로 난 빈집으로 이사했다. 입식 부엌 하나 제대로 안 갖춰진 그 집도 슬레이트나 올렸달 뿐이지 이 초가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래도 꼴에 전세에다가 신방은 못 차린다는 조건이 붙었다. 나야 장씨 일행에 묻어 공사판으로 나돌아 집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지만 신방을 못 차리면 당장 가위에 눌려 죽을 판이라는 노친네는 사정이 달랐다. 마냥 그이를 남의집살이로 지내게 할 수 없어서 집 자리에 조립식 주택이라도 엮어 볼 작정이었는데 혓바닥을 뽑을 그 굼벵이 놈이 다 잡쳐 놓았다.
이러구러 짬만 보다가 오월도 훌떡 다 넘길 무렵이었다.
'거 지붕만 팝시다.'
지나가다 우연찮게 들렀다는 장사꾼인지 사기꾼인지 알 길 없는 놈이 대뜸 내놓은 흥정이 그랬다. 그는 이엉 한 귀퉁이를 되작여 누에만한 굼벵이 굴이 여태 남아났다니...'
하며 감탄 연발이었다. 놈은 오십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나는 웬 횡재냐 싶었다. 놈이 저 썩어 문드러진 지붕을 손수 드러내 주고 거기에 그런 적잖은 돈까지 얹어 놓겠다니 누가 들어도 꿩 먹고 알로 입가심했다는 말 나오게 생겼다고 손바닥을 쳤다. 놈이 굼벵이를 더 키워야 쓸 만한 물건이 되겠다며 초가을에나 이엉을 들어 내자는 걸 나는 몇 푼 더 우려 낼 생각으로 넌지시 딴청을 놓았다.
'그리 오래는 못 기다리는 골동품인디...'
'물건을 잘 키워 놓으면 내 그 품삯까지 쳐서 삼십을 더 얹어 드리리다. 땅 살 사람도 물색해 보고.'
그래 놓고 간 놈이 입때껏 낯바닥을 안 내미는 것이다.
여름 내 나는 그 지붕만 쳐다보며 지냈다. 굼벵이를 가꾸는 일이라고 해봐야 기갈 든 지붕에 물을 뿌려 두엄더미 안 아쉽게 푹 삭혀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붕에 물을 대고 있노라면 오가는 사람마다 무슨 장난으로 지붕 농사냐고 혀를 털었다. 참새 한 마리 얼씬 못하게 하느라고 허수아비를 지붕에 올려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까지 생각하면 굼벵이놈을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판이다.
나는 손을 털고 마당을 나섰다. 사철나무 울타리를 경계로 삼은 앞 텃밭엔 노친네가 갈아둔 무와 배추가 제법 무성하다. 제대로 솎아 내지 않아 모판 같은 열무나 겨우 상추 포기만큼 벌어진 배추는 다른 집들 것에 대면 훨씬 더딘 생장이다. 노친네 성미에 저리 가만둘 리 없는데 백중맞이 대목 뒤로 그이는 집에서 지내는 날이 드물었다.
나는 밤을 잉기미의 으용 소방대 사무실이나 텐트에서 나기 일쑤이다. 소방대 사무실 소파는 잠자리가 좀 옹색해서 탈이지 밤으로 놀다가 먼 길을 안 들어와도 좋으니 한결 나은 편이다. 그래도 여름 한 철은 봉자네 석재 공장에서 밤일을 하고 거기에서 거꾸러져 잤다.
어느 하루 낮에 어이 있는가 하고 텐트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장씨인 줄 알고 홑이불을 말아 감는데 텐트속으로 머리를 비집어 넣는 이는 뜻밖에도 봉자 아버지였다. 또 무슨 해찰을 부리려나 나는 적이 긴장했다. 그는 영업 정지 탓인지 봉자를 패대던 때의 기세는 없이 꽤 곯은 낯빛이었다. 선산 일을 하나 맡아 손이 달리는데 며칠만 바짝 도와 달라고 했다. 공장은 가정용 전기를 끌어다가 전압기로 튀겨서 밤으로만 몰래 기계를 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침 용돈도 궁하고 밤 시간에 잠깐 거들면 된다는 말에 흔감했다가 문득 미운 생각이 치밀어서 도로 이불을 감고 돌아 누워 버렸다.
'당골네 자제라 했던 소리는 내 미안함세.'
휴 한숨에 묻어 오는 그의 더운 이김이 귓결에 느껴져도 나는 기척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반 시간은 족히 뭉그적이다가 묶어 둔 아랫배를 그러쥐고 나서니 봉자 아버지는 토방으로 물러나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발 밑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내 애비로서 할 말은 아니네만 봉자 그년하고 깨진 건 천만다행인 줄 아소. 그 샐 못 참고 간통으로 들앉겄네.'
나는 봉자 아버지와 저만큼 떨어진 토방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서로 등지고 앉아 애꿎은 담배를 몇 대나 그슬렸을까 던적 없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자고로 사나이넌 말이여 여자하고 돈하고만 조심하믄 벨탈이 읎는 거거덩.'
위로랍시고 봉자 아버지가 입을 뗐다.
'나 시방 헷또가 팍 돌아불겄소. 한때나마 사람 정으로 살맛을 준 아가... 여자 쪽으로는 안중 철이 안 들어서 그란지 몰라도 그때는 나가 왜 사는지 알 것도 같았는디... 암튼 갸를 다시 보믄 그 독헌 배꼬마리를 후벼 내고 말 것인께 아재는 말리지 마시시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만에 나는 그를 따라 나섰다.
트림을 해대며 툇마루에 앉았는데 사위는 금세 어웅하다. 동편으로 세 굽이 키대로 포개진 산이 어둠에 녹아빠지고 있다. 앞산 쪽에서는 거무스레했던 때깔이 봉봉을 넘으며 연해 밀개지다가 끝내 마지막 봉우리에서는 잿빛 하늘과 얼려 버렸다. 어둠은 꿀렁꿀렁 흔들리며 고이는 것 같다.
'하 저닉도 싸게 오네. 비료나 허체 볼끄나.'
나는 동굴처럼 어둔 광에 발을 담근다. 벽과 기둥을 쓸어 봐도 전깃불 스위치는 어디에 붙었는지 잡히지 않는다. 어렴풋이 눈에 익어 오는 광 안은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를 쓸어 넣은 창고답지 않게 큰 물건은 아래 작은놈들은 위로 업히고 옹기는 옹기대로 그릇은 그릇대로 들앉아 가지런하다. 발 밑에 밟히는 쌀톨 하나 없다. 시렁의 라면 박스는 무구함인가 보다. 위로 삐죽이 코를 쳐든 회색 나막신 한 켤레는 업구렁이 나들이 신발이다. 노친네는 밥을 먹다가도 울 밑으로 구렁이가 언뜻 스치기라도 하면 저 나막신을 들고 내달아 땅바닥에 가지런히 놓아 두고 아이고 출타하실라고라. 몰른 땅으로만 펜이 댕게오시시요이 하고 합장례를 올렸다.
드디어 쌀가마니 옆에서 위아래를 새끼줄로 질끈 동여맨 비료 포대 하나가 눈에 띈다.
'차암 깊이도 모셨네.'
반이나 쓰고 남아 간수해 둔 모양이다. 이 정도면 텃밭을 한 바퀴 돌며 뿌리고도 남겠다.
나는 비료 포대를 들쳐메고 노는 손에 해머와 소주병 담은 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 전깃불들이 까물가물거릴 만큼 바람은 사납다. 아직 비는 뿌리지 않지만 도랑가에 선 늙은 밤나무 그늘 아래서라면 물 듣는 소리도 들릴 만큼 뺨에 감기는 공기는 축축하다.
조금돌이등을 넘는데.
'아이 노식아.'
누군가 언덕빼기 아래 밭자리에서 부른다. 빈 비료 포대를 옆구리에 낀 장씨가 올려다보고 있다. 이번에는 한 달포 만이다.
'아예 추석 쇠려고 나오셨수.'
나는 길가에 쪼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여 문다. 장씨는 새포대잇을 낫으로 그어 낸다. 낮일로 밥벌이를 하면서도 가랫자루 근성을 못버려 어디를 가나 노상 전답 걱정인 것을 보면 쑥 백 년 농사꾼 내림이다.
'추석은 무신... 태풍에 쉰다고 해서 한 이틀 짬 낸 거여. 낼 다시 가면 한 열흘거리나 될랑가. 업자놈이 안 올 줄 알고 아싸리 간조를 반이나 띠놓고 주더라.'
'벽돌 몇 장 빼놓고 오지 그랬수.'
'그나저나 나눔이 다 비료 푸대를 메고 벨 일이다.'
'왜요 이 실바타운에 순 깔린 기 뗏장인디 미리 고것들이나 키와 노믄 동네 노인들한테 혹 귀염받을까 해서 나선 길이요.'
번쩍 번갯불이 지나간다. 우르릉 갈뫼 쪽 하늘이 꺼지는 소리를 낸다.
'욕보시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이봐 노식이.'
장씨가 다시 불러 세웠다.
'낼 떠날 셈인지 따라 나설랑가 개도 자꼬 나도는 놈이 배 채우는 벱이여.'
나는 손사래를 치고 돌아선다.
'일 읎네요. 앉어 있어도 오가는 바람이 돈 물어다 주는 수도 있제라...'
'왜 또 바람이 도졌남 낼 첫 차인께 늦지 않게 나와 보라구.'
나는 장씨의 말을 뒷전으로 흘려 버린다. 남 생각해 주는 말 같지만 걱실걱실 일 잘하고 이것저것 부려먹기 좋으니 아쉬워 매번 저 소리다.
이랑 하나를 남겨 두고 비가 듣기 시작한다. 배추 잎사귀를 투둑투두둑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쳐드니 찬 빗방울이 뺨을 때린다. 나는 남은 비료를 내털 듯 쏟아 놓고 한 걸음에 처마 밑으로 기어든다. 그 새 몸은 젖어서 습한 김이 피어오른다. 손바닥으로 우산을 해 쓰고 밭둑으로 뛰어가 해머와 술 봉지를 낚아 채서 다시 처마 밑으로 기어들 때는 초가 이엉에 낙 숫물이 듣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더 여물고 시간이 이슥해져서야 일 해내기가 용이 할 것이다. 하긴 내가 무슨 도둑질을 하는가. 작년 나라 고물 잡숫던 것에 비하면 이 일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일이다. 무엇보다 내 물건을 투자하는 일이니 안전하기로 치자면 바람결에 방귀 흘리기보다 쉽다. 공으로 거저 먹자는 것도 아니고 차차로 꺼나갈 테니 쥐뿔도 없는 놈이 무담보로 목돈 좀 당겨 쓰는 셈이다. 작년 가을은 참... 재미가 좋았다. 여러 모로 운수가 잘 맞아떨어졌다. 우선 빌린 차에 드라이브시켜 주겠노라고 봉자까지 태운 것도 잘했다. 뭐가 되려고 그랬는지 풍광 좋은 곳 많이 놔두고 개막이 공사장 근처의 폐염전으로 차를 몰았던 건 두고두고 모를 일이다. 보상금을 챙긴 사람들이 다 떠난 염전 마을은 빈 집과 창고만 갯둑 아래로 늘어선 채 갯바람에 말라 가고 있었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발가벗은 여체 사진이 벽에 나붙고 베니어로 조잡하게 짠 침대가 놓인 방을 발견했다. 아마도 젊은 인부 하나가 지냈던 방이었나 보다. 그 방에 들어 우리는 눈을 맞추었다. 내가 염전에서 눈을 맞춘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염전에 널려 있는 양수용 경운기 대가리와 몇만 평이 넘을 듯싶은 검은 비닐 매트리스 거기다 순쇳덩어리인 롤러까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아따 자원 재활용 잠 해야 쓰겄네이.'
내가 궁시렁거리자 볕 좋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뺀 봉자년은 제 소린 줄 알고 희뜩 돌아보더니.
'니는 재활용도 못 하는 불량품이어야.'
하고 눈을 흘겼다.
그 날부터 근 일 주일에 걸쳐 나는 그 고물들을 빼돌렸다. 마지막 차짐에는 무쇠솥 네 개와 집집 처마 밑에 제비집마냥 나붙은 전기 계량기도 섞여 있었다. 그렇게 날것으로 해먹은 것이 돈 백이 넘었다.
부엌문 두 짝이 바람을 안고 활개를 친다. 자정이 훌쩍 넘었는데도 바람은 호박 한 덩이도 건드리지 못하고 빈 데로만 들쑤시고 다니며 장난질이다. 비는 뿌리다 말다 한다. 사람 독종도 자꾸 얼굴 맞대고 있으면 순해 보이듯 벌써 몇 시간째 비 바람 뒤척이는 것만 들여다봐선지 태풍은 오는지 가는지 매지근하다. 나는 손전등을 더듬어 들고 마당을 훑어본다. 삭은 검불이 흘러내려 낙숫물 고랑은 개 그슬린 뒷자리 같다. 바람이 서까래 밑을 들이박고 나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으스스하다. 묵은 집이라 저런 짐승 소리는 내는 것일까. 나고 자란 집인데도 괜히 무슨 흉측한 짐승을 대하듯 두렵다.
나는 손바닥에 밭은 침을 뱉고 해머 자루를 움켜쥔다. 남의 눈 피해 덧나지 않게 하기에는 맞춤한 시각이다. 영감님도 잠이 들었는지 들창에 서렸던 텔레비전 푸른 기운도 가셨다. 툇마루 산기둥을 툭툭 두드리자 의외로 들썩인다. 내처 해머를 마루 산기둥을 툭툭 두드리자 의외로 들썩인다. 내처 해머를 머리 위까지 치켜들고 내리쳐 본다. 대번에 서까래받이가 찌그둥 기울고 호박이 덩굴째 쏟아져 허공에서 대롱거린다. 집을 빙 돌아가며 홑벽이며 기둥 골골샅샅이 쳐본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이엉은 한 몽텅이씩 빠지지만 흙벽은 맞은 자리만 털릴 뿐 기미가 없다. 기운 쪽으로 털어 내면 땅바닥으로 주저앉을까 싶어 두란 쪽으로 들어섰으나 여차하면 그 비좁은데 묻혀 무덤 삼기 십상이겠다. 나는 미끄러운 언덕빼기를 뭉개고 다니며 말목부터 모로 쳐 넘긴다.
뒤란 바깥귀 두리기둥을 두드려 들도리까지 빼내니 집이 반은 뒤틀린다. 건너편 기둥에 해머질을 해대자 어느 순간 우지끈 뒤틀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뒷벽은 쪼개져 언덕에 처박힌다. 서까래 한 귀가 이마를 긋고 가는 바람에 나는 철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귀도 멍멍하지만 가는 바람에 나는 철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귀도 멍멍하지만 일어나는 흙먼지에 도시 눈을 뜰 수가 없다.
난데없이 울타리 너머에서 손전등 불기둥이 쑤석거려 나는 아예 납작 드러누워 버렸다. 이거이 먼 일이당가 하고 소리치는 이는 곤말 영감임에 틀림없다. 나야말로 일 났다. 나는 헤무른 이엉 날개를 이불처럼 끌어 덮곤 내처 아이고 사람 살려 사람 죽으요 해놓으니 곤말 영감이 첨벙첨벙 마당으로 뛰어드는 기척이다. 전깃불이 휘도는 게 쉽사리 날 발견하지 못하는 눈치라 아이고 사람살려 하고 한 번 더 소리를 낸다.
'먼 일이여 왜 거그는 기들어가 있으까이 으마 이거 얼굴에 피가 벌거시.'
젠장맞을 손전등은 왜 그렇게 얼굴에다가 쑤셔 박은지...
'어이고 내다리 작살난 모양이네.'
'어째 운신을 해보겄냐.'
영감님이 어깻죽지에 손을 밀어 넣는다. 아구구구... 나는 땀바닥으로 한 바퀴 몸을 굴리고 간신히 일어난 척 영감님의 앙상한 어깨에 몸을 부린다.
영감님네 툇마루에 드러눕자 주인은 걸레인지 수건인지 축축한 것을 얼굴에 들어댄다. 나는 그것을 빼앗아 들고
'무단히 집 받치러 올라왔다가... 휴지 같은 건 읎소.'
'신문 쪼가리야 많제.'
'쯧 괜찮은 거 같응께 면에 전화나 한 통 너줄라요.'
'보겐소에.'
'아니 면사무소 대책 본부요. 집 넘어갔다구 신고는 해얄 것 아니겄소.'
'그란다마는...'
영감님이 방으로 들어간 지 한참 만에
'아 민이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그 안골인디 집이 한 채 자빠졌소. 이 싸그리. 사람은 죽지넌 안 했지만서두 마이 다체 부렀소. 누네 집이냐고 이 일공오삼 번지... 호주는 그러니께 이큰가이내...'
'호적에는 이대녀로 올랐소.'
내가 노친네 함자를 정절해서 소리쳐 넣자
'이큰가이내가 아이라 이대녀라네. 그렇제 큰 대 기집 녀... 피해액 그기야 암껏도 읎는 거나 다름없제만서두 글쎄나... 음마 신고한 사램은 누군 중 알아서 뭐 할라고 암튼 조새 나와 보믄 알 거 아이요 이상 신고 마치겄소이.'
나는 그제야 온몸에서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아무데라도 드러눕고 싶다.
빗길을 걸어오며 전깃불에 들여다본 집은 깔축 없이 돋아 있어 누가 건성 봐서는 원래 저 꼴 아니었어 하고 되묻게 생겼다.
새터 노친네 집으로 비척비척 기어들었을 땐 나는 잠들면 다시는 못 일어날 사람처럼 그대로 쓰러졌다. 밤새 나는 꿈인지 생신지 모를 귀살스런 소리와 광경에 시달리며 뒤척였다. 빛 한 점 없는 그믐밤 큰 업구렁이가 봉자 몸뚱어리를 친친 감은 채 물바다 어디론가 헤엄쳐 가는데 나는 초가 지붕 위에 앉아 애타게 부르기만 했다. 전화를 받은 것 같은데 무슨 말을 나불거렸는지 흐리마리하다. 아니다. 종암이 녀석이 아 글세 태훙이 씨급이 된 디다가 진로마저 일본으로 확 틀고 지나갔는디 왜 우리 면에서 가옥 파손이 하나 나왔냐며 면장님이고 군청이고 전화질이고 난리예요하고 씨월거리던 소리만은 귀에 쟁쟁하다.
분명 사위가 훤해졌으니 날이 샌 것만은 분명하리라. 나는 문을 벌컥 밀어 냈다. 안개가 피어오른 들녘은 착 가라앉아 있다. 그제야 나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꼬였다는 사실을 알고 문지방에 낯을 묻었다. 전국을 탈탈 털어 태풍에 넘어간 집은 우리 집밖에 없는 게 아닐까. 방송마다 우리 초가에 카메라를 들쑤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옷가방을 끼고 잿등 너머 정류장으로 허둥지둥 나가자니 그 예감은 더 확실해진다. 뒤돌아본 마을은 밤새 가을로 한 자는 더 성큼 빠진 듯했다. 누릇누릇 이삭 팬 논들은 어디 한구석 기계총 흉터처럼 누운 데가 없고 하다못해 길가에 퍼질러져 굳은 쇠똥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간밤의 태풍으로 못쓰게 된 건 나 혼자뿐 다 때깔이 피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가방을 하나씩 둘러멘 장씨 일행이 잿등을 넘어온다. 어디 몸 감출데 없나 둘러봐도 물 젖은 도랑에 엎어지면 모를까 사방 천지에 몸 담아 줄 응달 한 점 없다. 장씨 일행은 도로로 올라서서 신발에 묵근히 엉겨 붙은 흙을 털어 낸다. 무슨 농지거리를 삶았는지 한 통으로 내지르는 웃음소리가 시끌벅적하다. 젠장 난 고개를 틀고 먼 산 바라기다.
'자식 천상 양반 되기는 글렀다. 앉거서 돈 버는 수를 터득헌 놈이 웬일이냐.'
장씨 옆에 선 영섭 아빠다.
'나 거기들 안 따라가우.'
내가 뚱하여 쏘아붙이자
'니 간밤에 일 저질렀더만 아주 밭자리가 훤하든대.'
하고 장씨가 말을 내고 옆에 선 영섭 아빠가 받아서 퉁퉁 불어 볼 만하더라니께 하며 피할 데 없이 몰아붙인다.
'지미럴 금세들 보셨구마이. 거 참 재밌대.'
엎어져도 똥칠밖에 더 하랴 나는 헤헤 너털웃음을 내놓고 만다. 행여 뉴스에 도배가 되었더냐고 물어 볼 참인데
'보다뿐이여 에끼 아모리 비료 허기 싫대두 그라제 싸래기를 그리 허체놔 밤새 눈보라친 중 알았단 말시.'
한다. 어안이 벙벙해 섰던 나는 때마침 재를 넘어오는 버스가 눈에 들어와서 나는 펄쩍 뛰어 나섰다.
'아 싸게 서둘러요 오늘 일당은 죽 쑤고 말 거여.'